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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소재한 제동(製銅)유적을 호남 최초의 구리 생산유적으로 추정케 할 수 있는 근거들이 확인됐다. 진안군은 구리를 생산했던 제동로(製銅爐 : 구리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가마와 유사한 시설) 2기와 대규모 폐기장, 건물지 1기에 대한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은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며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됨에 따라 고려시대 이전부터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북도와 진안군,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 공동으로 실시됐다. 진안군 동향면 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헌 속 동향소(銅鄕所)라는 특수행정구역이 있던 곳. 그동안 제기돼 왔던 구리 생산유적의 존재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대량리 제동유적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대규모 슬래그 폐기장과 제동로 추정 유구가 확인됐다. 확인된 총 2기의 제동로는 모두 노벽(爐壁)과 배재구(排滓口) 등의 상부구조가 유실됐으며 노를 축조하기 위한 하부구조만 남아있다. 또 조사지역 서남쪽 조사경계 부분에서는 건물지 1기의 일부가 조사됐다. 구리 생산 집단의 생활공간 또는 제련을 통해 생산된 구리를 가공해 완성품을 제작하기 위한 공방지(工房址)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구리를 2차 가공해 완성품을 만든 흔적은 부여 관북리, 익산 왕궁리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나, 원석에서 구리를 1차적으로 생산한 유적은 경주 일부지역 외에는 거의 조사된 바 없다. 때문에 이번 진안 대량리 제동유적은 호남지역 구리 생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전북지역 초기철기시대 및 전북가야 유적 출토 청동유물 등의 원료산지와 유통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용민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28일까지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매년 쉬지 않고 건축 설계를 이어왔다. 논문을 쓰며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현상공모를 참여해 시공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작업한 근작 중 주택 2제와 건축 현상공모안 4점을 선보인다. 임 교수는 많은 성과는 아니지만, 한 작품당 최소 두 달 이상이 걸린다며 전시를 통해 오랜 시간 고민한 내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석구동 주택은 완공된 것이어서 건축의 물성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지역 건축 문화상도 수상해 의미가 깊다. 또 깊은 산속 경사지에 위치한 죽림리 주택은 지형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건축 현상공모안들은 건축가의 가치관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계획안이다. 임 교수는 세종시 박물관 단지 계획안은 30년 전 프랑스 유학 때 접했던 라빌레트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풍경이 돋보이는 원형 단지로 설계했다며 순천 예술광장 공모는 가장 현실적이였지만 결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욕심을 내다보니 지반 조건을 고려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조사한 사적 제69호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 柳川里 窯址)에서 고려시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建物址)가 발견됐다. 요업은 흙을 구워 도자기, 벽돌, 기와, 그릇 따위의 물건을 만드는 공업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고려시대 최고급 상감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자기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천리 요지 3구역에 대한 3차 발굴은 요업과 관련된 시설물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 오는 8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소규모 작업장, 최상급 자기(청자백자) 조각, 각종 도범(陶范도자기 거푸집) 조각과 요도구(窯道具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도구) 등이 확인됐다. 조사 지역인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완만한 구릉을 평탄하게 조성하고 동-서방향의 석축(石築)을 설치해 요장(窯場도자기 굽는 곳) 전체를 몇 개의 구획으로 분할하고 있다. 조사 지역 중앙에 자리한 석축은 길이가 동-서로 약 38m, 잔존 높이는 최대 42㎝로 약 4단 정도가 남아 있다. 석축의 안쪽으로 정면 5칸, 옆면 1칸의 대형 건물지를 지었다. 건물지와 석축 주변에는 도자기 제작을 위한 부속시설로 보이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들이 확인됐으며, 건물지의 서남쪽에 가까운 유구 내에서는 관(官)자명 기와가 출토됐다. 출토유물은 오목새김, 상감(象嵌), 상형(像型) 등의 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사발, 접시, 매병, 향로, 합(盒), 자판(瓷板), 의자(墩), 연적 등의 자기 유물, 도범 조각 유물, 기와 유물, 요도구 유물 등이다. 전북문화재연구소는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자기 가마, 건물지, 고급자기, 도범 조각, 관(官)신동(申棟)명이 새겨진 기와 등으로 미뤄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왕실에 공납하는 최상급 관용 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판단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사장 이학수, 노조위원장 하창원)는 대전시 대덕구 본사에서 19일 일터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친환경 생활문화 확산을 위한 ‘노사공동 에코생활 실천 서약식’을 가졌다. 이번 서약은 환경부가 지난 7월 1일 자로 시행한 ‘공공부문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 이행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내용은 직장 내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개인용 컵과 수돗물 직수 음수대 적극 활용, 종이컵과 병입수(페트병) 등의 사용 자제, 인쇄용지 등의 물품구매 시 재활용 제품(환경표지인증 제품 등)우선 구매 등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환경부 지침에 더해 ‘종이 없는 회의 문화 정착’과 ‘화장실 종이수건 대신 건조기 사용’ 등을 직원 의견 수렴을 거쳐 자체 실천사항으로 추가했다. 또한, 사내 전산망으로 전 임직원의 실천 서약서를 받고 전사적 실행력 확보를 위한 정기적인 점검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학수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일회용품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장에는 불편할 수 있으나, 미래세대를 위해 전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실천해 나가겠다.” 고 말했다.
익산 쌍릉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의 무덤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18일 지난 4월 쌍릉(대왕릉사적 제87호)에서 발견된 인골 조각 102개를 분석한 결과 인골 주인은 50~70대 노년층 남성, 키는 161㎝~170.1㎝, 보정연대는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결과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견된 인골 조각이 백제 무왕의 능인지를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양상),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분석됐다.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무왕의 모습은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되어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분석됐다.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돼, 인골 주인은 7세기 초중반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석실의 석재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목관은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으며, 이번에 발견된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만들었다. 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익산 쌍릉의 성격과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아울러 익산지역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을 통해 백제 왕도의 역사성 회복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북YWCA협의회와 전북여성단체연합이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각각 미투 이후 여성의 역할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북YWCA협의회는 지난 6일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미국 최초로 직장 내 성폭력 승소사건을 다룬 영화 <노스 컨츄리>를 관람하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전북여성단체연합은 같은 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전북여성인권영화제 개막작인 <더 헌팅 그라운드>를 관람한 뒤 전북지역 대학생들과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양성평등 가정 속 습관부터 고쳐야 미투(#Mee too) 이후 여성은 말하기 시작했고 여성에 대한 인식과 지위도 변할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여전히 남편이 시키면 부인이 물 떠다 주고, 딸에게만 집안일을 돕게 하는 가정이 상당합니다. 인식하더라도 습관인 거예요. 나부터 참여하고, 생활 속 습관부터 고쳐야 여성 인권이 회복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대표성을 쟁취해야 하는 것, 극적인 하나의 계기로 주변의 인식이 변하는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무뎌진 인식, 펜스 룰, 펜스 룰 피해로 미투를 비난하는 일부 여성이 걸림돌로 작용해 여성을 비롯한 모두의 인식변화조직문화의 혁신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행사에 참여한 40대 남성은 여성단체에서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하면 남성들이 내빈 자리에서 생색내고 행사를 마련한 여성들은 들러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한 명이라도 더 여성을 제도권에 들여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간 네트워크 형성 필요 다 같이 멸망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을까요?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정희진 씨는 미국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헌팅 그라운드>에 대한 속상한 공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다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미국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확연한 깨달음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날 GV는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김란이 활동가와 전북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정희진 씨, 전주대 서이경 씨 등이 참석해 얘기를 나눴다. 전북대와 전주대는 미투 운동이 불거진 대학이다. 두 학생은 대학 내 인권센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폐쇄적인 대학 특성과 인권센터에 대한 낮은 신뢰성 등이 결부돼 제대로 된 성폭력 보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 특히 학기 초인 3~5월에 성폭력 신고 건수가 집중되지만 이를 전후해 성폭력 예방 활동이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대학 간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인과 지인 간 연락망이 아닌, 대학과 대학 간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장기적인 대학 내 성차별주의 반대 운동이 전개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보현
전라북도 문화재인 대곡사명 감로왕도(大谷寺銘 甘露王圖)와 익산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보물로 지정됐다. 2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대곡사명 감로왕도가 보물 제1990호로,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의 사리공(舍利孔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1점,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1점,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1점,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靑銅合) 6점 등 모두 9점이 보물 제1991호로 지정했다. 지정된 보물은 지난 3월과 4월, 지정예고를 거쳐 최종 보물로 지정되는 데까지 2개월여가 소요됐다.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1764년 불화승(佛畵僧) 치상(雉翔)을 비롯해 모두 13명의 화승이 참여해 그린 것이다. 상단에 칠여래(七如來)를 비롯한 불보살이, 중하단에는 의식장면과 아귀와 영혼들, 생활 장면 등이 짜임새 있는 구도 속에 그려져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색조가 조화를 이루어 종교화로서 숭고하고 장엄한 화격(畵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사리내호는 모두 동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기형(器形)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금제사리봉영기는 얇은 금판으로 만들어 앞뒷면에 각각 11줄 총 193자가 새겨져 있다. 이 봉영기는 그동안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계기가 된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청동합은 구리와 주석 성분의 합금으로 크기가 각기 다른 6점으로 구성돼 있다. 청동합은 명문을 바탕으로 시주자의 신분이 백제 상류층이었고 그가 시주한 공양품의 품목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와 함께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되는 등 희귀성이 높다. 이처럼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고 있다. 한편 대곡사명 감로왕도와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가 보물로 지정되면서 전북도는 98점의 보물을 보유하게 됐다. <김진만강정원 기자>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이름을 가진 천양정(穿楊亭)은 전주 다가천 서쪽 기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활터다. 조선 숙종 38년(1712)에 다가산 아래 바람을 피하는 길지를 골라 세워진 것으로, 그 역사가 올해 306년에 이른다.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6호이기도 하다. 재단법인 천양정(대표 김종오)이 27일 천양정 활터 창건일을 기념하는 행사 대사회(大射會)를 천양정에서 열었다. 이날 김종오 대표가 초헌관을 맡아 제례를 올렸고, 이어서 천양정 소속 회원들의 활쏘기를 겨루는 수련대회가 진행됐다. 김춘근 (재)천양정 사무국장은 선배들의 정신을 잇고 후배들의 숭무정신을 열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며 행사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고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천양인들의 숭무정신이 드날렸다고 말했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관장 이병호)이 백제문화유산 주간을 맞아 7월 6일부터 7월 15일까지 미륵사지와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명사와 함께하는 세계유산 백제 특별강좌와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백제문화유산 주간은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8개소)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 기간 백제 문화유산이 갖는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을 국민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 행사들을 진행한다. 특별강좌는 △7월 10일 세계유산 백제의 도성(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7월 12일 세계유산 백제의 분묘(최완규,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7월 13일 사리봉영기와 금강경판의 제작(김정호, 의암서법예술연구소) △7월 14일 세계유산 백제의 사원(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순으로 열린다. 시민 누구나 사전 신청 없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나만의 수막새 배지 만들기, 큐레이터와의 대화, 전통민속놀이마당 등 어린이를 위한 체험도 준비돼 있다.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은 이번 강좌에서 세계유산 백제유적의 국제적인 면모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영기와 왕궁리 오층석탑 금강경판 제작과정 등을 자세히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개관 16주년을 맞아 기념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연다. 조선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는 역사 안에서 도시 전주가 가진 의의를 찾는 행사다. 오는 8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특별전에서는 전주와 남원이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유학자의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 학문에 들어가는 문이자 벼슬에 들어가는 길이었던 과거시험. 개인의 능력을 시험해 관리를 뽑는 과거시험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선사회의 근간이 되는 제도였다. 전시 유물은 총 50점이다. 과거제 도입과 시험 절차, 시험답안지인 시권, 합격증인 홍패와 백패, 전주출신 급제자 등 다각도로 설명한다. 중국 수나라 때 시작된 과거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광종 때이다. 고려시대 홍패(과거제 문무과 합격증)는 몇 점 남아 있지 않아 귀한 유물인데 이번에 2점 전시된다. 보물 725호 남원양씨 양수생의 홍패와 전주최씨 최광지의 홍패이다. 최광지 홍패는 명나라 초대 황제 홍무제가 내려준 고려국왕지인어보가 찍혀 있는 유일한 현존 문서다. 시권(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은 과거제도 유물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합격하면 시권을 돌려줬고, 가보로 보존되곤 했다. 개인 정보를 적지 않는 오늘날과 달리 응시자의 이름과 직역(직업), 나이, 본관과 거주지, 부조증조외조 등 4조를 기록해 지역별 특성도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북 지역과 관련된 특별한 시권을 찾아냈다. 1798년 광주에 설치된 외방별시에 1등으로 합격한 고정봉의 시권이다.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전주에서 유년기에 병법을 익혔다는 장군수(將軍樹)가 시험 주제어로 제시됐는데, 고정봉은 조선을 건국할 조짐이 실현됐다고 답해 1등을 차지했다. 또 조선시대 총 1만 4620명의 문과(대과) 급제자를 분석해보면 전주이씨가 847명으로, 다른 성관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출신의 급제자는 총 105명으로, 전라도에서 남원나주광주와 함께 가장 많은 문과자를 배출했다. 오는 28일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제20회 전주학 학술대회가 열린다. 주제는 근대 전주의 민족운동과 사회상. 김주용 원광대 교수의 일제강점기 전주지역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박학래 군산대 교수의 근대 전주지역의 유학자와 유학사상, 서종태 전주대 교수의 근대 전주지역의 천주교와 개신교 등이 발표된다.
▲ 최온순 침선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최온순 침선장의 전통 복식을 마주하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전북대 박물관이 최온순 침선장과 상장의례 복식을 주제로 박물관 내 여천 최온순 전통복식실에서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 특별전은 상설 전시 형태로 진행한다. 최온순 침선장은 상장례(喪葬禮) 때 만들어진 굴건제복을 각고의 노력으로 복원했다. 그 공로가 인정돼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의 노력 덕분에 전라도 굴건제복의 시대성과 지역성, 문화성이 오롯이 전승됐다는 평가다. 최 침선장은 전통복식의 역사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5년과 2016년 전통복식 등 543점을 전북대에 기증했다. 전북대 박물관은 2017년 여천 최온순 전통복식실을 개관해 그의 다양한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최 침선장이 복원한 굴건제복과 수의 등 45점을 소개한다. 굴건제복은 머리에 쓰는 굴건과 몸에 걸치는 제복을 합친 말. 상주가 입고 쓰는 삼베로 제작한 옷을 뜻한다. 전북대 이남호 총장은 평소 볼 수 없는 상장의례 복식을 통해 최온순 침선장의 올곧은 침선 인생을 만나보고,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예로부터 국왕은 하늘땅인간으로 상징되는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왕의 글씨인 어필, 왕의 도장인 어보, 왕실의 족보인 종적 등은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표적 유물이다. 전주 어진박물관이 그간 수집한 유물들을 모아 왕의 권위를 주제로 전시를 꾸몄다. 6월 21일부터 9월 9일까지 어진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신소장품 특별전 왕의 권위를 담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조선 임금들의 어필과 어보, 2부는 조선 왕실의 족보, 3부는 경기전과 조경묘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전시 유물은 30여 점이다. 어필은 임금의 존엄과 권위를 담은 것으로 특별히 관리되었고 함부로 써주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선조에게 어필을 요청했으나 끝내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필은 임금의 성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시 1부에서는 이러한 역대 임금의 어필을 모은 <열성어필>을 임금이 지은 <열성어제>, 어보병풍 등과 함께 전시한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태종 때 처음 정비돼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이어가는 기틀이 됐다. 왕실 족보는 조선 후기 5대 사고인 선원각에 봉안됐다. 선원각에는 실록각과는 별도로 참봉이 임용돼 관리를 책임졌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조선 말을 거쳐 일제강점기에도 지속적으로 간행됐다. 전시 2부에서는 이와 같은 왕실 족보, 선원각 참봉 임용첩, 선원록 단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3부에서는 경기전과 조경묘를 지킨 사람들에 관한 유물들로 1878년(고종 15) 경기전 수문장을 지냈던 이교의의 임용장, 무과홍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조경묘에 걸려 있는 어제칙유 현판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허락을 얻어 전시한다. 이 현판은 영조가 내린 것으로 경기전과 조경묘의 제례 및 관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어진박물관 이동희 관장은 이번 전시가 조선 왕실의 권위와 상징 체제, 조선 왕실의 본향으로서 전주의 위상을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경칩이 엊그젠데 봄눈 탐스럽게 내린다/ 보리 풍년도 까마득한 옛 얘긴데/ 촌색시 봄손님 맞은 듯 괜스레 가슴 설렌다.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 시비 중에서)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 복원 사업이 마무리됐다. 지난 4일 구름재 박병순 선생 생가복원추진위원회는 복원된 생가를 찾아 건축물, 시비, 입간판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업 마무리 모임을 했다. 구름재 박병순(1917~2008)선생은 진안군 부귀면 출신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시조 시인이다. 전북대와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고, 전주공고, 전주여상, 이리공고, 진안농고, 전라고 등에서 40년가량 교편을 잡았다. 시조 문학 최초의 전문지 신조를 발간하고 <낙수첩>, <별빛처럼>, <먼 길 바라기> 등 11권의 시조집을 냈다. 한국 시조작가협회 이사, 가람문학상 운영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시조 문학 발전에 헌신했다. 한글전용운동에 앞장서고, 한글학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선생은 생전에 1100편가량의 방대한 시조를 발표했다. 또 시조를 사랑한 전통주의자, 나라 사랑을 강조한 애국주의자, 겨레의 자부심을 지키는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업적과 품행에 걸맞게 인물이 조명되지 못하고 묻혀 있는 상태다. 생가 복원은 2011년 6월 발기인 모임을 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지역의 큰 인물이 조명되지 못하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민들과 제자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속도가 나지 않던 생가 복원사업은 2013년 7월 구름재 선생 생가복원추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남곤(시인, 전 전북일보 사장), 윤석정(현 전북일보 사장), 이운룡(시인, 전 전북문학관 관장) 등 3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이후 2014년 8월 주민설문조사, 같은 해 9월 복원 타당성 연구조사를 마쳤다. 2016년 1월 유가족 의견이 수렴됐다. 2016년 6월 착공해 같은 해 12월 복원 준공식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시비도 제작설치했다. 지난 5월 왜소하던 생가 안내판이 교체되고, 교통사고 방지 반사경까지 설치되면서 복원 사업은 지난달 완벽 마무리됐다. 복원된 구름재 생가는 진안군 부귀면 모래재로 681에 있다. 복원에 투입된 공사비는 3억 원가량. 예산은 진안군이 지원했다. 김남곤, 윤석정, 이운룡 공동추진위원장은 진안군을 비롯해 복원을 지원해 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구름재 선생의 업적을 조명하는 일에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북 가야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유적이 지난해 파악된 것보다 72개소 늘어났다. 전북도는 5일 청내 소회의실에서 김송일 도지사 권한대행, 김인태 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곽장근 군산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한 뒤,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연구용역은 전북가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자료 확보, 향후 유적발굴정비활용방안 모색을 목적으로 기획한 용역이다. 도가 이날 공개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1년간의 지표조사 결과 전북 가야의 고분봉수산성제철유적 750개소가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조사를 시작한 시기(678)보다 72개소 늘어난 수치다. 유적별로 보면 봉수가 65개소에서 73개소, 산성이 40개소 46개, 제철유적이 130개소에서 175개소로 늘어났다. 또 최종보고서에는 장수가야 역사문화 관광지 조성, 가야사특별법 제정 및 개정, 세계유산 추진, 제철유적 등 6대 전략 25대 과제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사업추진을 위한 비용으로 총 2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김송일 도지사 권한대행은 2017년 11월 도 주관으로 7개 시군이 함께하는 봉수왕국 전북가야 선포식을 개최하면서 전북가야의 위상을 전국에 선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전북가야사 및 활용방안 연구용역을 기초로 전북가야의 실체 규명과 향후 활용방안 및 특별법 제정 등 여러 사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최종보고회에서는 봉수제철유적 관련 추가 연구용역 추진, 문화재청의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등재 추진에 따른 대응방안, 가야관련 세부사업별 추진에 따른 예산확보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호남지역 가야유적 중 첫 번째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42호)로 지정된 남원 운봉 두락·유곡리 가야고분군 유적 현장을 세계에 알리고 보전하기 위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와 강복대 남원시장 권한대행 등은 8일 남원 두락·유곡리 및 월산리 고분군을 방문해 곽장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장으로부터 고분군의 보존 상태와 역사적 가치 등에 대한 설명을 청취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된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과 관련한 전북 동부권 가야 발굴사업의 당위성 확보와 유적정비 등과 관련한 국비확보를 위해서다. 남원 두락·유곡리 및 월산리 가야고분군 등은 지난 1982년 88올림픽 고속도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굴됐으며, 두락·유곡리 가야 고분군은 남원시 인월면 성내리 35-4외, 유곡리 746-1외 문화재 구역 40필지 9만8225㎡로, 호남지역 최초의 가야유적 지정 사례다. 특히 이곳은 도내 가야 유적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적으로 5~6세기 고대사 및 고대문화 연구에서 역사·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전북도는 남원시와 함께 도내 두락·유곡리 고분군 등과 경상가야 고분군(김해·고령·함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와 시는 이른 시일 내 토지매입과 발굴조사, 고분군 정비, 전시관 및 편의시설을 조성 등을 위한 사업비 240억원(국비 168억원 포함)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송하진 지사는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 운봉가야는 1500여 년 동안 잊혀진 왕국이었다”며 “가야 고분군을 발굴·보존해 자랑스런 역사문화의 현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백제 부흥운동의 마지막 거점으로 알려진 부안 우금산성(전라북도기념물 제20호)의 남문(南門)터가 확인됐다. 지난 1월 우금산성의 출입문 터인 동문(東門)터가 발견된 것에 이어 성의 정문으로 추정되는 남문터가 확인됨에 따라 우금산성 복원정비 사업에 힘이 실렸다. 부안군청과 (재)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김규정)은 발굴 조사에서 우금산성 남문터와 이에 인접한 성벽구조 등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전북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우금산성의 남문터는 산성 내에서도 지형이 가장 낮은 계곡부에 있고 성 내부로 드나들기 가장 편리한 곳에 축조됐다. 또 성내 주요 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건물 대지와도 가까워 정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초석을 기준으로 볼 때 남문 통로부의 형태는 긴 사각형으로 추정된다. 통로부의 추정 크기는 길이 780㎝, 너비 480㎝이다. 조사구역 북쪽에서 확인된 주춧돌과 성벽 지대석(건물 하중을 견디기 위한 기초석)을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의 예상 크기다. 남쪽 성벽의 안팎에서는 박석시설(경사면 위쪽에서 계곡부로 밀리는 압력으로 인해 문터와 성벽이 붕괴되지 않도록 막아주던 역할 추정)이 확인됐다. 규모는 잔존 길이 490㎝, 잔존 너비 280㎝다. 이번 성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는 9일 오전 11시 발굴 현장에서 열린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굴된 지 10년 만에 보물로 지정된다. 또 정읍 은선리도계리 백제고분군은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5일자로 사리장엄구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30일 동안 예고기간을 거쳐 보물로 지정된다. 사리장엄구는 지난 2009년 서탑 심주석(心柱石탑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기둥)의 사리공(舍利孔불탑 안에 사리를 넣을 크기로 뚫은 구멍)과 기단부에서 나온 유물로, 639년(백제 무왕 40년)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1점과 금동사리외호(金銅舍利外壺) 1점, 금제사리내호(金製舍利內壺) 1점,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靑銅合) 6점 등 총 9점으로 구성돼 있다. 금동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는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로 주목받고 있다. 금제사리봉영기는 그동안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 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히게 된 계기가 돼 사리장엄구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물이다. 청동합은 백제 최상품 그릇으로 확인돼 희귀성이 높다. 이처럼 사리장엄구는 백제 왕실에서 발원해 제작한 것으로, 석탑 사리공에서 봉안 당시 모습 그대로 발굴돼 고대 동아시아 사리장엄 연구에 있어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작 기술면에서도 최고급 금속재료를 사용해 완전한 형태와 섬세한 표현을 구현, 백제 금속공예 기술사를 증명해주는 자료로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화재청은 이날 정읍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3호로 지정했다. 고분들은 정읍시의 영원면 은선리와 덕천면 도계리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백제 횡혈식 석실분(무덤 옆으로 통로를 내어 석실로 내부를 만든 구조) 56개다. 고분군은 정읍 고사부리성(사적 제494호) 인근에 자리한 중방(백제 지방 행정구역인 오방의 일부)과 마한계 분구묘와의 관계를 살펴볼 때 백제의 지방통치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웅진기에서 사비기로 이어지는 시기에 조성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강정원김세희 기자>
동학 농민군 최고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1855∼1895) 동상이 순국 123년 만에 서울 종로 네거리에 세워졌다.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이사장 이이화)는 24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앞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전봉준 장군은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데 항거해 1894년 3월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했다. 이후 농민 자치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해 개혁 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하자 이를 몰아내기 위해 같은 해 9월 2차 봉기해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한 전봉준 장군은 서울로 압송돼 전옥서(典獄署)에 수감됐는데, 이곳이 바로 종로 영풍문고 자리다. 전봉준 장군은 123년 전인 1895년 4월 23일(음력 3월 29일) 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서 다음 날 새벽 2시 동지인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는 세워지지 않고 있다가 2016년 8월 전주를 찾아 동학혁명기념사업 관계자들을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이 순국 터인 종로 네거리에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수용하면서 동상 건립이 급물살을 탔다. 마침 전옥서 터는 서울시유지로 돼 있어 지난해 1월 동상 건립을 위한 재단을 만든 지 1년 4개월 만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건립 비용 2억7000만원은 국민 성금으로 모았다. 연합뉴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6월 17일까지 인동장씨 기증유물 특별전- 효자동의 유래 인동장씨家 이야기를 연다. 인동장씨는 전주시 효자동 일대에서 세거하면서 유력 집안으로 성장한 전주의 대표적인 토호세력이다. 효자동의 유래가 된 효자집안으로 17세기에 장개남이 효자로 정려를 받았고, 19세기 초 장영풍이 남고산성 별장을 지냈다. 집안의 선산이 있던 곳이 1995년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선산을 지키던 나무를 전주시에 기증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전주 삼천동의 명물 곰솔나무(천연기념물 355호)다. 인동장씨 집안은 지난해 전주역사박물관에 대대로 내려온 유물 120점을 기증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물은 집안 대대로 소중히 간직해온 교지와 고문헌, 생활유물 등 70여 점이다. 자료들은 조선초부터 전주에 오백년 이상 세거한 대표적인 토호집안의 내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장씨 일가만이 아니라 지역사적 차원에서 매우 귀중하다는 게 전주역사박물관의 설명이다. 전시 유물 중 장영풍이 1813년에 받은 남고산성 별장 임용교지가 눈에 띈다. 남고산성은 전주성을 수호하는 산성으로 1812년에 개축됐다. 남고산성별장 교지는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놋쇠그릇, 옹기, 도량형 등 인동장씨 생활유물들도 전시된다. 전주에 세거한 집안의 생활용품들로 전주 토호들의 세간살이를 살필 수 있다. 기증한 대부분 생활용품들이 장씨 할머니의 어머니 때까지도 썼던 것이다. 종가에서 잔치를 하면 200~300명이 모이는데, 그때 꺼내서 쓰던 것들이다. 기증자인 장씨 할머니는 고심 끝에 기증을 결정했다. 장씨는 많은 곳에서 요청이 있었지만 족보를 가져간다고 말해서 거절했다며 족보는 산 사람처럼 대접해서 모셔가는 것이지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잘 관리해 달라고 말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조선시대 전주에 세거한 유력 집안의 내력과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매우 드문 유물들이라며 귀중한 유물들을 잘 보존해서 박물관에 기증해 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내 대통령 관저 뒤편에 위치한 석불좌상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이 12일 문화재위원회 2차 최종심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 석불좌상은 지난해 6월 참모들과 함께 관저 뒤편을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1974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보자는 주문이 있었고, 이에따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지난해 9월 15일 가결한 뒤 올 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1차 검토심의를 거쳤다.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좌상은 본래 경주에 위치해 있었으나, 1939년경 조선총독부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각형 연화대좌(蓮華大座)를 갖춘 보기 드문 석불인 동시에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문화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석불은 또 편단우견(偏袒右肩: 한 쪽 어깨위에 법의를 걸치고 다른 쪽 어깨를 드러낸 모습)을 걸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석가모니가 수행을 방해하는 모든 악귀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의 모습이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형태이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적 특징과 조각적인 양감이 풍부하여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와대는 앞으로 문화재청 협조를 통해 석불좌상의 백호 및 좌대 등 원형 복원과 주변환경을 고려한 보호각 건립 등 보물로서의 위상에 걸맞는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5년 문화자산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 안정’으로 재도약 기틀 세워야
540억 투입 전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1억...내실 부족 우려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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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 깎여 나간 현대인의 초상…배병희 개인전 ‘바디 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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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황석영 ‘할매’
속도의 시대, 읽고 쓰는 시간을 묻는 공간 ‘익스’
[안성덕 시인의 ‘풍경’] 입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