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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노인들의 모임 ‘십로계첩(十老契帖)’

문화재 지정 제도는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하여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다. 또한 국립박물관은 문화재 기탁 제도를 통해, 박물관 전시 및 연구에 활용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개인 소장 지정문화재 혹은 지정문화재급 유물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 고령(高靈) 신씨(申氏) 종중(宗中)에서 전주박물관에 기탁한 십로계첩(十老契帖)(전북유형문화재 제142호)은 신말주(申末舟)(1429~1503)가 70세가 넘은 나이에 가까운 벗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그림이다. 신말주는 역사 속에서 지조 높은 선비이자 은사(恩師)의 모습으로 부각된다. 26세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456년(세조2년)에 수양대군이 조카였던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두 임금을 섬김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면서 은거생활을 했다. 1476년, 47세때 전주 부윤으로 일정 기간 관직에 몸담았으나, 말년에는 다시 은거를 하였으니, 대부분의 생애를 관직과 상관없는 처사處士로 보냈다. 말년에 은거하던 중 신말주가 70이 넘은 나이에 이윤철(李允哲), 안정(安正) 등 가까운 벗들과 계(契)를 맺고 십로계(十老契)라 이름하고, 10개의 첩(帖)을 만들어 각각 1개씩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십로계첩이다. 10명은 생년월일 순으로 서열을 메기고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주관하였다. 모임을 여는 순서가 한 바퀴 돌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계첩에는 10명의 인물을 각각 채색을 곁들이지 않고 선묘(線描)만으로 묘사하여 그린 후, 각 개인의 생활과 인격, 사상 등을 함께 기록하였다. 이후 18세기에 김홍도가 모사한 십로도상첩(十老圖像帖)(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이 전하여 흥미로운 비교가 된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29 17:27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청자철화철백화국화문합

동그랗고 앙증맞은 청자 합이다. 합은 뚜껑과 몸체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는 기종을 말하는 것으로 무언가를 담아 보관했던 용도로 쓰였다. 손바닥 보다 작은 이 합은 고려시대 여인들이 화장용품을 담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단연 뚜껑에 피어있는 검고 하얀 꽃이다. 언뜻 흑백의 향연을 대표하는 상감象嵌청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상감기법과는 전혀 다르다. 기면을 파서 흙을 넣고 깎아 무늬를 나타내는 상감과는 달리 이 청자는 기면 위에 그저 검토 흰 안료를 붓에 찍어 그렸을 뿐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경쾌하다. 이러한 종류의 청자를 철화청자, 또 이처럼 흰색 안료까지 베풀어진 청자를 철백화청자라고 한다. 철화청자는 산화철(Fe2O3)이 포함된 흙을 물에 풀어 만든 안료로 문양을 그린 뒤 유약을 발라 구운 청자를 말한다. 즉 유약 아래 안료가 있는 유하채釉下彩 자기이다. 철화안료로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그린 경우는 철로 그렸다고 해서 철화鐵畫라고 하며 일부 또는 전체에 칠해버린 경우는 철채鐵彩라고 한다. 반면 흰 백토를 발라 유약을 입힌 후 굽게 되면 하얗게 무늬가 형성되는데 이는 하얗게 그렸다고 하여 백화白畫청자라고 한다. 백화기법은 철화기법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철백화청자라고 한다. 백화기법은 음각양각상감 기법으로 표현한 청자의 보조 무늬로 선이나 점을 나타내는 데 이용하거나, 철화기법과 함께 중심이 되는 무늬 전체를 표현하는 데 쓰인다. 이러한 철화청자 또는 철백화청자는 맑고 푸른빛을 띠는 비색청자나 푸르지만 회색빛이 도는 상감청자에 비해서 짙은 색을 띤 녹갈색, 녹청색, 황갈색 계열이 주를 이룬다. 철화청자 무늬는 사물의 특징을 간결하게 묘사한 예가 많아 섬세한 곡선과 비취색 등을 특징으로 꼽는 상형청자나 상감청자와는 다른 미감을 보인다. 이 작품 역시 간결하면서도 활기찬 국화꽃을 표현하였다. 국화의 특징인 여러장의 꽃잎은 백토로 도톰하게 올렸고 세 개로 갈라진 잎은 철화안료로 검게 그렸다. 또한 측면에는 자유분방한 필치가 느껴지는 초화문을 넣었다. 철은 구하기 쉽고 전국 어디서든 채취가 가능한 안료였다. 따라서 고려청자의 꾸미는 방법으로 자주 애용되었다. 동시에 흑백이 대조되는 색이 드러나기에 어두운 조질粗質의 바탕흙에도 표현력이 좋아 상대적으로 A급의 왕실, 귀족 수요의 비색청자와는 달리 더욱 보편적으로 생산되었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진서리 가마터 등에서도 이러한 철화청자 또는 철백화청자를 제작하였으며 12-13세기 청자를 생산한 가마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감청자처럼 정교한 맛은 떨어지지만 특유의 자유분방한 필치가 돋보여 고려청자의 새로운 미감을 제시해주는 작품이다. 철화로 피운 검은 꽃을 느껴보기 바란다. /서유리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22 17:41

초기 철기문화 조사,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23일 출범

전북지역의 초기 철기문화 유적을 주로 다루는 국립연구기관이 완주에 문을 연다. 문화재청과 행정안전부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오는 23일 출범한다고 16일 밝혔다.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완주문화재연구소는 초기 철기문화 대표 연구기관으로 운영된다. 전북은 전북혁신도시 건설 당시 전주익산 일원의 만경강 유역과 완주 일대에서 70여곳 이상의 초기 철기유적이 발굴되는 등 한반도 고대 철기문화가 꽃핀 지역이다. 특히 전북에는 가야사 연구 대상 유적(1672건) 중 23%가 분포하는 등 만경강 유역의 초기 철기문화 세력은 동부지역 가야문화권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영남권 위주로 가야 유적 조사가 진행되면서 도내 유적 조사는 상대적으로 미흡해 초기 철기문화와 가야유적 조사를 전담할 연구기관 설치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완주문화재연구소 설립을 계기로 한반도 철기문화권 유입 경로인 만경강 유역의 초기 철기유적 조사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후삼국 시대를 처음 연 후백제 왕도 유적, 불교유적 등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 학술조사를 통해 역사문화 콘텐츠의 원천 자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앞서 전북도는 도민의 자긍심 회복을 위한 전북 몫 찾기의 일환으로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설립을 추진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전북 동부권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한층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최명국
  • 2019.07.16 19:14

“조선의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보러 오세요”

고창군과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이 2차례(7월, 10월)에 걸쳐 고창군 무장현 관아읍성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특별전을 연다. 1차 2019년 조선무기 특별전_비격진천뢰는 비격진천뢰의 보존처리와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국립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8월25일까지 진행되며, 2차 특별전은 10월25일부터 본 출토지인 고창에서 연말까지 진행될 계획이다. 이번 특별전시회는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적 제346호) 출토품 11점을 비롯해 보물 제860호로 지정된 창경궁(추정) 비격진천뢰, 장성(추정), 하동, 진주, 창녕 지역에서 발견발굴된 비격진천뢰 등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모든 비격진천뢰와 완구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아 전시한다. 기존 알려진 비격진천뢰는 보물 제860호 서울 창경궁 발견품 등 전국적으로 5점만이 전해졌으나, 지난해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군기고(추정) 일원 발굴조사에서 비격진천뢰 11점이 무더기로 출토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지난 1월3일 국립진주박물관(임진왜란 전문박물관)과 (재)호남문화재연구원은 업무협정을 맺고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출토 비격진천뢰에 대한 보존처리와 과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는 비격진천뢰의 컴퓨터 단층촬영(CT)과 감마선 투과 장비로 분석한 결과, 본체는 주조 기법으로,뚜껑은 단조 기법으로 제작했음을 파악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불발 확률을 낮추기 위해서 심지 2개를 뒀고, 아직 내부까지 조사하지는 않았으나 화약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독창적인 최첨단 무기로 비밀병기, 귀신폭탄 등으로 불렸으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격진천뢰의 규격과 제작과정 등을 상세히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특별전시회에서는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출토 비격진천뢰의 과학조사 결과와 기존의 분석 결과를 종합했고, 새로이 밝혀낸 비격진천뢰의 제작 및 조립 과정도 영상과 3D프린트 복원품으로 상세히 소개한다. 여기에 새롭게 확인된 비격진천뢰 뚜껑(개철, 蓋鐵)의 형태와 잠금방식, 비격진천뢰 기벽(껍질) 두께에 숨겨진 폭발의 비밀, 3D스캔 실측 데이터와 문헌 속 정보의 비교 분석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높여줄 전망이다. 유기상 군수는 비격진천뢰를 비롯한 다양한 조선무기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와 최첨단 기술을 재조명하고, 오직 나라를 위한 마음을 배우고 과학기술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오는 10월25일부터 고창 고인돌박물관에서 열리는 비격진천뢰 특별전에도 많은 관심과 관람을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성규
  • 2019.07.16 19:09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전주서 조선왕실 역사 다시 세우다

<어제수덕전편>은 1771년 영조(英祖)가 전주에 조경묘(肇慶廟)를 건립하고 그 경위와 감회를 적은 것이다. 조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시조인 사공(司空) 이한(李翰)의 사당이다. 유교 예법 상 국가를 개창한 군주를 넘어 가계의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즉, 태조 이성계를 넘어 전주 이씨의 시조인 사공 이한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당시의 예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영조는 여러 논의 끝에 전주에 조경묘를 건립하였고,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사공 이한부터 태조 이성계 이전까지의 역사를 조선 왕실의 역사로 편입시켰다. 다음은 <어제수덕전편>의 일부이다. 옛날 후직이 천 여 년 전에 먼저 덕을 심었으니[樹德] 문왕이 비로소 천명을 받았으며, 우리 조정의 시조(사공 이한)가 큰 덕과 깊은 자비로 나라를 세울[洪業] 터를 놓으시고, 여러 임금들[列聖]께서 계승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아름답도다! 오호라! 400년 해동 조선이 (선조의)덕을 쌓고 어짊을 축적함(積德累仁)에서 비롯하였음을 이 조경묘를 통해서 알 수 있도다. 영조는 시조 이한을 주나라 시조 후직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왕실의 역사를 끌어올리고 있다. 또 400여 년의 조선 역사가 시조 이한으로부터 오랫동안 덕을 쌓고 어짊을 축적한 결과임을 보여주는 것이 조경묘라고 적고 있다. 동시에 영조는 조경묘를 건립함으로써 왕실의 시조 공경을 모범으로 삼아 신하들이 왕실에 충성하기를 바랐다. 즉, 영조에게 조경묘는 유구한 조선 왕실의 역사를 상징함과 동시에 신하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이었던 것이다. <어제수덕전편>은 본래 정치의 요체가 덕을 세움[樹德]에 있음을 주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구체적인 목적은 조경묘 건립의 의미를 밝힘에 있었다. <어제수덕전편>에서는 무엇보다 왕실을 존숭(尊崇)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시대적 배경과 동시에 전주가 왕실의 풍패지향(豊沛之鄕)으로써 주목되는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박혜인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15 17:48

장수 삼봉리 산성 가야토기 출토

장수가야 유적 중 하나인 장수 삼봉리 산성에서 가야 토기와 성벽, 봉수 흔적이 발견됐다. 장수군은 군산대학교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와 진행 중인 발굴조사에서 장수 삼봉리 산성 유적에서 가야 토기와 성벽 및 봉수의 기초부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장수 삼봉리 유적은 호남과 영남을 이어주는 백두대간 육십령의 서쪽 초입에 위치하며, 전북지역 최대의 가야 고총군으로 알려진장수 삼봉리호덕리장계리 고분군이 인접해 있다. 학계에는 장수 삼봉리 산성으로 보고되었으며 주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봉화터로 전해지고 있다. 삼봉리 산성은 산 봉우리를 한바퀴 둘러 성벽을 축조한 형태로, 이번 조사는 산 정상부 발굴조사와 남쪽 성벽 시굴조사로 나누어 진행됐다. 정상부에서는 자연암반을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과 무너진 석재들이 확인됐고, 대부장경호유개장경호시루 등 가야계 토기가 출토됐다. 출토된 유물은 인근의 가야 고총군 출토품과 흡사해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8세기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화장묘를 비롯해 나말여초기의 토기편과 기와편, 철기류 등과 함께 건물의 조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주혈 등도 확인됐다. 삼봉리 산성이 삼국시대 산성 혹은 봉수의 기능으로 축조된 뒤 통일신라시대에는 묘역으로 그 기능이 바뀌고 나말여초기에 누정과 같은 시설이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시대 장수군에 존재했던 가야계 정치집단과 관련성이 깊은 것으로 드러나 향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영수 군수는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연구 성과를 통해 1500년 전 장수가야의 역동적 역사성이 확인되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앞으로 잊혀진 장수가야의 옛 이름을 찾는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발굴조사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전라북도와 장수군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진 학술조사다.

  • 문화재·학술
  • 이재진
  • 2019.07.11 18:54

국립전주박물관 “전북의 소중한 보물 함께 느껴요”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 이하 박물관)이 박물관에 기탁된 개인 소장 지정문화재를 선별해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상설전시관 역사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개인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북의 소중한 보물 6점을 엄선해 특별 공개하는 자리다. 문화재 지정 제도는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엄격한 규제를 통하여 항구적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제도다. 또한 국립박물관은 문화재 기탁 제도를 통해, 박물관 전시 및 연구에 활용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개인 소장 지정문화재 혹은 지정문화재급 유물을 보관 관리하고 있다. 고령 신씨 종중에서는 신말주(申末舟, 1429~1503) 등 열 명의 원로들을 묘사한 십로계첩(十老契帖)(전북유형문화재 제142호) 등 총 4점의 지정문화재를 박물관에 기탁했다. 지조 높은 선비이자 은사의 모습으로 평가받는 신말주는 26세 때 문과에 급제해 47세 때 전주 부윤으로 관직에 몸담았다. 하지만 생애 대부분을 관직과 상관없는 처사로 보내다 노년에 순창에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렸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가까운 벗들과 만남을 기념한 그림이 바로 십로계첩이다. 더불어 남원 양씨 종중에서 기탁한 남원 양씨 종중문서(보물725호) 7점, 개인 소장품인 이상길(李尙吉, 15561637) 초상(보물792호)도 함께 전시되며, 전주박물관 소장품인 완산부지도 10폭 병풍(보물1876호)도 오랜만에 다시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전주박물관 관계자는 전북지역의 역사문화와 관련한 지정문화재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면서 관람객에게는 우리 문화의 멋과 향기를 느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김태경
  • 2019.07.09 17:31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고대사회의 검은 황금, 철(鐵)을 다루는 공구 단야구(鍛冶具)

완주 상운리 유적은 익산-장수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발견되었으며, 장장 4년여에 걸쳐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대규모 원삼국시대*~삼국시대 마한계 무덤 유적이다. 300여 점의 토기와 500점이 넘는 철기, 마한사람들의 특징인 옥류가 6천여 점이 넘게 출토되어 당시 상운리 사람들의 위세를 짐작케 한다. 철은 고대사회에서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다른 집단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원자재였다. 철을 장악한다는 것은 권력과 부를 단숨에 거머쥘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철의 중요성을 대변하듯 제철능력은 오래전부터 고분의 벽화나 토기의 표면에 신의 능력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B.C.259~B.C.210)이나 한(漢) 무제(武帝, B.C.156~B.C.87)는 철을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는 법을 만들기도 하였다. 상운리 유적에서는 이러한 철기들이 동시대의 다른 유적들보다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길이가 1m가 넘는 대형의 둥근 고리칼, 철검, 철창, 화살촉, 작은 손칼, 도끼, 낫, 덩이쇠(철기를 만드는 중간소재) 등 당시 철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철기를 만드는 도구들인 단야구가 세트로 확인된 것이 큰 특징이다. 단야구는 망치, 집게, 줄, 모루 등 철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공구들을 일컫는다. 망치와 집게는 기본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도구들이 추가되는 양상이다. 총 20세트의 단야구가 확인되었는데, 한반도에서 단일 유적 출토품으로는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인다. 아직까지는 상운리 유적에서 제련로 등 명확한 철 생산시설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 국가형성의 기반이 되는 고도의 철기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기 다른 유적들과 비교하였을 때 월등히 높은 철기들의 출토량과 다종다양한 단야구들은 상운리 사람들이 철제 도구들의 생산과 소비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상운리 사람들의 단야기술은 상운리 집단이 성장하는 원동력이자 전북지역 마한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원삼국시대: 우리나라 고대 삼국이 성립되기 이전 원초적인 국가의 모습이 나타나던 때.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 정도를 일컫는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08 17:36

문화재청,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문화재 등록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 문화재청이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군산 구 십자의원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등록문화재 제758호인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은 1963년 당시 이리 지역을 대표하는 농업 전문 교육기관인 이리농림학교의 제2본관으로 건립된 건물로, 학교의 역사와 흔적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든 조적조(組積造) 건물이면서 주 출입구 상부의 계단실과 정면에 설치한 지붕이 돌출돼 지어진 현관부는 화강석으로 쌓아 입면을 강조한 건축 기법이 특징이다. 특히 보존상태가 전반적으로 우수한 편이라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아울러, 이번에 등록 예고된 군산 구 십자의원은 일본식 가옥에 서양의 주거 공간(응접실 등)이 절충된 형식으로 1936년 건립됐다.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2년에 군산시 소아과 전문병원으로 개원해 1980년대까지 계속해서 사용됐으며, 오늘날 지역민들의 기억 속에 당시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 등 지역의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한 군산 구 십자의원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천경석
  • 2019.07.08 17:26

정읍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정읍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을 포함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7일 전북도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우리나라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무성서원(정읍 칠보),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등 모두 9개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림의 활동 기반으로, 명현을 배향하고 인재를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사설기관이다. 무성서원은 원래 통일신라 말기, 정읍 칠보지역의 태수를 지냈던 유학자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으나 1696년(숙종 22년) 국가 공인 서원이 되며 이름을 바꿨다. 전북도는 세계유산 협약과 운용지침 등 국제규범에 근거해 무성서원의 보존 및 관리 방안을 마련시행할 계획이다. 오는 9월에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행사를 열 예정이다. 전북도는 고창 갯벌과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도내 세계유산은 무성서원을 비롯해 고창 고인돌,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모두 3곳이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전북 문화유산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전북문화의 자부심과 자존의식을 갖고, 우리지역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무성서원 탐방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역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편익시설 확충 및 환경정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임장훈 기자, 최명국 기자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9.07.07 18:09

남원소경 실체 밝힌다

남원시는 3일 남원읍성 북문지 안팎에서 통일신라부터 조선에 이르는 시기의 건물지 관련 유구(유적의 구조와 양식을 가늠하는 터)가 집중 분포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통일신라~고려 시대 문화층 존재도 확인돼 통일신라 시대 5소경(小京) 중 하나로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남원소경에 대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남원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까지 남원읍성 북문지 바깥과 안쪽 중앙공원(현 만인공원) 조성사업 부지에 대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를 벌인 결과다. 조사는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진행했다. 남원시는 명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시굴조사에서 발굴조사로 전환해 유적의 성격 규명과 소경의 단서를 밝혀나갈 계획이다.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남원읍성은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읍성 가운데 통일신라 방리구획(바둑판식 도시 구조)이 가장 잘 남아 있어 고대 도시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다만 그동안 통일신라 시대 남원경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아 남원소경의 구체적인 실체가 지금껏 확인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고대 도시 방리구획에 대한 조사는 왕경이었던 경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번 남원 만인공원 부지 시굴조사에서 통일신라~고려 시대 유적의 존재가 밝혀짐에 따라 향후 남원소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조사를 통해 후백제 시기의 기와와 초기 청자인 해무리굽 청자 등이 출토돼 남원읍성의 시공간적 범위와 학술적 가치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원시 관계자는역사적 가치가 큰 조사인 만큼 신중히 진행해 과거 도시 모습과 조상들의 생활상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한편 문헌 기록과 그동안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남원읍성은 통일신라 시대(691년)에 처음 축조된 9주 5소경 가운데 하나인 남원경의 치소로 사용되다가 조선 시대에 현재와 같은 규모로 개축됐다.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원읍성의 발굴조사를 통해 남원읍성의 성격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글자 대로 작은 서울을 뜻하는 소경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새로 정비한 특수 행정구역이다. 통일신라는 수도 경주가 한쪽에 치우친 약점을 보완하고 지방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주요 지방에 5소경을 두었다.

  • 문화재·학술
  • 강인
  • 2019.07.03 18:39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신구법천문도’ 동양과 서양의 천문도가 결합되다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는 하늘의 별자리를 묘사한 천문도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천문도(옛 천문도)와 서양에서 새롭게 유입된 천문도(새로운 천문도)를 함께 배치하여 비교하고 있다. 서양의 천문도는 조선 초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비해서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기에 신법천문도라 부른다. 한국의 옛 그림이나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따라서 본문의 그림은 오른쪽 상단에서 시작하여 왼쪽 하단에서 끝나게 된다. 천문도의 오른쪽에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수록하였다. 조선시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세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태조 석각본, 선조 목판본, 숙종 복각본과 그 탁본들이다. 이 천문도에 수록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 석각 또는 그 탁본을 기초로 교정을 하여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천문도의 상단에는 황도남북양총도설이란 기록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천문도에 사용된 좌표계와 좌표 읽는 방법, 별의 밝기,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점, 천체 망원경으로 관측한 해, 달, 행성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글의 맨 끝에는 옹정(雍正) 원년(元年) 세차(歲次) 계묘(癸卯)에 극서(極西)에서 온 대진현(戴進賢)이 방법을 수립하고 리백명(利白明)이 새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1723년 서쪽 끝의 지역(유럽)에서 온 독일 선교사 쾨글러(16801746)가 작성하고 페르디난도 모기(리백명)가 인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도의 왼쪽에는 두 개의 원형으로 된 천문도가 있는데, 동양의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황도(黃道, 지구가 태양을 도는 큰 궤도)를 중심으로 북쪽의 황도북성도, 남쪽의 지도인 황도남성도를 표현하였다. 이 지도는 황도좌표계의 평사도법(stereographic projection) 기법으로 그려낸 것이다. 가장 왼쪽에는 태양, 달, 진성(鎭星, 토성), 세성(歲星, 목성), 형혹(熒惑, 화성), 태백(太白, 금성), 진성(辰星, 수성)이 그려져 있다. 천체가 배열된 순서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동양의 오행설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각 천체는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의 특징을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천문도는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 신부인 아담 샬(Adam Schall, 1591~1666)과 쾨글러가 제작한 천문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물 1318호로 지정된 신구법천문도(국립민속박물관 소장)와는 거의 동일한 형태의 천문도로 여겨진다. 18세기 초에 관상감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연구된 바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도는 현재 영국과 일본에도 동일한 천문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서양과 한국의 천문지식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천문도는 높은 사료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대영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7.01 17:59

진안 성수면 ‘도통리 청자 가마터’, 국가 사적 지정 예고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청자가마터가 국가사적이 된다. 학계에 따르면 이 곳은 최근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초기청자 가마터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도통리 청자가마터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는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끝에 조성된 곳이다. 이 가마터는 도통리 중평마을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도통천이 흐르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중평마을 전역에는 청자와 갑발편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마을 일부에는 대규모 요도구 퇴적층이 남아 있다. 지표조사 등을 통해 존재가 알려진 이 가마터는 2013년 최초의 발굴조사가 실시됐다. 이후 2017년까지 총 5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10~11세기에 걸쳐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보고됐다. 한반도 초기청자 생산에 이용됐던 벽돌가마(전축요)와 그 이후 청자 생산을 위한 진흙가마(토축요)가 모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내 가마축조 양식이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천하는 전환기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는 게 학계의 보고다. 현재 조사된 벽돌 및 진흙 가마는 총 길이 43m다. 이는 초기 청자 가마로는 호남지역 최대 규모다. 최초 가마는 벽체가 벽돌로 축조됐으며 점차 내벽을 진흙과 갑발을 활용한 개보수 방식으로 변천했다. 이후 진흙가마(토축요)는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 구축됐으며 길이는 총 13.4m다. 도통리 터의 가마 내부와 대규모 청자 폐기장에서는 다양한 초기청자(해무리굽완잔잔받침주전자꽃무늬 접시 등)와 다량의 벽돌, 갑발(도자기를 구울 때 청자를 덮는 큰 그릇) 등 요도구(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도구)들이 출토됐다. 또 대(大)자명 등의 명문이 새겨진 청자는 물론 고누놀이가 새겨진 갑발, 청자가마의 배연공으로 추정되는 벽체편 등의 유물도 발견됐다. 도통리 청자 가마터는 초기 가마의 변화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역사적학술적으로 청자 연구에 매우 가치가 높은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 과정을 거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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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승호
  • 2019.06.24 17:31

“죽고 사는 것은 나라 운명과 함께…” 동학농민군이 쓴 편지 2점 첫 공개

번거로운 인사말은 접어두고 동생 광팔 보시게. 나라가 환난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네. 형세가 아주 어려워서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는 고초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네. (중략) 바라건대 죽고 사는 것은 나라의 운명과 함께하는 것일세. 갑오년 늦가을날 형 광화 보냄.- 동학농민군 유광화 편지.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중략)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이날 나주 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 푼 없으니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하리오. 돈 300여 냥이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1894년 12월 28일 달문 상서. - 동학농민군 한달문 편지. 동학농민군이 1894년 가족에게 쓴 편지가 24일 개막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획특별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1894년 동학농민군 유광화가 고향에 있는 동생 유광팔에게 보낸 한문편지와 전남 나주지역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약한 한달문이 나주초토영으로 압송된 후 어머니에게 보낸 한글편지 등 2점이다. 후손 김순덕한우회 씨가 각각 기증한 이 편지들은 동학농민군이 직접 쓴 몇 안 되는 기록물로, 전투에 참여한 비장한 각오와 그간 겪었던 고초가 담겨있다.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한 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갔던 농민군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한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마련한 특별전 우리 곁의 동학농민군 이야기전은 24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진행된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6.23 16:35

“동학농민혁명군이 직접 쓴 편지 보러 오세요”

우리 할아버지는 동학농민군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할머니가 늘 들려주시던 아름답지만 슬픈 1894년 그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이형규)이 기획특별전 우리 곁의 동학농민군 이야기전을 연다. 24일부터 11월 17일까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이번 전시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3644명과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과 증언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선보이는 특별한 자리다. 전시는 1부 삶과 죽음, 2부 남겨진 편지, 3부 그날의 기억, 4부 다시 피어나는 희망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군 유광화와 한달문이 가족에게 쓴 편지도 처음으로 공개되며, 동학농민군 김우백 관련 경통, 동학농민군 김학두 궤, 동학농민군 황종모 창, 동학농민군 곽윤중 천인장 등 유족들이 기증한 유물들이 전시된다. 또한 남원과 임실지역에서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활약한 이후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순국한 동학농민군 김영원의 관련 유물들(후손 김창식 제공), 경북 예천지역 동학농민군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인 <갑오척사록>(충남대 도서관 제공) 등도 공개된다. 이형규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순간에 이름을 남기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야했던 많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돌아보고, 그 사건이 한 가족에게 어떠한 생채기를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24일 오후 3시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들에게 유족등록통지서를 전달하는 수여식과 유물기증자 감사패 전달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 문화재·학술
  • 이용수
  • 2019.06.23 16:32

부안 유천리 청자 요지서 ‘전체 형태 고려 청자가마’ 첫 확인

부안군 유천리 청자 요지에서 전체 형태의 고려 청자가마가 최초로 확인됐다. 가마가 확인된 곳은 부안 유천리 요지(사적 제69호) 6구역 가마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중인 곳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8년 있었던 시굴 조사에서 존재가 확인됐던 가마와 유물 퇴적구의 축조 방법과 운영 시기, 성격 등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이달 말 마무리 될 예정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고려 시대 최고급 상감청자 등 다양한 자기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조사된 유천리 6구역은 망여봉에서 뻗어내린 나지막한 구릉지대로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2기의 가마는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한 방향에 약 5m 간격으로 비교적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가마는 진흙과 석재를 이용해 만든 진흙 가마(토축요)로, 가마 바닥 면에는 원통형 갑발(匣鉢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그릇)과 도지미(도자기 구울 때 놓는 받침)가 불규칙하게 놓여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가마 2기 중 1호는 연소실과 소성실(초벌칸 포함), 배연부, 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전체적인 구조가 양호한 상태로 발견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조사된 고려 시대 청자가마에서 초벌 칸을 운용하던 사례는 강진 사당리 43호가 있으나, 초벌 칸과 연결된 유물 퇴적구에서 초벌 청자가 다량으로 조사된 점은 가마구조의 발전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한 고려청자 가마 구조상 배연시설과 초벌칸, 초벌칸과 연결된 초벌청자 유물퇴적구 등은 학술 가치가 높아 앞으로 사적지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이번 조사에서 전체형태의 청자가마가 최초 확인된 것이 주요 성과라며 이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향후 사적지 복원 및 정비사업 나아가 세계유산 추진에 큰 밑바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홍석현 기자천경석 기자

  • 문화재·학술
  • 전북일보
  • 2019.06.17 19:17

[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마한스러움의 완성, 옥(玉) 장신구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장신구를 사용했을까? 자신을 꾸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아래 현대 사람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장신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치장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이아몬드, 비취, 에메랄드, 금 등이 가장 값비싼 귀금속으로 인식되지만 1600년전 한반도의 마한 사람들은 금과 은보다도 옥을 가장 좋은 장신구 재료로 생각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에는 마한사람들은 금이나 은보다 옥을 귀히 여겨 몸을 꾸미는데 다양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한의 무덤에서는 옥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마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한 장신구였음을 의미한다. 마한계 무덤에서 발견되는 옥은 수정이나 마노, 벽옥, 천하석, 탄화목, 뼈, 흙 등 각종 천연재료와 인공적 재료인 유리로 제작된 것들로 나뉜다. 고고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칭하여 옥(玉)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태에 따라 곡옥(曲玉), 관옥(管玉), 조옥(棗玉), 다면옥(多面玉), 환옥(環玉丸玉)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옥 장신구는 마한의 이른 시기로 평가되는 초기철기시대부터 발견된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장식문화를 유지하면서 신소재로 제작된 옥 장신구가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소재가 바로 유리이다. 철기와 함께 당시 최첨단 기술의 결과물인 유리는 부여 합송리, 당진 소소리, 장수 남양리 등에서 대부분 관옥의 형태로 발견된다. 초기철기시대 옥 문화는 원삼국시대 마한사람들에 의해 꽃을 피운다. 이 시기 옥 장신구는 특정 형태나 색상에 국한되지 않고 각양각색,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양상으로 발견되면서 옥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북지역 최대의 마한 분구묘 유적인 완주 상운리 유적에서는 6000여점에 이르는 옥 장신구가 수습되었다. 마한사회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와 형태의 옥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양은 조금 투박하지만 그 영롱한 빛깔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문화재·학술
  • 기고
  • 2019.06.17 17:36

철기시대부터 고려 초까지…‘완주 역사와 문화’ 한눈에

내가 알고 있던 완주와 새롭게 알게 된 완주, 그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완주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유물과 미술, 사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완주군(군수 박성일)과 공동으로 오로지 오롯한 고을, 완주 특별전을 18일부터 오는 9월 1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전북지역 14개 시군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온 전북의 역사문물전의 13번째 순서로 마련됐으며, 완주지역 최초의 역사 유물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완주지역만의 특색 있는 역사 정체성을 모색하고 그 안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완주의 초기 철기시대부터 고려초까지의 문화재를 △완주 사람들, 한반도 하이테크놀로지의 중심이 되다 △전북지역 마한의 자존심, 완주 사람들 △후백제 사람들, 삼한통일의 꿈을 꾸다 등 3부에 걸쳐 소개한다. 김왕국 학예연구사는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청동거울과 상림리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 상운리 유적에서 발견된 옥 장신구를 특히 잘 살펴보시길 권한다면서 한반도 남부지역 초기철기시대의 중심지였던 완주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백제의 사찰로 추청되는 완주 봉림사터에 서려 있는 후백제인들의 염원과 기원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미술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완주에서 활동하는 권성수, 노정희, 이우엽, 임세진 작가는 언젠가 한자리에 모일 봉림사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전시 끝자락에는 현대미술작품을 비롯해 완주 8경의 풍경과 만경강 사진 공모전 수상 작품을 내걸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완주지역의 역사문화를 한눈에 보게 했다. 천진기 관장은 전시장 안에는 고대 유물들 가운데 현대 유물 1점이 포함돼 있다면서 먼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과거와 현실을 끊임없이 연결하면서 우리 지역 역사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귀띔했다. 박성일 완주군수도 이번 전시는 완주군만의 특색 있는 역사가 정립되는 출발점이라면서 앞으로도 완주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와 관련한 연계행사도 다채롭게 마련, 전시의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일 강연회(1차), 최완규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마한의 태동과 성장, 그리고 완주 △21일 학술세미나, 국립전주박물관완주군한국청동기학회 공동주최 만경강유역의 고고학적 성과 △22일 완주문화재단지역 공예작가 참여 완주 크리에이터페어 △27일 강연회(2차), 국립광주박물관 진정환 학예연구관 국가 비보의 상징, 완주의 불교미술 △7월 6일 뮤지컬 공연, 삼례, 다시 봄. 김재호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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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9.06.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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