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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개산대재·성우 주지스님 취임식 열려

금산사 창건 1414년 기념식 겸 제15대 주지 취임식이 지난 26일 금산사에서 2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뜻을 기리는 다례제를 시작으로 부도전 참배, 창건1414주년 기념식, 17교구 본말사 신도 합동 보살계수계식, 만등불사 순으로 진행됐다.성우스님은 주지 취임사를 통해 "역사는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항상 함께하셨던 조사 스님, 태공 월주 대종사님, 그리고 선배 주지 스님께서 걸어갔던 길을 따라 오늘 새로 내딛는 길이 험난하고 외롭더라도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감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금산사 조실 월주스님은 개산대재 법어에서 "함께 나누고 서로 위할 줄 아는 자비정신이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 이다"며, "개산대재와 금산사 신임주지 취임식에 함께하신 모든 이들의 발심 정진이 대한민국과 온 우주의 상생, 정토, 복지,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통도사주지 원명스님,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 최규성유성엽 국회의원, 조배숙 전 국회의원, 송하진 전주시장, 이건식 김제시장, 문동신 군산시장, 박성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유광찬 전주교대 총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 종교
  • 김원용
  • 2013.10.29 23:02

생수의 강

어느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새벽에 환자가 급히 실려 왔습니다. 당직 의사가 살펴보았는데, 심장마비로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신을 수습하려고하는데 좀 이상하였습니다. 오른 손은 펴고 있는데, 왼손은 꽉 쥐고 있었습니다. 대개 죽으면 손을 펴잖아요. 그래서 왼손을 펴주는데, 손 안에서 뭔가 툭 떨어집니다. 의사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어! 삼팔 광땡이네! 사연인즉슨 이랬습니다.밤새 화투를 치는데 계속 잃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런데 밤을 새고 끝 무렵에 판돈이 수북하게 쌓였는데 화투를 받고 펴 보니까 삼팔 광 땡인 겁니다. 너무 마음이 벅차올라 그만 심장 마비를 일으킨 겁니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삼팔광땡 잡아보려고 기를 씁니다.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속상해 하고, 잡으면 잡는 대로 허무하게 떠나는 게 세상의 모습 아닌가요?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 심령에 흐르는 생수의 강으로 인생의 참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토니 에반스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하루는 침실 벽에 균열이 생긴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는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바르고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보니까 다시 갈라졌습니다. 다시 기술자를 불러 고치게 했습니다. 시멘트 몰타르 갈라진 틈을 메우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며칠 뒤에 보니 다시 균열이 갔습니다. 그때 기술자가 하는 말이 "주인님, 이것은 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집의 기초가 문제가 있습니다. 기초가 문제가 있어 벽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집을 헐고 다시 짓기 전에는 이 벽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하게 보이려고 애를 써도 우리 인간은 기초가 되는 본선에는 죄의 품성을 갖고 있어서 선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구조 속에 이미 죄가 창궐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탄이 유혹하고 침투시키는 죄를 막을 길이 없어 스스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선함이나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한 용서를 받아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영화 「벤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벤허는 류 월리스의 소설인데 영화화 된 겁니다. 월리스는 본래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 출신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던 무신론자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공박하려고 성경을 연구하다 뒤집어졌습니다. 무릎 끓고 예수님을 향해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그 후 이 소설을 쓴 겁니다. 그래서 부제가 아예 '그리스도의 이야기'입니다. 벤허는 유대인 귀족이었는데, 애매하게 노예로 끌려가고 인생이 꼬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도 감옥에 갇혔다가 나병에 걸렸죠. 그런데 마지막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늘에서 비가 쏟아집니다. 그 비를 맞으며 어머니와 누이가 나병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벤허는 쌓이고 쌓였던 원한이 사라짐을 경험합니다. 그 비가 흐르고 흘러 시내가 되고 큰 강을 이룹니다. 이게 바로 생수의 강입니다. 이 생수의 강이 내 심령에서부터 가정으로 직장으로 사회로 나라로 세계로 흘러넘치게 해야합니다. 이게 먼저 경험한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사막화된 세상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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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3.10.22 23:02

욕심

빈대 네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몸집이 너무 작은 게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빈대들에게 새해 소원을 각각 물어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저는 몸집이 너무 작아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힘이 센 소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소가 되어라." 그러자 빈대는 소원대로 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너는 새가 되렴." 두 번째 빈대도 소원대로 새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 저는 배고픈 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굶지 않고 매일 음식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 그럼 너는 쥐가 되거라." 세 번째 빈대 역시 소원대로 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빈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 때 네 번째 빈대가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다 받는다면 실컷 구해보자.'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소처럼 힘도 세고요, 새처럼 하늘도 날고요, 쥐처럼 굶지도 않는 그런 것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네 소원대로 '소새쥐'가 되어라." 그런데 이 세상에는 '소새쥐'라는 동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 그 이름과 가장 비슷한 소시지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이 빈대는 너무 뻔뻔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습니다. 무엇이든 과욕을 부리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아무리 좋고 필요하다 해도 적당히 먹어야 유익합니다. 욕심을 부려서 자꾸 과식하면 위장에 부담을 주고 결국에는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땅의 동물 중에서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동물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개나 돼지가 위장병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식탐을 하고 그 결과 위장병을 얻습니다. 이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우리가 한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합니다. 돈이 있어야 양식을 얻고, 돈이 있어야 편안하게 살고, 돈이 있어야 온갖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벌면 좋습니다. 많이 저축해 놓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위력이 있고 좋다 해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문제가 됩니다. 돈에 대한 탐욕은 돈을 우상으로 만들고, 범죄하게 만듭니다. 사람에게서 인간미를 빼앗아가고,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돈이 좋을지라도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이 고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다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은 다음에 내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자." 그리고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날 밤에 이 사람의 영혼을 도로 가져가셨습니다. 결국 그가 애써 모아놓은 재물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고, 그는 헛수고의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 되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지나친 욕심의 종착점은 비극이요, 실패입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승리를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에릭 프롬'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시대 속에서 우리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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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5 23:02

공감을 얻으려면

성경 잠언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다. 지혜로운자는 신중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함으로 공감을 얻지만 신주하지 못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똑똑한 바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때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사자가 늙고 병들어 배고픔에 허덕인 체 새끼양을 뒤쫓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추격했지만 새끼양은 사자를 비웃듯이 자유자재로 도망쳤다. 굶주린 사자는 먹이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자기가 갇혀서 죽게 되었으니 동물들이 방문해 주었으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퍼뜨렸다. 그러나 찾아오는 동물들이 없었다. 그런데 여우 한 마리가 찾아왔다. 나무 틈사이로 천천히 엿보고 있는데 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어서 내게로 가까이 오게, 이리와서 나를 위로해 주게나" 그때 여우가 "사자님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평소에 저희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았고 신중하지 못함을 알고 있으니까요" 사자는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공감을 얻지 못한 말은 군중을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과 부정적 시각의 말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 전통과 양식, 방법과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인 말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주장과 생각, 의견과 논설에 대한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희망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항상 있어야 할 공감은 사람됨의 소중한 윤리이며, 가치이며, 힘인 것이다. 공동체 속에서 공감은 자신의 신뢰를 돈돈히 하는데서 나오며 존경과 사랑을 실현하는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생각하는 태도가 진정성을 가질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의견과 뜻을 공감시키려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방식과 의견과 감정과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하며 존중해야 한다.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의 인격을 향상 시키는 노력을 기울려야 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다른 사람의 곤경과 실패, 아픔과 역경, 갈등과 반목에 대한 이해와 사랑, 관심과 위로, 희망과 용기의 말로 북돋아 줄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여야 하고, 이기적인 아니라 이타적이여야 하며, 소유적이 아니라 공유적이여야 하고,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비난이 아니라 존중함으로 나아가야 하며, 비협력적이 아니라 협력적이여야 하고, 관망이 아니라 참여적이여야 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이 좀 더 희생적일 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으려면 내가 남에게 기대한 만큼 남도 나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존중히 여기고 배려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얻어야 질서가 확립되고 협력적 미래 비젼도 실현할 수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는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공감은 신앙 공동체를 구성하는 교우들에게 우리의식을 증진하고 상생하는 조정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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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08 23:02

천주교 고창성당 '최여겸 순교 성지 축성식' 개최

천주교 고창성당(주임신부 조정오 요셉)은 지난달 28일 고창군 공음면 개갑장터에서 이강수 군수, 박래환 군의장,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고창·김제·정읍·부안지역 신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여겸 순교 성지 축성식 및 순교자 현양대회'를 개최했다.최여겸(마티아) 순교자는 1763년 고창군 공음면 갑촌에서 태어나 전라도 진산 땅의 첫 순교자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우고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을 만나 독실한 신자가 됐다.그는 무장, 흥덕, 고창, 영광, 함평 등 전라도 서남해안 지역에서 전교활동을 펼쳤으며, 기록에 의하면 그가 입교시킨 신자로는 무장의 최수천(횡성에 유배), 최일안(전주에서 형벌로 옥사), 흥덕의 김처당(청도에 유배), 영광의 이화백(영광에서 순교), 함평의 남중만(평산에 유배) 등 28명으로 전해진다.신유년(1801) 천주교 박해시 4월 13일(음) 처가인 충청도 한산에서 체포되어 무장현으로 압송됐으며, 전주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했다. 이때 형조는 중죄인은 고향에서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는 해읍정법(該邑正法)의 명을 내려 개갑장터에서 그해 7월 19일(음) 참수형을 받아 38세에 순교했다. 그는 현재 '하느님의 종 윤지충(바오로)과 동료 순교자 124위'에 포함되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공음 개갑성지는 2004년 6월 고창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후 고창군과 천주교의 협의하에 순교지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부터 개발을 추진했다. 군은 부지매입과 주차장, 화장실 등 기반시설을 건립했고, 고창성당은 현양탑, 야외제대, 14처, 조경사업 등을 추진해 이날 순교자 축성식을 개최하게 됐다.

  • 종교
  • 김성규
  • 2013.10.01 23:02

사랑이 열매를 맺으려면

월간지 '좋은 생각'에 나온 일화입니다. 두 사람의 연인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뜨겁게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집안에서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여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신랑의 입장 후에 신부가 들어오는데 그야말로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하객들은 신랑측 부모가 결혼에 반대했던 이유를 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주례자는 신랑의 대학 은사였는데,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화려한 조명 밑에 서자 머리는 불빛을 받아서 잘 닦아놓은 자개장처럼 번쩍였습니다. 이윽고 주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검은머리가 저처럼 대머리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순간, 식장 안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주례사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에게 재차 웃음을 던져주었습니다. "제 대머리를 한문으로 말하되 딱 한 자로 표현하면 '빛 광', 즉 '광(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주례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광(光)'같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말은 검은머리가 대머리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때, 하얀 장갑을 낀 신랑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수화로 주례 내용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모든 하객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주례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광나는 말로 주례사를 마쳤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혀로써 말하고, 신랑은 행위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서있는 신랑, 신부는 둘 다 군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제2의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이만 소인의 주례를 마치겠습니다." 하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례자와 신랑, 신부를 향하여 힘껏 박수를 쳤고,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예식장은 떠나갈 듯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이 있습니다. 특히 장애를 극복하고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은 두고두고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희생을 요구합니다. 순간의 감정과 동정만으로는 사랑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눈이 되고, 손이 되며, 발이 되어주는 희생이 있어야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입술만의 사랑으로는 아무런 결실을 거둘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 모임의 낙서판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가야, 울지 마라. 엄마가 네 빵 다 먹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기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배고픈 것을 참아가며 자식부터 먹여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엄마에게는 그런 희생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사랑을 노래한다 해도 믿어주지를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방의 필요를 채웁니다. 나누어줍니다. 디딤돌이 되어 줍니다. 아파도 참습니다. 눈물을 노래로 바꾸어갑니다. 기꺼이 손과 발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 종교
  • 기고
  • 2013.09.24 23:02

내장사 대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후보 등록

내장사 백련선원 회주 대우 스님이 다음 달 10일로 예정된 대한불교조계종 제34대 총무원장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후보등록에 대우 스님을 비롯,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 전 중앙종회 의장 보선 스님, 전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등 5명이다.대우 스님은 지난 29대, 32대, 33대에 이어 네 번째 선거에 나선다. 대우 스님은 지난 17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나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종단이 안고 있는 비승가적인 구조적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정화와 개혁은 봉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돈과 조직 없는 사람도 선택받고, 그런 사람들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시대의 명령이다"며,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선택의 양심이 살아있는 승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대우 스님은 종책 공약으로△총무원장 선거 직선제 △재가신도에 선거권 부여 △비구니 특별교구 신설 △재정 공영화 △승려노인복지 △종교 화합운동 등을 제시했다.조계종은 25∼29일 선거인단을 확정한 뒤 다음달 10일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한다.한편, 불국사와 법주사, 금산사 등 금오문도회의 추대를 받으며 출마가 유력했던 전 포교원장 도영 스님(전 완주 송광사 주지)은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 종교
  • 김원용
  • 2013.09.23 23:02

서로 화목하라

화목이란 서로 뜻이 맞고 마음과 생각의 느낌이 일치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은 사람과 사람, 세상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반목과 쟁투, 대결과 대립, 분열과 분쟁, 갈등과 싸움으로 점철되어 가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국론이 분열되며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에 서로 상처만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서로 화목하기 보다는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높은자와 낮은자, 강한자와 약한자, 부자와 가난한자, 권력있는자와 권력이 없는자, 기업주와 노동자, 갑과 을의 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입니다. 윗사람은 자기 체제 수호를 위하여 싸우고, 아랫사람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게 됩니다. 시장 상인에서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대결 양상으로 점철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대결은 상대를 정죄하고 미워하며, 비판하고 배척합니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쓰러뜨리고자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심사를 아신 주님은 서로 화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결보다는 화목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있고 생산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화해가 좋은 소송보다 앞선다"는 영국 속담처럼 서로 화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합니다. 잠언17:1절에도 "마른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서로 화목할 수 있을까?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이해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결코 정죄하지 아니하며, 비방하지 아니하며, 사상과 견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 해주는 마음의 폭을 넓혀야하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며 서로의 차이를 대화로서 좁혀 가면서 온유 겸손으로서 이해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어 헐뜯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감싸주고, 믿어주고, 사랑의 마음으로 손잡아 주어야 합니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내게 맞추기보다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며 내가 조금 희생하고, 양보하고, 손해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로 화목하기 위하여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하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하기 위해서는 소금처럼 녹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관용의 소금, 신뢰의 소금, 위로의 소금, 긍휼의 소금, 사랑의 소금, 희생의 소금, 온유겸손의 소금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로 화목하여 분쟁을 잠재우고 평화를 만들것이라 했습니다. 서로 화목하는 것이 구성원 됨이며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화목하는 삶이 아름답고 화목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최상의 가치입니다. 화목은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에 충분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고, 자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일이 서로 손을 잡아 주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가주는 것이며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 겉옷까지 주는 것입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지 말아야 하며 꾸고자 하는 경우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헤게모니와 기득권을 내려 놓고 원수까지도 사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목 할 수 있습니다.

  • 종교
  • 기고
  • 2013.09.10 23:02

치유·명상·평화… 5대 종단 '화합의 노래'

호남 종교인들이 종교인들의 심성과 감성을 일깨우는 제1회 호남종교인 영성문화제를 연다.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 성직자들이 8일 저녁 7시 전남 보성 대원사에서 영성문화제를 열어 종단간의 소통과 화합을 노래한다. 5대 종교가 연합으로 치유와 명상평화를 테마로 한 시낭송과 음악회로 진행하는 종교인 축제다.광주기독교연합회 김용성 목사는"호남의 5대 종단이 힘을 모아 문화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서로의 종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믿음으로 하나 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영성문화제는 각 종단의 대표 성직자들과 재가 신자(교도)들이 참여해 영성함양과 소통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이날 행사는 호국 승군 무예로 분위기를 돋운다. 호국 승군무예는 임진왜란 때 승군(승병)을 지휘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담양 금성산성 동자암의 청산스님이 그 맥을 잇고 있다. 본 행사는 불교 의식인 법고 타종의식으로 문을 연 후 천도교개신교불교원불교천주교에서 준비한 행사로 하나되는 세상을 열어간다. 천명공연(천도교), 시 낭송 및 합창(개신교), 보살춤과 어린이 시범단의 전통 무예수벽치기(불교), 시낭송과 독창(원불교), 가톨릭성가대 합창 등으로 진행된다.2부는 다함께 하나되어는 5대종단 성직자 인사와 촛불제를 통한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식, 참석자들과 어울린 대합창과 풍등띄우기가 펼쳐진다.모임 대표인 대원사 현장 스님은 "종교의 이념과 교리는 다를지라도 거기에 깃든 영성은 하나로 통할 수 있어 하나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며 "영성을 통해 만나고 문화적 교류를 하다보면 호남의 종교문화행사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원불교 육관응 교무(원불교신문 편집장)의 제안으로 올 처음 시작하는 문화제는 전국적인 모임인'묵방도담'(默芳道談)에서 활동하는 호남지역 종교인들이 뜻을 모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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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3.09.04 23:02

당신도 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타임(Time)지'가 선정한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년)'이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독일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입니다. 이 두 사람의 천재성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똑같이 학습장애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에디슨은 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도 못 돼서 '바보'로 낙인찍힌 학습장애아였습니다. 교육의 전문가였던 교장이 학교를 방문한 장학사에게 그를 '바보'라고 보고할 정도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에디슨의 어머니는 강력하게 항의하고 즉각 학교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결국 에디슨이 받은 공식적인 교육은 3개월도 채 안 된 셈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전등, 전축, 현대 전화기의 전신인 탄소송화기, 백열 전구, 발전기, 가정용 영사기 등을 발명했고, 특허만 무려 1093개를 받아 특허의 기록까지 세웠습니다. 에디슨은 19세기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독일에 사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는 학습장애아로 낙인찍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다닐 때 언어의 발달이 늦어서 학습이 부진했고, 행동이 산만하여 문제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장래를 염려한 부모는 여러 번 이사하면서 전학을 시키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중력에 관한 이론으로 과학적 탐구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192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에 크게 기여했으며, 지금까지 위대한 과학의 거인으로 남아 있습니다.이 두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학습장애아였던 그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물론 자녀 교육에 있어서 남다른 관심과 열성을 가졌던 부모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헌신적인 교육과 지도가 천재성을 개발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육학자들은 그들의 인생과 사물을 보는 긍정적 태도를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삶의 자리가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는 자세가 천재성을 개발시켰다는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이 올 때 그것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저주로 보면 저주가 되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기회로 보면 기회가 되는데, 이들은 모든 것을 기회로 여겨 놀라운 결실을 거두었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한 생을 살면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 때마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도전하는 것이 승리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인 것입니다. 부족한 것, 없는 것, 잃은 것에만 집착하고, 원망과 불평만 일삼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활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비상할 수 있는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믿음의 날개를 펴십시오. 힘껏 날개 짓을 해보십시오. 당신도 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로버트 슐러' 목사의 인상 깊은 고백을 소개합니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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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3 23:02

새벽은 개벽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 먼저 가슴에 설레임을 담고 감사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나는 행운아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얼씨구, 좋구나." 새벽은 그런 설레임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아직 먼 동이 터오르기 전이라 낯설기 때문인가 봅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생길까? 오늘은 어떤 경험을 할런지 가슴이 설레입니다. 그래서 매일이 설날입니다.자리에 누운 채로 하늘을 향해 두 손과 발을 높이 들어 흔들어줍니다. 손과 발의 파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깨어납니다. 일어나 법신불 사은님께 아침 심고를 올립니다. 오늘 하루도 선의 심정으로 깨어나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부처님으로 보고 불공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자리에 앉아 몸을 풀어주면서 몸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목탁을 치며 일상 수행의 요법을 암송합니다. 암송할 때는 내 목소리를 잘 들어봅니다. 목소리를 귀로 들어보면 잡념이 끊어지고 둥근 마음이 되어 소리만 허공에 가득참을 느낄 수 있습니다.그런 뒤 하단 전에 기운을 주하고 좌선을 합니다. 크게 들이쉬고 약하게 내쉬면 심장 뛰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졌기 때문입니다.밖에 나와 하늘을 봅니다. 떠오르는 해와 햇살을 느끼고, 구름의 모양도 구경합니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나뭇잎이 나부끼는 것을 처음 보듯 신비롭게 바라봅니다.그 다음은 청소 시간입니다. 진리가 텅 비어 깨끗하여 빛이 나듯 때와 먼지를 닦아주면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내 손길 닿는 곳마다 빛이 나는 것을 구경합니다.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앞서면 지루해집니다. 그냥 몸이 움직이는 것을 마음이 지켜보면 힘들지 않습니다. 아주 재밌게 놀이하듯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청소를 마치면 원불교 전서를 낭독합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 대종사님의 말씀이 파도치듯 가슴에 담깁니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합니다. 음식을 나에게 주신 천지님, 부모님, 동포님, 법률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모양과 색깔을 잘 봐주고 좌우 골고루 잘 씹어주면 미각이 살아납니다.차를 타면 맘껏 웃는 연습을 합니다. 차 안에서는 아무리 크게 웃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음 하하하하하하 , 음 헤헤헤헤헤헤, 음 히히히히히" 하고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아플 정도로 웃습니다. 그러면 소리내어 웃지 않아도 저절로 미소가 머금은 얼굴 표정,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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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7 23:02

범사에 감사하기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기차의 좌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옆에서 '쿵'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엉덩이가 엄청나게 큰 흑인 여자가 올망졸망한 어린아이를 다섯 명이나 데리고 와서 자기의 옆자리에 비집고 앉는 것입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 영역을 넓혀 가는 바람에 목사님은 숨쉬기가 힘들었고,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인지라 그 와중에서도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 옆에 앉은 이 뚱뚱한 흑인 여자가 저의 아내가 아닌 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드리나이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잠깐만 생각하면 언제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누구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 늘 좋은 면, 밝은 면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고 형통할 때만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입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그 속에서 얼마든지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제로 인생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반지 한 개 가지고 나온 사람이 없고, 시계 하나 차고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다 알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제로 인생에서 시작하면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지금의 옷 한 벌, 밥 한 끼가 감사하고, 사랑하는 식구들이 감사합니다. 푸른 하늘이 감사하고, 신선한 공기가 감사합니다. 예쁜 꽃이 감사하고, 저녁노을도 감사합니다. 예배드릴 성전과 성도들이 감사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되 이미 구원받은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합니다. 제로 인생에서 출발한 우리 인생이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의 제목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낱낱이 헤아려 보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헤아려 보면 그것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습니다.많은 성도들이 "목사님, 우리는 가난해요. 사업이 망했어요. 자식이 없어요. 실직했어요. 방이 적어요. 자녀가 시험을 잘 못 보았어요. 몸이 아파요. 가정에 불화가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요." 라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의 출발을 모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제로에서 시작한 인생이라면 잃었다고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대로 밑져야 본전입니다. 인생살이에서 아무리 큰 손실을 보고 많은 것을 빼앗겼다 해도 손해는 없습니다. 지금의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다 감사의 제목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13:13에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3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했지만, 나더러 여기에 한 가지만 더하라고 한다면 나는 '감사'라는 말을 더하겠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감사는 항상 있을 것이라!'"'범사에 감사하기'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과목입니다. 믿음 위에 감사를 더하되 범사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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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0 23:02

친절의 중요성

어느 해 여름 해 질 무렵에 집사님 한 분이 산에서 황소를 잃어 버렸는데 찾아 달라고 왔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담임목사에게 소를 찾아 달라는 것은 너무 무례한 요구이며 상식에 어긋난 것 같았기 때문에 매우 불쾌했다. 그래서 불친절하게 대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집사님이 돌아가신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양을 위한 목자로서 인격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구나 생각하고 몹시 후회스러웠다. 서둘러 몇몇 집사님을 불러서 등불을 준비해 들고 소를 잃어버렸다는 산으로 올라갔다. 이 곳 저 곳을 헤매며 소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 산 속을 헤짚고 다니는데 "목사님 소를 찾았으니 하산하시기 바랍니다. 소를 찾았습니다" 는 마을 이장님이 알리는 확성기 소리를 듣고 산에서 내려왔던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친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목회자는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든지 불친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겼다. 친절은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이며 따뜻한 마음으로 예를 갖추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나 우호적이며, 다정하며,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상대하여야 한다. 위대한 사랑을 실천했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끊임없는 친절은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으며, 태양이 얼음을 녹이는 것처럼 친절은 오해와 불신, 시기와 질투, 반목과 적대감을 녹여 없앤다"라고 했다.목회는 혼자 하는 사역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상호성을 가지고 행하는 사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란 친절이 필수적인 요소다. 친철이란 배려함으로 사랑하는 것이며 상대방을 존귀히 받드는 자율적인 마음이다. 남에게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에 의해 자신을 희생하며 베푸는 따뜻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친절은 상호간에 효율성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케 할 뿐만 아니라 상대로 더욱 존중히 여기며 전폭적으로 배려하는 행동을 하게 한다. 사람됨의 가치를 측정하고 사람의 행동 양식을 결정짓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기준은 친절에서 결정된다. 꿈은 과거의 업적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반영하고, 친절은 현재의 삶에서 새로운 관계로서 미래를 열어가는 재산인 것이다. 친절은 목회현장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혀주고, 상호 공통점을 찾게 해주고, 각자의 특성을 유지해 주면서 하나됨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데 교량 역할을 한다. 목회 현장에서의 친절은 개인의 존재가 무시되지 않도록 하는 보증 역할을 하며 희망있는 자와 절망하는 자, 연결된 자와 단절된 자,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인정받은 자와 인정받지 못한 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 사이의 격차를 줄여주는 소중한 역할을 한다. 친절은 목회 현장의 비타민이라 할 수 있다. 친절한 사람은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딱딱함을 부드러움으로, 짜증스러움을 웃음으로 바꾸어 놓고, 불친절한 사람은 선을 악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따뜻함을 냉랭함으로,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어 놓는다. 친절한 사람은 꼭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지만 불친절한 사람은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친절한 사람은 손해가 발생하여도 친절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거뜬히 사명을 완수해 낸다.친절은 경쟁력이며 힘이며 재산이다. 친절은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요소다. 친절은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바로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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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3 23:02

인생의 각도 잡기

어떤 남자가 결혼 생활을 하다가 권태기를 만났습니다. 자기의 아내가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살다보니까 자꾸 미워졌습니다. 보면 볼수록 호박꽃이었습니다. 장미꽃은 못 되어도 국화꽃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호박꽃 자체였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싫고, 잠자는 것을 보면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견디질 못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보따리 싸서 나가! 꼴도 보기 싫어!" 착한 아내는 울먹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런 모습으로 친정에 가면 어떻게 될까?" 도저히 그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왕 갈 것 단장이나 하고 가자." 하고 머리부터 감았습니다. 세수를 깨끗이 하고,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고급 화장품으로 화장을 했습니다. 입술에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볼연지도 찍고, 빗자루 같은 눈썹도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껴놓았던 양단 치마 저고리를 입고 신랑 앞을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서방님, 가기는 싫으나 가라고 하시니까 갑니다. 부디 예쁜 색시 만나서 행복하게 사세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소곳이 이별의 말을 전하는 아내를 보니까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돌아서는 뒷모습도 예전 같지 않고 예뻤습니다. 마당을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호박꽃치고는 보통 예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남편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따라 나가 보따리를 확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긴 어딜 가? 같이 살아야지!"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가 이렇게 다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어두운 쪽으로 보면 불평뿐이지만 밝은 쪽으로 보면 감사가 우러나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각도 잡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인생의 풍파가 있고, 근심거리가 있고, 슬프다 해도 각도 잡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백전노장 다니엘은 일찍부터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하나님을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포로로 잡혀간 나라에서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다니엘은 왕조가 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계속해서 총리직을 수행하는 복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신하들의 모함으로 또 다시 시련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사자 굴에 던져져 사자들의 밥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때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신세를 탓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슬픈 현실만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각도로 인생을 보고, 다른 쪽에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감사를 낳았습니다. 다니엘은 그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리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가 사자들의 입을 봉해 버렸고, 마침내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아무리 시련이 크고, 환난이 에워싼다 해도 각도만 잘 잡아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제목입니다. 죄악 가운데서 신음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영혼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들을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좋은 성도들과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일터를 주셨습니다. 건강을 주셨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셨습니다. 하늘 노래를 주셨습니다.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응답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면 밤을 새며 감사의 제목을 찾아도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작시자 오트만(J. Oatman Jr)은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인생의 각도 잡기만 잘하면 우리도 똑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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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30 23:02

취임 한달 완주 송광사 주지 법진 스님 "불교, 대중과 함께 호흡하도록 최선"

"불교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완주 송광사 주지로 취임한지 1달을 맞이한 법진 스님(53). 도영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전 총무원장 월주 스님의 손자상좌로 해인사 승가대 학장을 지내는 등 불교계에서는 학승으로 불린다. 2년 전부터 완주 송광사에서 도영 스님을 보좌하면서 지난해 5월에는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사업단장으로 재직하며 템플스테이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다양한 형태의 템플스테이 문화를 만들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는 앞으로 10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봤을 때 '이 기간 동안 하루에 반절은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자'고 결심했죠."그는 불교문화사업단장을 지내면서 "1년이 1주일 같았다"고 했다. 수많은 결재와 씨름하다보니 시간에 쫓겼고 현장의 세세한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는 것. 이에 그는 금산사 백담사 등 큰 사찰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대중적 소통을 송광사와 같은 단위 사찰에서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굳혔다. 주지에 취임하기 전부터 그는 '단마 콘서트', '사찰 음식 만들기' 등의 행사로 대중적 소통의 폭을 넓혔다. 특히 단마 콘서트에서는 함한희 전북대 교수와 피아니스트 최소영을 초대해 공연과 인문학 강좌를 열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디너쇼 형식으로 이뤄진 단마 콘서트에 마련된 음식은 모두 완주 지역에서 나온 로컬푸드를 사용해 의미를 더했다. 그는 "여건이 허락된다면 오는 9월께 성 김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경색된 남북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단마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가 구상중인 대중과의 호흡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종남산시민학교(가칭)를 세워 시민들이 철학 인문학 등의 강좌를 항상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또 캠핑 템플스테이, 영어 체험형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형태의 템플스테이로 시민들에게 불교 문화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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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엽
  • 2013.07.29 23:02

에고 에고 나 죽네!

병원에 근무하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환우(患友)들과 상담하다보면 몸의 아픔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호소합니다."남편이 권위적이고 무능해요, 자식들도 수술할 때 한 번 들여다보더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요. 섭섭하고 억울하고 분해 죽겠어요. 정말 제가 한심해요. 그 때 부모님이 조금만 도와주었더라면. 에고, 에고, 나 죽겄어요!"이 일을 어쩔까나! 이것이 꼭 환자들에게만 해당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에고'(Ego)는 심리학에선 '자아', 불교학에선 '아상'(我相)이라고 합니다. 에고는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착각하여 나와 남을 가르고, 애욕과 탐착이라는 주착심을 먹고 살아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생각을 나라고 착각하는 물질 위주의 삶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부딪치며 아파하고 내 맘 같지 않다고 원망하며 생활하게 됩니다.나의 에고는 무엇인가요? 내 무의식에 남아 경계를 당하면 튀어나오는 어두운 생각의 실체와 직면해본 적이 있습니까? 내 에고를 알려면 감정이 일어날 때 내가 쓰는 말을 보면 압니다. 상대가 권위적이다, 이기적이다, 무능력하다, 예의가 없다, 폭력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에고입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고, 에고, 나 죽네'에 그 답이 들어았습니다. 먼저 지금 내가 에고 놀음을 하고 있음을 자각합시다. 내 삶이 백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놓여져있다는 절박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다시 내려올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기서 잡고 있던 장대에서 한 발 더 나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죽을까봐 겁나고 무섭지요? 발을 떼면 죽는데 어떻게 놓느냐고요? 그래도 한 발 더 나아가십시오. 죽는 것은 몸이 아닙니다. 나라는 에고가 죽습니다. 에고가 죽는 순간, 허공에 '붕' 뜨면서 비로소 정신이 차려집니다. 나갔던 정신이 들어옵니다. 온갖 분별력을 버리는 순간,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정신이 차려집니다.어떻게 하는 것이 장대 끝에서 한 발 더 나가는 것일까요? 그동안 경계를 당해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상대 탓을 했지만 상대 때문이 아니고 내 에고의 어두운 생각 놀음이었음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내가 더 권위적이고 이기적이고 무능력하고 예의 없고 폭력적이고 무정하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상대가 나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임을 알게 되는 순간 에고는 죽어버립니다. 에고가 죽는 순간 생각이 죽고 그때 참나인 정신이 차려집니다. 정신이 차려지면 텅 비어 맑고 밝고 훈훈한 빛이 몸과 마음을 감싸게 되어 진리의 위력을 얻고 '체성'(體性)에 합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몸 병과 마음 병을 치유하고 감사하며 생활하는 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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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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