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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느냐' 아닌 '왜 했느냐'에 주목…소리 토해내는 광대의 무대

지난 9월1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올려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광대의 노래 '동리-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짙은 어둠이 깔린 무대 위에는 북이 단출하게 놓여 있었다. 어둠 속에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섞인 허스키한 음성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다소 어둡고 무거운 무대에 구원투수처럼 비춰진 소리꾼 정민영(36)씨가 주인공.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진지함과 진솔함 경계를 넘나든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세고 강한 역할을 많이 해오면서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는 데 인색했던 그는 "광대의 노래를 하고 나서야 에너지를 분출하는 역할이 나에게 꼭 맞는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판소리와 타악, 연극을 넘나드는 전천후(全天候) 예술가를 자처해오던 그가 처음으로 단독 공연을 갖는다. 24일 오후 7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갖는 정민영의 '판 놀음'. "시간에 쫓겨 준비하는 거라 그런지 공연 이 다가오니까 부담스러워지네요." 그렇다고 해서 혼자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 '쟁이'들을 불러내 어우러지는 판을 주선하는 형식. 판소리면 판소리, 악기면 악기, 연극이면 연극까지 진공청소기처럼 섭렵해오며 익혔던 내공을 집약시키는 무대를 두고 "좋으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 들었던 지난 시간을 중간점검 해보는 자리"라고 했다. 군산 개야도에서 10대를 보낸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당산굿을 좋아해 졸졸 따라다녔다. 소리가 좋아 판소리와 장구를 익혔고, 내친 김에 연극까지 도전했다. "판소리가 목소리의 표현이라면 타악과 연극은 몸짓의 표현이어서다." 그래서인지 어떤 장르의 무대이건 간에 스스럼없이 잘 어울린다. "'잘해야지'가 아니라 '왜 했냐'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은 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과제였어요. 판소리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소리꾼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의 말마따나 "대중은 진지함보다는 진솔함에, 억눌림보다는 솟구침에 반응한다." 무거운 것을 무겁게 표현하는 방식에 박수를 치는 이들은 점차 줄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소리판에도 필요한 'B급 스타일'은 바로 그의 몫이 될 것 같다. 우진문화재단의 '2012 우리소리 우리가락' 선정작.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3 23:02

독일 명품 클래식 전주서 만난다

독일은 오케스트라 중심의 굳건한 기악 전통을 가진 나라다. 국내 음악계에서도 독일 오케스트라는 품질 보증 수표나 다름 없다. 현재로선 방송교향악단은 독일에 가장 많다. '뉴욕 타임스'가 '천재 지휘자'라고 극찬한 카렐 마크 시숑(41)이 이끄는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이 전주를 찾는다. 올해 처음 내한하는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1980년대 30대 초반인 정명훈이 이 악단의 전신인 자르브뤼켄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수석지휘자를 맡았다. 시숑은 명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1946~2001)와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보조 지휘자를 거쳐 지난해 9월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오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이 악단은 화려한 개인기가 중심이 되기 보다는 일사불란한 팀워크와 탄탄한 합주력을 내세운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는 악단과 지휘자의 장점이 잘 드러나면서 대중성을 고려한 곡들로 구성됐다. 유럽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차세대 대표 주자'로 알려진 한국계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비비아네 하그너(35)가 협연한다. 하그너는 불과 12세 때 국제 무대로 나와 주빈 메타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역사적으로 조우하는 콘서트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주인공. 한국 출신의 작곡가 진은숙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몬트리올 심포니와 녹음해 음반으로 내놓았으며, 2년 전 한국을 방문해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동일한 곡을 선물하기도 했다. 현대 음악에서 강점을 보여온 그가 이번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을 선보인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비롯해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과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다. 공연은 23일 오후 7시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독일 전통 문의 063)270-8000. VIP석 15만원, R석 13만원, S석 10만원, A석 7만원, B석 4만원.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3 23:02

소리축제 공청회 2년째 침묵

전주세계소리축제 평가 공청회가 2년 째 감감무소식이다. 매년 공개 토론회를 이어온 소리축제 조직위가 새 집행위원회 체제 이후 공청회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박칼린김형석 두 집행위원장이 바쁜 데다, 매년 똑같은 논의가 거듭 돼 공청회가 굳이 필요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올해 소리축제가 성공했다는 자체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논의가 없다 보니 지역 문화계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소리축제가 나가야 할 방향에 관한 폭넓은 공감대 형성에도 '빨간불'이다. 소리축제가 공개 평가 자리를 갖지 않는 것은 전주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지역의 시군 축제들도 더 나은 축제를 위해 공개적인 의견 수렴을 거치는 것과 대조된다. 최근 폐막한 '2012 전주비빔밥축제'만 해도 지난 20일 포럼을 열어 숱하게 지적받은 대표 프로그램 강화를 위한 쓴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김남규 시의원은 "대표 프로그램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은 연구위원회가 진행한 논의의 연장선이었으나, 객관적인 고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빔밥축제 예산은 3억8000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22억8000만원이 투입된 올해 소리축제는 판소리 정체성을 살린 프로그램이 안착한 결과 유료무료 관람객들이 증가하는 등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평하면서도 아직까지 공개적인 평가 계획도 없는 상태다. 조직위는 축제 전 프로그램 관련한 논의부터 추후 평가까지 내부적으로만 진행한 채 시각 차이를 보인 인사들을 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국악계 한 인사는 "축제의 중심에서 배제된 지역의 문화계 인사들 중에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축제의 정체성 논쟁'으로 확대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비판이 두려워 공청회를 회피하기보다 적극적 논리로 건강한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전북도 역시 집행위원장 인선과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정작 소리축제를 제대로 평가받고 중장기적 발전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는 뒷전이다. "두 집행위원장이 남은 임기 동안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잠시나마 이들이 각종 논란을 막아줄 방패막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일각의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 문화계는 전국적 지명도를 갖고 있는 박칼린김형석 집행위원장의 스타 마케팅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두 집행위원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두 집행위원장의 능력과 별개로 지역 예술계와 괴리가 생길 경우 장기적으로 축제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행정사무감사에서 공동 집행위원장의 축제 현장 상주일수를 요구한 정진숙 도의회 문화관광건설위원회 의원은 "대선후보만 검증 논란에 시달리는 게 아니다. 도민들의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축제를 제대로 치렀는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의 고민이 요구될 것인지 평가받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소리축제의 방향성에 관한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진 않지만, 공론화 과정 속에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2 23:02

정읍 양하·봉동 생강 - 독특하고 강한 향·맛에 '양념재료의 감초'

지역 식재료 중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하는 양념 중 하나가 생강이다. 고려시대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생강은 완주군 봉동읍이 유명한 주산지다. 1300년 전 중국의 사신으로 갔다가 생강을 얻어와 봉동에 심은 게 기원이 됐다는 설(說)도 있다. 재래종 품종에 '봉동 재래'라는 명칭이 붙었다. 특히 봉동 생강은 유난히 뿌리가 크고 포도당 함량이 높은 데다 매운 맛이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강은 강한 향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음식을 만나면 자신의 색을 없애는 대신 전혀 새로운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추어탕보신탕 등과 같이 생선과 육류의 비린내를 잡아주며, 수정과식혜한과 등에 쓰인다. 완주군은 봉동농협을 통해 생강을 얇게 저며 설탕에 졸여 말린 편강, 복분바 추출물을 곁들인 복분자 맛 편강, 감귤 추출물을 가미한 감귤 맛 편강 등으로 간식용 등으로 내놓고 있다. 생강과 비슷한 향을 지녔으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읍 양하('양엣간','양회' 등)는 열대식물인 탓에 제주도와 정읍에서만 자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읍 산외면 일대 산기슭이나 밭두렁 등에 자라고 있는 양하는 독특한 향으로 호불호가 분명한 탓에 거의 홀대받고 있는 형국. 생으로 먹으면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지만, 고기와는 찰떡궁합을 자랑해 산적 사이에 끼워 먹으면 쌉싸래한 뒷맛이 일품이다. 봄 혹은 가을에 검지 손가락만한 꽃잎을 잘라 나물로 부쳐 먹고 줄기는 된장국이나 맑은 생선국에 넣으면 풍미를 살려준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2 23:02

④ 정읍 녹두·고창 보리 - 탁월한 웰빙식품…영농 규모화 과제

△ 손이 많이 가는 정읍 녹두, 건강식 재료로 엄지손가락 순천 방향으로 빠지는 호남고속도로를 타다 보면 이색 휴게소가 나온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의 이름을 딴 '녹두장군'에 착안한 정읍녹두장군휴게소다. 여기서는 지역 특산물인 녹두를 활용한 전떡죽식혜 등이 나온다. 체구가 작았으나 결기가 강한 전봉준과 녹두는 사뭇 닮았다. 녹두가 국내 작물이고, 녹두장군의 고장인 정읍에서 녹두 재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러나 오산이다. 녹두의 본래 원산지는 인도. 농업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부여 부소산의 백제 군창지에서 녹두와 팥이 출토된 것으로 미뤄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읍농기센터에 문의해본 결과 최근 녹두를 규모 있게 재배하는 농가는 거의 없었다. 대표적인 이유는 손이 많이 가서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녹두는 키만 크고 열매는 부실한 편. 밑에서부터 차례로 꽃이 피고 꼬투리가 달리는데, 완전히 익은 것을 그냥 두면 꼬투리가 터져 자그만 콩알이 쉽게 흩어진다. 익었다 싶을 때 손으로 직접 따야 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든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녹두는 여름 작물 중 파종기간이 가장 길다. 팥보다 늦게 심기에도 적당해 봄에 심었던 작물이 가뭄 등으로 실패했을 때 대체 작물로 심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해 농업진흥청이 기계로 한 번에 수확할 수 있도록 개량한 신품종 '다현녹두'를 내놓기도 했으나, 대중화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지난해 처음으로 밭 2만6446㎡(8000 평)에 다현녹두를 보리와 이모작하고 있는 은병규(55정읍 고부군 고부리)씨는 "기계로 재배할 수 있어 일손이 많이 들지 않는 편"이라면서도 "올해 태풍 피해가 심해 손익분기점을 낼 수 없으나, 전남의 경우 지난해 1㎏당 1만7000~8000원 정도 팔렸던 만큼 가격 경쟁력은 있는 품목"이라고 자신했다. 이렇게 생산되는 녹두는 싹을 틔워 숙주나물을 생산하는 대기업에서 대량 소비되며, 일부는 고급 음식점이나 병원 등에서 사간다. 녹두는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기를 보완하고 열독을 없애는 데 특효가 있다. 녹두를 불려서 갈아 노릇노릇하게 부쳐낸 녹두전, 녹두와 쌀과 갈아서 자작자작하게 끓인 녹두죽, 녹두를 갈아 앙금을 내려 얻은 녹말로 쑤어낸 청포묵 등이 녹두를 활용해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이 땅의 척박한 춘궁기를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보리가 한때 혼식 장려 덕에 눈칫밥을 먹었지만 요즘은 애써 찾는 웰빙식품이 됐다. 그러나 좋은 녹두를 구하기는 힘드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 알곡이 굵고 맛있는 고창 밭보리갈수록 생산량 줄고, 상품 개발 한계보리 살리기 운동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올해는 전국 보리 생산량이 지난해와 비교해 22.6%가 줄었다. 한반도 음식 역사에서 밀과 보리의 중요도를 비교하면, 언제나 보리가 앞섰다. 고려시대부터 보리는 대맥(大麥), 밀을 소맥(小麥)이라 분류됐을 정도로 갑(甲)과 을(乙)의 관계로 치자면 보리가 갑에 해당됐다. 1970년대 이후 쌀이 자급자족으로 생산되자, 대체 알곡이었던 보리 재배 면적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맛의 다양화를 위해서라도 보리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나 보리는 겨울에 자라기 때문에 병충해가 붙지 않아 농약에 안전하고, 쌀에 부족한 영양성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건강식품이다. 보리는 찰기가 많은 찰보리 계통이 재배 면적의 70~80%를 차지한다. 찰기가 적은 메보리는 보리차 같은 가공용이나 맥주 가공용으로 재배되나, 찰보리는 밥을 섞는 것 외에 보리빵이나 보리국수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남 영광과 해남 등에서도 재배되는 보리 중 고창 보리가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것은 대개 밭보리여서 알곡이 굵고 맛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단백질무기질 등이 고루 포함된 보리엔 특히 섬유소가 쌀 보다 10배 이상 많아 장의 원활한 운동도 돕는다. 게다가 보리는 쌀과 함께 밥을 하면 다소 밋밋한 맛이 줄고, 어린 보리 싹을 쓰는 보리개떡이나 제분을 한 보리빵 맛은 밀빵에 비해 고소하다. 보리 싹을 틔워 바짝 말린 뒤 빻아 쓰는 엿기름이나 여름철 보리미숫가루는 시원한 음료로 권할 만하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보리밥빵 등은 여전히 별식에 가깝다. 보리 생산량이 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고창군은 매년 봄 청보리밭 축제를 통해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일부 영세기업마저도 보리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내놓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예로 고창의 농업회사법인'청맥'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흑보리로 커피를 만든다. 본격 시판을 앞둔 보리 커피는 지난해 3000억을 돌파한 커피 시장과 연계시켜 카페인 없는 커피로 적극 홍보 중. 하지만 보리 커피만으론 커피 고유의 향이나 맛을 즐길 순 없고, 원두커피와 섞어 마셔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올해 한국음식관광축제 국내기업관에서 보리 커피를 시음해본 소비자들은 "아메리카노와 맛이 비슷한데, 고소하면서도 쓰다"고 했다. 하지만 다양한 상품으로 접목된 보리가 시민들의 식탁과 생활에 안착되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2 23:02

故 이동엽 선생을 추모하며 - '전통문화 아꼈던' 형, 꿈에라도 보고싶네요

지난 19일 조용히 눈을 감은 이동엽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이사장. 고인은 지역 문화계 현안마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총대를 멘 '돈키호테'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잔 걸치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주당(酒黨)이었으며, 어떤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한량(閑良)이었다. 호걸의 풍채는 세월로 사위었으나, 그 허세와 패기,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오랫동안 그리울 것이다. 김병수 (사)이음의 대표가 그를 보내는 마음을 전해왔다.응급실에 온 지난 7일 밤. 이동엽 선배는 오가는 정신 결에도 "내가 누구여"를 묻는 부인에게 입술만 달싹 "공주마마"라며 농담을 놓지 않았다. 입원이 결정되고 다시 일어날 희망이 희미한데도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링거를 술로 대신하고 싶다거나 담배 한대 태우자고 한다. 기력도 돈도 없는 처지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줘야한다거나 도움받은 사람을 적어두라거나 한다. 속없는 이분을 만난 건 내 나이 서른셋. 여행 후 속절없을 방황기에 낡은 한옥집 다문. 지금의 한옥마을 교동의 한 찻집, 마당에서다. 멍석에 조촐한 술상 보고, 술 들다 차 들다 거나하고 한가롭던 나날이었다. 어느 날은 취중에 절을 올리셔서 황망한 내가 반절을 했더니 "'뒤'를 보라"고 했다. "끄덕이는 분꽃이 고와서, 끄덕끄덕 나에게 해주는 인사가 고마워" 그랬다나.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존재감을 일깨워주곤 했다. 어느 날엔 진지하게 한옥마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길 나누다가, 세속적이고 속물스런 그의 답변에 울컥하는 나를 가만 바라보았다. '내가 쫌 나갔구나'싶어 철렁했는데, "병수야, 너 같은 놈을 영어로 뭐라는지 아냐. (한참 침묵) 보일러라고 한다." 고 했다. 그 때 폭폭 터지던 웃음을 애써 참았던 날도 있다. 나는 지금도 열 받으면 끓어오르는 염천의 나날이고 또 그럴라치면 그를 생각하며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더 많은 날들은 동북공정이나 미국의 중동침략을 비난하다 못해 치우천황에 대해 장한 분개를 떨치지 못하는 애달픈 국수주의자로 살았다. 언젠가는 볕을 잘 받아들일 광합성 촉진제 제품과 개발자를 모셔서 환경과 농촌을 살릴 큰 사업을 벌이자며 장담한 터에 서로 어려워했던 날도 있었다. 토종 콩 종자를 보급하는 모임에 불러서 비기를 알리듯 예언서에 다 된다고 하기도 하고, 한지를 곧 닥칠 피부 바이러스에 대응할 유일한 약이라고도 했다. 한지나, 토종 종자나 차밭에 대한 애정이나, 전통주판각 등의 이러저러한 사업과 행사들이 그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소리꾼들과 춤을 추다 소리북틀에 돈 꽂는 걸 좋아하셨고, 풍물을 치면 노상 춤을 췄다. 막걸리 만큼 남부시장 '정집'의 반찬들을, 또 소리꾼들과 어울리기 좋은 전주 평화동 골목의 막걸리 집'예가'를 좋아하셨다.그는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40~50대들의 20대 시절부터 '형'이었다. 젊은 날 검도 수련을 했고, 주먹패들과 교분으로 협객소리를 듣기도 했다. 나중엔 (사)이음 회장으로, 굿 치던 '갠지갱' 만든 이로, 다문산조 페스티발한옥생활체험관의 당주가 됐다. 그 시간 동안 그를 잘 닮은 아들과 딸을 두었다. 병실에 오시고 난 뒤 한 달, 머무름 없고 든 정 놓지 않을 만큼 있다 가셨다. 여러 상주들은 형이 가시는 22일 오후 1시30분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 노제를 열고 그를 보낸다. 전주의 달빛은 이동엽과 함께여서 더욱 미만하였고, 높은 이상은 현실만큼 황망하여도 정신은 형형하여 잘 놀다 잘 가는 게 고인의 유지리라. 꿈에서라도 긴 술자리 끝에 그가 젓가락 귀에 상추 꽂고 춤판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김병수 (사)이음 대표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2 23:02

목요국악예술 올 마무리 무대

2012년 전북도립국악원 목요국악예술무대의 대미는'가을밤 愛, 국악여행'이 장식한다(22일 저녁 7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국악의 향을 피우며 예향의 자존심을 지켜온 도립국악원의 목요상설무대는 전통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전통의 멋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국악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 17회까지 이어오는 동안 동호인들은 물론, 각급 기관이나 모임의 단체 관람·중고교 학생들의 현장학습, 대학생들의 문화 순례 프로그램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특히 올해에는 한옥마을과 연계한 홍보 시스템으로 외국인의 공연 관람이 늘어 전통예술의 위상을 높였다는 게 국악원측의 설명이다.올 마무리 무대는 전통과 보존, 실험과 대안의 무대로 이어져 온 1년간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과거를 이어 미래로 나아가는 호응도 높은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무용과 소리와 연주가 조화를 이루는 무대다. 가야금 3중주 '경복궁 타령 변주곡'(생황/손순화, 양금/유현정, 대아쟁/권경희)을 시작으로, 판소리 심청가 중'주과포혜''도드리병주', 가야금병창'사철가'(최삼순, 김양춘, 김춘숙, 박영순, 김공주, 장단/장인선), 무용'한벽루'(배승현 외 6명), 민요'동백타령'(배옥진, 이연정, 문명숙, 장문희, 차복순, 최현주, 최경희, 천희심, 장단/김인두),'소고춤과 판굿'공연(박현희 외 10명) 등 가·무·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1.22 23:02

문학 속의 식민성 들춰내…임명진 전북대 교수 등'한국 현대문학…' 출간

해방 이전에 제작된 한국 근현대문학을 둘러싼 '친일문학'에 갇힌 담론을 넘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책으로 나왔다. '한국 현대문학과 탈식민성'(도서출판 역락)은 가치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새만금 사업을 다룬 소설과 천운영 단편 소설에서 나타난 여성성, 21세기 다문화 소설에 나타난 탈식민성까지 '탈식민성'을 키워드로 한 담론으로 확장시켰다. 지난주 회갑을 맞은 임명진 전북대 교수를 중심으로 장미영 전주대 교수, 전흥남 한려대 교수, 이영배 안동대 교수, 이수라 전주대 객원교수, 윤영옥고은미김은혜노용무유인실 전북대 강사, 유 승 원광대 강사, 김혜원 전북대 대학원 박사과정, 김선하 전주서중 교사는 한국 현대문학의 식민성에 관한 담론을 확장해 '동고(東皐)와 시선들'이란 부제로 달았다. 영향과 전유, '서발턴'(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종속되거나 접근을 부인당한 그룹)과 젠더, 신식민성과 지역, 다문화와 혼종성 등을 주제로 심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한국 근대문학에서 주목했던 서구 근대문학과 한국 문학, 제3세계가 갖는 영향 및 수용, 한국 내부의 억압받은 하위계층으로서의 다문화집단과 기생집단, 해방 후 한국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인식과 서양인의 한국(인)에 대한 시선, 억압받는 집단으로서의 여성, 문학 이론과 사회적 삶에 투영된 식민성과 탈식민성 등을 다룬 논문 중에서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몇 편을 더 엮어서 출판한 것. 임명진 전북대 교수는 "책을 출판하는 것은 연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시에 더 진지하고 열정적인 연구를 위한 중간 점검"이라고 했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2 23:02

사진으로 담은 미얀마 속살

전북에 몇 안되는 다큐 사진작가 김유찬씨가 미얀마의 속살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담아왔다. 2005년 이후 7년 여에 걸쳐 해마다 2~3차례씩 53주에 걸쳐 미얀마(옛 버어마) 곳곳을 누비며 취재해온 미얀마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책으로 펴냈다. 'I Love Myanmar '다큐멘터리 사진집이다(도서출판 계간문예). "미얀마는 가난한 나라, 군산 독재 정부, 아웅산 수치, 전두환 전 대통령의 폭탄 테러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는 데, 2005년 우연한 기회에 방문하고 난 후 이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김씨는 "외부와 단절된 채 독특한 문화로 살아가는 모습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며, "여행 제한과 교통 등의 문제로 불편함이 많았지만, 묘한 매력과 의구심이 들어 포기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발품을 팔았다"고 말했다.미얀마는 남자는 일생에 한 번은 불가에 들어가 수행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으며, 평생 세 번의 단기 승려를 거쳐야 비로소 존엄한 인간이 된다고 믿는 불교 국가. 승려가 되는 과정과 수도원의 생활들이 책 앞 면에 비중있게 배치됐다. 수상가옥에서 태어나고 호수에 기대어 생활하며 죽어서도 물속에 묻히는 인레 호수 사람들, 뒤떨어진 교통수단과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들이 사진집에 담겼다.지난해 전북예술회관에서 미얀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던 김씨는 해마다 국제전에 미얀마 사진을 출품해 입상하기도 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1.22 23:02

30년 전 '師弟의 情' 그림으로 꽃피우다

한 스승에게서 배운 화실 출신 화가들이 다시 뭉쳤다. 젊은 열정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던 스승은 원로가 됐고, 제자들은 각지에서 중견 작가 혹은 교직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70년대말 부터 80년대 초까지 '원화실'을 운영했던 서양화가 박종수 선생(66)과 그 화실 출신 제자들의 이야기다. 제자들이 스승을 모시고 '북쪽창이 있는 화실전'을 열었다(27일까지 전주 서신갤러리).예술평론가 겸 서양화가로 활동중인 예원예술대 김선태 교수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박진영씨조각가 엄혁용 전북대 겸임교수판화가 윤리나 밀워키 예술대 부교수서양화가 김용석엄경희이숙희이정란씨(한국전통문화고 교사) 등이 주요 멤버다. '북쪽창이 있는 화실전'은 당시 전주 고사동 소재 원화실 건물이 북향이었고, 창문들이 북쪽으로 난 데서 붙인 이름이다.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이 붙여준 이름이란다. 그 이름으로 10년 전쯤 전시회를 가진 후 흐지부지 됐다가 이번에 재개했다."70년대 말에는 전주에 별도의 미술입시학원이란 게 없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서 작업실로 쓰던 화실을 이용했습니다."원화실의 초창기 멤버였던 조각가 엄혁용씨(51)는 홍익대 미대 진학과, 제1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었던 밑거름이 그 화실이었다고 말한다."최백호와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수채와와 소묘를 열심 그려대던 시절이었습니다. 입시미술학원생이었지만, 당시에는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소속과 연대감이 투철했습니다"전주상고를 졸업한 후 미술이 하고 싶어 재수시절 화실을 찾았던 김선태 교수(53)는 "지금과 같은 입식학원 같은 삭막함이 아니라, 사제의 정과 선후배간 우정이 쌓였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원화실'은 박종수 원장이 당시 전북사대부고 교사로 재직하며 78년부터 5~6년간 운영했고, 여기를 거쳐간 원생은 30명 안팎이다. 전시회는 특별한 주제나 이념 없이 학창시절 추억을 꺼내보는'정'으로 만들어졌다.화실전의 중심에 있는 서양화가 박종수 선생은 서울과 전북을 오가며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2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형전 운영위원광주미술상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1.22 23:02

2013 전주영화제에 도전하라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고석만·2013년4월25일~5월3일)가 한국영화 출품작을 공모한다.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로컬시네마 전주'에 출품 가능한 한국영화는 올해 11월1일 이전에 개최된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들로 조직위는 내년 1월31일까지 접수를 받는다.'한국경쟁'의 경우 상영시간 40분 이상 장편 혹은 중편 극영화 및 다큐멘터리, '한국단편경쟁'의 경우 상영시간 40분 미만의 극영화 및 다큐멘터리·실험영화·애니메이션, 비경쟁 부문인 '로컬시네마 전주'의 경우 전주에서 제작된 상영시간 40분 미만의 극영화 및 다큐멘터리 작품이면 출품 가능하다. 지난해 전주영화제 한국영화 섹션에 소개된 작품들은 안팎의 호평을 받았다. JJStar상(대상)과 JIFF관객상을 수상한 장건재 감독의 '잠 못 드는 밤'은 전주영화제 상영 이후 제31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제25회 도쿄국제영화제, 제66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에서는 학생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한국단편경쟁'에 상영돼 ZIP&상(대상)을 차지한 김진만 감독의 '오목어'는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미쟝센상,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 제28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대상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또한 '한국경쟁'을 통해 소개됐던 이송희일 감독의 '백야'는 '남쪽으로 간다','지난 여름, 갑자기'와 함께 퀴어 연작으로 지난 15일 개봉해 일반 관객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문의 02)2285-0562, www.jif f.or.kr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1 23:02

9. 이병훈(李炳勳) 편 - 끝내 들녘을 지키던 들녘의 시인

평생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산 소작인의 무덤에서는 풀이 나지만남에게 땅을 내주고 호령하고 도조만 받아먹고 산지주의 무덤에서는 풀이 나지 않습니다.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산 소작인은 풀만 먹고 살았으므로 그 몸 모두가 풀이지만도조만 받아먹고 산 지주는 고기만 먹고 살았으므로 그 몸 모두가 고기 덩어리입니다. -「口傳」전문'소작인'이 곧 '들녘'이고, '노동'이며, '진실'인 반면, '지주'는 '고기덩어리', '착취'와 '위선'의 상징으로 비유되고 있다. '풀'은 '진실'이며, '땅'은 그것을 길러내는 '바탕'이요 자연회귀를 지향하는 그의 정신적 거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풀(진실)들은 지주와 권력으로부터 짓밟히고 수탈당한 민초들의 모습이요, 그런 속에서도 모진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끈질긴 저항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드러나 있다.'풀' 그리고 '푸르름' 그것은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생명이 있는 곳엔 으레 땅이 공평하게 뒤따라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치 하늘이 지상에 햇빛과 이슬을 공평하게 내리듯 무릇 생명이 점지된 것들에겐 그 생명체가 딛고 살아가야할 땅 또한 고르게 나누어져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곧 천부토지설(天賦土地說)인 셈이다. 하늘이 곧 땅이고, 물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의 시에는 종종 '물이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가 하면, '땅이 하늘에 닿아 있'기도 하면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융합소통되어 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그것이 하늘의 섭리라는 생각이다. 이병훈 시인(1925-2009)은 군산시 옥구면 당북리에서 태어나 서당과 소학교를 다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의 농장에서 수확량의 70%를 지주에게 바치며 살아간 소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6.25 직후 서울신문군산지국과 기자 생활을 겸하면서 1959년 신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지로 등단, 1970년 제 1시집 『단층』을 비롯 18권에 달하는 시집을 간행하고, 군산(문협, 예총) 지부장과 군산 문화원장, 1984년에는 『석정 문학회』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이후 한국현대시인상과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다. '들녘'에서 시작하여 '들녘'에서 끝날 정도로 '들녘'이 이병훈 시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일제침략기 군산 옥구라고 하는 들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일제로부터 부당하게 농토를 수탈당하고, 소작인의 아들로 억울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어린 날의 뼈아픈 상처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길이 아니었을까 한다. 농부는농약을 물고 논두렁에 쓰러진황새를 묻고 있었다. /.../ 다음 날황새는 그림자가 되어그 들녘을 건너가고 있었다. -「下浦길 5」에서그로부터 한 사십년쯤 지난 지금 어머니들은 탈탈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콩밭 열무를 팔러 다닌다. - 비단 어머니들 뿐 아니라 신작로도 들도 들 건너 산들도 쇠붙이 냄새가 지독한 멀미에 지쳐 풀이 죽어 있었다. -「멀미」-쇠붙이 냄새, 에서'황새'와 '소나무', '어머니', '들', '산' 이들 모두 생명적 존재자이다. 이러한 생명적인 것들이 인간의 지나친 욕망과 문명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그것들 앞에 짓밟힌 자연과 생명을 안타까와 한다.이러한 그의 문명 비판적 시각은 자연과 인간, 주체와 타자간의 평등과 화해를 꿈꾸면서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에코-페미니즘의 새 장을 연 선두 주자로 기억되리라고 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 문화일반
  • 기고
  • 2012.11.21 23:02

비움의 미학으로 피워낸 야생화

한국 미술을 이끌어온 대표적 미술단체가 목우회다. 1957년도 서양화가 1세대 작가들이 의기 투합해 만든 목우회 회원들이 5년 뒤 창립된 한국미술협회의 산파역을 맡았다. 전북 출신의 10여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230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이 목우회를 끌어가는 중심축에 전주 출신의 서양화가 이기전씨(57)가 있다.4년 전부터 목우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고향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12월 20일까지). 재즈 어라운드 호텔(전주시 우아동 아중리 소재) 내 Z갤러리 개관 1주년 초대를 받아서다. 지난해 전주 교동아트전 이후 1년만이며, 개인 통산 22번째 전시회다. 그는 평소 전주 외곽, 산 밑자락에 살았던 고향의 추억들을 소중한 자산으로 삼아 야생화들을 즐겨 그렸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는 약간의 변신을 시도했다. 맹감나무와 들꽃 등 야생화를 소재로 삼은 것은 같은 맥락이지만, 구도에서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문인화나 사군자 등과 같은'한국적인' 서양화를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희망이 담겼다.또 정물이지만, 실내에 갇히지 않고 야외 스타일의 정물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정물을 멀리서 관조하는 것이 아닌, 정물 자체를 확대시킨 것도 특징이다. 시공을 초월해 기원전의 화석과 오늘의 정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도 흥미롭다. '생의 공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에는 27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2.11.21 23:02

내년 전주비빔밥축제, 더 맛있게 비비려면…

'2012 전주비빔밥축제'가 지역에 안착했으나 대표 프로그램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결과다. 물론 이는 예산의 확대를 전제로 한 결과다. 전주시가 20일 전주 경원동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연 '전주비빔밥축제 평가와 발전방향 포럼'은 비빔밥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 '유망' 축제로 진입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을 다양한 전문가들로부터 폭넓게 듣고 수렴하기 위한 자리로서 의미가 컸다. 또한, 우석대 레저컨벤션학과 학생들이 참관해 축제를 지켜본 소감을 공유하면서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대동제로서도 의미를 더했다.이날 포럼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된 내용은 예산 증액을 전제로 한 대표 프로그램의 고급화·차별화다. 토론자 이재운 전주대 교수는 "축제가 비빔밥 조리 장원을 선발하는 '나는 쉐프다'를 대표 프로그램으로 내놓긴 했으나, 행사 규모나 선발된 장원 역시 전국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가 판소리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듯, '나는 쉐프다'가 비빔밥 조리 장원의 등용문으로 거듭나려면 스타급 쉐프를 모셔 이벤트를 하고, 상금을 높여 유수한 조리장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경연을 고급화·차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를 맡은 최영기 전주대 교수 역시 대표 프로그램 강화의 방안으로 지역의 유기농 혹은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한 축제로서 새로운 포지셔닝을 유도했다. 식재료 단지와 연계한 경관농업과 지역의 소비자 직거래 장터를 연계해 체류형 축제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좌장을 맡은 김남규 전주시의원은 "완주 와일프푸드축제와 전주비빔밥축제가 연계시킬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종린 한국관광공사 전북권 협력관은 문광부 축제 평가에서 우선 순위로 보는 외부 관광객 유입 효과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근거해 올해 비빔밥축제는 성공적으로 치러졌으나, 방문객 만족도가 다소 낮았던 점을 들어 기본에 충실하는 축제를 주문했다. 다른 지역·외국인 등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행사 안내도·표지판·리플릿·통역 등 기본적인 요소에 관한 보강을 요구했고,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시장과 연계돼야 축제의 경제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한옥마을 내 주민들의 불만을 줄이면서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려면 지역의 문화시설과 연계한 야간 프로그램과 틈새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략하고, 다른 지자체 관광지를 연계한 문화상품 개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덧붙여 대규모 퍼포먼스 위주의 체험 보다는 비빔밥축제에서만 볼 수 있는 소규모 체험을 곳곳에 배치해 승부해야 한다고도 했다.이 같은 논의는 한 때 정체성 논쟁에 휘말렸던 전주비빔밥축제가 2년 만에 전주를 대표하는 축제로 발전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하에 진행된 담론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됐다. 정성엽 전주비빔밥축제 기획연출단 단장은"전체 예산 3억8000만원(시부담 3억) 중 프로그램에 관한 예산은 1억 밖에 되지 않는 형편이라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답변했고, 김신 전주시 문화경제국장은 "내년 비빔밥축제 예산을 1억 정도 증액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1 23:02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직접 옮겨쓴 성서

인간 기저에 깃든 불안과 고독, 슬픔의 뿌리가 궁금하다면, CBS 전북방송(본부장 최 인)이 51주년을 맞아 열게 된 '제1회 성경 필사본 앙코르 전시회'를 찾을 것. 3000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직접 손으로 옮긴 이들의 작품을 통해 희망을 바라보는 여유와 겸손을 배우게 한다.20년 넘게 성경 필사를 해오던 전주동신교회 권사로 활동해온 윤여선 할머니(90)는 전주 한지에 신약을 붓으로 옮겨 적은 두루마리 성경을 내놨다. 지난 20년 간 까만 손때가 묻은 성경을 들여다보면서 구약 3번, 신약 5번을 똑같이 베껴 쓰면서 권 할머니는 성서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간 군상의 고통에 공감하게 됐고, '만절(晩節·만년의 절제)'이라는 교훈도 얻었다. 폐암 선고 직전에 하루 17시간 이상 붓글씨로 필사하며 신에게 매달린 이리청복교회 장로인 이연휘(60)씨는 백과사전 크기의 필사본 여러 권과 두루마기 필사본 2점을 완필했다. 1차 전시에서 호응도가 높았던 작품 외에 익산 북일 어양 교회 성도들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언을 대신하기 위해 또는 자식에게 신앙의 깨달음을 던져주기 위해 또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내놓은 필사본들이 한자리에 놓인 자리. 전시는 12월9일까지 CBS 전북방송 본관에서 계속된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12.11.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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