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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라북도전통문화예술품협회가 도민과 함께하는 제4회 문화유물 전시회를 열고 있다. 15일 낮 12시까지 전라북도청사 1층 기획전시관. 이번 전시는 전북전통문화예술품협회 회원 70여 명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 5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로, 옛것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소장품들은 고미술 전문가들이 감정해 진품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2층장3층농, 전주한지로 만든 지승키, 호랑이 그림에 다방에서 사용하던 공중전화기까지 다양하다. 차만근 전북전통문화예술품협회장은 우리 전통문화 예술품을 보존하고 사랑하고자 전시회를 열게 됐다며 소장품을 맡겨준 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전북전통문화예술품협회는 고미술품을 아끼는 동호인 모임으로 지난 2014년 애호가 협회를 결성해 첫발을 내디뎠으며, 2017년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옛것과 새것의 조화, 우리 전통문화예술품에 대한 이해와 전문지식을 높이기 위한 박람회교류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옛 사람들의 삶과 예술, 세월의 향기가 배여 있는 유물들. 전북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박물관의 소장 유물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선대에게 물려받았고 후대에게 전해줄 소중한 문화자산, 아끼고 지켜 나아갈 다양한 유물과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차례,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유물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 1990년 10월 문을 열었고, 현재 소장품은 7만여 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채용신이 그린 전북 인물의 초상화 채용신 초상화. 19세기 말~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한층 더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또한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주인공의 요청에 의해 금전적 대가를 받고 제작되는 시대가 됐다. 그런 변화의 움직임 한가운데에 바로 석지(石芝) 채용신이 있다. 그의 손끝에서 높은 관직을 역임한 인물 뿐 아니라,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 인물도 주인공이 됐다. 채용신은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나 칠곡군수 등 관직에 종사했으며, 1905년 전주로 내려와 익산, 남원 등지를 다니면서 우국지사와 문인들의 초상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1941년 세상을 떠난 후, 1943년에는 서울의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유작전이 열리기도 했다. 그는 고종高宗 등 왕실의 인물에서부터 문인, 부부, 여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 초상을 그렸다. 권기수(權沂洙) 초상은 채용신이 그린 전북 인물의 초상을 대표한다. 흑립(黑笠)을 쓰고 두루마기에 은은한 옥색 전복(戰服)을 걸친 모습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전신상이다. 왼쪽 발을 드러낸 채 앉아 있으며, 소매 밖으로 나온 양손에 부채와 안경을 들고 있다. 화면에 적힌 글을 통해, 권기수의 63세 모습을 정산군수(定山郡守)였던 채용신이 1919년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권기수는 언제 태어났는지, 관직생활과 업적은 무엇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이제 당당하게 초상화의 주인공이 됐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제1원칙은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時他人)였다. 극세필의 붓질을 무수히 반복해 입체감과 표면 질감을 살린 권기수의 얼굴 묘사를 통해 마치 사진 속 인물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이러한 채용신의 극세필 화법은 그의 호 석지를 따서 채석지 화법이라 불릴 정도였다. 이렇게 채용신의 붓끝으로 당시 전북에 살았던 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이 지금까지 전해져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민길홍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국립무형유산원은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를 선정하기 위한 2019년도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심사를 오는 4월부터 12월까지 시행한다. 유산원은 지난해 11월 22일부터 12월 21일까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와 보유단체를 상대로 수요조사를 한 뒤 무형문화재 전문가가 참여한 이수심사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쳐 심사 대상을 확정했다. 이수자 심사 종목은 제1호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 제4호 갓일, 제5호 판소리 중 고법(鼓法), 제10호 나전장 등 총 43건의 심사대상을 확정했다. 이수자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와 전수 교육학교로부터 해당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수 교육을 수료하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기량심사를 거쳐 전수 교육 이수증을 발급받은 사람을 말한다. 실력을 인정받은 차세대 무형문화재 전승자로 평가받는다.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가 되면 국가가 지원하는 각종 전승 활동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문화예술교육사 2급 자격증 취득 자격도 주어진다. 또한 전국의 학교와 각종 문화기반시설에서 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이수심사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로부터 전수 교육을 3년 이상 받은 전수자가 응시할 수 있으며, 평가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5명이 평가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국립무형유산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공정하고 엄격한 이수심사를 통해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들이 한층 더 높은 기량을 갖춰 다양한 전승 활동에 참여하고, 무형문화재 저변 확대와 활성화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종목별 심사 대상자, 일시장소, 평가범위와 방법 등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을 참고하거나 전화(063-280-1451/1453)로 문의하면 된다.
당군(唐軍)이 출발했습니다. 장안성에서 나는 듯이 달려온 첩자가 병관좌평 성충한테 보고 했을 때는 5월 말이다. 저녁 술시(8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성충은 저택에서 첩자를 맞고 있다. 신구도행군도총관 소정방이 주장(主將)이 되어서 13만 군사가 출정을 했습니다. 첩자는 장안성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상인 안청이다. 그러니 당 왕궁이나 관부에 뇌물을 먹인 정보원이 많다. 안청이 말을 이었다. 백제에 닿으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으며 신라와 좌우에서 협공을 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수고했다. 성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장안성에서 온 첩자가 다녀갔다. 대감, 이번 전쟁은 예사로 볼 것이 아닙니다. 50대 중반의 안청이 정색하고 성충을 보았다. 고구려의 지원을 받지 않으십니까? 대왕께선 우리 힘으로 능히 당군을 격파하고 김유신군을 몰사시킬 수 있다고 하셨다. 다행입니다. 이번 싸움으로 신라가 멸망할 것이다. 성충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다음날 오전, 도성의 청에서 성충의 보고를 받은 의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에 전령을 보내라. 예, 대왕. 백제방의 풍왕자께 보냅니까? 아니, 계백이 더 가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스카의 백제방은 내해(內海)를 따라 돌아가야 하지만 계백의 영지는 동해(東海)만 건너면 되니까요. 성충이 말을 잇는다. 오가는데 20일이면 됩니다. 계백에게 정예군을 추려서 오도록 해라. 군사를 얼마나 모으라고 할까요? 기마군 5천. 의자가 생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말했다. 말까지 싣고 오려면 보군 1만 5천이 움직이는 것이나 같을 것이야. 그렇습니다. 대왕. 계백의 기마군 5천으로 김유신군을 맞게 할것이다. 김유신은 신라군 5만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동방(東方)의 군사 3만을 계백의 후위군으로 주면 충분하다. 백제는 동, 서, 남, 북 중 5개의 방(方)으로 구분되었고 각 방(方)은 방령이 통치하는데 각각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백제는 5방 37군, 200성의 행정조직에 76만호를 거느리고 있었으니 고구려의 5부 176성에 69만 7천호보다 더 강성한 국가다. 22개 담로까지 합하면 600만이 넘는 인구인 것이다. 당시 대륙을 통일했던 수(隨)의 인구가 890만호에 4천 6백만이었으니 백제는 동방의 강국이다. 더구나 왜까지 합하면 수(隨)를 이은 당(唐)도 단독으로 대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의자가 청안에 도열한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이때를 기다렸다. 모두 숙연해졌고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는 같은 땅에서 같은 말을 써왔지만 서로 반목했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시조에서 분류된 왕국이나 신라는 다르다.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백제는 고구려 유민으로 건국되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백제의 시조인 것이다.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는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해 왔을 때 그와 재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다.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다. 그러나 주몽의 첫아들인 유리가 나타나 태자로 책봉되자 비류와 온조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 것이다. 비류와 온조는 각각 분가했지만 곧 온조계 백제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대를 이어왔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백제가 대를 이어온 지 어언 6백 60년, 대백제의 뿌리는 천년만년 이어질 것이다. 단하에 서 있던 성충의 시선이 옆쪽의 흥수, 의직에게로 옮겨졌다. 지금까지 고구려는 대륙 세력의 침입을 여러 번 겪었지만 백제는 이번 당(唐)의 침입을 처음 겪는다.
고창 갯벌을 포함한 한국의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등재 재추진에 시동이 걸렸다. 문화재청은 한국의 갯벌을 201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또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7개 가야고분군 전부를 아우르는 가야고분군을 신규 잠정목록으로 신청했다.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대표적인 갯벌인 고창, 충남 서천, 전남 신안, 보성-순천 갯벌 등 4곳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한국의 갯벌은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생물종 다양성이 나타나며, 멸종위기종인 넓적부리도요 등의 주요 서식처라는 점, 지형적기후적 영향으로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펄 퇴적층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2018년 신청 지역을 모두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국내법적으로 일관된 보호 관리 체계를 갖춘 점도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근거가 됐다. 한국의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 형식 검토를 거친 후, 올해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IUCN(세계자연보존연맹)의 심사를 거쳐, 2020년 7월경 개최되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등재가 확정되면, 한국의 갯벌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등재되는 세계자연유산이 된다. 특히 고창군은 대한민국 유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고창지석묘), 세계자연유산(고창갯벌),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고창농악, 고창판소리)을 모두 보유한 진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로 인정받게 되며, 국내 유일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모두 보유한 도시가 된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문화재청, 해당 지자체, 지역주민 등과 함께 현지실사 등 심사 과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창갯벌의 체계적 관리와 함께 유네스코 브랜드로 개발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성규이용수 기자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해 천진기 관장 부임 이후 변화를 예고했다. 재미있고, 맛있는 박물관을 표방하며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지난해 맛봤던 박물관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 편안한 휴식 공간, 복합 문화공간으로서 대중화에 앞장서고, 전북 지역의 대표 박물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나가겠다는 포부. 전북과 전주의 문화적 격에 맞도록 100만 명이 관람하는 박물관으로서의 한 걸음을 시작했다. △조선 선비문화 특성화 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은 올해 특성화 사업으로 조선 선비문화를 추진한다. 조선 선비문화실을 새로 만들고, 관련한 특별전을 준비했다. 전국 단위의 선비문화를 비교감상하는 조선 선비문화 특성화 공간을 구축하고, 관련 전시와 지역 특별전을 마련한다. 3월 말 시작하는 선비, 글을 넘어 마음을 전하다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족사랑과 우정을 담은 편지를 살펴보는 시간도 갖는다. 9월에는 근대 전북화단을 이끈 화가들이란 주제로 근대 전북 선비 화가를 대표하는 석정 이정직의 학문 세계와 예술을 중심으로 전북화단의 대표 화가들을 조명한다. 어린이 박물관 개편을 통해 어린이와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박물관 공간으로 랜드마크화 할 계획도 세웠다. 실물과 문화재 체험의 유기적 조합을 통해 조선 선비의 정신과 생활상을 직접 경험하도록 돕는다. △재미있는 맛있는 만만한 박물관 전시나 학술 세미나 등은 박물관 본연의 기능에 더해 관람객들이 재미를 갖고 찾을 수 있는 노력을 더 할 예정이다. 푸드트럭 운영과 해먹 설치, 여름방학 기간 물총 싸움 등 지루할 수 있는 박물관의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선보인다. 박물관 인근 음식점과 협력해 할인 시스템도 구축하는 등 대규모의 하드웨어적 변화보다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변화부터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박물관을 관람객에게 오픈하는 소통의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박물관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이수를 통해 관람객에게 박물관 내 비어있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박물관에서 벌이는 생일파티나 동창회, 동호회 모임 등 색다른 모습도 지켜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역민과 소통하는 박물관 지역민과 소통하는 박물관으로서 관람객 편의시설을 위한 환경 개선에 들어간다. 장애인 점자블록 정비와 정문에서 어린이 박물관까지의 그늘 터널 조성, 어르신 관람객을 위한 경사로 확충 공사도 진행한다. 세시풍속 체험을 통한 전통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소장품의 체계적인 관리뿐 아니라 관람객 중심의 고객서비스 체제를 강화해 박물관 관람 환경도 개선할 예정이다.
한국 전통 음식문화인 장(醬) 담그기가 김치 담그기에 이어 국가무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콩을 사용해 만드는 음식인 장 자체의 효능을 넘어, 재료를 직접 준비해 장을 만들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포괄하는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했다고 9일 밝혔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오랫동안 장을 담가 먹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점, △우리나라 음식 조리법이나 식문화 등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 △한국의 주거문화, 세시풍속, 기복신앙 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 △세대 간에 전승되며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우리나라는 콩을 발효해 먹는 두장(豆醬) 문화권에 속하며, 삼국시대부터 장을 만들어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장을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를 두었고,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장을 담그고 관리할 정도로 중시했다. 다만 문화재청은 장 담그기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보유자와 보유단체가 인정되지 않은 국가무형문화재로는 아리랑(제129호), 제다(제130호), 씨름(제131호), 해녀(제132호), 김치 담그기(제133호), 제염(제134호), 온돌문화(제135호) 등이 있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지역을 관할한 수부(首府)였던 전라감영 복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6일 전주시에 따르면 현재 전라감영(부지 1만6117㎡) 재창조 복원공사가 50%의 공정률을 기록했다. 현재 중심건물인 선화당과 관풍각은 마무리 작업 중으로 건물 윤곽이 대략적으로 모양을 잡았다. 내아, 연신당, 내아 행랑은 목재 조립이 끝난 상태다. 또 내삼문과 외행랑은 올 상반기 기초공사를 앞두고 설계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시는 올 상반기 중으로 공사 현장을 둘러싼 가설 울타리를 철거해 시민들에게 새롭게 탄생한 전라감영을 일부 선보일 계획이다. 일부 건물의 기초공사, 목재 조립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오는 11월 중 준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 최고의 지방통치 행정기구다. 지난 2017년 11월 전주시는 전라감영 복원공사의 첫 삽을 떴다. 시는 총 84억 원을 들여 선화당과 내아, 내아 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핵심건물 7동을 복원할 계획이다. 시는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 등을 통해 복원될 건물의 구체적인 방향과 콘텐츠를 정하고, 향후 창의적인 콘텐츠로 살아 움직이는 전라감영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복원될 전라감영은 새로운 전라도 1000년의 기준점이자 전북과 전남, 제주지역의 화합을 상징하는 핵심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한제국 초기부터 근대산업화시기까지 시기별로 군산항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문화시설 재생이 본격화된다. 전북도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군산내항역사문화공간 재생사업을 시작한다고 3일 밝혔다. 군산내항문화공간은 지난해 9월에 문화재청에서 공모한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도에 따르면 군산내항역사문화공간(장미동 15만476㎡)은 1899년 개항 초기부터 근대산업화시기까지 군산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설들이 남아있어 보존활용가치가 높다. 주변에는 대한제국 개항기에 건립한 구 군산세관 본관, 일제강점기 경제상업적 수탈을 위해 만든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과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산업화시기인 1973년에 세운 군산 구 제일 사료주식회사 공장 등이 있다. 우선 도는 해당 시설에 대한 기초 학술조사연구와 건출물 기록화사업을 추진한다. 군산내항역사문화공간을 규명하기 위해 근대역사문화자원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군산 구 제일사료 주식회사 공장 등에는 원형복원 설계와 정밀실측을 추진한다. 개별문화재에 안내판도 설치할 계획이다. 문화재 보존 관리 및 활용에 대한 종합정비계획도 수립해 세부 사업내용과 구체적 지원규모를 확정할 예정이다. 정비계획이 완비되면 문화재청의 최종 승인을 받은 뒤, 연도별 투자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50억 원이 투입된다. 통상적으로 문화재청은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을 통해 사업별로 매년 20억원~50억원 가량 국비를 지원한다. 도는 이 사업을 통해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군산내항역사문화공간을 근대역사문화체험공간과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면 전통문화 관광산업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추후에도 도는 근대문화유산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중 분포하고 있는 곳을 추가로 발굴해 대규모 공모사업에 응모할 계획이다. 윤동욱 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앞으로 군산의 근대문화유산과 새만금, 고군산군도 등 지역 문화관광 인프라를 연계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도내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프로그램을 적극 발굴해 도민이 소중한 문화재를 느끼고 향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와사키가 보낸 전령이 돌아왔을 때는 닷새 후였다. 전령은 토요야마 성에서 하루를 묵고 돌아온 것이다. 미나미 님의 밀서를 가져왔습니다. 전령이 밀서를 바치면서 말을 이었다. 닷새후에 오오다 숲에서 영주가 사냥을 나간다고 합니다. 사냥 일정이 적혀 있습니다. 밀서를 받아든 가와사키가 보더니 계백에게 두손으로 내밀었다. 미나미가 달솔께 보내는 밀서입니다. 계백이 밀서를 펴고 읽는다. 신(臣) 미나미가 계백 영주께 글월을 올립니다.영주께서 동방(東方) 시찰을 나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우에스기 영지의 가신들은 신(神)이 영지의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환호하고 있습니다. 부디 가와사키의 진언을 받아들이시어 백성들을 구해 주시옵소서. 신(臣) 미나미는 동지들을 모아 적극 영주께 호응하겠나이다. 신(臣) 미나미 올림. 밀서를 읽고난 계백이 노무라에게 건네 주면서 가와사키에게 말했다. 이곳은 외상(外像)이 드러나지 않고 내부가 썩어 가는구나. 곧 피해가 백성에게 덮칠 것입니다. 우에스기는 2만 가까운 병력을 보유하고 있어, 정면으로 부딪치면 피해가 크다. 계백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군사도 백성 아닌가? 피해를 줄여야 한다. 그때 밀서를 다 읽은 노무라가 계백에게 말했다. 우에스기가 닷새후에 사냥을 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밀서에는 써있지 않았지만 그때가 호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옆쪽에 앉은 슈토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 시간에 왜국의 섭정 소가 이루카가 밀사를 맞고 있다. 밀사는 멀리 동부(東部)의 대영주 우에스기가 보낸 중신 노부사다이다. 노부사다가 직접 이곳에 온 것이다. 음, 노부사다. 네가 직접 오다니, 무슨 일이냐? 이루카가 안면이 많은 노부사다를 반겼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너를 보니 반갑다. 이루카는 아비 에미시 덕분이기는 하나 일국(一國)을 다스리는 섭정이다. 우에스기의 중신(重臣) 노부사다가 먼길을 달려온 것에 내심 짐작하는 바가 있다. 이루카의 시선을 받은 노부사다가 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대감께서 저를 이토록 반기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거기 네가 사는 곳에는 황새가 많지? 예. 왜 물으십니까? 황새는 먹이를 먹기전에 꽥꽥 우는 바람에 잡았던 먹이가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 말씀을 왜 하십니까? 네 놈이 쓸데없는 사설을 늘어놓는 바람에 내 흥이 깨진거다. 황공합니다. 대감. 계백이 네 영지에 있지? 지금 나흘째 기치성에 묵고 있습니다. 거기서 우에스기 영지가 먹을만 한가 하고 이곳 저곳을 옅보고 있겠군. 대감 우리 주군은 여색이 좀 과하지만 대감께 대한 충성은 그 누구도 따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좀 과할 정도가 아니지. 여색이 말이다. 보통은 넘을 정도입니다. 네 녹봉이 얼마냐? 1만석입니다. 대감. 그만하면 소영주(小領主)군. 제가 녹봉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너하고 우에스기는 공생공사(共生共死)할 수 밖에 없지. 자, 용건을 말해라. 우리 영지에 산적 무리가 많습니다. 으음. 노부사다가 목을 움추리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내실의 청이어서 주위에는 이루카의 측신 서너명만 둘어앉아 있을 뿐이다. 노부사다가 말을 이었다. 산적의 규모가 커서 가끔 대상단을 습격합니다. 이번에 저희 영지에서 무슨 일이 발생해도 섭정께선 아량을 베풀어 주옵소서.
올해 문화재학술 분야에서는 오랜 시간을 지나 빛을 보거나 결실을 맺은 의미있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20년간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공개됐고, 조선시대 호남을 관할했던 전라감영 복원사업이 착착 진행되며 120여년만에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또한 14년 동안 진통을 겪어온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이 황토현 전승일로 선정됐다. 특히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을 통해 전북 동부권에서 봉수와 제철유적 등도 무더기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문화유산 학술조사연구, 유물조사발굴 등을 담당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전북에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전북가야 연구복원사업 본격화 전북가야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 결과 전북 동부권에서 봉수 90여 개와 제철유적 250여 개가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월 국가사적 제542호로 지정된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군은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되는 등 성과가 있었고, 장수가야 고분군 발굴조사 등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더불어 전북도가 가야사 복원 전담조직을 만들어 가야유적을 관광자원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익산 미륵사지석탑 보수 마무리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에 걸친 수리를 마치고 지난 6월 모습을 드러냈다.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하기로 결정된 이후 사업비 230억 원을 들여 6층까지 보수했다. 국내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체계적인 보수를 진행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는 발굴 10년 만에 보물로 지정됐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은 지난해 8월, 100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4월 대왕릉 내부에서 발견된 나무상자의 인골을 분석한 결과, 인골 주인은 50~70대 노년층 남성, 보정연대는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됐다. 또한 대왕릉에서 길이 21m에 이르는 무덤길도 확인됐다. △전라감영 복원사업 순항 전라감영 복원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전라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과 관풍각의 기둥이 세워지고 대들보가 올라가 목재 조립이 끝났다. 전주시는 2019년 9월까지 전주 중앙동에 선화당과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전라감영 핵심건물 7동을 복원할 계획. 복원될 전라감영은 전주 구도심 100만평 아시아 문화심장터 핵심공간이자 전주시민, 전북도민의 자긍심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선정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이 황토현 전승일로 선정됐다. 지난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14년 만이다. 이번 기념일 결정으로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을 전국화세계화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동학농민혁명 자유평등개혁 정신을 국내외에 확산하고 관련 자치단체단체의 하나된 행동이 과제로 제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북 설립 목소리 커 백제와 가야유적 등 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을 보유한 전북에도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특히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전북에만 없는 것으로 나타나 전북 소외론도 고개를 들었다. 전북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넓게 분포돼 있지만 문화재 보수정비에만 치중돼 있고, 문화유산 개발 등 예산배분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것. 여기에 전북에서 출토 유물들이 타지역 문화재연구소에 보관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전주시, 익산시, 남원시, 완주군 등이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치에 각각 팔을 걷어 붙였다. 하지만 자치단체간 자칫 과열경쟁이 우려돼 전북도가 이를 중재하고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었다. △세계 한국학 전주 비엔날레 확산에 방점 지난 2016년에 이은 세계 한국한 전주 비엔날레가 지난 11월 전북대와 한옥마을 일원에서 열렸다. 한국학 발전을 도모하고 전주를 글로컬 한국학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22개국 100여 명의 한국학 전문학자와 신진학자가 모여 연구 동향을 공유했으며, 외국 전문학자들이 한국어로 주제발표를 해 한국학 확산에 의미를 더했다. 또한 전주 한옥마을 탐방과 금산사 템플스테이 등 전통문화 체험행사를 진행, 전주를 브랜드화하고 문화적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학술축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대왕릉에서 길이 21m에 이르는 묘도(무덤길)가 확인됐다.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지난 5월부터 백제시대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인 대왕릉 주변 시설에 대한 2차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릉급 무덤 가운데 가장 긴 묘도를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길이 21m가 넘는 묘도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로 파악됐다. 묘도 너비는 시작 부분이 6m 내외이고 무덤방인 석실 쪽은 4m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진다. 바닥 높이는 석실 입구가 80㎝ 정도 높게 형성됐다. 최완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은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있는 왕릉급 무덤 묘도가 46m 정도인 데 비해 대왕릉은 묘도가 매우 길다며 얼마나 장엄한 장례의식이 치러졌는지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또한,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대왕릉을 피장자가 생전에 미리 준비한 무덤인 수릉으로 볼 근거도 찾았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대왕릉은 석실을 먼저 만들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긴 묘도를 조성했다며 길이 21m인 묘도는 시신을 납입하기 위해 마련했고, 석실을 축조하기 위해 낸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묘도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석실을 만들 때 사용한 묘도는 길이가 훨씬 짧다며 석실을 완성한 뒤에는 일부러 폐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쌍릉은 180m 거리에 있는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되며, 오금산 줄기가 끝나는 남서쪽 능선에 위치한다. 대왕릉은 애틋한 사랑 이야기인 설화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으로 익산에 미륵사라는 거대한 사찰을 세운 무왕, 소왕릉은 무왕비인 선화공주가 각각 묻혔다고 알려졌다.
완주 동북부지역에서 지난 4월부터 진행된 가야유적 전수조사에서 봉수와 산성, 제철 유적이 대량 발견됐다. 완주군은 지난달 11일 마무리 된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의 완주가야문화지표 유적조사 결과, 봉수유적 8개를 비롯해 산성 9개, 제철 31개 등 모두 48개의 유적이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특히 완주의 가야 제철유적은 당초 4개소 정도로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결과, 운주면 고당리 제철유적 등 무려 31개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완주 동북부의 가야유적 발굴은 큰 의미를 갖는다. 봉수가 전북가야세력 반파가 자리 잡은 장수 장계 쪽으로 향하고 있고, 30개가 넘는 제철유적은 완주 제철 생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완주지역의 봉수유적 중 대표적인 것은 운주면 고당리 숯고개 서쪽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탄현봉수다. 이 봉수대는 봉우리 정상부에 두께가 얇은 판석형 할석만을 가지고 석축을 쌓았다. 석축은 그 평면상태가 원형에 가깝고 상단부는 하단부보다 약간 좁았다. 연구소측은 탄현봉수대 석축이 1500년 동안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석축의 내부를 돌로 채웠고, 장수 장계분지에 자리잡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전북가야세력인 반파가 백제와의 국경지역에 국력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완주 동북부에 집중된 탄현봉수, 불명산 봉수, 용복리 산성 봉수, 각시봉 봉수, 고성산성 봉수, 봉림산 봉수 등은 논산 일대에서 금남정맥의 싸리재와 작은싸리재를 넘어 진안고원으로 향하는 간선교통로 선상에 위치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완주지역에서는 전북가야와 관련된 유물이 적지않게 나왔다. 완주군 봉동읍 배미산성, 구억리산성에서 가야토기편이 출토됐는데, 이는 장수의 가야세력이 만경강 교역망을 구축, 철을 유통했음을 추정케 한다. 또 완주 상운리에서는 철을 제련해 물건을 만드는데 쓰이는 단야구(집게, 망치 등)와 판상철부가 함께 나왔는데, 가야세력이 동부지역에서 생산한 철을 상운리에서 가공했음을 보여준다. 완주 신포와 장포에서도 판상철부 등 철기류가 다량 출토돼 만경강 내륙수로를 이용한 철 유통이 활성화 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완주지역 세력이 철 제품을 가공생산, 유통시켰음을 추정케 한다. 군산대가야문화연구소 측은 최근 마무리된 탄현봉수 발굴조사 결과, 가야가 쌓은 원형 위에 백제가 석축을 다시 쌓은 것이 밝혀졌다. 완주의 가야문화유산을 역사교육의 장,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보존 등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무주 대차리 일원에서 신라와 가야계 석곽묘가 발견되고, 신라 유물이 다량 출토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전북지역 신라계 유물들은 대부분 6세기 중반의 유물로, 이 때문에 신라가 외부로 확장했던 시기가 6세기 중반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유물들은 시기상 6세기 전후로 기존 학설보다 50여 년 앞선다. 신라의 외부 진출 시기가 알려진 것보다 빠를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통해 신라의 외부 진출 시기와 가야-신라-백제 간 역학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무주군청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에서 조사 중인 무주 대차리 고분군에서 신라가야계 석곽묘와 함께 전북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최대 수량의 신라 토기가 확인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석곽묘(돌덧널무덤)는 모두 11기다. 도굴 등의 훼손 흔적이 남아있는 석곽묘는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았지만, 축조방법 및 구조 등은 파악할 수 있어 또 다른 관심을 끈다. 이 중 9기는 할석(割石깬돌)으로 벽체를 조성하고, 소석(小石잔돌)으로 시상대(무덤 안에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바닥에 마련한 대)를 깐 형태이며 이는 옥천 금구리와 상주 헌신동, 남원 봉대리 등에서 확인된 신라계 석곽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2기는 강돌(川石)로 벽체가 축조되고 바닥에 시상대가 없어 장수지역의 가야계 석곽묘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토 당시 석곽묘 안에서 대부장경호(굽달린목긴항아리), 단경호(목짧은항아리), 개(뚜껑), 고배(굽달린접시) 등 40점 이상의 신라 유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가야계 석곽묘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도굴 등으로 유물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에서 이처럼 신라 유물이 대규모로 발견된 것은 처음으로 이를 통해 신라의 외부 진출 시기와 가야-신라-백제 간의 역학관계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번 유물이 출토된 무주 대차리는 금강 유역으로 신라와 가야, 백제가 세력을 넓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요지이기 때문에 세 국가가 각축을 벌였던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야문화연구소 조명일 책임연구원은 석곽묘의 구조와 유물로 볼 때 무주 대차리 고분군은 6세기 초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시기 전북 내 신라의 진출 과정과 가야-신라, 백제까지 포함한 역학관계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효종 기자천경석 기자
전북가야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규명하기 시작한 지 1년. 전북가야의 역사는 어디까지 드러났을까?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사업이 포함되면서 시작됐다. 이와 관련 전북도는 지난해 11월 전북가야 선포식을 열고 전북 동부권 7개 시군의 가야 역사를 복원하기로 했다. 문헌이 부족한 만큼 집중적인 발굴조사를 통한 유적과 유물 고증이 우선시됐다. 지난 한 해 투자된 예산은 117억 원.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투입된 예산 5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그 결과 전북 동부권의 봉수는 90여 개, 제철유적은 250여 개가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봉수는 고총 못지않게 가야계 왕국의 존재를 반증해주는 고고학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제철유적은 전북가야 영역에서 최초로 존재를 드러낸 철제초두(다리가 셋 달린 작은 솥)를 중심으로 대부분 철기 유물이 발굴돼 그 다양성을 입증했다. 지난 5월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돼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등 기존 유적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를 공동 추진하게 됐다. 앞선 3월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이 국가사적 제542호로 지정된 것도 나름의 성과다. 그동안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가야 유적은 영남가야 유적 26개밖에 없었다. 국가사적 비율이 26대1로 현저히 낮은 만큼 장수 삼봉리동촌리 고분군, 침령산성 등 전북가야 유적 13개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북가야 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은 국가 예산 확보와도 연관된 문제다. 현행법상 국비는 국가사적에만 지원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북도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완주진안무주장수)과 공조해 가야문화권 특별법을 발의할 계획이라며 이 특별법에는 비지정 유적에 대한 연구복원 유적 지정과 국비 지원, 가야역사문화진흥기관 설립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북 동부지역에서 발견된 봉수 88개가 장수 가야세력의 실체를 증명해주는 단서라는 주장이 나왔다. 봉수 88개의 종착지가 장수장계분지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보통 봉수는 변방의 급박한 상황을 중앙으로 신속히 전달하는 통신시설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봉수를 운영하는 정치 중심지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봉수가 펼쳐진 길에 제철, 토기 등 가야시기의 유물이 존재하며, 일본서기등 문헌사료에 나온 봉수의 존재와 일치하는 양상도 보인다. 이 때문에 봉수는 장수에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가야세력이 운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3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전북가야선포식 1주년 학술대회에서 조명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동부지역에서 발견된 봉수 88개는 충남 금산, 진안군, 무주군, 임실군, 남원시, 완주군, 장수 장계분지까지 6개의 봉수로(길)로 연결돼있다며 종착지가 장수군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운영주체는 장수 가야세력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봉수의 주된 기능은 변방의 급보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봉수의 종착지는 항상 봉수를 운영하는 세력의 중앙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고 설명했다. 봉수로에 가야계 고분군과 제철유적, 토기가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장수가야에 존재에 힘을 실어준다. 조 연구원은 기존에 발견된 가야계분묘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속성이 비슷하다며 특히 봉수로에는 고대시기 유물만이 수습, 장수군에 존재했던 가야세력에 의해 축조운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원은 일본의 국사(國史)인 일본서기에 나온 가야계소국 반파(半波)도 장수가야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기했다. 현재 역사고고학계에서는 이 기록에 등장하는 반파를 고령의 대가야로 보고 있는 게 통설이다. 조 연구원은 백두대간 동쪽의 가야 영역권에서는 고대시기 봉수의 존재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반면 남원 운봉고원 등 전북 동부지역은 이 시기에 존재했던 봉수가 확인되며, 인근에 있는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에서도 최고급 위세품이 출토됐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이어 일본서기에 나온 데로 백제와 각축전을 벌인 반파가 전북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원은 전북 동부지역에서 발굴된 봉수가 국내 최초로 학술조사가 이루어진 고대시기 봉수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조 연구원은 최근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사 연구 및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북 최대 규모의 고미술 장터가 16일부터 전주에서 열린다. 25일까지 전주미술관에서 진행되는 2018 전라북도 고미술 아트페어. 전북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이번 대규모 고미술 아트페어에는 우아한 정취와 멋을 감상할 수 있는 한국화서예도예공예민속품 등 700여 점이 전시된다.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조선 초기 흑유양각상감운용문병, 조선시대 백자무릎형봉황문연적, 민화 금강산도 6곡 병풍 등 대표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생활 속 고미술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 또한 19일 오후 2시부터는 고미술품 무료감정 행사도 마련됐다. 무료감정은 KBS1 TV쇼 진품명품에 출연하는 고가구 전문 양의숙 위원, 근대사 전문 김영중 위원, 도자기 전문 김경수 위원, 그림 전문 정순열 위원이 참여하며, 당일 오전 10까지 접수하면 감정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이번 아트페어와 함께 16일 오후 2시 다도-운치를 마시다, 16일부터 12월 30일까지는 모란문 에코백과 파우치 만들기, 오방색 민화부채와 한지보석함 만들기, 자아愛 칭찬 찻잔세트 만들기 등 전시 연계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김완기 전주미술관장은 2018 전라북도 고미술 아트페어를 통해 전주가 전통문화 중심 도시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즐겁고 유익한 시민 문화향유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아트페어는 전주시가 주관하고, 전주미술관과 (사)한국고미술협회 전북지회가 공동 주최한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비단 짜는 기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이 한국과 중국의 무형유산, 비단 특별전을 오는 12월 30일까지 누리마루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중국실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이번 특별전은 한국과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인 비단 직조 기술과 관련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비단은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실로 만든 직물을 통칭하며, 실의 종류와 직조 방법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여러 비단 직조 기술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직으로 명주를 짜는 명주짜기가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됐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양잠과 비단 직조 공예와 난징(南京) 윈진(雲錦) 문직(紋織) 비단 직조 기술이 각각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 역사와 함께 한 양잠, △한국의 명주짜기, △한국의 전통 비단,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중국의 비단, △전통 공예 속의 비단, △비단과 우리 노래 등으로 구성됐다. 전시에서는 누에를 길러 실을 만들고 비단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도구와 함께 선보이고, 우리나라 여성이 입었던 치마저고리와 청나라 황제의 용포 등 비단으로 만들어진 복식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한 비단옷 입어보기 3차원 입체 체험, 누에 엽서 꾸미기, 물레 돌리기, 중국 베틀 짜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고려 불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장엄하고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범수 원광대학교 교수팀이 세계 최대최고(最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재현 작품을 국내 처음으로 공개전시한다. 14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 김 교수팀이 재현한 수월관음도 원본은 고려 충선왕2년 1310년에 제작됐고, 1359년 왜구에 의해 약탈당해 일본 경신사에 소장돼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수월관음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가장 화면(245.2cm429.5cm)이 크다. 김 교수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수월관음도의 제작기법이나 재료 채색기법 등을 추론, 복원전문가 5명이 2년 8개월에 걸쳐 재현작업을 했다며 당시 사상이나 백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주박물관에서 첫 공개되는 김범수교수팀의 재현작은 원본이 가진 옛 모습으로 복원하되 채색은 고색 복원해 재현됐으며, 원화의 크기와 복원에 초점을 두고 제작됐다. 재현 과정에는 5명의 복원 전문가, 김범수김재민김연수조상완정경아 씨가 참여했다. 김 교수는 회화 문화재 모사복원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해외로 반출된 많은 우리나라의 회화 문화재를 재현하고 있다. 이번 재현작은 원본에 충실한 조형과 미감, 재료와 기법 나아가 그 정신성까지 표현해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수월관음도 공개와 더불어 김 교수의 후학들은 24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문화재 재현의 방법과 모색전을 진행한다.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회화문화재보존수복학과 석박사 동문으로 구성된 문화재 보존수복회가 주최하는 전시에서는 재료기법과 정신사적 측면까지 고려해 재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주시가 일제강점기에 철거된 전주부성(全州府城) 성곽 흔적을 찾아내면서 복원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전주시는 전주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전주부성 동편부 성곽 추정지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통문화전당 북동편 주차장 부지에서 전주부성 성곽 기초부분 흔적을 찾았다고 6일 밝혔다. 전주부성 성곽 흔적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전주부성 복원과 함께 전주시의 아시아 문화심장터 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확인된 성곽은 기초부분 1단만 남겨진 상태로 폭은 5.2m, 길이는 34m다. 전주부성의 남동편인 경기전~조경묘 구간 조사에서는 성돌로 추정되는 대형 석재들이 확인됐다. 전주시는 시굴조사를 통해 고지도 및 문헌자료에 의존해 추정했던 전주부성 성곽의 구체적인 위치와 규모 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됐다. 전주시는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전주부성 잔존 양상을 확인하기 위한 정밀발굴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성곽의 구체적인 축조 방식 등을 확인해 향후 부성 복원사업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황권주 전주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그동안 문헌으로만 확인했던 전주부성의 기초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면서 확인된 성곽의 일부라도 정밀발굴조사로 전환해 복원 및 정비를 위한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부성은 1734년(영조 10년) 전라감사 조현명이 새로 지었다. 규모는 둘레 2618보, 높이 20자, 치성 11곳, 옹성 1곳으로 전해진다.
25년 문화자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 안정’으로 재도약 기틀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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