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는가?
■ 제시문〈제시문1〉형(荊)나라 소왕(昭王) 때, 석저(石渚)라는 선비가 있었다. 사람됨이 공정하고 사사로운 정(情)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에 왕이 치안관으로 일을 보게 했다. 어느 날 길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이 생기자, 석저는 범인의 뒤를 밟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범인이 자기 아버지였다. 석저는 그대로 수레를 돌려 왕궁으로 나아갔다.살인범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에게 사사로운 정을 두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것으로 불가(不可)한 일입니다. 법을 범한 이상 벌을 받는 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입니다.석저는 이렇게 말하고 형틀에 엎드려 왕에게 죽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뒤를 좇았으나 잡지 못한 것뿐이니 어찌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할 것인가. 계속해서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하라.하지만 석저는 사양하며 말하기를,아비에게 정을 두지 않으면 효자라고 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기며 법을 굽힌다면 충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임금께서 그것을 용서하시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지만, 감히 국법을 어길 수 없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하고 형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2003 건국대 논술 기출문제 지문〈제시문2〉삶에 애착을 가지고 죽기 싫어하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려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의리에 자극을 받으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부득이합니다. 저는 불행히도 일찍 부모님을 여의었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로이 살아왔습니다. 소경께서는 제가 처자식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셨습니까? 진정한 용사라 하여 명분뿐인 절개 때문에 꼭 죽는 것은 아니며, 비겁한 사람이라 하여도 의리를 위하여 목숨을 가볍게 버리는 경우가 왜 없겠습니까? 제가 비록 비겁하고 나약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였지만 거취에 대한 분별력은 있습니다. 어떻게 몸이 속박되는 치욕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겠습니까?천한 노복이나 하비도 얼마든지 자결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저 같은 사람이 왜 자결하지 못하겠습니까? 고통을 견디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한 채 더러운 치욕을 마다하지 않은 까닭은 제 마음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는데도 하잘 것 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후세에 제 문장이 드러나지 못하면 어쩌나 한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략)이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그 무엇이 맺혀져 있었지만 그것을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볼 수 있게한 것입니다. 좌구명과 같이 눈이 없고 손자와 같이 발이 잘린 사람은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물러나 책을 저술하여 자신의 분한 생각을 펼침으로써 문장으로 자신을 드러내려한 것입니다. 저도 불손하지만 가만히 무능한 문장에 스스로를 의지하여 천하에 이리저리 흩어진 지난 이야기들을 모아 그 사건들을 대략 고찰하고 그 처음과 끝을 정리하였습니다. 아울러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고를 마치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하였습니다만, 완성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극형을 받고도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마천, 〈완역 사기 본기1〉〈제시문 3〉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인간은 그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숙고한 끝에 행해진 행동은 물론 상황을 무시한, 또는 자유를 방기한 선택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어떤 행동의 선택은 당연히 이후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자유 속에 던져진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고 자기를 새롭게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런 책임에 부합되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사는 세계 전체의 움직임과 상황으로 인해 좁혀진 선택의 가능성을 확장해서 자기를 차츰차츰 해방시키는 것이다. 발리스 듀스,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사마천 :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분노를 사 사형을 받게 될 처지에 놓이나,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을 받는 것을 선택하고 살아남는다. 이후 사마천은 역사서인 사기(史記)를 완성한다.■ 논제의 포인트 및 평가기준■ 쟁점 논제1. 논술 논제제시문〈1〉과 〈2〉에 나타난 문제상황과 인물의 대응 태도에 대해서 서술하고, 제시문〈3〉에 나타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관점에서 〈1〉와 〈2〉에 등장하는 인물의 선택에 대해 논술하시오. (1,000자 내외) * 논제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은 메일을 보내주세요(yimza@daum.net)2. 면접 논제자살의 일차적인 책임은 개인에게 있을까?(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떠나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자살의 책임에 대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 가면서 토론하기 바랍니다.)■ 쟁점 기출문제한국외국어대 2003학년도 정시 기출글 [가]에서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를 의로운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불행한 삶에 대해 당혹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사마천의 이러한 시각을 글 [나]와 글 [다]를 바탕으로 논박하시오.■ 논술문을 6단 논법으로 재구성하기■ 쟁점 관련 도서1. 표백. 2011, 장강명, 한겨레출판사2.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 2002, 발리스튜스, 개마고원■ 쟁점 관련 영화1.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한국, 박광수2. 청원. 2011, 인도, 산제이 릴라 반살리■ 학생 글과 교사 총평1. 학생 논술문제시문〈1〉에 나타난 문제 상황은 사람됨이 공정하고 사사로운 정을 모르는 석저라는 선비가 왕의 치안관을 맡아 일어난다. 살인 사건 범인의 뒤를 쫓던 석저는 범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그냥 수레를 돌려 왕궁으로 간다. 석저가 살던 시대는 유교사상인 충과 효가 으뜸으로 여겨지던 시대이다. 석저는 왕에게 사실을 고백했고 왕에게 용서를 받지만 아비에게 정을 두지 않으면 효자라고 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기며 법을 굽힌다면 충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감히 국법을 어길 수 없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제시문 〈2〉에서 사마천은 자결 또는 궁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당시 지식인이라면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자결을 선택했을 것이지만 사마천은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하고 목숨을 부지한다. 사마천에게는 마음속에 맺힌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명예롭게 죽는 것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제시문〈3〉에서는 올바른 선택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좁혀진 가능성을 확장하고 개인을 해방시키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제시문〈3〉을 참고한다면 제시문〈1〉의 석저는 책임에 부합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석저는 자신이 사는 세계 전체의 움직임과 상황인 충, 효로 인해 좁혀진 선택 안에서 가능성을 확장해서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좁혀진 선택의 범위 안에서만 선택하려고 했다. 그는 결국 좁은 선택 안에서 충돌하는 가치를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는데 그의 선택은 이후에 아무런 유익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갈등을 겪고 있던 그는 죽었지만 현실 속에서 보면 아버지의 죄가 사라진 것도, 그가 법을 지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저의 선택은 책임에 부합되지 않는 무책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마천은 자신이 살던 사회의 움직임과 상황 속에 갇히지 않고 가능성을 확장해 선택을 했다. 그는 당시 지식인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던 명분이 아닌 자아실현을 선택했다. 사마천은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했지만 지금까지도 유명한 역사서 사기를 완성함으로써 후세에 정의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뜻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책임에 부합되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본다. 김선우(임실고 2학년)2. 교사 총평이번 논술문의 주제는 죽음은 바람직한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있는가이다. 죽음은 더욱 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고, 때론 감동적인 선택일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축소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독해력제시문 〈1〉은 가치의 갈등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 석저라는 인물의 이야기이고, 제시문 〈2〉는 죽음보다 더한 시련을 통해 자신이 추구한 가치를 실현했던 사마천의 글이다. 그리고 제시문 〈3〉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한 올바른 선택을 강조한 글이다. 학생의 글은 이러한 제시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서술하고 있다. - 논리력이번 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제시문 〈1〉과 〈2〉에 나타난 문제상황과 인물의 대응 태도를 서술해야 한다. 다음으로 제시문 〈3〉의 관점을 참조하여 〈1〉과 〈2〉에 등장하는 인물의 선택에 대해 논술해야 한다. 자살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행위이다. 앞에서도 거론했듯이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등의 영웅적인 자살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제에서 요구하는 것은 제시문 〈3〉에 드러난 관점을 바탕으로 논술하는 것이며, 따라서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통한 가능성의 범위를 넓힌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살은 비판받을 수 있다. 김선우 학생의 논지는 이와 같은 논제의 요구에 매우 잘 부합한다. - 표현력전반적으로 논제의 방향에 맞게 논술했으며, 문장의 길이나 주술 호응에 있어서도 무난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제시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쓴 부분이 많은 것은 아쉽다. 논술은 제시문의 내용을 선택적으로 변용하여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제시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의 문장으로 바꿔서 서술한다면 더 좋은 논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