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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 “새로운 시스템 구축… 수평의 힘 믿어”

김영(본명 김영자) 시인이 제32대 전북문인협회장에 오르며 또 한 번 유리천장을 깼다. 전북문인협회 역사 59년 만에 첫 여성 회장이 된 것이다. 김 회장은 김제예총 회장도 역임했는데, 당시에도 시군 여성 예총회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자의든 타의든 지역 문단에서는 큰 변화로 읽힌다. 이 변화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문화와 관습, 제도 속에서 의미 있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임엔 틀림없다. 이제 후배 여성 문인들은 그가 놓은 징검다리를 밟고 강을 건널 것이다. 1일부터 본격적인 임기를 시작하는 그를 지난달 29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김영 전북문인협회장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전북문인협회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전북문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런 감정이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요?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나 걱정도 되네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막상 내 앞에 그 일이 다가오니 좀 걱정도 돼요. 물리적인 힘의 부족도 있고, 1000여 명이나 되는 문인들의 개성을 과연 조화롭게 엮어낼 수 있을까? 서로 상충하는 의견들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을 것인가? 이런 걱정들도 앞서네요. - 어떤 마음으로 전북문협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지셨나요. 원래 시스템 구축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문단에 들어와서 활동한 지가 30년이 조금 안 되는데 한 번도 시스템이 바뀐 적이 없죠.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제가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누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또 30년 가깝게 문단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좀 재미없는 미래였지요. 문학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문학의 궁극이 인간의 구원이라면, 혹은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면, 시스템이 가진 폭력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 전북문협, 김제예총 등 전북 첫 여성 회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단, 시대 상황이 저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은 거지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한 부분이 많고요. 또 하나는 조그맣고 겁 없는 여성 문인에게 길을 내어주신 문단의 여러 어르신과 선후배 문인들의 배려에 기댄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요. 사회 어느 곳에서나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동등하게 보아주는 편이죠. 저를 믿어주신 많은 문인과 특히 후배 여성 문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북문협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 59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회장이 취임했다는 소식에, 도내 문단이 남성 중심이었다는 걸 재인식하게 됐습니다. 사회적 편견, 차별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주 많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비교적 자유로운 영혼의 집합소인 이 문단에 와서도 여성이어서 들어야 하는 거친 언사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드세다는 말은 여성에게만 쓰는 말이지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성에게는 다른 언사를 사용하지요. 이런 말들을 제법 들었습니다. 또 전북문협 회장에 출사표를 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화장을 해라였지요. 그럴 때마다 과연 저 언사는 여성은 화장하는 것이 예의다는 말인지 아니면 여성은 화장이나 하고 다소곳하게 있으라라는 말인지 헷갈렸지만, 발화 상황에 맞추어서 저 스스로 해석해야 했지요. 어찌 됐든 둘 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는 말이지요. -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북문협을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저는 수직에 대한 유별난 거부감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승진을 꿈꾸지 않은 것도 수직구조를 거부했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누군가가 수직의 힘으로 누르면 쓱~ 빠져나가 버리거나 이탈해 버립니다. 예술과 예술가를 좋아하는 것도, 수직의 폭력성이 상대적으로 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나이가 들다 보니 어떤 단체를 맡아야 하는 때가 종종 오기도 하는데요. 저는 단체를 맡으면 일단 수평적인 시스템을 먼저 구축합니다. 수평의 힘이 제일 단단한 힘이지요. 단단해서 오래 가는 것이지요. 수직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언제고 무너져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수직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수직을 먼저 배웠지요. 수직을 통해 권력을 얻고, 수직으로 사람을 다루는 구조에 젖어있지요. 누추하고 허름하게 보이지만, 위계질서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수평의 힘으로 사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현재 전북문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해결할 복안이 있으시다면. 다행히도 전북문협 내부적인 문제는 없는 편입니다. 굳이 문제점을 들어본다면, 전북문협의 운영이 지금까지는 전주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리적 여건이나 문인의 분포도 등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운영은 지역문협을 변방으로 내몰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전북문협 스스로 문학적 영토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을 해결하려고 저는 전북문협의 행사를 지역문협과 함께 하려 합니다. 전북의 각 지역에 가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고 그 지역 문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회를 한 달에 한 번은 가질 예정입니다. 또 지금은 사회적 형편으로 자주 모이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서로 만나 작품을 이야기하고 안부를 물을 기회마저 강제로 박탈당한 것이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은 모임을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필요하다면 전북문협의 모든 행사를 작은 행사로 바꾸어서 진행해 볼 계획입니다. 일단 매월 건지산에서 작은 문학 행사를 열 생각인데, 문인들만의 무대가 아니라 도민과 함께 하는 무대입니다. 해서 도민과 문인 사이의 접경을 늘리고 이를 통해 전북 문학의 역량을 키워볼 요량입니다. - 전북문협 고령화, 즉 젊은 문인들이 쉽게 유입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젠 등단하지 않아도 자신의 글을 쓰고, 표현하는 매체들이 많아졌습니다. 매체의 다변화가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세대는 집단생활을 좋아하지 않죠. 포스트코로나 시국에는 더욱더 소집단으로 움직입니다.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에 밀집, 집단을 싫어하죠. 이러한 세대적 특징으로 인해 젊은 문인들의 유입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는 문단이 중년 이후 취미 생활로 하는 분들 위주로 굳어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 끝으로, 코로나19 속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면.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판단 중지라고 할까요? 문학의 궁극은 삶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입니다. 사람이 곧 삶이지요. 잃고 또 잃어도 살아야 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문학으로 깊어지고 문학으로 치유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치유라는 것 따로 있나요? 좋은 글을 읽는 일, 말을 줄이고 자신을 응시하는 일,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일이지요.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31 17:29

문체부 ‘한국관광 100선’ 전북 신규 3곳 포함 6곳 선정

전북도는 2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2022 한국 관광 100선에 도내 6곳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선정된 6곳은 익산 미륵사지, 전주한옥마을, 진안 마이산, 내장산 국립공원,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 등이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 5회째를 맞는 한국 관광 100선에서 전주한옥마을은 5회 연속(2013~2022), 진안 마이산과 내장산국립공원은 4회 선정되며 한국 대표 관광지로써 다시 한번 자리를 확고히 했다. 익산 미륵사지와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특히, 익산미륵사지는 2020 한국 관광의 별에 이어 2021~2022 한국 관광 100선까지 연이어 선정되는 쾌거를 거두며 명실상부한 관광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옥정호 구절초 지방정원(정읍구절초테마공원)은 꽃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여유 넘치는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떨치는 향기로운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남원시립 김병종 미술관은 젊은 층에 이미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 명성이 나 있는 곳으로, 건축과 미술 작품의 미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윤여일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도내의 안전하고 깨끗한 관광지를 지속해서 홍보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도민과 외래방문객을 위한 관광지를 꾸준히 발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천경석
  • 2021.01.28 19:15

후백제 수도 전주, 후백제 관광자원화 ‘뒷짐’

경북 문경시가 후백제 견훤 역사유적지 개발을 통한 후백제 성역화를 본격화하면서 후백제 수도인 전주시가 관광자원화 선점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주시가 후백제 관련 도성절터산성 등 다양한 유적과 문헌을 보유하고도 이를 엮는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시는 지난 26일 시청에서 지난해 3월부터 추진해온 견훤대왕 역사유적지 개발 종합정비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후백제 초대왕인 견훤의 출생지를 스토리텔링하고 역사유적지를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역사유적지 개발은 견훤 탄생 설화와 관련된 문경 가은읍 갈전시 아차마을 중심의 아차마을권, 견훤의 활동과 관련된 희양산성과 근암산성 등 전장유적권, 견훤의 전설과 활약상이 남아있는 말바위와 견훤산성 등 궁기말바위권 3권역으로 나눠 추진할 예정이다. 탄생 설화가 있는 아차마을권에는 후백제 민속촌과 테마영상 전시관, 둘레길 등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문경시 관계자는 견훤대왕 역사유적지를 정비하고 후백제 역사를 복원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종합정비계획 기본 방향과 사업 대상지 분석, 예산 확보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경시가 이처럼 견훤 설화 등 지역에 산재한 유적지를 정비해 역사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관광자원을 발굴하겠다고 나선 반면, 전주시는 수년째 후백제 유적 발굴조사에만 치중하고 있다. 스토리텔링 등 관광자원화 측면에선 뒤처진 모양새다. 그동안 전주시는 후백제와 관련해 서고산성 남서성벽 발굴조사, 우아동 도요지 발굴조사 등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서고산성남고산성무릉 발굴조사와 동고산성 국가 사적 지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한 유물, 유적 재정립 작업의 일환이다. 이에 대해 지역 고고학계와 문화관광 인사들은 유물과 유적을 잘 정비하는 것 못지않게 의미를 부여해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문경시가 후백제 성역화를 본격화한 만큼 후백제 수도인 전주시가 역사적문화적 이슈를 뺏기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는 900년부터 936년까지 36년간 후백제의 수도로, 후삼국시대 격동의 중심지이자 찬란한 문화를 펼쳤던 역사가 잠든 지역이다. 왕궁과 도성 체계를 갖춘 후삼국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1.28 18:04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대제와 대사습

대사습 명창들 종묘대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다. 옛 국가였던 조선의 궁중 사당에서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국가적인 제사 중 가장 규모가 가장 큰 궁 안의 행사였다. 종묘대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납일 등 1년에 5번을 지냈다.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첫 번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 되고 있는데 1969년부터 종묘대제보존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제향 행사는 제사 전의 준비과정과 임금이 출궁하여 종묘에 이르는 어가행렬, 제례 봉행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중 종묘대제의 연행에 치르는 음악(제례악)과 춤(일무)은 그 귀함과 소중함을 함께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행사인 종묘대제는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옛 조선의 궁 안에는 종묘대제란 큰 의식이 존재했다면, 궁 밖 백성에게는 대사습이란 유명한 행사가 있었다. 대사습놀이는 조선 시대 판소리, 백일장, 무예 대회 등 민중의 종합 경연대회로 출발했다. 제19대 임금 숙종(1661~1720) 시절 마상 궁술대회와 영조(1694~1776)대 물놀이,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 무예 놀이를 종합해 총칭하며 불렸다. 재인청과 가무 대사습청을 설치해 전주에 4군자청을 신축하고 최초로 대사습놀이를 연 뒤 민중의 연례행사로 개최했으며 철종 무렵엔 여러가지 놀이와 함께 나라 제일의 소리꾼을 뽑는 판소리 경연이 이루어져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전승이 끊어지게 되었고 1974년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의 발기 및 성원으로 1975년 복원되어 궁 밖 민속예술 명인명창을 등용하는 전통문화의 큰 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 전라북도 전주시는 전주대사습놀이라는 궁 밖 전통문화의 가치를 드높이고 궁 안의 종묘대제인 예악과 견주어 민중 의식과 예술을 공유하고 보존하기 위해 비전과 중장기 계획을 만들었다. 그 계획은 바로 체계적인 육성보전에 힘을 더하기 위한 전주대사습놀이의 국가무형문화재 등록이었다. 조선 시대 궁 안 선왕의 종묘대제 의례 행사는 국립국악원 그리고 종묘대제 봉행위원회와 종묘제례악보존회를 통해 오래전 국가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고 체계적인 보존과 계승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궁 밖 대표적인 민중 행사인 전주대사습놀이도 국가무형문화재의 지정을 부여받아 풍패지관(豊沛之館) 즉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근본으로 지역 전통문화의 역사와 전승을 더욱 견고히 하고 백성과 함께했던 선왕의 의意를 찾아 이어가야 하겠다. 그것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국악을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학자의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1.28 17:39

이기홍 화백 대숲 개인전… 대나무에 녹여낸 시대 아픔

이기홍 화백(62)의 대숲 개인전이 다음 달 2일부터 28일까지 전주한옥마을 문화공간 향교길68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새롭게 문을 여는 문화공간 향교길68이 개관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로 이 화백의 작품 가운데 대나무만을 모았다. 대숲 연작과 대작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붉은 대숲과 하얗게 눈에 덮인 대숲 그리고 병풍형으로 준비된 10폭의 연작 등이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다. 통나무에 대숲을 그린 소품도 마련했다. 이 화백은 대나무와 옥수수의 화가로도 불린다. 바람에 일렁이는 대숲과 석양에 홀로 나부끼는 마른 옥수수가 그를 상징한다. 바람 속에 또는 석양 속에 외롭게 서 있지만 의연하다. 그는 그림으로 줄곧 세상과 싸워왔다. 민중미술에 참여해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앞장섰다. 그의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는 대숲과 옥수수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작품 속에 일관되게 등장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소재, 바람은 곧 냉엄한 세상, 세파일 것이다. 내 작품의 소재는 자연입니다. 대나무와 옥수수 그리고 작은 들풀 속에 세상을 담고 싶습니다. 그 작고 흔한 것들,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항상 주변에 관심을 갖고, 보다 나은 세상이 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는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사실화처럼 세밀하다. 그는 댓잎 하나하나를 수묵화처럼 친다. 일일이 붓을 줘 살려낸다. 하나하나 살아나는 댓잎은 꿈틀거리고, 그의 대숲 그림 속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근에는 작품 소재를 만경강과 동진강으로 확대하고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서사시를 떠올리게 한다. 가을 들녘의 모악산에서 보여준 것처럼 장엄하고 화려하고 깊다. 그 울림을 강에서도 찾고 있다. 이기홍 화백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전북민족미술인협회장으로 전북 민중미술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주한옥마을 문화공간 향교길68은 그동안 조미진 전통자수 명장의 작업실인 향목을 활용한 공간이다. 1층은 갤러리 등 복합문화공간, 2층은 사무실 과 휴게공간, 3층은 조 명장의 전통자수 전시실과 작업실로 운영된다. 조 명장은 향교길68을 전시 공간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강연,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1.28 16:52

[신간] 도보답사가 신정일 세상을 돌아보다

이 땅에서 나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문화사학자 신정일 씨가 지난해 말 자신의 답사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신작 에세이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것들> (상상출판)과 동학을 재조명한 <동학의 땅 경북을 걷다> (걷는 사람)이다.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른 것들>은 유년시절부터 도보 답사가가 되기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담았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됐다. 1장 세월은 가고 추억만 남는다엔 그가 기억하고 있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겼다. 할머니와 산초를 따러 가던 기억, 덕태산 자락 골짜기에서 가재 잡기, 생계를 위해 먹었던 도토리밥 등 여러 가지다. 이같이 추억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는 나는 자연대학교에서 배웠고 자연대학 총장이다로 귀결된다. 2장 모든 것이 행복이다에서는 그가 답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김지하 시인의 아내인 김영주 선생, 예전 아파트에서 살 때 만났던 사람 등 다양한 삶에 대해 깨달음을 주었던 인연들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해법을 모색한다. 3장 후회 없이 돌아가다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원효의 본업경소서 등 그가 읽었던 고전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성찰한다. 책 말미에는 법구경의 구절을 인용해 나 외에는 모두 스승이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동학의 땅 경북을 걷다>는 동학사상이 민족 사상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그렸다. 신정일 씨는 동학의 시초인 경북 경주 구미산의 용담정에서부터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책은 동학 12대 교수진 수운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삶을 돌아보고, 동학 운동이 경상도부터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지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책을 마무리하는 장에는 사람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섬기는 그 섬김과 모심을 통해서만 세상은 밝고 건강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는다는 구절로 정리한다. 돈과 명예, 권력 등 세속적인 욕망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인의 삶에 동학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이사장이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해 금강에서 압록강을 걸었고,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삼남관동대로를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고서 해파랑길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한국의 산 500여 곳을 올랐다. 저서로는 신택리지,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신정일의 동학답사기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01.27 17:08

[신간] 경종호 시인 디카시집 '그늘을 새긴다는 것'

경종호 시인이 디카시집 <그늘을 새긴다는 것>을 엮어냈다. 사진과 시의 절묘한 결합이 형형하게 빛난다.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해 찍은 영상(이미지)언어와 함께 문자언어로 표현한 디카시. 시의 영역을 확장한 멀티언어예술로 많은 작가가 디카시의 미학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와 동시 작품을 쓰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경 시인도 이러한 디카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작업해왔다. 시인의 사진 소재는 풀과 나무, 동물 등 자연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이러한 시적 소재들로 자연물 자체를 노래하기보다는 사진으로 포착된 자연물들을 자신의 시적 세계를 드러내는 알레고리로 사용한다. 손을 내밀면 가장 먼저 상처에 닿습니다// 눈에 밟힌 물고기들// 가망가망 집을 만들며 오는 길이었습니다 (물길 전문) 좁다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물줄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도 시인의 시선이 닿으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이 흘러오면서 가장 먼저 닿는 곳은 흙이 갈라져 틈새가 벌어진 곳, 드러난 식물의 뿌리, 깨어진 돌의 절단면이었을 것이다. 즉 사물의 상처다. 이렇듯 시인은 가엾고 여린 것들에 눈길과 마음을 준다. 복효근 시인은 서평을 통해 이번 시집을 통해 보여준 사유의 세계는 다양하다며 존재하는 것들을 관통하는 섭리나 진리에 대하여, 참다운 삶과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우리 사회와 역사의 실상에 대하여, 자아의 본래 면목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고 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 시인의 시도는 디카시의 표현 방법과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데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김제 출신인 경종호 시인은 200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동시집 <천재 시인의 한글 연구>를 펴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27 16:54

[신간] 최기우 희곡 ‘조선의 여자’ 단행본으로 출간

지난해 전북연극제에서 희곡상을 받은 최기우 작가의 희곡 조선의 여자가 한국극작가협회와 도서출판 평민사의 한국희곡명작선에 선정돼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조선의 여자는 태평양 전쟁과 일본군 위안부, 창씨개명, 신사참배, 미군정 등 해방을 전후로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네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열일곱 살 동심과 도박판을 전전하다 딸을 팔아넘기는 아버지 막봉, 아들의 일본군 입대를 막기 위해 후처의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모른 척하는 본처 반월댁, 아들을 낳아주기 위해 들어온 후 딸을 낳고 식모처럼 사는 세내댁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가족이라는 틀에서 서로를 옥죄며 거칠고 불편하게 살아간 이들을 통해 여전히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곁의 여성들을 중심에 두었다. 지난해 전북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 무대에 올랐으며, 각각 최우수작품상과 작품상(은상) 등을 받았다. 전북연극제 당시 심사위원들은 일제강점기 한 가족의 삶을 통해 그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다룬 희곡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며 위안부 문제의 비극적 시선을 국가의 폭력에 의한 가족의 해체와 붕괴로 접근한 극의 구성과 이야기의 탄탄함, 연기력의 앙상블, 간결한 무대 연출 등 창작초연작품의 완성미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최기우 작가는 2001년 귀싸대기를 쳐라를 시작으로 정으래비, 은행나무꽃, 교동스캔들 등 연극창극뮤지컬창작판소리 100여 편을 썼다.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2회), 전북연극제 희곡상(4회) 등을 수상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인문서 <꽃심 전주> <전주, 느리게 걷기>,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이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1.27 16:5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 -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흐린 날 오후, 늦은 산책을 나갔다. 안개 낀 호수 공원을 느리게 걸었다. 축 늘어져서 아무래도 힘이 나질 않아, 이럴 때 누군가 등이라도 토닥여준다면, 글쎄. 깊은 숨을 몰아쉬며 비척비척 걸을 때 청둥오리 떼가 얼어붙은 호수 위로 내려앉았다. 쉬어 가는구나. 나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키 높은 메타세쿼이아를 올려다보았다. 안개에 잠겨 나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 대신 안개에 잠긴 나무를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우는 바람 소리, 주먹 쥐고 일어나, 작은 나무 같은 인디언 이름이 떠올랐다. 작은 나무는 어른이 되어도 작은 나무로 불릴 텐데 괜찮을까. 이름이 한정하는 개인의 특징을 생각하다 사이를 두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작은 나무는 어른이 되어도 영혼의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랄 테니까 작은 나무여도 괜찮아. 아빠가 세상을 뜨신 지 1년 만에 엄마도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 내 나이 다섯 살이었다.로 시작하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아메리카 인디언 중 체로키족인 작은 나무가 조부모와 살면서 체로키족의 생활방식을 배우는 이야기다. 정부에서 지정한 인디언 보호구역이 아닌 깊은 산에 살면서 다섯 살 꼬마가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무얼 배울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이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운다. 계곡을 흐르는 물, 새, 나무들의 언어를 배우고 일부러 걸음을 늦춰 아이가 따라올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며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던 할아버지를 통해 진짜 어른의 모습을 배운다. 할머니가 읽어주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통해 세상 이야기를 듣고 문학을 배운다. 진짜 어른처럼 보이던 할아버지도 때로는 욕을 하고 고집불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절제와 사랑 가득한 조부모가 위스키 업자들이 찾아와 분란을 일으키자 그들을 조용히 쫓아 보내는 방법도 배운다. 소수자, 약자이기에 고통받고 왜곡된 역사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부조리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룬다. 작은 나무에게 나쁜 일이라곤 없다. 매번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 조부모와 떨어져 고아원에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늑대별을 통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든 우린 함께 있는 것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배운다. 이번 생은 망했다처럼 소비되는 생이 아니라 p.657<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와 같이 죽어가는 이의 삶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재생산 되는 것도 본다. p.657<언제나 앞장서서 걷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이 끝장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작은 나무는 깊은 절망감에 쌓였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세상이 끝장난 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너나없이 힘든 시기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니 공허할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정작 자신은 받지 못한 위로를 건네자니 손해를 보는 것 같아 주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에 말로 전하지 못했던 위로를 서평으로 대신하고 싶어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어두울지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위로가 담긴 책을 고르던 중이었다. 지인(소설가 권효진)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자 그녀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이후, 아름드리미디어에서 나온 그 책을 구매한 뒤에야 포리스트 카터라는 저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가 오래 전에 읽은 아파치족 추장의 생애를 다룬 <제로니모>의 작가라는 사실에 반가웠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01.27 16:54

전주 경원동서 조선시대 ‘전주부성 성벽’ 추가 발굴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인근 구도심에서 조선시대 쌓았던 전주부성의 성벽 일부가 추가 발굴됐다. 26일 전주시에 따르면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진행한 전주부성의 성벽(1구역)과 성벽 바깥 부분(2구역) 발굴조사 결과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의 윤곽을 확인했다. 앞서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2018년 시굴조사를 통해 한국전통문화전당 북동쪽 주차장 부지에서 처음으로 전주부성 성벽 기초부분 흔적을 발견했다. 당시 발굴된 성곽은 기초부분 1단만 남겨져 있었다. 이번에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의 기초시설이 발견된 1구역은 완산구 경원동3가 28-5번지 일원이다. 발굴된 성벽은 부성 하단의 1~2단이 잔존하는 상태로 성벽의 폭은 5.2m이며, 현재까지 조사된 체성의 길이는 26m, 잔존높이는 40㎝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2구역에서는 전주부성과 관련된 조선시대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후백제 시대로 추정되는 층위에서 박석시설 등이 확인됐다. 시는 전주부성 북동편 성벽 일부가 확인됨에 따라 부지 4397㎡를 매입해 성곽을 복원할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 일부의 구체적인 축조방식을 살펴보고, 복원 및 정비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것이라며 향후 옥토주차장 부지에 대해서도 발굴조사를 추진해 전주부성 성곽의 잔존양상을 확인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주부성은 영조 10년(1734년) 전라감사 조현명이 허물어진 성을 둘레 2618보, 높이 20자, 여장 1307좌, 치성 11곳, 옹성 1곳 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전주부성 축성록에 전해진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21.01.26 18:33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39) 유기수, 최초의 의사 출신 작가

유기수 작가의 생전 모습. 유기수(1924-2007)는 정읍시 태인에서 태어났다. 태인보통학교를 마치고 1941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한 후 평생 의사로 살았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남북의 대립과 갈등, 민주화의 열망이 가득했던 시대를 살아왔다. 대학 재학 중에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군의관으로 차출되어 중국 대륙에서 전쟁터를 누비고 다녀야 했다. 해방 이후, 1950년 6.25전쟁 때에는 인민군의 군의(軍醫)로 징발되어 낙동강 전선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런가 하면 9.28 수복 이후에는 인민군에게 부역한 죄로 서대문 형무소에 갇히기도 했고, 곧 풀려나서는 국군의 군의관으로 중부 전선에 투입되기도 했다. 이렇듯 선생의 인생 전반부는 격랑의 소용돌이였다. 일본군에서 인민군으로, 다시 인민군에서 국군으로 전전함으로써 그의 삶은 20세기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삶과 죽음의 극한 상황을 거듭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만주 벌판에 비는 자꾸 구지고 부상병들은 야영에 울고 우리는 벙어리부대 이역만리에서 소리 없이 아, 소리 없이 노래를 불렀다. 누구를 위한 대열이기에 <하르빈> 참호를 붉은 피로 물들여 외인부대 무장 없는 병정들의 아리랑을 들어라. -징병이었다. -학병이었다. 동인성 만주 땅에 오붓이 모여 종소리 아득한 속에 서로 이름 부르며 신의주로 가는 길은 젊기도 했다. -「외인부대」 전문 『공백의 장』(정음사. 1958) 이 시는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만주로 끌려가서 관동군의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쓴 시로,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는 학병으로, 의병으로 끌려와서 하르빈 참호를 붉게 물들여 가는 전쟁의 비극성과 무의미성이 드러난다. 그 후, 선생은 전주로 낙향하여 유기수 산부인과를 개업하면서부터 전쟁과 역경 속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소설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이름을 딴 병원도 호황을 누렸지만, 선생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끊이지 않은 갈증처럼 오래가고 깊어지기 시작했다. 선생에게 문학은 지난날의 청춘을 보상받을 수 있고, 청년기의 가슴 아픈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안식처가 되었다. (『전북작가열전』 최명표, 신아출판사) 196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호로박사」가 당선되면서 선생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었다. 이 작품은 장편으로 개작되어 1977년 6월부터 『전북신문』에 연재되기도 했지만, 의사들의 반발을 사면서 필화사건을 겪어야 했다. 이는 문학작품이 갖는 허구성을 이해하지 못한 해프닝이었지만, 작가에게는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선생은 필연적으로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것 같다. 시대와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살아온 선생의 삶은 그대로 한 편의 소설이 되기에 충분했다. 선생이 현장에서 체험한 사건들은 특별한 서사구조를 갖춘 완벽한 이야기가 되었다. 『인간교량』을 비롯하여 『지리산 사람들』, 『북에서 온 기러기』, 『벽소령 가는 길』, 『두만강 칠백 리』, 『지리산에 핀 꽃은 시들지 않는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들은 당대의 삶의 애환과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증언하는 데 손색이 없다. 문덕수 교수는 유기수는 소설을 펜으로 쓰기 전에 먼저 발로 쓰는 작가다.라고 하였다. 자신의 체험을 확인하기 위하여 현장을 답사하고, 다시 역사적 제재를 찾아 그 현장을 발로 뛰면서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유기수 소설가의 특별함은 그가 최초의 의사 출신 작가라는 점도 한몫했다. 선생은 도규계(刀圭界)에서 성공한 의사이기도 했지만, 문학계에서는 특별한 체험과 서사구조를 통해서 시대를 증언하는 작품을 썼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임헌영 선생은 그의 문학을 두 가지 관점에서 평가했다. 하나는 진솔하게 실화를 기록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체험적 소설을 통해서 당시의 민족관, 세계관, 역사관을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울분과 분노, 희생 또는 가학행위 등을 통해서 좌우 이념의 편향적 시각을 교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즉, 변증법적 역사의 순리에 따른 세계관과 인생관의 변모를 잘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6.25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전북문단 재건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시원(詩園)』 발간에도 깊이 관여하였으며, 당시 도내에서 발간된 신문에 유림일(柳林一 )이라는 필명으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면서 전북 문단을 이끌었다. 전북문인협회 이사로 김해강을 보필했고, 표현문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또한, 민족통일문학회를 조직하여 회장직에 취임하여 1998년 북한 동포 책 한 권 사보기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선생은 한국의 안톤 체호프가 되는 것을 꿈꾸었다고 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안톤 체호프는 의과대학에서 수준 높은 정규교육을 받은 의사이면서 단편소설에 몰두하며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이며 19세기 말 러시아의 사실주의를 대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선생은 의사이면서 사실주의적 단편소설을 많이 썼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선생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역사의 뒤편에서 신음하던 군상들의 설움과 분노, 한탄과 아픔을 다루었다. 특히 지리산과 관련된 당대의 비극을 자주 언급하였는데, 이는 지리산의 화해 없이는 남북 대화도, 조국 통일도 없다는 작가적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지리산의 저편에서 자신과 동질의 정서를 소설화한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와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우정을 다졌다. 선생은 작가로서도 훌륭하였지만, 개업 의사로서도 유복한 삶을 누렸다. 대한의학협회 부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7년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 문학·출판
  • 기고
  • 2021.01.26 17:04

전북 남원 가야문화 유산 ‘세계 속 유산으로 인정될까’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 가야 문화의 발자취가 그간의 베일을 벗고 바다 건너 유네스코로 향했다. 25일 남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에 따르면 유네스코에 남원 유곡리두락리 등을 포함한 가야고분군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최종 절차를 밟고 있다.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지난 21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으며, 2월 중 유네스코 현지실사에 대비해 3회에 걸친 유적정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유네스코 현지실사는 오는 8~9월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이 전북으로 이전하면서 남원 가야문화가 세계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이름을 올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지난 17~19년 경남연구원(창원)에서 운영을 맡아오다 2019~2020년 경북문화재단(고령), 2021년 1월 15일부터 업무가 전북으로 이관됐다. 당초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올해 중으로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준비해 왔지만 문화재청이 각 지역의 고분에 대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확인에 신중을 기하면서 준비기간이 길어졌다. 하지만 신중한 준비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활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 신청서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대한 구체적 근거들이 담겨 있다. 가야문명 당시 중앙집권 체제로 운영됐던 주변 국가들과 달리 연맹체재로 운영됐던 가야 문명에 대한 보편성을 기술하고 또 지배계층들의 고분들이 갖는 특징 등이 강조됐다. 전북도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록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해 온 만큼 서류 통과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는 추진단을 통해 8월에 예정된 유네스코 현지실사팀 방문을 대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할 계획이며, 유네스코가 유산에 대한 보편적 가치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민관이 어떻게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하는지 등에 대한 부분도 보는 만큼 주민활동도 지원할 계획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오랜 시간 준비해온 만큼 내년도에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서류 통과 이후 현장실사를 위한 준비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가야고분군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의 7개 유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 문화재·학술
  • 엄승현
  • 2021.01.25 18:28

전북서 반출된 해외 소재 문화재 ‘현황 파악 시급’

해방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완주 보광사 석탑' 전북 부안군 개암사(開巖寺)의 5층 석탑은 총독부 조사계에서 조사해 고적급유물로 등재해 보존하려던 중에 종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1932년 4월에 군산 일본 요리점 하나쓰기(花月)의 정원에서 발견됐다. 최학수 옥구군수가 하나쓰기 요리집의 정원에 있는 석탑이 개암사의 탑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은 최 군수가 옥구군수로 부임해오기 전에는 부안군수로 있었기 때문에 이 탑을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는 탑을 매수해 개암사로 보내기로 했다는데, 이후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없다. 현재 개암사에는 1932년 4월에 찾았다는 탑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로 반출된 전북지역 문화재의 환수 활동을 지원하는 전북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공포된 가운데 도내 현황 파악을 위한 실태 조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확한 현황 파악을 통해 실질적 환수뿐만 아니라 학술적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해외로 반출된 도내 문화재의 현황과 반출 경위 등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일부 연구자와 단체가 부분적으로 자료를 조사했을 뿐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국외문화재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8만1889점(42.40%),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에 5만3141점(27.52%), 중국 베이징고궁박물관 등에 1만2984점(6.72%), 독일 쾰른동아시아박물관 등에 1만2113점(6.27%) 등 21개국 19만3136점에 달한다. 다만 지역별 출처를 따로 조사하지 않아, 지역 현황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문화유산회복재단 전북본부에 따르면 도내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임진왜란 당시 반출돼 현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금산사 향로를 비롯해 현재 일본 도쿄대에 소장된 남원 출토 도자와 기와,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완주 보광사 석탑과 사리함 등이 있다. 이외에도 전주 회암사 불상, 순창 구암사 불상, 부안 개암사 석탑, 정읍 망제리 석탑 등도 소재가 불명하다. 재단 전북본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문화재가 소실됐는지 유출됐는지 하나도 정리가 안 된 상태이다. 대략적인 추정치로만 파악하고 있을 뿐이라며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자치단체 중심으로 향토사학자, 관련학과 교수 등과 연계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지역적 자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관련 조례가 제정된 만큼 도내에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 활동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조례는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활동 지원에 관한 계획 수립과 실태 조사를 위한 조사단 구성, 환수된 문화재의 관리 등의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 이후 광역 자치단체 7곳, 기초 자치단체 1곳이 국외소재문화재 환수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충남도의 경우 도 차원의 환수추진단을 조직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등 자치단체 최초로 국외소재문화재 보호, 환수 활동에 직접 나섰다.

  • 문화재·학술
  • 문민주
  • 2021.01.25 16:56

코로나 팬데믹 속 전주국제영화제 출품 398편

전주국제영화제 2021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영화제)에 작품 398편이 출품됐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재 속에 작품 출품이 꾸준하게 이뤄지는 경향을 보인다. 25일 영화제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제22회 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올 1월 18일까지 진행한 국제경쟁 공모에 68개국 398편의 영화가 출품됐다. 장르별 출품작수는 극영화 195편(48.99%), 다큐멘터리 158편(39.70%), 애니메이션 2편(0.50%), 실험영화 30편(7.54%), 다큐픽션, 애니다큐 등 하이브리드 13편(3.27%)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악조건 속에도 출품작수의 상승세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출품작수(535편)보단 137편(25.6%) 감소했지만, 지난 2019년(351편)보다 47편(13.4%) 증가했기 때문이다. 출품국가도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인도가 총 34편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일본이탈리아 각각 30편, 독일러시아 25편, 미국 24편, 프랑스 22편, 중국 21편, 아르헨티나 19편, 이란 17편순이다.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감안하면 출품수 398편은 상당히 의미있는 숫자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영화제에 출품해주신 68개국의 감독과 제작사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한 예심을 통해 영화제를 빛낼 본선 진출작을 선정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 영화·연극
  • 김세희
  • 2021.01.25 16:56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