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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속도전

만일 사람과 말이 마라톤을 한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얼핏 생각하면 자동차처럼 빠른 말과 사람이 시합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그런데 사람이 말보다 더 빨리 도달한 경우가 있다.영국 웨일즈 지방의 Llanwtyd Wells 라는 마을에서는 해마다 말과 사람이 함께 마라톤 시합을 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총 22마일(약 35.4Km)의 험준한 구간을 사람과 말(사람이 승마)이 함께달려 승부를 겨루는 이 시합에서 지난 2004년 큰 이변이 일어났다.축제 25주년을 맞는 2004년, 이 마라톤 시합에서 인간이 말을 처음으로 이긴 것이다.전세계적인 마라토너가 풀코스(42.195km)를 달릴때 속도는 시속 20km밖에 되지 않는다. 우샤인 볼트가 100m 달릴때 시속 42km 정도다. 말의 순간 스피드는 최고 60km나 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사람이 말을 이길 수 없으나 장거리 경주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봉수제도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력화 된 것을 실감한 조정은 선조때 중국에서 파말마 제도를 들여온다. 약 30리(12km)마다 역을 두고 운영한 것이 바로 파발(擺撥)제도로 나라의 긴급하고 중요한 소식만을 전달하는 초특급 통신망인 셈이다.제아무리 빠른 말도 12km를 넘어가면 쉽게 지쳐 꾸준한 속도로 달리는 인간보다 나을게 없다는 결론에서 나온게 바로 30리마다 역을 둔 것이다.역전(驛傳) 마라톤 이라는 명칭도 파발마 역을 기준으로 장거리를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눠서 각기 맡은 한 구간씩 달리는 경주에서 의미에서 비롯됐다.새삼 인간과 말의 경주를 꺼낸 이유가 있다. 현 정부들어 부쩍 ‘새만금 속도전’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새만금 사업에 예산을 대거 투입해 완공 속도를 앞당긴다는 의미다.새만금사업은 상해 푸동항, 인천 송도항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으나 지금 형편은 천양지차다. 최근 5년간 새만금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해마다 약 6500~7000억원 가량 되는데 최소 1조원씩은 투입돼야만 가속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해가 아니고 장기적으로 말이다.전문가들은 “해마다 1조씩 투입해도 새만금 국제협력용지나 배후도시용지에 일반인이 거주하려면 최소 15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1조원도 새만금 속도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결국 최고 통치권자의 결단없이 기재부 등에 맡겨둘 경우 ‘새만금 속도전’은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예산도 그렇지만 공항건립 등에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사람이 말의 스피드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11.07 23:02

문질빈빈(文質彬彬)

한때 연구비 비리로 지탄을 받았던 전북대가 대대적인 개혁작업으로 학교위상을 재정립, 전국 롤모델이 돼 찬사를 받고 있다. 철밥통으로 인식돼온 교수들을 연구논문을 쓰지 않으면 승진은 커녕 퇴출위기로 내몰았다. 그 결과 교수들의 연구실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연구실로 탈바꿈했고 질 좋은 연구논문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면서 40위권으로 곤두박질쳤던 대학평가가 전국 10위권 초반으로 자리잡게 됐다. 국립대 평가에서는 해마다 부산대 경북대와 함께 1, 2위를 다투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밤낮없이 개혁작업을 8년간 진두지휘했던 서거석 전 총장의 공이 결정적이었다.전임 서 총장한테 바통을 받은 현 이남호 총장의 꺼질 줄 모르는 열정이 최근 캠퍼스 분위기를 새롭게 바꿔 놓았다. 개교 70주년에 걸맞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이 총장은 구호부터 남달랐다.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그의 각오가 모범생이 아닌 모험생을 키우는데 적중했다. 글로벌경쟁시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으로 그대로 연결, 전임 총장이 마련한 성장판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 총장이 취임하면서 추진한 한옥캠퍼스 조성사업은 눈여겨 볼만한 사업이다. 전주가 가장 한국적인 도시인 만큼 그 콘셉트에 걸맞는 한옥캠퍼스 조성사업을 이 총장이 대대적으로 벌여 주목을 끌고 있다.전북대 한옥캠퍼스 사업은 공자님이 말씀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외관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을 뜻한다. 문은 외부적인 무늬를 말하는 것이고 질은 내적인 본질을 가르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 사업을 놓고 SNS상에서 때아닌 찬반논쟁이 일고 있다. 찬성쪽은 한옥화사업을 통해 대학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쪽은 많은 예산을 들여 한옥정문을 지을게 아니라 학생장학금이나 교육환경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부는 학생들쪽으로 숨어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바람에 이 총장을 힘들게 한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쟁이 있기 마련이지만 예산항목을 바꿀 수 없는 사업을 이제와서 딴지를 거는 것은 발목잡기 밖에 안된다. 내년 총장선거를 앞두고 현 이 총장을 흔들어서 음해하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지성의 상징인 상아탑 만큼은 달라야 한다. 미래를 견인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대학에서까지 사회처럼 상대를 음해하기 위해 숨어서 총질하는 것은 비겁하다. 그간 구성원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대학의 위상을 이 만큼 높혀온 마당에 또다시 예전같이 서로를 헐뜯는다면 전북대는 위상 추락으로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전북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전북대라는 것을 구성원들이 다시금 인식해서 문질빈빈을 돼새겨 봤으면 한다. 200만 도민들은 전북대의 발전이 전북을 견인할 역량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1.06 23:02

거장의 자리

플라시도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며 한 시대, 국가를 초월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세기의 거장’ 이다. 도밍고는 지난해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일흔다섯 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내는 노장의 무대에 7000석 객석을 가득채운 한국의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여전히 풍부한 성량, 맑은 음색의 그의 노래는 그만큼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얼마 전 이태리에 거주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임세경 씨로 부터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임씨는 지난 봄,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토스카’ 무대에 섰다. 그의 말대로라면 공연을 바로 코앞에 두고 제의를 받은 ‘대타’ 무대였다. 세계적인 극장이기도 했지만 도밍고가 지휘하는 무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그는 기꺼이 출연 요청에 응했다. 리허설을 위해 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시간. 연습실에는 도밍고 혼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투입된 터라 동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연 무대에 서야하는 상황이었으니 긴장이 됐다. 한국 출신 소프라노 가수를 홀로 맞은 도밍고는 활짝 웃으며 ‘새로 오는 토스카가 작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조그만 소프라노인 줄은 몰랐다’는 인사로 그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다른 가수가 한명도 없었으니 노래를 부르는 대신 리딩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리허설이었다. 그런데 도밍고는 리딩 대신 바리톤과 테너 역할의 아리아까지 부르며 그의 상대역을 도맡아 해주었다. 경황없이 진행된 첫 리허설이었지만 그 역시 모든 역량을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도밍고는 한차례 더 리허설을 갖자고 제안했다. 국가를 넘나드는 도밍고의 공연 일정상 리허설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음날 늦은 밤, 쉬고 있던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플라시도 도밍고’란 이름이 떴다. 극장으로 달려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물론 도밍고 혼자뿐이었다. “도밍고의 이름만으로도 객석은 가득 찰 것이 틀림없는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공연까지 마치고 늦은 밤에 나이 어린 소프라노의 무대를 위해 다시 극장을 찾는 도밍고 선생님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거장의 자리는 결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의 크고 작은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거장의 열정이 전한 울림은 또 있었다. 무대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빛을 낼 수 없다는 것. 서로를 도와야 비로소 제 빛을 내는 일이 어디 무대만의 것이겠는가.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1.03 23:02

군산 선유도

2010년 4월27일 길이 33㎞ 새만금방조제가 임시 개통되면서 세계 최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홍보된 바닷길이 관광객들로 홍수를 이뤘다. 당시 전북도 등에 따르면 개통 1주일만에 새만금방조제를 찾은 관광객은 43만200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6만여 명이다. 개통 후 첫 주말휴일이었던 5월 1일과 2일 이틀간 방문객 수는 16만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코 앞의 작은 섬 가력도를 거쳐 곧게 고군산군도 신시도까지 뻗어간 방조제는 야미도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고선 곧바로 군산 비응도까지 달려간다. 방조제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호수, 그리고 에메랄드 빛 물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석양의 낙조, 변산반도의 풍경 등은 관광객들을 잡아끄는 큰 매력이었다. 가력도와 신시도에 설치된 배수갑문을 통해 밀물과 썰물이 나드는 것도 장관이었다. 그 아름다운 새만금방조제를 보겠다는 관광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국농어촌공사 집계에 따르면 2011년 7월에 총방문객이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이듬해 6월3일 1,500만 명을 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4년 6월에 2,5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개통 첫해 8개월간 방문객이 845만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새만금방조제 관광객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가 분명하다. 2016년에는 불과 489만명이 다녀갔을 뿐이다. 새만금개발청이 관광활성화를 위해 고군산군도 해상케이블카 타당성 용역에 들어가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관광 포인트라고는 덩그렇게 뻗어있는 바닷길 단 하나 뿐인 현 상황에서 새만금관광객 증가는 힘들어 보인다. 전북도가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새만금 유치 성과를 크게 홍보하고 있지만, 그 자체만 보면 일과성 행사일 뿐이다. 내년 1월 개통 예정인 고군산연결도로(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의 ‘신시도~무녀도’ 구간이 지난해 7월 부분개통 된 후 관광객이 크게 몰리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선유도를 배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자 관광객들이 앞다퉈 몰린다. 군산시에 따르면 지난 1년여 사이 이 곳을 방문한 차량은 73만대 이상이다.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니 교통과 주차가 엉망진창이다. 자전거와 전기차, 봉고버스 등이 비좁은 길을 오가는 바람에 걷기가 매우 불편하다. 내년에 공영주차장을 확충하고, 관광형 2층 시내버스를 투입한다는 군산시 대책은 늦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02 23:02

전주의 랜드마크

파리 에펠탑, 뉴욕 자유여신상, 런던 타워브리지, 로마 콜로세움, 인도 타지마할, 호주 오페라하우스, 중국 만리장성. 세계적인 도시를 상징한 랜드마크다. 외국 관광에 나섰을 때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의 상징물을 관람하지 않으면 제대로 여행을 못한 느낌을 갖는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갖는 힘이다. 파리 에펠탑의 가치가 건축물 이미지와 브랜드, 조형적 가치, 관광객 방문, 일자리 창출 등으로 프랑스 GDP의 20%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각국은 물론, 국내 자치단체들이 랜드마크 심기에 높은 관심을 갖는 이유다. ‘랜드마크(landmark)’는 일정한 지역(land)에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표시(mark), 즉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를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자유여신상은 조형물로, 호주의 오페라하우스는 건축물로, 프랑스 개선문은 구조물로, 영국의 도크랜드는 단지형으로 도시를 상징한다. 그 유형을 달리하지만 다른 도시와 차별성을 갖는 인공구조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한국건설사업연구원이 몇 년 전 서울시민들과 건설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묻는 설문에 ‘N서울타워’가 39.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63빌딩’ ‘광화문광장’ ‘복원된 청계천’ ‘세종문화회관’등이 뒤를 이었다. N서울타워가 파리의 에펠탑처럼 서울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점이 작용했으리라. 올 3월 롯데월드타워의 전망대인 ‘서울스카이 123’이 새로 들어섰기 때문에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그렇다면 전주를 특징지을 수 있는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전주뿐 아니라 전국의 다른 시도도 별 반 차이가 없다.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도시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랜드마크 만들기에 공을 들였으나 세계적으로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널리 알려진 랜드마크를 찾기 힘들다. 한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기념비적 건물(조형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의미다. 최근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를 매입한 (주)자광이 430m 높이의 타워를 세워 전주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국내 최대 높이의 타워를 전주에 세우겠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에서 좋은 이야깃거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주의 랜드마크를 높이에서 찾는다는 건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바탕을 두지 않는 랜드마크는 사상누각이다. 전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전통문화 측면에서 나와야 한다. 건물이든, 구조물이든 진짜 전주를 상징할 수 있는 랜드마크가 화제로 떠오를 날은 언제일까.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11.01 23:02

도시는 선(線)

지금부터 50년전 서울은 만원이다란 제목의 영화나 소설이 발표된 것만 봐도 수도 서울은 오래전 꽉 찼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커 보여도 사실 서울은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다.서울 면적(605㎢)은 고창군(607㎢)과 거의 비슷하다. 서울은 전주시(206㎢)의 약 3배 가량 되는데, 도내 자치단체중 가장 넓은 완주군(820㎢)과 비교하면 훨씬 작다.약 600 여년전 수도 서울을 정한 이래 범주는 오랫동안 강북 4대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6.25 이후 서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60년대말부터 70년대초 여의도와 강남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지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한양을 설계한 이는 정도전이지만, 오늘날 수도 서울의 큰 틀을 닦은 사람은 불도저라 일컬어졌던 김현옥 전 서울시장이다.군 수송장교 출신인 그는 부산시장, 서울시장, 내무부장관을 거쳤는데 특히 60년대말 4년동안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차일석 박사를 부시장으로 영입해 한강개발, 여의도개발을 비롯 영동지구의 틀을 갖추고 남산터널과 북악스카이 개발 등을 주도하게 된다.강남, 서초 등은 영등포의 동쪽이라 하여 영동(永東)지구로 일컬어지는데, 사실 이 일대가 제대로 서울에 포함된 것은 제3한강교인 한남대교의 개통과 궤를 같이하며 이는 곧 김현옥의 구상에서 비롯됐다.1970년 4월 마포에 날림공사로 지은 와우아파트가 붕괴되면서 도시는 선이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김현옥의 개발독재는 끝나게 됐지만, 어쨌든 현재 수도 서울의 면모를 설계한 이를 꼽는다면 김현옥을 빼놓을 수 없다.도시는 선이다는 구호는 방사형 도로나 외곽순환도로 등을 포함한 도로교통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인데 김현옥과 친분이 두터운 소설가 이병주가 처음 썼다고 한다.그럼 시선을 돌려 1천 여년 전 수도였다는 전주의 개발 방향을 보자.전주 역시 큰 틀에서 볼때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갇혀있었으나 80년대 이후 동부권은 6지구와 아중리를 중심으로 개발됐고, 서부권은 서신동과 도청 주변을 중심으로 한 서부신시가지 중심으로 개발되다 최근들어 전북혁신도시, 만성지구가 핵심지구로 부각됐다.북부권은 송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35사단 이전을 계기로 에코타운이 형성됐으며, 남부권은 평화동 교도소 주변으로 개발되다 최근엔 효천지구 중심으로 뻗어가는 분위기다.내후년 법조타운이 만성지구로 이전한 뒤 텅 비게 될 전주경기장과 덕진동 일대는 개발이냐(전북도), 보존이냐(전주시)의 갈림길에 서있다.이러한 때 불현듯 최근 한 업체가 도청 옆 대한방직 부지를 사들이면서 개발을 추진중이고, 교도소 이전도 4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도시개발이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10.31 23:02

죽쑤는 국민의당

장미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찍었던 도내 유권자들이 계속해서 민주당을 지지한다. 지난 20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들을 회초리를 들어 대거 낙선시키고 대신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켰던 유권자들이 지난 5.9대선 때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민주당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 결과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도내에서 64.8%의 높은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지 6개월로 접어들면서도 60% 후반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선 때 얻었던 득표율 41.1%에 비하면 25% 이상이 높다.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도내에서 7석을 차지한 것은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유권자에게 염증을 느끼게 한 탓이 컸다. 중앙정치무대에서 존재감 없는 초선들과 당이 무력증에 빠져 실망한 나머지 유권자들이 대거 물갈이시켰다. 그간 일방적으로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작용했다. 도내 유권자들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봤자 그들만 호의호식하고 잘 살게 만들어줬지 지역으로 돌아온 게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 익산에서 이춘석과 완주 무진장에서 안호영의원이 당선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선거가 일주일만 더 남았어도 두 사람 모두 녹색돌풍에 휘말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그 당시 민심은 성난 파도와 같았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배신감을 갖고 있고 새정치를 열망하고 있었던 때에 안철수가 국민의당을 창당한 게 적중했다. 하지만 그 이후 유권자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국민의당 새정치는 오간데 없고 안철수가 독단으로 당을 이끌어 지지세가 급락했다.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보인 토론실력은 실망 그 이상이었다. 선거 초반 기세등등했던 지지는 꺾인채 2등도 홍준표 후보한테 내주고 3등으로 밀렸다. 선거 막바지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에는 치고 나오는 홍 후보를 경계하려고 문재인 후보한테 몰표를 안겼다.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국민의당을 두고 한 말 같다. 지금 분위기로는 내년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9월말까지 민주당 도당에 접수시킨 입당원서가 이를 말해준다. 도내 유권자들이 정권교체에 따른 기대감을 민주당에 갖고 있다. 지난 총선때 강세를 보였던 국민의당 지지도가 도내서도 10%를 넘지 못한다. 대선 때 강건너 불구경하는식으로 소극적이었던 국회의원들이 군산조선소 문제 등 지역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존재감이 약화됐다. 제1당인 국민의당이 도지사 후보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의기소침해졌다. 존재의미를 다당제로 삼았던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로 가는 게 잘못이라고 지적한 사람들이 많다. 설령 3, 4등이 합쳐도 3등 밖에 안된다. 민주당 고공행진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지율을 높히기 위해 서둘러 통합을 모색했지만 도내 유권자들은 꿈적도 안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0.30 23:02

일자리 만들기와 일자리 없애기

공용주차장을 빠져나오다 낭패를 봤다. 미리 현금을 준비해 여유 있게 출구로 진입했으나 며칠 전까지 있던 주차비를 받던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그 공간에 대신 놓인 기계식 계산기를 보니 신용카드를 꼽고 주차비를 해결하라고 되어있다. 뒤에 차가 밀려있으니 다시 가방을 뒤져 카드를 찾는 일이 황망했다. 창문을 열고 카드를 꼽기에는 너무 멀어 결국 차에서 내려 카드를 꼽고 다시 빼내고 나서야 출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신용카드 전용 주차장이란 안내문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한옥마을 입구의 공용주차장 이야기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들고 날 수 있으니 훨씬 간편해지고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역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역 주차장도 얼마 전까지 주차비를 받는 근무자가 있었으니 기계식으로 바뀐 것은 최근일 터다. 문득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졌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주차장이니 파견되었던 공무원이라면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을 테지만 혹시 일용직으로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잃지 않았을까. 꽤 오래전 일본의 NHK 방송국 관련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때 들른 자료실에서 인상 깊은 풍경을 만났다. 릴 테이프로 보관해오던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자료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알고 보니 젊은 시절 NHK에 근무했거나 관련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원로들이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인간의 손을 선택한 전략은 분명 이유가 있어 보였다. 은퇴자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게 된 것도 그렇거니와 일의 전문성을 더할 수 있으니 좋은 선택이다 싶었다. 통계청이 내놓은 최근의 고용동향을 보면 역대 최고치를 넘나드는 청년 실업률은 개선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사실 일자리의 절박함은 청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1순위가 ‘일자리 대통령’이었을까. 그 여파를 몰아 자치단체들도 일자리 정책을 내세우고 나섰다. 그러나 공공일자리를 늘린다는 정책의 면면은 그 대부분이 공무원 일자리를 보충하는 쪽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 성과야 어떤 형식으로든 드러나겠지만 최근 늘어나는 공공주차장의 기계식 계산기를 보면서 공공기관의 일자리 만들기가 혹 형식적 치레에 매어 있지는 않은지 궁금해진다. 주차장은 단적인 예지만 편리함과 경제성만을 내세워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없어지는 일자리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별도의 예산을 쏟아 공공 일자리를 만들기에 나선 공공기관의 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모순이 따로 없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0.27 23:02

휴대전화와 학생인권

10·26사태 이후 신군부가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 1980년 초 잠시 민주화의 봄이 있었다. 유신시절 억압됐던 각종 문제들이 자유와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서 분출됐다. 그 중 학생들을 억압하는 강제적인 규율의 상징이자 일제 잔재로 비판을 받았던 중고교의 교복자율화가 발표됐다. 이를 바탕으로 문교부는 1981년 ‘중·고등학생 교복 및 두발제도 개선안’을 발표한 뒤 이듬해 두발 자유화를, 그 다음해 교복자율화를 전면 시행했다.하지만 사복 착용에 따른 생활지도의 어려움과 경제적 부담 및 빈부격차 등의 문제가 나오면서 시행 3년만에 교복이 재등장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대부분 학교에서 교복을 선택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지금도 학생 복장과 용모 관리에 관해서는 일부 논쟁이 따른다. 과거 생활지도와 경제적인 문제와는 다른 학생인권 측면에서다. 그러나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교복과 두발로 인권을 이야기는 경우는 실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 문제가 핫이슈다.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은 교복·두발의 경우처럼 교칙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 자율에 맡긴 것이다. 그러나 전북학생인권조례에서는 학생의 휴대전화기 소지 자체를 금해서는 안 되며,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서만 휴대전화기 사용을 금하도록 했다. 학생의 사생활 자유 차원에서다. 실제 전북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들어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일이 없도록 각급 학교에 단단히 주의를 줬다. 이에 따라 대부분 학교들이 사실상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하소연이다. 교과시간에 집중력 분산은 물론, 점심시간 등 쉬는 시간에 운동장으로 나오는 학생들이 거의 없을 정도란다. 정규 교과와 운동보다 더 재미있는 스마트폰이 손에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청소년들이 더 취약하다는 점은 여러 조사에서 나타난다. 한국정보과학원이 최근 발표한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위험 의존군은 30.6%인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학교의 규제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또 스마트폰을 활용한 다양한 소통과 정보 획득 등의 긍정적 역할을 무시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학교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자녀가 스마트폰과 일정 거리를 두길 바라는 게 대부분 학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스마트폰 소지는 학생인권 측면의 여타 소지품 압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스마트폰 허용에 대한 학교와 학부모들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현 단계에서 섣불리 교육청에서 간여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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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7.10.26 23:02

격제구로(格制俱老)

지난 21일 개막한 제11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소리문화의전당에서 다음달 19일까지 계속된다. 한중일, 러시아 등 17개국에서 참여한 183명의 작품이 진한 묵향을 뿜어내는 서론서예전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서(書)의 역(力), 기(氣), 도(道), 예(藝)를 구현한 자유로운 창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주최측은 서예의 본질적 예술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 서예가의 다양한 경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한다. 명사서예전과 생활서예전 전시에는 122명의 국내외 일반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고 서예 사랑을 뽐낸다. 이 밖에 전각과 서각의 어울림전 등 다양한 서예 관련 행사가 진행되면서 전주의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올해 서예비엔날레 주제는 순수와 응용이다. 이런 주제의식에 조금 더 어울리는 대표작품으로 전진원 작가의 서론서예전 출품작 우세남 필수론 구(虞世南 筆隨論 句)가 선정됐다. 중국 당나라 초기 해서(楷書)의 대가인 우세남(虞世南)이 쓴 <필수론(筆隨論)>의 한 구절을 쓴 것이다. 해서체가 아닌 초서체로 쓰여진 작품에 담긴 구는 字雖有質(자수유질), 跡本無爲(적본무위), 稟陰陽而動靜(품음양이동정), 體萬物以成形(체만물이성형), 達性通變(달성통변), 其常不主(기상부주). 故知書道玄妙(고지서도현묘), 必資神過(필자신과), 不可以力求也(불가이력구야). 서예란 음양의 원리로부터 율동을 파악하고 자연만물의 변화로부터 형상을 얻어야 하는 것으로, 글자의 모양을 그리는 데에 힘을 기울여서는 서예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는 의미다.이처럼 해서로 쓰여지면 좋을 듯한 작품이 초서체로 쓰여진 것처럼 이번 서론 서예전 출품작은 초서체가 많다. 그야말로 일필휘지한 초서가 주류다.그런 가운데 홍일점 해서 작품 한 점이 눈길을 끈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원 원장의 격제구로(格制俱老)다. 이 말의 원전은 중국 북송 유도순(劉道醇)이 쓴 성조명화평(聖朝名畵評)이다. 그가 내세운 그림을 이해하는 비결은 육요인데, 기운겸력(氣韻兼力), 격제구로(格制俱老), 변이합리(變異合理), 채회유택(彩繪有澤), 거래자연(去來自然), 사학사단(師學舍短)이다. 격제구로는 격식과 품격, 체제, 절제가 완숙해야 함을 이른다. 해서는 전서, 예서, 행서, 초서 등 한자 서체 중에서 가장 바탕이라고 한다. 해(楷)는 본보기를 뜻한다. 격제구로를 해서체로 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만 하다. 순수한 격식과 품격, 체제가 잘 갖춰졌을 때 자연스럽게 응용이 나올 것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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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10.25 23:02

명성 김철호와 권혁빈

내로라하는 국내 재벌의 고향은 실향민이 많기는 하지만, 공교롭게도 경남 의령, 진주 일대에 집중돼 있다.예를들면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이곳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LG그룹과 GS그룹의 고향으로 불리는 곳이다.LG그룹과 GS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주와 고 허만정 창업주, 두 사람의 동업으로 시작한 락희화학공업을 모태로 하고 있다.경남 의령군과 함안군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남강에는 솥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인근 마을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창업주가 3명이나 나왔다.솥바위 북쪽에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남쪽에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동남쪽에는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고향이 있다. 부근에는 이종환 삼영그룹 회장과 허만정 GS그룹회장의 생가도 있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기이하다.2017 재계순위 집계결과 도내업체로는 하림그룹(29위)이 유일하게 50위권에 들어갈 뿐 전북은 재벌과는 거리가 멀다.오죽하면 한 전직 국회의원은 도내 의원중 30대 기업 오너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단언했을까.그런데 최근 도민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식 2가지가 들려온다.하나는 임실 출신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이다.일반인에게 콘도의 개념조차 없던 80년대초 국내 레저산업의 기초를 닦은이가 바로 그다. 하지만 모난돌이 정맞는다고 1983년 계열사가 21개까지 불어나자 통일교 지원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정권에서 국세청을 동원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서슬퍼런 5공초기 그는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고, 결국 탈세, 업무상 횡령혐의 등으로 구속되면서 꿈이 사라졌다. 그가 구속되자 명성은 곧바로 공중분해 됐고, 명성콘도는 한화그룹에 넘어갔다.전북 출신 재벌신화가 사라지고 한세대가 지난 요즘 희망섞인 소식 하나가 있다.한국 부자순위 4위에 전주 출신 권혁빈(45)이 오른 것이다.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17년 한국의 50대 부자 순위를 집계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약 18조9,970억원의 재산을 보유, 1위로 나타났다. 2위는 7조5,760억원을 보유한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서경배 회장, 3위는 7조100억원을 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4위는 스마일게이트홀딩스의 권혁빈 회장이 올랐는데, 그의 재산은 약 61억달러(6조8,970억원)다.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제쳤으니 놀랄만하다.상산고,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또하나의 신화를 쓰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99년 포씨소프트라는 작은 IT 회사를 창업해 사업에 뛰어든 뒤 2002년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했다. 이후 온라인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중국에 수출해 대박을 터트리면서 단번에 부호 대열에 합류했다.권혁빈이 앞으로 국내에서 신흥 부호의 대명사로서, 국가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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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10.24 23:02

전북경제를 발목잡은 것들

시장 군수들이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발벗고 나서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기업들은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한 조직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더 잘 안다. 누가 오라고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라고해서 가는 것도 아니다. 이득이 될 때만 움직인다. 지금 전북은 집토끼는 집토끼대로 운영자금 판로망 인력확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토끼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3중고에 시달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북이 기업하기가 좋은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출입 화물 취급도 평택과 광양항으로 다 빼앗겨 가고 있다는 것. 군산항은 갈수록 물동량이 줄어 불꺼진 항구나 다름 없다. 여기에다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죽을 맛이다.설상가상으로 한국GM 군산공장의 철수설이 가장 먼저 대두되는 바람에 군산경제가 높은 파고에 휩싸였다. 급기야 철수설을 잠재우기 위해 GM공장이 있는 부평과 창원시와 연대해서 범국민 GM차 사주기운동을 벌이지만 그 효과는 의문이다. 특히 신차 올뉴 크루즈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의 가동률이 고작 20%에 그쳐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익산의 넥솔론도 문닫아 500명이 실직했다. 완주 용진에서 천연암반수로 맥주시장의 판도를 뒤바꿨던 하이트맥주도 매각될 처지에 놓였고 휴비스도 법인 통합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 가동중인 기업들도 매출 부진으로 힘들게 운영한다.자동차 공장의 경우 부품을 조립해서 완성차를 생산하기 때문에 노조 파워가 원천적으로 셀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파업을 밥 먹듯이 하면서 협력업체들만 힘들게 하고 자신들은 귀족노조로 군림, 챙길 것은 다 챙겨가기 때문에 고임금 구조로 국제경쟁력이 약화돼 가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노조 때문에 정상적으로 운영하기가 힘들다”면서 “이제 우리노조도 환골탈태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부 공무원들의 갑질 횡포도 기업운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은 꼬박꼬박 월급이 제때 나오기 때문에 기업현장의 애로를 잘 모르고 피상적으로 안다면서 제발 발목 좀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지금 전북은 불땐 가마솥에 들어 있는 미꾸라지와 같이 절박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람과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 도내 관광지에 추석 연휴 때 14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 멀었다. 숙박관광객이 넘치지 않아 온기가 전주시 전체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단체장을 비롯 입지자들이 사생결단식으로 경쟁하지만 그 누구 하나 전북경제를 아우를 수 있는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도 똑같다. 군산조선소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 했지만 결과는 너무 참담했다. 도대체 정치인들은 뭣 하는 사람들인가 반문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선거 때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다 따다 줄 것처럼 교언영색해서 말하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공언(空言)이나 허언(虛言)으로 그치고 만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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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7.10.23 23:02

바스티유 감옥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무장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앙시앵 레짐(절대왕정)의 억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폭거의 시작이었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곳에 보관된 무기와 탄약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바스티유 감옥은 애초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의 왕 샤를 5세(1364~1380)가 파리 동부 외곽과 오뗄상폴 궁전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요새다. 바스티유란 이름도 작은 요새라는 뜻을 가진 바스티드(bastide)에서 비롯됐다. 높이 30미터에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조성한 24미터의 인공연못이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바스티유를 감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루이 13세 때다. 바스티유는 많은 사람을 구금하지는 않았지만 정치범을 투옥시켜 절대왕정의 폭압과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볼테르나 드니 디드로 등과 같은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이곳에 투옥됐다.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스티유 감옥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옥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라고 알려진 이곳이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사용하던 가구를 들여놓거나 요리사를 고용해 즐겼으며 심지어는 시종을 따로 두고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죄를 짓고 피신처로 활용하는 예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도 수감자에 따라 온갖 특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부패가 횡행했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바스티유 감옥은 알려진 대로 전제군주의 억압을 당하는 정치범만을 수용하는 곳이 아니었던 셈인데 실제로 파리 시민들이 궐기하여 바스티유를 습격했을 때도 이곳에는 경제사범과 정신이상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분노가 더 뜨거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는 발판이 됐다.교도소의 특혜 논란을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감 환경에 인권침해 논란이 부상했다. CNN이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세계 각국 고위급 인사의 법적 외교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MH그룹의 박 전 대통령 인권침해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면서다.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 불을 켜놓아 잠을 제대로 못자에게 하고, 만성질환과 영양 부족의 고통조차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법무부의 반박이 이어졌다. 6인실을 개조한 3평짜리 방에 평균 20도를 유지하고, 움직임만 볼 수 있는 낮은 조도에 충분한 진료와 식단 제공이 이뤄지고 있는 환경. 이쯤 되면 특혜와 인권침해, 그 경계와 기준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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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7.10.20 23:02

조선왕조 500년

조선왕조는 1392년 이성계와 정도전 등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웠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패망할 때까지 518년간 이어진 제국이다. 한 왕조가 500년 이상 이어진 경우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고 한다. 500여년간 이어 통치를 한 왕조 위패가 모셔진 종묘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2001년에는 종묘제례와 제례악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조선왕조는 전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전주이씨다. 고려말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남원 운봉에서 섬멸(1380년 황산대첩)한 뒤 전주 오목대에서 승전 잔치를 했다. 조선 건국 후에는 태종이 1410년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는 경기전을 창건(1614년 중건)했다. 건지산에는 전주이씨 시조묘인 조경단이 소재한다. 조선은 국가적 위기 때 왕과 분리된 세자 중심의 임시왕조(분조조정을 둘로 나눔)를 운영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광해군 분조와 1627년 정묘호란 때 소현분조가 전주에서 운영됐다.오늘날 전주한옥마을이 1000만 관광객 시대를 연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된 중심에 조선왕조가 있는 것이다.조선은 장수한 왕조로서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해 이룬 업적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핏빛으로 얼룩진 제국이었다. 역성혁명 과정에서 고려 충신 정몽주 등이 참살됐고, 형제와 종친은 물론 척신들도 권력 싸움에서 무수히 희생됐다. 연산군의 폭정으로 일어난 중종반정, 광해군의 폭정과 권력 암투로 일어난 인조반정 등 두 번의 반정과 무오사화 등 네 번에 걸친 사화로 충신과 선비들이 살해되거나 유배됐다. 태조가 명나라를 등에 업고 건국한 조선은 대명 사대주의에 집착, 세계 정세를 파악하지 못한 채 외교적 실패를 저질렀다. 광해군을 쫓아냈지만 감정적이고 무능했던 인조는 결국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 굴욕을 치러야 했고, 선조는 일본의 침략 낌새를 느끼고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해 정세를 파악했지만, 정작 통신정사 황윤길의 의견을 무시하고 통신부사 김성일의 말만 믿어 화를 키웠다. 왕권이 무너져 60년 세도정치로 피폐해졌고, 세도가를 척결하며 구국의지를 보였던 대원군은 며느리 명성황후의 권력쟁탈전을 벌였다. 눈 앞의 권력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조선의 몰락을 재촉했다. 500년 조선왕조는 왕과 권신들의 권력 독점과 남용, 붕당세력간 다툼으로 결국 망국의 한을 남겼다. 요즘 정치는 어떠한가.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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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10.19 23:02

부영의 소탐대실

(주)부영주택이 국감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부영이 박근혜 정부 시절 각종 지원을 독차지했고, 저리 주택도시기금을 융자받아 과도하게 높은 임대료 인상으로 폭리를 취했으며,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부영으로선 그간 서민 임대아파트 사업과 교육·아동복지 분야 등에서 여러 선행으로 쌓았던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악재를 만난 셈이다. 부영이 이렇게 전국적인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데는 전주시의 공(?)이 컸다. 전주시가 부영이 하가지구에 지은 임대아파트 임대료를 부당하게 인상했다고 지난 6월 형사고발했다. 임대료 인상률을 문제삼아 지자체가 건설업체를 형사고발한 것은 처음이어서 의아해 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서민의 편에서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의지를 평가할 수 있지만, 업체와 입주자간 민간의 문제에 자치단체가 개입하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주시의 고발은 전국 22개 자치단체의 부영 임대료 인사에 대한 공동 대응 연대회의로 이어지며 사태를 키웠다.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전주만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30여년간 임대사업을 해온 부영의 임대료 문제가 왜 이 시점에 전주에서 굵게 불거졌을까. 2015년부터 2년간 계속 연 5% 임대료를 올린 곳이 문제의 하가지구 뿐일까. 부영은 임대주택법에 따라 규정대로 준수했으며, 전주시의 조치에 대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부영은 전북의 연고기업이 아니지만, 전북과는 이리저리 애증이 얽혀 있다. 아파트만으로 전북에 이름을 알렸던 부영은 2011년 무주리조트의 주인이 되면서 전북으로 가깝게 들어왔다. 그러나 부영덕유산리조트라는 이름을 쓰면서 지역민들의 반발을 산 후 현재의 무주덕유산리조트로 바꿨다. 이듬해에는 전북 연고의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에 나서 전북과 깊이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도 수원을 연고로 한 KT가 선정되면서 부영의 전북시대는 열리지 못했다. 예수병원과 컨소시엄을 이뤄 서남대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으나 역시 중도에 그만뒀다. 프로야구 창단에 나섰을 당시 전북지역 야구부를 운영하는 부영은 아마야구 발전기금으로 10년 동안 100억 원을 내놓겠다고 약속하면서 전주고와 군산상고에 1억원의 후원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이후 더 이상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북 관련 사업 하나라도 제대로 챙겼다면 전주발 부영문제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역친화적 기업을 찾기가 이리 어려운가. 기업도 진정성이 중요하다. 소탐대실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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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7.10.18 23:02

민선시대의 파격

민선 이후 중앙정부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파격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중앙집권적 사고, 오랜 관료사회의 기본틀을 깨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최정호 전 국토부 제2차관이 어제 정무부지사로 취임하면서 도내는 물론, 전국 광역자치단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한다.그도 그럴것이 행정부지사는 행안부 2급상당 국장급이 부임한 뒤 한참 지나서 1급으로 승진하는게 관례이고, 정무부지사도 공직 내부에서 발탁할 경우 기재부 등에서 2급상당 국장급이 갔기 때문이다. 타 시·도의 경우 국회의원을 지낸 뒤 정무부지사로 재직한 경우도 있지만, 격을 중시하는 공직사회에서 차관을 지낸 사람이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고향발전에 힘쓰겠다고 나섰으니 눈길을 끌만도 하다.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거석 전 전북대총장, 유광찬 전 전주교대총장 등도 교육감 출마 채비를 서두르는 분위기다.대학총장을 역임한 사람이 교육감 선거에 나서는게 명분상 옹색해 보일 수 있으나 도내 교육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때 실리 측면에서 도전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한다.민선시대에 볼 수 있는 현상이다.집권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최고위원까지 지냈던 4선의 정균환 전 의원에게 언젠가 굳이 도백에 나선 이유를 묻자 “작은 집단일망정 단체장을 해야 내 뜻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적이 있다. 그 말을 들어보면 200만 도민의 대표라고 하는 도의회 의장들이 그동안 시장, 군수직을 향해 의장직을 쉽게 버린것도 이해된다.사실 도민의 대의기관 수장인 도의장과 시장, 군수는 명예나 정치적 중량감 측면에서 비교할 수 조차 없으나, 역대 도의장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이나 군수직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명분보다는 실리를 쫓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역대 도의회 의장중 김철규, 이강국, 김진억, 허영근, 김병곤, 김희수 전 의장이 시장이나 군수 선거에 나섰다.타 시·도의 경우 중량감 있는 도의장을 지낸뒤 도지사나 국회의원 등에 나서기도 했으나 전북에서는 잘해야 시장, 군수에 도전하는 정도였다.김성주, 김광수, 김윤덕 등의 사례에서 보듯 수년전부터 국회의원직에 도전하는 도의원들이 하나둘 뜻을 이루고 있는 것 또한 민선시대에 볼 수 있는 하나의 파격이다.도의원들이 자신의 몸값을 불리기위해 일단 단체장에 도전장을 내는 현상이 만연한 가운데 과연 내년 지방선거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성공할지 주목된다.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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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10.17 23:02

무관심한 교육감 선거

모든 부문에서 알파고 등장으로 불안감이 더해간다. 과연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 그 누구도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책임짓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 방향설정을 놓고 고민이 많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왜곡된 교과서 편찬 문제 등을 적폐로 규정, 바로 잡겠다는 의지는 당연한 귀결이다. 당연히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져 교육정책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전북 교육을 걱정하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창의력을 신장시키는 수월성 교육은 오간데 없고 하향평준화만 심화시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기적성교육도 기본학력신장을 바탕으로 해서 이뤄지는 게 옳다. 인성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력신장은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일류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주입식 교육 위주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 쪽으로 가고 있다. 대구와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입학 때부터 대학입시에 포커스를 맞추고 치열하게 입시준비에 나선다. 학부모가 나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지역사회가 함께 응원해 간다는 사실이다. 언론도 어떻게하면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할 정도다. 일류대학에 많이 들어간 것이 나중에 지역발전의 선순환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사이 상산고를 제외하면 도내 고등학교의 일류대학 입학자수가 줄었다. 한마디로 상위권 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가장 걱정스런 문제는 도내 중·고등학교 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현재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다. SNS 발달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시간으로 여과없이 밖으로 생중계될 정도다. 학생인권만 강조하는 도교육청의 정책에 불만을 갖는 교사들이 많다. 이렇게 교권이 철저히 짓밟힌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교장 교감은 책임자로서 권한 행사를 하기는 커녕 교사와 학생들 눈치보기에 바쁘다. 자칫 의욕을 부리는 순간 목을 내놓아야 할 정도로 불신의 벽이 높다. 승진에 목매달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정년 아니면 명예퇴직 할 것인가를 궁리한다는 것. 이쯤되면 교육현장이 철저하게 망가지고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왜 전북교육이 이렇게 되었을까. 경험 없는 사람이 지나친 편향적 이념을 내세워 교육정책을 추진한 탓이 크다. 유관기관과 소통과 협력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SNS에 너무 의존한 것이 결국은 먹통을 가져왔다. 선거 때 지지했던 세력들과 끼리끼리 편가르기를 한 것도 폐단으로 지적된다. 중앙부처와 비타협적이고 강경하게 대치한 것이 재정상 엄청난 불이익을 가져왔다. 1~2대 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59%대로 저조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1도 안되는 지지를 받고 교육감이 될 정도로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저조하다 보니까 전북교육이 날로 피폐해져 간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0.16 23:02

할리우드 성추문과 침묵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제작자의 성추문이 일파만파 미국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주인공은 여배우와 여직원 수십 명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하비 웨인스타인이다. 그의 성추문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뉴욕타임즈. 이 매체는 웨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여배우와 여성 직원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으며 이들 중 적게는 8명과 합의를 통해 성추행에 대한 고소를 막았다고 보도했다. 성추문이 보도된 이후 파문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가 세운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여직원들 뿐 아니라 기네스 펠트로와 안렐리나 졸리, 애슐리 주드까지 그로부터 당한 성추행 피해를 공개하면서 30여 년 동안 숨겨져 왔던 그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성추문 충격은 할리우드에만 가해진 것이 아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이 그를 강력히 비난하고 메릴 스트립, 글렌 클로즈, 디카프리오와 콜린 퍼스 등 유명배우들이 그의 행동을 규탄하고 나섰다.하비 웨인스타인은 할리우드의 큰손으로 대표되는 영화제작자다.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감독들을 발굴해 키워냈는가 하면, 시네마천국 잉글리쉬 페이션트 굿 윌 헌팅 펄프 픽션 세익스피어 인 러브 등 세계적으로 흥행을 누린 영화들을 제작해 이름을 알렸다. 크라잉 게임 패왕별희 와호장룡도 그의 손을 거쳤다. 정치 쪽에도 손을 건네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모금활동을 주도했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큰딸 말리아를 인턴으로 채용하기도 했다.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해온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할리우드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는 신세가 된 듯하다. 자승자박, 당연한 결과다.흥미로운 상황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의 상습적인 성폭력이 공개되면서 웨인스타인과 교류해온 남자 배우와 감독들의 침묵이 입줄에 오른 것이다. 몇몇 배우와 감독들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비난행렬에 가세한 그들이 과연 와인스타인의 행각을 몰랐을까를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이 이런 상황을 알고도 침묵했다는 증거들이 공개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적지 않은 유명 영화인들이 침묵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자승자박의 결과일터다.웨인스타인 컴퍼니는 지난 8일, 설립자이자 공동회장인 하비 웨인스타인을 전격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공동 창업자인 동생 봅 웨인스타인도 그의 해임에 찬성표를 던졌고, 이사회의 남성 구성원 3분의 1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단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성추문에 연루된 정치인 기업가가 적지 않다. 우리는 누가 어떻게 책임을 졌는가.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0.13 23:02

전주 선미촌

전주시 서노송동에 가면 선미촌이라는 ‘유리의 성’이 있다. 전주시청 바로 뒤편에 자리잡은 선미촌은 성매매업소 집결지. 성매매특별법이 2004년 9월23일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13년 전 특별법 제정 후 당국이 성매매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처벌에 나섰지만 선미촌같은 유리의 성이 전국 곳곳에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유리방 형태의 전형적인 성매매집결지는 물론 술집 형태, 숙박업소 형태 등 다양하다. 성매매는 주택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최근 광주여성인권지원센터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9월 현재 광주시내 8개의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는 여성이 250명에 이른다. 성매매는 동서고금 사회적 골칫거리다.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그저 방관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었지만 사문화 된 상태였다. 사회의 양심을 찌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2000년 9월19일 군산 성매매업소 집결지인 ‘감독골목’의 한 업소에서 불이 나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했고, 불과 1년4개월만인 2002년 1월29일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집결지에서 불이 나 성매매 여성 14명이 사망했다. 개복동 업소 2층에는 1평 정도의 쪽방이 7개나 있었고, 내부 통로는 60~80㎝에 불과했다. 창문과 출입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됐고 안팎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자물쇠가 설치돼 있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참변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한 여성이 선미촌에서 자살했다. 이미 인천, 대구, 광주, 부산을 거쳤다는 이 여성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아무리 일을 해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빚 때문에? 창문이 온통 검은색 시트지에 가려 한 줌 빛도 볼 수 없어서? 외출은커녕 아플 때 병원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비참해서? 최근 전주시가 선미촌 업소 3곳을 매입,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부는 현장시청이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는 이 곳에서 지난 9월21일부터 29일까지 ‘선미촌 리본 프로젝트’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고형숙, 김정경 등 모두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회를 연 센터는 염원했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선미촌에 있는 여성들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20㎝가 넘는 고단한 신발 위에서 버텨낸 시간 아래로 내려와 쉴 수 있는 것입니다. 묶여버린 삶, 묶여버린 공간의 낡은 매듭을 풀고 다시 태어나, 살아나는 것입니다” 성매매특별법 13년,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무엇인가.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0.12 23:02

하이트진로 전주공장

맥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말 개화기 때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과 함께 일본의 맥주가 일부 상류층에서 소비되기 시작했으며, 맥주 소비가 늘면서 일본의 맥주회사들이 1930년대 국내로 진출했다. 일본의 대일본맥주(주)에서 조선맥주를, 기린맥주(주)에서 소화기린맥주(주)를 설립했다. 이들 두 회사가 바로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 동양맥주(현 오비맥주)의 전신이다. 두 회사는 줄곧 국내 맥주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국내 맥주 역사를 이리 장황하게 들여다본 것은 전북이 두 맥주 회사간 경쟁의 한복판에 섰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맥주시장의 판도를 바꾼 조선맥주의 ‘하이트’브랜드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완주 봉동의 전주공장이었다. 조선맥주는 ‘하이트’브랜드를 내세워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쳤다. ‘암반천연수는 지구가 만든 물’ ‘100% 암반천연수로 만든 맥주는 하이트뿐입니다’ 맥주를 끓여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수돗물맥주를 그냥 드시겠습니까’는 도발적인 광고를 통해 경쟁 라이벌과 차별화를 꾀했다. 조선맥주는 이를 기반으로 시장 점유율 만년 2위에서 1위로 끌어올리며 국내 맥주시장 단일 브랜드로 10여년간 독보적인 자리를 지켰다. 1998년 회사 이름까지 하이트맥주(주)로 변경했다.그러나 오늘날 맥주시장의 판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국내 맥주시장의 양강 구도는 롯데주류의 참여에 이어 수입맥주의 시장 점유율이 30%대까지 육박하면서 옛말이 됐다. 수입 맥주도 미국 일변도에서 유럽과 일본, 중국 등의 대형 맥주회사들까지 가세하며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2000년대 초 소규모 맥주 면허가 허용되면서 하우스 맥주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소규모 맥주 관련 법 개정으로 외부 유통이 허용됨에 따라 하우스 맥주 또한 기존 맥주업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이런 대내외적 위협 속에 하이트진로(주)가 적자 누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전주·홍천·마산공장 3곳 중 1곳을 매각하기로 공시했다고 한다. 그 중 전주공장이 유력하단다. 전주공장에 힘입어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던 하이트진로가 위기 극복의 돌파구로 전주공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물론 사주는 바뀌더라도 공장은 남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트 브랜드를 탄생시켰던 전북과 애환을 같이 했던 하이트가 다른 이름의 브랜드로 다가선다는 게 낯설다. ‘기왕이면 하이트’라고 외쳤던 지역민들의 ‘하이트 사랑’도 속절없는 모양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10.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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