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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 지핀 석패율제

석패율(惜敗率)제는 말 그대로 ‘애석하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 주는 제도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해도 석패율(낙선후보 득표율/당선자 득표율)이 높으면 비례대표로 등원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대구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김부겸 새정치연합 후보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 전주에 출마했던 정운천 새누리당의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새정연이 영남에서 5~6석,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4∼5석 정도 건질 수 있다. 석패율제는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및 지역주의 완화, 역량 있는 정치인에게 구제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정당 수뇌부의 전횡과 거대 정당 중진들의 낙선 예방 보험장치로 악용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사실 석패율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정계개편을 위한 술수”라고 반대해 무산됐다.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석패율제 논의가 깊숙이 진행됐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여야 간사가 지역구도를 타파한다는 명분으로 석패율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소수 정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런데 내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석패율제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새정연 2·8 전당대회 대표 후보인 문재인·박지원 의원이 그제 당 취약지역인 ‘대구·경북’ 합동연설에서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누리당도 정치개혁혁신위에서 석패율제 도입을 결정했고 김무성 대표가 조만간 당론으로 확정할 계획이라고 정운천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이 밝혔다. 정 위원장은 최고위원이던 2011년 2월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단 만찬 때 “석패율을 위하여!”라는 건배구호를 외친 주인공이다. 그는 그 뒤 ‘석패율 전도사’로 불려왔다. 모처럼만에 석패율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 제도는 결코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한국정치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40년간 지속된 지역주의 구도를 깰 수 있는 물꼬 역할이 그것이다. 올 하반기엔 선거구 개편과 선거제도 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다. 석패율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등 지역주의를 타파할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으면 한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1.27 23:02

새누리당의 진정성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가 지난 22일 전주에서 열렸다. 김무성 대표가 새해 들어 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전국 순회 최고위원 회의를 전주에서 개최한 것이다. 지난해 연말 불거진 당내 계파 갈등과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의 배후 논란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 상황을 돌파하고 내년 총선도 염두에 둔 다목적 지역 민생투어로 보인다.김 대표는 이날 전주 회의에서 “새누리당은 그동안 호남 끌어안기를 넘어 호남 품에 안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들고 “전북도민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시면 전북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 2011년 3월 23일 전주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오늘 회의가 한나라당의 호남 끌어안기가 아닌 한나라당이 호남에 안기기 위한 자리다”며 “새만금 사업이 막힘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이 살피고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전폭 지원을 맹약했던 새만금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 개정과 개발청 설립만 구체화되었을 뿐 핵심인 재원조달을 위한 특별회계 설치와 매립용지 분양가 인하 등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김 대표가 이날 전북도민들에게 요청한 마음의 벽 허물기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전북에서 13.22%를 득표했다. 이는 제17대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이 얻는 9.04%보다 4%포인트 이상 웃돌은 것이다. 이에 앞서 제15대 대선때 4.54%, 제16대 때 6.19%에 비하면 2~3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더욱이 지난 2012년 4·11 총선에선 정운천 새누리당 전북도당 위원장이 전북정치 1번지인 전주 완산을 선거구에서 35.8%의 경이적인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이처럼 새누리당이 불모지로 여겼던 전북이 변화하고 있는 만큼 새누리당도 전북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1~2년에 한번씩 간헐적으로 전북에서 열렸던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는 그야말로 립서비스에 그쳤었다. 전북 인재 등용을 비롯 지리산·덕유산 힐링 거점조성 새만금∼김천 동서횡단철도 새만금∼포항 고속도로 LH본사 분산배치 국회의원 석패율제 도입 등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지난 2012년 6월 전주 회의에서 “집권당으로서 다른 지역과 차별없이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을까.이번에도 새만금 국제공항과 새만금추진지원단 설치 탄소융합기술원 국립화방안 호남 KTX 서대전 경유문제 등이 거론됐다. 이들 지역현안의 성사 여부가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바로미터일 것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1.26 23:02

노년(老年)

여러해 전의 일이다. 취재로 공직에서 은퇴한 두 분을 만났다. 오래전에 중단되었지만 당시 전주우체국에서 운영하던 정보교육센터의 컴퓨터 강좌에 참여했던 분들이었다. 한 분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분이었고, 또 한분은 담배인삼공사에서 40년 가깝게 근무하다 퇴직한 분이었다. 인터넷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정작 수십 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나와 보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은퇴한 이후 얼마동안은 시절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 세상에 들어서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직장생활을 잘 마쳤지 않은가, 스스로 위로하며 몇 해를 보냈지만 언젠가부터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체국에서 진행하는 컴퓨터 강좌를 알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그 분들을 만난 것은 컴퓨터 경력 1년과 3년차를 맞았을 때였다. ‘늦게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했다’는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고 있었다. “돌아다니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환해졌으니 신기하다. 손자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어 좋고, 젊은이들 대화도 그럭저럭 알아들을 수 있으니 이제 소외감도 없어졌다”고 했다. 문서도 만들어보고 파워포인트 실습도 해보고 나니, 젊은 시절 왜 이런 좋은 것을 익혀 써먹지 못했는지 후회가 됐단다. 컴퓨터로 ‘정말 재미난 세상’을 만난 이후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컴퓨터를 벗으로 삼았다. 엑셀과 파워포인트에 태그 기법까지 두루 익혀 기초반 지도는 물론, 전문강사의 보조 역할을 할 정도의 수준급이 됐다. 정보교육센터에 매일 출퇴근하면서 센터를 운영하고 지키는 실질적인(?) 주인이 됐다. 파워포인트는 어찌나 힘들었던지 다른 후배들을 위해 아예 자신이 공부한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일종의 파워포인트 입문서였다. 예산 부담이 커 컬러복사로 묶어낸 자료집은 인기가 높았다. 새 세상을 만나게 해준 전주우체국 정보교육센터에 은혜를 갚아겠다싶어 자원봉사에 나섰다. 덕분에 당시 문을 닫고 있던 다른 지역 우체국과는 달리 전주우체국 정보교육센터는 폐쇄 위기를 벗어나 그 뒤로도 상당기간 운영됐다.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컴퓨터로 세상을 새롭게 만났던 두 분이 생각난다. 주변을 둘러보면 노년의 즐거운 삶을 위한 배움의 공간이 적지 않다. 새로운 세상이 거기 있다. 노년을 맞는 분들에게 그 배움의 문을 열어보실 것을 권한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1.23 23:02

어린이집 교사

인크루트 신입 공채란에 한 어린이집의 교사 채용 공고가 떴다. 정규직인데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고, 나이는 상관없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근무(주 40시간)에 월급은 150만원 이상이다. 상여금은 없다. 월급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어린이집이다. 역시 정규직인데 학력은 고졸이면 되고, 나이도 상관없다. 사범계열 전공이면 우대한다고 한다. 이 어린이집의 월급 조건은 주5일 근무에 120만원 이상이다. 전주의 한 어린이집 교사 채용 공고도 떴다. 역시 주 5일 근무에 월급 125만 원 이상이라고 표기됐다. 면접 후 재조정 가능하다는 단서는 모두 붙어 있다. 이들 공고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이집 교사 초봉이 120∼15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정부 지원금 22만원이 붙었기 때문이다.어린이집 교사가 되는 방법은 손쉽다. 전문교육원에서 필요과목을 이수하고, 학점으로 인정받으면 된다. 교사 경력을 쌓으면 향후 본인이 직접 어린이집을 차리고 원장이 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이 영유아보육료 지원에 적극 나서면서 어린이집 설립 운영은 더욱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이 됐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워 취업이 마땅치않다고 하소연하는 분위기에서, 월급 120만원을 착실히 받을 수 있는 직장이라면, 감지덕지할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당연한 것인가. 최근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손찌검하고, 입안에 물티슈를 넣고, 짓누르고 하는 등 폭행을 일삼는다고 난리법석이다. 아이를 폭행한 어린이집 교사들은 비난받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제 정부와 정치권, 사회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처우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동서고금으로 교육은 백년대계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품성’을 오롯이 간직한 채 성장하고, 미래 동량으로서 실력을 갖추기 위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가정이나 국가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겉과 속이 다르다. 정부와 정치는 출산장려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육 지원을 강조한다. 하지만 교사 지원은 뒷전이었다. 교사가 푸대접받는 상황에서 어린이집 보육과 교육의 질을 거론할 수 있는가. 어린이집 교사 자격 따기가 쉬우니 푸대접하는가. 어린이 보육과 교육이 중요하다면 교사의 질을 높이는데 투자해야 한다. 일반교사와 어린이집 교사 하는 일이 뭐가 다른가.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1.22 23:02

선거구 획정

요즘처럼 야권이 무기력 한적이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5공 때 관제 야당인 민한당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그 만큼 야당으로서 야성이 떨어지고 죽어 있다는 말이다. 세월호와 같은 엄청난 국가적 재앙을 맞고서도 국민들의 한(恨)을 속시원하게 못 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 지지율이 30%대로 곤두박질 쳤는데도 새정연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국정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새정연이 야당으로서 존재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 선출을 앞둔 새정연은 지금도 계파정치에 얽매여 있다. 집권여당이 실정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새정연이 국민들에게 수권정당으로서 그 능력과 존재감을 못 보여 주고 있다.도내 정치상황은 어떨까. 그간 도민들로부터 정치적으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아온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 살길 찾아 각개약진하고 있다. 누구를 당 대표로 밀어야 자신이 내년에 공천 받아 재선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이 같은 분위기가 연말을 전후해서 형성되자 정치신인은 물론 기성정치인마저 출마기회를 엿보고 있다. 현역들은 선거구가 어떻게 나눠질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선거구 획정은 이미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났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결정 나게 돼 있다. 이미 여야가 2월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이 문제를 다루자고 합의했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은 뜨거운 감자다.여기에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상임고문이 최근 탈당, 국민모임을 결성한 걸 놓고도 반응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정 상임고문의 탈당이 너무 조급한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시한 반면 지금의 새정연 행보로는 집권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탈당을 잘 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도내 출신 현역들은 정 고문의 탈당에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차잔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정치가 워낙 변화무쌍한 생물이라서 예단키가 어렵지만 벌써부터 제3당 출마를 조심스럽게 저울질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 못지 않게 정치판 기류변화에 더 관심이 많다. 헌재 판결에 따른 선거구 변화여부는 지금 11개서 9~10개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3선의 김춘진·최규성의원 지역구를 어떻게 정리할지가 관심사다. 대개 선거구를 획정할 때마다 현역 국회의원의 밥그릇 싸움으로 끝났기 때문에 그렇다. 그간 김제와 묶어 게리멘더링이란 비난을 사온 완주군을 어떻게 나눌지가 관전 포인트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1.21 23:02

호남 정신

‘호남 정신’이란 말이 요즘처럼 각광 받은 적도 없을 듯 싶다. 정치권이 너도나도 호남정신이란 말을 끌어다 쓰고 있다. 새정치연합 2·8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문재인, 박지원 후보는 ‘호남정신 복원’ ‘호남 적자(嫡子)론’을 거론하며 호남 끌어안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새정련을 탈당한 정동영 전 의원도 작년 10월16일 전북 방문 때 “우리당이 누구를 대표하는가에 대한 정체성이 실종되고 약화됐다”며 지도부를 비판한 뒤 강력한 ‘호남정치의 복원’을 강조했다. 호남정신을 상기시키면서 구애하고 있는 것이다. 호남정신은 무얼 의미하는가. 왜 실종됐으며 무엇 때문에 복원돼야 한다고 하는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호남정신이 뭐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정치적·문화적인 해석, 역사적·인문사회적·경험적 풀이 등 다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또 호남이지만 전북과 전남·광주의 지역적 차이도 있다. 광주·전남은 학생의거와 5·18민중항쟁 상징지역이다. 전북은 풍류와 선비, 저항정신이 강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정의와 민주, 저항은 호남정신의 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가치를 ‘전주정신’, ‘전북정신’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작년 12월15일 전주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2주갑 학술대회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을 ‘전주정신’의 근간으로 삼자는 주장도 나왔다.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낡은 틀을 깨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열려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민중적 저항에서 전주정신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전주정신을 정립할 때 동학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동학정신은 전북정신으로 가야 한다(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라거나, “정읍·고창 등 이웃 시·군과의 관계설정, 지속성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정진영 안동대 교수)”는 주장도 있다. 어쨌건 호남정신은 계승 발전돼야 한다. 그런데 그럴 인물들을 키우지 못했다. 호남은 또 소외 지역이 된 지 오래다. 호남정신이란 말이 정치이벤트가 열릴 때만 각광 받아선 안된다. 지금 호남정신을 외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호남 쇠락’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북정신도 이참에 규명돼야 한다. 정치적인 구호보다는 도대체 ‘호남정신’ ‘전북정신’이 무엇인지 인문학적 접근부터 새로 시작할 일이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1.20 23:02

계란 꾸러미

40∼50대 이상 장·노년층 대부분은 짚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계란 꾸러미를 기억한다. 지푸라기 한 움큼을 왼손으로 잡고 그 아랫부분의 지저분한 검불을 오른 손가락으로 훑어낸다. 잘 다듬은 짚을 가지런히 한 뒤 한쪽을 두 올 정도의 짚풀로 묶은 다음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려놓는다. 그렇게 계란 10개가 올려지면 반대편과 몸체 중간 중간을 짚풀로 잘 묶어 마감한다. 정성이 담긴 계란 한 줄이다.집안이나 이웃 경조사에 이 계란 꾸러미를 전달하는 가정이 많았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 쌀 반 되나 한 되쯤을 포자기에 담아 정성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았다. 친인척간, 이웃간 정이 그렇게 오갔다. 이제 짚으로 만든 계란 꾸러미는 사라졌다. 요즘 계란판은 종이 또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는데, 편리하고, 운반과 보관 측면에서 안전하다. 짚으로 만든 계란 꾸러미가 설 자리는 없다. 계란판이 대량 생산되는 것은 닭의 대량 사육과 관계있다. 한꺼번에 수천마리, 수만마리의 육계 또는 산란계를 키워내는 양계 농장이 번성하면서 계란 생산량도 크게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란계 사육수수는 6,526만수에 달한다. 국민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242개다. 우리나라 계란시장은 연간 120억 개, 1조 2000억 원 정도 시장이다. 계란을 둘러싼 전후방 연관산업 효과까지 고려하면 5∼6조원 시장 가치를 갖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계란을 짚으로 싸서 유통시킬 수 없는 환경이 됐다. 계란은 생산량이 적을 때나 많을 때나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예나 지금이나 계란 후라이, 삶은 계란, 계란 말이, 계란 황태 해장국은 국민식품이다. 계란말이가 들어가지 않은 김밥이 없다. 하지만 계란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계란의 가치, 인심도 예전만 못하다. 서민들의 부의용품으로도 사용되지 않는다.얼마 전 개그맨 정준하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톱스타 연예인이 자신의 결혼식에 축의금 2만원밖에 내지 않았다며 “친한 사람인데 깜짝 놀랐다. 그럼 ‘이만’보자는 건가”라고 말했다가 큰 홍역을 치렀다. 축의금 2만원 발언이 논란에 휩싸이자 그는 곧바로 “분위기 전환 목적에서 재미있자고 한 얘기가 오해를 불렀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조의든 축의든 부조 행위는 정성이다. 부조금 봉투에 든 액수가 중요한 사람은 뇌물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끊는 것이 마땅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1.19 23:02

기억하는 방식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의 부란덴부르크 문. 이곳에서 포츠담 광장 쪽으로 걷다보면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회색 콘크리트로 된 수많은 직육면체 조형물이 이어져 있는 광장.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들을 기리기 위해 2005년 조성한 홀로코스트 기념비(The Holocaust Memorial)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했다는 이 공간의 추모비는 2711개. 추모비 사이를 걷다 보면 침묵의 더께가 밀려들면서 유태인 학살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베를린에 있는 또 하나의 기념공간. 나치 분서(焚書) 메모리얼이다. 베벨광장에 있는 이 공간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자행되었던 분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1933년 괴벨스의 지시로 유태인 학자들이 쓴 책 2만권을 불태운 현장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기념공간은 광장 바닥에 놓인 작은 투명 유리판이 전부. 그러나 그 곳을 들여다보면 땅 아래 빈 서가들로 가득 찬 거대한 방이 내려다보인다. 그 한쪽에 시인 하이네의 글이 새겨져 있다. ‘책이 불탄 곳에서 결국 사람들이 탈것이다.’ 독일 하르부르크에는 반파시즘 기념비가 있다. 그 형식이 매우 특별하다. 땅위로 세워져 있는 기념비가 아니라 땅속으로 들어가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기념비다. 1986년 하르부르크 시 정부가 파시즘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세운 이 기념비는 사방 1미터에 12미터 높이의 단순한 입방체였지만 비밀은 따로 있었다. 매년 2미터씩 땅속으로 가라앉는 형식으로 설계되어 결국 사라지는 기념비로 설계된 것이었다. 기념비 옆에는 이 비에 이름을 새겨달라는 안내판이 설치됐다. 글을 읽은 시민들과 방문객들은 이름 뿐 아니라 나치시절의 고통과 기억을 써넣었다. 그 기억을 담은 비는 해마다 2미터씩 파묻히면서 흔적만 남긴 채 모습을 감추었다. 안내판에는 이런 글이 남아 있다. “-중략- 어느 날 이 탑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며 파시즘에 저항하는 이 하르부르크 기념탑의 땅은 비워지게 될 것입니다.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서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라는 뜻입니다.” 시대에 따라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가 축적되어 간다. 전쟁과 국가의 폭력,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가 남긴 비극과 상처의 아픔이 더 무거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기념공간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1.16 23:02

죄악세(Sin tax)

연초부터 담뱃값이 대폭 오르면서 후폭풍이 적지 않다. 금값 담배를 노린 편의점 절도가 전주와 익산에서 발생하는가 하면 지난해 말 미리 담배 사재기를 했던 사람들이 값이 크게 오르자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도 빚어지고 있다. 공항 내국인 면세점에선 담뱃값이 시중 가격의 절반도 안 돼 구매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자 1인당 10갑 한 팩으로 제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면세 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도 검토중이다.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연간 세수 증대가 2조 8000억원 정도 예상되면서 담배 단일 품목에서만 10조원 가까이 세금을 거둬들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담배와 술 도박 화석연료 등의 소비에 부과되는 이른바 죄악세(罪惡稅·Sin tax) 규모도 58조원에 달해 그동안 가장 비중이 컸던 부가가치세(55조7000억원)를 앞지를 전망이다. 특히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45조9000억원)나 소득에 따라 부과하는 소득세(45조8000억원)를 크게 웃돌고 있다.죄악세의 기원은 16세기 교황 레오 10세 때 비롯됐다. 사치 생활로 빚에 쪼들리자 매춘업을 허가해주고 창녀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에선 1643년 청교도혁명 당시 국왕과의 전쟁자금 조달방안으로 맥주와 고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렸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턱수염을 깎지 않는 귀족들에게 턱수염세를 부과했다. 캐나다에선 마리화나를 제한적으로 합법화하고 수십억 달러의 세수를 올렸다. 뉴질랜드는 메탄가스를 방출하는 가축들에게 트림세(burp tax)를 물린다.담배에 이어 연초부터 술에 부과되는 주세 인상설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신년하례회에서 주류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파문이 일자 보건복지부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하지만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죄악세 인상은 항상 가연성을 내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소주와 위스키 세율을 72%에서 90%로 높이려다 반발 여론에 접어야했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주세율을 인상하려다 서민 증세 논란에 포기했었다. 우리나라는 국세 가운데 간접세 비율이 52%에 달한다. 미국은 간접세 비율이 10% 내외다. OECD 평균도 20%대인 점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높다. 조세편의주의가 아닐 수 없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간접세보다 자본소득에 대한 세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조세체계를 바꿔야 한다. 호랑이보다 세금이 무서운 정치(苛政猛於虎)가 되어선 안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1.15 23:02

아름다운 뒤태

예로부터 사람 판별하는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따졌다. 중국 당나라 시대 이래로 이 네 가지를 인재 등용기준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도 똑 같았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생김새를 으뜸으로 쳤다. 요즘은 영상매체의 발달로 외모지상주의가 판친다. 예뻐지고 젊게 보이려고 성형외과를 찾는 일이 빈번하다. 예전에는 여성들만 성형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젊은 층에서는 못생긴 건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예쁘고 잘 생겨야 시집 장가 잘 가는 세상이다. 반면 성형중독자가 생겨날 정도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최근 얼굴뼈를 깎는 성형수술을 받다 숨진 사고까지 발생했다.성형은 앞모습만 중히 여긴다. 주로 자신의 보이는 얼굴에만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한번 성형에 빠지면 경제적인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잘 쓴다. 더 예뻐만 진다면 뭐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성형미인이란 말도 흔하게 듣는다. 연예인들은 거의가 성형한 얼굴들이다. 연예인 되기 이전에 기획사에서 투자 개념으로 성형을 시킨다. 얼굴 전체를 확 뜯어 고치는 경우도 있다. 그 만큼 우리사회가 성형열병을 앓고 있다는 증거다. 성형외과는 방학 때가 단대목이다. 치아교정 하는 것은 당연하고 쌍꺼풀 정도는 성형이 아닐 정도다. 쌍꺼풀 수술도 주로 성형외과에서 했지만 지금은 안과서도 할 정도로 경계가 무너졌다. 오히려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광고 선전한 것이 성형수술을 부채질했다.앞태 가꾸는 것 못지않게 자신이 못 보는 뒤태 가꾸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뒤태는 남이 봐주기 때문에 그렇다. 본인은 자신의 뒤태를 잘 모른다. 사실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뒷모습은 잘 모를 수 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데도 정작 본인만 모를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서 뒤태를 잘 관리해야 한다. 얼굴만 번지르르하지 뒤태가 엉망인 사람이 많다. 새해에는 뒤태를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어떨까. 뒤태가 아름다운 사람이 많으면 우리사회는 한층 건강해 질 수 있다. 아름다운 뒤태는 그 사람의 인격이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복 마냥 앞만 보고 함께 달리다 보면 낭떠러지에 모두 떨어져 함께 죽고 만다는 스프링복의 비극을 되새겨 봐야 할 때다. 모두가 앞만 보지 말고 좌우나 뒤쪽도 살피면서 뒤태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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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5.01.14 23:02

정동영의 선택

정동영 전 의원은 전북출신으로선 가장 걸출한 현역 정치인이다. 제일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냈고 당 대변인과 최고위원, 의장(대표)을 역임하는 등 정치이력이 화려하다. 그런데 그가 어머니 품이라던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났다. 진보인사 100여명이 이끄는 ‘국민모임’에 동참해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국민모임은 ‘국민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추구하는 모임’의 약칭이다. 어쨌건 그는 탈당이라는 중대한 선택을 했다. 1996년 권노갑 민주당 고문의 손에 이끌려 정치에 입문한 뒤 네차례 탈당 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국민경선 후보였던 그는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 됐다. 이듬해엔 당 의장(대표)이 됐다. 2007년엔 열린우리당이 인기를 잃자 탈당,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갈아 타 대선후보가 됐다. 대선 패배 이후 도미했지만 불과 8개월여만에 귀국한다. ‘그 새를 못참아서’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2009년엔 당의 강력한 요청을 뿌리치고 민주당 탈당을 결행하면서까지 전주 덕진에 무소속 출마했다. 1년 뒤 복당했다. 그리고 이번이 네번째 탈당이다. 이유 있는 탈당 명분에도 불구하고 당이나 자신의 입지가 어려운 시기에 탈당을 결행한 공통점이 있다. 대의명분보다는 개인의 퍼스낼리티에 의한 결정이 많았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이런 상황을 못견딘 것일까. 만약 18대(서울 동작 을)나 19대(서울 강남 을) 총선에서 당선됐더라면 이번 탈당은 없었을 것이다. 거물급인 정몽준, 한미 FTA 라이벌인 김종훈과 붙어 연거푸 고배를 마신 것이 쇠락의 직격탄이 됐다. 그의 탈당을 보는 전북인들로선 심정이 착잡할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그의 가벼움 때문일 수도 있고, 정치기둥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탈당을 비난하는 이도 있고, 한파가 몰아치는 나대지에 그를 버려둔 새정치민주연합을 원망하는 이도 있다. 정 전 의원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백의종군’ ‘밀알’을 언급하며 “모든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몽골기병에 자신을 비유하며 질풍노도처럼 활동하던 것이 엊그제다. 연민의 정마저 느껴진다. 고통을 감내할 줄 아는 손학규의 진중함이 더욱 돋보인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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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5.01.13 23:02

선팅하는 사회

요즘 대통령과 정치인,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사회단체, 기업은 물론 개인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최대 화두다. 소통을 잘 하는 사람, 기업, 국가가 경쟁력 높고, 지구촌 생존 게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엄청난 신기술을 발명한 듯 떠든다. 하지만 소통은 인류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 조건이다.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창조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창조, 창의성이 중시되지 않은 때가 없다. 본질은 다를 것 없는데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는 상황에 따라 쇄신, 혁신, 융합 등으로 단어가 바뀌고 편집돼 떠들썩할 뿐이다. 긴장 풀린 인간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것이다. 최근 소통이 강조되는 것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전 때문이기도 하다. 소통은 투명유리이다. 감춰질 것 없다. 공유다. 그 속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도 나온다. 소통은 또 광장이다. SNS 공간에서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들이 의견을 나누고 세상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기분 좋은 일은 칭찬하고, 기분 나쁜 일은 비판한다. 칭찬하고 격려하며 어두운 사회를 밝게 만들어 간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검거하는 수단도 된다. 소통의 공간은 여전히 상식 선에서 발전을 지향한다. 하지만 권력은 소통 때문에 힘들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2년이 되지만 ‘불통’ 비판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권력은 그 자체가 장벽이다.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다. 박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을 바라보는 일반 대중적 고정관념이 의식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 대세인 시대의 대통령이 불통 지적을 받는 것을 두고 대중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광복 7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룬 한국 경제에서 자동차는 중심에 있다. 1997년 등록대수 1000대를 돌파한 자동차는 이제 20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술수준도 획기적으로 진화했다. 대부분 오토매틱이고, 인공지능화하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자동차를 보자. 소통은 간 곳 없고 불통 덩어리가 질주한다. 대부분 자동차가 가시광선 투과율 35%∼5%에 불과한 선팅을 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이 앞유리 70%, 옆유리 40%를 규정하고 있지만 휴지조각이 됐다. 선팅하는 사회는 불통 사회이고, 범죄와 음모가 판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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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5.01.12 23:02

마천루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집’을 이른다. 아마도 옛사람들에게 마천루는 상상속의 집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세계 도처에 마천루가 들어서면서 마천루 경쟁시대가 됐다. 마천루는 근대화를 지향한 1920년대의 모더니즘이 주목했던 소재였다. 건축가 임석재 교수에 따르면 마천루는 양식사조와 관계없이 소재의 관점에서 많은 예술가들의 흥미를 유발했는데, 화풍이나 기법, 상징 등 회화의 범위 안에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예술가들이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높이를 드러내는 마천루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마천루 운동’이라 부를만한 흐름이 형성되기도 했다. 마천루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적합한 양식을 찾는 실험운동에 집중한 것은 역시 건축 분야였다. 마천루 건설이 실제로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곳은 미국인데, 시카고와 맨해튼에서는 이미 19세기말~20세기 초에 마천루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건축가들이 산업기술을 축적하고 자본을 집중시켜 높이 경쟁을 벌였다. 1931년에 지어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를 40여 년 동안이나 지켰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그 결정체다. 그러나 엠파이어스테이트의 영광도 오래 전에 끝났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 위한 마천루의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1위 마천루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다. 163층에 그 높이가 828m나 된다. 그러나 부르즈 칼리파도 2019년에는 1위의 자리를 빼앗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상 167층에 1,007미터 높이로 건설중인 ‘킹덤 타워’가 완공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갱신되는 높이 기록이 흥미롭지만 그 이면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말이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index)다. 1999년 경제학자 앤드루 로렌스에 의해 개념화된 ‘마천루의 저주’는 초고층 빌딩 건축 붐이 거품 경제를 불러와 결국은 대규모 경제불황을 맞게 된다는 상황을 이름 붙인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이 우연히 이뤄진 현상이 아니라 초고층 건물을 짓는 국가마다 어김없이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국내에서도 ‘마천루의 저주’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나라 최고층빌딩으로 주목을 받은 제2롯데월드몰의 계속되는 안전사고가 계기다. 지나친 우려란 반론도 있지만 허투루 지나가기에는 찝찝함이 크다. 늘 과도한 인간의 욕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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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5.01.09 23:02

말 한마디의 값어치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 이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한다.Coffee! 7Euro. Coffee Please! 4.25Euro. Hello Coffee Please! 1.4Euro.즉 ‘커피’라고 반말로 주문하는 손님은 7유로(9100원), ‘커피주세요’라고 주문하면 4.25유로(5500원),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인사하면서 주문하면 1.4유로(1800원)라는 것.가격표를 만든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이 같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한 예화가 있다.옛날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상놈이 있었다. 하루는 젊은 양반 둘이 고기를 사러 왔는데 먼저 한 젊은 양반이 “어~이 백정, 고기 한 근 잘라 줘”라고 주문을 했다. 박씨는 늘 하던대로 정확히 한 근을 잘라줬다. 다른 젊은 양반도 고기를 주문했다. 그는 “여보게 박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그런데 고기 양이 먼저 주문한 사람 것보다 훨씬 많아보였다. 그러자 먼저 고기를 주문한 젊은 양반이 박씨에게 항의했다. “똑같이 고기 한 근을 샀는데 왜 양이 다르냐” 고깃집 주인이 대답했다. “그것은 백정이 잘라 준 것이고, 이것은 박서방이 드린 것입니다”요즘이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파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기에 부천의 현대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생 무릎까지 꿇린 모녀 갑질에 이어 한 대형마트에서 “나 VIP야”라며 막무가내로 휴대폰을 바꿔달라는 마트 갑질녀까지 등장하면서 ‘갑질’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적 인격적 성숙은 뒤따르지 못하는 졸부 근성,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해진 탓일까.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실종된 막말과 갑질이 이처럼 만연해지고 있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어제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 같은 틈새를 노려 ‘따뜻한 말 한마디’ 이벤트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공손하게 주문하면 커피 값을 50%까지 깎아주고 반말이나 불친절한 말로 주문하면 할인혜택이 없다. 이 체인점은 지난해 10월 4일 1004 데이 때 한시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가 반응이 좋아 올해부터는 매월 첫째 수요일마다 이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케하느니라.” 성경 잠언 15장 1절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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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택
  • 2015.01.08 23:02

전북정치권 현주소

전북 도세가 약화된 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측면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내 출신 정치인들이 제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정치는 독립변수로서 가장 상위 개념이다. 정치를 잘해야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존재감이 크면 국가예산도 많이 확보한다. 힘으로 국가예산을 나누는 세계라서 그렇다. 그렇지 않고 당내에서 물 당번도 제대로 못할 정도라면 영향력이 약해 아무 일도 못한다. 자기 자신의 입신양명만 구가할뿐 국가나 지방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미미하다.소석 이철승 선생이 국회부의장을 지낸 다음 김원기의원이 국회의장이 됐고 정동영의원이 대통령 후보까지 됐지만 전반적으로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떨어져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못줬다. 도민들 가운데는 전북 국회의원들의 존재감이 약하다고 힐난한다. 국회의원수가 줄어 세력이 약화됐지만 그 보다는 개인별 역량이 떨어져 큰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의 모태나 다름없는 전북이 차츰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현역들의 정치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는 고사하고 최고위원 조차도 출마하지 못한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요즘 국회의원들의 지역 방문이 잦다. 연초라서 그럴 수 있겠지만 20대 총선을 겨냥하고 앞서 표밭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철저히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정치력과 영향력이 센 의원은 활동 무대가 중앙정치권이어서 지역구 활동은 잘 못한다. 지역에 자주 내려 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하지만 영향력이 약한 의원은 존재감이 떨어져 지방의원이나 줄 세워가며 지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민들을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해서 국정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큰 정치는 못하고 만다. 도내는 7명이 초선이라서 한둘 빼고는 당과 국회에서 존재감이 희미하다.상당수 도민들은“3선인 김춘진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재선인 이춘석의원이 야당 측 예결위 간사를 맡은 것 외에는 눈에 띈 것이 없다”며 “전북정치권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극단적인 평도 서슴지 않는다. 재선 이상이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역만 파고 들일이 아니다. 중앙에서 큰 정치를 잘하면 다음 출마때 걱정이 없다. 재선인 유성엽의원이 문재인 의원 등 3인이 당대표로 출마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어필했기 때문에 지역과 본인의 정치생명을 위해서도 이번에 최고위원직에 강력하게 도전했어야 옳았다. 도당위원장 정도는 초선에게 맡기도록 하는 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1.07 23:02

새정치민주연합의 운명

새정치의 아이콘인 안철수 의원이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새정치연합 창당을 주도한 것이 지난해 초다. 당시 새정치추진위를 출범시킨 안 의원은 “낡은 틀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 이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설 수 밖에 없다.”며 그 첫걸음을 디디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라는 링컨의 말을 인용하면서 국민통합의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창당 계획을 접고 그해 3월 1일 민주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100년은 커녕 100일도 가지 못했다. 50 대 50의 수평적 통합을 강조하고 당명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했다. 외형은 그럴지언정 사실상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먹힌 꼴이었다.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 후보’들의 참패가 잘 말해준다. 정치공학적 통합은 진정성이 없고 결말도 좋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그런 경우다.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당명을 쓴 지 채 1년도 안돼 또 당명 개정 논란이 일고 있다.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선거에 나선 박지원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을 민주당으로, 문재인 의원은 새정치민주당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발음하기 어렵고 ‘새정련’ ‘새민련’ 등의 약칭도 별로인 모양이다. 개정 이유도 명확치 않고 사과도 없다.세력으로 사귄 사람은 세력이 기울면 끊어지고, 이익으로 사귄 사람은 이익이 다하면 흩어진다(以勢交者 勢傾則絶, 以利交者 利窮則散)는 세간의 법칙이 어긋나지 않는 걸까. 새정치의 효용성이나 안철수의 약효가 다했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정통 야당이 어쩌다 문패만 바꿔 다는 신세로 전락했는 지 안타깝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200년,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정당역사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정당 수명이 짧은 건 우리나라의 정치가 그만큼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개혁과제들에 대한 실천 없이 포장지만 그럴듯 바꿔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다 보니 당 이름만 바꾸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발가락이 가려운데 구두를 긁는 꼴이다. 내용물을 바꾸지 않고 간판만 바꿔 단다면 정치소비자들의 냉소가 쌓일 수밖에 없다. 국민 눈높이 정치를 한다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가.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1.06 23:02

물처럼 살라하네

사람은 하루에 1.8리터 정도의 물을 마셔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의 약 60-65%를 차지하는 수분은 체내 화학반응에 작용하고, 영양소와 노폐물을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체온 유지 등 물은 그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일정량이 소모되기 마련이다. 약 600㎖의 물이 오줌과 대변으로 배출되고, 피부와 호흡 등으로 증발되는 수분도 1000㎖에 달한다. 우리는 매일 이에 상당하는 수분을 계속 보충해 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에 물이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고, 오줌 색깔이 투명하지 않다. 인체가 물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목 마를 때 커피나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커피와 녹차 등은 강력한 배뇨 작용을 일으켜 오히려 체내 수분을 억지로 배출시킨다. 평소 갈증을 느끼지 않을 때에도 커피를 마시기 전후에 커피의 양과 비슷한 양의 물을 마셔야 인체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물은 우리 육체 건강에 필수적 요소이듯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널따란 호수, 수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평온을 느끼거나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낀다. 삶의 활력을 얻는다. 옛 선인들은 물을 주제로 지혜를 선물했다. 공자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물처럼 막힘이 없으니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밝고 산처럼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니 산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물은 고여 있기도 하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힌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을 찾아 구불 구불 돌아 흐른다. 제갈공명은 궁신접수(躬身接水) 자세로 세상을 대했다. 궁신접수란 몸을 낮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받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에서는 지구의 이상 중력 현상도 나온다. 각종 재앙의 원인 중 하나가 이상 중력이다. 중력이 무너져 모래 바람이 불고,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이다. 사람이 흐르는 물을 거스르고 몸을 치켜세울 때, 중력이 무너져 모래바람이 제멋대로 불 듯, 재앙이 초래되게 마련이다. 권력을 손에 쥔 자, 재물을 조금 더 가진 자, 지식을 조금 더 쌓은 자들이 낮은 곳을 지향하는 물처럼 살라고 인터스텔라는 말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1.05 23:02

이들이 행복한 이유

2011년 일본 내각부가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 일본의 매체와 지식인들은 그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결과는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20대 젊은이 중 70% 정도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답한 셈이다. 오랜 경기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불행한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이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는 결과는 의미심장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젊은이들이 느끼는 생활만족도와 행복지수가 더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내놓은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생활만족도는 이제 78.3%까지 올라섰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조사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나는데 NHK 방송문화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일본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95%가 자신은 ‘행복하다’고 답한 것이다. 경기침체에 취업난과 부조리한 사회구조의 절망적 환경에서도 정작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자신 20대인 일본 사회학자가 집중 탐구해 내놓은 분석이 흥미롭다.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의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적인 일본사회에서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했다. 그가 내린 답은 이들의 ‘행복’이 ‘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라며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젊은이들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반드시 ‘행복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또 있다. 그는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이 아무리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그 행복을 지탱해주는 생활기반은 서서히 썩어 들기 시작했다’고 단언한다. 의미 있는 경고다.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긍정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물론 많은 논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들여다보니 일본이 처한 현실이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돈과 출세로만 내몰리는 경쟁사회의 ‘반작용’은 우리사회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젊은이들의 행복도가 궁금해진다. 이들은 지금 행복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1.02 23:02

바른말 하는 사회

갑오년 끝자락이다. 지금 상황이 어렵게 돌아간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가 불의에 먹히지 않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면 가능하다. 그간 우리는 고소 고발을 많이 했다. 상대를 해치기 위한 음해성 투서도 많았다. 뒤에서 총질하는 일도 거리낌 없이 했다. 앞에서 떳떳하게 잘 잘못을 가리지 않고 음습한 어둠속에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패배감과 좌절감만 맛보았다. 지역감정 못지않게 이 문제는 그 해악이 크기 때문에 이를 뿌리 뽑지 않고는 지역이 건강해질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뒤에서 바짓가랑이나 잡으려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자기 앞에다 큰 감 놓으려다 못 놓으면 투서질이나 해댔으니 지역이 건강할 수 있었을까. 요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지역민심도 흉흉해졌다. 정권으로부터 소외와 선거 부작용 일수 있다. 선거를 많이 치르다 보니까 네편 내편으로 나눠져 안 좋은 일만 속출했다. 단체장들이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과 교육이 덜된 탓인지 잘 안 된다. 오히려 선거감정만 쌓여 간다. 각 지역별로 단합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분오열 돼 더 힘들다. 6·4 지방선거가 끝난 후 단체장들도 승자의 자만심에 빠져 자기편만 챙긴다. 선거 때 자기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국물도 없다. 생각할수록 아찔하고 끔찍하다. 윗선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가다보니까 시군 조직이 사유화 돼간다. 역량 있는 공직자나 인재가 있어도 제쳐놓기 일쑤다. 아예 공직을 그만 둘 각오나 해야 바른말 하는 분위기다. 어느새 아첨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졌다.특히 지역에 뒷담화가 많아졌다. 왜 그럴까. 정상적으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부자 몸조심 하듯 권력자와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안 좋아도 좋은척하는 이중구조가 생겨났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니다. 자칫 진실을 말 했다가는 말한 사람이 그 피해를 보는 구조라서 더 거짓이 판쳤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깊이 살펴야 할 것 같다. 정여립 사건과 동학농민혁명때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역모죄로 너무 많은 인재가 죽임을 당했고 동학농민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탓이 크다. 두 차례나 너무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다 보니까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이어졌다. 바른 말 했다가는 목숨 부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살기 위해 때로는 눈치를 살폈을 수도 있다. 도민들의 영혼에 정의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에 동학후예로서 을미년에는 바른말 하는 전북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전북의 장래가 있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12.31 23:02

세밑 단상

어제의 시간이나 10년 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똑같다. 그런데 시일이 흐를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40대는 시속 40㎞의 속도로, 50대는 50㎞, 60대는 60㎞ 속도로 빠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왜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생각은 단순 명료하다. 기억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이른바 ‘회상효과(Reminiscent Effect)’다.학창시절은 나이 들어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한다. 호기심 많고 가슴 설레이던 시절,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들기 시작한 언제부턴가 시간은 미친듯이 빠르게 흘러갔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될 게 별로 없다. 정신 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게 없으니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올 한해도 미친 듯이 흘러갔다. 수능 대박에다 결혼·취업 걱정 다 날려버리고 승진·로또 당첨· 금연· 건강 다짐도 했을 법 하다. 전· 월세시대를 마감하고 반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겠다는 것도 서민의 소박한 꿈이다. 그런데 이룬 것도 없이 일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들 한탄한다. 청마의 해인 올해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교수신문은 올해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로 우긴다는 뜻이다. 시비곡직이 뒤죽박죽 된 걸 이르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나타내는 ‘참불인도(慘不忍睹)’도 수위에 꼽혔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을 겪었어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또 직장인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다사다망(多事多忙)’, 구직자들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사자성어로 뽑았다. 취업난 속에서 매우 힘들고, 괴로운 한 해를 보냈다는 뜻이겠다. 중소기업인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필사즉생(必死卽生)’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인생은 ‘고(苦)’다. 세상 쉬운 게 하나도 없다. 행복은 목표로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 이는 괴에테다. 과정을 즐겨야 한다.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기억할 일은 자꾸 만들면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것을 시도하며 살으시길 권한다. ·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12.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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