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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조건과 선택

삽화=권휘원 화백 10여 년 전, 탤런트 부부의 행복한 공개입양이 화제가 된 적 있다. 당시만 해도 공개 입양은 낯선 영역이었다. 전통적으로 혈연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입양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절대 비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 부부가 선택한 공개입양이 주목받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선택이 단순히 화제가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탤런트 부부의 공개입양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입양을 고민해오던 사람들은 공개입양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공개입양이 운동으로 시작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지만 공개입양 가정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외국의 경우는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우리와 확연히 다르다. 입양아에 대한 편견이 없으니 친자와 입양아에 대한 차별도 없다. 지금은 우리도 인식이 바뀌어 공개입양이 늘고 있다. 더 이상 혈연에 얽매이지 않고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인식과 패러다임의 변화일 터다. 눈여겨볼 자료가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자 숫자다. 우리나라는 해외입양 역사 65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 보내는 나라로 꼽힌다. 2차 대전 이후 해외에 입양된 아동 50만 명 중 40%인 20만 명 정도가 우리나라 아동이다. 들여다보니 1995년 국내입양은 해외입양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후 국내입양은 꾸준히 늘어 2007년 해외입양을 넘어섰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 보내는 나라란 불명예는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전체 입양아는 704명, 이중 317명이 해외입양이었다. 국내에서도 한해 387명이 새로운 가족을 만났으나 아직도 해외로 가는 입양아들이 적지 않다. 사실 입양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확신이 있다 해도 힘든 여정이다. 입양가정에 경의를 갖게 되는 이유다. 입양 된지 9개월, 양모로부터 끊임없이 학대를 받아온 두 살배기 정인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입양아 관리가 새삼 조명 받고 있다. 관리체계를 탄탄히 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동학대보다 입양에 더 무게가 쏠려 있는 형국은 안타깝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대부분의 진정한 부모들에게 자칫 입양이 또 하나의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1.01.07 17:24

아일란과 정인이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 2015년 9월 초,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 터키 통신사 사진기자가 찍은 아일란 쿠르디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은 SNS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인 아일란 가족은 수니파 무장조직인 IS와 쿠르드족 민병대와의 전쟁을 피해 캐나다에 이민 신청을 냈지만 거부당했다. 아이의 가족들은 살기 위해 소형 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 코스섬으로 향했다. 하지만 거센 파도에 작은 보트가 뒤집히면서 보트에 탔던 23명 중 아일란을 포함해 12명이 숨졌다. 아일란이 발견된 인근 해변에선 두 살 위인 형과 엄마도 함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일란 가족의 참극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시리아 난민에게 철통같던 유럽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먼저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시리아 난민 수용을 허용한 데 이어 EU 회원국도 분산 수용에 나섰다. UN에선 세계 정상회의를 소집해 시리아 난민 대책을 세웠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주검이 당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의 활로를 열었다. 지난해 10월 아동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뒤늦게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세상에 나온 지 16개월밖에 안 된 정인이가 양부모의 반인륜적인 학대 속에 방치됐다가 숨진 사건이 최근 한 방송사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재조명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월 입양된 뒤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어린아이를 우리 사회는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 세 차례나 아동학대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번번이 내사 종결하거나 무혐의 처리했고 결국 정인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숨진 당일 정인이는 췌장이 절단되는 복부손상과 두개골 등 온 몸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지막지한 폭력에 희생됐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살인죄가 아닌 학대치사죄로 양모를 기소한 검찰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경찰 파면 청원도 쇄도하고 있다. 뒤늦게 정부와 국회가 아동학대 방지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방지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도 그동안 상임위에 방치됐던 아동학대 방지관련 법안을 8일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여행용 가방에 갇힌 아홉 살난 아이가 숨지자 정부는 범부처 특별팀을 꾸리고 아동학대 방지대책을 발표했었다. 그런데도 아동 학대 피해는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학대 당하는 아이들이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1.01.06 17:21

얽히고 설킨 선거방정식

삽화=권휘원 화백 내년 지방선거 후보자 하마평이 도내 신문 신년호 특집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다. 선거가 1년 5개월 남았는데도 사실상 물밑 선거전이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끈 건 송하진 지사의 3선 도전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이렇다 할 뚜렷한 입장표명이 없는 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송 지사 입장에선 여건이 과거 어느 때보다 성숙된 건 사실이다. 작년 총선에서 대항마로 거론되던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전북 정치권 맹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재선 김윤덕 의원 출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작년 말 처음 운을 뗄 때만 해도 이미지 쇄신 애드벌룬용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실제 권리당원 모집 등 구체화되고 있다. 이르면 이달 안에 공식 선언을 할 거란 얘기도 흘러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의원 출마를 둘러싸고 세간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우선 그간 송 지사와의 예사롭지 않은 관계가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사다. 특히 2023 새만금 잼버리 공동 조직위원장과 집행위원장으로 손발을 맞추고 있는데 출마 자체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원택 의원을 연결고리로 한 끈끈한 인맥은 두 사람 윈-윈 관계의 핵심축이었다. 송 지사는 누가 뭐래도 이 의원의 정치적 대부다. 전주시장 도지사 비서실장대외협력국장정무부지사를 지내며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송하진 도정을 뒷받침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김 의원과 이 의원은 대학 운동권 선후배로, 김 의원이 시민단체를 함께 하며 정치인의 길을 터줬다. 이 때문에 두 사람 정치적 대결에서 이 의원 선택이야말로 승부수 라는 데 공감한다. 얽히고 설킨 이와 같은 연줄 때문에 김 의원 출마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회자된다. 김승수 시장과 모종의 언질(?)이 있지 않았나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둘의 관계는 정치적 동지 그 이상의 끈끈함이 배어 있다. 김 의원이 21대 국회등원 1호 법안으로 특례시 안을 제출할 정도로 죽이 잘 맞는 사이다. 김완주 지사 때부터 맺어진 정치적 유대감은 현재 진행형이다. 김 의원과 관련해 이권특혜설이 도청시청 주변에선 끊이지 않았다. 이번 출마 배경에 이들의 역할 분담론이 불거진 것도 그런 연유다. 어차피 서로 갈라 서기로 작정하지 않는 이상 김 의원 출마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송 지사와 버거운 싸움이 예상되는데 각개전투는 승산이 희박하다. 당내 경선 실패에도 의원직 유지가 가능한 김 의원의 마이웨이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이 또한 낮아 보인다. 결국 도지사와 3선 출마를 염두에 둔 김 시장의 다목적 포석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자칫 송 지사와 맞대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3선출마 명분을 쌓거나 여차하면 김 의원과 연합전선을 형성해 도지사 선거전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히든 카드라는 분석이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1.01.05 18:11

인구 데드 크로스와 시·군 통합

삽화=권휘원 화백 우리나라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저출산으로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인구 데드 크로스(dead cross)도 현실이 됐다. 초고령사회인 농촌 지역의 인구 데드 크로스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젊은층이 적어 출생아가 늘어날 가능성이 적은데다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제기돼온 지방소멸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20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작년 출생아는 27만5815명, 사망자는 30만7764명으로 집계됐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3만1949명 적었는데, 최근 10년 사이 처음있는 일이다. 10년 전인 2011년 사망자보다 21만9528명이나 많았던 출생아는 2017년 7만7325명으로 줄어든 이후 2018년 3만1511명, 2019년 1만202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 처음 사망자 수보다 출생아가 적어 역전됐다. 최근 10년 동안의 주민등록 인구 변화는 전북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2011년 대비 2020년 인구가 줄어든 전국 시도는 8곳 이었는데 전북은 이 기간 7만명이 감소해 서울(△58만), 부산(△16만), 대구(△9만)에 이어 전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이 줄었다. 전북의 인구 감소세는 출생아가 줄어든데 따른 자연감소보다 전출에 따른 사회적 감소가 2배 이상 더 커 일자리 감소와 이로 인한 대도시로의 인구유출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저출산 고령화 속 인구 감소는 자치단체의 존립 위기로 이어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2018년 6월 인구기준으로 한 지역의 20~39세 여성인구 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소멸위험지수를 분석한 결과 전북에서는 임실무주장수진안고창부안순창김제남원정읍 등 10개 시군이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이들 지역의 소멸위험지수는 0.225(임실)~0.353(정읍) 수준으로 모두 0.5를 밑돌았다. 가임 여성인구 수가 고령자 수의 절반이 안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로 공동체가 붕괴돼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 가능인구는 줄어드는데 수명은 늘어 생산성이 떨어지고 세수도 줄어 재정 악화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인구가 적다고 도로와 상하수도, 교육의료와 복지시설 등 다양한 사회기반시설을 없앨 수 없어 이를 유지해야 하는 지자체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는 갈수록 지방의 존립을 어렵게 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인구 유출 방지를 위해 지역별 경제상황에 맞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규모의 경제 실현과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행정 통합 필요성을 지적한다. 전북은 지난 1995년 군산옥구, 이리익산, 정주정읍, 김제시군, 남원시군 등 10개 시군의 행정 통합 경험을 갖고 있다. 소멸위기에 처한 도내 지자체들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1.01.04 17:40

전북발전 장애요인

삽화=권휘원 화백 지방자치가 실시되면 삶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단체장 선거를 실시한지 25년이 지난 지금 평가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반쪽짜리 지방자치를 하고 있어 갈 길이 멀다. 중앙정부가 재정권을 틀어 쥐고 있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되면서 지역간 격차만 심해졌다. 노무현 정권만 유달리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했지 나머지 정권들은 수도권 위주로 개발전략을 펴다보니까 지방에는 갈수록 돈과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전북의 국세납부 실적이 전국 대비 1%라는 게 전북경제 현실을 대변한다.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충북 강원도가 기지개를 켜면서 앞서 달린다. 강원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대기업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고 충북은 오송에다가 바이오산업단지를 만들면서 국내 제약 식품메카로 발돋움했다. 청원군과 청주시를 통합한 게 지역발전의 결정타로 작용했다. 수도권 팽창에 따른 개발압력이 거세지면서 청주시는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다. 젊은층의 일자리가 없어 인구가 줄어드는 전북의 현실은 암담하다. 유종근강현욱김완주 전 지사 때 지역발전의 좋은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 게 잘못이었다. 방폐장을 위도나 군산으로 유치했거나 KTX혁신역사를 백구 쪽으로 건설했으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주어졌을 것이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은 김제공항건설을 무산시킨 일이다. 벽성대와 일부 김제시민들이 부지까지 확보한 김제공항건설을 반대한 것이 전북발전을 가로 막았다. 그 때 반대만 안 했어도 지금 어엿한 공항이 들어서 있어 새만금사업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공항 항만 등 SOC 구축은 기업유치의 선결과제다. 더 가관인 것은 역대 지사와 전주시장 간 불협화음이 전북발전을 가로 막았다. 전주시장이 지사와 머리를 조아리고 전주발전을 모색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흠집을 내서 지사를 끌어내리거나 힘 빼는데 앞장선 게 잘못이었다. 서로 간에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다 보니까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특례시 지정을 놓고 김승수 전주시장이 송하진 지사 때문에 안됐다고 그 책임을 떠넘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상은 지사 자리를 넘보려고 정치적 승부수를 걸어온 김 시장이 특례시가 좌절되자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고 있다. 김 시장이 송 지사를 치받으면 오히려 표 결집현상이 생겨 지사선거가 아니라 3선 시장에 나설 때도 손해 볼게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다른 시도가 광역권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송하진 지사는 전주 완주 통합에 불을 댕겨야 한다. 2022년 통합시장 선거가 치러지도록 송 지사가 연초부터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원팀 운운할 게 아니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정치력이 도의원급이란 비난도 잠재울 수 있다. 김윤덕 의원이 지사 선거에 나선다는 것을 도민들은 정치쇼로 안다. 아직 체급이 안돼 제발 중앙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이나 키우라고 쓴소리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1.01.03 17:42

깡통교회 목사님의 조언

삽화=권휘원 화백 오래전부터 깡통교회라고 불리어 온 교회가 있다. 깡통을 반절 잘라 엎어놓은 것 같은 거대한 함석 창고 같은 교회, 전주의 안디옥 교회다. 오며 가며 교회탑 십자가를 보게 된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이 창고를 깡통교회라 불렀다. 15년 전 유난히 추웠던 겨울,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연말에 이 교회를 찾았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지켜온 이동휘 목사와의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그는 세상에 이름 알리는 일에 나서지 않고, 오로지 선교로만 살아온 원로 목회자다. 그의 사무실은 교회 옆, 남루한 시멘트 건물의 2층에 있었다. 섬김의 방이란 팻말을 머리에 붙인 공간은 인쇄물 수북이 쌓여있는 탁자와 오래된 의자가 전부. 이 방도 남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목사는 사랑방과도 같은 이 좁은 사무실에서 삶에 지친 교인들도 만나고, 선교에 관한 업무를 보았다. 교회가 된 창고는 실제 미군비행장에 있던 격납고를 뜯어다가 창고로 쓸려고 옮겨놓은 건물이다. 이 깡통 같은 창고 건물을 눈여겨보았던 사람이 이 목사다. 그의 안목과 가치관으로 창고는 교회가 되었다. 당시 이 건물(?)의 전세 비용은 600만원. 규모와 호화로운 장식을 내세워 들어서는 교회 건물들 사이에서 깡통교회 안디옥 교회는 특별한 존재였다. 이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예배당은 그렇게 많은 경비를 들여 짓는 건물이 아니에요. 내부를 화려하게 꾸밀 일도 없고. 예배당은 각자의 안목과 가치관으로 짓는 것이죠. 예배드릴 공간으로 큰 불편이 없지만 불편이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을 실행해온 이 목사의 선교는 나눔 정신과 그것을 실천하는 삶에 맞닿아 있었다. 우리의 고단한 삶과 어지러운 사회도 나눔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정치도 경제도 모두 나눔의 정신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했던 이 목사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 나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마음이 모아진다면 스스로 절제하는 미덕을 회복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덧붙여준 이야기가 있다. 권리에만 급급하지 않고 의무에 눈뜨면 나눔의 정신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요. 다시 열린 새해 아침. 깡통교회 목사님이 전해준 권리와 의무를 다시 떠올려보니 그 의미가 유독 크게 와 닿는다. 더 깊어진 갈등과 반목의 시절 탓이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12.31 15:34

애민선정비와 영세불망비

삽화=권휘원 화백 완주 모악산 밑에 위치한 구이면사무소 앞에는 아주 대조적인 비석 2기가 서 있다. 지난 6월 송이목 전 구이면장과 이의성 주민자치위원장 등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면소재지 인근에 방치됐던 비석 2기를 이곳으로 옮기고 그 의미를 기록해 두었다. 비석 중 하나는 전주판관 박제근의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이고 다른 하나는 균전사 김창석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다. 사실 애민선정비나 영세불망비 모두 송덕비(頌德碑)의 일종이다. 송덕비는 선정을 베푼 관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임자나 백성들의 추천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임금의 허락을 받아 세웠다. 그러나 일부 관리들은 재임 중에 백성을 부추겨 억지로 자신의 공적비를 세우게 하거나 자비를 들여 송덕비를 세우는 사례도 많았다. 아마도 판관 박제근의 선정비는 전자의 경우이고 균전사 김창석의 불망비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전주판관 박제근(18191885)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재령김천군수를 거쳐 4년 가까이 전주판관으로 재임했고 무주부사 상주목사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시문집으로는 敬菴遺稿(경암유고)를 남겼다. 그는 인품이 근엄하고 공사가 분명하며 전주판관 재임 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균전사 김창석(1846?)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지역 세금을 거두는 관리로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없는 토지나 농사를 못 짓는 땅에 세금을 매기거나 농지 면적을 부풀려서 세금을 부과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고부군수 조병갑과 세곡(稅穀) 운반책임을 맡은 조필영 등과 함께 대표적 탐관오리로 지목돼 충청도 홍주목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전주에 살던 김창석은 균전사로 있으면서 막대한 치부를 했고 후일 평사낙안형 명당인 정읍 산외면 진계리에 아흔아홉칸 대저택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그의 저택은 6.25 전란 중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이목 전 면장의 전언에 따르면 균전사 김창석의 영세불망비 비문은 다른 비문들보다 더 깊고 굵게 새겨졌다고 한다. 아마도 석공이 김창석의 악행을 후세들이 영구히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힘주어 새겼던 것 같다. 김창석의 영세불망비는 구이면뿐만 아니라 완주 소양면 황운리와 정읍 산외면 야정마을에도 서 있다. 강압으로 백성들이 세웠든, 아니면 자비로 세웠든 김창석의 불망비는 오늘날 징계비(懲戒碑)의 상징이 됐다. 완주 구이면민들이 한 곳에 세워 놓은 애민선정비와 영세불망비가 모든 공직자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12.30 19:25

코로나19와 낯뜨거운 홍보

삽화=권휘원 화백 코로나19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아울러 세밑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지금 상황도 쉽지 않은데 더 이상 버텨낼 수 있을까 마음이 더욱 무겁다. 최근 코로나 백신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추위를 녹이는 온정 손길이 그나마 한가닥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사랑나눔 기부도 코로나 영향권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당초 목표액을 크게 낮췄지만 이마저도 기대치에 못미친다. 그 만큼 살림이 팍팍하고 인심이 각박해졌다는 반증이다. 가뜩이나 심란한 가운데 언론에 보도된 정치인의 홍보성 기사는 낯뜨겁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갖가지 의정봉사상과 감사패를 받았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상당수는 주민과 단체 민원해결에 앞장섰다는 감사표시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지역구 아파트주민회에서 받은 감사패도 대놓고 자랑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다수 단체에서 상(賞)을 남발한다는 지적과 함께 후원금 거래 얘기도 가끔 도마에 오르곤 했다. 저간의 사정이 설령 그랬더라도 코로나 고통을 겪는 올해 상황은 다르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정치인들만 잘했다고 홍보하는 것이 자칫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죽하면 정치인에게는 자기가 죽었다는 부음기사만 빼곤 신문에 나면 손해볼 것 없다 는 격언이 있다. 언론에 이름이 많이 등장할수록 선거에는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속셈과 달리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가파른 소비절벽이 연말 대목을 덮쳐 그동안 빚으로 겨우 견뎌왔는데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한다. 실제 들뜬 분위기는 고사하고 유흥가는 인적이 끊겨 썰렁할 정도다. 가정직장 배달서비스가 30% 이상 폭증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중소기업도 힘들 긴 매한가지다. 내수가 꽁꽁 얼어붙고 자금줄이 막혀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지표에 투영된 코로나 한파는 예상보다 매섭다. 한은 전북본부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이 올해 매달 1300~1500억원으로 늘었다. 이는 전년 대비 300~400억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기업대출도 올 3분기 3조5071억이 늘어나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다. 이뿐 아니라 소규모 상가 공실률 또한 11.7%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말 그대로 서민은 물론 중산층까지 코로나 블랙홀에 빠져 파산위기를 우려하는 형국이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민생을 도외시한 채 연일 시끄럽다. 마땅히 고통분담 해야 할 처지인데도 코로나 정부 지원대책에 여야가 엇박자를 낸다. 그것도 모자라 개인 언론 홍보에만 열 올려 빈축을 사기도 한다. 정작 제대로 된 의정평가에서 잘해야 하는데 좀더 자숙했으면 하는 요즘이다. 국난(國難)으로 불릴 만큼 엄중한 시국에 정치인 감사패 타령이 곱지않은 이유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12.29 18:52

코로나19와 얼굴 없는 천사

삽화=권휘원 화백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2009년 12월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세워진 얼굴 없는 천사의 비(碑)에 새겨진 글귀다. 당시 전주시장으로 시민들의 뜻을 모아 기념비를 세운 송하진 도지사는 제막식에서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어려운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천사를 생각하며 이 비가 이웃사랑의 근본이 돼 사회 곳곳이 훈훈한 인정으로 가득 차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지난해 성금을 도난 당했다가 되찾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난 2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왔다. 지난 2000년 4월 3일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노송동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두고 간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6억6850만4170원이 전해졌고 기부금은 지역내 홀로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 4000여 세대를 돕는데 쓰여졌다. 도시의 위대함은 건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헌신과 사랑 등 고귀한 정신의 가치에 있고, 얼굴 없는 천사는 전주를 위대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김승수 시장의 평가처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지역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얼굴 없는 천사가 오간 주민센터 주변에 기부천사 쉼터가 조성됐고, 천사의 길과 천사마을이란 이름도 붙여졌다.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벽화그리기, 화단조성, 텃밭가꾸기 등 천사마을을 테마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추진했고, 주민센터 입구에는 천사기념관도 조성됐다. 8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70%에 달하고 주민의 25% 이상이 65세를 넘는 노인들이 사는 구도심인 노송동은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되면서 현재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여해 마을을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 소식이 아직 없지만 코로나19가 사회 전 분야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올해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온정의 손길도 예년만 못하다.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매년 연말연시 이웃돕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지난 1일 세운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지난 27일 현재 65.1도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이어지는 성금 모금 목표액 63억9000만원 중 41억6000만원이 모금됐다. 목표액의 1%인 6390만원이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전북지역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 눈금은 전국 평균 70.4도 보다 5도 정도 낮은 온도다. 매년 연말 얼굴 없는 천사를 맞아온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힘든 올해에도 얼굴 없는 천사의 21년째 선행이 이어질 것인지 기대 반 우려 반,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2020년 세밑, 코로나19로 지친 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얼굴 없는 천사의 따뜻한 기부 소식이 기다려진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0.12.28 17:54

통합이 전주 발전의 원동력

삽화=권휘원 화백 코로나19 탓이지만 전주가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부를 창출할 에너자이저가 없다. 혁신도시에 13개 기관이 입주했지만 아직도 현지화가 덜돼 모두가 손님이다. 금요일 퇴근 때는 서울 등 제 보금자리 찾아가기에 바쁘다. 전국단위기관이라고 존재감만 높이다 보니까 위화감만 생겼다. 도청 소재지인 전주는 갈수록 베드타운 역할만 강화된다. 전주에서 13개 시군으로 모두 통근이 가능하다 보니까 전주는 잠만 자고 나가는 도시로 전락했다. 인접 청주시는 수도권으로 사실상 편입돼 바이오산업으로 야단법석이다. 산학연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면서 오송으로 돈과 사람이 몰린다. CJ 등 국내 굴지의 제약업체들이 속속 입주하면서 그 파급력이 세종시까지 뻗쳤다. 청원과 청주가 통합하면서 내년 국가예산도 1조4499억 확보한 가운데 내년 시 예산이 2조6000억으로 늘었다. 청주시는 특례시가 안되어도 도청 소재지 기능을 다한다. 전주시가 70년대만 해도 전국 7대 도시 안에 들었으나 지금 20위권으로 추락한 것은 바깥세상 변화에 둔감한 탓이 크다. 공무원 출신 단체장이 변화를 두렵게 여겨 과감하게 혁신을 못한 게 원인이었다. 정치력이 약해 큰 그림을 그려나갈 줄을 몰랐다. 한옥마을 하나 조성한 것 말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탄소산업단지를 조성해 효성을 유치했지만, 아직도 경북 구미와의 경쟁은 물론 일본업체와의 경쟁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 전주시는 간헐적으로 인접 완주군 경계지역을 시로 편입했지만, 전체면적이 좁다. 팔복동 효성 인근 산단만 조성하면 공단을 조성할 땅도 없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내년도 국가예산을 올해보다 14.5%가 늘어난 8103억 확보했다고 자랑했으나 인구 28만인 익산도 8042억을 확보했다. 너무 특례시 지정에 올인한 게 패착이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재정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특례시를 굳이 지정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김 시장이 사력을 다한 걸 보면 정치적 목적달성에 치중한 것이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본인은 최선을 다했는데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송하진 지사가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반대해 지정이 안 됐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1995년 단체장 선거 이후 도지사와 전주시장이 협력관계가 아닌 치받는 관계로 가면서 전주 발전이 더뎌지고 있다. 김완주 지사가 시장 때 추진하려던 경전철을 송하진 시장이 추진했다면 전주시는 빚더미에 나앉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사건건 전주시가 도를 치받고 있다. 인사교류는 물론 전주시가 부담해야 할 재정도 최소한으로 그친다. 전주시 소상공인들이 전북신용보증재단을 가장 많이 이용하므로 출연금을 가장 많이 내야 하지만 의무출연금을 낸 것 이외에는 올해 10억 낸 것이 고작이다. 김 시장은 송하진 지사를 치받지 말고 청주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전주 완주를 통합시켜야 한다. 특례시 추진은 전북도 전체에 도움이 안 되므로 접고 지금은 지사와 시장 3선 출마 보다는 통합에 전력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12.27 18:04

영(靈)택트 성탄절

삽화=권휘원 화백 성탄절이 코앞이지만 예년 같은 성탄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과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사라지고 사람들로 붐비던 길거리는 적막할 정도다. 그야말로 고요한 성탄절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의 변화는 물론 지구촌의 최대 축제문화까지 바꿔버렸다. 기독교계에선 언택트(Untact) 성탄절을 맞아 영(靈)택트 성탄절을 보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비록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는 없지만 예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요란하고 떠들썩한 성탄 분위기 대신이 땅에 평화의 메신저로 온 아기 예수를 만나는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회복해보자는 권유다.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감안해 서울시향의 음원 협찬을 받아 크리스마스 캐럴 20곡을 유튜브 TV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방역활동에 진력해온 의료진에게 케이크를 전달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겐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가졌다. 교회별로는 식료품 등 각종 구호 물품과 마스크를 전달하거나 온라인 성탄 콘서트를 열어 축하 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들은 더 추운 성탄절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생활경제가 더욱 위축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얼어붙고 있다. 사회복지시설과 군부대, 그리고 소외계층을 찾는 발길도 뚝 끊겼다. 이들에겐 어느 때보다 더 쓸쓸하고 힘겨운 성탄이 되고 있다. 2020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도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만삭의 여인에게 방을 내주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추운 겨울날 허름한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해준 사람들은 주위의 이웃들이 아니라 먼 길을 달려온 동방 박사와 목자들 몇 사람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맞았던 성탄절과는 너무 다른 성탄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고요한 성탄절로 되돌려놓았다. 오스트리아 요셉 모어 신부가 작사한 대표적 캐럴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가사처럼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조용한 성탄절을 맞게 했다. 왜, 예수께서 고요한 밤 가장 낮고 초라한 곳으로 오셨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영택트 성탄절이 됐으면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12.23 20:30

특례시 오해와 진실

삽화=권휘원 화백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전주시의 특례시 지정이 무산됐다. 인구 100만 이상 도시로 확정되면서 수원과 고양 용인 창원 4곳이 1년간의 준비를 거쳐 2022년 1월 출범한다. 하지만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에는 특례시 지정에 따른 다른 자치단체의 재정과 시도 사무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결국은 특례시가 되더라도 국가지원 말고는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게 족쇄를 채운 것이다. 아니할 말로 재정지원은 고사하고 다른 자치단체의 심한 견제만 받게 된 꼴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지난 2년간 특례시 지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건 주지 사실이다. 전주 발전은 물론 전북 도약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시민 75만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21대 등원 1호 법안으로 특례시 법안을 제출한 김윤덕 의원의 지원사격도 받았다. 이렇게 전심전력을 기울인 특례시의 실체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흔히 특례시라고 하면 재정 지원과 사무 권한 이양 등 당근책이 뒤따른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정안에는 다른 자치단체의 예산과 권한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김 시장의 정치적 우군(友軍)으로 알려진 홍영표 의원도 이번 개정안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놓고 며칠 뒤 전주 TV토론에서는 특례시 지정이 무산된 김 시장의 딱한 처지를 강하게 대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애초 재정지원이 없는 특례시 지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유다. 혹시 시중에서 떠도는 정치적 노림수에 따라 특례시를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오해 소지가 다분하다.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다. 21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특례시 법안만 김윤덕 의원을 포함해 10명이다. 특례시 지정 요구기준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경기 성남시의 경우 주간인구사업체수를 반영해 달라고 함은 물론 시흥은 외국인수를, 화성은 근로자 수공유수면 면적을 각각 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전국 50여개 자치단체가 특례군 지정을 위한 국회 토론까지 개최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특례시특례군 지정을 요구한 자치단체의 인구를 합치면 남한 인구 5000만 명 중 무려 4500만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김 시장은 특례시 지정은 끝난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표출이다. 하지만 일단 첫 시도는 실패한 게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실패에 따른 책임 회피를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아닌 지 걱정된다. 앞으로는 특례시 지정 목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달라. 재정 지원과 사무이양 권한은 가능한 지 설명이 뒤따라야 시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첫 번째 시도는 이런 절차가 생략됐기에 추진동력이 떨어진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12.22 20:11

비싼 공익신고와 사회 정의

삽화=권휘원 화백 지난 2007년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등을 세상에 알려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변호사는 내부고발 이후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없어 가족이 운영하는 경기도 부천의 제과점에서 매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뭐가 그리 잘났냐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변호사 활동을 접고 2011년 부터 9년 동안 광주시교육청 감사관으로 일한 그는 올해 초 퇴임했다. 내부고발, 공익제보, 공익신고 등 조직의 내부 혹은 외부의 부정불법 행위를 신고하고 공개한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중징계나 집단 따돌림 등의 보복을 받거나 민형사상의 법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0년 국내 재벌 계열사의 과다한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감사하던 중 업계의 로비를 받은 상부 지시로 감사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고발한 이문옥 전 감사관은 공무원 기밀 누설죄로 구속되고 파면됐다.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복직하기 까지 6년이 걸렸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는 고발 직후 구속되고 이등병으로 강등돼 파면됐지만 같은 부대 전역 장병들의 증언에 힘입어 4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파면처분취소 확정 판결을 받고 중위 신분으로 명예 전역했다. 부정 시비가 끊이지 않던 군 부재자 투표제도는 이후 영외투표로 개선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3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돼 신고자를 누설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공익신고에 따른 불이익 조치를 당한 경우 국민권익위원회로 부터 원상 회복 등 신분보장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익신고 이후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2011년 소방방재청장의 불법부당한 인사 행태와 부하 직원에 대한 금품 요구, 향응 수수 등을 공익신고했다가 직위해제되고 퇴직 4일전 해임된 심평강 전 전북소방본부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자신의 공익신고 이후 지역 불균형 인사가 개선되고 부정과 비리 예방에 좋은 선례가 됐지만 배신자라는 낙인 속에 조직과 혼자 싸워야 했고, 고향 사람과 친한 동료들이 자신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이들과 멀어지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8년 간의 법정 투쟁 끝에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로 명예를 회복한 그는 공익신고자 보호법보다 사람의 문제를 지적했다. 공익신고자 보호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할 공무원들이 오히려 관료화되면서 법 규정과 절차를 따지느라 공익신고자 보호조치가 신속히 이뤄지지 못해 장기 소송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고자가 받는 고통이 클 수록 공익신고를 통한 사회 정의 실현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제도와 사람의 문제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0.12.21 17:44

선거기술자가 공천 유리

삽화=권휘원 화백 단체장 선거에 도전하고 싶어도 너무 진입장벽이 높아 출마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북에서는 정서상 민주당 공천을 받지 않으면 선출직이 될 수 없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사실상 선거가 하나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공천장이 누구한테로 가느냐에 따라 시장 군수 자리가 결판난다. 현행 민주당 시장 군수 공천은 당원 50% 일반시민 50%를 합산한 결과로 판가름한다. 공직자들이나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당원 모집을 못해 출마를 못 한다. 이에 반해 현직이나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사람은 능력 여부를 떠나 지역에 살면서 날마다 형 아우 관계를 맺고 살기 때문에 당원모집도 용이하고 여론조사할 때 지지도가 높게 나오기 때문에 그쪽을 택한다. 그렇게 공천자를 결정하므로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공천경쟁에서 해볼 도리가 없다. 전북은 도민들의 정서가 거의 같아 굳이 당원과 일반시민으로 나눠서 지지도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 그간에도 당원과 시민여론 조사 결과가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이러한 공천방식 때문에 4차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한 전문가들이 열정이 있어도 맘처럼 쉽게 도전장을 못 내민다. 한마디로 정치적인 역량보다는 평소 인간관계를 잘 형성한 사람이 공천 받을 확률이 높다. 특히 6개월 이상 당비를 낸 진성당원을 많이 확보한 사람이 유리한 구조다. 월 1000원 하는 당비도 얼마든지 대납해줄 수 있는 구조라서 결국 재력 있는 사람이 유리할 뿐이다. 한마디로 지역에 살면서 애 경사나 잘 챙기는 사람이 공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거기술자들이 공천장을 쉽게 거머쥘 수 있다. 당원 모집 잘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이다. 막상 선거로 시장 군수가 되어도 중앙에 인맥이 제대로 형성돼지 않아 국가 예산 확보를 못 하고 겨우 지역에서 골목대장 노릇이나 하는 것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단체장의 덕목으로 고도의 행정 능력을 겸비한 정치력을 친다. 시골 고샅길이나 누비며 애경사나 잘 챙기는 사람은 단체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승자독식 구조로 전리품을 나눠 먹는 구조라서 그런 식으로 단체장을 뽑으면 안 된다. 유권자가 많은 도시도 똑같은데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킨다는 말처럼 돼선 안 된다. 경영마인드를 갖춘 정치력이 있는 사람이 단체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발전이 빨라진다. 이 같은 맹점을 민주당 중앙당이 공천심사위원회를 잘 구성해서 걸러내야 한다. 다음 선거도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천자를 결정하면 안 된다. 현직 단체장에 대한 평가는 중앙당에서 비공개로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공정하고 엄정하게 해야 한다. 상당수 단체장들이 당선만 되면 재선하려고 선심성 인기몰이에 집중한다. 표 얻으려고 자연히 혈세를 낭비해가며 인기영합주의 행정에 치중한다. 표의 등가성 때문에 현직들은 서민들이나 블루칼라 쪽으로 고개 숙이며 표 모으기에 혈안이다. 이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12.20 17:54

자급자족도시 ‘알메르’의 지혜

삽화=권휘원 화백 세계 여러 나라들이 땅을 늘리는 일에 눈을 돌린 이후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간척은 나라마다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간척으로 땅을 늘리고 경제를 쌓은 나라가 적지 않지만 간척의 나라를 꼽는다면 단연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크고 작은 간척 도시들이 많다. 그중 지금은 인구 40만 명에 해마다 5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자급자족도시로 성장한 알메르(Almer)가 있다. 암스테르담 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남 플레보랜드에 위치해 있는 알메르는 쥬다지 간척사업 가운데 가장 늦게 개발된 곳이다. 알메르는 암스테르담과 주변 도시의 인구과밀로 인한 주택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가 1968년에 계획, 1975년 암스테르담 앞바다의 매립 공사로 건설을 시작했다. 당초 목표 인구는 약 15만 명, 크기는 1만 7,921ha 이었지만 향후 인구 25만 명에서 많게는 4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도시로 늘려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알메르는 조성 초기부터 독특한 개발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른 도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대규모 공간 건설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작은 것으로 시작해 그 과정을 관찰하고 다음 단계에 접어드는 방식으로 개발 속도와 내용을 조절하면서 시대적 수요와 필요에 따라 도시를 만들었다. 충분한 이유와 계획을 세우고 나서야 개발에 들어가는 알메르 만의 방식으로부터 많은 도시들이 자극을 받았다. 알메르의 성공에는 암스테르담의 인구팽창에 따른 배후도시로서의 배경이 깔려 있지만 도시민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철저한 도시계획이 주효했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녹지도시도 그중 하나다. 알메르는 바다를 매립하여 땅을 만들고 습기를 뺀 직후부터 대단위 녹지를 조성해 숲을 만들었다. 광활한 간척지에 나무를 먼저 심어 자연을 다시 들여온 지혜는 도시 건설은 곧 자연 훼손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바꾸어놓았다. 매립지가 갖는 도시환경창조의 한계를 주거지나 공공건축물의 현상설계를 통해 질 높은 건축 환경의 창조로 보완해나가는 방식 역시 철저한 도시계획이 바탕이었다. 간척을 시작한지 29년. 속속 땅을 드러내고 있는 새만금에 수변도시 조성사업이 시작된다. 새만금에 인구를 들이는 첫 도시 조성사업이다. 수변도시는 24년까지 사업비 1조 3천억 원을 들여 인구 2만 5천명 규모의 자족기능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알메르처럼 도시민의 삶의 질을 먼저 생각하는 철저한 도시계획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12.17 17:54

허울뿐인 특례시

삽화=권휘원 화백 지방 대도시와 광역 시도 자치단체 간 대립 양상으로 번졌던 특례시 지정 문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로 최종 확정됐다. 이에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수원과 고양, 용인, 창원 등 4곳이 1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1월부터 특례시로 출범하게 된다. 이들 대도시는 특례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많게는 10년 전부터 공을 들여온 결과, 이번에 결실을 거뒀다. 전주시도 특례시 지정을 위해 그동안 총력을 기울여왔다. 김승수 시장이 2년 전부터 전력투구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전주 발전뿐만 아니라 전라북도의 도약을 위해선 특례시 지정이 필수적이라며 75만여 명에 달하는 전주시민과 출향 인사의 서명도 받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행정안전부에서도 지난 7월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김승수 시장의 뚝심이 특례시 관철을 일궈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승수 시장의 의지가 광역자치단체에 꺾이고 말았다.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에서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의 특례시 지정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충북권 자치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가 10곳에 달하는 경기도는 이들 도시가 특례시로 지정받게 되면 시군 갈등과 불평등을 조장하게 된다는 이유로 결사 반대했다. 충북권 시장군수들도 취득등록세와 교부금 등 재정 특례가 이뤄지면 특례시와 규모가 작은 시군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지난 10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2차 전략회의 자리에서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은 송하진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방자치법 개정안 중 특례시 조항 삭제분리를 공식 요청하면서 50만 명 이상 대도시는 제외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특례시 관련 법안이 실익이 없는 빈 껍데기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특례시에 대한 재정 특례와 사무권한 이양 등에 대한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통과시킨 지방자치법 개정안에는 특례시에 제공되는 특례가 다른 자치단체의 재원을 감소시키거나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았다. 결국 특례는 없는 허울뿐인 특례시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그동안 특례시 지정에 올인해 온 김승수 전주시장이 특례시 탈락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화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12.16 17:50

야누스의 도의회

삽화=권휘원 화백 도의회가 그제 정례회를 마감했다. 사실상 올해 의정활동이 막을 내린 것이다. 말 많고 탈 많았던 1년의 의정평가는 차치하고 야누스 적인 두 장면이 떠오르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전에 업무 차 도의회에 잠깐 들렀다. 의원실이 있는 4층에 공무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류를 들고 대기중이었다. 예산결산 심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이다. 그 곳에서 만난 후배 얘기가 문제예산으로 찍혀 한 푼이라도 깎이지 않으려고 의원에게 보충설명 하려고 왔다는 것. 눈길을 끄는 건 박용근 의원실이 가장 붐빈다는 점이다. 박 의원에게 밉보인 문제예산이 다른 의원보다 훨씬 많아 공무원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귀띔한다. 하물며 1층 휴게실에서도 시간을 쪼개 그를 이해시키는데 5분 남짓 안간힘을 쓴다. 예산안 심사는 불요불급하거나 불합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수정 보완을 요구하는 게 상례다. 도의원으로서의 기본 책무임에 틀림없다. 그런 강한 면모 때문에 박 의원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의원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어수선한 휴게실에서 그 짧은 시간에 문제예산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아니면 공무원들에게 깐깐하게 지적함으로써 긴장감을 심어줄려고 그랬는지 헷갈리긴 마찬가지다. 그간 행적에 비추어 이 같은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불과 얼마 전 행정사무감사를 앞두고 온라인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입방아에 올랐다. 피감기관 공무원에게 안내문자뿐 아니라 입금 계좌번호까지 보내 물의를 빚었다. 눈밖에 난 공무원에게는 자료를 과다하게 요구해 괴롭히는가 하면 그 직원의 업무 상세일지를 제출하라고 강요해 노조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편 이해충돌 논란을 야기한 최영심 의원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돌봄 전담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최 의원의 문제 제기에 답변에 나선 부교육감이 이해충돌방지법 등을 거론하며 맞섰다. 그는 최 의원이 공무직 노조전임자 때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며 미래 이익과 상충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의원들은 부교육감의 태도를 문제삼으며 사과를 요구한 가운데 의회 경시냐 소신 발언이냐를 놓고 설왕설래 했다. 더욱 아쉬운 건 답변태도만 질타하면서 이해충돌 논의는 비껴갔다고 볼멘소리다. 도의원들이 짚어야 할 것과 다뤄야 할 것을 애매하게 처리함으로써 핵심이 흐려졌다는 지적이다. 도민의 대변자로 자처한 도의회하면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갖고 제기된 현안을 심도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의원들은 공인으로서 이로 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더구나 그들이 상대하는 공무원과 이해당사자들은 선거때 유권자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투표를 통해 권한과 의무를 주며 책임을 다하라고 뽑아준 이가 다름아닌 유권자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12.15 18:15

특례시 무산과 지방선거

삽화=권휘원 화백 전주 특례시 지정 무산이 전주-완주 통합과 차기 지방선거의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례시 지정보다 시군 통합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지역사회 일각에서 제기돼 왔고, 특례시 무산에 시도지사들의 반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김윤덕 국회의원에 이어 김승수 전주시장까지 차기 도지사 선거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인구 100만 이상 특례시 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 김승수 전주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기 고양수원용인시와 경남 창원시 등 4곳의 특례시는 수도권 특례시이자 국가 불균형 특례시라고 비판했다. 사실 인구 50만 이상 특례시 지정은 경기도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인구 50만 이상 전국 16곳의 도시 중 10곳이 포함된 경기도에서는 31개 시군 중 나머지 21개 시군은 비특례시로 전락해 역차별받을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수도권 3곳이 특례시가 됐고, 전북은 인구 50만 이상 도청 소재지(전주청주) 중 광역시와 특례시가 없는 지역으로 남았다. 특례시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특례의 기준과 범위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전주 특례시 지정이 광역시가 없는 전북에 각종 정부 사업과 국가 예산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전주 특례시 지정이 전북 전체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설명된 것이 없다. 전주 특례시 지정 무산으로 타 시도의 초광역권 구상과 맞물린 전주-완주 통합 재추진 목소리가 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 시장은 인구 50만 이상 도시의 특례권한 부여 조항이 살아있다는 점을 들어 특례시 재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민간주도의 통합 추진에는 동의하는 입장이다. 전주시가 특례 권한을 받으면 시군 통합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전주-완주 통합은 과거 완주군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전례에 비춰볼 때 무엇보다 완주군민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단순한 시군 통합과 특례시를 목표로 한 시군 통합 등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먼저 설명되고 이해돼야 한다. 그동안 특례시와 시군 통합은 어떤 연관성이 있고 어떤 긍정부정효과가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례시 무산에 대해 김승수 시장은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반대하고 방해해서 온 이 결과가 대한민국 전체 균형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는 결과인지, 또 만족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시도지사협의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전주 특례시 무산은 수도권에 뒤처져 있는 지방의 균형발전 기회를 무산시킨 것이란 인식이다. 그는 차기 도지사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며 가능성을 열어 놨다. 그러나 김 시장 주변에서는 그의 출마 가능성을 높게 본다. 전주 특례시 무산이 전북 정치 지형과 행정 구조의 변화를 부를 태풍이 될 지, 찻잔 속 미풍에 그칠 지 지켜볼 일이다.

  • 오피니언
  • 강인석
  • 2020.12.14 17:48

전주시의 혈세 낭비

삽화=권휘원 화백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고 확진자가 1030명대를 기록했다. 지난 8일부터 방역당국이 음식점에서는 저녁 9시 이후에는 포장해서 가져가도록 했고 커피숍은 테이크 아웃만 허용했다. 무주와 장수 이외의 도내 시군 자영업자들은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아우성친다. 그간에는 빚을 내서라도 영업을 해왔는데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어 죽을 맛이라면서 이대로 가다간 문 닫을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렇게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판에 전주시는 무슨 이유로 거액을 들여 삼천을 잇는 우림교 양측 인도를 한옥형 비가림 경관시설을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 지나는 시민들마다 궁전 회랑 같은 시설을 다리 양측에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시가 경관조경사업의 하나로 이 공사를 하는 것은 분명히 저의가 있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한 건축가는 사람이 머물지 않은 곳에 큰 불편함도 없는데 굳이 거액을 들여 이런 시설을 한 이유가 뭣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전주시가 경관사업이란 명분을 내걸고 자그마치 9억원을 들여 이 공사를 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혈세낭비라며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사업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고 지적했다. 시는 이 경관공사가 끝나면 전주시의 명물이 될 것이라고 선전하지만 시민들은 시의 재정형편을 감안할 때 그렇게 한가롭고 여유가 있지 않다면서 사업추진을 맹비난했다. 더 가관인 것은 14억5000만원을 들여 만든 금암분수대다. 이 사업은 눈가리고 아웅한 것 같아 기가 찰 정도다. 전주를 상징하는 예술성은 고사하고 초등학생들 공작놀이 하듯 공사를 끝냈다. 정원수 다운 정원수 한그릇 제대로 심어 놓지 않고 무슨 잡목 비스듬한 나무를 몽땅 심어 놓고 늦가을 정취를 풍기는 억새만 심어놔 과연 이게 예향 전주의 분수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조경석도 그렇고 어디서 파석을 깔아 놓아 날림공사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부 시민들은 유럽 분수대의 사례를 들지 않아도 전주시가 아트폴리스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분수대를 제대로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전주시는 지난 415 총선 때부터 교체하지 않아도 될 인도블록을 교체하는가 하면 교통섬을 만든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전주시가 여름철에 더운 이유는 지형이 분지이고 전주천 삼천 바람길을 아파트로 막아서 그런 것인데 무작정 나무만 심으면 해결될 것으로 착각, 시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 건물이 양쪽에 들어선 중앙로는 도로폭이 비좁고 햇볕이 들지 않아 비싼 나무를 굳이 심을 필요가 없고 구불길 만든 건 예산낭비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서민들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파악해서 이들이 생존권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혈세를 아껴야 한다. 우림교에다가 공사한 것은 겉치레 공사로 대표적인 예산 낭비다. 시중에서는 김 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거취만 의식해 너무 인기영합주의 행정만 편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12.13 17:35

컨네이너의 변신과 임시 병상

컨테이너는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통칭하지만 우리에게는 화물을 능률적이고 경제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자형 용기로서의 컨테이너가 친밀하다. 알루미늄이나 강철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컨테이너가 좀 더 익숙한 것도 그 때문인데 컨테이너 재료는 목재합판강철알루미늄경합금섬유강화플라스틱 등 의외로 다양하다. 1950년대에 등장한 이래 물류혁명을 이끌었던 컨테이너는 지금도 여전히 수송용 용기로서의 쓰임이 가장 활발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그 쓰임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쓰임은 건축물 소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컨테이너 건축물이 등장했는데, 그때만 해도 크고 작은 컨테이너 건축물은 대부분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후반, 국내외 관심을 모았던 컨테이너 건축물이 있다. 2009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다. 스물여덟개 군수용 컨테이너를 연결한 구조물에 아스팔트로 바닥을 입힌 이 건축물이 강남 한복판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컨테이너의 특별한 변신을 놀라워했다. 건축주는 비주류 문화운동을 주도해온 독일의 아트커뮤니케이션 그룹 <플래툰>. 서울은 플래툰이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쿤스트할레를 들여놓은 도시다. 이 컨테이너 건축물 설계자가 전주출신 건축가 백지원씨다. 어렸을 적부터 움직이는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동 가능한 최고의 구조물인 컨테이너를 주목해 자신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모듈건축의 기반으로 삼았다. 컨테이너를 연결한 덕분에 필요에 따라 내부 구조를 바꾸고 자유로운 공간 구성이 가능한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비주류 문화를 추구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적은 예산과 이동 가능한 구조물이라는 장점까지 더해지면서 이후 컨테이너는 공공미술프로젝트 등 예술작업에서도 중심 소재가 됐다. 전원주택에 관심이 높아진 이즈음엔 주택의 소재로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컨테이너 건축물이 우리 일상에 좀 더 가까이 들어왔다는 증거겠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병상확보에 비상이 걸린 서울시가 임시방편으로 컨테이너 이동병상을 짓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로 태어나는 컨테이너의 변신이 다시 주목되지만, 코로나 감염 확산의 위기를 반영하는 이동 병상이나 임시 병상으로 이름 지어진 컨테이너 병상의 등장은 결코 반갑지 않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12.1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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