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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 등 5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한 전주 고하문학관에 전문 학예연구사가 파견돼 고서 정리를 돕는다. 전주시립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이 공모한 고문헌 정리 및 관리지원 사업에 고하문학관이 선정됐다고 15일 밝혔다. 이 사업은 1945년 이전의 고서와 고문서, 지도, 고서화 등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 전문 인력을 파견해 정리 및 관리방법을 안내하고, 서지목록 작성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고하문학관에는 오는 19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의 이정효 학예연구사 등 2명의 전문가가 상주하면서 고서 정리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전주시는 이번 사업으로 고문헌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 가치 있는 자료 선별과 보존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현창 전주시 기획조정국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고하문학관 고서 자료를 선별하고, 향후 디지털화 작업을 추진해 고서의 서비스 영역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전북 동부 산악지역 금강 상류에 용담호라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1992년 착공하여 2001년에 완공된 용담댐 건설로 인해 생긴 인공호수이다. 저수량으로 본다면 소양호, 충주호, 대청호, 안동호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이다. 지금은 호수 위를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 깊은 물속에는 옛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혀있었다. 일정 면적의 건설공사를 할 때는 법적으로 고고학 조사를 필수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진안군 6개 읍면, 68개 마을이 수몰된 용담댐 건설도 당연히 조사 대상이었다. 1995~2001년 모두 4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조사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적이 밝혀졌다. 특히 정천면 갈머리 마을과 진그늘 마을에서는 전북 동부 산악지역 최초로 신석기시대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이 두 유적에서는 완전한 형태로 복원 가능한 토기 몇 점이 수습되었다. 이것들은 영남 내륙지역 신석기시대 유물과 관련 있는 것으로, 진안고원 일대가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내륙 교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으로 제시된 토기는 갈머리 유적에서 확인된 빗살무늬토기이다. 고고학에 있어 토기는 문화 흐름이나 집단 차이를 밝히는 데 주요한 도구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빗살무늬토기의 다양한 무늬는 기하학적 도형을 형성하면서 그 자체로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바닥이 뾰족하여 기능적으로 불안해 보이지만 밑으로 내려가면서 체감되는 간결한 V자 형태는 비례의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무늬구성을 살펴보면, 맨 위에는 선으로 이루어진 세모꼴 무늬가 연속적으로 둘러져 있고, 아래로는 방향을 달리한 비스듬한 선들이 가로방향으로 연속적으로 채워져 있다. 한편 맨 위에 새겨진 세모꼴 무늬는 크기가 거의 일정하다. 이는 신석기인이 토기를 만들기 전 미리 전체 토기 둘레를 가늠한 뒤 일정한 크기로 무늬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신석기인의 뛰어난 공간구성능력과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양성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유약을 입혀 높은 온도에서 구운 자기는 최상의 기술로 완성되는 섬세한 예술품이다. 고려는 이러한 자기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했으며 이는 도자기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찬란한 공예품을 탄생시키고 향유했던 고려는 청자를 개발하고 발전시켰다. 고려 건국 이후, 선종의 유행, 차의 재배와 차를 마시는 풍습, 그리고 그 차를 담아 마시는 도구인 완의 지속적인 수요는 중국산 자기 대신 고려에서 자체 제작의 동기를 부여했다. 고려에서 완을 중심으로 청자의 제작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차 문화의 확산과 발전으로 다완 외에 잔, 잔탁, 차를 보관하는 합, 물을 끓이거나 따르는 주자, 찻잎을 가는 다연, 찌꺼기를 버렸던 타호, 차 숟가락, 음식을 놓았던 방형대 등이 제작됐다. 술 또는 차를 마시는 공간을 장식하였던 꽃병과 분위기를 돋우는 악기, 탁자와 의자까지 청자들은 실로 다양하다. 오늘날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고려청자는 전라북도 부안, 전라남도 강진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됐다. 이 작품은 완과 발, 잔 등의 일상기명과는 달리 독특한 모습을 뽐낸다. 높이 35cm되는 소담한 청자 의자로 윗면은 편평한 편이며 배가 불룩하여 안정감을 주는 구조이다. 몸체 전면을 겹쳐있는 고리무늬로 투각했으며, 넝쿨무늬가 새겨진 장식을 윗부분에 투각했다. 투각기법은 기면을 뚫기 때문에 번조 시 잘 터져버리는 단점이 있다. 이처럼 큰 투각의 청자 의자를 만든 것은 고려인들의 뛰어난 제작기술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며, 고리무늬 같은 경우 고려시대 목가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요나라 고분벽화 등에서 나타나는 도상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시대 차나 술을 마시는 향유 공간에서도 청자 의자를 놓고 앉아 썼을 것이다. 청자로 의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고려인들의 화려했던 생활을 짐작케 해주는 귀중한 예로 이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음료를 즐기며 바둑을 두는 등 고려 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이처럼 두텁고 투각된 청자 의자 편들이 출토된 바 있으며, 따라서 이 청자도 부안 유천리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년~1791년)은 고창 출신의 학자이다. 그에 대한 설명에는 일반적으로 음운학자라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자모변(字母辨)>,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과 같은 저술이 후대 국어학자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백과사전식 연구를 했던 인물임이 드러나고 있다. 관직을 역임하며 서울에서 머물기도 했던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을 일기로 남긴 바 있다. <이재난고(頤齋亂藁)>라는 이 책은 한문 초서로 쓰여 있어 해독이 쉽지 않았으나 한문으로 정서가 되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책에는 방대한 분량답게 18세기 지성인이 보고, 듣고, 느낀 여러 일들의 기록이 있으며, 공부 노트이자 자아성찰의 공간이기도 하다. 황윤석은 음운학분야 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야 전 분야에 걸쳐 관심을 나타내었고 특히 천문학과 수학, 지리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을 따지면 이공계 학자였던 셈이다. 일기를 살펴보면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와 수학자를 찾아다니며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그가 저술한 이과 관련 백과사전이 바로 <이수신편(理藪新編)>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 책에는 물리학, 수학을 비롯한 이학의 총체가 담겨져 있다. 천문학 분야에는 천문, 역법 등 동서고금의 여러 학설이 종합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는 중국에서 전래된 서양 선교사들의 책을 접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수학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고전 산법을 3권에 걸쳐 상세히 다루기도 하였다. 또한 음운학, 성운학, 언어철학과 관련된 글들도 수록되어 황윤석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학문세계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재청이 4월 한 달 동안 숨은 무형유산을 찾는 대국민 공모를 진행한다. 국가무형문화재나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기능과 예능 등의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새로운 무형문화재로 지정할만한 종목을 발굴한다는 취지다. 공모 대상은 아리랑, 김치 담그기와 같이 전국적인 기반을 두고 지역과 세대를 초월하여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는 무형유산 7개 분야다. 세부적으로 △전통 공연예술 분야(음악, 춤, 연희, 종합예술 등) △전통기술 분야(공예, 건축, 미술 등) △전통지식 분야(민간의약지식, 생산지식, 자연우주지식 등) △구전 전통과 표현 분야(언어표현, 구비전승 등) △전통 생활관습 분야(절기풍속,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 등) △사회적 의식의례 분야(민간신앙의례, 일생의례, 종교의례 등) △전통 놀이축제와 기예무예 분야 등이다. 이번 공모를 통해 접수된 종목들은 무형유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통해 엄선될 계획이며, 그 결과는 무형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예비목록에 포함, 순차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 조사계획에 반영될 예정이다. 공모 접수는 4월 1일부터 30일까지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필요한 서류 양식을 내려받고 제안서를 작성해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042-481-4994)로 문의하면 된다.
조선 시대의 정치ㆍ사회ㆍ외교ㆍ경제ㆍ군사ㆍ문화 등 각 분야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 추가로 확인 돼 국보로 지정 예고된다. 문화재청은 26일 무주 적상산 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 등 96책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록에는 무주 적상산사고본 4책 외에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이 포함됐다. 이번 추가 지정 예고는 문화재청이 국보 제151-1호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의 일부가 1973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부터 누락됐다는 사실을 지난 2016년 인지하고, 2년간 조사한 끝에 이뤄낸 결과물이다.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6.25전쟁 때 북한군이 북으로 반출했다고 전해질 뿐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적상산사고본 실록(4책)이 국립중앙박물관(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3책)에 나눠서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국보로 추가 지정이 될 경우 성종실록인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은 정족산사고본이 국보 제151-1호인만큼 제 151-1호에 편입시키고, 효종실록인 오대산사고본 누락본인 1책은 국보 제151-3호에 편입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하는 조선왕조실록 5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계획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도 관청의 중재 혹은 도움이 필요한 경우, 공공기관 민원 절차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였으니, 문서의 형식을 갖추어 민원의 내용을 올리고 담당 직원이 처분을 내린 결과가 적혀 있는 문서를 소지(所志)라고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박영란(朴英蘭, 16세기)의 충절을 추천하는 문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문서에는 좀 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몇백 년이 지난 19세기 어느 날, 지역 유림들 21명이 예전 우리 지역에 충절로 뛰어난 인물이 있는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면서 연대 서명하여 순찰사(巡察使)에게 그의 충절을 추천했던 연명첩(聯名帖)이기 때문이다. 박영란은 김제군에서 훈련원(訓鍊院) 주부(主簿)를 지낸 인물이었다. 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 공도 박영란이 하찮은 일이라도 애를 쓰고 절의에 죽으려 했던 뜻은 사람을 감탄하게 만든다.고 할 정도였다. 또한 임진왜란때 큰 공적이 있어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실릴 정도였으며, 우리 고장(김제군) 선비들의 여론은 선무공신에서는 제외된 것에 대해 모두 서글프고 안타깝다 하며, 지금 임금이 효행과 충절로 뛰어난 사람을 추천받으니 연대 서명하여 진정한다고 하였다. 마지막 부분에 21명의 이름과 함께, 충절이 뛰어나므로 진정한 대로 처분한다는 결과가 적혀 있다. 문서에는 계미년 6월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1799년에 간행된 <호남절의록>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인 1853년일 것으로 추정된다. 본문에는 선조대에 나라가 어수선해 졌습니다. 그때 재주 많은 준걸들이 조정에 가득 차고 절의를 지닌 선비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나라의 기틀이 다시 높아지고 운세가 다시 새로워졌으니 충성스럽고 어진 인물들을 드러내 높여주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둔 효과가 어떠했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어진 인품을 잃지 않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두는 것이 중요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18년 동안 해체수리가 진행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오는 23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미륵사지 석탑이 원형과 다르게 복원됐다는 감사결과가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이 석탑을 보수정비하면서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한 사전검토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일관성 없이 축석(돌을 쌓음)하다 보니 석탑의 상하부 내부 형태가 애초의 원형과 달리 층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21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2011년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실시설계용역을 진행하면서 해체 당시 확인된 축석방식의 기술적 재현 가능성이나 구조적 안정성 여부 등 원형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검토를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석탑 상하부의 내부 적심(석탑 상부의 하중을 하부에 전달하는 역할)이 다른 형태로 축석되는 등 일관성이 없는 방식으로 복원됐다. 문화재청은 또 3층 이상 적심부의 틈을 채우기 위한 충전재를 기존에 계획했던 실리카퓸을 배합한 무기바인더에서 황토를 배합한 무기바인더로 변경하면서 그 사유와 타당성에 대해 자문이나 연구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문화재청장에게 구조계산 등을 거친 실측설계도서 없이 축적된 미륵사지 석탑에 대해 구조안정성 검증 후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통보했다. 또 앞으로 문화재 보수 시 원래의 구조와 형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계획을 수립해 일관성 있게 할 것을 주의 조치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미륵사지 석탑의 내부 상하 적심의 구성이 달라진 것은 석탑의 구조적 안전성 확보와 역사적 가치 보존을 함께 고려해 나타난 결과라면서 충전재는 공극 채움을 통해 석탑의 구조적 안전성을 크게 행상시키는 역할을 하며, 배합 재료의 변경은 석탑의 구조적 안정성에 큰 영향은 없다고 해명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결과 일제강점기에 덧씌운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체수리를 결정했다. 이후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석탑의 해체조사에 착수했고, 2017년까지 남아있었던 6층까지 수리를 완료했다. 최근까지 가설시설물 철거와 주변 정비를 모두 마무리했다. 강정원 기자김진만 기자
국립무형유산원은 종묘제례악, 양주별산대놀이 등 국가무형문화재 15개 종목 이수자 18명을 우수 이수자로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우수 이수자 제도는 지난해 6월 무형문화재 보전과 진흥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시행됐다. 2월 말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종목은 142건, 보유자 167명, 보유단체는 66개이고 이수자는 6363명이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혹은 보유단체, 전수 교육학교의 추천을 받아 이수자가 된 뒤 3년 이상 전승 활동을 한 사람 중 전수교육 참여와 활동 실적이 탁월한 사람을 1년간 우수 이수자로 선정한다. 무형유산원은 우수 이수자에게 1인당 연간 800만원을 지원하며, 우수 이수자들은 기존의 공연전시 등 이수자 지원과 차별화된 새로운 전승 활동을 모색발굴하고, 개인 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와 심화학습 중심의 활동을 진행한다. 무형유산원 관계자는 예산 규모에 따라 매년 순차적으로 20종목 내외에서 우수 이수자를 선정해 지원할 계획이라며 우수 이수자 선정지원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만큼 이 제도가 조속히 정착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수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안 변산반도의 끝자락에는 서해바다의 수호신인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이 있다. 1992년 해안초소를 보수하면서 수성당 주변자리가 고대 삼국 중 백제 이래로 계속 제의행위가 이루어진 곳임이 확인되었다. 이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은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의 유일한 해양제사 유적으로 항해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행위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유물들이 양호하여 당시 구체적인 제사의 양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이고 금속유물과 모조품, 옥제품, 중국제 자기, 일본 계통의 토기들도 있다. 토기들은 4세기 중반~7세기 전반까지 백제의 것들이 모두 확인되고 있는데, 5~6세기대가 중심연대이다. 대형항아리 중에는 말안장테, 철제 방울 등의 마구류나 철제 거울이 담겨진 채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 유적은 유일한 백제의 해양 제사유적이라는 중요성 이외에도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교차점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중국제 흑갈색 유약을 입힌 흑유항아리와 청자항아리, 일본 계통의 스에키(5~6세기 일본 고분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토기)뿐만 아니라 신라, 가야지역의 유물들도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흑유항아리는 4세기대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서울의 풍납토성, 홍성 신금성 등 주로 한성백제의 중앙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스에키도 웅진백제의 수도였던 공주 정지산 유적을 비롯하여 나주 복암리, 정촌 유적 등에서 발견되어 백제가 바닷길을 통해 일본이나 영산강유역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죽막동에서 이루어졌던 제사는 이 지방의 토착세력들이 주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흑유항아리나 중국제 청자들은 평범한 지위에 속했던 사람들이 사용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스스로 해양교섭능력을 가졌거나 상당한 사회경제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던 계층으로 보인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은 제의를 주체한 사람들이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한 축이었음을 증명하면서 해양국가 백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멸종위기 1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이 기념 메달로 제작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가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와 협업해 제작하는 한국의 천연기념물 시리즈 기념 메달의 4차분이 수달을 주제로 제작발매된다. 수달 기념 메달은 은메달과 동메달 2종으로 구성되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자료를 제공하고 한국조폐공사의 특수 압인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2017년 상반기에 천연기념물 참매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매사냥, 하반기에 제주 흑우와 흑돼지, 2018년 장수하늘소 기념 메달이 차례로 선보인 이후 네 번째 시리즈다. 기념메달 제작은 천연기념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천연기념물의 문화재적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화폐제조(주화) 기술을 보유한 한국조폐공사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양 기관은 지난 2017년 3월 27일 문화재 기념메달 제작 등 공동협력에 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으로도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 무등산 주상절리대(천연기념물 제465호)와 같은 천연기념물을 주제로 다양한 기념 메달을 제작할 계획이다. 한국의 천연기념물 시리즈 기념 메달은 오는 18일부터 한국조폐공사 쇼핑몰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산사의 아침저녁으로 잔잔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국립전주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 미술실에 들어서면 이와 비슷하게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 왠지 경건한 자세로 관람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렇듯 길게 울려 퍼지는 범종의 장엄하고도 청명한 소리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 찌든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편안하게 해주며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참회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범(梵)은 신성(神聖), 청정(淸淨)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교 의식에 사용하는 종을 범종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지옥에 있는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아무런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가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한다(극락정토, 極樂往生)는 것이다. 또한 불법의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의미도 있다. 보물 제 1325호인 이 범종은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전라북도 부호 박영근이 낙수정(樂壽亭, 현재 전주시 완산구 교동)을 수리하다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일본 총독 사이토오 마코도(齊藤實)에게 기증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이 범종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소장해오던 다카하라 히미코(高原日美子)씨가 1999년 기증하면서 70여 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는데 의미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중심으로 4명의 비천상이 구름 위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고 있다. 이 범종은 문양 및 배치가 고려 범종의 요소인데 비해, 형태는 통일신라 범종과 비슷하다. 또한 범종의 시료분석 결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상원사(上院寺) 동종(銅鐘, 725년)의 성분비와 같음이 밝혀져, 맑고 장엄한 소리를 내기 위한 전대(前代)의 전통 제작방법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이 범종은 신라 말~고려 초 범종의 양식변천과 제작방법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김혜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선비와 관련된 중요 유물 18건 197점이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이관된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는 내년 신설되는 선비문화실에서 유명한 선비들의 편지 모음집 진신찰한(縉紳札翰), 이이 선생의 문집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 등을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신찰한은 조선시대 선비 378명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이 중에는 조선 중기의 서예가인 오준(吳竣, 15871666), 후기의 대학자인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의 편지도 수록되어 있다. 율곡선생전서는 율곡 이이의 문집이다. 1749년 금속활자 율곡전서자를 제작해 인쇄했다. 조선시대 책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허련이 그린 국화그림, 간재 전우의 문집, 요동지역의 국경을 그린 요계관방지도 등도 선비문화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유물 이관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조선 선비문화를 핵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박물관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이관된 유물은 오는 2020년 선비문화실 공간이 마련된 후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전주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 국립전주박물관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선비상을 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이라면서 자아실현을 넘어 참여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 선비정신은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더욱 큰 가치를 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선비정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2019 선비문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으며, 유물과 함께 선비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선비문화실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4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열릴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 특별전도 꾸준히 준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300년 넘게 부안의 한 마을을 지킨 당산(堂山돌로 만든 솟대) 위 돌오리상이 도난당한 지 16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3년 부안군 동중리에서 도난당한 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 부안 동문안 당산(扶安 東門안 堂山) 돌오리상 1점을 지난달 회수해 5일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동문안 마을에 반환했다. 부안 동문안 당산은 3미터가 넘는 당산과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고 쓰인 한 쌍의 장승으로 구성돼 있다. 화강석을 거칠게 다듬어 조각한 약 5920cm 크기의 돌오리상은 본래 부안읍의 주산인 성황산을 바라보며 당산 위에 놓여있던 것으로, 마을 밖으로부터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다. 동문안 주민들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음력 정월 보름날이면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농악을 치며 줄다리기를 마친 뒤 당산에 새끼줄을 감아주는 당산 옷 입히기 풍습을 전해오는 등 부안 지역 민속신앙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던 중 2003년 3월 돌오리상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해 2월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낼 때까지만 해도 제자리를 지킨 돌오리상은 한 달 만에 돌연 자취를 감췄고, 이 때문인지 2005년부터는 격년으로 지내던 당산제마저도 단절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돌오리상을 물래 훔친 절도범이 석물취급업자와 장물업자에게 이를 유통하려 했지만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유통이 여의치 않자 임의의 장소에 오랫동안 숨겨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첩보를 입수한 뒤 지속해서 수사한 끝에 마침내 돌오리상을 회수하는 성과로 이날 반환하게 됐다. 부안읍성 동서남문 세 곳에 건립된 당산은 특이하게 돌오리상으로 장식돼 부안지역의 독특한 민속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8호인 부안 서문안 당산에는 1689년 조선 숙종 때 건립되었다는 명문이 있어 부안 동문안 당산도 같은 해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 회수된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은 동문안 처음 제작된 본래의 것으로, 전통문화와 지역문화의 계승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문안 당산에는 이후 따로 제작된 돌오리상이 올라가 있으며, 남문안 당산에는 그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도난당한 문화재들을 이른 시일 안에 회수하여 소중한 문화재들이 제자리에서 그 가치에 맞는 보존과 활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찰청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며 돌오리상은 부안군에 인계해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문화재위원회를 거쳐 당산 위에 다시 올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소중한 문화재들이 제자리에서 그 가치에 부합되는 보존과 활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문화재청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 반환을 계기로 그동안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진행되지 못한 당산제를 복원하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정곤 기자천경석 기자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저변을 확대해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기 위한 학술 연구논문을 찾는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이승우)은 오는 29일까지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전개과정성격영향의의인물을 주제로 한 학술 연구논문을 공모한다고 5일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올해 10월 열릴 예정인 동학농민혁명 관련 학술대회에서 발표와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청을 원하는 연구계획서와 신청서를 우편이나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최우수작과 우수작 1편씩 총 2편을 선정해 오는 4월 5일 발표하며, 최종 논문은 오는 8월 말까지 제출하면 된다. 최종 제출한 논문이 채택되면 최우수작 500만원, 우수작 3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하고 정기학술대회에서 이를 발표하게 된다. 이번 논문 공모와 관련한 문의사항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063-538-2897)로 전화하면 된다.
포도는 알알이 맺힌 열매, 넝쿨져 뻗어나가는 줄기의 속성으로 인해 다산과 번창을 상징하며 예로부터 시와 그림, 공예품에 애호됐다. 우리나라에서 포도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 처음 보이며 포도가 회화의 소재가 된 것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였다. 조선 말기에는 길상성과 장식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인해 포도 그림의 수요가 증가하게 됐고, 그 가운데에는 전북의 화가 낭곡 최석환이 있었다. 19세기에 활동한 최석환에 대한 기록은 전북 옥구군 임피면(현 군산시 임피면)에 거주하며 포도를 잘 그렸다는 내용이 유일하다. 그러나 최석환은 1870년을 전후하여 많은 양의 포도병풍을 남겼다. 포도병풍(墨葡萄屛)은 1870년 전후에 형성된 최석환 포도병풍의 전형양식을 보여준다. 최석환은 포도넝쿨 줄기를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였다. 포도 넝쿨의 힘찬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 진한 먹으로 초서의 한 획처럼, 서예 기법으로 넝쿨을 그렸다. 포도알은 농묵과 담묵을 번갈아 채색하여 알알이 표현하였고, 병들어 상한 포도잎을 표현하는 등 더욱 사실적이고 자연스런 표현이 엿보인다. 이는 17세기에 활동했던 이계호(1574-1645 이후)의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하단에는 을묘지납육일, 관지에는 낭곡, 최석환인이라 찍혀 있어 최석환이 1879년 12월 6일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방 화가였던 최석환은 이러한 연폭 포도병풍을 다수 제작했는데, 이는 19세기 중앙 화단의 유행을 따른 것이다. 동시에 당시 호남 화단이 수요자의 취향에 맞게 그림을 제작하고, 중앙화단의 서화를 소장하였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며 19세기 호남 화단이 중앙 화단과 긴밀한 교류가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박혜인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무형유산원이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2019 무형문화재 신규이수자 입문 과정 제1기를 운영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전수자의 전승 역량을 강화해 차세대 핵심 전승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 교육 과정이다. 올해 교육은 3차례로 나누어 진행하며 2박 3일 과정이다. 신규 이수자는 단계별 맞춤형 심화 교육을 통해 전승 활동을 하면서 전문성을 높이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무형유산의 이해 및 제도와 정책과 문화유산을 보는 눈과 트렌드 읽기, 무형유산 콘텐츠 활용 및 전승 활동 우수사례, 보유자와 함께하는 전승 세계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무형문화재 활용교육 사업과 이수자 전승 활동 지원 사업, 한국예술인 복지재단 사업 등 문화재청과 타 기관에서 무형문화재 전수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안내해 전승자로서 활동 반경을 넓힐 기회도 될 전망이다. 교육 대상은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로 지정된 지 3년 이내 신규 이수자이며 모든 과정은 무료로 운영한다. 27일 오전 9시부터 3월 6일 오후 6시까지 전자우편(hyounaa@korea.kr)을 통해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신청양식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에서 내려 받으면 된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지도가 제작됐다. 범위를 가지고 분류하자면, 지역의 모습을 담은 지도에서 넓게는 세계의 모습을 아우르는 세계지도가 존재했다. 이러한 지도들은 대부분이 현재의 축척을 사용하지 않고 하늘에서 비스듬하게 내려다보는 형태로 제작됐고, 이러한 지도를 회화식 지도라 부른다. 회화식 지도는 지역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지도 안에 숨겨진 다양한 상징과 해석의 장치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고지도에 담겨진 이와 같은 상징체계들은 고지도를 연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하며, 지역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19세기 전주의 모습을 그려낸 완산부지도(完山府地圖)는 지역의 지도이자 회화식 지도이다.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된 이 지도는 수많은 고지도 가운데 어떠한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았기에 국가지정 문화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10폭의 병풍으로 제작된 거대한 지도. 지도를 길을 찾는데 사용한다는 지금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거대한 병풍지도는 그 쓰임을 알기 어렵다. 또한 이 지도는 방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배치를 하고 있는데, 풍남문이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좌측으로 90도 회전된 형태로 지도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실제 산세보다 더 험준한 형태로 산들이 연이어 그려져 있으며 전주 성읍을 감싸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왕조가 발원한 땅 전주, 500년의 세월동안 그 이야기는 강화되고 전설이 되어 내려오게 됐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이가 보아도 산줄기와 물줄기가 안온하게 감싸 안고 깊은 내력을 간직해 주는 곳, 전주는 그 모습에 합당한 땅이었다. 아니 불완전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곳이 되어야 옳았을 것이다. 풍수에 비보풍수가 있듯, 불완전한 땅의 모습은 지도에서 붓터치와 함께 보완됐다. 그리하여 전주의 모습은 생기를 얻고 땅의 모습은 전설을 잉태한 곳으로서의 당위성을 부여받아 한 폭의 지도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황토현전승일인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1894년)을 기리기 위한 국가기념일로 정식 지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게 됐다. 먼저 올해부터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정부 주관으로 개최되며, 정부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재조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혁명을 주도한 동학농민군의 위상도 제고돼 그 후손인 전북인의 자긍심도 크게 고취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됨에 따라 정부 기념일은 납세자의 날(3월 3일), 식목일(4월 5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4월 13일), 419혁명기념일(4월 19일), 어린이날(5월 5일) 등 41개로 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에 따라 오는 5월 11일 공식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며,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 및 기념선양사업도 지자체별 규모에서 벗어나 국가 주관의 대규모 사업으로 치를 계획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각 시군에서 주관했던 각종 기념선양사업의 위상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정부는 공식 기념행사 외에도 동학농민혁명의 가치와 의미를 고취시키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애국애족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중장기 사업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도내 지자체의 동학관련 숙원사업도 추진동력을 마련하게 됐다. 도내 시군별 동학농민운동 관련 사업은 전라천년 파랑새 공원조성(고창), 백산 동학랜드(부안), 동학농민혁명 역사문화공원(전주), 동학농민혁명 역사 탐방길(정읍) 등이 있다. 한편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고, 외세에 맞서기 위해 일어난 우리역사 속 최대의 민주혁명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불리기도 한다. 기념일로 결정된 황토현전승일은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황토현 일대에서 전투를 벌여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날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황토현전승일을 계기로 농민군의 혁명 열기가 크게 고양됐고,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동학을 대표하는 날로 평가했다.
고창 아산면 봉덕리 무덤군에는 길이 72미터, 높이 8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무덤이 하나 있다. 전통적인 마한 양식의 무덤과 백제의 돌방무덤이 함께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5세기 중반 고창 지역 최상위 계층의 무덤이었으리라 짐작된다. 2009년 확인된 4호 구덩식 돌방무덤 안에는 금동장식 신발과 중국제 청자, 작은 단지 장식 구멍항아리, 청동잔과 잔받침, 칠기 화살통, 큰칼, 금귀걸이 등 무덤 주인의 권세를 말해주는 각종 고급품과 사치품이 고스란히 출토되었다. 이 중 금동장식 신발은 당시의 장례 풍습을 잘 보여주는 부장품으로, 우리나라 삼국 모두에서 유행하였다. 화려한 장식과 실제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내구성이 약해서 무덤에 넣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백제지역에서는 현재의 경기 화성, 강원 원주, 충남 공주서산, 세종, 전북 익산, 전남 나주고흥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이곳들은 당시 백제 중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봉덕리 출토품은 바닥에 18개의 작은 금동 못과 함께 발등과 뒤꿈치를 2개의 옆판으로 연결하는 등 백제 금동장식 신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옆면은 거북이등껍질 무늬 안에 용과 새 등을 새겼는데, 당시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빈 공간 사이에 새겨 넣은 사람 얼굴 모양에서 백제인의 해학을 엿볼 수 있다. 신발의 형태는 나주 정촌에서 나온 것과 유사하고, 서산 부장리에서 출토된 금동 관모와 무늬가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수준 높은 금속 공예품은 숙련된 장인 집단이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백제 중앙에서 만들어 각 지역으로 보급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지배집단은 금동장식 신발 외에도 금동관, 금은장식 둥근 고리 큰칼 등을 제작하여 지방 유력자들에게 선물하였다. 이것은 유력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줌과 동시에 그 영향력 아래에 두려는 정치적 수단 중 하나였다. 봉덕리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신발과 여러 유물들은 고창지역 집단이 마한을 비롯하여 백제 중앙, 일본, 중국과도 활발한 교류를 맺으며 성장하였던 명실상부한 지역사회의 중심세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25년 문화자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 안정’으로 재도약 기틀 세워야
540억 투입 전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1억...내실 부족 우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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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 깎여 나간 현대인의 초상…배병희 개인전 ‘바디 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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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황석영 ‘할매’
속도의 시대, 읽고 쓰는 시간을 묻는 공간 ‘익스’
[안성덕 시인의 ‘풍경’] 입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