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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룡 前 총재는

김삼룡 전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는 따라붙는 애칭이 많다. 대학 총장, 향토사학가, 애향운동가 등 수식어가 유난하다. "무엇으로 불리우고 싶냐"는 물음에 "그때그때 상황에 맡게 불러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최선과 열정을 쏟아온 인생역정의 배려였다.1925년 정읍시 북면 화해리에서 3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나 할머니의 선업(善業)으로 오늘의 위치에 이르게 됐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대종사(박중빈. 1891~1943)와 후계 종법사 정산종사(송규. 1900~1962)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할머니 당대의 집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 인연으로 14세에 익산 중앙총부로 출가했으며, 그 5년만에 대종사가 열반에 드는 슬픔과 허탈에 빠졌다. 인생의 본질에 눈 뜨는 시기였다.해방 다음해 설립된 유일학림(원광대학교 전신)의 전문부 1기생으로 3년 교육과정을 마치고 군산교당 교무를 거쳐 원광대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그 학교에 전임강사로 돌아온 것은 35세 되던 1959년이었다. 세상일은 수레바퀴처럼 처음은 힘들어도 일단 구르면 탄력이 붙는 걸까. 학생처장 등을 맡으면서 대학면모를 다졌고 1971년 종합대학 승격 후에는 교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1973년은 또 하나의 운명적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맡게 된 것이다. 고고학은 전공이나 강의와 관련이 없었던 비교적 생소한 분야였다. 하지만 지역에는 마한 혹은 백제와 관련된 유적과 이를 뒷받침할 기록, 그리고 다양한 구비설이 남아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익산이 백제의 수도인가, 미륵사는 이와 관련해 창건되었는지 등은 연구 과제로 내려왔다. 그 과정에 황수영 이병도 전영래 이병기 등 학자들이 뜻을 모았다.무던하게 쫓아다닌 결과 1984년 59세로 일본 쯔꾸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그러던 중 박길진 초대학장의 열반으로 1986년 총장직에 올랐다. 하나의 인연이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널리 뻗어가는 모양새였다. 그 다음해는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를 맡게 된다. 진기풍이존익이치백 부총재와 방영선 사무총장이 오랫동안 함께 일을 꾸렸다. 1990년대에 만든 '애향장학금'의 수혜대상 1호는 서울대 재학생 유성엽(현 국회의원)에게 돌아갔다.고희가 된 1994년 8년간의 총장직을 마감하고, 2003년에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직을, 2006년에는 33년간 몸담아 온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직을 차례로 그만두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무궁화장, 전북대상(학술부문), 전라북도 문화상, 전라북도 어른상 등은 이런 일련의 활동 평가다. 파고들었던 일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자서전에 담아 내년에 발간할 생각이다.

  • 기획
  • 최동성
  • 2011.10.25 23:02

김삼룡 前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

김삼룡 전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86)는 취재진을 합장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17일 오후 정원 잔디가 곱게 자란 익산시 소재 원불교중앙총부 원로원에서다.임기 3년의 총재직을 내리 5차례 역임한 지역 원로로서 전북의 비전을 인터뷰 2시간 넘게 가슴으로 풀어냈다. 이따금 유머 섞인 반문 화법이었지만 분위기를 긴장시키는 외유내강의 인상이 남달라 보였다. 세상 모든 일이 인과응보의 진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대목에서는 원불교가 모시는 일원상(一圓相)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전북의 현안인 새만금사업도 도민들의 땀과 눈물로 엮어낸 만큼 지역의 미래상으로 내다본 것이다. 문화적 자존심을 세우는 데도 배수진이 없었다. 익산 백제문화 연구의 산증인이다.그 힘은 어데서 나오는 걸까. "내 평생 여러 가지 일을 해왔으나 원불교에 몸담았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온 거죠. 그게 고마운 거지." 교단의 최고 지도자급인 종사(宗師)로서 신앙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된 생활이 지역과 함께 하는 시작과 끝이 없는 연속의 길이었다.-애향운동본부를 오랫동안 이끌어 오셨습니다. 못다 한 일이 있습니까."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애향운동본부의 설립목표는 이름 그대로 애향인거죠. 애향이란 게 어디 마디가 있나요. 그래서 현재 진행형으로 봐주시면 됩니다."-도민들의 애향의식은 어떤가요."돈 벌면 타 지역으로 이사하는 게 문제죠. 고향을 더 발전시키겠다면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없어요. 고소고발 사건도 너무 많아요. 당연히 무고가 난무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곳에 지역화합이 가능하겠습니까. 전북이 잘살고 못사는 건 우선 우리 내부에 원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경제발전도 챙겨야 하겠지만 의식개혁이 매우 중요해요.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도세가 비교적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긍심과 자신감을 단단히 가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전북애향운동본부가 막 시작한 '긍정의 힘으로 전북의 미래를 열자'는 정신운동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생각합니다."-그게 쉽게 되는 건 아닐 텐데요."그렇습니다. 정신운동이 쉽게 된다고는 보질 않아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얼마나 의식전환을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잠자고 있는 듯한 우리 특유의 근성과 도전의식을 되살려 단결한다면 지역발전에 기대하는 만큼 보탬이 될 거예요. 그 꼭지 점에 애향운동본부가 앞장 서야 합니다."-새만금사업 추진에 많은 공로를 남기셨네요."개발과 보전이란 이해가 충돌하면서 힘들었어요. 쓴맛을 느꼈죠. (웃음) 1999년에는 환경단체가 새만금호의 수질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착공 8년만에 개발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사업 재검토 위기가 몰아친 겁니다. 애향운동부는 사업을 지속시키려고 60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총리실, 환경부, 해양수산부에 전달했습니다. 직접 마이크를 들고 각 시군을 돌아다니던 내 모습이 기억나네요."-그때 일화가 있을 것 같아요."한명숙 환경부장관에게 그 서명부를 전달할 때였어요. '새만금사업 지속추진회' 목사님들과 같이 가서 '이 사업은 국책사업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더 멀리 보고 받아들여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그러자 한 장관은 '소위 환경부장관이 환경파괴를 잘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직책상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냅다 거부하던데요."-그래서 장관실을 뛰쳐나왔나요."아닙니다. 충격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뜸 내가 물었어요. '가을철 농촌은 까치들이 떼로 몰려 사과를 파먹어 한해 농사를 망치는 판에 길조라는 까치를 살려야 합니까, 아니면 사람을 살려야 합니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거죠. 돌아오는 대답은 황망해 보였습니다. '총재께서 잘 아니까 판단해보시라'는 거였어요. 장관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 같네요.(웃음)"-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말 아닌가요."그래요. 그때는 환경단체들이 방조제가 조성되면 갯벌이 사라지고 환경파괴가 심각해질 것이란 주장이 강했어요. 물론 환경보호는 오늘날 인류가 염두에 둬야 할 지상과제란 걸 모르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 의견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되고, 소홀해서도 안 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이 집을 짓거나 도로를 개설해서 살아가는 게 더 우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새만금사업은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보는데, 유독 이 사업만 못하게 막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갯벌도 그렇지요, 어디 사라졌습니까."-새만금 현장에 가신 적은 언제입니까."수도 없이 가보았고,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찾고 싶은 곳입니다."-왜 그런가요."애착이 많이 가는 걸요. 갈 때마다 변하는 모습을 보면 감회도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거대한 바다가 육지로 바뀌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잖아요.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소원 섞인 노래도 이런 측면일 거예요."-개발전망은 어떨까요."세계인들이 몰려오는 멋진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사업지구 일대에 있는 선유도 비응도 비안도 야미도 신시도 등 지명처럼 이름만 들어도 신선들이 신공항으로 대거 들어와 아름다운 새로운 시장(도시)이 생길 겁니다. 새만금은 20년 후면 대한민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 속의 중심도시로 변해 있을 거예요. 그 시기는 우리들의 몫으로 얼마만큼 투자하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삼성의 투자계획을 의심하는 시각이 있던데요."그건 의심하는 게 아니라, MOU 체결내용을 제대로 추진하라고 재촉하는 차원일 겁니다. 거대 그룹이 정부와 지역에 약속한 거 아닙니까. 그럼 믿고 추진하는 거예요. 쓸데없이 확대 해석할 이유가 없어요. 틀림없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죠. 마한백제문화연구에 유독 신경을 쓰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1973년초 익산 유지들이 우리 대학 박길진 총장을 찾아왔어요. 주변에 문화유산이 깔려 있는데 보존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지어 탑을 넘어뜨려 돌다리를 만들 지경이란 겁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그해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설립됐어요. 교무처장이던 내가 초대 소장을 맡게 됐습니다."-그간 괄목할만한 연구활동이 돋보입니다. 미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설에 대한 보다 확실한 규명이죠. 그러나 익산에는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왕궁터와 국립사찰터, 성곽과 왕릉 등이 남아 있고, 1970년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신앙 영험기록인 '관세음응험기'를 보면 익산천도 기록이 있어요. 이 정도면 한 때 임금이 살아왔다는 게 명백하지 않는가요. '삼국사기'에 천도사실이 없다는 일각의 의견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그 이유가 뭔가요."금마왕궁 미륵사지권역과 웅포일원의 입점리권역으로 대표되는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잠정목록에 등재되고, 지난 2월에는 문화재청이 세계유산 등재 우선추진유산으로 선정했거든요. 그걸 보면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 아닙니까. 천도설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겠지요. 천도사실은 지금 그림퍼즐처럼 하나둘씩 완성되고 있어요. 그래서 새롭게 구성된 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위원회의 활동이 기대됩니다."-역사유적지들이 상당수 유구로 남아 있습니다. 지상복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1970년대부터 미륵사지를 필두로 왕궁리 유적, 쌍릉, 입점리 고분군, 연동리 석불좌상, 제석사지 등 수많은 발굴이 이뤄지고 있어요.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2001년 해체가 시작되어 지난해 발굴조사까지 마쳤네요. 복원은 각계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해체 전 남아있던 6층까지만 부분 복원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습니다. 백제문화유산지킴이가 이런 미륵사 복원사업에 대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쉬지 않고 일하시는군요. 아버지로서는 어떤 분입니까."나는 몰라요. 허허허.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많은 시간을 같이 못해 미안할 따름이죠. 3남2녀를 길렀습니다. 둘은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사업가, 병원장, 대학 교직원을 하고 있어요. 자식은 비교적 잘 키운 셈 아닌가요. 아이들 교육은 아내가 도맡아서 했습니다."-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가요."아침 5시에 일어나 원로원 옆에 있는 대각전에서 1시간여 동안 좌선할 때지요. 일상을 벗어버리고 마음에 사무치는 경건함이 해가 갈수록 더욱 소중해지기 때문입니다."

  • 기획
  • 최동성
  • 2011.10.25 23:02

스티브 와일러 '로컬리티' 대표

'로컬리티(Locality)'는 영국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지역공동체운동을 컨설팅하고 지원하는 대표적인 기구다. 로컬리티는 지난 4월 출범했는데, 1970년대부터 영국의 마을만들기와 지역재생을 주도해온 비영리기관 'DTA(Development Trust Association)'와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네트워크기관 'Bassac'이 연합해 만든 단체다. DTA대표였던 스티브 와일러씨는 지금은 로컬리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스티브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지역공동체운동의 주체와 활용자산을 지역공동체에서 찾는 것이다. 그는 "지역에는 주민이 있고 건물도 있고 토지도 있고 역사도 있다"며 "이 모든 것들이 자산이 될 수도 있고, 문제를 야기시킬수도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공동체사업은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 할 수 있다. 지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고, 기술을 공유할 수도 있다"며 "지역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다양하다는 것을 먼저 알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역 공동체의 창의성과 가능성이 공동체사업을 위한 자산이라는 말도 덧붙였다.스티브대표는 지방정부가 과감하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영국의 공동체사업이 활성화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지역공동체사업에 활용되는 토지와 건물의 대부분은 정부 소유에서 지역공동체소유로 이전한 것들이다. 지방정부와 기업에서 공동체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고, 공동체도 긍정적인 사업가정신을 가져 가능했다는 것이다.그는 "독립적인 지역공동체조직을 양성하는 일과 함께 공동체를 위한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지역공동체사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또한 "공동체 개개인 모두의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기회를 가지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포용력도 공동체사업을 위해 명심해야할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 기획
  • 은수정
  • 2011.10.24 23:02

13. 영국의 지역공동체 사례와 로컬리티

영국에는 지역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조직이 800여개가 있다. 형태는 지역공동체기업(마을기업), 개발신탁, 사회복지관, 사회적행동센터, 사회적기업, 지역공동체그룹 등 다양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유사하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경제적자립과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수익은 다시 지역에 재투자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한다.영국내 지역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민간 기구 '로컬리티(Locality)'의 스티브 와일러(Steve Wyler)대표는 "영국에서의 지역공동체운동은 대부분 정부나 기업운영이 실패한 취약하고 열악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절반은 시골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경험과 지식 기술을 공유해 지역을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이익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역공동체사업은 아동복지, 카페나 음식점, 공간 대여, (저렴한)주택공급, 공공서비스, 교육, 공동체소유의 상점이나 술집, 축제, 직업훈련, 취업알선, 재생에너지, 의료센터, 교통, 공원과 정원조성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스티브대표는 "공동체사업 아이디어는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나오는데, 오히려 빈곤한 지역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대표적인 공동체운동 사례다.요크셔(Yorkshire)지역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며 공동화되자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술집이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마을 주민들이 술집을 공동주주형식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300명이 주주로 참여했다. '허즈웰(Hudswell)술집'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주민들은 인근에 상점도 열고 치킨집도 여는 등 공동체 상점을 늘려가고 있다. 이들 공동체상점이 활성화되면서 주민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고 마을에도 활력이 생겼다.웨일즈 북서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 카너븐(Caernafon)은 공동주택과 문화공간 운영으로 공동체운동을 하고 있다. 마을의 빈 건물을 활용해 예술가들이 입주하는 아트센터를 만들었는데, 아트센터가 주목받으면서 주변에 호텔까지 들어섰다. 특히 아트센터로 조성된 건물은 마을공동체가 8년여동안 지방정부를 설득해 얻은 곳이다. 카너븐에서는 집을 구할수 없는 빈곤한 이웃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집도 제공하고 있다.런던의 서부, 래드브로크 그로브(Ladbroke Grove)도 지역내 빈 건물을 지역공동체 소유로 이전받아 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고가도로 아래쪽 빈 공간에 암벽타기 시설을 마련해 스포츠시설로 활용하고 있다.런던 사우스뱅크(London South Bank) 코인스트리트(Coin street) 공동체에도 지방정부에서 공동체사업을 위한 땅과 빈 건물을 임대해줬다. 코인스트리트 공동체는 부지와 건물을 활용해 레스토랑과 상점을 열었고, 빈 건물은 사무실과 집으로 임대사업도 벌이고 있다.영국 남쪽의 와이트섬(Isle of Wight)은 쇠락한 시설과 풍광으로 관광지로는 인기가 없는 곳이었다. 마을주민들이 지역 축제(Ryde)를 열면서 관광객들이 다시 찾게 됐고, 섬에 수입이 생기자 재투자가 활발히 이뤄져 관광명소가 됐다.더럼(Durham) 카운티는 탄광촌이었다. 광산이 폐광되면서 일자리가 없어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중 주민들이 화초가꾸기를 공동체 사업으로 정했다. 5000여명의 주민중 3000여명이 참여해 화초를 키우고 정원을 가꾸면서 더럼 카운티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2위에 선정됐다. 이제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은 강해졌고, 수입원도 생겼으며, 관광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은수정
  • 2011.10.24 23:02

20.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다보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약을 잘 드시지 않아서 뇌경색, 뇌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여 급성기 병원에서 치료 받고 사후관리를 위해 입원하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가끔은 약에 너무 의존해 부작용이 발생하여 오시는 경우도 있다.68세 박할머니가 그런 경우셨다. 할머니는 자택에서 요양보호사의 간호를 받던 중 의식상태가 점차 나빠져 입원했다. 평소에 척추의 압박골절과 요통으로 종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장기간 처방약을 복용하는 중이었다.그런데 복용하는 약을 모두 가져오도록 해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자가 수개월 동안 복용한 약은 하루 3번, 한번에 열여섯알이었다. 정형외과 약 외에도 치매와 뇌기능 개선을 위한 신경과 약, 요실금으로 비뇨기과 약, 속쓰림으로 위장약까지 총 4개 진료과에서 하루 48개의 알약을 복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환자의 약보따리 속에는 언제 지었는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환약도 있었다."약만 드셔도 배부르셨겠네요" 했더니 꾸벅꾸벅 졸던 환자가 "그래도 그 약을 먹어야 살아"라며 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셨다.환자를 수일에 걸쳐서 설득해서 꼭 필요한 약 이외의 약은 모두 중단하도록 하고 한번에 5알 정도로 줄이고, 비타민제와 철분, 칼슘 등 노인에게 꼭 필요한 영양제를 보충해줬다. 한 달 정도 지나니 어지럽고 기운 없고 졸리기만 하다며 계속 누워있던 환자가 워커를 사용해서 걷는 등 활동을 잘 했다."전에 드시던 약 또 드시고 싶으세요?" 했더니 할머니는 "안돼. 그렇게 다 먹으면 약이 독이 되지" 하면서 계면쩍게 웃었다.노인 환자는 신장과 간의 기능이 젊은 사람과 달라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약을 많이 먹게 되고 약물 상호작용과 부작용들이 발생하기도 한다.요양병원의 내과의사로서 내가 하는 일이 환자의 증상에 따라 주사와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환자가 기존에 복용하던 여러 군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정리해주는 일이다.'과유불급'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인 것 같다.노인 환자를 대할 때 꼭 다음 수칙을 지켰으면 한다.첫째, 약은 꼭 필요한 약만 처방하고 알수를 줄인다. 둘째, 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양, 총칼로리는 줄이되 단백질 섭취비율은 늘리고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해 준다. 셋째, 최대한 신체활동량을 늘리게 노력하면서 와상환자라도 침대에서 팔운동이라도 해서, 열심히 운동해야 혈액순환이 잘 되고 근력이 유지된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넷째, 고혈압, 당뇨병, 우울증, 빈혈, 골다공증 등이 발생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잘 파악한다. 다섯째, 가족과 의료진이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고 손과 등을 자주 만져주고 다독여 준다 등이다.정치경제적으로 격동기에 젊은 날 고생이 많으셨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지금, 많이 외로우시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전화 한 통, 따뜻한 몸짓 하나가 주는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더불어 전문의사와 상의해 치매와 노인병 예방에 효과가 입증된 비타민과 무기질이 함유된 영양제를 선물해 드리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김정은(효사랑전주요양병원 내과 전문의)

  • 기획
  • 강정원
  • 2011.10.24 23:02

Q&A로 알아보는 천식

Q. 천식은 어떻게 진단하나요?A. 환자의 증상과 병력이 중요한 진단적 지표가 됩니다. 따라서 비특이적이 호흡기 증상, 즉 기침, 객담, 가슴 답답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확실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원에서는 기도의 과민성을 확인하는 검사와 천식의 원인 감별에 필요한 검사 등을 받게 됩니다.Q. 흡연은 천식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A. 일단 천식이 있는 환자에게는 흡연은 치명적인 악화 인자가 됩니다. 천식 자체를 악화 시키게 되고 천식 발작의 가능성을 높이며 기도를 영구적으로 손상 시킬 가능성을 높이게 됩니다. 간접흡연 역시 이와 동등한 악영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족의 금연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고 임산부의 경우 흡연을 하게 되면 화학 물질들이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어 태아의 발달하고 있는 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산모뿐만 아니라 아기의 폐에 천식과 같은 문제점을 일으킬 수도 있게 됩니다. 또한 흡연자와 같이 사는 어린이들은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기 쉽고 이러한 감염이 천식의 유발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Q. 실내 환경 관리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A. 건조한 공기관리와 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기가 찬 집에는 진드기, 곰팡이, 박테리아가 더 많으며 다양한 호흡기 질환과 관련됩니다. 진드기와 곰팡이의 생장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습도를 60% 이하로 해야 하며 적절하게 환기를 시키는 것은 실내 적정 습도 유지에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Q. 공기 필터를 이용한 공기 청정기의 사용은 천식 유발 억제에 유용한가요?A. 공기 필터는 집 먼지인 진드기에 의한 천식 감소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알레르기 비염에 의한 코 증상에 유용할 수 있습니다. 천식 유발 인자로서 작동하게 되는 진드기는 담요, 베개, 쿠션 등의 사람과 밀접한 알레르겐 원에 의해 간헐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먼 곳에서 작용하는 공기 필터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노출을 충분히 막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소리 교수(전북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4 23:02

21. 천식

대표적인 만성 기도 질환인 천식. 천식은 단순 감기와는 다른 질환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기온이 떨어지고, 일교차가 심해지는 환절기를 지나 완연한 늦가을로 접어드는 때가 되면 동네 병원에서부터 대학병원까지 다양한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감기 환자들이 문지방이 닳게 드나들게 된다. 대부분의 감기는 일반적인 보존 치료와 휴식으로 며칠 사이에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나 천식과 같은 만성 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은 유독 길고 심한 그리고 자주 반복되는 감기 증상을 호소하게 되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은 쉽게 접하는 질환이지만 잘못된 지식으로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은 천식은 어떤 질환일까?전북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김소리 교수에게 천식에 대해 알아봤다.▲ 천식이란?천식은 폐,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기도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천식의 증상은 기도에서 나타나는 염증 반응에 의해 일어난다. 천식의 기도 염증 상태에서는 기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좁아지게 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염증 반응은 '쌕쌕거림', '호흡곤란', '가슴 답답함', '기침'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천식 발작은 경한 경우에는 별다른 치료 없이도 호전되기도 하지만, 치료를 받게 되면 신속한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게 되고 이후 연속적인 천식 발작을 예방할 수도 있다. 만약 환자가 아주 심한 천식 발작에 빠지게 되면 응급실에서의 처치가 요구되는 상태에도 빠지게 된다.천식은 대표적인 만성 기도 질환이다. 또한, 늘 증상이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환자 마다 증상이 다양하게 발현된 뿐만 아니라 각 개인별로도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는 증상의 가변성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러한 천식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나 일반적인 단순 감기와 같은 유사 급성 질환으로 생각하고 적절한 검사나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환자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식의 원인아직까지 천식의 원인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천식이 생길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고 실제로 천식, 건초 열, 또는 습진 등의 가족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아마 이러한 내인적인 소인과 외부 환경적 인자에 의한 자극이 함께 작동해 천식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되지만 완전하게 그 기전이 이해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집 먼지인 진드기를 대표로 하는 다양한 알레르겐(알레르기 항원)이 천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들에서도 천식은 발병한다.▲ 천식의 유발악화 인자각 환자마다 차이는 있으나 주로 다음과 같은 인자들이 천식(발작)의 유발과 악화에 관여한다. △감염(대표적으로 단순 감기나 독감과 같은 상기도 바이러스 감염) △ 알레르겐(대부분 집 먼지인 진드기에 의한 경우가 많음) △불안정한 감정 상태(심한 분노 및 불안 상태가 영향을 줄 수 있음) △공해와 같은 자극인자 △흡연 및 간접흡연 △추위 등 기온 변화 △식품첨가물 및 식품 알레르겐 △ 다양한 약제(대표적으로 아스피린 유발 천식, 베타 차단제, 및 소염제 등) △운동, 강한 자극적인 냄새, 스프레이 등이다.운동을 제외한 이와 같은 유발 인자들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기도의 염증 상태가 치료를 통해 조절되지 않는 상태에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는 경우 이러한 유발악화 인자에 대한 민감도가 심해져 보다 심각한 천식 발작을 유발 할 수도 있어서 꾸준한 관리와 치료가 필수적이다.▲ 천식의 경과 및 예후현재까지의 치료 약제로 천식은 완치가 되는 질환은 아니다. 만성 기도 염증 질환으로 꾸준한 조절이 요구되는 질환이다. 종종 소아 천식의 경우에는 점차 자라면서 규칙적인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질환이 소실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 병력이 있는 경우, 일생 동안 다시 천식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도 같이 가지게 된다. 한편, 알레르기 천식의 경우 해당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 치료 등으로 거의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노릴 수도 있으나 이 같은 경우는 많지 않다.최근 천식 조절에 효과적인 다양한 약제가 개발돼 사용 되고 있고, 또 신개념의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약제를 활용함으로써 많은 환자들이 천식을 조절하게 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직장 및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고, 밤에 불편 없이 수면을 취하게 되며, 대부분의 천식 발작을 예방할 수 있다. 천식이 완치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해 치료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천식의 꾸준한 조절을 통해 일상생활에 제약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기회자체를 버리는 것과 같다.▲ 천식의 치료*비약물적 치료 요법= 천식의 유발악화 인자를 회피하는 것이 그 주된 비약물적 치료 요법이 된다. 금연을 반드시 지키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로 인한 간접흡연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기를 자주 시켜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등 실내 환경을 관리해야 한다. 강한 향의 향수나 화장품, 방향제 등을 주의하고 찬 공기에 직접 노출을 피해야 한다.*약물적 치료 요법= 천식약물은 흡입제나 알약으로 투여된다. 대부분의 경우 최선의 방법은 흡입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약물이 필요한 곳에 도달해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소량으로 작용 발휘가 가능하고 부작용은 훨씬 적어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 기획
  • 강정원
  • 2011.10.24 23:02

19. 조선말 대학자 정교

정교(鄭喬18561925)는 1864년(고종 1)부터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이 망할 때까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의 저자다. 그는 개화기의 관료이자 지식인으로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주도하였고 애국계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인물이다. 한일병탄이 되자 모든 활동을 접고 낙향하여 지내다가 전주에서 거주하다 1925년 익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그가 전주에서 국학 관련 연구를 계속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정교는 누구인가정교는 1856년 7월 서울에서 출생하여 1925년 3월 이리에서 생을 마쳤다. 본관은 하남이며 호는 추인(秋人)이다. 정교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그의 어린 시절 모습과 교류한 인사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공부했는지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정교는 후리후리한 키에 가무스름한 얼굴은 좀 긴편이었다고 전해진다. 짧게 깎은 머리에는 탕건(宕巾)을 쓰고 탕건에는 갓을 받쳐 쓴 풍채는 언뜻 보기에 시골 노인 같으나 빛나는 눈빛과 비범한 풍채는 노학자의 풍모를 드러냈다고 한다.정교의 첫 관직은 1894년 궁내부주사이다. 그 후 그는 1895년 4월 수원부 판관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7월 장연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사임하였다. 정교는 '박학호고(博學好古)', '독서지인(讀書之人)'으로 평가될 정도로 유학적 소양이 깊었다.그는 1898년 1월부터는 독립협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서기(書記), 제의(提議), 총대위원(摠代委員)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정교는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시종원시종(侍從院侍從)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898년 8월에 독립협회의 사법위원(司法委員)이 되면서부터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고 이상재, 이건호와 함께 중추원관제 개정안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조선 정부는 같은 해 11월 중추원관제 개정안을 반포하면서 정교를 비롯한 17명의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는데 만민공동회의 투쟁 끝에 석방되었다.정교는 1898년 12월 독립협회 해산 후 미국인 해리 셔먼의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1899년 8월 배재학당으로 옮겨 1904년 1월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정교는 1905년 10월 내부대신 이지용의 추천으로 제주군수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1906년 1월에는 학부 참서관이 되었고, 2월에는 외국어학교장을 겸하였다. 그러나 학부대신 이완용과 의견대립으로 곡산군수로 좌천되었다. 정교는 병이 있어 부임하지 못하다가 다음해인 1907년 5월 곡산에 도착하였으며 약 100여일이 지난 뒤에 사임하고 돌아왔다. 그후 관료로서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정교, 전주에 자리를 잡다정교가 1910년 이후 전주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작촌(鵲村) 조병희(趙炳喜, 1913-2003)의 '국학연구에 몰두한 추인 정교선생'(완산고을의 맥박, 1994)에서 확인된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게 되자 분노와 허탈감에 빠진 정교는 아들의 근무처인 전주 삼남은행이 있는 전주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노학자 추인 정교는 날마다 무엇인가 저술에 골몰하고 있었으나 전주 부중에서는 그가 무엇하는 사람이고,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전주에서 정교와 교류한 인사는 조병희의 부친 조춘원(趙春元)과 가람 이병기(李秉岐)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두 사람은 교원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여가만 생기면 정교를 찾아가 붓글씨를 영어로 배우는 한편 무엇인가 글을 받아쓰곤 하였다고 한다.조병희의 부친과 가람 이병기는 정교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던 관계로 조병희는 그의 집에 심부름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조병희의 나이 열 한 살 되던 해인 1920년 여름 전주에 뜻하지 아니한 폭우로 전주천이 범람하게 되자, 서학동과 완산동의 천변지대는 침수되었다. 냇물이 빠지고 나서는 전염병이 만연하여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때 조병희는 이질(痢疾)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였고 부친의 말씀에 따라 정교 문하에서 글(한문)을 익히는 한편 자잘한 일을 거들다가 6개월 뒤에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계년사'를 편찬한 정교정교는 '대한계년사'를 비롯하여 국학 관련 저술을 많이 남겼다. 역사서로는 '대동역사(大東歷史)', '남명강목(南明綱目)', '민회실기(民會實記)', '홍경래전(洪景來傳)' 등이 있으며,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 '대한자강회월보(大韓自强會月報)', '대한협회회보(大韓協會會報)'에 국제법과 정당에 관한 논설을 쓰기도 하였다. 특히 '대한계년사'는 독립협회나 개화기 역사인식을 다룰 때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이의 편찬시기에 대해서 정교 자신이 뚜렷이 밝히지 않았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시기적으로 가장 최근의 사건은 1913년 10월 손문(孫文)이 원세개(遠世凱)에 쫓겨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 사건이다. 따라서 정교가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대한계년사'를 중점적으로 저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대한계년사'는 총 7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52년 고종의 탄생부터 1910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계년사'는 관보(官報), 각종 신문류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였으며 나름대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료를 충실하게 인용하였으며 3인칭 시점을 사용하고 자기의 의견이 다른 상소나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해 솔직하고 신랄한 평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최근세사의 중요한 사료(史料)가 될 뿐만 아니라, 특히 독립협회의 활동상황을 상세히 기술하였으므로 이 방면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정교와 '대한계년사'를 전북의 문화자산으로정교는 개화기 관료이자 유교적 지식인으로서 끊임없이 사회개혁을 주장하였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고 후에는 애국계몽운동으로 이어나갔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한 정교가 한일병탄 이후에 전주에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즉 개화기 국학의 대학자가 바로 전주에서 '대한계년사'를 비롯한 저술활동을 활발하게 이어나갔던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실이 전주에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학자 정교는 전주라는 공간에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 소리 없이 역사를 정리하고 서술하는 작업을 묵묵히 진행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전북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변주승 전주대 교수가 중심이 된 한국고전문화연구원에서 정교의 '대한계년사'의 전체를 번역 출판하였다는 것이다./ 이병규 문화전문시민기자(동학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4 23:02

임정엽 완주군수

지난달 23~25일 완주 고산 자연휴양림일대에서 열린 '와일드푸드 축제'가 첫 개최임에도 성공적으로 치러져 긴 여운을 주고 있다.3일간의 축제기간 동안 행사장인 고산자연휴양림 일대를 찾은 관광객은 10만명인 것으로 추산되고 다양한 행사와 시식, 판매 등을 통해 주민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5억원에 이른다. 구이면의 경우 8개 마을이 축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모두 4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지난해까지 총 14번 치러진 대둔산축제가 고작 3만명 방문, 2000만원 정도의 농산물 판매를 기록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무엇보다 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 완주군의 강점인 로컬푸드와 연계한 특색있는 음식을 선보임으로써, 가을 음식축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의의가 크다.완주 와일드푸드 축제를 주도한 임정엽 군수를 만나 축제와 완주군정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와일드푸드 축제를 하게 된 이유와 성공축제로 치러진 의의를 설명해 주십시오.- 주민의 애향심 고취, 지역경제 활성화 등 취지에 맞는 명실상부한 지역축제를 치러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대둔산축제 등 지금까지 완주군에서 열렸던 축제는 단체장의 치적쌓기나 일부 기득권 세력의 잇속만 챙기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그래서 와일드푸드 축제는 이같은 병폐를 뿌리뽑고 지역주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축제, 지역의 강점을 적극 활용해 주민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축제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론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 등 전반적인 사항을 전문 행사업체가 맡지 않고 공무원과 주민이 부딪쳐 해냈습니다.주민 모두가 주인공으로 나서 대접도 받고 많은 수익을 올리니, 잠깐의 수고는 일도 아니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와일드푸드 축제는 주민참여와 이를 통한 축제 본연의 취지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면 아쉬운 점도 남았을 것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을 거라 보는데요.- 전문 기획사가 아닌 주민과 공무원 스스로 준비하고 치르다 보니, 주차 및 셔틀버스 운행 등 교통문제, 휴게소 등 편의시설 부족 등이 지적습니다. 지면을 빌어 불편을 겪은 관광객들에게 사죄의 말을 전합니다. 내년 축제에서는 이같은 불편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축제 방향과 이를 어떻게 주민소득 및 지역이미지 제고와 연결시킬 것인지 말씀해 주시죠.- 와일드푸드 축제는 음식과 전통을 주제로 몸과 자연의 공존을 꾀하고,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참여도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지속시켜나갈 것인지가 중요한데요. 완주군은 농촌 활성화를 위해 크게 마을회사 육성과 로컬푸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중 마을회사 육성은 지역이 현재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자산을 활용해 마을을 발전시키는 개념의 사업인데요. 자산이라면, 전통도 있고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완주군은 이번 축제에서 관광객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이나 전통문화 등을 걸러서,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마을 공동체회사로 키워나가도록 할 예정입니다.▲ 축제에는 완주군의 대표적인 청정 농산물이 많이 나와 관광객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로컬푸드 1번지'로서 발전하기 위한 사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완주군의 로컬푸드 사업은, 건강밥상 꾸러미와 직거래 장터 활성화 등 투 트랙으로 추진됩니다.이중 꾸러미 사업은 현재 2,500가구의 소비자를 확보해 10억원의 매출, 16명의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용진농협과 협조해 11월말부터 1일 유통형 직매장을 개설할 계획이구요.최종적으로 꾸러미, 집단급식, 직매장 등을 통해 관내 3,000여 소규모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마을회사 육성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요.- 현재 127개소(마을공동체 95개, 지역공동체 32개)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한해 마을회사 육성을 통해 소득 8억4,000만원, 일자리 256개를 창출했는데요. 완주형 마을 공동체 사업 모델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임기 내에 약 200개 공동체 사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다만 '100개소 육성'의 개념을 양적인 것보다는 지역의 많은 공동체를 다양하게 육성하고, 이 공동체들이 서로 협력해 농촌활력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얼마전 본보에도 보도됐지만, 시범적으로 도입한 마을버스가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향후 확대 계획은 있습니까.- 당초 공약사항으로 마을택시 운영을 약속했는데, 여의치 않아 버스로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상관면 6개마을 137세대, 285명의 주민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앞으로 대중교통 운행여부, 주민이용량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서 2013년 이후, 추가적인 마을버스 운행 지역을 결정하겠습니다.▲ 역시 지난달 기공식을 갖은 테크노밸리 산업단지 분양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현재 많은 문의가 있습니다. 완주 테크노밸리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40만평 규모로 조성됩니다. 이곳에는 KIST 전북분원, 고온플라즈마 응용연구센터와 연계해 탄소소재, 인쇄전자, 부품 소재 등의 첨단산업을 유치할 것입니다. 또 기존 입주업체와 연관된 태양광, 자동차, 기계산업 등도 유치할 계획입니다.▲ 완주-전주 통합이 최근 지역의 현안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김완주지사님이 적극 나서서 방향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요. 중요한 것은 통합 의지가 얼마나 강하며 왜 통합하려고 하는가 입니다. 완주군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며 완주군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완주군민들은 "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약자에 대한 대책없이 전북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일방적으로 완주군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저는 군수로서 당연히 통합하겠다는 의사가 있지만 완주군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밝힙니다.▲ 내년 총선에서의 출마설이 끊이질 않습니다.- 매번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란해지는데요. 지금은 군정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으로 답변에 갈음하겠습니다.※ 임정엽 군수는1959년 구이 출신으로, 완산고와 전주대를 졸업했다.지방자치가 부활한 지난 91년 도의원을 거쳐 도지사 비서실장,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한 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완주군수에 취임했다. 특유의 추진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침체에 빠진 완주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선4기 4년 동안 임 군수는 예산 5000억원 시대 개막, 인구증가, 복지 최우수단체 선정, 획기적인 교육환경 조성, 기업유치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고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 신뢰경영대상 대상을 수상했다.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전국적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로컬푸드, 마을회사 육성 등을 통해 '농촌을 살리는 수도'로 완주군을 발돋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 군수의 선도적 농촌정책은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한편 많은 지자체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 약속대상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지방자치 경영대전 대통령상 수상은 그 열매다.임 군수는 지난 4년간 수없이 고민하고, 주민과의 협의를 거쳐 올해 처음 개최한 와일드푸드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또한번의 성공신화를 썼다.

  • 기획
  • 백기곤
  • 2011.10.20 23:02

[새만금] 군산·새만금 산학융합지구 조성 본격

'군산·새만금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군산대와 전북대·군장대·호원대·전북도·군산시 등 참여기관 관계자들은 최근 회의를 열고, 산학융합지구 사업착수를 위한 TF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들 기관은 TF를 중심으로 사업을 주관할 법인 설립과 시설건축을 위한 설계발주 등 준비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이들 기관에 따르면 사업주관자인 군산대가 이번주 안으로 지식경제부와 사업협약을 마무리짓고, 군산대를 중심으로 산학융합지구 조성을 위한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는 산학융합지구내에 들어설 강의동과 기업연구관 편의시설관(QWL관) 등 시설 공사를 위한 설계를 연내 발주할 전망이다.산학융합지구에는 산업단지와 연계한 대학의 인력양성과 기업 근로자 재교육 등을 위한 강의동(7600㎡)과 100개의 기업연구소가 들어설 기업연구관(6600㎡), 편의시설(2300㎡)이 들어서게 된다.법인 설립도 TF가 담당하게 된다. 법인은 우선 최소인력으로 구성해 내년에는 시설구축과 사업기획 등을 하게 된다. 새만금·군장 산업단지 입주기업 350여곳을 대상으로 기업연구관과 인력양성을 위한 수요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현장 연계 인력양성사업은 내년부터 착수된다. 전북대와 군산대·군장대·호원대 등 참여대학들이 현재의 캠퍼스와 산업단지 기업과 연계해 현장중심 교육프로그램을 우선 운영하다 산학융합지구내 시설이 완공되면 산업단지내 캠퍼스를 중심으로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단연계 교육과정은 자동차와 조선 신재생에너지를 주력분야로 관련 학과를 개설하게 되며, 산업흐름에 맞춰 융복합학과 개설도 검토할 방침이다.도 관계자는 "한국산업기술대학도 군산·새만금 산학융합지구 조성사업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며 "장기적으로 군장·새만금산업단지뿐 아니라 도내 산업과 연계된 인력양성과 기업R&D를 지원하는 거점으로 조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획
  • 은수정
  • 2011.10.19 23:02

[새만금] 새만금 산단 투자유치 경쟁력에 의문

새만금 산업단지의 분양가(3.3㎡당 50만원)가 국내 경제자유구역 및 개발 시기 등이 비슷한 서·남해안 주요 산업단지와 비교, 확실한 비교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기업유치를 위한 경쟁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17일 전북도에 따르면 새만금 산업단지의 분양가를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등 5곳의 경제자유구역 산업단지와 비교한 결과, 전남 광양만권 율촌산단(3.3㎡당 40만7000원)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양만권은 대규모 컨테이너항만과 물류시설 등 인프라면에서 현재의 새만금 산단과 비교, 기업유치에 상대적 이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이에 반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지구(3.3㎡당 98만원)와 부산·진해 미음지구(3.3㎡당 189만원), 대구·경북 성서지구(67만원) 등은 새만금 산단보다 분양가가 높았다.또 국내 주요 일반산업단지와 비교한 결과 경기·충청권에 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췄지만, 전남 장흥 해당산업단지(3.3㎡당 38만5000원)와 비교할 경우 새만금 산단의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이에따라 전북도는 새만금 산업단지 국내·외 투자유치를 위해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및 무비자 제도 도입 등 차별화된 인센티브 전략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한편 한국농어촌공사는 다음달 10일 새만금 산업단지 홍보전시관을 개관할 예정이다.군산시 오식도동 새만금 산업지구내에 건립된 홍보전시관은 3만3000㎡ 부지에 지상 6층 규모이며 메인 전시실과 전망대·투자상담실 등을 갖추고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산업단지의 비전과 차별성·투자가치 등을 소개하는 입체적인 전시·홍보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 기획
  • 김종표
  • 2011.10.18 23:02

"향후 의장국 맡게 될 한국, 사막화방지 지원 확대해야"

"사막은 쓸모없는 땅이 아니에요. 지구 대류순환의 일부로서 낮은 차원의 생태계입니다. 산과 바다, 강과 호수처럼 자연적인 거죠. 그래서 사막을 없애고 숲을 가꾸자 라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막이 문제가 아니라 인위적인 간섭으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는 사막화가 문제라는 이태일 사무처장(에코피스아시아) 말이다.그는 10차 창원 총회에서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 사전대회 준비총괄 디렉터' 라는 중책을 맡았다. 에코피스아시아, 사)미래숲, 사)동북아산림포럼, 푸른아시아를 비롯한 사막화방지 현장 단체들을 비롯한 국내 69개 환경단체들과 '한국 사막화방지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손님들을 맞았다. 지난 8일~9일 이틀간, 30여개 해외단체와 함께 사전 CSO 대회를 조율하고 본 회의에 제안할 내용을 정리하고 북한의 산림 황폐화에 관심과 더 나은 연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전대회 후에도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총회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해서 매일매일 뉴스레터를 발간하고, 총회에서 대륙별 CSO 의장단과 정부 기구의 사막화 방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협의하고 있다."사막화방지 현장 활동만 하다가 UNCCD의 사업 계획이나 절차를 모니터링 하다 보니 시야가 더 넓어진 느낌입니다. 다양한 해외 활동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을 주도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국제기구 활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는 그는 중국 길림성과 내몽골 자치구의 생태복원 사업을 펼쳐온 환경운동연합 사막화방지센터 활동을 거쳐 2009년 3월, 아시아 시민사회와 함께 평화와 생태계 회복운동을 목적으로 '에코피스아시아' 창립을 주도했다.이번 총회를 계기로 아시아권 사막화방지 네트워크 구축과 세계 CSO 네트워크와 파트너쉽 강화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이태일 사무처장. "NO MORE MONEY, NO MORE WORD" (선진국은 더 이상 기금을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개도국은 선진국이 실천을 주저하면서 말만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가 팽배한 총회 분위기를 전하며 향후 2년간 의장국을 맡게 될 한국이 사막화방지 지원 사업을 확대했으면 좋겠다며 바삐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갔다.이정현 NGO 시민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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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8 23:02

19.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제10차 총회 NGO 사전회의

중국 내몽골 차깐노르 초원의 친구들이 한국에 왔다. 10월10일~21일까지 경남 창원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제10차 총회 NGO 사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난여름 전북환경연합 해외환경봉사단 30명은 모래 바람을 맞으며 차깐노르에 나무울타리를 쳤었다. 말라버린 호수의 알카리 분진이 날아가지 않고 울타리에 잘 쌓였는지, 감봉(나문재) 풀씨는 잘 자라는지, UNCCD에 참가한 소감은 어떠한지 묻고 싶어 창원으로 달려갔다.◆ 사막화의 위기, 전 지구적인 위기사막화는 지구 전체에서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UNEP(유엔환경계획)의 조사에 의하면 지구의 대기 대순환 변화에 따른 강수량 감소라는(연평균 200㎜ 이하)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사막화는 13%. 1951년 이후 약 300㎞나 남하한 사하라 사막이 대표적이다. 나머지 87%는 관개농업 증가, 토양의 산성화, 산림벌채 등 인위적인 영향에 의한 사막화로 추정된다.1981년~2003년 사이 지구 토지면적의 24%가 황폐화 되었으며 지표 면적의 35%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우리나라의 산림면적 수준인 600만 ha의 산림이 파괴되고 있으며 지난 40년간 2천400만 명이 사막화로 고향을 떠났다. 세계 곡물 재배지와 목축업 면적의 3/1을 차지하는 반건조 지역의 사막화는 식량 가격 폭등과 빈곤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적도이남, 인도차이나, 미얀마, 말레이시아, 중국, 몽골의 사막화가 심각하다.◆ 아시아 사막화가 주요 의제로 떠올라139개국 정부대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의 관계자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UNCCD 10차 총회는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회의다. UNEP 보고서에 의하면 아시아의 사막화 율은 37%로 아프리카의 32%보다 높다. 하지만 국제적인 관심과 활동은 아프리카에 몰려 있었고 아시아권은 뒷전이었다. 한국이 개최국으로 의장국을 맡고 있는 창원 총회는 자연스레 아시아의 사막화가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다.초지와 산림에 대한 무분별한 개간과 벌목, 수자원의 남용과 사막 식생의 파괴로 인한 사막화면적이 국토의 27.4%를 차지하는 중국, 특히 가장 빠르고 넓게 사막화 되어 가고 있는 내몽골 자치구의 사막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기온 상승과 낮은 강수량, 과다한 목축과 미숙한 농업기술, 산불 등 전 국토의 40%가 사막화 지역인 몽골의 사막화도 주목받았다. 전체 산림 면적의 32%가 개간산지, 무립목지, 민둥산인 북한의 산림 황폐화는 한국의 CSO(시민사회단체)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황사, 피해 부각보다는 근본적 해결책 마련해야사막화로 인한 황사 피해도 관심을 모았다. 매년 봄철마다 중국 및 몽골 사막에서 발생하는 황사로 인하여 경제적인 피해는 물론 신체적ㆍ정신적 피해도 크기 때문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황사관련 피해액만도 연간 약 3조8천억원 ~ 7조3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사막화가 가속화 되면서 황사 발생 기간도 가을겨울로 확대되는 추세다.한편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황사피해를 부각 시키는 것은 개최국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호(에코피스아시아 중국사무소) 소장은 " 황사는 원래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자연현상이고, 황사 자체만 주목해서는 황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며 "피해에만 집중되어 있는 관심을 황사 발생지의 사막화를 막는 근원적인 해결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야 한다." 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삼북방호림' 사업 등 엄청난 사업비를 투입해 식수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지역의 지리 생태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효과가 미비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강수량이 적고 바람이 많은 초원에 나무심기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남은 초원을 지키면서 목축민이 주체가 되어 사막화된 초지나 호수를 초원으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이 참여하는 비지니스 포럼 눈길특별회의로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제안해 이번 총회에서 처음 개최되는 '비즈니스 포럼'이 어제부터 열리고 있다. 풀무원, 유한킴벌리를 비롯해 네슬레, 카길 등 총 90여개 국내외 기업 대표들이 참석한다. 다국적기업들이 사막화를 확산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곡창지대이자 목축지대인 반건조 지역의 사막화는 식량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곡물 시장 안정을 위해 다국적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서다. 총회는 고위급 회담 결과를 담은 '창원선언문' 발표로 21일 막을 내린다. 선언문은 사막화방지협약의 장기 이행목표 설정 및 이행을 위한 과학기반 구축, 사막화의 효과적 저감을 위한 파트너십 구축과 자원 동원,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를 권장하기 위한 "생명의 땅(Land for Life)"상(賞) 창설 등이 담겨질 예정이다./ 이정현 NGO 시민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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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8 23:02

김광수 명예회장은…

김 명예회장의 고향 사랑은 누구보다 뜨겁다. 김영진 사장의 말처럼 "무엇이든 생기기만 하면 고향으로 달려가"내놓는다. 기부가 거의 육화(肉化)된 느낌이다. 도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1973년 설립한 목정장학회가 그렇고, 2001년 설립한 목정문화재단이 그렇다. 그것 말고도 알게 모르게 장학기금이며 발전기금, 각종 대회 등을 후원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움켜쥐려 하고, 말로만 고향 사랑을 외치는 세태와는 정반대다.김 회장의 일생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출판사업과 정치활동, 그리고 도시가스 등 에너지사업이다.1925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김 회장은 1938년 무풍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서 '중학강의록'을 공부하던 중 가출, 서울로 올라갔다. 그의 나이 14세 때다. 서울에서 친척 아저씨인 우석(愚石) 김기오 선생을 만나 부자의 인연을 맺었다. 일찌기 자손이 없었던 우석 선생은 김 회장의 선친을 찾아가 "종말(김 회장의 兒名)이를 달라"고 한 바 있다.김 회장은 낮에는 우석이 운영하던 문화당 사진제판부에서 일하고 밤에는 덕수상고에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미래의 꿈을 키웠다. 이어 조선신탁은행에 들어가 2년여 은행원 생활을 했다. 해방이 되고 1948년 우석이 세운 대한교과서 창립사원으로 입사했다. 625 전쟁 중 국민방위군을 거쳐 육군 경리장교로 들어갔으며 우석이 운명하자 1955년 대위로 예편, 본격적으로 출판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 해 우리 문학사에 금자탑을 이룬 '현대문학'이 창간되었다. 당시 한방에서 뒹글던 소설가 오영수씨로 부터 목정(牧汀)이란 호를 받았다. 물가에서 유유자적하는 낭만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1961년에는 대한교과서 사장에 취임하고 어문각 설립, 한국번역도서주식회사 인수, 삼광고등학교 인수, 새소년사 설립, 새한제지 설립, 월간 '詩文學'창간 등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대부로서 자리를 확고히 한 것이다. 2003년에는 충남 연기군에 교과서박물관을 세웠다.김 회장은 1973년 고향 무주 청년들의 성원에 힘입어 무주진안장수지역구에서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 무소속 원내총무를 맡았다. 이후 10대에는 민주공화당으로, 12대에는 국민당으로 당선되었다. 뒤 이어 14대(민자당)와 15대(자민련)에는 전국구로, 5선 의원이 되었다. 당시 택시요금 거리시간병산제 실시와 농어촌 백서 발간 등의 족적을 남겼으며 지역구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김 회장은 또 미래산업인 에너지분야에 관심을 돌려 1982년 전북도시가스를 설립했다. 현재 전북도시가스는 전주와 김제, 완주군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남원, 순창, 무주, 고창군에 공급할 예정이다. 또 2003년에는 서해도시가스(한보도시가스)를 인수해 충남 서북부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올 8월에는 미래엔인천에너지를 설립했다.미래엔그룹의 지난해 말 매출액은 7700억 원이며 2014년에는 1조원 매출 700억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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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8 23:02

미래엔 컬처 그룹 김광수 명예회장

서울시 서초구 미래엔 컬처그룹 김광수 명예회장(87)의 집무실엔 문기(文氣)가 어렸다. 방 입구 사각 유리창 안에는 보물 398호 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집무실엔 추사 김정희의 원본 편액과 강암 송성용의 목각글씨가 고아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또 책장엔 현대문학 창간호 영인본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아,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출판사구나!"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 뺨치던 수려한 용모가 그대로 남아있는 김 회장은 출판인으로의 삶부터 정치 역정, 미래에너지 산업 등에 대한 생각을 2시간 30분 동안 차분히 풀어냈다. 인터뷰 도중 장손이자 미래엔 대표인 김영진 사장이 들어와 거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매일 아침 8시 30분에 집에서 나와서 9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합니다. 신문을 정독하고 회사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아요. 결재는 안하지만 직접 의논하고 상의하죠. 정오에 친구들하고 점심을 하고, 같이 목욕하는 게 즐거움입니다. 지금도 책은 매일 읽어요. 매달 일본 종합잡지 하나 읽고. 책밖에 읽는 게 없어요."- 대한교과서는 우리나라 교과서 출판역사의 대명사인데 언제'미래엔(Mirae N)'이라 바꿨습니까?"지난 2008년이 대한교과서 창립 60주년이었습니다. 60년 동안 할아버지에서 너희들까지 3대에 걸쳐 했으니, 이제 모든 것을 일신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한번 지어봐라 했어요. 그래서 미래엔이라 지었는데, 교육이라는 게 항상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장님은 대한교과서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요?"나는 원래 무주 구천동 무지랭이였어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강의록'을 들으며 독학으로 중학과정을 준비했어요. 부모님한테 강의록 교재비 3원을 받아 돗자리 밑에다 숨겨 놨었어요. 그걸 가지고 경성(서울)으로 올라갔지. 일자리를 알아 보다가 결국 집안 아저씨(愚石 김기오 선생으로 김 회장의 양아버지)댁으로 찾아갔어요. 문화당이라고 출판인쇄공장을 했는데 거기서 급사 일부터 시작했죠. 1948년 아버님이 대한교과서주식회사를 창립했고 나도 창립회사의 일원이 됐어요."- 직접 경영하시면서 보람도 있고 어려움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내가 육군본부 조달청 예산담당관으로 임명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이 느닷없이 임종을 하셨어요. 예편해서 주주의결을 거쳐 상무취체역으로 선임되었어요. 당시 우리 회사는 교과서 도서 전문출판사업체로서 꽤나 유명세를 탔어요. 보람있었던 것은 그 때만해도 '가로짜기'활자체가 생소했는데'대교체'라는 것을 개발했고 영한사전에 쓰일 전용체도 개발한 일입니다. 황소처럼 밀어 붙여 조판기술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죠. 그런데 의욕만 앞서다가 산업은행으로 부터 4년간 법정관리에 묶이고 말았습니다. 그 때 여성 채권자에게 머리채를 잡히기도 하고 잠깐이지만 자살 충동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새소년'잡지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그것은 순전히 내 창안이예요. 잡지가 나오자 인기가 대단했어요. 당시 순수 어린이 교양지로는 새소년이 유일했으니까. 그런데 어깨동무라는 잡지가 모 여사(육영수)의 힘을 빌어 회사를 냈어요. 그 사람들이 힘이 있어서 판로가 어려워져 문을 닫았죠."- 1965년 전주에 새한제지회사를 만드셨는데 그것이 오늘날 전주제지의 모태입니까?"516군사혁명 이후 물자가 모자랐어요. 우리 회사도 사세는 점점 커져 가는데 용지수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매년 용지난을 겪느니 차라리 제지회사를 설립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침 전주지역에서 제지공장을 유치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외자도입 승인을 정부에 요청했는데 정부가 승인을 안해줘요. 아마 그 때 내가 정치를 알았더라면 재벌이 되었을 겁니다. 당시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이 정치자금 4천 몇백만 원을 가져오라고 그래요. 3년을 끌다 200만 불 승인이 나서 전주공단에 공장부지를 정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정부시책이 바뀌고 2만 평부지의 매입자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때마침 이병철씨가 중앙일보를 창간했어요. 전국적으로 용지가 부족한 때였는데 만나자고 해요. 10분 만에 OK했는데 역시 이병철씨는 판단력이 대단해요.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전주를 떠나서는 안된다'고 했어요. 당시 공장을 울산으로 옮겨가려고 했는데 전주에 남게되었지요."- '현대문학'은 우리 문학사의 자랑입니다. 단 한차례의 결호도 없었고 기라성같은 문인들을 배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순수 문예지 창간이 쉽지 않았을텐데요?"우리 아버님이 대단히 폭이 큰 사람이예요. 학교는 국민학교만 다니셨지만 일제때 야학, 신간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셨어요. 또 해방 이후 영리에 구애받지 않고 아동문학, 조선교육, 소년, 현대문학 등 4가지 잡지 발행을 주도하셨어요. 나는 군에 있었는데 아버님이 부산에 계실 때 고향이 같은 오영수(吳永壽)선생을 만난 모양이에요. 그 때 권유를 받고 조연현 창간주간, 오영수 편집장, 이렇게 해서 창간을 했습니다."(현대문학은 지난 해까지 570여 명의 문인들을 배출했다. 현대문학사의 수레바퀴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현대문학상은 시 54명, 소설 56명, 평론 44명, 희곡 11명 등 165명이 수상했다.)- 조-부-손 3대가 이어오고 계시지만 경영 측면에선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닐까 싶은데."아버님은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 1월호)가 발행되고 석달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현대문학은 잘 팔렸어요. 문학하는 대학생들이 현대문학을 옆에 끼고 다니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현대문학은 60년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도 적자예요. 대한교과서와 전북도시가스, 서해도시가스에서 한달에 각각 1000만 원씩 매년 3억6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 아버님의 유업이고 내 시대에도 계속해야 할 문화사업이니까요."- 회장님은 전북의 문화창달을 위해 목정문화상을 제정하시고, 도내 최초로 목정문화재단을 설립하셨습니다. 계기가 무엇입니까?"외부 사람들은 우리 전라도를 예향이라고 해요. 그러면서도 소리하는 국창 몇 사람 빼고는 존재가 별로 없어요. 도민들의 특기를 좀 살려야 할 것 아니냐, 해서 문화상을 제정했습니다. 문화재단을 만든 것은 개개인들이 인심을 써서 문화상을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고, 해서 재단을 만들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재단이 관리하도록 한 거죠. 그리고 미래의 인재를 키우자는 뜻에서 매년 고교생 대상의 백일장 미술실기 음악콩클 대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치분야로 넘어가겠습니다. 무진장 지역구에서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이래 5선 의원을 하셨는데 정치 입문의 계기는 무엇입니까?"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녜요. 정치할 생각도 없었어요. 나는 국회의원 하기 전에도, 내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무주에 라디오를 보냈어요. 또 내가 책장사하기 때문에 새소년을 각 면에 돌렸어요. 시골아이들이 읽을거리가 없을 때여서 반품되어 온 것을 보내줬더니 그렇게 좋아하고, 책이 오는 날은 동네잔치가 됐어요. 또 청년들은 신지식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어요. 나는 무주 청년들이 구천동에서 캠프를 여는데 건국대 농과대학 교수 등을 초빙해 줬어요. 10년 동안 계속했어요. 무주지역 청년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8대와 9대 민주공화당에 공천을 신청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어요. 그런데 이상한 전화(이후락 중앙정보부장으로 짐작)가 걸려왔습니다. '공화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할 의사가 없느냐'는 겁니다. 나는 무조건 발로 뛰었고 무주군민의 76%라는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지금도 무주에 가면 30대 넘는 사람은 나와서 나와 손잡고 갑니다."- 20년 가까이 정치활동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셨을텐데요?"그 당시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게 예산 많이 따오는 것밖에 없었어요. 무진장 지역은 전기 안들어가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전기 넣어주고 전화 놓아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한번은 진안에 오후 5시쯤 갔더니 '우리 눈에 불 좀 켜주세요'하는 거예요. 종일 밭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밥을 지어야 하는데 캄캄한 거지요. 그래서 직접 총리공관으로 김종필씨를 찾아가 장시간 면담 끝에 그 이듬해 전기를 넣어줬어요. 장수도 그랬고. 또 내가 교체위원이어서 무진장 지역에 정읍보다 먼저 우체국을 지었어요. 나는 국민의 민정을 잘 반영시켜 주는 게 내 임무다 생각하고 10호 이상 동네를 다 돌았습니다. 그게 꼭 3년 걸리더라구요."(김 회장은 세비를 타서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사재(私財)로 주민숙원사업을 해결하고 생색도 내지 않았다.)- 황인성 전 총리와는 막역한 사이로 알고 있는데요."그 친구는 무풍면 증산리 위아래 동네에서 살았고, 동네에서 초등학교 동기생이 우리 둘 밖에 없었어요. 황인성이는 사람이 진지하고 진실하고 자기개발을 굉장히 한 사람이에요. 군에서도 순전히 노력으로 좋은 평을 받았어요. 한때 지역구 확보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작년에 죽기 전까지 내 사무실에 가끔 들렸어요."- 회장님은 일찍 에너지산업에 눈을 뜨신 것 같습니다. 전북도시가스를 발족시켰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에너지 산업은 미래 성장산업이고 정부 주력산업입니다. 조철권 지사 땐데 그 때는 대한민국이 막 도시가스를 시작할 땝니다. (당시 대한교과서는 도시가스 사업 진출을 기획하면서 수익성 논의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지사를 찾아가 '도시가스 사업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니까 '아무도 신청을 안했다'고 그래요. '신청자가 없어 상공부에 반송해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신청해야겠다'고 했더니 손을 거머쥐면서 '고맙다'고 그래요. 그렇게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유기정씨가 '내가 전주지역 국회의원인데 어떻게 무주사람에게 주느냐'고 항의해 내가 '전주사람만 전북사람이고 무주사람은 전북사람 아니냐?'고 했죠.(웃음) 운이 좋았던 거죠."- 이번에 미래엔인천에너지를 설립하셨던데요?"우리가 출판에서 에너지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올 8월에 설립했습니다. 인천에너지는 쓰레기를 활용하는 지역난방으로 인천시 남동지역에 집단에너지를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건강비결이 궁금합니다."움직일 수 있는 범위에서 다 움직입니다. 조금 걷고 구부렸다 폈다 하고 그래요. 하체에 힘이 없으니까."(김 회장은 그동안 담석과 전립선암 등 수술을 3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2주에 한번 꼴로 골프장에 나가 15홀까지 돈다고 김영진 사장이 귀띔했다.)- 고향 무주에는 가끔 다녀오시는지요. 끝으로 도민들에게 한 말씀 주시겠습니까?"나이가 들수록 고향 생각이 납니다. 고향 얘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오려고 해요.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전라북도에도 여야가 있어야 합니다. 정당이라는 게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이라야지 정당을 대표하는 정당이어선 안됩니다. 한 예를 들겠어요. 9대 때는 국회의원이 전북에서 공화당 4명, 신민당 4명, 무소속 4명이었는데 서로 얘기를 안해요. 그래서 내가 우리가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고 나왔으니, 도민들을 위해 한달에 한번씩 모입시다. 우리 계를 합시다, 해서 강제로 모였어요. 우리 전라북도에도 야당 일색이어선 곤란합니다. 적어도 여당을 대표하는 사람이 1-2명이라도 있어야 도민의 의사를 정부여당에 전할 것 아닙니까."(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회장은 "나는 전라북도 사람이다"면서"내 집안이 잘돼야 남의 집안도 잘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런 뜻에서 그런지 17일에는 전북대에 발전기금 10억 원을 내놓았다. 또 미수(米壽88세)잔치를 하지 않는 대신 고향 무풍중학교에 1억 원, 무주군장학재단에 2억원을 기부키로 했다. 이달 29일 열리는 무풍면 체육대회 비용 2500만 원도 쾌척했다.)/ 대담= 조상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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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8 23:02

18. 정읍 태인

한 나라의 문화가 독자성을 갖추는 중핵은 그 문화가 고유의 서사성을 갖추고 있는가, 또 그 서사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안정적인 매체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그 독자적인 이야기는 시(詩)일 수 있고, 신화(神話)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창작물일 수도 있다. 우리에겐 고대시가를 비롯, 우리나라 최초의 정형시가 형태의 향가, 고려인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고려가요가 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교적 이상향을 노래한 시조, 가사 등 훌륭한 문화자산이 있다. 이러한 문화를 접함시킴으로써 우리는 통시적공시적으로 제한된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에 대한 눈을 키우고 자신을 성찰한다. 이 중 선비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시조와 가사문학은 우리민족 정체성의 지표가 되고 삶의 방향성을 일러준다.▲ 최치원 고향인 정읍 태인은 시가 문학의 탯자리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조리나니,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창 밖에는 밤 깊도록 비가 내리는데,등불 앞의 마음은 만 리 밖을 내닫네.신라 말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오언 절구의 한시(漢詩)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들어가 18세에 과거(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이름을 떨쳤다. 작품에서 수 만 리 밖의 타국(당나라)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정든 고향(신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12살의 어린 나이로 먼 이역 땅 중국으로 건너갔던 지은이가 느끼는 향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그것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으로도 읽힌다. 최치원은 결국 자신의 경륜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끼고 40여 세에 은거의 길을 택했다.최치원이 학문적 기반을 쌓고 풍류를 즐겼던 곳이 바로 정읍 태인이다. 최치원이 이곳 태수를 지내며 유상대를 만들어 선비들과 놀았던 시절부터 정극인이 상춘곡(賞春曲)을 노래하고 고현향약을 지어 태산풍류의 물줄기가 형성되었는데 그 물줄기는 16세기 사림의 시가 문학의 정점에 선 '면앙정가'와 '송강가사'로 이어졌다. 즉 태인은 남도 선비문화가 태어난 탯자리인 셈이다.▲ 맑은 선비의 기품이 흐르는 무성서원정읍 태인(칠보)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사적 제166호)은 본래 태산사라는 생사당에서 비롯되었다. 태산 태수를 지낸 최치원이 합천으로 떠나자,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고을 선비들이 살아 있는 이를 모시는 생사당을 마련했다. 그 뒤로 정극인, 신잠 등이 선정을 베풀었던 여러 선현들을 모셨다. 태산사가 배움의 전당으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1615년, 서원을 세워 배움을 열었고 1696년 숙종으로부터 무성서원으로 사액을 받게 되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슬 푸른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무성서원이 태산을 멀리 내다보며 고색창연하게 앉아 있다. 옆길에 세워진 홍살문을 지나면 정문 누각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그 담장 앞에는 이 고을 명현들의 송덕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맨 앞쪽에 대원군 이하응의 형인 이최응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방방곡곡에 1000여 개가 넘는 서원과 사당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47개만 남았는데 전북에서 유일하게 무성서원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무성서원을 나와 반 마장쯤 걸어가면 최치원이 동진강 상류인 칠보천 물가에 곡수거를 만들고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유상대가 나온다. 나무 그늘에 다소곳이 안긴 정자에 감운정(感雲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고운 최치원을 그리워하여 지은 탓인지 맑은 선비의 기품이 흐른다.'공자의 도로 만물을 교화한다.' 태인 향교(1421년 세종3년) 또한 조선시대의 공립학교로서 선비들의 배움의 장이었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향교는 국가 정책적 교육 사업으로 마을마다 세워졌다. 유교적 이념에 따른 유교적 인간으로 하루빨리 백성을 교화시키는 것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정면 4칸과 옆면 2칸으로 지어진 만화루(萬化樓)엔 단종의 비 정순왕후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가 이곳 출신임을 알려준다. 넓적한 보도블록이 깔린 길 끝을 돌아 나오면 5칸짜리 명륜당에서 성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긴 지 오래건만 왠지 기자의 귀엔 고졸한 풍모의 선비들이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글 읽는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자치규약'고현향악' 만들어 선비들의 삶의 태도 교육왕유는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도원행'이라는 시에 담아 이상향에 대한 오랜 꿈을 노래했다. 우리에게도 이에 못지않은 이상향을 노래한 시인이 많았다. 전원에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사라는 독특한 양식에 담아서 유교적 이상향을 보여준 정극인 선생(丁克仁1401~1481)의 상춘곡은 가사문학의 효시로 알려졌다. '상춘곡'을 읊조리다 보면 세속적 진출의 욕구를 뒤로 하고 자연 속에 묻혀서 안빈낙도하는 선비의 고결한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단종 때 사간원정언을 지낸 정극인은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치사한 후 처가가 있는 태인으로 내려와 초가삼간을 짓고 은거의 날들을 보냈다. 택호가 '불우헌'이라 함은 세상을 잊고 근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새삼 정극인 선생의 심중을 알 듯하다. 선생은 향리의 젊은이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공을 들였다. 이것이 고현향약이 만들어진 시초가 된 셈이다. 무성서원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세로를 따라 은석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마을 뒤쪽에 야트막한 산허리 솔숲에 정극인 선생이 잠들어 있다. 반듯한 비에 적혀있는 '사간원 정언 정 선생'이라는 글자가 초가을 햇살의 입자에 반짝거린다. 타의에 의해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어 좌절할 때 안빈낙도는 또 다른 현실 참여인 셈이었던 것. 그는 고현향약이라는 자치규약을 만들어 이상적 삶을 실천하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일재 이항 선생이 천하의 영재들과 공부했다고 전해오는 옛 서당 또한 칠보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와 더불어 호남 성리학을 이끌었던 거목으로, 퇴계 이황은 그를 두고 '호남 이학의 문을 연 스승'이라 단언했고 송강 정철은 "호남에 그가 없었다면 미개한 상태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의 말 한마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배움과 실천의 척도가 되었다. 고운 최치원으로부터 시작된 선비문화가 송세림에서 정극인으로부터 구한말 김경흠과 김균과 소고당 여사까지 불세출의 수많은 선비를 내었으니 태인이 선비의 탯자리임이 분명하다.▲ 유교가 갖는 우주적 통찰 되새겨볼 필요 있어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유교는 무엇이며, 선비란 어떤 존재일까! 조선시대만 해도 유교는 조선의 바탕이념이었고 종교였다. 한때 "공자가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은 몇 마디 말을 가지고 부풀려놓은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교의 이상 사회는 픽션이고 허구다"라며 유교를 한껏 폄하한 이들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명분을 중시하여 호란을 자초하였고 공리공론과 명분에 휘둘려서 결국은 문약(文弱)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지만, 그것이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고 사회제도화 된 것은 조선 건국과 함께였다. 유학의 한 갈래인 주자학은 조선 500년은 물론 우리 근현대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다산의 학문을 실학(實學)으로 부르는 순간 유교는 이미 유효 기간의 만기가 선언된 셈이다. 권위와 복종을 인간 사회의 마지막 이데올로기로 착각하고 있는 유교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명령에 익숙하며 입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다. 소통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유교와 선비문화는 고루하고 봉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고개 끄덕거리게 한다. 그러나 유교를 과학적 검증도, 열린 토론도 거치지 않은 공자의 불완전한 우주론적 에세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것만 아니다. 우주를 담론의 대상으로 했던 도가적 발상이나 우주적 통찰과 철학적 메시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마을의 화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옛 선비와 같은 어른들이 향음주라도 마시며 음풍농월하는 의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그것이 단지 조선사회를 지탱해온 선비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조선시대 선비 문화는 크고 작은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는 장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화가 사회통합을 하는 절대적인 기능을 한 셈이다. 사회의 존립에 정신적 일체감이 요즘처럼 분자화 된 세상에 더욱 더 필요하다. 삶의 면면들이 문화에 투영되고 문화는 바로 정치와 경제의 바탕이 되고 핵심적 가치가 된다. 여러 심성과 규율, 내면과 외면, 개인과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는 삶을 위한 상징으로서 유교와 선비문화는 여전히 한국인의 핏줄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 같은 불황 시대에 정신적 의지처를 유교 고전의 전아(典雅)한 세계에서 찾아봄이 어떨까?/ 기명숙 문화전문시민기자(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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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7 23:02

이안 넬슨 써니필드팜숍 대표

80㏊에 이르는 경작지와 80명에 달하는 협력 일꾼을 이끌고 있는 이안 넬슨(Ian Nelson) 써니필드팜숍 대표는 농촌의 지속발전 시스템으로서의 팜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10년전 영국정부에서 농촌을 지원하기 위해 큰 농장을 중심으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실적주의 정책으로 호응을 얻지 못했죠. 농업이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게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오히려 파르마같은 민간 기구들이 농촌의 자립기반을 구축하는데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는 특히 다양한 민간기구들이 소중규모의 농가들을 연대시키고 지속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영국 농촌도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농부 평균연령이 60댑니다. 농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농촌을 떠나고 있죠. 제 아이들도 농업을 이으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소농들이 연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0년대만 해도 팜숍이 작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85%가 큰 매장을 가고 있습니다. 팜숍도 규모화되는 거죠. 품질에서도 경쟁력이 있고, 상품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태스코같은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하려면 팜숍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소농들의 가격경쟁력도 팜숍 등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그는 팜숍은 단순한 농산물매장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으로도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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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7 23:02

12. 농촌공동체 엮어주는 '영국의 팜숍'

영국의 농촌을 다니다보면 '팜숍(Farm Shop)'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농장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산지매장 같은 것이다. 팜숍에서는 인근의 농가(대부분 50㎞이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판매한다. 팜숍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이뤄지면서 농촌공동체가 형성되고, 이들 공동체가 마을기업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써니필드 팜숍영국의 남부 싸우스햄턴(Southhampton)에 자리한 '써니필드 팜숍(Sunnyfield Farmshop)'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주목받는 곳이다. 파르마(FARMA)가 내는 소식지에도 써니필드 팜숍의 운영방식이 화제로 소개됐다.팜숍이 있는 써니필드 농장은 20년의 역사를 지녔다. 이안 넬슨(Ian Nelson)대표와 가족들이 12㏊로 시작해 지금은 경작면적이 80㏊로 늘어났다. 우리와 비교하면 '대농(大農)'이지만 그는 자신을 '소농(小農)'이라고 했다. 써니필드 농장은 농산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축산도 한다. 당근 콩 토마토 감자 허브 소 돼지 등 재배 품목이 다양하다.이안대표는 농장을 키우면서 이웃들과 협력했다. 현재 이 농장과 팜숍에 참여하는 이들이 80명에 달한다. 규모화와 함께 유통방법도 개선했다. 그도 처음에는 중간 유통업자에게 농산물을 공급했다. 그러나 수량이 적고 품목이 많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팜숍이다. 농장에 팜숍을 열고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면 제 값을 받을 수 있는데다 농산물의 품질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농장 입구에 팜숍을 열고 농장에서 갓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했다. 주변에서 적은 농사를 짓는 이들과도 연대했다. 써니필드농장처럼 작은 농장들과도 협력했다.써니필드 팜숍은 농산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네트워킹이 된 영국내 팜숍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팜숍 물품의 30%가량이 써니필드 농장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품을 다양화한 것은 농촌지역에 유통매장이 드물기 때문이다. 팜숍간의 협력과 소비자의 편의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는 팜숍써니필드 팜숍옆에는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 또 너른 잔디밭도 마련돼있다. 레스토랑은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또 결혼식도 열리고 다양한 모임도 진행된다. 주중에는 장을 보러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에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해마다 9월이면 뮤직페스티벌도 열린다.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주재료로 한 음식만들기대회도 이곳만의 프로그램이다.이안대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농장으로 사람을 모이게 해 농촌과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며 "특히 작은 농장을 중심으로 이러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공동체 엮어주는 매개체써니필드 팜숍처럼 영국 대부분의 팜숍들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 영세농가들의 지속발전 기반이 되고 있다. 팜숍을 중심으로 소농들의 연대가 이뤄지며 협동조합이 구성된다. 소농들이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팜숍을 통해 농촌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있다.리타 익스너(Rita Exner) 파르마 공동대표는 "영국 농촌의 공동체 경제활동이 팜숍을 중심으로 이뤄지다"며 "실제로 파르마회원들의 매출의 30%가 팜숍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파르마 회원들이 운영하는 팜숍만 전국적으로 600곳이 넘으며, 이 매장을 중심으로 농촌의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팜숍은 또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에 대한 의식을 바꿔놓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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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수정
  • 2011.10.17 23:02

환절기 건강 예방접종이 필수

어느덧 무더위가 지나가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가 되었다.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며 호흡기 환자가 급증하는 시기이다.특히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독감이나 폐렴 등의 급성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고합병증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통계에 의하면 폐렴 사망자의 90%가 65세 이상이지만, 독감백신과 폐렴구균백신을 함께 접종하면 호흡기 질환, 심혈관계 및 뇌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위험률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한다.어르신들이 환절기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기초상식과 필수 예방접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호흡기 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손을 자주 씻고 양치질을 자주 해야 하며 실내 환기를 자주 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야 한다. 체온 유지와 면역력 증진에 유의하고 충분히 잠을 자야 하고 독감(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으면 좋다.독감접종을 받은 후 우리 몸에서 항체를 만드는 기간은 2주이므로, 독감접종은 유행하기 2주 정도 전에 받는 것이 좋다. 독감 유행 시기는 10월경부터 다음해 4월까지이므로 접종 시기는 지금이 적기이다. 독감백신의 예방효과는 80%정도로 높은 편이다.65세 이상의 노인은 면역력이 떨어져 발병하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빨리 독감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좋다올해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균주는 A형 H3N2 인플루엔자바이러스로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면 신종플루 (H1N1) 예방접종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올해 독감백신에는 신종플루 균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김대중 전 대통령, 고 앙드레 김씨, 고 배삼룡씨, 고 백남봉씨 등 유명인들이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폐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65세 이상 노인 폐렴환자의 사망자 수가 10년 만에 2배가량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앞으로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수 증가로 인해 노인 폐렴환자 및 그로 인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세균성 폐렴을 일으키는 주원인은 폐렴 구균이다. 고위험군에 폐렴구균백신을 미리 접종하면 폐렴으로 인한 치명적인 합병증과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실제로 폐렴구균 예방백신을 접종할 경우 치사율이 높은 뇌수막염, 패혈증 등 폐렴구균질환의 90% 이상을 예방할 수 있다. 또 1번 접종만으로도 폐렴구균 질환의 발병 위험을 45% 가량 줄이고,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 역시 59%나 감소시키는 등의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세계보건기구(WHO)는 폐렴구균으로 인한 질환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사망원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홍콩을 비롯한 4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는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필수예방접종으로 지정하고 있다.국내에서는 대한감염학회에서 65세 이상 모든 성인들의 폐렴구균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폐렴구균백신으로 폐렴구균질환의 발병률과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으므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65세 미만이라도 당뇨병, 심장병, 만성호흡기질환자, 만성신부전자, 흡연자는 반드시 접종을 받는 것이 좋다. 단 65세 미만이라면 5년 만에 1번씩 접종해야 한다.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을 받게 해드리는 것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올가을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효사랑 전주 요양병원 내과 전문의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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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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