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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강원도 춘천 의암빙상장에서 열린 강원도컵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 경기도중 광운대의 최승호 선수가 퍽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경기중 선수가 퍽에 맞아서 사망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운동선수들도 쓰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2000년 4월 롯데 임수혁(31) 선수는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원스의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고 지금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체조선수 김소영은 86년 8월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단평행봉 연습을 하다가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이처럼 외부충격이나 몸의 이상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응급조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승호 선수의 경우에도 7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두고 30분 이상 구급차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기 전인 지난 4월에도 춘계대학 축구연맹전에서 한 선수가 경기도중 쓰러졌지만 응급처치와 병원이송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한 경우가 있었다. 교통사고의 경우, 우리나라의 사망자 비율이 외국보다 훨씬 높은데 그 이유 역시 응급구조 인력과 그 전문성 부족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때마침 보건복지부가 지정 응급의료센터에 응급의학 전문의를 24시간 상주시켜야한다는 법안을 내놓은 모양이다. 이는 선진국의 경우 응급처치 단계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10∼20%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50%를 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응급의료체제의 개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체제의 개선보다 더 절실한 것은 우리들의 응급처치 능력이다. 아무리 빨리 오는 구급차라 하더라도 사고현장까지 10여분은 족히 걸리는데 이 시간이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심폐소생술 등의 응급처치는 필수적이다. 이런 긴박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사고의 유형에 따르는 다양한 응급처치 방법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누구에게 응급처치를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최근 경유승용차의 배출가스 허용기준 완화를 검토하면서 시민·환경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는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경유차는 휘발유차에 비해 힘과 연비가 좋은 반면 소음이 커 주로 화물트럭, 버스, 승합차등으로 사용됐다. 경유차의 오염물질 배출은 휘발유차와 비교할 때 일산화탄소(CO)와 탄화수소(HC) 배출량은 2분의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도 경유차를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일산화탄소나 탄화수소는 별 문제가 되지않고 질소산화물(NOx)과 미세먼지(PM)가 대기오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휘발성 유기화합물질, 황산화물등 4개 물질을 관리대상 오염물질로 지정하고 있다.질소산화물의 경우 경유차는 휘발유차보다 6∼8배 더 내뿜는다. 미세먼지도 휘발유차는 거의 없는 반면 경유차는 배출한다. 현재 국내 전체 차량 가운데 경유차 비율은 29% 정도이지만 경유차가 내뿜는 오염물질 전체의 52%나 차지하고 있는 사실이 경유차로 인한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입증해준다.국내 경유승용차의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유럽보다 최고 25배나 높여 세계 최고수준으로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지난 90년대 외국산 경유승용차의 국내 점유를 막으려는 국내 자동차업계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기술발전등으로 국내 자동차업계가 유럽에 경유승용차를 수출하면서 국내 내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에는 거꾸로 허용기준 완화를 요구하는 바람에 이같은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다. 자동차업계의 로비에 정부가 휘둘리고 있다는 시민·환경단체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현재 국내의 경유가격은 휘발유가격의 5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용기준치를 완화하여 경유승용차를 시판할 경우 경유승요차의 점유비율은 급속히 늘어날 것이고, 대기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노동과 농어업 생산성 감소등으로 연간 45조원 이상의 피해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연구보고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대도시 시민들은 매일 거리에서 숨이 막힐 것같은 탁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이제는 환경정책이 개발 우선논리에 밀리는 때가 아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는 경유승용차 도입에 앞서 종합적인 대기환경 개선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박물관(Museum)이란 이름은 그리스의 Muse(음악)여신에게 바쳐지는 신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점차 물품을 모아놓고 구경시키는 곳을 뜻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 세계를 정복하면서 세계의 중심임을 알리기 위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자국의 영광을 드러내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그렇게 하여 권위적이고 신성한 대영제국박물관이 생겼다. 현대박물관은 이런 권위를 떨치고 흥미로운 교육(edutainment)을 강조하고 있다.한국에서의 박물관은 1908년 (황실유물소장수장고)로 시작하였다. 그 이래로 박물관이 창고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박물관에 와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갔는지이다.따라서 전시와 각종 사회프로그램이 박물관의 핵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전시시설, 교육시설을 지어놓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은 죽었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 지역의 많은 박물관들이 죽어있다. 전주국립박물관이나 대학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물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전시와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이 와서 배우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료수집, 발굴, 연구에만 집중하느라 전시와 교육을 게을리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흥미를 끄는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은 신성해야할 박물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회피하고 있다. 또는 흥미를 끌면서도 교육적인 전시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줄 몰라 구닥다리 방식의 전시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가봐야 내용이 어렵고 재미도 없다며 불평한다.전주박물관의 경우 권위주의적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그 형태나 배치가 권위주의적이다. 이제 사회교육관 건물을 지어 박물관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어떠한 전시와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지 궁금하다. 대학박물관들은 발굴에 집중하다 보니, 박물관 고유기능을 포기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이나 도민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하다.우리지역 박물관도 이제 죽은 박물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이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전시와 교육이 이루어져 많은 도민이 몰려올 때 박물관이 살아난다.
지리산에 야생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는지 여부는 학계나 환경단체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60년대이후 멸종됐다는게 정설이었지만 밀렵꾼들 사이에는 아직도 소수의 반달가슴곰이 해발 1천m이상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있다는게 공공연한 비밀이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다.실제로 70년대초 모 언론사 취재팀 카메라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잡힌 일이 있었다. 당시 멸종된것으로 알려진 반달가슴곰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생태계 복원의 징조라 하여 크게 반가워 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후 수색팀이 추적조사를 해 봤지만 더 이상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다.사람들이 다시 지리산 반달가슴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것은 지난 99년 봄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에서 곰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부터다. 눈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이 틀림없는 반달가슴곰의 것이라는게 당시 조사팀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일본인 전문가가 동원되고 무인카메라까지 설치하면서 추적을 계속해 왔지만 그동안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안타깝지만 이 곰이 밀렵꾼들의 눈에 띄어 포획됐을것이라는 추측을 했을 뿐이었다.그랬던 반달가슴곰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것은 다음해인 2000년 11월이었다. 진주 MBC가 웅덩이에 물을 먹으러 온 곰 한마리를 무인카메라로 촬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촬영장소는 밀렵꾼들의 접근을 막기위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곰의 서식반경이나 습성등을 고려할때 왕시루봉에서 발자국이 발견된 놈이라는 추측이 우세했었다. 드디어 지리산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후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반달가슴곰이 이번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무인카메라에 잡혔다. 공원관리공단측은 지난 17일 야생 반달가슴곰의 지리산 서식을 공식 확인했다. 70년대초 카메라에 그 모습이 잡힌 이후 실로 30여년만이다.반달가슴곰의 지리산 서식 확인은 생태계 복원의 확실한 증거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재로서는 대략 4∼5마리 정도가 생존해 있을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에 따라서는 20마리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서식환경을 보호하는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밀렵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모처럼 발견된 곰들이 밀렵꾼들에 의해 희생되는 일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야생동물의 밀렵이 자연생태계를 깨뜨리고 그 업보는 결국 인간이 뒤집어 써야 한다는 사실은 평범한 진리다.
흔히 노망(老妄)이라고 불리우는 치매(알츠하이머)는 기억력 상실, 언어장애, 시간과 공간개념 상실, 대소변 못가리기 같은 증상을 보이는 대표적 노인성 질환이다. 치매는 본인의 황폐화는 물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말 할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오죽하면 ‘치매에 걸린 노인을 간병해보지 않은 사람은 병의 고통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까지 생겨 낫겠는가.경제발전과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노령화 사회가 앞당겨 지면서 치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족중에 치매환자가 있거다 없더라도 ‘어느날 소리 없이 찾아올수도 있는’이 병에 대한 공포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치매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 남이 알세라 쉬쉬하거나 전문병원마저 부족하여 사실상 병을 키운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레이건 전대통령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공표하고 모든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것과는 대조적이다. 지금도 투병중인 그에 대한 부인 낸시여사의 정성을 다한 간병(看病)은 미국민들에게 존경심과 함께 러브 스토리의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사실 미국에서는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병을 널리 알려 난치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치료약 개발, 의학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일이 많다. 세계적인 프로복서 모하메드 알리의 파킨슨병이나 헐리웃 스타였던 록 허드슨과 NBA 농구스타 매직 존슨의 에이즈 감염 고백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각종 난치병 연구의 급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 팝송가수 마이클 잭슨이 엊그제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코가 내려앉은 모습을 스스럼없이 매스컴에 드러낸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최근 전북대 의대의 홍성출교수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에이 베타(A-beta)단백질의 메카니즘을 증명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해 의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에이 베타 단백질의 기능을 분석하면 치료약 개발에 도움을 줄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국내의료진이 한방 약재에서 치매에 획기적 효과가 있는 화학 물질을 개발한 일이 있고 덴마크 의학연구팀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었다. 서울대 가정의학팀에서는 한국형 치매진단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상품화 단계에 들어서기도 했다.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알츠하이머 극복의 벽은 여전히 높다. 건강한 노후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 삼성 3세 이재용씨의 부(富)의 세습과 경영권 승계에 관한 문제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가 된적이 잇다. 당시 서른세살밖에 되지 않은 이씨가 44억원으로 순식간에 4조원대의 재산가가 되었으니 국민들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상속과 증여에 대한 적법 시비가 이는것 또한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참여연대는 2000년 말부터 89일동안 국세청 앞에서 이씨에 대한 적정과세를 촉구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는가 하면, 대체적인 국민 정서도 탈법을 하거나 특혜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였다.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온 한국인들은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벌어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는 것을 인생의 보람으로 여기는 특징이 있다. 한 연구기관이 실버세대들을 대상으로‘소유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0%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대답한 반면, 사회사업에 쓰겠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한 것만 보아도, 부의 세습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쉽게 알수 있다. 사실 부를 세습하면서 상속세를 적게 물려고 탈세를 하고, 변칙적 증여를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재벌은 비단 삼성 뿐만이 아니다. 내노라 하는 재벌 대부분이 비슷한 방법으로 부를 세습하고 있다.세계 최고의 부자인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이 최근 5백28억달러(약63조원)가 넘는 막대한 재산을 세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게이츠 회장은“많은 재산을 자녀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자녀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세자녀가 생활할수 있는 정도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확인했다. 8년 연속 세계 1위의 부자로 평가된 그는 지난 94년 9천4백만달러를 기증, 미국내 각급학교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보급했고, 2000년에는 2백4억달러(약28조8천억원)를 출연,‘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을 설립하여 에이즈와 빈곤 퇴치 및 후진국 지원에 힘써오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미국에서 부자가 존경받는 분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부자로 죽는 것 보다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미국의 철강왕 카네기가 남긴 불후의 명언이다.
전문가(專門家)는 ‘어떤 특정한 부문을 오로지 연구하여 그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 또는, 그 일을 담당하고 잇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전문가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활용한 대가로서 경제적 급부를 받아 생활을 지속한다는 점에서 불로소득이나 취미와 구별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사회에 기여한다는 순기능을 가진 합법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왕이면 좀더 많은 권한을 누릴 수 있고 돈도 쉽게,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벌 수 있는 직종이 선호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직종은 대개 특정자격이나 면허 등을 취득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요즘 피의자를 고문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세간에 화재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고문치사사건이 법을 다루는 검찰에서 발생했고 검사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법률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만한 전문가는 따로 없을 것이다.이번 사건을 지켜 보면서 70년대에 봤던 영화 ‘더티 하리’시리즈가 떠오른다. ‘자 쏴 보라구, 덕분에 나도 기분좋게 한방 날릴테니’라는 대사는 더티 하리의 캬라한 형사를 통해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범죄자들을 향한 응징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미국이라는 인권국가(?)에서도 법으로 어찌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있는 모양이다.하지만 이런 법 집행자들의 고민을 제기한 영화가 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지금쯤에는 ‘더티 하리’보다 훨씬 수준 높은 법 집행을 기대하는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 갔다고 본다.성회롱도 처벌의 대상이 되고 학교에서도 교육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학생을 체벌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불법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려는 사회단체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렇다.인권(人權)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평등 등의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이런 부류에 피의자가 예외일 수는 없다. 여러 어려운 점들이 많겠지만 범죄의 의심이 있는 사람들을 몽둥이와 물로 다스리는 수준은 넘어야 법 집행의 전문가가 아닐까 한다.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감기와 독감이다. 흔히 지독한 김기를 독감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다르다.감기는 라틴어로 코를 뜻하는 ‘리노’및‘아데노’바이러스등 1백여 종의 바이러스중 하나가 몸속 깊숙이 침투하지 않고 상기도(上氣道)의 상피(上皮)세포에만 달라붙어 서서히 콧물, 목통증 기침등의 증세를 일으키는 것이다이에 비해 독감은 A-B-C형으로 나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한다. 일반 감기와는 달리 발열이 심해 고열이 나며, 근육통·두통등의 증상이 아주 심하고 전염성이 강해 단시일내에 퍼진다. 대개 전 인구의 10∼20%가 감염되며 크게 유행하는 시기에는 40%까지 전염된다.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1918∼1919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 각지를 덮쳐 약 3천만명이 숨진 사건 뒤였다. 당시의 희생자 규모는 제1차세계대전 희생자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20세기만해도 이 사건을 포함해 세차례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대재앙이 있었다. 1957∼1958년에 걸쳐 전세계에 퍼진 독감은 ‘아시안 인플루엔자’로 불리며 백만영의 사망자를 냈다. 가장 최근의 독감 재앙은 1968∼1969년의 ‘홍콩 독감’으로 약 6주간에 걸쳐 전세계를 휩쓸며 8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단순한 감기에는 예방백신이 없지만 독감에는 백신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3월 그해의 독감 바이러스의 변이형태를 예측하여 발표하면 제약회사들이 백신을 만든다. 바이러스가 매년 바뀌는 까닭에 1년만 유효하지만 60∼90%의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테러등으로 전 세계가 어수선하다 보니 독감도 더욱 독해지는 모양이다. 최근 영국 BBC가 보건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올 겨울 유럽에 1918년의 ‘스페인 독감’못지 않은 ‘슈퍼 독감’이 몰아칠지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엊그제는 서울에서 올 겨울 유행할 것으로 예상된 독감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가 예년보다 3주정도 빨리 확인됐다. 국립보건원은 65세의 여자환자로 부터 파나마 A형 바이러스를 분리했다고 밝혔다.가열되는 선거전에 연말까지 겹쳐 쉬운 때다. 외출후에는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하는등 개인위생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같다.
갈수록 우리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정치인들의 이미지에 따라 투표를 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후보를 접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TV나 신문에서 나온 이미지를 보고 투표를 한다. 또는 TV나 신문이 그리는 후보의 이미지가 우리의 눈과 귀를 압도하기 때문에 이들 이미지가 실제 정책보다 중요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실질 정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도 인상이 좋아서 또는 자신의 편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 후보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디어 정치의 효과가 극명하게 입증된 것은 1960년의 닉슨과 케네디의 토론방송이었다. 그 당시 40대 초반에 불과한 케네디는 애송이 정치인이었고 부통령이었던 닉슨은 이미 유력 정치인이었다. 케네디는 건강한 얼굴에 젊음과 신념이 넘쳐 보였고 짙은 색 양복으로 케네디의 얼굴은 화면에 또렷하게 부각되었다. 케네디는 발언을 할 때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미국의 비젼을 설명하자 미국사람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에 비해 그 당시 40대 후반에 불과한 닉슨은 이미 부통령을 경험한 유력 정치인이었지만 늙고 피로하게 보였고 옷을 잘못 골라 실루엣도 뚜렷하게 부각되지 못했다. 케네디를 보고 발언을 하여 얼굴도 옆모습이 주로 부각되었다. 실제 설득해야 할 사람들은 케네디가 아니라 TV 앞에 있는 시청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이후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바람둥이 케네디를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베테랑 정치인이었던 닉슨을 어딘가 불안한 정치인으로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닉슨의 승리를 낙관하던 분위기는 TV토론 후 크게 변하여 있었다. 다음날 케네디는 오하이오 유세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케네디가 그렇다고 압도적인 승리를 한 것은 아니다. 11만표차로 이겼다. 그렇지만 TV토론으로만 닉슨보다 3배나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TV의 인상이 케네디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번 대통령후보들의 미디어의 승자는 누구일까? 최대신문들이 특정 후보를 편파적으로 지지하여 반대 후보에 대한 감정적 거부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단편적이고 편파적인 보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을 자세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불가에서는 사람들의 욕심을 다섯가지로 구분한다. 재물·명예·먹거리·잠·색욕(色欲)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억제하기 힘든것이 색욕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색욕을 정상적으로 풀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에겐 돈을 주고라도 이를 해결할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윤락이다.윤락의 역사는 길다. 인간의 의무와 극기(克己)를 기본 덕목으로 강조했던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제논도 한 두번 창녀와 교제한 일이 있다고 한다. 성경에서도 ‘죄 짓지 않은자 저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지칭한 바리새인이 바로 창녀였다. 정복자 나폴레옹에 이르면 창녀의 역할은 더욱 확연하다. 그는 ‘이 세상에 만일 창녀가 없었다면 귀부인들이 제대로 행세를 못했을것’이라고 갈파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생각해 보라. 성윤리나 절제, 도덕만을 강조하면서 성적 분출구를 막아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히려 강간이나 성추행 같은 범죄가 만연할테니 나폴레옹의 우려대로 귀부인들 온전할리 없었을 것이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보면 윤락은 당연히 필요악이다. 돈을 주고 성(性)을 산다는것 자체가 윤리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일수 있지만 수요가 있으니깐 공급이 따르는 법이다. 막연히 방탕한 쾌락주의로 몰아 부치기 보다는 차라리 알성화 해서 성문화의 질적 향상을 고려해 볼 필요는 없을까?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공창(公娼)제도를 벤치마킹 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성을 상품화 하여 고객의 입맛(?)에 맞추는 저들의 트인 사고가 오히려 성범죄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미아리 택사스에 철퇴를 가한 여자 총경의 무용담이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일이 연전이었지만 그 후 우리 현실은 어떤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도내에서만 군산에서 두차례나 ‘불법강금 성 매’가 사회문제화 됐었다. 화재로인한 귀중한 생명을 잃은 윤락녀들의 비참한 생화상이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읍에서도 또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도대체 당국은 소잃고 외양간 고칠 생각마저 안하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윤락녀와 업주와의 셈법에 나름대로 차이가 없을수 없다. 그런 관행이 알데 모르게 묵인되고 일종의 윤락가 질서로 자리잡고 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게 무차별 단속만으로 일거에 문제가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한 때 거론됐다가 수면아래로 잠복한 윤락가 양성화 문제가 그래서 생각난다.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뇌속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생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사람의 염색체는 10만개의 유전자가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중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는 6천3백개쯤 된다고한다. 비만·당뇨·수명·행복·생명연장과 같은 인체의 각종 신비스런 기능이 이 유전자에 내장돼 있고 심지어 자살 충동과 같은 성격도 여기서 형성된다는 것이다.그러나 반드시 유전자만이 성격결정의 요인이 되는것은 아니다. 환경·문화·교육과 같은 후천적 요소도 성격결정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가령 자살하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독(毒)’할것 같지만 의외로 심약한 경우가 많다는게 심리학자나 정신분석 학자들의 설명이다. 실직이나 외로움, 절망감, 과도한 스트레스 같은 외부적 요인이 세로토닌의 생성을 자극하여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나타날수도 있다는 것이다.엊그제 수능점수 가채점 결과 자신의 성적이 기대에 못미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재수생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숙제가 태산이라고 성적이 안 올라 고민’이라면서 목을 매 자살했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어’저 세상을 택한 이 어린이의 죽음을 사회는 무슨 말로 변명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되풀이 되는 입시중압감은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내는 ‘자살충동’의 외부적 요인중 하나다. 그 배경에 학벌제일주의, 출세지향주의, 황금만능사상 같은 비뚤어진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터넷 채팅서 ‘이미 죽을 준비를 해놨다’고 고백한 열한살짜리 어린이의 당돌한 의식구조는 정보화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또다른 비극의 한 단면을 보는듯 해 안타깝기 짝이 없다.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면 사람이 얼마나 모질겠느냐는게 사회적 통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오히려 자살의 원인을 인간의 나약성에서 찾는다. 극도의 절망감이나 중압감, 외로움이 심약(心弱)과 우울증으로 이어져 자신의 의지를 제어할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때 비로소 자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곧 죄악이다. 신(神)이 준 생명을 스스로 끊는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게 종교적 시각이다. 그런정도의 용기라면 그 용기로 오히려 열심히 살아서 가족이나 사회에 보답하는 삶이 훨씬 값진 것이다.
지난 4일, 요르단강 서안의 나블루스 시내 한 복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보이는 차량폭발사고로 하마스 대원 2명이 숨지고 행인 2명이 크게 다쳤다. 팔레스타인 치안관리들은 이스라엘군이 차량에 부비트랩을 설치한뒤 리모콘으로 폭파시켰다고 주장했고, 목격자들은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기전 공중에서 무인정찰기 한대가 비행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같은날, 예멘에서도 알 카에다 책임자급 여섯명이 하늘에서 날아온 미사일에 맞아 처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예멘 상공에서 이 미사일을 발사한 무인정찰기 프레데터(포식자)를 조종한 것은, 지구 반대편인 미국 동부의 중앙정보국(CIA) 사무실에 있던 한 요원이었으며, 그는 당시 커피를 마시면서 노트북 컴퓨터만으로 작전을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미 걸프전과 보스니아 내전 때도 길이 1.2m, 무게 4.5㎏의 소형 무인정찰기를 적진에 투입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 있다.더구나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요즘 곤춘의 비행을 모방한 초소형 무인정찰기, 즉 미세비행체(Micro Air Vehicles)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 국방성 방위연구소(DARPA)가 3천 5백만달러를 들여 추진중인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곧바로 실전에 배치할 것으로 보이는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며 미사일을 퍼붓게 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또 최근에는 영국과 프랑스·이스라엘에서도 프레데터와 유사한 초소형 정찰기와 동굴·건물 탐지 로봇, 해저 로볼과 같은 각종 첨단 무기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스스로 적을 찾아 공격을 하는 ‘리모콘 전쟁’또는 ‘로봇 전쟁’시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한반도 정세에 먹구름을 몰고 온 북한 핵문제가 아직도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핵 개발 포기가 먼저인가, 불가침 협정이 우선인가 북·미(北美)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겠지만, 서로 자기 주장만 고집하다가 정말 한반도에서 무슨일이 벌어지지 않나 걱정이 된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핵 개발을 놓고 미국을 상대로 고도의 전술게임을 벌이는 배짱 하나는 가상하나, 그 배짱이 만용으로 비쳐진다면, 만천하에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라도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얼마전 농민들이 농업정책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 호남고속도로에서 저속운행을 단행하였다고 한다. 이런 시위로 농민들의 의견이 농업정책에 좀더 반영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적 피해를 입은 것만은 사실이다.가끔 일어나는 이런 고속도로 시위를 보면서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수와 그 목소리 그리고 그 이해득실을 떠올리게 된다.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 공동체의 유지와 운영을 위한 정책적 결정은 사람들을 다수와 소수로 나누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 결정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수의 희생을 동반하게 되는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성숙한 공동체라면 희생을 감내하게 되는 소수를 위한 다수의 배려가 뒤따르게 되고 이를 계기로 소수의 사람들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일체감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하지만 공동체를 구성하는 계층이 복잡·다양해질수록 이런 생각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우선, 정책적 결정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대상과 피해 당사자를 예상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공동체의 이해관계는 솔로몬의 재판과 같은 현명한 정책결정을 어렵게 하기 마련이다.이런 현실 속에서 좀더 나은 정책결정이 도출되려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목소리가 표출될 필요가 있다. 이런 다양한 의견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수렴하는 기회를 갖기만 해도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피해정도를 미리 예측하고 대처하거나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갖게 되어 그 충격을 덜 수 있을 것이다.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형국을 보아하니 FTA 등 농민들의 시름을 깊게하는 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농민들의 어려움은 널리 알려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다만 이런 의견의 표출이 또다른 횡포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좀더 빨리 가기 위해서 이용하는 고속도로는 공공의 장소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고속도로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그 피해의 범주와 규모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심히 염려스럽다. 그리고 그런 피해가 농민들에게 어떤 결과로 되돌아올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치아 건강은 인간의 오복(五福)가운데 하나로 여겼다. 그만큼 치아가 좋지않아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도 될것이다.구강질환의 대표적인 것이 충치이다. 치과의사 수가 늘어나고 치과기술이 날로 발전해도 충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2000년의 경우 국내 치과병의원에 지급된 보험급여는 7천8백90억원으로 이중 5천억원 이상이 충치와 관련된 비용으로 나타났다. 치과 진료시 보험적용이 안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충치로 인한 치료비는 연간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같은 충치의 예방을 위해 시작된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수돗물 불소화다. 상수도 정수장에 불소 투입기를 설치해 불소용액을 섞는 것인데 수돗물에 들어가는 불소농도는 1ppm으로 수돗물 1t당 불소 1ℓ 정도이다. 수돗물 불소화사업은 1945년 미국의 일부 주에서 처음 시작된뒤 현재 미국과 영국등 60여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쪽 국가와 일본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거나 시행중 중단한 경우도 많다.국내에서는 1981년 경남 진해시에서 처음 시행된뒤 현재 전국적으로 30여개 정수장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성이 당연시되던 불소화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본격적으로 인 것은 지난 1998년 일부 환경단체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면서 부터이다. 이들은 ‘불소는 암, 신경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물질로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한 강제의료행위인 수돗물 불소화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익에 관한한 이견이 없는듯 했던 시민단체들도 수돗물 불소화를 놓고는 찬반 양측으로 극명하게 나눠져 있는 상태다.도내의 경우도 전주권 광역상수도인 고산정수장에 불소를 투입하려는 사업이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급수지역 주민 3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91.4%의 찬성을 얻었으나 사업에 선뜻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시행청인 전북도는 이 시점에서 번거롭더라도 불소화의 최종 수혜자이고 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도민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다시 물어 최종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찬반 양측 주장과 상세한 불소화 내용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식 개인주의를 잘 드러내는 말이 "Leave me alone"(나 혼자 있게 좀 해줘, 내버려 둬)라는 말이다. 이 말을 하면 더 이상 간섭하면 안된다. 한국에서는 "나 혼자 있게 좀 해줘"라고 말해도 "너 왜 그래"하면서 이것 저것 물어보지만 미국에서는 "Leave me alone"했는데도 상관하면 정말 화낸다.더 이상 침해당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개인이 일을 잘하면 공도 그 개인에 돌아가야 하고 잘못해서 생기는 책임도 그 개인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집단의 집합적 관계유지에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집단으로 술을 마시고, 놀러 가고, 행사를 하고, 사적 생활에서도 서로 돕고 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각자 자기 일을 잘하면 된다.이러한 생각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직장을 바꾸기가 아주 쉽다. 자신의 능력에 걸맞지 못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보수가 더 좋은 다른 직장으로 쉽게 옮긴다. 뛰어난 능력이 있으니까 옮길 때마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직장관계를 대체로 인격적 관계보다 업무 관계로 인식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조직에 들어와도 별 문제가 없다. 그 직책에 주어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직장 상하 간에도 공적인 관계 위주이고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따뜻한 사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처럼 직장 밖에서도 직장동료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미국식 직장은 왠지 삭막하다. 개인의 독자영역과 개성을 인정하는 미국식 개인주의는 미국인들이 보다 쉽게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어느 사회보다 개척, 새로운 생각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효율적인 것을 빠르게 도입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무자비하게 내치는 스타일로 미국사회가 효율성을 발휘해온 것이다.미국식 개인주의는 대체로 능력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오히려 손해다.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도 개인책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에 비해 복지대책이 소흘하다. 미국식 개인주의는 결국 주로 중간층 이상이나 백인에게 유리한 개인주의인 셈이다.
전주가 ‘맛의 고장’을 자임하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기후나 토양, 물이 좋아 생산되는 각종 농수산물의 영양성이 높다. 거기다가 김치나 장아찌같은 염장류, 젓갈, 독특한 조리기법등이 한 몫을 하며 음식맛의 다양한 조화를 이루어 내기 때문이다. 밑반찬 가짓수로 기를 꺾는 한정식이나 비빔밥, 콩나물국밥 같은 음식이 전주의 대표적 음식 브랜드다.그러나 한 번 얻은 명성이라 해서 전주 음식의 성가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 정도는 전국 어느 음식점에서나 내놓는 단골 메뉴이고 심지어 일본에서는 돌솥비빔밥을 만들어 자기네 음식이라고 강변할 정도다.음식에 대한 기호도 변한다. 아무리 전통음식이라 해도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입맛을 단숨에 바꿔 놓을수는 없다. 전주를 찾는 외래관광객들 사이에는 음식맛이 옛날만 못하다는 불평 또한 없지 않다. 실제로 한정식 같은 경우는 이미 이웃 광주가 더 낫다는 입맛타령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이런 마당에 ‘그래도 음식맛은 아직은 전주운운 해봤자다. 명성을 지키려면 소문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전주시내의 한다하는 유명 음식점 주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주한정식의 옛 명성찾기 방안을 논의한 것도 그런 연유로 보인다. 가만히 앉아서 쇠락하기보다는 자구책을 강구하겠다는 취지 아니겠는가. 이들은 인터넷에 전주한정식을 소개 하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매년 한차례씩 ‘한정식 축제’를 개최하자는데 뜻을 모았다한다. 또 옛 조리방식만 고집할게 아니라 변화하는 입맛에 맞춰 다양한 품목을 개발하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한다. 이에앞서 음식점 주인들이 서울과 광주의 유명 한식점을 찾아 벤치마킹까지 했다니 내심 조바심이 단단히 났던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그런데 이 자리에서 전주음식이 외면받는 이유중 하나인 서비스 부재나 위생관리의 미비점등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북도가 향토음식점으로 지정받은 업소에 대한 재정비에 나선 것도 이런 지적 때문이란 사실을 업주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명성되찾기는 아무래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볼수밖에 없다.연전에 전주대 학생 몇몇이 인터넷에 ‘얌얌(Yam Yam)’이라는 이름의 음식전문사이트를 개설한 일이 있다. 전주시내 음식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힌 이들의 그후 소식이 궁금하다. 유명 음식점 주인들이 그런 사이트를 한번이라도 검색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숲이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5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국민 한 사람당 1백만원이 넘는‘자연보너스’가 지급되는 셈이다.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사방사업 효과, 휴식공간 제공과 같은 산림의 공익적 기능을 모두 합친 결과다.우리가 이만한 혜택을 입는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나무심기에 쏟은 정성때문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광복과 6.25를 겪으면서 민둥산 아닌곳이 없던 우리나라 산야에 푸른 옷이 입혀지기 시작한것은 60년대 초부터라고 보면 틀림없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강력한 산림녹화 정책덕택이다.지금 전국 어느곳을 가나 웬만한 산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입목축적량이 3억㎥대가 넘는다. 전후(戰後)독일의 조림사업이후 최대의 성공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런 산림의 70%이상이 아직 30년생 미만의 어린 나무로서 목재 자급률이 6%를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숲은 우거졌으되 경제림 조성에는 실패했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하지만 산림녹화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한 가로수 조성사업은 어떤가. 성공적이다. 전국 각 지자체들이 기왕의 가로수대신 특색있는 나무심기에 경쟁적이다. 근래의 플라타나스나 포플러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사과나무나 감나무 살구나무같은 유실수를 심어‘꿩 먹고 알먹고’식의 실속있는 가로수 조성사업이 눈길을 끈다. 은행나무 가로수 같은 경우는 이미 보편화되어 아예 경쟁 축에도 끼지 못한다.산림청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숲으로 전남 담양의‘메타세콰이어’길을 뽑았다. 이 길은 그야말로 이름값을 한다. 도로 좌우로 울창하게 가지를 뻗은 숲의 경관은 보는이들의 감탄을 사기에 충분하다. 지난 72년부터 심기 시작했다니 지금 수령이 대략 30년쯤 된다.그동안 도내에서는 어쨌는가. 담양군과 이웃한 순창군 구림면에도 비슷한 가로수 숲이 조성돼 있다. 결코 담양군에 못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은 전군도로를 흉내내 도로변에 벚꽃나무 심기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해마다 봄철이면 도내 곳곳에서 벚꽃축제(?)가 성황을 이룬다. 너도나도 경쟁을 벌여 멋진 가로환경을 만든다는게 고작‘벚꽃길 조성’으로 멍든 모습이다. 숲의 효용가치나 기능, 도심공원의 경관조성, 미래 전망등에 보다 안목있는 산림정책을 펴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해방 이후 대통령선거를 치를때 마다 기발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전개되는 선거행태를 신물나게 보아왔기 때문에, 대통령선거 때만 되면 또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하는 버릇이 생겼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부정선거,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치러진 극도의 공포분위기선거, 선거판을 통째로 사버린 체육관선거, 오직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략적으로 급조한 3당합당과 당대 당연합 등, 정상 궤도를 일탈한 대통령선거에 익숙해져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그러나 이번 대통령선거는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대로라면, 또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조사결과대로라면 그같은 기대는 기우(?)로 끝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의 선례를 보면, 집권당 후보가 주도권을 잡고 대선을 치렀던 것이 통례인데, 이번에는 집권당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아직까지 지리멸렬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 또한 묘한 구도로 엮어져,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후보들이 지역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 유권자가 많은 쪽의 후보가 유리할 것은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가 공도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李會昌)후보가 33.8%의 지지률로 정몽준(鄭夢準)후보(22.7%)와 노무현(盧武鉉)후보(20.8%)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더구나 정후보와 노후보가 후보단일화를 할 경우에도 이후보는 노후보를 44.6%대 36.0%, 또 정후보를 42.5%대 38.5%로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제16대 대선은 한마디로 체육관선거 이후 가장 싱거운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이처럼 대선 판도가 이후보의 독주 구도로 굳혀져 가자 노후보와 정후보간 후보단일화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필패(必敗) 게임이 될 것은 너무다 자명한데 그냥 앉아서 최후를 맞을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듯 하다. 그러나 총론만 뜻이 같았지 각론에서는 여전히 ‘내가 진정한 후보’라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대선이 47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두 후보는 아직도 현실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정략적 연대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 국민은 하나마나한 선거보다는 멋진 한판 승부를 보고 싶어한다. 청산해야할 3김시대의 정치력이 그립게 해서는 안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소위‘결정타’라고 하는 스매싱이 있다. 이 스매싱은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구기종목에서는 그 명칭만 조금씩 다를 뿐 그 역할은 모두 한가지다. 아주 빠른 속도로 공을 쳐서 상대방이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인데 이런 속도를 내려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스매싱은 정말 모든 힘을 다 쏟아야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쏟을 수 있는 힘의 약 80% 정도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는 공의 빠르기와 그 방향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런 스매싱의 속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 덕분에 경기를 좀더 재미있고 쉽게 운영할 수 있게 된다.만약 기회가 올 때마다 100%의 힘으로 스매싱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량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 한 스매싱의 속도가 일정하기때문에 상대방은 쉽게 그런 공에 적응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반격의 기회로 삼게 될 것이 뻔하다.이런 20%의 여유를 떠올리게 된 것은 어제 폐막식을 치른 제8회 2002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 경기대회때문이다. 부산에서 7일간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기 진행상황은 차치하고 개회식 내용조차 보도하지 않는 일부 언론의 모습과 의례적인 방송내용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실망은 대회 홈페이지(http://www.fespic.or.kr)의 게시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언제나처럼 그렇구나…’라는 표현에서 장애인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관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관중석이 아예 없는 경기장에서의 경기, 경기가 끝난뒤에도 추위에 떨며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셔틀 버스, 일부 자원봉사자들의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 등은 장애인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그래도 이런 모습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인색하기는 했지만 방송과 지면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경기하는 모습이 안방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 레슬링 종목도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언론매체가 중계를 거듭한 뒤에야 그 이해의 폭이 넓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장애인 경기 중계방송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비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들의 삶이 한결 풍성하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한다. 20%의 여유를 권해본다.
경마, 경륜, 카지노, 복권등 합법적 도박산업을 꼭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도박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적은 돈을 베팅하며 놀이나 오락수준에서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나라는 가히 ‘도박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박’이 터지는 곳이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 특히 도박산업에 대한 고삐가 여기저기서 풀리면서 돈이 있건 없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큰 돈을 베팅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최근 재경부와 문화관광부가 국회 예결위에 제출한 도박산업 재정수입현황은 우리나라의 도박산업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도박산업 매출 추산액은 경마 7조8천억원, 경륜·경정 2조2천5백여억원, 카지노 4천9백여억원, 복권 1조22억원등 모두 11조5천5백여억원에 달한다. 99년의 4조4천4백여억원에 비해 3년사이 2배이상 증가한 것이다.이에따른 재정수입도 경마 1조7천7백여억원등 모두 2조8천여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전라북도의 한해 예산이 2조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고 보면 도박산업의 규모를 짐작할만 하다. 도박산업이 국가 기간산업화 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이같은 도박산업의 급팽창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도 결코 만만치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박중독자는 성인인구의 9.3%인 3백만명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도박은 마약 만큼이나 강한 중독현상을 일으킨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오죽하면 ‘손가락을 자르면 발가락으로 한다’고 까지 했을까. 도박중독은 1980년 미국 정신과의사들의 질병진단 분류표에 정식 등재된 정신질환이다. 도박중독자는 도박을 하지않으면 불안 초조 불면 허전함 등의 증상을 보인다. 도박은 점차 강도높은 스릴을 요구하는데 도박에 탐닉할수록 판돈을 키우는등 더욱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박중독자들은 스스로를 환자로 인정하지 않아 치료에 애를 먹는다.이제 도박중독과 이에따른 폐해를 개인차원의 문제로 간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도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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