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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과 도서정가제법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 지금은 프랑스 하원의원회 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의궤)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는 미테랑 대통령 시절 문화부 장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궤 반환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 성사시켰다. 문화 대중화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특히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던 문화권력을 분산시켜 지역의 문화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정책으로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 각 도시마다 특색 있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게 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자크 랑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가 주도해 만들어냈다하여 랑법이라 불리는 도서정가제법이 그것이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서정가제를 법제화(1924년)한 나라다. 그러나 대형서점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작은 서점들이 고사하는 위기를 맞자 1981년 미테랑 정부는 소규모 동네서점과 소형출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도서정가제법을 만들었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판매해 국민의 독서평등권을 확보하기 위한 이 법은 전국적으로 균형 있는 서적 유통망을 유지하고,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기반을 만드는데 주효했다. 이 법의 시행으로 프랑스 도서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프랑스의 도서정가제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도서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형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상륙이 원인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불공정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소규모 서점을 위해 더 강력한 법안을 만들었다. 반 아마존 법이라 불리는 도서정가제법이다. 이 덕분에 프랑스의 전통서점과 동네책방은 자유경쟁 시대에서도 살아남아 문화강국 프랑스를 지켜가는 상징이 됐다. 2003년부터 시행되어온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가 개정 시한을 앞두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라 3년마다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과정에 따른 것인데 올해는 2014년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찬반 입장이 팽팽해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역시 이러한 과정을 피할 수 없었을 터인데 들여다보니 프랑스의회는 자크 랑이 주도한 도서정가제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랑 장관은 법을 제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당장의 이익에 가려서는 안 될 책의 문화적 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09.10 18:41

디지털 교도소

성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3일 디지털 교도소에 이름과 얼굴 등이 게시된 고려대 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 사이트의 위법성 문제가 제기됐다. 최근엔 가톨릭 의대 교수가 디지털 교도소에 엉뚱하게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심각한 피해를 본 사실을 밝혀 적법성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3월 처음 등장했다. 조주빈의 성착취물 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해외에 서버를 둔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친인척이 n번방의 피해자라며 성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했고 성범죄에 관한 관심을 높여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현재 디지털 교도소에 공개된 신상정보는 150여 명.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와 n번방을 개설한 문형욱의 신상정보가 공개돼 있다. 또 철인 3종 고 최숙현 선수가 지목한 가해자 3명과 고 최희석 경비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심모 씨, 여행용 가방에 의붓아들을 가둬 숨지게 한 성모 씨 등 사회적 공분을 산 인물의 신상이 올려져 있다. 하지만 디지털 교도소의 신상공개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한번 성범죄자로 잘못 낙인이 찍히면 피해는 회복하기 힘들다. 성착취물 구매자로 신상이 공개됐던 의대 교수는 각종 욕설협박 전화나 문자에 시달렸고 지인과 대학 학회 교회 등 주변에서 의혹의 눈초리에 큰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인터넷 사이트에 자의적인 신상 공개는 위법성 소지가 높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비방을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면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다. 더욱이 사법적 판단이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사적 제재는 위법이다. 다만 지난 1월 수원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베드 파더스처럼 공익 목적으로 진실한 내용을 알리는 경우는 예외다. 양육비 지급 촉구를 위한 활동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와 사법부는 디지털 교도소처럼 사적 응징에 나서는 세태에 각성해야 한다.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 때문에 빚어진 만큼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09.09 18:18

공익신고

2012년 11월 9일 전북소방본부장 심평강씨가 전격적으로 직위해제 됐다. 연말 계급정년을 앞둔 시점이라 조직 내부는 술렁였다. 군산출신으로 평소 직원들 경조사를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남다른 성품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소방방재청 편중인사에 대한 부당함을 수차례 주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소방방재청 핵심요직은 영남출신이 독차지할 만큼 지역차별 편중인사가 도를 넘은 상태였다. 고위직인 소방감이상 11명중 본청 정원 3자리 포함 6명이 그들만의 리그 출신이다. 불행하게도 대구출신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의 인사스타일은 훨씬 노골적이었다. 그는 편중인사는 물론 부하직원 금품요구향응수수설까지 불거지면서 내부에서조차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그 즈음 심 본부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청장의 일탈행위를 감사원국회 등에 공익신고 함으로써 판도라 상자 를 연 것이다. 일부에선 승진탈락의 불만 때문에 그랬다느니 온갖 루머가 나돌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지역차별 편중인사의 희생양으로 아픔과 좌절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차별인사의 속앓이만 생각하면 심 본부장과 이 청장은 처지가 비슷하다. 2인자인 차장시절 이 청장도 직속 상관과 껄끄러운 관계로 살얼음판을 걷다시피 했다. 오죽했으면 사표를 던진 채 KTX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중 청장 승진소식을 듣고 기사회생한 인물이다. 그만큼 인고(忍苦) 세월을 보냈기에 공명정대한 일 처리를 기대했지만 헛물만 켜고 말았다. 본인의 향응접대에 대한 공익제보를 문제삼아 해당 간부를 대기발령 후 직급을 낮춰 파견발령을 냈다. 한술 더 떠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신이 폐지했던 제도를 통해 측근간부를 특별 승진시키는 등 인사권을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전현직 간부를 상대로 맞고소를 통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감사결과 전방위 인사전횡이 드러나 사퇴압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조직상관을 상대로 한 공익신고의 대가는 혹독한 시련의 연속이다. 심 본부장은 맞고소를 당해 3년여 동안 배신자 낙인이 찍힌 채 검찰과 법원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고초를 견뎌 내야만 했다. 피 말리는 법정공방 끝에 2017년 대법 무죄판결로 누명은 벗었지만 괘씸죄는 끝까지 그를 괴롭혔다. 결국 평생 몸담은 조직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정년을 맞았다. 국민권익위도 그의 직위해제 사유가 부당하다며 취소를 요구했지만 이 청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7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명예회복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그에게 희소식이 들린다. 지난 달 19일 그가 비리를 폭로한 소방방재청장의 공익신고는 적법하며, 직위해제와 해임은 신고와 관련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된다는 항소심 법원판결이 나왔다. 다시한번 명예회복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그는 공익신고 내용에 대한 관련자 처벌과 함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09.08 17:14

러시아 백신의 안전성

확산 추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백신 개발에 전 세계 각국이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 11일 세계 최초로 러시아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해 공식 등록했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 대해 각국 전문가들은 기대 대신 신뢰할 수 없다며 평가절하 했다. 임상 3상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데다, 임상 1, 2상에 대한 자세한 실험 데이터 등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백신의 생명인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이 개발한 백신에 스푸트니크Ⅴ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의 전신인 구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로 발사에 성공한 인공위성으로 당시 미국과의 치열한 우주 경쟁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기게 만든 사건으로 남아있다.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명명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딸도 이 백신을 접종했다며 안전성과 효능을 과시했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같은 서구 전문가들의 불신을 의식한 러시아가 지난 주(4일) 국제 의학 학술지인 더 랜싯을 통해 임상 1,2차 시험과 관련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 학술지는 러시아가 올해 67월 시행한 두 차례 임상시험 결과 참여자 전원에게서 코로나19 항체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각 시험 참여자는 18세부터 60세 사이 성인 38명으로, 시험은 42일 동안 진행됐으며, 모든 참여자에게서 3주내 항체가 형성되었다고 공개했다. 백신 효능 비교를 위한 플라시보(가짜 약) 투여는 없었다. 참여자 전원에게서 항체가 형성됐다니 대단한 성과인 것 같지만 1, 2차 임상 대상자가 80명도 안되는 등 신뢰를 얻기에는 매우 적은 숫자다. 또한 3차 임상도 건너 뛰고 조급하게 백신이 공식 등록되었다. 러시아는 이달 중 약 4만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통상적으로 백신 개발 과정에서 임상은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1,2상에서는 주로 인체 유해성과 항체 생성에 대한 가능성을 살핀다, 가장 중요한 관문이 임상 3상이다. 최소 1천명 부터 수만명 까지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짜 약과 가짜 약(플라시보)을 투여해 수개월에 걸쳐 추적관찰을 통해 두 그룹사이의 효능과 부작용등 차이를 비교 관찰한다. 3상을 거치지 않은 스푸트니크Ⅴ는 아직 안전성과 효능이 완벽히 검증되지 않은 백신이라 할 수 있다. 무모한 결정이라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시절 서구 열강들의 우주를 향한 경쟁이 국력과시를 위한 경쟁이었다면,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인류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경쟁이 돼야 한다. 사전 검증 절차도 소홀히 한 채 제일 먼저 개발한 백신이 가장 우수한 백신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백신 개발절차와 달리 사용 등록부터 먼저 한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Ⅴ에 전 세계가 불신하는 이유다.

  • 오피니언
  • 박인환
  • 2020.09.07 19:14

단체장의 성적표

일선 시군에서 만들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거의 단체장 치적사항으로 도배를 한다. 그걸 언론들이 날마다 여과없이 받아 쓴다. 수용자인 주민들이 날마다 용비어천가를 본다. 왜 그럴까. 치적을 홍보해서 재선하려고 그런 짓을 한다. 대부분이 박봉에 시달린 신문사기자들이 시군 홍보담당으로 옮겨가 날마다 찬양 일색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자들에게 배포해준다. 서울만 갔다오면 국가예산을 확보했다고 대문짝 만하게 찬양기사가 난다. 그것만 보면 일찍 살기좋은 시군이 만들어졌을 터인데 실상은 그게 아니다. 시장 군수가 장관이나 청와대 등 영향력 있는 인사를 만났다고해서 금새 국가예산이 확보되는 게 아니다. 문턱이 닳도록 해당 부처를 찾아 다녀도 실현 가능성이 약한데 한두번 만났다고 풀리는 게 아니다. 시장 군수 성적표는 국가예산 확보와 직접적 상관 관계가 깊다. 해당 부처 사무관서부터 과 국장을 거쳐 장차관까지 결재가 나야 반영 되는데 이 작업이 결코 녹록치 않다. 해당 부처는 전국 모든 자치단체를 상대하므로 시장 군수가 한두번 다녀 갔다고해서 예산이 반영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우선순위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해야만 부처예산에 해당 시군예산이 편성된다. 이 과정을 거쳐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로 넘겨져서 다시 검토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산의 게이트키핑이 지난한 과정이다. 국가예산 확보는 시장 군수 혼자 뛰어서 되는 게 아니다. 지사나 국회의원이 옆에서 도와주고 챙겨줘야 가능하다. 그런데 신문 날때는 본인 혼자의 능력으로 해결된 것 처럼 홍보한다. 관계자들이 보면 기가 찰 노릇으로 쓴 웃음이 절로난다. 다음으로 기업유치는 시장 군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다. 시군에서 MOU만 체결한 것 갖고도 기업을 유치했다고 홍보한다. MOU는 구속력이 없고 단순한 의사표시에 지나지 않아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도 새만금개발청 시군에서 체결했던 기업유치 MOU는 부지기수였다. 삼성이 새만금에 투자하겠다는 대사기극부터 시작해서 MOU만 체결하고 기업유치가 안된 경우가 많았다. 전주시는 2015~2019년까지 20개의 기업을 유치했다. 최근 3년간은 8건을 유치했다. 전주시는 지난 2011년 친환경첨단복합산업단지를 조성한 이후에는 공단조성을 손 놓았다. 온통 한옥마을에만 매달렸다. 1000만 관광객 시대를 맞았다고 흥분일색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지만 전주시가 미래를 내다보고 기업유치를 해야만 했다. 팔복동에 탄소소재 국가산단을 조성하지만 면적이 65만㎡ 밖에 안돼 그냥 바닥날 수 있다. 지금은 잡히지도 않는 산토끼를 잡는다고 예산만 낭비할 게 아니라 찾아온 집토끼를 잘 기르는 게 상책이다. 자광이 2조5000억을 투자해서 대한방직터에 익스트림 타워를 짓겠다는 것을 바로 시행토록 해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사업을 투명하게 처리하면 두려울 게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 일은 안해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09.06 15:30

슬기로운 의사생활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에서도 발병한 이후 신천지 교인들이 가세한 확산세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봄, 화제를 모았던 의학 드라마가 있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는 20년 지기 의과대 출신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tvN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그즈음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 드라마가 심심찮게 화제에 올랐다. 같은 의과대 출신인 다섯 명 친구들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10년차 전문의. 적당한 사명감과 기본적인 양심을 가진, 병원장을 향한 권력욕보단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욕이 앞서고, 슈바이처를 꿈꾸기보단, 내 환자의 안녕만을 챙기기도 버거운, 하루하루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한 평범한 의사들이다. 그러나 병원 안에서 배우고 아프며 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래서 현실을 다시 둘러보게 하는 공감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돌아보면 90년대에 방송되었던 종합병원으로부터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뉴하트 산부인과 골든타임 닥터스 라이프 낭만닥터 김사부 등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다. 의학드라마로서 기본적인 고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논란이 된 작품도 있지만 거개의 작품들이 바로 이것, 휴머니즘의 힘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예외가 아닌데, 매회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과 진한 울림은 다른 드라마들보다도 유독 깊었다. 이제 마흔 살이 된 다섯 명 의사들의 치열한 직업의식과 인간적인 따뜻함이 전하는 위안과 공감이 컸던 덕분이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맞선 의료계(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명분과 실리조차 각자도생(?)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정책연구소가 파업 정당성을 위해 만든 홍보물 내용이 논란이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굴 선택하겠느냐고 묻는 질문에 답은 두 가지.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는 레지던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보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좋아.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넌 좋은 의사가 될 거야. 드라마는 드라마 일 뿐인가.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 크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09.03 17:13

친일 단죄비

지난달 29일 전주 덕진공원 안에 있는 김해강 시비 옆에 단죄비(斷罪碑)가 세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와 전주시가 이날 경술국치일 110주년을 맞아 김해강 시인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안내판 제막식을 가졌다. 친일행적보다 문학적 업적이 더 크다며 전북문화계의 반대도 있었지만 일제 잔재청산 차원에서 단죄비가 설치됐다. 전주 태생인 해강 김대준(19031987)은 시인이자 교육자다. 보성고보 재학중 기미독립만세운동에 가담했다 도피해 전주 신흥학교와 전주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을 잡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전북 시단을 주도했고 문화인연맹을 만들어 전북 문단을 이끌었다. 전북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초대 전북예총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해강 시인은 1942년 일본군의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라는 시를 비롯해 친일 작품을 쓴 것으로 드러나면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문인 42인과 광복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김 시인이 생전에 작사한 전북도민의 노래와 전주시민의 노래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폐지됐다. 김해강 시인의 친일행적 단죄비는 전북에서 세 번째다. 지난 2011년 진안 부귀면에 있는 윤치호 불망비 대신에 그의 친일 행적을 적은 단죄비가 처음 세워졌다. 한때 촉망받던 지식인으로서 독립운동과 애국 계몽 활동에 앞장서다 투옥되기도 했지만 친일 전향 조건으로 석방된 이후 변절했다. 이어 2016년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의 묘가 있는 전주 중노송동 기린봉 입구에 두 번째 단죄비가 설치됐다. 이두황은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했고 호남지역 의병 해산과 일제의 토지수탈을 도왔다.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단죄비는 전국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남 거제시 시민단체들이 항일독립군 토벌에 참여한 김백일 장군 동상 옆에 친일행적 단죄비를 세웠다. 그는 흥남철수작전 당시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을 설득해 10만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영웅이기도 하다. 광주에선 일제 신사였던 광산구 송정공원 금선사 입구에서 친일잔재 청산 단죄비가 설치됐다. 고창에선 친일 반민족행위로 서훈이 취소된 인촌 김성수의 새마을공원 내 동상 철거여부를 놓고 토론회까지 가졌으나 군민 의견이 엇갈려 유야무야됐다. 전북에는 일제의 앞잡이가 돼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부역자가 120여 명에 달한다. 민족 반역행위에는 시효가 있을 수 없다. 철저한 친일 잔재 청산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09.02 17:04

자유게시판에 비친 세상

버스 정류장에 사람이 모여 손을 흔드는 데도 그냥 지나친다. 심지어 버스를 두드리며 뛰어 오는데도 본체 만체 떠난다. 겨우 버스에 올라 채 앉기도 전에 급 출발하는 안전 불감증도 여전하다. 그러면서 툭하면 신경질적 반응에 반말도 예사다. 사회 고질병처럼 인식된 시내버스 기사의 불친절을 고발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버스 차량번호와 기사 이름은 물론 민원발생 일시장소까지 꼼꼼하게 적어 올린다. 전주시만 해도 한해 500건 이상 시내버스 불편 민원이 접수 된다고 한다.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시가 예산 4억 원을 들여 11월까지 시내버스 운행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인지 이와 관련된 불만도 넘쳐 난다. 휴가철 한옥 마을에 외지 관광객이 북적이는 데 마스크를 안 쓰고 활보하는 이가 의외로 많다. 상점, 거리 등에서 밀접 접촉도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많은 곳이라 덜컥 겁이 난다고 한다. 이를 강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곳곳에 계도 포스터나 현수막 정도만 설치해도 그나마 나을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쳤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는 암흑기를 맞고 있다. 매출절벽 탓인지 고위험시설 집합금지 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커피숍음식점은 방문자 기록도 대충 하는 데다 마스크 내리고 침 튀기며 얘기하는 게 다반사다. 반면 고위험 시설인 PC방의 경우 방문자 기록도 남고 앉을 때도 거리두기가 가능하다. 먹거리 판매 제한하면 마스크 벗을 일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위험해 보이는 시설은 정상 영업을 계속하는 데 도대체 기준이 뭐냐며 볼멘 소리다. 계속해서 먹여줄 것도, 집세를 내줄 것도 아니면서 싸잡아 문 닫으란 것은 형평성 논란에 불을 붙인다고 경고 한다. 서민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감대를 찾으라는 지적이다. 이뿐 아니다. 위기 가정 반찬 배달에 대한 폭풍 칭찬 도 눈길을 끈다. 거동이 불편하고 제때 식사도 못하는 어려운 이웃에 온정을 전달하는 사업이다. 외출도 어렵고 늘 집안에만 머물러 입맛이 없는 노인에게 배달 반찬 은 축복인 셈이다. 반면 코로나 확진판명 부장판사의 동선이 지난 달 15~16일 서울 경기 방문이라고만 적혀 있고 확인 중이라고만 돼 있어 궁금하다는 내용도 있다. 이 밖에 전주 천변 산책로에 공공화장실이 없어 불편을 겪거나 도로변 수북히 쌓인 쓰레기수거를 통행이 적은 야간에 처리하면 쾌적한 도시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건의사항도 있다. 또 공사 중인 덕진공원 연화교가 어렵게 만들어져 어린이와 장애우가 지나 가기엔 힘들거란 조언도 흥미롭다. 앞서 밝힌 내용들은 8월 중 전주시청 홈피 자유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코로나 속 힘겨운 여름나기를 보내는 서민들 삶이 민원 내용에 고스란히 배어있어 그런 지 묵직한 공감을 준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09.01 17:14

긴급 재난 문자

지난 6월23일 밤 9시30분 경 대구시 서구청에서 발송한 재난문자가 단순 해프닝으로 밝혀지면서 구청의 안일한 행정력이 주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건물 연막소독을 위한 방역작업을 대형건물 화재로 오인한 주민 신고로 소방당국이 출동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구청 신입 당직자가 제대로 확인도 않고 주민들 대피하라는 재난 안전문자를 발송한 것이다. 뒤늦게 사테를 파악한 구청측이 20분 만에 착오 정정 메시지를 발송하면서 일단락됐지만, 한밤중에 주민들이 혼비백산해 대피준비를 하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고 한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국내에서 재난문자 발송은 지난 2005년 도입됐다.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분할 다원접속)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1996년 시작되고, 대부분 국민들이 휴대전화를 갖게 되자 정부가 이동통신 3사와 업무협정을 맺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태풍, 홍수, 폭설, 지진 같은 재난 발생 때 문자를 발송한다. 재난문자의 소리는 재난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공습경보 등의 위급재난은 가장 큰 소리인 60dB , 테러 등의 긴급재난은 40dB로 비상상황을 알린다. 반면 안전 안내문자는 일반문자 수신환경 소리와 비슷하다. 재난문자는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전송된다. 기지국에 연결된 모든 휴대전화에 강제 발송된다. 기지국의 전파는 장애물이 없을 경우 최대 15㎞까지 도달한다 기지국 전파가 도달되는 모든 휴대전화에 문자가 보내진다. 별도로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에 갔을 때 해당 지역의 메시지가 수신되고,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된다. 지난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는 4907만대로 집계됐다. 이 중 성능 문제로 재난문자를 전달받지 못하는 휴대전화는 2G , 3G , 4G폰 등 약 122만대로 전체의 2.48%에 불과하다. 대부분 휴대전화에 재난문자가 발송되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재난문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긴급하지 않은 사안까지 발송하면서 문자를 양치기 소년 대하듯 하는 것이다. 국민 전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문자의 공익적 기능을 감안하면 적은 불편은 기꺼이 감내하는 자세가 아쉽다. 최근에는 재난문자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엉뚱한 역기능이 우려된다. 공개되는 확진자의 이동경로에는 유명한 맛집이나 카페 등의 업소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문자에 한번 상호명이 뜨면 확진자가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소비자들이 얼씬도 하면 안되는 곳으로 낙인찍혀 버린다. 방역 소독작업을 마치고도 매출이 급감하면서 폐업 직전까지 내몰리는 업소가 생겨나고 있다. 이들도 우리의 이웃이다. 업소가 확진자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동체 구성원들의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 오피니언
  • 박인환
  • 2020.08.31 19:37

몸 푸는 후보들

2022년 6월1일 치러질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예상자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가장 관심 가는 선거는 지사 교육감 전주시장 익산 남원 순창 임실 고창 무주군수 선거다. 재선인 송하진 지사의 3선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어간다. 아직까지 본인이 출마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힌적은 없지만 지난 총선 때 지사 출마가 어느정도 예상됐던 후보들이 낙선, 경쟁자가 없어진 바람에 자연스럽게 송지사의 3선 출마가 점쳐진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순장조로 알려진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총선출마를 접을 당시만해도 전북지사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고사했고 지금은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 값 때문에 입도 뻥긋할 입장이 아녀서 아직은 뚜렷한 송지사 대항마가 없다. 3연임한 김승환 교육감이 더 이상 출마할 수 없어 교육계를 중심으로 출마자에 대한 하마평이 오르내린다. 교육감은 정당 공천이 없지만 현 정치상황으로 볼때 전북은 진보쪽 인사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선뒤에 지방선거가 치러지므로 대선 승리한쪽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지난번 28.95%를 획득 차점으로 낙선한 서거석 전 전북대총장과 김승환 교육감의 지지를 받는 인사가 한판승부를 펼칠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출마했던 후보들이 재출마해 다자구도로 갈 경우에는 선거판이 달라질 수 있다. 재선인 김승수 전주시장의 3선 출마냐 지사 출마냐 여부도 관심사다. 김완주 전 지사때부터 그물망 조직을 만들어온 김 시장은 지사선거를 겨냥했다가 여의치 않으면 시장선거로 돌아서도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하에 조직강화에 힘 쓰고 있다. 김 시장은 화이트 컬러보다는 젊은층과 서민층 관변단체를 중심으로 골수조직을 만들어 생각보다 조직력이 강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의 이미지가 너무 포퓰리스트로 각인되고 뚜렷한 업적이 없다는 단점 때문에 여론은 안 좋은 편이다. 지금까지 김시장의 대항마가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최근 전북부지사로 취임한 최훈씨가 어느 시점에 전주시장선거에 나설 것이란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돌아 귀추가 주목된다. 그도 그럴 것이 최 부지사가 송지사의 전주고 고려대 법대 직계 후배인데다 송지사가 일찍부터 그의 행정능력을 높이 사와 최 부지사가 결단만 내리면 당내 공천경쟁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평화당으로 당선된 정헌율 익산시장과 유기상 고창군수가 민주당 후보를 경쟁해서 이겨낼지도 관심사다. 정시장은 민주당 복당이 사실상 어려워 다음에는 민주당 후보와 한판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이다. 이환주 남원시장과 황숙주 순창군수가 3연임한 관계로 출마를 못하기 때문에 누가 나설지도 관심사다. 다음으로 무소속 심민 임실군수의 3선 출마와 무소속 황인홍 무주군수 대항마도 관심사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이 9석을 싹쓸이 해 민주당이 전북을 장악했지만 지방선거까지 많은 변수가 남아 아직 결과 예측은 시기상조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08.30 16:14

‘행복지수’와 코로나 극복

지난 3월 20일, 유엔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2020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국가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53개국 중 61위. 지난해보다도 7단계 더 하락했다. 2016년부터 줄곧 50위권을 기록해오다가 올해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60위권으로 밀려난 결과다. 국가별 행복지수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기대 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7개 지표를 기준으로 산출한다. 우리나라는 기대수명과 1인당 GDP는 상위권이었으나 그 밖의 지표는 모두 중하위권으로 밀려나있다. 한국은 각국별 행복지수 변화에서도 105위에 머문다.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성장세를 주목받고 있는 한국이 정작 행복한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결과는 부끄럽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3년 연속 1위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뒤를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이 잇는다. 핀란드를 포함해 다섯 개 나라가 북유럽 국가들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는 왜 그렇게 높을까. 핀란드의 경우는 탄탄한 사회 안전망과 높은 수준의 복지체계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비결로 꼽히지만 눈길을 끄는 내용은 따로 있다. 코로나가 각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 공동체들이 서로를 도우려는 높은 의지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는 미국 CNN의 분석이다. 세계행복보고서도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번졌을 때 피해를 줄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협력할 방법을 찾는다며 이웃과 기관이 서로를 도우려는 의지가 강하면 소속감을 높이고 자부심을 갖게해 재정적 손실을 보상할 만큼의 이득을 준다고 조언한다.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우리의 일상을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기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강한 변종까지 가세했으니 더없는 위기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협력이 필요한 때이지만 진실을 왜곡한 거짓뉴스가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고 집단이기주의가 사회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있다.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의 감출 수 없는 민낯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외출을 자제해달라는 재난문자가 이어진 지난 주말,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지인들이 많았다. 공동선을 지켜가는 힘이 따로 없다. 감사할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08.27 19:25

교회의 변질

요즘처럼 교회에 다니는 신앙인으로서 자괴감이 클 때가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첫 메시지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했다.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막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살라고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지탄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소위 교계 지도자라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더 그렇다. 초대형 교회 목사들은 편법 탈법을 동원해 줄줄이 교회를 아들에게 상속했다. 교회의 권력과 부를 자녀들에게 세습한 것이다. 그런데도 소속 교단은 이를 묵인하거나 용인했다. 대형 교회의 힘과 돈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일명 빤스 목사로 알려진 전광훈 목사는 야당과 연대해 반정부 투사로 돌변했다. 방역 지침을 어기고 교인들을 반정부 집회와 시위에 동원했다가 9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됐다. 이들로부터 n차 감염된 사람들도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에 이른다.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한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인은 물론 온 국민까지 위험에 빠뜨렸다. 생명의 구원을 위해 헌신해야 할 목사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내팽개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앞 집회 중에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발언했다가 기독교계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샀다. 일부 교단에선 그를 이단 옹호자로 결론 내고 사이비 판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탄압과 핍박이 거셀 때 부흥했다. 기독교인은 무조건 잡아 죽이던 로마시대의 박해에도 지하 무덤인 카타콤에서 신앙을 지켰고 수많은 순교를 통해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그러나 카놋사의 굴욕 사건을 계기로 교황의 권력과 권위가 황제를 넘어서면서부터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도 초대 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를 통해 부흥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겸손과 청빈,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보여준 예수님의 가르침 대신에 교회 속에 맘몬(물질)과 권력이 자리 잡으면서 세속화됐다. 대형 교회의 성공신화에 열광하고 다수가 이를 부러워하고 추종하면서 교회는 변질되고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목사가 목사답고 교회가 교회다울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08.26 17:30

지지율 역전

얼마 전 집권여당 민주당 지지율이 통합당에 추월 당했다는 뉴스가 관심을 끌었다. 박근혜 탄핵국면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그 것도 34.8%, 36.3%의 근소한 차로 앞선 데다 민주당이 며칠 새 뒤집어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양새다. 이같은 여야 지지율 배경에 웃지 못할 함수관계가 내포돼 있어 정치권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때아닌 지지율 경쟁은 미운 털 민주당 의 반사효과 탓이다. 대개는 선의 경쟁을 통해 정치를 잘 한다고 지지율이 오르는 데 반해 이번 경우는 정반대라서 씁쓸하다. 똘똘한 한 채 로 회자된 부동산정책 실패와 서울부산시장 성추문 여파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후 전광훈발 광화문 집회 로 문대통령 인기가 회복된 반면 통합당은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 때도 통합당의 무기력함이 승패를 갈랐다고 수군거렸다. 한마디로 통합당이 유권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참패했다는 뜻이다. 여당도 크게 잘한 것은 없지만 야당은 더 못 봐주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 정당 무능과 실책에 따른 롤러코스터 지지율 은 계속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정치권 평가가 매번 꼴찌를 못 면하는 까닭이다. 여야가 국정 파트너로서 당당한 경쟁을 통해 지지율 반등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지지율도 비슷한 양상이다.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조금 앞서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코로나 관리 실패와 말 실수 가 지지율 격차에 반영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바이든 후보 경륜과 능력이 뛰어 나서가 아니라 트럼프의 리스크 관리가 잘못됐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속 사정이야 어찌됐든 전북 정치권에선 이런 지지율 경쟁도 부러울 따름이다. 정치 지형상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독주체제가 견고한 가운데 가뜩이나 기반이 취약한 통합당의 도당 움직임은 국회 103석 제 1야당의 위상을 무색케 한다. 20대 국회는 지역구 정운천 의원의 나홀로 명성 으로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다. 21대 총선 결과는 더 큰 기대를 모았다. 비록 지역구는 눈물을 삼켰지만 전북출신 비례대표 의원을 4명이나 배출한 것이다. 정운천 의원을 비롯해 조수진, 이종성, 이용 의원이 그들이다. 특히 기자출신 조 의원은 요즘 여당 공격수 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런 소중한 정치자산을 갖고도 4월 총선 이후 통합당의 전북 행보는 낙제점 수준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통합당이 호남민심 끌어안기 선봉 역할에 정운천 의원을 국민통합 특별위원장에 임명하고 몸 풀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민주당도 코 앞에 둔 전당대회를 통해 전북 몫 찾기를 위한 묘수풀이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모처럼 만에 여야 지지율 경쟁이 반가운 이유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08.25 16:31

빈집 거래 은행

정부가 지난 2017년 제정한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빈집의 정의를 행정기관이 거주 또는 사용여부를 확인한 날로 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사용하지 않는 주택을 빈집으로 규정하고 있다. 집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 사유재산이지만 빈집이 되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면서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 된다. 집에 사람이 살지 않으면 건물의 훼손과 퇴락은 한층 빠르게 진행된다. 주변 경관과 위생을 해치고, 화재나 붕괴 위험도 커진다. 쓰레기 투기나 창문을 깨는 등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적용되는 대표적 사례가 된다. 빈집들이 장기간 방치되면 인근이 슬럼화되는 등 지역 공동체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준다. 범죄온상이 되기도 한다. 빈집으로 인한 피해는 근처에 거주하는 이웃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범죄와 안전사고에 대한 위험 부담은 이사 갈 여력이 없는 이웃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국내의 빈집은 지난 2017년 통계청 조사 결과 126만 호로 전체 주택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도내 경우도 빈집은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 2018년 8만6732호로 파악됐다. 전주시의 경우 빈집은 1961호로 파악되고 있다. 빈집의 가파른 증가세는 혁신도시 같은 신도시 개발 등 시군별 택지사업에 따른 주택 과잉공급 현상과 인구 유출 및 출산률 저하 등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집주인이 고령으로 사망한 뒤 자녀 등 상속인이 집을 물려받아 거주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우리 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빈집 문제가 사회 문제화 되고 있다. 우리의 빈집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대부분 지자체는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아키야 (空家) 뱅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빈집 관련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려 매수 매도를 도와주는 서비스다. 캐나다와 프랑스 등 일부 해외 선진국에서는 빈집 통제를 위해 빈집에 세금이나 벌금을 부과하는 빈집세를 시행중이다. 우리도 투기 대상으로 개발 예상지역 등지의 주택을 매입 후 장기간 집을 비워 두는 경우가 적지 않아 참고할 만한 제도로 보인다. 전주시가 도심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빈집 정비를 위해 빈집 거래은행을 도입 운영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셈이다. 전주시는 빈집을 노후화 정도와 위해성 등을 고려해 5등급으로 분류,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한편 5개년 정비계획을 수립해 빈집 환경을 바꿔나갈 방침이다. 빈집을 매입해 철거한 곳은 쉼터나 텃밭 등 공유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빠른 고령화 등 원인으로 빈집은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게 뻔하다. 빈집 처리는 단순한 지방의 주거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 오피니언
  • 박인환
  • 2020.08.24 19:01

개미가 사라진 전주음식

전주는 예향의 고향이면서 맛의 본향이라고 알려져왔다. 하지만 예전의 명성이 차츰 사라져 그 위상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 비빔밥과 콩나물 국밥 이외에는 별로 특색있는 음식이 없는데서 비롯된다. 비빔밥도 몇집을 제외하고는 소문난 것에 비해 가격만 비싸지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콩나물국밥도 거의 화학조미료에 의존한 맛이 대부분이어서 예전에 느꼈던 그 감칠맛 나는 개미를 느낄 수 없다는 것. 예전에는 푸짐한 안주발이 넘쳐난 막걸리 집 때문에 전주를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가격이 비싸 별로 전주를 찾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군산만 가더라도 전국적으로 소문난 해물 짬뽕집과 소고기 무우국이 있어 몇시간 줄서는 건 다반사로 여긴다. 이번 폭우 때에도 복성루 빈해원 한일옥 등은 줄서서 기다리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쳤다. 그 정도가 되어야 맛집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전주는 음식의 본향이라고 하지만 줄서서 먹는 곳이 거의 없다. 번호표를 나눠 주는 중화산동 콩국수집 가본집이 있지만 한 두시간 정도 기다려야 번호를 탈 정도는 아니다. 군산이성당 단팥빵을 사려고 길다랗게 줄서는 풍경을 쉽게 보지만 전주는 그런 업소가 없다. 왜 전주음식이 하향평준화가 됐을까. 그건 전주경제와 직접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 음식은 현지인들이 어느정도 먹어줘야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게 돼 있다. 80년대까지만해도 전주 경제가 괜찮았다. 팔복동 공단이 잘 돌아가고 기관에서 회식등을 자주하면서 한정식집과 일식집등이 호황을 이뤘다. 하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유명했던 음식점 손님이 줄기 시작하면서 폐업하는 업소가 늘어났다. 횟집의 경우 4명이 가면 4인분을 주문해야 하지만 기껏 2~3인분만 시켜놓고 돈 안되는 스끼다시만 요구해 남는 게 없다는 것. 음식점을 한 주인들은 빈곤의 악순환 마냥 안주만 죽이지 돈이 되지 않아 결국 폐업을 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업소들이 음식값을 자율적으로 책정하지만 소비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면서 질까지 떨어졌다. 어느 정도 비싼 음식이 잘 팔려야 질도 높아지는데 장사가 잘 안돼 상당수 업소가 겨우 인건비 정도나 따먹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까 식자재값과 인건비는 치솟지만 그렇다고 가격을 맘대로 올리지 못해 더 힘들다는 것.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그나마 찾던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 음식점 운영이 더 어려워졌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관공서도 김영란법 때문에 예전같이 찾는 횟수가 줄어 이래저래 음식점만 죽어라 죽어라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프랜차이즈 업소가 판쳐 향토음식점 운영하기가 더 힘들다는 것. 2~3세로 대를 이어가지만 그마저도 장사가 안돼 폐업하는 업소만 늘어간다. 전주음식맛을 지키고 되찾는 노력이 업주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이 발품을 팔아 엮어낸 전라도 관찰사 밥상이란 책에서 그 해답을 구했으면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0.08.23 16:12

모지스 할머니의 도전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1860년~1961년). 정감 넘치는 풍경화로 우리들에게도 꽤 익숙한 미국 출신 화가, 그랜마 모지스란 닉네임으로 더 널리 알려진 화가가 그다.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으며 100세 되던 생일날에는 뉴욕시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선포할 정도로 미국인들이 사랑했던 화가. 사람들은 정감 넘치는 독특한 화풍으로도 그렇지만 자신의 일상을 일기와도 같이 그림으로 그려내는 그의 성실한 작업에 열광했다. 그는 75세,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늦깎이 화가였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농장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결혼 후에도 아내로,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왔던 그의 삶이 새롭게 바뀐 것은 70세가 넘어서다. 그가 관절염으로 바느질이나 자수 같은 일을 하기 어렵게 되자 딸은 엄마에게 화구를 사다주었다. 소일거리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다.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든 목판 위에 그가 그려낸 그림들은 어린 시절 추억 속 풍경들. 그림을 배워 본적 없었지만 그가 그린 목가적 풍경들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연히 그의 그림을 발견한 수집가 덕분에 농부 부인이 그린 그림이란 주제로 첫 전시회를 가진 이후 그는 화단과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으는 화가가 됐다. 뉴욕을 비롯해 미국 국내는 물론 일본과 유럽의 화랑들이 앞 다투어 그를 초대했다. 생전에 그려 남긴 그림은 1600여 점. 100세 넘어서 그린 작품만 250점이란다.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가 1억장이 팔려나가고 83세에 그린 그림 <슈가링 오프>가 2006년 한 경매에서 120만 달러에 팔릴 정도였으니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늘 높은 인기에 마음을 쓰지 않고 묵묵히 그림 그리는 일만 즐겼다는 모지스 할머니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은퇴 이후 노인 세대로 들어선 지인들이 많아졌다. 새로운 삶에 대한 적응과 도전보다는 인생의 변환기를 두려워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다. 한결같이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너무 늦었다는 좌절감이 큰 탓일 터다. 모지스 할머니의 도전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것. 결국은 스스로의 선택이 답이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08.20 17:45

이탈리아의 코로나19 방역

지난 3월 초 전 세계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원지로 지목된 이탈리아. 유럽의 우한으로 불리며 중국에 이어 세계 각국에 코로나바이러스 전파 경로로 떠올랐던 이탈리아가 강력한 통제와 방역을 통해 유럽에서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로 반전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연구팀이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전 11주간 세계 각국에서 보고된 첫 확진 사례의 유입 경로를 분석한 결과, 이탈리아가 2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 22%, 이란 11% 순이었다. 즉 전 세계 국가의 코로나19 확진자 4분의 1 정도가 이탈리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신규 감염자가 하루 5000~6000명씩 급증하면서 전 세계에 팬더믹 공포를 초래했다. 그 여파로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 증시가 대폭락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처음 코로나19에 대한 안이한 대책으로 초기 방역에 실패한 이탈리아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원성과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이탈리아인이나 이탈리아를 경유한 사람도 세계 각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했고 또한 나라마다 자국민의 이탈리아 여행도 금지했다. 결국 뒤늦게 방역 대책에 나선 이탈리아 정부는 전 국민 6000만여 명에게 이동을 제한하는 레드 존을 발동했다. 모든 시민들이 외출을 하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규정을 어기면 벌금이나 3개월 징역에 처하는 강력한 방역대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6월부터는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0~300명대로 줄어들었고 최근 신규 확진자도 대다수 해외에서 유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지난 6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평가한 코로나19 방역에서 OECD 33개 국가 가운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대구 신천지교회 사태에 이어 재유행이 크게 우려된다. 전광훈 목사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방역 방해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의 비뚤어진 일탈 행위가 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국가와 민생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전 목사가 집회 현장에 내건 본 회퍼 목사의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는 문구처럼 한국 교회는 미친 자에게 교회를 맡겨선 안 된다. 정부도 전 목사와 사랑제일교회에 보다 강력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20.08.19 17:06

‘주민소환’

김제 시민들이 뿔났다.동료의원 불륜스캔들로 전국 망신살을 뻗친 김제시의회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전례가 드문 일이라 사태 투이를 지켜 보다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성 추문이 불거진 뒤에도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던 당사자 두 의원은 제명됐고, 늑장 대처로 오히려 화를 키운 온주현 의장을 상대로 주민소환(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시민들 명예를 깎아 내린 책임을 직접 묻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한 셈이다. 온 의장을 바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불륜 스캔들에 이어 후반기 의장선거를 둘러싼 의혹 때문이다. 주민소환 추진위는 의장이 불륜 사건이 공개돼 비난이 빗발치고 언론 표적이 됐음에도 신속한 징계를 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면서후반기 의장선거 에서도 불륜 여성의원의 캐스팅보트 덕분에 1표 차로 당선된 것 아니냐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주민소환 절차는 온 의장 지역구(김제 나선거구) 유권자가 2만9000명 임을 감안할 때 5800명(20%)이 서명해야 가능하다. 이 소환투표가 2007년 시행된 이후 3차례 추진됐지만 모두 정족수 미달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과야 어찌됐든 이번 주민소환 카드는 신선한 충격이다. 유권자가 결자해지에 나서 투표로 뽑힌 의원을 재평가 함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일지도 모른다.지방의회 무용론이 계속 제기될 만큼 이들의 전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권인사개입은 물론 갑질성추문 등이 대표적이다. 오죽하면비리 온상으로 낙인 찍혀 정당공천 이라는 연결고리를 끊고자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지방의회는 1991년 풀뿌리 민주주의가 부활하면서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다. 초기엔 정치 신인들이 대거 등장해 의욕적인 활동으로 주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기초 의원으로 시작해 단체장을 거쳐 중견 정치인으로 거듭난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견제장치가 작동되지 못함으로써 권력집단으로 변질되고 2006년 유급제 이후엔 평균연봉 3858만원의직업인이 된 것이다. 일부 이지만 이들의 궤도이탈은 이미 선을 넘었다. 동료 의원을 성추행해 재판에 넘겨지거나 억대 도박에 휘말려 체면을 구기는 가 하면 음주운전과 해외연수 추태는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골프채로 아내를 때려 죽이고 ATM기에 놓고 간 현금을 슬쩍 훔쳤다가 들통 난 시의장도 있다. 파렴치 범죄로 쇠고창을 차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2018년 지방선거 출마자 중 40%가 전과자다. 끝 모를 추락은 이뿐 아니다. 황제 의전요구에 공무원들은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또 걸핏하면 감투 싸움과 밥그릇 챙기면서 벌이는 이전투구 양상은주민 대표자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자정능력을 상실하면 이번 김제시의회 처럼 유권자가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다. 주민소환이 늘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왜 일까.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0.08.18 19:08

쌀의 날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은 오래 전부터 단순한 식량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원이다. 각종 제례(祭禮)에서도 가장 중요한 곡물이었다. 제사에 쓰는 떡, 술, 식혜 등 모든 음식의 주재료가 쌀이었다. 아울러 벼농사는 우리 농촌 공동체 그 자체였다. 일시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모내기와 추수철 등에는 온 마을이 나서 공동작업을 펼쳤다. 쌀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했다.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은 고려시대 이후 모든 재화나 부(富)를 가늠하는 척도나 물가를 측정하는 잣대가 바로 쌀이었다.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하는 부자 호칭도 쌀이 기준이었다. 화폐 개념으로 통용되면서 쌀은 부동산 등의 거래에서나 급료 기준이 되기도 했다. 주곡이 쌀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아무 때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아니었다. 농지 부족과 생산성이 떨어져 쌀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 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식량이 떨어지는 봄철이면 해마다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겨야 했다. 1970년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개발 보급하고, 영농기술을 발전시켜 쌀을 자급하기 전까지는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기발한 정책이 도입됐다. 모든 음식점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못팔게 하는 무미일(無米日)을 시행하고, 혼분식을 강제해 학교에서 도시락을 검사하던 때가 196070년대 였다. 학생이 단속에 걸리면 학교장 까지 책임을 물어 인사조치하기도 했다. 쌀을 이용한 술 제조를 금지하고, 쌀밥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킨 것도 이 때였다. 이같은 쌀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경제 발전과 생활 수준 향상에 따라 식생활이 서구화 되면서 쌀 소비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2㎏ 으로, 30년 전인 1989년의 121.4㎏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1인당 평균 하루에 먹는 쌀이 겨우 162.1g 에 불과하다. 오늘(18일)이 쌀의 소비를 촉진하고, 우리 쌀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5년 제정한 쌀의 날이다. 쌀을 뜻하는 한자인 쌀 미(米)자를 파자(破字)하면 여덟 팔(八)자, 열 십(十)자, 여덟 팔(八)자로 풀이되는 점에 착안해 8월18일을 택했다. 쌀 한톨을 생산하려면 모판에서부터 추수 까지 농삿군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현재 우리의 주곡 자급률은 겨우 22.5%에 그치고 있다.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지구의 기후위기에 대비하고, 세계 각국이 식량의 무기화를 앞세우고 있는 시점에서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쌀의 날이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쌀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기고, 안정적인 소비확대로 쌀 재배 농가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박인환
  • 2020.08.17 16:20

낡은 공간의 변신과 이벤트

적의 에너지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여 새롭게 활용한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거대한 산과 같은 벽돌건물의 물리적인 힘을 부수거나 축소시키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면서 의외의 방향으로 새롭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들이 찾아오는 미술관의 하나로 우뚝 선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설계한 스위스 출신 젊은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므롱이 들려준 이야기다. 20년 이상 방치되었던 화력발전소의 변신은 놀라웠다. 2000년에 문을 연 이 미술관에는 개관 첫해에만 관람객 500만 명이 몰렸다. 당초 예상했던 관람객을 훨씬 뛰어넘는 이 유쾌한 행렬은 오래된 건축물이 미술관으로 재기(?)하는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술관 앞을 지나는 템즈강 남쪽 슬럼가가 살아나면서 쇠퇴해가던 도시도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사실 19세기 산업화를 주도했던 영국은 도시재생의 모범적인 나라로 꼽힌다. 문화와 공간을 중심에 세워 도시재생을 성공시킨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주목해야할 것이 있다. 이들 성공한 프로젝트 대부분이 치밀하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이트 모던 만해도 영국 정부가 추진했던 밀레니엄 프로젝트 사업 중 하나였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대처수상의 뒤를 이은 존 메이저 수상이 1995년 영국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며 선언한 도시 정책 프로젝트다.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 그리니치빌리지 밀레니엄 돔 , 세계의 최대 회전 그네인 런던아이, 템즈강의 보행자 전용다리인 밀레니엄 브릿지, 그리고 낙후된 템즈강 남부의 재활성화가 이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이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가장 성공적인 테이트 모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진 도시정책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도 도시재생이 한창이다. 그 중심에는 낡고 방치되어 있던 건축물들을 도시 동력의 새로운 통로로 만드는 사업이 놓여 있다. 실제로 이미 새로운 쓰임을 얻어 도시를 알리는 공간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들 공간들이 주목받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도시마다 성공한 사례로 내세우는 재생 공간들의 획일적인 쓰임 때문이다. 우리 지역 공간들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민해 담아내기 보다는 쓰임의 외형적 변신에만 급급한 공간들이 늘고 있다. 낡은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을 이벤트 정도로나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0.08.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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