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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92) 임실 박사마을의 달달한 선물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고물을 가져다줘도 때마다 받는 엿의 양을 늘리고 줄여 값을 쳐주듯이 무슨 일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엿장수를 빗대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엿장수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비대면 시대이다 보니 엿장수는 커녕 가까운 일가친척도 만날 수 없다. 세상일이란 진짜 엿장수 마음처럼 가늠하기 쉽지 않다. 엿을 파는 오랜 풍속은 김홍도의 <씨름>과 김준근의 <엿 파는 아이>에 등장하는 앳된 엿장수의 그림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엿장수는 엿 가락이 담긴 목판 양쪽을 천으로 묶어 목에 둘러 감고는 쩔그렁 쩔그렁 가위질을 하며 엿이야 엿이야 / 어~엿 장수가 왔어요 / 울릉도 호박엿 강원도는 옥수수엿 / 경기도 찹쌀엿 전라도는 쌀엿 / 판다 판다 엿을 판다... 라 구성지게 소리치며 장터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엿장수가 엿을 팔며 부르는 소리는 손님을 불러 모으는 호객의 노동요이다. 각설이 타령과도 같은 타령조의 엿타령으로 엿장수 맘대로 개사하여 익살스럽게 부른 것을 재미삼아 따라 부르곤 했었다. 오래전부터 맛있는 간식거리였던 엿인지라 달달한 유혹의 소리가 들려오면 엿을 바꾸어 먹을만한 물건을 들고 가 엿장수가 쳐주는 엿값에 따라 환호를 지르거나 속상해하기도 했다. 엿을 바꾸어 먹으며 하는 놀이로 엿치기 놀이가 있었는데, 엿가락을 부러뜨린 뒤 속에 난 구멍의 크기를 재거나 뚫린 구멍의 숫자를 재어서 겨루는 놀이이다. 엿 가락의 어느 부분을 부러뜨리냐에 따라서 엿값을 내야 했기 때문인지라 꽤나 신중하게 내기 모임을 했다. 그 구멍은 엿 안에 공기를 넣어 뽑아 만드는 독특한 과정 때문에 생기는데 그 구멍이 성패를 가르게 하였다. 엿은 잡아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 계속 이어진다는 뜻의 이어지다, 잇다에서 유래한 우리말이라 전해진다. 엿은 오래전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 이전 삼국 시기에도 곡물의 당화(糖化) 과정으로 즐긴 음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최초의 기록으로는 고려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한식날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으니 행당맥락(杏?麥酪)이 모두가 나에게는 해당이 없구나란 구절에 등장하는데 행당과 맥락을 엿으로 본다. 행당은 은행을 갈아 쑨 죽에 엿을 넣어 먹는 중국풍습이 전해진 것으로 추측이 되며, 맥락은 감주나 식혜와도 같은 것이니 고려 시기 이미 선조들이 엿의 단맛을 즐긴 것을 고증해 준 셈이다. 한자어로 되직한 엿을 당(?) 묽은 엿을 이(飴)이라 하는데, 식혜가 졸여져 굳기 전의 상태를 물엿, 조금 더 졸인 것을 조청이라고 하며, 굳힌 것을 갱엿이라고 한다. 그 갱엿을 먹기 좋게 늘어뜨려 공기를 넣어 뽑아 만든 것이 흔히 먹는 엿이다. 엿은 약으로도 쓰여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처방법으로 약효를 가진 식물을 우려내어 그 물로 다리는 엿을 고(膏), 고제(膏劑)라고 하며 약엿으로도 불렸다. 조선 시기에는 엿 제조법이 『규합총서』등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으며 관련 기록이 많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궁 진상 품목으로 엿에 관한 기록들이 있는데, 특이한 기록으로는 영조시기 엿장수와 떡장수, 술장수들이 과거시험장에서까지 팔아대서 시험장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고 질타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약용의 『흠흠신서』에는 엿장수가 엿값 시비 끝에 살인을 한 죄를 벌한 기록도 남아 있다. 당시 엿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엿 맛이 좋은 고을로 조선의 미식가 허균은 개성에서 나는 엿이 상품이고 전주지방에서 나는 엿이 그다음으로 좋다고 했으며, 조선 문인 이하곤도 전주에 들러 시장을 보고는 전주 사람들이 엿을 잘 만든다는 기록을 남겼다. 근래에 들어 임실 삼계의 박사마을 엿이 유명하다. 삼계는 유서 깊은 선비고을인데, 1600여 명의 인구에 200여 명의 박사를 낸 곳으로 전국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해 박사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져 입에 달라붙지 않고 맛도 좋지만, 시험을 치를 때 합격 엿을 먹는 풍습이 있어서인지 삼계에서 나는 박사마을 쌀 엿은 명물이 되었다. 엿이 산골 마을의 자산이 된 연유로는 원이숙(1949년생,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0호) 명인의 꿈이 한몫했다. 고향 순창에서 어린 시절부터 솜씨 좋은 할머니와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엿 맛과 집안의 풍습을 보며 자랐어요. 이맘때면 엿 고는 냄새로 집안에 단내가 났어요. 설날 세배 오는 손님들 상에 엿을 올리려 엿을 고았거든요. 달달한 집안 내음과 단지 안에 맛있던 엿이 추억이자 힘이었어요 이후 명인은 임실 삼계 출신 남편과 결혼해 10년을 전주에서 살다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와 정미소를 하면서 솜씨 좋은 시어머니의 엿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부녀회장을 맡아 집집마다 전해져 오는 엿 제조 방식을 배우고 나눠 엿 만드는 일을 마을의 부업으로 자리하게하고는 사업체를 만들었다. 어렵게 살던 마을 사람들은 엿을 팔아 돈을 벌자 처음으로 통장을 만들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를 명인으로 만들어준 엿은 어린 시절 추억이자 선물이 되었다고 한다. 설 대목을 앞둔 박사마을에는 엿을 고는 달달한 내음이 동네를 휘감는다. 하지만, 지난 추석에 이어 다가오는 구정 설날에도 엿을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는 우리의 풍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어 아쉽고 서글프지만, 따뜻한 안부를 선물처럼 건네며 나아질 일상을 달콤하게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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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7 16:47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코로나시대 희망 부는 ‘긍정아티스트’ 윤수연 씨

세계 최초 '피겨 플루티스트'인 윤수연 씨가 코로나19 이후 1년 넘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거리를 돌며 플루트를 연주해 코로나19로 우울한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여러분 힘내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윤 씨가 코로나 이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길거리 연주는 혼자서 펼치는 희망 캠페인이다. 마스크를 쓴 채 플루트를 입에 물고, 인라인 스케이팅을 타면서 연주하는 모습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그냥 연주를 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 어깨띠도 둘렀다. 지금은 그를 알아보고 엄지척을 해 주는 사람도 많단다. - 어떻게 길거리 연주에 나서게 됐나. 코로나 직전 피겨 플루티스트로 데뷔했다. 방송 출연 등 언론 조명을 막 받을 시점에 코로나가 터져 링크장이 문을 닫았다. 얼음 위 연주가 어렵게 되면서 인라인을 배워 밖으로 나오게 됐다. (피겨 플루티스트는 윤 씨에게만 따라다니는 호칭이다. 피겨를 타면서 플루트를 부는 연주자가 윤 씨뿐이기 때문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김연아 선수의 환상적인 피겨를 보고 얼음 위에서 플루트를 불면 어떨까 생각했단다. 나보다 피겨를 잘하고 플루트를 잘 부는 사람은 많겠지만, 피겨를 하면서 플루트를 부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바로 다음날 전주 화산체육관 빙상장을 찾았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스케이트 한 번 신어본 적이 없었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2016년부터 3차례 문체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빙상경기대회에 출전해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겨울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아이스링크장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가졌다.) - 코로나로 본인 무대도 없어 힘들 텐데, 이웃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희망캠페인을 시작한 건 코로나 훨씬 전인 2013년부터 해온 일이었다. 내 스스로 자살까지 시도할 만큼 극심한 우울증을 털고 일어섰기에 희망과 긍정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 잘 안다. 2010년도 음악잡지의 표지모델이 될 만큼 잘 나갔으나 멘토처럼 따랐던 사람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를 추스르는 데 2년이 걸렸다. 우울증을 겪다보니 어려운 이웃이 보이더라. 또 음악만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계기였다. 그 전까지는 음악으로 행복을 전한다고 생각했는데, 캠페인을 통해 스스로 위로가 된다. - 연주에 어려움은 없는지. 마스크를 쓰고 굴러다니면서 플루트를 부는 사람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악기를 부는 게 쉽지 않다. 침으로 젖어 숨쉬기 어렵고 귀가 아파 마스크를 새로 고안해서 착용하고 있다. - 보람도 클 것 같다. 대공연장의 큰 무대도 많이 서봤다. 그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할머니 팬도 생기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버스기사도 있었다. 플루트 연주를 듣고 노숙하던 분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았다는 말도 들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캐럴 한 번 제대로 못 들었는데 캐럴 연주에 즐거워하던 분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 강사로도 활동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이런 열정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나. 여러 직함이 있는데, 하나를 고르라면 긍정을 전하는 아티스트로 불리우고 싶다. 내 에너지가 바로 긍정 마인드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망의 불씨만 있다면 얼마든지 희망의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걸 내 경험이 말해준다. 강연에서 곧잘 불난 집 딸이라고 나를 소개한다. 실제 불난 집 잿더미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잿더미에서 희망을 분 연주자의 말이 가볍지 않을 터다. (윤 씨는 부친인 윤명호 화백과 함께 완주 상관에 예술 힐링센터를 계획했다. 그림으로, 음악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은 공간이었다. 그런 힐링센터가 완공을 앞두고 2016년 화재로 전소됐다. 화업 60년 개인전을 앞둔 윤 화백의 작품도 모두 불에 탔다. 당시 상황은 KBS 인간극장 5부작으로 방영됐다. 윤 화백은 붓을 꺾지 않고 현재 금암동 전자상가 화실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긍정 아이콘이 되기까지 부친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보통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여유 있는 집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려서가 아닌, 고교 진학 후 뒤늦게 플루트에 입문했다. 그럼에도 한국화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아버지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 붓을 잡을 때 아버지 눈빛이 달라지신다. 한 음을 불더라도 마음을 다하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아버지의 창의성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었던 힘이지 않았나 싶다. (팔순의 윤 화백은 귀가 잘 안 들리지만 눈이 보이는 게 감사하다고 여긴단다. 눈이 보여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세상일에 귀를 닫고 지금도 밤새도록 그림을 그린다. 작업 중 쓰러지면 살리려 하지 말고 붓 한 자루만 쥐어달라고 했단다. 윤 씨는 불 탄 아버지 작업실에서 유일하게 남은 불에 그슬린 붓 한 자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코로나 진정되면 전 세계 링크장을 찍고 싶다. 여니(Yeony)라는 영문 이름을 만들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데 몇 마디씩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다. 누구나 마음속에 긍정과 부정 스위치 있다. 어떤 스위치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 바뀐다. 힘들었을 때 최악을 봤다. 정말 희망이 없었다. 연습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누구를 따라하지 않고, 유니크한 길을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도 이를 알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 (윤 씨는 단 1명이라도 저런 에너지 넘치는 플루티스트가 있구나, 그걸 보고 용기를 얻는다면 만족하단다.) - 코로나에 힘든 도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 한마디. 코로나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탓만 할 수 없지 않나. 마음이 죽어가는 게 안타깝다. 이 위기를 어찌 넘을 것이냐 생각해야 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 못 할 게 없다. 서로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를 돌아볼 기회가 됐다. 코로나 안에서도 노력 여하에 따라 길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 기획
  • 김원용
  • 2021.01.25 17:06

[뚜벅뚜벅 전북여행]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도심 속 명소 '한벽루와 청연루'

북적이는 한옥마을과 향교를 조금 벗어나면 한가롭고 여유로운 누각,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한벽당이 기다리고 있다. 한벽당은 아름다운 팔작지붕으로 둘러 있으며,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조선시대 월당 최담 선생님 건립한 별장이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님이 쓴 한벽당이라는 편액이 더욱 가까이 보인다. 팔작지붕과 함께 어우러진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바위에 부딪혀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 하여 한벽당(寒碧當)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지며, 한벽청연이라하여 전주의 8경으로 꼽힌다. 한벽당에서 보는 풍경은 현재 한벽교로 인해 많이 가려져 있어 아쉬움이 있지만, 푸른 산과 물이 흐르는 옛 모습을 상상해보면 탁 트인 풍경과 함께 기분 좋은 미소 지어진다. 실제로 많은 시인과 문객들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고, 길 가던 나그네들 또한 이곳에서 쉬어갔다고 하니 많은 이들에게 자연과 하나 되어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해준 쉼터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한벽당은 산에 올랐을 때 느끼는 기분과는 또 다른 상쾌함을 준다. 7평규모의 누각 너머에도 작은 정자 요월대가 나란히 있다. 이렇게 한벽당에서 여유를 느끼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추천한다. 한벽당을 지나 한옥마을 방면으로 걷다 보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다리 위 한옥 모양의 정자가 맞이해준다. 현재 한옥마을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명소 남천교위의 정자 청연루다. 멋들어진 정자가 다리 위를 더욱 빛내주며 길게 놓여 있으니 한눈에 담아보고 싶어진다. 남천교가 개건 되면서 다리 위에 청연루가 올라가게 되었다. 현재는 한옥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잠시 쉬어갈 그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멋진 풍경과 휴식을 제공하는 곳인 듯싶다. 낮에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담고, 야간에는 청연루가 빛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으니 낮과 밤의 청연루를 모두 즐기다 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이제 전주여행을 왔다면 꼭 한번 들러봐야 할 그곳이 바로 청연루가 아닐까? /글사진 = 국가나(전라북도 블로그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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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1.01.25 17:03

[뉴스와 인물] 홍요셉 제35대 전북지방변호사회장

지난 1948년 전북도민의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 등을 목적으로 창립된 전라북도지방변호사회는 올해로 창립 73주년을 맞는다. 전북변호사회는 지난 2008년 치러진 제28대 회장 선거 이후 단독 입후보 현상이 이어짐에 따라 회원 신임 투표를 통해 회장을 선출해왔다. 하지만 제35대 회장 선거는 12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세간의 관심도 높았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사회 전체가 정지된 상황에서도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법조계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현안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새롭게 제35대 전북변호사회를 이끌어 갈 홍요셉(56사법연수원 33기) 회장을 만나 각오와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전라북도지방변호사회 회장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선거가 12년 만에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세간의 관심도 많았습니다. 12년 만에 경선이 치러진다고 결정되었을 땐 많은 분들이 관심과 동시에 우려를 표현해주셨습니다. 회원이 305명이 되는 전북변호사회에 신선한 바람이 불겠다는 기대와 더불어 선거가 과열되어 회원들이 서로 상처를 입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선거 운동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305명의 회원 한 분 한 분이,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아닌 철저한 공약 비교를 통해 전북변호사회의 미래를 맡기려고 하였고, 자연스레 그 어느 선거 때보다 회원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경선을 거치는 후보자들 또한 회원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평소에 존경해오던 변호사님이 함께 후보로 출마하시어, 각자의 선거를 준비하며, 회원들을 위해 우리 선배 변호사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서로의 공약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으며, 저 또한 상대 후보님께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경선이었고, 서로의 공약을 통해 앞으로 전북변호사회가 나아가야 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 러닝메이트로 뛴 이종기박형윤 변호사가 부회장을 맡는 등 35대 전북변호사회 집행부가 꾸려졌습니다. 임기 동안 전북변호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계획인가요.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을 살펴보면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관이셨던 가인 김병로 선배님을 비롯한 많은 선배님들이 걸어오신 이 정신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작년 한 해,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도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작년부터 법조계는 커다란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사법개혁, 검찰개혁의 목소리와 함께 고위공직자수사처가 신설됐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의 최후의 보루인 변호사들의 권익이 침해당하지 않고, 또한 수사권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도민들이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변호사회와 전북을 위해 2년간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 전북변호사회 회원은 물론 전북도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하셨습니다. 전북변호사회장은 회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도민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도록, 언제나 법조계의 최전선에서 봉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회원들 및 도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도민들과 전북변호사회에 꼭 필요한 사법서비스가 무엇인지 의견을 경청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공익적인 의무도 다할 생각입니다. 그동안 공익활동으로 포장돼 악용되어 오던 무료 법률서비스를 오로지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인권수호를 위해 제공하는 한편, 공공기관, 지자체, 유수의 기업들에 대해서는 법률자문료를 현실화해 결국,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공익의무가 진정으로 어려운 사회 취약계층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도민을 위한 법률 강좌를 개설하거나 전북변호사회의 공익모임 청소년과 함께하는 모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 더 많은 도민들이 전북변호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특히 회원들의 권익 보호와 직역 수호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변호사 숫자가 극히 적은 시절, 변호사가 자주 수행하지 않는 업무에 한해서 지극히 변호사에 대한 보충적인 지위에서 단편적인 업무만 수행하던 유사직역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소액사건, 행정심판, 특허사건 등에 대해 소송대리권 등을 달라는 주장을 하며, 변호사 주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변론권을 침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재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는 법률플랫폼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 자가 법률플랫폼을 운영하며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 받으며 법률상담, 변호사광고를 하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35대 집행부는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우롱하고, 도민에게 피해를 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선처 없이 즉시 고발할 예정입니다. - 공약 중 도내 가정법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계획은 있으신지요. 가정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가족 내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 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법원입니다. 가정법원이 설치된 곳의 지역민들은 전문적이고 일관적인 가사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 설립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전북에 가정법원을 설립한다는 취지의 법원조직법,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도내 가정법원 설치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우리 지역 법조인과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지자체와 함께 가정법원 유치를 추진하기 위해 단합된 목소리를 내야할 것으로 생각하며, 자치 기구를 설립하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강하게 요청할 것입니다. 도민들이 전문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회원과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앞으로 2년 동안 변호사의 권익과 직역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에 명시된 변호사의 기본적 사명을 잊지 않고, 훌륭하신 선배님들께서 이끌어 오신 법조계가 전북도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고,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기획
  • 강정원
  • 2021.01.24 18:27

[조상진 객원논설위원의 '노년의 꿈'] ② 코로나19와 노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취약계층에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노인의 경우 감염 확산 우려로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고 노인일자리가 중지되는 등 노인들의 중요한 지지체계가 일시에 멈추었다. 공적 서비스에 의지하는 저소득 노인이나 돌봄을 받아야 할 노인의 삶이 크게 악화되고 디지털 격차도 더 크게 벌어졌다. △ 사망자의 95%가 노인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첫 발생한 이후 세계적으로 1억 명 가까운 확진자와 200만 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19일 현재 7만3115명의 확진자와 128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노인들은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해 연령별 사망률은 50대 이하가 4.29%인데 비해 60대 이상은 95.71%에 이르고 있다. 지역별 확진자는 수도권이 71.4%를 차지하고 전북은 확진자 995명, 사망자 34명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gov/coronavirus)는 코로나에 감염되면 사망할 확률이 20대에 비해 75-84세는 220배, 85세 이상은 630배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 노인일자리 노인일자리가 감소되거나 일시 중단돼 노인들이 타격을 받았다. 제주고령사회연구센터가 2020년 5월,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노인의 일상생활 변화 중 가장 큰 것이 소득 감소(45.7%)를 꼽았다. 두 번째가 외출제한으로 갑갑하고 외로움(33.7%), 세 번째가 경로당이나 복지관 이용이 어려워 불편한 점(21.2%)를 들었다.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노인일자리사업은 2020년 74만 명으로 이중 77.4%인 57만3000명이 공공형(공익활동과 재능나눔)이다. 공공형과 사회서비스형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2월 27일부터 잠정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는 등 감염 확산 우려로 자치단체마다 들쭉날쭉 시행되었다. 이중 한 달에 30시간 일하고 27만원을 받는 공익활동은 저소득 참여노인에 대한 생계보호 차원에서 활동비를 미리 지급하기도 하고 일부는 4개월 동안 상품권을 추가 지급했다. 하지만 시장형사업단이나 경비, 청소 등 민간형 일자리는 크게 위축되었다. △ 경로당노인복지관 우리나라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가시설은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이다. 2017년 도시지역의 경우 59.5%가 경로당, 32.2%가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여가시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휴관과 운영을 반복했다. 1차 유행기인 2월 27일 휴관 권고가 내려진 이후 7월 20일 운영이 재개되었으나 8월 18일부터 다시 대부분 휴관에 들어갔다. 연말 기준으로 6만7000여 경로당 중 20% 남짓, 394개 노인복지관 중 2.5%만이 운영 중이다.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그 전까지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 및 경제활동에 참여했던 노인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었다. 평소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유일한 즐거움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들 시설이 잠정폐쇄되면서 경로당의 경우 공동취사나 여름철 무더위 쉼터 같은 기능이 멈추는 바람에 집에서 종일 견뎌야 했다. 노래 부르기, 요가, 붓글씨 등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저렴한 식사와 커피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복지관도 운영이 중단되면서 노인들의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지루함과 불안, 불면, 스트레스, 소외감, 우울감이 높아져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했다. △ 요양병원요양원재가노인지원서비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집단으로 장기간 거주하는 노인장기요양시설이다. 환자와의 거리두기가 쉽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기저질환자들은 면역력이 취약해 치명율이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1/3이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 나와 비상이다. 최근 들어 전북에서는 순창군 요양병원 113명, 김제 가나안요양원 62명 등이 집단 발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양병원은 면회가 중단되었다 7월 1일부터 비접촉 방식의 면회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8월 하반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다시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다. 정부는 그동안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즉시 코호트 격리를 시행했다. 그러다 12월 30일 요양병원 확진자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이송시켰다. 이들 시설에서는 환자가 임종할 경우 유가족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한 채 곧 바로 시신이 화장장으로 향하는 쓸쓸한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또 재가노인지원서비스의 경우 1대 1 방문돌봄이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면서 돌봄이 어려워졌다. 감염우려로 돌봄서비스 수혜자들이 요양보호사의 방문을 거부하거나 반대로 요양보호사가 스스로 업무를 중단하는 경우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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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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