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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제103조 5항에 따르면 선거 후보자들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를 열 수 없다. 이 때문에 6·4지선을 앞둔 최근 출판기념회가 잇따르고 있다. 2년 전 국회의원 입지자들이 그랬듯이 책 내용은 자신의 개인사와 정치 철학을 담은 멋진 스토리가 대부분이다.사실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전문 작가도 아닌 일반 정치인들이 짜임새 있게 글쓰기 작업을 하여 단행본을 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평소 조직 관리와 유권자 만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정치인들이 책을 쓰려면 하루 4∼5시간 수면하며 독하게 자료 수집하고 글쓰기와 퇴고를 거듭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 출판기념회 주변에서는 전문 작가들의 대필설이 돌기도 하고, ‘선거용 기획 출판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직선거를 앞둔 출판기념회는 세 가지 목적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성장과정과 인생역정, 능력, 정치철학을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둘째, 자신의 세력 과시다. 유력 정치인, 명망가 등은 물론 구름 같은 지지자들을 모아 만천하에 자신의 존재감과 위세를 보이기 위한 쇼다. 셋째는 정치자금을 모으는 것이다.사실 용쟁호투를 벌여야 하는 입지자들 입장에서 이 세 가지는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부담없이 열 수 있는 출판기념회는 선거 운동 전에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됐다.출판기념회의 백미는 무엇보다 정치자금 모금이다. 선거법 제한도 없고 봉투문화가 자연스럽게 뒷받침한다. 이곳에서는 1만 원짜리 책 한 권을 놓고 10만 원을 주고받든 1000만원을 주고받든 상관없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이 국회의원의 연간 후원금 규모를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출판기념회는 제한이 없고 매출액 등 아무것도 공개할 필요가 없다.거두절미하고, 문제는 돈봉투와 책을 맞바꾸는 사람들의 의도다. 5만 원 정도의 통상적 부조금이라면 논외지만, 수십∼수백만원을 넣은 봉투는 문제다. 출사표를 내고 큰 정치에 나서는 사람의 장도를 위해 내미는 민족 고유의 부조금 치고는 ‘사전 뇌물’ 성격이 짙다. 이런 식의 ‘가는 정 오는 정’은 사고를 부른다. 이를 종잣돈으로 당선된 정치인은 원칙과 공정을 앞세우면서도 결국 뒤에서 반칙하게 마련이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출판기념회 봉투에는 악의 씨앗이 들었을 가능성이 너무 크다. 경계가 상책이다.
새해 들어 정치 풍향계가 달라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지자들의 발길이 한결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서 입지자들이 세 확장을 위해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도내서는 민주당이 바짝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면서 예전 같은 지지세 만회를 위해 잰 걸음을 하고 있다. 김한길 대표도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호남에서 불고 있는 안철수 바람을 차단하고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상향식 공천과 개혁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원래 정치인들은 말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말들을 잘 만들어낸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허언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과 자당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허풍을 떤다. 대중을 속이는데 이골 난 사람들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선거철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요즘 민주당이 호남에서 지지율이 떨어져 안달이다. 민주당이 마치 국리민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종국에는 자신들의 입신영달을 취할 수 있는 길이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그간 호남에서 만큼은 민주당이 원도 없이 누릴 만큼 다 누렸다. 다소 자질이 떨어지더라도 황색 깃발만 꽂으면 그저 금배지를 헌사했다. 결국 본인들만 호의호식 했지 지역은 낙후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이 대목서 도민들이 분통을 터뜨린다. 도민들은 민주당이 잘했으면 계속 잘 하라고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도민들이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상당부분 새 정치를 갈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역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민주당에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율 회복이 잘 안되고 있다.김 대표가 제2 창당을 운운하기에 앞서 그간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이 저지른 비리부터 사과하고 나섰어야 옳았다. 지금까지 단체장들이 비리에 연루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 놓고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권정당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지금 민주당은 왜 민심이반이 생겼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야권이 분열하면 새누리당만 좋게 되므로 안철수 신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건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도민들이 바지저고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결코 쉬운 선거가 안 될 것이다. 지금부터 경쟁의 정치가 시작됐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국가들은 대개 독립기념일이나 통일의 날 정부수립일을 국경일로 정하지만 프랑스는 혁명의 날을 공식 국경일로 삼고 있다. 바스티유 요새를 탈취한 1789년 7월14일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된 최초의 혁명의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프랑스는 전국이 축제의 물결로 뒤덮인다. 하지만 7월14일을 국가적인 기념일로 정하기까지 정치세력들 사이에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바스티유 함락과 봉건제 폐지 선언, 대연맹제 파리 민중봉기 공화국 선포 루이 16세 처형 등 각각의 상징일을 놓고 대립이 지속됐다. 그러던 끝에 국민화합 마당인 대연맹제 개최일이 바스티유 함락과 겹쳐 7월14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갑오년인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발생 1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그러나 우리는 기념일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단체와 학계, 자치단체 간 이해가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놓고 논의했지만 오히려 간극만 확인했다. 이젠 기념일 제정 문제를 아예 뒷방에 처박아 둘 셈이다. 올해 기념행사 추진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 이유다. 김대곤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이사장은 기념일 제정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고 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혁명의 정신과 실천력 계승, 세계화 등이 숙제다. 프랑스 시민혁명, 독일 농민혁명, 중국태평천국의 난과 함께 세계 근대 4대 시민혁명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할 때 비로소 혁명 120주년을 맞는 의미도 확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다. 혁명 120주년 기념행사 예산이 고작 2억 원이다. 처음엔 1억 원 계상됐던 것이 국회 심의때 7억 원으로 늘어났다가 기획재정부가 싹둑 잘라낸 뒤 1억 원만 추가 증액시켜 2억 원이 된 것이다. 국가기념일도 아닌데 예산을 많이 줄 수 없다는 기재부의 언성이 생생하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있다면 이런 하대는 받지 않을 것이다. VIP초청도 언감생심이다. 가을 기념행사도 전북이 아닌 서울에서 연다고 한다.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자 탄생지이고 전승지이며 선양지이다. 전국적인 축제는 고사하고 자꾸 쪼그라드는 것 같다.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 혁명 120주년인 올해 기념일을 제정해야 옳다. 올해는 넘기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전미개오(轉迷開悟), 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열반)에 이른다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뜻하는 말로, 올해 교수들이 선택한 희망의 사자성어 1위를 차지했다.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르게 보자. 우리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운 것은 거짓된 세력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헛된 욕망을 그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국민 하나하나가 미망에서 깨어나 현재를 바로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성찰의 힘이 하나의 기둥이 될 때 실질적으로 작동한다. 백성이 깨어 있어야 지도자도 대오각성, 상생과 번영의 길을 도모하게 된다. 전미개오를 선택한 이유들이다. 실로 속임과 미혹의 연속이다. 천안함에서 전두환의 29만원까지! 2013년은 점입가경, 속임수를 다른 속임으로 덮는, 그렇게 우리를 미혹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거듭되었다. NLL 포기 여부 공방이 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혹은 삭제 공방으로 이어지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는 검찰총장의 사생활 문제를 부각함으로써 호도되고. 조직적 선거개입을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더니 결국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종북타령으로 이어지고. 문제는 이러한 혹세무민의 전략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계속 미혹의 수렁에 빠진다는 거. 대선 당시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던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등의 주요공약이 흐지부지 실종되어 버렸는데도 개의치 않고 개인의 일상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거. 기초노령연금 폐지 문제로 해당 장관이 사임을 하고 경제민주화를 입안했던 핵심참모가 밀려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대통령 국정수행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거. 참다 참다 못해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여대고 있는데도 모르쇠 내 밥그릇 돌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거.전미개오가 격탁양청(激濁揚淸 : 탁류를 몰아내고 청파를 끌어들인다)이나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과 함께 즐긴다)을 제치고 으뜸으로 뽑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교수들의 안타까움. 정의 실현이나 불평등의 해소도 정치권에 책임을 묻기 전에 먼저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견인할 수 있는 것! 미혹에 휘둘리지 않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적 연대,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아프게 되새기게 하는 갑오년 아침이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120년 전의 아픔을 떠올리며.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에는 11분짜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가 올라 있다. 조회 수 6만 여회. 가슴을 짓누르는 분노와 숙연해지는 감정을 부르는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8년여 동안 일본군을 상대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정서운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남 하동에서 부족할 것 없는 부농의 딸로 태어난 소녀는 일본군의 공출에 맞서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마을 이장은 일본의 공장에 취직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소녀가 도착한 곳은 일본이 아닌 인도의 자카르타, 일본군 부대였다. 그의 나이 꽃다운 열다섯 살이었다. 참혹한 현실 앞에 소녀는 절망했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고통스러운 나락에서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죽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소녀는 아편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살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고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난 뒤. 소녀는 천애고아가 됐다. 애니메이션은 2004년 2월 26일 여든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정서운의 구술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가 살아생전에 남겨놓은 기록이다. 정서운. 그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해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다. 1995년 북경 세계 여성 대회에도 참가해 위안부의 삶을 증언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 등지에서 종군 위안부에 대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국민 기금 반대 올바른 전후 청산을 위한 일본 순회 집회’에도 나섰다. 그의 용기로 인해 비로소 한 많은 삶을 가슴에 삭이고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려온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스물두 돌을 맞았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에 맞춰 시작한 시위는 이날까지 1,108회가 진행됐다. 시위 역사상 가장 긴 시위다. 1100회가 넘는 동안 이 자리에 함께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애절한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던 할머니들은 239명. 지난해만도 4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생존한 할머니는 이제 56명뿐이다. 죄스러움이 더 커진다.
정치권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진정으로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고자 하는 부류다. 다른 하나는 오로지 권력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부류다. 뭇 사람들은 이것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후자의 경우 전자인척 자신의 야욕을 감추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 허물은 꼭 드러나게 돼 있다. 개울물이 제 아무리 맑다 해도 바닥이 탁하니 언제든 흐려질 것이다. 재력을 추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돈 많이 벌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콩 한쪽도 나눠 먹겠다는 부류다. 전주 노송동 얼굴없는 천사, 구세군 자선 남비에 1억 원을 놓고 가는 천사, 평생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 평생 일군 사업체를 자식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기업인 등이 그런 부류다. 하지만 극히 드물다. 다른 하나는 돈 벌레다. 오직 돈 놓고 돈 먹기에 넋 빠진 자들이다. 그 중에는 불법으로 치부한 졸부도 있고, 자수성가한 인물도 있다. 여러가지다. 하지만 돈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다. 정치권력과 재력은 얻기 힘들지만, 설사 얻었다 해도 세상 눈높이에 맞춰 나아가기 어렵고, 더구나 영원할 수 없다. 원한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인심은 권력가와 재력가에게 원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세상에 호응할 준비가 부족한 사람은 그 힘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 진정한 정치권력과 재력은 세상 사람을 위한 것이건만, 대부분 자신(혹은 끼리끼리)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애쓴다. 어느 날 날개가 꺾여 결국 추락하고 말 소인배들이다. 요즘 인간 수명은 100세를 바라본다. 제 아무리 권력을 누리고, 재력을 갖춘 들 몇 년이나 누리고 또 가질 것인가. 생명체인 이상 흙으로 돌아가기는 마찬가지 아닌가.어쨌든 살아 있는 동안 호의호식하며 힘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문제는 상대방을 무력으로 누르고, 간악한 꾀로 누르고, 돈으로 눌러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상태다. 자신의 허물은 물감으로 덧칠하고, 상대 허물을 들춰낸다. 세치 혀로 대중을 유린한다.해가 바뀌고, 6.4지방선거가 사실상 시작됐다. 대붕의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4년을 기다린 군상들이 땅을 박차려고 요동치고 있다. 이 때 쯤 꼭 기억해 둘 말이 있다. 진정 마음을 비우고 주민에 봉사하고자 하는가. 화무십일홍이다.김재호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도민들이 올 지방선거에 큰 기대를 걸지만 입지자들을 별로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특히 안철수 신당에 관심은 갖지만 안 신당 쪽으로 줄선 입지자들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안 신당 쪽에서 내건 도덕성 참신성 정치적 역량 등에 부합되는 인물이 못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안 신당은 지금껏 도민들한테 구체적으로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을 펼쳐 보이지도 않고 민주당의 잘못과 무능으로 반사이득만을 취해왔다. 그래서 안 신당 쪽에 거품이 많다는 지적이다.아이러니컬하게도 안 신당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안 신당 쪽 입지자들의 지지도가 비례하지 않다는 모순이 있다. 김완주 지사가 3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도민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시군별로도 단체장 입지자들의 우열이 갈린다. 대화 가운데는 “민주당이 밉긴 하지만 마냥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이들 가운데는 “예쁜 자식 사랑의 매로 다스리듯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한번쯤은 호되게 혼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도 중장년층 가운데는 믿음을 갖고 민주당 지지 기반을 확실하게 다지는 콘크리트표로 작용하고 있다.대선 이후 상당수가 민주당을 떠나가는 분위기다. 크게는 민주당 지도부가 국민들한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11 총선 때 물갈이 했던 도내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한 탓도 있다. 심지어 일부 도민 중에는“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약하고 야당의원으로서 존재감이 없어 민주당이 싫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한다. 일각에서는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입신양명을 노리는 사람들로 밖에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왜 한결같이 지금 이 시점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지 납득이 안 간다”고 말한다.도민들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옛 유행가를 다시 불러야 할지 아니면 새말로 갈아 타야할지를 놓고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가운데 김완주 지사가 불출마를 선언해 지사 선거의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가셨지만 그래도 안갯속이다. 최근 들어 광주 전남 지역에서 안풍 차단 대책의 하나로 박지원의원의 전남지사 전략공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상임고문의 전략공천설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도 이 같은 배경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그나마 새롭게 태어나려면 지사 후보를 경선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갑오년 새해에 김완주 지사가 ‘300만 도민’을 언급했다. ‘쪽수’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것이다. 지난 3일 전북 신년인사회에서 김 지사는 최다 인구를 기록했던 1960년대를 회상하면서 “새해 소망이 뭐냐고 묻는다면 ‘300만 도민’이라고 불러보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가슴 아픈 일 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인구가 줄면 정치력이 약화되고 대선에도 영향력이 감소된다. 현안에도 어려움이 닥친다. 300만 정도는 돼야 국회의원 수가 늘고 대선에도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여운이 묻어있는 언급이다. 쪽수로만 보면 전북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작년 말 현재 187만 2965명이다. 한때는 252만 3708명을 기록했다. 최다 기록인 1966년 무렵 ‘300만 전북도민’이라는 슬로건이 나붙었다. 호시절도 잠시, 그 뒤 계속해서 내리막을 걸었다. 성장거점 발전전략 때문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완공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수도권-부산권, 이른바 경부축 중심으로 진행됐다. 1972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그 틀이다. 이 계획은 ‘성장거점(growth pole)’을 통해 발전을 이룩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원이 특정지역에 집중돼 지역간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인구의 ‘탈(脫) 호남’이 대표적인 예다. 호남 인구는 블랙홀처럼 수도권 등 타 지역으로 빨려들어갔다. 전북은 최다 인구 때보다 65만명이나 줄었다. 호남인구는 이제 충청인구보다도 적다. 작년 5월말 충청인구(525만 136명)가 처음으로 호남인구를 408명 앞지른 이후 지금은 2만여명 쯤 벌어져 있다. 인구조사가 처음 시작된 1925년 호남인구가 352만명, 충청이 212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쪽수가 적다 보니 전북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못하다. 정치적 영향력도 미미하다. 인사, 사업, 예산도 여의치 않다. 강원 대구 부산 광주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지만 전북은 아직도 방문 계획이 잡혀 있지 않다. 김 지사의 ‘300만 도민론’은 3선 불출마 선언 뒤 신년 인사회장에 참석했던 터라 그동안의 회한이 서려있는 발언으로 들렸다. 뒤집어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 정치적 현실, 쪽수가 적은 탓에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던 지역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겠다. 전북의 존재감, 결국 쪽수에 달린 문제다. ‘300만 도민’은 언제쯤 현실화될까.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저녁식사 마치고 산책 가려는데 대나무숲 넘어 뒷산에서 묘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올무에 걸린 짐승의 울부짖음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소리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음절을 느낄 수 있게 들린다. 미친 사람의 비명? 아니면 한 많은 세상 정리하겠다고 농약을 마셔버린 사람의 단말마? 의웩 의웩! 참 기분 나쁘다. 을씨년스럽다. 어둠속에서 들려오니 두렵기조차 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마침 떠나려고 짐을 챙기고 있던 아내에게 밖에 나가 들어보라고 권한다. 이제까지 가능하면 시골에서 접할 수 있는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것들 감추어왔었다. 목욕하고 닦으려 하는데 수건에 붙어 있다가 몸으로 떨어져 기어가던 지네, 누마루에 니은 자로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구렁이 이야기, 남들에게는 자랑삼아(?) 해댔지만 아내에게만은 숨겼었다. 그렇지 않아도 꺼리는 시골생활 더 두려워할까 봐.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내 아내도 듣게 될 것이고 또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둘이 몇 번을 들락날락 참고 견디다가 결국 지구대로 신고. 마침 순찰을 나간 경찰과 위치확인을 위해 휴대전화를 통해 잠시 옥신각신. 드디어 순찰차 도착. 그런데 묘한 것은 이럴 때면 내내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 이럴까봐 한참을 나름으로 참다가 전화를 한 것인데 장난전화처럼 되고 말았다. 전화로 정보 주고받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들렸는데 순찰차 전조등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들리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 앞에만 가면 아픈 곳이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별수 없이 직접 흉내를 내보는데 의웩 의웩! 고라니네! 흉내 잘 내시네! 요즘이 번식기인데 그게 짝을 부르는 소리란다. 그런데 여기가 고향 맞아요? 고라니를 모르다니. 왜 몰라! 그 노룬가 사슴과엔가 속하는 귀염둥이. 송곳니가 어색해 보이기도 하는, 멧돼지와 더불어 요즘 밭작물 해치는 말썽장이로도 유명하고,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하는 그 녀석. 차에 친 처참한 모습도 보았고 산책하다 느닷없이 만나 놀라기도 했지. 그런데 이 괴상망측한 소리는 처음이다. 그렇게 귀엽게 생긴 것이 그런 끔찍한 소리를 내다니. 그것도 그렇게 처절하게! 아 사랑의 무서운 힘이라니! 아들 또래쯤 되어 보이는 경찰한테 들은 핀잔 아닌 핀잔을 이렇게 무질러본다. 이래저래 시골 살림 녹녹치 않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누군가는 이 역사를 혁명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혁명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는 ‘동학’이 앞세워져야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농민’이 앞세워져야 한다고 했다. 한 시대, ‘난(亂)’으로 폄훼되어 ‘동학난’이란 대중적인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또 한 시대에는 입에 올리는 것조차 거의 금기시되기도 했다. 1894년 연대기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갑오년의 역사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다. 1984년 1월, 고부 농민들은 고부관아를 점령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포학하고 가혹한 정치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봉기해 관아로 쳐들어간 결과였다. 정치기강은 문란하고 매관매직과 관리들의 부패가 만연해있던 조선 사회. 1860년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민란은 이즈음 절정에 이르러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민란의 화약고가 되어 뇌관만 건드리면 폭발할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부봉기도 조선말기의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이 원인이었던 셈이다. 봉건적 사회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세운 우리 역사상 가장 최대이자 최초의 민중항쟁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현대사를 결정짓는 사건이었다.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끝이 났지만, 청일전쟁을 이끌어내 이전까지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청나라의 쇠진을 가져왔으며 일제가 후발 제국주의국가로 약진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국제적 사건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의 분기점마다 그 역사의 정통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의병항쟁과 3·1독립운동과 4·19혁명,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의 함성에도 동학농민혁명의 숨결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100년이 넘는 동안 역사의 그늘에 있었다. 지배층과 기득세력에 저항했으나 완전한 승리를 이끌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패배했다는 물리적 결과가 갑오년 역사를 핍박하고 왜곡하고 뒤틀린 시각으로 재단하게 하는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갑오년이다. 1894년으로부터 두 갑자(甲子) 뛰어 넘는 해의 의미가 각별하다. 올 한해 갑오년을 휩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정신을 일깨우는 기념사업과 재조명 작업이 준비되고 있다. 다시 짚어보면 동학농민혁명을 잉태한 것은 동학의 인본주의 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새해 아침, 그 울림이 크다. 갑오년의 역사가 세상을 다시 깨우고 있는 모양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방 정국을 선점했지만, 권력에 집착해 반목하고 장기집권을 노리다 결국 하야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사쿠데타로 18년간 집권하면서 경제 부흥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도 받지만, 민주화를 거스른 채 장기독재정권을 휘두르다 궁정동 안가에서 부하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박 대통령의 군사독재 전철을 밟은 전두환 대통령, ‘보통사람’ 가면을 쓴 노태우 대통령도 뒤 끝이 비극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고, 재임 중 기업들로부터 받은 수천억 원의 뇌물도 지난해 모두 토해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식들과 측근들의 부정부패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칙’에 맞서 싸운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초에 한나라당의 탄핵을 잘 견뎠지만, 주변 관리가 부족했고 결국 후임 이명박 정권의 집요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속도전’으로 마무리한 일, 그의 재임 중에 실시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일부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시비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통령들이 비극의 역사를 쓰는 동안 대한민국은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넘어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분단과 전쟁, 이념 논쟁과 갈등, 군사독재와 탄압, 가난 등을 견뎌내며 땀 흘려 일한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대 대다수 대통령들은 자기 욕심 챙기기에 바빴다. 입으로만 국민 화합을 외쳤을 뿐 국민을 억압하고 우롱했다. 그들은 국민들을 향해 이해와 화합을 말했지만 결국 ‘내 편이 아니면 국물도 없다’며 상대를 견제하고 내팽개쳤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며 상대방의 다양한 입장을 인정하고 화합하라고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 이익과 권력 확장을 꾀하는 인간세상에서는 그저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이 장기집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가난한 시대의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권력 주변에서 호가호위한 탐욕자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그 험한 길을 피했을지 모른다. 원칙과 국민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욕심은 머지않아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올 비수의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 뿐이다. 권력을 꿈꾸는 자들은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또 선거의 해가 밝았다. 부디 화이부동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세밑 끝자락. 올 한해 안녕들 하셨습니까? 성취의 해였다면 다행이다. 대개는 그렇지 못했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세상이 팍팍해진 탓이다. 살림살이, 건강, 취업, 승진, 결혼 등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매년 이쯤이면 상념이 교차된다. 연초의 계획과 소망 때문이다. 희망에 부풀고 들썩이고…그러다 한 해를 보내고 만다. 그러고는 버나드 쇼의 말처럼 “우물쭈물 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후회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대가 컸다. 국민대통합과 인사대탕평,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제시했던 까닭이다. 반면 서민 삶을 경험하지 못한 인생과 소통 부재, 편협한 역사인식은 우려스러웠다. 이런 기대 반, 우려 반의 국정을 얘기하자 어느 선배는 “국정이 잘 흘러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라고 했다. 선배 말마따나 지난 10개월은 대립과 분열, 갈등으로 치달았다. 포용과 관용, 화합과 통합은 구두선이 됐다. 국정은 꼬였다. 선배 손에 장을 지질 일도 없어졌다. 지난 한 해가 참 허망하게 흘러갔다. 전북은 어떨까. 갑갑하고 답답한 해였다. MB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북은 고립무원이다. 청와대와 중앙부처에 끈 댈 곳이 마땅치 않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지도부의 토양도 척박하다. 번듯한 인물도 없거니와 인물을 키워내지도 못했다. 중진 국회의원들은 선수(選數) 값을 해내지 못했고 정치권은 방안퉁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점차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다.정치의 영역은 넓다. 인사, 사업, 예산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지역의 정치적 역량에 따라 지역발전이 좌지우지된다. 충청권이 여야를 초월해 선거구를 증설하고 정부 인사와 사업예산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은 예다. 전남과 경북 국회의원들이 동서화합포럼을 만든 것이라든지, 전남 광주가 호남미래포럼을 만들어 정치세력화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이다. 전북이 팔짱 끼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새해는 갑오년 청마(靑馬)의 해다. 말은 사회성이 강한 활발한 동물이다. 청색은 진취적인 뜻이 있다. 따라서 새해는 매우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해다. 전북이야말로 청마의 기상이 필요한 곳이다. 내년엔 지방선거를 치른다. 역동하는 전북이 될 수 있도록 정치판이 짜여지길 기원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오 벗이여, 이와 같은 음은 아니다!/ 더욱 기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는가?연말연시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에 자주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렇게 시작되는 환희의 합창 때문일 것이다. 불협화음이나 소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거나 새해를 맞이할 수는 없는 일. 세상살이에서 그것은 불가피한,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굴레일지 모른다. 요순시대에도 분쟁의 소음은 있었다! 그렇지만 한해의 시작과 끝마저 그것에 휘둘리게 할 수는 없다는 염원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서양음악의 역사는 이 곡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바흐로부터 시작되는 고전주의 전통과 19세기 낭만적 정서가 크게 뒤엉킨 베토벤 음악의 결정판.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4악장의 대서사적 풍모. 이 악장은 관현악의 격렬하게 시끄러운 소음과 같은 연주로 시작된다. 이런 것은 어떠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물론 첼로와 베이스가 레치타티보 풍으로 이 불협화음을 거절한다. 그런 것으로는 안 되겠다는 답이다. 이런 식의 문답이 몇 차례 반복된 뒤, 앞 악장들이 부분적으로 회고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레치타티보의 선율로 차단된다. 그것들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프랑스혁명이후 새로운 사회를 위한 다양한 논쟁들이 소개되는 듯하다. 자유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평등을 더 앞세울 것인가? 자유방임주의는 불평등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강제적 평등 추구는 곧 전체주의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형제애(Brotherhood)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대의명분일 터, 이 환희의 합창은 바로 이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동체대비(同體大悲), 모든 중생은 형제요 한 몸이라는, 그 큰 사랑의 마음을.환희여, 낙원의 처녀여. 그대의 기적은 세상의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은 것들을 다시 결합시켜주네/ 그대의 날개가 상냥하게 멈추는 곳에서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되리/ 수백만의 사람들이여 껴안아라! 분쟁과 격절의 한 해! 내년이라고 벗어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좀 쉬었다 했으면 좋겠다. 잠시 스스로를 추스르고 뒤돌아보며 싸워도 방향은 잡아가면서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환희의 송가] 한번 들어보자. 번스타인이 춤추는 듯 지휘하는 빈필하모니 연주가 꼭 아니라도 좋다. 카라얀이 이끌던 베르린필의 좀 무거운 해석도 좋고 아바도의 비교적 최근 연주실황도 좋고. 그러나 반드시 대형화면으로! 볼륨도 충분히 높인 채로! 이종민(객원논설위원)
2013년, 거인을 잃었다. 지난 5일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평화와 화해’를 외치며 한평생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만델라를 추모하는 열기가 아직도 뜨겁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의 2013년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 조사 1위가 ‘넬슨 만델라’였던 것도 추모열기를 보여주는 증거다. 출판계가 그의 이름으로 일찌감치 부터 들썩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만델라’ 브랜드를 이용한 상업적 마케팅의 득세다. 외신에 따르면 남아공의 최대도시인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는 차량운전자들을 대상으로 만델라 초상화를 팔고, 고급 쇼핑몰에서는 만델라의 수감 시절 죄수번호인 ‘46664’ 상표를 단 셔츠가 판매되고 있는데, ‘웃돈’을 줘야 살 수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 만델라 관련 상표권을 공식 보유하고 있는 곳은 만델라재단이다. 이 재단에서도 의류브랜드 ‘466/64’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남아공의 최대도시 요하네스버그의 고급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티셔츠는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지금까지 ‘만델라’ 이름을 사용하겠다고 남아공 정부에 공식 등록한 회사는 40개, ‘마디바’ (만델라의 애칭) 브랜드를 쓰고 있는 회사가 140개에 이르는데도 만델라 재단에 브랜드 라이선스를 신청하는 업체가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만델라 관련 사업이 급성장해 브랜드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만델라의 발자취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관광특수를 맞은 남아공 관광업계의 분위기까지 가세했으니 ‘만델라’ 브랜드가 남아공 산업의 새로운 한 축이 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사실 한 인물을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활용한 상업적 마케팅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세계의 도시 중에는 그러한 인물 마케팅으로 성공한 예가 적지 않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인물 마케팅의 지나친 상업성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상업성과는 워낙 거리가 멀었던 만델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이런 환경이 부럽기도 하다. ‘인물 마케팅’이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아서다.
서민(庶民)은 사회적 특권이나 경제적인 부를 많이 누리지 못하는 일반인을 뜻한다.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도시의 근로자, 농촌의 농투성이 등이 서민의 부류에 속할 것 같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에서 ‘사회적 특권이나 경제적인 부를 많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서민이라고 했듯이, 우리 사회에는 서민들보다 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많다. 추운 겨울 어느 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눈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성냥을 파는 소녀가 있었다. 날이 어두워졌지만 소녀는 성냥을 모두 팔지 못했다. 소녀는 성냥을 팔지 못했다고 혼낼 아버지가 무서워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어느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언 손을 호호 불어댔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더하는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첫 번째 성냥불은 커다란 난로가 되어 온 몸을 녹여줄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세 꺼지고 말았다. 두 번째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니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이 나타났다. 세 번째 성냥불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속에서 다정하게 미소 짓는 할머니가 보였다. 소녀는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성냥을 마구 그어 불을 붙였다. 날품을 팔아 누이동생과 조카들을 먹여 살리던 장발장은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줄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붙잡힌 뒤 13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다 출옥한다. 전과자란 이유 때문에 그는 잠자리도 얻을 수 없는 ‘개 보다 못한 신세’였다.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우여곡절을 끝에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진흙탕보다 더러운 세상을 헤쳐나간 장발장의 삶은 그가 이슬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데르센과 위고의 시대에 성냥팔이 소녀나 장발장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시대나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사회나 성냥팔이 소녀, 장발장이 수두룩 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권력가와 부자들은 항상 더 강한 힘과 돈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온갖 권모술수를 쓰고, 화장실 바닥 핥기도 마다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바닥에서 떨고 있는 뭇 사람을 보았을까. 바닥을 핥으면서 꺼칠한 이들의 빰을 느낄 수 있었을까. 권력과 돈의 위력을 좇는 인간의 본심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권력과 돈을 충분히 얻은 뒤 낮은 곳을 보듬을 수 있다면 다행일 뿐이다.
예전에는 아무나 출판기념회를 열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 나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를 연다. 대부분 선출직들이 선거에 나가기 전에 자신을 알릴 목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연다. 출판기념회가 하나의 통과의례가 돼 버렸다. 정치 신인들은 현행 선거법이 강화돼 자신을 알릴 방법이 거의 제약되자 출판기념회를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마치 도랑치고 가재 잡는 식이 됐다. 출판기념회도 북콘서트란 이름을 빌어 그 형식이 예전에 비해 자유스러워지면서 다양해졌다.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입지자들이 여는 출판기념회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선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 때에 출판기념회를 연 것은 이해가 안 간다. 국회의원들이 보통 서울 여의도에서 출판기념회를 열면 지방의원부터 시작해서 시장 군수 공직자 사업가들이 외면할 수 없다. 바쁜 와중에도 눈도장을 찍고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없다. 초청장 보내는 건 형식이다. 설령 초청장이 안 와도 꼭 들여다봐야 한다.대개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상재(上梓)라 해서 책값 정도를 담아 넣는 게 예의다. 하지만 지방의원들이나 시장 군수 등 공천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돈 단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야 품앗이로 여기고 성의 표시 정도로 끝낸다. 그간 국회의원들은 이 같은 출판기념회를 보통 선거 때 열었다. 그런데 유독 도내 초선 국회의원들이 올 가을철부터 뒤서거니 앞서거니 경쟁적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물론 의원들 자신들은 출판기념회를 통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세상 사는 게 상식을 벗어나면 손가락질 받는다.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 수는 있지만 도에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열심히 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한가롭게 출판기념회나 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북 의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가 적고 야당의원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대다수 도민들은 이 같이 힘든 시기에 왜 국회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큰 돈 모아지는 게 아니라면 굳이 바쁜 때 출판기념회를 열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 예쁜 사람은 뭘 해도 예쁘지만 미운 사람이 설령 예쁜 짓을 해도 좋게 보지 않는다. 출판기념회를 마친 국회의원들 살기가 나아져 안녕들 하셨는지 모르겠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어릴 적 동네 교회 성가대원들은 크리스마스날 새벽 마을을 돌면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합창하곤 했다. 집 마당에 들어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두어 곡씩 불렀다. 신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순방했다. 어머니는 과자와 떡 같은 걸 미리 준비해 뒀다가 성가대원들에게 전달했다. 자신의 딸이 성가대원이기도 했지만 새벽에 사랑을 전파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합창이 끝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갈 것이라 믿으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 아련한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성탄절이면 또 생각나는 게 산타클로스 전설이다. 서기 300년쯤 작은 도시의 주교 니콜라오는 몰락한 집안의 아버지가 돈을 받고 세 딸을 매춘부로 팔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금이 든 주머니를 집안에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 덕에 딸은 모두 결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 니콜라오는 ‘선물 주는 이’로 통한다. 그가 입었던 성직자의 붉은 복장에서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이 유래했다. 나중에 네덜란드 신교도들은 그를 ‘신터 클라스(Sinter Klass)’라 불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산타 클로스(Santa Claus)’가 됐다. 산타클로스는 나눔과 사랑의 상징이다. 성탄절 들뜬 분위기는 1998년 IMF체제를 겪으면서 착 가라앉았다. 거리마다 울려퍼지던 징글벨 소리, 반짝이던 네온사인 불빛은 사그라들었다. 특수를 누리던 연관산업도 꺾였다. 마음의 여유로움도 사라지고 대신 양극화와 세계화, 경쟁, 실업, 빈곤 등의 단어들이 옥죄고 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법. 경제가 어렵다 보니 인심도 각박해진 탓일까. 연말 나눔도 줄고 있다. 전북의 ‘희망 나눔 캠페인’이 한달을 넘겼지만 모금액은 12억 8005만원(목표액은 48억원)에 그치고 있다. 특히 개인 기부가 줄었다고 한다. ‘생불대래 사불대거(生不帶來 死不帶去)’ 빈손으로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몇 해 전 홍콩 배우 성룡(成龍)이 4000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한 말이다. 가진 자들이 새겨야 할 금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 아이콘인 사랑의 빨간 세 열매는 각각 ‘나’와 ‘너’, ‘우리’를 의미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고 온정의 손길을 베푼다면 우리 공동체사회도 한층 밝아질 것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주역〉의 비(否)괘는 오늘날과 같은 소통부재의 상황을 잘 그려주고 있다. 군자들이 어떻게 핍박받고 내몰리는지, 소인배들이 어떻게 활개 치는지를. 이 격절의 불통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까지도. 이 괘의 상을 보면 위에 하늘(乾)이 있고 아래에 땅(坤)이 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땅의 기세는 아래로 내려가려 하니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언로가 막혀버린 불신의 난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괘의 바로 앞에 태(泰)괘가 배치되어 있는 것. 이괘는 서로가 감통 교감하는 치세(治世)를 나타낸다. 만물유전(萬物流轉)! 잠시 방심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좋은 시절이 이내 악인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배려!문제는 이 간악한 소인배들의 위선을 간파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이들의 발호로 조광조가 사약을 마시고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나타난다. 지난 대선 이후 조중동은 물론 종편, 아니 공중파방송까지 장악한 도구적 이성들의 현란한 말들을 보라. 첫 효(爻)는 난세의 시작. 세상의 중심을 악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선인들은 다시 바른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띠뿌리처럼 연대하며 올곧은 마음을 간직한 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둘째 효에서는, 소인들이 아첨과 교언(巧言)으로 혹세무민할 때 군자는 물러나 대인의 도를 지켜야 화를 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효는 소인배들이 바르지 못한 자리를 독차지하며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는 난세의 절정을 나타낸다.극즉반(極卽反)! 네 번째 효는 극에 달한 난세를 해쳐나갈 반전의 징후가 나타남을 보여준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은인자중하던 의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종교인들의 시국선언과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바로 그런 예이다. 이제 그 막힘이 뚫리고(제 5효) 마침내는 그 상황이 종료되게 마련이다(마지막 효)! 그래서 불통의 시대가 오히려 희망이다.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정착되리라는 안이하고 나태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해주고 있으니. 저 완악한 무리들의 민낯을 여실하게 목도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중요한 것은 망하리라 망하리라(其亡其亡)는 위기의식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돈벌이와 취업에 연연하면 다시 불통의 시대가 되어 돈벌이도 취업도 딴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를 보내며 꼭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경계의식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안도현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시인이다. 80년대 초반에도 그는 지역 문화운동의 현장을 지키는 시인이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국어교사였지만 전교조 교사로 교육운동을 하다 학교에서 쫓겨났다. 94년 복직이 되어 다시 교단에 섰지만 3년 만에 이번에는 스스로 교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대중적 기반을 확고하게 다져놓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를 내놓은 지 1년만이었다. 창작 작업은 더 치열해졌고, 시집과 산문집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그는 한국의 대표 시인이자 인기작가가 되었다. 그는 한동안 연애시류의 시쓰기와 대중들을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산문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이른바 ‘인기작가’ ‘대중작가’ 되어 그 인기세로 대중적 이미지를 공고히 다지는 동안에도 그는 통일운동과 교육운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북한어린이돕기로 통일운동의 전면에 나섰으며 사회변화에의 갈망을 현실참여로 담아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실참여는 적극적인 정치활동으로 이어졌다. 정치활동 보폭은 갈수록 넓어져 교육감 후보 선거캠프 중심에서 선거운동을 주도하거나 국회의원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회를 이끌었으며, 지난 19대 총선 때는 한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에도 참여했다. 정치활동이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전개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그의 행보에 쏠렸다. 정치권으로 나갈 것이라는 혐의(?)를 받은 것도 이즈음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치는 하고 싶지만 결코 정치인은 되지 않겠다.” 그렇다면 안도현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정치활동을 하는가. “우리는 모두 현실적인 존재들이다. 투표가 개인의 중요한 정치행위이듯 정치인이나 정책을 욕하는 것도 모두 정치행위다. 단순한 일상을 제외한 많은 것들이 정치행위다. 문인이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정치행위가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걸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이어지는 항변이 있다. “개인적 욕망을 앞세워 자리를 차지하거나 권력에 빌붙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 ‘글쟁이’로 말한다면 자신의 글을 이용한다는 게 나쁜 거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용기가 있고, 할 말을 해야 될 때가 있다면 누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그가 지금 ‘선거법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거리로 나오지 않고도 글로만 묶여 정치를 할 수 있는 현실이 아직 그에게는 멀리 있는 모양이다.
북한 권력 2인자 장성택은 아직 20대인 김정은이 권력 기반을 확고히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가 40년간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 실세로 군림했고, 1인자 김정은의 고모부라는 사실 자체가 강력한 울타리로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장성택 판결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를 일삼았고, 급기야 권력을 뒤집을 의도(국가전복음모죄)가 있었다. 물론 확실치는 않다. 판결문에는 장성택의 범행이 심리과정에서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해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적혀 있지만, 권력 2인자가 단심 재판만 받고 즉결 처형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만 있지 외부인들은 실체적 진실을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보도문 속에서 권력세계의 냉혹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장성택의 월권과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 등 눈에 거슬리는 행각이 김정은 눈에 직접 띄었든, 숙청 주도 세력들이 감시 제보했든, 범죄 혐의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장성택은 권력 2인자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하다가 1인자와 그 측근들에게 찍혀 목숨을 잃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장성택의 ‘건성건성 박수’가 대표적이다. 장성택은 2009년 김정은이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추대될 때 다른 사람들은 흥분하듯 박수를 치는 데도 느긋한 자세로 박수를 쳤다. 김정은과 동행한 자리에서 짝다리를 하거나 바지에 손을 넣고 걷는 여유를 보였다. 이 때문에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 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언제 반란이 있을지 몰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인 김정은 입장에서는 ‘건성건성 박수치는 2인자’장성택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이 장성택 처형은 김정일이 사망 직전에 남긴 유훈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유훈에는 ‘우리 대오에 숨어 있는 종파분자들을 경계하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권력자는 누군가 비수를 들이댈지 몰라 늘 불안하다. 주변을 경계할 수 밖에 없다. 어찌 이런 일이 북한에서나 있는 일이겠는가. 또 권력 주변에서 가슴 철렁하는 사람들이 없겠는가. 권력은 화려하지만 인간성을 좀먹고, 급기야 죽음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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