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5-15 19:15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사설] 지방선거, 끝나지 않았다. 본선이 진짜다

6·3 지방선거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종래 전북지역은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파시(波市)처럼 사실상 지방선거가 막을 내리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도지사 선거가 박빙을 보이고 있고 교육감 선거도 혼전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지방의원 선거는 여전히 관심 없는 깜깜이다. 우선 지방선거의 큰 흐름을 주도해온 도지사 선거부터 보자. 민주당 전북도지사 경선은 김관영 지사와 이원택 의원, 안호영 의원 등 3명이 나섰다. 이런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김 지사가 술자리에서 택시비를 현금으로 건넨 사건이 터지자 중앙당은 빛의 속도로 제명해 버렸다. 또 이원택 의원은 김 지사의 불법계엄 연루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했으나 종합특검은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김 지사의 탈락으로 이 의원과 맞붙은 안호영 의원은 이 의원의 식사비 대납과 관련해 중앙당의 무혐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단식에 들어가는 등 승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민주당에서 제명된 김 지사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본선에서 직접 도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상당수 도민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8월 전당대회 연임과 연계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도민들 사이에서 “전북이 꼭두각시에 불과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도지사 선거가 흔들리자 민주당 전북도당과 김 지사 측은 연일 날선 공방을 펼치고 있다. 예전 같지 않은 풍경이다. 최종적으로 이남호 전 전북대 총장과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가 맞선 교육감 선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천 후보가 압도적으로 앞서가다 이남호 후보와 황호진 후보, 천 후보와 유성동 후보가 단일화하면서 선거 판세가 출렁이고 있다. 구도는 단순해졌지만 표절 논란과 함께 천 후보와 유 후보 간 주요 보직 거래설이 폭로되면서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민주당 권리당원 참여로 치러지는 지방의원 경선은 대부분의 유권자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방선거는 4년 동안 지역의 살림을 맡길 일꾼을 뽑는 의례다. 비록 전북이 민주당의 텃밭이라지만 지방선거까지 중앙당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다. 중앙당의 노예나 지역구 국회의원의 몸종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지방의원은 민주당 공천이 무투표 당선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다른 정당과 무소속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11 18:51

[사설] 치열한 선거속 ‘민생 예산’ 확보에도 총력을

민주당 텃밭에서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는 김관영 현 도지사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전북 지역 6.3 지방선거가 전례 없는 치열한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칫 지역 사회가 두 쪽으로 쪼개져 구심점을 잃고, 내년도 국가 예산 확보 등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선거는 지역의 미래 비전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과정이지만, 지역 발전의 토대인 예산 확보 작업이 그 그늘에 가려져 소홀해서는 결코 안된다. 도로와 철도 등 기반 시설 확충은 물론 이차전지, 농생명 등 전북의 핵심 현안 중 예산과 직결되지 않은 사업은 없다. 특히 지금은 중앙부처의 예산안 편성이 마무리되고 기획재정부 심의가 시작되는 사실상의 ‘총력전’ 시기다. 이 중대한 시기를 선거 정국과 계파 갈등에 매몰되어 허비한다면, 신규 사업은 동력을 잃고 계속 사업조차 차질을 빚는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은 선거 국면으로 인해 행정의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이다. 정치권이 세 대결과 지지층 결집에만 함몰되고 공직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행정의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의 승패는 불과 한 달 뒤면 판가름 나지만, 예산 확보가 부실하다면 차기 도정은 시작부터 발목이 잡히게 된다. 선거를 통해 어떤 후보 선택되더라도, 후보를 뒷받침할 예산이 없다면 그 어떤 공약과 비전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전북도와 각 시·군은 선거와 행정을 철저히 분리하여 대응해야 한다. 정치권은 예산 확보라는 공통의 과제 앞에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하며, 공직사회는 선거 풍향에 휩쓸리지 말고 중앙부처를 설득할 논리를 보강하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단체장의 거취가 유동적인 지자체일수록 부단체장을 중심으로 책임 행정을 강화해 행정 공백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도민이 선거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꿔줄 구체적인 변화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현실로 구현해낼 유일한 기반은 안정적인 국가 예산 확보에 있다. 정치는 흔들릴 수 있으나 행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선거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예산 확보만큼은 냉철하고 치밀하게 챙기는 공직사회의 책임감과 정치권의 성숙한 협치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11 18:51

[오목대] 내로남불 단일화, 그들만의 덧셈

하나둘 후보들이 판에서 사라진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도 마찬가지다. 오롯이 교육철학과 정책으로 승부해야 하는 선거다. 그런데도 선거판은 정책 경쟁보다 단일화 셈법에 의해 흔들린다. 사실 교육감 선거는 단일화 논란의 단골 무대다. 후보를 남기고 지우는 기준은 역시 여론조사 순위다. 그렇게 남게 된 후보들의 색깔은 점점 탁한 회색빛으로 변해간다. 서로 다른 색을 내세웠던 후보들이 손을 맞잡으면서 섞이고 섞여 이제는 도무지 본래의 색채를 알 수 없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모서리를 깎고, 다른 색을 섞는 데 거리낌이 없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에서도 교육감 후보들 간의 단일화 전쟁이 벌어졌다. 매번 되풀이됐고, 이번에도 예견된 일이다. 선거공학적 계산과 개인적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혔다. 당사자들은 뻔한 명분과 대의를 내세워 이를 포장한다. 하지만 그 본질이 정책과 철학의 결합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쪽은 표의 덧셈 효과를 기대한 흡수전략이고, 다른 한쪽은 철저한 이해득실 계산 아래 짜인 출구전략이다. 그들의 속내를 모를 사람은 없다. 이번에도 그 시작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도한 이른바 ‘민주진보 단일후보 추대’ 전략이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논란 속에 무산되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반복돼온 시민단체 중심의 단일화 추진 방식 자체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다. 검증 부실과 밀실 협상, 특정 진영 중심의 폐쇄적 의사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런데도 후보들은 단일화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끝까지 쥐고 있었다. 여론의 흐름을 살피며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상대를 물색했을 것이다. 결국 후보들이 여론조사 순위 뒤집기에 한계를 체감하는 시점에서 예상대로 합종연횡이 속도를 냈다. 지난달 이남호·황호진 예비후보 간의 단일화에 이어 지난주 천호성·유성동 예비후보도 손을 맞잡으면서 선거판은 결국 이남호·천호성 양자구도로 압축됐다. 그런데 뒤끝이 개운치 않다. 그들의 부끄러운 뒷모습이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앞서 ‘전북교육의 미래를 함께 열겠다’면서 정책연대를 선언했던 황호진·유성동 예비후보가 결국은 각각 다른 후보와 손을 잡으면서 연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또 이들과 각각 손을 잡은 두 후보는 서로 상대진영의 단일화에 대해 ‘야합’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급조된 단일화를 선언하면서 도민과 지지자·교육가족을 무시, 기망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과연 단일화가 그들이 기대한 것처럼 ‘1+1’의 덧셈이 될까? 단일화 과정에서 내부 불협화음 등 적잖은 논란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감투거래 의혹까지 불거졌다. 게다가 반복되는 단일화와 정치공학적 연대는 유권자에게 피로감과 냉소를 안긴다. 그래서 지금 뺄셈의 역효과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6.05.11 18:50

[문화마주보기] LA 은대구 조림

LA 한인 지역에 가면 서울에 없는 은대구 조림을 꼭 먹어보라는 말을 따라서 은대구탕과 조림을 맛보았다. 한입 떠 넣으면서 단순한 요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 실험을 생각하게 된다. 북태평양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은대구는 한식 간장조림의 깊이를 거쳐, LA라는 다문화 도시의 감각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시원한 탕이나 조림 맛은 문화적 변용과 적응의 산물이다. LA의 은대구 조림은 이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민자의 노곤함과 향수로 졸여낸 은대구는 갈치의 대체이자 확장으로 시작되었음직 하다. 오늘날 K컬처의 지속적 확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날개를 펼쳐야 한다. 정체성의 보존과 현지화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은대구 조림처럼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형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하느냐이다. 문화는 문류(文流)다. 음악은 특정한 언어와 감정의 결을 지니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보편적 울림을 가진다. 한국적 선율과 정서는 각 지역의 리듬과 만나며 변주될 때, 비로소 세계인의 감각 속에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원형의 고수’가 아니라 ‘변형의 역량’이다. 이는 일방적 문화수출이 아닌, 문화 본연의 유기적 생존 전략이다. K-컬쳐 역시 이제 한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보다 확산을 지켜볼 때다. BTS가 보여준 글로벌 저력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레게톤과의 리듬적 혼종을, 동남아에서는 현지 정서와의 감성적 융합으로 새로운 문화적 하이브리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 음악성의 본질을 희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본질을 더 풍부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우리 음악이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수출 모델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각 지역의 리듬, 언어, 감정 구조와 접속하며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로 기능을 한다. 이는 ‘현지화’라는 단어로 환원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가 긴장과 공명을 반복하며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가는 공진화의 과정이다. 문화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본토의 뿌리를 견고히 하면서도 현지의 기후와 감수성에 창조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고사한다.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화적 공진화’다. K-컬처가 현지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면, 현지 문화 또한 K-컬처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는 일방적 전파가 아닌, 서로를 고양시키는 상호 창조의 장이다. 그러나 혼종화가 지나치면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 한편, 소극적 적응에 머문다면 시장의 한계로 이어질 수 있다. 핵심은 정교한 균형 감각이다. 한국성의 핵심 가치에 진솔한 감정, 정교한 퍼포먼스, 강렬한 스토리텔링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청중의 심미적·문화적 코드를 존중하고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K-컬처가 글로벌 문화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LA 은대구 조림이 보여준 그 고급진 맛내기의 지혜가 절실하다. 한국 음악이 세계 곳곳에서 ‘집밥처럼’ 깊이 스며드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미래는 이동과 접촉 속에서 열린다. 본토와 글로벌은 서로를 확장시키는 관계다. 은대구 조림 한 접시에 스며든 그 깊은 맛처럼, K컬처 역시 세계의 다양한 감각과 만나며 더 넓은 생태계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문화 확장의 길이며, 공진화 시대의 진정한 전략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1 18:50

[경제칼럼] 창업가에게 필요한 좋은 멘토의 조건

누구나 일생에 있어 한번 이상 창업을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창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이들이 IR 피칭, 시리즈 투자, 유니콘 같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창업의 본래 모습은 훨씬 다양하다. 창업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큰 성장을 추구하는 창업이다.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아 빠르게 규모를 키우고, 상장이나 인수합병을 통해 투자자와 창업가가 함께 자본을 회수하는 모델이다. 둘째, 안정적인 수익과 이익 창출을 추구하는 창업이다. 무리한 외부 투자 없이 꾸준한 매출과 이익을 내며 오래 운영되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개인이 자신의 전문성과 콘텐츠를 기반으로 일하는 프리랜서 또는 솔로프리너 창업이다. 문제는 창업의 길이 이렇게 다양한데도, 멘토링은 종종 한 가지 성공 공식만을 전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창업이 맞는 사람이 빠른 성장을 추구하다가 큰 손실을 보거나, 반대로 빠른 성장이 가능한 창업가가 투자 유치 기회를 얻지 못해 성장의 시점을 놓치는 일은 모두 피해야 한다. 창업가가 자신이 어떤 유형에 맞는지 명확히 아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안정성 추구 창업을 했다가 혁신형 창업으로 옮겨가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적합한 조언을 얻고, 적시에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좋은 멘토를 만난다면 창업가가 자신에게 어떤 길이 최적인지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잘못된 조언을 받는다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길을 맞는 길이라고 착각하게 될 수 있다. 멘토의 역할은 자신의 성공 경험을 모범답안처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유형으로 성공한 이가 모든 창업가에게 같은 길을 권하거나, 두 번째 유형으로 자리 잡은 이가 외부 투자 유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조언은 창업가의 길을 좁힌다. 좋은 멘토는 자신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사례로 내어놓고, 창업가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다. 이를 위해서는 멘토 한 사람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세 가지 유형을 두루 경험하거나 깊이 이해하는 멘토 풀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멘토가 창업가의 길을 자신의 이해관계와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가 멘토를 겸할 때, 자신의 투자 회수 구조에 맞는 길만을 권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지난 3년여간 액셀러레이터를 유입하고 벤처펀드를 결성하면서 첫 번째 유형의 창업을 위한 인프라를 빠르게 갖춰왔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의 창업가들에게도 적합한 조언과 자본이 닿을 수 있는 길을 함께 마련하는 일이다. 전주 원도심에서 자기 브랜드를 단단히 키워온 로컬 경영자, 농식품·문화콘텐츠 분야에서 견고한 사업을 일군 선배 창업가들이 후배의 안내자가 될 수 있도록 멘토 생태계를 두텁게 만들어가야 한다. 창업가의 길은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 여정에서 시기마다 유형이 바뀔 수도 있다. 멘토가 그 여정의 안내자로 자리할 때, 창업가는 자기 길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전북이 진정한 창업의 땅이 되려면, 좋은 창업가만큼이나 다양한 길을 이해하는 좋은 안내자가 많아져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1 18:49

[기고] 대학도 이제 ‘연구 기술 산업화와 일자리 창출’로 지역과 상생, 성장해야

대학은 오랜 세월 지식의 창출과 교육적 확산을 사명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그야말로 급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일자리 수도권 집중, 재정 압박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지방 대학은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전북대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립대육성사업, 등록금, 산학협력수익, 대학발전기금에 의존하는 현 재정 구조로는 수도권 대학은 물론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은커녕 지속 가능한 성장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문제는 ‘재원의 부족’이 아니라 ‘재원 구조의 한계’에 있다. 한정된 예산을 나눠 쓰는 방식으로는 연구 경쟁력도, 구성원 복지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없다. 이제 대학은 전통적 교육기관을 넘어 ‘가치를 창출하는 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학도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발표된 “1년 만에 전북 인구가 1만 3000명 유출. 전북, 지방소멸 가속화”라는 소식은 충격이다. 지역과 함께해온 대학교수로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은 무엇을 했는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은 교수와 연구자의 기술을 기반으로 수많은 스타트업을 배출하며 실리콘밸리 산업 생태계를 형성해 지역에 기여했다. 매사츄세츠 공과 대학 역시 연구 성과를 기업과 연결해 막대한 “기술 이전 수익과 지분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 ‘방울토마토’, 테크니온공대 ‘USB’와 같은 산업 브랜드를 전북대학교도 창출하는 것이다. 이들 대학은 연구 결과가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화·산업화로 연결하여 지속가능한 재정 확보는 물론 지역과 도시 발전에 기여 해왔다. 핵심은 ‘지분 확보형 산학협력’이다. 대학이 기술을 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기술을 활용한 기업에 일정 지분을 참여함으로써 장기적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기적 기술료 수입을 넘어 지속적인 배당과 자산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연구자에게는 동기부여를, 대학에는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구조다. 이제 이러한 전략을 전북대학교에 적용할 시점이다. 전북대학교는 농생명, 식품, 탄소 소재, 방산 그리고 피지컬 AI 분야까지 차별화된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성과들이 산업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 성과의 사업화, 기술지주회사 활성화, 창업 지원, 그리고 지분 참여형 투자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문화산업 시대를 맞아 K-컬처 문화자원이 풍부한 전북의 문화유산을 콘텐츠 산업화하는 데에도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새만금 개발과 연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은 전북대학교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학이 연구개발의 중심이 되고, 기업은 생산과 시장을 담당하는 ‘공동 성장 모델’을 구축한다면 지역과 대학이 상생 번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재정 확보를 넘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제 대학 재정을 외부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지역 거점대학 전북대학교 스스로 기술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여 돈도 벌고, 일자리 창출로 지역과 상생 발전하는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전북 지역과 함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대전환을 실천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1 18:49

[법률 상담] 수리 거부부터 무단 주거 침입까지, 막무가내 집주인을 고발합니다

내담자는 “집에 누수가 생겨 아이들 건강이 걱정돼 몇 번이나 수리해 달라고 빌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콧방귀도 안 뀌더라. 결국 곰팡이까지 피어오르는 걸 보고 피눈물을 머금으며 내 돈으로 수리하고, 집주인에게 수리비만큼 월세에서 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없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 더 기가 막힌 건, 아이들만 있는 집에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들을 겁주며 월세 안 낼 거면 나가라고 고함을 치고 갔다는데, 부모로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이런 막무가내 집주인을 어떻게 대응하면 좋냐?”며 집 없는 서러움에 슬퍼하고 있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떠올라 기분이 씁쓸했지만, 내담자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기에 임차인으로서의 권리와 집주인의 잘못을 차분히 설명했다. 누수와 같은 건물의 보존을 위한 비용을 필요비라고 하는데, 이는 집주인 부담이다. 필요비 지급의무는 임차인의 월세 지급의무와 서로 대응관계에 있어 임차인은 지출한 필요비만큼 월세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6다227694 판결). 그래서 필요비 공제로 월세가 연체돼도 정당한 필요비 지출이 있었다면 집주인은 이를 이유로 임차인을 내쫓을 수 없다. 반면, 집주인도 계약기간 중에는 임차인 허락 없이 주거지에 침입할 수 없다. 즉, 동의 없이 집에 들어간 행위는 주거침입죄(형법 제319조)에 해당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위압감을 주며 나가라고 고함을 친 행위는 협박죄(형법 제283조)가 성립할 수 있다. 나아가 아동의 심리적 안정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로 간주되어, 아동복지법 위반(아동복지법 제71조 제1항 제2호)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내담자에게 “법을 무시한 임대인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넸지만, 씁쓸한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동반자이다. 법을 무시하고 타인의 삶을 짓밟는 행위는 결국 본인의 자산 가치와 명예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책임감 있는 임대인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1 18:49

[사설] 천호성·유성동 단일화 거래 의혹 수사 ‘마땅’

맑고 깨끗해야 할 교육감 선거가 후보 단일화 대가로 ‘정책국장 거래설’이 불거지면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후보 단일화 거래 의혹은 천호성·유성동 후보가 단일화 선언 기자회견을 한 직후 터져 나왔다. 단일화에 불만을 가진 유성동 후보 측 선대위 총괄전략본부장이 녹취록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문제의 내용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호성한테 간다면 최소한 ‘정책국장’을 약속받고 가는구나라고 이해해 달라”는 유성동 후보의 발언이다. 이른바 단일화 대가로 ‘정책국장’ 자리를 제안 받거나 이에 상응하는 자리를 약속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거비용 보전’ ‘자리 약속’ ‘공사 등의 계약 업무 사전 약속’ 등의 후보 단일화 거래는 과거 선거에서도 나타났던 익숙한 불법 행태다. 단일화 대가를 예로 든 ‘정책국장’은 어떤 자리인가. 전북교육청은 교육감 산하에 정책국, 교육국, 행정국 등 3개국이 있다. 정책국에는 정책기획과, 미래교육과, 학교안전과, 예산과, 교육협력과 등 5개 과가 있고, 이를 관할하는 정책국장 직급은 부이사관이다. 개방형 직위이기 때문에 교육감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외부 인사를 앉힐 수 있다. 후보 단일화 대가로 서기관급 5개 과장을 지휘하는 부이사관 자리를 주고 받는다니 대명천지에 이런 빅딜이 없다. 매관매직이나 마찬가지인 이권 거래 행태가 교육감 선거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악스럽다. 이와 관련 유성동 예비후보는 “천호성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거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총괄전략본부장이자 친한 형님에게 단일화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나온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북경찰청과 선관위는 이 사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세고 후폭풍이 큰 만큼 당장 수사에 착수해 의혹을 해소해야 마땅하다. 수사를 통해 대가성 검은 거래가 있었는지 여부를 밝혀내고 있었다면 일벌백계해야 옳다. 유성동 천호성 두 후보는 떳떳하다면 핸드폰을 경찰에 제출하는 등 스스로 수사 받기를 자처하는 것도 의혹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10 18:20

[사설] ‘내란’ 멍에 벗은 전북, 무책임한 정치공세 경계

12·3 비상계엄 당시 청사 폐쇄 등으로 내란에 동조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가 마침내 혐의를 벗었다. 해당 의혹을 수사한 2차 종합특검이 김관영 지사의 내란방조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는 단지 김관영 지사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김 지사를 겨냥했지만, 전북 행정과 지역사회를 향한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면서 지역사회 전체가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실제 김 지사뿐 아니라 도청 공직자들까지 줄줄이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공직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또 전북이 마치 민주주의의 흐름에 역행한 듯한 프레임에 갇히면서 도민들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냈다.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지역의 수장과 행정조직이 ‘내란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것 자체가 도민들에게는 커다란 모멸감이었다. 결국 전북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였다. 그리고 특검의 불기소 처분으로 김 지사와 전북특별자치도는 ‘내란 동조’의혹의 굴레, 정치적 논란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또 지역사회도 불필요한 오해에서 벗어나 명예회복의 계기를 맞았다. 선거와 맞물려 지역사회를 뒤흔들었던 내란 동조 논란은 도민들에게 적잖은 혼란과 상처를 남긴 채 일단락됐다. 이에 따라 김 지사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도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내란 동조’라는 충격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지역과 도민의 자존심 회복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남긴 후유증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계속된 공세와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검의 조사는 도정 운영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또 도민들에게도 불필요한 피로감과 불신을 남겼다. 무엇보다 선거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 지역사회가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게 되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 지사에 대한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그동안 이어져온 정치적 공방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논란이 김 지사 개인뿐 아니라 전북도와 지역사회에 큰 상처와 피로감을 남겼다는 점에서 교훈이 크다. 무책임한 정치공세가 지역발전의 동력을 갉아먹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10 18:20

[전북칼럼] 30년만에 전북 지역발전전략에 대한 토론을 보고 싶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 선거는 민주당의 유종근 후보와 민자당 강현욱 후보가 맞붙었다. 두 후보는 첫 번째 TV토론에서부터 뜨겁게 부딪쳤다. 유종근 후보는 그의 글로벌 인맥을 자랑하며 외국의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여 전북을 발전시키겠다는 ‘외자유치론’을, 강현욱 후보는 강력한 중앙정부의 인맥을 활용하여 국가예산을 끌어와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중앙정부 지원론’을 내세웠다. 승부는 민주당과 DJ의 지원을 등에 업은 유종근 지사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이때 두 후보의 지역발전에 대한 철학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 등을 둘러싼 토론은 흥미진진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전북의 발전전략은 1995년의 그 논쟁으로부터 얼마나 발전했을까. 이 선거 이후 나는 전북의 지방선거에서 이렇다할 비전제시나 정책대결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선거때마다 지역발전의 비전과 정책은 사라지고 새만금 문제가 모든 이슈를 집어 삼켰고, 결국 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만 확인하는 쓸쓸한 결말을 만날 뿐이었다. 1995년 두 후보가 내세운 외자유치론과 중앙정부지원론은 교묘하게 합성되어 지난 30년 동안 지역을 지배했다. 외자유치론은 기업유치론으로 중앙정부지원론은 예산폭탄론으로 돌고 돌았다. 그리고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이원택 민주당 전북도지사 후보는 ‘내발적 발전론’을 내세웠다. 지난 30년간 계속된 기업유치와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지역의 기업들을 키우고 발전시겠다는 이른바 집토끼론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관영 현 전북도지사의 발전전략이 여전히 외자유치론의 범주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지향은 차별화된 셈이다. 그러나 이원택 후보의 내발적 발전론은 매우 구조적이고 어려운 발전전략이다. 내발적 발전론은 일본의 농촌활성화 정책에서 기원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발적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발전이나 성장보다는 안정과 자족을 지향하는 일종의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고, 따라서 광역보다는 규모가 작은 기초 단위에 적합한 발전전략일 수 있다. 굳이 따져보자면 2010년대 초반 전라북도가 추진했던 ‘삶의 질’ 정책이 내발적 발전모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발전전략의 변화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전북이 추구한 발전전략이 한계에 부딪쳐있고 새로운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전은 의미있다. 내발적 발전론을 광역 단위에서 적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전북이 가진 자원의 성격이다. 그동안 가치절하했던 자원을 재평가하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발전전략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각 요소들간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의 일관성이다. 내발적 발전론은 그다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쫓다보면 내발적 발전은 소리없이 사라지고야 말 것이다. 내발적 발전과 외향적 발전 둘 다 균형있게 하겠다는 하나마나한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이에 맞서는 무소속 김관영 후보의 강력한 지역발전 전략도 나와야 한다. 사실상 도전자가 되면서 지난 4년의 성과를 잇겠다는 수세적 대응은 의미없게 되었다. 올림픽과 전주완주통합과 기업유치전략이 전라북도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발전전략을 지향하는가를 설명하면서 치열한 정책대결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0 18:19

[열린광장]간재의 성사심제(性師心弟), AI 시대 인간의 길을 묻다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생각하고 판단하는 영역까지 대신하고 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는 세상의 중요한 척도가 되었지만,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은 소음 속에 묻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우리 지역사회 역시 비껴가지 않는다. 효율과 성과가 강조될수록 사람은 목적이 아닌 수단처럼 취급되기 쉽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개인의 이익이 앞서는 모습 또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며, 그 출발점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이다. 필자는 현재 부안향교에서 맹자와 주역을 통해 ‘나를 찾는 인문학’을 강의하며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삶의 방향을 고민하면서도, 정작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현실을 자주 마주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조선 말기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의 삶과 사상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그는 나라가 일제에 의해 병합되는 격변 속에서도 세속의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공자의 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겠다.“도불행 부부어해(道不行 浮桴於海)”를 몸소 실천하며 왕등도와 신시도를 거쳐 부안 계화도에 이르기까지 강학의 터전을 옮겼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택이었다. 특히 계화도에서 그는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예학과 성리학을 통해 사람을 바로 세우고자 힘썼다. 주목할 점은, 간재가 의병의 길 대신 후학 양성을 통해 민족의 정신을 지켜 국가를 복원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학자와 유생들이 그에게 배우기 위해 계화도로 모여들었다. 이는 간재의 학문이 시대를 지탱하는 거대한 정신적 보루였음을 보여준다. 흔히 안동에 퇴계가 있다면, 부안에는 간재 전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이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간재의 학문이 꽃피었던 계화도의 계양서원 역시 그 역사적 위상에 걸맞은 정비와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는 단순한 유적의 보존을 넘어, 그가 지켰던 선비 정신을 오늘의 삶과 연결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간재 사상의 핵심은 “본성은 스승이고 마음은 제자다”라는 ‘성사심제(性師心弟)’에 있다. 이는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오늘날, 인간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일깨운다. 타고난 본성을 스승 삼아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삶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길이다. 오늘날 AI는 많은 것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인간다움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우리 부안에 간재가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자랑이 아니라, 시대를 일깨워야 할 책임이다.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기술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다운 삶과 건강한 공동체의 방향을 함께 세울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10 18:19

[오목대] 진실과 책임 사이

1979년 YS가 국회의원직을 제명 당했을 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한 어록이 지금도 귓전에서 맴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에 YS가 뉴욕타임즈와 회견한 기사내용을 문제삼아 공화당이 9선한 YS를 제명시켰다. YS 제명사태가 부마사태로 이어지면서 결국 박정희 독재정권 18년이 무너졌다. 진실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동학의 후예인 도민들이 윤석열정권의 12.3 계엄에 맞서 싸워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추위도 아랑곳 않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손에 손잡고 전주 객사앞 광장으로 모여 목이 터져라고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그 결과 윤석열은 탄핵되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 민주주의 성지인 전북에서 그날 밤 10시 30분 TV를 통해 느닷없는 계엄발령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다소 긴장했지만 곧바로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결의해 평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도청도 평소처럼 그대로 청사 관리를 유지했을 뿐 별다르게 출입을 방해한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기자들도 자유롭게 드나든게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원택 전 의원이 이를 빌미 삼아 김관영 지사를 컷오프 시키려고 계속해서 허위사실을 퍼뜨려 170만 도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그 이유는 김 지사가 도청 청사 출입문을 잠가 계엄에 협조했다는 취지로 국회와 도의회에서 6차례나 기자회견을 갖는 등 여론에서 계속 1등을 달리던 김 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어 버리려고 온갖 책동을 가했다. 경선 초반부터 정책과 공약 대결은 오간데 없고 진흙탕 싸움판으로 몰고 가 행정부지사를 비롯 9명의 공무원들이 애꿎게 2차 종합특검에 가서 조사받는 심적고통을 겪었다. 사실 이 후보가 기자회견 때 김 지사가 준예산을 편성하고 35사단과 협조한양 그런 내용이 담긴 일반인의 고발장이 특검에 접수돼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 다각적인 조사를 받았다. 결국 특검이 김 지사 한테 신속하게 지난 7일 3가지 모두 혐의 없음으로 처분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중천금처럼 중요하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후보가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국회와 전주를 오가면서 기자회견한 내용을 사실처럼 각인시켰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본인 입으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결기를 다졌기 때문에 책임질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 이 후보가 한 발언은 아니면 말고식의 발언이 아니라 김 지사의 정치생명을 끊으려고 한 발언이어서 법적 책임까지도 물어야 한다. 그간 전북의 자존심이 이 후보가 김 지사가 계엄에 협조했다는식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려 전국적으로 흠집이 났다. 이 후보가 수세에 몰리자 증거불충분으로 2차 특검결과에 유감이라고 짧게 3줄자리 입장을 밝혔지만 그건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깨끗한 선거문화와 도민 자존심 회복을 위해 정치적 책임을 바로 져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6.05.10 18:18

[오목대] 정청래 다해드림센터장과 전북

‘전북 3중 소외’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전북 도민들이 겪은 ‘소외와 차별’의 서러움을 한 단어로 표현한 용어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2017년 2월 전북기자협회가 주관한 ‘대선주자 초청토론회’에서 당시 경기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은 “전북은 수도권 집중정책으로 한 번, 소위 군사정권 시절 영호남 차별에서 또 한 번, 호남 중에서도 광주·전남에서 또 소외돼 3중의 피해를 입었던 곳”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전북의 독자 광역권 인정 요구를 ‘호남 내 소지역주의’로 평가절하하던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이 대통령의 ‘전북 홀대’에 대한 판단은 명쾌했다. 해법으로 ‘뒤틀어진 균형을 찾아주는 것’을 제시했다. 지난 2월 전북에서 타운홀 미팅을 개최한 이 대통령은 실현 불가능한 '희망 고문'이 아닌, 시대 상황에 맞는 현실적 새만금 개발 필요성을 강조했다. 타운홀 미팅에 앞서 군산에서 열린 ‘새만금 투자협약식’에서는 현대차그룹의 9조 원 규모 투자가 발표됐다. 아직 변화가 체감되지는 않지만 기대는 크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별명은 ‘다해드림센터장’이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해드리는 센터(민주당)의 센터장’을 자처하고 있다. 다해드림센터에는 ‘영남과 강원 등 민주당 약세지역이 원하는 것’이란 조건이 붙어있다. 정 대표는 지난달 1일 강원 철원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한 우상호 후보가 강원 발전을 위해 뛰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뭐든지 다해드림센터 센터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일주일 뒤 대구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TK(대구·경북) 지역의 신공항 및 행정통합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다해드림센터장’으로서 힘을 싣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일 오중기 경북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는 “대구나 경북에서 원하는 것은 그냥 다 해드리고 싶다. 그냥 ‘다해드림센터 명예센터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도 “김경수가 원하는 것, 경상남도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이 무엇이든 다 해드림 센터가 되겠다”고 했다. 이날 부산 북구 구포시장에서도 “앞으로 부산과 경남의 민원을 모두 해결해 드리는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반복했다. 지난 1일 열린 이원택 전북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정 대표는 자신과 전북과의 연고를 강조하고, 이 후보를 한껏 칭찬했지만 ‘전북의 다해드림센터장’ 언급은 없었다. “전북의 미래 발전에 미력이나마 전북이 고향인 어머니의 아들로 전북의 아들처럼 열심히 돕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민주당 공천=당선’인 지역에는 ‘다해드림센터’가 필요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6.3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청래표 다해드림센터’가 가동되면 전북은 ‘3중 소외’를 넘어 ‘4중 소외’란 꼬리표를 새로 달게 될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규정한 ‘전북 3중 소외’에서 벗어날 획기적인 해법이 정청래 민주당의 지방선거 공약에서 제시될 지 궁금하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6.05.07 18:11

[사설] 군산조선소 정상화, ‘SOC 구축’ 급하다

전북 산업 재도약의 핵심 동력으로 꼽히는 군산조선소가 단순 블록 생산을 넘어 완성선 건조를 담당하는 K-조선의 핵심 기지로 거듭날 기회를 맞았다.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HJ중공업 최대 주주인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이 지난달 군산조선소 인수를 위한 본격적인 실사에 착수했다. 현대중공업과 체결한 합의각서(MOA)에 따른 후속 조치로, 민간 차원의 인수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HJ중공업은 올해 안에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군산조선소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심의 대형 선박 생산기지로 전환할 방침이다. 이는 군산조선소가 블록 생산기지에서 벗어나 완성선 건조가 가능한 신조(新造) 선박 생산기지로 복귀한다는 의미다. 군산조선소 정상화는 군산은 물론 전북지역 기자재 산업과 서비스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거대한 엔진이 될 것이다. 지난 2017년 가동 중단 이후 도민의 염원 속에 어렵게 찾아온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 전북 산업 생태계 복원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역사회 염원이었던 군산조선소 완전 재가동이 마침내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도민의 관심과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군산조선소 정상화는 전북 산업구조 재편과 지역경제 회복을 가늠할 핵심 변수다. 진정한 정상화는 완성선 건조 역량을 갖춘 글로벌 종합조선소로의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제는 산업계 내부의 의지만으로는 이러한 전환이 완성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군산조선소가 K-조선의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외부 인프라, 즉 공항·항만·철도 등 핵심 SOC 확충이 필수적이다. 물류와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와 글로벌 공급망 참여는 구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선업은 대규모 자재 이동과 긴밀한 공급망이 핵심인 산업인 만큼, SOC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지역 정치권은 새만금국제공항 조기 완공을 비롯한 조선소 인근 핵심 SOC 확충에 다시 한번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기가 중요하다. SOC 확충은 조선소가 완전히 안착한 뒤 검토할 사안이 아니라 정상화 과정과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자칫 적기를 놓치면 어렵게 살려낸 군산조선소 재가동의 효과가 반쪽에 그칠 수도 있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07 18:10

[사설] 민주당 전략공천, 혁신과 성과로 증명하라

더불어민주당이 6·3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군산·김제·부안 갑·을 선거구에 김의겸 전 새만금개발청장과 박지원 최고위원을 각각 전략공천했다. 전략공천은 통상 선거 승리가 중요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된다. 이번 공천도 단순한 후보 배치를 넘어 전북 정치 지형의 변화와 새만금이라는 핵심 현안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중앙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읽힌다. 갑 선거구는 의원직 상실로 치러지는 재선거인 만큼 민주당에겐 부담이 큰 곳이다. 이에 당은 언론인 출신으로 청와대 대변인과 초대 새만금개발청장을 지낸 김의겸 전 청장을 전면에 배치하며 ‘지역 발전론’에 무게를 실었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의 미래 성장동력이지만 오랜 정체로 도민의 애를 태워온 것이 사실이다. 도민들은 김 전 청장이 중앙의 풍부한 네트워크와 행정 경험을 살려 지지부진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실질적인 예산 확보라는 결과물을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원택 전 의원의 도지사 출마로 자리가 비게 된 을 선거구에 박지원 최고위원을 공천한 점도 눈에 띈다. 115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출된 최초의 평당원 출신 최고위원이라는 상징성은 ‘당원 주권’의 가치를 대변한다. 특히 전북 토박이이자 젊은 법조인이라는 배경은 오랫동안 안정과 경험 위주로 운영해왔던 전북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예고한다. 중앙과 지역을 잇는 ‘허리 역할’을 자임한 그가 지역 정체성을 중앙 정치의 동력으로 어떻게 치환해낼지가 관건이다. 물론 전략공천은 지역 경선 기회 축소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불필요한 내부 갈등을 줄이고 선거 준비를 신속히 마쳐 지역 현안 해결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실익도 분명하다. 특히 국가예산 확보와 대형 국책사업이 시급한 전북에서는 중앙정치와의 연결성과 정책 추진력이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후보자들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 삶의 질을 바꿀 실천력이다. 새만금은 더 이상 도민에게 ‘희망 고문’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지역 정치는 도민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도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 전략공천된 두 후보는 자신들이 왜 이 지역의 적임자인지를 구체적인 비전으로 답해야 한다. 유권자 역시 관심을 갖고 이들의 실행력을 냉정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이 전북의 자존심을 세우고 미래를 여는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6.05.07 18:10

[청춘예찬]시작이 가장 무거운 이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우리는 종종 주춤거린다. 설렘보다는 막막함과 버거움이 앞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다. 나도 다르지 않다. 정해진 일상의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역할이나 낯선 책임을 마주해야 할 때면, 눈앞에 놓인 과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져 시작부터 지쳐버리거나 슬그머니 포기하고 싶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주로 발사하는 로켓을 떠올린다. 로켓이 지구 중력을 이기고 궤도에 오르려면 이륙 중량의 약 90%를 연료와 산화제로 채워야 한다. 구조물과 엔진, 우주로 보내려는 탑재체를 다 합쳐도 중량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짙은 대기권을 가르며 공기 저항이 극심해지는 최대 동압점의 압력을 견뎌내는 동안, 발사체는 거세게 진동하며 탑재된 연료의 대부분을 격렬하게 불태운다. 그러고 나서 궤도에 안착하면 대기 저항이 사라지고, 별다른 추력 없이도 관성에 실려 지구를 유영하게 된다. 우리 삶도 이 로켓을 닮았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유독 큰 피로를 느끼는 까닭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익숙한 일상의 중력을 이기고 새 환경이라는 짙은 대기권을 돌파하는 비행 중이라서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행위 자체가 본래 가장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소소하게는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 익숙한 업무 방식을 버리고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 오랜 침묵 끝에 다시 펜을 드는 일부터 크게는 새로운 진로나 창업에 도전하는 일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대기권을 뚫기 위해 치열하게 연소한다. 결국 시작 앞의 두려움은 흠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비행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수습변호사 시절, 소송 기록을 처음 마주한 날을 기억한다. 혼자 힘으로 사실관계와 법리의 실타래를 풀어야 했던 그 시기의 압박감이 참 컸다. 서면 한 줄을 쓰려고 수십 페이지를 다시 들췄고, 새벽까지 기록에 파묻혀도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로스쿨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하급심 판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한숨짓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시간을 가까스로 견딘 뒤에야 사건의 흐름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에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새 사건을 맡을 때마다 여전히 그 무게를 다시 마주한다. 다만 이제는 그것이 성장의 일부임을 안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자기만의 대기권을 거듭 뚫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며칠 만에 주저앉고 싶어졌다면, 스스로의 나약함을 탓하며 자책하지 말자. 지금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가장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두꺼운 대기를 가르며 궤도를 향해 거세게 연소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다. 오늘도 저마다의 팍팍한 대기권을 뚫느라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이웃들을 생각한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늦은 밤 책상 앞에서, 새벽 작업장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당장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고 일상의 중력에 끌려 다시 내려앉고 싶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보자. 어느새 각자의 궤도에 올라, 부드럽게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한결 가벼워질 내일을 상상하며, 벅찬 시작의 무게를 꿋꿋이 감내하는 우리 모두의 고단한 어깨에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07 18:09

[금요칼럼]아름다운 나라, 사라지는 풍경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하여

해마다 내 가족과 친구들 중 누군가는 한국을 찾는다. 나와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와 자연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정겨운 손님이 올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보여줄 장소를 정성껏 고른다. 그리고 내가 왜 이 나라를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는지, 어떻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는지를 다시 이야기하게 된다. 지난주, 인천공항에서 가족을 맞이한 뒤 우리는 전라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여름의 숨막히는 더위와 성가신 모기가 찾아오기 전, 이 계절 특유의 온화하고 싱그러운 봄의 기운 속에서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나에게도 다시 그 장소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이미 여러 번 찾았던 곳들이지만, 몇 년 사이를 두고 다시 마주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산과 사찰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 변화는 예상보다 크고, 무엇보다 날카롭게 다가왔다.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이 나라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한국 곳곳을 여행하며 그 경험을 글로 남겨왔다. 지난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변화를 지켜보았다. 특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변화가 얼마나 많은 장소의 고유한 매력을 지워왔는지도 함께 보아왔다. 순천 인근, 주암호 가까이에 자리한 송광사를 떠올려본다.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삼보사찰로 꼽히는 이곳은 한때 굽이진 길 끝에 있었다. 단풍나무와 오래된 벚나무가 늘어선 느린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속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듯한 고요를 만날 수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마주한 풍경은 전혀 달랐다. 거대한 고속도로가 자연을 가르듯 지나가고 있었고, 하늘 높이 솟은 콘크리트 교각들이 그 평온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나는 이 지역을 잘 안다. 이곳에서 도로가 막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빠르게 도달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외진 사찰까지 거대한 고속도로가 필요할까. 모든 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놓아야만 하는 것일까. 다음 날, 나는 가족을 데리고 광주의 산, 무등산으로 향했다. 50년 넘게 보리밥과 막걸리를 내어주던 작은 식당들이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풍경이자 사람들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였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더 이상 그 모습이 아니었다. 굴착기의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건물들은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단순한 공사 소음이 아니라, 무언가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무슨 일인지 인근의 공원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불과 2주 전, 이곳은 모두 폐쇄되었고 앞으로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며, 보리밥 식당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다시 들어설 계획도 없다고 했다.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설회사일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는 이익을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한국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한국은 여전히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해마다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한때 고요하고 온전했던 공간이 있던 자리에는 엔진 소음으로 뒤덮이거나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는 등, 머지않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으로 대체되는 듯하다. 나는 이 땅이 지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각별히 사랑한다. 그래서 때로는 꼭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개발의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어떤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의 변화가 아니다. 이 나라가 오랜 시간 지켜온 고유한 가치와 그와 조화를 이루어온 풍경이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이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07 18:09

[금요수필] 전주 한벽당에 흐르는 시간

청아한 물소리와 맑은 산바람이 봄잠을 깨운다. 다가산 아래서 송사리를 따라 전주천을 거슬러 올랐다. 여울목에 이르자 백로 한 마리가 물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송사리가 잡아먹히려나 가슴이 철렁했지만, 녀석은 빛의 속도로 여울을 가르며 위기를 벗어났다. 한벽교에 이르니 물에 비친 한벽당 반영이 한 폭 수채화다. 호남의 명승으로 알려져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사로잡았던 정자다. 수양버들 한들거리는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봄바람은 역시 오수를 불러온다. 잠깐 눈을 붙인 나를 보고 송사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머릿속에서는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는 장면이 스쳤다. 송사리와 경주하는 내 모습이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근자여사부 불사주야(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가는 것이 물과 같아 밤낮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소한 가정(假定)과 추측이 얼마나 사람을 흔드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부정적 예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시냇물 굽이치는 승암산 숲 사이로 한벽당의 절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걸음을 옮길수록 기대감이 차올랐다. 산벚꽃이 진 자리의 잎새는 한층 푸르고, 절벽 위 한벽당 고고한 자태는 더욱 우아했다. 돌계단을 오른 발걸음마저 가볍다. 세월의 풍파를 품은 정자 안에는 한벽당 편액과 기문, 시판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선조들이 얼마나 풍류를 소중히 여겼는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한벽당은 조선 개국공신이자 집현전 직제학 문신 ‘최담’이 지은 별장이다. 산과 암벽, 정자, 맑은 물이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공간이다. 예부터 음유시인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고, 길손들에게는 쉼터로, 선비들에게는 시(詩)가 오가던 창작의 장이었다. 한벽당은 묵묵히 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광한루서 온 춘향과 이도령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벽옥한류는 승암산 자락에서 푸른 안개를 피워올린다. 한때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현재도 한옥마을 둘레길을 따라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한복 차림으로 한벽당을 찾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정겹다. 마루에 오르니 유유히 흐르는 물과 절경을 바라보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름이면 최고의 피서지었다. 오모가리탕을 먹고, 버드나무 평상에 앉아 부채질로 더위를 쫓던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친구들과 멱을 감던 기억이 떠오르면, 그때의 동무들이 금세라도 웃으며 모여들 것만 같다. 지금의 한벽당도 이처럼 아름다운데, 시인들이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던 그 옛날에는 얼마나 더 고왔을까? 한벽당은 한벽루(寒碧樓)라고도 한다. 봄날 꽃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꽃잎을 실어 나르던 전주천 물결이 눈앞에 살아난다.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지켜온 온 고을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Δ 이두현 수필가는 아시아뉴스 전북기자 겸 논설위원이다. 전북시인협회 수석부회장, 한국미래문화원장 등을 맡고 있다. 시집 <시냇가 모래시계>를 펴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6.05.07 18:09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