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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노인학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경로효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급변하면서 노인학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가족문제라는 미시적 관점을 넘어 인권의식의 강조와 함께 사회문제가 되었다. 2004년 노인복지법이 개정돼 노인학대를 전담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되었으나 아직도 지원체계가 크게 미흡한 형편이다. 우선 노인 학대 사례를 들어 보자. # 사례1 : 전주에 사는 A할머니(88)는 아들(65)이 술만 마시면 욕설을 퍼붓고 손찌검을 하는 등 못살게 굴었다. 보다 못한 이웃이 112에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과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일단 분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A씨를 쉼터에 모셨다. A씨는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슬하에 아들 하나만을 키워왔다. 경찰 등이 찾아 갔을 때 그래도 내 아들뿐이라며 아들의 알코올 치료와 함께 장가를 보내고 싶다고 아들을 염려했다. # 사례2 : 6남매를 둔 B할머니(90)는 강원도에서 화전을 일구며 손발이 닳도록 일해 자식들을 키웠다. 40여 년 전에는 자식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누에를 치다가 뽕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 새우등이 되었다. 그러다 3년 전 남편이 사망한 뒤 둘째 딸이 (강릉의) 집과 텃밭을 팔아 보태주면 노후를 편히 모시겠다고 한 후 매매대금을 가로채고 얼굴도 비치지 않고 있다. 자식들은 B씨 몰래 이사하고 전화번호도 바꿔버렸다. 방임과 유기, 재학대로 할머니는 노인보호기관과 찜질방, 쉼터를 전전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학대는 1990년대 들어 가정폭력의 일환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1년에는 유엔에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고 노인학대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 제1조의2 제4호는 노인학대의 유형을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 등으로 분류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9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34개소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신고 및 상담건수는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만6071건으로 2015년 1만1905건에 비해 35.0%가 증가했다. 이 중 학대사례로 판정된 건수는 5243건으로 2015년 3818건에 비해 37.3% 늘어났다. 전북의 경우는 577건의 신고건수 중 학대사례는 266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인 10명 당 1명(9.8%)이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경찰은 노인학대 피해자가 7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학대사례를 성별로 보면 여성 피해노인이 3973건(75.8%)으로 남성 피해노인 1270건(24.2%)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전체 학대사례의 84.9%인 4450건이 가정 내에서 발생했으며 생활시설 9.3%(486건), 이용시설 2.5%(131건)의 비율을 보였다. 학대행위자는 아들 31.2%(1803건), 배우자 30.3%(1749건), 기관 18.5%(1067건), 딸 7.6%(438건) 순으로 나타났다. 재학대 사례도 500건에 이르며 97.8%가 가정 내에서 일어났다. 학대유형은 가정 내 학대의 경우 정서적 학대 45.6%, 신체적 학대 40.4%, 방임 및 경제적 학대 각 4.9% 순이며 생활시설 내 학대는 방임 37.1%, 신체적 학대 22.4%, 성적 학대 19.7% 순으로 나타났다. 생활시설 내 학대는 대부분 시설종사자에 의해 발생하며 믿고 맡기는 기관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다. 또 경제적 학대(426건)는 노인의 허락 없이 임금, 연금, 임대료, 재산 등을 가로채거나 공적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계비) 급여를 가로채 임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대 피해노인의 가구형태는 노인부부가구 1669건(31.8%), 자녀동거가구 1588건(30.3%), 노인단독가구 1039건(19.8%) 순이었다. 고령화 추세와 더불어 노노(老老)학대도 늘고 있는데 2019년 2137건으로 2015년 1762건에 비해 21.3%가 증가했다. 노노학대는 부부 노인 중 한쪽이, 또는 60대 자식이 80대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다. 이들 노인 학대를 다루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중앙 1곳, 지방 34곳 등 모두 35곳이다. 전북은 2곳으로 전주(전북)가 2004년, 군산(전북서부)이 2014년에 설립됐다. 이들 2개 기관만으로는 노인학대에 대한 상담과 현장조사, 사례관리 등을 처리하기에 벅찬 실정이다. 전용쉼터는 전국에 18개가 있고 전북의 경우 1곳으로 입소정원도 5명에 불과하다. 입소기간도 4개월(재입소 포함 연간 6개월)로 너무 짧다. 이러한 노인학대를 예방치유하기 위해서는 첫째, 조기에 적극 대응이 중요하다.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듯 노인학대도 조기에 대응해야지 은폐되면 상습화되고 고질화돼 고치기가 어렵다. 둘째, 학대피해 노인의 심리적 지지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피해자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전문상담사에 의한 상담서비스를 통해 심리적 상처를 완화해야 한다. 셋째, 피해노인에 대한 개입 시 좀 더 체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문제해결이 가능하다. 노인학대는 대개 가정환경 내에서 전 생애를 통해 발생했던 문제들이 쌓여 악화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넷째, 가해자에 대한 치유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수발자나 부양자들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경제적 형편과 정신질환 치료, 교육 등 근본적 치유책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2004년 노인복지법 개정 시 처음으로 노인학대 관련조항을 신설했다. 반면 일본은 2005년 고령자학대방지법을 제정시행해오고 있다. 노인학대에 대한 한일(韓日)간의 사회적 지원체계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노인복지법상에는 학대 문제에 대한 책임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일본의 고령자학대방지법은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 특히 노인학대 대응의 일차적인 책임이 시정촌(市町村)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둘째, 한국은 법률상 노인학대 행위자 지원과 관련된 직접적 조항이 없으나, 일본은 양호자(養護者: 고령자를 돌보고 있는 가족, 친족, 동거인 등)에 대한 지원을 별도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셋째, 한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은 광역 단위로 설치돼 있지만,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는 2~3만 명 정도의 일상생활권역 단위로 설치(2017년 현재 5041개소)되며 노인학대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생활지원, 개호예방사업을 수행한다. 따라서 노인학대와 관련하여 한국은 노인복지법의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실무기관을 광역 단위가 아니라 지역밀착형으로 구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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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3 17:38

[뉴스와 인물] 오형진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부회장

의용소방대는 1915년 소방조 규칙을 근거로 청년들을 중심으로 고향의 안전을 위해 조직됐다. 1958년 의용소방대 정식 출범 이후 우리나라 봉사단체 중 유일하게 법으로 설치 근거가 마련된 조직으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의용소방대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의용소방대의 날(3월 19일)이 제정되면서 의용소방대원들의 위상도 한 층 높아졌다. 전북에서는 8000여 명이, 전국에서는 10만여 명이 의용소방대에서 각종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오형진 부회장을 만나 그동안의 활동사항과 의용소방대의 날 제정 의미 등에 대해 들어봤다. 오형진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부회장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읍 대웅전 등 목조 화재에 대한 앞으로의 대책을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전북의용소방대연합회장을 맡으면서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동안 어떠한 활동을 해오셨나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해 2월 지역 안전지킴이인 의용소방대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전북도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용소방대원들과 고민했습니다. 대원들의 대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자였습니다. 그때부터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일에는 발 벗고 나섰습니다. 도민을 위해 마스크 3000개를 기증했고, 마스크 제조공장에서 박스 포장과 운반, 불량품 선별 등의 인력을 지원했습니다. 도내 400여 곳의 약국에 7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마스크 배부를 지원했으며, 도내 취약시설 및 다중이용시설 등 500여 곳에서 방역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헌혈 릴레이와 농촌 일손 돕기, 손소독제, 도시락 등 기부활동도 펼쳤습니다. - 지난 3월 의용소방대원들의 오랜 염원인 의용소방대의 날이 제정됐습니다. 의용소방대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용소방대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의용소방대의 날이 매년 3월 19일로 제정됐습니다. 10만여 의용소방대원들의 오랜 숙원이었으며, 소속감을 강화하고 지역 봉사자이자 사회공헌자인 의용소방대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의용소방대의 날은 1958년 당시 소방법에 의해 의용소방대의 설치 근거가 마련된 날인 3월 11일과 119를 조합해서 3월 19일로 정했습니다. -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에서 국립의용소방대 교육훈련 연수원(가칭) 건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에서 군산 새만금 일원에 국립의용소방대 교육훈련 연수원(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수원은 의용소방대원의 현장 대응능력 향상을 위해 의용소방대원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과 더불어 의용소방대 유물전시를 비롯해, 편의시설과 추모공원 등을 건립하고자 추진하는 것입니다. 현재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에서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소방청에 연수원 건립을 건의한 상태입니다. 의용소방대 연수원을 군산에 건립하려는 이유는 군산 월명공원에 세워진 의용불멸의 비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 비는 120여명으로 조직된 군산의용소방대가 1945년 11월 30일 군산경마장 화재를 진압하던 중 폭발에 의해 순직하신 고 권영복 대장 등 아홉 분의 의용소방대원들의 숭고한 희생과 의용봉공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세워진 추모비입니다. 우리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는 아홉 분의 의용봉공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의용불멸의 비 인근에 의용소방대 연수원을 건립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얼마 전 전북에서 천년고찰 정읍 대웅전이 불타고, 무주 티롤호텔이 화재가 발생하는 등 목조건축문화재의 화재예방 대응이 화두였습니다. 두 화재의 공통점은 목조건물이라는 것입니다. 목조건물 화재는 화재초기에 연소속도가 빠르며 인접한 건물 등으로 확대되기 쉽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행히 두 화재 모두 화재초기 신속한 대응으로 인명피해와 주변으로의 연소 확대 없이 진화가 완료됐습니다. 특히, 내장사 대웅전 화재는 소방의 신속한 대응으로 호남 명산인 내장산으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전 국토의 63%가 산림이고 불이 잘 붙는 침엽수가 산림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산림화재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산림화재는 산림과 인접한 마을의 주택과 창고 등으로 확대되는 도심형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전북소방에서 산림화재의 도심형 재난으로 확대 방지 대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우리 의용소방대원들도 힘을 보태고자 산림과 인접한 곳에 설치된 요양원 등 피난약자시설에 대피유도 전담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끝으로 전북도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현대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생활은 몰라보게 편리해 졌지만, 동시에 재난이 상존하는 위험한 사회가 됐습니다. 우리 전북의용소방대는 도민이 있는 곳에 의용소방대의 따뜻한 손길이 있다는 슬로건으로, 도민을 위험한 재난으로부터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저희 의용소방대가 함께 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고 괴로운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실천 등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건강한 경각심을 갖는다면, 모두가 바라는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김제 성덕 출신인 오형진 전국의용소방대연합회 부회장은 의용소방대가 시민을 위한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 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2003년 김제의용소방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김제의용소방대연합회장과 전북의용소방대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오 부회장은 주업인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신한산업을 경영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화재 및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대원들과 현장에 달려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지역에서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58주년 소방의 날(11월 9일) 국민훈장을 받았다. 오 부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크레인선의 충돌로 약 1만 톤 이상의 원유가 충남 태안반도 연안에 유출된 사고를 가장 안타까운 사고로 꼽는다. 그는 많은 양의 원유가 해안가로 밀려와 갯벌 생태계가 파괴됐으며, 많은 어민들은 피해를 입었다면서 당시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는데 힘들어하는 어민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그는 남성고와 군산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민족통일협의회 전북지회 부회장, 전북자원봉사센터 이사, 국제라이온스협회 전북지구 사무총장, 전북체조협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김제시체육회 부회장,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 대한체조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 기획
  • 강정원
  • 2021.05.02 17:46

[전북의 혁명적 발전을 위한 비결] 신라 황룡사 9층탑 같은 전북 부흥 '마천루' 필요

서기 643년(선덕여왕 12년) 동쪽 나라 신라 상황이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대야성 등 40여개의 성을 빼앗기는 절체절명의 국난이었다. 신라는 당나라에게 구원요청 사신을 거듭 보낸다. 그해 9월 당태종은 다음과 같은 기가 막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의 무시를 당하고 있다(...)내가 종친 한 사람을 보내어 너희 임금으로 삼되, 그 스스로 임금 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군대를 보내어 호위케 하겠다. 이른바 당태종의 선덕여왕 퇴위론이다. 당나라 군대를 파견하여 식민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에 신라 내부에서도 여자 임금의 권위를 인정하는 세력과 여왕 퇴위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양분된다. 퇴위론에 동조한 세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춘추(그리고 그 연합체의 김유신)였다. 선덕여왕은 절박했다. 어떻게 그녀는 위기를 반전시켰을까? 당시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자장법사를 급히 귀국시킨다. 자장법사는 여왕의 정치적 지지세력이었다. 귀국한 자장법사는 여왕에게 국운 쇠퇴의 원인 분석 함께 해결책으로 황룡사 9층탑 조성을 제시한다. 풍수설에 따르면 산천(국가)의 기운이 달아나는 형상이면 탑을 세워 멈추게 한다.(走者以塔止之)는 비보(비보) 방법이 있다. 탑을 세운 지 30년 만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룩한다. 이 사건을 두고 후세의 역사가 일연(삼국유사 저자)은 말했다. 탑을 세운 뒤 운수가 형통하고 삼국을 통일했으니 탑의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랴! 독자들께서 참으로 허접스러운 전설로 들릴지 모르겠다. 탑 하나 세웠더니 국운이 반전되어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황당한 황룡사 9층탑 전설이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황룡사 9층탑 조성 발안자는 자장 법사였다. 하지만 9층탑 조성 총감독은 여왕 퇴위론에 동조하던 김춘추 세력이었다. 다름 아닌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용수)이었다. 반대 세력을 포용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도편수는 적국인 백제의 건축 명장(名匠) 아비지였다. 적국의 문화와 기술을 인정하고 수용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귀족들이 가진 경제력을 동원하여 공사에 투여함과 동시에 9층탑이 세워지면 복속하게 될 아홉 나라를 열거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신라 중심 시각을 제시하였다. 국론 통일에 긍정적 작용을 하게 하였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9층탑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토목건축인테리어 등 고도의 과학적 기술과 인력이 소요되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었다. 탑 하나 세워 국가의 운명을 바꾸었다. 풍수의 핵심은 바로 하늘이 하는 바를 빼앗아 천명을 바꾸는 것이다(脫神工改天命.(금낭경) 2021년 지금 전북의 운명은 어떠한가? 1960년대 전북 인구는 250만 명이 넘었다. 어린 시절 동네 벽보에 250만 전북도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도지사 담화를 읽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당시 대한민국 인구는 2500만 명이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10분의 1일 전북이 차지하였다. 전북의 위상을 실감케 하는 숫자이다. 그런데 지금 전북의 인구는 180만 명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5100만 명을 넘는다. 숫자상으로만 보아도 전북이 얼마나 초라하게 위축되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의 위상조차도 광주나주여수에 밀리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비빔밥콩나물국밥막걸리(전주)고추장(순창)추어탕(남원) 등을 전북의 자랑으로 내세울 것인가? 그것들은 과거 농경사회의 산물이다.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닌 문화관광AI시대이다. 그런데 전주만 조금 벗어나도 악취 풍기는 축사에서 나오는 오물로 맑은 물을 오염시키고, 태양광발전시설물들은 산과 문전옥답에 대못을 박고 있다. 필자가 주소를 두고 있는 순창도 마찬가지이다. 고추장 명산지도 옛말이고, 악취 풍기는 축사가 사람을 내쫓는다. 풍수 격언에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늘려준다[山主人, 水主財]란 말이 있다. 산이 깨지면 인물이 나올 수 없고, 물이 더러워지면 재물이 늘지 않는다. 새만금 사업이 30년 넘도록 터덕거리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농경축산업의 전북이라는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관광문화AI시대로의 비약적 변신을 해야한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막걸리가 아닌 세계적 와인을 즐기게 하고, 비빔밥이 아닌 후백제 궁궐 음식을 맛보게 해야한다. 우리나라 사람만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전주와 전북으로 만들어야한다. 구체적인 풍수 비결이 있는가? 첫째, 전북도청을 새만금으로 옮기자. 획기적이고 신속한 새만금 사업의 완성을 위해서이다. 전북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만금 공항도 좋으나 새만금KTX 신설이 필요하고, 개설될 새만금 KTX는 여수와 남해로 달리게 하여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야한다. 둘째, 후백제의 도읍지였던 전주의 도읍지 복원이다. 최근 전라감영 복원은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를 관장했던 전주의 위상을 확인시키는 의미 있는 결과였다. 그러나 관찰사가 아닌 왕의 도시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전주제일고와 풍남초등학교 일대가 후백제의 궁궐터가 분명한 만큼 그곳에 후백제 궁궐을 조성하여 관광숙박드라마촬영 등으로 활용하면,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싫증을 느끼는 한옥마을을 되살릴 수 있다. 셋째, 외로운 모악산에게 생기를 넣어주는 비보풍수가 필요하다. 일찍이 시인 김지하 선생은 모악산을 칭찬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수적으로 한반도의 배꼽은 모악산이다. 모악산 저쪽 즉 금산사 쪽이 자궁에 해당, 모악산 이쪽 즉 전주 쪽이 이를 지탱해주는 척추이다. 모악산을 중심으로 김제정읍고창부안군산은 산의 배[山腹]에 해당되어 평탄하고 드넓다. 농산물이 풍부하다. 옛날 큰 대장간들이 용머리고개 등 전주 서쪽에 많았던 것도 이곳 평야지방이 큰손이었기 때문이다. 그 반대쪽인 임순남과 무진장은 산의 등[山背]에 해당되어 산간지방이 된다. 산채와 약초 풍부하였다. 전주 약령시장과 비빔밥이 유명했던 것도 이러한 물적 토대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 농경사회에서의 일이다. 모악산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일이다. 문화관광의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가? 어머니인 모악산[자연]에 황룡사 9층탑과 같은 타워(마천루: 인간)가 필요하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대화이자 상생 작업이다. 왜 황룡사 9층탑이 필요한가? 롯데 창업자 신격호 회장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서울 잠실에 가면 123층 555미터의 마천루 롯데월드타워가 그 위용을 자리한다(필자는 개인적으로 건설 과정에서 현장을 직접 가보고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나눈 적이 있기에 내부사정을 좀 아는 편이다). 롯데월드타워는 전세게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타워로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이자 자랑이 되었다. 처음 신격호 회장이 초고층(마천루) 건물을 기획하자 주변 측근 임원들이 모두 반대하였다. 그러나 신격호 총괄회장의 철학은 분명했다. 세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마천루를 세움으로써 강국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업보국(企業報國)이다. 서울이 비록 아시아에서 큰 도시이긴 하나 외국인 관광객들에 고궁 말고는 눈에 띄는 관광거리가 없다. 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 그 나라의 빛나는 볼거리(觀國之光)로서 마천루만한 것이 없다. 사드 사건과 코로나 19로 지금 롯데월드타워를 찾는 외국인이 적은 편이나, 조만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될 것이다. 롯데는 분명 이것으로 인해 세계적 기업의 토대를 만들었다. 한국을 방문했던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롯데월드타워를 보고 한 말이다. 전주와 전북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 겉만 한옥인 짝퉁 한옥마을과 막걸리, 그리고 축사로 악취 풍기는 순창 고추장 등등만 자랑할 것인가? 자광그룹에서 전주대한방직공장부지에 430미터 타워 건설 계획을 전주시에 제안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소문으로만 여겼는데, 실제로 구체적 추진계획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청을 새만금으로 이전하게 될 경우, 우려되는 전주의 공동화(空洞化)는 후백제궁궐 조성과 초고층 타워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중국 상하이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 포동(浦東)지역 강변에 세워진 동방명주(東方明珠) 타워이다. 상하이를 찾는 사람은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 전주가 초고층 타워가 필요한 이유이다. 자광그룹의 구체적인 타워건설 안에 대해서 430미터라는 숫자 밖에 필자가 아는 것은 없다. 왜 그곳이어야 하며, 430이란 숫자이어야 하는지 설득력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몇 가지 풍수적 질문과 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숫자 430은 불길하다. 430으로 축소형이자 끝내는 0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롯데월드타워 123층과 555미터란 숫자를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123으로 확장하면서 중앙을 상징하는 5가 셋으로 완결짓는다. 천하의 중심이 되겠다는 염원을 숫자로 대변하였다. 둘째, 전북도청 옆의 대한방직공장부지를 감싸돌아 흘러 가버리는 삼천천의 물[水]을 타워가 마시는[飮水]는 형국을 이미지화 해야한다.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水主財]고 하였다. 흘러가버리는 물[水]를 타워가 모아서 빨아들여 그것을 모악산에 뿜어주어야 한다. 전주와 전북이 1960년대처럼 다시 재물이 넘치고 뛰어난 인물들이 배출되는 기제(機制)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음(陰)인 모악산과 양(陽)인 초고층타워가 음양교구(陰陽交媾)가 이뤄져야 새로운 전북이 탄생된다. 셋째, 타워의 모양에 관해서이다. 앞에서 소개한 롯데월드타워도 설계과정에서 그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30여 번의 설계 수정을 거듭하였다. 한국전통문화를 이미지화 할 수 있는 한옥ㆍ고려청자ㆍ대나무 등에서 그 모습을 취하려다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왕희지의 필진도(筆陣圖)가 언급하는 문방사보(文房四譜) 가운데 으뜸인 붓 모양이다. 붓은 글쓰는 도구이고 글은 문화문명의 키워드이다. 문화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의미이다. 자광그룹의 초고층타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 통해 전북과 전주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가 되게 해야한다.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은 그것이 주는 강렬한 기운으로 말미암아 해당 도시를 대표하며, 해당 도시를 찾는 이들의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바깥에서 볼 때 독특한 건물 모양으로서 가까이보다 멀리서 더 높게 보이게 하여(近低遠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케 해야한다. 풍수에서 말하는 기(氣)를 응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건물 내부에서는 사방의 시야를 넓게 확보하게 하여 그곳에서 업무를 보거나 거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세계의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을 심게 한다. 마천루 주변은 건물의 목적과 상징에 부합하는 조경수와 조경물을 설치하여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 흔히 초고층 타워에 대한 반대논리로서 마천루의 저주(sky scraper)를 내세운다. 높은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마천루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경이로운 감탄을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생긴 말이 마천루의 저주이다. 마천루의 저주란 말은 도이치뱅크의 애널리스트 로런스(A. Lawrnce)가 1999년 마천루 지수 개념을 발표하면서 생긴 용어로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1929년)과 크라이슬러빌딩(1930년) 건설이 1930년대 대공황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말레이시아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완공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엔 아시아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또한 2009년 828m 높이의 세계 최고층빌딩 부르즈 할리파를 건설 직후 두바이도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선언하는 등 재정난에 직면했다. 이것이 바로 마천루의 저주이다. 그런데 마천루의 저주에 걸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한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주가 충분한 건축비용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건설 후 분양을 미끼로 대출을 받아 건물을 짓느냐이다. 대개 후자의 경우 운이 나쁠 경우 그 건물을 안고 넘어지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자광그룹이 그 정도 재력이 있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입지건물의 모양에 따른 풍수적 좋고 나쁨 또한 중요하다. 마천루가 아닌 일반 대형건물에서도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망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마천루 전문가 이종원(성균관대 건축가) 교수는 마천루의 저주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 마천루 때문에 경제가 파탄이 난 것이 아니라, 경제가 호황이었기 때문에 마천루가 세워진 것이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표현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의 틀을 20-30년으로 한정하여 적용하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의 틀을 넓혀 200-300년을 놓고 본다면 마천루의 축복이라는 표현이 보다 적합하다.(이종원, 초고층 도시 맨해튼). 마천루를 가진 기업들은 대공황시기에도 마천루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준공년도인 1931년부터 무려 42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평균 350만명의 관광객을 전망대로 끌어들이며 힘든 대공황시기를 버텨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초고층 마천루를 여러 개 지어 세계인들이 우리 도시를 마천루의 도시로 미래를 지향하는 도시로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롯데월드타워가 서울의 서울다움을 이념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표상하면서 동시에 도시적이고 건축적인 장소로 만들었다면, 전주의 전주다움을 이념적물질적으로 표상하면서 도시적이고 건축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전북의 혁명적 부흥을 위해 황룡사 9층탑이 필요하다. 김두규(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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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9 17:45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6) 조선의 반 고흐, 최칠칠 최북

조선의 반 고흐 최북, 자신의 눈을 찔러 스스로 애꾸눈이 된 기인 화가라 전해지니 한쪽 귀를 자른 반 고흐에 빗대어진 별칭이다. 반 고흐보다 100여 년 먼저 화가로 활동한 최북은 시(詩)와 서(書)에 능했던 조선 후기 대가로 그를 기리는 최북미술관이 무주에 있다. 최북(崔北, 1712-1786년경)은 본인을 못난이라 부르며 자신의 이름 북(北) 자를 두 글자로 나누어 칠칠(七七)이라 했고, 붓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주로 사용했다. 그 외 세 가지 재주가 있다는 삼기재, 기암, 성기 등의 이름이 있으며 특히 산수화의 대가라 최산수(山水) 메추라기를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어릴 적 본명은 식(植)으로 최상여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려한 그림과 글 그리고 독특한 기행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지만, 그의 자세한 생애는 불분명하다. 다만 중인 신분의 가난한 전업 화가이었지만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여 교류한 화가와 문인들의 기록 그리고 그의 괴팍한 기행이 남긴 일화들이 150여 점의 작품과 함께 남아 있다. 최북의 모습은 본인의 그림 속에서 그를 추측할 수 있는 형상과 조선의 최고 화가들인 표암 강세황, 김홍도, 심사정과의 모임을 그린 그림 <균와아집도>에서 최북을 엿볼 수 있는데 머리에는 치건을 쓰고 바둑을 두고 있다. <균와아집도>는 당대 최고 화가들의 합작으로 김홍도가 인물을 그리고, 심사정이 소나무와 돌을 그렸으며, 강세황은 그림의 위치를 배열하고, 최북은 색을 입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둑 두기를 좋아하며 『수호전』을 즐겨 읽은 것으로 알려진 최북은 애주가로 유명하다. 매일 5~6되씩 술을 마셨다 하는데 호방한 성격과 더불어 술에 취해 기이한 행동을 한 일화가 전해진다. 금강산을 유람하던 중에는 구룡연의 풍경과 술에 만취하여 천하의 명인 최북은 마땅히 천하의 명산에서 죽겠다며 물에 뛰어들어 동행한 사람들이 놀라 끌어내었다고 한다. 최북은 취벽에 유별난 성품 그리고 작달막한 체구에 애꾸눈이란 외모에 관한 평이 남아 있는데, 최북이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을 멀게 한 것은 고흐의 광기와 달리 권력에 저항했던 결과였다. 한 벼슬아치가 그림을 그려 달라 요구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만하다며 자신의 지위로 협박을 하자 세상 사람이 나를 저버리게 하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게 하겠다하고는 필함에 있는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잃은 것이다. 그 이후로는 늘 한쪽 눈에 말발굽으로 만든 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최북은 비록 그림을 팔아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림을 그려주기 싫은 자에게는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고 그림값을 너무 과하게 쳐주면 그림값도 모른다며 비웃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한,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을 다녀와서 조선 밖에까지 화가로 명성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성호 이익(1681-1763)은 최북이 일본으로 갈 때 게으른 나는 평생 장관을 못 보았건만, 그대는 바다 건너 하늘 밖을 보게 되었구료. 해 뜨는 동쪽에는 진짜 해가 있을지니 그것을 그려서 내게 보여주게나라는 송별의 시구를 전해 주었다. 붉은 해와 함께 일렁이는 파도와 어우러지는 그의 작품 <일출>은 이익의 청에 화답하는 것 같다. 비록 중인 신분이지만, 지식인 화가로 그림과 시에 능했던 최북은 이익뿐만 아니라 당대 많은 문인과 교류했는데, 특히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훗날 영의정까지 오른 남공철(1760-1840)은 『금릉집』에 최북의 일화와 그와 술을 마시며 밤새도록 이야기한 내용을 담아 <최칠칠전>을 남겼다. 그 외에 조희룡, 정약용, 신광하 등이 문헌에 최북에 대하여 기록해 놓았다. 취벽과 괴팍하다 알려진 일화와 달리 최북의 그림은 온화하고 대담하며 조화롭다. 대표작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에는 평온한 그림 위에 빈산에 아무도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는 소동파의 시구가 의미 깊다. 또한, <계류도>에는 흐르는 물을 시켜 속세의 시끄러움을 막는다라는 최치원의 시구를 남겨 놓았는데 서체와 그림이 더없이 조화롭다. 겨울밤 귀가하는 사람을 그린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에는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온 사람이라는 시구가 담겨있다. 거친 눈보라가 느껴지는 그림에 담긴 시에서는 술에 취해 동사한 것으로 알려진 최북인지라 돌아갈 집을 그렸을 그의 마음이 담겨와 애달프다. 기행 탓에 그의 본질이 가려졌고 칠칠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낮추었지만, 칠칠은 꽃피는 계절이 아니라도 꽃을 피워내는 능력을 지닌 당나라 신선 은천상의 호이다. 날마다 술에 취해 가을에도 진달래꽃을 피워낸 신선을 닮고 싶었던 최북은 칠칠이로 자신을 칭하며 신분의 경계를 허물며 마음에 꽃을 피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계절 그가 신선이 되어 술을 빚고 꽃을 피우며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무주의 산빛 속으로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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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8 17:45

'네 개 키워드'로 분석한 완주군정의 저력

완주군(군수 박성일)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퍼스트 펭귄이다. 바다에 첫 번째로 뛰어들려면 거친 파도에 휩쓸릴 우려도, 바다표범 등 천적의 먹잇감이 될 걱정도 극복해야 한다. 완주군이 퍼스트 펭귄인 이유는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안정주의를 선택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수소경제가 그렇고, 공동체 문화도시도 그렇다. 덕분에 완주군 행정엔 유난히 최초와 최고가 많다. 교통복지 1번지부터 사회적경제, 일자리 창출, 신성장 동력 창출 등 행정 곳곳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외부 환경변화에 주저하지 않으며, 도전하고 응전해온 노력의 결과다. 최근 기업과 기관 유치 등 잇따라 대어급 성과를 일궈내며 도내 지자체 행정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완주군의 저력을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 분석해 보았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은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하려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공포를 이기고 거친 파도와 천적이 우글대는 바다에 처음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완주군은 전북에서 탄소산업에 주력하던 때, 눈을 돌려 국내 수소경제라는 망망대해에 뛰어든 퍼스트 펭귄이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항해해야 할 곳이 수소경제라고 생각한 완주군은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선택하고 행동에 옮겼다. 물론, 박성일 군수의 과감한 결단이 속도감을 더해줬다. 수소경제 1번지를 향한 논리를 마련하고, 여러 기반을 구축하고, 중앙부처를 설득하는 등 백방으로 나섰다. 지금은 기존의 수소 인프라에 하나씩 더하며 국내 수소경제를 선도해 나갈 기반을 착착 구축해 나가고 있다. 때마침 예비해 놓은 테크노밸리 제2산단이 있어 기업과 기관 유치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역시 거친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퍼스트 펭귄을 자임한 덕분이다. 수소경제를 선도하기 위해선 기업을 불러올 인증기관 등 핵심 인프라 구축이 필수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가 공모에 나선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 유치는 완주군뿐만 아니라 수소산업에 뛰어든 국내 11개 지자체가 욕심을 낼만한 핵심 인프라였다. 그래서 경쟁 초기엔 예산이 뚱뚱한 시(市) 단위 지자체가 절대 유리할 것이고, 군(郡) 지역은 자칫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완주군은 꼭 필요하니 반드시 유치하자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소중한 지혜를 빌렸고, 주민들의 서명 동참도 확보했다. 전북도에 미래 전북을 위해 필요한 기관이다며 간곡히 호소한 결과 도(道)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완주군은 최종심사에서 박성일 군수가 직접 설명에 나서는 등 막판까지 공을 들여 10개 지자체를 젖히고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 유치에 성공했다. 이 사례는 도전의 완주군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굵직한 기업을 잇따라 유치한 뒷심도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긍정행정 풍토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완주군엔 용암처럼 솟구치는 열정DNA가 살아 숨 쉰다. 글로벌 쿠팡(주) 등 테크노밸리 제2산단에 기업을 끌어오는 열정은 차라리 화산의 분화구에서 분출하는 마그마에 비유된다. 뛰어난 접근성 등 지리적 이점도 작용했지만,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지역경제에 훈짐을 돌게 하려면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경제산업국 직원들의 열정은 올 들어 전북 투자유치 금액의 절반을 완주군이 쓸어 담는 쾌거로 이어졌다. 실제로 올해 전북의 투자 유치액 5800억 원을 분석한 결과, 완주군 유치가 절반인 2900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3년 동안 중앙부처 수상을 108번이나 받은 것은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대통령상 4번을 비롯한 국무총리상 9번이 포함돼 있다. 전국 220여 기초단체 중에서 이렇게 중앙부처 수상을 기록한 곳도 흔하지 않다는 게 전직 관료들의 말이다. 그만큼 중앙무대에서 행정 경쟁력과 열정 에너지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완주군이 국내 선진행정의 우수 사례라 할 K-행정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식지 않는 열정의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집중은 비용을 줄이고 속도를 높여준다. 완주군은 이제 수소경제 1번지 실현과 전국 최고의 문화도시 육성, 선제적 방역과 신속한 접종을 통한 일상의 회복을 위해 군정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퍼스트 펭귄이 거친 파도와 천적의 위험을 잘 살펴보고 바다에 뛰어들 듯, 완주군을 둘러싼 환경변화에 집중하며 신(新)완주 실현의 기회를 낚아채겠다는 각오다. 수소경제 육성은 수소용품 검사지원센터 유치를 계기로 굳건한 디딤돌을 마련했고, 문화도시 활성화에는 올해부터 향후 5년 동안 국비만 100억 원이 투입된다. 문화와 수소 양날개를 활짝 편 완주군은 한 차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다만, 코로나19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박성일 군수는 그동안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과다할 정도의 선제적 방역이 중요하다며 촘촘한 방역망을 강조해 왔다. 대형 사업장 내 직원 감염 등 집단감염 확산이 우려됐던 작년 말에는 세 차례에 걸쳐 총 6000여 명을 진단검사하는 등 그야말로 광범위하고 세심한 초집중 방역망을 쳐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완주군은 이제 현장방역과 진단검사 확대, 신속한 백신접종을 통해 10만 군민이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코로나19와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정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박성일 완주군수는 기본적으로 순하다는 평을 받는다. 덕장(德將)에 속한다는 세평도 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부드럽지만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모두 다 맞는 이야기이다. 직원들에게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조직을 덕(德)으로 이끄는 스타일이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포근하지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하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문구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마냥 순하진 않다. 10만 군민의 건강과 안전, 행복을 위한 일이라면 엄격히 따지고 치밀한 실행을 강조한다. 코로나19 국면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박 군수는 최근 간부회의 석상에서 직원들의 사적 모임 자제 등을 언급하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추상처럼 다그쳤다. 지역현안이 중대 갈림길에 놓여있던 작년 말에는 공직자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며 공직자의 본분을 강하게 설파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평소엔 순하지만 힘써 일하는 봉공(奉公)과 주민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을 위한 일이라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박 군수가 부드럽지만 강한 유중강(柔中强) 리더십으로 어떻게 현안을 풀어갈지 주목된다.

  • 기획
  • 김재호
  • 2021.04.27 17:34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 시대의 인간관계 - 배우고 훈련하는 새로운 기회의 장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다. 처음의 혼란과 두려움을 넘어서,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일상과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체온을 체크하고, 개인 정보를 기재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 일보다 인터넷 배송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유지해왔던 일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일상을 영위해왔는지 새삼 반추하게 된다. 쉼 없는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자연에 대한 착취는 결국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인간 스스로도 위험에 빠졌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은 취약한 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보편적인 인간상은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향으로 여겨지지만, 재난 앞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게 된다. 작년 여름을 기억한다. 봄마다 찾아 왔던 황사와 미세먼지는 어느새 사계절 내내 계속되었다. 코로나19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로 확장되었던 시기, 코로나로 공장은 멈추었고 모처럼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실제 코로나19 여파로 초미세먼지는 15% 감소했고, 세계의 공기 질은 개선되었다. 연일 감염인 수가 증가하고, 백신 없는 질병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던 사람들의 죽음은 곧 사람들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됐음을 의미했다. 공포와 패닉 속에서 공장은 멈추었고, 동식물들은 거리를 활보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 죽음이 창궐하던 시기, 사람들 틈에 치이던 동식물들이 잃어버린 자리를 다시 되찾고 있었다. 막상 나에게(인간) 위험이 닥쳐오니, 너(자연)가 보이기 시작한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제한적인 관계를 하게 된다. 전처럼 밀집된 장소에서 대규모 강연과 공연, 집회, 포럼은 진행할 수 없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사적인 공간에서 폭력이 증가했다. 한 공간에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그 안에서 아내, 어린아이, 노인과 같은 가정 내 취약한 사람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들을 위한 사회 보장제도 잘 구현된다고 해서, 순식간에 상호 존중하는 관계가 되진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를 대하는 태도이다. 관계의 윤리와 거리를 배워야 나와 동시에 타자와 잘 지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는 훈련과 배움의 과정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관계하고 어떤 동기로 만나고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이를 살피는 일은 현재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욕구와 에너지가 무엇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길이다. 필자는 작년 겨울 단지 공감(이하 단감)이라는 이름의 심리 서적 낭독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우리들은 각자의 집에서 주 1회 저녁 시간에 만났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다 함께 식사를 먹으며 1시간 정도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번갈아가며 한두 페이지의 책을 낭독하고 감상을 공유한다. 심리 서적을 읽는 일은 표면 말하기에 머물러있는 것들 너머로 자신의 상태, 감정, 욕구를 살피는 일로 귀결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여기에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현재 내 삶의 이슈는 무엇인지, 그때 알아차리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주요한 감정들, 갈등 상황을 촉발했던 숨은 욕구들은 무엇이었는지 새롭게 발견하는 장이 된다. 지면에 이렇게 모임을 소개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관계의 본질적인 요소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분명 상대와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대화를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한 상태라야 가능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단감에 참여하는 튬은 공감에 대해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습하는 경험이었다. 제가 얼마나 온전한 공감을 잘 못하는지 그리고 잘 못 받아왔는지 깨달았다. 집에 가면 아 오늘 내가 한 그 말은 공감이 아니라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이었구나 하고서 후회하는 일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공감은 무조건적 지지나 응원이 아니다. 당신은 옳다 책 저자 정혜신 씨는 공감에 대해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감정은 옳다. 마음과 느낌은 충조평판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의 고갱이다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될수록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정의한다. 입은 여는데 귀는 닫힌다. 그리고 감정을 숨기게 된다. 그러나 감정은 수많은 판단, 사고, 정동의 최종 심급이며, 이를 잘 표현할수록 깊은 대화의 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 제도와 가족 안에서 역할과 의무에 충실하거나, 이해관계로 얽혀있을 때 우리는 자주 외롭고 공허해진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선들은 자기를 개방하고,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와 같이 밖에 아닌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해서, 내 곁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관계를 훈련하며 상호 성장할 수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단감모임 동료 별은 특히나 부정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피하거나 빨리 전환하려고 했는데, 모임에서 내 감정에 대해 잘 느껴보려고 노력했다. 대화에서 정말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감정이었다. 감정을 솔직하게 상처주지 않게 전달하는 게 타인과 성숙한 관계를 맺는 방법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 이 기사는 지역 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4.26 18:53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언택트 시대에서의 콘택트, 예술은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할 것인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가 지속되며 우리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지역의 다양한 축제 및 행사가 취소되고, 박물관, 미술관, 공공 문화시설의 휴관 등 모든 행위가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우리는 가상과 실재가 혼재된 삶을 살고 있다. 예술 또한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디지털 기술과 접목된 형태로 온라인 플랫폼과 콘텐츠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 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사회적 역할 및 생계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 초래되었다. 한국예술총연합회가 발표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년 1월에서 4월 사이에 총 1614건의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었고, 예술가의 88.7%가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 예술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2019년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은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고, 새로운 언택트 시대를 맞이하며 국내 예술계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추어 전북지역의 예술 각 분야에서도 준비된 온라인 콘텐츠를 활용하거나 신속하게 제작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예술가들에게는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가장 큰 과제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제 예술의 온라인화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상황 속에서 소통을 위한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작품이 예술적으로 어떤 감동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인가와 현장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관객에게 어떤 심미적 경험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으로 보았을 때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지금 대면에서 비대면으로의 변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변화, 실재와 가상으로의 변화 등 많은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는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언택트시대의 지역예술의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과 변화에 따른 질문과 고민을 토대로 앞으로 지역예술계의 과제와 방향성에 대해 모색해야 할 때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소통과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현격히 높아짐에 따라 예술의 노출효과도 자연스럽게 커져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높아진 효과도 분명 있다. 이 중 미술이라는 장르는 평면 회화 작업 뿐 아니라, 관객과의 사이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함으로써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 작업과의 협업을 시작해왔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다양한 작품 감상법을 적용하는 등 흥미로운 사례들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우리의 삶에 깊이 다가왔고, 엄청난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 생각된다. 교동미술관도 변화에 발맞추어 2021년도부터는 지역의 작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주고자 새로운 온라인 콘텐츠 사업을 기획하여 실행을 앞두고 있다. 전업 작가들의 삶과 작업을 조망하고, 지역 작가들을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작가들의 노력이 현장감있게 전달되도록, 더불어 이러한 기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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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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