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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황산대첩비 탁본

국립전주박물관 역사실에 들어서게 되면 거대한 비석의 탁본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높이 267cm, 폭 130cm에 이르는 탁본의 윗부분에는 한자 전서(篆書)체로 황산대첩지비(荒山大捷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크게 쓰여 있다. 황산대첩은 고려 말 1380년 이성계가 장군이던 시절 전라도 남원 운봉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 탁본에 담긴 의의와 역사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말 한반도는 외부의 침략에 의해 혼란에 빠져 있었다. 북쪽에서는 홍건적 세력이 남하하여 개경에 이르렀으며, 남쪽에서는 왜구가 남부 내륙을 비롯하여 해안을 따라 약탈을 자행하던 상황이었다. 이 두 난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국가를 안정시킨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다. 개경탈환에 큰 공을 세운 이성계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한 그를 국가적인 영웅으로 이끈 전투가 바로 남원 운봉에서 있었던 황산대첩이다. 지리산 자락까지 내륙을 침략했던 왜구의 세력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약화되었다. 황산대첩을 계기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전북 지역에 전하는 이성계 설화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 승리를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선조 10년(1577)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당시의 승전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호조판서 김귀영이 글을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써서 제작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비각(碑閣) 등의 다른 건물도 지어 비를 지키도록 하였는데, 지금도 비터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1945년 1월에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소방대를 동원하여 비를 폭파하고 비문의 글자를 긁어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광복 이후 사적으로 지정된 뒤 비석을 새롭게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파괴된 비석의 조각은 현재 파비각(破碑閣)을 마련하여 보관하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황산대첩비 탁본>은 비가 파괴되기 전의 탁본으로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6.10 18:40

한국의 서원과 조선 선비문화 확산 힘 모은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한국의 서원문화를 전시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해 조선 선비문화를 활성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사장 이배용)과 조선 선비문화 활성화와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양 기관은 지난 7일 서울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실에서 협약을 맺고 △학술연구 진흥 및 상호 공동 연구 △전시 및 연구를 위한 자료대여 등 협조 △학술 관련 세미나 공동개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주박물관은 조선 선비문화 특성화 사업에 힘을 쏟고 있으며, 연계 특별전과 선비문화 아카데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 연말에는 선비문화 주제에 맞게 어린이박물관을 개선하고, 내년에는 선비문화실도 신설할 예정이다.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은 한국의 서원 9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정읍 무성서원과 조선 첫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북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이다. 천진기 전주박물관장은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던 정읍 무성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이 7월 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다며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과 유기적인 업무협력 체계를 구축해 한국 서원 관련 조사연구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선비문화 확산에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가 확정되면 우리나라는 모두 14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며, 전북은 고창 고인돌(2000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에 이어 3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6.10 18:32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군산 십이동파도 출수 청자들

도자기는 과거 삶의 복원에 많은 힌트를 준다. 도자기를 생산했던 가마터는 당시 생산 환경과 입지를, 무덤에서 나온 도자기는 계층별 부장문화와 소비경향을, 또 바다에서 나온 것들은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유통과정을 보여준다. 최근 군산, 태안 등 서남해안에 과거 도자기를 선적하여 항해했던 침몰선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한두점이 아닌 수천에서 수 만개의 그릇들을 선적하여 어딘가로 이동하던 중 천재지변 등의 이유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사정은 안타깝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중요한 과거의 정보들을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조운제도가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주로 선박을 이용한 수운이 활발히 활용되었고 운영주체는 국가였다. 해로는 운반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중요한 운송로였으며, 물산이 풍부한 서남해안으로부터 개경으로 향하는 루트가 중심이 되었다. 청자의 중심 생산지인 해남, 강진, 부안 등 전라도 지역에서 만든 그릇들은 바로 이 방법으로 소비처로 향하였다. 군산 십이동파도 해저유적은 고군산도에 위치한 한 섬에서 조개잡이 어부가 작업 중 그물에 청자들이 걸려나온 것이 조사 계기가 되었다. 공식 발굴을 통해 팔천점이 넘는 많은 청자들이 세상에 나왔다. 발과 접시, 기름병, 작은 합 등 일상생활에서 쓰는 기종들이 주를 이루며, 이들은 짙은 녹색 및 황녹색을 띤다. 접시 중에는 꽃모양으로 만든 화형花形접시가 섞여있으며, 상감이나 철화 등 청자를 장식하는 다양한 시문기법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청자들은 12세기 해남지역에서 만든 청자들과 유사한 조형적 특징을 보여 이곳에서 만든 후 영암에 설치되었던 장흥창長興倉에서 선적되어 서해연안 항로를 따라 수도인 개경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다 군산 부근 해역에서 항로를 이탈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십이동파도 유적에서는 청자뿐만 아니라 도기 등 항해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도 발견되었고 그대로 가라앉아 배의 실체도 드러났다. 특히 청자를 차곡차곡 포개어 포장해서 선적하는 효율적인 방법까지 밝혀졌다. 하나의 침몰된 조운선이지만 도자기를 배에 싣는 방법, 선적 상태, 배 위의 생활 등 고려인의 삶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었다. 즉 십이동파도 유적에서 출수된 다양한 유물들은 고려의 경제, 사회, 문화를 살필 수 있는 하나의 문화코드인 셈이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6.03 16:32

전라감사 서유구의 공문서 일기, ‘완영일록’ 완역 출간

전라감영 복원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전라감사를 지낸 풍석 서유구의 일기인 완영일록(完營日錄)이 완역돼 세상에 나왔다. 전주시는 전라도관찰사(1833년 4월~1834년 12월)를 역임한 서유구가 재임기간 필사한 공문서 기록 33만2000여 자를 번역한 완영일록을 출간했다고 2일 밝혔다. 18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완영일록에는 전라도 56개 지역에서 있었던 송사, 환곡, 농정, 향시, 효자열녀의 정려, 망궐례, 기우제, 진상품, 부임 과정, 각 지역 수령의 인사고과 등이 기록됐다. 특히 관찰사의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고, 오로지 행정, 사법, 군정 등 감사의 직무 전반에 걸친 공문서를 기록했다. 이에 감사의 직무와 감영문화를 상세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풍석문화재단 전북지부(대표 서창훈)는 이번 완역 작업을 기념해 지난 31일 전주향교문화관에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180여년 전 전라도 감영의 공문서를 공개하다란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완역된 완영일록의 전반 내용을 소개했다. 또 배경옥 전북대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김순석 전통문화연수원장의 주제발표, 안동교 전남대 교수와 김건우 전주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하는 토론이 펼쳐졌다. 완영일록은 2016~2017년 전북도 지원을 받아 번역이 이뤄졌고, 이를 토대로 풍석문화재단 전북지부가 윤문과 교열을 거쳐 발간했다.

  • 문화재·학술
  • 최명국
  • 2019.06.02 16:41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2000년 전 한반도 하이테크의 정수, 잔무늬청동거울

완주 갈동을 비롯한 전북혁신도시 개발 구역 내에서는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의 움무덤들이 100기가 넘게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중서부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는 가장 많은 수이다. 갈동 유적에서는 출토 위치가 확실한 한국식 동검과 청동 꺾창 거푸집이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신풍 유적에서는 간두령 한 쌍이 최초로 동시에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외에 또 주목되는 것이 다양한 잔무늬청동거울이다. 청동제 잔무늬거울은 한국식 동검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크기는 보통 직경 20cm 내외이며, 둥근 거울 뒷면의 중앙에 2~3개의 고리가 달려 있고, 나머지 공간에 여러 선으로 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정교한 무늬를 새기기 위해 고운 점토로 만든 거푸집을 만들어 세밀한 원과 선으로 공간을 나누고 내부에 녹인 청동을 부었다. 잔무늬거울의 뒷면은 삼각형 또는 사각형, 원형, 사선무늬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새겼다. 대부분의 잔무늬거울은 서로 다른 크기의 동심원을 사용하여 크게 2~3등분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13,000여개가 넘는 선이 새겨져 있다. 무늬가 있는 면에 달려 있는 2~3개의 고리에는 구멍에 끈을 넣어 사용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기하학적인 무늬는 마치 20C 초 네덜란드 추상화의 대가인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햇무리의 모습을 무늬로 새긴 잔무늬거울은 신을 부르는 도구인 청동 방울, 정치적 권위를 보여주는 한국식 동검과 함께 주로 무덤에서 확인된다. 이중에서는 일부러 깨뜨려 넣은 것도 있어 당시 사람들의 매장 의례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전북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잔무늬거울 20여점이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확인된 곳이다. 또한 완주 갈동 유적 5호와 7호 움무덤에서 출토된 잔무늬거울은 곧 보물 지정이 예고되어 있다. 잔무늬거울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전북지역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의 금속학적 기술과 디자인적 감각은 현대와 비교해보아도 뒤처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더욱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5.27 17:52

장수 삼고리 고분군서 1500년 전 가야·백제계 유물 출토

가야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알려진 장수 삼고리 고분군에서 1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백제계 토기가 출토됐다. 전북도와 장수군,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 산 76번지 삼고리 고분군 2차 발굴조사를 통해 56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50여 점을 찾았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삼고리 고분군은 1995년 군산대박물관이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계 무덤으로 규명된 곳이다. 앞서 장수군은 마한 시대 이래로 백제 문화권에 속했던 곳으로 인식돼 왔다. 장수 삼고리 고분군에서 가야인의 무덤이 발굴되면서 금강 상류는 백제에 병합되기 전까지 가야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처음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와 토광묘(土壙墓) 1기가 발굴됐다. 유물은 가야계 물결무늬 장경호(長頸壺목 긴 항아리)와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그릇받침)7개 묶음과 장군 등 다양한 철기류가 나왔다. 장군은 물술간장 등 액체를 담는 데 쓰는 길쭉하고 입구가 작은 그릇이다. 아울러 9호분에서는 은제 고리 2점과 쇠도끼, 쇠화살촉, 토기와 재갈 같은 마구(馬具)가 발견됐고, 10호분에서는 작은 항아리 1점과 철모 1점이 나왔다. 이날 출토된 유물에 비춰볼 때 이 무덤을 축조한 가야세력은 5~6세기 주변국들과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이루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 문화재·학술
  • 김윤정
  • 2019.05.26 18:02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백자 연꽃무늬 매병

고려시대의 도자공예라고 하면 우리는 대부분 청자를 떠올린다.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생산되었고, 고려청자는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고려시대 공예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백자가 생산되었다. 한반도에서 자기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시기에 축조된 벽돌가마에서 백자를 생산하였다는 사실이 고고학 조사에서 밝혀졌다. 도자 제작기술이 중국에서 고려로 들어오면서 개경을 중심으로 중부 서해안에 초기 가마들이 10세기 후반경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일대의 가마와 형태가 유사한 가마로 고려 초기에 축조되었다. 청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백자가 생산되었고, 특히 경기도 용인 서리 가마터는 청자에서 백자로 전향했다는 사실이 층위로 밝혀졌다. 퇴적층 가장 아래에는 초기에 제작된 청자들이, 그 위층에서는 백자가 주로 발견되어 처음에 청자를 제작하다가 차츰 백자를 제작하는 가마터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대표적 고려청자 생산지인 부안이나 강진 등의 가마터에서도 백자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청자의 전성기 중심 속에서 백자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다만 고려 사람들의 주된 수요 대상이 청자였기 때문에 백자는 적은 양만이 생산되었고 따라서 완형으로 전하는 예도 드물다.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자화(磁化)가 이루어지는 조선시대 백자와는 달리 고려시대 백자의 태토는 2차 점토이다. 따라서 고려백자는 다소 연질(軟質)로 아백색(牙白色)을 띠며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 매병은 전형적인 고려청자의 매병처럼 어깨가 풍만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홀쭉해지는 형태이다. 다만 하얗게 빛나고 있어 백자임을 알 수 있다. 몸체에 모란당초무늬를 비스듬히 깎아서 무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모란에는 화맥(花脈)과 엽맥(葉脈)을 새겨 세밀함을 더하였다. 아랫부분에는 양각 연판문(蓮瓣文) 띠와 음각 번개무늬(雷文) 띠가 2단을 이루고 있다. 유약이 박락된 부분이 있지만 완벽한 형태의 백자 매병에 세밀한 무늬까지 새겨진 예는 거의 없어 주목된다. 청자의 형태와 문양을 본떠 만든 소중한 고려시대 백자 매병인 것이다. 이러한 백자들은 고려시대 도자문화를 더욱 다채롭게 해주고 있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5.20 18:27

‘추사 김정희가 쓴 비문’, 임실서 발견

조선 후기 서화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만년에 쓴 것으로 보이는 비문이 임실에서 발견됐다. 전라금석문연구회(회장 김진돈)와 임실문화원(원장 최성미)이 지난 14일 전주최씨 만육파의 후손 최성간(1777~1850)의 묘비를 분석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임실군 김철배 학예사로부터 제보를 받아 진행했으며 추사의 필획을 조사하기 위해 서홍식 한국서도협회 전북지회장과 함께 탁본을 실시했다. 이 비석을 살펴보면 최성간은 1777년에 태어나 1850년 까지 74세를 살았다. 묘비 글은 1851년 10월에 조카인 최한중이 지었다. 김정희는 1851년 7월에 다시 북청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에 당시에 바로 글씨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희는 다음 해인 1852년 풀려나 10월부터 과천에 거주하게 되는데, 그 이후에 글씨를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사의 글씨체를 보면 전서의 필획도 나타나면서 정부인광산김씨묘비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좌우대칭을 균형있게 조절하는 필획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중(中)자와 사(事)자 등은 해서의 필획이 나타나고 있는 것 큰 특징이다. 또 이 비석에는 비석을 세운 장소를 임실(任實) 하신덕면(下新德面) 율치(栗峙)로 기록하고 있어 지명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소견이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은 최성간의 묘비에는 추사의 말년 필획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씩 뜯어보면 탈격의 미가 잘 나타나고 있어 추사체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은 이 비석을 찾기 위해 5년 전부터 고 전손주항의원 제보로 온 산을 뒤졌는데, 이제야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면서 앞으로 이 비석에 대한 연구를 해 지역 향토문화재나 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역출신이며 추사체 연구의 권위자인 박철상 박사도 김정희 선생이 남긴 금석문 중에서도 묘비에 쓴 글씨들은 그의 서법 연구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비문 글씨가 발견되어 김정희 서법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 문화재·학술
  • 김태경
  • 2019.05.16 20:11

정읍 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유력

정읍 무성서원을 비롯한 조선시대 서원 9곳으로 구성된 연속 유산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하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조사한 뒤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하며,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다. 정읍 무성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면 전북은 고창 고인돌(2000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에 이어 3번째로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심사평가서에는 한국이 등재 신청한 9곳 서원 모두를 등재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의 서원은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인 정읍 무성서원을 비롯해 경북 영주 소수서원, 경북 경주 옥산서원, 경북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으로 구성됐다. 한국의 서원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6월 30일 개막하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확정된다. 한편, 정읍시는 무성서원 일대에 선비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시설 선비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천경석
  • 2019.05.14 20:03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김제 대목리 출토 부처상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던 물건이었을까? 제일 큰 것은 약 7.7cm정도의 손바닥만 한 크기로 아주 작아, 자세히 들여다봐야 부처와 보살들의 표정이 보인다. 그러나 작은 네 개의 판불에는 아주 큰 세계가 담겨 있다. 이 네 개의 판불은 1980년 김제 대목리(大木里)의 한 밭에서 출토되었다. 여래좌상(如來坐像)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각각 본존으로 한 삼존상(三尊像), 4명의 보살, 승려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래삼존상은 협시보살까지 모두 좌상(坐像)으로 표현된 매우 드문 예이다. 반가사유상은 좌우에 승려상이 배치된 특이한 형식이다. 부처와 보살의 얼굴 묘사 등 표현 양식으로 볼 때 백제 말기인 7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크게 유행했지만 이러한 도상배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하는 독특한 도상으로,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형식이다. 이것으로 보아 이 판불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도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중요한 국가적 통치 이념으로 도입되었으며, 특히 삼국 중에서도 백제는 동아시아 불교문화 교류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침류왕(枕流王) 1년(384)에 동진(東晉)으로부터 전해진 불교문화는 백제에 이르러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 배경에는 당시 백제가 선진문물을 수입했던 중국에서 불교문화가 대대적으로 융성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상들은 기존에는 압출불(押出佛, 동판을 대고 두드려 만든 부처상)을 제작하기 위한 청동 원형 틀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6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과학적 분석을 한 결과 청동 원형 틀이 아니라 금동 부처상임이 밝혀졌다. 이 판불들은 원래의 봉안 상태를 알 수 없으나, 비슷한 예로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나무 천개를 장식했던 것처럼 소형 감실 내부를 장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김혜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원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5.13 20:01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해야”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민주화운동기념일, 보훈기념일과 같이 거국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9일 전북대구경북충북연구원 공동 주최로 전북연구원에서 개최된 전북학연구센터 개소식 및 동학농민운동 국가기념일 제정 기념 공동세미나에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관장을 좌장으로 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곽종무 대구경북학연구소장은 동학의 인본주의적 평화사상에 주목해 향후 대한민국의 민주 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적 지주가 돼야 한다면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을 계승발전시켜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바다 고려대학교 교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일(5월 11일)을 중심으로 고부봉기(2월 14일)부터 전주화약(6월 11일)까지 연속적으로 기념해 그 열기를 올 상반기 내내 유지하자면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을 여타 민주화운동기념일(419, 518), 보훈기념일(현충일)과 같이 거국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는 동학은 정읍, 전라도 등 특정 지역의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며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종합토론에 앞서 박맹수 원광대학교 총장의 동학농민혁명과 대한민국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과 김양식 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의 의의,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의 동학농민혁명의 지역 간 연계전략 주제발표도 진행됐다.

  • 문화재·학술
  • 강정원
  • 2019.05.09 20:28

20년 보수정비 마친 미륵사지 석탑 준공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이 20년의 보수정비를 마치고 마침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익산시는 30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정헌율 익산시장, 월주 스님, 지역 국회의원, 불교계, 도민 등 600여명이 참석해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석탑 준공을 축하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말 무왕때인 639년에 세워져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탑이다. 그러나 1915년 조선총독부가 벼락에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시멘트로 덧바르면서 미관상은 물론 구조적 안정에도 큰 부담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1998년 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노후 등 구조적 문제가 확인되자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6층까지 해체수리를 결정하면서 보수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2001년부터 본격적인 석탑 해체조사에 착수해 2017년까지 원래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를 완료했다. 특히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가 진행되던 2009년 1월 석탑 1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유물들은 미륵사 창건과정과 시기, 백제의 역사와 문화적 위상, 사리봉안 의례 등을 살펴 볼 수 있는 국보급 유물들이 대거 발굴돼 학계는 물론 문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20년의 보수정비 과정을 마치고 최근 가설 시설물의 철거와 주변정비까지 마무리하고 지난 3월 23일부터 일반에 석탑의 완전한 모습을 공개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최장 기간 체계적인 연구와 수리가 진행된 사례로 평가받으며 국제적 기준에 따라 보수정비 과정을 이행해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로 한 획을 그었다. 또한 추정에 의한 복원이 아닌 원래의 부재를 81%까지 최대한 재사용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미륵사지 석탑 준공을 계기로 국제적 기준에 맞는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세계유산으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익산의 다양한 문화자원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도시로 만들어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1380년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세운 위대한 사업이다면서 다시 일어선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전북 대도약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김진만
  • 2019.04.30 20:16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완주 갈동 유적 출토 한국식동검 거푸집

2002년 6월, 호남문화재연구원 한수영 실장은 그해 봄에 진행한 완주군 반교리 일대 지표조사 보고서 작성 마감을 앞두고 다시 한 번 현장을 찾았다. 그는 갈동 마을 저수지인 갈동제 남동쪽 호남고속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나지막한 구릉인 이곳을 시굴조사 대상 지역으로 포함시켜야 할지 고민이었다. 조사 당시 이곳은 오래전에 성토(盛土)되어 지표상에는 별다른 유물이 채집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실장은 이곳이 완만한 구릉지대라는 지형적 특성과 인근 완주 반교리, 전주 여의동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표조사 보고서에 이곳을 시굴조사 대상 지역으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시굴조사에서도 구릉 정상부에 초기철기시대의 도랑 흔적만 확인되었을 뿐, 구릉 사면은 1~1.5m 정도로 최근의 흙이 쌓여 있어 별다른 유구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한 실장은 전면 발굴조사 여부를 두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도 그는 다소 무모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성토된 흙을 전면 제거하여 발굴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흙을 거둬내니 움무덤 4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움무덤 내부를 조사하던 조사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유물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식동검의 거푸집이었다. 금속을 녹여 부어 도구를 만들기 위한 거푸집은 한 사회가 금속기를 주조하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고고학 증거로, 그 사회의 생산력 수준과 사회발전단계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까지 한국식동검 거푸집은 평양 장천리, 경기 용인 초부리, 영암에서 발견 수습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갈동 유적 초기철기시대 움무덤 안에서 완벽한 형태의 거푸집이 최초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한 문화재청은 갈동 유적의 현지 보존을 결정하였고, 이 거푸집은 29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 하였다. 한 연구자의 직감과 신념이 학술적 가치가 큰 유적과 유물을 세상에 선보이게 하였다. 양성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4.29 20:44

전북지역 문화재 3건 ‘보물’된다

전북지역 문화재 3건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29일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 등 고려~조선 시대 회화와 불상, 초기 철기 시대 거푸집과 청동거울 등 총 7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으로, 특히 불교회화에서 많이 그려진 도상이다. 이 시기 금동과 목조로 제작된 지장보살상은 몇 점이 전하고 있지만, 석조로 제작된 지장보살 중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사례는 참당암 지장보살좌상이 거의 유일하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갈동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으로, 한 점은 한쪽 면에만 세형동검의 거푸집을 새겼고, 다른 한 점은 동검(銅劍, 칼)과 동과(銅戈, 창)가 각각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 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로서, 고분의 편년과 거푸집에 새겨진 세형동검의 형식 등으로 볼 때, 기원전 2세기경에 실제로 사용된 후 무덤에 매장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으로 추정된다.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다.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자리한 갈동 5호와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됐다. 이 외에도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과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 혼개통헌의 등을 국가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총 7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김성규 기자천경석 기자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9.04.29 20:44

전주 어진박물관 초상화 특별전 ‘이렇게 뵙습니다’

전주 어진박물관(관장 이동희)이 초상화 특별전 이렇게 뵙습니다전을 연다. 18일부터 6월 16일까지, 개막식은 17일 오후 3시. 초상화는 조상을 깍듯이 받드는 성리학적 질서체계가 자리한 조선시대에 많이 그려졌다. 당시 초상화는 단지 그림이 아니라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조상님으로 여겨졌다. 피난 갈 때는 조상의 초상화를 고이 접어서 항아리에 넣어 땅속 깊이 묻어 두거나 피난 보따리 안에서 신줏단지 모시듯 지니고 다녔다. 이번에 전시되는 초상화는 보물 3점과 도문화재 6점을 비롯해 20여 점, 오랜 세월 후손들이 목숨처럼 받들어온 영정들이다. 최치원, 하연과 정경부인, 최덕지, 이숭원, 고희, 강응환, 이신문, 장태수, 김근배, 김기술, 이덕응, 박해창, 관우 초상화 등이 포함됐다. 태인 선비들의 모임을 그린 송정십현도도 전시된다. 최덕지 초상화는 유지 초본과 함께 전시되어 밑그림과 완성된 영정을 비교해 볼 수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영정과 초본은 보물 594호로 전북 지역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초상화이다. 최덕지는 전주 한벽당을 건립한 최담의 아들로 직제학을 지낸 인물이다. 문효공 하연과 정경부인 영정은 보기 드문 부부상으로 조선전기에 유행한 부부초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연은 세종대 영의정을 지냈다. 정경부인의 영정은 조선전기 복식사를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다. 이동희 관장은 초상화를 통해 선조들을 만나본다는 의미에서 특별전 이렇게 뵙습니다를 마련했다. 많은 분들이 찾아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주 어진박물관은 한옥마을 경기전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관람 문의는 어진박물관 학예연구실 063-231-0190.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4.16 20:3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