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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육육걸즈 박예나 대표 "고객과 함께 하는 100년 기업 만들고 싶어"

일자리가 없어 청년층이 지역을 등지고, 인구 감소로 지역의 활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기업유치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러나 수도권과 멀리 떨어져 입지적으로 불리한 전북에 규모 있는 사업장을 차리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상장사와 코스닥 등록업체를 통틀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전북에 본사를 둔 번듯한 업체가 드문 실정에서 연간 600억원대 매출액을 올리는 기업이라면 의당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그것도 청년 창업으로 일군 성과라면 더욱 값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주)육육걸즈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20대 여성이다. 전주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고용인원이 100명이 넘는다. 대표는 지금까지 5억원에 가까운 기부천사이기도 하다. 일자리 때문에 고민할 나이에 되레 100명이 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청년 CEO 박예나 대표(28)를 만나 `성공신화`를 들어봤다. -회사 이름이 특이하다. 어떻게 명명됐나. 옷 사이즈(66)와 소녀들(Girls)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중학교 3학년 때 개인 블로그로 `육육걸즈`(www.66girls.co.kr)를 개설했다. 보통의 여성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중학생 때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구상하고, 옷 사이즈로 특화한 것 모두 특별하게 보인다. 사춘기 여학생들은 누구나 꾸미는 걸 좋아한다. 중학교 시절 통통한 내 체형에 맞는 예쁜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시중에 유통되는 66사이즈 옷이 애매했다. 그 시절 미니 홈피를 만들어 이런 옷들로 홈피를 꾸미는 게 재미있었다. -취미가 사업으로 연결됐다는 말인데, 학생 신분으로 그게 쉬운 일인가. 어렸을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서울에 있는 예술고 진학을 희망했다. 집안 형편이 안 돼 인문계 고교(전북여고)에 진학했으나 공부에 맘을 붙이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재능을 살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셨다.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시작은 구제 옷을 싸게 사서 파는 일이었다. 수입과 상관없이 서울에 있는 재활용처리장에서 구제 옷을 구입하는 게 쓰레기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재미가 있었다. 하루 23시간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3년간 조금씩 기반을 넓혔으나 구제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져 보세 옷으로 눈을 돌렸다.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 남대문시장, 동대문 시장으로 발품을 팔았다. -온라인 쇼핑몰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개다. 치열한 경쟁 속에 단단한 쇼핑몰로 성장시킨 비결이라면. 시장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늘 트렌드를 살핀다. 새로운 상품을 보여주고, 빠른 배송 물류시스템을 갖춘 것이 강점이다. 옷을 좋아하다보니까 한 스타일 치우치지 않았다. 호기심 많아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어떤 옷이 잘 팔릴까 집요하게 고민한다. -일에 묻혀 산다고 들었다.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관리자로서 여유도 누릴 만한 데. 온라인 쇼핑몰은 1주일만 관리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금세 알아차린다. 대표라고 해서, 사업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12시 퇴근이다. 연휴나 명절도 없다. 매일 웹디자인이 잘 됐는지, 상품 업데이트가 제대로 됐는지 꼼꼼히 살핀다. -아무래도 지역에 본사를 두는 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서울로 본사를 옮길 것을 고민했다. 서울에 물류창고를 둘 경우 현재 물류비용으로 드는 연간 2억원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나를 있게 한 전주를 벗어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주에서 1등을 해보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서울에 있었다면 그저 한 온라인 쇼핑몰이었겠으나 지역에 있기 때문에 더 주목 받지 않는가. -사업 규모가 늘면서 매각에 대한 유혹은 없었나. 사업체 매입과 지분 투자를 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전혀 고려치 않는다. 돈이 아니라 일이 좋아서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사업 규모가 커진 만큼 전문 경영인 체제를 고려해야지 않을지. 규모가 커지면서 고민이 되는 대목이기는 하다. 하지만 의류 쇼핑몰이라는 게 배추나 토마토를 파는 게 아니다. 여성 의류사업은 굉장히 감성적인 분야다. 숫자와 데이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경영에서 중시하는 게 있다면. 회사는 고객과 같이 나이를 먹는다. 길게 가려면 고객만족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본다. 현재 80만명 회원의 85%가 재구매 고객이다. 회사의 큰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향후 예상되는 어려움은. 온라인 쇼핑몰은 경쟁의 연속이다. 소비자의 패턴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마케팅 방식도 달라진다. SNS도 빠르게 진화한다. 그런 변화와 유행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을 양산하는 게 관건이다. -대학시절 이미 스타 창업가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청년창업의 모델이 되고 있는데, 지역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팁은. 나는 무작정 시작했다. 처음부터 돈을 보고 한 일이 아니다. 가슴 뛰는 일이 있다면 소자본이라도 좋다. 무한정 고민할게 아니라 일단 도전하라.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해서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100년 이어질 기업을 만들고 싶다. 수 안 쓰고, 꾀 안 부리고, 욕심 안 부리겠다. 서울과 수원에 이어 부산 3호점을 내고 싶고, 전국에서 입어보는 옷, 좋은 쇼핑몰 만들고 싶다. ● [육육걸즈는 어떤 회사] 4만원에서 600억원으로 성장 육육걸즈 본사는 전주국립박물관에서 정읍으로 가는 도로인 전주시 완산구 호동길에 자리하고 있다. 물류창고를 옆에 둔 본사 건물에 116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등록한 상품이 1만8000개다(옵션까지 포함). 그 중 85%가 자체 생산품이다. 박예나 대표는 기성 제품을 단순히 중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화장품을 제외하고 의류, 액세서리, 주얼리, 신발, 가방, 헤어밴드 등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금세 유행이 바뀐다. 패션은 속도전이다. 고객 눈높이에 맞춰 신속히 제품을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시장과 다른 제품, 회사의 모토인 66사이즈를 예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다. 자체 제품 비중을 계속 높인 이유다. 1주일에 100가지를 만든단다. ODM 방식이지만, 이 과정에 대표가 적극 개입한다. 모든 의류제품을 직접 입어보고 수정해서 생산토록 하고 있다. 현재 100여개 협력업체가 있다. 지난해 660억원 매출액을 올렸다. 집에서 준 용돈 10만원으로 구제(舊製) 니트 1개와 신발 1켤레를 구매해 판매하는 것으로 출발, 새 옷처럼 보이게 깨끗이 수선하고 다림질 등을 해가며 아등바등 나름 열심히 사업(?)을 벌여 처음 한 달 내내 번 돈 4만원이었던 시절은 먼 이야기다. 중진공의 도움을 받아 일본과 중국, 대만, 미국으로 3억원어치 수출도 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시장으로도 넓혔다. 서울 상수점에 이어 최근 수원점을 오픈했다. 주변에서 투자 대비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만류했으나, 직접 입어볼 때 좋은 상품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박 대표의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 누구였을까. 횟집을 하던 부모님을 보면서 고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횟집을 찾아주는 손님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했다. 온라인 판매지만 처음 3년간 고객들에게 손 편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하루 200장의 손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돈 버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려주고, 고객의 고마움을 알게 한 부모님이 보이지 않은 가장 큰 멘토였던 셈이다. /김원용 사회교육문화체육 에디터

  • 기획
  • 김원용
  • 2020.03.10 19:03

[긴급대담]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코로나19, 3월 말 피크 찍고 4월에 떨어질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확진자는 지난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7000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감염국이 100여개국에 달하면서 세계 대유행이 예고되는 등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은 차치하고, SNS상에서는 가짜뉴스를 비롯한 정확하지 않은 정보 등이 넘쳐나고, 정치권에서는 정쟁의 수단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병원협회 신종코로나 비상대응실무단장을 맡고 있는 명지병원 이왕준(전주56) 이사장을 8일 만나 코로나19 사태의 정확한 상황과 추이, 대처 방안 등을 들어봤다. 그는 지난 2009년 신종플루 때는 협회 상황실장, 2015년 메르스 때는 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신종 바이러스 발생 때마다 대응방안을 마련해 왔다. 외과 전문의임에도 불구, 신종 바이러스 대응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를 전망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제대로 알면 무서운 상대가 아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속성도 점차 밝혀지면서 경과와 전망은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며 지나치게 불안해 하는 것을 경계했다. -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향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이달 20일에서 25일 사이에 확진자가 1만 명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 3차 피크가 올 것이다. 대구 경북은 이미 피크를 찍고 내려오는 단계다. 이 지역은 신천지 신도들도 가려냈고, 격리조치도 거의 다 마쳤다. 2월 하순부터 관리해온 만큼 다음 주 주말이면 확진자가 줄어들 것이다. 반면 전국적으로는 코로나가 확산될 것이다. 특히 이달 10일부터 수도권에서 새로운 피크가 시작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다만 확산속도는 늦을 것이다. 대구경북은 지형적으로 밀집된 구조지만 수도권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100명, 200명, 300명, 500명 이런 식으로 완만하게 증가할 것이다. - 변곡점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3월 말까지 피크를 찍고, 4월에 들어서서 떨어질 것이다. 다만 4월 말까지 기본 추세로 간다. 그러다가 점점 잠잠해지면서 5월에 여진이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속도가 (의료계에서 기대하는) 좋은 시나리오다. - 그렇게 예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을 참조하면 된다. 중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된 기간인 두 달 반을 우리한테도 적용해봐야 한다. 우리가 중국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지 말고, 빨리 끝날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나라는 다르다. 그렇다고 바이러스 종류가 다르진 않다.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말에 시작해서 2월 말에 수그러들었다. 우리나라는 1월 말에 시작했기 때문에 2월, 3월을 지나 4월 초에 이르러야 어느 정도 조용해질 것이다. - 중장기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상황인가. 일단 코로나 피크는 2~3개월 정도 간다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처음부터 (정부에) 아웃브레이크(outbreak질병의 발발)에 대비하라고 계속 조언했다. 아웃브레이크가 중국과 겹치니까 경증환자를 조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등 환자상태에 대한 분류체계 만들라고 한 달 전부터 주장했지만 잘 반영되지 않았다 - 국내 상황도 그렇지만, 세계적 대유행도 예상되고 있다. 사실상 판데믹(pandemic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이다. 우리나라는 신천지 때문에 확산속도가 빨라졌다. 그 다음에는 일본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2주 정도 늦게 나오는 게 맞다. 미국이 일본과 비슷하거나 더 늦을 수도 있다. 사실 미국 피크는 한 달 정도 늦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지금 시작단계에 들어섰는데, 1~2주 후에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달 20일 정도면 우리는 피크찍고 내려오는데, 미국은 그 때부터 급속히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4월5월이 피크일 것이다. 여진까지 포함하면 6월~7월까지 갈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클텐데. 그렇다. 세계 경제 셧다운(Shut down일시적인 업무정지상태)이 6~7월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 자체가 판데믹이다. 우리의 피크상태와 다른 나라의 피크상태를 비교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데 중국이 셧다운되면 중국과의 교역이 중지된다. 미국일본과도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는 바닥을 치고 증시는 폭락할 것이다. 세계 경제가 서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경제가 좋아지진 않는다. -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은 아닌가. 감염병은 사람이 죽는 게 문제가 아니다. 바이러스 자체가 무서워서 겁내는 게 아니다. 감염병이 사회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봉쇄되고, 전 세계가 봉쇄되고 시스템이 마비된다는 게 핵심이다. - 일반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에 불안해 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지금 중국에서 50대 환자들 같은 경우 폐렴이 6000명이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의외로 코로나 자체가 중증도나 치사율이 높진 않다. 다만 감염률이 높다. 사람들도 이런 사실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2주 동안 감염되면 어떻게 하지, 내가 3주 동안 셧다운 되면 불편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 불안한 것이다. - 불편함에 대한 불안이란 말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불편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 그러나 현실은 치료제가 없다.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백신이 만들어지면 (바이러스) 감염력이 점점 다운된다. 그런데 인간은 한 번 (병을) 앓고 나면 몸 안에 항체가 생긴다. 면역이 생긴다. 좀 더 설명하자면 결핵을 앓아도 면역이 생기고, 결핵주사를 맞아도 면역이 생긴다. 홍역도 마찬가지다. 통상 전염병이라는 것은 겪고 나면 항체가 생긴다. 그런데 코로나19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바이러스라 두려움이 있다. - 감염자와 접촉하면 무조건 걸리나. 감염력이 강하지만 무조건 바이러스에 노출됐다고 감염이 되는 건 아니다. 분자생물학적으로 밝혀졌지만, 코로나가 호흡기 점막 상피세포에 침투해야 코로나에 걸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가 잘 침투하지만, 잘 침투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감염자와 같은 장소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걸리고 어떤 사람은 안 걸리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가. - 걸리더라도 증상이 다르다. 그렇다. 10세 이하 1%, 20세 이하 1%로 10세~20세 이하가 2%밖에 안 된다. 젊은 사람들의 감염률이 낮은 이유가 뭐냐. 메카니즘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대부분 전문가가 가설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 아이들에겐 모든 균이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것이다. 부모한테 항체를 받는다고 해도. 그래서 아이들한테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이다. 항원에 미리 노출시키고 자가면역력이 생기게 하는 절차다. 다시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에겐 신종코로나나 일반 인플루엔자는 똑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의외로 이런 부분에 대한 방어력은 크다고 생각된다. 근데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하지 못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대응하기 어렵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몸도 낡았기 때문이다. - 기저 질환이 없고, 건강한 젊은 사람들은 감기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환자는 경증으로 지나간다. 감기 몸살을 앓는 정도다. 실제로 걸리더라도 큰 문제는 없는데, 걸리면 주변 사람한테 감염을 시킬 수 있다는 데에 따른 우려다. - 운영하고 있는 명지병원에서 계속 환자가 순환되는 거 같던데. 최근 7명이 퇴원하고, 9명이 다시 입원했다. 계속 환자들을 보고 퇴원시키고 한다. 우리가 (경기도에서 환자를) 제일 많이 본다. - (명지병원은) 메르스 때도 그렇고,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초반부터 환자들을 받고 있다. 병원은 사회적 책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가 비즈니스 성격을 가지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책무성이다. - 환자치료는 어떻게 했나. 특히 경증환자는. 특별히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 감염되지 않게 격리시킨다. 특별하게 어떤 약물 투여나 의학적 처치는 없다. 식사를 제공하고 계속 관찰한다. - 자신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지켜본다는 것인가. 그렇다. 주로 관찰한다. 감기치료나 똑같다 - 중증환자 치료는 다른가. 폐렴이 심각해지면 숨을 못 쉬게 되고, 다발성 장기 부전이 오는 환자들은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된다. 그 땐 항바이러스제를 써야 한다. 보통 폐렴이 심각해질 때, 그리고 나이가 많거나 기저 질환이 있을 때 사용한다. - 최근 확진자 증가세가 완만해지고 있는데, 이유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사람들의 활동량이 줄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와 무증상자가 가려지고 있다. - 사회적 거리두기가 효과적이라는 것인가. 지역감염으로 가면 무조건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안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 불안할 경우 격리시설에 가는 것도 추천 드린다. 집안 환경이 코로나19에 취약할 경우 생활보호시설로 와서 2주 동안 관리 받으면 된다. - 결국은 국민 개개인이 방역주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 앞으로 감염자가 더 많아지면 자발적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자가격리를 미룰 수가 없다. 자가격리는 감염을 막자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감염원이 돼서 다른 사람에게 퍼뜨릴 수 있으니까 자가격리를 권장하는 것이다. 조금 의심되면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이고. - 마스크는 어떠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마스크는 공중에 떠돌아다니는 바이러스를 내가 방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 입에서 내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밀접 접촉을 할 때는 쓰면 훨씬 낫다. 점막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직접 전파되는 것을 막는 것보다 외출을 자제하는 게 중요하다. 감염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비말(침방울)이 묻을 일이 없다. 같은 공간에서 전파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비말이) 묻은 부분을 만져서 감염된다. 이런 원리에서 봤을 때, 마스크는 침방울이 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기능만 가진다. 그런 의도만 있을 때는, 마스크가 모자랄 때는 의료진만 쓰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반인들은 위험한 사람을 방어하고,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을 막는 정도이기 때문에 아무나 쓸 이유는 없다.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하는 얘기가 그 얘기다. - 퇴원자들은 마스크가 없어도 되는가. 마스크가 없어도 된다. 다만 불안해서 1주 정도 더 있는 사람도 있다. 진단 키트가 100%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단키트가 바이러스 자체를 보는 게 아니다. 바이러스의 특별한 유전자 파트를 관찰한다. 바이러스는 대략 3만개의 아미노에시드로 이뤄졌는데, 키트는 바로 이들 조각을 관찰한다. 그러나 100% 정확치 않다. 통상 90~95%가량 정확하다고 하는데, 잘못 나올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는 충분한 임상실험을 거친 기구가 아니다. 진단 키트는 쟁점이 될 수 있다. - 확진 판명이 나면 확진자가 방문했던 장소가 폐쇄되는데,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살아있을 수 있는가. 60%이상의 알코올로 닦으면 다 죽는다. 밖으로 나오면 5분 안에 죽는다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사람 몸에 산다. 그 곳이 숙주다. 그 몸을 떠나면 5분도 안돼서 죽는다. 건조한 곳은 문제가 없다. 물기가 있거나 침에 묻어서 마르지 않는 곳이 문제지, 건조한 곳은 가만히 있어도 3~4시간 존재하기 힘들다. 충분히 환기시키고 6시간 정도 지나면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넌센스가 있는데 환자가 죽으면 시체에서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가 죽고 피가 돌지 않으면 바이러스도 같이 죽는다. - 코로나 바이러스의 토착화 가능성은. 현재 선진국은 코로나를 감별할 수 있다. 반면 후진국이나 아프리카는 코로나 진단 키트가 없기 때문에 한 마을이 전부 감염될 수 있다. 균이 만연해 있다가 그걸 다른 나라에 옮기면 다시 시작된다. 메르스를 예로 들어보자. 여전히 메르스는 중동이나 어디에선가 토착병이나 풍토병으로 남아있다. 전 세계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지역 풍토병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그 장소에서 접촉하면 매년 퍼진다. 그래서 앞으로는 폐렴이 생기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지 메르스인지, 인플루엔자인지 계속 검사를 해야 한다. 그게 루틴이 될 것이다. - 코로나 바이러스 정복은 힘든가. 미국이 나름대로 대책을 갖고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면 이 정도 치료제가 나오려면 몇 조 단위를 투자해야 한다. 최소 글로벌 시장에 이 정도 신약을 내보일려면 3~4조원 투입해야 한다. 기간을 앞당기려면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신약개발에 우리가 그렇게 하긴 어렵다. - 정부의 대응에 점수를 준다면. 초기 대응은 잘 했는데, 그 이후는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정치인들이나 비전문가들이 지휘봉을 잡은 뒤 사태가 더 악화됐다. 세파와 정쟁에 시달리면서 최근 2~3주간 극심해지고 있다. - 전문가들이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전문가들이 리더십을 행사하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질서정연하게 통제해야 한다. 근데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를 앞두고 득을 보기 위한 행동이다. 여당의 코로나 대책에 허점을 찾는 야당과 영웅적으로 표를 얻으려는 여당, 이런 부분들이 착종이 되면서 문제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 -도민들에게 코로나에 대한 대응방안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 대중은 신종 감염병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감을 갖는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한 지 3개월이 다 돼가고, 바이러스에 대한 속성도 점차 밝혀지고 있다. 경과와 전망은 예측 가능한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 그 동안의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해 좀 더 냉정하고 과학적인 어떤 전략을 세우고 대응해야 한다. 너무 조급하게 문제를 풀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도민들도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방역당국뿐만 아니라 사회정치권이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를 각 집단이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재단하고 대응을 하면 혼란이 심해질 것이다. 우리가 감염병 대응에서 져본 적은 없다. 인류는 항상 이겨왔다. 다만 시간의 문제다. 다행히 이번 경우는 중증과 치사율이 높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공포감을 갖기 보단 생활수칙을 잘 지키면 된다. 대신 고령인구나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은 조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본인들이 감염 소스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릴 말씀은 코로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 의료인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의료인을 보호해서 기본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 일반 중증환자를 치료하기가 힘들어진다. 응급실에 고열환자를 두고 시간을 지체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 /대담=김준호 선임기자, 정리=김세희 기자 ●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1964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의사 집안(전주 이학연 내과) 출신으로, 전라고-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 운동권 핵심세력으로 활동하면서 수배투옥 등으로 인해 9년만에 의대를 졸업했다. 외과 전문의이지만, 부도난 병원들을 인수해 정상화시킨 경영능력으로 인해 의료 경영인이란 이미지가 더 크다. 현재 명지의료재단 및 인천사랑의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1992년 창간했던 의료 신문 청년의사 발행인이기도 하다. 졸업 후 예정됐던 병원 취업이 IMF 외환위기로 무산돼 백수생활을 하던 1998년, 폐업 위기의 병원을 인수할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게 경영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였다. 부모 도움 없이 부채를 떠안고 병원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문을 연 인천사랑병원을 1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1년간 월급 80만원을 받으며, 수개월 동안 응급실에서 날밤을 새운 노력의 결과였다. 이어 2009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산 명지병원을 인수했고, 이 또한 성공적으로 회생시켰다. 당시 명지병원은 530개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회생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명지병원 인수 직후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 일반 병원들이 진료를 꺼렸던 것과는 달리 그는 전국 첫번째로 신종플루 대응진료센터를 구축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잇따라 환자 치료에 성공하면서 명지병원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메르스에 이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19 사태 초기, 명지병원은 31728번 환자를 퇴원시킨 것을 비롯해 현재까지 7명을 퇴원시키고, 추가로 9명을 치료하고 있다. 명지병원은 병원들이 주저하는 국가지정격리음압병상, 권역응급센터외상센터재난거점병원을 맡고 있으며, 이달 2일에는 권역응급센터 건물 1개동 전체를 코로나19 대응 건물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올 1월 경기북부 전북도민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은 그는 고향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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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9 20:15

남북정상회담 기념비 글씨 쓴 서예 대가 여태명 교수 "전통에 트랜드 접목해 예술 발전 시켜야"

효봉 여태명 원광대 교수(64)는 평생 한글 민체(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서체)를 연구해 역사적인 배경과 흐름을 최초로 정리한 독보적인 예술가다. 먹과 붓으로 글씨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화롭게 세상을 그린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화해와 평화의 약속으로 기념 식수를 할 때 쓰인 표지석에 휘호를 쓴 서예가로 더 유명해졌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고 쓴 그의 글은 외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전주에서는 한옥으로 만든 전주IC의 상하행선 전주라는 글과 만성동 시대를 연 전주지방법원의 현판을 쓴 이도 효봉이다. △올 새로 이전한 전주지방법원 현판을 쓰셨습니다. 어떻게해서 현판 글씨를 쓰게 됐는지. 법조3성을 배출시킨 전주지방법원의 만성동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현판 글씨는 전주지법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현판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3가지의 서체를 준비했습니다. 한글의 기본인 훈민정음,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체, 평생연구해온 민체 등 3가지의 서체로 전주지방법원이란 글씨를 준비했습니다. 3가의 서체를 전주지법에 전달하니 법원 직원 및 판사들이 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3가지 중 민체와 전주체 2개가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전주시민과 함께해 돌려주는 사법기관이란 모토를 가지고 있어 전주체로 작성한 글씨가 최종 선택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체로 작성한 전주지방법원의 글씨는 강직하고 올곧은 재판을 하는 곳이라는 마음을 담아 표현한 글씨입니다. △전주체라는 서체가 생소한데요. 전주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전주체(완판본)는 조선 후기에 가장 유행했던 서체입니다. 칼로 나무에 새겨서 찍어낸 서체이며, 딱딱하고 강직하며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조선 후기 당시 전주는 주변에 많은 산이 있어 나무를 조달하기 편했고, 종이도 한지를 주로 생산하는 곳이다보니 글씨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주지방법원의 현판 외에도 전주IC의 현판과 남북정상회담 표지석도 교수님 글씨로 알고 있습니다. 네. 먼저 전주IC, 즉 톨게이트의 현판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전주시에서 요청이 들어와 쓰기시작했는데요. 다양한 글씨로 30여장의 전주 글씨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요. 내가 직접 쓴 글씨이고 무엇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장 좋은 글씨 2장씩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최종 선택된 2장 중 첫 번째 글씨는 서울에서 전주를 들어가는 방향으로 걸리게 됐는데, 어머니를 표현한 모음을 크게 적었습니다. 이는 엄마의 큰 가슴. 즉 따뜻한 가슴에 안기는 마음을 담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 선택된 글씨는 전주에서 서울방향으로 나가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모음을 작게하고 자음을 크게 적었습니다. 아들이 서울에 올라가 크게되고 어머니는 아들이 성공해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을 표현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쓴 표지석은 내 서예인생 최고의 글씨입니다. 내 60년 글씨 인생에 이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가장 비밀스러웠고 가장 영광스러운 글씨입니다. 평생 연구해온 민체로 작성됐고, 사전 연습 없이 단 한번 한 숨에 써내려간 글씨입니다. △민체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평생 민체를 연구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먼저, 한글서체의 기본은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은 반듯함이 특징인데 사림이 똑바로 서있는 모습, 즉 부동자세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궁체는 궁궐에서 많이 사용된 특징인데 궁인들이 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듯 궁체는 고개를 숙인 모양이 특징입니다. 민체는 궁궐 밖의 백성들이 사용한 글씨인데 술 한잔을 걸친 뒤 저잣거리에서 허리를 약간 뒤쪽으로 펼친 백성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특히 민체에는 많은 백성들의 표정과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글씨의 두께도 다르고 감정 하나하나가 이 민체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서예 그림 전각 등 여러 분야를 함께 섭렵하신 계기는 있었는지요.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붓을 잡고 서예를 처음 접했습니다. 학교 특별활동시간에 서예부에 들어가 활동을 했는데 당시 담당선생님이 넌 글씨를 잘쓴다라는 칭찬에 지금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후 6학년때 진안군에서 실시한 미술 실기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중학교에 서양화인 수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학교 진학시에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이때 서예는 취미생활을 통해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서양을 막론한 미술분야를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학원 등도 운영하면서 서예뿐 아니라 동양화, 전각, 그림 등도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서예는 물론 서양화, 동양화 등 전통미술분야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전통은 이 시대에 전승되고 발전된 것을 말합니다. 서예로 치면 처음 훈민정음체가 나왔고 궁체, 민체 등 다양하게 변화되고 발전되어와 지금의 전통이란 호칭을 받았습니다. 즉 전통은 그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발전된 것을 말합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트랜드를 익히고 전통에 접목해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향후 100년, 200년 후에 후세에게는 발전된 것이 전통이 될 것입니다. △원광대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오셨는데요. 이제 정년을 앞두고 계십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80년대부터 연구를 목적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책들을 수집했습니다. 논어, 맹자, 백성들이 옮겨적은 흥부놀부전 등 많은 자료를 모았습니다. 현재까지 연구를 마친 것도 있고 아직 연구를 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이용해 내 연구를 후세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에는 모아논 자료를 시나 지자체에 기부하거나 개인 박물관을 만들어 자료를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여태명 교수는 효봉 여태명 원광대 교수는 1956년 진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야기는 전주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빠뜨릴 수 없다. 외지인들이 전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로 꼽는 전주 인터체인지 현판 글씨가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몇년전에는 KBS 1박 2일의 글씨체가 그가 개발한 효봉 개똥이체라는 것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또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것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무 위원장이 화해와 평화의 약속으로 기념 식수를 할 때 쓰인 표지석에 휘호를 쓴 서예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국 노신미술대학 객좌교수, 효봉문화예술마당 대표, 문자아트센터 대표, 디자인필소통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미술대학 서예학과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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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8 15:49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3. 완주의 힘, 봉동생강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다. 담을 삭히며 기를 내리고 토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 습기를 없애고 딸꾹질을 하며 기운이 치미는 것과 숨이 차고 기침하는 것을 치료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기록된 생강의 효능이다. 공자도 자신의 몸을 위해 즐겼다고 전해지는 생강은 우리 선조 때부터 몸을 보하는 민간요법에 주로 쓰인 약재료이자 식재료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19 예방을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으로 완주 봉동의 명물인 생강에 관심이 간다. 완주 봉동은 우리나라 생강의 종가로 알려진 고장이다. 봉동에서는 생강을 여러해살이 생강풀인 새앙에서 변형된 말인 시앙으로도 부른다. 오래전부터 지역특산품으로 유명한 봉상생강의 생산지인 봉상이 1914년 우동과 통폐합되어 봉동이 되면서 봉동생강으로 불리고 있다. 봉동은 만경강 상류 봉실산 아래에 자리한 지역이다. 그 까닭에 겨울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산이 막아주고 햇볕까지 잘 들고 물이 풍부하면서도 물 빠짐이 좋아 생강이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생강에 관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기록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북쪽 변방에 전사한 장수와 병졸의 부모와 처자에게 생강 등을 하사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을 보아 11세기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사람이 중국 봉성현에서 가져온 생강을 전남 나주와 황해도 봉산군에 심었다가 재배에 실패하자, 봉(鳳)자가 들어간 봉상(鳳翔)에서 재배에 성공하면서 봉동생강의 기원이 됐다는 설도 있다. 당시 생강 관련 기록이 있던 유일한 고장이 지금의 완주를 포함한 전주부였음을 살펴보면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 외에, 허균의 조선음식 소개서인 『도문대작』에 소개되었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삼례와 전주를 지나던 길에 생강을 선물 받은 내용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문헌과 일제강점기 시장조사 자료에 봉동 장기리 시장의 생강이 특산품으로 소개되었고 『매일신보』등 신문에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 봉동생강이 명성을 이어 온 것이 분명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왕과 생강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는데 정조의 감기나 기침을 다스리는 약으로 쓰였고, 82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생강차를 자주 마셨고, 중종 때에는 왕이나 세자가 신하들에게 생강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그 중, 완주의 삼례란 지명을 있게 한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방간(1364-1421년)과 관련이 있는 생강탄핵으로 화자 된 사건이 있다. 방간이 보낸 생강을 받고도 임금에게 아뢰지 않는 심종을 탄핵하다란 1414년(태종 14년)의 기록이다. 청원군 심종이 지난해 가을, 임금의 행렬을 따라 남쪽으로 갔을 때 완산에 유배 중이던 방간에게 지역의 특산물인 생강을 받고, 그 내용을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으니 그를 벌하라는 내용이다. 결국, 태조 이성계의 차녀인 경선공주의 남편이자 선왕의 사위이며 태종이 자신의 매제이기도 한 그를 귀한 생강을 몰래 혼자 차지한 죄로 처벌한 사건이다. 생강 때문인지 왕자의 난을 겪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 역모의 징조로 보고 방간과 친한 심종을 벌하며 형인 방간을 견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심종은 생강 선물을 받고 난 3년 뒤인 1416년에 지금의 파주인 교하로 유배를 가 유배 생활 끝에 지금의 황해도에서 병으로 죽는다.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던 방간은 왕위 계승 싸움에서 방원에게 패한 뒤 전주 근교인 지금의 완주에 칩거할 때 연류된 것이었다. 생강 선물에 얽힌 이야기가 대신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태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풍파 속에 물러난 왕족에 관한 예의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그가 사는 곳을 향하여 세 번 절을 하게 되면서 삼례란 지명을 남겼고, 봉상생강은 유명세를 치렀다. 완주봉동생강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 추진위원장을 지낸 이용국(1955년생)은 봉동에 살면서 생강에 얽힌 숱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우리나라 생강 시배지가 봉동 낙평리라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그곳은 바짝 마르면 흰 모래밭처럼 보이다가 비가 내리면 거무튀튀하니 비옥하게 보이는 희안한 땅이어요. 만경강 수맥이 지나는 곳으로 물을 품은 땅이면서 물 빠짐도 좋아 생강 키우기에 좋고, 오래전부터 씨생강을 보관하는 저장굴이 동네에 내려오고 있어 생강이 잘 된 거라 하지요.라 한다. 생강은 알싸한 향 때문인지 병충해가 적지만 재배와 보관이 까다로운 식물이다. 그렇다 보니 재배환경 못지않게 추운 겨울 생강 종자를 보관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봉동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전통농업인 온돌식 생강저장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생강농업보존 방식을 잘 계승하기 위해 주민과 전문가와 완주군청이 함께 힘쓴 결과 지난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3호로 지정받았다. 봉동의 온돌식 생강굴은 구들장 밑으로 고래라 불리는 고랑을 파 밑에 생강 저장굴을 만들고 고래에 바위를 깔아 아궁이의 열기로 고래 바윗돌을 데워서 생강 종자를 보관하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여 저장하는 과학적인 방식이다. 잘 보관한 씨생강을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캐어 식재료로 쓰고 차나 술의 알싸한 맛과 깊은 향을 내기도 하며 몸을 보하는 약재료로 쓰이는 게 생강이다. 또한 강한 생강의 냄새가 산짐승이나 잡귀가 접근하지 못한다고 여긴 선조들이 밤길을 걸을 때 씹기도 한 것이 생강이었다. 몸에 좋은 생강을 많이 먹어서인지 유난히 씨름판 천하장사를 많이 배출한 곳이 봉동이다. 그 천하장사를 낳은 힘의 원천이 생강이라면 코로나 19와 한 판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에게 건네주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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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7 15:19

이춘구 한국감사협회 부회장·국민연금공단 감사 "전북혁신도시, 대한민국 대표 금융도시 발돋움 눈 앞"

이춘구(63) 국민연금공단 감사는 한국감사협회 부회장겸 사회적 가치 실현위원장을 맡고있다. 전국에 걸쳐 약 2000여 명의 회원을 둔 한국감사협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중인 그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 3년이다. 평소 공동체법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마을과 시군, 시도, 대한민국, 지구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제시해온 그는 청렴한국과 연금복지공동체 건설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감사를 맡고 있는 그는 전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중인 제3금융중심지 지정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감사실에서 지난 12일 그를 만나봤다. △국민연금공단 감사로서 재직한 지난 2년, 소회가 많을것 같습니다. 예, 국민이 주인인 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보장해드린다는 점에서 7400여 명의 직원들과 자부심을 갖고 뛴 시간이었습니다. 2년간 연금기금이 102조원이 늘어나고 기금규모가 724조 원대로 증가한 것은 무척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국민연금의 전북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공단의 감사는 복지철학 뿐 아니라 연금제도와 기금운용, 회계감사 등 경영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감사원을 비롯해 감사협회, 공공기관감사협회 등에서 최고 우수 평가를 받은게 기억에 남습니다.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을 둘러싸고 그간 말도 많았지요 기금본부 이전 첫 해인 2017년에는 7.26%의 수익률을 거두었는데 이는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성과입니다. 2019년 성과도 11월 기준 적립금 7백24조 원, 수익금 63조 원으로 9.72%라는 높은 수익률을 올렸고, 12월까지 잠정수익률은 11%로 최근 10년 내에 가장 높은 수익률입니다. 한마디로 전주 이전으로 인한 지역리스크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금규모가 2021년 800조 원, 2024년 1000조 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도민들은 물론, 금융가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 거리 중 하나가 바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존치 여부였습니다. 기금운용본부 소재지는 2013년 국민연금법 제27조 개정에 따라 전라북도로 정해졌습니다. 애초 국민연금제도와 기금운용은 한 몸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금운용본부 소재지 또한 공단 본부와 함께 하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기금운용의 효율성 등을 근거로 서울에 기금운용본부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제 공단 주변은 제2기금관, 전라북도의 테크비즈센터 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전라북도 금융센터도 들어설 예정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면 농촌진흥청의 첨단시범포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인구 76만명의 새만금 신도시와 새만금국제공항이 건설되면 그야말로 미국의 샬럿시처럼 전북 혁신도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도시로 발돋움하게 될 것입니다. △전주 금융중심지 지정 여부가 핵심 이슈로 등장한지 오래입니다. 그 전말과 향후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전주 금융중심지 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업이며 국정운영계획과 제4차 국가균형발전계획에 반영돼 있습니다. 다만 금융중심지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금융생태계가 조성돼야 그 타당성이 보다 더 강화될 것입니다. 지난해 초 금융위원회가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이 때문에 전라북도와 긴밀한 협조 속에 세계적인 금융기관인 미국의 SSBT와 뉴욕멜론은행을 지난해 초 전주에 유치했습니다. 세계적 금융기관들이 해외사무소를 줄이거나 철수시키는 데 비해 전주에 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그만큼 연금기금의 장래를 밝게 보고 연금기금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중심지 지정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말 SK증권이 프론티어 오피스를 개설하고, 우리은행은 자산수탁 전주사무소를 설치했습니다. 대체투자 운용사인 무궁화투자신탁과 현대자산운용이 지난 20일 전주사무소를 열고 일부 본사 기능을 이전했습니다. 앞으로 공단은 전라북도와 긴밀히 협조하며 기금운용사들을 대거 유치할 계획입니다. 기금운용 인력을 양성하는데 전북대학교는 지난해 말 연금기금관리학 과정을 학부에 설치한 데 이어 연금기금 전공의 석사와 박사 과정도 개설했습니다. 전라북도의 행정지원 조직도 지금 투자금융과에서 투자금융국, 투자금융본부로 확충될 것입니다. △이번 총선 때 전주권을 중심으로 한 많은 후보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중심지 지정을 표방하고 있는데 후보들의 공약이 눈길을 끌죠. 후보들이 금융중심지 지정을 공약하고 있는 것도 대통령 공약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약의 실행 가능성과 비전 등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금융중심지로서 갖춰야 할 인프라, 입주기업들의 지원 등이 중요한 점검 사항들이 될 것입니다. 국비를 통한 황방산 터널 개통을 통해 혁신도시와 서부신시가지, 구도심 등의 연결이 시급합니다. 혁신도시는 완결된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방산 터널 등 인프라 확충이 절실합니다. 입주기업들에 대한 건물임차료와 인건비 등 초기 비용 절감을 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특히 외국인 자녀 그리고 해외에서 공부하다 귀국한 운용역 등의 자녀들이 세계 수준의 교육을 중단 없이 이어나갈 국제학교의 설립 등 국제특구 조성도 공약으로 검토할 문제입니다. △끝으로 평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국민연금공단은 이제 전라북도에 뿌리를 내린 준정부기관이며, 전라북도의 대표적 향토기업입니다. 공단은 절차탁마와 자강불식의 자세로 금융중심도시를 건설하며 상전벽해의 확실한 변화를 일구어 내겠습니다. 전북일보 독자님을 비롯해 5백만 전북 도민이 경향 각지에서 사랑으로 지켜 주시고 발전을 이끌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도민의 사랑으로 공단이 발전하고, 국민연금제도가 지속가능하며, 기금이 더욱 더 증대되리라 믿습니다. 세계 3대 연금기금 기관으로서 국민연금공단이 있어서 전북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 이춘구 감사는 누구인가 이춘구(63)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은 완주 삼례가 고향이며, 전주고,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북대 법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 산학협력중점 교수로 일하며 전북대학교와 전북경제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했다. 30년 넘게 KBS 기자로 활동하면서 취재현장을 누볐다. 기초연금과 노인요양을 비롯한 중증질환자의 국가요양제도, 노노케어 등 노인복지제도 정비와 저출산 극복 정책 수립 그리고 전라북도의 경제민주화기본조례 제정 등에 기여했다. 판소리의 형성 과정을 추적해 한국방송대상을 받고, KBS 모스크바 지국장 시절 우리 문화를 러시아에 선양한 것을 계기로 원불교 문화대상도 받았다. 성실함의 대명사 격인 그는 현역 기자시절은 물론, 전북대 산학협력단 교수 시절, 그리고 국민연금공단 감사로서도 늘 성실하고 치밀한 삶을 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사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신중하게 고민하고 농담 한마디 하지 않는 진솔한 사람이라는 평가다.

  • 기획
  • 위병기
  • 2020.02.25 19:42

김근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지역본부장 “기업 현장 중심으로 사업 추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김근영(53) 전북지역본부장이 지난 달 취임했다. 최근 농생명, 융복합소재 및 문화관광 등 전북에 맞는 사업구조를 구축하며 친환경자동차 규제자유특구 지정, 군산의 전기자동차 클러스터 조성 등 고부가 가치 산업 구조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 도내 중소벤처기업의 스케일업을 통한 혁신성장에 중진공의 역할이 갈수록 중용해 지고 있다. 김 본부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함께 앞으로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지역본부의 운영계획 등을 들어봤다. - 먼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전북지역본부장에 임명되신 소감과 새로운 포부는 무엇입니까. "사실 전북지역본부는 4년 전 중진공 근무 20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 근무를 했던 곳으로 저에게는 첫사랑과 같은 지역입니다. 전북지역본부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예전에 만났던 기업인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군산지역의 현대중공업 가동중단, GM공장 폐쇄, 신종 코로나19로 인한 현대 자동차 가동중단 등으로 지역경제가 지속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올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본부 주요 사업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지역본부는 중소벤처기업의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 및 청년창업지원을 위해 정책자금, 수출마케팅, 청년창업사관학교 및 제조 중소기업 혁신바우처 사업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정책자금은 도내의 중소벤처기업 혁신성장과 공정경제의 주역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혁신성장 유망기업 육성을 강화하고 맞춤형지원 및 지원방식을 다양화 할 예정입니다. 수출 마케팅 사업은 크게 수출바우처사업, 무역사절단, 수출인큐베이터, 해외지사회사업 등을 중심으로 지원하고자 합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지자체 및 대학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유관기관과의 공동 창업 강의, 시제품 제적 등을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조 중소기업 혁신바우처 사업은 성장 가능성 높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진단을 통한 기업 특성별 맞춤형 지원으로 중소벤처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 현재 전북 경제의 위기 상황 중 무엇이 가장 문제라고 보십니까? "지난해까지 전북지역은 현대중공업 철수, 넥솔론 폐업, 한국GM군산 공장 폐쇄 등 계속된 악재로 그야말로 어려운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결국 전북경제의 문제는 일자리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일자리를 찾아 전북지역을 떠난 20~30대가 9000여명에 달하고 있어 성장잠재력이 약화됐습니다. 지역 우수기업 육성과 신산업 창업 등 일자리 창출을 통해 떠나는 청년들을 붙잡고 떠난 청년들을 전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청년 실업난이나 일자리 문제 해결의 실마리 찾을 수 있을까요? "지난 2018년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신설로 인해 창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나갔던 청년CEO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됐습니다. 실제로 7기까지 전북지역의 청년CEO는 26명(1.31%)에 불과했으나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신설로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30명70명)하고 있습니다. 올해 3년차를 맞이해 전북 청년창업자들의 네트워크 구성 및 유관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더 많은 청년창업자들이 배출되고 이로 인해 일자리 창출까지 연계하면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을 일부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중소벤처기업의 수출과 일자리 창출 성과를 위해 향후 방향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중소벤처기업의 성장 한계점의 돌파구는 새로운 시장의 진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의 한계를 느끼는 기업들은 과감히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필요도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은 새로운 인력 고용에 대한 필요성이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이는 전북지역 내의 고용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수출 경쟁력을 보유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노력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개별적인 영업을 통한 수출 성사까지는 중소벤처기업 여건 상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위해 정부지자체 및 수출 유관기관에서는 수출 경쟁력 보유 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 끝으로 도민들과 전북일보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째 사람중심의 인력운용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중소벤처기업들이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업무중심의 인력운용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인력 운용이 필요한 시접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성과는 직원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우리 지역 중소벤처기업 사장님들이 지역 청년들을 많이 채용해 인재로 배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혁신성장으로 기업이나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항상 체크하면서 미래를 준비했으면 합니다. 우리 기업인들도 기존 기술, 제품, 시장에서 신기술, 신제품, 신시장을 개척하는 노력을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김근영 전북지역본부장은 지난 1967년 서울 출생으로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 이후 1996년 중진공에 입사했다. 김근영 전북지역본부장은 청년창업사관학교 및 창업기술처 등에서 중진공의 청년창업사업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혁신전략실 미래사업팀장, 중진공 전북서부지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특히 전북서부지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군산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면서 업무추진력과 소통융합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본부장은 새로운 포부보단 다양한 사업들이 지역에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맞춤형 정책 집행과 함께 도내 중소벤처기업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정과 고민을 들어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전북지역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기업 현장 중심으로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기업인들도 사업들을 적극 활용해 기업 경영에 보탬이 되고 항상 지역본부가 도내 중소벤처기업의 동반자로 최선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 기획
  • 김선찬
  • 2020.02.23 17:21

"민주화 다음으로 상승하는 진정한 혁명을 꿈꿔야 한다"

세계는 찰나의 순간에도 가만히 있지 않고 쉼 없이 달라진다. 인간은 세계가 달라지는 속도와 폭에 적응해야 한다. 세계를 자신이 지배한다고 말들은 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한 그 세계에 대한 적응의 효과가 크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고, 효과가 작으면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적응의 효과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거의 모든 인간적 활동의 핵심 기반이다. 가장 효과 있게 적응하는 장면에 우리는 적중(的中)이라는 팻말을 건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말하는 관조나 동양에서 말하는 중용이나 다 사실은 이 적중을 제대로 완수하기 위한 태도이거나 관점일 뿐이다. 조용히 관찰하기(靜觀)나 무심(無心)이나 무아(無我) 혹은 무위(無爲)도 모두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잘 적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이론과 지식도 다 어떤 특별한 변화 상태를 제대로 포착한 지적 체계이다. 역시 적중의 결과물들이다. 적중은 원래 과녁을 제대로 겨누어 맞춘다는 뜻이다.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겨눠야 할 과녁을 정확히 포착한 후 온 신경을 모아 거기에 역량을 제대로 집중시켜야 한다. 근대 초기 일본의 요시다 쇼인은 쇼카숀주쿠라는 조그만 학교를 세워 겨우 2년여 동안 90여 명을 배출한 후, 그들을 앞세워 산업화를 성공시킨다. 같은 시기 조선에는 수백 개의 교육 기관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밤을 세워가며 열심히 공부를 했으나 그렇게 조그만 하나의 학교 쇼카숀주쿠 출신들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가 식민지가 된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일본은 그 시대에 해결해야 할 실질적인 문제에 적중하여 부강할 수 있었고, 우리는 그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실질적인 핵심 문제에 적중하지 못하고 그냥 하던 대로 주자학을 외우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면서 헛발질을 했기 때문이다. 부강한 길을 가지 못하고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모두 위정척사만 부르짖었다. 지금도 우리는 사실 위정척사의 시절을 살고 있다. 배척과 반동의 시절이다. 적중한 후에는 적중의 효과가 일정 기간 유지되는데, 그 효과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큰 원칙이 있지 않은가. 당연히 적중이라는 성취도 정점을 찍은 후에는 부패와 부식과 권태라는 생명 활동을 피하지 못하고 점점 효력을 잃는다. 여기서 이 사실을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부터 스스로 물어보자. 그래야 다음 이야기들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논리적으로나 지적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새정부 수립)이나 산업화는 우리나라의 성공 사례 가운데 민주화만큼이나 빛나는 봉우리들이다. 이 두 봉우리 없이 우리 기적의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 건국이나 산업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도 시작하기 어렵다. 건국이 빛나는 성취가 된 이유는 그 시대에 중심 문제였던 건국이라는 시대 의식에 적중하였기 때문이다. 적중하였다고 해서 건국이라는 주제를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 적중한 후에는 어떤 것도 바로 과거가 되어간다. 건국은 빛나는 성취를 완수한 후에 바로 부식되기 시작하여 다음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여 산업화라는 시대 의식에 적중한 후 우리는 또 빛나는 성취를 이룬다. 산업화에 적중하여 성취를 완수한 후에는 그것이 아무리 빛나는 성취라고 해도 부식을 피하지 못하고 또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우리는 또 다음 단계로 과격한 이행을 해서 시대 의식에 적중하였다. 민주화라는 큰 봉우리를 또 쌓은 것이다. 지금의 시대 의식은 민주화 다음으로의 이행이다. 민주화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에 기분이 나쁜지 아닌지를 우선 점검하자. 기분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지적이지 않다. 법과 논리보다 감정을 중시하는 인식의 초보적 단계를 지나지 못했다. 산업화를 넘어서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산업화를 비판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다음을 말하기 위해서 민주화의 부식 내용을 지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다음 대화가 가능하다. 봄은 정점을 찍고 나면 바로 봄 자신을 부정하는 준비에 든다. 이것이 봄의 성숙이고, 성숙한 봄의 격조이다. 여름으로의 이행을 받아들인다. 봄이 봄 자신의 성취와 정당성에 취해 여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봄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산업화 세력이 산업화에 취해 산업화의 정당성만 고집하면 산업화 세력 스스로가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진보를 해치게 되는 것과 같다. 여름도 여름으로 완성되고 나면 바로 여름 자신의 정당성을 고집하지 않고 가을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 그리하여 여름 자신의 명예를 지킬 뿐 아니라 종내에는 전체 자연의 완성에 기여한다. 가을은 자신의 정점을 찍은 후 바로 자신의 정당성을 겨울에 양보한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사계절이 다 이렇게 성숙한 협력을 하면서 전체 자연을 항상 완성의 단계로 유지할 수 있다. 겨울이 겨울 자신의 정당성에 취해 봄으로 넘어가기를 거부하면, 겨울 자신이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전체 자연의 진화를 망친다.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 시대의 세계관에 취해 민주화의 정당성만 고집하면 민주화 세력 스스로가 반동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종내에는 나라 전체의 진보를 망친다. 지금 우리는 이 단계에 있다. 민주화는 부식하고, 새로운 아젠다는 세우지 못하고... 요즘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를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라 비판하기도 하고, 민주화 세력들이 깃발을 찢어 완장으로 만들어 차고 다니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민주화의 부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름이 자신의 정당성을 고집하느라 가을로 이행하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고, 그 결과로 전체 자연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과 똑같이, 산업화 세력이 산업화의 정당성만을 고집하며 산업화 다음으로의 이행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고 역사 발전의 장애물 취급을 받았듯이, 민주화 세력도 과거의 반동 세력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스스로 반동으로 전락하면서 나라의 진보와 진화를 가로막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나 의식에 적중하지 못하고 자신의 성공 기억에 갇혀서 자신과 국가의 시제를 미래화하지 못하고 과거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숙과 격조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부끄러움과 염치를 상실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우려의 제일 앞에 대통령이 맹목적 지지자들과 함께 콘크리트처럼 굳건하다. 자신이 자신에게 갇힌 형국이다. 모든 논리와 법은 사회적 활동에 필요해서 나온 생산물들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아무 필요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갇혀 고립되어 있다면, 논리도 법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자신이 자신에게 갇혀서 유기적 사회성을 잃으면 법과 논리는 필요치 않고 오직 감정이나 감각의 정체 없는 심리에 빠져 논리와 법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 내로남불을 일상사로 삼거나 논리의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면 국가의 진화나 진보를 가로막게 되고, 결국은 내 삶을 피폐하게 한다. 지도층의 피폐한 삶은 전 사회를 피폐하게 한다. 나는 이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비판자들을 제압하려는 논리의 환각 상태는 이미 만연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감정적 악다구니이지 전혀 논리가 아니다. 민주화 투쟁기에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라고 묻는 입막음도 있다. 여기에는 그 시기만 우리가 살아야 할 시대라는 자폐적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여름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봄의 기세를 닮았다. 그리고 민주화 시기에 대오를 이루어 힘을 보태던 이름 남기지 못한 대중들을 민주화의 소비재로 격하하고 도외시하는 자폐적 선민의식도 있다. 요즘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글을 쓰고 나면 댓글들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때는 아무 소리도 안 하다가 왜 문대통령만 갖고 그러느냐는 내용도 있다. 감정을 벗고 논리에 집중하면 사람은 치우치지 않는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감정은 사적이고, 논리는 공적이다. 그러면, 모두가 최순실 게이트라고 말할 때 비교적 빨리 사태를 박근혜 게이트로 정리하고 본질은 박근혜 국정농단이다는 글을 발표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가 한 일을 예로 들어가며 글을 써야 하고 자신을 변명해야 하는 공포가 엄습하는 지금은 문장의 수난 시대나 논리의 시궁창 같은 시대이다. 극복의 대상이었던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 어느 코미디언이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 한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표현은 논리와 법을 무시하고 감정에 휩싸이다가 불편해지면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말이다.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된 학생이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반응했다면, 이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여 논점을 흐려버리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단순히 알 권리보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가 있을 것 같다.는 말로 현 상황을 지배하려 한다. 정말 민주화를 건너온 우리나라의 법무부 장관이 한 말로 상상이 되는가. 이 말이 누가 했는지 모를 때는 화가 났는데, 추미애 장관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된다면, 당신은 아직 논리나 법보다는 감정의 단계에서 살고 있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것은 우리가 정할 테니 너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독재적 태도이다. 대통령 측근 수사 때 검찰개혁 추진하는 건 수사 방해로 비친다. 이 말은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누가 한 말인지 모를 때는 맞는 말처럼 들리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인 것을 알고 나니 듣기 싫어지거나 틀린 말로 들리면 당신은 아직 논리보다는 감정에 빠져 있다. 임미리 교수를 고발하는 일이 정말 가능한 일로 보이는가? 이 일로 화가 나면 당신은 논리적이며 공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상황 논리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얼른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싶어지면 당신은 아직 감정을 극복한 정도는 아니다. 논리의 환각 상태에 빠지거나 감정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왜 문제인가. 그것들에 좌우되는 한 우리는 이 시대에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에 적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다음의 단계는 선도력을 갖는 단계이다. 과학의 단계이며 인문의 단계이며 논리의 단계이며 법의 단계이다. 종속성을 벗어난 단계이다.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스러운 단계이다. 이 시대의 급소에 적중할 수 있는 능력이 감정인지 아니면 논리나 법인지 잘 살필 일이다. 민주화 다음으로 상승하는 진정한 혁명을 꿈꿔야 한다. 감정을 벗어나 논리력만 회복하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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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8 21:10

[반짝반짝 전북문화] 용굴암 : 아이와 함께 실록길 걸으며 역사 기행

퇴장하려니 심술이 났는지 궂은 겨울비 내린 날, 2019년 불꽃 문학상을 받은 장은영 동화작가와 함께 내장산 실록길을 걸었습니다. 장은영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유생과 관리, 이름 없는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썼는데요. 책 제목은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입니다. 동화를 쓰기 위해 답사차 들렀던 곳을 오랜만에 저와 다시 걷게 되었습니다. 내장산에서 해설했던 김명주 문화해설사도 동행해서 이야기가 더 풍성한 산책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걸어 보실까요? 내장사 천왕문 양옆으로 계곡이 흐르는데 왼편 금선계곡 쪽으로 가면 실록길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실록길은 천왕문-금선계곡-용굴 까지 이어지는 1.8킬로의 길인데 용굴 가는 길이라는 현수막과 조선왕조실록길이라고 새겨진 나무 기둥이 길 찾기를 도와줍니다. 순한 평지 길을 잠시 걷다 보면 데크로 만든 조망대가 있는데 여기서 잠시 걸음을 멈추세요. 그리고 내장산에서 가장 수형이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한번 찾아보세요. 경사가 있는 땅에서 자라 3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수령이 280년 된 나무라고 해요. 겨울이라 잎이 없으니 오히려 수형을 잘 볼 수 있고, 나무를 찾기도 더 쉬웠습니다. 실록길은 계곡의 양옆을 오가며 이어지기 때문에 다리를 자주 건너게 되는데 모두 8번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실록 1교부터 실록 7교까지의 다리는 관련 인물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여덟 번째 다리는 이름이 없어요. 조선왕조실록길을 걸은 사람들 모두가 오래오래 이 길을 마음에 간직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나만의 실록교라고 이름을 지어보라고 합니다. 저는 나만의 실록교를 건너며 실록을 지키기 위해 애쓴 선조들의 이름을 되뇌어보며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제 용굴로 올라가 볼까요? 작가님이 답사차 왔을 때는 현재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좁은 철 계단이 있었는데 더 가팔랐고 위치도 좀 바뀌었다고 해요. 지금은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의 계단이 새로 놓였습니다. 총 221개의 계단을 오르면 신호대가 있는 오솔길을 돌아 드디어 용굴암 터와 용굴을 만나게 됩니다. 전주사고에 보관한 실록이 우마차 몇십 대, 상자만 62개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이 가파른 길을 어떻게 올랐을까요?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임금이 왕위에 있는 동안 조정에서 일어난 일과 그 밖의 여러 사실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8명의 사관이 24시간 내내 교대로 임금의 곁을 지키며 기록했어요.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를 잘 알게 된 것도 사극이나 드라마로 역사가 새롭게 해석되는 것도 다 방대한 실록 자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총 25대 왕에 걸친 472년의 기록을 담은 실록은 2077권으로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었습니다. 실록은 화재 등 재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4개의 사고에 분산해 보관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춘추관, 충주, 성주사고가 불타버리고 말았어요. 이때 정읍의 유생 안의와 손홍록이 내장산 용굴암으로 실록을 옮겨 실록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내장산에 실록이 머문 기간은 370여 일, 용굴암을 거쳐 더 깊숙이 은적암, 비래암 등으로 옮겨서 실록을 보관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걸었는데 아직 기운이 더 남았다면 용굴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 은적암 터가 있는 곳까지 가 봐도 좋습니다. 22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니 심사숙고하세요. 하지만 고생한 만큼 더 멋진 내장산의 봉우리와 능선을 만나게 될 테니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돌아오는 길 금선계곡에 흐르는 물을 동영상으로 담아봤습니다. 이 물처럼 역사의 물줄기도 계속 흘러가겠지요? 산세가 험준해 실록을 피난시키기에는 최적지였지만, 등짐을 지고 걷기에는 녹록지 않았을 길, 역사를 지고 걸었던 그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역사는 기억되고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칠 즈음, 하늘도 파랗게 열리고 날씨가 쾌청해졌습니다. 우리는 내장사 입구 정혜루에서 향긋한 연잎 차를 마시고 군고구마도 먹으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내장사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혜루에 가시면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자비로 무료로 나눔 하는 차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선조들의 용기와 노고를 기리며 내장산 실록길을 한번 걸어보세요. 이제 곧 봄이 올 테니 나뭇잎이 연둣빛으로 물 들 때,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동화를 읽고, 자녀와 함께 역사 기행을 떠나보는 건 어때요? 내장사로 가는 길 왕조교와 실록교를 건너보고, 탐방 안내소 직전 화장실 옆에 있는 조선왕조실록 내장산 이안사적기비도 찾아보세요. 실록은 조선의 정신이며 자존심이다. 실록이 사라지면 조선의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게야. 역사가 없는 민족은 앞날도 기약할 수 없다. 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실록을 지킬 것이다. 안의의 단호함에 석개는 마음이 흔들렸다. - <으랏차차 조선실록 수호대> 에서 만난 문장 /글사진=오교희(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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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7 17:31

공식업무 시작한 전북예총 제24대 소재호 회장 “모든 장르 연대, 총화단결 꾀할 것”

전북예총 제24대 소재호 회장이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임기는 지난 1월 17일부터 2024년 2월 정기총회 후 당선인 인준일까지. 지난 10일 예정됐던 취임식은 코로나 19 영향으로 잠시 미뤘다. 1962년 4월 출범한 전북예총은 현재 회원 1만 300여 명이 참여, 활동하고 있는 지역대표 문화예술단체다. 12년 만에 새로운 전북예총 시대를 펼쳐갈 소재호 회장은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지난 12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북예총 연합회장실을 찾아 소재호 회장을 만났다. - 제24대 전북예총 회장에 취임하셨습니다. 4년간 수장을 맡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시게 되셨는데요. 소회를 들려주시죠. 인류 문화 문명이 그러하듯이 모든 영역 모든 장르가 함께 발달해야 하고 연합적 체제로 협치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선거를 치르는 동안 소스라치게 깨달았습니다. 예술연합회라는 큰 카타고리 안에 상호 의존적 상관성을 긴밀하게 띠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야 예술연합회의 존재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예총회장은 마땅히 최선의 방책과 최대한의 봉사가 요구되는 자리이므로 이를 위한 각오가 먼저이며 그 신성한 사명감을 심대하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선거에 임하는 자타간에 그 외향적 명예욕에만 사로잡혀 다소 목적에 반하는 행위들을 자행하지 않았나 하는 소회도 품습니다. 하여간 예총의 바람직한 미래를 상정하며 전력 질주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굳건히 하고자 합니다. - 당선 소감으로 하루해는 이글거리다가 서산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놓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공약사업은 무엇인지요. 예총의 총화단결을 꾀하고 싶습니다. 모든 장르가 연대하며 예술 궁극의 목적에 입각하여 공동선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행사들은 가능한 한 연합하는 기획 자체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인화의 기반 위에서만 목적은 성취되기 때문이죠. 모든 예술 협회 회원으로 방문단을 구성하여 선진 예술의 나라를 탐방하고 앞서있는 예술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행사를 기획하겠습니다. 함께 세미나 등 각종 좌담회를 통해 함께 어울리며 함께 소통하는 자리를 무시로 만들겠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함께 총화적이고 융합적이어야 합니다. 예술상, 각종 행사 등 모든 면에 공정한 배려와 분배가 이뤄져야 합니다. 아니 꼭 그렇게 실천하겠습니다. 예술의 본질에 상도해 질 높은 창작 활동에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예산 증액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요. 예산 증액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예총 발전과 전북 예술의 진흥을 위한 구체적이며 당위성 있는 소용액 그 자체입니다. 이를 관계부처에 매우 타당성 있게 설명하여 공감을 얻어내며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전래의 예산보다는 50%는 확실히 증배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충분한 증액이 아닐 것이며 연차적으로 더욱 증액되어야 할 것입니다. - 김상휘 후보와 최무연 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 승화해 실현할 공약을 꼽으신다면. 김 후보의 공약 가운데에서 중앙 공모전 참여 지원 TF 추진을 좋은 공약으로 봅니다. 또한, 전북 예총 진흥위원회의 설립도 그 목적성에 매우 동감합니다. 최 후보의 공약 중에는 예총지 발간과 청년 예술인 창작 지원 활동 강화가 바람직한 공약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들 좋은 공약은 도입해 함께 과감히 추진코자 합니다. - 인화단결, 친목화합을 가장 강조하셨습니다. 이와 관련 구체적인 사업이 있다면. 인화 단결을 위해서는 상호 만남의 기회가 자주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막연한 만남이 아니라 함께하는 예술의 학구적 탐구 활동이나 타협회 행사 예컨대 전시 공연 등에 함께 참가하는 배려, 또는 타 장르 예술가들을 초청해 자기 협회 연수에 활용하는 등의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매우 흡족한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일은 회장 혼자만의 결행만이 아니라 회장단 또는 임원진 모두의 공동선으로 추구해 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도민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전북예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예술문화는 대중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궁극적 목적이 있다고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하는 논법에는 반하는 주장일 터이나 분명히 예총 존재의 명분은 도민의 대중적 예술문화 향유를 위하는 역할에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불후의 예술이 창작되어 후세에까지 빛을 발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좋은 일일 것이나 예술연합회가 연대해 성취하는 공동선은 대중에 지향하는 예술활동이어야 한다는데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도민에 다가가는 예술행사도 그간 수년간 기획되어 약간의 성과를 내긴 했지만, 문제는 빼어난 작품 창작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입니다. 잘 만들어진 예술품은 자동적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감상하고 감동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인들이 뼈를 깎는 지고한 노력이 경주돼야 합니다. 좋은 명화 한편 보러 서울로 떼지어 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좋은 작품이 소문만 잘 나면 사람은 구름 처럼 몰릴 것이다. 결국 우리 예술인들의 자성과 각오의 문제가 선행돼야 함에 다른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작업, 이런 풍토 조성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 예총의 사명입니다. ●소재호 회장은 사람 섬길 줄 아는 인화단결의 명수 소 회장(74)은 남원 시골 벽촌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섬김을 배웠다. 그래서 소 회장은 자타공인 인화단결의 명수다. 전주고와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2006년 전주 완산고 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36년간 교육계에 몸담으며 많은 제자를 뒀다. 소 회장은 1984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해 시와 동행하는 삶을 이어왔다. 표현문학회 회장을 맡아 존폐 갈림길에 있던 계간지 <표현>의 옛 명성을 되찾는 데 공을 들였고, 전주 신아문예 시창작교실에서 시를 강의하며 후진을 육성하는 데에도 힘썼다. 전북문인협회장, 석정문학회장, 석정문학관장, 신석정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을 지내며 문학계에 헌신했고, 현재 표현문학회장, 국제PEN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문협 인권옹호위원, 신성적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 의욕도 커 <이명의 갈대>,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 <거미의 악보>,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 <압록강을 건너는 나비>, <초승달 한 꼭지> 등 삶에 대한 지혜가 번뜩이는 시집들을 펴냈다. 특히 소 회장은 독립유공자 고 소팔백 선생의 손자로, 각종 독립운동 관련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독립운동정신 선양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독립유공자유족 전북대표 대의원을 지냈고, 전북광복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지난해 전북일보사가 주최하고 전북도와 전북 동부서부보훈지청이 후원한 독립유공자 부문 제45회 전북보훈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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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 2020.02.16 16:12

[뚜벅뚜벅 전북여행] 완주 백여리 겨울 스케치 여행 : “어머니 밥상 같은 구수한 손맛과 정이 있는 곳“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로 가기 위해 전주 974번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송천동에서 전주 시내~평화동~구이면을 지나 한참을 달려 정자리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십여 년 전, 어느 그림 모임에서 겨울 풍경을 보러 간다고 하길래 따라갔던 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조용하고 고요한 마을 풍경 그대로입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목, 백구 2마리만이 아는 척을 해줍니다. 바로 옆, 문 닫힌 백여정미소의 오래된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완주 오봉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이따금 씩 등산객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저도 등산해볼까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옛날 같지 않아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오니 반가운 마음에 구석구석 더 걷고 싶어집니다. 전주 시내와는 사뭇 다른 풍경. 버스를 타고 30~40분 남짓 온 것 같은데 전혀 다른 풍경과 공기가 느껴집니다. 여행이 이래서 좋은 건가 봅니다. 걷다 보니 정자마을을 알리는 이름이 보이고 정자교 다리가 보입니다. 딱히 목적지는 없지만 길이 있으니 일단 걸어봅니다. 산 아래로 색색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대부분 집수리를 마쳐 예전과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소박한 마을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다리를 지나 한참을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니 나무가 빽빽이 심어있는 곳에 접어들었습니다.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이 낯선 여행자의 방문을 알아봐 줍니다. 아무 데나 걸터앉아 색연필을 꺼내고 이것저것 그려보기 시작합니다. 영하 5도의 꽤 추운 날씨, 의욕 넘치게 맨손으로 연필을 잡습니다. 완주의 차가운 겨울을 직접 마주하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메마른 이 땅에도 곧 꽃피는 봄이 오겠지요.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경운기 한 대에 시선이 갑니다. 별다를 건 없지만, 경운기의 입체적이고 복잡한 구조, 정겨운 그 모습이 좋아 종이에 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니 밥때가 됐네요. 배가 고파 옵니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어느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오봉산 등산객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쉼터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언뜻 보면 동네슈퍼 같지만, 김치찌개 백반과 라면도 먹을 수 있는 밥집이기도 하지요. 함께 간 일행이 이곳에 가고 싶다고 얘길 했던 터라 들어가긴 했는데, 어쩐지 가게 분위기가 익숙합니다. 십여 년 전, 이곳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여섯 명이 좁은 가게에 들어앉아 허겁지겁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 먹었는데 참 맛있었거든요. 구석구석 살펴보니 가게도 주인아주머니도, 아저씨도 많은 시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도 함께 말이죠. 사장님! 사장님! 한참을 불러도 나오지 않으시길래 테이블 의자에 무작정 짐을 풀고 기다렸습니다. 조금 지나자 그제야 인기척을 들으신 듯 아주머니가 나오시네요. 저희 김치찌개 주세요~ 주문을 받자마자 뚝딱뚝딱 안에서는 분주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김치의 시큼한 내음이 폴폴 풍겨오고 배에서도 난리네요. 기다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김치찌개 한 상이 뚝딱 차려졌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언뜻 보니 찌개 속에 김치 반, 고기 반입니다. 두툼한 돼지고기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네요. 그 옆에 펼쳐지는 반찬 8종 세트. 다른 것보다도 어렸을 때 자주 먹던 참죽나물이 반가웠습니다. 예전에 먹던 그 맛입니다. 요즘 마트에서 사 먹는 김 가루와 비슷한 맛이 나지만, 먹어보면 오묘한 향과 식감이 매우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흔히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죠. 언제 밥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해치운 밥 한 공기, 그리고 김치찌개가 바닥을 보입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맛깔스럽고 소박한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입니다. 무심한 듯 계속해서 음식을 주시는 주인아주머니. 정이 많은 분입니다. 예전에도 이곳에 와 밥을 먹었다고 아는 척을 하니 그제야 표정이 풀리며 반갑게 대화를 풀어갑니다. 이제야 겨우 어색함이 풀어지게 됐는데, 벌써 가방을 메고 나설 시간입니다. 갈 길이 머니까요. 주인 내외분과 긴긴 작별 인사를 마치고, 오봉산 주유소 쪽으로 터벅터벅 걷습니다. 이제는 영업하지 않는 텅 빈 오봉산 주유소의 전경이 조금 쓸쓸하네요. 맞은 편, 또 다른 가게 간판이 보입니다. 가게 입구를 보니 식당인 것 같은데, 커다란 커피 잔 풍선이 서 있습니다. 카페도 같이 하나 봅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도 나눌 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라 등산객도 손님도 많지 않은가 봅니다. 카페 주인이 반갑게 저희 일행을 맞아줍니다. 친절하고 살가운 말투의 주인분은 가게 밖에 곶감이 있으니 커피 나올 동안 드시라며 정다운 말 한마디를 건넵니다. 집에서 말린 곶감은 무슨 맛일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커다란 곶감 하나를 따서 먹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 달고 쫀득쫀득한 게 완전 꿀맛입니다. 이래서 완주 곶감이 으뜸이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더 먹고 싶었지만, 맛본 걸로 만족하고 카페로 들어갑니다. 주인분께 제가 먹어본 곶감 중에 제일 맛있었네요! 라고 말을 하니 환하게 웃으시며 커피를 내옵니다. 커피와 함께 말린 사과, 감이 서비스로 나오네요. 주문한 가래떡 구이의 비주얼은 기대 이상입니다. 통통하게 구워진 떡이 군데군데 갈라진 걸 보니 잘 구워졌네요. 겉은 바삭바삭 속은 쫀득~ 가래떡과 아메리카노의 조합이 정말 환상입니다. 커피도 전문적으로 배우신 것인지, 원두에 관해 설명도 해주시고 실제 커피 맛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닭 요리를 먹어야 하는 건데 식사를 하고 온 터라 백숙 요리는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지나간 추억도 곱씹어보고 오늘 걸었던 길도 돌아보며 백여리에서의 하루를 정리해봅니다. 봄이 오고 날씨가 좀 더 풀리면 등산객들의 발길도 많아지겠지요. 그때는 봄 내음 폴폴 나는 오봉산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길 백숙에 막걸리까지 한잔 걸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여상회> 김치찌개 7,000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453 <오봉산정> 아메리카노 2,500원,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오봉산길 102 /글사진그림 = 김미나(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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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4 17:09

[뚜벅뚜벅 전북여행] 전북 무주여행 : 덕유산 눈꽃 구경 "올겨울, 귀한 눈(雪) 보러 오세요"

겨울에 눈이 오면 교통 체증에 집 앞 눈 치울 걱정이 먼저 되는 어른이지만 올해는 그 눈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걱정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로 눈이 오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겨울에는 눈을 봐야지라며 눈이 보고 싶은 분들께서는 이 글 주목해주세요. 그리고 새하얀 눈꽃과 인생 사진 남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글입니다. 겨울왕국으로 가는 길인가요? 아니죠. 바로 전라북도에서 눈꽃 구경을 떠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이런 곳은 2~3시간 산에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분 많으시죠? 2~3시간 등산 후에 춥고 힘들어서 인생 사진은 생각도 전혀 안 생기니 추천해드릴 수가 없겠죠? 이곳은 관광 곤돌라를 타고 20분 만에 해발 1천5백 미터를 올라 눈꽃을 만날 수 있답니다. 방문했던 이 날은 스키장에서 눈을 뿌리고 있어 곤돌라 주변 더욱 멋진 분위기가 연출되었네요. 곤돌라를 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표를 바로 사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뜰한 전북 여행자이니 할인을 받아야겠죠? 온라인으로 하루 전날 예매하면 할인이 되니 방문계획이 있다면 미리 구매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덕유산의 눈꽃을 보기 위해 예약이 필수입니다. * 곤돌라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 대인 (만 14세 이상) 왕복 16000원 * 소인 (소인 36개월이상~13세이하) 왕복 12000원 * (온라인 예약 시 주말, 주중 할인율이 다르며, 당일 구매 후 당일 사용은 불가합니다) * 누리집 : http://www.mdysresort.com 사실 주차장에 오는 길에 눈이 전혀 없어 눈꽃을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요. 드디어 설천봉에 도착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설천봉은 새하얀 눈이 가득합니다. 무주의 날씨를 검색해보니 영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되었는데 설천봉은 기온이 7~8도는 더 낮아 영하 10도보다 더 추운 날이었기에 제대로 눈꽃을 볼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가기 전 덕유산리조트 홈페이지에서 날씨를 검색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2월 1일자로 날씨를 검색해보니 무주는 영하 2도인데 설천봉은 영하 9.1도인 게 보이죠? 여기서 또 한 가지 방법을 드리면 습도가 높으면 눈이 오지 않았더라도 상고대가 있을 확률이 높으니 습도도 확인하시면 좋답니다. 또 그래도 걱정이 되면 웹캠으로 현지 상황을 보고 올라가면 좋겠죠? 설천봉의 상황은 아래 링크에서 직접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위에 사진은 2월 1일 자 지금 글을 쓰는 순간 확인한 모습입니다. 오늘 눈이 내려 많은 이들이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듯하네요. https://www.mdysresort.com/resort/webcam/webcam.asp?cam_num=7 이제 이곳을 이용하는 팁을 알려드렸으니 본격적으로 덕유산 눈꽃을 즐겨 볼까요? 설천봉에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까지는 데크가 잘 되어있어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습니다. 향적봉으로 가는 길 다시 설천봉을 돌아보며 사진을 남깁니다. 본격적으로 덕유산을 돌아보기 전 덕유산에 대해 알아볼까요? 덕유산은 1975년 국내 10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으면서 소백산, 속리산 등을 솟아오르게 한 후, 다시 지리산으로 가는 도중 그 중심부에 빚어 놓은 명산입니다. 난간에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올해 눈 보기가 하늘이 별 따기 였는데 이렇게 난간에 쌓인 눈을볼 수 있다니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거기에 새하얀 눈과 파란 하늘이 더해지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여행지에서는 사실 여행의 풍경과 함께 날씨도 중요한데 눈꽃 여행에 있어서는 날씨가 제일 중요하겠죠? 사실 덕유산으로 눈꽃 여행을 온 게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눈꽃을 한 번에 보니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공터에 조금 쌓여 있는 눈을 보면서 기뻐했는데 이런 최고의 눈꽃을 봤으니 매년 겨울 덕유산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꽃 터널을 지나면서 전망대에서 향적봉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겨울이 시작되던 초반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요즘 늦겨울의 눈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니 이런 풍경은 이른 시간에나 가능할 듯합니다. 새하얀 눈꽃을 보니 마치 금방이라도 겨울 왕국의 엘사가 달려 나올 듯합니다. 엘사 대신 함께한 지인이 달려왔습니다. 이곳이 인생 사진 찍기 최고의 장소라고 했죠? 새하얀 눈꽃 터널도 아름답지만, 그곳에 인물이 화룡점정으로 더해지면 더 아름다운 사진이 되겠죠? 20여 분을 걸어 향적봉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오는 길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으나 20분이 더 걸렸습니다. 향적봉은 덕유산에서 1,614m의 최고봉인데 이곳에는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 오늘은 풍경과 인물 사진을 담으러 온 것이니 정상석 사진 대신 아름다운 이곳의 풍경과 함께 사진을 남겨봅니다. 사진을 위해 특별히 원색 코트를 준비해갔는데 덕분에 흰 눈 파란 하늘 그리고 노란 옷을 입은 모델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사진이 탄생합니다. 무엇보다 이날은 파란 하늘이 흰 눈꽃만큼이나 반갑고 아름다웠습니다. 그곳에서 멋진 사진 안 남길 수 없겠죠? 저는 이날 멋진 풍경 덕에 인생 사진 가득 담아 올 수 있었답니다. 어떤가요? 관광 곤돌라가 있어 20분이면 겨울왕국 덕유산에서 올겨울 마지막 눈꽃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아름다운 인생 사진도 가득 담아 올 수 있으니 올겨울이 가기 전 덕유산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글사진 = 김보현(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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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4 16:49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72. 어느 시기에나 있는 두려움, 전염병

염병하네!라고 국정논단의 몸통인 최순실에게 시원하게 외쳤던 환경미화원의 일갈이 한동안 화제였다. 당시 사이다 발언으로 알려진 그 말에 등장한 염병은 지금의 장티푸스로, 염병한다는 것은 전염병에 걸려 헛소리한다란 욕이다. 염병(染病)의 한자어는 염색에 쓰이는 염으로 병을 물들이듯이 옮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표현대로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19가 우리 지역에까지 스며들어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전염병은 오래전부터 널리 유행하는 병이라는 의미의 역(疫)과 좋지 않은 병이라는 뜻의 여(癘)로, 역려역질여역역진 등 병의 종류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나라에서 치료와 관리에 힘을 쏟았지만, 귀신의 조화로 전염병이 번졌다고 여겨 전염병이 많이 돌 때는 여제(癘祭)를 행하고 굿을 통해 원통하게 죽은 귀신인 여귀를 달래기도 했다. 전염병에 관한 오랜 기록으로는, 기원전 15년인 백제 온조왕 4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기근이 생기고, 역병이 유행했다는 것과 신라 선덕왕이 역진으로 죽고, 고구려에서도 전염병이 있었다는 것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선조들이 지칭한 전염병의 개념은 광범위했다. 유행하는 질병은 물론이고 때로는 흉년이나 기근에 따라 생겨난 영양 부족도 전염병으로 간주했다. 그러다 점차 의학지식이 늘어나자 병에 대한 분류와 치료가 생겨났으며, 그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 등장했다. 조선 시기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전염병은 지금의 천연두, 장티푸스, 콜레라, 홍역이었다. 홍역은 제구실, 제것이라 부르며 일생에 한 번쯤은 치러야 하는 병이라 여겨 홍역을 치른다란 표현을 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손님과도 같은 성향이 있는 전염병을 빗대어 홍역을 작은 손님, 천연두를 큰 손님으로 불렀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으로 시작하는 공익광고에 등장한 마마는 천연두이다. 병을 옮기는 신이 두려워 마마라 높이 부르거나 두창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명의인 허준은 선조의 아들이자 훗날 광해군의 천연두를 완치시켜 신임을 얻어, 『동의보감』외 천연두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언해두창집요』를 왕명을 받아 저술했다. 또한, 오염된 물이 전염병의 주된 요인이라 밝힌 『신착벽온방』 등을 집필하고 수많은 백성을 치료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 외 숙종의 천연두를 치료한 유상이 유명하고, 천연두를 앓았던 정약용이 집필한 『마과회통』이 있으며 지석영은 『우두신설』을 저술하여 천연두 치료에 큰 업적을 남겼다. 현종 때 『조선왕조실록』에는 팔도에 기아와 여역과 마마로 죽은 백성을 이루다 기록할 수 없고 특히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고 참혹한 죽음이 임진년의 병화보다 더 하다라 했다. 당시 삼남인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 전염병 빈도가 높았던 것은 삼남길이 뻗어가는 곳에 문물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 전염병이 옮기 쉬운 조건이었고, 유난히 강우량이 많았던 기후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 9년인 1733년에는 전라도에 역질이 유행하여 2081명이 사망하였고, 영조 26년에는 역질이 크게 번져 여러 도에서도 여제를 지내고, 전라도에 근신(近臣)을 보내 여제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종은 전라도에 여역이 창궐하여 많은 백성이 사망하였다고 하니, 의원을 보내어 마음을 다해 구완하라.명했다.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임금은 신하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정사에 대해 조언하도록 하며 마음을 바르게 다잡았다.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정전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며, 제사나 연회에 연주를 금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근신함으로써 재해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전염병이 돌면 나라에선 백성들의 부역을 정지하고 공납을 연기하며 민생을 안정시킬 대책을 마련하였다. 구제와 치료를 맡은 관청인 활인서와 혜민서 등에서 병막을 가설하여 치료와 음식과 의복약 등을 배급하기도 하고,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고, 연고가 없는 시신의 매장은 물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특히나 감옥의 문을 열고 청소를 하여 밀폐되고 협소한 장소에서의 전염병 전파를 막고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선별하여 석방하기도 하였다. 순종 때에는 콜레라가 퍼지자 경시청은 마을의 공동 우물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인도의 풍토병으로 알려진 콜레라는 일본을 거쳐 고종 때 전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그저 괴질이라 불렀다. 그러다 쥐귀신이 잠자는 사람의 다리를 갉고 올라와 몸 안으로 스며들어 뱃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라 여겨 쥣통이라 했으며 호열자(虎列刺)라 부르기도 했다. 호열자는 콜레라의 중국 표기인 호열랄(虎列剌)을 음역하는 과정에서 랄(剌)을 자(刺)자로 혼동하며 생겨난 이름이다. 이제는 의학의 발달로 새로운 전염병에도 잘 대처하게 되었고, 선조들이 두려워했던 전염병들은 과거의 기록으로 남았다. 뿌옇게 소독연기를 피우며 골목을 지나던 방역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주사가 무서워 떨며 팔뚝을 걷어 올리고 길게 줄을 서서 예방주사를 맞았던 일도 이제는 아득하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 발전하듯이 변이를 통해 점점 강해지는 바이러스가 두렵다. 그럼에도 전염병 대응은 지난 사례의 철저한 복기로 향상되고 있다. 바라건대, 이제 더 이상의 피해 없이 순하게 지나가 우리의 일상이 평온하고 지역의 곳곳이 사람들의 온기와 활기로 넘쳐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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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3 15:29

재경 출향인 모임 ‘전북사람들’ 김남순 상임대표 "전북의 인재 키워 전북 발전의 토대 마련"

서울 등 수도권에는 출향 인사들의 구심점인 (사)재경 전북도민회를 비롯해 시군별 향우회 등 다수의 모임체가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단체가 있다. 전사들이다. 전북사람들의 약칭이다. 출범한 지 20년이 됐지만, 도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고향에 대한 회원들의 애정과 열정은 뜨겁다. 결속력도 강해 애향 결사체로 불리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창의인재 양성이다. 전북의 미래를 인재(人材)에서 본 것이다. 전사들을 이끌고 있는 김남순(사진59) 상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사들이란 명칭이 생소하다. 1999년 출범한 (사)신지식사회네트워크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신지식사회네트워크가 정권의 부침에 크게 영향을 받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2016년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고 명칭을 전사들로 바꿔 재탄생했습니다. 아직 세상에 내보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돼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전신인 (사)신지식사회네트워크는 어떤 모임이었나. 김대중 정부 시절, 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주도로 한승헌 변호사, 신건 전 국정원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동영 평화당 대표 등 전주고 출신이 주축이 된 재경 전북출신 지식인 모임이었습니다. 정부 부처의 2급 이상, 부장급 이상의 판검사, 기업체 대표 등 정관재계, 예술문화계 등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습니다. 전북의 이익 대변을 위한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며 한때 회원이 4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됐는데, 정권 교체 후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해 위기를 맞았습니다. -전사들이 새롭게 모색한 지향점은 무엇인지. 미래 창의인재 육성입니다. 전북의 인재를 키워 전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01년부터 19년째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정관 상 전사들의 목표는 △전북의 미래와 전북인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의 공동결사체 결성 △전북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창의적 차세대 지도자와 인재양성을 하고 지원하는 캠프 역할 등이다.) -장학 사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2011년,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장학사업 추진을 위해 (사)신지식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금은 이사장이 사비로 쾌척한 1억 원에 회원들이 매월 납부한 회비와 바자회 등을 통해 모은 돈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년 102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최근엔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고교생과 대학대학원생 등 33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추구하는 인재상은. 약칭에도 내포돼 있는데, 사실 전북사람들은 전사들이란 약칭이 결정된 후에 정해진 명칭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인재상은 선비적인 풍모와 멋스럼만 강조된 전북인 보다는 상인무인적 기질을 동시에 갖춘 전사들이란 명칭이 더 부합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전투적인 자세와 미래지향적인 지도자, 즉 상인과 무인 그리고 선비정신을 두루 갖춘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인재 양성과 관련한 향후 계획은. 올해부터는 범위를 넓혀 서울경기지역을 포함해 본격적인 창의인재 발굴과 육성에 나설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전북도의 고급인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후배들이 함께 호흡하고 사고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전사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이전과 달리 정치적 색채를 배제했습니다. 대부분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 출향인들로, 고향 발전에 대한 열정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 전북이 어떻게 바뀌어야 된다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이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260여 명 입니다. -대부분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처럼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지. 친정이 잘 살아야 기를 편다는 말이 있듯이 내 고향 전북이 잘 살아야 출향인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습니다. 전북도가 너무 못사니까요. 고향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 하나입니다. -출향인들이 바라 본 전북의 모습은. 다소 암울한데,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산업 인프라는 취약하며, 인구도 감소하는 등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민들 마음속엔 패배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없고, 오히려 성공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전북사람들을 만나 보면 무척 답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의 좁음과 편협함, 그리고 개인주의 등등 -예를 들면 어떤 게 있는지. 전북 출신 인재들이 중앙에서 활동하다 내려가면 버티기가 힘듭니다. 지역사회에서 내버려두질 않죠.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올라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고향에 내려갔던 인재들이 답답한 전북의 상황에 견디지 못하고 올라와 버리는 상황, 이것이 현재의 전북입니다. -이에 대한 전사들의 대응책은.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깨우쳐 나가려고 합니다. 사회분위기 전환도 필요합니다. 지역사회가 들썩들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민에 대한 해답은 찾았는지. 그동안 암암리에 전북을 방문하고, 정기적인 세미나 등을 통해 전북의 현안을 접하면서 방안들을 모색해 왔습니다. 하나를 소개하자면, 최근 핀란드에서 찾은 우리의 미래라는 책을 접했는데, 책을 읽는 순간 잠을 잘 수 없어 밤새 읽었습니다. 전북도와 대한민국이 이렇게 바뀌어야겠구나, 이게 살 길이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을 소개해줄 수 있나. 핀란드는 우리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자원도 부족합니다. 인구는 우리보다 적은데도 어떻게 해서 잘 살고 있는가 하는 고민이었죠. 대학에서 창업하고 벤처기업을 만드는 등의 혁신이 핵심이었는데, 혁신을 통해 성장과 복지를 함께 하는 핀란드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 전북의 방향을 제시해 본다면. 안에서만 하기 때문에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돌파구를 만들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략을 확실히 갖춰야 됩니다. 특히 전북의 미래를 그리는 싱크탱크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답을 주는 게 아닌, 전라북도의 올바른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을 비롯해 지식인 집단 그룹이 사심 없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전북의 교육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인재상이 필요합니다.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전북이 여러 면에서 꼴찌이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전북인들이 함께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사들이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더불어 전북도민과 공무원, 모든 기관이 1등 전북을 위해 소지역주의와 개인의 이익을 양보하는 큰 그림에서 지역사랑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 김남순 상임대표는 1960년 고창 출생으로, 전주고-원광대 한의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곧바로 상경, 1986년 서울 동작구에 한의원(화남한의원)을 연 이후 현재까지 34년째 같은 자리에서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의사인 그가 재경 활동에 본격 나선 것은 1999년 (사)신지식사회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고향 발전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2008년 신지식사회네트워크가 위기를 맞으며 회원 상당수가 빠져 나갔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는 집이 어렵다고 해서 집을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을 찾아가 다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서 모임을 살려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조 전 부회장의 지원(1억)과 개인비용 등으로 (사)신지식장학회를 설립했다. 이 일로 그는 2009년 떠맡다시피 신지식사회네트워크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2016년 전사들의 대표까지 10년째 모임을 이끌고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은 고생스런 역할임에도 불평 없이 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대학 시절 무료봉사활동을 통해 봉사가 나를 부패하지 않게 하고,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도 한 때 정치의 꿈을 꾸었다. 신지식사회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정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자신 보다 더 유능한 고향 후배들이 나서는 게 낫다는 생각에 꿈을 접었다고 했다. 그가 지역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녀 1남을 두고 있으며, 현재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자영(29) 골퍼가 그의 둘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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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20.02.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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