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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땅, 그러나 옛날에는 엄연히 유구국(琉球國)이란 독립국을 가졌던곳이 바로 일본의 오키나와이다. 오키나와는 일본과 필리핀 중간에 위치하고있어 군사 전략가들에게는 “태평양의 요충지”로 불리우고 있다. 오키나와 즉 유구국은 우리에게는 마치 동생같은 관계를 맺어왔다. 고려 왕조때는 사신을 보내와 조공을 받치면 고려조정은 유구국에 답례로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런 전례는 조선왕조까지 이어져 왔으나 영조때 제주부사의 역탈사건으로 양국이 소원해졌다. 중국에도 조공을 꾸준히 받쳤으며 중국문명의 영향하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의 꽃이 활짝 피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들어와 일본 세력에 눌려 일본 규유슈의 사츠마국이 쳐들어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가 일본의 메이지 법령하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현(縣)이 되었다. 그후 유구국 , 오키나와는 파란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들 고유 언어와 문화는 금지되어야 했었고 세계 2차 대전 말기에는 일본이라는 국적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아 약 2십만명의 오키나와인이 살해되었다. 현재는 미군이 약 3만명 주둔하고 있으며 그들 가족 22000명이 주거 하고 있다. 미군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오키나와 전체면적의 25%라고 하니 미국화(美國化)된 일본땅 이라고나 해야할 것이다. 이런 오키나와가 일본 교과서에 반란을 일키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받지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추한 과거지만 진실을 역사로 남기자.”이와같이 오키나와 주민들의 역사왜곡에 대한 결연한 의지는 일본 역사왜곡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 태평양 전쟁말기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사건에 일본군의 강요가 없었다는 역사왜곡에 대해 지역주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 항의하면서 일본정부가 교과서 기술을 복원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하는것이다. 오키나와인 의식속에는 아직도 그들의 옛왕조 유구국에 대한 긍지가 숨어있다는 증거이다. 일본 역사왜곡의 성곽이 오키나와에서 부터 무너지면 일본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역사왜곡에도 일침(一針)의 효과는 있으리라 본다. 역사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한대목이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아니 하겠다”고 다짐하며 38선을 넘었던 김구선생.김구선생은 1948년 4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통일을 위한 남북지도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노무현대통령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분단 54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에 갔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언제 한 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광주 출신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1956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는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발표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을 갈망하는 시인의 절규가 비교적 잘 표현돼 있다.1연에는 믿음 없는 대치 상황이 2연에는 불안한 평화의 남과 북이 3연에는 반목과 질시의 세태 비판이 4연에는 멀어지는 관계가 그리고 5연에는 전운 상존의 비극성이 묘사돼 있다. 휴전선을 노래한 시인은 갔다.시인이 살아 노대통령이 휴전선을 넘는 광경을 보았다면 뭐라고 노래했을까.비장한 각오로 38선을 넘었던 김구선생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휴전선을 넘었던 노대통령의 발길이 통일로 가는 지금길이 됐으면 한다.
무병장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은 염원이 되어왔다. 불로초를 찾아 헤맨 고대 중국의 진시황으로 부터 건강에 좋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 오늘날 보신족에 이르기 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대한 집착은 끝이 없다. 장수에 대한 욕망에 현대 의학기술 발달이 더해지면서 평균수명은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 52.4세에 그쳤던 평균수명은 2005년 78.6세로 늘었다. 50여년 사이에 무려26세가 늘어난 것이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은 이미 사어(死語)가 될 정도다. 오늘 ‘제 11회 노인의 날’을 맞아 올해 나이가 100세를 넘어 정부로 부터 장수의 상징인 청려장(靑藜杖)을 받는 노인이 사상 최대인 68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9년전인 1998년 117명에 불과하던 수여 대상자가 2005년 501명으로 늘어난데 이어 올해에는 사상 최초로 7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100세 이상 노인 수는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인간의 오랜 꿈인 ‘100세인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다. 청려장은 장수 염원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다. 가볍고 탄탄하고 모양이 좋아 노인이 짚기에 안성맞춤이다. 지팡이는 본인이 만들어서 사용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50세가 되었을 때 자식들이 만들어 부모에 드리는 지팡이를 가장(家杖)이라고 했다. 60세때는 동네에서 만들어 준다 하여 향장(鄕杖), 70세때는 나라에서 주는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님이 만들어 하사한다 하여 조장(朝杖)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장수는 반가운 일이지만 삶의 질이 수반되지 않고 단지 수명만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노년 이후 빈곤과 질병, 외로움의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주위에 많은게 현실이다. 노인복지 차원에서 내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가 시행된다. 일정 소득 이하인 65세 이상 노인 301만명에게 월 8만4000원 정도 지급한다. 또 노인 장기요양보험 제도도 실시된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외로운 죽음’을 막기 위해 기초생활수급 대상 독거노인 5000가구에 감시센서가 설치된다. 첫 술에 배 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선 시작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는 시책들이다.
금세기는 여성상위 시대라고 한다.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원시시대의 모계사회를 잠깐 거친후 부계사회로 넘어갔다. 그이유는 수렵채취와 농경사회가 되면서부터 생활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남자의 용감성과 근육의 힘이 위력을 발휘했다. 농경사회부터 토지 소유가 나타나게 되고 소유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기 토지를 이어받을 확실한 자기핏줄의 후손이 필요했고 여기에서 여자의 정조(貞操)윤리가 나오게 되었다. 여자쪽에서 스스로 정조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남자쪽이 핏줄의 순수성을 유지코자 여자에게 정조라는 굴레를 씌운 것이다.따라서 농경사회에서 이성(異性)에 대한 선택권은 오로지 남자쪽에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간택(?) 받기위해 예쁜 얼굴을 가지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동물들 세계와는 다르다. 동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더 아름다은 외모를 가졌다. 공작새 수컷의 깃털은 암컷에게 수컷의 위용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컷 공작새에게 선택을 받기위한 수컷의 전략이다. 수사자 머리위의 갈기털은 수사자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암컷 사자에게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이처럼 동물 수컷의 외모는 암컷에게 보내는 간절한 추파이기도 하다. 동물 사회에서 생활주도권은 인간과는 달리 대부분 암컷쪽에 있기 때문에 수컷은 단순히 종족보존을 위한 생산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엘빈 토플러 말대로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힘보다는 지식과 정보가 더 중요하다. 힘쓰는 분야는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이젠 여성도 경제권을 가지게 되면서 발언권 수위도 높아졌다. 더구나 호주제가 폐지는 여성이 결혼을 하지않은채 체내 또는 체외 수정을 통해 자기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자기 성(姓)까지도 제2세에게 물려줄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분위가 여성 독신주의를 가능케도 한다.남성적인 외모보다 여성적인 꽃미남의 더많은 인기는 여성 상위시대 도래의 징조이다. 이렇듯 성(性)의 정권교체기에 있는 오늘의 젊은 남성들의 고민도 그만큼 클것이라고 본다.
삼국유사 무왕(武王· AD 600-641)조에는 미륵사지(사적 150호)의 창건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무왕이 부인(선화공주)과 함께 사자사(師子寺)에 가려고 용화산(龍華山·현재의 미륵산) 밑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여기에 큰 절을 지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왕이 말을 듣고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곧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비스런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고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삼존의 상을 만들고 회전(會殿)과 탑과 낭무를 세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이같은 설화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는 미륵의 출현을 3탑 3금당식 가람 배치로 구체화한 호국사찰이다. 미륵신앙은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미륵사의 창건은 왕권 강화와 함께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줘 정신적 단결을 꾀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륵부처가 이승에서 3번 설법을 마친후 극락세계로 화한다 하여 3금당(金堂·대웅전이 3개)이 되었고 그 앞에 하나씩의 탑을 세워 3탑이 되었다. 대개의 사찰이 1탑 1금당이지만 미륵사는 3개의 절이 하나가 된 경우여서 3원(院) 1가람 양식이다.원래 이곳은 가운데 대규모의 목조탑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의 석탑을 세웠다. 중앙 목탑은 사라지고 동탑은 1993년 복원됐다. 자세히 보면 색깔이 다른 돌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동탑에 쓰였던 실제 돌이다.서탑(국보 11호)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탑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이다. 1997년 해체 복원작업에 들어가기 전, 6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었고 한쪽 면은 일제때 시멘트를 발라 놓아 흉한 모습이었다. 원래는 9층이었으며 백제 초기 목조탑을 돌로 정교하게 깎아 놓은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을 보여준다. 국내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는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폐사되고 절터와 석탑, 당간지주만 남았다. 그런데 복원 10년이 되어가나 아직도 사각의 감옥에 갇힌 모습이다. 더우기 복원작업이 지지부진해 복원 마무리가 2008년에서 2015년으로 늘어지고, 예산도 80억원에 70억원이 더해졌다. 마침 문화재 발굴과 관련, 비리가 드러난 후여서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는 정치인은 누구나 대권(大權)을 꿈꾼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도 역시 대권을 꿈꾸다 선거 유세장에서 암살의 비운을 당했다. 대권성취란 고난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대권을 꿈꾸는 자는 탁월한 인내심과 자기상황을 객관적이면서 멀리 볼줄도 아는 넓은 안목을 지녀야한다. 이점에서 민주당으로 다시 복귀한 이인제 국회의원 경우는 많은 아쉬움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써 한나라당 대선 주자 경선에서 그당시 이회창씨와의 대결에서 졌을때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고 대선에서 이회창를 도와주었다라면 다음번 한나당 대선주자 자리는 그의 몫 이었을 것이다는 생각은 일종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기회를 내다보지 못하고 탈당하여 박찬종과 더불어 새로운 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하여 500만표라는 경이적인 표를 얻기는 했다. 그후 김대중 정부 들어서자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에 뛰어 들었다. 민주당 대선주자 경선에 뛰어든 사람이 노무현 현 대통령,한화갑, 정동영,김근태,정대철,,김민석씨 였으나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씨를 제외하고 이인제씨를 비롯한 경선주자 모두가 도중 하차했다. 이때도 끝까지 경선에 남어서 정동영씨처럼 유종미를 거두었드라면 오늘의 이인제 위상과 위치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경선에 일단 뛰어들었으면 경선에 잡음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완주할 인내심은 필요했다. 축구선수가 심판이 좀 편파적이다고 해서 축구장을 뛰쳐나와서는 안되듯이 말이다. 우리 정치인들 특히 대권의 야망을 품은 정치인들이이인제 학습이 주는 정치적 교훈을 터득해야 한다. 대권은 한해 농사가 아니다. 그해 씨뿌리고 그해 수확을 하듯 국민적 인기가 조금 있다고 해서 그것을 지랫대로 대권을 금방 쥘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고건 전 국무총리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 자리가 어디 연예인 협회 회장자리인가. 멀리 보고 인내하는 중후한 정치인을 국민은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인제 학습이며 손학규 경선주자가 눈여겨 볼 대목이기도 하다.
추석 명절은 일년중 가장 풍성한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날씨도 딱 좋다. 그래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추석에는 벌초와 성묘, 각종 민속놀이 말고도 ‘반보기’라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으나 조선시대 전국적으로 행해졌던 풍습이다.반보기의 원래 명칭은 중로상봉(中路相逢)이다. 추석이 지난 다음 시집간 딸이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시집과 친정집 중간쯤에서 친정어머니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추석 특별휴가’인 셈이다. 물론 추석 전에 미리 친정에서 사돈댁에 편지를 띄워 추석이 끝난 뒤 상봉할 날을 잡아 놓는다. 약속된 날이 오면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마련해 준 음식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친정 어머니 마음은 더 바쁘다. 오랫만에 딸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있는 것 없는 것 보따리를 챙긴다. 경관이 좋은 곳에서 만난 어머니와 딸은 손을 붙잡고 눈물부터 쏟는다. 그리고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고 서로의 안부와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게 친정길을 반만 간다고 반보기, 다른 가족들을 볼 수 없어 반보기, 눈물이 앞을 가려 어머니 얼굴이 반만 보인다 해서 반보기라 했다. 전통적인 가족제도하에서 추석에 친정 나들이는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의 얘기다. 요즘 며느리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반면 지금은 명절증후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강도높은 노동량을 감당해야 하는 주부들이 갖는 스트레스를 일컫는다.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주부들은 불안 초조 우울 불면 위장장애 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신체적 증상을 호소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주부의 87%가 이러한 명절증후군을 겪었다고 한다. 해결책으로 여성단체 등에서는 ‘온 가족이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함께 쉬자’는 캠페인을 벌이곤 한다. 스트레스를 받기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스트레스를 받고,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끼여 속앓이를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결혼이 늦은 싱글들은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성화에 부대낀다.하지만 문제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명절을 즐겁게 맞았으면 한다.
우리 전북 부안에서 만들어졌던 고려청자가 실크 로드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은 우리 선조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의 열린 공간속에서 삶을 자유롭게 이어 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우리가 만든 도자기들을 유럽까지 운반케한 실크로드(Silk Road)는 독일의 지리학자였던 리히트호벤이라는 사람이 독일어로 Seidenstrassen(絹街道: 비단길)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데서 나온말이다. 이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주특산물 이었던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던데서 우리말로는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중국 한(漢)나라 시대에 타림분지 주변의 오아시스를 지나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과 서방을 연결하고 있었던 길을 가르키는데 동서(東西)교통로라는 뜻으로 확대해석하여 서아시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길과 스텝을 지나는 길(초원길)과 해상교통로 (바딧길)까지 이안에 포함시킨다. 서남 아시아에서는 이미 B C 6세기에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동쪽은 서투르키스탄에서 서쪽은 소아시아 반도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하였고 B C 4세기 무렵에는 알랙산드로스 대왕이 지중해 동부에서 인더스강까지 지배하는등 일찍부터 정치적 통일과 함께 서남아시아라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실크로드 (비단길)는 중국 사서(史書)에 정식으로 기록되기 이전부터도 통하고 있었다. 서방과 정식으로 교통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한무제(漢武帝)의 명령에 의해 장건이라는 사람이 중앙 아시아에 파견된 뒤부터였다. 그의 여행을 계기로 서역(西域)이라는 중앙 아시아 여려 나라와 국교가 열리게 되었다.또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의 많은 부분이 실크로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는 비단 ,주철 기술 ,양잠, 제지법, 화법등이 서방으로 전해졌고 서쪽으로부터는 포도 석류, 비파, 무용, 요술,을 비롯하여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신라에까지 전해졌다는 네스토리우수파,불교가 전해졌다. 이처럼 실크로드는 세계 최고문화의 용접지대였다.부안에서 생산했던 도자기가 이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에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다시한번 감회를 새롭게 한다.
‘걸림없이 살 줄 알라’는 법보장경(法寶藏經)의 글귀가 이 가을에 스친다.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며/이치가 명확할때 과감히 행동하라/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며/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때 조심하라/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터지는 분노를 다스려라/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인간의 삶은 고단할 수 밖에 없다.생 노 병 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천만년 살 것 같지만 죽을 수 밖에 없다.예수도 석가모니도 공자도 다 죽었다.인간은 눈이 앞에 있어서인지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고 있다.남아프리카에 사는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복을 우리는 미련한 동물이라고 한다.스프링복은 풀을 남보다 먼저 차지하려고 초원을 전력 질주하다가 자신이 뛰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가속도가 붙어 결국 낭떨어지로 떨어져 죽고 만다. 미련한 짐승이라고 웃어 넘길 수 없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너무 닮은 꼴이 아닐까.우리도 매일 살아 간다고 말하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닌다.그러나 상당수가 어디로 뛰고 ,또 왜 뛰는지 모르고 산다.뛰기 싫어도 뛰어야 하는 우리들이 함께 뛰다 자멸하는 스프링복처럼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뒤돌아다 보는 것이 중요하다.스프링복이 주는 교훈을 새겨봄직하다. 라이너 릴케의 ‘가을날’싯귀절도 가슴에 닿는다.주여,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3연 생략) 전북도가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인 15명으로 전라북도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키로 했다는 것.위원들은 정치색을 탈피한 가운데 최소한 법보장경이나 릴케의 가을날 정도를 읊조릴 수 있는 인사들로 구성했으면 어떨까.그 나물에 그밥은 싫다.
인류 우주탐사의 성과는 미국과 소련 양(兩) 강대국의 경쟁에 힘입은 바 크다. 1957년 소련은 인류 최초 우주선인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상공 900㎞에 쏘아 올렸다. 지름 58㎝, 무게 83.6㎏의 공 모양을 한 이 우주선은 지구 상공에서 최초의 전파를 지구로 보냈다. 우주개발 무한경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당시 소련의 성공에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미국이였다.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는등 우주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유인 우주선 발사에서도 소련에 뒤처지고 말았다. 소련은 1961년 4월12일 세계 최초 우주비행사인 가가린을 태운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였다. 미국은 가가린의 우주여행 3주뒤 세퍼드중령을 태운 머큐리 캡슐을 쏘아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해 겨우 체면을 세웠지만 자존심은 구겨질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하지만 소련의 우위는 이때까지 였다. 1961년 5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야심찬 아폴로계획을 발표했다. 1969년 7월20일 ‘아폴로11호’를 타고 날아간 암스트롱등 2명을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시킴으로써 미국은 비로소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었다. 미국은 1972년 까지 여섯차례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켜 달에 발을 딛은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당시 달 탐사선이 채취해 온 월석(月石)은 미국이 우방에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했다. 인간이 달을 마지막으로 찾은지 35년, 그동안 실용성 문제로 달 탐사 열기는 시들해졌다. 그러나 최근 일본, 중국, 인도 등이 다시 달 탐사경쟁에 뛰어들음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은 지난주 달 탐사위성 ‘가구야’ 발사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달에 유인기지를 구축할 계획도 갖고 있다. 중국과 인도 역시 각각 다음달과 내년에 달탐사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중국도 2022년에 우주인을 달에 보낸다는 목표다. 이같은 달 탐사 경쟁에 민간기업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인 구글이 2012년 까지 가장 먼저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켜 데이터를 지구에 전송하는 팀에 상금을 주는 대회개최를 최근 발표했다. 우주개발 기술은 미래산업과 국가안보를 이끌 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다. 이웃 국가들의 불꽃튀는 경쟁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손 놓고 바라보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이유다.
동국대 전교수였던 신정아 사건은 예측불허의 시한폭탄 일지도 모른다. 신정아씨의 페쇄된 이메일을 복원하여 나머지 절반을 검토하면 변양호 청화대 전 정책실장 이외에도 그녀와 깊은 관계를 가진 정관계 인사들이 밝혀질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여자와 정치인 또는 고위 관리와의 스켄들은 어제 오늘의 새삼스런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번 신정아 사건으로 정관계 인사들이 추문사건으로 휘말린다면 이는 마치 약 45년전에 영국에서 일어나 결국 맥밀란 내각을 퇴진시켰던 크리스틴 킬러사건과도 비슷하다.이사건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틴 킬러는 모델출신으로 대단한 미모를 지닌 고급창녀 였었다.그녀와 신정아씨가 미모를 지녔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당시 19세에 불과했던 크리스틴 킬러는 영국 정계의 스타였던 프로퓨모 육군장관 그리고 소련 대사관의 무관 이바노프등 영국 정계 실력자들을 고객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그당시 유명 정치인과 고급 콜걸의 염문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의회가 직접 조사에 나설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 영국 소련 대사관 무관 이바노프가 킬러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는 국가 안보문제로 까지 비화되었다. 군사 정보가 소련으로 넘어갔다는 증거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은 났지만 냉전 논리가 지배했던 그당시 이사건으로프로퓨모 장관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이번에 있었던 변양호씨의 일련의 거짓말처럼 프로퓨모 육군장관도 의회의 중언에서 “ 나는 크리스틴 킬러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거짓말한후 석달만에는 “국민을 속여서 죄송하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그를 감쌌던 보수당 정권은 이듬해 총선에서 대패했다. 정계를 떠난 프로퓨모 전장관은 40년 넘게 속죄의 뜻으로 런던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그의 속죄행위에 감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를 찾아와서 “이제 충분히 속죄하신 것 아닙니까”하니까 그의 대답은 “비록 세상이 나를 용서해준다고 해도 나는 거짓말했던 나를 용서할수 없읍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아마도 여자와 거짓말은 정치인에게는 아킬레스 건(腱)과도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말하는 본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두가지로 구분된다. 의식적인 거짓말과 무의식적인 거짓말이 그것이다. 의식적인 거짓말이 대부분이지만 어린이의 경우와 병적인 경우에는 의식없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다른 구분은 새빨간 거짓말과 새하얀 거짓말이다. 동기가 악한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영국에서는 이를 까만 거짓말이라 한다. 반면 암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거짓말은 동기가 선한 것이므로 흰 거짓말(white lie)이다. ‘탈무드’에서는 두가지 경우에 거짓말을 허용한다. 하나는 누가 이미 물건을 산후 어떠냐고 의견을 물으면 설령 그것이 좋지 않아도 좋다고 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친구가 결혼을 했을 때 반드시 부인이 정말 미인이니 행복하게 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한다. 하얀 거짓말인 셈이다.한편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거짓말을 악의적 거짓말, 이타적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로 나눴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거짓말 예찬론자 히틀러의 거짓말이 악의적 거짓말이라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거짓말을 이타적 거짓말, 그리고 듣는 사람을 위해 하는 거짓말을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 것이다.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이다. 눈덩이처럼 굴러 점점 더 커지는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걸리버 여행기’를 쓴 J. 스위프트는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거짓말을 스무 개나 지어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늘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고 했다.우리 속담에 “거짓말은 도둑놈 될 장본”이라 했다. 거짓말 하는 버릇이 도둑질의 시초라는 말이다. 또 영국 속담에 “거짓말은 다리가 짧다”고 했다. 오래가지 않아 탄로난다는 뜻이다. 요즘 가짜 예일대 박사로 동국대 교수를 지낸 신정아씨의 얘기가 화제다. 그녀는 처음에 뒤를 봐주면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을 “잘 모르는 사이‘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그녀 뿐 아니라 대학총장, 스님 등 관련자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면목없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거짓말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전신(前身)은 안전 기획부였고 그 전신은 박정희 정권때 중앙 정보부였다. 이기구를 만든 장본인은 김종필씨 였는데 그는 이 기구의 모토를 “ 음지(陰地)에서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로 정했다. 정보원들은 남이 모르는 곳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정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수사학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인데도 그당시 정보원들은 자기 신분을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활동했으니 거꾸로 양지에서 음지를 지향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확실하고 유익한 정보는 지하수처럼 은밀하게 흘러다니 것이지 시장바닥 물건처럼 널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보원은 아프리카 밀림의 사자처럼 잠복 암행해야 한다.여기에대한 모범답안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이다.그들은 음지에서 끈기있게 활동하므로써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모사드의 대표적 성공사례는 독일 나치 군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체포였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친위대 장교로 유태인 학살에 깊이 관여했지만 종전후(終戰後), 신분을 감추고 잠적해버려 전범(戰犯) 재판을 피할수 있었다. 모사드는 떠들썩하게가 아닌 은밀히 끈질기게 그를 추격하여 그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납치함으로써 이스라엘 법정에 세워 유죄평결을 받게하고 처형시켰다. 이사건으로 모사드의 정보력과 그들의 애국심에 세계는 감탄을 금치못했다 .이밖에도 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 검은 구월단’이라는 아랍 태러단체는 이스라엘 육상선수를 선수촌에 침입하여 사살했다. 모사드는 이들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보복 사살했다. 미국의 중앙 정보국 즉 C I A 는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미국을 지키는 지랫대이다. 그들의 활동은 성공과 실패로 명암(明暗)이 엇갈린다. 라틴 아메리카를 구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은 C I A의 공헌이지만 큐바 카스트로 제거작전의 실패는 미국 자존심의 상처이었다. 아무튼 세계 정보원들의 불문율은 비밀리에 은밀하게 활동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모토가 “정보는 국력이다”이다. 고급정보는 조용히 활동하는데서 습득되는 것이지 돌출행동에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없이/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이해인의 시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비켜서지 않으며/어느결에 반짝이는/꽃눈을 닫고/우렁우렁 잎들을/키우는 사랑이야말로/짙푸른 숲이 되고/산이 되어/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안치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중에서) 꽃도 사람도 저마다 향기를 낸다.하지만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꽃의 향기는 타고 나지만 사람의 향기는 자유의지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눈빛,말씨,얼굴 빛,마음씨,영혼에서 풍겨 나오는 내면세계가 사람마다 향기를 다르게 한다.환한 얼굴을 대하노라면 맘이 무척 편안해진다.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꽃보다 아름답다.무더운 여름날 계곡에서 불어 오는 공기처럼 상큼하다. 예로부터 인심이 광에서 난다고 했다.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비록 가진 건 없지만 밝은 얼굴과 친절한 말 한마디가 천냥보다 값진 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불교에서는 재물이 없어도 마음만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가 있다고 했다.불경의 잡보장경에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있다.세상 사람들이 물질에 도취해 황금이 최고 인양 살아가고 있다.있으면 모든 면에서 편리하겠지만 없다고 너무 기죽어 살 필요까지는 없다. 첫째는 화안시다.자비롭고 미소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두째는 안시다.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라는 것.세째는 언사시다.말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넷째는 신시다.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대하라는 것.다섯째는 심시다.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라는 것.여섯째는 상좌시다.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시내버스나 전철 같은 곳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도 베푸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방사시.사람을 방에 재워 주는 것을 말한다.이번 추석부터라도 무재칠시를 음미하며 살았으면 한다.
“사람들은 왼쪽 길/ 차나 짐은 바른 길/ 이쪽 저쪽 잘 보고/ 길을 건너 갑시다.” 중·장년 세대가 어릴 적 학교에서 질서교육을 받으며 부른 노래다. 자연적으로 ‘사람은 왼쪽, 차는 오른쪽 통행’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힐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보행방식이 규정으로 정해진 것은 1905년 대한제국 때로 보행자와 차마(車馬)의 우측통행을 규칙으로 정했다. 그 뒤 일제하 조선총독부는 1921년 규칙을 개정하면서 통행방식을 당시 일본과 같은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 일본의 좌측통행은 왼쪽에 칼을 찬 낭인들이 마주 오던 상대와 무기가 부딪치지 않도록 왼쪽으로 걷던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광복후 미 군정은 1946년 차량통행은 우측으로 바꿨지만 보행방식을 그대로 뒀고, 정부는 1961년 도로교통법을제정하면서 좌측보행을 법으로 명시했다. 현재 세계적인 관행은 사람과 자동차가 같은 방향으로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사람은 왼쪽, 자동차는 오른쪽’이다. 보행방식이 이처럼 고착돼 있다보니 현실과 인체 구조상 맞지 않아 보행질서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등산로나 계단을 비롯 벽이 있는 복도를 걸을 때가 대표적 사례다. 대부분 오른손잡이이다 보니 넘어진다든지 위기 상황때 난간이나 벽면을 붙잡는 방법으로 대처하기 위해 우측통행을 선호한다. 또 횡단보도에서는 우측통행이 원칙이다. 오른쪽으로 걸으면 달려오는 차량과 보행자간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져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회전문이나 에스컬레이터도 우측통행이 일반적이다. 반면 현재 방식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차도와 보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의 경우 차와 사람 모두 우측통행을 할 경우 사고 위험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같은 논란이 일자 지난주 건설교통부가 현행 좌측보행이 타당한지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연구결과가 우측보행으로의 변경이 바람직하다고 나올 경우 내년부터 범정부적 차원에서 변경작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습관처럼 생활화된 제도가 갑자기 바뀔 경우 혼선도 간과할 수 없다. 우리 주위에는 법이나 제도가 아닌 관행과 관습, 즉 오랜 기간에 걸쳐 생성된 ‘자생적 질서’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면서 질서가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법규로 강제하기 앞서 국민적 공감대 확산이 강조되는 이유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 건설은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정치등록 상표이다. 과거에 그는 현대구룹 정주영 전회장으로 부터 뚝심과 배짱을 배웠을것이며 청계천 복원공사 완공으로 증명이 된셈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 계획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폐기론과 보완론이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그러나 고속도로 건설과 대형화물 트럭이 엄청 발달된 상황에서 한강 낙동강의 연결이 물류이동에 혁신적 기여가 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놓은 여려 운하들은 경제발전과 물류이동에 엄청난 공헌을 해왔지만 말이다. 예를 든다면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없었다면 유럽 상선들은 인도나 중국을 가기위해서는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망봉을 돌아서 가야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에 의해 수에즈 운하가 건설됨으로써 지중해와 홍해가 연결되어 항해기간을 3분1로 줄일수있게 되었다. 파나마 운하가 없었다면 북미 서부에서 유럽을 배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브라질 최남단을 돌아서 가야만했다. 그러나 길이 82 Km의 운하를 뚫어 쉽게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갈수있게 되었다. 중국의 대운하는 양자강과 황하를 잇는 운하로써 길이가 장장 1300 Km 나 되어 글자그대로 대운하이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수문제가 이운하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의 아들 수양제때에 완성을 보았다. 양자강 이남의 풍부한 물자와 인원을 북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였는데 이것은 고구려 정복을 염두에 둔것이었다. 이운하의 종착역은 북경 남부의 탁군이라는 곳인데 이곳이 바로 고구려 정벌의 출발지였다. 그당시 탁군에 집결한 수나라 군사는 약 132만명이었다. 원나라 쿠빌라이칸 때에 이탈리아로부터 여행온 마르크 폴로는 이운하를 보고 감탄에 감탄을 금치못한 장면이 그의 동방 견문록에도 나온다. 그당시 중국의 대운하 건설은 국운을 걸 정도의 엄청난 사업이었다. 한반도에서의 대운하 건설 역시 엄청난 예산과 국력의 집중이 요구되기에 경제적 효용성에 대한 엄밀한 객관적 분석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치적 이미지 차원의 대선공약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근대 시사(詩史)에서 단 하나의 뿌리의 시인” “시의 사상적 깊이와 진폭에 있어서는 만해, 지용, 영랑을 능가한다”. 문학평론가 김윤식과 시인 박두진이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시인의 시세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글이다.석정은 일생동안 자연을 품에 안고 살았던 천성적 시인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주와 부안 등 전북의 산천과 바다에 터잡아 오롯이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곧 전북의 산이요,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평생 이 지역 교직에 몸 담아 문단 안팎에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음은 그의 제자들이 전하는 일화 몇가지. 한번은 고교 교사로 재직하는 교무실로 어린 중학생이 찾아왔다. 그 학생은 “애들헌테 들으니께 선생님이 시를 잘 짓는다는데 한번 봤으면 해서요”하고 엉뚱한 주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는 선선히 자신의 시집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그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몇 편인가를 읽는 시늉을 하더니만 “아닌게 아니라 잘 지었네요”하지를 않은가. 그를 보낸 뒤 시인은 “내 참, 시작생활 40년 남짓에 처음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면서 껄껄 웃었다.또 하나.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술이라도 얼큰히 마신 날이면 소년의 볼에 뽀뽀하기를 즐겨했다. 이를 당한(?) 귀여운 소년은 깜짝 놀라 도망가기 바빴고 파출소 순경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쫒아오는 경우도 있었다.또또 하나. 그는 나무중 태산목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꽃이 필 무렵이면 가까운 친구나 제자들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태산목 잎에 술을 부어 마시는 풍류를 즐겼다.석정과 교유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문학과 삶이 일치하는데 놀란다고 한다. 큰 시인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도 큰 것이 아닐까 싶다.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제자와 지역문학단체가 나서 그의 광활한 문학세계를 기리는 추모문학제를 14일부터 20일까지 갖는다. 이번 행사에는 심포지엄을 비롯 ‘석정 대표시 가곡의 밤’, 문학기행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올해 안에 1000여 편의 시와 260여 편의 산문, 일기와 단편소설 등을 집대성한 전집 간행과 부안에 석정문학관이 들어선다는 점이다. 그의 예술혼이 재조명되길 기대한다.
부산 국세청장이 건설업자 김상진씨로 부터 뇌물을 받고 세금을 유야무야 해주고 심지어 제보자의 신원까지 누설한 것은 상궤로부터 한참 벗어난 행위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지방 국세청장까지 오를수 있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조선 사회에서 세금을 걷는 관리를 세리(稅吏)라고 불렀는데 이말의 뉴앙스가 그리 좋지못하다. 공자가 논어에서 폭정맹어호(暴政猛於虎)라고 한것은 난폭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섭다는 뜻이다. 난폭한 정치란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여 백성을 못살게 하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부역(賦役), 군역(軍役), 조세(租稅)의 삼대 의무를 가졌는데 이중에서 백성으로부터 가장 원성을 산 것은 부당한 조세였다.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고사성어도 여기에서 나온것이다.우리 전통사회 에서는 조세를 거두는 세리에게 뇌물을 바치는 제도가 다양화 되었었다. 소위 인정미(人情米)라는 뇌물도 있었는데 세리들이 세금을 걷는 노고에 대해서 인정을 베푼다는 뜻에서 조세 한가마니 당 두되를 바쳤다. 그리고 조세 서류를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값 이라는 명목으로 조세 한 가마니당 두되를 거둬들였다. 또 세곡(稅穀)을 두사람이 운반하는데 그 노고에 대한 품값조로 수탈했고 세리들의 출장비조로 토지 결당 너말씩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또 고을 원님의 밥상에 오르는 찬값, 원님의 자는 방에 땔 나무값을 별도명목으로 받아갔다. 이같이 별의별 뇌물이 판을 치는 가운데서도 청빈하게 살었던 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때 김수팽 이라는 사람은 어느날 나라의 녹(祿)을 먹고있는 아우집에 들렀는데 아우 부부가 큰 단지들에 염색원료인 남(藍)을 잔뜩 만들어놓고 파는 것을 보았다.이것을 본 김수팽은 단지들을 쏟아버리고는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남(藍)까지 팔아 돈을 벌면 남을 팔아 먹고사는 백성의 영업을 침범하는것”이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있다. 세금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무행정이 상당히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부산 국세청장의 이번 경우처럼 뇌물은 항상 세리를 유혹한다.
지루한 무더위와 열대야가 가고 초가을로 접어 들었다.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錢魚).제철을 맞은 전어는 구울때의 고소함 때문에 남녀노소는 물론 심지어 그 맛의 유혹 때문에 집나간 며느리까지도 돌아 온다고 할 정도로 그 맛이 유명하다.옛 문헌에는 전어(箭魚)로도 표기 하였다.자산어보에는‘기름이 많고 달콤하다’라고 기록돼 있다.전라도에서는 되미,뒤애미,엽삭,강릉에서는 새갈치,경상도에서는 전애라고 불린다.크기에 따라 대전어,중간은 엿사리라고 하며 강원도에서는 작은 것을 전어사리라고 부른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에서 많이 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맛이 좋아 사먹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하였다는 것.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문헌까지 있다.가을에 잡히는 전어 맛이 일품이라는 걸 입증하고 있다.전어는 영양가도 풍부하다.DHA와 EPA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므로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크다는 것.뼈째 먹는 만큼 칼슘 섭취량이 뛰어나며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피로 해소 뿐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좋다는 것.한방에서는 위장을 보하고 장을 깨끗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전어소금구이는 전어 한마리를 통째로 잡고 연한 뼈와 함께 뜯어 먹어야 전어구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잘게 채를 썬 전어회에 양파,당근,오이,깻잎,배 등의 갖은 양념으로 마무리 한 전어회 무침은 새콤달콤한 양념 맛이 고소한 전어의 맛과 어우러져 입안을 자극시킨다.가을 전어는 봄철의 전어보다 지방이 훨씬 풍부하기 때문에 간혹 느끼해 질 수도 있지만 매콤 달콤한 양념으로 느끼한 맛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는데다 야채까지 섭취할 수 있어 최고의 가을 건강식으로 꼽힌다. 지난해 양식장에서 전어가 대량 공급돼 소비 부진으로 가격이 폭락했다.금년에도 가격이 뚝 떨어져 양식어가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금년에는 새만금 내측에서 불법으로 자연산을 잡아 대량 출하함에 따라 전어값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맛과 영양 만점인 전어를 먹어 건강을 지키고 양식어가들도 웃게 했으면 한다.
배가 좀 나와야 사회적으로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이전 배고픈 시절만 해도 배가 나온 탓에 가슴이 뒤로 젖혀지고 느릿느릿 걷는 모습은 마치 부(富)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오늘날은 거꾸로 과체중과 비만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고 매달리던 사이, 어느새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비만과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비만인구는 2005년 32.4%로 1995년 20.5%에 비해 10년 만에 1.6배 증가했다. 특히 남자는 같은 기간 18.8%에서 36%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비만의 주원인은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칼로리와 고지방 음식으로 구성된 식사습관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운동습관 때문이다. 섭취된 음식물에서 나오는 열량이 활동시 소비되는 열량 보다 많다보니 몸에 축적되는 것이다. 비만은 성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 비만도 크게 늘고 있다. 남자는 1998년 7.2%에서 2001년 15.4%로, 여자는 같은 기간 8.7%에서 15.9%로 늘었다. 3년만에 두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특히 어린이 비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중에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면서 고혈압,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의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 자신감과 지구력 등이 떨어져 학업성적도 오르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사회성 발달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잇다. 이 때문에 비만을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 미용목적이 아닌 비만치료도 건강보험 급여대상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침 어제 교육부가 연말까지 학교에서 탄산음료를 완전 추방하는 내용등이 담긴 ‘학생건강증진 대책’을 발표했다. 영양과 칼로리의 불균형을 가져 오는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가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이에 대한 경계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선진국들도 이들 상품의 교내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우리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규제에 나선 것은 잘한 일이다. 비만을 이기는 것은 건강도 얻고 최근의 트렌드인 몸짱도 가꾸는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가르침은 비만에 딱 들어맞는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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