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18 00:37 (월)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새만금] 특별회계 설치 등 새만금 현안 힘 실릴까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전북도에 국정감사에서 이례적으로 새만금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특별회계와 개발전담기구 설치 등 새만금 현안을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할 지 기대된다.행정안전위원회 지방2반(반장 민주당 백원우의원) 소속 11명의 위원들은 이날 오전 전북도청에서 전북도와 전북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 후, 오후에 새만금 현장을 직접 찾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와 농림수산식품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는 방문했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위원회가 새만금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지방2반 위원들은 이날 부안 새만금33센터에서 현황보고를 들은 뒤, 헬기를 타고 한시간 반에 걸쳐 새만금 산업단지와 새만금 관광단지 등 새만금 사업 현장을 둘러볼 계획이다.국회 행정안전위원들이 이처럼 새만금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새만금 사업이 전북지역의 최대 현안사업이자, 미래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중차대한 사업으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그러나 새만금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가는 반면, 새만금사업에 대한 예산확보 등 정부의 지원책은 협소, 국회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요구되고 있다.특히 새만금사업의 최대 핵심과제인 특별회계 설치나 '새만금개발청' 등 개발전담기구 설치의 경우 국회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추진될 수 없는 사업이기 때문이다.실제 오는 2020년까지 13조2000억원이 투입되는 새만금사업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매년 1조원의 국가예산이 필요하지만, 당장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3900억원만 편성됐다.새만금 예산의 조기 확보는 향후 진입도로나 신항만, 방수제, 고속도로 등 새만금 기반시설의 조기 확보를 통해 새만금 지역의 대규모 투자유치를 조기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절실하다.여기에 새만금 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 등 6개 정부 부처에서 각각 추진하며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담기구 설치가 필요하다.도 관계자는 "새만금 사업이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예산이 원활하게 투입돼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심의권을 쥔 국회의원들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한편 이날 전북도에 국정감사는 오전 10시 도청 4층 대회의실에서 펼쳐진다. 감사반은 고흥길·김태원·유정복·유정현·진영·백원우·문학진·이윤석·장세환·이명수·윤상길 의원 등이다.

  • 기획
  • 구대식
  • 2011.10.06 23:02

79. 삼양사 전주공장 - 3)설비 증강과 사업영역 확대

삼양사 전주공장은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던 1975년 2차 스테이플 화이버(SF) 증설을 단행해 국내 최대의 생산능력은 물론 기술면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이로 인해 중합능력이 하루 100톤으로 증가돼 물량 부족을 해소해 나갔다.필라멘트는 SF증설이 2차례 이뤄진 것과 달리 초기시설에 의존하다가 1976년 FDY와 DTY의 30톤 증설에 착수했다.이 증설의 특징은 유럽의 최신 기술 및 설비를 도입했다는 점과 필라멘트에 사용할 고품질의 칩 생산을 위해 국내 최초로 연속중합공법을 채택했다는 점이다.내자 90억원과 외자 2000만달러가 투자된 이 증설로 전주공장의 연면적은 3만3000㎡(1만평)으로 늘어났다.1978년에는 국내 경기의 활황에 힙입어 SF 3차 증설에 착수했다. 이 증설에는 최첨단의 합성섬유 기술인 직접방사방식이 국내 최초로 도입됐다.또한 필라멘트도 수요가 늘어나면서 하루 7.5톤의 제2차 필라멘트 증설도 이뤄졌다.1982년에는 제 3차 필라메트 증설도 완료함으로써 연간 1030만 달러의 외화대채 효과와 1200만 달러의 수출 증대 실적을 이룩했다.화학섬유설비의 증설은 1980년대에 보다 집중적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1980년 말부터 중국 수출 및 내수가 증가함에 따라 폴리에스테르 경기가 회복됐고 필라멘트 수출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실제 삼양사 전주공장은 1983년 무렵 원사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138억원을 투자해 SF 4차 증설 및 필라멘트 4차 증설을 단행해 1984년에 완공했다.이로써 전주공장은 하루 SF 165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대단위 공장으로 발돋움했고 이어 필라멘트 5차 증설에 나섬으로써 중합연신방사공정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졌다.전주공장은 SF 콘쥬게이트 복합사 생산기술도 개발, 1986년 국내 최초로 양산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완구제조업계의 원료 부족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또한 같은 해 하루 80톤 규모의 SF 5차 증설 및 하루 140톤의 중합 증설도 완료, SF생산능력이 하루 400톤으로 늘어나며 국내 최대의 생산체제를 확립했다.이후에도 전주공장은 공급부족 현상을 빚고 있던 필라멘트의 증설을 통해 하루 170톤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1988년에는 하루 80톤 규모의 6차 SF 증설을 완료했다.이와 함께 대규모 SF 증설에 필수적인 중산시설을 갖추기 위해 하루 200톤의 중합 증설에도 착수해 1989년 완공했다.폴리에스테르 연속 중합설비의 가동으로 관련 기술을 축적해온 전주공장은 1980년대 들어 자체 시설과 기술을 활용한 PET병 생산도 적극 검토하게 되었다.PET병은 기존 칩으로는 점도가 낮아 생산이 불가능했지만 일부 공정만 추가하면 원료인 고상중합 칩을 제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 칩은 병의 원료는 물론 산업용 원료로도 사용돼 날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는 선경과 동양나이론 등 몇 몇 업체만 시장에 진출해 있었고 수출 전망도 밝았다.이에 삼양사는 1985년 12월 전주공장에 하루 20톤 생산능력의 고상중합 칩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비섬유분야에 첫 발을 내딛었다.또 소비자의 욕구가 점차 질적으로 우수한 신합섬, 고급 합섬 등으로 옮겨감에 따라 소규모 라인인 1-2KYE를 개조해 특수제품의 생산설비를 갖추는 합리화 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거듭되는 증설로 포화상태에 이른 전주공장은 설비 확충에 대비해 1987년 전주 제2공단에 대지 14만8500㎡(4만5000평)을 매입, 1988년부터 필라멘트 8차 증설 및 신규영역 진출을 위한 모노 필라멘트, 고강력사의 신설을 추진했다.삼양사는 1980년대 전주공장 설비 증설을 마무리하면서 모노 필라멘트와 고강력사의 생산기초를 다져 폴리에스테르 사업 다각화의 기반을 닦아 나갔다.특히 1989년 SAMY-10 가동을 계기로 멀티사 등 차별화 제품의 생산비율이 크게 향상됐고 고강력사와 모노 필라멘트 등 산업용 자재 생산이 시작됨으로써 1990년대 비섬유분야로의 진출을 넓혀나갔다.강현규기자 kanghg222@

  • 기획
  • 강현규
  • 2011.10.06 23:02

비약적인 성장 일등공신 '삼양종합연구소'

삼양사 전주공장이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삼양종합연구소의 역할이 컸다.1979년 4월 발족한 삼양종합연구소는 다양한 연구개발에 주력한 결과 1984년 폴리에스테르 중공복합섬유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이를 통해 삼양사는 신소재 개발 우수업체로 선정되는 개가를 올렸고, 그해 기술진흥확대회의에서 이 제품이 '신소재 우수 개발제품'으로 선정돼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또 1987년에는 각종 부직포 원료로 사용되는 프리론 저충격 섬유를 개발함으로써 삼양사 화학섬유사업의 내실있는 성장을 주도했다.양과 질에서 세계적 메이커로 부상한 화학섬유부문은 1980년 처음으로 삼양사의 1억불 수출탑 수상을 견인했다.삼양종합연구소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기술수출에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1985년 멕시코 Celmex사에 SF기술을 수출한데 이어 파키스탄에도 플랜트 기술과 트리론 제조기술 및 폴리에스테르 제조기술을 수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였기 때문이다.이 기간 삼양사의 '트리론(TRIRON)'상표는 파키스탄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돼 상표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뿐만 아니라 내셔널 파이버에 SF방사 플랜트를 수출해 현지 기업은 물론 정부 당국자로부터 기술과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등 신뢰를 쌓기도 했다.이를 기반으로 삼양사는 1990년 일보 미쓰비시상사 및 파키스탄의 디완그룹과 합작해 폴리에스테르 SF공장을 건설하는 개가를 올렸다.이후 삼양종합연구소는 1993년 8월 삼양그룹연구소로 승격되면서 그룹차원의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 기획
  • 강현규
  • 2011.10.06 23:02

전교생 단소 부는 전주중앙초

1일 오후 12시 전주중앙초(교장 조용현) 운동장.이 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260여 명이 일제히 단소(短簫)를 연주한다. 단소는 세로로 부는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로 뒤에 한 개, 앞에 네 개 등 모두 다섯 개의 지공(구멍)이 있다.구전 민요 '진주난봉가'에 이어 영화 음악 '첨밀밀'이 울려 퍼지자 학교 담장 너머로 관광객들이 발길을 멈추고 삼삼오오 감상한다.운동장 한 켠에서 김재은(3학년)정은(1학년) 두 딸을 기다리던 김정아 씨(33전주시 경원동)는 "작은 아이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학교에서는 떨어 소리가 잘 안 나는데, 집에서는 소리를 곧잘 낸다"며 "첫째, 셋째 토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단소를 연주하는 모습도 신기하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15분간의 '작은 연주회'를 마치고 엄마 품에 '쪼르르' 달려와 안긴 재은이에게 '단소는 어떻게 소리를 내냐'고 묻자 "아랫입술을 대고 살살 바람을 불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가을입니다. 다음 곡은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입니다. 관광객 중에서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신 분은 휴대폰 010-3684-○○○○로 메시지 남겨 주시면, 즉석에서 연주해드리겠습니다."현서희(3학년)가 "교감 선생님이 연주한다"며 조회대 쪽으로 달음박질한다.방금 전까지 수백 명의 '꼬마 연주단'을 지휘한 홍인표 교감(59)이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등 친숙한 가요와 영화 음악 등을 연주하자 염가은(5학년)과 민유심이은비한민경(이상 4학년) 등이 홍 교감 주위를 둘러싼다."멜로디언과 리코더,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안다"는 염가은은 악기 중에서도 단소를 첫손에 꼽았다. "전통 악기이고, 소리가 좋다"는 게 이유.가은이는 "단소를 하니까 손이 잘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손재주가 늘었어요"라며 웃었다. 동생 염하은(1학년)은 "하나도 재미 없어요"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만, 언니는 "집에서 가끔 동생이랑 단소를 불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전주중앙초 전교생이 '소리 내기 어려운 악기'로 알려진 단소를 불게 된 것은 지난해 9월 홍 교감이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그는 지난 1998년 '유연성 단소 지도법'을 계발해 그동안 방학 기간 직무 연수 등을 활용해 도내 교사 1400여 명에게 새 지도법을 보급해 왔다.이 학교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학년별요일별로 아침 8시30분부터 15분씩 음악실에서 홍 교감으로부터 단소 수업을 받았고, 그해 11월 학습 발표회에선 전교생이 단소를 연주했다.지난 4월부터는 '놀토'(노는 토요일)가 아닌 토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평소 배운 단소 실력도 뽐내고,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단소의 '청아한 소리'를 선사하고 있다.홍 교감은 "전주중앙초가 밖으론 경기전 등 한옥마을에 둘러싸인 '전통학교'라고 내세웠지만, 실제 안에선 그렇게 부를 만한 내용이 없었다"며 "단소를 전교생에게 지도하면서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그가 계발한 '유연성 단소 지도법'은 소리의 비밀을 유연성에서 찾은 게 특징. 기존 단소 지도법이 ①거울 보고 ②입술 고정하고 ③소리가 날 때까지 연습하는 식이었다면, '유연성 단소 지도법'은 악기를 내리고, 입술에 가져가는 '자연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단소를 운동기구에 비유한 그는 "배드민턴과 탁구를 할 때 기본 자세가 자연스럽지 않으면 힘이 들어가 외려 운동을 방해하듯 단소도 유연성이 해결되어야 소리가 난다"며 "운동신경이 단소 연주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단소를 드는 자세만 봐도 연주를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다"며 "여기에 눈과 손 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눈은 악보를 따라가고, 손은 중림무황태(仲林無潢汰)라는 율명(서양 음악의 계이름)을 짚는 훈련이다.단소는 도레미파솔라시 7개 온음뿐 아니라 반음까지 12개 음을 모두 낼 수 있어서 민요가요재즈 등 전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그는 '유연성 단소 지도법'을 배운 교사나 학생들이 "'단소=어렵고, 신통찮은 악기'에서 '단소=쉽고, 대단한 악기'로 생각이 바뀌고, 단소를 연주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 기획
  • 김준희
  • 2011.10.05 23:02

[새만금] '뜨거운 감자' 새만금 예산 국감서 논란

새만금 예산이 올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전북도는 물론 정부 관계부처나 관계기관에 대한 감사에서도 집중 제기되기 때문이다.그러나 새만금 사업예산이 "너무 부족하다"는 지역 여론과 달리 '과다한 예산', '주먹구구식 사업' 등을 지적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국회 농림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송훈석의원(강원도 속초·고성·양양)은 한국농어촌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새만금 사업예산이 그동안 20여 차례 걸쳐 총사업비가 증액됐으며 그로인해 5조 5148억원으로 증액됐다며 고무줄 예산이라고 지적했다.특히나 현 정부 들어서인 2008년 이후에만 외곽시설공사 총6회, 내부개발 총 2회에 걸쳐 총 사업비가 6110억원이나 증액됐다며 엉터리 사업이라고 힐난했다.뿐만 아니다. 새만금 예산에 대한 높은 관심도는 국정감사 수감기관은 물론 의원들이 소속된 당이나 지역 등 정파를 초월해 폭넓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6일, 전북도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민주당 장세환(전주 을), 자유선진당 이명수(충남 아산시), 한나라당 진영(서울 용산) 의원이 자료를 요청했다.하지만 새만금 예산은 의원들의 우려 처럼 '물먹는 하마'가 아니라, 오히려 애초 계획대로 투입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로 생각하는 도민들의 정서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새만금 총사업비가 증액된 것은 물가인상 때문. 이는 새만금사업이 1991년부터 20년간 지연돼왔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해 사업비가 늘어난 셈.특히 도로를 방조제 아래에서 위로 끌어 올리는 등 일부사업을 재조정함으로써, 오히려 사업비는 증액됐어도 사업의 효율성을 살리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이처럼 새만금 예산이 불가피하게 늘어났고, 증액에 따른 긍정적 평가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새만금을 엉터리 사업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새만금 예산은 오는 2020년까지 국비 7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계획과 달리 소폭으로 반영되는 것에 애초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 지 가뜩이나 걱정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올 초 발표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MP)에 따르면 올해부터 9년간 매년 8000억 가량을 국비로 투입돼야하나 올해 정부예산안에 3900억원 정도만 계상됐기 때문.따라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드시 '새만금 특별회계'가 설치돼 관련예산이 애초 계획대로 투입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으로 요구되고 있다.도 김광휘 새만금환경녹지국장은 "앞으로도 새만금사업에 계획대로 국가예산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사업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구대식
  • 2011.10.04 23:02

17. 도내 천연기념물 관리와 지방자치

천연기념물은 학술 및 관상적(觀賞的)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써 지정한 동물(그 서식지)식물(그 自生地)지질광물과 그 밖의 천연물을 말한다. 도내에는 1962년 12월에 지정된 '부안의 호랑가시나무군락' 비롯해 최근 2009년 9월에 지정된 '고창 멀구슬나무'까지 총 31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전북지역에 있는 천연기념물의 지정현황과 관리실태를 살펴본다.〈전북도내 천연기념물 현황〉천연기념물의 지정과 보호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가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호령'을 공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포될 때까지 효력을 발생하였다. 1963년 728점의 지정문화재를 재분류하고 98점의 천연기념물이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중 동물과 식물은 생명이 있는 대상이어서 죽거나 이동하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는 경우가 많다.도내에 분포한 천연기념물은 2011년 현재 31종이다. 익산 천호동굴, 군산 말도의 습곡구조, 무주의 구상화강편마암, 무주 반딧불이와 그 먹이 서식지를 제외하면 27종이 식물과 그 군락지이다. 도내 천연기념물은 휘귀성(청실배나무), 노거수(천년송, 곰솔, 왕버들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멀구슬나무), 자생지(미선나무), 자생북한대(송악, 꽝꽁나무,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굴거리나무, 줄사철나무, 이팝나무), 자생남한대(산개나리) 기준에 따라 지정되었다.지역적으로는 고창이 7종이 분포되어 가장 많으며 전주, 군산, 익산에 1종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익산시는 1967년 제188호로 지정된 곰솔나무가 2007년 번개로 소실되어 2008년 8월 해제되었다.〈지정 따로, 관리 따로〉천연기념물의 지정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며 그 관리는 관리단체에 의해 관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보존에 영향을 미칠거나 훼손한 우려가 있는 모든 행위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도내 천연기념물의 관리주체는 모두 지방자치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을 위한 시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그 관리보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 관리 실태는 천차만별이다. 장수군청 마당의 의암송과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내의 이팝나무군은 주변정비가 잘 이루어지고 있으나, 김제시의 느티나무 주변은 잡초가 무성하고 농기계의 보관장으로 쓰이는 등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도내 천연기념물 관리실태는 지난 2001년 전주시 삼천동 곰솔의 약물투여사건으로 극명히 드러났다. 사유지에 위치한 제355호 '전주시 삼천동 곰솔'은 독극물로 추정되는 약물투여로 16개 가지 중 2개 만이 살아남아 겨우 천연기념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주시는 인근 부지매입과 공원화 사업을 10년이 지난 2010년에야 마무리한 상태이다. 또한 1967년 7월에 지정된 '익산 신작리 곰솔'은 2007년 낙뢰로 고사하여 2008년 8월 해제되었으며, 현재는 고사목이 되어 400여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당시 익산시는 곰솔보호대책으로 피뢰침을 설치하려 예산을 수립했으나 늑장행정으로 낙뢰를 맞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대아수목원에서 2005년 후계목을 증식하고 있다가 2009년, 분양이식하여 유전자원이 보존되어 있는 상태이나 본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천연기념물은 죽거나 자리를 이동할 경우 그 가치를 잃어 지정이 해제되는 만큼 그 관리와 보존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천연기념물 보존과 후계목 육성〉전라북도 산림환경연구소 대아수목원은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도내 천연기념물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개하고 천연기념물의 유전형질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초 전주시 동서학동에 위치한 전라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진안 백운산으로 이전하면서 2009년 11월, 대아수목원에 '천연기념물 후계동산'을 조성하였다. 2007년까지 지정된 천연기념물 24개체 420본의 후계목을 육성하며 그 우수한 형질을 보전하고 있다.대아수목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천연기념물 355호인 전주 삼천동 곰솔이 고사위기에 처한 것을 계기로 2003년부터 전국 최초로 도내 천연기념물의 후계목 증식을 시작해 왔으며, 2010년 국립수목원에 연구제안이 되어 전국으로 확대될것이다'라고 전망했다.부실한 천연기념물 관리실태와 관련하여 전주환경운동연합 김진태 사무처장은 '문화재청과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간의 권한과 책임이 분명해져야 하며 보존과 관리를 위한 유연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주민이 천연기념물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보존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염경형 NGO 시민기자(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04 23:02

장경순 총재는

장 이사장은 숫자 10과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 의정사상 최연소 국회부의장으로 시작해 10년 동안 여당 부의장을 지내며 국회운영을 주도했다. 또 유도 10단으로, 유도계의 세계 최고수다. 평생 유도로 몸을 단련했고 유도정신에 입각해 살아온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1922년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장 총재는 만경보통학교와 배재중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 척식(拓植)과를 마치고 중국 상해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해방이 되고 이청천 총사령관 휘하의 광복군 잠편지대(暫編支隊)에서 참모조장을 지냈다. 귀국 후 2년 반동안 전북중학교(전주고 전신)에서 훈육주임과 유도교사 생활을 했다. 이 때 좌익서클 활동을 하던 10여 명이 경찰에 적발돼 구속된 것을 밤을 새워 사찰과장과 담판, 빼낸 일화는 유명하다. 박권상 KBS 사장, 임방현 청와대 대변인, 조세형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이 당시 제자다.이어 육사 제7기 특별반으로 입대해 육군 남산학교(특수정보) 학생처장, 특무부대(CIC) 차장, 제3사단 2223연대장, 육본 교육과장, 육사 참모장, 육군 제2훈련소 교관단장 등을 거쳤다. 준장으로 승진해 육군정보학교장, 육군본부 교육처장을 역임하다 운명의 516 쿠데타에 가담했다. 혁명정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하고 중장으로 예편,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고향 김제에서 6-1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5선의원이 되었다. 한독의원협회 회장, 한국유도회 회장, 세계유도연맹 부회장, 민주공화당 중앙위 의장, 제1무임소장관을 역임하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이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과 헌정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보수우익 시민단체인 자유수호국민운동을 발족시켜 총재를 맡고 있다.

  • 기획
  • 조상진
  • 2011.10.04 23:02

장경순 총재(자유수호국민운동)

"지금, 나라가 어려운 때요. 여러분도 힘을 합하고, 특히 언론이 앞장서야 합니다." 자유수호국민운동 장경순(張坰淳90) 총재는 인터뷰 요청을 하자 "어디냐"고 물어본 후 대뜸 나라 걱정부터 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쩌렁저렁했다. 한사코 "바쁘다"면서도 "좋소"하며 흔쾌히 응락했다. 인터뷰 내내 516 군사혁명의 주역으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나라를 이만큼 성장시켰다는 자긍심과 보수 우익의 원로답게 국가의 안보에 대한 염려가 컸다. 장 총재는 평생 세가지 목표에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왔다고 했다. 강력한 조국, 잘 사는 농촌, 유도 최고봉이 그것이다. 인터뷰는 서울시 중구 롯데호텔 건너편에 있는 나전빌딩 자유수호국민운동 총재실에서 진행했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굉장히 바쁘시다면서요?"그래요. 요즘 안보 정세 강연회, 현대사 바로세우기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언론 인터뷰 하느라 바쁩니다. 대학 강연도 자주 다닙니다. 5일에는 고향 김제노인대학과 군장대학에 가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는 내용으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2007년에 회고록 '나는 아직도 멈출 수 없다'를 펴낸 후 책 제목대로 멈추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자유수호국민운동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합니까?"2002년 4월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는 딸들이 살고 있는 미국 LA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교포인 안교명 예비역 대령이 나를 찾아와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 아닙니까?'며 몹시 걱정을 해요. '그게 무슨 말이요?'하자 한 월간지 기고문을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 전쟁 당시 적화통일 직전의 자유베트남 보다 더한 국기안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닷새만에 귀국해서 이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정래혁 전 국회의장과 김성은 전 국방부장관 등 7인 호국위원회를 결성하고 각계인사 100인이 참여한 발기인 대회를 가졌습니다. '좌익정권 몰아내야 국가가 산다'는 기치를 내건 것입니다."- 벌써 10년이 되어갑니다. 운영에 어려움은 없습니까?"출범하고 미국 상원 인권위원회와 해리티지 재단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곳에서 한국정부의 친북 용공태도와 국가안보 해이에 대해 알렸습니다. 고맙게도 제 말에 동감하는 교민들로 부터 재정적인 도움도 받았습니다. 지금은 회원이 3000여 명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분도 있고, 자원봉사를 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예전으로 돌아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해방 후에 잠시 전북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던데."일본에서 귀국 후 고향에서 농촌 부흥운동을 해야겠다며 당시로는 첨단농업인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학도병 출신인 친구가 불쑥 집으로 찾아 왔습니다. 다짜고짜 학교에 가자는 것입니다. 당시는 해방정국으로 좌우익 정파간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학교도 동맹휴학이다, 관공서 습격이다 하는 소동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던 거죠. 그 때 존경받던 김가전 교장(나중에 도지사가 됨)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교사인 친구의 말을 듣고 저를 데려다 학교를 조용히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국가동량이 될 청소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학교 훈육주임과 유도교사를 맡았죠."- 625 전쟁 얘기는 건너 뛰겠습니다. 총재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쿠데타를 함께 하셨는데, 어떻게 알게되었습니까?"내가 박 대통령과 처음 만난 것은 1948년 육사 제7기특별반으로 막 군복을 입은 때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이 우리의 중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것은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1950년 겨울이었습니다. 대구에서 CIC특무 차장으로 있을 때 내 직속상관이 한웅진 중령이었는데 그가 박 대통령과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2기 동기생이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여순반란 사건 연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전격적으로 군인신분에 복귀한 상태였습니다. 우리 셋은 애주가로 의기가 투합해 형님 아우하며 거의 날마다 저녁이면 대구의 술집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 후 나는 경북 영천의 육군정보학교 교장을 하다 1960년 7월 육군본부 교육처장으로 갔는데 얼마 후 박정희 소장이 직속상관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1961년 518 거사 전야(前夜)는 긴박했을 텐데요."5월 15일 오후 3시 무렵, 박 장군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좀 만날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도 묻지 않고 '어디로 가면 되느냐?'니까'우리집으로 오시오'했습니다. 퇴근하고 신당동 박 장군 댁으로 갔더니 '장 장군, 오늘 밤이 거사요'하는 겁니다."- 깜짝 놀라셨겠군요?"청천벽력 같은 일이지만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예견한 일이니까요. 당시 419 민주혁명과 그 이후의 국내 사정은 혼란의 절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했으나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고 학생들은 남북통일을 외치며 북한 젊은이들과 대화하겠다며 판문점으로 달려가는 판이었습니다. 이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수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도덕적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을 갖춘 집단은 오로지 군부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시 어떤 역할을 맡으셨습니까?"박 장군은 장도영 참모총장을 설득하고 낙하산 부대를 동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무겁고 착잡해, 일단 집에 들렸습니다. 아내와 장모님께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작별인사를 하고 박 장군 집으로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박 장군이 침통한 표정으로 거사가 폭로돼 끝났다는 겁니다. 나는 피가 정수리에 확 솟구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갑시다. 기왕지사 한번 해 보고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할 것 아닙니까?'하고 내가 소리치자 박 장군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516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농림부 장관 시절, 산림녹화 일화가 꽤 유명하던데요?"요즘도 어쩌다 시골길을 달리다 울창한 산림을 보면 뿌듯한 긍지를 느낍니다. '저 산림녹화는 내 작품이다'하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산은 민둥산이었습니다. 장관이 돼자마자 당시 심종섭 산림국장(전 전북대 총장)과 시도 산림과장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심 끝에 고안한 방법을 추진토록 했습니다. 사방(砂防)사업할 땅에 무조건 202020㎝ 깊이로 구덩이를 파서 거기에 논흙을 채우고 풀씨 싸리씨 등을 파종토록 한 겁니다. 그러면 비가 와도 흘러내리지 않고 빨리 안정화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토양을 키운 다음에 식목을 하니 나무가 잘 자랐습니다. 당시 USOM(주한미군 원조사절단)이 처음에는 무모하다고 말리다 대성공인 것을 보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까지 알렸습니다."- 김제에서 내리 5선을 하시고 국회 부의장을 10년간 하셨는데, 에피소드 한 가지만 들려주시겠습니까?"호남야산개발프로젝트와 광주에 아시아자동차(현재의 기아자동차)를 설립토록 한 것이 기억납니다. 또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안건이 있었습니다. 여야 원내총무를 불러 조정을 하려 했으나 안되길래 '몇 시간이 걸리든 합의를 하지 않으면 못 나옵니다'하고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결국 합의를 보고서야 풀려났죠.(웃음)"- 1970년에 미군을 감축하려는 것을 저지했다고 들었는데요."닉슨 대통령이 취임 직후 소위 '닉슨 독트린'이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약소 우방국에 경제적 군사 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보니까 주한미군도 조금씩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이삿짐 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강홍모 대령에게 은밀히 체크해 보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주한미군이 3만5000명인데 7000명이 빠져 나갔어요. 박 대통령에게 긴급히 보고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비밀리에 정일형 박준규 백두진 이동원 나 이렇게 사절단을 편성했는데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버렸어요. 할 수 없이 혼자 미국에 갔죠. 그때 야당 부의장인 윤제술 의원에게 상의를 했습니다. 결국 미국의회 지도자들을 설득해, 어렵게 막았습니다."- 윤 부의장과 상의한 것을 보니 야당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가 보죠."윤 부의장과는 여야로 당이 다를망정 단순한 관계 이상이었습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고향의'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이준 열사가 헤이그 가는 마음이겠군'하면서 공항까지 나와 '국가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꼭 성사시키고 돌아 오라'고 격려해주셔서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김대중(DJ) 김영삼(YS) 김종필(JP) 등 3김(金)씨를 지켜 보셨을텐데요. 이 분들에 대해 한 마디씩 평가해 주신다면?"DJ는 우리나라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고 호남정권을 세웠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이 나라를 좌경화하고 국가 정체성을 훼손시킨 장본인입니다. YS는 미국이 북한핵을 치려 하니까 반대했고 IMF를 초래하지 않았습니까. JP는 DJ를 도와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516 혁명을 같이 한 사람으로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주화를 하려면 국력이 배양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토대를 나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럼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에 대해서는?"두 분도 공과가 있습니다만 이 대통령은 건국과 건군(建軍)을 했고 문맹퇴치에 앞장섰습니다. 또 토지개혁을 해서 625 전쟁이 났어도 공산화를 막았습니다. 한미 동맹을 체결해서 박 대통령이 산업화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산업화를 30년만에 해 냈습니다. 영국은 200년, 미국은 180년, 일본은 100년이 걸린 것 아닙니까. 새마을 운동과 산림녹화, 그리고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은 우리나라를 지탱해 준 것입니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집니다. 오랜 정치경륜에 비추어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 특히 대통령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나는 대통령이 될 사람은 우선 철저한 애국심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안보에 대한 신념과 의지, 부정부패 척결 의지, 통치전략 전문가, 파벌의식이 없는 포용력을 갖춘 선비형 대통령이 바람직합니다. 국제정치, 특히 미국과 중국에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병역기피자와 탈세자는 뽑아선 안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처음에는 방향을 제대로 잡았지만, 지금은 큰 일입니다.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안보, 경제, 사회가치의 고양, 이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게 안보입니다. 안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게됩니다. 나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중도'란 결국 좌편(左便)일 뿐이라는 것을 경험상 확신합니다. 이념적 중심이 없는 중도는 종북(從北)주의자들이 활개치고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전북 정치권은 정부수립 당시와 비교해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도세(道勢) 또한 후퇴했습니다."호남에서는 민주당 아니면 당선되지 않는데 이래서 되겠습니까. 전라북도부터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일할 인재를 뽑아야 합니다. 전라북도가 도세가 약하다고 하지만 새만금사업이 성공하면 전국에서 제일가는 도가 될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유도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도에 입문하신 동기와 유도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유도와 유도로 부터 함양된 정신은 나를 평생 지탱해준 모든 정신활동과 가치개념의 근간입니다. 유도는 나에게 삶 그 자체요, 종교나 다름없는 절대가치입니다. 배재중 3학년 때 입문했는데 당시 조선연무관에는 국내 유도계의 1인자인 이범석 사범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사람은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유도의 요체는 자기의 체력과 정신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전까지 싸움질을 많이 했는데 이 때부터 열심히 공부도 하고 유도를 했습니다. 일본에 가선 강도관에서 일본 유도계의 쌍벽인 도쿠 산보와 미후네 규조 두 사범으로 부터 배웠습니다."-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신데 비결은 무엇입니까?"열심히 활동하는 게 비결인 것 같습니다.(웃음) 지금은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까지 집 근처인 독립공원을 1시간 가량 걷습니다."(장 총재는 2시간 30분 동안의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옮겨 점심을 같이했다. 점심 내내 국가 안보, 특히 한미연합사가 해체되어선 안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노산 이은상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술에 얽힌 일화 등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줬다.)

  • 기획
  • 조상진
  • 2011.10.04 23:02

찬바람에 오는 불청객 '구안와사'

여름이 지나면서고 일교차가 커지고 쌀쌀한 바람이 불면서 갑자기 한 쪽 얼굴이 돌아가고 눈이 잘 감기지 않는 환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어느 날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안면신경마비 '구안와사'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이런 경우 대부분 안면신경마비라는 진단을 받게 되는데 한방에서는 이런 안면마비 증상을 구안와사 또는 와사풍이라고 진단하게 된다.구안와사는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발생하며 노인은 물론 어린이, 임산부에게도 발생해서 매우 주의해야할 질환이다. 연애인들 중에 가수 조관우씨나 개그맨 백재현씨가 고생했다고 소개되기도 했다..구안와사 증상으로는 얼굴이 비뚤어지고 일그러지는 증상 이외에도 음식을 씹거나 삼키기 어렵고, 미각이 손실되고, 눈물분비가 줄고, 청각의 과민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또 양치질을 하다가 한쪽 입가로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아무리 입술을 오므리려고 해도 입안의 물을 가둬 둘 수 없게 된다.특히 구완와사는 얼굴이 틀어지다보니 사람을 만나는데 자신감이 떨어지며 우울증세까지 동반하며 심한 충격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구안와사는 예전에는 몸이 허약한 상태이거나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찬 바람, 찬 기운 등에 노출됐을 때 많이 발생했다.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스트레스나 과로, 영양 상태나 소화 상태, 면역력이 약한 사람, 불규칙한 식습관 등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어린이나 청소년 등 젊은층에도 많이 발병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정신적으로 심한 충격을 받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극심한 스트레스, 과로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풍한, 칠정(스트레스), 기혈 소통, 어혈, 과음, 과식 등이 있다. 실내외 온도 차이가 큰 3월과 10월에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코나 기관지의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안면으로 바이러스가 침투해 구안와사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한의학에서는 안면마비의 원인이 되는 각종 풍한, 칠정(스트레스), 기혈 소통, 비위 기능을 분석하여 몸의 균형과 기혈의 순환을 바로 잡아 치료하는데 면역력을 강화하면서 침,뜸치료를 병행한다.안면신경마비의 치료관건은 치료시기로 증상이 나타난 후 즉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구안와사의 한방치료 장점은 후유증을 줄이고 회복을 빠르게 돕는다는 점이다. 대다수 환자의 경우 꾸준히 치료를 받는다면 90% 이상 회복할 수 있다.마비가 심하지 않아서 얼굴을 가만히 있으면 표시가 잘나지 않으나 웃거나 찡그리는 등의 얼굴을 움직여야 마비가 나타나는 정도인 경우 특히 예후가 좋다. 첫 증상 발현 시 부분마비 형태였다가 점점 증상이 심해져 완전 마비 형태까지 이르게 된 경우에는 치료가 오래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후유증도 겪게 된다.하지만 구안와사는 난치병도 불치병도 아니며 생명에 지장도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시기만 놓치지 않으면 좋은 치료효과를 보는 질환이다.예방을 위해선 찬바람이나 비에 맞는 등 급격한 온도 변화에 노출되지 않도록 날씨에 맞게 옷을 입고 면역력이 약한 소아나 노인, 임산부는 특히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한다.평소에 입 주변과 안면근육을 자주 움직여 주고, 근육 뭉침을 풀어주는 습관들이 도움이 된다./ 신형식(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3과 진료원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03 23:02

Q&A로 알아보는 치매

Q. 치매예방주사는 없나요?아직까지 치매를 예방하는 특별한 약이나 주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원인질환을 치료하고, 생활습관 식이습관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매와 관련 있는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일부 도움이 되는 치료를 쉽게 '치매예방'이라 말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엄격히 말해 치매예방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고, 기억력 저하 등의 증상이 있다면 신속하게 검사를 받고 치료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Q. 스트레스 많은 직장인의 기억력 저하, 치매 아닐까요?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이나 주부들에서 기억력의 저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기억력이 저하되지만, 치매에서 보이는 뇌의 노화와 관련된 기억력의 저하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력 저하는 신체적 정신적 휴식을 통해 회복됩니다.Q. 잘 잊어버리는 일반적인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는?누구나 노화에 의해 약간의 기억력 저하는 나타나게 됩니다. 건망이란 말은 일상에서 다양한 경우에 사용되는데, 보통은 기억력의 감퇴가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얼마 전에 친구와 이야기 한 내용 등을 일시적으로 잊었지만, 힌트를 주거나 시간이 지나 생각이 난다면 건망이라 할 수 있고, 대화를 나눈 자체를 잊어버리고, 힌트나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치매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인에서 보이는 기억력 저하와 치매를 구분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아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Q. 치매를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나이가 들어 최근의 일이나 대화를 반복적으로 잊거나, 말하는 도중에 단어가 잘 안 떠오르고 말문이 막히거나, 돈 계산 실수가 잦아지고, 성격이 달라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짜증이 많아지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병원에서 치매와 관련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Q. 치매에 걸리면 성격도 변하나요?치매환자의 주요 증상으로 기억력 언어능력 같은 인지기능의 저하가 있지만, 사소한 일에도 심하게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 평소 깔끔하시던 분이 게을러지고 위생에 신경을 안 쓰는 경우와 같이 성격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Q. 중풍에 걸려도 치매가 될 수 있나요?중풍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출혈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뇌혈관질환은 알츠하이머병과 더불어 치매의 주요 원인입니다. 중풍을 예방하고 중풍이 발생했다면 잘 치료하고 이후에 관리해나가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김락형(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03 23:02

16. 치매(상)

노인이 되면 '죽음'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치매'라고 한다.연령대가 높을 수록 치매환자는 급격하게 많아지는데 이 가운데 65세가 지나면 매 5년마다 치매환자가 두 배씩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 통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치매노인은 약 45만명이며, 65세 이상 노인 11명중 1명이 치매 노인이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2030년에는 치매노인이 약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질환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치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치매의 진단과 초기증상, 예방 등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해봤다.▲ 치매의 정의치매란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인지기능인 기억력, 주의력, 언어기능, 시공간능력과 판단력 등의 장애가 발생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라고 정의할 때는 기억력을 포함해 다른 인지기능 중 한 가지 이상의 장애가 있는 경우를 말하며 치매환자들은 우울이나 불안 이상행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노인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인지기능의 저하는 정상적인 노화과정으로 나타나는 생리적인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라는 인지기능장애로 나룰 수 있다. 즉 치매란 일정 정도 이상의 인지기능 저하가 있으면서 일상적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치매의 원인치매는 하나의 질병에 대한 진단명이 아니고 증상군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현재까지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70여가지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로 전체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파킨슨병, 교통사고와 같은 뇌의 외상, 술의 과다한 남용과 지속적 섭취, 갑상선 기능저하증, 약물중독 등 많은 질환이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치매의 증상알츠하이머병의 가장 큰 특징은 치매 증상이 서서히 발생하여 몇 년의 경과를 거치면서 심해진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60세 이후에 주로 발생하는데 측두엽의 내측에 위치한 해마의 신경세포가 먼저 손상되면서 조기에 기억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초기의 기억소실은 오래된 기억보다 최근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다. 환자의 증상이 진행할수록 오래된 기억도 잊어버리게 된다. 언어를 이해하거나 이름을 말하는 등의 언어 기능이 떨어지게 되며, 공간 감각이 떨어지면서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심하면 집안에서 방을 찾지 못하게 된다. 이전의 습득된 행동들 열쇠로 문을 열거나 가위로 종이를 자르는 것 등도 잊어버리게 된다.혈관성 치매란 뇌경색과 같은 뇌혈관 질환과 관련하여 치매가 생기는 경우인데, 중풍으로 인한 치매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혈관성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에 비해 조기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고혈압과 같은 중풍 위험요인이 있을 때 위험성이 높아진다. 팔다리 마비나 언어장애 등의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는 점이 알츠하이머병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치매환자는 불안 초조와 같은 정서적 불안정, 피해적 사고, 집착, 분노, 성격변화, 수면장애, 배회, 거부 등의 심리 행동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치매환자의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고통을 겪는 주된 부분이다.▲ 치매의 진단치매환자의 진단은 환자, 보호자로부터 얻어지는 환자에 대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환자에 대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치매환자의 가장 중요한 증상은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기능에 대한 평가를 통해 기억, 언어, 집중, 판단 등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전산화단층촬영이나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실시하게 되며,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을 통해 치매와 관련된 원인이나 기타 질환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많은 검사들이 치매의 진단에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환자 및 가족의 병력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고 기억력 집중력 언어능력 등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의 치료법우리 뇌 안의 아세틸콜린은 인지기능과 관련이 깊은 신경전달물질인데, 치매환자에서는 아세틸콜린의 양이 부족해지고 작용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최근 개발된 약물들은 아세틸콜린의 기능에 작용, 인지기능을 호전시키고 병의 경과를 느리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외에도 뇌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약들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근본적 치료방법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지기능 외에 치매환자에서 보이는 수면장애, 망상, 불안, 행동적 심리적 증상에 대해서 약물치료를 시행하게 된다.뇌혈관 질환과 관련된 고혈압 당뇨병 등 위험인자를 조절하고, 중풍이 발생한 환자에서는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해 치매의 위험을 줄여야한다.약물치료 외에 인지재활을 위한 치료를 시행하고, 일상생활에서 사고발생을 줄이기 위한 노력, 집안환경과 식사, 위생 등의 생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03 23:02

삼양사 창립자 '수당' 김연수

삼양사 창립자 수당 김연수(秀堂 金秊洙18961979)는 1896년 전북 고창에서 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개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문묘(文廟)에 배향된 거유(巨儒) 하서 김인후의 13대손으로 태어났다.그는 일제 강점기, 해방공간, 6.25 전쟁, 4.19 와 5.16, 경제 근대화의 시대를 살아 오면서 정치사회적 격동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나라 경제근대사의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1921년 일본 경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수당은 이듬해 형님인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설립한 경성방직을 성공적으로 경영하였으며, 1924년 삼양사를 창업하여 한국 근대기업사의 큰 이정표를 세웠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만주에 진출, 1939년 '남만방적'을 설립하여 한국기업 해외 진출사의 첫 장을 기록하기도 했다.수당이 기업인으로 남긴 또 하나의 모습은 '사람'이었다.인촌을 도와 고려대와 중앙학원 등의 재정을 적극 지원하며 교육에 극진한 정성을 쏟은 것이나, 만주에서 남만방적을 가동하며 공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개교한 공장학교가 좋은 예다.공장학교를 열며 학습시간을 위해 근무시간을 두 시간씩이나 줄이는 당시 노동관행에도 없는 용단을 내렸다. 또 재정난을 겪던 봉천의 교포학교에 구대농장을 기부하고, 고향 줄포에 수당초등학교를 열도록 지원했다.1939년에는 한국 최초의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1968년에는 수당재단을 설립하여 장학금 지급 및 연구비 지원 등 인재육성에도 적극 나섰다.1961년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초대 회장, 1975년 삼양사 명예회장으로 경제활동을 해오던 수당은 1979년 84세로 영면했다.'인간존중의 원칙' 을 소중히 여기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수당은 일관된 실천을 통해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이러한 업적들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철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했다.

  • 기획
  • 강현규
  • 2011.09.29 23:02

78. 삼양사 전주공장 - 2) 전주방직 인수

삼양사는 제당과 함께 섬유산업을 향후 주력산업으로 육상한다는 구상아래 사업종목에 대한 검토를 실시한 결과 당시 국내에서는 볼모지와 다름없는 화학섬유에 승부를 걸었다.당시 모방은 이미 시설 과잉상태였고 면방은 진출 여지가 있기는 했지만 경방과 겹치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삼양사는 화학섬유 진출을 결정하면서 장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러한 전망은 후일 그대로 적중했다.실제 제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을 거치면서 화학섬유산업이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떠올랐다.삼양사의 섬유산업 진출은 1963년 전주방직 인수로 시작됐다.1942년 조선마방 전주공장으로 출발한 전주방직은 해방후 불하과정을 거쳐 조업을 재개했으나 6.25전쟁에 휩쓸리며 경영난에 빠진 회사였다.삼양사는 전주방직을 삼양모방(주)로 상호를 변경하고 경영 정상화에 나섰지만 좀처럼 경영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소모방은 원료를 전량 수입해야 했고 국내 생산시설의 증가로 출혈경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이에 삼양사는 업종을 견방업으로 전환해 정상화를 꾀하면서 화학섬유분야로의 신규 진출을 추진했다.그 핵심은 1966년 확정된 화학섬유공장(폴리에스테르) 건설 계획이었다.삼양사는 스테이플 화이버 12톤, 필라멘트 1통 등 총 13톤 생산규모의 공장 신설을 위해 일본 레이온과 기술 제휴 및 용역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당초 이 공장은 울산 제당공장 옆에 세울 계획이었지만 고창 출신인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 회장이 낙후된 전북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2억원의 공사비가 추가되는 부담을 안고도 전주로 정했다.이에 따라 전주시 팔복동 공업단지에 10만여 평의 부지를 매입해 전주공장을 건설하게 됐다.전주공장은 1차로 7700평의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1969년부터 신축공사에 들어갔다.이와 함께 기술사원을 모집해 일본 제휴사로 파견, 기술연수를 실시했다.1969년 여름, 일본에 발주했던 시설재가 속속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기계 설치작업에 착수한 전주공장은 마침내 1969년 12월 스테이플 화이버와 필라멘트 방사연신공정이 가동되고 이듬해 3월에는 중합시설이 준공됨으로써 전주공장의 대역사가 시작됐다.4850평 규모의 본공장과 3090평의 부대건물로 준공된 전주공장에는 하루 13톤의 폴리에스테르 칩을 생산하는 국내 최초의 중합시설과 하루 3톤을 생산할 수 있는 톱시설 등이 갖추어졌다.새 제품의 상표도 사내 공모를 통해 '트리론(TRIRON)'으로 정했고, 삼양 폴리에스테르 제품의 간판 브랜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사업 초기에는 불안정한 시장 상황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이는 오히려 생산과 품질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1972년부터 살아나기 시작한 폴리에스테르 수요는 원면, 원사의 심한 물량 부족사태를 빚으면서 국내 가공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이에 삼양사는 1973년 일본산 스테이플 화이버 30톤 증설을 골자로 한 전주공장 1차 증설에 착수했다.이 증설에는 새로운 공법이 도입됐다. 대표적인 것이 TPA공업이다. 기존에는 DMT공법을 사용했으나 일본 미쓰비시화성의 직접교환반응식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이 증설로 전주공장의 중합시설의 원료 반입공급설비가 대폭 개선되고 방사시설의 생산능력 대형화, 설비의 균형이 이뤄졌다. 또한 합리화를 통해 필라멘트 생산능력을 하루 3톤으로 늘렸다.이에 힙입어 전주공장은 1974년에 전년보다 36% 늘어난 736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내수 판매 또한 전년대비 39%나 증가하는 실적을 거뒀다.

  • 기획
  • 강현규
  • 2011.09.29 23:02

고향 찾은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어린 시절 지긋지긋할 정도로 가난했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한겨울 냉방에서 잠을 자야했던 탓에 아침이면 굳어버린 손가락을 펴는 일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목표의식만은 잃지 않았다.30대에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30여 년 동안 공직에 몸담으면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리고 지난 6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제14대 한국전기안전공사 박철곤 사장(59)이 지난 26일과 27일 1박 2일 동안의 일정으로 고향인 전북을 찾았다.▲지난 6월 1일 한국전기안전공사 14대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났는데요.-벌써 백일이나 됐나 싶습니다. 공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직원들이 저와 같은 눈을 갖도록 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총리실에서 근무할 때는 정책을 입안하면 관련부처나 일선기관을 통해 일이 시행되기 때문에 국정 전체를 거시적으로 보면서 일을 했다면 지금은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지만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한국전기안전공사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는 기관인지요.-한마디로 전기의 안전한 사용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국민은 한전을 찾지만 사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달려갑니다. 전봇대로부터 인입된 가정, 빌딩, 아파트, 공장, 발전소까지 전기 고장과 안전 문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한국 최고의 전기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보시면 됩니다.▲취임 100일을 맞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는데요.-모두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전기안전을 선도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시대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선도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부신 기술의 진보를 우리 공사만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신 전기안전 관리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 공사의 전기안전 기준이 곧 글로벌 기준이 되는 전기안전 중추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하겠습니다.두 번째는 행복한 고객입니다. 공사의 존립목적은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고객인 국민이 공사의 서비스와 역할에 감동할 때 우리의 존재는 빛이 나고 존립 의의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세 번째는 신명나는 일터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공사 직원 모두가 즐겁고 신나게 일하지 않으면 전기안전의 선도도, 고객감동도 한낱 공허한 바람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일터가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도록 사장으로써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20여 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그동안 해왔던 일 하나하나가 잊혀 지지 않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스 공포가 불어 닥칠 때, 일선에서 국내 창궐을 막아내는 수비대장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민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을 느낍니다.또 총리실에서 근무할 때 '먹거리 안전 확보 TF', '기후변화 대책 기획단' 등 국정현안 해결을 총괄 담당해왔는데, 기후변화대응과 같은 경우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녹색성장으로 '관점'을 바꿔서 산업의 흐름을 주도한 경우는 우리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는 향후 60년 이상 우리경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무궁한 산업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오랜 시간 공직생활을 해왔습니다. 남다른 경영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요.-행정고시 합격 후 공무원 연수원에 들어서면서 '내가 여기 왜 있나'를 곰곰이 생각했었는데, 부나 권력, 명예는 모두 부질없어 보였습니다. 그 때 스스로 '소신 있게 살자'라는 각오를 다지고, 원칙과 일관성 있는 업무처리를 비롯해 잘못된 관행과 문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약 30여 년간의 공직생활 경험으로 비춰 볼 때 자신에게 가장 튼튼한 자본과 힘은 노력입니다. 저마다 타고난 능력은 차이가 있지만, 노력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노력은 성과를 낳고, 이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게 됩니다. 늘 이와 같은 초심을 잃지 않고 생활하기 위해 솔선수범해왔습니다.▲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현재의 자리에 올랐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는.-저는 '고시 3관왕 출신'입니다. 검정고시를 두 차례 합격했고, 행정고시를 거쳐 공직에 입문했습니다. 고시 3관왕이라는 타이틀만 봐도 그동안 무슨 일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싸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굵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내온 저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시험제도입니다.저는 시험제도가 굉장히 유용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저도 이 과정을 밟아왔고요. 결국 본인의 노력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다 잘못되면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지만 아무것도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목표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랍니다.▲재임기간 중 전기안전공사 본사가 전주완주 혁신도시로 이전합니다.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요.-취임하고 보니 저희 공사가 고향으로 이전을 하는 것으로 돼 있더군요. 다른 분들보다 책임감을 더 느낍니다. 현재 공사 건물을 짓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공사 건물은 외관부터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이면서 상징적인 건물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 속에 전주완주 혁신도시, 전주하면 전기안전공사 사옥을 떠올리도록 할 것입니다. 2013년 말까지 차질 없이 공사 이전을 완료할 수 있도록 공정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어렵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도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하면 전북의 밝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인 '아리울'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울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리울은 잘 만들면 대한민국 발전의 거점이면서 모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획
  • 박영민
  • 2011.09.29 23:02

[새만금] 새만금 수질개선비 확보…개발 속도 기대

새만금 수질개선 제2단계 사업 예산이 상당부문 확보됨으로써 향후 새만금 개발 사업의 조기 추진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전북도에 따르면 정부의 내년도 국가예산(안)이 확정단계에 있는 가운데 새만금 수질개선 제2단계 사업 예산이 총 1206억원으로 사실상 확정됐다.이는 전북도가 애초 정부에 요구한 내년도 새만금 수질개선 제2단계 사업 예산 1716억원과 비교할 때 510억원이 부족하지만, 정부 관계부처와 예산부처의 반영액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새만금 수질개선 제2단계 사업 예산은 환경부에서 1081억원, 기획재정부 1차 심사와 2차 심사에서 각각 556억원과 772억원만 반영됐었다.사업별로는 총인 고도처리시설(110억원)과 농어촌마을 하수도(29억원), 공공 하수종말처리시설(101억원) 등 9개 사업예산이 전액 반영됐다.새만금 수질개선 사업비는 도가 국무총리실 새만금위원회가 지난 3월 확정한 종합개발계획(MP)에 따라 후속절차의 하나로 요구했다. 오는 2015년 수질 중간평가 이전까지 수질개선비의 80%인 2조1073억원을 조기 투입해야 해 매년 국비 3000억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도의 요구대로 사업비가 확보되지 못하면서 새만금의 조기개발은 물론 새만금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됐다.도는 내달부터 시작되는 국회의 내년도 예산심의 과정을 거칠 경우, 새만금 수질개선 예산이 100∼200억 정도 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도 관계자는 "지역 정치권과 함께 정부 관계부처 등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예산활동을 벌인 가운데 이 같이 확보하게 됐다"라며 "향후 새만금 활성화는 물론 지역발전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한편 전북도의 내년도 국가예산 정부안은 올해 5조 2000억원에서 1000억원 정도 늘어난 5조 3000억원 정도로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 기획
  • 구대식
  • 2011.09.27 23:02

기억하고 있나요 군산 화재 참사를

2000년 9월19일 군산 대명동에서 성판매 여성 5명이 무허가 건물 2층에서 감금된 채 화재로 질식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하였다. 경찰과 검찰은 단순 화재사건으로 취급하며 은폐하려 했으나 이 사건을 통해 성판매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 및 그들의 실제 처참한 삶, 성매매 조직과 경찰의 유착 비리가 극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또 희생자 유족이 국가와 군산시, 포주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년의 법적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최초로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함으로 끝이 났다. 대법원이 이제껏 외면하여 온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었다.민들레 순례단은 올해로 6번째 전국의 여성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모여 그 순례길을 걷고 있다.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우리가 기억하고, 외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대명동개복동 화재참사, 그러나 이것이 과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도 착취와 폭력의 현실을 이어지고 있다"며 군산화재참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청춘은 인신매매로 팔려와 포주의 감금으로 벽만 있는 작은 골방에서 그렇게 스러져가버리고 말았다. "누가 이 안타깝고 슬픈 청춘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을까? 그래. 우리가 시작하자. 그 죽음으로 성매매 여성의 처참한 삶을 말한 꽃다운 여성들을 우리가 기억하자." 민들레 순례단은 그 마음을 모아 이렇게 시작되었다.순례단은 개복동과 대명동 화재 참사 현장을 지나며, 그녀들을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며 추모의 길을 걸었다. 현재 개복동과 대명동 화재 참사 현장은 한때 수십여 곳 이상 성판매업소가 성업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건물들이 헐리거나 리모델링되어 다른 상점이 들어서고 있다. 그 건물 그 장소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그녀들의 흔적을 점점 지우려는 듯 말이다. 그저 화재 사건으로 기억되는 그녀들의 죽음은 이렇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그러나 아직도 대명동 건물의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에는 청소년출입금지 표지판과 쇠창살문으로 막아둔 유리방이 남아 있으며, 온통 검은색 시트지로 가린 단란주점과 알 수 없는 유흥업소가 함께 들어서 있었다. 그 좁은 길을 지나며 민들레 순례단은 끝나지 않은 투쟁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민들레 순례단은 임피승화원에 모셔진 화재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꽃을 올리고 함께 울었다.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성착취와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죽음으로서만 '나는 갇혀있었다. 저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들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죽어야만 자유로울 수 있는 그녀들을 기억하기 위해.그리고 우리 곁에서 살아서 자유로울 그녀들을 위해민들레 순례단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민들레순례단에 함께하며. / 김영란(전북여성단체연합 활동가 )

  • 기획
  • 전북일보
  • 2011.09.27 23:02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