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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다, 거장의 그 작품

"영화감독은 사회를 다 알고 있다고 믿는'바보'다."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의 이런 통찰은 영화에선 다루지 못할 것도, 그러나 다루지 못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전한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프로그래머들이 열정적으로 탐닉한 영화들을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게 추렸다. 일상과 영화를 서로 엇갈리게 펼쳐나가면서 영화를 선물하는 낯선 매력에 빠져볼 수 있을 듯하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다면 '에브리데이'를 챙겨보자. '에브리데이'는 수감자 가족의 비애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연출한 독특한 작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매번 다른 소재를 다루면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인 감독은 영국드라마 '닥터후'의 마스터 역을 맡았던 존 심을 등장시켜 호기심에 불을 지핀다.지난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마스터'도 동그라미를 쳐두자.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두 배우의 명연기와 천재 감독으로 칭송받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까지 더해져 기대감을 증폭시킨다.'까미유 클로델'은 '휴머니티'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1999)을 수상한 브루노 뒤몽 감독의 신작. 이자벨 아자니가 주연을 맡았던 '까미유 클로델'(1988)과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브루노 뒤몽 감독의 '까미유 클로델'을 비교해보는 게 감상 포인트. 대항해 시대 유럽의 중심에 있었던 포르투갈은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센트로 히스토리코'는 포르투갈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구이마레에스'를 배경으로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 빅토르 에리세,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가 펼쳐보이는 네 편의 이야기다. 작가이자 감독인 파스칼 보니체르의 신작 '오르탕스를 찾아서'는 감독의 빼어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삶의 우연성과 아이러니를 바라보는 경쾌함이 돋보인다. 미국 독립영화의 대부 존 조스트 감독의 신작도 두 편이나 선보인다. 자연재해 피해자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조망한 '카츠라시마 섬의 꽃'과 가족의 해체와 복귀를 주제로 한 '타협'. '타협'은 미국의 실험독립 영화의 거장 제임스 베닝이 주연을 맡아 화제다. 특히 '카츠라시마 섬의 꽃'과 '타협' 은 세계 최초로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된다는 점이 반갑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6 23:02

"희소한 맛 선택하되 대중적 영화 껴안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목도하는 순간 전주의 봄은 전주국제영화제로 잊혀진 기억과 욕망을 깨운다. 그래서 그 봄을 준비하는 프로그래머들에게는 특히 잔인한 달이다.3번의 만류 끝에 난생 처음 프로그래머를 맡게 된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후회하고 있었고, 그를 추천한 죄(?)로 합류하게 된 이상용 프로그래머도 밀려드는 일로 대재앙을 겪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역대 프로그래머 중 사이가 제일 좋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일치했고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서도 충돌되는 지점은 없었다. 올해 초청작은 46개국 190편. 다소 부산국제영화제에 치여 기를 펴지 못한 한국영화는 김 프로그래머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비아시아 영화는 이 프로그래머가 주로 맡았다. 그러나 영화를 서로 엄밀하게 나누기 보다는 뒤섞여 생각한 것들이 많았고,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간 편이다.이들의 렌즈를 통과하고 난 초청작들에 관한 대강의 평가는 어떨까. 올해 초청작에 관해 논하려면 이전 영화제 평가에 대한 언급이 필연적일 것이다. 전주영화제는 줄곧 "다른 영화제에서는 감히 초청하기 힘든 영화들을 기꺼이 틀어주는 실험적인 장"이라는 평가와 "영화감독평론가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취향의 장"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며 성장해왔다.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보였던 곳에 다리를 놓겠다고 작정한 두 프로그래머는 "전주영화제의 새로운 화법과 소재가 주는 아주 희소한 맛을 주는 영화는 선택하되 대중적인 영화들도 껴안기 위해 신경썼다"고 밝혔다. 김 프로그래머는 "지나치게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영화들이 많아지면 영화제가 '게토(ghetto)화' 될 수 있다"고 경계했고, 이 프로그래머는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영화제가 축제이다 보니까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쪽으로 설득했다. '코리안 시네마 스케이프'에 이미 상영된 한국영화 '신세계' (감독 박훈정), '파파로티'(감독 윤종찬), '전설의 주먹'(감독 강우석) 등을 거는 방식. 그럼에도 김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형식은 늘 새로워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고, 이 프로그래머도 "과거와 비교해 현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을 중점적으로 봤다"고 했다. 저예산 상업영화 중 되도록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배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언뜻 모순 같아 보이는 이 말은 전주영화제에서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 프로그래머는 왕성한 잡식성 독서력을 바탕으로 영화 속에 묻혀 사느라 제대로 접목시키지 못했던 문학과 영화의 만남이라는 역작 기획을 내놓기도 했다. 소설가 김영하와의 친분으로 세 편의 단편소설을 이상우이진우박진성과 박진석 감독이 엮은 '숏!숏!숏! 2013'를 기획했고 "역대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지원금(1000만원)이 워낙 적어 빚져서 영화를 제작한 감독들에게 미안해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경향이 모든 시네필의 박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예산 축소, 시간 제약, 새로운 조직 등과 같은 장애물 사이에서 곡예를 벌인 전주영화제는 그러나 뒷걸음치지는 않을 것 같다. 프로그래머들의 성실성과 견고하게 단련된 예술적 체력이 전주영화제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6 23:02

전주국제영화제 야외 상영작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190편이다. 실내에서 아늑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187편. 반면 나머지 3편의 영화는 아늑함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풍성한 영화 축제 중에 어쩌면 가장 쉽고 또 가장 즐겁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주영화의 거리 지프 스페이스(옛 공무원 복지매장) '야외상영'. 야외극장에서 봄밤을 느끼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다. 이미 개봉해 흥행을 거둔 작품들을 엄선해 실패 확률은 제로. 더욱이 입장료도 무료다.- 춤추는 숲 (4월 26일 오후 8시)마을은 조용한 가운데 생기가 넘친다. "안녕하세요?" "안녕, 맥가이버! 안녕, 호호!"익숙한 별명으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동네 골목을 지나는 감독 부부는 10년 넘게 성미산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다. '성미산마을'은 마을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어진 서울 도심에 있는 마을공동체다. 이 생기 넘치는 마을에서 주민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의논하고 힘을 보탠다. "어떻게 하는 게 잘 사는 걸까?" 답답한 기성의 틀에 질문을 던지고, 좌충우돌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그렇게 생각을 나누고 보태면서 17년이 흘렀고, 성미산마을은 이제 의미 있는 도시공동체로 주목받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별종들이 살아가는 마을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한 교육재단에서 성미산을 깎아 학교를 이전하겠다고 나섰고, 서울시가 이를 허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토건 신화가 성미산을 관통하는 순간. 마을의 중심인 성미산이 위태로워지자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산을 지키는 싸움은 파란만장하지만, 성미산 사람들은 남나르게 풀어낸다. "낡은 가치를 뒤집는 유쾌한 항쟁기!"- 웰컴 투 사우스 (4월 28일 오후 8시)꼼수 부리다 인생 지대로 꼬인 소심한 기러기아빠. 오싹살벌한(?) 이웃들이 기다리는 험난한 땅끝마을로 쫓겨난다. 작은 도시의 평범한 가장 알베르토는 높은 교육열의 아내 등쌀에 못 이겨 대도시로 전근 가려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의 허술한 거짓꼼수는 곧 발각되고 알베르토는 남부 땅끝마을로 좌천되고 만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 게으르고 더러울 뿐 아니라 위험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온갖 루머와 편견에 사로잡힌 알베르토는 걱정에 휩싸인 채 남부로 떠나게 된다. 오지게 험난한 땅끝마을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그는 상상 이상의 거시기한 이웃들을 만나게 되고, 평온했던 그의 일상은 순식간에 다이나믹 해지는데- 페어리 (4월 27일 오후 8시)프랑스의 항구 도시 '르 아브르'의 작은 호텔 야간 당직으로 일하고 있는 돔.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호텔을 지키며 혼자만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돔 앞에 누추한 행색이 수상쩍어 보이는 여자가 찾아온다. 여행객이 대부분인 호텔에 짐도 없이 맨발로 나타난 그 여자는 심지어 본인이 요정이라고 말하며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해온다. 피오나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당최 믿음이 가지 않는 돔은 방을 하나 내준다. 그러던 중 돔은 샌드위치를 먹다 사레가 들려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피오나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피오나는 자신이 요정임을 증명하기 위해 돔의 두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이후 피오나와 돔은 데이트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환상적인 하루를 보내지만 행복했던 것은 잠시, 다음 날 피오나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피오나를 찾아 헤매던 돔은 그녀가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환자 가족으로 위장해 병원에 잠입 피오나를 몰래 빼내오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호텔 옥상에서 다시금 행복한 여유를 즐기고, 피오나는 돔의 아이를 낳는다. 한편, 돔이 일하던 호텔에 투숙 중이었던 한 영국인이 잃어버린 자신의 개를 찾아준 밀입국자들에 대한 답례로 그들이 영국행 페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하면서 돔과 피오나는 불법체류자들을 조사 중이던 경찰에게 브로커로 의심을 사게 되고, 그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 길에 오른다. 과연 돔은 그녀와 함께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까?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6 23:02

고석만 집행위원장 "대중성·예술성 두 마리 토끼 잡는다"

'고석만표'영화제는 어떤 색깔이 나올까. 지상파 방송에서 인정받았던 출중한 연출력이 영화제에서 어떻게 발휘될까. 영화제 '메가폰'을 잡은 지 6개월. 고석만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64)에 대한 영화계 안팎의 기대만큼 그 스스로도 어깨가 무거웠을 것 같다. 그는 취임 당시 전주영화제의 방향성과 관련해 '컨버전스의 실천과 일상성의 확보'를 내세웠다. 전주영화제의 본래 가치를 지키며 그 가치를 더욱 두텁게 하는 게 이 두 가지라는 나름의 판단에서다.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폭발하는 글로벌 컨버전스(융합)를 만들겠다는 그의 각오는 '디지털 대안'이라는 전주영화제의 기치와 닿아있다. 영화제 기둥으로 삼은 또 한 가지 '일상성'과 관련, "예술이 나와 가장 밀접한 것들로 자리매김 되어 일상성으로 인지되었을 때 비로소 문화로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고 했다. 영화제를 통해 지역과 주민이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주민이 공감하고 즐거워야 영화제가 전국적으로, 나아가 세계적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세계는, 우리는 왜 그 많은 국제영화제를 하는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정답이 있는 데."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고 위원장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멘트다.-올 영화제가 지난해와 차별성이 있다면.△전주영화제가 갖고 있는 정체성에다 플러스 알파해서 대중성을 가미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아보려 했다. '영화궁전'만 하더라도 남녀노소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많이 차려놓았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토크토크' 이벤트도 대중성을 겨냥한 것이다. 공간을 집약시킨 것도 올 영화제의 특징이다.-부산영화제에 비해 톱스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불만이 있다. △레드카페를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집행위원장의 능력과 정비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산영화제와 직접적 비교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예산만 하더라도 부산의 1/5에 불과하고, 교통편을 비롯 인프라시설에서 열악하다. 여기에 상업성을 내세우는 부산영화제와 차이가 있다. 유명 배우가 아니더라도 전주영화제를 찾는 훌륭한 영화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스파이어' 개막작에 감독과 배우가 직접 찾는 것도 평가할 일이다.-올 영화제에 특별히 권할 만한 영화가 있다면.△인도영화 특별전에 주목해줬으면 좋겠다.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인도 곳곳을 누비며 현지에서 찾아온 영화들이다. 뉴델리 중심이 아닌 인도 각 지역에서 제작된 10편의 영화를 골랐다. 역대 흥행에 성공한 '발리우드'(인도 영화 통칭)의 그늘에 가려 소개되지 못한 다양한 언어와 풍경을 담은 영화들이다. 개인적으로도 10편 모두 보고 싶다.-국내 영화계에서 전주영화제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보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정체성만으로 볼 때 세계 어떤 영화제와 비교하더라도 최상이라고 본다. 영화제는 미래 언어를 창조하는 장이다. 다만 위원장으로서 전주영화제 관객들의 2중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영화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대중성을 찾고 있는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이것저것 검증할 것이다. 킬러 콘텐츠가 무엇일지도 고민하겠다.-평소 영화제의 일상성을 강조해왔는데요.△전주 독립영화관을 눈여겨본다. 마니아층이 어디인지 살펴보았는데 40대 전후 주부들이 많다. 20대 젊은 영화마니아들이 의외로 적어 이들을 끌어낼 방안이 필요하다. 깊고 넓은 서비스를 통해 깊은 예술세계를 맛볼 수 있게 하고 싶다.

  • 영화·연극
  • 김원용
  • 2013.04.25 23:02

디지털 삼인삼색 '만날 때는…' 고바야시 감독

지난해 국제경쟁 심사위원과 '위기의 여자들'을 상영하며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던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58). 올해도 디지털 삼인삼색에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ST RANGER WHEN WE MEET)'으로 다시 전주를 찾았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영화제가 선정한 세 명의 감독에게 세계 최초 상영을 전제로 작품당 5000만원을 지원해 30분 내외 디지털 영화를 제작하도록 한 프로젝트. 올해는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 외에 장률 감독의 '풍경', 에드윈 감독의 '누군가의 남편의 배에 탄 누군가의 아내'가 함께 초청됐다.'사랑의 예감', '위기의 여자들', '일본의 비극', '백야' 등 전작에서 가족죽음, 죄(罪)에 대해 이야기했던 고바야시 감독은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에서도 이 '카드'를 선택했다. 그간 4편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며 보여줬던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는 남편 가와무라 료이치가 도쿄에 출장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사이 아내 유키코는 초등학생 아들 겐지와 함께 내연남과 외출에 나선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로 아들 겐지는 죽고 유키코도 평생 한쪽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를 안게 된다. 료이치와 유키코는 여전히 함께 살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도 오가지 않는다. 매일 같은 식당에 가서 마치 남처럼 점심을 함께 먹는 모습이 묘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내용형식적 측면에서 지난 2007년 발표한 '사랑의 예감'과 닮아 있다. '사랑의 예감'은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남자,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해 소녀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둘은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지나친다. 하지만 어느새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고바야시 감독은 "'만날 때는 언제나 타인'의 시나리오 초고는 '사랑의 예감'을 발표할 당시에 쓴 것이지만 여러 조건상 실현하기 어려웠다. 실화는 아니지만 부부 사이의 용서를 그리고 싶었다. 결국 내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죄인의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을 빌어 말하면 결국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에서 '사랑의 예감'에서 보여준 형식적 실험은 계속된다. 언어적 소통을 전혀 하지 않는 괴이한 부부를 다룸으로써 부부 관계 속의 이방인을 그려냈다. 또 내면의 갈등을 생생히 묘사하기 위해 무성영화의 요소를 빌린 영화적 실험을 감행했고, 늘 그렇듯 속전속결로 찍었다. 그는 "항상 즉흥적인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걸고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면서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관객들을 안심시켰다. 이어 "'디지털 삼인삼색'을 통해 디지털이 아니면 불가능한 영화 제작 실험과 필름 시대가 지녔던 보편성을 동시에 불어넣고 싶다. 이 프로젝트가 그 선도자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주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 배우만을 캐스팅 해 한국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추진 중이다. 그 무대는 전주 일대가 될 것이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5 23:02

★들이 쏟아지는 전주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에 별이 쏟아진다. 25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리는 전주영화제 개막식에서는 국내외 거장 감독과 스타 배우는 물론 영화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찾는다. 일단 레드카펫의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국제경쟁 심사를 맡은 류승완 감독과 배우 정우성에게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배우이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안성기,원로배우 이대근, '숏!숏!숏!2013'에 합류한 이진우 감독의 '번개와 춤을'에 출연한 배우 김서형 등도 낯익은 손님. 전주영화제에서 '달빛 길어올리기'를 선보였던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배창호이장호정지영 감독, '숏!숏!숏!2013'에 참여한 이진우이상우박진성 박진석 감독,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한 백승우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방문도 반갑다. 방송인 이다도시와 배슬기이준소이윤승아정겨운김소연강신효 등 젊은 배우들의 JIFF 방문은 처음. 해외 게스트도 화려하다. 개막작'폭스파이어'를 연출한 로랑 캉테 감독과 여배우 케이티 코시니, '디지털 삼인삼색 2013 : 이방인'에 참여한 고바야시 마사히로장률 감독, '국제경쟁'심사를 맡는 카자흐스탄의 거장 다레잔 오미르바예프 감독, '국제경쟁'에 출품한 '미친년들'의 드류 토비아 감독, '비욘드 발리우드'에 출품한 '샤히드'의 한 살 메타 감독도 있다. JIFF와 오랜 조우를 해왔던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김영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변재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등 영화제 주요 인사들도 만나볼 수 있다. 개막식 이외에도 더 많은 스타들이 영화제 기간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 상영되는 '전설의 주먹'의 강우석 감독을 포함한 주연 배우 황정민유준상정웅인성지루 등과 '축지법과 비행술'의 배우 오달수, '범죄 소년'의 배우 서영주, '오빠가 돌아왔다'의 한보배 등이 전주영화제를 빛낸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5 23:02

46개국 190편 '시네마 천국'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JIFF·집행위원장 고석만)가 프로그램 재정비를 통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영화들로 관객들과 더 넓고 깊은 소통을 시도한다. '자유·독립·소통'의 정신을 잇기 위해 '지금 여기 동시대의 영화'에 주목한 전주영화제는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와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해 초청된 상영작은 46개국 190편(장편 120편·단편 70편). 개막작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2008)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호평을 받은 프랑스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FOXFIRE), 폐막작은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와즈다'(WADJDA)이다. 올해는 '경쟁부문', 'JIFF 프로젝트', '시네마 스케이프', '영화보다 낯선', '시네마 페스트','포커스온' 등 6개 섹션 11개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와 문학의 만남이다. 영화가 한 장면과 삶을 접속시켜 풀어가듯 문학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소설 3편을 이상우·이진우·박진성과 박진석 감독이 완성한 '숏!숏!숏! 2013'은 역대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기획으로 거듭났다. 올해 카프카 탄생 130주년을 맞아 마련된 '카프카, 영화를 만나다 : 카프카 특별전'도 색다른 기획력으로 관심을 끈다. 개·폐막작은 이른바 '소녀시대'로 요약된다. 개막작 '폭스 파이어'와 폐막작 '와즈다'가 공교롭게도 소녀들의 성장기를 다뤘다. 프랑스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 파이어'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뒤 피멍 든 소녀들이 세상과 맞서는 것으로 조이스 캐롤 오츠의 동명 소설이 원작.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 하이파 만 알수르의 첫 장편영화인 '와즈다'는 또래 남자 아이들처럼 자전거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이슬람 경전인 코란 암송 대회에 나가는 것을 그린다. 전주영화제는 '포커스 온'을 통해 미국 할리우드 못지않게 왕성한 영화 제작력을 자랑하는 인도에 주목한다. '비욘드 발리우드 : 인도영화 특별전'에서는 눈과 귀를 사로잡는 현란한 춤과 음악이 특징인 힌디권 영화 외에 인도 리얼리즘 영화인 동부의 벵갈·고대 인도 문화가 녹아 있는 남부의 타밀 지역 영화들을 대거 소개한다.국제영화제 위상에 맞게 상금도 대폭 인상됐다. 앞으로 세계 영화계를 책임질 신인 감독들의 발전 가능성을 미리 엿보는 '국제경쟁' 중에서 1편을 선택해 전북대가 수여하는 '전대상'(대상·상금 2000만원)이 신설됐다. 국제경쟁·한국경쟁에 선정된 한국영화 1편에 전용관 개봉(2주 이상)·홍보마케팅비 2000만원을 지원하는 'CGV무비꼴라쥬상'은 현금 1000만원과 차기 작품을 위한 기획개발비로 1000만원을 추가로 지급된다. 이외에도 축제의 열기를 잇기 위해 다양한 만남의 장을 주선하는 '지프 톡'이 확대됐다. 지프라운지와 극장에서 벌어지는 토크 행사인'지프 톡'은 무대인사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지프라운지 톡', 영화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콘서트 톡', 평론가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크리틱 톡', 영화 제작진들과 방담을 나누는 '시네마 톡'으로 구성됐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5 23:02

"주인공들의 방황·고민, 내 고교시절과 닮은 꼴"

'변태' 감독, 한국 영화계 이단아. 이상우 감독(42)은 사람 속깨나 긁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자신의 영화 '엄마는 창녀다' , '아버지는 개다' 등에서 가족 간 불통으로 이어지는 지옥도를 그려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된 부모를 '개', '창녀'로 내몬 그의 영화적 실험은 언짢고 불편하다. 하지만 혹독하고 매운 결말에 다가갈수록 다시 화해로 돌아온다.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숏!숏!숏! 2013'에 출품할 '비상구'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그는 과격함과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았다.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지옥화'부터 '나는 쓰레기다'까지, 그가 영화 심의를 받을 때마다 제한 상영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때문에 요즘 '자체 검열'을 하는 그에게 전주영화제는 일종의 해방구다.그가 내놓은 '비상구'는 신촌의 모텔에 거주하는 우현이 주인공. 뻑치기를 하며 일상을 보내는 우현은 사귀는 여자의 성기에 새겨진 화살표를 보면서 '비상구'라 이름 붙인다. 소설에선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나 그의 영화에선 네 명의 주인공이 서로의 결핍을 이야기하며 한국사회의 무기력함을 과감하게 묘사한 작품. "솔직히 난 책을 잘 안 읽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때문에 책을 읽었고, 바로 내가 만들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촌을 무대로 벌어지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내 고등학교 시절 방황했던 것과 닮아있었습니다. 당시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막 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고민과 내가 하는 고민이 비슷했죠."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단골 레퍼토리인 가족 이야기가 빠졌다. 전작에서는 롱 테이크가 많았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컷 편집을 주로 해 영화의 속도감을 강조했다. 스타일은 달라도 "영화는 여전히 '하드코어'에 가깝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자극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자신의 영화가 더 많이 사람들이 관람했으면 한다"는 바람이 그래서 공존한다. "내 영화는 다운로드로만 본다. 이제 당당히 극장에 걸고 싶다"는 감독은 드디어 내년에 50억 가량 제작비가 투입되는 상업영화를 찍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변절(?)에 손가락질 하지 말 것. 그의 이밖의 취향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 영화·연극
  • 김정엽
  • 2013.04.24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빵 터졌네! 떠나자 빵집 로드,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빵의 향기보다 사람의 향기가 더 맛있게 떠도는 곳이다. 전북을, 아니 전국을 대표하는 빵집이 돼버린 군산 이성당과 전주 풍년제과는 빵 장인의 땀과 눈물의 의지로 구워낸 빵을 내놓아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아성(牙城)을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엔 이성당은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 풍년제과는 서울 현대백화점 목동점에 납시는 귀한 몸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 이성당의 시계는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된다. 1980년 초에 시작된 모닝 세트(토스트+샐러드+우유)로 문을 연다. 딱 오전 10시까지만 5000원에 판매되는 모닝세트는 없어서 못 판다. 마치 찌개를 연상시키는 야채스프(그 맛이 오묘해 마녀 스프로 불리기도)와 구운 식빵 4조각, 계란 프라이, 샐러드, 우유로 구성된 이 모닝세트를 먹기 위해 줄서는 일은 기본. 하루에 2~4번씩 굽는 이성당 빵을 맛보기 위해 십여 미터씩 줄을 서는 광경은 너무 흔하다. 그만큼 이성당 빵을 향한 펜심은 두텁다. 일제시대 1920년대 중반 문을 연 이성당은 초반 빵 대신 화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1945년 해방 뒤 일본인 주인이 떠나자 인근에서 조그만 빵‧과자공장을 하던 이석우씨가 가게를 인수했다. 가게 이름이 이성당이라 불린 것은 이(李)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을 의미해서다. 작고한 이종사촌 조천영씨에 이어 얼마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오남례씨와 아들 조성용씨에게로 이어진 가게는 현재 조씨의 아내 김현주씨가 맡고 있다. 이성당의 난공불락(難攻不落) 전략은 제대로 된 팥 앙금 빵과 야채 빵. 결과는 이성당의 압승이었다. 그 비법이란 재료값 아끼지 않고 야채소, 앙금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다. 이성당의 빵은 참 배부른 빵이다. 전반적으로 크기가 큼지막하다. 이성당의 효자 빵이라 불리는 팥 앙금 빵(1200원‧130g)은 실제로 껍질은 40g, 팥이 90g을 차지한다. 껍질은 얇고 팥 앙금이 두터운 게 특징. 부드러운 양갱에 가까운 찰진 팥 앙금에선 계산할 수 없는 넉넉함이 느껴진다. 최근엔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쫄깃한 맛을 더 살렸다. 일각에선 팥빵이 너무 단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김현주 사장이 오랜 실험 끝에 고집하는 것이다. 추억의 빵을 먹기 위해 오는 고객들의 입맛에는 달달한 팥빵이 익숙해져 있다는 판단. 또 하나의 인기 메뉴 야채 빵(1400원)도 없어서 못 판다. 다른 빵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세 배 이상 들어가는 야채 빵은 오후에 가면 떨어져서 구경하기도 힘들다. 튀기지 않고 구운 야채 빵은 아삭아삭한 양배추가 씹히는 맛이 일품. 우유, 달걀 대신에 쌀과 소금으로만 만들어진 블루빵(2500원), 찹쌀떡보다 더 쫄깃한 구운 모찌(1200원) 등 계속되는 새로운 메뉴 개발은 이성당이 왜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가 된다. 방부제, 유해 식품 첨가물이 하나도 없는 팥소 또한 이성당의 대박 비밀. 남편인 조성용 대표가 운영하는 가공공장 대두식품에서 공수되는 팥소는 실제 국내 제과점 70% 이상에 공급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것. 모든 음식의 맛은 품질을 보장하는 식재료에 있다는 것은 빵도 마찬가지다. 이성당에서 직접 만드는 상큼한 소프트 아이스크림(1700원), 팥빙수(5000원)를 먹으러 기름 값을 마다하고 가는 이들도 꽤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티나듯 팔리는 이성당 빵은 왜 프랜차이즈를 시도하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빵을 냉동 유통하면 맛을 담보할 수 없어서다.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이었다면, 진즉 냈을 분점이다. 최근에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대기업이 빵집을 줄줄이 내던지듯 포기했다. 한편으론 잘 됐고,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일이었다. 화려한 빵, 잘 팔리는 빵만 추구하다 보니 인생과 집념을 빵에 쏟아 부은 영세업자들의 입지만 좁게 만든 꼴이 됐다. 누구 말마따나 공존의 레시피를 개발했다면, 절제와 겸손을 앞세웠다면 빵을 둘러싼 우리의 음식문화에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성당의 빵은 땀과 눈물의 의지로 이어온, 파는 이에게나 먹는 이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주 PNB(피엔비) 풍년제과가 환갑 잔칫상을 제대로 받았다. 거의 문 닫을 위기에 처해있던 풍년제과는 최근 대박 난 초코파이로 과거의 영광이 재현되는 듯하다. 초코파이를 사러 오는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이 생경한 광경에 전주 시민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도 그럴 듯 풍년제과는 2000년대 들어 거의 쇠락의 길을 걸었다. 연거푸 내준 체인점 관리가 힘들어 맛이 들쭉날쭉했다. 장사가 안 되자 재료비를 아끼는 체인점이 생겨났다. 손님은 더 줄었다. 설상가상 격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마저 치고 들어왔다. 매달 적자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 강현희 사장은 그러나 뒤늦게 홈런을 쳤다. 기대조차 안했던 못생긴 초코파이 덕분이다. 과자와 빵의 중간 질감인 초코파이는 브라우니처럼 촉촉하면서 단단한 초콜릿 빵 사이에 크림과 딸기잼을 바르고 겉에는 초콜릿을 입혔다. 군데군데 호두도 씹힌다. 요즘엔 하루에 1000~4000개가 팔리는 효자 상품이 됐다. 덕분에 주력 상품이었던 센베이(전병 밀가루 등의 재료를 반죽해 틀에 넣고 구운 과자)도 날개달린 듯 팔리고 있다. 작고한 그의 아버지 강정문씨가 애착을 갖고 만들어온 센베이는 땅콩을 듬뿍 넣어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게 특징. 매일 200~400개씩 나가는 바람에 예약을 해도 일주일 후에나 받을 수 있다. 투박한 카스테라도 훌륭하다. 빵집을 열 때부터 만들었다는 고방 카스테라(3000원)는 옛날 카스테라 맛 그대로다. 밀가루 풋내나 베이킹 소다의 쓴맛이 전혀 없고 촉촉하고 달착지근해 추억을 자극한다. 1970년대부터 만들었다는 바닐라 향이 가득한 지푼 카스테라(3000원)는 더 부드럽고 촉촉하다. 군산 이성당 전북 군산시 중앙로1가 12-2, 063)445-2772. PNB 풍년제과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1가 40-5(본점), (063)285-6666.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맛(食) 좀 봐라! '우리끼리 가봤어~'

한 놈만 팬다. 상대방과의 기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써먹던 고전적인 방법. 그러나 제대로 승부를 보려면 숨어 있는 고수를 집어내는 게 관건이다. 전주 지역 널브러진 맛 집 중 착한 가격대로 꼽아봤다. 순전히 개인적 취향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고, 전주 MBC의 맛이 보인다를 연출한 유영민 PD의 독설도 참고했다. 이 양반은 맛 집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흥분한다. 대기업 간판을 두르고 내려온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음식점이 지역 맛 집을 초토화시키는 현실에 대해 강분한다. 그래서 애향심으로 삶이 녹아든 우리 지역 맛집을 꼽아봤다. 다들 잘 아는 전주비빔밥‧콩나물국밥은 뺐다. 국수가 섹시한 음식이라고? 누군가의 입술을 자극하는 그 보들보들한 촉감 때문이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20~30분 정도 싸드락 싸드락(전라도 말로 힘들여하지 않고 천천히 한다는 뜻)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곳. 전주 남부시장 내 위치한 세은이네와 한옥마을 내 30년 전통 옛날 손칼국수이다. 세은이네는 사장님 딸의 이름. 딸의 이름을 간판 삼아 12년 간 남부시장에서 국수집을 운영 중이다. 여수산 질 좋은 멸치와 신선한 채소로 우려낸 진한 육수가 인상적. 매일 뽑은 육수 한 바가지씩 담겨 다음날 끓일 육수의 씨앗으로 활용, 365일 12년 간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비결이다. 고명이라고는 양념간장과 파가 전부인 소박한 국수지만, 직접 담근 집 간장이라 한 번 만 젓가락질해도 감칠맛이 일품이다. 메뉴는 물 국수와 백반이 전부. 공기밥이나 국수사리를 추가로 주문할 땐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물론 전주의 유명한 칼국수집하면 전주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베테랑 칼국수(전주 성심여고 맞은편)가 엄지손가락이다. 가게가 늘 바글바글해 기다리는 일이 비일비재. 그게 싫다면 30년 전통 옛날 손칼국수로 가도 좋다. 테이블이 6개 남짓한 이 비좁고 허름한 공간은 성심여고 후문 모퉁이에 있다. 직접 빚은 면에 깊고 진한 국물로 푸짐하게 내놓는 칼국수와 수제비, 맛깔스런 배추겉절이까지 계속 나온다. 여긴 좀 멀다.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일대 전북일보사 뒷골목.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사무실이 한 때 전북은행 내에 있을 때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감독들이 자주 들락날락했던 정둔면옥이다. 큼지막한 닭발과 얼큰한 국물로 맛을 낸 닭곰국시(전라도 말로 국수)와 얼큰하게 볶아낸 오징어 철판국시도 인기. 별미는 볶아낸 땅콩에 물엿을 씌운 것. 한 때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있던 정성일씨가 속 시끄러울 때마다 여기 와선 이걸 씹으며 속을 달랬다는 후문. 전주 객사 인근 좁은 뒷골목에 위치한 김밥 이야기는 늘 즉석에서 김밥을 만들어준다. 점심 때 가면 10~15분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 질퍽하지도 않고 꼬들하지도 않아, 적당히 밥알이 살아있고 속 재료와의 조화가 좋다. 오이나 시금치 대신 부추를 넣어 만든다는 게 독특하다. 다진 소고기와 볶은 밥을 주먹만하게 뭉쳐 김가루에 굴려낸 못난이김밥은 겨자장에 찍어먹는다. 가장 인기 있는 참치김밥을 비롯해 소고기‧치즈‧고추김밥 등 종류가 다양하다. 밥과 함께 주문하는 라볶이는 김밥의 아성을 위협할 만큼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개운하고 얼큰한 짬뽕라면도 강추. 때론 예약도 안 받는다. 이 배짱 두둑한 집은 한옥마을 내 위치한 초밥 전문점 스시선. 식재료가 최상의 상태일 때만 손님에게 내놓기 때문에 예약 없이 방문할 경우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비싼 사시미는 계절에 따라 숙성 정도를 달리해 최고의 식감을 내놓으며, 활어차에서 스트레스 받은 광어와 농어는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아 3일 정도 수족관에 보관했다가 잡는다. 초밥은 물론 수제 고로케와 계란말이의 맛도 일품. 양이 적다는 게 흠이라면, 흠. 자연산 회보다 숙성시킨 선어회를 선호한다면, 노신사들이 즐겨 찾는 동락일식도 추천한다. 군산에서 갓 잡아 올린 자연산 회를 냉장 상태에서 숙성시켜 감칠맛을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자연산 민어와 광어를 일정 시간 무명천에 감싸 물기를 빼고 먹는 게 특징. 두툼한 회를 묵은 김치에 돌돌 말아 싸먹는 방식,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 것과 맛의 차원이 다르다. 사골 육수로 맛을 낸 낯선 어묵 백반도 그럭저럭. 안도현 시인이 여기를 곧잘 찾는 것은 화장실 물 내리는 옛날 방식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것마저도 시가 되나 보다. 예상했겠지만, 시설은 허름하다. 여기도 좀 멀다.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들러보면 좋은 곳.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앞 편의점 Buy the way 골목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등장하는 조그맣게 있는 만선회센타. 푸짐한 야채가 곁들여지는 (한치‧참치)회덮밥과 얼큰한 대구탕이 별미. 한치회 무침과 새우초밥이 에피타이저다. 디저트로 주는 요구르트가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의거리 일대 유명한 파스타집 차녀. 사장님이 실제로 둘째 딸이란다. 부부가 함께 호흡을 맞춰 요리하는 모습이 알콩달콩해 보인다. 돼지고기 등심과 버섯이 듬뿍 들어간 크림파스타와 담백한 그릴드 소시지를 곁들인 볶음밥이 인기 메뉴. 세계에서 손꼽히는 요리 대학 프랑스 꼬르동 블루에서 유학한 쉐프가 운영하는 프란치아. 매일 2번에 걸쳐 뽑은 생면은 신선하다. 점심시간엔 에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로 짜여진 담백한 코스 요리가 합리적인 가격대로 준비된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이탈리아 만두라 불리는 라자니아도 별미다. 단, 2~3일 전 예약할 것. 스시선 = 전주시 완산구 교동 92-9, 초밥 A 8000원, 초밥 B 1만4000원, 063)285-7878. 동락일식 =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 88-3, 모듬 사시미 1인 5만원, 오뎅 백반 1만2000원, 생선탕 1만2000원, 063)284-7454. 만선회센타 =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265-45, 회덮밥 9000원, 대구탕 9000원, 063)272-4336. 세은이네 = 전주시 완산구 전동 153-2, 물국수 4000원‧백반 5000원, 063)283-3376 30년 전통 옛날 손칼국수 = 전주시 완산구 교동 103-4, 칼국수 5000원수육 1만원 063)231-3641. 정둔면옥 = 전주시 덕진구 금암1동 728-76, 닭곰 국시‧오징어 철판국시 7000원, 063)283-3376. 김밥 이야기 =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422, 김밥 3000원대, 떡볶이 3000원, 밥류 4000~4500원. 063)284-8689. 차녀 =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2가 29-2번지, 새우베이컨토마토파스타 1만2000원, 등심버섯크림파스타 1만4000원, 그릴드 치킨 소시지 볶음밥 1만2000원. 063)285-0500. 프란치아 =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2가 750-2, 런치코스 1만8000원~2만9000원, 파스타 1만2000원~1만5000원, 063)286-4242.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Hello! 새만금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 군산 비응항에서 부안 변산까지 33km를 치닫는 새만금 방조제는 바다 위 만리장성으로 불린다. 금강호 철새 조망지, 채만식문학관, 월명공원, 진포해양공원, 비응항, 부안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 금구원 조각공원, 부안영상테마파크, 휘목 미술관, 내소사, 곰소항, 유천도요지, 김제 벽골제 등 일대에 볼거리도 가득하다. 여기에 바다와 어우러진 새만금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관람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올해로 3년째 진행되는 새만금 상설공연은 올해 더 재미있고 알찬 프로그램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새만금상설공연추진단(단장 오진욱)의 노하우와 (주)해라(대표 지윤성)의 넌버벌 퍼포먼스가 만나 전략적 마케팅을 거친 시즌별 테마 공연이 새만금 일대를 들썩거리게 한다. 20일부터 11월3일까지 대장정을 이어갈 Hello! 새만금은 한국형 라이브 국악 뮤지컬 판타스틱(2개월), 오리지널 드로잉쇼(2개월), 창작 공연(4개월)으로 채워진다. 지난해 13만여 명의 관람객들을 몰고 온 입소문 덕분에 화제의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 소개됐을 만큼 인기를 끈 비언어극 판타스틱은 자동차 정비소에 찾아온 귀신들의 한 판 음악 승부 이야기. 공연은 코믹 라이브 쇼를 표방했기에 판소리, 가야금과 대금, 해금 연주 등 국악을 소재로 하면서 상모 돌리기, 버나 돌리기, 비보이 공연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여기에 3D를 활용한 입체적 영상 기법이 더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2009)에서도 선보인 김진규 예술감독의 드로잉 쇼는 무대 전체를 화폭 삼아 즉흥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특수 효과를 덧입혀 다양한 감성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기대를 모으는 창작공연은 Hi Seoul Korea(2008) 쇼케이스를 연출한 미국의 쇼닥터(Show Doctor) 데이비드 작(David G.Zak)과 영화 쌍화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음악감독 김백찬을 참여시켜 글로벌 공연으로 다듬을 계획이다. 새만금 바람쉼터를 비롯해 관광객들이 자주 모이는 거점 장소를 도는 공연은 물론 200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을 위한 맞춤형 공연을 제공하는가 하면 학생 관람객들을 위한 진로 체험과 자원봉사 인증까지 결합시킨 신개념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전시체험이 버무려진 어린이 축제(5월4일)와 톡톡 튀는 청소년 가요제 콘셉트의 청소년 축제(8월), 트로트 가요제를 표방하는 성인 축제(10월)와 테디 베어 트릭 아트 체험전도 이어진다. 공연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2시30분 아리울예술창고에서 이어진다. 티켓 가격은 2만원. 전라북도 도민들에게는 1만2000원, 청소년 1만2000원에 제공된다. 문의 070-7716-3390~1.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소녀, 영화로 인도한 인디아영화 말하다

강민영 프로그래머(29)를 처음 본 건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코앞에 둔 분주한 사무실에서였다. 머리를 대충 질끈 묶고 뿔테 안경을 쓴 강 프로그래머를 봤을 때 정수완 前 프로그래머를 닮은 듯 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있었으나 수줍음을 늘 많이 타서 소녀 같았던 분위기가 포개졌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강 프로그래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전주영화제와의 인연은 질겼다. 2006년 처음 관객으로, 이듬해 독립영화 비평지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 기자로, JIFF의 데일리 기자로도 활동했다. 그러니까 벌써 7년 째 전주영화제를 들락날락한 마니아 관객. 그랬던 그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권 여행을 감행했다. 인도 문화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자, 한국에 소개되지 못한 아시아 영화들을 직접 부딪치면서 찾아보자는 다소 막막한 심정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자마자 이상용 프로그래머를 통해 전주영화제에 갑작스레 합류했다. 발품 팔아 수집했던 보석 같은 인도 영화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욘드 발리우드 특별전으로 연결됐고, 아시아 영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관심은 영화보다 낯선 등의 프로그래밍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은 희한하리만큼 전주영화제에서 요구하는 바와 딱 들어맞았다. 2006년부터 거의 매년 인도를 다녔던 데에는 합의되지 않은 매력에 있었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나라와 달리 인도는 주별로 특성이 강한 층위로 이뤄져 있었다. 인도는 북에서부터 남까지 기온차가 20도가 나는, 시차까지 나는 곳이에요. 그러다 보니 각 지방에 퍼져 있는 영화도 독특해요. 하지만 류시원‧한비야씨 책으로 대변되는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영화는 오히려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하지, 인도사람들에게 도 닦으러 왔다고 하면, 그건 너희 나라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묻거든요. 평소 즐겁고, 마냥 유쾌한 영화에 끌리기 보다는 다소 지루하거나 어렵더라도 새로운 형식미를 중시하는 영화들을 챙겨보는 편이었던 그는 다른 곳에선 절대 개봉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들을 보고 나서도 딱히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가 되고 나서는 고민이 많아진 듯 보였다. 좋은 영화만 고르면 끝인 줄 알았는데, 할 일이 정말 많더라구요. 초청 업무는 정말 어려워요. 오고 싶은 감독들은 많고, 다 부를 수는 없고. 연락이 잘 안 닿는 감독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시차 때문에 새벽에 감독에게 전화하는 일이 부지기수에요. 그의 본래 전공은 미술. 영화평론을 끄적대다가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2008년 5월 자신의 블로그에 고다르는 영화가 죽었다고 선언했고, 트퓌포는 영화 사랑의 세 단게를 몸소 실천하며 영화 사랑을 부르짖었고 21세기의 강민영은 그들의 말에 어느 정도 감흥을 받으며 혼자서 짝사랑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고 지금,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됐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 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흔히 역사 속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가해자, 피해자, 수혜자. 그런데 문제는 피해자는 늘 선명하지만 가해자와 수혜자는 불분명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상처 입은 전주영화제를 세상은 지우고 있었고, 말끔히 지워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런 불편함을 안고 등장한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와 이상용 프로그래머.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만난 이들은 다크 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표정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일로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핼쑥해졌고, 이상용 프로그래머도 거의 잠을 못잔 얼굴로 나타났다. 3번의 만류 끝에 난생 처음 프로그래머를 맡게 된 김 프로그래머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안 왔으면 대재앙이었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이 프로그래머는 온전히 영화제에 매달렸다. 스태프들로부터 역대 프로그래머 중 사이가 제일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일치한 데다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서도 충돌되는 지점이 이상하리만큼 거의 없었다. 올해 예년과 비슷하게 46개국 190편이 초청되기까지 이들의 협업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치여 기를 펴지 못한 한국영화는 김 프로그래머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비아시아 영화는 이 프로그래머가 주로 맡았다. 그러나 영화를 서로 엄밀하게 나누기 보다는 뒤섞여 생각한 것들이 많았고, 대화를 통해 조율해나간 편이다. 일부 섹션은 교통정리를 했다. 경쟁 부문, 지프 프로젝트, 시네마 스케이프, 영화보다 낯선, 시네마 페스트, 포커스 온 등 6개 섹션은 그대로 유지하되 19개 하위 섹션은 11개로 통합시켰다. 난해한 영화도 많은데, 섹션도 너무 많아 혼돈스럽다는 관객들의 오랜 불만을 감안한 것. 이들의 렌즈를 통과하고 난 초청작들에 관한 대강의 평가는 어떨까. 올해 초청작들에 대해 논하려면 이전 영화제 평가에 대한 언급이 필연적이다. 전주영화제는 줄곧 다른 영화제에서는 감히 초청하기 힘든 영화들을 기꺼이 틀어주는 실험적인 장이라는 평가와 영화감독‧평론가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취향의 장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며 성장해왔다.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보였던 곳에 다리를 놓겠다고 작정한 두 프로그래머는 전주영화제의 새로운 화법과 소재가 주는 아주 희소한 맛을 주는 영화는 선택하되 대중적인 영화들도 껴안기 위해 신경썼다고 밝혔다. 김 프로그래머는 지나치게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영화들이 많아지면 영화제가 게토(ghetto)화 될 수 있다고 경계했고, 이 프로그래머는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영화제가 축제이다 보니까 영화계에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쪽으로 설득했다. 코리안 시네마 스케이프에 이미 상영된 한국영화 신세계 (감독 박훈정), 파파로티(감독 윤종찬), 전설의 주먹(감독 강우석) 등이 걸리게 된 안팎의 사연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파노라마 섹션이 있어요. 여기에 포함된 상영작 덕분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분위기를 띄워놓습니다. 송강호 이병헌 같은 배우가 나타나면 난리가 나죠. 그러나 전주영화제는 이쪽에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올해 신인 감독 대신 중견 감독들을 모아보려고 했으나 잘 안 됐어요. 그럼에도 김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형식은 늘 새로워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고, 이 프로그래머도 과거와 비교해 현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을 중점적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저예산 상업영화 중 되도록 유명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배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 언뜻 모순 같아 보이는 이 말은 전주영화제에서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 프로그래머는 왕성한 잡식성 독서력을 바탕으로 영화와 문학의 만남이라는 역작 기획을 내놓았다. 소설가 김영하와의 친분으로 세 편의 단편소설을 이상우‧이진우‧박진성과 박진석 감독이 엮은 숏!숏!숏! 2013를 기획했고 역대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면서도 참여 감독들에게 미안해했다. 숏!숏!숏! 2013에 참여한 감독들에게 각각 1000만원 씩 지원되지만, 감독들이 다 빚져서 만든 영화여서다. 포커스 온에 마련된 카프카 특별전 역시 소설과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역임을 확인시켜 준 버전 업(version-up)된 오늘여기, 우리의 지형도를 확인시켜준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경향이 모든 시네필의 박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예산 축소, 시간 제약, 새로운 조직 등과 같은 울퉁불퉁한 장애물 사이에서 곡예를 벌인 전주영화제는 그러나 뒷걸음치지는 않을 것 같다. 프로그래머들의 성실성과 견고하게 단련된 예술적 체력이 전주영화제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늘 그렇듯 마니아 관객들은 이번에도 한 수 배운다는 느낌으로 헤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껏 전주영화제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보이지 않는 폭력이 만든 영웅

영웅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지만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이 말은 묘하다. 영웅 없는 시대의 불행은 영웅이 나타나 해결해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비욘드 발리우드 특별전에서 만나는 한 살 메타 감독의 영화 샤히드(SHAHID)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케이스. 샤히드 애즈미는 인권과 정의의 투사를 자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됐다가 죽음을 맞기에 이른다. 피해자는 선연한데 가해의 책임자는 흐릿한 일상의 폭력성. 감독은 이런 그로테스크한 사회에서 버텨내야 했던 샤히드 생애를 끄집어내 호명해서 운다. - 전주국제영화제 첫 방문의 소감은. JIFF에 참여하게 되어 매우 떨리고 흥분된다. 출품 영화 명단도 훌륭하고 세팅도 매력적이다.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수준 있는 관객들에게 내 영화를 소개하게 되어 매우 영광으로 생각한다. 또 이번에 전주를 방문해서 전주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대하고 있다. -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화 샤히드는 지금 우리 시대에 관한 영화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영화다. 영화 배경이 인도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불평등‧투쟁과 정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도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면 한다. 샤히드는 이미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선전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 관객과 더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내 영화에 대한 반응을 듣고 싶다. - 샤히드 제작 배경은. 샤히드는 짓밟힌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샤히드 애즈미(Shahid Azmi)라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샤히드는 정부에 의해 무고하게 테러리스트라고 낙인찍혀 스스로 변호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용감하게 변호했다는 이유로 2010년 2월 살해당했다. 그는 자원해서 이교도와의 투쟁 지하드 훈련 캠프에 참여했다가 감옥에서 약 7년간 지내다 인권과 정의의 투사가 됐다. 샤히드는 우리 시대에 관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고무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다. -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전문 연기자인가. 실화를 영화로 표현할 때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점에 신경 썼는지.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영화를 찍어 본 경험이 없거나 한두 번 정도 영화를 찍어본 배우들이다. 배우 캐스팅을 맡았던 무케쉬 츠하브라(Mukesh Chhabra)은 영화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실제적이고 생동감 있게 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나에게는 각 배우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이해하고 유기적으로 각 장면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은 즉석에서 만들어진 부분도 있고 주인공들이 거주하고 있는 직장이나 집에서 찍은 부분도 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그 앵글 앞에서 펼쳐지는 삶의 목격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샤히드가 영화로 개봉되기까지 인도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대응했는지. 또 정치적 소신을 피력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은 사실과 다르다. 이 영화는 이제 막 상업영화로 개봉되었기 때문에 그간 정부의 압력은 없었다. 사실 정부 검열기관에서도 장면 삭제 없이 검열을 통과 시켰다. 우리도 물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응당 이 영화를 반대할 것을 예상하지만, 내 생각엔 일단 그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곧 침묵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인류의 영혼과 위엄에 대한 아주 보편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다. 어떤 특정한 종교나 인종이나 카스트에 대한 영화가 아니란 뜻이다. - 영화감독이 된 이유는, 그간 내놓았던 영화를 소개한다면. 내가 왜 영화감독이 되었는지 나도 알고 싶다.(웃음)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이유는 내 이야기와 생각, 관심사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고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인도 내 철학적인 영화를 만들려는 새로운 움직임(parallel cinema movement)이 거의 죽어 있을 때, 나는 1998년 자야트(Jayate)라는 독립영화 제작자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에 찍은 영화가 Dont Take it To Heart(Dil Pe Mat Le Yaar‧2000)다. 이 영화는 뭄베이 같은 대도시의 많은 이주민들에 관한 블랙 코미디다. Deceit(Chhal‧2001)라는 갱스터 영화도 제작했다. 영화의 내용이 진부하긴 했으나 이 안에 캐스팅, 내러티브, 다양한 기술 등을 접목해 시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후 내가 찍은 영화는 번번이 나의 기대와 어긋났다. 대세에 충실히 따르는 영화를 만들려다 보니 스스로 확신이 부족했던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샤히드야 말로 내가 영화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이며 깊은 정신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 좋아하는 한국 영화 혹은 감독이 있다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들은 봉준호‧박찬욱‧김기덕 감독.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카츠라시마 섬'에서도 난 '타협'하지 않았다.

v:* {behavior:url(#default#VML);}o:* {behavior:url(#default#VML);}w:* {behavior:url(#default#VML);}.shape {behavior:url(#default#VML);}궁금했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비타협적‧비전형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온 존 조스트 감독(69)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어떤 영화를 들고 왔을지. 영화보다 낯선에 초대된 두 편의 영화 카츠라시마 섬의 꽃(THE NARCISSUS FLOWER OF KATSURASHIMA‧이하 카츠)과 타협(COMING TO TERMS)에 관해 묻는 이메일 인터뷰는 그러나 겉돈다는 인상이었다. 감독은 마치 허공의 구름 같았다. 미국의 의무병역제를 거부한 뒤 복역하는 걸 선택했을 만큼 수직에 내리꽂는 벼락같은 강렬함은 지금의 감독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오히려 종잡을 수 없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우리네 사는 모양과도 겹치는, 덤덤하게 시선을 응시한 영화에서 되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올해 출품작만 놓고 보면 별로 낯설지도 않지만, 충분히 낯익지도 않은, 이상한 인상을 남기는 거다. - JIFF 참여 소감이 어떤지. 솔직히 내 나이가 70세가 다 되었고, 여행은 물론 영화제도 많이 찾아 다녔다. 그래서 영화제 가는 게 그렇게 흥분되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충분히 즐길 준비는 돼 있다. - 한국과 인연이 남다른 것 같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교수로도 재직, 전주영화제도 2001년, 2006년 찾았던 것으로 안다. 한국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사실, 전주 영화제는 5번 갔다. 그때 참여했던 영화는 6 Easy Pieces, Muri Romani, OUI NON, La Lunga Ombra, Over Here, Swimming in Nebraska이다. 서울 살 때 영화제에 출품작 없이 전주영화제를 한 번 찾았고, 다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다가 한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연을 해 달라고 해서 갔고, 그 이후 교수를 4년 동안이나 했다. - 카츠~에서 카츠라시마 섬을 배경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2011년 3월 11일에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 이후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다녀왔다. 야마가타 지역이 지진과 쓰나미로 피해 입은 지역과 가까이 있어서, 그곳에 있는 동안 피해 입은 지역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야마가타 영화제에서 카츠라시마 섬에 대한 정보를 좀 알 수 있었고 거기서 이틀 반을 보낸 것 같다. - 영화 타협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는지. 직접적인 답은 못하겠다. 나는 영화 제작자가 시인 내지는 음악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메시지는 영화에서 사용된 언어와 아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으나 굳이 그런 장면에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설명을 듣고 나서 그 장면을 보게 되면, 영화의 외적인 요소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경험에서 벗어나 스스로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 타협에서 제임스 베닝 출연 계기와 영화에 관한 조언이 받았는지. 제임스와 알고 지낸지 거의 40여 년이 되었지만 그닥 친하지는 않았다. 영화제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좀 친해졌다. 그가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를 방문해 혹시 내 영화에 출연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그는 연기하는 건 싫지만 출연하겠다고 흔쾌히 응해줬다.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해체된 가족에서 매정한 아버지 역. 이 영화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는 매우 훌륭한 배우였다. 특히 제임스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의미 같아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좋았던 장면을 작업하면서 잃어버렸다. 그는 캘리포니아로 떠난 뒤에도 나를 위해 다시 출연해줬다. - 영화를 찍을 때 중요한 대목은. 솔직해 지는 것. 그것이 나 자신에게든, 영화의 소재든, 배우들에게도, 나아가서 관객에게. - 카츠나 타협에서 감독은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게 의아했다. 분노하고 싸우고 그런 모습이 더 인간적이지 않나. 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단순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일본 예술작품과 건축과 같이 투명할 때, 단순할 때, 명료할 때 더 정직하게 표출된다. 카cm에서 배우들에게 뭘 말해라, 뭘 해라 하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한 것뿐이다. 주목할 점은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도록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그들이 편안하게 그날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또 소망하는 바를 얘기 했을 뿐이다. 타협에서는 긴장감이 확연히, 그러나 은연중에 드러났다. 나는 관객에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분노와 다툼 대신 가족 내부에 있는 내적 긴장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다 진실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지치지는 않나. 전혀. 뭔가 새로운 일은 찾는 게 흥미롭다. 나는 전에 봤거나 했던 일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예술은 인간에 관한 진리를 반복해서 다룰 수 있으나 다르게 표현해 냄으로써 살아있고 새로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얻나. 살면서, 생각하며. 또 관찰하고, 배우면서. -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있다면. 나는 내가 현재 있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 하는 장소는 딱히 없다. 어느 곳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나는 한국 건축물, 농부들의 옷차림, 결혼 예복, 음식, 음악(K-pop은 빼고), 젊은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판소리가 좋다. 나는 대부분 한국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마구잡이식 건축물을 좋아하진 않는데 이는 시각적으로도 혼잡해 보이며, 별로 감흥도 없어 보인다. - 전주영화제에서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있다면.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JIFF 회고전에서 행진하는 청춘(Colossal Youth)과 제임스 베닝 감독의 루르(Ruhr)도 생각난다.

  • 영화·연극
  • 이화정
  • 2013.04.23 23:02

[전북일보와 함께하는 JIFF 2013] 하네케 커리큘럼 사용법

■ 커리큘럼 영화 한 편이 대학 4년보다 낫다면? 조금 뻥이다. 하지만 머리를 얼음으로 내려치는 영화는 대학에서 배운 과목 하나보다 나을 수 있다. 때론 얼음송곳이 되는 미카엘 하네케의 일련의 작품들은 충성도 높은 지프광들에게는 교양 선택이 아닌, 당연히 전공 필수다. 좋은 교사가 그 자체로 좋은 교육과정이라면, 하네케의 필모그라피는 괜찮은 커리큘럼이다. 내면의 심연을 고찰하는 커리큘럼으로서 하네케는 사실 친절한 교사는 아니지만, 피할 길 없다. 자전거 탄 소년을 선보인 다르덴 형제는 조금 따뜻해졌는데, 이 양반 아직도 골치 아픈 꼰대다. 하네케는 불편하다. 때론 비관적이다. 그는 우리의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깨우지만 도덕과 교훈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 지프에서 마주할 성과 다큐멘터리 미카엘 하네케를 앞두고 예습이든 복습이든 시간표를 짜 본다. 이사벨 위페르의 도발을 보여 준 피아니스트는 건너뛴다. 아래는 수준별 학습 커리큘럼. ■ 교양 필수 하네케는 아무르(2012)를 통해 선수만 알던 감독에서 민간인들도 제법 아는 감독이 되었다. 그러니 영감님의 심연 혹은 미궁 탐색은 아무래도 아무르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그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만큼, 명불허전이다. 이 클래식이 교양 필수인 이유는 인종이나 금전, 고상하게 문화 이런 것 들먹일 필요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관한 보편적 정서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할매는 안락한 조명의 거실에서 프레스토 16분음표의 섬세함을 연주하던 제자 알렉상드르의 피아노에 기쁨을 표현한다. 그런데 할매가 이상하다. 경동맥이 막히는 질병이 도둑처럼 찾아온 것. 부드러운 목소리로 메르시라고 말하는 고운 노인은 고독할 줄 하는 자세를 갖추고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병은 깊어진다. 도둑이 들어도 인내할 줄 알던 영감님은 도둑같이 찾아온 아내의 뇌줄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존감으로 가득 찬 할매는 헌신하는 남편 조르쥬(장 루이 트렝티냥, 아! 남과 여의 주인공)에게조차 자신의 수치심과 무력감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병원 가길 거부한다. 미동 없는 하네케의 카메라는 상호의존적이지만 독립적 존재인 독한 할머니의 심지를 닮았다. 반복되던 암전이 아예 어둠인 경우, 관객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영화는 묻는다. 평생 사랑한 아내가 갑자기 변신의 벌레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사랑의 가치는 무엇인가하고. 고독사가 사회문제인 지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노인의 세계는 있을 텐데. 늙음에 대한 준비는 100세 실손 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죽음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존재적 문제이기에 힐링하지 않고 관객들 스스로 알아서 고민하라는 것. 불편하지만 미덕이다. ■ 교양 선택 1차 대전 발발 직전 1913년,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 순수와 복종, 종교적 엄격함이 주는 불안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다룬 하얀 리본(2009)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닥쳐오는 끔찍한 폭행 뒤에는 공동체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다. 지역 토호인 남작의 권한 앞에 온 마을이 순종하고 아이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내세운 종교 앞에 순종하지만 사실 마을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남작 내외의 이중적 사생활은 위선적이며 의사의 사생활은 추잡스럽고 목사는 아이들에게 숨 막히는 제제와 억압을 종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눈을 도려낸 사람은 누구일까? 교사가 진실을 밝히려는 순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청년이 쏜 총탄에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는 1차 대전이 터지고 만다. 남작과 위선적인 어른들 위에 더 큰 폭력이 지배하고 마는 것. 그러니 폭력의 크기에 대한 우화일 수 있겠다. 이 우화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미장센으로 마치 사진첩을 보는 듯한 형식미를 자아낸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하얀 리본을 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 전공 선택 퍼니 게임(2007)은 고문에 속한다. 1997년 작품을 2007년 하네케 자신의 작품을 복제한 리메이크 작. 해질녘, 클래식이 흐르는 별장에 찾아온 잘 생긴 이놈들은 주인장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글쎄, 악마는 흰색을 입는가, 도대체 이놈들은 누구인가? 제3세계를 찾아온 유럽인들이 그들은 아니었을까 유추를 하기엔 섬뜩하다. 12시간 안에 일가족 모두 죽이는 게임을 벌이겠다(감독이 관객에게 게임을 권하듯)는 룰은 흰옷 입은 자들이 정한다. 우리는 감정을 이입하면서 가족들의 탈주가 성공하길 빌지만 영화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는데. 죄 없는 이들이 자신의 별장에서 나사를 조이듯 벌어지는 이 레미제라블에 관객은 무력감에 빠진다. 범죄를 다룬 오락영화들을 볼 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으면서 왜 퍼니 게임을 보면 죄책감이 들까? 히든(2005)의 오프닝은 고정된 카메라다. 깔끔하고 평화로운 중산층 주택가, 자동차, 행인들의 화면에는 소리가 없다. 여기 갑자기 소리가 끼어들면서 화면이 리와인드된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시점 그대로 같은 화면을 보게 되는 것. 이렇듯 히든은 특정한 쇼트의 시점 자체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관객을 벙 찧게 만든다. TV 문학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인 조르쥬는 어떠한 자료들도 자르거나 붙일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집에 자신들의 일상사를 찍은 비디오테이프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 배달된다. 니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면서 저지른 죄업을 털어놓으라고 비디오 테이프는 말하는 것. 테이프는 파도가 모래성을 조금씩 흔들어대듯 부부간의 신뢰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잃을 것 많은 중산층 사람들은 항상 응급의 봉합으로 간신히 살아가는데. 40년 넘게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조르쥬의 평온한 삶은 사실 잊고 싶은 개인의 치부이자 바로 프랑스의 치부인 것. 마지드의 자살은 너무도 진지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찌 조르쥬가 프랑스 중산층만이겠는가? 정신 승리 방법으로 기억을 감추고 조작하는 모든 현대인들의 상징일 터. 일곱 번째 대륙 (1997) 영감님의 데뷔작이다. 자동차 세차기 안의 소음과 침묵 그리고 파도가 이는 호주 어디 해변이 반복되는데. 차고가 개폐되는 소리, 도트프린터가 뱉는 기계음, 윈도우브러시 스치는 소리, 식탁에서 저작하는 소리 등 이 영화는 소리 백화점이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클로즈업으로 반복되면서 심하다 싶게 잘리는 암전의 시간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들의 대화라는 게 기껏 낼부터 신문을 못 보내게 해야겠어.다. 화면은 빵과 연장이 든 식탁은 비추어도 사람은 비추지 않는데. 이 남자 숨 막히는 독일이 싫어 호주를 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액자를 떼어낸 자리의 히끗함 뒤 단추가 붙은 채 옷을 찢는, 쇠를 찢는 소리는 살아온 삶에 대한 복수렷다. 제가 후일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조용하고 내밀한 아이의 시선은 처연한 복선이다. ■ 특강 혹은 과외 궁금하다. 세 차례의 약혼을 모두 파국으로 끝낸 남자, 보험국에서 일하다 폐결핵으로 죽은 남자 카프카. 그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 '성'(城)의 고독, 불확실성, 불안, 비이성을 경험한 K는 하네케의 영화 '성' (1997)에서 어떻게 형상화될까? 부조리한 세계에서 겪는 그의 투쟁, 종교성과 예언은 다시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건조하고 하드 보일드한 그의 목소리는 과연 어떤 결로 태어날까? 하네케에 중독된 선수에게 오스트리아에서 두 달 전 개봉된 다큐는 아주 따끈따끈한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와 김수영으로 철학을 쉽게 풀이하는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하는 4월 28일 일요일 오후의 토크 클래스 영화, 카프카를 만나다는 고문 받은 당신들을 충분히 위로할 것이다. 이자벨 위페르가 말하는 인간 미하엘 하네케에 대한 코멘트가 궁금하면 '감독 미하엘 하네케' 티켓을 끊으시라. 둥글게 둥글게 손뼉을 치면서 환하게 웃으라고 고함칠 때, "링가링가링" 하면서 춤을 추는 시늉을 하며 극장에 가지만, 하네케 책걸이를 마친 우리는, 이제 선수다. /영화평론가 신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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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2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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