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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기사

[익산 만경강 유역 조류 모니터링 및 생태문화하천 만들기 프로젝트] ⑤ 만경강의 역사와 생태계를 담고 있는 ‘익산 만경강 문화관’

만경교 북쪽 목천삼거리 인근에 연면적 1686㎡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올해 3월 개관
만경강의 시간·자연·문화 등 3가지 테마로 만경강의 역사·문화·생태를 전부 아우르는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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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2일 익산 만경강 문화관 옥상에서 바라본 남서쪽 만경강 모습/사진=송승욱 기자

고대부터 비옥한 호남평야의 젖줄이자 수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

전북지역의 넓은 들 가운데를 흐르며 농경문화의 거점이자 풍요의 상징이었던 물줄기.

생물 다양성과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어 자연 생태의 보고로 불리는 하천.

만경강은 강물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치수(治水)와 이수(利水)를 넘어 이제 강물을 통해 휴식, 관광, 여가 등을 즐길 수 있는 친수(親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익산 만경강 문화관은 그러한 만경강의 역사와 현재, 문화와 생태 등을 아우르는 거점이다.

익산 만경강 유역 조류 모니터링 및 생태문화하천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 중인 익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함께 만경강 문화관이 담고 있는 만경강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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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9월 22일 익산 만경강 문화관 1층 역사관에서 유칠선 지역생태연구가로부터 만경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송승욱 기자

△만경강이란 이름은?

만경강 문화관 1층 역사관 초입에 만경강 이름의 유래가 설명돼 있다.

전북지역의 중심을 흐르며 고대부터 농경문화의 거점이자 풍요의 상징이었던 만경강의 만경은 ‘백만이랑’이라는 뜻으로 넓은 들을 말한다.

만경강이란 강 이름은 1900년대 일제에 의해 개발이 시작되면서 불리기 시작했는데 만경현 앞에 흐르는 강이라 해서 붙여졌다.

만경강의 본래 이름은 상류는 고산 안천, 중류는 전주 남천, 하류는 만경 신창진으로 조선 중기까지 이를 사용해 왔고 동국여지승람 전주부, 대동지지, 대동여지전도 등에는 만경강을 사수(泗水)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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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만경강 문화관 앞에 있는 만경교 조형물/사진=송승욱 기자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만경강

만경강 유역에서 구석기 유물이 확인된 곳은 80여개소에 달한다.

전주 사근리를 비롯해 14개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하천변 구릉을 중심으로 돌날과 몸돌 등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됐는데, 특히 익산 서두리에서는 한반도 최초로 슴베찌르개(유경첨두기)가 발견됐다.

또 만경강의 중상류나 지류인 소양천, 전주천, 익산천, 탑천 등에서 뗀석기들이 다량 발견됐다.

신석기인들은 만경강 중상류나 지류인 하천변의 구릉과 하류, 해안지역에서 수렵 및 어로와 함께 농경 생활을 했으며, 정착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간석기와 토기가 발견됐다.

또 만경강 하류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패총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익산 신용리 갓점 등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 집터 흔적이 발견됐다.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간석기와 무문토기가 만들어졌는데, 익산의 용기리와 김제 상동동 유적의 장방형 집터에서 불에 탄 벼가 출토됐다.

또 만경강 중상류와 지류의 충적지·구릉지를 중심으로 수십 기의 집터들이 무리지어 분포했고, 만경강 일원은 수로 교통의 이점 덕분에 청동기시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고 확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에서 거둔 조세와 특산물을 배로 수도까지 운송했다.

조운 포구와 조창은 해로나 수로를 따라 서남해안과 한강로에 설치됐고, 만경강에도 조운 포구로서 전주의 속통포, 임피의 조종포와 진성창이 있었다.

또 이들 포구는 연근해나 해외 장거리 해운 활동에 나선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이모작이 도입되면서 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의 확보가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만경강은 감조하천으로 농업용수로는 부적합해 강의 지류와 인근에 소규모 저수지를 축조해 농업용수를 해결했다.

‘전주의 옥야와 익산의 춘포는 모두 높고 메마른 지역인데, 지금 삼례의 큰 냇물을 끌어들여 견고하게 제방을 쌓고 그 물을 농토에 댐으로써 지난날의 황무지가 금세 옥토로 변하여 소득이 1300여 결(結)에 이르렀습니다’라는 현종개수실록의 기록을 보면 삼례천에 제방을 축조해 농업용수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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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만경강 문화관 1층 역사관/사진=송승욱 기자

△아픈 역사, 수탈의 현장이 되다

일본은 1899년 군산항 개항을 시작으로 전북과 충남 일대에서 거둬들인 쌀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도로와 철도, 항구를 정비했다.

1908년 전북에서 가장 먼저 생긴 신작로인 전군가도가 대부분의 일본인 농장들을 지나도록 설계된 이유다.

이후 1912년부터 1936년 사이에는 군산선, 전북경편철도, 호남선, 전차선 철도가 차례로 개통됐다.

이를 통해 호남평야의 쌀은 군산항에 집결돼 일본 배에 실려 오사카, 고베, 도쿄 등 일본 곳곳으로 보내졌다.

만경강 유역은 일본인의 진출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일대 논이 대부분 물 공급이 어려운 천수답으로 쌀 생산량이 적었음에도 일본인들은 만경강의 풍부한 농업용수와 값싼 토지, 우수한 토질에 주목해 싼 값에 농지를 사들였다.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지주들은 주한일본공사관과 통감부의 권력을 앞세워 대규모 토지 점탈과 식민지 농업경영에 착수했다.

1904년경 대장촌과 임피, 김제, 황등, 옥구 지역에는 호소카와 농장을 비록해 구마모토 농장, 후지 농장, 박기순 농장, 동양척식주식회사 개척 농장 등 대규모 농장이 만들어졌다.

또 만경강 주변의 땅을 싸게 사들인 일본인 농장주들은 쌀 수탈을 위해 수리조합을 결성하고 관개 수리시설 건설에 힘썼다.

1908년부터 1911년 사이 만경강 유역에는 옥구서부수리조합을 시작으로 임익, 전익, 임익남부, 임옥 등 5개의 수립조합이 설립됐다.

만경강의 물 이용은 수리조합의 결성으로 집단화와 규모화 됐으나 수원은 여전히 부족했고, 특히 1920년 4월부터 시작된 산미증식계획과 대규모 간척사업을 위해서 더 많은 수원 확보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만경강 유역에 대야댐 등 새로운 댐과 인공 도수로가 만들어지고 대대적인 직강공사로 물길이 정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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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9월 22일 익산 만경강 문화관 2층 자연관에서 유칠선 지역생태연구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송승욱 기자

△다양한 천연기념물·멸종위기종의 보금자리

만경강 문화관 2층 자연관에서는 만경강에서 강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은 물론 증강현실로 만경강을 날아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익산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조류 모니터링 결과 익산 만경강 유역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서식한 것으로 확인된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조류는 85종에 달한다.

천연기념물은 황새, 저어새, 흰꼬리수리, 매 등 7과 11종이며, 멸종위기종 1급은 황새, 매, 저어새 등 4과 4종, 2급은 노랑부리저어새, 독수리, 잿빛개구리매 등 7과 8종이 서식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익산=송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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