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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 박해일 "안성기, 존재만으로 영화인들에게 신뢰 주던 배우"

"보통 선배 배우들이 후배한테 배역이나 연기에 관해 한두 마디 하실 법한데 그런 말보다는, 조용히 편안하게 제 앞에서 앉거나 서 계셨어요.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든든했습니다." (박해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예뻐해 주시고 소외되는 누군가 있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큰 나무처럼 주변을 살피시고 저희는 그 그늘에서 잘 쉬었습니다." (한예리)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에 참여한 배우 박해일과 한예리는 고(故) 안성기를 태산처럼 든든했던 선배 배우로 기억했다. 박해일은 30일 CGV 전주고사에서 열린 안성기 출연 영화 '필름시대사랑'(2015)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선배님은 매력적인 미소와 주름을 갖고 계신다. 제가 그 주름을 되게 좋아한다"며 "미소와 단단하고 차분했던 눈빛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할아버지와 손녀, 영화 조명팀 스태프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와 '춘몽'(2016) 등을 만든 장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성기는 정신병동에 있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한예리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녀 역으로, 박해일은 조명팀 스태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으로 안성기를 다시 만났을 때도 든든한 존재감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이순신 역을, 안성기는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입으시고 딱 모니터 앞에 앉아 계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며 "단지 그분이 계신다는 이유로 모든 영화인이 에너지나 신뢰를 가졌다"고 했다. 한예리는 '필름시대사랑' 속 인물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장면에서, 안성기 목소리가 지닌 힘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사운드만 나오는 마지막 장(章)을 볼 때 대사 때문에 그림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며 "보이스가 주는 힘 때문에 생동감 있게 보이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 안성기와의 호흡에 관해서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던 기억이 난다"며 "불편한 것 없이 정말 다정한 사람과 연기를 했다"고 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이 서울노인영화제로부터 제안받고 만든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영화제를 거절하면 노인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그 부담에 하게 됐다"며 "안성기 배우에게도 출연을 부탁할 때 '선배님 저를 거절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거절하는 건 한국의 노인을 거절하는 겁니다'라고 협박 비슷하게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작업할 때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장률 감독은 안성기에게도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연기할 때 껍질이 길게 남도록 사과를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장률 감독은 "연습하시라고 사과 한 박스를 보냈다"며 "그랬더니 안성기 선배님이 '원래 잘 깎는다'며 직접 하셨는데 실제 잘 깎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들리는가'라고 말하는 부분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극 중 안성기가 연기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짓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행동을 한다. 장률 감독은 "안성기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믿음이 간다.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안성기 선배님은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다 겪었고 따뜻한 사람이다. 영화의 정서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안성기 특별전은 '필름시대사랑'을 비롯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남자는 괴로워'(1994), '이방인'(1998) 등 7편을 상영한다. 다음 달 1일 '페어러브'(2009) 상영에는 신연식 감독, 3일 '잠자는 남자'(1996)는 오구리 고헤이 감독, 6일 '부러진 화살'(2011)에는 정지영 감독이 함께해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박해일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생을 다해도 필름은 남는다"며 "안성기 선배님의 조금 낯선 영화를 영화제 안에서 즐겨보시는 것도 권해드린다"고 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26.05.01 09:58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 대상에 배병일 씨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에서 운정(雲亭) 배병일(66·경남 진주) 씨의 ‘매월당 김시습의 시 위천조도'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재)강암서예학술재단이 주최한 이번 휘호대회는 지난 25일 성황리에 열렸다. 대회는 한국 서예계의 거목 강암 송성용 선생의 뜻을 기리고, 서예문화의 저변 확대와 역량 있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마련됐다. 앞서 진행된 1차 예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준 높은 작품이 출품됐으며, 엄정한 심사를 거쳐 총 193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부문별로는 △한문 80명 △한글 43명 △문인화 70명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오후 3시 강암서예관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 최우수상 3명에게는 각 200만 원, 우수상 6명에게는 각 100만 원 등 총 22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이 수여된다. 또 이번 대회에서 특선 이상을 받은 우수 작품은 다음 달 26일부터 6월 2일까지 강암서예관 1층 전시실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송현숙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은 “현장 휘호를 통해 실력이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시상식과 전시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강암서예대전이 앞으로도 대한민국 서예의 정통성을 지키며 가장 공정한 등용문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27 17:12

전북대 인문학연구소, 특별 강연 ‘민주인권운동 선구자 한승헌 선생’ 성황

민주인권운동의 선구자 한승헌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특별 강연이 전북대학교에서 열렸다.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는 21일 전북대 내 ‘한승헌도서관’에서 ‘민주인권운동의 선구자 한승헌 선생’을 주제로 초청 강연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전북대 인문학연구소가 주최하고 천년전주사랑모임, 완주인문학당, 군산인문학당이 공동 주관했다. 강연은 한국 현대사에서 ‘인권 변호사 1세대’로서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헌신한 한승헌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특히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그의 실천적 삶과 철학을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고인이 기증한 방대한 장서와 자료를 기반으로 조성된 공간인 ‘한승헌도서관’에서 진행된 이날 강연을 맡은 이종민 교수는 한승헌 선생이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전후해 추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상세히 소개했다. 특히 백산봉기 기념행사와 전주입성 재현, 범국민 걷기대회, ‘새야 새야 파랑새야’ 주제전, 학술대회 개최 등은 동학농민혁명을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닌 민중과 인권, 평화의 가치로 확장시키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농민군 유골 봉환, 국가유공자 지정 청원, 전적지 보존 운동 등 후속 사업까지 이어지며 동학 정신을 오늘날 인권과 평화의 담론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지속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승헌 선생은 법조인의 역할을 넘어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실천가였다”며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민중의 존엄과 인권의 가치를 현재화한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이어 교수는 “우리 시대의 큰 어른이었던 한승헌 선생의 삶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지역민과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21 19:29

‘소리’ 잃은 전주대사습청, 한정된 예산에 갇힌 저비용 공연의 딜레마

전주대사습청의 설립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2021년 전주대사습놀이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해 판소리의 본향이라는 상징성을 품고 출발했으나, 정작 소리가 변두리로 밀려나며 기관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예산구조와 전주시의 행정편의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일 전주대사습청이 공개한 최근 3년간(2021~2023년)의 상설결과 선정결과를 보면 무용(춤)공연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13건 중 7건이 무용공연이었고, 2022년에는 19건 중 12건, 2023년에는 23건 중 11건이 무용공연으로 채워졌다. 반면 대사습의 핵심인 판소리와 민요 등 목소리 기반의 공연은 매년 2~3건 수준인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올해 연간 공연계획 역시 전체 36건 공연 중 13건이 무용공연으로 집계돼 소리의 위상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러한 춤 편향 현상의 원인은 빈약한 재정 지원과 손쉬운 장르 배치로 해결하려는 행정의 안일한 태도에 있다. 대사습청의 연간 운영비 2억6000만원 가운데 인건비(1억3000만원)를 제외하면 실제 공연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은 7000~80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무용 공연은 녹음 음원 활용이 용이해 비용이 적게 들지만, 판소리나 기악은 고수와 악사 등 실연 인력이 필수적이어서 무용 대비 2배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운영진은 한정된 예산으로 상설무대 횟수를 맞추기 위해 저비용의 무용 공연을 선택해 온 셈이다. 유영수 대사습청 관장은 “무용공연 다섯 번 할 비용으로 판소리 공연은 한 번밖에 치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족한 예산을 보완하기 위해 국비 공모사업에 뛰어드는 등 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사습청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 다섯바탕 완판전 등을 기획하며 외부 재원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연간 1000만명이 찾는 전주한옥마을 초입에 자리한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상설공연 관람객 수가 연간 5000여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대중의 시선을 붙잡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공연 횟수를 채우는 양적 성장에 치중하면서, 관광객이 스스로 찾아올 만큼 매력적인 대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대사습이라는 이름만 보고 판소리의 깊은 울림을 기대하며 대사청을 찾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공연 횟수를 늘려 무대를 채우기보다는 대사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진짜 소리를 들려주는 무대를 기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유 관장은 “‘소리’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대사습청이라는 공간 자체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며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인지도를 확보하는 것이 운영의 우선순위라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19 16:23

세계 디자인의 심장부에서 피어난 ‘전주한지’, 밀라노가 주목한 스튜디오 WAK

밀라노 가구 박람회 ‘Salone del Mobile. Milano(살로네 델 모빌레. 밀라노)’는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한다. 그 중에서도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Salone Satellite(사로네 사텔리테)’는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처럼 미래의 거장을 예견하는 자리다. 이 뜨거운 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들이 있다.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유럽 가구시장을 개척 중인 '스튜디오 WAK(Studio WAK)’의 원세현·김남주 디자이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원세현(34) 디자이너와 그의 파트너 김남주(30) 디자이너는 고려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2018년 디자인의 정수를 경험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삼성과 보쉬(BOSCH), 잉고 마우러(Ingo Maurer) 등 글로벌 기업에서 실무를 경험하며 정교한 제품 설계 문법을 몸에 익혔다. 산업디자이너로서 단단한 기술력을 쌓은 두 사람은 독일 현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열고 본격적인 유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 같다. 한 사람은 숲을 보듯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잡고, 다른 한 사람은 나무를 보듯 디테일에 집중한다. 이들에게 디자인이란 단순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게 정말 최선일까?’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가장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원세현 디자이너는 16일 전북일보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독일 유학 전에는 시각적인 화려함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재료의 맥락과 생산방식의 책임감,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문화적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좋은 디자인의 본질을 쫓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치열한 질문 끝에서 그는 자신의 뿌리인 ‘전주 한지’와 재회했다. 전주가 고향인 그에게 한지는 어린 시절 익숙하게 접했던 재료였다. 무심코 지나쳤던 익숙함이 특별한 가능성으로 다가온 건 독일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때였다. 그는 “당시에 일본 화지를 활용한 조명 작업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저에게는 당연했던 재료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특별하고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스튜디오 WAK은 전주한지를 현대적인 가구의 구조와 빛을 완성하는 소재로 재해석했다. 대표작 ‘실루엣 캐비닛(Silhouette Cabinet)’은 전통 창호에서 착안해 한지를 가구 외장재로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다. ‘가려짐과 드러남’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호평을 받았다. 또한 모닥불에서 영감을 얻은 조명 ‘모닥(Modak)’은 아두이노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가 장작을 넣듯 빛의 세기를 조절하게 함으로써 기술에 한지의 온기를 입힌 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미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iF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석권하며 독보적인 실력을 입증한 이들이지만, 이번 밀라노 무대는 또 다른 도전이다. 자신의 뿌리인 ‘전주’의 미학이 세계 시장에서 얼마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 디자이너는 “한지를 전통 재료로 가두는 것이 아니라, 유럽 디자인 안에서도 충분히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지속가능성을 축으로 삼아 한지뿐만 아니라 자개 등 한국의 다양한 재료와 문화를 유럽 시장에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16 17:23

[안성덕 시인의 ‘풍경’] 오래된 사진

마음 따라 몸 못 가니 노곤합니다. 늦은 점심상을 물린 일 없는 해동냥에 까무룩 낮잠입니다. 무릉(武陵) 고을 어부 아니어도 그만 길을 잃습니다. 눈 없는 발이 낯선 듯 낯익은 복사골에 찾아듭니다. 왁자한 차부 지나 개울, 폴짝 건너려니 반짝 피라미가 뒤채네요. 가만 담아보려 두 손을 담그는데 아직 물이 차고요. 무질러 보리밭 길을 갑니다. 발목에 흠씬 초록 물이 들 것 같습니다. 종다리 높이 떠 뉘 집 몇째냐, 묻는 듯 종달거리고요. 삼태기에 안긴 마을, 인기척 없는 사촌네 마당 가 뽕나무는 잎 틔우지 않았고, 당숙 어른네 뒤꼍 대밭은 푸릅니다. 반쯤 열린 양철 대문을 들어섭니다. 저녁거리를 챙기는지 어머니 정짓간에 달각거리고, 할머니 방에선 또록또록 양글었다는, 네 살에 홍진으로 죽었다는 성천이 성이 까르르거립니다. 어머니 뱃속에도 없을 나는 가만 토방에 앉습니다. 생울타리 산당화 붉고 대문간에 아버지 들어섭니다. 한 손에 소고삐 또 한 손에 작대기를 든 아버지의 지게가 참 가뿐하네요. 둥그렇게 둘러앉을 저녁상은 못 보았습니다. 아니 웬 잠꼬대, 아내가 끌끌댑니다. 사진 한 장 참 희미하네요. 어미 닭 꽁무니에 졸졸대던 병아리 다 어디 가고 쓰러진 집에 개나리만 노랗습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6.04.11 07:25

전주시향 지휘자 공백 4개월...손놓은 전주시 피해는 시민이

전주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이하 전주시향)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자리가 4개월째 공석으로 방치되면서 조직 운영 마비와 내부 갈등 심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주시가 후임 선발 절차를 미루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부터 전주시향을 이끌어온 성기선 예술감독(상임지휘자)이 지난해 12월31일 임기 만료로 사임했다. 성 전 감독은 임기 만료 2달 전부터 연임 의사가 없음을 밝혔으나 시는 후임 선발을 위한 모집 공고조차 내지 않았다. 전주시향은 올해 6월까지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심각한 행정공백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통상 교향악단 공연은 대관 및 협연자 섭외를 위해 최소 6개월 전 공연계획을 세우지만 전주시향은 하반기 프로그램 일정도 확정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 공연 횟수(5회)도 지난해 상반기 공연 횟수(16회)에 비해 3분의 1로 줄면서 거의 방치된 상태다. 선임 지연 배경에는 지난해 발생한 인사권 관련 내홍이 원인으로 꼽힌다. 예술감독의 자질을 문제 삼는 익명의 탄원서가 시의회에 접수되면서 인사 잡음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시의회와 외부의 비판이 쏟아졌고 시에서는 신규 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한 교향악단 내부에서 발생한 갈등이 전주시인권위원회 판단과 지방노동위원회 및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으로 이어졌고, 현재 민사소송으로까지 진행 중인 사안이다. 전주시립예술단사업소는 예술감독(지휘자) 선임에 앞서 조직 운영에 대한 종합 점검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권정혜 팀장은 “지난해 의회 지적사항이나 인권 문제 등 조직 내부의 갈등이 있었던 만큼 바로 예술감독(지휘자)을 뽑기보다는 조직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단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권교육 등을 진행한 후에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의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예술감독(지휘자) 선임과 조직 정비는 별개로 병행돼야 할 사안임에도 시가 4개월째 모집 공고 조차 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권 팀장은 “하반기 공연계획 수립이 촉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운영의 차질을 인정하면서도 선임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내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전주시향 소속 한 예술단원은 “오케스트라는 강력한 리더십 아래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지휘자가 없으니 권리 권한을 쥔 행정 인력들이 본질을 외면한 채 조직을 흔들고 있다”며 “전임 예술감독(지휘자)가 올해 상반기 일정까지 확정해 놓은 채 떠났다는 사실은 시가 후임자를 조속히 뽑을 의지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성토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4.09 17:20

전북 연극계, 장기 공연 실종⋯산업화 기반 마련 시급

전북특별자치도 연극계가 꾸준한 창작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대표할 만한 장기 공연 레퍼토리를 확보하지 못하며 산업적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의 지원 구조 한계와 더불어 연극계 내부의 기획 전략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전북연극협회와 도내 연극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지역에서 3년 이상 장기 공연되는 작품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자치도에는 창작극회, 무대지기, 작은소리와동작 등 오랜 역사를 지닌 23개 정극단이 활동 중이며 ‘천사는 바이러스’, ‘할머니의 레시피’ 등 자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역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안착시킨 사례는 드문 실정이다. 상당수 극단이 매년 신작 제작에 집중하면서 작품이 축적되지 못하고 단발성 공연으로 소진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관객 규모의 한계를 꼽는다. 도내 공연 관람층이 일정 수준에 머물러 있어 동일 작품을 반복 상연할 경우 수요가 빠르게 소진된다는 것이다. 한 연극 관계자는 “지역 관객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2~3년 내에 관람 수요가 바닥을 드러낸다”며 “현 구조에서는 같은 작품을 장기간 유지하며 수익을 창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원 제도 역시 레퍼토리 형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대부분의 공모사업이 신작 초연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기존 작품을 재정비하고 완성도를 높여 재공연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된다는 지적이다. 반복 공연을 통한 작품성 제고보다 매년 새로운 제작 실적을 요구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창작 역량이 축적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연극계 내부에서도 전략 부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상업적 유통을 염두에 둔 제작 시도가 많지 않았고, 장기적으로 반복 공연이 가능한 대표작을 만들겠다는 목표 설정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상업극 제작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라기보다 이를 시도하려는 관심과 투자 의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작품성과 예술적 가치에 집중해 온 창작 환경 속에서 관객 확대 전략이나 유통 구조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도내 연극인들은 브랜드 공연의 형성을 위해 외부 관객 유입과 함께 행정 지원 방식의 구조 개선, 창작 주체의 전략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연극계에서 활동 중인 기획자 A씨는 “현재는 제작비 대부분이 초연에 집중돼 재공연이나 타 지역 진출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단년도 제작 지원에서 벗어나 작품 축적과 유통, 타 지역 진출까지 고려하는 중장기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관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광 콘텐츠와 연계한 공연 유통 구조를 구축하고, 외부 관람객을 유입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07 17:47

전주문화재단, 2026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가가호호’ 본격 추진

전주문화재단이 2026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가가호호(家加好好)’의 추진 계획을 7일 밝혔다. 재단은 지난해 프로그램 ‘유형 다각화’를 통해 예술교육 기반을 확장한 데 이어, 올해는 ‘가족 유형의 다각화’를 핵심 키워드로 설정하고 보다 폭넓은 가족 구성원을 예술 교육 현장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특히 혈연 중심의 기존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비친족·비혈연 관계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가족’ 발굴에 주력한다. 함께 거주하거나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는 관계라면 예술교육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위탁가정 아동, 비혼 1인 가구, 동거 가구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 발굴형’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동거 가구의 경우 ‘예비부부’ 등 유연한 명칭을 활용해 사회적 인식을 고려한 접근도 병행한다. 이번 사업은 단순 체험을 넘어 연구 기반의 예술교육 모델을 도입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재단은 지난 5년간 협력 관계를 이어온 전북대 아동학과와 함께 ‘돌봄연구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교수진 자문과 전공생 참여를 통해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 경과 분석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질 예정이다. 교육 공간 역시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된다. ‘공동체라디오 전주 FM’과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 남부시장 내 복합문화공간 ‘모이장’ 등 지역 거점 공간을 활용해 작곡, 창작, 관계 형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재단은 공간별 특성과 지역 이슈, 보유 장비를 적극 반영해 생활 밀착형 예술교육을 구현할 계획이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07 14:45

예술·대중·지역 가치 담은 청사진⋯한국소리문화의전당 4대 과제 발표

새로운 리더십 전환을 맞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전당)이 도민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달 취임한 이승필 전당 신임 대표는 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2026년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전당은 ‘예술·대중·지역’ 3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기획사업 브랜드 ‘아트숲’을 운영하며 공연 61건, 전시 4건, 교육 및 기타 4건, 상설공연 1건 등 총 70건 규모의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이 대표는 전당을 전북의 핵심 문화예술 인프라로 도약시키기 위해 △서비스·안전 수준 제고 △자체 공연 콘텐츠 경쟁력 강화 △인적자원 역량 강화 △시설 미래 경쟁력 확보 등 4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개관 25년을 맞은 전당의 시설 노후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간 인프라와 콘텐츠, 인력 역량, 안전·서비스 등 전반의 경쟁력을 높여 도민이 편안하게 찾는 문화공간으로의 역할을 강화할 방침이다. 공연 사업은 △거장전 △스테이지원더 △기획자의 눈 △소리연리지 △가족누리 등 5개 분야로 구성됐다. 거장전에서는 6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를 선보이며, 기획자의 눈에서는 윤별발레컴퍼니 창작발레 ‘갓’, M발레단 ‘돈키호테’, 올라비올라 사운드 ‘B to B with 바리톤 길병민’ 등이 예정됐다. 대중성과 화제성을 고려한 스테이지원더 분야에서는 ‘임재범 40주년 콘서트’,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LIVE TOUR’ 등을 마련했다. 지역 예술인과 협업하는 소리연리지 분야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All Festa 시즌5’와 ‘K-POP 아카데미 쇼케이스’를 운영하며 지역 문화생태계 활성화를 도모한다. 가족누리에서는 백희나 작가 원작 뮤지컬 ‘알사탕’과 ‘숲속 100층짜리 집’을 선보여 어린이 관객층 확대를 추진한다. 전시는 배리어프리 기획전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비롯해 청년작가 야외조각전Ⅳ ‘7ing:칠링’, 여름방학 특별전 ‘앤서니 브라운전: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접근성과 대중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예술교육은 유아부터 초등학생 고학년까지 맞춤형 프로그램 ‘소리터? 놀이터!’, ‘예술놀이터 SORI’ 등을 운영한다. 전당은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 ‘월드콘(월간 드림 콘서트)’과 전주를 제외한 도내 13개 시·군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예술극장’을 통해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에도 나선다. 이 대표는 “전당이 세계적 공연을 유치하는 동시에 지역 예술이 외부로 확장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시설 개선과 콘텐츠 경쟁력 강화를 병행해 도민 문화향유권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02 17:53

'K-문화 수도’ 전북의 역설⋯방송·디지털 콘텐츠 산업은 ‘낙제점’

전북특별자치도가 자체 보유한 전통문화 콘텐츠를 강조하며 ‘K-컬처의 수도’라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인 콘텐츠 산업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래 먹거리인 방송 영상과 디지털 분야에서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어,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4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방송·영상 산업(독립제작사 제외) 사업체 수는 고작 11개에 불과했다. 이는 전국 총 1151개 사업체 중 단 1%에 그치는 수치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기존 방송사의 지역국 형태임을 고려하면, 순수 민간 제작 역량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지리적 여건이 유사한 강원(19개)이나 전남(14개)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지역의 서사를 영상 콘텐츠로 가공해 외부로 확산시킬 ‘엔진’ 자체가 꺼져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한지, 판소리 등 전북의 우수한 원천 소스들은 디지털 콘텐츠로 전환되지 못한 채, 지역 내 소규모 행사용으로만 소비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미래 산업인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솔루션 분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북은 이 분야에서 업체 수를 산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저변이 얇으며, 어렵게 버티고 있는 소수의 사업체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술력을 요하는 캐릭터 개발이나 게임 제작 업체가 적다 보니, 도내 대학에서 배출된 청년 인재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실제 전국 애니메이션 산업 종사자는 2022년 6373명에서 2024년 6832명으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전북은 같은 기간 39명에서 19명으로 ‘반토막’이 난 것으로 확인된다. 기업 규모의 영세성도 고질적인 문제다. 도내 콘텐츠 기업의 80% 이상은 종사자 1~4명 규모의 소기업으로 밝혀졌다. 매출을 견인할 대형 업체는 대부분 수도권에 쏠려 있고, 도내 업체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며 근근이 버티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지역이 전통 콘텐츠에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를 담아낼 ‘디지털 그릇’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내 콘텐츠 업계 종사자 A 씨는 “콘텐츠 산업 발전은 단발성 지원 사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실속 있는 기획으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강소 기업과 이들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지역 내 사업체 수가 너무 적다 보니 지원금 예산 규모 자체도 타 지역에 비해 적게 배정되는 실정”이라며 “지역 영세 업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로드맵 마련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3.31 17:28

청산한다던 친일 잔재, 전북 문화예술은 왜 성역인가

전북특별자치도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적 이중잣대’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 예술계에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지원금 삭감의 칼을 휘두르면서도, 정작 도 스스로 청산대상으로 규정한 인물들의 선양사업에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정책적으로 자기부정에 빠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지난 2020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통해 도내 친일 잔재 133건을 직접 규명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등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들을 명백한 청산대상으로 분류하며 행정적 대응의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도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는 도 스스로 내놓은 조사 결과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실정이다. 실제 올해 전북문화관광재단 지원사업에서 도내 시·군 문인단체 대다수는 자생력 부족 등을 이유로 탈락했다. 반면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을 기리는 특정 단체는 선정돼 공적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재단 측은 “기획안 내용이 우수하고 제자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행정이 규정한 청산 대상사업에 스스로 공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모순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가치 판단의 문제를 넘어 행정원칙의 일관성이 무너진 부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적 공간의 역사적 감수성 결여도 심각하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최근까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의 작품을 비판적 주석 없이 예술성만 강조해 전시해왔다. 교육적 가치를 우선해야 할 국립기관이 과오는 은폐한 채 심미적 가치만 부각하는 것은 관람객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해당 콘텐츠는 지역 예술계의 거센 항의 끝에 지난 2024년 삭제됐다. 지자체의 행태는 더욱 직접적이다.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채만식문학관은 2명의 공무원이 상주하며 1년에 1억3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군산의 ‘백릉길(채만식)’이나 고창의 ‘인촌로(김성수)’ 등 친일인사의 호를 도로명주소로 고수하는 현실은 행정의 역사적 감수성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최기우 작가는 30일 전북일보와의 통화에서 “언어를 짜깁기해 만든 미사여구에 무슨 사상이 담겨 있겠느냐"며 “삶과 철학이 무너진 작가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보존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일 문인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늘에 가려진 다른 소중한 문인들을 지우고 묻어버리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북도 관계자는 “순수하게 예술적 측면으로 봤을 때는 그들의 성과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며 “과거에 대한 행적은 비판해야겠지만, 행정에서 예술 창작에 대한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과 관련해서는)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측면이 있다. 앞으로 관련 사안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30 17:38

‘여름축제’ 지향한 전주세계소리축제 2년 만에 가을로 유턴?

전주세계소리축제 신임 집행부가 축제 개최 시기를 가을로 되돌리고, 올해 개막공연을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년 전 차별성 확보를 위해 ‘여름축제’로 변경한 것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철 조직위원장은 축제 정상화의 일환으로 이같은 계획을 언급했다. 이는 지난 2024년 글로벌 브랜드 강화와 여름 휴가철 관광객 흡수를 목표로 개최 시기를 8월로 옮긴 지 불과 2년 만에 나온 정책적 변화이다. 소리축제가 이같이 개최 시기 변경을 논의하게 된 배경은 여름철 극심한 폭염 등 기후 리스크로 관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여름 개최가 당초 내세웠던 비수기 전략의 이점을 증명하지 못한 채 브랜드의 정체성만 약화시켰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도내 문화계 인사는 “여름 개최는 다른 축제와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기후 리스크를 상쇄할 만큼의 관객 동원이나 새로운 변화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가을에 행사가 많다는 이유로 개최시기를 옮겼지만 바꿔서 생각하면 그때가 적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최시기 변경은 축제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정상화 절차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최시기 복귀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학 부재와 행정 공백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축제 개막 공연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겠다는 방안은 축제가 지켜온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에 소리축제 측은 조직위가 그동안 개막공연을 준비하며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고, 시기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개막공연 대신 세레머니 형식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조성원 프로그램팀 팀장은 “축제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공연제작에 대한 의무를 가져가는 게 맞는지 내부적으로 10년 넘게 고민해왔다”며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기 변경 역시 단순한 날씨 탓이 아니라 ‘축제성 회복’을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장의 시각은 다르다. 축제와 협업해온 한 예술인은 “올해 개막공연을 위해 유관기관과 실무협의가 상당 부분 진행 중이었으나 집행부 교체와 함께 무산됐다”며 “개막공연은 축제의 정체성과 그 해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메시지인데 행정공백이나 제작 준비시간 부족을 이유로 포기하는 것은 축제의 상징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파행의 근본 원인은 전북도의 인선 지연이 꼽힌다. 집행부가 3월 중순에야 확정되면서 국제적 수준의 메인 프로그램을 기획할 물리적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적인 전담조직을 갖춘 소리축제가 지자체의 인선 시계에 따라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축제가 내놓은 구상이 지속 가능한 축제 모델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이 될지는 향후 구체화될 최종 실행 계획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소리축제 측은 올해 8월 축제 운영을 지켜본 뒤 개최 시기 변경 및 프로그램 개편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도내 문화·공연계 관계자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소리축제가 지역예술인의 참여 요구와 글로벌 콘텐츠 생산이라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명확한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며 “지자체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26 17:53

전시 기간 아니었나요?…문 닫힌 한벽 전시실, 공공 운영 신뢰도 ‘흔들’

“분명 전시가 열린다고 했는데, 전시장 포스터도 없고 문도 닫혀 있네요. 오늘 전시 기간이 맞긴 한가요?” 전주 한옥마을 내 대표 전시공간인 전주한벽문화관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이 전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서 관람객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시가 제때 열리지 않으면서 공공 전시공간 운영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전시는 전주문화재단의 ‘2026 전시공간 지원사업’에 선정된 진현진 작가의 개인전 ‘발원: 바라고 또 바라다’로, 지난 1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안내된 관람시간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주 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그러나 26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시실은 정상 운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전시장 외부에는 해당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돼 있지 않았고, 관람 시작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전시실 출입문은 닫혀 있었으며 내부 조명도 꺼진 상태였다. 최근 포근해진 날씨로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 운영이 불규칙하게 이뤄질 경우 관람객 불편은 물론 문화공간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전주문화재단이 지역 예술 지원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공모 선정 전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지원사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전시 운영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한벽문화관에서 진행되는 다수 사업이 외부 단체 대관 형태로 운영되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자체 추진 사업이지만 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비예산 사업’으로 분류돼 관리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 시각예술계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역 작가는 “공모에 선정돼 전시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장 관리나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원은 작가에게 허탈감을 줄 수 있다”며 “단순 공간 제공을 넘어 전시 기간 동안 기본적인 운영 인력과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벽문화관 운영팀 관계자는 “전시 담당 팀장과 실무자의 갑작스러운 병가와 연가로 인해 인수인계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해 운영에 차질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별도 예산이 없는 사업으로 대관료를 받지 않는 구조이며, 홍보 역시 입구 현수막 중심으로 진행돼 외부에서 확인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전시장 운영에 더욱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벽문화관 전시실은 회화·조각·공예·사진 등 다양한 시각예술을 선보이며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운영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계기로 공공 전시공간의 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3.26 16:58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