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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귀환

‘골목길’이 도시를 살려내고 있다. 대구의 ‘근대골목’이 그 증거다. ‘근대골목’이란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적어도 대구의 구도심에서는 지역의 근대사를 이야기로 담아낸 근대골목의 존재가 빛난다. 대구 중구는 역사적 전통과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몇 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의 구도심 거개가 그렇듯 대구 중구 역시 근대자산들은 방치되고 공동화된 거리는 활기를 잃었다.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작업이 더해졌다. ‘일상장소 문화공간화사업’과 ‘근대문화공간디자인개선사업’에 선정되면서 구도심의 변화가 시작됐다. 지금은 꽤 이름난 상품이 된 ‘대구 근대골목투어’는 그 결실이다. 대구근대골목투어는 2008년에 시작됐다. 첫해 방문객은 300명이 채 안됐지만 6년만인 지난해에는 근래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김광석 길 방문객까지 67만 명이 찾았다는 통계가 있다. 놀라운 변화다. 중요한 것은 방문객 수가 아니라 골목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다. 근대문화골목길은 1.64㎞, 2시간 정도 걷는 거리다. 골목투어에는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다. 근대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거리’에 관심이 쓸리고 있는 덕분이다. 2010년에 조성된 이 거리는 350미터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이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이야기로 입힌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은 통행로로서의 기능에 그쳤을 골목길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거리를 끼고 있는 방천시장은 찾아오는 방문객들 덕분에 활기를 띤다. 지역주민들이 반가워하는 이유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 목적만 앞세워 방문객수에만 집중하다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상업화로의 변질이다. 우리 지역에도 아름다운 골목길이 많이 있다. 5-6년 전, 전주 한옥마을도 적잖은 골목길이 살아 있었다. 한옥마을은 그 골목길들로 인해 더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됐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좁디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담장과 담장이 어깨를 맞댄 틈 사이에 또 다른 골목길이 놓여있던 공간. 그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이집 저집 대문도 담장도 쳐다보며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옥마을 골목길의 대부분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의 존재는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아 있는 골목길의 존재도 위태롭다. 다른 도시의 ‘골목길 귀환’이 부럽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4.24 23:02

최명희의 제망매가

소설 ‘혼불’로 유명한 작가 최명희는 198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월간 전통문화에 소설 ‘제망매가’를 연재했다. 여성 명창 안향련의 가련한 죽음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다. 전주와 완주가 배경이고, 이 지역 인물과 풍경, 민담과 설화, 민요, 굿 등이 오롯이 배어 있다. 하지만 제망매가는 미완이다. 연재 도중 잡지가 폐간됐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최명희는 계속 이어진 혼불 연재 때문에 제망매가 집필을 재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았으니 일반인들이 최명희의 소설 제망매가를 책으로 읽을 기회는 없었다.그 소설 제망매가를 최명희문학관이 세상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나섰다. 올해로 개관 9주년을 맞은 최명희문학관이 21일부터 5월5일까지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지선실에서 제망매가 삽화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판화가 유대수씨와 서양화가 황진영씨가 소설을 읽고 작업한 판화와 펜화 작품이 더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의 특정 대목 상황에 걸맞는 그림을 유대수 작가는 판화로, 황진영 작가는 선이 가는 펜 드로잉으로 작업했는데 소설 속 인물의 감성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1960년대 전주의 풍경과 역사 인물 등이 가득하다. 소리광대 임호근의 한 세상 소원은 명창이다. 최명희 작가는 임호근이 명창을 꿈꾸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완주 출신의 권삼득 명창이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 맞섰다가 결국 파문 당하면서까지 소리꾼의 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또 한벽루를 지은 최담과 함께 조선시대 명필 이삼만도 등장시킨다. ‘그날도 그들은, 한벽당의 옛 주인 월당 최담 선생의 유허인 월당지 주변 대숲에 이르러 이삼만의 글씨를 어루만져 보았던 것이다.’전주천변의 풍경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연날리는 패들은 쇠전 강변 언저리로부터 매곡교를 지나 전주교가 가로 걸린 초록바우 동천에 이르기까지 가득하였다.’경기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이라해서, 그 선조의 뼈가 생겨난 전주에, 경기전을 세운 뒤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엄숙하게 분향 제전을 받들었던 곳이, 이제는 허물어져 담장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5백 년 동안,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야 했던 경기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울창한 아름드리 고목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소설 제망매가는 살아 있는 전주 완주 역사 교과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23 23:02

검은 돈의 유혹

기업인 가운데 성완종만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을까. 국민들의 시각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기업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보험 성격의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간 IMF를 거치면서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되어온 불법행위가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 차츰 제도 중심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정치가 부정부패로 얼룩져 OECD에 가입하고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정체 돼 있다. 우리 정치가 고비용 저효율을 내는 구조라서 다른 분야가 잘 되어도 시너지 효과를 못내고 있다.국회의원들의 중앙정치 말고도 지방의원들이 하는 지방정치는 어떨까. 엇 비슷하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와 맞물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활정치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1년에 지방자치제 부활로 도지사 시장 군수를 직접 주민들이 선출하지만 아직도 절름발이식이다. 중앙당에서 지방의원까지 공천권을 틀어 쥐고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사병이나 다를 바 없다. 무소속 지방의원은 국회의원 눈치 안보고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지만 정당공천 받아 지방의원이 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재정자립도가 빈약한 각 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각 자치단체는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한다. 이같은 틀속에서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를 그대로 닮아간다. 지방의원들은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억대를 쓴다. 재력 있는 후보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은행권 차입부터 시작해서 친인척 내지는 지인들을 통해 선거자금을 융통해서 쓴다. 당선자는 임기내 선거자금을 메우려고 혈안이고 낙선자는 빚더미에 빠져 풍비박산난다.상당수 지방의원은 의정비로 의정활동을 하지만 이 돈 갖고는 애경사비 충당하기도 힘들다. 사업하거나 내조가 없으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 치기가 쉽지 않다. 집행부측은 ‘경제력이 약한 의원들의 쪼들린 행태가 그대로 의정활동으로 나타난다’면서 ‘돈 없이 깨끗하게 의정활동 하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말한다. 시단위 지방의원은 그나마 낫지만 농촌은 애경사를 외면했다가는 다음에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정도다. 의원이랍시고 품위유지도 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인사개입과 이권을 쫓아 다니는 일부 의원에 대해 주변에서는 교도소 담벼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 같다고 힐난한다. 알게 모르게 지방의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린 이유는 검은 돈 유혹 때문이지 다른데 있지 않다.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4.22 23:02

유자광교·유자광도서관

유자광(柳子光)은 인명사전에 따르면 간신으로 그려져 있다. 경주 부윤(시장)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로, 남원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재주와 용맹이 뛰어나 1468년(세조 14) 무과에 올랐고 남이 장군 등을 역모로 몰아 죽인 공으로 공신이 됐다. 유자광은 자신의 시가 쓰인 현판을 함양 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떼내 버리자 김종직 문하 김일손의 사초 중 조의제문(吊義帝文)이 있음을 트집 잡아 김종직의 저서와 현판을 모조리 불사르게 하고 그를 탄핵해 대역죄로 몰았다. 이른바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이번에는 성희안과의 인연으로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책봉돼 무령부원군(武靈府院君)에 피봉됐지만 그후 탄핵을 받아 훈작을 빼앗겼다. 귀양지에서 장님이 돼 사망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고 자신의 신분에 당당히 맞서 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임금을 모셨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그런데 남원지역에서는 유자광 이름을 딴 대로와 도서관 명칭을 짓자는 주장이 나왔다. 남원고전문화연구회가 최근 남원시 도토동 부영 5차 아파트 앞에 신설 중인 인도교의 이름을 ‘유자광교’로 짓고, 고죽동의 황죽 작은도서관을 ‘유자광 작은 도서관’으로 개명하자고 이환주 남원시장에게 건의했다. 또 박문화 남원시의원도 5분 발언을 통해 인도교와 도서관 명칭에 유자광 이름 사용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자광은 1908년(순종 2년) 죄명을 탕척받고 삭탈된 모든 관작을 돌려받아 명예를 회복한 남원의 큰 인물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의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공을 인정해 주자는 뜻이겠다. 글쎄다. 사면 복권됐다고 해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행위까지 없던 일로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간신의 행적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떼낼 수가 없다. 간신을 갑자기 남원의 ‘큰 인물’로 변환시키는 건 무리다. 더구나 그의 이름을 도로와 도서관에 붙이는 건 좀 거시기하다. 대로와 도서관에 유자광의 이름을 써 붙인다고 해서 남원의 이미지가 쇄신되고 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다. 공연히 간신의 고장이란 불명예만 세상에 드러낼 지도 모른다. 명칭 사용은 신중히 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21 23:02

거짓말

사람들은 평균 8분에 1번씩,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만 전 캘리포니아 의과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물론 이 거짓말 속에는 우리가 의례적으로 나누는 인사말부터 타인을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과 위장된 표정·태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어린 아이들의 경우 4살짜리는 2시간에 한 번꼴로, 6살 아이는 90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게 캐나다 워털루대학 연구팀의 연구 보고서다. 아이들은 10살까지 거짓말하는 횟수가 증가하다 이후 차츰 줄어든다고 한다. 10살이 넘으면 거짓말하다 들켰을 때 뒤따르는 문제점을 알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빈도수가 감소하는 것이다.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오래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설파했다. 한 번 거짓말을 내뱉으면 그 거짓말을 합리화 하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공작반을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워싱턴 포스트 등 몇몇 언론에서 사건의 진실을 알렸지만 당시 선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닉슨은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처음엔 모든 것을 부인했던 닉슨이 1년 만에 사건을 처음 시인했다. 충성스런 부하들이 ‘자신은 모르게 한 일’이라고. 그러나 입막음용으로 백악관에서 돈을 주었다는 딘 보좌관의 폭로에 닉슨은 “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를 승인하지는 않았다”며 세 번째 거짓말을 했다. 법원은 자동으로 녹음되는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닉슨은 대통령 특권을 내세워 거부했다. 하지만 여론에 밀려 녹음테이프를 제출했으나 18분간의 분량이 지워졌었고 이를 우연한 실수라고 네 번째 거짓말을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요즘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꼭 닉슨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만난 적이 없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일면식도 없다”고 강력 부인했지만 거짓말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야당의원의 계속되는 말바꾸기 지적에 “충청도 말투가 그렇다”고 답변해 실소를 자아냈다.“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으나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 대통령의 말을 뼈에 새겨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4.20 23:02

LP음반과 비망록

언제부터인가 빠르게 사는 것이 미덕이 됐다. 일상의 대부분이 디지털로 무장해가는 세상에서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를 갈구하는 욕구에 더 이상 제동 장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시대에서도 삶의 가치는 ‘빠르고 편한 것’에만 있지 않다고 일러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느림과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론이다. 여러해 전, 아날로그적 삶의 가치를 지켜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분이 있는데, LP음반을 즐겨들었던 오디오 마니아다. 중학교 교사였던 그는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아 통화조차 어려웠었다. 어렵게 연락이 되었지만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바람에 ‘그럼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애면글면 겨우 취재를 했다. 당시 그가 수집한 LP음반은 4000여 장. LP를 즐겨듣는 지인들에게 많이 나누어주었다지만 그러고도 방 벽면을 빼곡히 채운 오래된 음반이 전하는 시간의 무게는 깊었다. 그 역시 CD음반을 듣기도 하지만 음악의 제 울림을 듣기위해서는 LP를 듣는다고 했다. LP는 아무래도 번거롭다. 기온이 낮아지기라도 하면 열을 받아 스스로 힘을 얻기까지 기다리거나 인위적인 힘을 가해야 한다. 어찌됐든 취재를 겸해 갖게 된 그날 우리의 귀는 호사를 했는데, 깊고 인간적인 음악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된 것 역시 덤으로 얻은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호사보다도 더 깊은 울림을 준 것은 그가 깨우쳐 준 아날로그의 가치다. 그가 말하는 아날로그 가치는 ‘기다림’이었다. 기다리지 않고도 얻어지는 결실은 그만큼 가치가 반감된다는 것이 세상을 살면서 그가 얻은 지론이다. 소중한 지혜를 엿보았지만 그럼에도 속도와 편리함에 묻혀 사는 우리에게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늘 궁금했다.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의 실체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녹취록’과 ‘비망록’이 공개되면서다. 음모적이고 음습한 상황이다.주목되는 것이 있다. 그가 세상과 결별하기 직전에 써서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지’와 오래전부터 써왔다는 ‘비망록’의 가치(?)다. 만약 이 기록이 그가 직접 쓴 글씨가 아니라 다른 형식의 활자체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 가치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조작에 왜곡, 진위여부를 둘러싼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되었을 것이다.아날로그적 방식이 갖는 힘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흥미로운 교훈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4.17 23:02

시계 제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터트린 ‘판도라 상자’가 정국을 강타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연일 계속되는 폭로와 정치권 공방, 검찰 수사 상황을 한심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명단을 올린 인물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거물급들이어서 국민 충격이 더한 상황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모르쇠다. 검찰은 지난 6일 성 전 회장에 대해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검찰은 포스코와 경남기업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었고, 결국 성 전 회장이 회삿돈 250억 원을 횡령했다는 등의 혐의를 내세워 성 전 회장의 목에 씌운 올가미를 바짝 조였다. 이에 성 전 회장은 충청도 동향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자신을 표적 삼아 사정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또 주변 유력 정치인들에게 구명을 요청했지만 거부 당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9일 새벽 자살하기 전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완구 국무총리 등에게 부적절한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고발했다. 내용은 고스란히 녹음됐다. 그의 호주머니에서는 이완구 등 8명의 리스트가 발견됐다. 특히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3,000만원을 제공했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은 핵폭풍이 됐다. 이 총리는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다. 14일 국회에 출석, 자신이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까지 했다. 성완종이 걸려 든 올가미에 이 총리가 걸려들어 사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여당의 눈도 싸늘하다. 일국의 국무총리가 더러운 정치자금 시비에 휘말리면서 사면초가에 갇혔고, 그는 우미인곡을 들으며 뭔가를 결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착잡할 것이다. 어떤 이는 성 전 회장이 이완구 등에 대한 모종의 섭섭함 때문에 악의적으로 리스트를 폭로하고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어떤 이는 성 전회장이 오랫동안 기업 활동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도당위원장, 국회의원 출마와 당선 등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해 온 이력으로 볼 때 자살 전 폭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국민들은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차떼기 등 정치권 금품수수 사건에 진절머리가 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16 23:02

성깔 있는 도민

도민들의 성향이 크게 보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생활권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고창과 순창은 인접한 광주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기질이 엇비슷하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을 광주에서 나온 사람들은 설령 고향이 고창과 순창이라도 말씨나 기질이 광주 사람과 닮았다. 광주 사람들은 긍정적이면서 비판적이다. 뭔가 확실한 사람들이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들로 평가 받기 때문에 타 지역 사람들도 그 점을 높이 산다. 호남여론을 대표하는 것도 매사에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표출시키기 때문이다.충남에 인접한 익산 북부와 대전에 인접한 무주도 생활권이 비슷한 관계로 기질이 같다. 경남 함양에 인접한 남원 운봉 4개면도 그 쪽 영향을 받아서인지 말씨나 억양이 비슷하다. 사람들은 자연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생활경제권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도청 소재지인 전주가 경제력이 약화되면서 도 전체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아직도 농업비중이 큰 관계로 도민들의 전반적인 기질이 온순하다. 타지 사람들이 도민들을 좋게 말해 양반기질이 강하다고 평가하지만 그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은 정보산업사회라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질이 강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역사발전은 ‘도전과 응전’의 관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창의적인 자세를 갖고 도전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그 지역은 도태된다. 전주가 산업화 이전만해도 전국 7대도시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지금 17위로 처진 이유를 알아야 한다.지금부터라도 도민들의 의식이 뭔가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광주나 전남 사람들처럼 진취적이면서 예스나 노가 분명해야 한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야 중앙정치권도 깜보지 않는다. 그간 너무 도민들이 자신감을 잃어 왔다. 지역정치인들이 특정정당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안위만을 노리는 그릇된 정치를 해온 탓이 제일 크다. 남들은 4대강 사업에 찬성해서 지역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판에 전북도의회는 바보처럼 전국에서 최초로 반대하고 나섰지 않았던가.20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는 지역정서에 함몰되는 묻지마식 투표를 하면 지역이 망한다. 그간 이같은 투표로 덕 본게 없고 잃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적 태도를 취해야 지역이 산다. 현역들도 역량이 떨어졌다 싶으면 가차없이 낙선시키고 역량 있는 사람을 뽑아 키우면 된다. 우선 선거 때 도민들이 정신 차려 바보짓 안해야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대접받으면서 살아 갈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15 23:02

사람 끄는 한국전통문화전당

한국전통문화전당(이하 문화전당)이 마침내 30일 개관한다. 한(韓) 스타일 중심의 전통문화 산실이다. 전주 한옥마을 북쪽 옛 도청 2청사 부지(1만9,000여㎡)에 465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됐다. 2009년 12월 착공 이후 5년 4개월만이다. 일부 부실시공에다 예산 확보 미흡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랜 준비 끝에 개관하는 것이어서 관심도 많다. 갈수록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터에 전통문화도시 전주에 문화전당이 들어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곳에는 공예명품 전시관과 기획전시실, 공방(17개소), 공연장, 전주의 역사와 한(韓) 문화가 전시된 홍보관, 전주의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시루방(음식조리교실), 뷔페식 비빔밥 등이 들어서 있다.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실행하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전통문화산업 분야의 인력양성과 전시공연, 연구개발 등이 그런 업무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되고 일자리도 만들어 내야 한다. 김동철(58) 원장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한(韓) 문화의 융합거점으로 자리매김해 전통의 대중화, 산업화, 세계화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충분한 가치가 담긴 슬로건이지만 대중화와 산업화, 세계화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중요한 건 한옥마을과의 연관성이랄 수 있다. 연간 500만 명이 넘는 한옥마을 관광객의 이른바 ‘낙수효과’로 연결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눈요기와 체험에다 특색있는 향토 먹거리까지 연계된다면 금상첨화다. 전당 주변에 각 지역별 향토음식 공간이 들어서면 어떨까 싶다. 이를테면 군산 꽂게장, 부안 백합죽, 고창 풍천장어, 정읍 산채정식, 순창 다슬기수제비, 임실 운암매운탕, 남원 추어탕, 진안 더덕구이, 장수 소머리탕집처럼. 백문이 불여일식(百聞不如一食)이다. 문화전당은 전주옥(獄)이 있던 자리로 천주교 박해 현장이기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동정부부인 유중철과 동생 유문석이 옥중에서 교살됐고 1827년 박해 때는 240여명이 넘는 천주교 교인들이 감금돼 문초를 받았던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충분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있는 곳이다. 문화전당이 대중화돼야 산업화도 세계화도 가능하다. 사람 끄는 문화전당으로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14 23:02

구심점 잃은 전북 출신 공무원

“전북출신 공무원들은 고향이 없습니다. 대구·경북이나 충청도는 중앙 부처 내에서 인맥도 탄탄하고 당당하게 모이는데 우리는 고향을 밝히기도 꺼리고 교류도 없다보니 전북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30년 넘게 중앙 부처에서 근무한 한 공무원의 푸념이다. 그는 자신은 물론 서울서 태어난 아들의 본적지도 전북 임실로 기재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그렇지만 중앙 공직사회에서 소외된 전북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토로한다. 타 지역출신들은 씨줄날줄로 엮인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지만 전북출신 공무원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때문에 남들이 퇴근할 때 야근해야 하고 휴무 때 특근 하는 등 2배 3배 더 노력해야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말 장관급 자리에 오른 한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프로필에 출신지를 아예 서울로 표기했다. 그가 도내에 근무할 당시에는 정읍이 고향이라고 밝혔지만 중앙으로 영전한 이후에는 출신지가 슬그머니 바뀐 것이다.이 같은 현상은 중앙부처 공직사회에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시절에는 청와대를 비롯 장·차관 자리에 전북출신들이 대약진하면서 공직사회가 크게 활기를 띠었다. 재경 전북출신 공무원 모임인 삼수회를 중심으로 전북발전 비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운용하기도 했다. 중앙에서 활동하는 장·차관과 기관단체장 CEO 등 중량급 인사들은 모악포럼을 만들어 전북발전 싱크탱크와 인재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중앙 부처 장·차관과 핵심 부서에 전북인맥의 씨가 마르면서 공직사회도 위축되고 말았다. 전북 출신이라 하면 괜히 불이익을 받을까 봐 내색도 하지 못하는 게 재경 전북인들의 현실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모아야 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금언(金言)이다. 그렇지만 지금 같은 시련기에는 그들 스스로 일어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선배들이나 전북도와 자치단체, 재경 모임 등 외부에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대구·경북은 지역상공인들이 든든한 후원자다. 충청도는 실세총리 등장이후 중앙 공직사회에서 맨파워가 더 커지고 있다.“요즘은 전라도를 ‘멍라도’ 라고 합니다” 전북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은 이 말의 의미를 잘 곱씹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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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택
  • 2015.04.13 23:02

민살풀이의 위기

우리의 전통춤인 허튼춤과 살풀이는 한국인의 미학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춤으로 꼽힌다. 이 춤의 공통적인 특성은 즉흥성인데 설명을 더하자면 허튼춤은 일정한 형식이나 정해진 순서 없이 자신의 감정과 멋을 넣어 추는 춤이고 살풀이는 액을 풀기 위해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이다. 우리의 전통춤은 더러는 소멸되고 더러는 잊혀져 이름만 남은 경우가 많은데 살풀이는 오늘까지 살아남아 널리 알려졌다.굿판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살풀이는 교방에서 기생들이 추었던 춤이다.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지고 수건을 들고 추는데 수건의 길이가 지방과 춤꾼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건으로 수많은 선을 그리는 것은 살을 풀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라고도 하고 기방에서 추는 살풀이의 수건놀음은 여인의 한풀이를 표현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살풀이 중에서도 일상적인 미학을 감동적으로 만날 수 있는 춤이 있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에 의해 우리 지역에서 이어져온 민살풀이다. 민살풀이는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맨손으로 추는 즉흥춤이다. 예기들을 통해 기방에서 완성됐다고 알려진 민살풀이는 손이 머리 보다 높이 올라가는 법 없이 귀 뒤와 배꼽 근처로만 움직이는데, 멈춰있는 듯 가늘게 움직이는 손과 흰 저고리와 치마의 선이 전해주는 아름다움이 슬플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래서 평자들은 이 춤의 생명력을 슬픈 아름다움이라고도 한다.지난 4월 1일, 이 춤을 지켜온 조갑녀 선생이 작고했다. 서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고 했을 정도로 빼어난 춤꾼이었던 선생은 결혼과 함께 스스로 무대를 떠났다. 춤꾼으로 이름을 숨기고 산지 수십 년, 그러나 세상은 그의 춤을 다시 무대로 이끌었다. 2007년, 서울세계무용축제 무대였다. 그의 나이 여든 여섯, 몸조차 가누기 힘들게 보일정도로 마르고 왜소한 노인이 무대에 섰을 때 객석은 숨을 멈추었다. 선생의 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아흔을 앞둔 나이에 조갑녀 선생은 왜 가누기도 어려운 몸을 추스려 다시 무대에 섰을까. 사실 민살풀이는 위기에 처한 춤이다. 조갑녀 장금도 선생 이후 춤의 계승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조갑녀 선생의 민살풀이는 슬하의 두 딸에게 전해졌다고 하니 다행스럽지만 이제는 민살풀이 명인으로 유일하게 남은 장금도 선생도 아흔을 눈앞에 두고 있다.돌아보면 우리의 전통춤은 옛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춤의 생명이 위태롭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4.10 23:02

기능경기대회

기능경기대회는 산업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우수 기능인 양성을 위해 매년 치러진다.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해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수 있다. 지역 대회 입상자들은 전국기능대회에 출전할 수 있고, 전국기능대회 입상자들은 국제기능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2015년도 기능경기대회가 8일 전북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전북에서는 전주공고 등 8개 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 각 지역별 기능경기대회 종목은 가구, 미장, 타일, 기계설비, 자동차정비 등 40∼50개이고, 참가 선수만 수백명에 달한다. 전북대회에는 태양광 발전, 한지공예 등 40개 직종에서 460여명의 선수가 자웅을 겨룬다. 부문별 1∼3위 입상자는 해당 직종 기능사 자격이 주어진다. 또 10월 울산에서 열리는 올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전북 대표로 참가한다. 국제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면 국위를 선양하고, 개인적으로 직장, 연금 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스포츠올림픽과 똑같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1950년 스페인에서 스페인과 포루투칼 청소년 근로자 대표선수 24명이 친선경기를 벌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1960년대 들어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지역별 기능경기대회를 1966년에 치러 국가대표선수를 선발한 뒤 1967년 제16회 대회부터 국제기능대회에 참가했다. 처녀출전에서 한국은 양복과 제화 직종에서 금메달을 땄다. 1977년 제23회 대회에는 28명의 선수가 출전, 금메달 12개, 은메달 4개, 동메달 5개 등 21명이나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정상 자리에 우뚝 섰다. 우리나라는 이후 199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31회 대회까지 무려 9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국제기능경기대회에서 세계 첫 제패를 한 우리나라는 1978년 부산기계공고에서 제24회 국제기능경기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40여년간 우리나라가 국제기능대회에서 보여준 엄청난 성과가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초석이 됐다. 그러나 전북은 최근 세차례 전국기능대회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했다. 지난해 33개 직종에서 은 3개, 동 3개로 전국 15위를 기록했다. 교사들이 기능 지도를 기피하고, 지자체와 교육청 등도 무관심한 탓이다. 전라북도는 2015년 기능대회 관련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09 23:02

호사다마(好事多魔)

섬진강변에 벚꽃이 만개했다. 정읍 IC에서부터 내장산 천변길이 벚꽃으로 장관이다. 전주 삼천변이나 전주 동물원 완주 송광사에 이르는 길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얗게 피어 오른 꽃이 마치 꽃구름 같다. 벚꽃은 화사해서 좋다. 벚꽃을 보고 있으면 세상 근심 다 잊게 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듯 벚꽃도 오래 가지 못한다. 봄에는 사흘 맑은 날이 없을 정도로 비바람이 잦다. 꽃이 필 때는 꼭 사나운 바람과 함께 심술궂게 비가 뿌린다. 꽃을 보면 풍우(風雨)가 안내리길 바라지만 새 생명을 잉태시키려면 비는 절실한 것. 이게 자연의 섭리다.중국 당나라 때 방랑시인 우무릉(于武陵)은 ‘권주(勸酒)’라는 시를 이렇게 읊었다. 권군금굴치(勸君金屈 ) 그대에게 금굴치 술잔으로 권하노니/만작불수사(滿酌不須辭) 가득 부은 술 모름지기 사양치 말게나/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꽃이 필 때는 바람과 비가 많은 법/인생족별리(人生足別離) 사람들 살아가는 데에는 이별도 많다네/ 이 시인은 꽃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담아냈다. 화사하게 피어오른 꽃은 비바람을 겪은 결과다. 세상사 어떤 일이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것.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수반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지 않던가.삶이 이별의 아픔 속에서 성장하듯 인생에서 좌절과 시련은 늘 따라 다니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삶이 나아져 풍족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갈등으로 멀어지거나 때로는 헤어지게 된다. 성공한 사람은 항상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주변을 잘 관리해야 한다. 좋다고 잘 나간다고 자랑만 할일이 아니라 부자 몸조심 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한테는 끌어 내리려고 음흉한 계략을 꾸미는 사람이 있다. 잘난 꼴 못 보는 게 인간의 속성 아닌가.험난한 세파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면 다른 방도가 없다. 겸손만이 살길이다. 주역 64괘 가운데 오직 겸괘 하나만이 육효가 모두 길하게 되어 있다. 겸손한자는 적이 없다. 경계와 시기의 대상도 아니다. 자만하다가 무너진 경우가 있다. 돈 좀 벌어 잘난 체 한다고 여기면 끌어 내리기 바쁘다. 그래서 이꼴저꼴 안 보려고 아예 서울로 떠나 속 편하게 산 사람들이 있다. 전주 인구가 65만 명밖에 안 돼 익명성 보장이 안 되기 때문에 부정심리가 판친다. 인구 100만이 넘은 도시들은 한번쯤 다 이 같은 현상을 겪었다. 누구나 잘 나갈 때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춰야 한다. 심술궂은 비처럼 화사하게 핀 꽃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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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5.04.08 23:02

종이신문의 가치

“세상을 이해하려면 어릴 때부터 신문을 꼭 읽어야 합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몇해 전 “세상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읽어야 할까요”라는 한 학생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신문을 읽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느 시점에 스포츠든, 경제뉴스든 관심이 가는 분야가 생기게 되고 더 많이 알수록 더 배우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10대 청소년시절 4년 동안 신문배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5개의 신문을 읽는다고 한다. 1977년엔 뉴욕의 버펄로뉴스를, 1911년엔 오마하 지역신문인 월드헤럴드를 사들였다. 지금은 지역일간지와 주간지 수십개를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그는 2년 전 자신이 소유한 신문사 발행인과 편집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를 신문 중독자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신문사랑과 신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신문은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다. 정보의 보고(寶庫)이다. 신문을 보면 시대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종이신문의 가치는 사회의 중요한 사안을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독자가 관심 있는 뉴스만 선택적으로 보게 되지만 종이신문을 통해서는 뉴스밸류, 기사 배치, 면(面) 편집을 통해 사안의 중요성과 사안을 보는 신문의 시각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종이신문만이 갖는 장점이다. 워런 버핏이 신문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도 신문만한 정보의 보고(寶庫)를 찾기 힘든 데다 이런 장점 때문일 것이다. 오늘(7일)은 제59회 신문의 날이다. 한국신문협회는 올해 신문의 날 표어를 ‘정보가 넘칠수록 신문은 더욱 돋보입니다’로 정했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본질을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건 신문이 가진 가치이자 경쟁력이다. 인터넷 등 뉴 미디어 등장으로 종이신문의 생명이 끝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20년 전에 나온 이 예측은 빗나갔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이 위기에 처한 건 맞지만 종이신문이 갖고 있는 유익성과 심층성 때문에 독자층은 여전히 두텁다. 신문산업의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신문산업 종사자들이 얼마나 이 가치에 부합하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로다.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4.07 23:02

노사정 대타협

지난주 방송 보도에서 기업에 취업한 일본 청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표정엔 생기가 넘쳤다. 이렇게 올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일본의 신입사원 수가 7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2012년 66만 명에서 9만 명 정도 늘어난 숫자다. 일본 문부과학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 고교생 10명 중 9명이 취업하고 대졸자 취업률은 80%에 달한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 이를 두고 아베노믹스로 기업실적이 좋아져 기업마다 채용인력을 늘렸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파트타임과 비정규직 등 질 나쁜 고용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일본의 청년 취업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경기회복에 따른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반증이다.이웃 나라 중국도 지난해 대졸자 취업률이 91.4%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대학생 취업보고에 따르면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 취업률이 91.8%, 전문대 졸업자는 90.9%에 달했다. 이 같은 취업률이 최근 중국의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대졸자들의 취업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문제제기도 있지만 중국 경제가 계속 활기를 띠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반면 우리 청년들, 대학생들을 보면 너무 암담한 현실이다. 지난해 대졸자 취업률은 54.8%에 불과했다. 2012년 56.2%, 2013년 55.6%에서 계속 내리막길이다. 지난해 15~29세까지의 청년층 고용률은 39.7%로 더 심각하다. 이 통계를 낸 이후 처음 30%대 밑으로 추락했다. 지난달 청년 실업률 역시 11.1%로 지난 1999년 이후 15년여 만에 최고치다. 이처럼 취업 관문이 바늘구멍보다 좁다보니 출세가 보장되던 사법연수원생들도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올 1월 졸업한 44기 사법연수생들의 취업률은 43.4%에 불과했다. 군복무 예정자를 제외한 408명 가운데 177명만 직장을 구한 것이다.이 같은 심각한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경영계는 성과가 낮은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취업문을 열어주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어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며 협상 불참을 선언했다. 지난달 31일까지 정한 대타협 시한도 이미 넘겼지만 노사정위원장은 이번 주까지 결말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아버지 세대의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정부 예산을 집중하고 대기업의 신규 투자 확대 등 창조적 발상의 전환이 우선일 것 같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4.06 23:02

풍석 서유구

풍석 서유구(1764~1845)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다. 다산 정약용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 역시 민생을 구제하는 실용적 학문에 바탕을 두고 방대한 저작으로 빼어난 학문적 성과를 축적했지만 안타깝게도 다산만큼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는 수많은 실학 저술을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는 조선 최고의 생활문화 백과사전으로 꼽혀 ‘조선시대 브리태니커’란 이름을 얻은 ‘임원경제지’다. ‘임원경제지’는 그가 철저하게 지향했던 실용학의 결정체다.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지식은 ‘토갱지병(土羹紙餠 흙으로 끓인 죽과 종이로 만든 떡)’이라 하여 철저히 외면했던 그는 19세기 초 조선의 생활문화를 촘촘히 엮어 113권이나 되는 ‘임원경제지’에 기록해놓았다. 그의 나이 쉰 살이 되던 해에 시작해 30년 만에 일궈낸 역작이었다. 전라감사로 있을 때는 흉년이 들어 고통 받는 농민들을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보급하기도 했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선과 중국·일본의 관계 농서를 참고해 저술한 ‘종저보(種藷譜)’를 펴냈다. 서유구는 우리 지역에도 귀한 선물을 남겼다. 1833년 4월부터 1834년 12월까지 전라관찰사로 재직하면서 하루 동안 공무일정을 기록한 ‘완영일록’이다. ‘완영일록’은 관청의 풍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른바 행정일기다. 당시 지방의 행정 책임자는 공문서를 직접 써야 했지만 관청 아전들에게 떠맡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산 정약용도 이를 경계하여 ‘목민심서’에 “상하 관청에 보내는 공문서는 꼼꼼히 생각해서 수령이 써야 할 것이요, 서리의 손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유구는 관찰사로서의 하루 일과를 거의 빼놓지 않고 기록하면서 그날 주고받은 공문서 내용까지도 그대로 옮겼으며 자신이 지방에서 펼친 농촌과 농민을 위한 정책을 ‘완영일록’에 소상히 담아놓았다. 덕분에 ‘완영일록’은 ‘지방행정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자 사회사·풍속사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역사콘텐츠로서의 의미도 크다. ‘완영일록’은 여러 해 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이 3권으로 묶어 영인본으로 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순석의 조선대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번역된 1권을 제외하고는 완역되지 못한 채로 있다. 전라감영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완영일록’ 완역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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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5.04.03 23:02

제왕의 자격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BC 210년에 전국 순행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진시황은 죽기 전 변방 수비를 맡고 있는 장남 부소에게 편지를 썼다. 수비군을 몽염 장군에게 맡기고 곧바로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라는 것이었다. 조고가 대신 쓴 진시황의 서한은 봉인되었지만, 부소에게 편지를 전할 사자가 출발하기 전에 진시황이 사망했다. 이런 사실을 안 사람은 막내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 중거부령 조고 그리고 몇몇 환관이었다. 진시황은 자신에게 쓴소리를 자주하는 맏아들 부소를 싫어해 변방 상군으로 쫓아버렸지만, 20여명의 자식 중에서 막내 호해만큼은 신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진시황이 죽기 전에 호해에게 2세 황제를 물려준 것은 아니다. 막내 호해가 통일 진제국의 2세 황제가 된 것은 순전히 조고의 계략 때문이었다.조고는 조나라 왕족의 먼 일가로 알려진다. 진나라에 의해 어머니가 사형당했지만, 조고는 화를 면했다. 조고는 어렵게 공부해 형법에 통달했는데, 이를 안 진시황이 그를 중용했다. 조고는 중거부령이 됐고, 호해 왕자에게 형법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한 번은 조고가 중죄 혐의로 몽염 장군의 동생 몽의로부터 엄한 취조를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 때 진시황이 조고의 능력을 참작해 용서해 주었다. 하지만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곧바로 배신했다. 진시황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위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태자 부소와 중국 천하통일 전쟁에서 일등공신인 몽염 장군을 모략으로 죽였다. 조고는 호해를 황제로 옹립한 뒤 승상 이사도 모함해 죽였다. 조고는 호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호해는 조고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결국 형을 죽이고 황제가 됐지만 무능한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어느날 조고가 많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호해 황제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좋은 말을 한 마리 바칩니다”라고 말했다. 호해가 바보인 것은 아니었다.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느냐”며 다른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조고의 위세에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진실을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조고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고의 악정에 반란이 일어나자 조고는 호해도 죽였지만, 결국 자신도 살해됐다. 진제국은 통일 15년만인 BC 206년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어찌 조고만 탓할 일인가. 호해의 잘못된 판단이 제국을 그르쳤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4.02 23:02

멍게의 뇌

남해안에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멍게 수확이 한창이다. 멍게는 묘한 생물이다. 시인 성윤경의 세 번째 시집 ‘멍게’에 ‘멍게’란 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시 첫 머리에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다’(이하 생략). 멍게의 유충에는 묘하게 뇌가 있다. 어린 멍게는 원시적인 척수와 신경절 다발이 있어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성충이 되어 바위에 붙어 고착 생활을 하면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를 소화시켜 없애 버린다. 말미잘과 해파리처럼 촉수에 걸리는 먹이만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사람도 멍게의 유충처럼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생활터전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세파에 부대끼며 경쟁적인 삶을 살아간다. 정치인도 똑같다. 금배지 달려고 온갖 비겁한 짓까지 하던 사람이 그 꿈을 이루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올챙이 때 행적을 잊는다. 떠올리기도 싫은 아픈 과거라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일 없듯이 멍게처럼 뇌까지 없애며 남이야 죽든 말든 관심도 없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게 과연 옳은 삶일까.정치적으로 무뇌상태인 사람도 있다. 분석과 판단의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습관이나 고집만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 멍게처럼 고착생활을 하다 보면 조건반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독재자처럼 독선과 아집만 부리는 경우도 있다.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 정보를 분석하여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도 멍게처럼 독선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자연히 불행이 싹틀 수밖에 없다. 세상 사는 데는 순리를 거역하면 안 된다. 상식으로 사는 게 옳다. 상식은 건강한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온갖 어려움을 딛고서 성공하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일시에 단절시키는 경우도 목격된다. 인터넷 시대에 여론의 바다를 헤엄치며 멍게의 유충처럼 생존을 위해 살다가도 생활이 안정되고 기회가 주어지면 딴전을 피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우리는 뇌를 더 건전한 쪽으로 써서 공동체의 안녕을 구가해 나가야 한다.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 리더 그룹들은 독선의 폐해를 경계하며 일신의 안위만을 구하려는 이기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멍게가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없앤 후 촉수에 걸리는 먹이만 안일하게 먹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뇌를 발전적으로 썼으면 한다. 그래야 세상도 발전하고 자신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다. 멍게처럼 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봐라. 그 삶이 어떤가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4.01 23:02

익산시의 빗나간 언론정책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남지사도 기자실 가기가 싫다고 하더라.” 사석에서 이 지사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권혁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연초 언론인 모임 행사에서 전한 말이다. 이 지사(63·전남 영광)는 동아일보 동경주재 특파원과 논설위원 등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16대부터 내리 4선을 했고 당 대변인과 원내대표,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런 그도 ‘언론 기피증’이 있는 모양이다. 언론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아마 그런 속내를 내비쳤을 것이다. 언론의 주된 기능은 비판과 감시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이다. 언론의 존재이유를 잘 설명한 이는 월터 리프먼(1889∼1974)이다. 그는 자신의 책 ‘여론(Public Opinion)’에서 “언론은 국민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려주고 의제를 설정하게 한다.”고 했다. 사실 청와대나 정당, 자치단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국민이 다 알 수는 없다. 개개인이 탐색하거나, 단순하게 상상할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 위험하다. 누군가한테 보고 받는 것, 즉 언론매체로부터 전해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한 인지 수단이다. 따라서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론이 국민의 이름으로 정부와 자치단체, 정치집단 등 공적 영역을 비판하는 이유다. 40여년간 칼럼을 써온 리프먼은 196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지금 익산시의 언론정책이 도마에 올라 있다. 시정(市政) 또는 박경철 익산시장의 행정행태에 대한 비판기사를 쓴 일부 언론에 대해 구독 거부와 보도자료 배포 금지,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일보와 전북일보, 주간지인 소통신문 등이 대상이다. 박 시장은 작년 11월25일 식품클러스터 기공식 기자회견 때는 특정 신문기자를 겨냥해 “OOO기자, 저리 가. 촬영하지 말라.”고 호통치며 공무원들에게 제지를 명령하기도 했다. 보도자료 배포 중단과 관련해서는 이균형 전북기자협회 회장(CBS기자)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지만 나아진 건 없다. 항소심을 앞두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많다.박 시장에게 다시 리프먼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자신의 관점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든 공적 관계를 개인적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끝없는 투쟁에 말려든다.” 그 관점이란 것이 비상식적이고, 보편타당성을 결여하면 세상이 시끄럽게 되는 이치다. ·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3.31 23:02

풍년이 더 걱정되는 농민

요즘 농촌지역은 봄철 영농준비로 부산하다. 논·밭갈이와 벼 못자리 준비, 봄 채소 파종, 과수 정지·전정과 거름 넣기 등으로 일손이 분주하다. 올 봄에도 큰 기상이변이 없어 아직까지는 동해나 냉해 걱정은 크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 가뭄과 태풍피해만 없다면 올해도 풍년 농사가 기대된다.하지만 풍년이 들면 농민들은 즐겁기보다는 되레 시름이 더 깊어진다. 지난해와 그러께 2년 연속 대풍(大豊)이 들었지만 농민들은 한숨만 지었다. 농작물 작황이 좋아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홍수출하로 인해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비도 위축돼 판매마저 뚝 끊겼었다.실제 감 농사의 경우 10kg 한 박스당 평년에는 3만원~5만원을 호가했지만 지난해에는 절반 가격에도 못 미쳐 수확한 감을 땅에 묻거나 아예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매실 포도 배 등 다른 과일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저장성이 떨어지는 채소류는 더 심각했다. 배추와 무는 가격 폭락으로 인해 생산비도 못 건지자 곳곳에서 갈아엎을 수 밖에 없었다.상황이 이렇다보니 풍년이 들면 오히려 농민들을 옥죄는 ‘풍년의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쌀과 채소 생산량이 늘었는데 농가 평균 소득은 200만원이 줄어든 반면 2013년에는 쌀과 채소 생산이 줄었지만 농가 소득은 도리어 100만원이 늘었다. 이처럼 지난 5년 사이 농작물 생산량과 농가 소득이 거꾸로 움직인 것이 4차례나 됐다.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농산물 수급관리가 시급하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5~10%만 생산이 늘어도 가격이 50%이상 폭락한다. 반대로 생산량이 조금만 모라라면 가수요까지 겹쳐 폭등한다. 따라서 정부와 자치단체 농협 등 농정당국에선 농산물의 적정한 수요와 공급을 유지하는 전국적인 수급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후진적인 유통망 개선도 둘러야 한다. 우리 농산물의 80%는 전문성이 부족한 유통 상인과 농민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번 3·11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에서 당선자들의 공통적인 약속이 농산물 유통 개선과 판로 확대를 통한 농가 소득증대이었다. 이제 농협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완주 고산농협과 용진농협이 좋은 본보기다. 경제사업과 로컬푸드 직거래로 전국 농협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농산물 수출 개척을 통한 시장 다변화와 우리 농산물의 소비 촉진대책도 필요하다. 사람 찾는 농촌, 제값 받는 농업, 보람 찾는 농민, 전라북도의 3락(樂) 농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3.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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