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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달란트 연극마을 최경식 대표 "언어 벽 없는 마임, 세계 곳곳 희망 전달"

"기독교인은 십일조(十一租)를 합니다. 나도 내가 가진 것의 10분1을 나누자는 생각에서 이렇게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사단법인 달란트 연극마을 최경식 대표(48). 마임이스트로 불리는 그가 판토마임 공연활동을 통해 나눔 활동에 나서는 이유다.최 대표가 마임을 통해 사회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 2006년, 10여 년간 천직으로 여겨 온 연극배우 활동을 접고, 마임에 눈을 돌리면서다.이에 앞서 최 대표는 극단 '황토'에서 10년간 연극을 했다. 연극을 그만두기까지 그는 이 분야에서 나름대로 명성이 있는 배우였다."마임은 대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언어장벽이 없습니다. 또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희망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든 것이죠"그는 마임을 가지고 외로움에 떨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나 병마와 싸우는 말기암 환자들을 찾아간다. 연간 200회 정도 공연하고 있다.여기에서 희망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당신들을 사랑한다' '당신들은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희망을 가지고 살라'등을 몸으로 얘기하고 노래한다.때로는 물방울로 때로는 풍선으로 때로는 삐애로 복장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지만 결국은 '희망'이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역은 물론 국내에서도 마임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니까요"그는 마임협회 선배 등 국내 전문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당시 우리나라 마임수준이 열악한 터리 별로 신통치가 않았다.또, 폴란드 출신의 스테판 니즈알코프스키의 공연 등 세계적인 마임아티스트의 공연을 찾아다녔지만 최고 수준의 마임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따라서 혼자 밤을 새우며 책을 보고 공연을 보면서 마임 기술을 하나하나 습득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임이스트로 발전하게 됐다."마임기술이 일정수준 올라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제 본연(?)의 길이 생각났죠. 희망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그는 2010년 달란트 연극마을을 만든다. 혼자가 아닌 집단으로 나설 경우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는 데 보다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연극배우는 물론 교육자, 목사, 직장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까지 각계각층에서 일하는 10여 명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이어 연말마다 '워밍 투게더'란 공연을 통해 기업체와 불우이웃이 만나는 공간을 마련한다. 기업체는 공연티켓을 구입하고, 수익금은 불우이웃에 지원하는 것."2년째 이어온 이 행사는 13일간 계속해서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금으로 하루에 한 가정씩 50만원을 지원해주구요"그는 앞으로 생명과 환경, 생태계 등을 주제로 한 공연을 만들고 싶어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는 물론 우리가 처한 환경을 알려주고 싶어서다.그동안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가면 만드는 사람(체인지업)' 등 소외계층이나 사건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품을 선보여왔다.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처한 지구의 현실을 고발하고,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게 살수 있는 방법을 판토마임을 통해 전달하겠다는 생각이다."나눔문화 확산, 그 것이야 말로 제가 마임 활동을 하는 이유고, 세상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정답이 아닐까요"

  • 기획
  • 구대식
  • 2012.05.14 23:02

취임 2주년 김 한 전북은행장 "내실 키워 금융지주사 전환…전북경제 활력 돕겠다"

전북은행 김한 행장이 올해로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취임이후 전북은행이 그동안 고수했던 보수적 경영전략을 탈피, 공격적 경영으로 전환하며 창립이래 처음으로 자산 10조원 시대를 개막하는 등 전북은행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의 중심에서 서있는 김 행장의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경영전략 등에 대해 들어본다.- 올해로 취임 2주년을 맞았는데 그 동안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전북은행은 최고의 은행이라는 비전 아래 '리테일 전문은행' 이란 장기 목표를 세우고 최근 2년간 변화 추진의 핵심을 구성원의 의식 개혁과 다른 은행과의 갭 축소를 우선시했다. 이를 위해 직원 교육, 채널 혁신 및 인프라 구축에 지속적인 투자를 했다.또한 취임 후 부서장들에게 직접 새해 목표를 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줬다. 이는 자발적으로 일해보자는 취지였다. 향후 2년치 목표를 함께 제출토록 했다.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지난해 자산의 경우 직원들이 직접 정한 목표치인 9조 5000억원의 목표치를 넘어서 자산 10조원을 달성했으며, 우리캐피탈을 자회사로 인수하는 성과를 거두어 최고의 은행으로 거듭날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증권업계에서 전북은행 주가가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저평가 됐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안책은 무엇인지요.△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당행 목표주가는 6000원~8000원 정도로 평균 6500원 수준에서 목표주가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당행의 현재주가인 4600원 수준에서 약 40%의 상승여력이 있는 수준으로 당행의 양호하고 꾸준한 실적 추이 등을 감안하면 밸류에이션상 저평가 국면에 위치해 있다.이와 같이 당행의 주가가 저평가돼 거래되고 있는 이유는 은행권 주도주 변화로 인한 시장의 관심 미약, 즉 은행권 시장 전반적으로 우리금융 민영화 이슈 등 M&A에 따른 은행권 재편 움직임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돼 시장참여자들에 의한 시가총액상위 특정 대형주 위주의 매매패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적정규모 성장을 통한 효율성 증대와 지역내 성장동력 및 역외지역 영업력 강화 모멘텀 등 긍정적인 이슈를 통해 시장의 관심을 증대시킨다면 당행의 주가수준은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점포망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소매금융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데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당행은 역외지역인 서울과 대전의 영업력을 확충하고 역내의 경우도 집중해야 하는 지역에는 점포를 더 늘려가는 한편 구도심에 위치한 취약한 점포는 조정하면서 고객기반 확충에 집중, 안정적인 성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향후 역외에서는 소매여신을 강화할 예정이므로 도내에서는 소매금융 위주의 수신확대가 중요하다. 현재 대전 인구 중 전라도 출신이 약25%이며, 서울·경기도의 경우 전체인구의 30%가 넘는다. 이를 바탕으로 올 한해는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모집인 채널과 소형영업점 위주로 서울지역 영업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중장기 차원에서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청사진은.△ 당행은 중장기 차원에서 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데, 금융지주사는 자회사간 고객정보 공유, 사업다각화, 기업가치 제고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정부에서도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등 은행권의 금융회사 지주전환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으로 현재 전북은행에서도 금융지주 전환과 관련하여 장기성장을 위한 중장기 전략측면에서 필요성, 설립방안, 주요이슈에 관하여 실무부서에서 초기수준의 예비검토를 하고 있다.하지만 아직 이사회 등에서 정식으로 거론된 적은 없고, 감독당국과 주요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함으로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당행은 급하게 지주사를 설립하기 보다는 은행과 우리캐피탈의 내실을 키우는데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조속한 시일내 지주회사 전환을 이뤄져 전북은행의 비상이 전북경제 활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지역공헌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향후 추진 계획은 무엇인지.△ 전북은행은 영업 성과를 지역에 환원시킴으로써 지역 은행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중이다. 지난해 748억원의 당기순이익에 사회공헌비로 92억원을 사용해 당기순이익 대비 사회공헌비율이 12.3%를 기록해 여타 시중은행들보다도 월등히 높은 비율을 보여 주었다. 특히 저는 취임 후 조직 개편을 통해 사회공헌 전담부서인 '지역 공헌부'를 신설하고 전북은행 지역사랑봉사단을 100개팀으로 확대하는 등 실질적인 사회공헌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또 전북은행장학문화재단을 비롯해 시군 인재육성 장학재단의 장학기금 조성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메세나 사업, JB갤러리 전시회, 청소년 음악회, 다문화 가정 돕기 등 학술과 교육, 문화,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향후에도 지역 대표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의 이행과 의무를 다하고 지역사회로의 이익환원을 위한 나눔 경영의 실천을 하고자 한다.- 임기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래의 은행은 지금과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인더스트리가 3-4년마다 격변을 하고 있다. 전북은행은 규모가 작아서 얼마든지 미래산업에 빨리 적응하고 변신할수 있다. 전북은행 임직원 모두가 애사심, 사랑으로 똘똘 뭉쳐지면 규모가 큰 시중은행보다 못할 것 없다. 향후 10-20년후 전북은행이 최고의 은행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 향토은행으로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지방은행은 금융의 지역적 분산과 지역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1967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였는데 부산은행, 대구은행, 충청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 경기은행, 전북은행, 강원은행, 경남은행, 충북은행 등 10개 은행이 있었지만 IMF때 다 없어지고 전북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3개 은행만 살아남았다. 지난 42년간 전북은행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 있는 도민들, 주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이 전북은행을 아껴주고 위해줘서 살아남았고 지역사회 사회공헌도 많이 할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전북은행이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할려고 한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기 바란다.

  • 기획
  • 강현규
  • 2012.05.14 23:02

2. 생태습지, 백구 부용제가 다시 꾸는 꿈 - 농경지 인접부에 저류 습지 조성, 수질개선 필요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김제 용지, 공덕, 백구의 쌀이 다 이곳에 모이던 시절의 분주함은 온데간데없이 부용역사는 굳게 닫혀있다. 세월의 무상함과 쓸쓸함을 위로하듯 텅 빈 벤치를 환하게 핀 보라색 등꽃이 지키고 있다. 부용역 앞 왼쪽으로 거대한 쌀 창고와 도정공장,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백구금융조합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외양이 바뀌었으나 아직 뼈대는 일제강점기 그대로다. 농민들을 착취하던 수탈의 시간과 산업화와 근대화 물결을 온몸으로 버텨온 기억을 보관하는 창고처럼 보인다.  옛 술도가를 지나서 수룡귀지 마을로 가는 길에 자리한 부용제도 그 중 하나다. 벽골제가 말해주듯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수자원 확보는 벼농사 성패의 관건이었다. 농민들은 야트막한 산자락에서 모여든 물이 한 방울이라도 새어나갈세라 지대가 낮은 곳에 크고 작은 저수지를 쌓았다.  기록상 부용제는 1945년 1월에 착공되어 그해 말 12월 축조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쌀 공출을 확대하기위해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을 만들겠다는 일제의 정책에 따라 확장 정비되었을 것이다. 30ha의 논과 밭에 물을 대는 생명수이자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추억의 공간이던 부용제는 1991년 갑작스레 폐 저수지가 되었다. 당시 시에서 쓰레기 매립장을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으며 부용제는 자연스런 습지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그런데, 지난 3월 김제시가 대부자를 선정해서 부용제의 약 80%를 매립한 후 옥수수, 조사료 재배지와 콩 시험포를 만들겠다며 설명회를 열었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의 공동자산이자 추억의 공간인 부용제를 개인에게 불하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부용제의 과거와 현재"원래는 둑도 없고 수문도 없이 큰 수렁 방죽만 있었당게. 외지 사람들 잘못 빠지면 줄을 묶어서 끌어내야 파듯이 나오고 그렸어." 마을 토박이 최경식(78)씨의 회상이다. 원래 습지였던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이탄(토탄)에 얽힌 사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때는 모두 다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인데 뭐 땔 것이 있어야지. 그래서 저그 죽산이고 용지에서 이곳으로 토탄을 캐러들 왔지.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굉장혔어. 모다 들 시커매가지고 눈알만 흐연했지, 허허허" 이탄(토탄)은 습지 바닥의 산소가 없는 층에서 식물체가 부식된 것들이 흙처럼 퇴적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탄은 잘 말려서 풀무로 부쳐서 태우면 아주 잘 탔다고 하고 그래서 토탄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것으로 볼 때 저수지로 축조되기 전의 부용제는 비가 올때 주변의 물이 흘러드는 얕은 습지에 습지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의 사체가 분해되면서 이탄이 생성되는 이탄습지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탄은 습지에 쌓이고 쌓인 시대별 퇴적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사 연구에 중요 자료가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유기질퇴비의 재료나 피트머스라는 조경 자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개인이 불하받으려는 것도 다 이탄의 가치를 염두에 둔 것 아니겠냐는 것이 대책위원들의 설명이다. 이탄을 캐던 수렁 같은 옛 습지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20여 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용제는 완벽한 습지로 되돌아왔다. 복사꽃과 포도밭에 둘러싸인 부용제는 수문을 열어두고, 준설을 하지 않게 되자 개방수면은 많이 줄어들고, 갈대, 줄, 부들, 개구리자리, 젓가락나물 들의 수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하중도의 육화 정도를 보여주는 버드나무도 보인다. 한때 부용제라는 저수지 이름에 걸맞게 주인 노릇을 하던 연꽃은 수위가 낮아지면서 그 세력이 많이 줄었다. 수초들 사이로 긴 다리 물새인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가 성큼성큼 걸으며 정중동(靜中動) 먹이 사냥에 열중이다.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아직도 떠나지 못한 쇠오리들도 분주히 수초를 뒤진다. 저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준설을 하는 인근 시산제나 학제와 달리 넓은 수초지대와 하중도가 형성되어 있는 부용제는 겨울철이면 많은 오리들과 기러기들의 서식지가 된다. 천연기념물 고니도 수 십 마리씩 이곳을 찾는다. 또한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고 작은 숲에 의존해 살아가는 너구리, 삵 등 야생동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태공간이다. △습지의 자정 작용, 만경강 수질개선 효과구불구불 물 가장자리는 둑이 없이 포도밭과 배, 매실 밭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비가 내리면 농사에 사용된 거름, 비료, 농약 등 수질오염 물질이 그대로 저수지로 모여드는 구조다. 습지식물은 이 오염물질을 가라앉히고, 걸러주며, 양분으로 삼아 자라면서 습지를 자연정화한다. 부용제를 떠난 물은 용암천에 다다르는데 오염이 심한 용암천의 수질 개선을 위해서도 부용제는 자연정화습지로서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유입수가 적고 물이 정체되는 구간이 많다보니 탁도가 심하고 수질도 좋지 않다. 유입 수로와 농경지 인접부에 저류 습지를 조성하여 1차 정화된 물이 호소로 넘어가는 시스템을 만들면 수질개선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북생태환경연구소 도내 내륙습지 현황 조사에 의하면 도내 저수지는 총 2,253개소. 이중 80%가 1930년~60년대에 축조되었다. 그만큼 폐지되는 저수지도 많다. 또한 저수지에 안정된 습지 식생이 안착되면서 생태적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정읍시 소성면 한정제, 고창군 상하면 용대저수지, 임실군 오수면 대정저수지 등 가시연꽃 군락지가 대표적이다."저수 용도가 폐지된 소류지라 습지로서의 기능과 가치가 더 큰데요. 이미 습지 식생이 많이 복원되었기에 조금만 손을 대도 훌륭한 생태 거점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2004년 전주시 관내 소류지 64개소 현황 조사를 통해 도시화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소류지의 생태공원화 사업을 공론화 해온 김재병(44전 전주의제21 사무국장)씨의 말이다. 일부를 준설해서 수면을 유지하고 제한된 구간에 산책 데크와 관찰대를 설치하면 부용초등학교의 생태 교육시설과 주민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탄 습지라는 지질학적 특성과 근대 문화유산이 오래된 기억처럼 남아있는 인문 환경, 고단한 세월을 온 몸으로 이겨온 사람들의 이야기, 전국적 지명도가 있는 백구 포도의 역사가 잘 어우러진다면 부용제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적 가치를 담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김제시는 국가로 관리권이 이양되기 전에 활용할 수 있던 방안을 강구하던 중 우량농지 조성권을 부여하여 농가 소득을 올리기 위함이었다며 주민들의 반대의사를 받아들여 시 계획을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현 NGO시민기자

  • 기획
  • 전북일보
  • 2012.05.09 23:02

김종곤 부용제 복원주민대책위 집행위원장 "부용제는 어머니 품 같은 곳 마을 공동의 자산이자 역사"

"부용제는 어머니 품 같은 곳 이예요. 마을 공동의 자산이고 역사인데 한 개인이 점유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마을 토박이로 부용제 생태습지복원주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곤(62)씨의 말이다. 포도밭에서 일을 하다가 한달음에 달려온 그는 부용제의 가치를 예전부터 고민해 왔다. "몇 년 전 마을 이장을 할 때부터 부용제를 생태공원화 하고 포도농장 체험과 연관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어요. 그래서 김제시 농어촌 정주권 생활권 사업에 포함되기도 했고요"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도 부용제가 백구 포도체험 테마마을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전국적으로 이름 난 백구 포도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시마모토가 월봉리 부용역 근처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했는데 토질이 배수와 보수력이 좋은 사양토인데다 일조량이 좋고 서해바다 해풍이 맞고 자라서 당도가 뛰어나다고 자랑이다. 유기질비료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엄격한 품질관리도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밝혔다. 저수지 임대를 신청한 사람이 지역 유지이고 김 위원장 또한 백구면 주민자치위원장인지라 지역사회에서 껄끄럽지 않느냐는 질문도 허투로 넘기지 않는다. "(습지 생태공원) 없는 것도 만드는데 있는 것을 없앨 수는 없지요. 개인에게 불하하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올지 모르잖아요. 모두를 위한 공익적인 사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새만금 수질개선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데 부용제 같은 저수지를 잘 살려서 용암천이 깨끗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위원장은 김제시가 부용제 대부 계획 재검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태 공원화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출향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인터넷 까페(http://cafe.naver.com/buyongpark)도 만들었다. 우선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라도 무너진 둑도 쌓아올리고 주변 청소도 해볼 생각이다. 그렇게 구석구석 동네를 안내한 뒤 그는 시원한 포도즙 한잔 건네주고 이내 다시 포도밭으로 달려갔다. 이정현 NGO시민기자

  • 기획
  • 전북일보
  • 2012.05.09 23:02

3. 탄소밸리구축사업 - 탄소소재 기술수준 선진국의 90%까지 달성 목표

정부가 지방의 산업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중장기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광역경제권 선도 사업'이라면 '광역 경제권 거점기관 지원 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주축이 돼서 진행하는 사업이다. 이는 지역의 신산업 창출을 위해 지방에 연구기반시설을 구축하고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부지에 건축물과 장비를 구축한 뒤 테스트베드(Test-bed), 기술개발지원 등을 기업에 제공하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기술개발은 전국 단위의 공개모집을 거쳐 지역 신산업 분야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정해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R&D자금을 지원한다. 전북도가 추진하는 탄소밸리(Carbon Velly) 구축사업도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9개 광역경제권 거점기관 지원 사업 중 하나다.지난 1월 17일, 전북도민들의 귀를 사로잡는 소식이 전해진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술지 MRS(Materiald Research Society) bullentin 2011년 12월호에 도와 전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탄소밸리 구축사업이 대한민국의 주요 과학정책이라고 소개된 것이다.이 학술지는 탄소밸리 구축사업이 한국 탄소산업 육성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탄소소재를 기반으로 한 고강도, 초경량 부품소재 산업을 발전시키고 세계 탄소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당시 전주기계탄소기술원 관계자는 "세계적 학술지에 기사가 실림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적으로 탄소산업을 육성하는 사례가 됐다"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했다.△탄소밸리의 시작이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탄소밸리 구축사업은 지난 2009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정부는 당시 지역의 첨단부품소재 육성을 위해 지역에 연구기반시설을 구축하고 기술개발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의 사업화를 유도해낸다는 복안으로 탄소밸리 구축사업을 시작한다.탄소밸리사업은 크게 기반조성과 기술개발 두 분야로 나뉜다.기반조성은 연구기관 등이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공간에 건물과 장비를 구축해 테스트베드, 시험인증, 기술개발 등을 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기술개발은 전국단위의 공모를 통해 첨단부품소재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정해 핵심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자금을 지원한다.△사업의 목적정부는 사업 목적을 세계최고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갖춘 탄소원천소재 국산화, 탄소소재 응용 핵심기술 개발 및 글로벌 선도제품 사업화, 탄소소재 산업 집적화 및 R&D 지원을 위한 거점 인프라 구축으로 정하고 2009년 4월부터 8월까지 탄소밸리 구축 기획위원회를 구성, 마스터플랜을 마련한다.이 사업의 목표는 2015년까지 전주와 완주 등 전북권역에 탄소소재 관련 기업 60개를 유치해 전국대비 집적도를 30%로 끌어 올리고 탄소소재 기술수준을 선진국 대비 90%까지 향상시킴과 동시에 탄소소재 국산화 비율도 90% 이상 올린다는 것이다.△사업 개요이에 따라 국가는 전주시와 완주군 일원에 5년의(2011년~2015년) 사업기간으로 총 1991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는 정책을 마련한다.사업비의 구성은 국비 1087억원, 지방비 78억원, 민간자본 826억원으로 R&D 구축에 1705억원(총사업비의 86%)을, 테스트배드 구축에 286억원이다. 테스트배드 구축과 관련 206억원은 전주기계탄소기술원(JMC)에. 80억원은 KIST전북분원에 지원하기로 한다.R&D 사업의 핵심은 탄소소재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라지토우 탄소섬유 및 그린수송시스템용 부품소재 개발 △피치계 탄소섬유소재 및 응용기술개발 △기타 탄소소재 및 활용 기술개발이 포함된다.연구개발지원 테스트배드 사업은 탄소복합부품 성형기술 지원 기반조성과 탄소소재 일류화 지원 기반조성으로 대별된다.이와 별도로 도는 올 탄소밸리 사업비 중 10억원을 탄소섬유보다 시장규모가 4배나 큰 인조흑연 개발에 투자한다고 밝혔다.세계탄소시장의 40%를 점하고 있는 인조흑연은 석유나 석탄 부산물인 코크스를 2800℃ 이상으로 열처리해 흑연화시킨 합성물로 경량성과 내열성, 전기 및 열 전도성, 고강도의 성질을 띠며 철강분야의 전극봉, 휴대전화의 음극재, 반도체와 태양전지용 핵심소재, 원자력의 감속재 등으로 활용된다도에서는 이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개발사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사업화로 이어지는 기업을 전주첨단복합산업단지와 완주테크노밸리에 집적화해 연관기업의 시너지효과를 높인다는 복안이다.△기대와 파급효과탄소밸리 구축사업의 산업적 파급효과는 신성장동력의 핵심소재로서 높은 전후방 연관 효과는 물론 고부가가치 창출, 응용과 적용분야 확대를 통한 신산업 창출이 기대된다.과학기술적 파급효과로는 우주항공, 로켓, 신개념 무기체계 등 미개척 기술분야의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탄소가 미래성장 4대산업(조선, 반도체, 자동차, 항공)의 핵심소재로 초경량화 신기술 분야 R&D의 추진이 가능해진다.경제적 기대효과도 매우 크다. 탄소소재 국산화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가 3400억원에 이르고 원천소재 및 공정기술 개발을 통한 자동차 부품 시장 진출로 인한 대체 시장이 국내 1조5000억원, 해외 약 11조원에 달한다는 게 사업을 주관하는 지식경제부의 분석이다.△제2의 탄소밸리전북도는 지난 4월 16일 T-1000급 탄소섬유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기용 탄소복합체 기술개발 수요조사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탄소밸리 사업의 저가형 T-300급 개발과 (주)효성의 T-700급 탄소섬유와 연계해 오는 7월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으로 신청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제2의 탄소밸리사업'으로 2014년부터 5년간 3000억원이 투입되는 '초고강도 탄소복합체 개발사업'을 겨냥한 것이다.이와 관련 도는 KIST전북분원과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의 장비와 인력을 활용하면 기술개발이 용이하다고 강조한다.△향후 과제는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탄소섬유 시장을 선도하려면 조기 기술개발을 통한 시장 선점이 최대 관건이다.이 때문에 필수적인 예산이 적기에 투입되지 않으면 사업 성공이 불투명해진다.내년도에 필요한 300억원의 국가예산 지원이 절실하게 된 배경이다. 예산지원이 미흡하면 투자 의향이 있거나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 참여를 망설이게 된다고 한다.도는 탄소밸리 R&D사업과 관련해 내년에 모두 210억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장비구축사업은 2013년 90억원의 국비가 필수적이라는 게 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 기획
  • 김성중
  • 2012.05.09 23:02

이금림 이사장은

작가 이금림은 좀 속된 표현을 빌려오자면'가장 잘나가는'드라마 작가다. 80년 첫 드라마 작품을 발표한 이후 32년. 그동안 발표한 작품은 일일이 기억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단막극 말고 일일드라마와 특집드라마만 대략 꼽아도 30편을 넘는다. '이금림 드라마'의 아이콘은 청소년 드라마와 가족드라마다. 80년대 중반, 파죽지세로 인기를 구가했던 '호랑이 선생님'이나 '고교생일기'가 청소년드라마의 길을 열었다면,'당신 때문에''옛날의 금잔디'나'당신이 그리워 질 때''은실이' 같은 드라마는 인간의 따뜻함과 휴머니즘을 그린 가족드라마의 모범이다.'불륜'을 다룬 '푸른 안개'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키도 했지만 그는 선정적이거나 감각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경계해왔다. 그런데도 그의 드라마들은 인기가 있었다. 재미와 감각위주의 트렌디 드라마가 홍수를 이루는 환경에서 이단(?)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그의 드라마가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이금림은 1948년생이다. 남원이 고향. 5남매 중 막내다. 아버지는 평생을 별 직업 없이 한량으로 사셨다. 시조 명인이자 아마추어 연식 정구 선수로 밖으로만 나다니는 아버지 대신해 농삿 일은 어머니에게 안겨졌다. 공부 잘했던 막내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어머니 덕분에 그는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었다. 공부를 꽤 잘했던 그는 어렵다던 전주사범 병설중학교 입시에 합격해 전주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첫 학과 시험을 보고 좌절했다. 이후 공부보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일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시절, '혼불'의 작가 최명희를 만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금림은 전주여고로, 최명희는 기전여고로 진학하면서 헤어졌지만 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함께 책 읽고 전주천변을 거닐며 문학에의 꿈을 키웠다. 한명은 드라마 작가가, 한명은 소설가가 되었다. 최명희가 1998년 작고하기 전까지 37년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힘이고 희망이었다. 아버지의 불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대 국문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후 10년동안 인천과 서울에서 국어교사를 했다. 그런데 문득 단조로운 일상에 숨이 막혔다. 사표를 냈다. 지인 소개로 79년 '별이 흐르는 밤에' 대본을 쓰게 되었는데 그의 필력을 눈여겨 본 프로듀서가 드라마 작가를 권했다. KBS단막극 '소라나팔'이 데뷔작이다. 80년대부터 그가 내놓은 수많은 작품은 한국 드라마의 역사가 됐다. 한국방송작가상과 한국방송대상 작가상, 한국프로듀서상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그에게 고향 전북에서는 '자랑스런 전북인상'(1996)을 안겼다. 2009년, 사경을 헤맬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방영중인 드라마를 중단하고 칩거했던 그는 지난해부터 외부 활동과 집필을 시작, TV소설 '복희누나'로 시청자들을 다시 만났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정원(경희대 교수)이 둘째 아들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2.05.08 23:02

이금림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도, 인생을 바꿀 수도 있죠"

우연히 아침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KBS TV소설 '복희누나'였다. 눈길을 끄는 톱스타도 없고 자극적인 이야기나 볼거리도 드러나지 않는 이 드라마에 마음이 끌려 '다시보기'를 그렇게 즐겨하게 될 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 11월 10%대의 시청률로 출발했던'복희누나'는 16%대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렸고, 평균 14%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아침드라마 중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통상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를 떠올리게 되는 아침드라마의 행진 속에서 이 드라마가 단연 돋보이는 이유가 그래서 궁금했는데, 이 드라마를 쓴 작가 '이금림'이란 이름을 보고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 끄덕여졌다. 요즈음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휴머니즘과 삶의 진정성을 갖고 나선 작가라면 '이금림'을 우선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문학적 서정성과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미가 넘쳐나는 '복희누나'는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복희'와 여러 인물들이 빚어내는 휴머니즘과 애환, 성장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공간의 배경이 진안과 전주여서 이 지역 시청자들에게는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덤으로 주었던 드라마다. 드라마 작가 이금림씨(64)를 만났다. '복희누나' 종영 하루 전날이었다. 드라마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간 밑바닥의 진정성을 그린다면 특별한 설정 없이도 충분히 재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그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도,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좋은 드라마를 써야 한다는 의식을 늘 지키게 했다고 말했다. 감각적인 설정 대신 삶의 진정성을 담은 탄탄한 이야기로 30여년동안 시청자들을 드라마로 울고 웃게 했던 그는 나이와 관계없이 소녀처럼 밝았다. 한때 사경을 해맬 정도로 마음병이 깊어 몸까지 지쳐있었다는 그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적인 이야기부터 드라마 제작에 얽힌 이면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드라마 못지않게 재미있었지만 아쉽게도 공개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꽤 있다. 그는 지난 2월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당초 의지가 없었던 그에게 이 자리를 강권한 것은 선후배들이다. 임기 4년 동안 그가 할 일은 방송작가들의 권익을 찾는 일이다. 그는 다소 버겁다고 했지만 30여년 걸어온 길에서 얻은 명예를 이 기회에 제대로 갚을 생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직무에 대한 의지가 돋보였다. 역시 그의 빛나는 삶의 무기는 매사에 새롭게 충전되는 진정성이었다. -건강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많이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사경을 헤맸을 정도로 심각했어요. 벌써 2년 전이군요. 40일 동안 한숨도 못자는 심각한 상황이었죠. 거의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다 나았어요."-방영 중이던 드라마 집필을 중단 하는 사태까지 갈 정도였죠. 당시 언론 보도로는 다시는 이금림표 드라마를 볼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4-5개월 꼬박 병상에서 지내다 떨쳐 일어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하품 해보는 것, 눈물 흘리며 울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잠을 못자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면벽 수도한 스님도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약과였죠.(웃음)" -활동을 재개한 후 첫 드라마가 '복희누나'군요. 저도 팬이었습니다. 방송 시간대가 출근시간이어서 '다시보기'를 해야 했지만 진안 전주 등 우리 지역이 공간적 배경이어서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대사에 '전북일보'도 나왔죠. 전주를 떠올리며 쓴 부분이 많아요. 고향 분들에게는 좀 더 친근했을 겁니다. 드라마 작가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제 고향이 전북이라는 것이에요. 아마 그쪽이 아니었으면 그런 드라마 못썼겠지요." -익숙한 지명 때문에 드라마 내용을 실제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진안 쪽에 그런 이름을 가진 양조장이 있었다고도 하던데요. "뜻밖인데요. 사실 드라마 속 양조장 배경은 충북 진천의 덕산 양조장 이예요. 작품을 준비할 때 인터넷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양조장을 찾아보니까 덕산양조장이 뜨더라고요. 1929년에 공장을 만들어서 사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곳인데 거기 찾아가 그 분들을 만나고 난 다음 이야기가 구체화 되었습니다. 공간만 제 고향으로 가져온 것이죠."-배경이 어떻든 요즈음 그런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흥분하지 않아도 되고, 인간적인 따뜻함과 희망을 만날 수 있었던 덕분이지요. "참 고마운 일인데 사실은 걱정스러웠어요. 이 드라마가 좀 위선적인 면이 있잖아요. 이렇게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만 사는 집단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판타지를 꼭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착할 수도 있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배려할 수도 있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현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끔찍한 경우가 많잖아요." -배우 캐스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십니까. "그렇긴 한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출연 배우 캐스팅은 드라마 제작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아침드라마는 이 점에서 한계가 있어요. 이 드라마에서는 몇 명 중진 원로 배우 말고 젊은 배우들 모두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극이 잘 살아났으니 감사한 일이죠." -이 드라마가 주목 받은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 것 같아요.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유명스타가 나와야 드라마가 잘된다거나 그래야만 시청률을 잡고 간다는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 드라마가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이지요. 시청률이 꼭 스타시스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어요. '다시보기'를 가장 많이 하는 드라마였다고 하는데 젊은 세대들도 이 드라마를 알고 있는 것이 반가웠습니다."-그렇게 고생하시고 결국 돌아오신 곳이 또 드라마를 쓰는 일인데요. 어떤 동력이 있나 봅니다. "작가는 정년이 없잖아요. 행복한 직업이죠. 저는 저희 선배님들이 아직도 현장에 계신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됩니다. 김수현 박정란 선생님 같은 분들을 보면 계속 글을 쓰시는 것도 그렇지만 활동도 아주 왕성하잖아요. 그러니 저같은 사람이 아직 일하는 것은 그냥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좀 무례한 표현인데, 어떤 분이'언제 적 이금림이냐'며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이금림 드라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80년에 첫 드라마를 썼으니 만 32년이군요. 다른 직종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실증이 날만하지만, 드라마는 늘 다른 이야기로 다른 배우, 다른 스텝과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새롭습니다. 그런 특징이 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외부적인 요인일거예요." -그런데 다시 시작하시면서 왜 굳이 시대극, 가족 드라마 장르를 선택하셨습니까. 요즈음 트렌드로 보면 위험하지 않나요.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언어특위'라는 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보니 드라마가 경계해야 할 비판 대상인 '막장'요소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아침드라마였어요. 처음에는 아침드라마를 안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방송사에 아침드라마로 꼭 하려면 없어진'TV소설'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방송사 측과 약속을 했죠. 시청률로 스트레스 주지 말 것과 그 대신 저는 막장 코드를 빼고 좋은 드라마를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장 코드라는 것이 불륜, 원한과 복수, 출생의 비밀, 비정상적으로 비꼬인 가족 관계 같은 것들이잖아요. 환영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거런것 빼고도 과연 드라마가 될까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되었잖아요."-선생님께서는 '막장 코드'나 감각적인 소재와 주제로부터 늘 자유로우셨나요. "저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푸른안개'예요. 불륜을 미화시켰다고 해서 지탄을 받고 논쟁도 뜨거웠죠. 저는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강변했지만 주부 시청자들이 우리집에 쳐들어와서 '폭탄 던지겠다'고 했을 정도로 비난이 거셌습니다."-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드라마는 어떤 것들입니까. "휴머니티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따뜻한 사랑을 담아 사람들을 위로 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죠. 사실 막장의 요소를 없애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드라마에 좋은 요소로 작용하게 해서 볼만한 드라마로 만들 것인가를 연구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현실 속 이야기라면 빼거나 피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끌어가는 일이 중요하겠죠." -최명희 선생님 이야기를 빼놓고 갈 수 없겠습니다. 최선생님과는 아주 절친한 친구셨죠. "'은실이'를 쓰고 있을 때 명희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 때 드라마 속 인물 작명이 끝나서 전화를 했는데 명희가 안 어울린다며 다른 성을 붙여주었어요. 그때 명희는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죠. 혼수상태에 그 극심한 고통에.(결국 그는 눈물을 흘렸다.) '혼불' 10권을 완성시키고 난 직후 인터뷰와 강연으로 너무 바빴어요.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전이가 많이 되어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었죠. 이후 2년 투병하는 동안 최명희는 정말 위대했습니다. 어떤 환자도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어요."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리우신가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작품을 쓸 때면 어디까지 썼는지, 어디서 막혔는지,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하다보면 답이 나왔거든요. 글 쓰는 작업이 외로운 일이잖아요. 장르는 달랐지만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희망이었습니다. 누군가 나처럼 고독한 사람이 저기 또 하나 있어서 불을 밝히고 잠을 안자면서 쓰고 있구나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요. 답답하고 글이 안 풀어질 때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친구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어요." -드라마 작가로 살아오시는 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을 텐데요. 특히 가정일과 병행하기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정직하게 이야기 하자면 드라마 좀 쓴답시고 가족과 주위사람들이 희생해야 했습니다. 집안 일을 잘 건사하면서 내 일도 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애들은 알아서 잘 커주었고, 남편은 지방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부담을 덜어주었죠. 부모나 내 형제한테도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이 나이가 되었더군요. 아프면서 많은 회한이 듭니다."-글쓰기가 외로운 일이라고 하셨는데, 마음병도 그런 것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치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병원을 많이 다녔는데 결국은 마음이 치유되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스승이 법륜스님이신데 스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불교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었어요.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나누는 일이 도움이 되었죠. 저도 모르는 내 마음의 깊은 밑바닥에 있던 것들이 쌓여서 불면의 시간을 보낸 것인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제가 이번 작품을 쓰는 마음 상태로 오기까지는 그런 시간이 있었던 덕분이죠." -30여년 걸어오신 드라마 작가로서의 삶의 가치는 드라마의 시대적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과장된 해석인지 모르겠는데 드라마는 시대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의 인생도 바꿀 수 있지요.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한자리에 같은 시간에 천만 명을 모아놓을 수 있겠어요. 드라마만이 가능한 일이지요. 드라마가 오락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못지않게 진정성과 감동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복희누나' 를 마치고 두달 정도 쉬고 싶다는 그는 여유를 갖고 작품 준비를 할 생각이다. "어떤 여건이 되던 이런 결심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는 찬찬히 준비하며 쓰게 될 작품이 자신의 대표작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했다.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과 위안의 손을 내밀어 끝내 희망을 갖게 하는 이금림표 드라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2.05.08 23:02

3. 사계절 아름다운 관광도시 알리는 '정읍시'

정읍시가 '2012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도시 정읍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부터 수도권과 영남권에 대형조명광고 매체를 활용해 천혜의 비경 내장산 단풍과 대표축제인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제, 정읍사문화제, 옥정호구절초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또 정읍천변 벚꽃과 옥정호,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사공원등 정읍9경과 천년의 숨결이 살아있는 정읍사오솔길, 산외한우마을등 정읍의 멋과 맛, 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에 정읍종합관광정보인 정읍여행을 탑재해 이같은 정읍의 볼거리, 먹거리, 쉴거리를 쉽게 찾아볼수 있게 하는등 관광홍보 다각화를 통해 관광객 500만명을 유치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순백의 봄 '정읍천변 벚꽃길'정읍소방서에서 내장산까지 16㎞에 이르는 정읍천변 벚꽃길은 매년 4월 둘째 주를 전후해 40여년생 벚나무 1800여 그루가 일제히 순백의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시기에는 정읍예총과 지역예술단체 회원들이 주관하는 정읍예술제와 벚꽃길 문화공연이 개최되며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올해는 내장산 벚꽃가요제를 비롯해 설장고 명인 이영상 추모 예술제, 흥겨운 국악과 농악공연이 펼쳐졌다. 또 전북권 연주인과 가수 들이 대거 출연하는 열린음악회가 열려 흥겨움을 선사했고 특히 옹동 출신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8회인 줄타기 예능보유자 김대균의 아주 특별한 여행 '판줄' 공연이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노란 봄 '만석보 배들평야 유채꽃'정읍시 이평면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큰 방점을 찍고 대변혁을 가져온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 만석보터,전봉준장군 고택등이 있다. 또 작은 민속촌인 송참봉 조선동네에서는 옛날 조선시대 초가지붕 온돌방 숙박체험과 향토음식을 맛볼수 있다. 이평면 동진강 만석보 배들평야에는 매년 5월이면 20만평의 유채꽃 노란물결이 장관을 이루며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등이 다채롭게 마련되는 유채꽃축제가 개최된다.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열리는 축제에서는 배들농악공연과 시립국악단공연, 벨리댄스등 공연과 함께 시민노래자랑, 유채꽃길 슬로우(Slow)걷기대회, 초등생 사생대회,사진촬영대회, 연날리기, 토종닭, 토끼몰이, 풍선아트등이 마련됐다. 여기에 지역 특산품인 단풍미인쌀과 유기농쌀, 울금, 도라지,청국장,무항생제 돼지고기등 먹거리장터가 마련되어 특산품 홍보및 농가소득에도 연계되고 있다.■ 천년사랑 간직'정읍사 오솔길'지난해12월 개통된 정읍사 오솔길은 정읍시가 백제가요 정읍사를 테마로 조성하여 시민과 외지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행정안전부가 공모한 친환경 생활공간조성(녹색길)사업에 선정되어 총 15억원을 투입, 정읍천 ~ 정읍사공원을 일주하는 코스로 세구간에 걸쳐 17.1km가 조성됐다. 1300여년전 행상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정읍사여인을 주테마로 스토리와 천년사랑 프로그램을 주제로 조성한 원점회귀형 오솔길이다. 1코스는 정읍사공원~월령마을(6.4km)구간으로 길이 완만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소나무숲길과 ,시누대 숲길로 조성했다. 2코스는 내장호 주변(3.5km)을 중심으로 한 내장호수길로 내장호 수변테크와 황토길로 이어지는 722m구간이 눈길을 끌고있다. 특히 저수지 수면 가까이로 조성돼 있어 맑고 투명한 내장호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데다 주위에 단풍나무, 소나무, 아카시아 숲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 가족, 연인과 함께 찾은 관광객들의 산책로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한 구간 군데군데 쉬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벤치와 포토 존을 설치하여 수변경관과 아름다운 내장산의 추억을 담아 갈수 있도록 함으로써 가을 단풍관광객들의 호평을 받고있다. 3코스는 문화광장~정읍사공원(6.2km) 구간으로 정읍천변에 조성된 자전거길(Tour Biking)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이다.■ 또다른 정읍 가을 '옥정호 구절초'정읍시 산내면 옥정호 매죽리 일원에서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는 구절초 군락을 배경으로 매년 10월 가을축제가 열린다. '솔숲 구절초와 함께하는 가을여행'을 주제로 구절초와 가을풍경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이벤트와 볼거리, 체험거리, 먹을거리가 마련된다. 축제장은 밤 9시까지 연장개장하고 매일 열리는 구절초 꽃밭음악회'는 청명한 가을하늘과 소나무, 구절초 꽃이 어우러진 야외자연무대에서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 선율을 들려준다. 또 행사장 인근에 먹거리 명소도 많아 산내 매운탕의 칼칼한 맛과 산외한우마을의 고소하고 육즙 풍부한 한우 맛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특히 각종 부인병 치료와 예방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구절초를 활용한 족욕체험은 그윽한 구절초 향을 느끼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코너로 꼽힌다. 구절초 테마공원에서 꼭 빼놓지 않고 들러야 할 곳이 능교(綾橋)다. 약 50년 된 다리에서 깊고 푸른 옥정호를 바라보면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는데, 이 다리는 영화'남부군'과 드라마 '전우'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지난해부터 입장료(2000원)를 받으며, 입장권은 농특산물 교환권으로 사용할 수 있고 야간 입장(오후 6시 이후)은 무료이다. ■ 내장산 단풍과 함께 '가을 축제'가을 국립공원 내장산 단풍을 배경으로 정읍시민의날과 정읍사문화제, 전국민속소싸움대회, 평생학습축제등 4대 가을축제가 열린다. 내장산 문화광장을 중심으로 열리는 행사는 거리행진과 정읍사국악단공연, 불꽃놀이가 진행되며 민속경기대회, 전국노래자랑, 정읍사가요제, 정읍대표음식경연대회등이 다채롭게 펼쳐치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내장산문화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전국민속소싸움대회에는 전국의 싸움소 100여두가 체중에 따라 갑종,을종,병종 3체급으로 출전해 자웅을 겨루며 최고의 인기를 얻고있다. 또한 내장산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108본의 단풍터널은 가을 내장산의 백미로 꼽히며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정읍시는 내장단풍 명품화사업에 나서며 350년이 넘는 벽련암 단풍나무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하고 내장단풍의 모수를 지정해서 개체 양묘및 보급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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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장훈
  • 2012.05.08 23:02

낙상예방법

농사일에 손주까지 거뜬히 키워내시던 제 외할머니께서는 몇 년 전부터 얼굴, 몸 여기저기 상처 나는 일이 잦아지십니다. 다행히 넘어져서 골절이 되신 적은 없지만 현관의 문턱도 미끄러운 바닥도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닙니다. 낙상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넘어지는 것을 말하며, 노인 및 뇌병변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2~4배 정도 낙상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낙상이 위험한 이유는 낙상으로 인해 고관절 골절, 연부조직손상(혈종, 탈구, 뇌출혈), 독립적 생활이 제한되고, 또 넘어질까 두려워 활동이 위축되는 등 후유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따라서 낙상예방을 위한 관리는 중요합니다.낙상은 연령이 증가하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되면 시력의 변화, 눈 부상에 대한 자각도 감소, 하지근력 약화, 관절의 유연성 감소, 보행의 변화(속도저하, 보폭저하, 발 끌림 증가), 반응시간 증가, 기립성 저혈압 등으로 낙상 위험이 증가됩니다. 또한 기동성이 저하되었거나 일상생활수행동작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균형능력 저하가 있는 경우에 낙상의 위험이 증가 할 수 있습니다.실생활에서는 바닥이 미끄럽거나 여러 가지 물건들로 어지럽혀져 있으면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안전 손잡이가 없으면 낙상의 위험성이 큽니다. 집안의 조명이 너무 어두워 물건들이 잘 보이지 않으면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질 수 있고, 안정감이 없는 탁자를 짚고 일어설 때에도 자칫 탁자와 함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높은 선반 위의 물건을 내리려다 균형을 잃거나 침대나 소파의 손잡이가 없을 때, 욕실바닥에 물기가 있으면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또 슬리퍼 또는 헐거운 신발은 벗겨지기 쉬워 신발에 걸리거나 문턱이 높으면 넘을 때 발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낙상으로 인한 사고 시 회복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걸리고 완전히 회복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낙상을 예방하기 위해 신체적 요인의 예방활동과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낙상 위험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골다공증 검사를 받아야 하며, 필요시 치료하여야 합니다.어지럼증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하여 침상에서 일어날 때는 바로 일어나지 말고 몇 분간 앉아서 체조를 한 후 천천히 일어나야 합니다. 편측무시나 시야장애가 있는 쪽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물건을 치우고 잘 보이는 측 벽면에 안전손잡이를 설치합니다. 일어나거나 보행 시에는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천천히 보조손잡이를 잡고 일어나고, 바닥과 주변을 살피면서 보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문지방이나 현관문의 턱을 없애거나 경사로를 설치하여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물을 사용하는 싱크대 주변과 욕실에는 미끄럼 방지재료나 바닥장식을 부착해 미끄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로 사용하는 물건은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두고, 멀리 있는 물건을 집을 때는 집게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신발은 발에 잘 맞는 것을 선택하고 발목높이의 운동화가 좋습니다. 침실, 거실, 욕실 등 실내에 쉽게 잡을 수 있는 부착용 안전손잡이를 설치하는 것도 낙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최쥴리(드림솔병원 재활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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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07 23:02

Q & A로 알아보는 치주질환

Q. 칫솔질 시 피가 나요.A. 칫솔질 시 피가 나는 것은 잇몸 염증을 스스로 진단하기에 가장 쉽고, 정확한 신호입니다.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잇몸은 부어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칫솔질과 같은 가벼운 자극에도 쉽게 출혈이 됩니다. 심해지면 자발적으로 출혈이 되는 경우가 있어, 아침 기상 시에 입안에 피가 고여 있기도 합니다. 양치 시 피가 나면 더욱 조심스러워 양치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꼼꼼히 양치해야 합니다. 구강 위생에 더욱 신경 써도 피가 나는 것이 수일 간 지속된다면 가능한 빨리 치과에 방문해 진단 받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외상으로 인한 잇몸 손상으로 피가 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평소에 구강 위생에 철저하고 잇몸출혈이 통증과 동반된다면 외상성으로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Q. 찬물에 치아가 시려요.A. 찬물에 시리는 치아 과민증을 호소하시는 환자분은 굉장히 많습니다. 치아 과민증은 그 원인이 다양해서 충치가 있거나, 과도한 잇솔질로 치아가 패였거나, 치주병이 있거나, 또는 치주치료를 받은 후에도 발생할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치아 내부의 상아질에 자극이 가해질 때 시린 증상이 나타납니다. 잇몸에 염증이 지속되면 세균성 산물의 자극이 상아질에 도달해서 치아가 시릴 수 있고, 치료 후에는 부어있던 잇몸이 내려가 치아 뿌리가 노출되면 또 이로 인해 시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치주병으로 인한 치아의 과민증은 치주치료를 통해 치아를 청결히 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완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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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2.05.07 23:02

치주질환 - 1) 치태가 치석으로 변해 잇몸에 염증 유발

감기 다음으로 많이 앓는 병인 치주병. 하지만 대부분 만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통증이 없어 방치되기가 쉽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 제 4기 1차년도 구강검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약 73.9%가 치주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7년도 건강보험통계자료에 따르면 치주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실인원은 622만명 정도로 우리나라 성인 인구를 3600만 명으로 봤을 때 성인 6명 중 한 명은 치주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대학교병원 치과병원 치주과 김형섭 교수로부터 치주질환의 원인 및 분류에 대해 알아본다.△치주질환이란치주병(풍치)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치아 주위조직(치은, 치주인대, 백악질, 치조골)에 병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잇몸과 치아 사이에는 V자 모양의 틈이 있는데, 이 틈을 세균이 공격해 치주인대와 인접조직을 손상시키게 되고, 염증이 심해지면 하방의 잇몸 뼈를 파괴시키게 되는 것이 치주질환이다. 진행된 치주염은 40대 이상 성인의 가장 주요한 발치(이를 뽑음)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치주질환의 원인치주질환은 대부분 잇솔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음식 침착물이 치아와 잇몸 근처에 쌓이고 그 곳에 세균이 응집되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음식 찌꺼기와 세균의 덩어리를 플라크(치태)라고 하는데, 이는 치아에 부드럽게 부착되어 있어 양치질로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플라크가 오랫동안 제거되지 않으면 단단하게 석회화가 되어 치아에 딱딱하게 부착하며 치석을 형성한다. 치석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칫솔질로 제거되지 않으며, 치태가 부착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치주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치주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구강상태나 건강상태라면 치주병이 생기기 쉬우므로, 치주병 예방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상태는 각별히 관리하고 개선해야 한다. - 구강 내 요인치아가 빠진 상태로 방치한 경우에는 치아가 빠진 공간으로 인접 치아들이 기울어지며 칫솔질이 어려운 환경을 만들게 된다. 치아 배열이 나쁜 경우에는 치아 사이에 치태가 침착되기 쉬우며, 잇솔질로 잘 제거되지 않는다.또 좋지 않은 보철물은 크라운이나 브리지 등의 보철물 형태가 나쁠 때, 보철물 하방으로 치태가 침착되기 쉬운 환경이 되며 입으로 숨을 쉬거나(구호흡) 입안에 침이 부족한 경우에도 침에 의한 치태의 기계적 세정이 어려워진다.교정 장치 등을 장착한 경우에는 치태와 치석이 침착되기 쉬운 환경이 된다.- 전신적 요인가족 중 심한 치주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다면 각별히 신경 써야한다.당뇨병은 염증이 생겼을 경우 치주조직의 파괴가 빠르며, 흡연은 치석이 생기기 쉽고 세균에 대한 방어가 약하다.또 항경련제, 면역억제제, 일부 고혈압 약 중 잇몸을 자라게 하는 약이 있는데, 잇몸이 과도하게 증식하게 되면 치태와 치석이 침착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치주질환의 분류치주질환은 크게, 흔히 잇몸이라 일컫는 연조직에만 국한되는 경우와(치은염), 치아를 둘러싼 뼈까지 침투한 경우(치주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치은염잇몸에만 병이 생긴 상태로 잇몸 뼈까지 병이 퍼지지 않아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고 구강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면 건강한 잇몸을 되찾을 수 있다. 임신 시에도 잇몸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호르몬과 관련해 같은 양의 치태에 대해서도 잇몸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 중 구강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음식 먹는 습관을 조절하며 적절한 시기에 치과 검진을 받는다면 건강한 치아와 잇몸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특정 약물(항경련제, 면역억제제, 고혈압제제 중 일부)과 관련해 잇몸이 증식되는 경우도 있다. 약을 대체 투여하고 구강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수 있으나, 증식된 잇몸을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치주염잇몸 뼈까지 병이 퍼진 상태로 치과치료가 필요하다. 손상되어 낮아진 잇몸 뼈는 치료 후에도 처음 상태로 회복되지 않으므로 골소실이 많이 진행되기 전에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 치주염은 크게 만성치주염과 급성(공격형)치주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치주염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대부분의 경우는 수 년 간에 걸쳐 서서히 조직의 파괴가 진행되는 만성치주염 환자들이다.치태와 연관되어 나타나며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이 되므로 젊은 사람보다는 40대 이상에서 많이 나타난다. 꾸준한 치료와 유지관리, 철저한 구강위생이 요구된다.치주염의 가장 큰 원인을 치태라고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태와 밀접한 연관 없이(치태가 없음에도) 아주 빠른 골소실을 보이는 환자들이 드물게 있다. 이런 환자들의 경우 가족 중 같은 증상을 보이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30대 전후로 비교적 젊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큰 어금니와 앞니에서 증상이 두드러지며, 약물치료를 동반하는 적극적인 치주치료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도움말= 전북대병원 치과병원 치주과 김형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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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2.05.07 23:02

17. 전통매듭 통해 이웃사랑 실천하는 박정란씨 "재능 나누면 행복"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전통매듭과 규방공예를 가르쳐 우리 전통 문화를 알리고, 전통공예품 판매 수익으로 저소득층 등 차상위계층의 집을 고쳐주는 등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박정란 대표(45·여).지난 1989년 매듭을 시작한 박 대표는 한옥마을 내에서 공방 '세요각시'를 운영하며 나눔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해 오고 있다."'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가진 것은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눠주는 것은 결코 큰 일이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올해 초 공방식구들과 함께 '선물'을 주제로 한 '세요각시 회원전'을 열었다. 평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주변인들에게 정성스레 수놓은 작품을 '선물'로 주겠다는 취지였다. 전시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이웃들을 위해 쓰기로 결정하고 한 차상위계층 가정을 선정해 집을 리모델링 해줬다고 한다.박 대표는 또 다문화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는 오는 6월에도 임실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박 대표가 나눔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한 장애인시설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던 구순구개열(언청이)이라는 질병이 있는 아이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그 아이는 언청이라는 이유로 입양이 되지 않고 있었으며 수술비는 100만원 정도로 시설에서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든 형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박 대표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수술비를 모금해 시설에 전달했고 수술을 마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양이 됐다고 한다.이와 함께 매년 5~6차례 가난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학생들을 선발해 전액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경남 산청 지리산고등학교에서 지인들과 함께 전통자수, 목공예, 북아트, 규방공예 등을 가르친다고 한다.'나눔은 어려운 게 아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사람들 모두 나눔을 실천하려는 마음은 있는데 연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누구나 재능과 배울 점 등이 있으며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나누면 그게 바로 기부"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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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 2012.05.07 23:02

전북 방문한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새만금, 국내 최대 제조업 중심지로 우뚝 설 것"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63)이 4일 전북을 방문, 도내 기업인과 간담회를 시작으로 새만금지구 시찰과 군산 OCI를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한 회장은 이번 방문목적에 대해 "새만금은 한국 최대 제조업 중심지로 발전될 지역"이라면서 "1500여만평에 달하는 새만금 일대 산업용 부지가 무역협회의 나아갈 방향과 상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어 직접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일정내내 김완주 도지사가 같이 했는데, 한 회장은 "전북의 기업인들의 열정에 놀랐다"면서 "특히 전북도의 다문화가정을 활용한 기업인재 육성사업은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싶은 욕심나는 정책"이라고 추켜세웠다. 전북방문의 바쁜 일정 속에서 본보를 방문한 한 회장으로부터 새만금과 전북경제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무역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났습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인지요.△ 우선 해외경제영토를 확장하는 일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FTA가 세계GDP의 60% 정도라면, 앞으로 90%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시장 확장의 거의 유일한 기회인 박람회와 전시회 등에 기업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 또 경제인력 확보를 위해 정부 8개 부처에서 108가지 정도의 인력지원책이 마련돼 있고 무역협회에서도 60여가지를 지원하고 있지만 지방에서는 인력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데, 각급 학교와 기업들을 연계시키는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미 FTA 체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셈인데요. 전북지역 중소기업들은 어떤 혜택을 볼 수 있을까요.△ FTA는 결국 관세장벽을 허무는 시스템이다. 성장동력을 가장 빨리 가져올 분야는 제조업이다. 자동차부품, 기계, 첨단 벤처기업 등이 많은 혜택을 볼 것이고, 식품산업 등 전북지역의 제조업은 새만금개발과 함께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서 FTA에 대한 바로알리기 강연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FTA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싼 원료를 들여와 싸게 파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전북도 대중국무역의 확장으로 전주 군산 익산, 그리고 새만금 입지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특히 문화적 강점과 교육열이 높은 지역적 특성은 무역에 있어 중요한 메리트로 작용할 것이다. - 전북지역 경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대규모 산업단지, 종합리조트, 경제자유구역 등 전북의 미래상을 보면서 '다른 지역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가졌다. 외국기업과 국내 투자기업들이 '이 지역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우수인력 공급과 기업하기 좋은 도시 여건 조성, 고용 창출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등 긍정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자치단체와 기업, 근로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알고 협력하는 것이 전북을 키우고 도민들의 삶을 여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이번에 새만금 지역을 방문한 이유는.△ 새만금처럼 대한민국에 이만한 넓은 지역으로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곳은 없다. 세계적으로 종합적 투자관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새만금 프로젝트와 특별법,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총리시절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다. 새만금은 한국 최대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다. 또 한국 FTA의 중심지로 커질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새만금은 무역협회 차원에서도 주시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 도지사님과 많은 부분에 공감한 부분도 있고, 대외문제를 협조해 나가면서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다. 이런 문제를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해 직접 보고 필요한 리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기회를 마련했다.- 도내 기업인들과 간담회가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는데요.△ 30여명의 기업인을 만나 짧지 않은 시간 많은 얘기를 나눴다. 기업인들의 열정에 놀랐다. 전북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발굴사업도 주의깊게 봤다. 기업인의 의욕과 전북도의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볼 때 전북발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판단이다. - 지금과 같은 현장방문 행보를 앞으로도 계속하실 계획인지요.△ 하루하루 일정이 빠듯하다보니 주위로부터 '일에 빠져 산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요즘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패러디이다. 현장을 봐야 그림이 그려진다. 현장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해 해결책을 찾아가고 싶을 뿐이다.-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방문을 통해 '조용한 전북경제'가 큰 시장을 바라보는 경제로 발돋움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글로벌 경제시대에 새만금이라는 제대로 된 옷을 깁고 있는만큼 도민들의 노력에 부응하도록 힘이 닿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 기획
  • 정대섭
  • 2012.05.07 23:02

한덕수 회장은

전주출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RNR 하버드대 대학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덕수 회장은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제8회 행정고시출신으로 기획원, 상공부, 대통령비서실을 두루거쳐 재정경제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주 OECD대사, 주미대사로도 활약한 한 회장은 'FTA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자타가 공인하는 '통상 전문가'이다.지난 95년부터 2년간 상공부 통상무역실장을 맡으면서 미국과의 자동차협상을 비롯한 각종 양자 및 다자협상을 순조롭게 이끌었으며, 98년부터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한국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 체결을 위한 초석을 놓기도 했다.2005년부터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으로 재직하며 한미FTA 처리에 주목받았고, 이어 한미FTA체결위원장으로 일했다. 2009년에는 주미대사로 일하는 등 FTA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최근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선임돼 FTA를 활용한 중소기업 수출 지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다.한 회장의 이미지는 '성실성'하나로 대표된다. 관료시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저녁식사후에도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부하직원으로부터 '일이 취미인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업무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자기관리에도 철저해 최근에도 CEO 조찬회부터 지방방문까지 하루 3-4개의 일정을 너끈히 소화하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한 회장은 또한 소문난 학구파이다. 옛 상공부 과장으로 근무시절 1년여동안 휴직하며 미 하버드대 대학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실은 유명하다.한 회장의 화려한 경력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소탈하고 인간적인 성품에 한번 더 놀란다. 협회장 취임후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없애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서울 팝오케스트라 연주회에 특별 출연해 기타실력을 뽐낸 바 있다.

  • 기획
  • 정대섭
  • 2012.05.07 23:02

97. IMI - 1) 프롤로그 : 회사 개요

전북은 그동안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IT와 첨단 글로벌 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지난 10년간 전북을 대표하는 IT기업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허브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002년 전주시의 조그마한 원룸에서 시작해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IMI(대표 이정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간 거래 규모 6000억원, 가입회원 800만명, 6년 연속 아이템중개 업계 1위, 자체 DDOS 공격 방어기술 특허 등 다양한 수식어가 지난 10년 간 IMI가 받아 든 성적표다.전주고속버스터미널 주변 건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사옥은 IMI를 대표하는 자랑거리다. 사옥 마당에는 커다란 연못과 벤치, 대형 파라솔 등이 설치돼 있어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로 하여금 휴식처를 제공하고 건물 입구에는 '무료급식소 나눔아이'라는 팻말이 IMI의 지역 내 나눔활동을 대변한다. 1990년대 후반,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 열풍이 불면서 온라인게임 커뮤니티를 통한 유저간 게임아이템 판매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아이템거래와 관련된 각종 사기와 폭력 등 부작용들이 수 많은 사건들로 번지며 게임시장은 일명 '황금알을 낳는 미운 오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게임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은 영화와 연예 등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제치고 한 해 약 10조 규모의 대표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당시 게임관련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던 이정훈 대표는 온라인 상에서 누구나 안전하게 게임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운영해보자는 생각으로 2002년 전주시 작은 원룸에서 IMI의 전신인 '아이템매니아'를 창업했다. IMI는 사업 초기부터 안전한 거래환경 조성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인증 등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당시 온라인 상에서 개인간 게임 아이템 거래로 생긴 부작용 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훗날 게임시장의 성장과 안정적인 정착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IMI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고객들의 안전하고 편리한 거래환경을 위해 지난 2006년 10억원 상당의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으며 불법 아이템 거래를 막기 위해 사고대응센터를 설립해 전주 사이버경찰수사대와 협조체제를 구축한 결과, 그 해 10월 전주 덕진경찰서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IMI는 2009년 디도스 대란 이후 급증한 디도스 공격에 대비해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2010년에는 업계 최초로 디도스 공격 방어 기술 특허를 획득했으며, 지난해 추가로 두 번째 디도스 공격 방어 기술 특허를 획득해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총 두 건의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고객을 위한 안전한 거래 사이트 구축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7년에는 한국인터넷정보학회가 제정한 '2007 인터넷기술상'을, 2010년에는 전북 대표로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IMI 는 2002년 후발주자로 아이템중개 사업시장에 뛰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서비스한 결과, 6년 연속 국내 아이템중개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2002년 16만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2012년 800만명을 달성하는 등 국내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결실로 다가와 2011년 거래금액이 약 5300억원, 매출액은 약 35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 10년간 16배나 회사의 규모가 성장했다. 창립 당시 '아이템매니아'로 시작한 IMI는 지난 2009년 본격적으로 게임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면서 사명을 지금의 IMI로 변경했다. 공모전을 통해 변경한 회사명은 '인터넷 매니아 인터렉티브'(Internet Mania Interactive)의 약자로 종합 엔터테인먼트 포털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기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2009년 게임산업에 본격 진출한 IMI는 기존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을 리뉴얼해 서비스하는 리퍼블리싱 사업을 추가했으며, 특히 리퍼블리싱한 '레드워매니아', '샴페인매니아'가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게임 퍼블리싱 사업을 확장했다. 또한 2010년에는 다중역할수행게임(MMORPG) '황제온라인'을 국내에 서비스하며 게임 퍼블리셔로서 초석을 다지는가 하면 지난해 하반기에는 글로벌 게임회사 킹소프트의 인기 무협 MMORPG '명품온라인'(원제 검협정연3)을 선보이며 게임사업 또한 두각을 나타냈다. 한편, IMI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07년 중국 상해 및 홍콩을 기반으로 하는 IMI 차이나 법인을 설립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북미 아이템중개 사이트 'PlayAction'을 오픈해 서비스하고 있고 현재 아시아 국가 법인 설립을 통해 글로벌 종합 엔터테인먼트 포털로 성장을 추진 중에 있다.(주)IMI 주요 연혁△ 2002. 7. 아이템매니아 설립△ 2006. 6. 아이템매니아 기술연구소 개소△ 2006. 12. 벤쳐기업 등록△ 2007. 10. 서울사무소 개소△ 2007. 12. 중국 상해 및 홍콩 법인 설립△ 2008. 5. 북미시장 아이템거래 사이트PlayerAuction 오픈△ 2008. 12. 아이템매니아 회원 500만명 돌파△ 2009. 4. (주)IMI로 법인명 변경△ 2009. 7. 게임 포털 서비스 시작 △ 2010. 3. 이정훈 대표이사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 2010. 6. 디도스 공격 방어 특허 획득△ 2010. 8. '황제온라인' 정식 서비스 △ 2010. 10. 지식경제부 후원 한국고객센터 베스트 센터장상 수상△ 2011. 9. '명품온라인' 정식 서비스 △ 2011. 12. 무료 급식소 '나눔아이' 오픈 △ 2011. 12. 아이템매니아 회원 800만명 돌파

  • 기획
  • 강현규
  • 2012.05.03 23:02

NGO, 이렇게 뛰겠습니다- 제4기 기자단 좌담회 "현장의 목소리 생동감 있게 전달하겠다"

전북일보는 수년에 걸쳐 NGO 전문 지면을 배치해 오늘 제4기 NGO 시민기자단이 출범했다. 도내 시민단체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주장과 문제제기를 심도 있고 비중 있게 다뤄 왔었다. 하지만 단순히 이슈를 소개하거나 행사 내용을 알리는데 그친다는 점과 현장성 있는 기사를 발굴하고 심층 분석하는데 기자들의 여건상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이러한 평가들은 지난 2007년 1기 NGO기자단 출범의 모태가 되었고, 3기까지 운영되면서 전북일보 지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또한 문화, 여성 기자단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쟁점을 가감 없이 소개하면서 지역 내 언로를 다양하게 열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내 시민단체 베테랑 활동가인 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박우성(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참여사회국 간사), 한승우(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유영미(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씨가 참여하는 제4기 NGO기자단은 1일 전북환경연합에서 첫모임을 갖고 건강한 시민의 눈으로 지역사회 의제 설정과 대안을 만들어가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NGO 시민기자단은 매주 수요일 NGO면을 통해 지역 시민사회의 주요한 쟁점과 입장을 현장성과 전문성을 갖춘 심층 분석 기사로 독자를 만날 계획이다. 도내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의제의 배경과 의미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며, 시민 참여를 유도하라는 취지다. 또한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기자들이 지나칠 수 있는 이슈를 공론화 하고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의 고민을 담아낼 예정이다. 4기 NGO기자단 좌담회에서 나온 각자의 포부와 향후 취재 계획 등을 들어봤다.△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신문 지면을 매일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같은 일상으로 비춰지지만 지면은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NGO 시민기자단에게 이 같은 소중한 지면을 내주겠다고 하는 것은 언론 권력을 시민과 나누려는 취지로 해석된다.이전에 NGO 단체들과 공동기획을 통해 탐사보도를 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그걸 뛰어 넘어 NGO에게 지면을 맡긴다는 것은 서로간의 기본적 신뢰에서 출발한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찾기 드문 사례로 독자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역 생활과 밀착된 이슈나 아이템을 찾는 것도 좋지만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많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특정 성향의 언론이 여론과 의제를 주도한다면 언로를 독점하고 여론을 왜곡해 건강한 지역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NGO가 지역사회를 감시하고 사회변화를 위한 대안마련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적인 도구로서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활동경험과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연고에 의한 편향을 극복하며 지역 구성원의 건강한 연대를 통한 지역사회 변화의 작은 징검다리가 되겠다.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현장을 뛰는 취재를 통해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겠다.△박우성 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참여사회국 간사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해본 경험이 있지만 정식으로 출범된 NGO 시민기자단 참여는 이번이 처음으로 부담도 느껴지고 떨리기도 한다.언론 매체가 난립하다보니 여론이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설정한 의제를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과 열정이 생긴다.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의제와 지역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올바르게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NGO 기자단 활동을 통해 지역미디어 환경의 변화, 지역 언론 보도 모니터링, 건강한 지역신문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파악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공동체미디어가 지역 언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에 대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미디어와 그들이 풀어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룰 계획이다. 그리고 시민이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지역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사례들을 담아내고자 한다.△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NGO 활동을 통해 전주천 수달 존재를 확인하고 새만금 상괭이 떼죽음 등을 겪으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시민들에게 환경의 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어도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 NGO 기자단 활동을 통해 진면목을 드러내 볼 생각이다.사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무차별적인 건설로 끊어진 혈맥이나 파괴된 자연을 수도 없이 봐왔다. 역사를 대변하고 과거가 살아있는 미래를 후손에게 전해줄 수 있도록 전북일보 지면을 통해 많은 환경 분야 기사를 다뤄보겠다.일반 기자의 시각에서는 묻히기 쉬운 지역의 생태환경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이에 대한 배경과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보겠다.특히 고정된 지면 기사를 넘어 전북일보 기자들과 함께 전북의 생태환경의 가치를 재조명해 전북의 생태보고서를 만들어 보고 싶다.△유영미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경제 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NGO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가정폭력에 대한 대처, 여성 성폭력을 줄여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전북일보 지면을 최대한 활용하겠다.처음 접해보는 NGO 기자단 활동으로 글을 쓴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겠다.지역 안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여성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어렵게 꺼낸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떨리는 눈빛을 읽어내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통상 사건 사고 기사에서도 여성에 대한 남성주의적인 시선이 자주 눈에 띈다. 전북일보의 NGO 기자단 활동을 통해 지역에 함께 사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풀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여성과 소수자의 편에 서서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대항하고 인권과 평화를 지켜내는 지역단체들의 활동에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지면을 통해 여성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없애고 멋지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경험과 지혜를 풀어내 보겠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정엽
  • 2012.05.02 23:02

안숙선 국창은…

국창 안숙선은 두 가지 면에서 정평이 나 있다. 하나는 엄청난 공부양이요, 또 하나는 깨끗하다는 점이다. 타고난 재주에다 연습벌레여서 판소리 5바탕 완창은 물론 가야금 등 다방면에 재주가 많다. 또 청렴해서 자신은 물론 제자들의 상(賞) 청탁을 일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1949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웃점마을에서 태어난 안숙선은 예인(藝人) 가문의 피를 이어 받았다. 대금산조 인간문화재 강백천이 어머니의 사촌, 판소리 인간문화재 강도근이 외삼촌, 태평무 인간문화재 강선영이 그녀의 이모다. 이로 인해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남원초등학교 3학년 때 이모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주광덕과 강도근으로 부터 판소리 여러 대목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배우는 것마다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15세에 소녀명창으로 남원 근동에서 이름을 날렸다.19세에 김소희에게 발탁돼 상경, 본격적인 판소리 수업에 들어갔다.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웠으며 김소희는 그녀를 '녹음기'라 부를 정도였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천부적인 성음과 연기력으로 각종 창극에서 프리마돈나를 도맡았다. 또 박봉술에게 적벽가를,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정권진과 성우향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이어 박귀희의 눈에 들어 가야금을 배웠고, 그녀가 타계하자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가야금 산조및 병창 예능보유지로 인간문화재가 되었다.1999년 이후 해마다 판소리 5바탕 완창무대를 가졌고, 국내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를 다니며 한국 전통소리의 위상을 높였다. 1997년 이후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용인대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5년 동안 전주소리축제 제전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올해 남원춘향제 제전위원장을 맡았다. 그동안 춘향제 전국명창경연대회 대통령상, KBS 국악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국제문화인상(국제문화친선협회), 한국방송대상, 프랑스 문화부 예술문화훈장, 옥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논개상 등을 수상했다. 가족으로는 남편 최상호(68)씨와 2남1녀가 있으며 딸 영훈씨(37)가 국립창극단에서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 기획
  • 조상진
  • 2012.05.01 23:02

안숙선 국창(國唱) "자신이 하는 일은 그게 뭐든 목숨 걸고 사랑하라"

2주 전 쯤, 안숙선 명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 가냘펐다. 아니, 판소리 대가라는 분의 목소리가 왜 이렇지, 내가 잘못 걸었나? 귀를 의심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통화를 더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곧 그 의문은 풀렸다. 안 명창은 공연 전에는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사랑하는 손자와의 대화도 자제한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안 명창은 철저한 프로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25일, 안 명창은 전주 리베라 호텔에서 열린 411 총선 당선자들을 위한 교례회에서 수궁가 중 용왕이 토끼 간을 빼먹으려는 대목을 불렀다. 전화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카리스마 넘치는 수리성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공연이 끝나고 바로 뒤쪽에 자리한 전주소리문화관으로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지난 토요일(21일) 남원에서 '지리산 둘레길 소리여행' 행사를 이끄셨는데 비가 와서 힘들지 않았습니까?"비오고 바람이 많이 불고 그랬어요. 오신 분들하고 길 걸어가면서 서편제 한 장면처럼 노래하고 춤도 추려고 했는데 못하고, 기념식장에서 그냥 민요만 들려 드렸어요."- 이번 제82회 춘향제(4월 27일-5월 1일) 제전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1986년 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그래요. 처음에는 제전위원장 보다는 홍보대사나 고문을 맡겨주시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마음 한 구석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춘향제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는데 올 춘향제를 계기로 그에 대한 빚을 갚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프랑스 아비뇽, 영국 에딘버러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축제를 많이 가봤는데 남원에는 춘향가와 흥보가의 무대가 있고, 그런 것을 생각하면 문화적으로 이렇게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K-Pop 이상으로 열풍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가 '얼씨구! 춘향사랑'입니다. 종전 춘향제와 좀 다른, 차별화된 점은 무엇입니까?"축제를 운영하는 분들에게 그런 말씀을 드렸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축제가 아니고 남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성 있는 축제가 된다면 정말 많이 올 것 같다고요. 남원하면 춘향이니까 모든 걸 춘향과 함께 접목을 시켜보는 방법, 예를 들면 미꾸라지 잡는 행사도 있더라고요. 그냥 미꾸라지만 잡는 것 보다는 다 모여서 미꾸라지 잡아서 춘향아씨 드리자, 춘향도 칼을 쓰고 있다 쑥대머리 한번 부르고 이리 와서 먹어라 하고, 이렇게 먹는 것도 춘향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떨까.(웃음)"- 발상이 상당히 신선한데요?"꼭 미꾸리지 뿐 아니라 섶다리도 춘향이와 같이 걸어가고, 이도령도 뽑아서 같이 걷고, 남원은 모든 게 춘향, 그리고 춘향과 음악을 통해서 그렇게 만들어 보일 수는 없을까, 그렬려면 축제와 국제적 감각이 있는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존심을 걸고 축제를 만들어 보자, 그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 2004년부터 5년 동안 전주 세계소리축제 제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정체성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주장하신대로'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국제음악축제'로 자리잡은 것같습니다."여러분이 도와 주셨는데, 판소리를 (축제의) 중심에 두겠다는 저의 의지는 분명했으니까요. 도민들 모두가 소리축제는 판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들 그렇게 해 주셔서, 제가 조직위원장 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소리축제가 10년 걸리든 20년 걸리든 어느 궤도에 올려놨나 평가를 받을 것이다. 혹여라도 예산 낭비 없이, 일당 백이 돼 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축제를 사랑해 달라, 소리축제에 상처를 내지 말라, 우리 것을 아껴서 자꾸만 뻗어 나가도록 해야지, 이거 상처를 두들기면 아름다운 꿈과 이상을 어떻게 보여주겠느냐, 때리지 마라. 때리면 나는 그 날로 가버리겠다. 근데 안 두들겨 주셨거든요.(웃음)"- 그 전에는 꽤나 말이 많았거든요?"조그만 여자가 있다가 울고 가버릴까 봐 (웃음) 그랬겠죠."- 예전으로 돌아가 얘기를 해보죠. 선생님은 스승 복이 많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먼저 만정(晩汀)김소희 명창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습니까?"1968년 겨울 남원에 있다 선생님으로부터 '서울 한 번 올라 오너라'는 부름을 받고 동생 옥선과 함께 상경했는데 해외공연이 무산됐어요. 그 뒤 1970년에 만정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 '춘향가''흥보가'를 배웠어요."- 굉장히 아껴주셨다면서요?"선생님이 저를 가르쳤던 나이가 되고 보니까, 왜 그렇게 각별히 교육을 시키셨고, 보살핌과 정을 주셨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제자를 가르쳐 보면 선생님이 가르쳐 준 음악, 구조나 뜻이나 성음을 잘 받아들이면 속으로 아끼게 되는 거죠. 그러나 엄하게 키워야 되죠. 제가 어릴 적에 음악을 잘 받아들이고, 선생님께 큰 애를 먹이지 않고, 또 시킨대로 잘 하고 그런 때문인지 선생님이 하셨던 일, 그 맥을 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선생님 연배가 돼서 애들 가르치면서 알게 됐어요. 지나간 뒤에야 그런 게 후회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선생님이 그렇게 아껴주시고 챙겨주실 때 저도 선생님을 잘 모시고 즐겁게 해 드렸어야 했는데요. 그렇게 제가 못했거든요. 공연을 핑계로, 또 연습 핑계로 '몸이 아파서 네 약을 지어 놨으니 와서 가져 가거라' 하는데도 며칠을 안 가고, 선생님이 들통에다가 장어같은 것 고와서 가져 오시고, 또 제가 아프다고 하면 제 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제 수제자인데 잘 좀 봐주세요' 이런 것들이 보통으로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눈물) 저는 제자들에게 선생님이 하는 일의 만분의 일도 못하고 있거든요."(안 명창에게 예술 이전에 인간적으로 인품을 갖춰라, 항상 절제된 소리를 내라, 때까치마냥 입만 딸싹딸싹 부르지 말고 기를 모아 소리를 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자나 깨나 판소리를 걱정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제자 양성에 썼다.)- 또 가야금 병창의 향사(香史) 박귀희 명창과는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워커힐 호텔 공연단에서, 그 때는 국제관광공사 때였는데 10년 넘게 매일 두 번씩 공연을 하다보니 기관지가 상해서 소리공부를 일시 중단하게 됐어요. 만정선생님이 그래도 공부를 멈출 수 없으니 박귀희 선생님에게 가야금을 배우라고 권했어요."- 두 분 성격이 아주 대조적이었다면서요? "만정 선생님은 평상시에도 말씀을 크게 안하세요. 어디 가시는 것도 티가 나지 않게 조용 조용 다니시는데, 향사선생님은 좀 남자 같으세요. 향사선생님은 평소 인간관계를 돈독히 해 두셨다가 급한 일이 있어 가면 그 자리에서 금방 해결하는 거예요. 어디든 도움을 받았던 곳에는 꼭 명절 때면 넥타이든 뭐든 사서 보내시고.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그래서 향사선생님이 국악계를 이끄셨고 운당여관을 두 번에 쪼개서 국립전통예술학교에 헌납하셨어요. 선생님은 평소에 어떠시냐면 제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가서 이것 하나 입어라 하시는데 (정작) 선생님은 세일한 것을 사 입으세요. 이 옷 어디서 사셨어요 물어보면 남시싸롱(남대문시장) 하시는거예요. 그렇게 검소하게 생활하셨죠."- 박귀희 명창의 권유로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신 건가요?"1979년도에 제가 당시 국립창극단 단장이신 선생님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고 입단했는데요. 그 때는 단원들 처우가 현실화 됐을 때에요. 여기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어요. 무대에 선다는 것이 제가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워낙 잘하는 동료들이 많고, 큰 선생님들이 보고 계시는데 허투루 했다간 선생님들께 누(累)가 되고, 무대에 설려면 실력이 부족하면 안되니까 연습을 안할 수가 없어요." - 타고 나신데다가 연습벌레였다면서요?"그 때는 개인 연습실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연습할 곳이 어디 없나 찾아다니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를 하죠. 누가 그래요, 보일러실 밑에 가면 따뜻하기도 하고 (보는 사람도 없고) 거기서 숨어서 그렇게 했거든요. 그리고 다 퇴근하고 나면 연습실에서 하는데 수위아저씨들이 다 갔는가 하고 문 잠그려고 올 때까지 공부하고 했으니까요. 밤에 제가 소등을 하고 소리를 하는데 누가 문을 탁 열고 보니 머리가 헝클어지고, 그래서 놀랬다는 말들도, 좀 과장이 됐겠지만 그 때는 소리에 미치다시피 했지요."- 국립창극단에서 어떤 분들로부터 배우셨습니까?"그 때 제가 국립창극단에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어요. 돌아가신 허규 극장장님이 단원들의 기량을 높여야겠다, 그래서 각 바디별로 인간문화재 선생님들을 다 모셨죠. 정광수 선생님한테 수궁가를, 박봉술 선생님한테 적벽가를, 정권진 선생님한테 배우다 돌아가셔서 성우향 선생님한테 심청가를 배웠어요. 그 분들께 단체로 배웠는데 소리라는 게 공동으로 배워가지고는 안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하고 호흡까지 느끼면서 배워야 하는거든요. 그래서 단체로 배우고 나서 바로 선생님을 모시고 혼자 배우기 시작했죠.- 판소리 다섯바탕을 모두 떼셨군요. 어릴 적 남원에서는 친척인 강도근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우셨죠?"그래요. 강도근 선생님한테 소리 기초를 배웠죠. 서울에서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86년도에 적벽가 완창을 했는데, 그게 뻗세고 남자소리인데 여자로서 저만큼 할 수 있는 것은 (여자들은 적벽가를 별로 안할 때죠.) 제가 어렸을 때 강도근 선생님께 기초를 배웠기 때문이라고요. 흥보가 배우고 수궁가 배우고 중요한 대목 대목, 그러니까 한 2/3는 거의 배웠거든요."- 서양 오페라와 달리 우리 창극의 발전 방안은 뭘까요?"지금 우리가 다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궁중무용, 민속무용, 연희, 춤, 줄타기 이런 많은 유산을 어떻게 모아서 보여주느냐. 그러면 우리 창극이 세계적인 오페라 못지 않은 음악이 될거라 생각해요. 중국의 장이모 감독, 그런 분들은 수백억 원 들여서(상해 엑스포) 하지 않습니까."- 판소리의 미래를 어떻게 보세요?"자주 소리판을 열어야죠. 소리판에 자주 오는 귀명창들이 없고서는 이게 가능하겠는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렸을 적부터 소리도 들어보고 우리 춤도 추어보고 해야죠. 그런데 요즘은 과연 그런 어린이들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관계되는 분을 만나면 제발 유치원부터 장고나 꽹과리 등 장단을 맞출 수 있는 리듬악기 하나, 그리고 단소나 소리를 배운다든지."- 산공부는 어디서 하십니까?"옛날에는 구례 문수사, 연지암 그런데서 했고요. 요즘은 여기까지 내려 올 시간이 없어서 청평이나 양평, 강원도쪽 그런데 가서, 보름 정도 있다가 오기도 하고. 거기서는 꼼짝 못하고 앉아서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몰입이 되는 거죠."- 목소리 관리 비결은?"느닺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욕심을 버려야 해요. 열기가 위로 뻗치면 목소리가 안나오잖아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을 버린다거나, 자꾸만 뭐든지 내려놓고 마음을 평정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 목소리 관리에 좋은 것 같아요."- 득음할 때 목이 붓고 그러면 똥물을 먹는다고 그러덴데요?"인분(人糞)요. 요즘 독감이 들어 한 일주일 입원했거든요. 항생제를 써서 그런지 맥을 못추겠더라고요. 옛날 방법이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아주 삭혀서, 어느 한 곳의 열을 없애주고 해서 먹을 때만 그렇지"- 드셔보셨는가요?"안 먹었어요.(웃음)"- 딸(최영훈, 거문고산조)에게 "엄마 노릇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제가 막 공부를 하고 그럴 때는 아이들 다 팽개쳐버렸어요. 시어머니께 다 맡기고, 아침에 나왔다 저녁에 들어가고, 그저 공연하는데만 중심을 두었죠. 그렇게 했는데 저희 딸은 자다가도 (아이 때문에) 응급실에 가더라고요. 딸한테 너 공부를 제대로 하려거든 잊어라, 엄마노릇 하지 말라, 그랬는데, 엄마 노릇 해야죠.(웃음)"- 평소 건강 관리는?"제가 해보니까 좋은 공기, 좋은 기(氣)를 받아야 해요. 산에 자주 가서 산의 기도 받고, 최대한 많이 걷고, 음식도 너무 기름진 것 먹지 않고, 그래서 몸을 자연의 순리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국악 후배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시겠습니까?"제가 정말 소리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소리를 하고 한바탕 잘 됐을 때는 누가 뭘 줘도 이것만 못해요. 내가 내 일을 사랑하고 자꾸 아끼고 잘 할려고 하고 해야죠. 괜히 어거지로 하면 시간만 낭비잖아요. 사랑해라, 충분히 사랑해라, 지금은 어렵지만, 옛날 어르신들이 그랬거든요, '소리를 잘하면 보배네' 그랬어요. 누구도 감히 가져갈 수 없잖아요. 혼자 앉아서 공부한다는 게 자기와의 싸움인데 쉽지가 않죠."- 전북의 경우 문화예술계가 정체되고 파벌도 심한 것 같은데요?"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죠. 우리는 소리라는 끈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떨 때 서로 감정이 안좋다가도 A라는 사람이 소리를 잘 하잖아요. 그러면 '그래 그래, 너 다 먹어라' 이런 때가 있어요. 우리가 가는 길을 서로 이해하고 그러면 풀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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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12.05.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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