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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들

왜 안나푸르나를 찾는 것일까? 그 멀고 험한 곳을 찾아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카트만두까지 비행기로 7시간, 다시 포카라까지 30여분, 그곳에서 걷기(사실은 등산)가 시작되는 곳까지 버스로 90여분, 그리고 적어도 3박 4일 이상은 숨 헐떡이며 땀 범벅되어 다리 뻣뻣해질 때까지 걸어야 하는 곳. 노고단만큼 올랐다가 덕유산만큼 내려가고 다시 모악산만큼씩을 오르내리는 그 험한 일정을 자원 감내하는 것일까?그곳에서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노역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리산 자락을 걷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많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이 해발 4,000m가 넘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아니면 MBC(마차푸추레 베이스캠프)를 찾는 사람들이다. 전문 산악인도 아니면서. 오랜 전 수렵시절의 걷기(혹은 뛰기) DNA를 되살리기 위해? 색다른 의식주를 맛보려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의 진부함을 떨치기 위해?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 우주와 통하는 그 정기를 마시려고? 아니면 한국인 특유의 나 어디 갔다 왔네! 폼 잡기 위해?웃을 수밖에 없는 왜 살지요? 만큼이나 답하기 멍멍한 질문이다. 답 없이도 살아가듯 답 모르면서도 걷고 또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아니 생각을 놓친다. 버린다. 그냥 앞 사람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숨 헐떡거릴 뿐이다.그 중에는 선배 권유에 떠밀려 멋모르고 따라나서 소화장애에 호흡곤란까지 겪으며 이 무슨 미친 짓! 투덜대다가 황혼의 설산 바라보며 마신 맥주 한 잔에 가슴이 확! 터지는 개안(開眼)의 기쁨을 느낀 사장님도 있다. 일중독으로 연차를 쓰지 않아 직장으로부터 지청구를 듣다가 남편 따라 엉겹결에 참여했다가 토사곽란으로 몸고생 마음고생, 결국은 조랑말 신세까지 지게 되었지만 일약 안나푸르나의 잔 다르크로 뭇 사람들의 시샘과 갈채를 받은 여인도 있다. 혼자 14박 15일 걸었다는, 이제는 설산 바라보는 것도 귀찮다!는 앳된 여대생도 있고, 침낭 없이 뜨거운 물통 하나 품고 자며 4박 5일로 ABC가지 다녀온, 호주 1년 연수동안 6,000만원을 벌었다는, 당찬 대구 대학생도 함께 걸었다. 그들 모두 걷는 이유는 모를지라도 그 의미는 알 것이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가만 놔두었을 리 없고, 영원한 평화와 사랑(Never Ending Peace And Love)을 뜻하는 네팔이 그냥 보냈을 리도 없을 것이니.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2.17 23:02

정조의 축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는 정조(1752~1800)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기록한 책이다.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왕실의 중요한 행사 의례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국가공식기록물. 국가의 통치철학과 운영체계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록물로 평가받아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의궤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담아 주목받는 것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다. 이 의궤는 축제 준비부터 모든 행사의 진행상황, 행사가 끝난 후의 일처리까지 8일 동안의 행적을 여덟 권의 책에 정교하게 기록하고 있다. 1795년,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축제를 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성까지 이르는 8일 동안의 축제에는 수행원만 6,000여명, 말 1,400필, 총 예산 10만 냥(현재의 화폐가치로는 70억 원 정도)이 소요됐다. 조선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행렬이었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나에게 깊은 뜻이 있다”는 정조의 뜻에 따라 준비되었던 이 축제는 아버지(영조)에 의해 뒤주 속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 그의 죽음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아픈 상처가 녹아있다. 정조는 17776년 즉위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동안 당파와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했다.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게 하고 다양한 서적을 간행해 학문을 진흥시킨 왕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의 소망 또한 ‘백성들이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정조는 그 많은 예산과 인력과 노동을 투자하며 축제를 벌였을까. 의궤에 그 답이 있다. 이 축제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 정조는 가난한 이들에게 쌀과 소금을 나눠주고 직접 술잔을 내렸다. 특정한 세력들이 누리는 권력과 이익을 뺏어(?) 백성들과 나누기 위한 축제였던 것이다. 의궤를 통해 만나는 정조의 이야기는 우리 현실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침 지난해 가을, KBS가 ‘의궤, 8일 동안의 축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의궤를 3D영상으로 복원한 대작의 감동과 정치인의 올바른 철학이 주는 울림이 깊다. 선거철이다. ‘주민과 지역을 위해 나선다’는 후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이 프로그램 ‘다시보기’를 권하고 싶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2.14 23:02

태상의 지도자

선거철이 되면 ‘나요, 나요’를 외치며 나타나는 공직 후보들이 많다. 대통령 선거 후보는 그 수가 한 자릿수에 그치지만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는 입지자가 엄청나다. 도내의 경우 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 14명, 광역의원 34명, 기초의원 163명을 선출한다. 매번 선거 때마다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1,000명 전후다. 어느 지역은 입지자가 너무 많아 여론조사 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공직선거 입지자들은 얼마나 준비된 인물들일까. 현역과 매번 출마하는 입지자들이 많으니, 상당수의 입지자들은 준비를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금 먹고 활동하는 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이니, 능력과 도덕성, 청렴성 등을 두루 갖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승자독식의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이다. 선거는 1등만 인정을 하고, 승리에 따른 모든 전과를 얻어 누릴 수 있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하지 않기 위해 많은 입지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일쑤다.하지만 선거법 위반 행위는 선관위와 검경의 그물에 걸려들든, 양심적인 유권자 신고에 덜미가 잡히든, 상대방의 감시망에 걸리든, 내부 선거운동원의 배신이든, 자중지란이든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입지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나는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거는 지도자와 감시자, 일꾼, 봉사자를 선출하는 중대사다. 모든 선거는 똑같은 무게를 갖는다. 지도자가 어떻게 사고하고,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달라진다. 지도자는 많은 덕목을 갖춰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전북일보가 지난 7일 전북대 진수당에서 개최한 ‘6.4지방선거 필승전략 워크숍’에서 박호군 새청치추진위공동위원장이 제시한 몇가지 덕목은 주목할 만하다. 첫째, 주민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둘째, 나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인재를 판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또 박 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노자는 지도자의 등급을 4등급으로 구분했는데, 태상(太上)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 존재를 알 뿐이지 지도자가 뭘 하는지 굳이 알지 못해도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다. 어쨌든 공직후보자는 먼저 도덕성을 갖추고 역량을 보여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2.13 23:02

후보자질론

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감도 안 되는 사람들이 선거판을 설친다. 남들이 다‘감’이 안 된다고 손가락질 하는데도 돈키호테 마냥 모르쇠로 일관한다. 사실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선거에 관해서는 장본인한테 쓴 소리를 안 한다. 설령 자질이 떨어져도 그렇다. 굳이 해줄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이란 게 있다. 상식은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생각들이다. 선거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상식을 저버리면 성공할 수 없다. 자기 분수도 모른 채 윤흥길이 쓴 소설 ‘완장’속의 저수지 관리인인 임종술 마냥 마구 날뛰면 끝장이다.선거직은 동냥 벼슬이다. 원래 동냥이란 스님들이 곡식이나 재물을 얻으려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닌다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지나 동냥아치의 구걸·걸식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후보자가 유권자한테 표를 동냥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맘을 움직여야 표가 나오기 때문에 그게 쉽지 않다. 사람의 맘을 움직이려면 설득작업이 중요하지만 관계론적 사고에서 판단하는 것인 만큼 복잡하다. 유권자들이 후보한테 표 줄 때는 먼저 자신과의 이해관계를 따진다. 그래서 표 모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주역 첫 장에‘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나온다. 착한 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또 논어 이인편에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는 말로 새겨진다. 선거라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거지는 물론 그 집안 3대까지 까발려 지게 돼 있다. 장관들의 인사청문회 그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남을 위해 덕도 베풀지 않은 사람이 독불장군 식으로 선거판에 뛰어 드는 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선거직은 모름지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에 빛을 밝혀주는 촛불과 같은 봉사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입신양명만을 위해 개념 없이 뛰어 들었다간 자칫 패가망신 당할 수 있다.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거나 고위직 지냈다고 우쭐대는 사람은 세상이 안다. 덕이 없고 겸손함이 부족한 사람은 아예 선거판에 낄 생각을 말아야 한다. 아직 공천 작업이 시작되지 않아 옥석구분이 안 되고 있지만 감이 안 되는 사람은 본인은 물론 지역을 위해서도 접는 게 낫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2.12 23:02

순교의 고장 전북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회를 세운 사람은 실학자 이승훈(1756∼1801)이다. 중국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은 이승훈은 1784년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에게 천주교 세례를 주었는데 이를 천주교회의 창설로 본다. 이후 천주교식 의례가 행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인 서울 명례동 김범우의 집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1785년 이벽의 주재로 이곳에 수십명이 모여 예배를 보다 체포된 사건이 벌어졌다. 역관이었던 김범우는 유배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사학(邪學)으로 규정돼 금지된다.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는 선교가 아닌 순교의 역사다. 신앙인들은 박해에 피로 맞섰다. 정치적 음모의 희생도 컸다. 천주교 신앙인이 많았던 남인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이승훈, 정약종이 처형됐다. 기해박해(1839년) 당시엔 서양인 신부 3명 등 119명이 처형됐고 병오박해(1846년) 때엔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엔 무려 6000여 명의 신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1984년 처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땅에 입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이라고 한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전주 진북동 ‘숲정이’(동국해성아파트 자리)와 전주 남문 밖 처형장(전동성당 자리), 전주 대성동 ‘치명자 산’ 등은 순교의 터다. 숲이 우거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숲정이’는 박해 때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전동성당 자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유교식 상장(喪葬) 대신 천주교 예식으로 치렀다는 죄목으로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이 1791년 12월8일 처형된 곳이다. 김범우한테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빌려 공부한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다. 윤지충 등 124위의 시복(諡福)이 결정됐다. 시복은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걸 이르는 말이다. 124위 중 윤지충 등 24위가 전북에서 순교했다. 오는 8월13일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프린치스코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복식도 주재할 것이라고 한다. 시복식이 열린다면 순교자 묘역이 있는 성지 ‘치명자 산’이 그 의미를 훨씬 깊게 할 것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2.11 23:02

구경거리와 삶의 거리

차를 탈 때와 걸어 다닐 때의 마음가짐이 너무 다르다. 차 안에서는 경적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행인들의 모습이 짜증스럽다. 걸을 때는 혼자만 바쁜 양 빵빵거리는 운전자들의 작태가 얄밉다. 교양 없는 반문화인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 기준이 전혀 다르다.가을 거리의 노란 은행잎은 황량한 도회지의 삶을 푸근하게 감싸주어 좋다. 그런데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거리의 청소부들! 그들에게는 끈질기게 붙어 있다가 조금씩 떨어지는 나뭇잎이 성가신 골칫거리일 뿐이다. 그래서 낙엽만 쓸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를 들어 나무를 후려친다. 가로수를 상록수로 바꿀 수 없다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방학을 맞은 대학교정이 참 한가롭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학생들의 발걸음에도 모처럼 여유가 있어 보인다. 교정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이런 분위기에 또 다른 정취를 더해준다. 어려서는 지천으로 볼 수 있었는데 요즘 들어 온실효과 때문인지 자주 볼 수 없게 되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귀한 눈을 반겨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정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수위 아저씨들! 관상목을 소담스레 덮고 있는 눈을 무지막지하게 털어 내곤 한다. 눈의 무게로 나무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이로 인해 질책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눈은 귀찮은 짐일 뿐이다.각박한 도회지의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농촌의 한가로운 모습은 여유를 주어 좋다. 딱딱한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물린 이들에게 흙 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만 조금 와도 질척거리는 흙 길이 싫다. 성냥갑같은 빌딩들만을 바라보던 도회지 사람들에게 완만한 곡선의 초가지붕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다. 그러나 짚을 구하기도 어렵고 매년 지붕을 이는 데 품을 팔 여유가 없는 농부들은 진즉 초가지붕 걷어내고 지붕개량(?)을 해버렸다. 모처럼 그 포근한 분위기에 젖어보려던 도시의 구경꾼들을 실망시킨 지 오래다.무지막지하게 가로수를 후려치고 눈을 털어내는 것을 반문화적라 탓할 수 있는가? 시멘트로 골목길은 물론 집마당까지 덮어버린 것을 몰취미라 욕할 수 있는가? 구경꾼의 시각과 일(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가? 그렇다면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 구경거리인가 아니면 삶(살아가는 것)과 연관된 무엇인가? 새삼 되뇌게 하는 아침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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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4.02.10 23:02

동국사의 산문 폐쇄

지난해 여름, 조선불화 한 점이 공개됐다. 군산에 있는 동국사가 일본에서 환수한 ‘쌍림열반도(雙林涅槃圖)’. 지금까지 발견된 우리나라의 가로형 조선불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현존하는 고려 조선시대 불화는 160여점. 그러나 대부분이 세로형 작품이고 가로형 작품은 이 ‘쌍림열반도(雙林涅槃圖)’와 일본 화장사(華藏寺)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불화 ‘석가탄생도’ 단 두점 뿐 이었던터여서 미술사학계의 큰 관심이 모아졌다. 동국사로부터 ‘쌍림열반도’의 감정 의뢰를 받은 정우택 동국대교수는 “염료를 활용한 이중채색법과 금가루를 활용한 방식이 석가설법도(1553년)나 삼장보살도(1568년)의 제작 방식과 같고 승려의 복식과 표정도 조선 특유의 양식을 잘 구현한 16세기 중반의 조선 전기 불화”라고 규정했다. 불화의 특징은 또 있었다. 고려불화에서만 발견됐던 복채법(伏彩法) 사용이었다. 복채법은 그림의 앞면에서 칠하지 않고 뒷면에서 반복해 칠해 줌으로써 자연스러운 색감을 내는 기법으로 고려불화에서 많이 쓰였다. 전문가들은 ‘쌍림열반도’가 17세기 조선불화와는 전혀 다른 채색법과 화풍을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점을 주목했으며 대중들은 불화가 왜 그제야 공개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사실 이 불화를 소장한 동국사는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우리 유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우리 유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종걸스님의 열정 결실이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유물 수집에 특별한 노력을 쏟아왔다. 스님과 친분이 있는 이흥재 전북도립미술관장에게 들어보니 인터넷 옥션을 뒤지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일본에 가 있는 우리 유물을 알아내고 그 가치를 밝혀 환수하는 스님의 노정은 눈물겨울 정도다.동국사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우리나라 안에 세운 사찰은 500여개. 그중 동국사만 유일하게 남았다. 일본의 조동종 사찰로 지어졌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조계종 선운사의 말사로 등록됐다. 외관 장식이 없고 창문이 많은 대웅전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동국사가 최근 산문 빗장을 걸었다. 관광객들이 이어지면서 더 이상 사찰 차원의 시설 관리가 어렵게 된 때문이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도시를 내세워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동국사는 군산이 근대문화유산의 도시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보자면 더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발을 돌리게 된 이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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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2.07 23:02

혀 아래 도끼

‘상냥한 혓바닥은 목숨의 나무로다’라는 잠언 말씀처럼 상냥하고 현명한 말 한마디는 사람의 목숨도 건져주지만, ‘우자의 입술은 그 몸을 씹어 삼킨다’는 구약성서나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의 경고처럼 사리에 맞지 않는 허튼소리와 간사한 말씨, 흉계, 폭언은 그 사람의 목숨조차 앗아가고야 만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게 마련이고(공자), 잘 짓는다고 좋은 개가 아닌(장자)것이 세상살이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는 속담처럼 말이란 하다 보면 그 솜씨가 늘고,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높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없는 말이 송사 건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달변인 사람도 온갖 말을 수없이 늘어놓다보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사리에 어긋나는 실수를 할 수 있고, 결국 ‘말하는 남생이’가 되기도 한다. ‘말이 씨가 되는 법’이어서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다. 매사에 너무 콩이야 팥이야 하며 ‘말 많은 집안은 장맛도 쓴 법’이다. 얼마 전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국민은행 등 카드사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돼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 줬지 않느냐”고 말했다. 경제부총리나 되는 인사가 성난 민심에 송곳질하고,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것이다. 설 연휴인 지난 1일 전남 여수시 삼일동 신덕마을 원유 유출 현장을 방문한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도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현장 주민들 앞에서 기름 냄새를 피하려는 듯 코와 입을 가리는 행동을 한 것을 두고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독감 기침이 심해 옆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다. 무려 16만4000톤이 여수 앞바다를 뒤덮은 대형사고인데도 불구, 기름 유출 상황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설사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한순간에 남생이가 된 꼴이다.귀를 나라 바깥으로 기울여 보자. 일본 공영방송인 NHK 신임 회장이 된 모미이 가쓰토는 지난달 25일 취임 회견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어느 나라에나 (위안부는) 있었다”고 망언을 했다. 아베 총리는 유럽까지 날아가 “현재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말해 세상의 조롱을 샀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것이 세상 이치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2.06 23:02

인물론

어제부터 도지사 예비후보를 등록함에 따라 4개월간의 지방선거가 사실상 막이 올랐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안방을 차지하려고 진검승부를 펼칠 것이다. 그간 지방선거는 인물 보다는 대선과 총선 마냥 정당 대결로 끝났다. 민주당 지역정서가 강한 도내서는 민주당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졌다. 자연히 본 선거 의미가 사라졌다. 선거가 하나의 통과의례 정도가 됐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입지자들은 민주당 공천장을 거머쥐려고 사생결단식으로 기를 썼던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생사여탈권인 공천권을 행사하느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지금 뒤늦게 민주당이 안방을 안신당에 안 빼앗기려고 개혁공천을 하겠다는 등 말의 성찬을 토해낸다. 하지만 유권자가 진정으로 주인 대접 받으려면 경쟁구도가 만들어져야 옳다. 민주당은 안신당 출현을 야권분열로 몰아세우면서 평가절하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경쟁구도가 만들어진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특히 안신당 출현이 새누리당만 좋게 하는 것 아니냐는 민주당 시각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정파 간에 경쟁을 통해 발전해 가는 제도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대선이나 총선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락으로 떨어진 전북을 살려 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인물 본위로 가면 된다. 현직자들 검증은 자신이 내건 공약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여부를 살피면 된다. 선출직 공직자는 모름지기 도덕성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주변 인물들이 수사기관이나 들락거렸다면 그건 자격이 없다. 지금도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의혹을 받는 단체장은 깨끗하게 신상을 정리한 후 불출마를 선언해야 맞다. 또 다시 하려고 몸부림치는 건 유권자를 기망하는 행위다.입지자 가운데는 옥석이 제대로 가려져 있지 않다. 일부는 깜이 안 되는 함량 미달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과대 포장된 면이 없지 않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사람도 눈에 띈다. 아직도 판을 못 읽고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도토리 키 재기 식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인물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 예로부터 인물을 평할 때 신언서판을 꼽았지만 지금은 스펙도 봐야 한다. 지역정서상 새누리당이 여당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인물 위주로 가는 게 그나마 전북을 살릴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2.05 23:02

SQ 지수

국가나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 구축이 중요한 정책과제라고 갈파한 이가 로버트 퍼트남(73)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퍼트남은 1994년 이탈리아의 지방정치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이 구축된 곳이 그렇지 않은 곳 보다 민주주의가 더 발달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롭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25년여에 걸친 체계적·경험적 연구결과를 책(‘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으로 펴냈다. 이 연구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와 사회 자본이 구축돼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논리가 부상했다. 새로운 주체로서 NGO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사회 자본은 신뢰, 협동, 시민사회, 공동체 의식 등의 가치를 이르는 개념이다. ‘사회의 질’(SQ=social quality)이라는 개념도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최신 사회발전 지표다. SQ를 지수화한 연구용역보고서가 최근 발간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삶의 질과 가능성을 보장해 주고 있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230개 자치단체가 대상이다. SQ 측정에는 ‘제도역량’ ‘시민역량’ ‘건전성’ 등 세 분야에서 19개 지표가 활용됐다. 이를테면 1000명당 기초생활수급자, 1인당 사회복지 예산, 10만명당 영화관 수 및 문화시설 수, 1000명당 의사 및 종합병원 수(‘제도역량’), NGO 수, 자원봉사자 등록률, 1만명당 정보공개 청구 건수, 지방선거 투표율(‘시민역량’), 10만명당 출산율과 사망률, 1000명당 5대 범죄발생 건수, 10만명당 자살률(‘건전성’) 등의 정부 통계자료가 활용됐다. SQ지수는 우리 동네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를 사회· 환경적 요소를 가미해 측정한 한국형 사회 자본 지표다. 자치단체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된 만큼 정부 차원의 보정작업이 과제다. SQ지수는 자치단체의 경쟁력이자 단체장에겐 사실상의 성적표다. 전북에서는 임실(229위)과 김제(226위)가 하위 10위권에, 전주시(4위)가 상위 10개 자치단체에 들었다. 4명의 단체장이 중도 낙마한 임실이 꼴찌에서 두번째로 나타난 것은 사회 자본과 사회의 질이 그만큼 척박한 방증이겠다. 나머지 시군 측정치도 좋지 않다. 단체장들의 허풍이 드러난 셈이다.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의 판단 자료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선거는 심판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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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2.04 23:02

서열화에 길들여진 사회

역시 삼성이다! 갤럭시, 애니카, SM5, 삼성카드, 삼성병원까지, 많은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 맨 윗자리를 항상 차지하고 있다. 삼성에 취업만 해도 축하주를 사야하고 그 친인척들마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운동도 최고다. 야구팀은 30년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3년 연승, 자매 배구팀은 6년 연속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고위 관리들도 퇴임하고 삼성에 가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안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의하면 학자, 법조인 심지어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많은 삼성장학생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삼성총장추천제는 오만함이나 판단착오의 산물이 아니다. 삼성고시라 불리는 SSAT에 10만 명 이상이 몰리는 과열현상을 해소하고 학벌이나 스펙에 연연하지 않는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명분으로 이 제도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역시 삼성이구나! 하는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별 할당인원이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지역차별, 성차별이라며 호남지역 대학들과 여대들이 먼저 반발했다. 대학서열화 혹은 대학 줄 세우기 등의 비난들이 그 뒤를 이었다. 1차 서류전형을 면제해주는 것이라며 의미축소의 해(변)명을 해봤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여론의 방향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 해프닝이다. 대학서열화가 어제오늘일인가? 수험생들은 물론 학부형들도 대학의 서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소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없는) 영혼까지 팔겠다는 기세 아닌가? 서열을 높이기 위해 대학들은 또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하며 몸부림하고 있는가? 대학 줄 세우기도 마찬가지. 평가를 명목으로 대학들을 압박하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부의 핵심 정책방향도 바로 대학 줄 세우기이다. 그 끝에 총장직선제 폐지가 있다! 이번 삼성 발표로 기존의 평가보다 서열이 개선됐어도 대학에서 반발을 했을까? 취향이나 역량과 관계없이 직업을 서열화하는 사회, 개인의 감성이나 은밀한 영혼과 관련된 배우자감까지 등수를 매기는 사회, 검색어 순위조차에 목을 매는 사회. 삼성은 이런 뿌리 깊은 서열화 문화에 편승했을 뿐이다. 더욱 오싹한 것은 삼성의 의연함이요 우리들의 호들갑이다. 서열화 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삼성의 음밀한 촉수는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다. 대학 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를 줄 세우기 위하여!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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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03 23:02

돈 선거

대부분의 입지자들이 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출사표를 던지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선거를 치르면서 친인척은 물론 주변 사람들한테 신세를 많이 지고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요즘 말로 움직였다하면 돈이다. 알게 모르게 입지자 때부터 쓰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빚지는 건 예사고 주변 사람 못살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현직 단체장들은 그런대로 당선 가능성이 높아 돈 모으기가 타 입지자에 비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도시를 제외하고 산간부 쪽은 현직이라도 실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본보 여론조사 결과에서 선수들 간에 지지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비리에 연루된 단체장 가운데는 출마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지지도가 낮게 나타난 경우도 있다. 몇몇 단체장을 제외하고는 지난 4.11 총선 때처럼 절반 이상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오래 하다 보면 곪아 썩어 문드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상당수 입지자 가운데는 재정적으로 넉넉치도 않은데 무리해서 선거에 나선다. 이 같은 상황인데도 법정선거 비용만 쓰고 당선 되는 후보는 거의 없다. 그간 선거는 당 공천을 받는데 큰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모처럼만에 경쟁구도하에서 치러질 전망이어서 본 선거 때 오히려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이다. 2월중으로 안신당이 창당되면 민주당 대 안신당 후보로 팽팽한 접전이 펼쳐질 것이다. 아마 피할 수 없는 OK목장의 결투가 예상된다.경쟁이 치열할수록 실탄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게 돼 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번득이는 칼날을 휘둘러도 후보들은 은밀하게 조직 관리를 위해 돈을 쓸 수 밖에 없다. 입지자들 대부분이 당선 가능성이 엿 보일 때 까지만 실탄을 쓰면 그 이후에는 돈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 한번 치르고 나면 살림이 거덜 나게 돼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입지자들이 돈 쓰는 것에 부담을 많이 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돈을 쓰고 있다. 선거판에서는 돈 모으는 것이 능력으로 칠 정도로 돈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설 대목이 돈 쓰는 한 분수령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느낌을 아는 선관위가 저승사자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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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1.29 23:02

'쩐' 공천

공천(公薦)이란 말은 원래 인사권이 있는 관아에서 적정 인물을 임금에게 추천하는 것을 뜻했다.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각각 세명의 공직 후보자를 임금에게 천거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를 공천이라 불렀다. 임금은 후보자 세명 중 적당한 후보자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 인사권을 행사한다. 이것이 낙점(落點)이다. 경우에 따라 한명만 천거한 경우도 있고, 세 후보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임금이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써서 임명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를 첨서낙점(添書落點)이라 했다. 향천(鄕薦)이란 것도 있다. 지역에서 유능한 인재를 뽑아 중앙에 천거하는 제도다. 요즘 정치로 치면 지역경선을 통한 인물을 중앙당이 공천하는 식이다. 지방선거와 관련한 돈 공천 얘기가 다시 도졌다. 새정치추진위의 김효석 공동위원장이 “새누리당에는 7억원을 쓰면 공천을 주고, 6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7당(當)6락(落)’이라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지방자치 토론회에서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좌우하는 사례를 언급하면서 한 말이다. ‘7당6락’이라는 말은 실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때 회자된 얘기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의원은 한술 더 떴다. “대한민국의 모든 공천은 사천(私薦)이었다. 당 권력자가 배후 조종하는 공천을 받으려고 비굴하게 굴고 돈까지 바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특정인이 인물 천거권을 쥐락펴락하는 ‘사천’, 특정 계파가 공천권을 독점하는 ‘파천(派薦)’,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돈천’이 지난 총선에서도 횡행했다. 2년전 총선 때 강철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휴식이 필요하다.”며 공천심사를 보이콧한 것이 단적인 예다. 유력 정치인과 계파 수장의 압력 때문이다. 임금의 첨서낙점을 떠올리게 한다. 급기야 여야 대선주자와 정당이 기초선거 공천 폐지를 공약했다.공천권을 놓지 않으려는 새누리당이 문제다. 공천권을 꿀단지이자 지역정치인을 장악할 리모콘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공천비리자 영구 퇴출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벌이 약해서 공천비리가 발생했다는 뜻인가. 법 제정의 문제라면 공약 파기 행위를 단죄할 법부터 만드는 게 우선일 것이다. ‘공약 파기법’이나 ‘국민 사기법’ 같은 경우 말이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공동 대응한다 했으니 함께 성안하면 어떨까 싶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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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1.28 23:02

철새들의 항의 혹은 보복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것,//흰 가슴의 날개로 제 몸 매질하여/ 구만리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가는 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 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이해리,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그리움에 사무쳐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던 철새들의 보복 혹은 반란이 시작되었다. 고창 부안에 이어 시화호와 김포 등 수도권에서도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전남 해남의 농가에서도 오리가 집단 폐사했으며 영암호에서도 왜가리와 청둥오리의 사체가 발견되는 등 고병원성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전국에서 보고되고 있다.발병의 원인이나 지역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방역당국은 재빠르게 철새 탓을 하고 나섰다. 철새가 감염 주체인지 아니면 그 피해자인지 애매한 점이 한 둘이 아닌데도 애먼 그들을 속죄양 삼아 자신들의 잘못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듯 감추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철새가 주범이라면 아직 그들과 소통방법을 알지 못하고 통제수단도 확보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철새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월동할 곳을 찾아 이동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자연의 섭리, 욕심 때문에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대응에 재앙의 원인이 있었다! 얼마나 먹어치우겠다고 그 많은 오리들을 집단사육하고 얼마나 또 돈을 벌겠다고 수천 수만 마리의 닭들을 한 군데 가두어 키운단 말인가? 정상적인 번식은 물론 활동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직 인간의 식탐과 돈벌이를 위해 키워지는 닭과 오리, 이미 그 환경에 병의 원인이 내재되어 있었으며 집단발병의 재앙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철새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고 봄이 오면 녹아내리는 것과 같다. 수도관 동파되었다고 겨울을 탓할 수는 없다. 언덕이 녹아 무너져 내렸다고 봄을 핑계 삼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면 이에 대비한 조처를 취하면 되는 것이다.그렇지 않아도 권력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무소신의 정치꾼들을 자신들에 비유하는 것에 모욕감을 느껴오던 철새들, 이 억울한 혐의에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창오리들의 집단자살! 분노의 항의인가? 보복의 시작인가?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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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27 23:02

'완판본' 서체의 발견

‘완판본((完板本)’. 전주사람이라면 그 명확한 정체를 잘알지 못한다해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한자로 보자면 전주를 뜻하는 ‘완산(完山)’의 ‘완(完)’자와 ‘목판(木板)’의 ‘판(板)’, 책을 나타내는 ‘본(本)’을 붙였으니 ‘전주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책’이 되겠다. 이름 그대로 ‘완판본’은 전주지역에서 간행된 목판본 책을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완영판(完營板)’이라하여 전라감영에서 보급을 위해 제작한 판본과 판매를 목적으로 민간에서 제작한 ‘방각본(坊刻本)’을 아우른다. 오늘에 이르러 오래된 도시 전주의 소중하고 가치있는 문화유산이 된 목판 ‘완판본’은 모두 감영에서 제작한 ‘완영판’이다. 오랫동안 전주 향교의 장판각에 보관되어오다 2004년 정리작업을 위해 전북대로 옮겨진 이후 전북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본은 모두 5059개. 오랜시간 습기와 해충의 공격으로 원형훼손의 치명적 위기에 처해있던 목판본 복원을 위해 연구자들이 매달려 얻어낸 결실이다. 1800년대 중앙정부는 각 지역의 감영을 통해 책을 제작하게 했다. 자연히 전라감영 이외의 다른 지역 감영에서도 책을 출판하기 위한 목판본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전주의 ‘완판본’처럼 대량 판본이 보존되고 있는 예는 거의 없다. 한글서체의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예술성을 평가받는 ‘완판본’이 사료적 가치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판본’의 존재는 전주의 도시 정체성을 상징한다. 전북대 이태영교수는 ‘완판본은 전주가 조선시대, 지식 정보화와 지식산업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한다’고 규정한다. 완판본의 서체가 현대적 서체로 태어났다. 컴퓨터 글꼴로 만들어진 완판본 서체는 물론 원형 그대로는 아니다. 서체 제작자는 ‘컴퓨터에 글꼴이 탑재되어 일반인이 사용하는 폰트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서체개발자인 체원형의 구현과 동시에 현대적 글꼴 디자인의 요소를 보완해 제작해야 했다’고 밝혔다. 사용되지 않고 복원의 의미만을 가지는 글꼴은 생명력을 갖기 어렵다. 원본의 정교한 디지털 복원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원형이 가진 특성을 살려낸 컴퓨터 글꼴은 아름답고 친숙하다. 이미 책이나 인쇄물의 활자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일반인들과 전문디자이너들의 호응도 높아 쓰임새의 확장이 기대되고 있다. 오래된 도시 전주와 전주사람들의 전용글꼴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완판본’ 글꼴의 의미있는 출발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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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1.24 23:02

위기의 개인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년’은 1948년에 쓰여진 작품이다. 작가는 주인공 스미스를 통해 억압적이고 완벽하게 획일화된 전체주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일상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가 국민의 행동을 감시하고, 정체를 알기 힘든 스파이가 이웃을 감시한다. 국민들의 행동과 사상이 통제되는 제국에서 완벽하게 세뇌된 채 무력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주인공 스미스를 통해 인간성이 상실된 전체주의 사회를 고발한다. 오웰이 1984년을 쓰게 된 것은 아마 그가 성장하면서 보고 경험한 인간사회의 부조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1901년 인도 벵골에서 영국인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2년 무렵 제국경찰로서 미얀마에서 근무했다. 이 때 통제와 탄압이 난무하는 전체주의 제국 지배에 대한 혐오가 싹튼 것으로 보인다. 오웰이 그린 ‘1984년의 전체주의 사회’는 방식과 형태만 다를 뿐 인간사회의 한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구상의 국가들은 강력한 왕조 체제에서 유지돼 왔고, 국민들은 완벽하게 통제돼 왔다.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지만 국민의 자유와 평등, 권리는 국가의 제어 하에서 제한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오늘날 극단적으로는 북한 체제가 그렇고, 자유 민주국가라는 곳도 강력한 국가 체제가 국민을 감시 통제하고 있다. 독재국가와 민주국가의 통제 정도가 다를 뿐이다. 미국은 가장 선진화된 자유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세계를 대상으로 도청과 감시를 일삼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의 비밀 개인정보수집을 폭로하기 전, 사람들은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을 뿐 미국의 도청과 감시를 알고 있었다.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들이 대기권에 정보 수집 위성을 쏘아 올려 과학과 국익 등을 핑계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생명,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주변을 보자. 현대인들은 생활 곳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 큰 길은 물론 골목길, 건물 내외부까지 빽빽이 설치된 폐쇄회로 TV가 인간 생활을 감시하고 있다. 1000만대가 넘어선 자동차 대부분에 블랙박스 카메라가 설치되고 있어 사생활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세금을 쉽게 걷기 위해 허가하고 장려한 신용카드의 개인정보가 마구 유출되고, 국민들이 엄청난 물질·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 국민은 국가 뿐 아니라 범죄집단의 표적 한 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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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4.01.23 23:02

김 대표의 전략 공천

민주당은 선거전선에 이상 기류가 감지됨에 따라 김한길 대표등 당 지도부가 총 출동해서 호남 민심 복원에 나섰다. 민주당이 이번처럼 위기의식을 느낀 건 처음일 것이다. 그간 민주당은 1988년 이후 특별한 노력 없이 호남에서 만큼은 절대적 지위를 누려왔다.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아 왔던 터라 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도민들은 당 대표가 와서 구애작전을 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워낙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서인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전에는 민주당이 미워도 사랑으로 감싸주며 안아줬지만 이번에는 다르다.도민들은 우선 정권 잡을 기회를 놓친 것에 실망이 크다. 특히 대선 이후 정국 상황을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갈 수가 있었지만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로 오히려 새누리당에 끌려가는 모습에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사상 초유의 사건을 새누리가 NLL로 물타기 해 정국 주도권을 놓친 것에 더 실망하고 있다. 이런 정권을 밀어줘봤자 정권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민주당에 등 돌리고 있다. 도민들은 민주당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적당히 새누리당과 짝짜꿍해서 잘 해먹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민주당에 대한 도민들의 태도가 냉랭한데도 당 지도부의 대응 방법은 미사여구만 늘어놓고 있다. “예전같이 투표소에 가면 민주당으로 바뀔 것이다. 안철수 신당은 성공할 수 없다. 과거 문국현씨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 같은 현실 인식 갖고서는 전북 민심을 바꿔 놓을 수 없다. 더 염려스러운 건 김한길 대표의 전략공천 발언이다. 상향식 공천 운운하다가 도지사 후보를 전략공천할 수 있다는 발언은 모순이다. 그간 열심히 당원을 모집해서 그나마 지지율을 30%대로 끌어 올린 도지사 주자들에 허탈감을 안길 뿐더러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지금 당 지도부가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전북 당원들을 한마디로 우습게보고 있다. 당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하면 따라 오겠지 하는 생각은 어림 없다. 도민들이나 당원들이 결코 핫바지가 아니다. 호남이 없으면 민주당이 없다는 식으로 어우르고 달래 갖고서는 민심을 되돌려 놓을 수가 없다. 전북은 광주 전남 때문에 피해를 봐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무튼 도지사 후보 결정은 당원들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는 경선 방식으로 치러져야 그나마 민주당이 살 수 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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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1.22 23:02

꼼수 정치

지방선거가 130일 앞으로 다가왔다. 시·도지사 후보들은 내달 4일이면 예비 후보등록을 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사무실을 설치해 3명 이내의 사무원을 고용할 수 있고 명함 배포와 문자 메시지 발송, 어깨띠 등의 표지물 착용 등이 허용된다. 전북지역에서는 도지사와 교육감, 시장 군수 선거에 대략 130여명이 출사표를 던질 전망이다. 경쟁률이 8대1에 이른다. 도의원 38명, 시군의원 197명을 뽑는 지방의원 선거도 엇비슷하다. 수백명이 지방선거를 겨냥해 출진 채비를 갖추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수천명에 이를 것이다. 입지자들이 정치개혁특위만 쳐다보고 있다. 국회엔 정부 업무를 다루는 14개 상임위가 있고, 상임위와 구별되는 특별위원회가 있다. 특위는 국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심사하기 위해 구성된다. 정개특위도 정치개혁이라는 특별한 사안을 다루기 위해 구성된 특별위원회다. 이달 31일까지가 활동시한이다. 그런데 성과물이 없다.정개특위에 올려진 사안은 여야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단 한건도 제도화될 수 없다. 결국 현행대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이런 점을 의식한 것일까. 기초선거 공천 폐지 반대, 광역단체장 2연임 축소, 특별·광역시 기초의회 폐지, 광역단체장-교육감 러닝메이트 도입, 개방형 국민경선제 등을 제안하고 나섰다. 허송세월 하다 합의되지도 않을 여러 사안을 한꺼번에 들고 나온 격이다. 기초선거 공천제를 유지하기 위한 들러리용처럼 보인다. 이건 이른바 꼼수정치다. 서울 등 수도권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데 공천을 폐지할 경우 현역이 우세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이를 걱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초선거 공천폐지는 여야 대선 공약인 데다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하는 사안이다.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무는 격이랄까. 게임의 룰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룰을 정하고 집행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느긋하다. 출마 입지자들만 속이 타 들어간다. 입지자는 을(乙)이고 국회의원은 갑(甲)이다. 늑장을 부린다면 을에 대한 갑의 횡포나 다름 없다. 이젠 대선공약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열어야 한다. 약속 했으면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를 인용했던 게 박 대통령 아닌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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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1.21 23:02

'천인갈채상' 풍속도

당신이 산 시디 한 장이 〈보아〉를 아시아의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공익광고 문구다. 문화의 꽃이 작은 사랑의 집적을 통해 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독려. 십시일반(十匙一飯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 티끌 모아 태산, 작은 정성이 모여 큰일을 낼 수 있다!지난 금요일 저녁, 전주한옥마을 한 편에서는 이런 기적이 연출되고 있었다. 천년전주사랑모임에서 추진하고 있는 천인갈채상 시상식. 천명이 만원씩 천만원을 만들어 이 지역에서 2013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문화예술인 두 명에게 오백만원씩을 지원하는 행사.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것으로, 이번에는 타악연주단 동남풍을 이끌고 있는 조상훈씨와 알찬 전시를 바지런하게 꾸려온 이일순 전북대학교 강사가 수상했다. 천인의 갈채, 천명이 만원씩! 뜻도 좋고 말은 쉽지만 막상 실천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만원 한 장 얻어내기 위해 구구한 설명을 해야 하는 일도 번거롭지만 이해관계로 얽힌 세상에서 적은 액수라도 신세를 진다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신세를 질 바에야 크게 하고 싶고 내 자신의 이해득실과 직접 관련된 것이기를 바라는 욕심도 말 꺼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회의석상에서는 누구나 찬성하고 결의를 다지지만 실제 돈을 모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의 무관심도 힘이 빠지게 하기는 마찬가지. 기자들이야 바쁘기로 소문난 사람들, 보도자료 챙겨주지 않으면 기사쓰기를 꺼려할 뿐 아니라 유명자한 자리 아니면 결코 발로 뛰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시상식에도 월간지 기자 단 한명만이 행사의 체면을 겨우 세워주고 있었다.그러거나 말거나! 시상식은 천인의 갈채답게 훈훈하게 진행되었다. 상패는 김종연 장인이 합죽선 모양으로 만들었다. 박수 보내는 느낌이 나도록 느티나무의 결을 제대로 살려 제작했다. 이전 수상자들의 축하응원도 보태졌다. 대금연주자 이항윤씨는 조상훈씨의 장구반주에 맞춰 팔도 아리랑으로 흥을 돋우었고 시인 박성우씨는 자신의 시집 선물로 모든 참석자를 격려해 주었다. 해가 거듭되면 이 수상자들끼리의 연대가 이 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터전이 되겠구나, 잔치마당을 뒷정리하는데 속절없는 속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렇게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다시 만원 모으러 나간다! 춘삼월 제비 몰러 나가는 가락으로 읊조려 보는 것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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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20 23:02

작가가 되는 일

문단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문단인구 1만 명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다. 작가가 되는 관문은 다양하다. 문예지의 추천이나 문학상 공모, 개인 작품집 발간을 통해서도 등단의 자격은 주어진다. 그러나 문단의 인구를 급속도로 늘린 주체는 역시 문예지들이다. 출판계 불황에서도 쏟아져 나온 크고 작은 문예지는 ‘공모’나 ‘추천’이라는 형식으로 적지 않은 문인들을 만들어냈다. 작가들의 양적 성장을 굳이 배척할 이유는 없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지나치게 ‘등단’ 카드를 남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문예지의 ‘등단카드’(?) 남발이 문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폐해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작가가 되겠다는 과도한 열망이 문학의 진정성보다도 우선되는 환경이 지속되면 문학의 건강성은 갈수록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문단등용문의 최고로 주목받는 신춘문예의 존재는 의미가 크다. 새해 첫날 일간지들이 앞 다투어 내놓는 신년호 특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는 것은 역시 신춘문예 당선작과 당선자들의 이야기다. 신인들의 참신한, 더러는 아주 실험적인 문학적 도전도 그렇지만 신춘문예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그들이 보내야했던 오랜 고투의 생생한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가 우리나라에 처음 시작된 것은 1925년, 동아일보가 문학작품을 공모하면서부터다. 올해로 90주년을 맞는 신춘문예는 그 짧지 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새해 초입, 신춘문예 터널을 지나온 신인작가들의 등장이 화려하다. 한 출판사는 벌써 올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을 모은 시집을 펴내 ‘신춘문예’를 갈망하는 문청(문학청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스로를 치열하게 갈고 닦으며 습작시간을 보낸 ‘문학청년’들의 문단입성으로 한국문학계는 더 풍성해졌다. 그만큼 좋은 문학작품들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줄 터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의 문학 현실은 여전이 강퍅하다. 적지 않은 문예지가 쏟아지지만 정작 전업 작가로만 살면서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신춘문예 당선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들의 미래가 우려되는 것은 그래서다.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전업 작가가 건재하지 못한 현실은 안타깝다. 문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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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1.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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