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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체장

1995년 민선단체장 첫 동시선거가 치러진뒤 시장, 군수들은 앞다퉈 자기 고향 사람을 부단체장으로 데려갔다.고향사람은 누구보다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애향심 또한 많아 행정을 펼쳐나가는데 훨씬 적합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 출신을 부단체장으로 쓰는 관행에 큰 변화가 생겼다. 부단체장 인사때 고향 출신 공직자를 배제하게된 결정적 계기는 1998년 순창에서 발생했다. 임득춘 당시 순창군수를 보좌하던 조기갑 부군수가 선거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군수 선거에 도전장을 던져 민주당 공천까지 받아냈다. 우여곡절끝에 임득춘 군수가 이를 뒤집고 다시 공천을 받아 당선되긴 했으나 공직사회에는 큰 충격이었다.이를 계기로 해당 지역 출신 공직자는 배제하는 관행이 전 시군에 걸쳐 확산됐다.평소 품성이나 소양으로 볼때 절대 선거에는 나서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고향에 부단체장으로 근무하면서 뜻하지 않게 단체장에 나선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심민 임실군수의 경우도 그를 잘 알던 주위사람들은 “만일 선거에 나서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고 장담했지만, 그는 고향 임실에서 부군수를 하면서 민심얻는 법을 터득, 결국 도전장을 던진다.힘든 시기를 겪기는 했지만 그는 결국 오늘날 행정능력을 평가받는 단체장 반열에 올라있다.경험을 통해 “잘못하면 호랑이 새끼를 키운다”는 경계심을 갖게된 단체장들은 철저하게 고향 출신을 배제했고 특히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경우는 더욱 경계했다.지사 비서를 오래 지낸 유일수씨의 경우 순창, 임실, 완주, 정읍 등지에서 부단체장을 4번이나 거쳤는데 이는 그가 단체장 의중에 무조건 순종하는 스타일인데다 정치적 야심이 전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비단 시군 부단체장뿐 아니라 정무·행정부지사 등 광역단체 부단체장을 지낸 사람들 역시 뜻밖에 선거에 나서는 일은 허다하다.각종 행사나 인사, 공사를 접하면서 정치적 야심이 생겼기 때문이다.그런데 부단체장을 하다가 섬기던 단체장이 선거법 등으로 낙마한 경우 ‘시장·군수 권한대행’을 맡게되는데 이때 잡음이 나기 십상이다.본인이 단체장인 것으로 착각해 후임자에게 넘겨야 할 중요한 결정을 직접 해버리기 때문이다. 박경철 전 익산시장이 중도하차한 뒤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 당선된 정헌율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한웅재 부시장을 전광석화처럼 교체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건식 시장이 낙마하면서 시장 권한대행을 맡게된 이후천 부시장의 어깨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12.05 23:02

가까워진 청와대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가 가까워졌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 시절만해도 청와대는 마치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 이유는 MB나 박근혜가 전북 인재를 청와대나 정부요직에 기용하지 않은 탓이 제일 컸다. 무장관 무차관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인재등용에서 배제됐고 국가예산도 불합리하게 배분돼 지역개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두 정권 9년동안 새만금사업을 추진한 것을 보면 얼마나 시늉만 내고 끝났는지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겨우 한 것은 MB때 주로 농지개발 위주로 돼 있던 토지이용계획을 7대3으로 바꿔, 산업 관광 레저단지로 70%를 조성키로 했던 것 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때는 정권적 이해관계가 없어 우는 아이 젖준다는 식으로 찔끔찔끔 언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예산을 배정했다. 사실 전북에서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권력실세였던 최순실을 겨우 촛불혁명 때나 알 정도였다. 그 만큼 누가 키를 갖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임실 출신 김관진씨가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한광옥씨가 비서실장으로 있었지만 전북에는 도움이 안됐다. 그러다 보니까 보수정권 9년동안 전북은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었다. 지사나 국회의원이나 시장 군수들이 국가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해도 별로로 여겼다.전북인한테는 DJ정권때가 청와대와 제일 가까웠다. DJ가 정권을 잡아 한을 풀 수가 있었다. 청와대에 전북 출신들이 많이 기용돼 웬만한 민원도 전화 한통화로 끝난적이 있었다. 각 부처에도 전북 출신 인재들이 고루게 박혀 지사나 시장군수들이 일하기가 쉬웠다. 김원기 국회의장 때는 현 유성엽국회의원이 정읍시장이었는데 예산이 필요한 정읍시 현안사업을 김 의장이 해당 장관을 의장실로 불러 해결해줄 정도였다. 김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인 관계로 봄날에 눈녹듯 모든 게 잘 풀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당 정 청에 전북인재들이 배치돼 전북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지금은 어떤가. 지난 장미대선 때 64.8%라는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탓인지 문재인 대통령이 각 부문에서 전북을 챙겨주고 있다. 정읍 신태인과 전주여고 출신인 김현미 전국회예결위원장을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을 비롯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비서관에 윤영찬씨를 그리고 정무비서관이었던 한병도 전 국회의원을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승진 발탁했다. 차관급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정권에 비해 많이 발탁해 장관 대기자 수를 늘려줬다.상승기류를 탄 전북이 물실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절대 필요하다. 먼저 안되고 힘들고 어렵다는 부정심리를 추방해야 한다. 이 모든 부정심리를 한방에 훅 날려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지방선거 때다. 역량이 부족한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새피로 과감하게 교체해서 지역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장미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으로 정권교체를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2.04 23:02

사형제도

‘살인을 한 자는 그를 죽인다.’ 사형제를 담은 최초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 제 1조다. 우르남무 법전은 인류 최초의 법전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 앞서 만들어졌으니 이후 만들어진 함무라비를 비롯, 다른 국가의 법을 만드는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우르남무 법전은 인류 최초의 국가가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를 평정한 우르제국의 왕 우르 남무가 만들었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우르제국의 수메르 문명은 전성기를 맞았다. 자나 저울 같은 도량형이 통일되고 경제 질서가 바로 잡혔으며, 학교가 만들어지고 예술이 번성했다. 백과사전이 편찬된 것도 이 때였다. 우르남무 법전은 이 시기 문화적 융성의 결정체인 셈이다. 우르남무 법전을 계승한 것이 수메르 문명의 뒤를 이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인데, 그래서인지 법전의 체계는 물론이고 적지 않은 내용이 유사하다. 함무라비 역시 법전을 여는 제 1조의 내용은 ‘살인을 한 자는 그를 죽인다’다. 사실 사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형벌 중 가장 무거운 형벌이면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국가로부터 중세와 근세 초기까지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많이 행해졌던 형벌은 단연 사형이었고 시대가 혼란해질수록 그 집행 방법 또한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형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일부 국가들이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시작하자 여러 국가들이 뒤를 이어 지금은 사형 제도를 폐지한 나라가 훨씬 많다. 1991년, 유엔도 ‘사형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적 규약 제2차 선택 의정서’를 발효시켰는데 그 주된 내용은 사형제를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42개국(사형제도는 존재하지만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된 국가 32개국 포함), 사형 제도를 존치해 사형을 집행하고 있는 나라는 59개국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엠네스티의 분류에 따르자면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다.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한 이후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법정에서 또 소란을 벌였다. ‘못 참겠으니 죽여 달라. 빨리 사형을 시키든지 하라’며 그가 오열한 이유는 ‘억울하고 분해서(?)’란다. 사형은 형벌 중에서 가장 무거운 벌이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죽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형벌이 있는 모양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2.01 23:02

지단관월(指端觀月)

단원 김홍도의 작품 ‘지단관월(指端觀月)’은 신비스러움 가득한 야경이다. 가까이에 큰 산이 있고 멀리 관음보살과 동자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이 있다. 관음 뒤에서 둥근 보름달이 세상을 밝게 비춘다. 불교색채가 뚜렷한 김홍도의 걸작 중 하나다. 지단관월은 ‘원각경’ 청정혜보살편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한다. 경전의 가르침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으로, 손가락을 매개로 가리키는 달을 보면 손가락 자체는 궁극적으로 달이 아닌 가르침의 수단일 뿐이다. 원효대사는 그런 깨달음 끝에 승복보다는 민초들 곁을 택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다. 종교는 그 중 가장 뛰어난 가르침을 일컫는다. 유교든, 불교든, 원불교든, 천도교 혹은 증산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대부분의 종교가 내세우는 가르침의 근본과 지향은 악이 아닌 선이다. 다툼이 아닌 화해와 화합이다. 이기적인 것이 아닌 이타적인 행동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종교는 수천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인간계의 숱한 전쟁과 평화, 미움과 화합, 탐욕과 나눔 등 사례들이 부정이 아닌 긍적 쪽으로 체계화 된 걸작품이다. 인간사회의 반사회적 악행을 거부하고, 선을 추구한다. 잘 다듬어진 인간 행복 안내서다. 그러나 훌륭한 가르침이 있다고 인간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서 황금지도라도 찾겠다는 듯 집중하는 인간이 많다. 그 덕분에 종교는 동서고금으로 터질 듯 팽창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손가락 끝이 아닌, 달을 바라보고 웃는다면 종교며 법이 존재라도 하겠는가.지난해 9월 28일 시행에 들어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은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힌 대한민국 사회가 부정부패 천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보름달처럼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하는 국민적 염원을 담고 출발했다. 혈연·지연·학연이라는 네트워크가 돈으로 매매되고, 그 거래 관계 속에서 산해진미가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차려지고,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지는 꼴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공감대다. 한국사회학회가 김영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지난 9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참여자 89.4%가 청탁금지법 효과에 공감했다. 문제는 김영란법의 3·5·10 조항이 화훼, 축산 등 일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정부가 시행령 개정에 나섰지만 지난 28일 국민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부결됐다. 국회에 개정안이 올라와 있는 등 저간 사정이 있음에도 정부가 앞서 해결하려다 돌멩이에 걸린 것이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손질하면 뭐가 남을까 싶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30 23:02

성화 봉송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제왕 제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태양에서 불을 훔쳐 추위와 기근으로 고통을 받던 인간에게 사용토록 했다. 그 벌로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에 묶여 매일 간을 뜯기는 고통을 당했으나 인간은 문명을 얻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를 기려 고대올림픽경기가 열리는 동안 제우스와 그의 처 헤라 신전에 불을 밝혔다. 고대올림픽의 불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부활된 근대 올림픽에서 재현되지 않았으며, 32년 후인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9회 대회에서 등장했다. 성화봉송은 1936년 제11회 독일 베를린 대회에서 시작됐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성화를 채화한 뒤 3187㎞의 거리를 각국의 올림픽위원회에서 뽑은 주자들에 의해 개회식 때 성화대에 점화됐다. 성화봉송과 관련된 일화도 그 역사만큼이나 숱하게 많다. 독일 나치에 의해 고안됐다는 이유로 1956년 호주 멜버른 대회에서는 대학생들이 가짜 성화봉송 행진으로 성화봉송을 조롱했다. 1965년 멕시코대회에서는 수영선수둘이 수상 봉송을 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잠수부가 바다 속에서 성화를 봉송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LA올림픽에서는 성화에 참가비를 받는 등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당시 ㎞당 3000달러를 내고도 성화봉송에 참가하겠다는 신청자가 쇄도했다. 역대 최장거기인 13만7000㎞를 기록한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에서는 국가 홍보수단으로 이용됐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화가 어제부터 전북지역 봉송을 시작했다. 지난달 아테네 헤라 신전에서 채화식을 거쳐 인천 송도에서 출발한 성화는 제주-부산-전남을 거쳐 다음달 3일까지 5일간 전북지역 봉송이 이뤄진다. 남원을 시작으로 임실-무주-전주-익산-군산 등 277㎞ 구간을 순회하며 평창 올림픽의 분위를 띠우고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 성화를 맞이하는 전북의 감회는 남다르다. 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평창과 경쟁 끝에 탈락한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 후보지였던 무주 지역민들이 내일 어떻게 성화를 맞이할 지 궁금하다. 무주 성화봉송은 태권도원 중심으로 진행된다.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지며, 동계올림픽 경쟁 무대였던 덕유산 리조트는 빠졌다. 무주 태권도원에서 모노레일 봉송 이벤트가 준비됐다고 하지만, 동계스포츠와 직접 맞닿은 덕유산 리조트에서 스키봉송 이벤트가 이뤄졌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평창과 무주의 진정한 화해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올림픽 정신은 지엽적일 수 없다. 무주의 꿈이 평창에서 활짝 펼쳐지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11.29 23:02

슈워드의 냉장고

영어 숙어 중에 Seward’s Folly 라는게 있다. 직역하면 ’슈워드의 어리석음 ‘ 정도로 해석되는데 실제 의미는 ‘상당히 잘 한 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Seward ‘s Folly는 미 국무장관 슈워드의 이름을 딴 것으로 당대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나 훗날 거시적 안목으로 재평가된다는 의미를 지닌 관용어다.슈워드는 크림전쟁으로 재정이 어려운 러시아 짜르에게서 오늘날의 알래스카를 사들였는데 이게 문제였다. 1867년 160만㎢ 규모의 알래스카 땅을 미화 720만 달러(현재가치 16억 70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는데 일부 국민이나 의회에서는 반대여론이 거셌다.오죽하면 알래스카는 슈워드의 냉장고란 비판까지 들었을까.결국 슈워드는 사임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을 마감했지만 각종 자원은 물론, 유형 무형의 알래스카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석유는 물론, 철, 금과 구리, 목재나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 미국의 역사를 바꾼 현명한 선택이었다. 훗날 미국 의회는 “의회에서 있었던 당신의 사과를 돌려드립니다. 알래스카는 얼음 창고가 아니라 보물 창고였습니다.”라고 발표한다.국내에서도 포항제철이나 경부고속도로 등이 당시엔 큰 비판에 직면했으나 훗날 역사는 다르게 평가하는 사례로 꼽힌다.김제 출신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이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성사시킨 백양로 프로젝트(지하캠퍼스 건립) 또한 요즘 신의한수 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사회에서도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들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20년전 건립당시 1000억원 넘는 돈이 들어가는 등 지역 재정상황이나 민도 등을 고려할때 과하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꽤 괜찮은 결정으로 평가받는다.무주태권도원 역시 경주나 진천 등지에 비해 태권도 이미지가 빈약한 무주가 일약 전세계적인 태권도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던것만은 분명하다.LH 본사를 경남 진주에 빼앗기고 대신 얻어온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는 앞으로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따라 ‘오히려 잘된 일’로 평가받을 수도 있다.전북대학교가 요즘 한창 ‘슈워드의 냉장고’논란에 휩싸여 있다. 전북대는 한옥 캠퍼스를 위해 6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확보, 전통 한옥에 현대 건축 양식을 가미한 국제컨벤션센터, 법학전문대학원 등을 새로 지을 예정이다.그중 70억 원을 들여 강의실을 겸한 한옥 정문을 신축할 계획인데 일각에서 “장학금을 더 주고, 낡은 강의실을 개선하는게 급하지 수십억 원을 들여 한옥 정문을 짓는게 그렇게 시급한가”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에대해 이남호 전북대총장은 “슈워드의 냉장고라며 빈정댔지만 얼마안가 알래스카의 가치가 어떻게 판명됐느냐”며 한옥 정문은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내년 총장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쟁점화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전북대 한옥 정문 프로젝트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11.28 23:02

현직은 떼논 당상?

현직 단체장은 특별한 잘못이 없으면 재선은 떼논 당상이다. 한번 되는 게 힘들지 한번 하고 나면 두 세번 하기는 쉽다. 일과가 선거운동이나 다름 없고 자기 돈 안들이고 얼마든지 술 밥 먹어가며 유권자를 접촉,지지세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어 주민들이 요구하는 간단한 숙원사업 정도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다. 시·군으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는 각종 관변단체들도 단체장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관변단체들은 예산을 지원 받는 관계로 선거 때 알게 모르게 단체장을 도와준다.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의회도 겉으로는 대립관계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한 통속으로 지낸 경우가 많다. 단체장과 의원들이 같은 당 소속일때는 공생관계가 쉽게 형성된다. 설령 당이 다르더라도 단체장이 보이지 않게 정치력을 발휘하면 갈등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원만하게 잘 지낸다. 의원들이 집행부를 향해 갑질 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만 거꾸로 단체장 한테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지역구 민원을 해결하려면 단체장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소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려면 단체장 한테 예산을 편성해 달라고 요구할 수 밖에 없다. 표로 된 선출직들이라서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라서 알게 모르게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현직들은 임기동안 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가 쉬워 선거하기가 유리하다.여기다가 공무원들도 현직 단체장한테 줄설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현직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시장 군수가 인사권을 갖고 있어 공무원 해 먹으려면 알게 모르게 줄 서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시장 군수 눈 밖에 났다가는 12년간 승진은커녕 한직으로 내몰려 퇴직해야 하는 경우까지 나오기 때문에 바보가 아닌 이상 현직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한다. 공무원들은 거의가 승진에 목매 단다. 승진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기 때문에 현직 단체장 한테 잘 보여 승진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현직들은 공무원들이 자신을 떠 받들어 주는 그 맛에 취해 재 삼선 할려고 기를 쓴다.인구 3만도 안되는 농촌군은 공무원이 5~600명 정도로 많다 보니까 이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현직단체장을 직간접으로 도울 수 있다. 이들 지역 유권자들은 노인들이 많아 공무원이 대민 접촉과정에서 현직군수를 은근히 홍보하면 그 쪽으로 표심이 쏠리게 돼 있다. 암암리에 공무원들이 업무를 통해 현직 군수를 지원할 수 있어 라이벌 보다 훨씬 유리하다. 일각에서는 ‘무능한 단체장이 3선까지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재선까지로 임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무리 선관위나 공무원 노조 등에서 공무원들한테 정치적 중립의무이행을 요구하지만 그건 현실성이 없다. 실제로는 일부 공무원들이 지나치게 현직 단체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선거운동원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렴의식을 강조한 다산이 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탓할까.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1.27 23:02

오래된 가게와 포장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지만 유럽이나 일본에는 문을 연지 100년이 넘는 오래된 가게가 적지 않다. 한 자료를 보니 일본에는 노포(老鋪)라고 불리는 100년 넘는 가게가 2만 7천 300개나 된다. 사실 100년 동안 대를 물려온 가게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브랜드가 된다. 도쿄에 있는 ‘긴자’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다. 1872년 대화재로 잿더미가 된 이 거리를 일본 정부는 일본 최초의 근대화 거리로 재건했다. 도쿄의 첫 백화점이 들어선 곳이기도 한 긴자는 내로라하는 백화점과 세계적인 유명브랜드 샵들이 몰려있어 가장 화려하고 비싼 거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긴자에 화려한 가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골목길이 아니더라도 호화스러운 건물 사이에 오래된 가게들이 건재하다. 화방 ‘게코소’도 그 중 하나다. 1917년 문을 연 게코소는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10평이나 될까 말까 한 이 작은 가게는 낡고 고색창연한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가게 안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100년 세월이 그대로 묻어난다. 세계 최초로 코발트블루 컬러를 만드는 기술을 발명해냈다는 이 가게는 이미 건축가나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곳인데, 물감 뿐 아니라 스케치북과 지우개 붓 등 스물여섯가지 고유한 형식과 재질의 문구류를 만들어 특허를 딴 곳이기도 하다. 여행길에 이곳을 들렀다. 비좁은 공간에 놓인 아름다운 색깔의 물감과 화구, 온갖 문구류가 마음을 끌었다. 물감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구류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다 쓸 때까지 말라붙지 않는다는 지우개며 심플한 디자인에 굵기가 다양한 연필을 샀다. 계산을 하고 포장을 부탁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주인아저씨가 몇 장의 종이를 찾아 올려놓았다. 모두 제각각인 전단지들이었는데 구겨지거나 찢겨진 그 전단지를 손바닥으로 쫙쫙 펴서 종류별로 포장을 해주었다. 음식점 쇼핑몰 등 포장한 전단지의 내용이 다양했다. 함께 넣어준 비닐 팩 역시 재활용이었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싸주는 나라가 일본이 아니던가 싶어 잠시 의아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나중에 이 가게에서는 합리적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포장과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비자를 위한 진정성이 읽혀졌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도 그런 가게들이 있었다. 학교 앞 문방구와 동네 골목을 지키던 구멍가게들. 그런데 우리는 이 소중한 것들을 너무 빨리 쉽게 잃었다. 이 오래된 가게가 준 감동이 크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1.24 23:02

난초의 시인 가람

빼어난 가는 닢새 굳은 듯 보드랍고/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본대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미진(微塵)도 가까히 않고 우로(雨露) 받어 사느니라국어학자이자 현대 시조시풍을 정립한 인물 가람 이병기 선생의 대표작 ‘난초 4’ 전문이다. 일석 이희승은 ‘시조 하면 가람을 연상하게 되고, 가람 하면 시조가 앞서게 된다’고 했을 만큼 가람은 ‘난초의 시인’이다. 그의 제자인 고하 최승범 전 전북대교수는 “단지 스승의 애란을 두고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스승의 한생을 우러러볼 때 가람은 난이요, 난은 곧 가람이다”고 말했다. 1968년 고향집 수우재(守愚齋)에서 78세를 일기로 작고한 그에게는 세가지 복이 있었다고 한다. 평생 난초를 사랑해 생긴 난초복을 비롯해 술복, 제자복이 그것이다. 그의 고향 여산 사람들은 그의 시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육군부사관학교 쪽에서 여산소재지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목, 막걸리 주조장 쪽 일반 건물 벽면에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로 시작하는 싯구를 써붙였으니 말이다. 주시경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고문헌 수집과 시조 연구에 몰두했던 가람은 창씨개명에 끝까지 응하지 않은 올곧은 지식인이었다. 그가 일제시대 때 쓴 시와 수필 어느 곳에서도 친일 문장이 발견되지 않았을 만큼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받아’ 난세를 살았다. 가람은 1930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위원, 1935년 조선어표준어 사정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년가량 옥고를 치렀다. 50여년간 매일 일기를 쓰며 ‘후회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광복 후인 1954년 백철과 ‘국문학전사’를 공저하는 등 한글과 국문학 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고문서 수집광이기도 했던 그는 인현왕후전, 가루지기타령 등 수많은 고전을 발굴해 펴냈고, 가람시조집, 가람문선, 가람일기 등 문집도 남겼다. 가람이 태어나고 임종을 맞이했던 여산면 원수리 생가는 지방기념물(1973년)로 지정돼 있다. 조선 후기에 용화산 아래 지어진 생가는 초가집이고,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 형세에 자리한다. 안채와 사랑채(수우재) 등 4채의 건물이 있다. 그 앞에 장방의 연못이 있다. 수우재와 그 기둥에 쓰인 안분신무욕(安分身無辱) 지기심자한(知幾心自閑)에는 집 주인의 삶이 엿보인다. 지난 10월14일 생가 옆에 들어선 ‘가람문학관’이 그 삶을 웅변한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23 23:02

흥부면

벨기에 수도 브뤼셀은 고대·중세의 건물과 현대적인 고층 빌딩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그러나 다른 여러 유럽 국가와 비교할 때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많은 예술품과 건축물을 잃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을 만한 차별성을 갖는 유형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시내 중심 공원인 그랑 플라스에서는 ‘나 홀로’ 사진 한 장 찍기가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사소하게 보이는 것에도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 이 나라의 관광산업화에 대한 노력의 결실이다.초라하지만 마르크스가 기거하며 공산당 선언문을 기초했던 집이라거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토론을 했다는 레스토랑, 빅토르 위고가 살았던 집을 자랑하는 게 대표적이다. 루이 15세가 궁정복을 입혔다는 ‘오줌누는 소년의 상’은 세계 각국의 민속 의상들을 입힘으로써 세계적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관광산업에 스토리텔링을 동원하는 마케팅 전략이 보편화 추세다.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유명 인사의 생가 등을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일이 더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남원시는 앞선 지역이다. 판소리 소설 ‘춘향전’을 활용해 ‘춘향의 도시’로 확고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관광객 유입에 따른 경제적 유발효과와 지역 이미지 제고를 고려할 때 ‘춘향’이 오늘의 남원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춘향효과’를 톡톡히 누린 남원은 일찌감치 ‘흥부전’에도 주목했다. 남원군이 흥부전의 근원지가 남원이라는 추론을 바탕으로 90년대 초 문학적 고증과 현장조사를 통해 해당 마을을 추정했다. 당시 학술용역에서 현재의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가 놀부·흥부의 출생지며, 남원시 아영면 성리가 흥부의 정착지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어서 두 지역은 서로 흥부마을이라며 흥부마을 이미지화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로 25회째 이어지고 있는 흥부제가 인월과 아영에서 각각 터울림제와 고유제를 치르고, 정작 본행사를 남원시내에서 갖는 것도 이 같은 경쟁 관계에서다.아영면 인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흥부면 명칭변경 추진위원회’가 최근 아영면을 흥부면으로 바꿀 경우 남원 관광객 600만명 시대와 연간 546억원대의 관광수입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용역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구체적 수치는 정확성이 떨어질지 몰라도 흥부 브랜드 효과는 분명 클 것으로 본다. 춘향이 보여주듯 흥부가 남원의 새로운 미래 관광자원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대승적 차원에서 인월면의 이해와 협력이 관건이다. 풍자와 해학, 교훈까지 가득한 설화 속 ‘흥부면’이 현실로 만들어져 각박한 세상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안 길 수 있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11.22 23:02

축객령(逐客令)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매개로 한 공동체는 자신과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보이기 마련이다.가장 극단적인 것이 히틀러 집권이후 독일 전역에서 시작된 유대인 추방령이며, 이보다 약 400 여년전 스페인은 알함브라 칙령으로 일컬어지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 바 있다.1492년 3월 31일 스페인이 내린 알함브라 칙령은 결국 스페인의 몰락을 재촉하게 된다. 편협한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광적인 열광을 이끌어내고 종교정치 지도자들은 포퓰리즘에 근거한 권력을 다질 수 있어도 결국 실패한 사례다.동양에서는 더 일찌감치 추방령이 있었다.흔히 축객령(逐客令)이라고 하는데 이는 손님이 미워서 추방하는 명령을 말하며, 좀 더 넓게는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 정책을 의미한다. 중국 진나라에는 여러 나라 출신이 모여들어 일자리를 얻고 있었는데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날 한나라 출신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의 간첩사건이 터지면서 진나라 임금 정(政진시황제)은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외국인을 해고한다고 선언했다. 소위 축객령(逐客令)이다. 이사는 묵숨을 걸고 축객령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리게 되는데 그 골자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거다. 이사는 태산은 조그만 흙 알맹이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높을 수가 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깊을 수가 있다고 강조한다. 훗날 진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는 기초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핵심은 편협한 순혈주의를 경계하면서 이종교배의 우수성을 설파한 것이다.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다. 20년전인 1997년 11월 21일, 치욕의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기 때문이다.도내 향토기업의 몰락은 무서웠다. 쌍방울 부도를 시작으로 거성건설, 기아특수강, 서호건설 등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전북경제의 주도 세력이 재편됐다. 서민 금융기관인 전일상호신용금고와 고려저축은행은 외지 업체에 넘어가거나 영업정지로 사라졌다.20년이 지났지만 전북엔 또다시 매서운 한파가 몰려오고 있다. BYC전주공장, 넥솔론, 군산조선소에서 끝나지 않고, 하이트 전주공장과 GM대우 철수설까지 나돌고 있다.오늘날 의도적으로 축객령을 내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이 산업자본에 대해 우호적이지 못하고, 외지에서 온 근로자에게 배타적일때 이는 또다른 형태의 축객령이 될 수 있다.전북에 있는 우수한 고교나 대학을 찾아온 외지인이나 외국인은 물론, 혁신도시 입주기관이나 다문화가정에 대해 도민으로 깊이 인식하는 포용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축객령이 사라졌지만 도민 스스로 신념과 종교, 나라와 피부, 학교와 고향이 다르다고 내 마음 속에서 누구를 차별하거나 추방한 적은 없는가 계속 물어야만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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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7.11.21 23:02

거꾸로 간 전주

전북이 발전하려면 전주와 새만금에서 먼저 동력을 찾아야 한다. 각 시·군을 특화해서 균형있게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청소재지인 전주를 먼저 발전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생산과 소비시장 규모가 커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는 그간 바보짓을 여러차례 했다. 유림들의 반대로 호남선 철길을 전주로 가져오지 못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용머리 고갯길을 잘라 철마를 달리게 하면 안된다는 전주 유림들의 고루한 생각들이 전주발전을 가로 막았다. 다음으로 김완주 전 지사가 익산 ktx 역사를 백구쪽으로 당겨 놓지 못한 것도 잘못됐다. ktx 익산 역사를 백구 쪽으로 내려서 건설하는 것을 익산시민들이 반대해 자칫 선거 때 표만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잘못됐다. 지금 생각하면 ktx 익산 역사를 백구쪽으로 가깝게 옮겨 놓지 않아 전주혁신도시가 불편하고 새만금과 왕궁에 건설중인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 개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전주 채수찬 국회의원만 외롭게 ktx 익산역사를 전주쪽으로 가깝게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김지사부터가 외면했다. 당시 김 지사의 영향력이 막강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거론조차 못했다. 지금와서 새만금 개발시대를 맞아 민주당 안호영 의원과 김점동 변호사가 주축이 되서 호남고속철 익산역을 전주 익산 군산 김제 완주와 접근성이 좋은 5개 시·군 접경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송하진 전 전주시장이 의지를 갖고 전주 완주 통합을 추진했으나 무산시킨 것도 전주발전을 가로막았다. 몇몇 정치인들의 잘못된 이해관계로 통합이 무산됐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재점화시켜야 한다. 충북 청주와 청원군이 통합되면서 발전해 가는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김승수 시장이 전주 관문인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속터미널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인천 대전 광주 등 대도시 터미널은 통합해서 복합환승센터로 발전해 가는데 전주는 거꾸로 가고 있다. 김 시장 임기가 다 끝나 가는데도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은 아무 진전이 없다. 뉴욕 센트럴 파크처럼 도심공원을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주종합경기장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차타고 10분만 나가면 온통 공원인데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 결국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건 한낱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전주역 앞 멀쩡한 도로를 구불길로 만들어 불편토록 한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 도로는 혈관과 같아 순환기능이 우선이다. 파리 개선문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샹제리제 거리처럼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은 좋지만 주변 교통여건을 고려치 않고 무작정 슬로시티 개념만 도입해서 만든 것은 예산낭비 밖에 안된다. 쉼터를 도입한 도시경관도 중요하지만 기능이 앞서야 한다. 상당수 시민들은 “멀쩡한 혈관을 손대 피 흐름을 방해한 것 같아 겨울철이 더 걱정된다”면서 김 시장의 근시안적 행정을 힐난했다. 단체장의 과거 경력을 살피면 그 사람의 역량을 알 수 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1.20 23:02

갯벌의 귀환

바다를 메우고 땅을 만드는 일을 우리는 간척이라고 한다. 간척이 시작되는 지점이 있다. 연안습지, 곧 갯벌이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고(썰물) 나는(밀물) 조석현상에 의해 해안에 생성되어 발달하는 갯벌은 그렇다고 모든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들고 나는 바닷물의 차가 크고 파도가 약한 곳이어야 잘 발달한다.해안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시작되는 갯벌은 다양한 생물이 공존한다. 이곳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들은 바다로 흘러들어온 온갖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뛰어난 정화 작용을 하고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산소가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 70%나 된다니 갯벌을 ‘지구의 허파’로 주목하는 근거가 충분하다.그러나 갯벌은 오랫동안 제 가치를 주목받지 못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갯벌을 없애고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기 위해 나섰으며 남아도는 땅을 가진 나라들조차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서슴없이 갯벌을 없앤 것이 그 증거다. 우리나라의 갯벌도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져 온 간척사업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국토의 2.5%밖에 되지 않는 갯벌만이 살아남아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최근 갯벌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 받으면서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갯벌을 없애고 땅으로 만들어진 간척지를 다시 갯벌로 돌리는 사업, 이른바 ‘역간척’이다. 농지의 100배, 산림의 10배 정도로 추산되는 갯벌의 가치에 눈을 돌린 덕분이겠다. 세계적인 간척의 도시들도 역간척을 활발하게 추진해 성공한 사례를 내놓고 있다. 역간척으로 10년 만에 갯벌 생태계를 살려 세계적인 생태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는 독일의 작은 섬 ‘랑어욱’도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도 역간척에 나서는 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방조제를 트고 해수를 유통시켜 되살려내는 ‘갯벌의 귀환’은 의미 있다. 고창 갯벌을 비롯, 서천 유부도 갯벌, 신안 다도해 갯벌, 보성과 순천만 갯벌을 아우르는 서남해안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대상으로 확정됐다. 서남해안 갯벌은 오래전부터 유럽의 북해연안, 아마존 강 유역, 미국 동부 해안, 캐나다 동부 해안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꼽힐만큼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이미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되어 있는 고창과 신안을 비롯, 모두 습지보호지역이거나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있는 서남해안 갯벌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로와 염전과 전통마을의 경관이 빼어나고 570여종의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다. 역간척의 시대, 유네스코 등재가 살아있는 갯벌의 역사를 지키는 확실한 통로라면 무엇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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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7.11.17 23:02

김장철

김장철이다. 배추 폭은 차올랐고, 무는 금방 뛰쳐나올 기세다. 김장은 일찍하면 빨리 익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눈발도 날리는 추운 초겨울에 했다. 그걸 김치냉장고가 깼다. 11월에 김장해도 이제는 신김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배추는 1950년 귀국한 우장춘 박사가 조국에 준 값진 선물이다. 그 당시엔 토종인 경종배추가 있었다. 그런데 속이 꽉 차지 않는 반결구배추여서 김치 양이 많지 않았다. 1950년대는 일제에서 해방된 지 5년 만에 터진 6·25전쟁 폐허 속에서 식량난이 심각했다. 보릿고개,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장춘 박사가 배추 품종 개량에 성공, 지금처럼 속이 꽉 차고 풍성한 폭배추를 내놓았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물론 입맛에 따라 식감이 연한 폭배추보다는 ‘씹는 맛이 살아있다’며 경종배추김치를 찾는 이도 간혹 있지만, 속이 꽉 찬 배추를 네 등분하여 담그는 김장이 사람들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치가 글로벌 시장에서 관심을 받은 건 오래다. 약 10년 전에 미국 건강잡지 헬스가 일본의 낫토, 인도의 렌틸콩, 그리스의 그릭요거트, 스페인의 올리브유와 함께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김치축제는 김치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치담그기 체험행사에 참여하려는 프랑스인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길게 줄을 섰는데, 무려 10대1의 경쟁률이었다. 김장김치 담그기에서 튼실한 배추와 무 등 주재료 외에 중요한 것이 갖은 양념이다. 올해 고추는 탄저병 때문에 수확량이 적어 1근 값이 2만 원 전후에 형성됐다. 고추값이 비싸다고 해서 백김치를 담글수는 없는 일이다. 값이 싸든, 비싸든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김장김치다. 고춧가루 뿐 아니라 찹쌀가루와 액젓이 들어가야 한다. 그 뿐인가. 생새우·양파·마늘·해초·생강, 배 등을 갈아서 넣는다. 미나리와 파를 쑥쑥 썰어 넣고, 깨소금도 듬뿍이다. 기호에 따라 굴을 넣는 집, 사과를 집 등 가가호호 김치 담그기는 각양각색이다. 그렇게 담가서 대도시 자녀들에게 택배 공수하니, 늦가을부터 초겨울의 택배시장은 햅쌀과 김장김치가 대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김장담그기도 풍속도가 크게 변했다. 절임배추를 구입, 아파트에서 각자 담그는 집이 늘어가고 있다. 노령인구가 늘어가는 그늘이다.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16 23:02

익산시 언론조례 유감

지역신문의 순기능 보다 역기능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신문 난립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큰 탓이다. 그럼에도 지역신문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지역신문 부재 상황을 그려보면 그 존재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전국적으로 지역적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사회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데 중앙 일간지와 지역방송, 인터넷 매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지역에 따라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지역신문의 설 땅이 크게 좁아졌다. 매체간 경쟁의 심화, 모발일화에 따른 전통미디어의 이용 감소 등 급속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지역신문의 판매부수와 광고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다. 지역신문의 자구노력만으로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을 제정해 정부가 지원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중앙에 편중된 상황에서 지역여론 시장마저 중앙 예속이 이뤄질 경우 지역의 목소리는 더욱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하여 여론의 다원화, 민주주의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특별법 1조도 밝히고 있다. 강력한 지방분권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현재 2022년까지 한시법으로 되어 있는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을 일반법으로 바꾸기로 한 것도 지속적인 지역신문의 육성발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본다.중앙정부뿐 아니다. 특별법에 기반을 두고 경남도와 부산광역시, 충남도 등 3개 시·도에서는 광역 자치단체 차원에서 일찌감치 지역신문 지원조례를 만들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역신문 발전을 위한 조사·연구사업, 지역신문의 경영개선과 정보화 사업, 인력양성, 지역신문 읽기운동, 사회적 배려대상자에 대한 구독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북에서도 전북도와 도의회·호남언론학회·전북기자협회·시민단체 등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지역신문지원조례 추진위원회를 꾸려 한때 조례 제정에 관심을 가졌으나 유야무야 됐다.지난해 익산시가 광역 지자체에서도 결실을 보지 못했던 언론 관련 조례를 만들어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갓 시행 1년여만에 최근 익산시의회가 언론 통제쪽으로 조례를 개정해 물의를 빚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 결정이 내려질 경우 1년 동안 익산시의 홍보비 예산 집행 대상에서 제외시키도록 제재를 강화하면서다.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 여부를 떠나 지역언론을 육성하겠다고 선의로 만든 조례가 언론길들이기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원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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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7.11.15 23:02

전북연구원

1991년 6월 제4대 도의회가 개원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을 마련하고 낙후를 탈피하기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할 ‘전북발전연구원’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김병석 도의원은 이같은 주장을 처음 제기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뛰었으나 임정엽 도의원 등은 “퇴직자의 자리만들기에 불과해 위인설관의 소지가 있다”며 강력 반대했다. 숱한 논란끝에 92년초 전북경제사회연구원 형태로 태동했고, 유종근 지사때 본격적인 틀을 갖춘 뒤 2005년 3월 전북발전연구원으로 명칭을 바꿔 새로이 출발하게 된다. 4대부터 5대 도의회까지 가장 치열한 논쟁을 거듭한 사안이 어쩌면 전북발전연구원 일지도 모른다. 재작년 전북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른다. ‘연구원’이란 명칭과 달리 전북연구원은 강한 정치성을 지니고 있다. 전북도의 지향점에 대한 근거와 명분을 만드는 관변기관의 속성상 토론은 모양새를 갖추는 절차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한영주 초대 원장을 비롯, 남충우, 신기덕, 원도연, 김경섭, 강현직 등 역대 원장은 6명인데, 일부는 지사 선거에 깊이 관여하면서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때마다 타깃이 되곤했다.최근 부쩍 전북연구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도 산하 단체나 출연기관의 장은 현직이 다시 지원하면 공모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지만 이번엔 현직 원장 선임안이 부결돼 재공모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특히 최종 후보군에 들어간 3인은 강현직 전 원장,신효균 전 JTV사장, 송재복 호원대 교수 등 나름대로 지역사회에서 역할이나 지명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사회의 부결 배경이 주목된다.일부에선 공모가 진행되면서 난무한 투서 때문으로 분석한다.하지만 원장 선임안 부결은 이미 지난달말부터 예견됐다고 한다. 전북연구원이 지난달 28일 개최한 세미나에서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이 제기한 ‘지역발전 저해 요인’을 놓고 지역 일부 정치권이나 사회단체가 강력 반발한 때문이다.장 전 총장은 “전북의 발전 부진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김제공항 건설 반대와 전주·완주 통합반대는 주민 스스로가 발목을 잡은 예이고,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은 외부적 타의로 무산됐다”며 “환경단체는 환경보전을 슬로건으로 정치 단체화해 (새만금 사업을) 끊임없이 반대해 왔으며, 20여 년을 폄훼하고 방해했다”고 지적했다.그의 주장을 둘러싼 찬반논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불똥은 결국 전북연구원으로 튀었다는 후문이다. 재공모가 시작되면서 도민들은 이제 누가 원장이 되는가 못지않게 전북연구원의 역할과 위상정립을 더 바라고 있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7.11.14 23:02

마지막 충정

개인주의 팽배로 조직에서나 사회에서 누가 문제해결을 위해 목에 방울달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불의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귀찮고 때로는 후환이 두려워 나서야 하는데도 나서질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이맘때 전국적으로 타올랐던 촛불집회를 통해 환관들로 에워싸진 무능한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내쫓는 성과를 올렸다. 행동하는 양심이 힘의 원천으로 작용해서 박근혜를 탄핵하고 구속시켰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일어난 419의거가 그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10항쟁때 국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민주라는 과실을 쟁취했다.지금 전북사회는 어떤가. 도민들은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했기 때문에 집권세력들이 국정운영을 잘하겠지하면서 내심 전북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보수쪽에서는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날을 세우지만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라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이유는 부정과 부패로 불법을 저질러 나라를 망쳐 먹었기 때문에 수사해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후 응징해야 한다. 국민혈세를 갖고 특수활동비란 명목으로 국정원에서 청와대 박근혜한테 40억원을 상납한 것은 불법의 극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왕조시대나 다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했다. 박근혜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온갖 비위나 살피는 환관과 내시들한테 둘러싸여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그간 전북사회도 지연 혈연 학연 등 연줄망으로 짜여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작동이 안됐으나 이제부터는 확 달라져야 한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전북목소리를 내면서 자존감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사회가 역동성이 떨어져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현재 전북에서 심각하게 들여다 보고 관심 가져야 할 분야가 교육이다. 교육은 미래를 책임짓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진보교육감을 자처한 김승환교육감이 7년간이나 전북교육을 맡아온 동안 중앙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 행재정상 많은 불이익을 받았다. 그 결과가 학력저하로 이어져 타 시도에 비해 SKY 입학자 수가 많이 줄었다.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다고 했지만 교육시킬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교육현장이 황량해졌다. 특히 학생인권만 우선시 해 교권은 오간데 없고 바른교육을 시키고 싶은 교사들의 좌절감과 패배감만 커갔다. 교육현장에서 불미스런 사고가 계속 발생했지만 김 교육감은 황제교육감 마냥 오불관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만 소통하는 바람에 김 교육감이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가 7년동안이나 교육감직을 맡아 운영해봤기 때문에 이미 그의 능력과 역량이 다 드러났다. 지금까지 3선 출마여부에 가타부타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그간 쌓아 올린 자신의 명예와 전북교육의 재건을 위해서도 맘 비우는게 좋을 것 같다. 대학교수하다가 운좋게 교육감이 되었기 때문에 도민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점을 생각하면 물러 설 때가 됐다. 그게 바로 도민들이 김 교육감에 바라는 마지막 충정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7.11.13 23:02

국빈 만찬과 외교

강희제(康熙帝 1661~1722)는 중국 청나라의 네 번째 황제다. 재위기간 61년. 역대 중국 황제 가운데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그는 세 번의 난을 모두 진압해 전 국토를 통일하였으며 내정은 물론, 외교와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 청나라 전성기를 열었다. 탐관오리를 없애고 조세를 경감하거나 장정세를 폐지해 세제를 바로 잡는 등 백성들의 살림에 힘을 기울였던 그는 성군으로 불리었다. 그가 기틀을 다진 청나라의 전성기가 아들 옹정제, 손자 건륭제까지 이어졌으니 훌륭한 임금으로 꼽힐 만하다. 돋보이는 정책은 또 있었다. 이민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만주족과 한족의 융합을 위해 펼친 정책이다. 한족의 유교 사상을 통치철학으로 장려해 국가를 통치했던 것은 대표적인 예다. 그는 특히 문화를 통해 한족과의 융합을 이끌어내는데 힘을 쏟았다. 한족이 대부분이던 중국 땅에 나라를 세운 만주족으로서는 한족을 무작정 견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으니 나라를 통치하는 황제로서는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강희제는 연회와 같은 만찬장을 통해서도 한족과의 화합을 끌어내는 지략을 폈다. 오늘날에 이르러 중국 황실의 대표적인 궁중 요리가 된 ‘만한전석(滿漢全席)’ 역시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강희제는 예순 살을 맞은 해에 특별한 연회를 열었다. 중국 각 지역에서 예순다섯 살이 넘는 노인들을 황궁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 숫자는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만주족과 한족의 노인 수천 명이 한자리에서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만주족이 즐기는 연회인 ‘만석’과, 한족이 즐기는 연회인 ‘한석’이 한자리에서 펼쳐진 셈이다. 상에 오른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는 108가지. 온갖 산해진미로 차려진 만한전석은 하루에 두 번, 사흘 동안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강희제의 바람대로 만한전석이 한족과의 화합을 이끌어내는데 얼마나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연회가 외교적으로 훌륭한 통로가 되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방문길, 만찬 요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국에서는 청와대 만찬요리상에 올려진 ‘독도새우’가 연일 화제다. 일본 정부와 언론들이 ‘독도새우’를 둘러싸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까지 거론하고 나서면서 ‘독도새우’는 오히려 국제사회에까지 그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그들 스스로 ‘다케시마 새우’가 아닌 ‘독도새우’로 명명해 ‘독도’라는 이름을 굳힌 셈이 됐으니 굳이 이야기 하자면 적잖은 외교적 성공이다. 중국은 청의 융성기를 통치했던 건륭제의 전용 공간인 건복궁에서 ‘만한전석’ 만찬으로 트럼프를 맞았다. 그 또한 외교적 의미가 담겨 있을 터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7.11.10 23:02

계륵이 된 서남대

남원 서남대는 1991년 개교했다. 설립자는 이홍하로 서남권 명문 종합대학을 내세웠다. 이농현상으로 인구가 대거 유출되던 때여서 남원 지역사회는 이홍하의 대학 설립을 크게 반겼다. 실제로 서남대는 개교 5년만인 1995년 의예과를 신설했고, 이어 2002년에는 충남 아산캠퍼스를 설립하는 등 확장세를 보였다. 남원 외곽 서남대 주변의 지가 상승도 나타났고, 주민들의 자긍심과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아쉽게도 서남대의 질적 성장은 없었고, 신입생 충원도 잘 안됐다. 급기야 충남에 세운 아산캠퍼스는 공학계열로 설립 인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비공학계열 신입생을 모집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야말로, 그럭 저럭 운영은 됐다. 하지만 2018학년도 ‘인구절벽’을 앞두고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서남대는 부실대학 위험군으로 몰렸다. 2012년에는 설립자 이홍하가 1000억 원 가량의 교비 횡령 등 비리 혐의로 기소돼 결국 징역 9년6개월 형을 선고 받았어도 당장 뿌리가 뽑힐 것 같지 않았다. 2014년 2월 김제 벽성대가 폐교될 때에도 서남대는 유지됐다. 서남대의 희망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지역사회의 열렬한 후원이다. 남원 시민들은 물론, 남원시와 전라북도, 남원 지역구 국회의원 등 거의 모두가 서남대를 살려야 한다고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이들의 서남대 정상화 요구는 폐교로 인한 남원 지역경제의 악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남대의 두 번 째 희망은 의예과였다. 의과대학은 보건복지부가 신설을 엄격히 통제, 신규 설립이 매우 어렵다. 전북대가 약대를 신설하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이 때문에 예수병원유지재단과 명지의료재단, 서울시립대, 삼육대, 한남대 등 의료재단과 대학들이 서남대 의대를 낚아 채기 위해 혈안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문제는 교육부가 이홍하의 교비횡령액 333억원 보전 등 대학의 구멍난 재정 문제를 서남대 정상화 선결 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누구도 333억 원과 기타 서남대 부실에 따른 재정 해결책을 속시원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확보하기 힘든 의과대를 욕심내면서도 정작 중요한 현금은 내놓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7일 서남대 폐교를 정상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지갑도 열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는 장단에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7.11.09 23:02

비밀번호 스트레스

비밀번호 없이는 현대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은행 통장, 신용카드, 컴퓨터 단말기, 스마트 폰, 스마트 뱅킹, 공인인증서, 각종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않고는 정보유출에 따른 피해를 감수하거나 아예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히 비밀번호 시대라 할 만하다.문제는 비밀번호가 까다롭고 긴 조합을 요구하면서 자신이 설정한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낭패를 본다는 점이다. 과거 4자리 숫자면 충분했으나 영문 대소문자에다 특수문자까지 조합을 요구하는 곳이 많고,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대상이 개인마다 수십 개씩 이르면서다. 자신에게까지 비밀이 된 비밀번호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필자 개인적으로도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에 설정했던 유심(USIM)카드의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한 적이 있다. 폰에 접근할 수 없게 된 상황이어서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평소 자주 사용하던 비밀번호 4자리를 이리저리 들이댔다. 전화번호, 주민번호, 자동차 등록번호, 회사와 집 전화, 번호키 숫자 등이 총 동원됐으나 허사였다. 결국 서비스센터를 찾았으나 그곳에서도 해결책이 없었다. 결국 초기화할 수밖에 없어 폰에 저장된 연락처와 자료 등을 고스란히 날리는 낭패를 경험했다.비밀번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간편 결제, 모바일 결제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자율형 자동차홈 자동화 등 사물인터넷(IoT)로 대변 되는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될 경우 보안문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과거에도 보안은 중시됐다.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암호가 오래전부터 사용됐다. 주로 군사적인 목적이었다. 어떤 메시지를 암호화된 문장으로 바꾸었다가 다시 평문으로 바꾸는 작업, 비록 중간에 빼앗기더라도 알 수 없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최근에는 메시지의 도청, 송수신자의 인증, 디지털 사인, 컴퓨터 보안 등 많은 분야에서 필요해져 암호학 학문으로까지 발전했다.정보유출에 따른 피해 증가와 비례해서 보안기술이 크게 발전해왔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개인정보처리시스템에 접속할 때 공인인증서뿐 아니라 다양한 인증수단이 나오고 있다. 지문안면인식홍채정맥 인증 등 온몸이 비밀번호가 된 생체 인식시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낭패를 겪는다든지,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카드 뒷면에 반드시 서명하면서 비밀번호를 유지해야 한다는 등의 주의를 받지 않아도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다. 비밀번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만도 어디인가.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7.11.0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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