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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침몰> 수사본부 수사팀장 일문일답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8일 서해해경청에서 브리핑을 통해 "수사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의혹뿐만 아니라 구조 과정의 문제점은 없었는 지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소재를 명백히 해 책임자들에게 관련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SNS 괴담 유포 등 2차 피해 유발도 엄단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재억 수사본부수사팀장(광주지검 강력부장)과 일문일답. -- 사고 당시 선장은 어디에 있었나. ▲ 침몰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가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바로 올라왔다. 그런 게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조타실에 원래 있어야 하는데 거기서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뒤쪽에 있었다. 사고 당시 조타를 지휘하는 사람은 삼등 항해사였다. -- 당시 선장이 근무시간이 아니었다는 말이 있는데. ▲ 선장이 잠시 삼등 항해사에게 조타 지휘를 맡겼다. -- 선장의 근무시간은. ▲ 근무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당시에는 조타 지휘를 직접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 항해사는 배가 기운 것을 언제 처음 알았는가. ▲ 모른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 배가 급하게 선회를 해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 부분은 조사가 되고있는가. ▲ 당시 방향을 변침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은 맞다. 배가 그런 지점이었다. 변침이 유일한 원인인지 선박의 유지 관리상 하자가 있었는지 여러 면에서 조사 중이다. 과실이라는 게 하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인재에 무게를 두는 것인가. ▲ (묵묵부답) -- 조난 당시 대피 방송은. ▲ 지금 진술들이 너무 급박한 상황이어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누구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하고 누구는 못 들었다고 하고 조난 방송에 대해서 조치가 적절했는지 수사 중이다. -- 교대 근무 상황은. ▲ 향후 말씀드리겠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軍, 잠수사 '릴레이식' 투입

특별취재팀 =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 구조탐색지원에 나선 군 현장구조지원본부는 실종자를 신속하게 탐색하기 위해 잠수사를 '릴레이식'으로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날 "독도함에 설치된 현장구조지원본부가 오늘 현장에 대기중인 잠수사들을 릴레이식으로 투입하고 있다"며 "잠수사들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수중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구조와 탐색작업을 실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수중 탐색 작업 과정은 잠수사 1명이 여객선 선체까지 도발하는데 1520분, 수중 탐색에 1025분, 작업을 마치고 올라오는데 15분가량 각각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해군 구조전대 잠수조 5개조를 각 2명씩 총 10명으로 편성해서 립보트, 고무보트 등에 태워서 지원하고 있다"며 "10명밖에 편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고발생 우려 때문에) 많은 인원수를 동시에 물속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세월호에는 '인도색'이라는 생명줄을 잡아야 내려갈 수 있다"며 "물속에 들어가면 전혀 보이지 않고 물살이 매우 세기 때문에 그 생명줄을 놓치면 곧바로 사고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잠수사들은 선실 통로로 원활히 진입할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생명줄을 설치하거나 통로 개척, 선체 외부 탐색 등 각각 임무를 분담해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 사고 해역의 정조시간은 오전 4시 반, 그리고 오전 10시 20분, 오후 4시 29분, 밤 10시 25분 등 4번에 걸쳐서 있다"며 "이 시간 전후로 약 30분씩, 1시간가량 수중수색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여객선의 선실로 접근하기 위한 통로를 개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조류 흐름이 빠르고 부유물도 있어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며 이런 문제로 잠수사들의 수중작업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 오전 4시에도 잠수사 2개 팀이 수중에서 인도색 설치 등의 작업을 했다"면서 "현장에 투입되는 함정들도 1선, 2선으로 나눠 실종자가 유실되지않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사고해역에 독도함(1만4천t) 등 함정 26척, 항공기 24대, 해난구조대(SSU), 해군 특수전 전단(UDT/SEAL), 특전사 요원 등 400명을 투입했다. 시험 운행 중인 통영함을 제외한 청해진함, 다도해함, 평택함 등 3척의 해군 구조함이 잠수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군 현장구조지원본부장인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은 해난구조대(SSU), 특수전전단(UDT/SEAL), 특전사 소속 잠수사들을 현장에 최대한 대기시키도록 했다. 특히 군은 야간 수색을 위해 육해공군이 보유 중인 조명탄을 최대한 확보할계이다. 김 대변인은 사고해역에서 해군 함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해경이 내부에 있고, 해군은 외곽에서 대기하면서 계속 지원작업을 하고 있다"며 "필요한 수색작업을 할 때는 단정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서 구조작전, 수색작전을 수행하는 그런 개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눈에 띄진 않지만 외곽에 다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함인 평택함과 청해진함이 출동시간이 지연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청해진함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0시26분, 평택함은 오전 1시49분에 각각 도착했다"며 "구조함은 전투함이 아니기 때문에 시속 18.5㎞로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미 해병대의 본험리처드호에 탑재된 헬기가 구조지원차 출동했다가 우리 해군이 거부해 복귀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본험리처드호는 (사고 당일)오전 11시 58분 MH-60 헬기 2대를 사고 해역에 보냈다"며 "그 당시는 다수의 구조헬기가 집중 운영되고 있어 MH-60 헬기는 역할이 많지 않아서 일단 복귀시키고 추가 임무를 주겠다고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석침몰> 더딘 구조…답답한 국민·동포 아이디어 보내

여객선 '세월호' 침몰 3일째인 18일에도 빠른 유속 등으로 배에 갇힌 것으로 보이는 승객 구조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과 해외 동포들이 답답한 마음에 다양한 구조 아이디어를 연합뉴스로 보내왔다. 현실성이 낮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온 국민이 기적 같은 구조를 기다리는 애절한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독자 김대종씨는 도면까지 그려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냈다. 김씨는 "지름 1.5m 이상, 길이 40m짜리 원통과 그 안에 네온 불빛이 장착된 밧줄을 설치하면 구조대가 조류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배 4층까지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안동훈씨는 "현재 동원된 3천600t짜리 해상크레인 3대로는 세월호를 인양하지 못한다"며 "10만t급 이상 선박을 부양할 수 있는 플로팅도크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로팅도크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이다. 일단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배를 살짝 들어올린 뒤 그 아래 플로팅도크를 넣어 세월호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플로팅도크 공법을 검토 중이다. 해외에서도 많은 의견을 보내왔다. 미국에 산다는 아이디 'fyun89'는 "군함 등 큰 배를 일정하게 나열하면 유속을 줄일 수 있고 물이 탁해서 안 보이면 서모그래피(빛 대신 열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구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페루에 있는 이진석씨는 "배 안에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승객들이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충격음을 발생시킬 것"이라며 "이를 감지하는 수신장치를 즉각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항공모함을 투입, 세월호 양쪽에 쇠사슬을 연결해 양쪽으로 끌어 수면 위로 나오게 하거나 이른바 '정주영 공법'(유조선공법)을 사용해 물 흐름을 막으면 진입이 수월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정주영 공법이란 1984년 2월 서산 간척사업 때 밀물과 썰물의 빠른 물살을 폐유조선으로 막은 기술을 이르며 당시 정 회장이 유조선에 올라 물막이 공사를 직접 지휘한 데서 유래했다. 1990년 9월 경기도 고양시 한강 둑이 붕괴한 수해 때도 급류가 무너진 둑으로 밀려나와 이를 막기 어려울 때 정주영 공법을 응용, 돌을 넣은 컨테이너를 쌓아 응급 복구했다. 이밖에 세월호 근처에 기지국과 와이파이 설치, 잠수함으로 견인 등 다양한 의 견이 이어졌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배 지키며 최후 맞은 서해훼리호 백선장

"승객들을 구하려고 끝까지 배속에 남아 사투를 벌였던 서헤훼리호 백 선장의 숭고한 죽음이 떠오르네요." 전북 부안군 위도면 주민들은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배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백운두(당시 56세) 선장을 '진정한 뱃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20분께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격포항으로 가던 중 침몰, 362명의 승객 중 292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해상 참사다. 당시 백 선장은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홀로 탈출해 인근 섬이나 뭍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민간인들과 생존자 중 누구도 배에서 백 선장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이 나오고, 사고 후 인근 항구에서 백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까지 이어져 검찰은 그를 지명수배하는 촌극을 벌였다. 당시 사법당국은 백 선장이 살아있을 확률이 98%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백 선장의 가족은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고통 속에서 죄인처럼 숨죽여야 했다. 그러나 백 선장은 사고 닷새 만에 침몰 선박 2층 조타실 뒤편 통신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순간 선장실에 있었던 백 선장은 황급히 조타실 뒤 통신실로 뛰어들었으나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온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 탈출하지 못하고 희생됐다.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하려고 통신실로 뛰어든 것이다. 위급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을 지키고자 그는 숭고한 죽음을 택했다. 서해훼리호는 출항 당시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해상 기상이 좋지 않았다. 폭풍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천후였다. 백 선장은 결국 높은 파도 때문에 운항이 어렵게 되자 무리한 운항보다는 회항을 결정, 선수를 돌리려다 사고와 맞닥뜨렸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무서운 죽음을 직감했을 그였지만 선장으로서 자세와 의무,책임을 저버리지 않았다. 부안군 위도면의 한 선장은 "선장은 승객은 물론 배와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라며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던 백 선장의 숭고한 죽음이 다시생각난다"고 말했다. 서해훼리호 참사가 어느새 20년을 넘겼지만, 사망자들의 넋과 선장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는 위도 앞바다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50t 대형 트레일러 3대도 실려…과적 의혹

해경 조사 결과 사고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가 침몰 직전 급격하게 방향을 튼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당시 적재 화물의 과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객선이 순식간에 침몰했다는 생존자 진술로 미뤄 급회전 과정에서 쏠린 화물 탓에 좌초 후 침몰까지 걸린 시간이 빨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8일 사고 여객선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t(적재가능 중량 기준) 화물차량 22대, 2.5t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천157t 등 총 3천608t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 이는 승객 457명의 체중은 뺀 무게다. 2.5t 이상 화물차량 34대 중 2.5t 차량은 1대뿐이었으며 4.5t 이상 중형 화물차량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승용차 1대 무게가 보통 2t이고 4.5t 화물차량 1대 무게는 8t으로 여기에 화물까지 실으면 무게는 더 늘어난다. 특히 당시 세월호에는 최소 무게 50t 이상의 대형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트레일러 뒤에는 무게 20t 가량 되는 대형 철제 탱크가 달려 있었다.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생존한 트레일러 기사 A씨는 "트레일러 3대가 실려 있었는 데 사고 당시 여객선이 급회전하면서 트레일러가 쓰러졌다"며 "트레일러와 화물들이 쏟아지면서 여객선이 짧은 시간에 침몰했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적재 한도는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다. 사고 당시 차량은 적재 한도보다 30대를 초과했다. 승선 인원이 정원의 절반가 량에 그쳤지만, 차량 무게를 사람 몸무게와 비교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총적재 한도보다 초과됐을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의 적재 한도는 3천794t으로 사고 당시 적재량보다 100t가량 적었지만, 해운 업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과적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선사측이 밝힌 화물 적재량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선사는 항해시간, 화물 적재 상태, 화물량 등이 포함된 출항 전 점검보고서를 작성해 선사 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실에 통보하지만 제대로 된 과적 단속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청해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만재홀수선이라고 배에 표시된 선이 물에 잠기는지를 확인해 과적 여부를 단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사가 임의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운항관리실에서 과 적 여부를 사실상 알 수 없다"며 "배 출발 시간이 임박하면 대충 확인하고 출항시킨다"고 말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 대국민 호소문 전문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18일 오전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성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실종자 가족들이 이날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발표한 호소문 전문이다.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 4월 16일 오전 9시께 사고가 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낮 12시쯤 모두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존자 82명, 학생 74명, 교사 3명, 일반인 5명이 도착한 시각인 오후 5시 30분께 실내체육관 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 무도 없고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현재 진행되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학부모 대책위를 꾸려 오후 7시쯤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2곳으로 나누어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민간 잠수부를 동행해 자원을 요청했지만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우고 난리를 피워서 책임지는 사람을 보내달고 했는 데 대답이 없었다. 오후 10시 넘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구조는 없었다. 계속된 요청에도 17일 오전 1시께 다시 한다고 전달받았지만 조류가 심하다,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얼버무렸다. 군과 경찰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학부모와 민간 잠수부는 오열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인원은 200명도 안 됐다. 헬기는 단 2대, 배는 군함 2척, 해양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오전 9시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국내 대형 해난사고 원인은

진도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여러 개연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생한 대형 해난사고들의 사고원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296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해경 수사본부는 '급격한 변침'(變針배의 항로를 바꿈)을 사고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가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면서 배에 실려 있던 화물과 트럭 등이 한쪽으로 쏠렸고 결국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침몰했다는 설명이다. 세월호가 일본에서 도입되면서 구조를 변경하면서 무게중심이 높아진 것도 사고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음으로는 좌초설이다. 배가 암초에 부딪치는 바람에 배 밑부분에 '길게 찢어진' 형태의 파공이 나면서 침수가 되는 바람에 침몰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선박에 실려 있던 화물이나 차량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침수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해난사고 전문가들은 침몰한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조사하고 선장과 항해사 등을 조사해봐야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인명피해를 낸 다른 해난사고도 대부분 인재(人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195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발생, 330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실종돼 최대의 해상침몰 사고로 꼽히고 있는 창경호 침몰사고의 경우 1차 사고원인으로는 풍랑이 꼽혔지만 지은 지 20년 넘은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개조했다는 점도 사고원인으로 부각됐다. 323명이 숨진 남영호 침몰사고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30분께 여수 소리도 26마일 해상에서 발생했다. 서귀포부산항로의 362t급 정기여객선인 남영호는 승선인원 338명 중 323명이 숨졌다. 당시 기록을 보면 남영호는 선체가 갑자기 기울어지면서 전복된 것으로 돼 있다. 탑승 가능인원(302명)보다 많은 338명이 탔고 적재 가능 화물(130t)보다 많은 230t을 싣고 가다 변을 당했다. 1993년 10월 10일에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를 운항하던 서해 페리호가 침몰, 292명이 사망했다. 당시 정원(221명)을 훨씬 넘은 362명을 태우고 출항해 사고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높았다. 또 당시 바다날씨가 나빴지만 출항을 강행했던 점도 사고원인으로 지적됐다. 서해 페리호는 바다날씨가 나빠지자 회항하려고 배를 돌리다가 침몰한 것으로 조사됐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해상 크레인 현장 도착…세월호는 완전 침몰 임박

침몰 여객선 세월호를 인양할 해상 크레인 3대가 18일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전날 하루에만 시신 16구를 인양한 해경 등은 동원 가능한 선박과 헬기를 모두 투입해 사흘째 수색에 나섰다. 현재까지 전체 승선원 475명 가운데 25명이 숨지고 271명은 실종, 179명은 구조된 것으로 집계됐다. ◇ 해상 크레인 4대 도착인양계획 수립 착수 해상 크레인이 현장에 속속 도착하면서 해경 등은 인양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옥포3600호(3천200t), 설악호(2천t) 등 2대는 현장과 4~5㎞ 떨어진 진도 관매도인근에서 대기 중이며 살코 1천200호(1천200t)는 목포에서 현장으로 접근하고 있다. 삼성2호(3천350t)도 이날 오후 1시께 현장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인양 작업이 생존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해 실종자 가족 동의 없이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양 과정에서 선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고, 이 경우 선체 내부에 공기가 찬 공간 이른바 에어포켓으로 해수가 밀려들어 생존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당국은 기상 상황지형 파악, 크레인 정비점검을 하고 있으면 크레인 투입 시기가 확정되면 선체에 체인을 연결하는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잠수부를 통한 선체 내부 진입이 계속 어려울 경우 크레인 3대로 선체를 살짝 들어 올려 진입 공간을 마련한 뒤 수색과 '에어 호스'(선체에 공기 주입) 작업을 돕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 수중수상 작업 병행선내 진입은 언제쯤 현장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초속 3~5m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파고는 1m 안팎이다. 안개가 짙고 너울이 심해 세월호에 접근해야 하는 소형선박이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비함정 108척, 민간어선과 관공선 61척, 크레인 4대(도착 예정 크레인 포함),잠수요원 등 구조대원 535명이 투입됐다고 해경은 밝혔다. 잠수요원들은 정조시간대를 중심으로 선체 진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방침이다. 선체에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위해 공기 압축기(에어 콤프레셔)를 이용, 선박에 공기(산소)를 주입하는 시도도 병행된다. 선체에 진입해 현장 상황을 촬영할 수 있는 무인로봇은 이날 0시 30분부터 사고선박 주변 보트에 대기 중이지만 물살이 거세지면서 투입되지 못했다. ◇ 뱃머리만 간신히 물 위에완전 침몰 임박 17일 하루에만 시신 16구가 발견되면서 시신 유실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선체 내부 수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로 바다 위로 떠올라 인양됐다. 조류가 바뀌면서 배 안에 있던 시신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해경은 분석했다. 시신이 떠오르는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구조 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동안 세월호는 완전 침몰 직전에 놓여 있다. 썰물 시간대인 18일 오전 9시께 세월호는 뱃머리 부분 50㎝가량만 간신히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미 부분이 해저 펄에 박힌 채 비스듬히 서 있던 선체가 기울고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는 지난 16일 오전 8시 58분(해경 공식 신고접수 시각) 침수 신고 후 2시간 20여분 만에 침몰한 뒤 전날까지 물때에 따라 높이 2~3m, 길이 20~30m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 사건·사고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침몰순간에도 빛난 단원고 스승과 제자

지난 16일 오전 침몰 직전 여객선 '세월호'에 끝까지 남아 제자들과 승객의 목숨을 건진 단원고 교사와 학생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여객선 선장은 대피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배를 버리고 달아난 상황에서 이들의 영웅적인 '살신성인' 구조활동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구조된 학생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사고 발생 하루만인 지난 17일 오전 9시 20분께 여객선 후미 쪽에서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2학년 6반 담임 남윤철(35) 교사는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있던 학생들을 구출하다 목숨을 잃었다. 남 교사는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16일 오전 10시께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다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일일이 챙겨주고 끝까지 대피를 도왔다. 제자 안민수(17)군은 "물로 가득찬 방으로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피시켰다"고 말했고, 같은반 구성민(17)군은 "탈출 직전까지 우리를 안심시키며 탈출을 도왔다"고 울먹였다. 영어를 가르쳤던 남 교사는 청주 출신으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아버지는 충북의 한 사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단에서 늘 만났던 아이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배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불사르며 부활대축일을 사흘 앞두고 하늘나라로 떠난 셈이다. 2학년 5반 담임 이해봉(32) 교사와 인성생활부 고창석(40) 교사도 갑자기 배안으로 물이 차오르던 긴박한 상황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에 따르면 이 교사는 난간에 매달려 있던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실종됐고 고 교사는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돕다가 정작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배에서 탈출하라고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탈출을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살신성인의 참스승으로부터 교육받은 제자 역시 위기속에서도 남달랐다. 2학년 6반 박호진(17)군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성실히 수행해 6살 꼬마 권지연 양의 목숨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6일 오전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면서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졌을 때 박 군은 여학생들에게 탈출을 양보한 뒤 갑판에 홀로 남아 있던 권 양을 구조했다. 박 군은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 위에서 울부짖는 꼬마 한 명을 발견하자 지체없이 꼬마를 들쳐 안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박 군은 "아기가 물에 흠뻑 젓은 채 울고 있기에 아무 생각이 없이 안고 구명보트로 뛰어내렸다"며 "섬에 도착해서 구조대원들에게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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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구급상황 발생했는데 자리 비운 현장책임자

특별취재팀 =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몰려 있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구급상황이 발생했지만 현장관계자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상황수습에 애를 먹은 가족이 분통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다수의 실종자 가족을 따르면 18일 새벽 5시쯤 실종자 가족 한 명이 갑자기 천막에서 실신 했다. 주변 가족들은 실신한 사람이 사흘째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고 지난밤 시신이 대거 수습되면서 감정에 큰 동요를 일으켰다고 전했다. 상황을 지켜봤다는 한 실종자 가족은 "현장 관계자와 119구급차배 운전자를 수소문했지만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급한 마음에 진도체육관에 있는 해경 관계자에 게 연락했더니 '담당이 아니다'는 어이없는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가족은 이어 "주변의 도움으로 응급상황 20여분만에 해결됐지만 안 그래도 서러운 상황에서 당국 관계자의 안이한 대처가 실종자 가족을 또 한 번 울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종자 가족들은 오전 5시 30분부터 중앙 공터에 모여 "책임자 나오라"며 항의 하는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소동이 난지 40분이 넘어서야 해경의 한 관계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1시간이 넘어서야 김수현 서해지방해경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 청장은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조치 못한 부분은 죄송하다. 환자들 수송은 다른 기관에서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팽목항에 헬기 1대도 배치하도록 하겠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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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실종 가족 호소문 발표

여객선 실종자 가족들이 18일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성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모여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실내체육관에서 대표가 낭독한 호소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해 눈물을 머금고호소하려 합니다"라며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사고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모두 구조됐다는 발표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현장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현장에는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라며 "민간 잠수부를 동반해 사고 현장을 방문하려 했으나 아예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막았다"고 말했다. 또 "어제 현장을 방문했지만 헬기 2대, 배는 군함 2척, 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에 불과하고 인원도 200명도 안됐는데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거센 물살로 선체 수색이 늦어지면서 사망자 시신이 대거 수습되는데도 관계 당국의 대처는 부실하다"고 항의했다. 일부에서는 "수습된 시신 상태가 너무 깨끗해 선체에서 생존했다가 사망 가능성이 크다"며 신속한 선체 수색을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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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단골 승객 "세월호, 적재차량 결박 허술"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사고 원인이 급격한 변침(變針배의 항로를 바꿈)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당 선사가 차량 결박을 허술하게 관리해왔다는 단골 승객의 증언이 나왔다. 지난 2년간 청해진해운을 이용해 왔다는 박모(47)씨는 "배를 탈 때마다 차량 결박이 허술해 불안했다"고 주장했다. 4년 전 제주도로 이사한 박씨는 지난 2월 취항한 세월호가 운항하기 전부터 인천-제주행 여객선을 이용해왔다. 그는 "눈을 감고도 배 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내부 사정을 잘 안다"면서 "아마 급격하게 방향을 틀면서 허술하게 묶인 차량이 한쪽으로 쏠려 선체가 기울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세월호는 1층에 컨테이너 화물을 싣고, 2층에 차량을 적재하는데 차량의 결박 상태가 항상 허술하게 관리됐다. 그는 "사고가 난 날과 같은 평일에는 승용차보다 화물차가 7080%를 차지한다"며 "화물차가 제대로 결박되지 않았다면 사고의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갑자기 항로를 바꾸면서 허술하게 결박된 선박 내 차량과 화물이 한쪽으로 쏠려 침몰의 단초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세월호에는 180대의 차량과 컨테이너 화물 1천157t이 결박된 채 실려 있었다. 생존한 승객과 승무원들이 증언한 '쾅' 소리도 차량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체에 부딪혀 난 소리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해경 수사본부도 사고 원인을 '급격한 변침'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차량과 화물의 결박은 안전과 관련돼 철저하게 관리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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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진도 여객선 침몰] 선장 '승객 버리고 먼저 탈출' 의혹

총지휘를 맡아야 할 선장은 첫번째로 도착한 구조선을 탔다는 의혹을 받고, 선상에 있는 46개의 구명보트는 달랑 하나만 펴졌다.운 좋게 객실 밖으로 대피했던 승객들은 목숨을 건졌지만, 수학여행을 온 학생과 관광객 등 280명의 생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사고 첫날 구조돼 해경에서 조사를 받은 선장과 기관장 등 핵심 승무원 10명은 그렇게 승객들을 저버렸다.승객을 남겨두고 먼저 사고 현장을 빠져나와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을 받는 이들은 긴급 상황 시 지켜야 할 대피 매뉴얼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는 폭발해양오염비상조타기관고장인명구조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승무원들이 따라야 하는 매뉴얼이 상세히 나와 있다.먼저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고, 2인자인 1항사는 현장지휘, 2항사는 다친 승객들을 돌보고 생명줄과 같은 구명보트를 작동해야 한다.그러나 세월호의 승무원들은 이 같은 규정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이들이 유일하게 지킨 매뉴얼은 선장의 지시를 따라라라는 한 구절뿐이었다.기관장 박모(60)씨는 기관실에 있는데 선장이 위험하니 (위로)올라 오라고 했고, 아마도 9시께 탈출한 것 같다면서 선장의 지시를 따랐다고 했다.기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참 승객들이 불안에 떨던 시간에 총지휘를 맡아야 할 선장은 승무원에게는 탈출 명령을 내렸고,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저버렸다는 지적이다.고 박지영씨 등 일부 승무원의 살신성인 활동이 보이기도 하지만 승객의 목숨과 재산을 지켰다는 승무원은 거의 찾을 수 없다.세월호의 매뉴얼에 나온 선원 행동요령인 인명이 최우선이다. 사고처리 업무가최우선이다. 사태가 낙관적이어도 항상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라. 선장 지시에 따라라는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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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8 23:02

<여객선침몰> 선장은 같은 항로만 8년째 운항한 베테랑

16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좌초한 사고 여객선의 선장은 8년 전 해당 선사에 입사해 인천제주도 항로만 전담 운항한 베테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대형 여객선 선장 3명 가운데 운항 경력이 가장 오래된 선장"이라며 "운항이 서툰 분은 아닌데 짙은 안개 때문에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대체선장 이모(69)씨는 2006년 11월 청해진해운에 입사해 8년째 인천제주도 항로만 운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입사 직후부터 청해진해운 소속의 또 다른 인천제주도 왕복 여객선인 오하마나호(6천322t급)를 몰다가 지난해 3월 15일 세월호가 취항하자 배를 옮겨 몰았다. 사고 당일에는 세월호의 주 선장인 신모(47)씨가 휴가 중이어서 대체선장으로 이씨가 투입됐다. 청해진해운의 다른 관계자는 "이씨는 인천제주도 항로 2명의 선장이 휴가를 가면 대신 투입되는 대체선장"이라며 "대체선장이라는 직책이 따로 있고 인천해양항만청의 허가를 받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선장은 이전 경력을 포함해 20년 넘게 운항한 분"이라며 "인천제주도 항로에서도 오랫동안 배를 몰았다"고 덧붙였다. 사고 당시 여객선에는 1등 항해사를 포함 항해사 5명과 기관장, 갑판장 등 기관부분 선원 7명이 함께 탑승했다. 그러나 이씨는 사고 당시 서해 상에 낀 해무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5일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9시께 인천에서 출항했다. 한편 1999년 2월에 설립된 청해진해운은 현재 인천제주도, 인천백령도, 여수거문도 등 3개 항로에서 총 4척의 여객선을 운항하고 있다. 1999년 7월부터 인천제주도 항로 운항을 시작했다. 2011년 9월 같은 항로의 면허를 추가로 얻어 여객선 2척을 운항하고 있다. 김영붕 청해진해운 상무는 "사고 선박 탑승객과 국민께 죄인의 심정으로 사죄드린다"며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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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6 23:02

고교생 등 459명 탄 여객선 침몰…293명 생사불명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59명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오후 4시 현재 2명이 숨지고 293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대규모 참사가 우려된다. 현장에서는 민관군경이 헬기, 경비정, 민간 어선 등을 총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배 앞서 '쾅' 소리 나더니 기울어" 16일 오전 8시 58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6천825t급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수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세월호는 배 앞부분에서 '쾅'하는 충격음과 함께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완전히 뒤집힌 채 2시간여 만에 수심 37m 해저로 침몰했다. 이 배는 전날 오후 9시께 인천여객터미널을 출항해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객선에는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교사 15명, 일반 승객 89명, 선원 30명 등 모두 459명이 탔으며 차량 150여대도 싣고 있었던 것으로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는 파악하고 있다. 중대본은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가 집계 과정의 오류를 파악하고 164명으로 번복하는 등 종일 혼선을 빚었다. 전체 탑승객조차도 477명에서 459명으로 바뀌었다. 오후 4시 40분 현재 소재와 생사가 파악되지 않은 인원은 293명이라고 중대본은 밝혔다. 선사 여직원 박지영(27)씨와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 등 2명은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구조된 이들은 진도 팽목항으로 이송돼 진도 실내체육관, 진도한국병원, 해남종합병원, 목포 한국병원 등으로 분산됐다. 부상자는 7명이라고 중대본은 전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인원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 "마지막 1명까지"수중수상항공 수색 사고 현장에는 해경과 해군 함정 72척, 관공선 등 15척이 동원돼 수상에서, 헬기 18대가 항공에서 수색을 벌이고 있다. 해군과 해경 잠수요원 160명은 선체 등 수중 수색에 나섰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소속 21명은 오후 5시 이후 선체 등 수중 수색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1명이 1차로 입수했지만 시계가 좋지 않아 바로 물밖으로 나왔으며 2차로 입수한 9명도 조류 탓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안전행정부는 이날 오전 강병규 장관을 본부장으로 범정부 차원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현장에는 강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남상호 소방방재청장이 도착해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단원고 학부모 240여명도 이날 낮 12시 30분께 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에 나눠타고 진도로 향했다. ◇ 생존자들 "즉각 대피 안내했더라면" 승객 유모(57)씨는 "'쿵' 소리가 나더니 배가 갑자기 기울었다"며 "선실 3층 아 래는 식당, 매점, 오락실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유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는데 물이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며 "곧바로 대피 안내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된 한 학생은 "배 안이 물에 잠기는데도 방송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했다"며 "배가 기울면서 미끄러지거나 떨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친 사람도 많았다"고 밝혔다. 대기 안내가 나오는 바람에 학생들이 선실에서 빠져나가야 할지, 머물러야 할지극도로 혼란스러웠다며 A군은 울먹였다. 선원 김모(61)씨는 "배가 갑자기 기울어 신속히 빠져나왔다"며 "빠져나오는데 바빠 다른 사람들이 구조됐는지 신경쓸 틈도,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겨를도 없었다"고 말했다. ◇ 사고 여객선은 국내 최대 규모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다. 1994년 6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2년 말 10월 국내에 도입됐다. 길이 145m, 폭 22m 규모의 세월호는 국내 운항 중인 여객선 가운데 최대 규모의 여객선에 속한다. 여객 정원은 921명이며 차량 18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에 적재할 수 있다. 여객선은 로얄실, 패밀리룸, 단체여행객용 객실과 휴게실편의점식당게임룸샤워실 등 편의시설도 갖추고 있다. 운임은 로얄실(2인실)이 26만원, 6인용 패밀리룸 59만4천원, 가장 저렴한 플로 어룸이 7만1천원이다. 세월호는 수백명에 이르는 단체 여행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로 중고교 수학여행단, 등산 동호회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세월호는 국내 도입 후 등록검사를 거쳐 지난해 3월 15일 운항을 시작한 뒤 현재 주 2회 인천과 제주를 왕복운항하고 있다.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 30분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 다음 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난 15일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9시께 인천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는 담보 금액 77억원의 선박보험에 가입됐으며 인명피해 등의 배상책임에 대해 1인당 3억5천만원, 총 1억 달러 한도로 한국해운조합의 해운공제회에 가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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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6 23:02

<여객선침몰> '쿵' 소리와 함께 아비규환

"'쿵' 소리와 함께 배가 기울면서 (몸이 ) 넘어지는 바람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어요", "쿵 소리 후 불과 3040분만에 90도가 기울어졌어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충돌 사고 후 구조된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과 탑승객은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구조된 학생 정모(16)양은 "여객선 2층 방 안에 있었는데 '쿵'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밖에 나와보니 나를 비롯해 아이들이 중심을 못 잡고 휘청휘청하다가 넘어졌다"고 말했다. 정 양은 "큰 충격은 못 느꼈고 곧바로 원상복구될 줄 알았다"면서 "넘어진 아이 들은 좁은 방안에서 칸막이 등에 충돌하면서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당시 위로 여행가방과 소지품들이 바닥으로 쏟아졌고 학생들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 양이 있던 방에는 학생 8명이 있었으며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2학년 한승우(16)양은 "우리는 대피할 때까지 이렇게 큰 배가 설마 침몰할 줄 몰랐고 곧 정상화할 줄 알았다"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 구조 선박이 여객선 근처로 다가왔고 구조원이 건네준 호스를 잡고 이들은 침착하게 탈출에 성공했다. 2학년 2반 전모, 유모(16)양은 "아침을 먹고 2층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방송에서 '가만히 있어라'는 음성이 나와 대다수가 침착하게 지시에 따랐다"고 전했다. 이어 10여분 후에 선실 위로 탈출할 힘이 남은 학생들만이 커튼과 고무호스를 잡고 안간힘을 다해 바깥계단으로 나와 헬리콥터를 탔다"며 선실에 남은 학생들이 안전한지 알 수 없다며 울먹였다. 한 달에 수차례 진도제주도를 오간다는 화물기사 10여명은 "4층 식당 옆 기사대기실에 있는데 9시쯤 넘어 배가 갑자기 쏠리면서 15도가량 기울더니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불과 3040분만에 배가 90도로 완전히 세워졌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다행히 배가 70도가량 기울었을 때 계단으로 내려와 헬리콥터에 구조됐으며, 다른 기사들의 생사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배 항로의 변경 여부는 잘 모르겠다"며 평소 운항 때와 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 바다의 파고는 잔잔했고 안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조된 학생과 탑승객들은 모포를 뒤집어쓴 채 의료진들에게 현재 응급조치를 받고 자원봉사자들이 챙겨주는 갈비탕이나 간식 등을 먹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은 모포를 뒤집어쓰고 "00야 어디 있니"라며 얼굴이 안 보이는 친구나 선생님들을 찾으며 울먹이기도 했다. 아직 사상자와 실종자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자 소식이 끊긴 자녀를 찾아 헤매는 학부모들도 속속 진도에 도착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연락이 끊긴 딸을 찾아 진도군 내 병원들을 뛰어다녔으나 오후까지소재 확인에 실패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혹시 우리 딸 못 봤니"라고 물은 뒤 "잘 모른다"는 답변을 듣자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현재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는 구조된 학생과 탑승객 등 150여명이 임시 치료를 받으며 정신적 안정을 취하고 있다. 체육관은 특히 20분 거리의 팽목(현 진도항)에서 구조된 탑승객을 실은 버스가 올 때마다 의료진, 주민, 공무원, 자원봉사자, 취재기자 등으로 극심한 혼잡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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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4.04.16 23:02
사회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