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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에서 한때 볼·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전자시스템 도입을 검토한 일이 있다. 주심의 판정이 너무 자의적이라는 구단(球團)측이나 선수들의 불만때문이었다. 그러나 팬들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팬들은 오심(誤審)도 경기의 일부이고 그것은 그것대로 야구를 즐기는 또다른 묘미중 하나라고 본 것이다.야구뿐 아니라 모든 운동경기가 다 그렇듯이 심판 판정이 1백% 옳을수만은 없다.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수 있는 것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라운드가 너무 넓고 주심의 시야를 가리는 일이 많아 정확한 판정이 어려운것이 축구경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에 패한 이탈리아나 스페인팀의 오심항의는 도를 넘어 지졸하기까지 하다.우리팀이 과연 주심의 도움으로 이처럼 놀라운 신화를 창조했을까?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오심때문에 승리를 도둑 맞았는가? 아니다. 우리 국민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고 있으며 그 나라 국민들중에서도 양식있는 축구팬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승승장구 할수 있었던것은 히딩크라는 걸출한 감독의 지도력과 체력·스피드·기술을 끊임없이 담금질한 대표 선수들의 피와 땀의 결정(結晶)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파이낸셜타임스등 세계의 유수한 언론들이 월드컵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극찬할 정도로 한국팀의 기량은 이미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신장됐다.독일과의 16강전에서 패한 미국의 부르스 아리나감독이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버홀터선수의 슛이 독일 수비수 슛에 맞았으므로 페널티킥이 주어졌어야 한다는 베켄바우어의 지적에 대해‘패자는 유구무언이다. 축구의 세계에서는 일단 이겨야 그 다음에 무슨 말이든지 할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지고난후에 이러쿵 저러쿵 아무리 시비를 걸어봤자 돌이키기는 어렵다. 억울하다고 생각되지만 깨끗이 승복할수 있는 도량을 갖추는 것, 그것이 바로 참다운 스포츠맨쉽이다. 월드컵의 역사는‘이변의 역사’라고 할만큼 뜻밖의 결과가 많이 나온다. 이번 월드컵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지만 우리의 선전(善戰)은 이변이 아니다. 실력이다.
스포츠의 생명력은 건강한 육체들의 땀과 정열이 빚어내는 인간 능력의 무한함에 있다. 뛰고 달리고 부딪치는 인간의 본능적 투쟁력이 스포츠라는 ‘규정의 틀’속에서 승부를 놓고 여과없이 발산되는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 직접 뛰는 선수나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팬들이나 그 결과의 만족도는 대등하다. 최선을 다 한승부의 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팬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스포츠가 거대한 산업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는 맞다.또 있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새롭게 달성되는 흥미진진한 기록들과 뒷얘기들이다. 어쩌면 스포츠의 진미(眞味)는 여기서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포츠 세계에 정보화 물결이 거센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포츠사는 인터넷을 통해 ‘스포츠 정보욕’을 충족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중이라 한다. 경기일정이나 결과만이 아니라 선수의 몸에 작은 칩을 달아 경기중 감정 및 신체 상태까지 실시간대에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예컨대 축구의 경우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 22명의 체력이 현재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그래프로 보여줄수 있다는 것이다.뉴욕의 스포츠비전사 또한 비슷한 사업구상으로 바쁘다. 이 회사는 아이스하키 ‘퍽’의 움직임을 화면에서 쉽게 알아볼수 있는 특수장치를 개발중이며 야구에서 홈런 볼이 팬스를 맞지않았을 경우 몇m짜리 였는지를 보여주는 시스템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기록의 경기에 걸맞게 홈런 볼의 비상거리까지 정확히 잴수 있다는것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스포츠 정보화는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도 빛을 냈다. 팬들은 TV화면을 통해 경기중인 두 팀의 경기력을 실시간대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가령 볼 점유율이나 슈팅 성공률이 한국은 몇%, 미국은 몇% 하는 식으로 도표로 대비되어 관전의 묘미를 한층 높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두 팀의 슈팅수나 반칙, 업사이드, 코너킥등을 해설자가 설명하는데 그쳤던데 비하면 정보화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나저나 정보화가 이런 수준으로 진행되면 우려되는 일이 없지 않다. TV스포츠 캐스터들의 할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쓸데없는 너스레(?)를 안들어서 좋은점도 있겠지만…
재작년 말, 전 세계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과정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가 만개(滿開)한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플로리다주 선거는 총체적으로 부실하여 한국적 시각으로 본다면 원인무효나 다름없는 선거였다. 선진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미국에서 정치 후진국에서나 있음직한 투표용지와 개표기에서 중대한 결함이 발생했고, 마이애미 해럴드지는 죽은 사람겧サ佇舅?투표권이 없는 중죄인 까지도 투표를 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으니 플로리다주 선거가 얼마나 엉망으로 치러졌는지 짐작이 간다.게다가 잽갮겫館?주지사와 조지갮겫館?후보는 친형제였으니 의혹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었고, 또 수(手)작업 검표를 명령한 주대법원과 이를 중지시키는 명령을 내린 연방 대법원의 판결도 4대3과 5대4의 아슬아슬한 표차였으니 선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치열했는지는 불문가지이다. 더구나 플로리다주 선거 결과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판이니 그 선거가 얼마나 격렬하고 혼탁했겠는가.그러나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자 앨겙藉?후보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를 인정한다”고 선언하고 “부시 당선자에게 연설 직전 축하전화를 했는데 이제 다시는 전화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청중을 웃기는 여유까지 보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헌정중단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실축구가 사회 일반의 가치로 자리잡은 미국, 그러나 그들은 세계의 우려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난제를 해결 해 냈다.6?3지방선가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고소겙紫?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선거법이 워낙 강해서 어지간한 사안도 걸려들기 십상이어서 이를 악용, 똑같은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 사람들이 당선자를 물고늘어지고 있다. 선거풍토가 이렇게 험악해서야 지역화합과 지역발전을 어떻게 이룰수가 있겠는가. 4년 후 선거는 다시 치러진다. 승복하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여 유권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4년 후를 기약할 수 있다. 질시와 반목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이제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8강에 안착한 한국 축구가 4강진입을 위해서 스페인과 광주에서 한 판 승부를 겨루게 된 것이다. 오늘의 경기는, 이젠 바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한 편의 드라마’라는 표현이 제일 어울리는 이탈리아전 승리를 딛고 얻어낸 기회이다.지난 화요일 저녁은 정말이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든 날이었다. 경기 초반의 페널티 킥 실패와 이어진 실점, 그리고 더 강력해진 빗장 수비 등으로 우리의 8강 진출은 멀어지는 듯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터진 설기현의 동점골, 연장전 막판 안정환의 골든골은 우리 국민의 뇌리에 강한 자극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관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조차 열광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 마디로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나라 대표팀이 선전하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한데 말이다. 한 번 물어 보자.‘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살지?’월드컵이 끝나면 아니 한국 대표팀의 승리가 끝나면 월드컵의 재미는 끝날 것인가. 이번처럼 재미있고 볼만한 경기를 다시 보려면 4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지만 재미는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부는, 특히 관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축구를 포함함 모든 스포츠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정신적인 활동을 육체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묘미가 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정말 재미있는 축구를 만나려면 세부적인 축구기술에서부터 팀전술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배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만약 축구기술 하나만 배워본 사람이라면 국가대표 아니 우리 전북 현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기술에서도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공은 둥글다. 오늘 스페인과의 경기결과를 예단하지 말자. 그리고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는 결과에 관계없이 아낌 없이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오늘의 승부에 연연해 하지 말고 축구를 이해하고 즐기기를 기대해 본다.
월드컵게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인가? 왜 우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했을까? 또는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동원된 것일까? 잘 생각해보면 월드컵은 국가나 전주시의 행사이지 나의 행사는 아니다. 내가 월드컵을 하자고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모든 사람들이 전국에서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때로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수천만명이 단일한 방향으로 열광을 하다니. 물론 재미도 있었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뭉클한 사랑도 느껴졌다. 아! 나와 같이하는 민족이 있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원래 국가 대항 축구는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도구이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국민의 열화같은 성화를 모아 독재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활용하였다. 그런데 한국은 물론 독재국가가 아니다. 어디에서 그런 열화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을까?현실에 대한 좌절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고 정치는 패거리싸움으로 탈출구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오랜만에 누구나 동참을 할 수 있는 국가적인 탈출구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좌절감이 없더라도 승리 자체로도 기분이 좋았겠지만.박세리가 미국 프로골프에서 우승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박세리가 처음 수상할 때, 무엇이 대단하다고 그처럼 전국이 난리였을까? 지금은 박세리나 김미현이 우승하더라도 덤덤하게 지나간다. 그러고 보면 전국이 들떠 기뻐하게도 하고 또는 덤덤하게도 하는 것도 방송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방송이 한달 내내 한국축구팀이 한민족인 것처럼 나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물론 이기거나 우승하면 좋다. 그리고 한국의 능력을 만방에 보여주면 기분도 좋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그렇지만 정말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설령 우승하지 못하거나 패배하면 어떤가? 히딩크감독이 한 말이 생각난다. ‘게임으로 즐겨라’그러자. 게임으로 즐기자. 너무 과다하게 축구가 국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이다. 그 다음도 생각하자.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코스로 대개 로마를 맨 마지막에 넣는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를 마지막 방문국으로 잡은 식이다. 관광업계의 설명이 그럴듯 하다. 고대이후 로마제국이 유럽 대륙을 석권함으로써 비잔틴문화와 혼재된 로마문명의 유적이 각국에 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국을 돌아 다니다 보면 문명의 동질성만큼 중세이후 건축물이나 유적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도시 전체가 유적덩어리인 로마를 먼저 관광하고 나면 다른 나라 도시들의 볼거리 시들해진다는 평가가 결코 빈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다.88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관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태국이나 홍콩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국가들을 거쳐 지금은 유럽북남미, 호주 아프리카 등지로까지 대상국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해외에서 소비하는 경비가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관광하며 쓰는 돈보다 훨씬 많다는 통계로 나와 있다. 지금도 골프·카지노등 호화사치 관광이 도를 넘고 있다는 못가진 사람들의 불평과 비난속에서도 인천국제공항의 출국 터미널은 해외관광을 떠나는 내국인들로 북적이고 있다.그러나 눈을 안으로 돌려 보자. 굳이 외국에 기를 쓰고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도 얼마든지 볼거리가 많다.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제주도를 비롯해서 경주·설악산·무주·동서해안등 관광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라안 관광지를 다 찾아도 평생이 모자랄 판이다.문제는 관광을 제대로 할수있는 시설이나 여건 볼거리가 제대로 갖춰져 있느냐이다. 일찌기 관광산업이 발달한 유럽 여러나라들이 나라마다 독특한 명소를 개발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여 관광객들을 끌어 들이는 마케팅 전략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주에도 새로운 관광명소 하나가 등장한것은 반가운 일이다. 풍남제때 빛을 낸 태조로(太祖路)가 그곳이다.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시민들도 그 화려한 변신이 놀라울 정도이다. 말로만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 이처럼 전주의 전통문화를 한눈에 체험할수 있는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태조로가 서울의 로데오거리나 동경의 긴자(銀座), 파리의 상제리제 거리만큼 명성을 얻지 못하란 법이 없다. 앞으로 더욱 가꾸고 다듬기 나름 아닌가.
우리의 태극기가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것은 1882년 8월 일본 고베(神戶)에서다. 당시 특명전권대사겸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니시무라야(西材 ) 숙소에 지금의 태극4괘가 그려진 기(旗)를 게양하면서다. 물론 당시엔 국기의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이었으므로 단지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일본행 뱃속에서 급조된 일종의 깃발이었을 뿐이다.그랬던 태극기가 정식으로 국기가 된것을 정부수립후인 1949년 1월 당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특명에 의해서다. 이대통령은 국민들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그 결과 국기제작법과 게양법등 관련 규정이 마련되면서 태극기가 국기로 정식 탄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태극기는 각종 의전행사나 국경일에 반드시 게양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일깨우는 공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토록 신성과 권위의 상징으로 외경시 되어온 태극기가 이젠 월드컵을 계기로 한결 친숙한 시민들의 벗으로 다가서고 있다. 우리 팀의 경기가 있을때마다 관중석과 거리에 태극 물결이 휘몰아 치고있고 택시나 학생들의 책가방에까지 태극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응원단들에게도 태극기는 다양한 소도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얼굴에 태극모양을 새기는것은 보통이고 머리에 쓰는 두건, 스카프, 망토가 등장하는가 하면 한 백화점에서는 국기를 본 딴 수영복 패션쇼까지 열릴 정도다. 태극기를 비에 젖도록 방치했다해서 국기모독죄로 입건되는 일까지 있었던데 비하면 국기 사랑의 세대변화에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이런 행태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기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우려가 없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의 국기 공경은 사실 지나친 엄숙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온것도 사실이다. 외국에서는 국기를 일상의 도구화라고 상품화하여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비하면 우리가 오히려 늦은감이 없지 않았다고 볼수도 있다.오늘 드디어 우리 축구가 이탈리아와 8강진출을 놓고 한 판 승부를 겨룬다. 또한번 태극물결이 전국을 수놓을 판이다. 전국민의 염원을 모아 태극기가 이탈리아의 3색 국기를 물리치기를 기대한다.
우주의 여러 천체를 관측 연구하는 천문학은 인류의 출발과 더불어 비롯됐다고 할 정도로 가장 오래된 자연과학이다. 고대문명 발상기에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달력을 만들어 농경이나 수렵에 필요한 계절을 제시해주었고, 또 별의 움직임에서 신의 뜻을 살핀다고 하는 통치의 필요성에 의해 천체를 관측하였다. 바빌로니아·헤브라이등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천문학과 이집트의 천문학은 그후 그리스로 전해져 발전하였다.동양에서도 역시 고대부터 천체관측이 행해졌다. 그리스와 비슷한 시대인 한(漢)나라 때에는 천체관측 기기인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어 천체현상을 예보하기 위한 관측에 사용하였다. 원(元)나라 징기스칸의 손자인 훌라구는 13세기에 중앙아시아의 마라게에 천문대를 세워 천체관측을 하였는데 당시의 관측기기는 후대인 코페르니쿠스 시대에 유렵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우수했다고 한다.중국의 문화권에 속해있던 우리나라도 천문학분야에서 그영향을 받아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역법(曆法)이 도입되었다. 신라말기 선덕여왕때는 첨성대가 세워져 그곳에서 천체관측을 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나라 천문학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던 때가 조선 세종때였다. 천문기구인 서운관(書雲觀)이 확대되고 각종 관측기기가 제작됐으며, 세종 자신이 뛰어난 천문학자로서 관리들이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천문학 분야에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지역에 천문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전북도가 과학기술부를 방문하여 긍정적 입장을 받아낸 계획은 해발 1천34m의 무주 적상산 정상에 국비와 지방지 28억원을 들여 2백평정도 규모의 관측실과 관람실등을 갖춘 원형 천체돔 모양의 천문대를 건립한다는 것.적상산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한 사고(史庫)가 있던 곳이며, 사고를 지키는 승병들이 기거했던 호국사가 자리한 역사의 현장이다. 또한 지난 90년대에 건설된 양수발전소의 상부 댐이 산정호수를 이루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청정지역인 무주에 천문대가 건립되면 또 하나의 명물이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추진되도록 관계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오늘이 단옷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날을 일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겼다. 아낙들은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았고 남자 아이들은 오시(午時)에 목욕을 하면 탈 없이 지낼 수 있다는‘단오 물맞이’를 하였다. 그리고 수리취떡(車輪餠)과 쑥떡 등 음식을 나누었고 그네뛰기, 씨름 등을 즐겼다. 단옷날에 애용한 창포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손발이 저린 증세를 가라 앉히는 등 약효가 분명한 것으로 보아 단옷날은 축사(逐邪) 정도의 미신적 의미가 아닌 조상들의 경험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절기인 것이다. 더구나 단옷날은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여름이고 모내기를 끝낼 즈음이어서,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실질적인 행사이기도 하였다.3,40년 전의 덕진 연못은 많은 사람들의 와서 단오제 행사를 즐겼던 곳으로 기억된다. 길가에 늘어선 좌판들,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 연못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 일찌감치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사람들, 막걸리를 파는 주막등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단오제가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꼽혔던 것으로 보면 그 행사의 중요성이나 규모는 짐작하고도 남는다.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런 단오제의 명맥이 끊긴 모양이다. 단옷날인 오늘, 주변을 둘러보니 지역행사도 자리한 지 44년이나 된 풍남제가 눈에 띈다. 풍남제가 단오제의 전통을 반영하려고 한 행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풍남제는 1967년 풍남문 중건 200주년을 기념하던 해에 전주에서 이루어진 행사를 통합한 향토민속축제라고 한다. 이런 설명대로 하자면 단오제의 전통은 이어져야 할 법도 한데 이번 풍남제는 프로그램에서 단오의 본모습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단오제를 염두에 둔 행사였다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풍성했던 그 겉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도 주최측에서 의도한 바와는 다른 안타까운 모습들로 말이다.풍남제라는 축제가 전주의 역사를 재발경하고 전주만의 흥겨움과 풋풋한 인정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우리 조상들이 소중히 여겨왔던 단오의 전통고 한 꼭지 자리차지를 했으면 한다.
신이 인간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술도 각 민족이나 나라마다 내세우는 전통주(傳統酒)들이 있게 마련이다.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영국의 위스키, 러시아의 보드카, 몽골의 아유주, 멕시코의 데킬라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지역마다 특성을 지닌 술이 많아 3대, 5대 혹은 18대 명주(名酒)를 가려 뽑을 정도라고 한다.우리 조상들도 ‘적당한 음주는 백약(白藥)의 으뜸’이라고 했을만큼 술을 즐겼다. 고개를 넘으면 술맛이 다를 정도로 지방마다 독특한 가양주(家釀酒) 전통이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의 경우 고서(古書)에 나타난 전통 민속주의 종류만도 대체로 2백여종을 헤아린다.그러나 이같은 전통은 이땅을 강점했던 일제에 의해 단절됐다. 일제는 1916년 ‘주세령’으로 가정에서 술을 담그는 것을 금지했다. 광복은 일제에 의해 끊긴 우리 전통술의 명맥을 되살릴 좋은 기회였으나, 역대 정부는 일제의 주세정책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60년대에는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분으로 만든 식용 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마시도록 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전통주마저 사라져 갔다.맥주나 위스키와 같은 서양의 곡주가 술의 방효를 위해 맥아(麥芽·엿기름)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전통술은 누룩을 쓰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누룩중에서도 밀을 껍질째 갈아 반죽한뒤 곰팡이를 띄워 만든 막누룩을 주로 쓰는데 이는 쌀로 만든 일본누룩 입국(粒麴)과도 구별된다. 일본식 청주가 단순·경쾌한 맛인 반면 각종 무기질을 포함한 밀껍질이 들어간 우리 술은 그윽한 맛을 낸다.우리 전통술은 제조방법에 따라 쌀과 누룩을 발효시킨 술밑(酒田)을 맑게 여과한 약주, 술밑을 증류해 얻는 소주, 약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어 거른 탁주(막걸리)로 분류된다.‘맛과 멋의 고장’인 우리지역에 엊그제 전통술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전주 전통문화지구에 자리한 이곳에는 전통술의 재현은 물론 한국의 가양주를 대표했던 도내 전통술 50여가지를 맛보고 담그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전시실을 비롯 발효·숙성실, 향음주례관등을 갖추어 놓았다.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전주에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운영되길 기대한다.
김완주시장이 전주시장으로 취임하면서 문화재를 주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자물쇠로 채워져 있던 경기전을 열어 주민들이 건물 내로 들어가 태조의 어진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객사도 문을 열어 누구나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기전과 객사가 전주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등장하였다.그러나 이번 월드컵 기간동안의 문화재 활용은 지나쳤다. 객사 안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하여 많으면 수천명까지 그 좁은 공간에 밀집하여 한국전을 보고 응원하도록 하였다. 다른 장소도 많은 데 하필이면 객사냐?객사는 보물 제583호로 조선 초 전주부성을 창건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개축되었다. 태조 이성계 출향지의 객사라 하여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도 불렸다. 문화재를 주민에게 개방하여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것은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화재에서 수천명이 모여 열띤 응원전을 벌이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여러 가지 불상사에 의해 문화재가 훼손될 수도 있다. 또한 문화재가 축구응원장소나 또는 행사장으로 전락된다면 원래 문화재로 지정한 의도가 크게 손상될 수 있다.전북유형문화재 제15호인 한벽당은 전주8경이 하나로 손꼽히며 빼어난 풍광을 자랑했던 곳이다. 청초한 물에 안개 낀 산수가 어우러져 조선시대 전주 최고의 정자였다.이곳에서는 풍남재의 일환으로 매일 4시부터 전통음식과 차를 맛보는 행사를 열고 있다. 각종 국악 공연도 이어지고 있다. 한 두 번이면 몰라도 매일 같은 행사를 한벽당 건물 내에서 지속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사적 339호인 경기전의 경우 건물 외부에서 행사를 하지 내부에서 행사를 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는 문화재를 주민에게 친숙하게 하고 문화재를 통해 전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그렇지만 문화재 건물 내에서 다중이 모여 문화재와 관련 없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행사는 하고 나면 지나가지만, 문화재는 후손 대대로 보존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다. 활용하더라도 문화재의 의미가 훼손될 정도까지 활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종이를 크게 나누면 수록지(手鹿紙)와 기계지(機械紙)로 구분된다. 수록지란 사람이 손으로 떠내어 만드는 종이를 말하고 기계지란 이름 그대로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종이를 말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손으로 만든 종이라면 무조건 한지(韓紙)라고 부른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한지는 중국지( 紙)나 화지(日本紙)와 달라서 닥나무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우리고유의 종이를 말한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서 그 섬유를 대나무를 쪼개어 엮은 초지발을 이용해 떠 낸후 햇볕에 말린 종이다. 그공정(工程)이 매우 힘들고 까다로워 지금은 대량 생산이 힘들고 오직 전주지방에서 전통방식을 따라 특산품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한지와 대조적인 종이가 화지(和紙)다. 화지는 일본 사람들이 개발한 종이인데 투박한 한지와 달리 매끄럽기는 하지만 잘 찢어진다. 그래도 발이 고와 붓글씨를 쓰는 서예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화선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바로 그 종이다.한지는 장판지나 창호지와 같이 재래식 한옥구조에 주로 이용됐으며 물론 서예나 책자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다만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용도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용도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 생산외에 벤처기업에서 사진 인화지를 개발하기도 하고 한지를 옷감으로 활용하는 기술도 선보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지금 전주에서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종이축제가 열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주 전통한지의 유래, 제작과정, 용도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한지 제품등을 선보여 국내외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전통한지를 가공한 패션쇼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 내게하기도 한다.특이한것은 동서양 작가들이 펼치는 국제종이작가초대전.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치러지는 이 행사에는 스웨덴과 독일등 유럽 작가들과 국내작가등 36명이 참여하여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종이에 표현하는 예술의 장을 마련했다 한다. 그중에서도 한지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특히 주목을 받았다니 차제에 사라져 가는 우리고장 전통의 한지를 되돌아 보고 그 한지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높였으면 한다.
지금 60대에 이른 사람들은 6·25 전쟁직후 초등학교에서 분유를 받아왔던 기억을 갖고 있다. 미국이 식량원조 차원에서 지원해준 분유를 학교 급식용으로 나눠줬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것을 가공해 먹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터라 집에 가져다가 물을 붓고 쪄서, 딱딱해진 덩어리를 이빨로 깨먹던 기억들이 생생하다.서양 사람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우유가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으로 일상화된것은 60년대 초기 외국에서 젖소를 대량도입하면서 부터다. 물론 일제하에서도 연간 3천t 정도가 생산이 됐고 역사적으로는 3국시대에 이미 우유를 마셨다는 기록도 있긴 하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층이 마시는 희귀식품으로 유우소(乳牛所)까지 둘 정도였다니 우리 민족도 우유와의 인연이 서양 못지 않았음을 알수 있다.우유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식품이라고 한다. 우유와 달걀의 발견은 식품 발달사에서 신(神)이 인류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까지 회자된다. 우리의 음식문화가 염장(鹽場)이나 발효에서 비롯됐듯이 서양음식도 우유를 가공한 치즈나 버터 포타주 소스등으로 점차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엔 단순히 음용(飮用)으로만 보급되다가 점차 유제품으로 가공되어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62년계 부터다. 낙농업이 성행하고 외국으로부터 젖소를 대량 입식한 결과다. 지금 40대이후 세대들이 마시는 우유나 가공 유제품의 대량 소비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그런 우유가 요즘 국내에서 푸대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한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분유 1만8천여t이 소비가 안돼 재고로 쌓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 98년 분유파동때의 1만6천t보다 13%나 늘었다니 제2의 분유파동이 우려된다. 도내 낙농가들도 과잉생산에 따른 우유 재고량 누증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낙농업협회등에서 ‘우유 마시기’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소비촉진은 아직도 기대난이다. 도대체 마시지 않는 식성을 탓할수만도 없는 노릇이니 딱한 일이다. 근본적인 생산량 조절, 늙은 소 도퇴작업, 정부지원책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차제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유 보내기’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한번쯤 검토해 볼 일이다.
온 나라에 ‘히딩크 열풍’이 불고 있다. 단순 비교할 성질은 아니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국 국민으로서는 처음으로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한(韓)민족의 역사를 새로 썼을때도 이처럼 열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 이후 본선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하다 2002 한·일 월드컵 첫 경기에서 폴란드를 2-0으로 꺽고 48년만에 통쾌한 승리를 거뒀으니, 한반도가 들썩들썩 할만도 하다. 그것도 자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할것 처럼 보였던 한국 축구가 히딩크의 지휘봉 아래 다시 태어났으니, 그를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 뭐가 이상하겠는가.정작, 히딩크 본인이야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성실히 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히딩크 신드롬’은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월드컵대표팀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전 국민이 1천원씩 모아 히딩크를 영원히 잡아두자” “히씨 성의 시조(始祖)가 돼 주세요”라는 내용의 글들이 하루에도 수백건씩 꼬리를 물고 있고 히딩크 제스쳐에 히딩크 인형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재계에서도 “히딩크는 선수 선발에서 부터 베스트 일레븐 확정때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고 공평한 잣대를 적용했다. 그는 스타플레이어 조차도 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탈락시켰다”며 히딩크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눈치 빠른 정치권에도 어김없이 히딩크 바람이 불고 있다. 유세장마다 히딩크의 지도력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엷은 하늘색 셔츠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히딩크 패션이 후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다 좋다. 16강에 오르는 것이 우리의 소원인데, 히딩크가 뜨면 뜰수록 우리는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격언(格言)에 칭찬도 지나치면 욕(辱)이 된다는 말이 있다. 더구나 쉬 뜨거워지고 쉬 식는 국민성에, 1등과 꼴등만 있고 중간은 없는 극단적인 국민의식에, 기분나는대로 띄웠다가 기대에 어긋나면 여지없이 매도해 버리는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 벌써부터 걱정된다. 설혹 16강에 가지 못하더라도 호들갑을 떨면서 실망하거나 히딩크를 천당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유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할일은 다 한것 아닌가.
전주에서도 월드컵 교통대책의 하나로 자동차 2부제가 강제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동차 2부제가 아니더라도 자동차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통체증과 주차문제로 인한 불편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더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많은 재원의 확보와 도로나 주차장의 효율적 이용 면에서 한계가 있다.좀더 바람직한 방법으로는 다른 교통수단의 활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는 그 중 대표적인 대안 교통수단으로 꼽을 수 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현재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자전거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건축가 김수근이 생전에 서울의 교통대책으로 4대문 안의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대신 자전거를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자전거가 대체교통수단으로 자주 지목되는 이유는 그만큼 효율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교통흐름이 지체되는 시간대에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의 탑승인원, 그리고 주행거리를 생각한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자전거로 대체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건강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전주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전용도로가 제대로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보행자와 차량 그리고 내놓은 물건들이 자전거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개설된 전용도로라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 주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자전거를 타라고 홍보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활용하게 될 것이 때문이다.
전세계 수백명의 사람들을 자살하게 한 전설적인 노래‘글루미 썬데이(Gloomy Sunday)’는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연인을 잃은 아픔을 담은 노래다. 레코드로 발매된 당시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이 노래를 듣고 1백87명이 자살했다. 지금처럼 대중매체가 발달하기 전에 노래 한곡이 자살자를 속출시켰던 전설같은 얘기이다. 사회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자살에 대한 이론을 정립시키고 자살예방의 심리요법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10대 사망원인중에 포함될 정도로 이미 우리 사회의‘주요 현상’이 되었다.뿐만 아니라 갈수록 자살 사망률이 늘어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90년 한국인의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9.8명이었다. 그러나 10년후인 2000년에는 14.6명으로 49%나 증가한 것이 이같은 사실을 반증해 준다.지난주 또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20대 남자와 10대 소녀가 강원 양양에서 승용차 배기가스를 이용 동반 자살해 충격을 주었다.인터넷 자살사이트를 매개로 한 사건은 지난 2000년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20대 남성 2명의 동반자살이 처음이었다. 그후 타인의 자살을 도와준‘촉탁살인’,자살사이트에 심취한 초·중학생의 자살사건등이 발생한데 이어 최근엔 자살 방지를 목적으로 개설된‘안티(Anti) 자살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알게된 30대 남자와 여고생 2명이 아파트에서 동반자살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그때마다 인터넷 자살사이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했지만 신통한 해법을 찾지 못한채 끔찍한 사건을 다시 목격하게 된 것이다. 당국은 자살을 권유하거나 수법을 알려주는 사이트는 폐쇄를 유도하지만 실제로 검색사이트에 등록되지 않은 자살사이트가 수십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는 지금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인터넷 사용인구가 2천4백만명에 이르는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화의 역기능을 막아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보호해주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부정하는 자살사이트는 가동되어서는 안된다.
전주시 중앙동에 중국 패루가 준공되고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패루는 전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소주시의 이름을 따‘소주가’란 이름이 부착되어 있다. 시가 추진하는 차이나타운 조성사업의 일환이며 중국 기술자는 물론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각종 건축자재로 만들어졌다.전주에 처음 중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된 것은 1900년대 이후이다. 그 이전에도 무역을 하는 청나라 사람들이 거주하였겠지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907년 전동 성당을 짓기 위해 중국에서 벽돌공과 석공들을 불러온 것이 시초이다.그 당시 한국에서 벽돌을 굽고 또는 벽돌로 건물을 짓는 방법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중국사람들이 와서 해야했다. 서울의 명동성당을 지을 때도, 전주의 전동성당을 지을때도 그랬다. 그래서 중국인 백명정도가 전주에 와서 서문밖에 거주하였다. 현재의 다가동파출소 서쪽의 골목 양옆이 주거지역이다. 여기에는 1910년대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현재도 화교소유의 중국음식점, 화교소학교 건물이 있다. 이곳이 전주 최초의 차이나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이 서문에서 동문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때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길이다. 민족의 흔적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도로를 내기 위해, 일제가 전주성 서쪽벽을 1907년 부숴버렸다. 그 당시 서문밖에 살던 일본인들이 점차 현재의 중앙동 웨딩의 거리로 진출하여 동문사거리까지 이르렀다. 이 길은 전주시내 최초의 근대적 가로망이며 또한 관통로가 생기기 전인 1970년대초까지 전주 최고의 변화가였다. 어쨌든 동문거리는 전주의 근대를 상징하는 거리이다.홍지서림에서 동문사거리까지 오는 8일과 9일 동문거리의 축제를 한다. 주로 근대를 복원하고 근대적인 공동체, 추억을 되살리고 즐기기 위한 축제로 보인다. 동문거리에는 근대적인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그 당시의 문화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어 좋은 추억거리가 되리라 생각한다.중앙동 페루나 차이나 타운, 그리고 경원동의 동문거리축제가 우리의 옛추억도 살리고, 전주 역사의 연속성도 복원하고, 중국이나 일본과 새로운 차원에서 관계를 확대해나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월드컵을 넘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6·13지방선거가 중반전에 접어 들면서 전국 곳곳의 유세현장이 말 잔치로 풍성하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험장에서 쏟아지는 후보자들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역대 선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공약으로나 내세울만한 거창한 구호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대방 후보를 비난하는 온갖 험구와 흑색선전도 변함없다.지방자치도 일종의 정치행위라면 후보자도 정치인일수밖에 없고 정치인이 말을 잘 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말이란 많이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말만 골라서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서양속담에 ‘많은 말은 칼이상으로 사람을 해칠수 있다’는 경구(警句)가 있고 ‘말이란 생각하는 것을 속이기 위해 인간에 주어졌다’고 설파한 프랑스 정치인도 있다. 할 말은 하되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아야 하며 품위와 절제의 미덕을 지킬줄 아는것이 ‘말잘하기’의 기본이 아닌가 싶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방선거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삼아 기세 올리기에 한창인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盧武鉉)민주당 후보간 말꼬리잡기는 도를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이후보가 ‘빠순이’나 ‘옥탑방’을 잘 몰랐다 해서 크게 흠이 될 일이 아니듯이 노후보가 흔히 쓰는 ‘깽판’이란 용어를 썼다해서 저질발언 운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작 문제 삼아야 할 ‘말 실수’들은 ‘공업용 미싱발언’이나 ‘창자를 꺼내 씹어 먹는다’든지 ‘정육점 칼로 집도하는 격’이라고 한 험구들이다. 친일파은은 하며 한 집안의 가계(家系)에 ‘놈’자까지 붙인 경우도 마찬가지다.지난 84년 미국 대선때 레이건의 유머는 지금 두후보간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고령과 관련하여 먼데일이 ‘너무 늙지 않았느냐’고 비꼬자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다. 너무 젊거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받아 넘겼다. 미국 유권자들은 그를 선택했었다. 문제는 노후보의 언행을 사사건건 문제삼아 왜곡(?)과장을 일삼는 일부 언론보도에도 책임이 없지 않은것 같다는 국민들의 생각에 있다. 그러니 노후보의 가식없는 직설적 화법에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많은 그의 지지자가 늘어나는것 아닌가.
부모에 대한 효(孝)는 우리 민족에게는 변함없는 도덕과 윤리규범의 으뜸이다. 우리 조상들은 ‘효는 하늘의 불변하는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天之經 地之義)이라 하여 인륜을 넘어 천륜이라고까지 단언해 왔다. 공양미 3백석에 몸을 팔아 심봉사의 눈을 뜨게한 효녀 심청의 얘기나 부모간병을 위해 대변을 맛 보기도 했다는 효자의 얘기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는 효행이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그러나 효행록(孝行錄)에 전해 내려오는 이런 수많은 사례들이 오늘의 가치기준으로 볼때 얼마나 실천적 규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부모가 주신 머리털 하나도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전통적 효도관을 지금의 고도 산업사회에 대입(對入)시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낡은 사고(思考)일지도 모른다. 갈수록 더 해가는 핵가족화 영향으로 부모간이나 가족간 유대가 붕괴되어 가는 마당에 삼강(三綱)이 어떻고 오륜(五倫)이 어떻고 해봤자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 오는 세태가 아닌가.물론 우리사회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효를 몸으로 실천하는 효자·효녀들의 얘기는 아직도 주변에 많다. 신부전증을 앓는 어머니에게 신장을 떼어준 딸, 간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사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수술을 해준 아들의 효행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장병(長病)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치매를 앓는 노부모때문에 온갖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억울한 자식들도 많은게 우리사회다. ‘진자리 마른 자리갈아 뉘시던’하늘같던 부모의 은혜가 고부간이나 부자간 갈등으로 송사(訟事)의 대상으로 지탄받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엊그제 경기도 의정부지원에서 내려진 ‘굶어죽은 노모’에 대한 판결은 새삼 효란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 한다. 치매를 앓는 노모를 돌보지 않아 굶어 죽게한 며느리 대신 그런 정황을 알면서도 못본채 방치한 아들에게 법은 더욱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그러나 ‘자식으로서의 최소한 도리’와 결과적으로 ‘가족간 불화의 씨앗’을 제공한 치매성 노인의 의식 상충은 과연 어떤 윤리적 잣대로 재단할수 있을까. 재판부도 도덕과 인륜, 효를 법으로 강제할수 밖에 없는 현시를 고민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런 경우가 어디 그 쪽 뿐일것인가에 생각이 이르면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참정권(參政權·Politcal rights)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선거직이든 출마할 권리가 주어지지만 이따금 국민 정서에 크게 어긋나는 사람이 후보로 나서 정치를 희화화 시키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후보 자격을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에서조차 ‘인간쓰레기’취급을 당하는 위인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백번을 양보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물론 낙선을 시켜버리면 그만이지만 상처받은 민주 시민의 자존심은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지, 쓴웃음이 나온다.이번 6·13지방선거 후보자 신청을 마감한 결과, 전국적으로 모두 1만9백14명이 입후보 했는데 이 가운데 12.4%에 이르는 1천3백57명이 전과(前科)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전과가 꼭 불명예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훈장같은 전과가 있는가 하면 사회통념상 충분히 용인이 되는 불가피한 전과도 있다. 또한 전과가 있다고 해서 자격없는 후보요, 전과가 없다고 해서 훌륭한 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죄질이 흉악하거나 파렴치한 후보는 두번 다시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야 한다.전과기록이 처음 공개되는 이번 선거에서 최다의 전과를 갖고 있는 후보는 충남 논산시의원에 출마한 K모씨로 특수절도와 폭력·주거침입·상해 등 14범이나 된다. 경기도 연천군수 후보로 나선 Y모씨도 공무집행방해와 폭력 등 전과 8범이었으며, 서울과 광주 기초의원 후보의 경우 윤락행위방지법과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위반·강간치상등의 반 윤리적 전과자도 끼어 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 대부분은 전과기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그나마 위안이 된다.하지만 어쩌닥 정치판에 이런 막가는 사람들까지 출연하여 설치게 됐는지, 정치인은 물론 온 국민이 깊은 성찰을 해야할 것 같다. 정치가 오죽 만만하게 보였으면 감히 그들이 정치판을 기웃거리게 됐을까? 하기야 정치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에서조 조차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 1순위로 정친인을 꼽는다고 하니 정치, 그 초상(肖像)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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