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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인물]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건전한 실패 용인하는 도전적 기업문화 만들고 싶어"

최고경영자(CEO).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쯤 꿈꿨던 자리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꿈은 흐려진다. 꿈은 고사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설사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도 치열한 내부 경쟁을 견뎌내기는 힘들다. 태반이 중도에 탈락한다. 꿈을 이룬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강만(58장수사진) 한화에스테이트 대표이사. 그는 지난해 9월, 신입 사원 시절에 꾸었던 꿈을 이뤘다. 영업 사원으로 해외는 물론 국내 곳곳을 누비는 것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30여년 만이다. 고비도 있었다. 그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영업과 끊임없는 자기계발, 그리고 주위와 함께 하는 나눔과 배려 등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했다. 물론, 행운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를 서울 63빌딩에 위치한 대표이사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먼저, 한화에스테이트가 어떤 회사인지. 이름 그대로 Real Estate, 즉 부동산을 관리하는 회사입니다. 오피스빌딩, 데이터센터, 물류창고, 백화점, 연구소 등 전국 110여개 건물의 자산관리와 부동산 임대차 및 투자 컨설팅, 건축, 보안, 에너지효율화 사업을 영위하는 부동산 종합서비스 전문기업이라고 하겠습니다. - 일반적인 건물 관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죠. 건물에 어느 업종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고민합니다. 건물 개보수나 증축, 그리고 인근에 위치한 지하철과 건물을 연결하는 진입로 개설 등을 통해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도 합니다. -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은. 저희 회사가 운영하는 사업 분야 중 부동산 시설관리 시장은 지난 4~5년간 약 130%, 부동산 간접투자시장은 약 226% 성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효율화 사업 분야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친환경 정책에 따라 국내 역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한국판 그린 뉴딜 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짐으로써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어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 재임 기간 동안의 목표는. 먼저, 사업 전 분야에 걸친 자율 안전문화 시스템 구축과 부동산 자산관리 서비스 품질 제고,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그린뉴딜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그룹 부동산을 주로 관리했기 때문에 외부 영업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만, 향후 외부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3년이내에 외부 매출이 전체 매출의 50%이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건전한 실패는 용인하는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대기업 임원을 거쳐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비도 있었죠. 그렇지만 직장 생활 대부분 훌륭한 상사를 모시고 일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부장이 될 때까지는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임원이 된 이후에는 대내적이든 대외적이든 사람 관계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고 육성해주는 그런 분들이었지요. 지나친 겸손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능력에 비해 늘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람 관계를 강조하셨는데. 저는 모든 관계 중에서 사람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하우(Know How)가 아닌 노후(Know Who)입니다. 폭넓은 경영을 위해선 네트워킹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 인적 네트워크는 어떻게 구축하셨는지. 평소에 회사 직원은 물론 동종업계 직원, 그리고 을의 입장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지는 않습니다. 내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 진정성을 갖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신입 사원 때부터 영업을 했고, 그 기간도 짧지 않았는데요. 제가 자원했습니다. 당시 베어링을 제조판매하는 계열사에 배치됐는데, 해외 수주하는 게 재미가 있어 매일 밤 10시까지 일했죠. 처음에는 동남아를 담당했는데, 실적이 좋아 유럽에 이어 메인인 미국 시장도 맡았죠. 해외 영업 5년 후에는 국내 영업을 7년 했는데,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장사가 쉽다고 생각될 정도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 자신만의 비법이 있습니까. 영업의 기본은 진정성이라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고객을 현혹시켜 제품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내 물건이 좀 부족하다면 그걸 솔직히 이야기 하고 나서 설득을 해야지요. 미래를 보고 해야 합니다. - 영업이 쉽지 않은 분야인데, 적성에는 맞았습니까. 의외로 영업이 저에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나한테 끼가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업은 내가 가지고 있느 상품이나 제품, 서비스를 고객이 선택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회사의 대외협력업무와도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그룹에서 저에게 대외협력업무를 많이 맡긴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 계열사 보다는 경영기획실 비롯해 그룹에서 근무한 기간이 긴 편인데요. 보통 23년 정도하는데 저는 조금 오래한 편이죠. 국민의 정부 출범 후 그룹내 호남 출신이 거의 없었는데, 그나마 제가 지역적으로 연고가 있어 2000년께 그룹 경영기획실(당시 구조조정본부)로 발령이 났죠. 그 곳에서 8년간 근무하고 임원 승진 후 한화손해보험으로 옮겼다가 2014년에 복귀해 지난해까지 6년 간 그룹에서 근무했습니다. -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는 전북의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은. 아들녀석이 괜히 희망고문하지 말라고 옆구리를 찔러 대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제가 전북에서도 산골인 장수 번암에서 태어나 초등과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 자신이 처한 환경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늘 강조했듯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염두에 뒀으면 합니다.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되, 그러나 현실 상황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자세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미래를 좀더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 5년 후 또는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한번 글로 써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매일 쳐다봤으면 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중간 중간 난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지점을 뚜렷이 정해 놓으면 이러한 것들이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또한 인생이 아닐까요? -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가입을 비롯해 사회공헌 활동이 상당한데, 연유가 있습니까. 몇 년 전 신과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전북일보 칼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 동생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살려달라고 빌면서 신께 약속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주위에 많은 분들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저도 거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한화그룹에서는 대다수의 임직원들이 사회공헌활동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데 이는 그룹 최고경영자의 철학이 기업문화로 자리잡은 결과로 생각합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룹 최고경영자께서 많은 선행을 하고 계시니 저도 당연히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회사에서 행하는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회비를 걷어서 정기적으로 하고 있구요, 그동안 진행해온 것을 바탕으로 올 상반기내에 아예 사단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은 지인인 장덕흠 사장과 어울리다 결심했는데, 기왕이면 고향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주에 직접 연락해서 가입한 것입니다. 덕분에 김제출신 효녀가수 현숙 등 국내 수많은 훌륭하신 분들과 교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지요. (그는 2016년,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전북지역 직장인 회원이 됐다.) - 대기업의 시각에서 바라본 새만금의 가능성, 어느 정도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성이야 무궁무진하지요. 다만 그 가능성을 국내 산업이나 전북 발전과 어떻게 연결해 구체화하느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큰 그림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 삽을 뜬지 30년, 준공된 지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이상적인 그림만을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일단 조금씩이라도 채워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해외 투자도 들어오고 국내 기업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견해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수상태양광 사업을 시작한 것은 적절한 의사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각별한 나눔과 배려 다양한 나눔 활동 실천' 1963년 장수 번암 출생. 장수 번암중-전주고-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88년 한화그룹에 입사해 한화손해보험 법인마케팅담당법인영업부문장과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2020년 계열사인 한화에스테이트 대표에 취임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홍익대 경영학 석사, 연세대 최고경영자과정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등을 수료할 정도로 학구열이 높다. 서비스 마인드와 조직관리 역량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나눔과 배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각별하다. 재경 장수 출신 모임인 벽계포럼 회원들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고향 후배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1억원 이상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전북지역 회원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나눔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또 그룹에서 시행하는 봉사활동은 물론 직원 승진과 수상 기념, 직급별 단합 등 각종 명분으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엔 미담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생각에 3년 동안 숨은 선행자들을 발굴해 매주 블로그에 올린 글과 전북일보 칼럼을 묶어 미생(美生)이야기-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이란 책을 발간했다.

  • 기획
  • 김준호
  • 2021.02.22 16:25

[뉴스와 인물] 윤방섭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실질적 도움 되는 조직 만들겠다“

전주상공회의소 제24대 회장에 윤방섭 삼화건설사 회장이 당선됐다. 전북지역 최대 경제단체인 전주상의는 22일부터 윤방섭 체제가 시작된다. 윤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이번 회장 선거는 전주상의 86년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인 선거였다. 3명의 후보가 막판까지 양보 없는 레이스를 벌였고, 본선 투표에서 당선자가 결정되지 않아 2차 결선투표까지 치렀다. 결선투표에서는 후보 2명이 45 대 45로 동점표가 나와 연장자를 우선한다는 규정에 따라 생년월일까지 따져야 했다. 윤 회장과 경쟁자의 출생 차이는 불과 1달이었다. 극적으로 전주상의 수장이 된 윤 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초지일관 혁신을 강조했다. 쇠퇴하는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고, 지역 기업이 성장하려면 전주상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론이다. 젊은 기업가들 사이에 동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전주상의 무용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이 같이 혁신을 강조하는 과정에 전주상의 원로 회원들의 눈총을 사기도 했다. 선거가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결국 윤 회장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회장에 당선됐다. 선거과정에서 체중이 5㎏ 줄고, 선거 직후 병원에서 수액까지 맞았다는 그를 만나봤다. 앞으로 3년 간 전주상공회의소를 이끌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윤방섭 회장 - 전주상의 회장에 당선된 소감은. 당선 기쁨보다는 현재 코로나19와 경제 침체 등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상공인들을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이 밀려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상공인들이 성원해 준 큰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회원님들과 함께 전주상공회의소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다짐하고 있다. 전주상공회의소가 새로운 출발과 함께 전북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희망을 담겠다. - 앞으로 조직을 이끄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이번 선거를 통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화합을 통한 상공인들의 단합을 이루겠다. 지역 상공인 대변자 역할에 충실해 지역사회가 동반 성장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또 철저한 조직 혁신을 통해 상공인이 주인으로 대접 받는 전주상공회의소를 만들어 나가겠다. 특히 상공회의소 설립목적인 상공인의 권익보호를 최우선적인 핵심목표로 추진하겠다. 나아가 전주상공회의소 100년 발전을 위한 주춧돌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 회장 선거가 박빙의 승부였다. 결과를 예상했나.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했다. 과반 이상으로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전주상공회의소 발전에 대한 믿음과 각오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라고 했다. 다른 의견이 있다고 해도 상대방에 의견을 존중하고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며 고쳐나가겠다.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 번 끝까지 선전한 두 후보자께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 - 선거 과정에서 갈등이 없지 않았다. 내부결속 방안이 있다면. 이제 선거는 끝났다. 선거 기간 중 다양한 의견을 표출한 것은 모두 다 전주상공회의 발전을 위한 고견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든 갈등을 내려놓고 화합과 단결 속에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 원로 상공인은 물론 다양한 업종에 회원님을 직접 찾아뵙고 고견을 구하겠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겠다. 회원이 중심이 되고 회원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선거 공약과 제도 개선을 차질 없이 수행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3년 간 전주상공회의소를 이끌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윤방섭 회장 - 오래도록 기업 활동을 했다. 가치를 두는 일이 있다면. 인생을 뒤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있다. 인생에서 위기도 있었다. 아픔으로 절망할 때 비로소 많은 것을 깨달음을 얻는 것 같다. 특히 사업가는 나눔문화를 실천하는 하는 것이 기본 정신이라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불우이웃돕기와 장학금사업 등을 비롯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북 15호로 아너소사이어티(1억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으로 가입했고, 아들도 59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항상 봉사라는 뜻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겠다. - 기업 활동을 하며 힘들었던 일은. 40년 넘게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 좌절을 겪었다. 개인 능력을 벗어나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차별을 받은 적도 있다. 하소연 할 수 없는 수많은 위기도 있었지만 사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다. 10년 전 불치병으로 3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살면서 가장 큰 투자는 자기 자신의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다. - 전주상의 회원과 직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나를 성원해 주고 지지해 준 모든 회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출마의 변에서도 밝힌 것과 같이 나도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며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편안하고 안락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 길이 험하고 힘들어도 인생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내가 가진 경험과 열정을 모두 쏟아 상공인과 전주상의 번영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흔들리지 않고 본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전주상의 회원과 직원들께 진심으로 고맙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초심을 잊지 않겠다. 이제는 갈등을 넘어 화합과 소통으로 우리 모든 상공인이 하나가 돼 전주상의가 대한민국 제일 경제단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전주상의를 향한 도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부탁한다. 코로나19 등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기획
  • 강인
  • 2021.02.21 18:21

[김원용 선임기자의 전북 핫 피-플(people & place)] 걷기와 독서가 일상인 신정일 우리 땅 걷기 이사장

온통 책이다. 화장실만 빼고 집 안 전체가 책 병풍을 쳤다. 동서고금의 책들이 망라됐다. 웬만한 공공 도서관을 뺨치는 장서 규모다(1만5000권). 문화사학자 신정일 씨가 사는 전주시 진북동 아파트 주거 공간이 그렇다. 코로나 시대, 도보여행가인 그에게 숨통을 틀 수 있는 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으나 막상 책이 길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기실 신 씨에게 책과 길은 한 몸이다. 그가 자주 쓰는 말도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다. 실제 지금의 도보여행가로 유명 인사가 되기 전부터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던 그에게 위안이 됐던 게 책이었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카프카,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의 글들 모두 청소년기 호롱불 밑에서 읽은 자산이다. 그는 남들이 기억하기 싫어하는 군대시절을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으로 여긴다. 그는 포경선 4년을 탄 경험을 바탕으로 <백경>을 쓴 허먼 멜빌의 내게 고래잡이 4년은 하버드대이자 예일대였다로 군대를 떠올린다. 군중문고를 만들어 군대에서 사서 아닌 사서 역할을 했던 그는 군대가 아니었으면 책만 읽는 반거충이가 됐을 것이란다. 제대 후 곧바로 서울 종로서적을 찾아 군대에서 모은 월급 모두 책 구입에 사용한 그는 그 서점에 자신의 저서가 꽂히는 꿈을 꿨다. 그가 쓴 책만도 100권이 넘으며, 책 인세로 먹고 살 수 있는 인디라이터까지 됐으니 그 이상의 꿈을 이룬 셈이다.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길이 바탕이다. <신 택리지> <한국의 사찰 답사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왕릉 가는 길> 등. 도보답사를 통해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한국 10대 강, 한국의 산 500여 곳,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한 30여년의 경험이 이 책들에 버무려졌다. 2005년 사단법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를 만들어 우리 땅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의 속살들을 안내하는 신정일 이사장에게 걷기란 무엇일까. 곧 철학이란다. 사람들은 걸음을 떼면서부터 온갖 사물과 사람을 만나고, 역사와 문화를 만난다. 더 중요한 것은 걷기를 통해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다. 루소는 철학의 시작을 발이라고 했다. 발을 떼면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 모든 사물들이 물음을 준다. 철학은 물음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고 했고, 발로 쓴다는 니체나, 견문이 넓어야 안목이 넓다는 주자의 말도 걷기를 통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옛날의 현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을 때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칸트 니체 헤세도 걸으면서 학문을 완성했다. 도보여행가 신정일 씨가 책으로 둘러싸인 자택에서 '길이 집이요 집이 길이다'라며 걸으면서 얻은 해안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오세림 기자 - 걷기의 매력이라면. 오래 전 낙동강을 혼자 걸었을 때, 첫날 64킬로, 그 다음날 40킬로를 걸었다. 발이 붓고 몸이 지쳤어도 계속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늘 새롭다. 언제 봤던 것도 오늘의 그것이 아니다. 길을 나서면 모든 순간이 기적이다. 앙드레 지드도현자란 바라보는 모든 것을 경탄하는 사람이라고 <지상의 양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감흥과 경탄을 자아낼 수 있는 자연과 만나도록 하는 게 걷기의 매력이다. - 신 이사장께 길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나에게 길이 집이고 집이 길이다. 그리 생각하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인 게 우주 전체인 걸로 알고 꿈으로 삼는 게 좀스럽게 보인다. 세상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땅 걷기 단체를 이끌면서 외국에 나가면 왜 남의 땅 가냐고 하는데, 어디든 내가 밟는 순간 그건 우리 땅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우주에서 왔다고 했단다. 넓게 바라봐야 한다. - 보통은 그런 깊은 철학 차원이 아닌, 건강을 위해 걷기를 한다. 단체를 이끌다보면 아무래도 뒤처지는 사람도 있을 텐데. 회원 중 아픈 사람이 많다. 걷는 게 치유다. 처음에 힘들어한다. 그럴 때 우리가 일생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게 걷는 것이라는 말로 격려한다. 김수영 시인의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라는 시구나, 비가 내릴 때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 하면 비가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는 시구도 동원한다. - 걷기 방식은 따로 있는가. 걷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만 하더라도 춤을 추듯 걷는다거나 술 취한 사람처럼 걷는다고 한다. 방은진 영화감독이 다큐를 찍을 때 나보고 새끼노루처럼 걷는단다. 걷기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해찰하면서 걸어라고 권하고 싶다. 해찰해야 못보던 걸 보게 된다. 죽기살기로 걷는다면 사물을 보지 못한다. 육신만이 아닌 정신도 건강해야 진짜 건강해진다. 그러려면 남의 걸음을 의식할 필요 없다. - 요즘도 걷기 계속하나. 올 다녀온 곳을 소개해달라. 주중에 집필하고 주말 길을 떠난다. 올들어 매월당 선생의 흔적을 찾아 충남 보령의 무량사를 다녀왔고, 논산의 성삼문 묘와 견훤 왕릉, 쌍계사 일대를 둘러봤다. 엊그제는 서천의 홍원항와 무창포 해안을 걸었다. 주말 1박 혹은 2박을 해왔는데, 요즘은 대부분 단일 코스다. - 본인이 이끌고 있는 우리 땅 걷기는 어떤 조직인가. 2005년 조직됐으며, 현재 회원 수는 6500명이다. 별도 사무실이나 조직 없이 온라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활동을 중단했으며, 코로나 이전에 많을 때는 400~500명까지 걷기에 참여했다. 회원들을 구속하는 어떤 일도 벌이지 않고 자력갱생을 외친다. 통제를 하는 순간 내 자신도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 좋은 길을 많이 만났을 텐데 도내 대표적인 길 몇 개를 꼽는다면. 도심 속에 가장 아름다운 길은 전주 건지산 길이다. 도시 안에 그리 나지막하면서도 참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아카시아 등 온갖 나무를 품고 있다. 국립산림문화유산으로 추천했다. 변산 마실길도 참 좋은 길이다. 바람으로 빗질하면서 걷을 수 있는, 동남풍을 맞으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 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적으로 60개 국가 명승길을 제안했다. 전북에 명승지를 만든다면. 정여립 생가에서 소양 웅치전적지-죽도로 가는 길을 묶어 역사가 있는 길을 명승으로 지정하면 좋겠다. 부안 마실길은 현재 바닷가로만 되어 있는 데 내변산 길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익산에서는 왕궁탑에서 시작해 동부도리, 쌍릉, 미륵사지, 연동리 석불, 여산 동헌, 천주교 성지, 가람 생가, 소세양 묘를 연결하는 미륵산 둘레길을 만들지 않는 게 아쉽다. 남원은 춘향이만 사랑하지 말고 만복사저포기의 배경지를 자산삼아 사랑길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 기획
  • 김원용
  • 2021.02.15 17:25

[뉴스와 인물] 허태웅 농진청장 “5년 안에 디지털농업 실용화 된다“

최근 농촌은 고질적인 낙후에 인력난과 고령화가 더해져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첨단기술을 농업에 적용해 자동화 하는 디지털농업이 주목 받고 있다. 허태웅(56) 농촌진흥청장은 5년 안에 디지털농업이 우리 농촌에 자리 잡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농업의 규모화와 자동화를 통해 농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다. 여기에 청년농 육성으로 농촌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청년농 육성의 중심에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이 있다. 농수산대학 졸업생들이 전국 농촌으로 나가 농촌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으면 사정이 달라질 거라는 것이 허 청장 설명이다. 많은 이들이 농촌의 어려움을 이야기 할 때,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 하는 허 청장을 만나봤다. 허태웅 농촌진흥청장이 지난 4일 전북일보 인터뷰 중 디지털농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농촌진흥청에 대해 소개해 달라. 농촌진흥청은 1962년 개청 이래 농업과 농촌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실용적 기술 개발과 확산에 노력해오고 있다. 주곡의 자급을 달성한 녹색혁명, 사계절 신선한 농산물을 식탁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한 백색혁명,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한 스마트 농업혁신 등을 이끌어 왔다. 농업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개발된 기술을 현장에 보급하고, 산업화를 지원하며 개도국에 우리의 농업기술을 전파하고 있다. - 정부에서 한국판 뉴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진청에 강조되는 사업이 있나.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조기 극복하고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중심 투자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봉쇄조치 과정에서 식량안보 문제가 대두되며 농식품 분야 투자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식량안보와 생산에서 소비까지 먹거리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생산체계를 구축하겠다. - 디지털농업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면. 디지털농업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고효율 스마트 정밀농업을 구현하는 것이다. 농업의 전 과정을 자동화 해서 최적의 의사결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농사의 편리성과 품질향상을 극대화 한다. 데이터 기반의 첨단 디지털농업은 앞으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열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네덜란드와 미국 등 농업 선진국들은 데이터 관리분석활용을 종합 지원하며 농업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 디지털농업에 대해 강조해 왔다. 세부 추진 계획이 있나. 디지털농업 촉진을 위해 지난해 11월 농진청 내부에 디지털농업추진단을 출범시켰다. 데이터 수집과 이용을 위한 데이터 생태계 구축하고 AI를 활용해 생산유통소비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농업 전반 디지털화를 촉진하기 위해 IoT 기반 데이터 수집과 자동화, 곡물 생산성 향상, 원예작물 품질 향상, 가축 정밀사양 등 기술을 개발 중이다. 기존 시설농업 중심의 디지털농업기술 개발에서 노지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 농촌 활성화를 위한 양대 과제로 디지털농업과 청년농 육성을 꼽았다. 청년농 육성을 위한 계획이 있다면. 농가인구 감소와 농촌 고령화는 농업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이면서, 열정과 역량 있는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기도 하다. 청년농업인 1만 명 육성을 목표로 영농정착과 기술창업을 지원하고, 디지털 종합기술지원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창농 준비부터 정착까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술을 진단할 수 있는 원스톱 종합정보제공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기존 사업에 대한 청년농업인 참여를 확대하고, 청년농업인의 아이디가 현실화 될 수 있는 신규 사업도 발굴할 예정이다. 인재 육성과 청년 창업을 위한 청년농업육성팀(가칭)을 신설하고, 지방농촌진흥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기관경진과 포상 제도를 확대할 방침이다. - 우리 농업기술이 개발도상국에 전파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농림식품기술 수준은 세계 선도 그룹에 속한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현재 22개국에 KOPIA센터를 설치해 농업기술 전파와 농가실증, 시범마을 조성 등을 진행하고 있다. KAFACI에서 추진 중인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은 아프리카 식량문제 해결의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나라에서 K-농업 전파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우리 애호박 요리가 가능해졌다고 하던데. 2010년에 이어 10년 만에 남극 세종과학기지 대원들에게 신선 채소를 공급할 식물공장을 지난해 10월 말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실어 보냈다. 상추와 쑥갓 같은 잎채소류는 물론 기존 식물공장에서 재배가 어려웠던 고추, 토마토, 애호박 등 열매채소까지 재배가 가능해졌다. 식물공장은 남극에 1월 중순쯤 도착해 설치 과정을 거쳐 4월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하루 1.5~2kg의 엽채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지만 실제 영농현장의 어려움이 분명히 있다. 소통창구가 열려 있나. 농진청 청장실은 농업인들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지금은 코로나19가 심각해 접견을 자제하고 있지만, 농업인 단체가 수시로 찾아와 애로사항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줬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매주 1~3회 영농현장을 찾아 농업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술 개발에 반영할 것이다. 농업기술상담 콜센터를 운영해 농업기술 관련 각종 민원상담과 현장기술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 기획
  • 강인
  • 2021.02.14 18:10

[뉴스와 인물] 진옥동 신한은행장 “디지털 전환, 미래 경쟁력이자 생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한창이다. 기업들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플랫폼을 구축해 전통적인 운영 방식과 서비스 등을 혁신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전통적인 대면 영업구조에서 벗어나는 디지털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며 사활을 걸고 있다. 기존 방식의 해체 수준에 가까운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은행간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속도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 경쟁의 전선에 전북출신이 있다. 디지털 전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신한은행의 진옥동 행장(60사진임실). 진 행장은 지난 2019년 은행장에 첫 취임한 이후부터 미래 경쟁력이자, 은행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디지털 전환을 본격 추진해 왔다. 올해부터 2기 임기를 맞은 그는 지금도 늦었다. 디지털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며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연임됐으며, 임기는 오는 2022년 말까지이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 먼저, 연임을 축하드립니다. 임기 2기를 맞는 올해의 목표는. 취임 이후 강조했던 고객 First를 기반으로 금융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와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농구에 한쪽 다리는 축으로 고정하고 다른쪽 다리로 회전하며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피보팅이라는 동작이 있습니다. 이를 은행에 적용해 금융의 본원적 경쟁력을 축으로 삼고 다른 한쪽으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을 상대로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는 거침없는 피보팅을 통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올 한 해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을 실행함과 동시에 어떤 위기에도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또한 이종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데이터와 AI 역량 개발과 함께 인재 영입을 통한 미래역량 육성 계획도 단계적으로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 은행 내에서는 일본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주재원 시절에 거둔 성과 때문이기도 한데,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국내 은행들이 일본 현지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상황에서 2007년 일본정부의 외국계 은행 대상 은행업 라이선스 교부 소식을 듣고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일본 내에서 현지 법인 라이선스를 받아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SBJ은행(신한은행의 일본 현지 법인)이 유일할 정도로 일본 현지 법인 설립 및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법인 설립 이후 직원 모두의 노력을 통해 리테일 특화 상품을 출시해 성공을 거두고 기업IB 시장에 과감히 진출해 사업영업을 크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 지난 2019년 은행장 취임 때부터 디지털 전환에 집중해 왔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재는 고객의 니즈가 수시로 변하는 속도의 경제시대 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발 빠른 변신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체력이 디지털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곧 미래 경쟁력이자, 향후 은행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취임 이후, 크게 두 가지 방향성 아래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집중 추진해왔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금융업 변화의 기준을 고객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미래를 위한 것인가?로 세우고, 디지털 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준비 작업을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 2019년 당시 취임사를 통해 돈키호테를 자처하며 디지털 인력들의 유목민화를 강조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진정한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접근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돈키호테라는 화두를 제시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기존 금융 산업은 전통적 은행 간의 경쟁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기술과의 경쟁으로 변화했습니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 전혀 다른 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만의 사고를 벗어나 새로운 차원의 아이디어들이 구현돼야 하고, 이것이 고객의 관점에서 실현돼야 하기 때문에 돈키호테, 유목민이라는 화두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이같은 기조는 계속 유지되는지. 경쟁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때문에 유지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통적 금융 산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금융상품의 단순 공급자로 쇠퇴할 것이라 보여지기 때문에 디지털IT 인력을 중심으로 한 금융의 재편을 선도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러한 생각은 유지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 디지털 전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계기가 있었습니까. 일본 현지법인 SBJ은행은 지점이 10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점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2009년 설립 당시부터 예금뿐만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업무를 최대한 비대면 업무로의 전환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현재 예금의 90%정도가 비대면으로 일본 전국에서 예치될 정도로 비대면화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장소와 시간, 인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낸 결과이며, 향후 은행이 디지털화로 나아갈 방향이라 생각했습니다. - 국내 은행의 디지털 전환 수준은 어느정도 입니까. 뱅킹 IT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위치합니다. 초기에는 기존의 은행원들을 IT 분야에 배치했는데, 은행 업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짜니까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IT분야의 인력을 뽑아서 은행원으로 써야 합니다. IT인력들이 현장에서 직접 업무를 경험하면서 개선점을 찾고 이를 직접 개선한다면 더 빠르고 적합한 디지털화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동안 추진해 왔던 디지털 전환 작업을 소개해 주신다면. 2030년 은행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고객과의 접점을 지속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디지털 금융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Full Digital Banking 및 생활금융 플랫폼을 통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 My자산을 통한 재무관리까지 하나하나 미래 금융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SOL Biz 등 특정 고객군(SOHO 등)을 위한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적용 범주를 점차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시점장소방식을 통해 은행을 거래할 수 있도록 영업 환경을 새로이 구축했습니다. 금융 접근성 확대를 통한 고객중심 영업 추진을 위해 고객이 화상상담 창구에서 전문 직원과 원격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는 미래형 영업점인 디지택트 브렌치를 오픈했으며, 직원이 업무용 테블렛 PC STAB으로 지점 외 장소에서도 은행 업무처리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 대면 영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어 디지털 고객에 대한 종합상담, 전담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조직인 디지털 영업부를 출범했습니다. 디지털 영업부는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는 비대면 고객을 대상으로 대면 채널과 동일한 수준의 Human Touch를 제공하는 디지털 점포로, 인터넷 전문은행 방식의 영업 추진은 물론 전통은행이 가진 강점을 활용한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래 금융의 청사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현재 준비 중이거나 앞으로 선보일 서비스는 무엇인지. 향후 경쟁구도가 금융-금융간 경쟁에서 플랫폼(빅테크)-플랫폼간 경쟁으로 격화될 것을 고려해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추진 중입니다. 먼저, 미래 잠재 고객인 1020 세대의 조기 선점을 위한 브랜딩으로 신한SOL 내 20대 전용 브랜드 Hey Young을 통해 특화 서비스 및 이벤트를 제공 중이며, 현재 210만 명이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한 모바일 쿠폰 마켓은 매일 1만 명의 고객이 유입되는 등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향후 10대를 위한 특화 브랜드 SOL mini를 출시하는 등 신성장 영역에 자원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또한 금융업 경계를 뛰어넘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데이터 기반 플랫폼, O2O 전략 플랫폼 등), 신기술 기반의 혁신 서비스 발굴, 세종 스마트시티 컨소시엄 참여, 디지털 합작법인 설립 등 중장기 전략 사업도 지속 추진 중입니다. 이러한 전 방위적 디지털 전환 노력을 통해 고객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미래 은행의 성공적인 표준 모델을 완성하는 등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입니다. -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가치는 무엇입니까. 고객중심입니다. 신한은행이 창립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조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신한의 성장을 함께하며 이 진리가 옳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이러한 가치가 향후 신한의 더 나은 성장과 도약을 이끌 것이라 확신합니다. - 더불어 베트남 법인을 중심으로 한 해외 협력사업도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글로벌사업은 국내의 어려워지는 금융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신한은행의 주요 사업입니다 기존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영업의 효율성을 한층 더 강화할 예정입니다. 비대면 실명확인을 활용한 비대면 신규와 플랫폼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상품개발도 확대해 나가며 지난해 대비 15% 자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한편 글로벌 저금리 확대 기조에 따라 비이자비지니스에 대한 필요성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선진금융시장에서 채권 운영에 대한 노하우 확대 등 글로벌 비즈니스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위해 그룹의 역량을 연결해 도전적인 노력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 금융분야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해 줄 말은 금융산업은 개인 고객의 자산관리와 기업의 경영활동을 돕는 금융지원, 외환, 자금 등 전통적인 산업 기반 위에 AI(인공지능), 블록체인, 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신이 더해져 산업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 분야입니다. 금융산업이 직면한 변화를 선도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이 하지 않았던 경험을 했던 사람은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이고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경험의 개체수를 가지고 있는가가 그 사람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디지털 역량을 쌓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은행에서는 고객 행동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을 수행하고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을 영업 현장에 활용하는 등 영업 및 업무방식의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미래 역량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 전북에서는 제3금융중심지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금융인의 관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입니까. 우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이전을 계기로 제3금융중심지 지정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지방금융도시 조성을 통한 지방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이전은 단순한 기관 이전이 아닌 자산운용을 기반으로 한 직접 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북도가 금융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큰 모멘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3금융중심지로서의 지정과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물적인적 금융 인프라 환경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례개정 및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한 민간투자에 대한 법적제도적 지원책을 강화하고, 금융전문인력 확보와 핀테크 업체 등 첨단 금융기술 스타트업의 육성노력 등 금융산업분야의 생태계 조성을 통해 뛰어난 젊은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제3금융 중심지 지정과 함께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금융허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금융중심지 지정과 관련해 시급히 보완해야 할 과제를 꼽는다면. 전북 출장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 국민연금공단인데, 이들로부터 서울에서 한 번 가려면 힘들다라는 말이 들립니다. 교통의 편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최소한 KTX 익산역에서 국민연금까지 갈 수 있는 셔틀버스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다는 것이죠. 그 것(교통의 편리성)도 갖추지 않으면서 금융중심지를 하려느냐는 말도 나오는데, 허브라는 것은 출장자들이 가기 쉽도록 접근성이 좋아야 됩니다. 불평이 나오면 곤란합니다. 중앙에서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멀고 불편함에 대한 것이지, 지역색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기획
  • 김준호
  • 2021.02.07 18:21

[조상진 객원논설위원의 노년의 꿈] ③ 노인 빈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019년 미국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세계 3대 영화제를 휩쓸었다. 한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인 이 영화는 다분히 한국적 소재를 다루었다. 이 영화에 세계가 주목한 것은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대한 공감이었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세계적인 화두라는 반증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코로나19의 기습이 장기화하면서 더 심화되고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2020년 10월에 조사한 코로나19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국민 53.0%가 경제적 불평등을 첫 번째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이에 앞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당대 불평등의 원인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커진 자본소득에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본소득의 세습이 사회계층간 사다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왜 빈부격차가 노인세대, 특히 7080대에 심각할까. 오늘의 노인세대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등 가난과 강압을 견디며 역사의 강을 건너왔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궁핍한 나라에서 태어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세대다.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부모세대를 봉양하고 자녀세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러나 이들 노인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노인세대의 절반이 빈곤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우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은 OECD 가입국 중에서 독보적 1위라는 명예롭지 못한 순위에 올라있다. [그림 1]과 같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노인 빈곤율(66세 이상)은 44.0%로 OECD 국가 평균 14.8%보다 현저히 높다. 반면 우리나라 근로연령층의 빈곤율은 OECD 평균과 큰 차이가 없다. 시장소득 기준으로 65세 이상 빈곤율은 61.7%로 20대 10.3%보다 6배 정도 높다. 정부가 개입해서 복지정책을 편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20대가 9.2%로 소폭 하락한데 비해 65세 이상은 46.9%로 낙폭이 컸다. 결국 우리나라 빈곤문제는 젊은 층이 아닌 노인의 빈곤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연구위원은 원인을 4가지로 꼽는다. 급속한 고령화 진행과 취약한 소득원, 노후 준비의 부족, 공적 연금 미흡 등이 그것이다. 높은 노인 빈곤율은 국가적으로 노동 생산성 하락 등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이 되고, 사회적으로 높은 노인 자살율과 연결된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2018년 자살율은 26.6명으로 OECD 평균 11.5명(2016년) 보다 2배 이상 높다. 특히 60대는 32.9명, 70대는 48.9명, 80대 이상은 69.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은 또한 건강 불평등도 초래한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대수명이 최대 7년까지 차이가 난다. 한편 노인들의 경제활동 당시 근로형태는 현재 빈곤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7080대 이상 노인들이 경제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 전후는 근로조건이 열악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이 말해주듯 노동시장 대부분이 생산직건설직으로 저임금 구조였다. 불평등이 출생과 경제활동 당시의 사회적 지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 빈곤문제의 해법은 무엇이 있나. 노인 빈곤은 계층별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이제 막 노인에 진입한 베이비부머는 학력이나 소득, 디지털 활용 능력 등이 이전 노인과 크게 다르다. 또 농촌지역보다 도시지역 노인의 빈곤해질 확률이 2.064배(경상북도의 경우) 더 높다. 해법은 3가지 정도다. 첫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 대상과 지원수준을 전반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생계급여의 경우 수급자 비율이 전체 노인의 5.4%에 불과하다. 물론 65세 미만 1.7%에 비해 3배에 이르지만 이 비율을 10%까지 늘려야 한다. 또 보장 수준도 3040만원에 그치는데 필수지출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북의 경우 2019년 수급자는 3만3406명으로 전국의 5.3%를 차지한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빈곤층이 많다는 뜻이다. 이중 여성노인 비율이 66.6%로 남성의 2배에 달한다. 둘째,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노인들에게 연금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점이다. 서구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1988년 뒤늦게 국민연금을 도입,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평균가입기간이 짧다. 이를 보충하기 위한 제도가 기초연금이다. 기초연금은 지급대상이 OECD 국가 중 가장 광범위하지만 1인당 급여수준은 기장 낮다. 2014년 20만원에서 2018년 9월 25만원, 2020년 최대 30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지급액을 좀 더 늘리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셋째, 노인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인일자리가 대폭 늘었으나 한 달 30시간 일하고 27만원을 받는 공익형 중심이다. 이러한 일자리도 얻지 못한 취업희망자가 아직도 상당수에 이른다. 나아가 좀더 수익이 높은 민간형 일자리 개발이 긴요하다.

  • 기획
  • 기고
  • 2021.02.03 17:27

[뚜벅뚜벅 전북여행] 군산 대야 오일장, “질 좋고 값싼 재료에 인심은 덤! 대야 오일장 놀러 오세요”

며칠 뒤면 우리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 찾아옵니다. 다들 설날 음식 준비는 잘하셨나요? 코로나 시국이라 가족 모임이 어려울 수 있겠는데요. 랜선으로라도 손주에게 무엇을 먹이면 좋을지, 부모님께 어떤 보양식을 해드릴지 나름대로 고민이 많으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게 가족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그러한 고민을 해결해드리기 위해 군산 대야면에서 열린 오일장에 다녀왔습니다. 설날 음식 준비뿐만 아니라 인심도 좋고 볼거리도 많아 가족들과 함께 와보면 좋을 그런 곳입니다. 단, 철저한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 아시죠? 구매할 품목을 미리 적어서 시장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밀집된 장소는 피하고, 시음 등 감염 가능성이 큰 행위는 하지 않는 등 거리두기 실천으로 안전하게 장보기를 하기길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대야 오일장, 저와 함께 가보실까요? 매월 1일, 6일에 장을 서는 대야 오일장은 전국적으로 찾는 군산 유일의 오일장으로 유명세를 알리고 있습니다. 타지 사람이 군산을 방문할 때 꼭 들리는 필수 코스이기도 하고 군산 사람들도 장날이 되면 많이 찾아와서 항상 붐비는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군산시에서도 교통이 혼잡하다는 안내문을 써놓았군요.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과일들이었습니다. 제철 과일인 딸기가 있고 감, 사과 등도 있습니다. 딸기를 육안상으로 봤을 때 상태가 매우 좋아 보였는데 2상자에 만 원이라니 가성비 좋은 소비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상인분께서 제가 과일을 찍고 있으니 사과가 완전히 꿀 사과라며 찍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너무 먹음직스럽지 않나요? 조금 더 가면 싱싱한 해산물도 볼 수 있습니다. 해산물 거리라고 해도 될 만큼 해산물 판매가 시장 내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각종 채소와 약재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면서 흥정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요. 단순히 팔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소비자와 상인 간 정을 나누는 모습에 시장 분위기가 참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장에 오면 길거리 음식을 빼놓을 수 없겠죠? 마스크를 써도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더라고요~ 대야 오일장에서는 유과, 족발, 국화빵, 옥수수 술빵, 핫바, 찹쌀도너츠, 찐빵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삼튀김은 이 시장에서 처음 보는데 과연 맛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다음에 한 번 기회가 되면 사 먹어봐야겠습니다. 길거리 음식은 맛 좋기로 유명한데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서 시장을 돌아보시다가 출출할 때 한 입 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아! 시국이 시국인지라 웬만하면 포장해가셔서 자가용이나 집에서 드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이외에도 생활용품, 농자재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아 철물점, 농자재 판매점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께서는 이곳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의류도 빠질 수 없는데요. 알록달록한 양말, 수면 바지 등이 인도에 가득합니다. 차에서 판매하는 상인도 계셨는데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전통시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대야 오일장 하면 많이들 알고 계실 꽈배기 노점상입니다. 부모님께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꽈배기를 하나씩 손에 쥐여 주시고는 했는데 맛이 참 좋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만드는 과정도 직접 볼 수 있어 맛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대야 오일장에 오시면 꽈배기 꼭 드셔 보시길 추천합니다~ 혹시나 시장에 오셨는데 현금을 못 준비하신 분들이 있을까요? 바로 제가 그랬는데요. 깜박 잊고 카드만 챙겨왔더라고요. 하지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시장 근처에 농협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어 간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답니다. 지금까지 대야 오일장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군산 유일의 대야 오일장에서 준비하시면 어떨까요? 볼거리, 먹거리는 물론 인심까지 좋으니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장 보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직원들이 수시로 마스크 착용 여부 확인과 발열체크를 수행 중이니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 잘 지켜서 다녀오시길 부탁하겠습니다! 대야 오일장 서는 날 : 매월 1일, 6일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대야면 대야시장로 7-1 /글사진 = 조아현(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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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02 17:19

[뉴스와 인물] 완주 출신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

의사이자 시인, 금연 운동가, 대학 교수에 이은 국립암센터 원장. 국립암센터 서홍관(63완주사진) 원장의 이력이다.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특이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길은 다르지 않고 하나의 길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모두 인간의 사랑으로 통일되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따뜻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라고 했다. 남을 해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행복, 남과 더불어 사는 행복입니다. 자신이 금연 운동에 나선 것도 이같은 배경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보건의료 전문지식을 국민들을 위해 쓰기 위함이라는 것. 올 1월 13일 국립암센터 원장 취임식에서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하는 국가암관리 정책기관으로 역할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암 예방에 주력할 것임을 강조한 그를 1월 21일 국립암센터 별관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임기는 3년.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 설립 20주년을 맞았지만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국립암센터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국립암센터는 암 전문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연구소, 병원, 국가암관리사업본부, 대학원이 한 기관 안에 있는 세계 유일의 조직입니다. 이러한 조직들의 유기적인 상호역할 관계를 통해 연구성과를 임상으로 연결시키고, 국가 정책과 연관된 암관리사업을 수행하고 교육사업까지 육성하는 등 국가중앙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암센터는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수립한 국가암관리종합계획에 따라 암 관련 사업을 추진, 사업 수행 결과 재반영을 통한 국가 주도의 계획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국가 암 선도기관으로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 국립암센터의 향후 운영 계획은. 국립암센터하면 암 치료 병원으로만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바꾸려 합니다. 국립암센터의 미션은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암예방이죠. 올해부터는 그간 주력해온 암 치료와 더불어 암 예방에 보다 주력할 계획입니다. 특히 1군 발암물질인 음주의 폐혜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동안 금연전문가로서 담배의 위해에 대해 알려왔다면, 이제는 술의 위험성에 대한 근거자료를 발굴하여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시키고자 합니다. 물론 금연의 중요성도 여전히 피력할 것이고요. 담배 가격 추가 인상, 소매점 내 담배 광고 금지 등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에 집중할 것입니다. 또, 꼭 필요한 암 검진은 늘려나가고, 과다 검진은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암환자 전문 긴급치료병상의 설치를 시작으로 2025년을 목표로 최첨단 암 치료기인 양성자 2호기 도입과 민간병원과의 차별화를 위한 희귀암 병동 건립도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 과다 검진이란 게 무엇입니까. 안 찾아도 되는 암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암을 일찍 찾는데 불필요한 게 있을 수 있겠는라고 생각하는데, 갑상선 암의 경우 불필요한 검진이 많습니다. 세계 보건기구에서 한국에서 진단하는 갑상선 암의 90%가 과다 진단이라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극단적으로 경과가 좋은 암이 갑상선 암인데, 있어도 죽지 않는 암입니다. 평생동안 죽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불구, 미리 찾아내어 수술을 받는 건 너무 큰 손실입니다. - 더불어 암 검진 중 암표지자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피 검사로 암을 찾는 것인데, 피 검사로 온갖 암을 찾는다해서 일반인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피 검사로 하는 암 표지자는 대부분 부정확합니다. 암 검사로서의 효율이 떨어지죠. 과학적으로 보면 근거가 약하고, 너무 부정확한 검사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습니다. - 이는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 등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국립암센터에는 국가 암정보센터가 있습니다. 정보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암에 관한 정보는 우리나라에서 이 곳만큼 많은 곳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정확한 암 정보 전달을 위해 국가 암정보센터를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 암 예방, 일반인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제일 중요한 게 금연입니다. 금연은 암 예방의 핵심이죠. 그 다음이 술이고, 식사입니다. 잘못된 식사도 암 원인의 30%에 달합니다. 올바른 식사는 탄 음식 안 먹고, 짜게 안 먹고,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는 것입니다. 채식위주의 소식을 해야 합니다. - 암 환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많은 환자들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해서 의사한테는 비밀로 하고 엉뚱한 것을 먹는데,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의사가 권하지 않는 것을 하면 안됩니다. - 대학(인제대)에서 강의를 하다 국립암센터로 옮겼는데. 그 즈음 한창 금연 운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당시 박재갑 초대 원장이 금연 쪽 일을 같이 하고 싶다며 저를 스카웃했죠. - 금연 운동가이기도 한데, 담배를 피운 적은 없습니까. 제가 대학에 입학할 때가 1977년인데, 그 당시는 대학에 들어가면 술 마시는 것처럼 담배도 으레 피우는 것으로 이해됐죠. 그래서 저도 11년간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전공의 시절, 담배에 대해서 발표할 기회가 있어 집중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공부하다보니 정말 담배를 핀다는 것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금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 금연에 성공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본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담뱃불은 내 생명의 끈이 타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큰 병에 걸렸을 때의 그 암담함을 생각해보고, 갑자기 쓰러지고 중풍에 걸리고 암에 걸리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 반드시 담배를 끊을 것을 권합니다. - 금연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제 자신은 금연에 성공했지만 제 진료실에는 여전히 흡연자들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료하던 고혈압 환자, 당뇨환자 등 흡연자들에게 담배를 끊도록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쉽지 않았고, 성공률도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연진료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하게 됐고, 미국연수에서 돌아온 1996년(당시 서울백병원 근무)에 금연클리닉을 개설하고 금연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요. 당시 금연운동협의회 김일순 회장님께 전화드려 같이 금연운동을 하겠다고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 뒤에 금연운동협의회에서 이사를 맡게 되었고, 2008년에는 맹광호 교수님과 함께 대한금연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금연운동협의회 회장까지 맡은 바 있습니다. - 굳이 대국민 운동에까지 참여한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금연은 국민건강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널리 알리려 한 것이죠. -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것인지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 때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서클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는 완전 운동권 서클이죠. 그 곳에서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 농촌문제, 노동문제 등 세상을 이해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야학도 했죠. 세상을 알아야 세상을 개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병원 레지던트 시절인 1987년 6월 항쟁 때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시국 선언을 주동했다. 이는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된다.) - 이후에도 사회 참여는 계속됐습니까. 87년 시국선언을 근거로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을 꾸렸죠.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이익단체이지만, 인의협은 우리들의 보건의료 전문지식을 국민들을 위해 쓰자는 것을 모토로 설립된 단체죠. 금연운동을 시작한 것도 이같은 배경이죠. 담배가 너무 해로운데, 의사들은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오면 당신 담배피면 죽어라고 한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다 죽을 때 온 사람한테 담배피면 죽어 그러는데, 그렇게 잘 아는 당신들이 미리 알려주면 안되냐고요. 그런데도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리 국민들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생각을 했죠. - 원장님이 바라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죠. 남을 해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행복, 남과 더불어 사는 행복. 그런 것을 세상에 추구하고 있지요. 그리고 공정한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가치에요.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정의가 중요한데, 그 정의는 바로 공정성입니다. 더불어 건강도 행복의 일부죠.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 환자의 건강 뿐 아니라 사회 건강성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모두 다 연결돼 있는 것이니까요. 특히 사회 불평등과 공정성 문제 등의 문제에 아주 민감합니다. 사회 공정성 문제 등 그런 것에 항상 예민하죠. - 의사 시인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 둘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접점을 찾으셨는지. 그렇습니다. 등단 당시에는 의사의 세계와 시인의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당황스러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이 완전히 상반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시는 가끔 무모하거나 비이성적인 것도 용납하는 감정의 세계처럼 느껴졌죠. 그런데 실제로 의사가 돼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모두 인간의 사랑으로 통일되더군요. 모든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통일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의사와 시인, 금연 전도사 등 별칭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온갖 일에 관심을 갖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어떤 면에서는 저 인간, 정체가 뭐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한테는 일관된 것이에요. 인간의 행복과 공정성 등등의 것들이 항상 저의 중심에 있었죠.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다양하게 보이겠지만 저한테는 일관된 행보였습니다. - 끝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평소에 빠르게 걸어다닙니다. 바쁜 일상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짬을 내서 빠른 속도로 걸어다닙니다. 매일 30분씩 산책합니다. 항상 하루에 1만보를 채우려 합니다. 생활속에서 운동하는 것이죠. 더불어 해로운 것은 안합니다. 대표적인 게 담배죠. 담배는 가장 해로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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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21.01.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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