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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시조계의 큰 어른 가람 이병기 생가

사람은 어느 한 분야에 능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을지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잊히기 쉽다. 바로 가람 이병기 선생이 그런 분 가운데 한 분이다. 가람은 당신의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진흙에 뒤덮인 보석 같아 못내 아쉽다.▲가람 생가 가는 길익산시 금마면에서 1번 국도를 따라서 연무대 방향으로 가면 익산시 여산면이다. 4차선 신작로를 따라 여산면에 들어서면 얼마 가지 않아 이정표가 나온다. 또 여산면 초입에서 2차선 구도로인 '가람로'를 따라 가면 '가람1길'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 길로 가면 된다.마을 이름은 진사동인데 '참숯골'이었다가 '참실골'로 바뀌고 진사동(眞絲洞)으로 다시 바뀌었다. 마을 입구 '진사교' 양쪽 난간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한가운데에 '시조의 마을'이란 글씨를 써 놓았다.▲생가와 그 주변생가 앞에는 널따란 주차장이 있다. 이 주차장을 볼 때면 이곳에 백련을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람문선'에 보면 생가 앞 논 반 마지기에다가 백련을 심은 이야기가 나온다. 할아버지가 심은 백련이 죽어서 다시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백련을 가꾸었다고 한다.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백련을 관광 상품화하는데 중국에서 백련을 처음으로 들여온 이가 익산 사람으로 조선 선조 때 문인인 표옹 송영구라고 한다. 아무런 역사성도 없는 데다가 백련을 가꾸는 것보다 백련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익산에 백련을 가꾸어야 한다. 주차장을 콘크리트를 거둬 내고 백련을 심을 날이 오기 바란다.가람 생가는 지금 보수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 처음에는 이엉만 다시 올리고, 담장 보수하고, 배수로만 내려고 계획했는데, 도리까지 썩어서 공사가 더 커졌다고 한다.가람 생가에 들어서면 먼저 네모난 작은 못이 나온다. 가람 생가에서 만난 김장환씨의 증언에 따르면 2004년 무렵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못도 만들었다고 한다. 본래는 폭 1미터 정도의 작은 못이 울타리 안 마당 남쪽에 있었다고 한다. 못가에는 개나리, 산수유나무, 배롱나무 들이 어울려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롱나무 꽃이 앞서 맞이했다.그리고 현재의 못 남쪽 끝에는 계일정(誡溢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지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므로 항상 분수를 지키고자 노력했을 고인들에게 새삼 머리가 수그린다. 언젠가는 이 정자도 복원해야 한다.과거에는 부속건물이 더 있었지만 지금은 정자, 사랑채, 안채, 그리고 곳간채 한 동이 있다. 모두 초가로 화려하지 않아 소박하기 그지없다. 당호(堂號)는 수우재(守愚齋)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불러온 이름이란다. '어리석음을 지키는 집'이란 겸손한 이름이다.사랑채 앞에는 승운정(勝雲亭)이란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다분히 도교적인 이름이다. 이 정자에 앉아서 호산춘이라도 한 잔 한다면 구름을 탄 기분이리라. 승운정 옆에는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된 커다란 탱자나무가 마치 문지기라도 되는 듯 서 있다.사랑채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이곳에 올 때면 가람이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것만 같다. 2년 전에 가람 친척에게서 들은 이야기다.어느 날인가 가람이 방안에서 밖으로 담뱃대를 내밀며 불을 붙여 오라고 했단다. 당연히 아랫사람에게 시킨 것이었겠지만 마침 사랑채를 지나던 사람이 담뱃대를 받아 불을 붙여서 방안으로 담뱃대를 내밀었다고 한다. 담뱃대를 받으면서 보니 바로 아버지였다. 깜짝 놀란 가람이 이 일을 계기로 담배를 끊었다고 한다. 가람도 가람이지만 아버지도 훌륭한 분이다.안채는 ㄱ자 모양이다. 양반 가옥의 구조를 따라 누마루까지 갖췄지만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주차장 오른쪽 언덕에는 동상이 있는데, 둘레에 가람의 시조 '고향으로 돌아가자'와 연보가 새겨져 있다. 이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100여 미터를 더 들어가면 가람의 묘소가 나온다. 곧 가람 생가 대나무 숲 뒤다. 그런데 안내문이 없어서 생가 뒤에 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막상 묘소에 가더라도 너무 방치되어 있고 석물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아 아쉬움이 든다. 이곳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닭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석물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모르는 이들은 너무 방치했다면서 안타깝게 여긴다.가람 생가에서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는 폐교가 된 여산남초등학교가 있다. 이곳은 가람이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을 받았던 곳이다.또 여산초등학교는 가람이 20대 때 근무하던 학교다. 학교에 들어서면 흉상과 함께 가람이 지은 교가가 새겨 있다. 그런데 노랫말이 참 재미있다."여산은 옛 고을 호남의 첫 고을그 역사 몇 천 년 나리어 오면서이렇다 할 만한 자랑은 없으나그래도 우리는 못 잊는 이 고장."▲가람 이병기는 누구인가가람 이병기(1891~1968)는 국문학자 또는 시조시인이다. 가람은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에 주춧돌을 놓은 학자요, 쇠약해 가던 우리 시조시를 부흥발전시킨 시인이었다. 또한 교육자한글운동가애란가애주가이기도 했다.▲난초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비록 문학소녀가 아닐지라도 학창시절에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가람의 '난초'라는 시조다. 가람은 난초복, 술복, 제자복을 타고 났다고 한다. 얼마나 난을 아꼈으면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갈 때도 처자식의 안위보다는 난초가 죽지 않게 잘 보살피라고 했을까? 가람은 술자리와 강의실이 따로 없었다. 전주 풍남문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길가에 앉으면 그곳이 곧 강의실이었다고 한다.가람은 1891년 3월 5일 현재의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이다.주시경 선생의 제자가 된 뒤 우리 말글에 관심을 갖게 된다.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국어학 연구와 한글 연구를 하는 한편, 시조시 창작과 그 이론적인 연구에도 차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1926년 '시조란 무엇인가'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1927년 시조회, 1928년 가요연구회를 조직하여 시조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시가 전반에 걸친 연구를 계속하였다. '한중록', '인현왕후전', '의유당일기', '요로원야화기', '어우야담', '역대시조선' 등은 가람이 발굴하여 소개한 것들이다.가람은 창씨제도(1940)의 협박에도 본성명 '이병기'를 고수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어학회 사건'(1942)으로 근 1년간 옥살이를 하였다.1946년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개론' 첫 강의를 하고, 1952년 명륜대학이 국립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에 편입되자 그 학장이 되어 1956년 정년퇴임까지 재직하였다. 1957년 한글날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귀갓길에 뇌일혈로 와병하였다가, 1968년에 돌아가셨다.▲기념사업주차장에 들어서면 올 4월에 제3회 가람시조문학제를 했던 현수막이 지금도 붙어 있다. 가람시조문학제는 가람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데 해마다 4월 둘째 주 토요일에 가람 생가에서 열린다. 문학제 때는 학술행사와 함께 전국가람시조백일장을 열고 있다. 가람기념사업회에서는 문학관을 지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한 쪽에는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 익산문화재단, 익산의제21 등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가람 이병기 학술대회'가 오는 9월 23~24일에 원광대학교에서 열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익산시는 가람의 업적을 추모하고 시조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가람시조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79년부터 97년까지는 시조문학사에서 시행(17회 시상)하다가, 98년과 99년에는 문학사상사에서 2회, 그리고 2000년부터는 익산시에서 시행하고 있다. 2009년도부터는 가람시조문학신인상을 제정하여 2011년에 3회 시상을 했다./ 이택회 문화전문 시민기자(시조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위병기
  • 2011.09.05 23:02

만성 기침, 원인질환을 찾자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침은 대개 감기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기침이라는 것은 외부의 해로운 물질이 체내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고, 폐와 기관지에 존재하는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정상적인 인체의 방어반응입니다. 그러나 기침을 한다고 반드시 감기에 걸렸거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기침을 억제하는 것 보다는 효과적으로 기침을 하게하고, 기침을 하게 하는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만성적으로 기침이 나타나는 질환을 간단히 알아봅시다.목구멍으로 콧물이나 기타 분비물이 흘러내려 자극을 받아 기침을 하는 후비루 증후군, 기침과 함께 목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고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기관지 천식, 삼킨 음식물이나 위산이 역류하여 식도를 자극하면서 기침 증상이 나타나는 위식도역류(역류성 식도염) 등이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그 외에 흡연, 약물복용에 의해 나타나거나 습관적으로 무의식중에 기침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습니다.한의학에서 기침은 해수(咳嗽)라고 하며, 외감(外感)과 내상(內傷)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감(外感)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기침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증상이 급격히 나타나고, 변화가 빠르며,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그만큼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내상(內傷)은 환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환이나 개인적인 인체특성이나 생활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변화가 완만하며, 치료에 반응을 쉽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만성 기침은 내상해수(內傷咳嗽)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위장과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 과로나 스트레스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 체내 노폐물이 잘 배설되지 않아 잘 붓고 몸이 무거운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 진액(津液) 부족으로 입이 마르고 변비가 잘 발생하는 사람 등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겨버리거나 감기약만 지속적으로 복용하게 되면 나중에는 그 원인질환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이 추가로 발생하게 되어 치료과정이 더 길어지고 복잡해집니다. 발병 원인과 개개인의 특성을 감안하여 실시되는 한방치료는 기침증상의 완화 뿐만 아니라 원인질환의 점차적인 개선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치료를 시작한 초기에는 빠르게 호전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내상(內傷)질환의 특성을 생각해 보고, 얼른 낫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담당 한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 질환과 그 경과에 대해 파악하고,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의사의 지시사항과 생활습관의 교정을 통해 치료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란희(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 1과 진료원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09.05 23:02

Q&A로 알아보는 췌장암

Q.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A. 아직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하지만 방사선 노출 문제로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또한 암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것이 췌장암 입니다. 따라서 췌장암의 가족력이 있거나 당뇨 및 만성 췌장염을 앓는 등 췌장암의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의사와 상담해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Q. 피검사만으로 췌장의 이상여부를 확인할 수 있나요?A. 혈액 검사만으로는 췌장암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췌장 두부의 췌장암의 경우 담관폐쇄에 의해 빌리루빈과 같이 황달을 의미하는 혈액수치의 상승이 나타날 수 있으며, 종양 때문에 췌관이 막히는 경우 이차적인 췌장염이 생겨 아밀라아제가 상승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CA19-9라는 종양 표지자가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Q. 췌장암을 예방할 수 있는 음식이 있나요?A. 육류나 지방성분이 많은 식사를 삼가고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음식과 더불어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 적당한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췌장암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Q. 췌장암은 조직검사 없이 진단이 가능한지요?A. 수술적 절제가 가능한 췌장암의 경우 수술 전 조직학적 확진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임상양상이나 영상소견만으로 진단이 어려워 조직검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수술적 절제가 불가능한 췌장암에서는 항암화학요법 혹은 방사선요법을 위해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초음파내시경을 통한 세침흡인 검사로 조직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어 진단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Q. 췌장암은 완치가 가능한가요?A. 초기에 발견 후 근치적 절제술을 받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완치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췌장암의 근치적 절제율은 최근에는 20% 이상으로 향상되었으나 근치적 절제술 후 5년 생존율은 여전히 10~20%에 불과합니다. 단 췌장암의 원인이 내분비계 종양이거나 췌장낭종에서 기인한 경우 조금 더 좋은 생존율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Q. 췌장암은 몇기까지 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A. 췌장암의 주위 주요혈관 침습여부가 절제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간 등에 원격전이가 없으며, 복강동맥 또는 상장간막동맥 침윤이 없는 I기 및 II기에서 근치적 절제가 가능합니다.Q. 췌장암인데 수술을 할 수 없을 때 꼭 항암치료를 받아야만 하나요?A. 국소적 또는 전신적으로 진행된 췌장암에 대해서는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받지 않는 것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존을 연장하는 효과가 있습니다.Q. 췌장암에 대한 종양표지자(CA19-9)가 높으면 다 췌장암인가요?A. CA19-9가 높으면 췌장암 진단에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췌장암 외에도 대장암에서도 상승될 수 있으며 기타 만성췌장염, 담관 폐쇄 황달, 담관염 같은 양성 질환에서도 상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10% 미만에서 췌장암이 있더라 하더라도 CA19-9가 정상을 보이는 경우 있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선별검사나 췌장암의 조기 발견에 명확한 검사는 없으며 이를 위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Q. 췌장암 환자의 식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A. 증상이 없을 경우에는 굳이 식사를 제한할 필요가 없으나 췌장의 소화액이 암으로 인해 막혀 소화불량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지방과 단백질은 줄이고 탄수화물 위주의 곡물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건강 보조 식품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 시킬 수 있으니 의사와 상의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췌장 두부의 암이 진행된 경우 십이지장을 막아 소화장애와 구토를 유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금속 스텐트를 십이지장에 삽입해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으니 담당 의사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09.05 23:02

14. 췌장암

췌장암은 발생 빈도가 우리나라 전체 암 중 2.4%로 9번째이다. 하지만 암으로 인한 사망원인에서는 5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다른 암에 비해 발생빈도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일단 발생하면 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췌장은 '이자'라고도 하며 위장의 뒤에 위치, 오른쪽은 십이지장에 의해 둘러 싸여 있으며 왼쪽 끝은 비장과 인접하고 있다. 췌장의 주된 기능은 외분비 기능으로 음식의 소화를 돕기 위한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것이며, 내분비 기능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과 글루카곤 등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이다.췌장암에 대한 치료 방법이 많이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5년 생존율은 저조하다. 대부분 진행된 후에 발견돼 수술 절제가 가능한 경우는 20% 이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전북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성훈 교수는 "췌장암을 예방하기 위한 뚜렷한 예방 수칙이나 권고되는 검진 기준이 없어 췌장암의 위험요인에 해당하는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며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며 당뇨병이 있는 경우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므로 꾸준한 당뇨 치료와 함께 술을 마시지 않거나 적정량의 음주 습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췌장암의 원인: 고령, 흡연, 당뇨, 만성 췌장염, 유전적 요인췌장암 발생률은 남자가 여자보다 약 1.3배 높고, 50세 이상의 고령에서 주로 발생한다. 육류나 지방 성분이 많은 식사를 하는 사람에서 췌장암의 발생률이 2배 정도 높으며, 비만은 약 1.5배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담배는 잘 알려진 위험인자로 흡연자에서 2배 정도 췌장암의 발생률이 높다. 그 외에 만성 췌장염이나 당뇨병과 관련해서 췌장암의 발생률이 증가하며, 가계의 유전적 요인에 의해 췌장암이 발생하는 경우도 췌장암 환자의 5~10% 정도에서 관찰된다.▲췌장암의 증상: 복통, 체중감소, 황달, 췌장염, 새로 생긴 당뇨조기의 췌장암에는 특징적인 증상이 별로 없으나, 증상이 있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 황달이 나타난다. 특히 췌장의 두부에서 발생한 췌장암은 췌장 내 총담관을 막아 황달을 일으킨다. 췌장의 체부나 미부에서 발생한 췌장암의 경우는 황달 없이 심와부 통증 및 배부통을 호소한다. 특히 췌장암 환자의 약 10%에서 새로 생긴 당뇨병이 췌장암의 첫 증상일 수 있기 때문에 중년 이후 당뇨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췌장암을 한번 정도는 의심해봐야 한다. 이외에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췌장암의 진단복부 초음파검사는 이용하기 쉽고 안전하며 빨리 평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때 처음 검사방법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크기가 작은 경우 진단율이 낮아 선별검사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은 현재까지 췌장암의 진단 및 병기결정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검사법이다. 자기공명영상(MRI)은 해상력이 CT보다 못하며 비용이 높지만 담도와 췌장관의 침범 여부와 혈관의 종양 침범 여부를 아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FDG-PET)은 원위부 전이를 배제하기 위해 사용된다.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 (ERCP)은 CT와 초음파상 진단이 어려운 경우와 췌장암의 담도 폐쇄로 인해 황달이 동반돼 있을 때 내시경적 담즙 배액을 목적으로 시행한다. 잘 이용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췌장을 평가하는 데 내시경초음파가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림프절전이 및 혈관침윤 등 국소진행 상태를 평가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세침흡인검사를 통해 세포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조직학적 진단이 필요한 경우 유용하다.▲췌장암의 치료췌장암의 주된 치료로는 수술, 방사선요법, 화학요법(항암제)의 세 가지가 있다. 종양의 진행 정도에 따라 절제가 가능하다면 수술적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하지만 진단된 환자 중 10~15%만이 가능하다. 주위 중요 혈관을 침범한 국소 진행의 경우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합하고 전이가 확인된 경우 항암치료만 시행한다. 현재 표적치료제가 절제가 불가능한 췌장암에서 항암제와 병행해 사용되고 있으나 아직 유용성을 명확히 증명하지는 못했다.▲췌장암의 예방아직까지 췌장암을 예방하기 위한 뚜렷한 예방 수칙이나 권고되는 검진 기준은 없다. 따라서 췌장암의 위험요인에 해당하는 것들을 일상생활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 담배는 췌장암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므로 담배를 피우지 말고, 흡연자는 담배를 끊도록 해야 한다. 당뇨병이 있는 경우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므로 꾸준한 당뇨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만성 췌장염이 있는 경우에도 췌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므로 췌장염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음주는 췌장암의 직접요인은 아니지만 췌장암의 원인인 당뇨 및 만성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거나 적정량의 음주 습관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건강한 식생활과 적당한 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다른 질환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09.05 23:02

김완주 지사와 김승수

김 부지사는 지난 1998년 당시 대학 지도교수의 소개로 현 김완주 도지사를 만난다. 이후 13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전주시장 2회, 전북도지사 2회를 만들어냈다. 처음 봤을 때 "이놈 정도는 괜찮겠다", "이 사람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게 김 부지사의 설명.그는 김 시장의 당선과 함께 전주시청에 수행비서로 들어왔다. 이어 비서관,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특히 지난 2006년 김완주 지사가 도지사에 당선된 후 비서실장, 대외협력국장 들을 지냈다. 그리고 이번에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정무부지사 중 최연소 부지사에 오른 것.애초 김 부지사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최근 전북대학원에서 다문화가정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게 이를 설명해준다. 따라서 선거가 끝날 때마다 선거 캠프를 벗어나려 했으나 김 지사의 만류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김 부지사와 김 지사는 요즘 인간적인 정을 뛰어 넘어 공동의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보다 잘사는 전북도를 건설하기 위해 서로 힘 닿는데까지 노력하고 희생하자는 것. 김 부지사는 "김완주호가 성공하도록 모든 열정과 진정성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리고와 전북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김 부지사는 아내 류진영씨와의 사이에 효민, 효재, 효승 2남1녀를 두고 있다. 자신의 승용차에 별도의 스피커를 달 만큼 음악광이자, 새벽에 스키를 타러 다닐만큼 스포츠광,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할 만큼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다.

  • 기획
  • 구대식
  • 2011.09.01 23:02

김승수 신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김승수 도 정무부지사는 31일 오후 한나라당 도당위원장을 선출하는 전주 리베라호텔을 찾았다. 도 정무부지사가 한나라당 도당위원장 선거장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다. 앞서 김 부지사는 도내 시군 단체장과 시군의회 의장단을 직접 찾아갔다. 도내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 언론계, 재계, 문화계 대표들도 일일이 찾았다. 그리고 3040분씩 얘기를 귀담아 듣고왔다.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소통 행정'을 시작한 셈이다. 이는 김 부지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들을 해나갈지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정무부지사로 취임한지 보름이 됐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을텐데, 취임 소감은? 솔직히 말하면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래서인지 취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감회나 소감을 가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도가 많이 막혀 있다는 것을 피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쉽고,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김 부지사는 도지사 측근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도정이 측근위주의 폐쇄 행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역기능과 지사에게 정확하게 여론이 전달될 것을 기대하는 순기능이 교차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기대보다 우려와 걱정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측근이고 경륜이 적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또 도민들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측근이 지사님의 눈을 가린다던지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이 같은 굴레를 벗어날 것으로 봅니다, 무겁고 책임감이 큽니다.▲김 부지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중앙관계가 약하고 행정경험도 풍부하지 못하며, 나이고 충분한 경험을 쌓을 만큼 많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무부지사 자리는 정무 관련업무가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동안 도지사 비서실장과 도 대외협력국장 등을 맡으면서 다양한 중앙인맥을 쌓아왔습니다. 전북도가 그동안 인맥이 없이 일을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약간 불편하겠지만 열정과 전략으로 극복하겠습니다. 경륜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듭니다. 이 분야에서 십 수년간 잔뼈가 굵었습니다.▲전북도가 최근 되는 일이 없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LH유치와 과학비즈니스벨트유치 등 대형사업을 잇따라 실패한 게 대표적입니다. 두 가지로 판단됩니다. 하나는 전라북도 도정의 수장은 도지사입니다. 잘됐던 잘 안됐던 도지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둘째는 전략실패보다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최근 국회 예결위 계수조정위에 전북출신 의원이 배제됐다는 것은 도내 정치적 역량과 결부됩니다. 따라서 전북도가 호남권의 들러리에서 벗어나 독자권역을 설정해나가는 등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요. 특히나 도가 소통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각오와 계획이 있다면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정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주체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무뎌져 있는 상황입니다. 서로 통하는 창구가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복원을 통해 재건토록 해나가겠습니다. 또 하나 공무원들이 할수없는 현안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돌파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은 정무적 기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향후 조직개편 과정에서 이를 보완토록 해나가겠습니다.▲최근 LH유치 과정 등에서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과의 소통부족을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나갈 계획이신지요. 중앙정부와 정치권과의 소통, 그리고 도민과 언론과의 소통 등은 정무부지사의 요무입니다. 그간 다소 부서져 있었던 언론과 신뢰관계를 회복해 나가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정치권과의 관계에서도 전북도와 벌어져 있었던 틈새를 메워 나가는데 주력할 생각이고 강력한 스킨십을 통해 접촉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신뢰회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의 도정에 대한 불만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김완주 도지사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심지어 인척관계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어제 부안에서 열린 한중일 교류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본에서 온 미야자키현 지사가 저와 김 지사가 이름이 비슷하고, 얼굴이 닮았다며 혹시 친척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도지사 사모님 조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아마 외모가 조그맣고 닮아서 그런 오해를 사는 것 같습니다.▲앞으로 어떤 부지사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예컨대 '경제 부지사''문화 부지사' 등을 들 수 있겠는데요. 단언컨대 '소통 부지사'로 남고 싶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공직사회는 조직화된 도민 목소리를 듣는데에 그치고 있습니다. 미래가치가 있는 집단이나 조직에 대한 요구나 지적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북도가 특정 집단과 마찰을 빚거나 주요 현안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우를 종종 범하고 있습니다. 모든 출발을 소통에서 시작토록 하겠습니다.▲개인적인 질문인데, 정부부지사가 자신(김 부지사)의 정치행보를 밟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 확고한 견해는 선출직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참모는 할 수 있지만, 아직 선출직 지도자로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가 선출되는 것은 정말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고, 지도자로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제가 어느 정도 성찰이 된 이후에나 생각해 보겠습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전북은 왜 새만금만 붙들고 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는 10대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앞서 있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식품분야, 농업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내적 변화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 매달리면서 동력을 상실한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토목사업에서 삶의 질 향상 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입니다. 그에 맞춰 도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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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11.09.01 23:02

[새만금] 새만금 외자유치 '산넘어 산'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새만금 경자청)에 대한 '부동산투자 이민제'가 무산되면서 향후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뒤따를 전망이다.최근 정부는 법무부장관 고시를 통해 오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리는 전남 여수 경도해양관광단지 일원을 부동산 투자 이민제 적용대상에 포함시켰다. 반면 새만금 경제자유구역과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대해서는 이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이로써 새만금 경자구역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차별화된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는 가운데 대규모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우려된다.특히 그동안 제주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던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강원 평창, 전남 여수 등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새만금 활성화에 차질이 예상된다.부동산투자 이민제는 국내 부동산에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F-2) 자격을 주고 5년 이상 체류하면 영주(F-5)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지난해 2월 제주도에 처음 도입된 후 지난 2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도 적용됐으며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 상당히 기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새만금 경자구역은 이에 앞서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부동산 투자이민제와 함께 추진해온 무비자를 도입하는 것도 법무부의 반대로 물건너간 상황이다.제주도에만 도입돼있는 무비자 제도는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이 최장 30일까지 머무를 수 있는 제도로써, 대규모 관광객 유치에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결과적으로 새만금에 대규모 외자유치를 촉진할만한 장치가 없다는 것이어서 향후 제주나 여수, 평창 등과의 투자유치에 뒤쳐질 것으로 보인다.새만금 경자구역의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은 3억6600만 달러로, 이미 인천(10억5570만달러), 부산·진해(10억3820만달러), 광양만(4억9198만달러)에 뒤지고 있는 상황이다.새만금 경제청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콘도나 리조트를 구입할 때 적용하기 때문에 아직 관광시설이 없는 새만금이 일단 제외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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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11.08.31 23:02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정책 지속 추진할 터" 박재완 장관 군산산단 방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군산과 새만금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지속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이날 박 장관은 군산산업단지의 현대중공업 풍력사업부를 방문해 정헌율 전북도 행정부지사와 문동신 군산시장, 이승우 군장대 총장, 박준영 OCI 군산공장장 및 관련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간담회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강조됐으며, 산학협력 및 지역경제 육성 등 정부 대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박 장관은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국가의 신성장동력이며 풍력분야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며 "정부는 이 분야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이후 박 장관 일행은 새만금 산업단지로 이동해 새만금 방조제와 풍력발전단지를 시찰하고, 새만금 마스터플랜수립 이후 사업추진 계획 및 투자유치 전망 등을 점검했다.이날 정헌율 전북도 행정부지사는 "총 22조원의 새만금 관련 예산이 산술적으로 보면 1년에 1조원 이상씩 투입돼야 하는데 3000억원에 그치고 있다"며 예산을 적극 반영해 줄 것을 박 장관에게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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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권
  • 2011.08.30 23:02

13. 야권통합 움직임

지난 8월 17일 서울에서는 시민사회단체와 개인인사들이 모여 (가칭) 혁신과 통합을 제안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범야권의 대통합을 실현하여 2012년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함이다. 도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야권 통합 움직임을 전한다.지난 8월 17일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는 혁신과 통합으로 민주진보정부 수립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가칭) '혁신과 통합' 제안자 모임이 있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혁신과 통합으로 민주진보정부를 수립하자'라는 대국민 제안문을 발표했다. 이날 제안자는 총 305명으로 시민사회, 종교계, 언론계, 법조계, 문화예술, 학계, 노동, 여성계 등 각계 인사들 150명과 지역의 인사 등 155명이 참여했다. 그동안 시국선언이나 정치현안과 관련하여 추진되었던 선언과는 다른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이해찬 시민주권 상임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이창복 민주통합시민행동 상임대표,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이용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남윤인순김기식 내가꿈꾸는나라 공동준비위원장, 이해동 목사 등 종교계 인사, 이창동, 도종환, 이철수 등 문화예술계 인사, 안병욱, 우희종, 김삼웅 등 학계 인사, 최병모, 조국 등 법조계 인사, 임재경, 김종철, 성유보 등 언론계 인사와 배다지, 안성례, 반찬석, 최교진 등 지역의 대표적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가칭) 혁신과 통합 참여한 제안자들은 제안문을 통해 '혁신과 통합으로 민주진보정부 수립하자!'라고 제안하였다. 이명박정부의 실정으로 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해서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고 2013년 복지, 공평, 평화, 생태적 가치가 뿌리내리는 국가를 만들어가는 국민들의 원대한 염원을 세우자고 제안했다.제안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국민들은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대안과 비전을 갖춘 집권세력을 원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야당들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자기혁신에 적극 나서야 하고, 진보정당들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제안하며 '양보와 혁신'으로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고 더 큰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때 정치권에 몸담았거나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이렇게 나선이유는 각 정당의 통합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시민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연대와 연합 등이 각 정당의 무응답으로 답보상태에 놓여있고 예견되는 정치일정상 긴박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대격돌이 예고되고 있지만 정당들 간의 지루한 협상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입증된 변화와 통합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2012년 승리와 2013년 희망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실망감과 위기감이 하나로 모아진 '야권 대통합 추진'조직을 만들게 된 것이다.「내가 꿈꾸는 나라」남윤인순 공동준비위원장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의해서 시민사회가 만들어온 시민적 가치가 훼손되고 역주행 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정치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고 재편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또한 '국민들은 지금의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절박감 속에서 시급히 정권교체 세력을 원하고 있지만 수권능력을 갖춘 정치세력이 부재하다'며 '진보개혁진영은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부응하여 진보적 사회개혁 의제를 추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주체'를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혁신과 통합, 진보의 합창 발족 예정혁신과 통합은 부문과 지역이 함께하는 시민정치운동조직을 만들고 범야권과 민주진보세력의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여 국민들의 절절한 통합 요구에 화답하도록 제반 여건을 만든 일에 주력할 계획이다. 9월 6일 공식 출범식을 계획하고 있는 '혁신과 통합'은 정치콘서트라는 새로운 형식을 빌려 서울(8월 29일), 대전(8월 30일), 창원(9월 1일), 광주(9월 2일)순으로 전국 순회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북에서는 지난 8월 24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주최한 강연회에 이해찬 전총리와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가 참석하여 혁신과 통합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전북지역에서도 혁신과 통합, 진보정당의 통합을 촉구하는 활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혁신과 통합 제안자모임에 22명이 참여하고 있는 전북에서는 8월 24일 제안자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9월 28일을 전후로 공식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과 통합 제안자로 참여하고 있는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김영기 집행위원장은 '민주화운동,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한 민주개혁진보 인사들이 참여하는 대연합 조직을 만들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대통합을 이루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지역내 민노당과 진보신당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8월 25일 '전북 진보의 합창 운동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통합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활동계획을 밝혔다. 서유석 전북 진보의 합창 제안자 대표는 '현재 진행되는 진보정치 통합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결실을 맺도록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모든 주체의 분발을 촉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9월 19일 '전북 진보의 합창'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한편 시민정치운동을 전개하려는 '내가 꿈꾸는 전북'이 공동대표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알려져 시민사회의 지지와 동원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지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내가 꿈꾸는 전북 안호영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한 혁신과 통합활동을 전개하면서 정치개혁과 정당민주화를 실현하고 전북인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2012년 양대선거를 앞두고 민주개혁진보진영이 전개하고 있는 통합노력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경구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주목된다./ 염경형 NGO 시민 전문기자(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08.30 23:02

임경수 교장은

1966년 생으로 서울 출신인 임 교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환경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진안에서 마을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구자인 박사와는 대학원 선후배다.대학원 졸업후 1999년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유기농산물 전자상거래업체인 인터넷 이장을 창업했다. 또 서울대 근처에 유기농 도시락전문점을 냈으나 3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호주로 건너가 크리스털 워터스라는 생태마을에서 퍼머컬쳐 디자인 코스를 수료하고 귀국후에는 충남 홍성의 풀무원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1년에 서울 봉천동에서 (주)이장을 창업했다. 이때부터 농촌 컨설팅을 본격화해 강원도 화천군 신대리마을을 비롯 농촌 마을 100여 곳을 컨설팅했다. 친환경 전원마을 조성에도 힘써 충남 서천의 산너울마을을 만들었고 경남 하동, 충남 서산 등 몇몇 지역에 또 다른 전원마을을 조성 중이다. 그동안 본사 사무실을 6번 옮겼고 본인의 집도 6번 이사했다. 그 중 어머니와 부인 아이들까지 함께 이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주)이장은 그 동안 지역디자인센터푸른새미사업부부설연구소 '환경과 사람'등 3개 사업부와 (주)생태건축집단 자인(주)소박한 풍경(주)책임관광(Res-T)등 3개의 자회사로 성장했다. 직원은 40여명. 2007년에는 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가치혁신상'을 받았다.부인 조영란씨(41)는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영양사로 7년간 근무하다 남편을 따라 안덕마을로 내려왔다. 지금은 한증막 식당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초등학교 642학년 등 2남1녀이며 올해 대덕초등학교로 모두 전학했다.

  • 기획
  • 조상진
  • 2011.08.30 23:02

퍼머컬쳐학교 교장 임경수 박사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안덕마을. 전주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심산유곡에 들어온듯,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곳이다.이곳은 부지런한 주민들과 10여 년전 고향에 내려와 문을 연 민속한의원이 힘을 합쳐 만든 건강힐링체험 마을이다. 장파 미치 신기 원안덕 등 4개 마을주민 54명이 1억3000만 원을 출자해 '안덕파워 영농조합법인'이란 이름의 마을공동체 회사를 세운 것이다. 국내 커뮤니티 비즈니스 1호다. 건강과 치유를 테마로 토속한증막과 황토민박, 그리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최근 각종 연수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생태적 삶과 일자리 창출, 농가소득 등 1석3조를 올리는 농촌의 오래된 미래(Acient Futures)라고나 할까.이러한 컨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원군(援軍)이 지난해 말 이곳에 정착했다. (주)이장 대표 임경수 박사다. 임 박사는 전원마을 조성과 생태농업분야에서 내노라 하는 전국구다. 그가 이곳에 퍼머컬쳐 대학과정을 설립한 것이다. 그로 부터 퍼머컬쳐의 운영과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반갑습니다. 특별히 안덕마을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전부터 농촌에 들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제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고 그 대신 제가 잘 할수 있는 게 뭘까를 고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저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젊은이를 키우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요, 완주군하고는 2008년에 인연이 돼서 마을계획을 하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안덕마을이었습니다."- 고향도 서울이고, 대학도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어떻게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처음에 석사학위는 대기오염을 가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느낀 점은 제가 공부한 게 환경문제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면 환경정책이나 기술, 환경공학은 환경문제가 생기는 것을 가정하니까요.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환경오염이 생기지않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뭘까를 고민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자연에 대한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 해답이 농업과 농촌에 있다는 것, 그래서 전공을 바꿨습니다."- 올 4월부터 안덕마을에 퍼머컬쳐 학교를 열었는데 어떤 분들이 다닙니까?"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하고 농업과 생태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입니다. 1년에 1기수를 운영하고 총 8개월 과정입니다. 올 4월에 정원 20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14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전국에서 왔습니다. 농촌이나 지역에서 일해보고 싶다거나, 귀농귀촌을 희망하거나, 이미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십니다."- 퍼머컬쳐가 무엇인지 좀 자세히 설명해주시죠."퍼머컬쳐는 호주의 빌 모리슨(Bill Mollison)이란 분이 만들어낸 체계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생태마을을 계획하거나 설계하는데 쓰는 방법인데요. 빌 모리슨의 고향이 남부의 타즈메니아라는 섬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입니다. 모리슨이 멜버른에서 일을 하다가 자기 고향에 가보면 고향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환경은 망가지는데 자기 친구들은 잘 살지 못해요. 이것은 뭔가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한거지요. 조경설계를 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전 세계 여행을 다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왔습니다. 충남 홍성에 와서 유기농 농부를 만났어요. 질문을 했습니다. '이 논이 언제부터 논이었나요?' 농부가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아버지 때도, 할아버지 때도 논이었다. 몇백년, 아니 몇천년이 넘었는지 모른다' 빌 모리슨이 깜짝 놀랍니다. 호주에서는 그렇게 농사짓지 않거든요. 호주는 워낙 땅이 넓으니까 지력이 떨어지면 휴경을 하거나 아예 버립니다. 반면 우리는 한 땅에서 한가지 작목을 계속하는데도 소출이 줄어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빌 모리슨이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국에서는 퍼머넌트(permanent)하게 어그리컬쳐(agriculture)를 하고 있다, 그래서 퍼머컬쳐가 탄생하게 된 거죠."- 그러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단순하게 농업에서 끝나는게 아니구요. 경제, 지역사회, 문화 이렇게 확장이 되는 것입니다."- 과목은 어떤 것을 배웁니까?"환경생태학, 퍼머컬쳐, 지역개발, 건축과 조경, 농촌경영학 등이 실무과목이고요. 소양과목으로 인문학을 배웁니다.'너, 왜 농촌에 들어 갔느냐'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하려면 인문학 베이스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위기와 시련이 닥치면 접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가죠. 또 마음을 낮추게 하는 방법을 습득해서 시련이 왔을 때 자기를 지키게 하는 과목이 '영성과 소통'입니다."- 애로사항도 있을 것 같은데요?"14명의 생각과 수준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니까 잘 적응하게 되었는데 1학기 중반부터 하루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명상과 108배, 검도 등 삶을 조금 깊게 들여다 보면서 적응하게 된 것 같아요."- 사회적 기업 (주)이장 얘기를 좀 하죠. 어떻게 이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까?"박사과정 들어가서 농업 공부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귀찮아서 '이장되는 게 꿈'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다가 회사 창업 전에 서울대 내에 벤처회사를 등록했거든요. 그때 이름을 지을 때,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제일 좋다더라, 해서 이장이라 부르기 시작했죠."- 요즘은 이장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창업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처음에 창업하려고 했던 것은 농촌일 뿐만 아니라 환경, 생태, 유기농업에 관련된 여러가지 일을 해보고자 해서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일은 제가 호주에서 배운 퍼머컬쳐를 기본으로, 우리 농촌을 생태마을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때 마침 정부가 그린투어리즘과 관련해서 마을사업들을 많이 벌이면서 마을의 기본계획을 하거나 주민교육컨설팅을 해 왔구요. 두번째로 했던 일은 도시민들이 농촌에 들어가려고 할 때 기존의 농촌마을에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 경우가 있거든요. 주변의 문화 환경이 다르거나 정주환경이 자기의 생각과 다를 때 그런 분들을 위해 거주단지를 아예 새롭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경영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제가 10년을 회사를 경영한다고 해봤는데 경영에는 큰 재주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가치있는 일을 찾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구요. 사실 저희는 어떤 사업분야가 잘 돌아가면 자꾸 독립을 시키거든요. 제가 여기 와서 학교를 할 수 있는 것도 대외적으로 대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독립해서 가능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자율경영이라고 부르는데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 이 모토가 계속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경영에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3명이든 5명이든 한 팀이 되면 결정을 위임합니다. 인사권 예산권 작전권을 모두 준 거죠. 제가 대표지만 직원 1명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웃음)"- 그 동안 컨설팅을 100군데도 넘게 했는데, 마을마다 수요에 맞춘 유형이 있을 것 같은데요?"마을에 있는 자원이나 환경을 보고 저희가 판단을 하고 마을지도자들과 상의를 하는데요. 어떤 유형보다는 절차가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주민들이 의지를 갖고 조직을 만들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하구요. 두번째 단계는 뭐든지 작은 사업을 해서 꼭 성공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주저 앉아요. 많은 전문가들이 처음 마을계획을 할 때 굉장히 멋있는 계획을 해요. 근데 그건 어렵거든요. 아주 쉬운 것, 그렇지만 성과가 날만한 것, 이것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 농촌의 현실은 젊은이들이 거의 없어 활성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인데요?"그게 제약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지역과 관련해서 일을 하다 보니까 '공공성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죠. 그 동안 농촌개발과 관련해 정부가 많은 교육을 했는데요. 그 교육은 경쟁력있는 사람을 만들려는 교육이었어요. 경쟁력을 확보해서 자기 이익을 취하거든요.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만 가지고 농촌을 발전시킬 수는 없거든요. 사실 지역에 NGO도 있고 지역신문도 있는데 이슈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지역의 활동가로서 역할을 할 수 없거든요. 여하튼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와야 뭔가 자극을 받고 지역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귀농귀촌을 준비하거나, 이미 한 사람들도 꽤 많은데"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제가 시골에 왔다고 하니 먼저 교육문제부터 말을 해요. 아이들 교육이 어렵지 않느냐는 거죠. 지금 저희 아이들은 초등학생이어서 고민을 안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의 방과후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요. 학원을 보낼 필요가 없어요. 또 한가지는 도시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더 행복하게 사는 걸까, 지역사회에서 얼마든지 보람있는 일을 찾을 수 있고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원하는 교육이나 직업의 수준을 낮추고 바라보면 별로 걱정할 게 없어요. 요즘 선생님이나 학부모 모임에서 저를 강사로 부르는데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직업이 2만개랍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원하는 직업은 20개랍니다. 그 20개 직업을 위해 사교육을 하느라고 아이들은 학원을 뺑뺑돌고요, 부모들은 학원비 대느라고 매몰돼 있거든요. 제가 볼 때 이것은 정신나간 사회거든요. 우리 사회는 1만9980개의 직업이 있어야 돌아갈게 아녜요. 그렇게 사회를 보기 시작하면 농촌 오는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원도 풍부하고 경쟁할 사람도 적죠.(웃음)"- 그 동안 전국을 섭렵하셨는데 전북의 농촌을 활성화 시킬 방안을 제시해 주신다면?"광역 단위별로 보면 전북은 경제적으로 낙후가 많이 됐죠. 하지만 반대로 농촌의 다양한 자원이 난개발되어 있지 않고 잘 보전되어 있으니까 가능성이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한 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농촌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돈을 많이 벌게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농촌관련 지표를 놓고 보면 우리 농촌이 어려워진 이유가 돈을 못벌어서가 아닙니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매출액 늘었구요, 농가소득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실소득이 낮아졌거든요. 그 이유는 지출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이 벌어 많이 쓰는 구조가 된 거죠. 이걸 바꾸지 않는 한 농촌이 잘 살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죠."첫번째가 퍼머컬쳐 같은 것을 도입해서 생태적으로 사는 겁니다. 에너지도 스스로 자립하고 주변에서 많은 것을 얻어내고, 옛날에는 다 그랬죠. 두번째가 협업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지출을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농민들과 협업해서 기계도 같이 쓰고 퇴비도 같이 만들고 해야 더 효과적인 거죠. 세번째는 생활에서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요. 그것은 공동체가 돼야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방식의 협동조합, 또는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이런 것이 필요한 거죠. 그렇지 않는 한 농촌에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농업정책 역시 시장 위주가 아닌가요?"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라. 이것만 가지고는 답이 되지 않습니다. 일정부분 사회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완주군은 사회정책적인 농촌정책을 활발하게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이유도 있죠. 퍼머컬쳐 과정은 학생들 입장에서 그런 현장이 있어야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농촌에서 마을 만들기가 너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오해가 조금 있는데요. 마을 만들기를 도입한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는 마찌추쿠리(まちづくり)라고 부르죠. 마찌가 정(町)을 번역한 건데요. 정의 수준은 우리나라 면(面)보다 크고 군(郡)보다 조금 작습니다. 그런 규모를 우리나라 작은 마을에 적용하니까 잘 안돌아가는거죠. 그래서 요즘 저는 용어를 바꿨습니다. 마을만들기가 아니라 지역만들기, 지역가꾸기, 지역공동체로요. 또 많은 분들이'마을이 희망이다'고 말하지만 그 때 마을은 지금 있는 공간구조로서의 마을로 해석해선 안됩니다. 예전에 생산 소비 교육 문화 복지가 하나로 돌아갔던 마을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끝으로 지역에 사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얘기를 좀 해주시죠."저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은 시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기후 변화 등 환경변화가 심하고 경제위기도 예측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잘 사는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이런 불확실성에서 어떻게 벼텨낼까를 고민할 때라고 보거든요. 이런 불확실성 시대에 정말 안정적인 곳은 농촌입니다. 희망이 농촌에 있다는 거죠. 어쩌면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농촌에 그런 기반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런 기반을 하나씩 만들어 갈 때, 농촌이 우리 사회를 지지해 줄 거라는 거죠.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농민들이, 지역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해 주셨으면 합니다."(임 대표는 혹시 다른 곳으로 다시 떠날 생각은 없는지를 묻자 "아이들이 점점 크니까 고향이 필요하고 동문도 필요해서 이곳에 정착해야겠다"고 대답했다.)

  • 기획
  • 조상진
  • 2011.08.30 23:02

13.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어느 농민군과 유족의 삶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원회가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구성됐다. 위원회는 그간 '역적'으로 몰렸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그 유족에 관해 국가적 차원에서 명예 회복을 시켜주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는 사실 확인이 안 돼 유족을 찾아가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오랫동안 '동학란'으로 왜곡되고 평가절하됐던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잊혀질뻔했던 인물을 소개한다. 김기준씨는 가장 가슴 아픈 동학농민혁명 상흔의 주인공이다.▲ 김기준, 동학농민혁명 아픔의 또다른 얼굴1853년 김제 백구면 가전리에서 출생한 김기준(42)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한 뒤 집에 숨어 지냈다. 1895년 음력 4월 자신의 집 부엌에서 토벌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갔으나 그날 죽임을 당해 시신이 만경강에 던져졌다. 이상의 내용이 유족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김기준의 동학농민혁명 참여 내용의 전부이다. 여기서 몇 가지 더 확인할 수 있는데 김기준이 참여한 지역이 김제이며 동학농민혁명 다음해인 1895년 4월 토벌군에 의해 처형됐다는 것이다. 김제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이 많은 지역이며 1895년까지 토벌군의 활동이 계속 이루어졌다. 여기에 유족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김기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김기준 후손으로 이어지는 상흔의 잔재들당시 김기준에게는 2살된 아들과 아내(정씨)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으로 그들의 삶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의 아내는 토벌군이 동학군 아내와 자식 등 가족까지 몰살시킨다는 말을 듣고 2살 아들 학룡을 데리고 밀밭으로 피신했다. 낮에는 밀밭에 숨고, 밤이 되면 집으로 몰래 돌아오는 피신 생활을 보름 남짓 하던 중 남편을 찾아준다는 장정에 의해 김제 백구면 유강리 우담마을 임씨 집안으로 보쌈을 당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서는 선택의 여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와 아들의 삶은 그 이후에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임씨 집안에 살게 되면서 아들은 남편 임씨의 아들 성으로 바뀌어 올려졌다. 시간이 흘러 아들 학룡은 결혼 해 1남 2녀를 낳았다.▲ 역사로 인해 굴절된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김기준의 아내는 자녀 손자녀 앞에서 김기준의 동학농민혁명 참여 사실과 비참한 죽음 등에 대해 자주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특히 손자 김병훈씨는 지금은 비록 임씨 집안에서 살고 있지만 꼭 본래의 김씨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즉 김기준의 아내 정씨는 뒤틀리고 굴절된 가족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정씨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손자가 김씨를 되찾아야 한다는 아내의 기대와 임씨의 맏손자가 되어 재산상속의 권리를 가지게 될 것을 꺼려했던 임씨 집안의 입장 등으로 김병훈씨는 군 입대 당시까지 호적 없이 생활했다. 이에 따라 손자 김병훈은 군 제대 후 본래의 김씨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드디어 1961년 김씨 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동생들은 김씨를 되찾지 못했다.▲ 아직도 계속되는 동학농민혁명동학농민혁명은 역사적 사건이다. 얼핏 생각하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자신 또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해 결정된 경우가 허다하다. 김기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의 삶은 굴절되었으며 고통과 고난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후손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실로 처절한 몸부림을 치지만 벗어나는 것은 엄청난 댓가가 필요하였다. 후손들은 지금도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동학농민혁명은 먼 옛날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동학농민혁명은 당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전라도 특히 현재의 전북 지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주체세력은 모두 전북 지역 출신이며 수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참여하였다. 그런데 김기준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후손들은 그것으로 인해 삶의 내용이 고통과 고난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전북지역이 침제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사실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런 점을 염두해 두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에 접근해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역사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변혁운동의 최고봉으로 자주, 평등, 개혁의 미래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의의가 있으며 세계사적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는 역사문화적 가치이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자산을 전북도가 적극 활용하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전북도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병규 문화전문시민기자(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08.29 23:02

많으면 단결 힘들고 적으면 자금 문제

"마을기업 50가구가 뭉쳐 시작하면 유망""마을기업은 50가구 가량이 뭉쳐 시작하면 유망합니다. 너무 많으면 아무래도 단결이 힘들고 적으면 자금의 문제 등이 있고. 당장 눈앞의 이익 보다 길게 보고 소비자와 신뢰를 쌓는 것이 최우선입니다"물건 구입 때 마다 1000원을 투자 적립하는 마포두레생협의 조합원중 20여만원으로 일정기간 가장 많은 적립금을 기록한 이규봉씨(서울 마포구 성산동41)는 "성미산마을이 만들어지는데 10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거창한 출발은 아니었다. 조그마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2005년 성산동으로 이사오면서 조합원이 된 그는 공산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먹거리와 생필품을 생협에서 구입한다. 마을사람들의 정을 나누고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이웃의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성미산밥상'에는 최대 출자한도인 100그루(1그루 당 5만원)를 '심었다'.성미산마을의 공동체 활동에 열정적이며 "물건을 조금씩 사가니까 아무래도 자주 이용하게 된다"는 그는 소요시간이 20여분 걸리지만 자전거를 타고 운동 겸 '상생'의 소비에 힘쓴다."맨처음에 마포생협 성산점의 딸기를 맛보고 감탄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딸기가 있구나 생각했죠. 이후 생협의 광팬이 됐고 다른 곳에서 파는 농산물은 '맛이 없어' 못먹게 됐습니다"그는 "이제 무엇 보다 먹거리가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특히 가공식품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믿을 수 있는 식품만을 고집한다"고 강조했다."예전에는 생협의 농산물이 비싸다고 여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별로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마 관점차이인가 보다"는 그는 "농민들이 명예를 걸고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면 판매와 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유기농 농산물의 생산은 물론 유통판매를 위한 마을기업은 농촌의 미래를 밝혀줄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백기곤
  • 2011.08.29 23:02

3. 국내 성공사례 - 5) 서울 마포 성미산 마을

마을기업이 농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인구 1천만명의 수도'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성미산마을은 도심속의 공동체로'공동'활동,'공동'사업으로 유명하다.해발 66m의 야트막하고 5만800㎡의 아담한 '성미산'주위의 사람들이 1994년 조금씩 출자한 돈으로 어린이집을 만들었고 공동육아를 시작했다.이후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모두 7곳으로 늘어났고 공동주택을 지어 살고 있는가 하면,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성미산마을극장, 공동체라디오 마포FM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이와 함께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을 설립했고 친환경 유기농 동네식당 성미산밥상, 되살림가게(지역화폐사용 재활용매장), 한땀두레(수공예 협동사업체), 유기농 반찬가게인 동네부엌, 유기농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는 카페 '작은 나무'등이 마을기업 형태로 자리잡았다.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은 지역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사고 팔자는 뜻으로 뭉쳐 2000년에 설립됐다.마포두레생협 성산점은 24평 크기로, 수백종의 '친환경 유기농'농산물을 판매한다. 조합원은 한 번 이용할 때마다 1000원의 적립금을 낸다."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이라서 믿을만한 먹거리인데도 가격이 비싸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 농산물보다는 비싸지만 다른 유기농 판매장의 농산물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입니다. 조합원이 출자해서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인 도시민이 직접 거래하니까 유통비용이 거의 없습니다."서울 마포구 망원동 김양숙씨(39)는 마포두레생협 성산점에 대해 "처음에 생겼을 때 농산물 그 자체는 신선해 맛이 좋았다. 하지만 가공식품은 조미료화학약품 등 첨가물이 없어 맛이 별로였는데 갈수록 맛이 좋아져 이젠 대기업 제품에 비해 맛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가공식품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다"면서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생협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품목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들어오는 양이 많지 않아 품절되기가 쉽다. 필요한 농산물이 있으면 성산점에 있는지 전화로 확인해보고 온다"면서 "물건이 없는 경우가 적지않고 저녁 9시까지만 문을 열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좋은 제품을 산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이 곳은 무농약, 유기비료로 생산된 물품을 우선 선정한다. 무농약이 어려운 품목은 저농약 품목(쌀, 고추 마늘 토마토 딸기 콩 등 채소, 사과 포도 배 등 일부 과일류)을 취급하고 잡곡류밀가루 등 유기 농업이 어려운 품목은 반드시 국산 농산물을 다룬다.두부 콩나물 두유 케첩 마요네즈,햄 어묵 미역 김 북어 오징어 등 가공품은 유기 농산물과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하고, 가공 중에 유해 첨가물을 넣거나 화학 약품 처리를 하지 않는다. 고창 복분자주무주 머루와인도 눈에 띈다.유정란 닭 돼지 한우 산양유 등은 성장호르몬제를 안쓰고 항생제를 최대한 줄이며, 건강한 환경에서 생산된 축산물을 취급한다.천연 세제, 재활용 비누, 재생휴지, 치약, 면 생리대 등은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생활재를 판매한다.이 같은 마포두레생협의 변함없는 원칙에 조합원은 날로 늘어 이제는 5000명을 넘어섰다. 2001년 성산점이 처음 세워진 이후 2007년 용강점, 2010년 신내점이 추가 개점됐다.성미산마을 사람들은 재벌을 배불리는 대형마트에 가능한 가지 않는다.우리 농산물의 소중함과 우수함을 알고 농민을 돕는'상생'의 소비를 실천하기 위해 생협을 이용한다.마포구 성산동 이기호씨(67)는"동네 구멍가게가 대형마트에 치어 자꾸 문을 닫는데 생협만큼은 우리 손으로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다"면서"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과일채소 등의 물건이 워낙 좋으니까 전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생협과 함께 성미산마을의 마을기업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소득을 높이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매년 2000명 이상이 견학과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고 학술논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동네부엌'은 유기농 농산물로 반찬을 만들어 인기 만점이다. 카페'작은 나무'는 유기농아이스크림을 판매하며'시골의 모정처럼' 주민들의 사랑방이 되고 있다. 그냥'하릴없이'지나다 들러 반가운 마을의 얼굴들끼리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는 곳이다.성미산마을극장은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주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선사하기도 한다. 대관으로 수입도 발생한다. 마을공동체마을기업의 또다른 형태로서 '사람많은 서울에서나 가능한 얘기지'라고 한정짓기에는 시사하는 바 크다.

  • 기획
  • 백기곤
  • 2011.08.29 23:02

역류성 식도염

주변에서 신물이 올라오거나 가슴이 화끈거리거나 아프다는 분들 중에 병원에 갔다가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분들을 흔히 보게 된다.역류성 식도염은 직장인 발병 0순위라고 한다. 문제는 환자의 40% 정도가 제산제를 복용하면서 그럭저럭 증상을 견뎌낸다는 사실이다.우리 몸의 식도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음식물을 운반하는 길로 볼 수 있다. 식도의 길이는 성인의 경우 25센티미터이고 4개의 협착부와 3개의 근육층으로 구성되어 있다.4개의 협착부중 가장 아래에 위치한 횡경막 협착부는 식도와 위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하부 식도 괄약근이라는 것이 있어 위로 내려간 음식물이 식도로 거꾸로 넘어오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이 하부 식도 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하여 위산이나 펩신 등의 위액이 식도로 거구로 넘어 오면 식도의 점막을 자극하여 염증을 일으키고 심하면 식도 점막의 궤양과 출혈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증상을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일컫는다.역류성 식도염의 구체적인 증상으로는 가슴이 화끈거리는 불쾌한 통증과 함께 목과 가슴 사이에 뭔가 걸려있는 듯 답답하고, 신물이 올라오며 음식물을 삼키기가 힘들어진다. 삼키려고 하면 통증을 느끼며 신트림, 속쓰림 등이 나타난다. 또한 위 십이지장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기 때문에 심한 입냄새를 나기도 한다.역류성 식도염은 또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하는데 위산이 식도를 지나 기도까지 넘어가면 만성기침으로 목이 쉬고 마른기침, 천식, 후두염 , 폐렴 등의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기침이 잦은 역류성 식도염은 쉰 목소리가 나게 되고 역류성식도염의 근본적인 치료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 기침 증세도 쉽게 나이지지 않는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기침을 오래한 환자는 체력이 저하되어 있고 면역력도 약해져 있는데, 폐렴이나 천식도 함께 병증이 발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을 초기에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역류성 식도염 치료는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생활가이드로는 취심시에 상체를 약간 높게 하고 식후에 바로 눕지 않고, 과식을 하지 않고 소식을 하는 것이 좋다.특히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술과 담배 기름진 음식 커피 홍차 초콜릿 등을 삼가는 것이 좋다. 또 잠자기 직전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식도 점막을 자극하는 오렌지 주스나 신 과일 탄산음료 등은 당연히 좋지 않다. 이러한 비약물적 치료에 반응이 없는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하게 되며 주로 위산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역류성 식도염 증상에 좋은 음식으로는 양배추 단호박 마 감자 결정자들이 있는데 특히 양배추는 비타민U와 비타민 A,B,C,K는 물론 베타카로틴이 풍부하여 자연치유력을 향상시키며 점막을 보호하고 재생을 돕고 출혈을 막아 주어서 식도염에 도움을 준다./ 신형식(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 3과 한의사 )

  • 기획
  • 전북일보
  • 2011.08.29 23:02

Q&A로 알아보는 직장암

Q. 직장암에 걸리면 항문을 보존할 수 없나요?A. 직장암의 위치, 암의 침습정도와 병기, 암의 분화도, 성별, 골반의 구조, 항문괄약근의 술전 기능 정도 그리고 술자의 기술에 따라서 항문 보전 정도가 달라지지만, 수술기구와 기술의 발달로 현재 95%이상 항문을 살릴 수 있습니다.Q. 암 수술 후 어떤 음식을 먹어야하나요?A. 식이 습관이 직장암의 발생에 관련이 있지만, 꼭 무슨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가 고기(특히 개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되느냐는 것인데, 사람은 잡식성이고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가 전혀 없으면 살기가 어려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골고루 균형 잡힌 음식이 좋습니다. 건강해야 면역기능도 유지되고 암의 치료도 이겨 낼 테니까요. 요즈음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해 식이섬유의 양을 늘려서 배변을 좋게 하는 것이 암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Q. 직장암 수술 후 다변과 변실금으로 고생한다는데요?A. 그렇습니다. 대변 저장고인 직장의 손실에 의한 저장용량 부족과, 수술 시의 피할 수 없는 미세산경과 항문 괄약근의 손상으로 수술 후 초기에 자주 화장실에 가게 되고 어느 경우에는 변실금이 심합니다. 그러나 6개월 쯤 지나면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게 됩니다.Q. 암에 대한 단방약이나 특효약은 없습니까?A. 한마디로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이런 약을 찾고 있지만, 암의 발생 원인이 복합적이고 다양해서 부분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완전하게 치유시키는 약은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특효약이네, 아니면 완전 치유 방법이네 하는 말에 현혹되어서 건강을 해치거나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경우를 간간히 보게 됩니다.Q. 인공항문을 갖게 되는 경우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A. 당신 옆에 있는 분이 인공항문을 갖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장루 관리 기술과 장루 관련 물품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 전에 충분한 기술적 교육을 받게 됩니다. 물론 항문 보다는 불편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Q. 항문을 다시 복원 시키는 방법은 없나요.A. 현재 여러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기능성, 유지성, 경제성 등으로 볼 때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새로운 기술이 고안되리라 기대합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08.29 23:02

13. 직장암

직장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을 직장암이라 한다. 대장은 결장과 직장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직장은 결장과 항문을 연결해 주는 부위다. 직장은 파이프 모양의 관으로 안쪽에서부터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 등 4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의 직장암은 장의 점막에서 발생하는 선암이며, 이 외에도 유암종, 림프종, 육종, 편평상피암, 다른 암의 전이성 병변 등이 있다.직장의 전체 길이는 12~15cm이며 하복부의 제2천골 수준에서 시작되어 항문직장륜에서 끝난다. 직장의 뒤쪽에는 천골, 미골이 있으며 앞쪽에는 남자에게는 전립선, 정낭, 정관, 방광이, 여자에게는 질의 후벽이 있다.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대장암의 발생률은 우리나라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녀의 성비는 1.83:1로 남성이 더 많이 발생한다. 직장암은 대장암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전북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종훈 교수는 "식생활의 서구화와 진단기술의 발달 그리고 고령화 등으로 인해 직장암 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직장암은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에 40대 이상 된 사람들은 4~5년에 한번 대장 내시경이나 CT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원인직장암을 포함한 대장암의 발생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환경인자와 유전인자가 있다.환경인자로 식이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동물성지방 과다섭취, 식이 섬유소 섭취부족, 설탕과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 섭취가 원인이다. 붉은 육류와 가공육, 굽고 태우거나 튀긴 음식, 알코올 등도 암의 발생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비만이나, 운동부족, 골반의 방사선 조사, 흡연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15% 전후의 대장암은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증상직장암의 자각증상은 직장의 어디에, 어느 정도의 암이 생기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암의 특징적인 증상은 없으며, 양성질환의 경우에도 암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주요 자각증상으로는 변이 가늘어지거나, 혈변 배설, 잔변감, 복통, 설사와 변비 반복 등이며, 이중 혈변의 빈도가 높은데, 치질로 착각해 진찰을 늦게 받는 경우도 있다. 직장암이 전이하여 폐나 간에서 먼저 발견되는 일도 있다. 이런 증상으로 발견되는 암은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진단조기에는 거의 100%가까이 완치되지만, 일반적으로 자각증상이 없다. 따라서 무증상인 시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선별검사로 대표적인 것은 변의 잠혈검사로, 40세가 넘으면 이 검진을 받아 볼 것을 권한다.혈액검사에서 종양표지자(CEA)가 이상치를 나타내 발견되는 일도 있다.직장암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직장수지검사, 직장경검사, 대장조영술, 에스결장경과 대장 내시경검사 필수적이다.방사선 진단 (CT, MRI, 초음파 PET-CT 등)은 원발병소의 진전 정도와 원격전이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된다.▲치료치료법에는 내시경적치료, 외과요법, 방사선요법, 화학요법이 있다.선종이나 점막 내에 머무른 조기의 암은 경항문 종양절제술이나 내시경적절제술을 사용해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내시경적치료가 곤란한 커다란 폴립이나 침윤경향이 적은 조기암은 복강경하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 시간은 약간 길지만 10cm이하의 상처만 내고 절제할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후의 동통도 적고, 수술 후 3-4일 만에 퇴원이 가능해 부담이 적은 수술이다. 또 직장암의 수술에는 진행 정도와 위치에 따라서 국소절제술부터 인공항문을 설치해야 하는 복회음부 절제술까지 다양한 수술방법이 있다.수술 후 방사선요법은 효과적인 치료이기는 하지만, 방사선을 조사하면 암 조직뿐만 아니라 주위의 장기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직장암에서 수술 전 방사선요법을 실시하고 나서 수술을 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수술 후 골반 내에 재발한 암이나 동통에 대해서는 종종 방사선요법이 실시된다.진행성 암의 수술 후에는,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항암제를 사용한 보조화학요법이 실시된다. 현재는 독성이 낮고 효과가 좋은 항암제들이 많이 개발돼 있다. 암이 재발한 경우에는 예방적인 보조요법 때와는 달리, 종류도, 양도 더 많은 항암제를 사용한 병용요법이 실시된다.▲수술 후의 관리수술 후 재발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 정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로 간이나 폐로 전이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전이가 일어난 병소를 절제하는 치료를 바로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술 후 3년 동안은 3~4개월에 한번 병원에서 흉부X선 검사, 복부의 CT촬영, 대장내시경, 초음파검사, 종양표지자 그리고 MRI나 PET-CT등의 검사를 받는다. 면밀하게 추적검사를 하면 재발의 80%를 2년 이내에 발견할 수 있다. 성장이 느린 대장암도 있기 때문에 5년간의 추적은 필요하다.

  • 기획
  • 강정원
  • 2011.08.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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