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정치인의 고해성사
문민정부 통치가 한창이던 지난 95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 제일의 재벌 이건희(李健熙)회장이 북경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 석상에서 ‘한국의 기업은 2류, 공무원은 3류, 청치는 4류’라는 발언을 했다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으로 부터 미움을 사,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심경에서 이같은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속시원한 말을 했다’는 반응이었다. 지긋지긋한 군산독재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시대 새정치가 싹을 틔우는가 싶었는데, 신물나는 정치형태는 방법만 바뀌었을뿐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 국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그 후 7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형태는 어떠한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 부분 정치발전이 이뤄진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으나,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정치적 기교만 더 교묘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하여, 정치판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던 정치개혁 입법도 한 해가 다가도록 특위조차 열지 못하고 또 말장난으로 끝나고 말았다. 선거공영제의 전면 도입, 1백만원 이상 정치자금의 수표 사용 의무화, 정치자금 수입지출의 단일 계좌 사용 등, 선관위가 제출한 정치개혁 현안들이 그렇게도 두려운 것인지, 정치권에 묻고 싶다. 하기야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있는 마당에 무슨 기대를 할수 있을까 마는…한데 정치권에 아이러니컬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깨끗하기로 소문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의원이 대통령후보 경선때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며 양심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검찰은 김의원을 정치자금법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 법의 심판대에 올려 놓았다. 김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고백이 고해성사(告解聖事) 차원인지, 깨끗한 후보로서의 이미지 부각 차원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당시 그의 의중을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처벌받을수도 있다는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고백을 한 그의 용기는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현행 부패방지법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의 무를 규정하고 있듯이, 양심고백 또한 국가와 국민에 의해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심어야지, 잡초를 키우기 위해 꽃을 꺽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