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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상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받겠다고 조건을 단다. 현진건의 단편 <아다다,1921>에서는 사람을 팔고 사는 수단으로써 비정한 돈의 역할이 부여되고 저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1866>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를 손에 들고 전당포를 찾는 이유가 된다. 언제나 내 마음속 청춘인 <날개,1936>의 주인공은 아내가 준 돈을 모두 화장실 변기통에 버리기도 하였으나 오늘날 돈은 화폐로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양심을 소환하던 시대를 넘어 궁극의 목적이 되길 원한다. 어떤 면에서, 최초의 현대인이라는 수사가 어울리는 에밀 졸라. 그는 어떤 눈으로 돈을 바라보았을까. 졸라의 소설 <돈>은 주인공 사카르가 만국 은행을 설립하여 은행장이 되었다가 파산하는 과정을 그리며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사카르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구두쇠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의 돈이라도 갖다 쓰고자 한다. 검찰 총장 아내와 여흥을 즐기는 것도 만국 은행 주식을 파는 방식으로 투자를 받으려는 속셈이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증권 거래소의 실세 군데르만을 찾아가 투자하도록 설득하기도 한다. 위장병이 있어 우유로만 생활하며 그마저도 한 모금 들이키는 시간이 길어 지루했던 순간을 견디고 그가 들은 말은 은행장이 되어도 결국은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돈의 흐름에 예민하고 고집스런 유대인 군데르만은 과도한 열정과 비약적인 상상력, 남의 돈을 가지고 사업하려는 사카르의 자세를 실패의 원인으로 들었다. 그런 식이라면 어떤 일에도 안착하기 힘들겠지, 하고 나는 동의한다. 지참금으로 주식을 산 모녀가 일부를 팔려고 하자 사카르는 반대한다. 오르고 있는데 왜 파느냐고. 돈을 빌려서라도 더 사야 한다고. 마르셀은 기죽은 남편에게 돈을 양동이로 퍼서 안겨주는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다. 그녀가 돈을 빌리러 간 친정에서는 이미 많은 주식을 샀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편, 루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한순간에 유출되는 사정을 비추어 오늘날을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이야기에서 눈길이 가는 인물은 단연 카롤린이다. 어린 나이에 이혼한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사카르의 집무실을 드나들며 일하다 그의 과도한 지출과 횡령을 알아차린다. 그녀의 조언으로 보름 후에 지출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일까. 그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두 번째 남자가 되는 게 싫다는 이유를 들어 혼자서 감정을 정리한다. 대부분 인물이 돈을 갈망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녀는 오히려 “세상의 모든 돈을 없애 버렸으리라”하고 서술하듯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사카르조차 알지 못하는 그의 아들을 빈민촌에서 구할 때는 자기 돈을 쓴다. 그러는 과정에서 허황되고 무절제한 사카르에게 연민일지 애정일지 모를 감정이 싹튼다. 1891년에 발간된 이 책은 스무 권으로 된 루공-마카르 총서 중 하나다. 대가의 글이라고 취향을 안 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발한다>와 같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자들이 백지 위에서 춤춘 탓에 두 달여에 걸쳐 읽었다. 읽다 보니 인물에 애정도 생겼다. 심리묘사가 생각보다 많은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 주변을 옮겨 놓은 듯한 이 작품을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을 걷듯 읽었다. 오은숙 작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됐다.
정기석의 첫 비평집 <연약을 위한 최저낙원>(파란)에서는 2010년대 이후 붕괴되고 연약해진 시편들을 살핀다. 동시대 시에서 흔하게 목도할 수 있는 개인이 가진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형상화와 기존에 조명 받지 못한 비가시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또 비평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각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시는 시대적 저항을 위한 역동성이라기보다, 타자와 세계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 속에서 체념과 절망의 외피를 두른 희미함으로 현재의 시간을 만든다”고 밝히며 “여기 작성된 글들은 파열에 대한 함께 있음의 의지이자 동시에 마지막 파열에 함께 한다는 동의”라고 책을 소개했다. 특히 저자는 재테크, 주식, 가성비 등의 경제적 용어 사용의 일반화를 넘어 언어에 기반한 인식적 틀이 자본주의에 맞춤 설정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회에서 비평의 경제적 쓸모와 가치에 대해 짚어보고 투자 대비 성과만을 찾는 세태를 비판한다. 비평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가장 연약한 것이 미래와 세계인 듯 △연약함이 대신 미래를 감싸고 △연약한 것끼리 세계의 진창을 대신하네 △세계의 상처 속에 함께 머물기 위해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시하고 노래하네 등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경상북도 포항 출생인 저자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문학사상’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또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은유로서의 똥>(공저)을 펴냈다.
김용택(78) 시인이 3월을 주제로 엮은 책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출판사 난다)를 펴냈다. 매해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중 하나다. 3월편의 주인공인 김용택 시인은 매일매일 그러모은 3월의, 3월에 의한, 3월을 위한 읽을거리를 완성했다. 시인은 임실의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그곳에 살며 섬진강을 걷고 꽃들을 따라다니며 작은 생명들 곂에 옆드려 시를 쓴다. 시인이 평범한 봄의 일상 속에서 완성한 책에는 11편의 시와 4편의 아포리즘, 일기 등 31편의 글이 담겨 있다. 글을 통해 김 시인의 진지한 문학론과 유쾌한 인생론, 손자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감사함 등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며 겁이 없다. 겁 없는 세상,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겁도 없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은 강물 위로 사라지는 눈송이들처럼 아름답다. 겁도 없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강물로 사라지는 저 수많은 눈송이처럼 말이다. 사랑도, 삶도 순식간이다”(‘그러나 사람보다 큰 책은 없다’ 중에서) 평소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인간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인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책에서 기존의 자기 스타일을 모두 담으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선보인다. 김용택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그동안 출간된 시 이면의 문학과 그의 내면을 느껴볼 좋은 기회이다. 시인은 책의 머리말에서 “사실을 쓴다. 사실만이 숨을 쉰다. 사실인지 어떻게 아나. 사실을 어떻게 가려내나”라고 밝히며 “사실은 진실 앞에서 괴롭다. 실은 그것이 인간 고통의 전부다”라고 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 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김용택 시인은 이후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집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등을 비롯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에세이 <아침산책> 등을 출간했다. 1982년 발표한 시 ‘섬진강 1’은 7차 교육과정 문학 교과서와 2021 수능특강 문학에 실렸으며, 시들 가운데 ‘우리 아빠 시골 갔다 오면’, ‘방 안의 꽃’ 등에는 곡이 붙여져 동요로 발표되기도 했다.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안성덕 시인의 시집 <깜깜>(걷는사람)이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받는다. ‘김구용시문학상’은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가 주최하고 계간 리토피아가 주관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시인이 발간한 시집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정‧시상한다. 김구용시문학상 심사를 맡은 손현숙 시인은 “안성덕의 이번 시집 속 시들은 다양한 주제 의식은 물론 시편마다 각각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며 “문학적인 가치와 창의성을 충분하게 내포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며 문학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성덕 시인은 정읍에서 출생하여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붓> <달달한 쓴맛> <깜깜> 등을 있다. 디카에세이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를 펴냈다. 현재 계간 ‘아라쇼츠’ 주간직을 맡고 있다. 안 시인은 “가끔 시가 뭐에요 물어오면 녹음기를 튼다. 사전적 의미나 외운다. 형용사, 부사가 아니라 명사나 동사로 쓰는 것이 시”라며 “그분의 세계도 일천한 주제에 (상을) 주신다니 덥석 받는다”며 진솔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4시 인천광역시 문학동 소극장 돌체에서 열린다. 시상식에는 리토피아가 그동안 만들어온 창작시 노래를 선보이는 식전 축하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런던 도서전에서 한국도서 수출 상담관을 열고, K-북 수출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10일 밝혔다. 올해로 54회를 맞이하는 ‘런던 도서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 간 거래 전문 도서전으로 11일부터 13일까지 올림피아 이벤트에서 개최된다. 출판진흥원은 올해 처음으로 런던도서전에 수출 상담관을 조성해, 국내 참가사 10곳과 위탁 도서 101종에 대한 수출 상담을 집중 지원한다. 수출 상담관에는 문학동네·(주)다락원·도서출판 북극곰 등 10개 참가사의 개별 공간이 마련되며, 수출 전문가가 참여해 국내 위탁도서 101종의 수출 상담을 대행한다. 또 도서 및 출판사 정보가 수록된 영문초록 소개집을 제작 및 배포해 수출 상담을 지원한다. 참가사 주력도서로 지난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의 <너를 위한 B컷>(문학동네), 위탁 도서로는 2023년 ‘블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한 <이사가>(이지연, 웃는땅콩어린이재단)이 선정됐다. 이와 더불어 2023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주관한 ‘소리 없는책 아너리스트’에 선정된 <휴가>(이명애·키다리)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여러 우수한 국내 도서들이 현지 출판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또 도서전 종료 후 전시 도서는 주영국한국문화원에 기증해 영구에 한국어와 한국 출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2025년 런던 도서전을 통해 국내 출판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출판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를 꾀하고 세계 출판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데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햇빛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신문지 펴고 손톱이나 깎는/ 오후를 좋아하고’, ‘가끔 지나가는 채소 트럭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시장에 장 보러 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소망이었던 시인이 있(었)다. 그의 존재를 과거형으로 말하려니 갑자기 울컥해진다. 그는 이제 죽은 사람, ‘생의 적막한 오후를 견디기 위해서 아직 남아 있는 햇빛을 애인과 나눠 쬐고 싶었던’ 순정한 사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겨울의 끝자리, 전주한옥마을에서 『달나라 청소』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하상욱 시인(1967~2023)은 남원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남긴 『달나라 청소』을 윤동주 시집 이후 가장 순정한 유고시집이라 하겠다. 시인에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노엽기만 한’ 것도 아닌 ‘쪽문 앞 개망초 작은 꽃들을/ 쪼그리고 앉아서 보듯’ 사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의 비루함을 고결한 영혼으로 이겨냈듯이, 하상욱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노골적인 인간 소외를 맑고 깨끗한 눈빛으로 견디려 했다. ‘죽음이 삶을 껴안든/ 삶이 그 무엇을 껴안든’ 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여행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이 가지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수학 기호인 루트를 보면 모자를 벗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그만 하면 됐다고, 모두가 자본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열중할 때 한발 벗어난 고독한 생의 응시를 통과하느라 시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상욱 시인은 타인의 가쁜 숨소리도 들을 줄 아는 시인이었다.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얘길 들었다/ 항아리가 숨을 쉬니까 그 속에 담긴/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쉴 거다/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쉬니까/ 된장을 푼, 고추장을 풀어 끓인 찌개도 보골보골/ 숨을 쉴 거다 /(……)/ 이리저리 치이다 돌아온 당신도/ 숨을 쉬며 살아가는 거다”(‘항아리’ 일부) 시인은 이제 광란의 질주를 멈추자고 한다. 뉴스를 켜면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에서 하상욱의 시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어라고 몇 줄 썼다가 지웠다/ 눈이 내리는데 계속 걸었다/ 뒤돌아보면 내가 함부로 찍어 놓은 발자국들/ 눈이 조용히 덮어 주고 있었다/ 간다고 가는데 언제나 여기였다/ 다시 몇 줄 썼다가 지웠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 보면 저기가 다시 여기가 되고/ 가다가 멈추면 동그란 무덤이 생겼다…”(‘눈 오는 아침’ 일부) 『달나라 청소』를 읽으며 이 좋은 시들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그리워도 볼 수 없는 것’ 중에서 그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한밤중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하상욱이 없는 이 세계의 ‘눈발 속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그의 짧은 시를 소개하면 글을 마친다. “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달려가라/ 달려가라”(‘기차’) 시인을 힘들게 했던 겨울이 지나갔다. 지난 사랑은 언제나 비극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박태건 시인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로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나바위성당 팔각창문 아래서> , <익산문화예술의 정신> 등을 펴냈다.
개학 첫날 새 교실로 들어선 어린이가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새로워 두리번거리며 교실을 둘러봤다. 어엿한 2학년이 되었으니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교실과 복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화장실도 가지 않고 기억했는데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1학년 교실로 돌아갔다. 어린이는 ‘아차, 나 2학년이지!’ 화들짝 놀란다. “두리번두리번 새 교실/선생님과 친구들도 새롭다//이제 나는 2학년/실수하면 안 되지//교실과 복도를 머릿속에 그리며/화장실도 안 가고 기억했는데//급식 먹고 오다가/나도 모르게 들어갔다/1학년 교실로 쏘옥//아차, 나 2학년이지!” 송경자 시인의 동시 ‘개학 첫날’의 전문이다. 사실 개학 첫날에는 고학년 어린이나 청소년도 교실을 곧잘 헷갈리곤 한다. 시인은 주인공 어린이의 서툴지만, 순수한 마음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냈다. ‘이제 나는 2학년, 실수하면 안 되지’란 다짐에 흐뭇함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릴 어른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송경자 동시집 <바람 타는 우산>(책고래)에는 자연과 계절, 학교생활과 가정생활 등을 창의적인 생각과 참신한 비유로 엮은 55편의 동시가 독자들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분홍 벚꽃잎이/봄바람에 흩날린다//하늘하늘 날리는 꽃잎 잡으러/폴짝폴짝 휙휙//손바닥에 살포시 앉은/작은 꽃잎 하나//내 소원 담아 훨훨 날아간다”(‘나비가 되어’ 전문) 나비처럼 귀엽고 예쁜 동시 ‘나비가 되어’는 벚꽃잎을 잡으러 폴짝폴짝 뛰는 모습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표현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봄의 정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나거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준관 시인은 서평에서 “송경자 시인의 동시는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시”라며 “동시들이 따스하고 온유하고 포근해서 그의 동시를 읽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저자는 아동복지 교사로 아이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동안 동시집 <똥방귀도 좋대>(공저) 그림책 <마술떡>, 수필집 <좋은 하루 되세요>(공저) 등을 출간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노래하는 시인, 송하선 시인이 시선집<아흔 무렵의 이야기>(푸른사상)를 펴냈다. 현실에 대한 민감한 반응, 예리한 관찰과 비판,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개결한 정신의 발로가 시 또는 시인의 한 역할일 수 있다면, 송 시인과 같은 애정과 연민, 동정과 포용으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고 긍정하는 자세 또한 중요한 한 기능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작품에서는 시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정서를 만날 수 있으며, 인간과 사물을 관조하는 따사롭고도 맑은 눈을 마주할 수 있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조금은 먼 거리에서 보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시 ‘꽃’ 전문) “지금은 시인이 되어 있다지만/ 문단의 말석에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막걸리 마시며/ 떠도는 시인이 아니라/ 정직한 시인이 되어야지”(시 ‘어떤 시인이 될까’ 전문) 이처럼 잠시 들여다본 송 시인의 작품에서도 보이듯 그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개안, 삶에 대한 통찰과 관용의 정신, 깊고 그윽한 명상과 관조를 통해 시인은 마침내 자연과 삶과 죽음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현자의 세계에 이르러 있음을 넉넉하게 알려주고 있다. 장석주 문학평론가는 송 시인의 작품을 “송하선의 시들은 우리 시를 휩쓸고 지나간 민중 시도 아니요, 해체 시도 아니요, 생태 시도 아니다. ‘나’의 개체적 삶의 경험에서 길어내는 소박하고 조촐한 서정시의 세계다”며 “개체의 경험 중에서도 숭고하고 장엄한 것보다는 자연이나 가족, 이웃, 나날이 일상과의 교섭에서 이뤄지는 하찮고 사적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고 평하며 그의 시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송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아흔 무렵에 으르러 아내와 결혼 62년을 기념하기 위해 단시 62편을 모았다”며 “시집 제목을 아흔 무렵의 이야기로 정했다. 이야기는 소설을 흔히 말하지만, 굳이 이야기라 한 것은 이제 90의 나이가 돼가니, 간디가 물레를 잣듯 말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13권 시집에다 펴낸 시편들이 700여 편의 범작일 뿐, 명작이 없다. 그러나 오직 한길로 한 걸음으로 걸어온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제 출생인 그는 전북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등을 졸업했고, 중국문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1980년 우석대 교수로 부임해 도서관장, 인문사회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우석대 명예교수인 그는 전북문화상, 전북 대상, 목정문화상, 한국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다시 長江처럼>, <몽유록>, <시인과의 진정한 만남> 등이 있다.
솔직한 언어로 평단과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유대준 시인이 시집 <기억의 그늘을 품다>(현대시학사)를 펴냈다. 시인은 한층 선명해진 주제의식과 깊은 사유로 매혹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자신만의 화법과 심안을 갈고 닦은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천천히 소멸해가는 시간과 사랑의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이불 돌돌 말아 고치 집 지은 그녀를 본다/머리 쪽에 숨구명 하나 나 있다/처마 낮은 방에 엎드려/등이 가렵다고 피 나도록 긁으며/삶이 쓴 약 같다던 그녀가/(…중략…)/손에 단단한 각질을 새긴 그녀는/깨워도 깨워도 꿈쩍하지 않는다//우화등선의 꿈을 꾸는지”(‘아내의 잠’ 중에서) 시인은 원시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사랑에 투신한다. 연민을 앞세우지 않은 담백한 시선과 흘러간 세월을 묵직하게 녹여낸 시편들은 서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시 해설을 통해 “특별히 이번 시집에는 삶과 사물을 향한 투명한 시선과 그 시선을 통한 섬세한 기억의 매무새가 견고하게 결속되어 있다”며 “남다른 기억의 힘으로 지난날을 재현하면서 그 시간을 항구적으로 긴직하려는 꿈의 세계에서 발원하고 완성되는 언어예술”이라고 밝혔다. 삶과 시를 대하는 시인의 진실한 마음과 진지하면서 겸허한 태도가 깊이 와닿는 시편들은 그가 30년 동안 쌓아 올린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져 '이야기 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시집에는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53편의 시가 담겨있다. 완주 고산에서 태어난 유대준 시인은 1993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원광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전북시인협회장과 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전북시인해양문학상 대상과 전북문학상‧전주문학상‧여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임후남 선생님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 북토크에 참여했다. 책갈피처럼 가지런히 접혀있던 독자들이 시를 낭송하고 작가와의 인연과 작품에 대해 말하는 연대의 장이었다. 선생은 용인에서 ‘생각을 담는 집’이라는 시골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를 떠나 타향에서의 객창감이 잦아들지 않을 무렵 찾아간 곳이었다. 고요의 질감 속 책과 식물에 둘러싸인 맑고 단정한 사람, 그렇게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임후남 선생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 삶의 양식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느린 여백의 시간과 필요한 만큼의 적요,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의 작고 연약한 것들과의 상호 작용이 그것이다. 그녀의 처소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어서 위계 없이 평화롭다. 선생은 언뜻 시골 후미진 책방에서 고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꽃나무 풀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엉켜있듯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오랜 도시 생활에서 체득한 방식을 버리고 동안 꿈꿔왔다던 ‘나만의 방’에서 타자의 삶을 보듬는 플랫폼으로 기인한다. 책방에 들르는 사람, 꽃나무와 보리와 들깨와 낡아가는 책들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작품들에서 상실한 자의 목소리, 떠나온 자의 슬픔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 실존에서 상실과 분리는 시 공간의 이격에서 오는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시집은 쇠락의 운명일 게 분명한 자연과 인간을 슬픔과 상실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시 전편을 관통하는 실존방식과 무한 애정은 ‘상처와 실패’를 곱씹는 자에게 존엄성 회복에 도달하기 위한 연료 공급처로 기능한다. 누군가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목수가 된다”라고 하였다. 자연 기호에 매혹되고 예민한, 직접 체득에서 나오는 선생의 감응 능력이 시적 언술로 그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 또한 균열 된 세계로부터 위로를 찾아 숲속 책방을 찾아간 것이었으니 돌올한 선생의 ‘덕목’임이 분명하다. 한편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복판에서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노인과 실직자와 쇠락한 집과 희미한 유년기의 기억 등을 현학과 자의식 과잉 없이 드러낸다. 언어실험이니 한방에 녹다운시키려는 언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매화 꽃망울이 터지듯 툭툭, 던지는 말의 오묘함이 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선생의 관계망 속에 긴밀히 연결됐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들켜도 부끄럽지 않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처럼 “삶의 풍경은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아픔은 균등 배분되지 않고 각자 몫으로 견뎌내야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니까. 북토크에서 나는 「시인」을 낭송했다. 삶의 전장에서 “김밥을 말고 소주를 마시며 그냥 아줌마로 불리는” 시를 접어버린 이와 반대 값인 “쉰에 시인이 된 그는 육십 넘은 지금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고 있다 (중략) 김밥을 말다 시가 튀어나오면 얼른 볼펜을 집어 들었다 (중략) 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불균형적이고 도구적 측면에서 무용하대도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추동 방식은 다르다. 이질적인 두 사례의 향방에서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이냐! 힘든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든다. 선생은 아픔과 슬픔 견딜 수 없는 그리움까지 털어놓게 한다. 선생의 수필집 『책방 시절』과 『나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에서도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나와 이웃한 삶에 자꾸 귀 기울이”는 선생이 넌지시 묻고 선생에게 위로받았던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40여 년 동안 시와 문학을 공부하고 탐구해 오던 문학박사가 그동안 현대시와 함께 악전고투 해온 흔적을 엮어 책으로 펴냈다. 양병호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현대시와 인지시학>(인간과 문학사)을 출간한 것. ‘인지시학’은 문학작품을 읽는 방법론 중 하나로, 시인의 생각과 정서가 텍스트로 기호화되는 과정과 독자가 텍스트를 인지하는 정차와 과정에 주목한다. 양 교수는 책을 통해 인지시학에 대해 인지주체자의 해석을 강력하게 보장하고, 주창하는 방법론이라 설명하며, 시 텍스트를 인지하는 해석자의 창발적인 의미 부여와 의미 생성을 겨냥하는 시 읽기 방법이라 부연한다. 실제 그는 서문을 통해 “시의 은유 부석을 통해 시인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인지체계를 석명하는데 유효하다”며 “창발적인 해석을 위해 치밀한 언어 탐색과 제반 문화, 역사, 체험에 대한 풍부한 선지식이 필수적이다”고 말한다. 총 2부로 구성된 이번 책의 1부는 한국의 저명한 현대 시인인 만해·육사·영랑·목월·이성선의 시 세계를 인지시학으로 탐구한 양 교수의 글이 실렸다. 이어지는 2부에는 임경순·정화자·김태우 시인 등 현대 시인들의 시집을 인지시학을 통해 조망하는 글들과 함께 현대시를 대상으로 설정한 주제를 입론하려 했던 글들로 채워졌다. 양 교수는 “시를, 문학을 공부하며 출렁출렁 살아온 세월이 어언 40여 년이나 흘러 정년을 앞뒀다. 시를 쓴답시고 써서 발표도 하고 시집으로 묶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는 명편에 대한 허전함이 자욱하다. 그래도 나름 뜨뜻미지근하게 창작과 연구의 길을 허위허위 달려왔다”며 이번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학문이든 시 쓰기든 쉬엄쉬엄하다말다 제멋에 겨워도 될 자유가 주어질 것. 후련하고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할 차례다.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하냥 바라보거나, 지상의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애도하거나, 하여튼 외로 된 사업에 골몰하리라. 그리고 주어진 한량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야겠다”고 덧붙였다. 교수는 순창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사, 문학석사,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모교의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북대에서 신문방송사주간, 역사관장, 평생교육원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그는 고하최승범문학기념사업회 회장과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전북문학> 발행인의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 혼란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서적 위로와 배려를 느낄 수 있는 다정함의 가치에 주목하는 책들이 늘고 있다. 치밀한 전략으로 생존방식을 기술하던 에세이‧자기계발서가 포용과 다정함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정지효 방송작가가 펴낸 인터뷰 에세이집 <이토록 유익한 인터뷰>(라이트라이프)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작가의 다정한 시선들이 묻어있다. 광주일보 기획연재를 시작으로 완성된 에세이집은 사회, 문화, 철학, 경제, 과학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13명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저자는 한 사람의 응축된 지혜를 듣는 일이 최고의 공부라는 사실을 인터뷰이와 대화하면서 깨달았다. 결과의 위대함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의 위대함을 느끼면서 삶의 방향성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더욱 다정하고 친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타인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소란했던 자신의 마음이 고요해지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청년 줄리안 퀸타르트, 천문학자 이명현, 문화심리학자 한민, 천하람 제22대 국회의원,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 등 저자가 찾아낸 13명의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중독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나를 일으켜 세운 열 세 번의 특별한 대화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여러분들의 삶에도 새로운 스토리가 되어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지효 작가는 TV방송작가이자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칼럼니스트로 글을 썼다. 현재는 광주에서 시 공식 유튜브 채널 ‘빛튜브’와 도시 홍보 영상 제작‧운영자로 외연 확장 중이다. TV방송작가로 활동하면서 <6시 내고향> <생생 삼도는 지금> <굿모닝 대한민국>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국립국가폭력트라우마센터 계간지 ‘그라지라’ 편집위원, 5‧18기념재단 소식지 ‘주먹밥’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해외자원봉사활동 지침서 <함께 가실래요?>와 남도여행기를 담은 <열 두달 남도여행> 등이 있다.
“‘나는 농부다’/ 인간극장에 나온 재현이/ 트랙터 운전을 배우면서/ 농부의 꿈을 키웠고/ ‘나는 가수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도형이도 꿈을 찾았대/ ‘나는 소리꾼이다’/ 국악한마당에 나온/ 태연이도 꿈을 찾았지/ 안전은 내가 책임질 거야/ 미래 소방관이 되고 싶은/ 욱이도 꿈을 찾았다네/ 우리 모두/ 양손 들어 엄지척!/ 장하다 장해~”(시‘꿈을 찾은 아이들’ 전문) 김연주 시인이 최근 동시집 <꿈을 찾은 아이들>(신아출판사)을 펴내며, 동심의 꽃을 피워냈다. 누구나 어렸을 때 가장 좋았던 기억의 자국이 남아있다. 워낙 자세한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몇 가지 잊지 못할 기억은 남아 있을 것이다. 김 시인은 이번 동시집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아내며, 이제는 공감할 수 없는 어린이들만이 만들 수 있는 상상의 나라를 꿈꾸게 한다. 시인은 “아무런 걱정 없이 놀고, 아무것도 몰라서 좋았을 시절, 이제 그런 시절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지만, 기억만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고자 이번 동시집을 썼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벌써 노년의 벽에 부딪혔다. 그나마 이 책을 쓰면서 재미있는 추억들을 반추하는 계기가 됐다. 이 동시집이 독자분들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김연주 시인은 ‘시와 산문’에서 수필가로 ‘소년 문학’에서 동시 작가로 등단했다. 시인은 ‘제4회 작촌예술문학상’과 ‘제8회 녹색수필상’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마음 밭에도 풀꽃을 심어>, <세월이 바람처럼 흘렀다>, <작은 꽃별들>, <그 섬에 가다> 등이 있으며, 현재 전북문인협회, 전북펜문학, 시와산문문학회, 동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유학자 후암(後菴) 김창석(金昌碩 878~1946)은 일제에 협력하지 않은 항일 독립주의자로 유명하다. 일찍이 과거시험에 뜻을 두고 면학했지만, 구한말 부패한 위정자들과 일제의 침략으로 뜻을 접어야 했다. 이후 칠보와 태인에 은거하며 뜻을 함께하는 문인들과 시문을 창작하고, 후학을 가르치는데 집중했다. 유학자 후암의 철학과 삶을 국역해 정리한 <후암문집>(흐름)이 출간됐다. 후암의 아들 김돈기(1905~1989)가 정리한 자필고본을 바탕으로, 완산역사문화연구회가 국역해 발간했다. 국역 사업은 후암의 유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 추진됐다. 책에는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광복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간 유학자 후암의 삶을 풀어낸 시와 글 1000여 편이 실려 있다. 창씨개명과 단별령을 끝까지 거부하고, 두 아들에게도 이를 실천하도록 강조한 후암의 절개와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캄캄한 밤에 비바람 소리 처량하더니/그 재앙이 공자묘와 무덤까지 미쳤네/광 땅의 포위 혹독했으나 문은 길이 남았는데/환퇴의 도끼가 얼마나 많던지 나무도 기울었네/악행을 흘러내리게 한다면 동해도 마를 것이고/죄를 칭량(稱量)할 수 있다면 태산도 가벼우리/어떡하면 의기로 사람마다 홍기하게 하여/우리의 수치 모두 씻어 세상을 다시 맑게 할까”(‘곡부의 변고 뒤에 제가의 성토 시운을 쓰다’전문) 후암은 가난에도 뜻을 바꾸지 않고, 위세와 무력에도 고집스럽게 강한 절개를 보여준 유학자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특히 삶의 자세가 어떠한 무력시위보다도 강하였고, 지속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후암의 정신은 그의 손자들에게까지 뻗쳐 훗날 일제 신학문과 박해를 거부하는 등 투철한 민족정신을 전승해갔다. 후암의 자필고본을 국역한 김순석 박사는 “후암 같이 선비정신을 국난에서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던 각 고을의 유림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 전통을 잇는 일”이라며 “문집 발굴 번역과 연구 논문으로 이어져 향토문화가 더 구체적이고 풍성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기견과 유기묘 등 유기 동물의 이야기가 담긴 신간 장편 동화 <들개들의 숲>(보랏빛소 어린이)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새로운 모험으로 초대한다. 책은 김근혜 아동문학가의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신간으로 유기 동물의 삶을 통해 경쟁, 우정, 어울림을 주제로 한다. 작가는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한 반려동물과 부모님의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들의 삶을 동일하게 보고, 라도와 라도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야기는 유기견과 유기묘들이 사는 아름다운 숲, ‘섬숲’이라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라도라는 유기견이다. 나날이 커지는 몸집과 먹이를 감당 못 한 주인에게 버림받은 라도는 목숨을 구해준 할매의 유언으로, 인간의 폭력도 먹이 걱정도 없이 평화만이 존재한다고 소문이 난 ‘섬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또 다른 유기견 코털과 길고양이 보리를 만나 섬숲의 추악한 이면을 마주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가 이번 작품을 구상하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텔레비전 속 동물 관련 프로그램 속 한 장면을 시청하면서 시작됐다. 프로그램 속 도로에 쓰러진 개 한 마리를 리트리버와 고양이가 에워싼 정면으로, 그 장면이 시단이 가도 지워지지 않았단다. 김 작가는 “텔레비전 속 녀석들이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그 모습이 꼭 글로 써달라는 듯 안타깝게 보여, 그들을 등장으로 한 작품의 집필에 이르게 됐고, 수 없는 퇴고를 거쳐 드디어 한 권의 동화로 완성시켰다”고 말하며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작가는 “유기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내다 버린다’라는 뜻이지만, 동물의 입장에서는 ‘자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저는 그들에게 자유롭게 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어디에도 완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기에 이야기의 배경인 섬숲 또한 밖에서 볼 때는 유토피아지만 안은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곳이죠. 그곳에서 겁쟁이 라도는 위험에 처한 친구들을 위해 자기 안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겁쟁이 라도가 친구들을 위해 큰 용기를 내 소중한 생명을 지킨 것처럼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도 수많은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한 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근혜 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장편동화 <제롬랜드의 비밀>, <나는 나야!>, <봉주르요리교실 실종사건>, <다짜고짜 맹탐정>, <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청소년 소설<유령이 된 소년>,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공저), 오디오북<날아라 자전거> 등이 있다.
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옥상 텃밭을 가꾸고 있다. 사각 고무통에 흙을 채우고 처음으로 씨앗을 뿌리면서, 싱싱한 채소를 수확할 꿈에 한껏 부풀었다. 다행히 몇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샐러드를 해먹을 만큼의 푸성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간과했던 것이 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벌레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무통에서 자라는 상추를 하루 만에 다 먹어 치우는 배추흰나비 애벌레, 고추나무에 사는 노린재를 일일이 손으로 잡으면서 수확의 기쁨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다양한 나비가 내 텃밭에 놀러 오고, 매일 아침 나타나는 크고 뚱뚱한 호박벌과 여름 막바지에 찾아오는 고추잠자리를 기다리며,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곤 했다. 김순정 작가의 그림책 『아주 특별한 발레리노 프로기』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개구리였다. 발레 신발을 신고 발끝을 세우며 춤을 추는 ‘프로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가 남달라 엄마 아빠의 기대를 한껏 높였던 프로기.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프로기는 멀리 뛰기나 파리를 잡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춤추는 것에만 열심이다. 연못에서 들리는 물방울 소리, 빗소리, 새들의 노래에 맞춰 행복하게 춤추며 마냥 행복한 프로기. 그런데 그런 프로기를 연못 속 생물들은 이상하다고 수군거린다. 프로기의 이런 상황은 인간의 삶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초등학생이니까’, ‘20대니까’, ‘엄마니까’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하며 때로는 비난하기도 한다. 나와, 혹은 우리와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은 때로 진정한 내 모습을 찾고 개성을 키워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을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아이가 애써 찾은 꿈을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싹조차 틔울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나는 왜 춤을 추는 거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만 뱅글뱅글 돌던 생각을 끌어 올렸어요. 그거야, 춤을 추면 행복하기 때문이지. 고민에 빠졌던 프로기는 춤을 좋아하고 즐기는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했고, 시간이 지나자 숲속 친구들 역시 프로기가 춤추는 걸 보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산다는 것은,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일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재능을 꽃피우고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 있다. 설사 그것이 하찮고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그 순간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2024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전북의 사회문화운동 역사를 더듬어보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이종민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바로 그다. 이 교수가 지난 40여 년 동안 지역 사회문화운동에 대해 세밀히 기록한 책<변화를 읽다, 변혁을 꿈꾸다>(모악)가 출간됐다. 한 편 한 편 당대의 기록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기록물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 엮어낸 이번 책은 이종민이란 개인을 통해 본 전북의 사회문화운동사라고 할 만한 역사적 가치를 띄고 있다. 또 책을 읽다 보면 ‘한 시대의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가?’와 더불어 ‘개인의 의지와 열망, 헌신은 집단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과 대중적인 관심은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가?’ 등에 관한 사유를 촉발시키기도 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1부 ‘변화를 읽다’는 이 교수가 운동적 차원에서 했건 발언들이 주를 이룬다. 가용 예산이 따로 없어 사람과 돈을 함께 모아나가며 일들을 꾸리면서 해왔던 조금은 거친 주장들이 모였다. 이어지는 2부 ‘변혁을 꿈꾸다’에서는 공공예산을 기반으로 한 일들을 꾸려나가면서 했던 발언들과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돼, 가슴 뿌듯한 성취의 사례가 소개된다. 이 교수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은 헤맴의 노력에 관한 일지요 보고서다. 해묵은 화두요 철 지난 유행가들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소중한 일기와 같은 기록이다”며 “혹 지난 세월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에서 진행된 지역학술문화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하나의 참고 자료로 쓰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서울 집중과 지역 소외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요원한 우리 시대의 과제”라며 “점점 내재화하는 자본 세상의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완화시킬 수 있고 시켜야 한다는 요구의 당위는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영문 모르는 영문학자’의 고뇌와 노력이 이런 분야에서 참고 사항 정도는 되지 않을까? 감히 희망해 본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이 교수의 선후배와 동료들이 준비한 출판기념회의 자리도 예정돼 눈길을 끈다. 행사는 오는 24일 오후 4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열리며, 이 자리에서는 천년갈채상을 수상했던 젊은 예술인 이향윤 대금연주자의 ‘청성곡’ 연주와 조장훈(장고)의 ‘삼도설장고 가락과 비나리’, 오감도(백은선·안태상·이용선)의 ‘마이웨이’, ‘연어’, ‘성주풀이’ 등의 축하 공연도 이어진다.
전주문화원(원장 김진돈)이 <완역 신증 완산지>와 <전주 화산의 역사와 문화>를 발행했다. '완역 신증 완산지'는 한옥마을 한학자인 고재 이병은(한옥마을 3재의 한 분)의 아들 이도형이 1958년에 전주향교 옆 남안재에서 석판인쇄로 상하권을 발행한 것이다. 완산지의 저자 이도형은 전주의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책속에 담아냈다. 책에는 근현대 중요 인물로 꼽히는 최병심과 이삼만을 비롯해 김희순, 이광열, 최규상 등을 기록해 예향 전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도형의 '완산지'는 기존의 완산지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번역하는 과정에서 '완역 신증 완산지'로 바뀌었다. 2023년부터 원문 탈고와 해석 작업을 추진해 올해 출간하게 됐다. 새롭게 편찬된 '완역 신증 완산지'는 지금의 전주와 완주 지역을 폭넓게 아우른다. 완산지에는 전주와 완주 지역이 유학 사상에 기초한 선비의 고장임을 거듭 강조해서 보여준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던 충절의 고장과 예술·흥취가 넘치는 예향의 산실이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전주문화원은 종교문화를 조명한 '전주 화산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발행했다. 전주 화산지역(현 화산동)에는 전주향교가 화산 남쪽에 1410년부터 1603년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전주향교 앞에는 1519년(중종 14)에 건립한 하마비가 있는데 1603년 교동으로 이전할 때 유일하게 가져온 것이다. 또 화산 남쪽에는 화산서원이 있어 회재 이언적과 규암 송인수를 모셨고, 국왕으로부터 편액을 하사 받은 서원이다. 조선 말부터는 선교사의 주요 활동무대로 바뀌었다. 1903년 완산 아래 은송리에 터를 잡았던 미국 선교사들은 전라관찰사의 강제 이전으로 대거 화산지역으로 옮게 오게 됐다. 이후 화산동에 예수병원과 선교사들의 숙소가 만들어지고,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설립되면서 기독교의 성지가 됐다. 실제 미국남장로회 한국선교회 전주선교부는 근대교육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육과 의료, 복음을 위한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파악된다. '전주 화산의 역사와 문화' 에는 화산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해 1900년대 개교한 신흥학교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담겨있다. 또 천향정이야기와 다가신사, 종이 이야기 등도 실려있다. 전주문화원 관계자는 "전주문화원은 앞으로도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특히 올해에는 국립전주박물관과 함께 덕진연못에 직접 그린 승금정계회도를 분석하고 연구한 도서를 공동으로 편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작촌문학상, 전북예총 공로상 등을 수상한 시인이자 통찰력 있는 문인이기도 한 왕태삼의 세 번째 시집 <밀화부리가 다녀간 이유>(현대시)가 출간됐다. <눈꺼풀로 하루를 닦는다>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의 변화를 오래 관찰한 사람의 깊이 있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민족 고유의 정서까지 아우르는 시 세계를 펼친다. 자연에 대한 순수한 관찰, 환경 파괴에 대한 진지한 반성, 일상의 여유로운 풍경, 자본을 향한 비판, 삶에 관한 성찰과 이웃과의 연대 등 다채로운 감각과 깊이 있는 시적 사유가 빛나는 시편들이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특히 서사를 품은 시인의 시는 절절한 민족의 수난사이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의 한 맺힌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기원과 열망을 응축시킨 시편들이 익숙한 풍경 속에서 뜻밖의 깊이를 이끌어내면서 오늘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한다. 소재호 시인은 “서사적 서정시이거나 서정적 서사시로서, 시적 변용을 거치며 우리들 심금을 울린다”며 “감동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듯이 스스로는 안으로 울되 독자에게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시가 거의 절편이다” 라고 평했다. 64편의 시를 5부에 나누어 실었으며, 한편의 시를 연상시키는 ‘시인의 말’은 왕태삼 시인이 수년 간 구축해 온 시 세계를 대변한다. “삼거리집 그 홀아비네 살구는 유명했다/천도복숭아라 부를 정도니/소문을 달콤했다/동네방네 개들도 한 번씩은 죄다 주워 먹었다//(…중략…)//그 집 살구 터는 날은 남들이 더 잘 안다/그날도 홀아비 사다리 타는 날//아저씨/살구나무 아래 서면 가슴이 자꾸 떨려서요”(‘아주머니는 시인이다’ 중에서) 시인이 오랜 시간 다듬고 갈무리해온 시편들인 만큼, 사유의 깊이와 원숙한 시선이 빛나는 따뜻함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잔잔한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 왕태삼 시인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문학시대>로 등단, 시집으로 <나의 등을 떠미는 사람들> <눈꺼풀로 하루를 닦는다> 등이 있다. 현재 전북시인협회 이사, 석정문학회부회장,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 전북대 평생교육원 시창작교실 강의를 맡고 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체인의 공세 속에서 지역 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한 특별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단순한 책 판매를 넘어, 감성과 문화를 입힌 인문학 프로그램과 개성 넘치는 굿즈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과연 이들 서점은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을까? △우리 이웃이 직접 추천하는 책 큐레이션 일부 서점에서는 유명 작가나 평론가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직접 책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서점 ‘잘익은 언어들’은 책방의 단골 독자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춰 추천하는 책을 전시하고, 추천 이유를 손 글씨로 적어 소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지선 잘익은 언어들 대표는 "전문가가 아닌 이웃의 추천이기에 더 친근하고 현실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며 ”또 2달마다 전시될 책을 교체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에서도 왜 그 책을 추천하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서로의 호기심을 자극해 그 속에서도 책이 판매되는 재밌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이 활동을 통해 매번 독자들에게 흔하게 소개되는 베스트 셀러 코너 속 책만이 아닌,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책들을 골고루 발굴하고, 소개할 수 있어 독자분들의 반응도 좋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자체 기획 프로그램으로 독자와 소통 전주의 한 독립 서점인 ‘물결서사’는 매달 철학, 문학, 역사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열고 있다. 또 이들은 다음 달 1일 지역 출신 작가 방우리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기획하는 등 이제 막 새싹을 피운 신인 작가와 더불어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를 조명하는 공익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책방지기 임주아 작가는 “지역에서 책과 관련한 지원 사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지역 서점을 방문하는 독자들의 수의 증가율은 더딘 실정”이라며 “책방도 엄연한 자영업으로 차별화된 기획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독자를 모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프로그램은 독서 모임과 연계되어 방문객들의 유입을 증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실제 인문학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SNS 게시글을 보고 공간을 찾아 주시는 새로운 분들을 발견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역 서점 ‘책방 토닥토닥’에서는 운동·페미니즘·기후 위기와 같은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를 주제로 독서 모임을 개최하며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개성 넘치는 굿즈로 서점만의 색깔 강조 일부 서점들은 자체 제작한 굿즈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시집 전문 서점 '조림지'는 책방 주인의 개성을 그대로 담은 반소매 티셔츠와 후드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그 중 특히 인기를 끄는 제품은 ‘2025 신춘문예 탈락자’라는 글씨가 새겨진 후드티로 서점만의 감성이 담긴 디자인과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이 더해져 방문객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또 이 책방은 방문객이 제시한 제목에 맞춰 즉흥시를 써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어, ‘즉흥시를 써주는 책방’으로도 입소문이 나 있다. 즉흥시의 가격은 소비자가 만족한 정도만 지불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많은 이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집 책방 조림지의 공간 지기 천기현 씨는 "굿즈 제작에 있어 딱히 큰 뜻은 없었다. 재미로 만들어본 굿즈가 SNS 속에서 홍보가 많이 돼, 굿즈를 통해 조림지라는 서점을 처음 접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꽤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미로 만들어본 굿즈들이 시를 사랑해, 시를 쓰는 이들의 공감을 건드리게 되며. 이처럼 좋은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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