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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상임위 배정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서인지 요즘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20대 국회 후반부가 41일만에 지각 개원한 것만 봐도 짜증난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이 계파정치에서 비롯됐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원을 둘러싸고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여야의 계파정치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자유한국당이 국민 앞에 보인 일련의 행태를 보면 아직도 더 죽어야 보수가 살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국사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면 출세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 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대목도 많지만 외견상으로는 성공한 사람으로 친다. 299명의 국회의원이 있지만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소수가 국회를 움직인다. 집권당 원내대표와 각당 원내대표 그리고 각 상임위원장들이 국회를 사실상 쥐락펴락 한다. 보통 초선은 튀지 않고서는 물당번 하기도 벅차다. 자기 목소리 내기가 힘들다. 의원수가 많은 여당에서 더 그렇다. 국회 상임위원장 임기가 2년인데 이를 쪼개서 1년씩 나눠서 하는 별 희한한 일이 생겨났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서로가 욕심을 내기 때문이다. 전북 의원 가운데 민주평화당 유성엽 의원이 전반부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았다. 내년에는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1년짜리 기재위원장 자리를 맡기로 했다. 국회가 철저히 상임위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의원 숫자가 적은 전북은 불리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10명으로 18개 상임위를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중과부적이다. 산자위는 민주평화당 조배숙과 바른미래당 김관영 의원이 맡았다. 농해수위는 바른미래당 정운천과 민주평화당 김종회가 맡기로 했다. 국토위는 민주당의 안호영과 무소속 이용호가 맡는다. 이처럼 전북 출신들이 6개 상임위에 집중 포진해 있어 전북 몫 찾기는 더 힘들 것 같다. 상임위에 고루게 포진해 있지 않으면 국가예산 확보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재선에 성공한 송하진 지사는 임기 중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려고 강한 의욕을 과시하지만 의원들이 고르게 상임위에 배치되지 않아 국가예산 확보에 험로가 예상된다. 10명의 의원들이 4당체제로 나뉘어 협치가 자칫 말만으로 그칠 공산이 짙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21대 총선을 의식해서 각개약진할 가능성이 높아 송 지사의 고민만 깊어질 것 같다. 다만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이 연속해서 예결특위에 들어가 그에대한 기대가 크다. 민주당 정읍고창 지역위원장인 비례대표 이수혁 의원도 예특위원이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전북정치가 도세에 비해 중앙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이 컸지만 지금은 초라하다. 도민들은 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 그게 고민이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7.22 20:03

왕궁리 일대 유적의 실체

1971년, 일본에서 흥미로운 문헌이 발견됐다. 중국 육조시대에 쓰인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였다. 관세음이 경험한 신비한 사례들을 모은 이 문헌의 원본은 전하지 않으나 일본에 있던 다른 판본이 발견되면서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라는 곳에 천도해 새로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는데 제석사에 벼락이 떨어져 석탑이 무너졌다. 초석부분은 남아 사리함를 열어보니 그 안 유리병에 있던 사리가 없어졌다. 무왕은 발정이라는 스님에게 일러 참회법회를 보게 했는데 이후에 보니 사리가 다시 놓여있었다. 이에 감격한 무왕은 사찰을 건립해 그곳에 사리함을 모셨다> 백제와 관련한 이 대목에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특별히 주목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 수리 때 발견된 푸른 유리병을 담고 있는 사리함과 금강반야경에 견주어 그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에서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유적까지의 거리는 불과 1.3Km. 이 기록은 2003년부터 시작된 부여문화재연구소의 정밀조사로 고대 왕궁의 실체가 드러난 왕궁리 유적의 비밀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단서였다. 무왕의 천도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것도 이 기록 덕분인데 ‘천도’의 진실은 가능성으로만 추론될 뿐 아직껏 역사적 실체는 규명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왕궁리 일대의 유적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더해주는 근거가 새롭게 더해졌다. 익산 쌍릉 중 대왕릉 인골 주인이 백제 무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내년에 진행될 소왕릉 발굴조사로 무덤 주인이 명쾌하게 밝혀진다면 무덤주인을 둘러싸고 지속되어온 논쟁도 끝이 나게 된다. 둘러보면 왕궁리 유적 인근에는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 터와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가장 큰 석불을 갖고 있는 석불사가 있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도 가까운 거리다. 이 유적들이 놓인 공간의 배치를 눈여겨보면 익산 왕궁리 일대의 역사적 의미가 더 새로워진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거나 설화로 남지만 기록과 유적으로 존재하는 역사는 정사가 된다. 지금, 자칫 야사로 남을 뻔 했던 왕궁리 일대 유적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백제사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해내야 할 과제가 안겼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7.19 19:53

리더의 선택

최근 일본과 한국이 관광공사 수장을 선임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관광객 4000만 명 유치에 나선 일본은 철도 경영의 귀재, 관광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71세의 세이노 사토시를 일본정부관광국 이사장에 임명했다. 한국은 관광분야 경험이 없는 문 대통령 선거 캠프 출신인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을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했다. 문체부는 그가 관광수지 적자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관광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그저 낙하산 인사다. 일본이 평생 관광산업으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내세운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이처럼 시각이 다르면 가치도, 행동도 다르게 나타난다. 해외여행객이 너무 많아 관광수지가 20년 가깝게 적자인데, 비전문가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건 참 ‘거시기’하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을 둘러싼 문제도 그렇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지난 4년간 태격태격하며 평행선을 달려온 전주종합경기장 개발 계획은 송하진 도지사가 전주시장 시절에 결정한 롯데쇼핑몰 건설 등 민자유치 사업이 원본이다. 그러나 송 전 시장의 계획은 그가 전북도지사, 또 김승수 전 전북도정무부지사가 전주시장 자리에 앉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김 시장은 도시재생, 전주종합경기장의 가치, 소상공인 보호 등을 내세우며 송 지사의 쇼핑몰 계획을 단박에 백지화 했다. 김 시장은 지난 선거에서 재선된 후 종합경기장과 법원·검찰청사, 가련산을 중심으로 한 ‘덕진권역 뮤지엄밸리’ 조성을 밝혔다. 덕진권역 뮤지엄밸리는 종합경기장 인근 법원·검찰청 청사에 국립미술관을 유치하고, 명품공원도 조성한다. 덕진공원·한국소리문화의전당·팔복예술공장과 연계된 문화예술지구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쇼핑몰이 들어설 한치의 공간도 없다. 전북도와 전주시가 지난 10년 넘게 보여준 행정 갈등과 불통은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협상없는 갈등의 끝은 비극일 뿐이다. 그들의 갈등이 장기화 하면서 지역 내 대표적 갈등 사례가 됐고, 발전도 더디다. 전주는 ‘프로야구 한 게임 볼 수 없는 도시’로 전락했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7.18 21:20

레인보 팀

하늘과 땅의 경계선에 걸쳐 나타나는 무지개를 두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과의 통신을 나타내는 특별한 상징이며, 신의 현신으로 믿었다. 셰익스피어는 “무지개에 다른 색을 첨가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설파했다. 데카르트는 무지개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규명했고, 뉴턴은 무지개가 여러 색으로 이뤄진 것을 실험적으로 밝혀냈단다. 유럽의 신화나 세계적인 문호, 철학자, 과학자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무지개는 그 자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무지개가 단순히 풍경의 아름다움을 넘어 근래에는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성 소수자들의 축제가 열리는 퀴어축제의 장은 온통 무지개 색으로 뒤덮인다. 축제에서는 무지개 깃발과 피켓 아래 무지개 색 복장과 모자 차림의 참석자들이 당당히 연대감을 표시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올 처음으로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위원회 건물에 걸기도 했다. 인권위는 성 소수자의 인권 증진과 혐오 표현 개선 활동을 펼치는 인권·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성 소수자를 향해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몇 년 사이 일어난 변화다. 무지개는 교육현장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전남교육청은 전남형 혁신학교로 ‘무지개학교’를 내걸었다. 여기서도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꿈과 행복을 키워나가는 미래지향적 학교를 표방한다. 다문화 교육프로그램으로 ‘무지개’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도 소수에 대한 배려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공감대의 확산이다.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레인보(Rainbow·무지개) 팀’이어서 더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대표팀 23명의 선수 중 21명이 이민자 집안 출신이란다. 폭동과 테러 등으로 ‘반(反)이민자’ 정서가 확산되는 프랑스에서 레인보 전사들이 화해와 평화의 무지개가 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90년대 이후 대기오염 때문에 무지개 발생일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기상현상으로서 자연의 무지개와 함께 우리 사회의 무지개도 더 많이 보고 싶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7.17 20:29

전북 출신 첫 국세청 조사국장

제헌절인 오늘(17일)은 삼복더위의 첫마디인 초복이어서 식당마다 복달임을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기 마련이다. 복달임 음식을 일컬어 흔히 “민어탕은 1품, 도미탕은 2품, 보신탕은 3품”이라고 한다. 요즘에야 보신탕을 거의 먹지않지만 전통적으로 민어탕이 복달임 음식 중 으뜸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버섯에도 품격을 붙였는데 흔히 1 능이, 2 표고, 3 송이라고 했다. 송이버섯보다도 자연산 능이가 더 윗질이라는 거다. 서열과 격 이야기를 하다보면 빼놓을 수 없는게 있으니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이런말이 유행했다.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이순자)여사.” 요즘 계엄문건으로 한창 시끄러운 기무사가 30년 전 보안사 때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는지를 잘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국세청 안팎에서 최근 전북 출신 첫 조사국장이 탄생했다고 해서 화제라고 한다.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세청장의 오른팔 격이고, 세무조사의 칼날을 휘두르는 핵심 요직이다. 이 자리를 거친 이들은 대부분 국세청장이나 차장을 지냈기에 2급에 불과하지만 조사국장은 권력핵심들도 눈여겨보는 꽃보직이다. 국세청은 최근 고위공무원 인사에서 국세청 조사국장 자리에 김명준 본청 기획조정관(50·부안)을 전격 발탁했는데 그는 전주고,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행정고시(37회) 출신이다. 국세청에서 호남출신이 조사국장에 임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시절 봉태열, 손영래, 이주석씨 등 3명이 전부였고 전북출신은 국세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재벌도 한방에 날렸던 대통령 하명조사는 물론, 고소득자, 대재산가, 역외탈세 등 대부분의 세무조사를 기획, 지휘하는 자리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이래 역대 24명의 조사국장 출신지는 영남이 11명(46%), 호남이 4명(17%)이며 경기 3명, 서울 2명, 강원 2명, 대전과 충남이 각 1명 순이었다. 중앙부처에 재직중인 일개 핵심 참모에 불과하지만 전북 첫 국세청 조사국장의 임명은 이래저래 전북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 핵심 요직에 진출한 도내 인사들이 한 단계, 한 단계 도약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에 희망을 주는 모습이 기대된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7.16 20:29

도당위원장은 현역이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도민들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을 가져오려면 여당인 민주당 후보를 찍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익산시장은 민주평화당 정헌율 후보가 당선됐다. 정 시장이 재선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사 출신으로 행정전문가답게 전임 박경철 시장 때 어지러워진 시정을 잘 추스려 공직기강을 바로 잡았고 민주당 상대후보가 역량이 부족한 탓이 컸다. 아무리 민주당 바람이 불어도 인물에서 밀리면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화 됐다. 고창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 막판까지 민주당 박우정 현직군수가 앞섰지만 군청 공직자들이 대거 이탈해 민평당 출신 유기상 후보로 줄 선게 당락을 갈랐다. 여기에 고창읍민들이 인물론을 내세우며 유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임실과 무주도 무소속인 심민, 황인홍 후보가 인물론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거 초반부터 앞선 것이 적중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방의회까지 장악해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방선거 완승 뒤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유능함, 도덕성, 겸손한 태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민심은 민주당을 등 돌릴 수 있다는 말이다. 상당수 민주당 출신 당선자들이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아직도 깨어나질 않고 있다. 하지만 민선 7기가 출범하면서 도민들이 거는 기대는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재선에 성공한 송하진 지사도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도민들의 지역발전에 대한 강한 기대욕구를 어떻게 임기동안 충족시켜 줄 것인가로 고민이 깊을 것이다. 지금 중앙정치권의 환경이 전북에 결코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10명의 국회의원 중 민주당 출신이 3선의 이춘석 초선의 안호영 밖에 없다. 민주평화당 5명 바른미래당 2명 무소속1명이지만 정치력 부족으로 상임위원장 자리 하나 맡지 못할 것 같다. 지역발전에 관해 여야가 따로 없지만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당적이 달라 현실적으로 협치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민주당 단체장들은 자신을 당선시켜준 원외위원장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 마구 현직 국회의원을 찾아 나섰다가는 정 맞기 딱 좋다. 그런 점에서 도지사는 자유롭지만 야당 의원들의 협조 구하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국가예산 확보할 때나 현안문제 협의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도당위원장은 지역발전을 위해 중앙과 가교역할을 해야 할 현역 안호영 의원이 맡는 게 순리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7.15 18:12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귀농귀촌이 이어지고 있지만 농촌은 여전히 노령화의 고갯길에 놓여있는 현실로 보자면 청년들의 농촌행(?)은 우선 반갑다. 그 이면에는 자치단체들의 특별한 지원정책이 있다. 청년을 불러들이는 이들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는 눈길을 끄는 사업이 적지 않지만 아쉽게도 일시적으로 시행되는 것들이 많다. 청년들의 농촌행이 지속적인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일터다. 상황은 다르지만 눈여겨볼만한 사례가 있다. 도심 속 문화생태마을을 조성해 성공시킨 독일 서베를린의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Ufa Fabrik)’이다. 우파 파블릭은 노인들이 주를 이루던 지역에 젊은 세대들이 찾아오고, ‘떠나고 싶었던 마을’이 ‘살고 싶은 마을’로 변신한 곳이다.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일었던 1960년대, 베를린에는 유럽권 젊은세대의 이주가 이어졌다. 영화 필름현상소가 있던 우파 파블릭에도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낡고 오래된 공간은 불편했지만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떠나지 않고 정착했다. 이들이 지속적인 삶을 위해 시도했던 것은 일종의 동업자 조직인 ‘길드’다. 이들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공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8년 우파파블릭 주민들이 만들어낸 축제는 그동안 이어온 실험의 결실이었다. 도심의 쓰레기와 쓰지 않는 물건들을 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나누어 쓰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새로웠다. 환경친화적 삶의 실현을 지향해온 이들은 세계 최초로 태양열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발효화장실을 개발해냈다. 1979년 6월,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은 공식적으로 출발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열고, 빵공장을 만들어 그룹별로 일하면서 수입을 늘렸다. 얼마되지 않아 우파 파블릭의 빵은 베를린 전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어난 우파파블릭 주변에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이주해오고 방문객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체육관, 카페, 빵집, 유기농식품점, 어린이서커스학교, 프리스쿨, 어린이동물농장이 들어서고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지역주민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사업을 함께 일궈내게 된 이 일대는 베를린의 ‘살고 싶은 마을’이 되었다. 지속적인 삶을 위한 고민과 노력으로 얻은 공동체 마을의 결실이었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7.12 19:01

유능한 단체장

도내 14곳 자치단체의 시장군수 가운데 절반이 바뀌었다. 군산정읍김제시장이 바뀌었고 고창부안무주장수군수가 새로운 사람이다. 이들이 당선의 영예를 안고 취임한 게 한편의 드라마 같다. 특히 민주평화당 후보로 당선된 유기상 고창군수는 더 드라마틱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재산이 많은 현직 군수를 이겨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77년에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82년에 7급 그리고 공직 입문 11년만인 88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대기만성형 공직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에대해 군민들이 거는 기대는 너무 크다. 그 이유는 행정전문가로 중앙요로에 인맥이 잘 구축돼 있어 국가예산을 잘 확보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시장군수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국가예산 확보에 달려 있다. 국가예산을 잘 확보하는 시장군수는 유능한 단체장이다. 각 부처와 기획재정부를 통해 국가예산을 확보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각 부처의 담당사무관을 설득해서 국가예산을 세우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담당부처에서 예산을 세웠어도 기획재정부를 통과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때문에 중앙요로에 인맥 구축이 잘돼 있어야 한다. 국가예산 확보를 시장 군수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체장 역할이 클 수 밖에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협조도 받지만 단체장이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 행정경험이 없는 초선 단체장은 의욕만 앞설 뿐 중앙부처를 상대로해서 예산확보하는 방법을 잘 몰라 허탕치는 경우도 흔하다. 단체장이 그 지역에서는 최고지만 중앙부처에 가서는 을밖에 안된다. 인맥이 없으면 누구 하나 만나기도 벅차다. 그 만큼 중앙부처 공직자들이 단체장들한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 높은 벽을 넘어 사람 사귀다보면 어언 4년 임기가 훌쩍 지나간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유능하면 얼마든지 커버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서로가 초선이면 길을 못찾아 헤매기 일쑤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시장 군수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삼선 단체장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요령도 터득했고 인맥도 쌓은 만큼 몇배의 국가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튼 단체장은 틈만 나면 중앙부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모든 행정은 부단체장한테 맡기도 서울로 세종시로 뛰어 다녀야 한다. 자기 지역 출신이 어느 부처 어디서 근무하고 있는지도 사전에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을 사람이 하므로 항상 사람이 먼저다. 국가예산을 잘 확보하는 단체장은 선거 때 젖먹던 힘까지 안써도 유권자들이 또 당선시켜준다. 초심을 잃지말고 누운 풀처럼 겸손한 목민관이 되길 바란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7.11 18:38

자치단체의 탕평인사

지난 보수정권 인사에서 전북은 극도로 홀대 받았다. 특히 직전의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핵심 권력에 전북 인사들은 곁불도 쬐지 못했다. 전북시군의회의장단협의회가 박근혜 정권을 향해 오죽하면 ‘지역균형 인사 촉구 결의안’까지 냈을지 싶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지역 민심을 알고 후보 시절에 “심각한 인사차별이 전북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다”며 “지난 정권에서 꽉 막혔던 길을 뚫겠다”고 약속했다. 새 정부들어 전북의 인사홀대론은 아직까지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정권에서 불모지였던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자리를 비롯해 각 부처 장차관 자리에 전북 인사들이 두루 포진하면서다. 비록 국회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고창 출신의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추천됐고, 현재 진안 출신의 김선수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추천된 상태다. 주요 권력기관과 공기업 등에서도 전북 소외의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는 자격 미달의 일부 전북 인사가 요직을 꿰찬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오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탕평인사는 중앙 정부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민선 7기의 출범과 함께 각 자치단체마다 공무원 조직을 새롭게 꾸리면서 곳곳에 잡음이 나오고 있다. 전북도의 하반기 승진인사에서 정년퇴직을 1년 여 앞둔 공무원들을 승진대상에서 제외시켜 술렁이고 있단다. 전주시에서는 민선 6기에 이어 민선 7기 첫 인사에서도 전북도청 출신 공무원들이 주로 승진하거나 요직을 꿰차 ‘토종’격인 전주시 공무원들의 박탈감과 불만이 크단다. 익산시에서는 기준 없이 여성공무원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뒷말이 많은 모양이다. 아무리 잘 된 인사라도 전부를 만족시킬 수 없어 인사 끝에는 늘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단체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도 적재적소의 인사가 이뤄질 때 힘을 받을 수 있다. 측근 챙기기와 보은 인사를 위해 기존의 인사 기준과 원칙을 무너뜨리면 공직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체장들이 공무원 인사를 지역발전의 자산이 아닌, 그저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7.10 18:27

정동영과 유성엽

미꾸라지를 멀리 운송할 때 수족관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 몇마리는 잡아먹히지만 나머지들은 죽지않고 싱싱한데 이를 흔히 ‘메기효과’라고 한다. 유력한 경쟁자가 있어야만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결국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막바지에 이른 월드컵 경기에서도 호날두, 메시를 넘기위한 경쟁이 펼쳐지면서 벨기에 루카쿠, 프랑스 음바페 등이 혜성처럼 등장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경쟁과 견제가 바탕에 깔려있는 정치에서도 메기효과는 발견할 수 있는데,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던 3김시대가 대표적이다. 그런점에서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야당의 필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크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지난해 대선에 나섰던 홍준표, 안철수 후보 등은 일단 당권 전면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이제 시선은 내달 5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또다른 야당 민주평화당에 모아진다. 당권 주자로는 정동영, 유성엽, 최경환, 이용주 의원 등 4명으로 좁혀졌다. 큰 틀에서 보면 정동영과 박지원의 대결 양상이다. 유성엽, 최경환, 이용주 의원이 모두 친박지원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전북의 정동영, 유성엽, 전남·광주의 최경환, 이용주의 대결 양상이다. 이러한 경쟁구도를 지켜보는 전북인들은 한편에선 ‘메기효과’를 기대하지만, 또 한편으론 ‘전북의 분열’을 우려한다. 중진이 됐든 젊은 지도자가 됐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면서 전북 정치인이 제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기대하지만, 잘못하면 가뜩이나 약세인 전북이 더 나락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전북을 대표했던 소석 이철승 전 총재가 사쿠라 시비 등으로 인해 3김과의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전북은 한세대 이상 전남·광주의 속주 취급을 받아왔던게 사실이다. 많은 전북인들은 “정동영이든 유성엽이든 아무나 대표가 되면 좋은게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지역의 분열은 곧 패배를 의미한다. 지역적 연고가 강한 당원들이 타 지역 후보를 꺼리기 때문이다. 설혹 둘 중 한명이 전남·광주를 넘어 승리하더라도 전북의 민주평화당은 분열될게 뻔하다. 한때 정동영-신건-유성엽 등 무소속 3인은 찰떡궁합을 과시했으나 이제 신건 전 의원은 세상을 떠났고 남은 2인은 서로 당권을 잡겠다며 다투고 있다. 지금이라도 두 사람이 통 크게 단일화 합의를 통해 상생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정작 당권을 손에 쥐더라도 잘못하면 차기 총선에서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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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8.07.09 18:46

문 대통령과 전북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북출신들이 당·정·청에 고루 들어가 있다. 지난 두 보수정권 9년동안 전북 출신들이 정부요로에 기용되지 않아 설움을 톡톡히 봤다. 청와대 등 중앙부처에 라인이 닿지 않아 국가예산 확보하는데 애로가 많았다. 무장관 무차관이란 말이 오래동안 나돌 정도로 전북 출신들이 차별받고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이 500만표 이상으로 대패하자 MB정권은 보란듯이 전북 출신을 씨를 말려 존재감을 없앴다. 박근혜 정권 때도 똑같았다. 국정농단의 주역이었던 최순실을 비롯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북은 철저히 차단되고 깜깜이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서 누가 대통령과 지근 거리에 있는가가 현실적인 힘이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그래서 영향력이 크다. 다음으로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보고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처 총괄사령탑인 기재부장관이나 예전에 비해 힘이 빠졌지만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정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도 여전히 실세그룹으로 꼽힌다. 예전같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은 없지만 그래도 국가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영향력과 힘은 아직도 막강하다. 지난 대선 때 전북에서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결과가 인사에서 드러났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신태인 출신인 김현미 의원을 국토부장관으로 발탁한 것을 비롯해 차관급에 10명을 임명했지만 김 장관 이외에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없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광주 전남 출신들이 실세자리에 앉아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초라하다. 청와대에 있는 비서관들도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할 정도로 힘이 약해 스스로가 앞장서서 지역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과거 DJ와 노무현 정권 때도 전북 출신들이 실세그룹에 끼어 있지 않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한승헌 감사원장, 김원기 국회의장,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 등이 있었지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지 못해 지역발전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유종근 전 지사도 임기동안 견제를 많이 받았다. 지금 도민들은 문재인 정부 탄생에 큰 도움을 줬는데도 전북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에 의아해 한다. 결론은 실세그룹에 전북 출신들이 비켜 가 있기 때문이다. 친문그룹에서 영향력 행사도 미미하다. 인구가 줄고 도세가 약한 측면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한테 직언해서 전북의 이익을 반영할 통로 마련이 더 급하다. 이 같은 일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 등이 앞장서 나가야 한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7.08 19:00

대장정

중국 공산당이 창당된 것은 1921년이다. 이미 중국의 혁명 지도자인 손문이 중국국민당을 창당해 개혁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른 공산당과 국민당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결속해 군벌에 대항하며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손문이 사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손문의 뒤를 이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공산당 탄압에 나서자 그에 대항하는 공산당의 항전이 시작됐다. 수적 양적으로 우세한 국민군의 공세가 1930년 이후 5년 가까운 동안 지속되면서 공산당은 패전의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세력은 위축되었으나 공산당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자신들이 수립한 강서 소비에트를 포기하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한 후퇴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1934년 10월 15일 10만여 명의 홍군을 이끌고 나선 공산당의 역사적 대행군인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산당이 퇴각의 통로를 서쪽으로 잡은 것은 국민당의 전력이 그나마 허약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국민당의 공세는 강력하고 집요했다. 2선으로 물러나있던 모택동이 다시 지도자가 되어 공산당을 이끌었지만 퇴로의 길은 고난과 희생의 과정이었다. 목적지인 서북지방의 섬서성까지의 대장정은 총길이만 1만 5000킬로미터, 열여덟 개의 산맥을 넘고 스물네 개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 길. 걷는 것만으로도 고행인데 전투까지 치러야 했으니 그 희생의 정도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만하다. 강서성을 출발해 섬서성에 도착하기까지 10개월.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행렬이 쉬지 않고 하루 40킬로미터를 걸어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8천여 명이었다. 행군의 결과는 참담했으나 공산당은 전열을 정비하고 세력을 키워 국민당과의 내전은 물론, 항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고난의 과정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중국본토를 통일시킬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다. 들여다보니 공산당 대장정의 완성은 중국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민선 7기, 새롭게 등장한 자치단체장의 비전과 정책이 관심을 모은다. 대부분이 주민들을 앞세우거나 함께 가는 길에 놓여있으니 더 반갑다. 앞으로 4년, 자치단체들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이 또한 주민들로부터 힘을 얻어야 완성할 수 있는 과업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8.07.05 21:02

'동록개의 꿈'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큰 유산이다. 전주성을 점령했던 혁명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당시 전라감사였던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집강소 설치에 합의했다. 전라도 전역에 설치된 집강소는 조선정부가 공식적으로 농민군에게 통치권을 인정한 것으로, 풀뿌리민주주의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당시 읍면 단위까지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김제 금산면 소재의 원평집강소 건물이다. 이 건물이 집강소로 사용된 뒤 오늘의 모습으로 있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이 건물은 혁명이 일어나기 12년 전인 1882년 건립됐으며, 혁명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30년대 원불교에서 활용했다.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한동안 폐가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혁명 2주갑을 맞아 보존대책 촉구에 나서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재청이 원평집강소의 가치를 인정해 매입을 결정하고 2015년 4칸의 초가로 복원했다. 집강소 건물이 감동을 주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천것 취급을 받던 이 고장 백정 출신의 ‘동록개’라는 분이 집강소로 사용하도록 농민군에게 헌납한 것이다. 동록개는 이지역 농민군 지도자이며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을 찾아가“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소망했단다. 김제 출신의 김종진 문화재청장도 이런 내용의 주변 증언을 본보에 소개하기도 했다. 집강소가 추구한 첫 번째 목표가 적폐청산이었다. 탐관오리의 척결과 사회신분제도 폐지가 그 그간이다. 동록개가 이런 가치를 건 집강소 설치에 기꺼이 전 재산을 바친 셈이다. 그 뜻을 이어 복원된 집강소 공간에 시민들의 손길이 많이 닿고 있다. 마당에 널브러진 야생화 정원이 시민들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집강소 내 2개의 장승도 전북문형문화재 목조각장인 임성안씨의 기증 작품이다. 며칠 전 집강소 장승작품에 ‘동록개의 꿈’이 새겨졌다고 한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동록개’의 이름이 장승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이 하늘이다’의 장승이 ‘동록개의 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동록개’의 꿈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7.04 18:06

혹리수 학교

헌법재판소가 자사고와 일반고 이중 지원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의 효력을 일단 정지시켰다. 정부도 따르겠다고 한다. 교육백년대계를 앞세운 교육정책의 조변석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행복한 학교는 어떤 것일까. 입시기관으로 전락한 학교에서 대다수 학생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어느 고3생이 말했다. “학원 다니지 않으면 학교에서 선생님 수업 못 들어요. 학원에서 배운 것 보충 설명해 주는 수업이 돼버렸거든요” 학생 말이 너무 직설적이긴 하다. 어쨌든 그 학생은 학원과 EBS 확인 강좌가 돼버린 교실 풍경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들이 학원과 EBS 강의에서 배운 것을 고려해서 진행되는 학교 수업이라면, 찜찜한 일이다. 학교를 ‘공부 훈련 잘 시켜 ‘스카이’ 많이 보내는 곳’으로 몰아가는 사회다. 최근 전북교육감선거에서 이슈가 됐던 ‘낮은 학력 수준’과 ‘자사고 폐지’ 시비도 그런 맥락에서 불거졌다. 우주에는 음양이 있다. 공부 못하면 학교 가서 스트레스 받는 사회에서 대체 공부란, 또 학교란 무엇인가. 동가홍상이다. 기왕이면 공부 잘 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는 갈수록 세계화, 제4차산업혁명화 등으로 복잡 다단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지식 쌓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최고의 학력 수준을 요구하고, 경쟁 대열에 몰아넣는 교육제도는 문제 있다는 것이 사회의 시선이다. 소위 ‘공부’가 쳐지는 학생에게 끝까지 혹리수(酷吏手)처럼 공부 독촉하는 학교는 문제 있다. 공부 잘했더니 행복한가. 대학과 대학원까지 간 사람, 결국 박사학위조차 공수표가 돼 코가 석자나 빠지기 일쑤인게 현실이다. 고학력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느는 것은 실업자,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가정이다. 1위는 중요하다. 똑같이 2위, 3위, 4위도 중요하다. 자사고면 어떻고, 일반고면 어떤가. 아이가 즐거운 성장 발판이 아니면 의미없다. 1등이면 어떻고, 꼴찌면 어떤가. 천재의 영역이 아닌 한 스스로 근면·성실을 깨우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말은 갈증을 느낄 때 스스로 물을 마신다.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7.03 20:32

지방적폐와 5적

어떤 일이 잘못됐을때 그 책임자를 지목하곤 하는데 흔히 ‘5적(五賊)’이라고 한다. 5적이 우리사회에 널리 쓰인것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찬성했던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등 을사오적때부터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뒤 일제는 한반도에서 배타적 권리를 가졌기에 사실 을사조약은 하나의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지만, 식민지 백성들의 원성은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 5적에게 쏠렸다. 전세계에 ‘5적’이라는 말이 널리 퍼진것은 1970년 30세에 불과했던 시인 김지하가 ‘오적’이란 담시를 발표한게 계기였다. 을사오적에 빗대어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의 오적을 소재로 ‘이야기 시’를 썼는데 김지하가 지칭한 5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다. 부정부패로 찌든 한국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조약때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해 노골적으로 풍자한 이 시로인해 김지하는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 시를 게재한 장준하의 사상계는 폐간까지 됐는데 2일 고 장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가 별세했다니 감회가 새롭다. 김지하는 먼 훗날 정치적 처신이 문제되기도 했으나 어쨋든 이 시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너무나 명쾌하게 꼬집는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들의 부정부패와 방탕한 초 호화판 생활은 직접 본 것처럼 너무도 생생하다. 문제는 부정 부패를 척결해야 할 포도대장은 오적을 잡아들이기는 커녕 그들에게 매수되어 오적을 고해바친 죄 없는 민초를 무고죄로 잡아 넣는다. 그런가하면 추문을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 기자를 앞에 놓고 5적은 이렇게 말한다. “일국의 재상더러 부정이 웬 말인가~ 자네 핸디 몇이더라? ” 괜히 시끄럽게 하지말고 골프나 한번 치자며 회유하는 것이다. 강자의 편을드는 검·경이나 언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갈길이 멀다. 새롭게 4년 민선 임기를 시작한 요즘 “지방적폐와 5적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방을 지배하는 사익추구 집단 토호(土豪)의 폐해는 조선초부터 그토록 없애려 했으나 지금도 청산되지 않고있다. 심민 현 군수를 제외한 역대 군수가 모두 구속됐던 임실에서는 한때 토호를 의미하는 ‘임실 5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다른 곳도 경중이 있을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력과 지방권력을 바탕으로 지역의 자원을 배분하고 여론 전반을 조종하는 토호들이 활개치지 않게 해야 한다. 지역사회에 5적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7.02 19:46

인구늘리기

송하진 지사를 비롯 14개 시장 군수 취임식이 오늘 열린다. 오늘 취임식을 통해 각자 4년 임기동안 무슨 일을 할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다. 물론 선거 때 약속한 공약과 정책이 중심이 될 것이다. 단체장들이 밝힐 청사진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공약으로 그칠 것도 있다. 아무리 의욕이 넘쳐나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재정이 뒷받침 안되면 허당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앙정부가 재정권을 틀어 쥐면서 자치단체를 통제하기 때문에 그 벽을 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단체장들은 지역개발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할 것이다. 하지만 도민들은 전북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일자리가 없어 인구가 줄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전주 익산 군산을 제외하고는 시·군 인구가 70년대 초반에 비해 반토막 났다. 300만을 바라보던 전북의 인구가 185만대에서 해마다 줄고 있다. 반면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구가 급증한다. 생산활동에 나설 인력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타지로 빠져 나간다. 출산율도 문제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제대로 갖춰있지 않다 보니까 아이를 안 낳는다. 보육 유아교육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를 떠나 국가적 과제로 부상한지 오래다. 취업 결혼 출산 보육문제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자치단체가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뤄선 안된다. 14개 시·군의 인구 추이를 보면 향후 30년내 10개 시·군이 저출산 고령화로 소멸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지금도 늦었지만 단체장들은 인구늘리기 정책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자치단체의 존재이유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질을 높혀주는 문제나 밥 굶는 아이에게 밥을 주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인구늘리기가 근본정책이 돼야 한다. 단체장들이 임기내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 경제살리기요 일자리 창출이요 인구늘리기다.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수단은 기업유치다. 이 문제는 단체장 취임때마다 강조해왔다. 재선에 성공한 송하진 지사는 인구늘리기를 위한 기구를 지사 직속기구로 만들어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북이 인구가 줄다 보니까 유권자도 줄어 정치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국회의원들도 송 지사가 성공하도록 협치를 통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2년후 총선에서 그대로 나온다. 송지사는 재임동안 인구 200만을 넘겨 놓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지사로 평가 받을 수 있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8.07.01 18:03

찬란한 황혼

화가 해리 리버맨(1880-1983)은 ‘미국의 샤갈’로 불렸다. 강렬한 원색,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자유롭고 신비스러운 화풍으로 구축한 독창적인 세계 덕분일 것이다. 103세에 작고한 그의 창작 열정은 놀라웠다. “나는 내가 백한 살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백일 년의 삶을 산만큼 성숙하다고 할 수 있지요. -중략-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무엇인가 할 일이 있는 것, 그게 바로 삶입니다” 101세에 마지막 전시회를 열면서 그가 전한 이야기다. 사실 그의 직업은 화가가 아니었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20대에 미국으로 갔다. 직물업, 제과업 분야에서 일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은퇴한 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노인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체스로 소일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 용기로 시작한 그림은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전문적인 미술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그의 그림은 기성 화단 작가들의 그림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림 애호가들과 평론가들은 그의 천재성과 열정에 환호했으며 미술관과 콜렉터들은 앞 다투어 그의 그림 수집에 나섰다. 늦은 나이의 새로운 도전은 빛났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신풍리미술관’이라 이름 붙은 마을미술관이 있다. 지난주 TV 프로그램이 5월부터 이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를 소개했다. ‘남사스러운 그림전’. 참여 작가는 열여덟 명이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은 놀랍게도 평균 연령 80세 이상의 할머니들이다. ‘영감님과 나’를 주제로 한 그림의 수준도 놀랍다. 이미 세상을 오래전에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으로 그린 초상화나 평생 농사일과 자식 키우는 일로 살아온 할머니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할머니들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이다. 고단한 농사일과 시집살이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가슴에 옹이가 된 마음의 상처를 털어냈다. 밋밋한 담장에 자신들만의 솜씨로 벽화를 그리고 경로당에 모여 앉아 그린 화투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관객들을 위로하는 화가가 된 할머니들의 찬란한 황혼. 놀랍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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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8.06.28 18:03

해원부안사계도

오는 7월2일 제45대 민선7기 부안군수로 취임하는 권익현 당선인은 ‘재수’가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부안 출신 한국화가가 계화도에서 시작해 줄포 생태공원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86㎞ 해안선의 사계절 풍광을 거대한 화폭에 담아 취임식 당일 부안군청사 로비에 걸 계획인데, 이는 애초 ‘신임 단체장’ 취임을 겨냥해 제작됐을 뿐이고, 공교롭게 당선의 영광을 얻은 권 군수가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작품 이름은 해원부안사계도(海苑扶安四季圖), 작가는 부안군 백산면이 고향인 오산 홍성모다. 시인 김형미(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는 “거대한 우주의 힘을 몰아오는, 그의 그림에는 여지없는 기세가 있다”고 했다. 홍성모 화백은 부안 백산중·고를 졸업하고 원광대에서 그림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심장병이 있었던 그는 체격이 유난히 왜소했는데, 결국 대학시절 심장병 수술을 받아야 했다. 교내 심장병 학우 돕기 성금으로 건강을 찾은 홍 화백은 훗날 그림을 제대로 그리게 되자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자선활동에 참여하는 등 학창시절 받은 인생의 빚을 갚고자 애쓰기도 했다. 그가 어느날 홀연 부안 곰소에 둥지를 틀었다. 부안의 풍광을 화폭에 담겠다며 지난 2016년 10월 부안군 진서면 곰소 젓갈식품센터 2층 빈 상가를 빌려 작업에 들어갔다. 그의 목표는 차기 부안군수 취임식에 맞춰 해원부안사계도를 완성하고, ‘부안 비경 100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대학 출강 등 활동을 하는 그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곰소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작품에 몰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안을 다녀갔다. 세 살바기 손자를 데리고, 찜질방에서도 잠자리를 해결했다. 다행히 신임군수 취임에 맞춰 해원부안사계도가 완성돼 군청 로비에 걸게 됐다. 지난 18개월 동안 65점을 완성했으니, 그가 곰소를 다녀가는 작업은 당분간 계속된다. 홍 화백은 “부안 군민을 왕이라 생각하고 하늘이 내린 정원 부안의 사계를 화폭에 담아 군민에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적지 않은 기간과 비용을 마다않고, 숱한 나날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은 그런 열정에서 나오는가. 김재호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8.06.27 18:44

업그레이드 된 군산 근대유적

군산은 전북의 근현대사 전개 과정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단거주와 광복 후 미군부대 주둔 등으로 일찍부터 외국문화를 접했고, 1990년대 대단위 국가산단 조성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했다. 군산은 또 바다를 옆에 두고 하늘길이 열려 있는 도내 유일한 곳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지엠 군산공장 사태로 지역 전체가 요즘 시름에 잠겼지만, 새만금과 함께 군산의 발전 잠재력은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오늘의 이런 군산을 말할 때 개항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개항 당시 군산은 지명처럼 그저 산이 많은 곳이었다. 갈대밭이 무성했던 허허벌판의 전형적인 어산촌이었으며, 거주 인구도 고작 500명 남짓이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이주하면서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개항 당시 77명의 일본인 거주자가 10년도 안 돼 2000명을 넘어섰고, 1930년대에는 거의 1만명에 육박했다. 일제는 일본인 보호와 쌀 수탈 등을 위해 많은 기관들을 군산에 배치했다. 도심 주요 도로와 철도가 항구를 향해 뚫렸고, 세관과 우체국 등 관청과 은행포목점미두장 등 상가도 항만 주변에 집중됐다. 현재 군산관광의 아이콘이 된 군산 역사문화의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일제가 남긴 잔재들이 군산의 관광산업을 지탱하는 자산이 됐다는 게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에 대한 보존과 철거를 두고 실제 군산 시민사회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제 제도를 도입하고, 군산시가 근대문화유산벨트화지구 사업을 통해 차별화된 역사문화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화재청이 최근 구 군산세관 본관의 사적 지정을 예고했다. 군산 구 법원관사와 구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빈해원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구 군산세관은 1990년대 초 세관 신축 때 철거될 위기에 있었으나 당시 세관장의 노력으로 살아남아 국가 사적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구 세관과 달리 오랫동안 도서관 등으로 쓰이다 헐린 옛 군산부청사 건물이 아쉽다. 근대유산이 사적(史蹟)과 죽은 유적(死蹟)으로 갈린 역사도 기억하자.

  • 오피니언
  • 김원용
  • 2018.06.26 20:47

JP와 전북

가왕 조용필의 ‘허공’이란 노래의 끝자락은 이렇게 끝난다.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 할 그날들, 허공속에 묻힐 그날들~” 그랬다. 엊그제 떠난 3김시대의 마지막 인물 김종필(JP)은 생전 정치를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타인에겐 도움이 될 망정 정작 정치인 자신에겐 남는 것 없는 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국정을 주물러왔고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9단 고수들과 함께해온 JP가 내린 결론이다. 지방의원이나 시장·군수 못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92년을 살았던 JP는 허업이라고 했다. 일본 천하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유명한 유언시를 남겼다.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는 꿈속의 또 꿈이려니~” 약 400년의 시차가 있으나 히데요시와 김종필은 거의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는 JP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키로 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지만, 아직 그에게 비판적인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은 작은 물건 하나만 훔쳐도 처벌을 받는데, 정권을 도둑질한 행위(5·16)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매서운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출신으로 JP와 가장 가까운 이는 고인이 된 무주 출신 김광수 전 국회의원이다. 호형호제하며 바둑을 함께 두는 몇 안되는 측근이었다고 한다. 국정교과서를 인수한 김 전 의원은 장학사업 등 좋은일도 많이했으나 전북인들이 JP를 떠올릴때 지금도 아쉬운게 하나있다. 1963년 전북 금산군과 익산군 황화면이 충남에 편입된 일이다. 실력자 JP가 뒤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금산은 조선이래 500년간 전라도였으나 하루아침에 충남에 편입된 것은 단순히 땅을 빼앗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북의 무력감이 내포돼 있다. 대신 전북에는 전남 위도면이 주어졌으나 득실은 별개문제다. 길재호 공화당 사무총장의 정치적 고향인 금산은 당시 전국에서 길씨 집성촌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임영신, 유진산 등 금산 출신 걸출한 인물들이 많은것만 봐도 아쉬움은 더한다. 힘이없던 강원도 역시 그때 울진군을 경북에 빼앗겼다. 금산군의 면적은 577.12㎢에 달하는데 오늘날 서울시 면적(605.3㎢)이나 고창군(607.72㎢)에 버금가는 규모다. 오늘날 위도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지만, 전북인들은 JP의 하직에 즈음해 인삼의 고장 금산이 ‘남의 떡’이라 그런지 너무 커 보인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8.06.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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