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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처신

전북이 너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꽉 막혀 있어 장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국가 예산을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다 보니까 굵직한 지역개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중앙부처에 전북 인맥이 뚝 끊겨 국회의원들도 예산확보 하기가 벅차다. 시장 군수들이 중앙부처를 상대로 예산 활동에 나선다는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다. 중앙부처 실무선부터 차단돼 접근하기가 어렵다. 일부 시장 군수는 그나마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서 국비를 눈물겹게 따오는 형편이다.항상 선거는 중요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는 전북의 사활이 걸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만큼 내년 선거가 중요하다. 축처져 있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면 새로운 리더십으로 교체가 절실하다. 지금처럼 별다른 비전도 없는 단체장들이 또 다시 그 자리를 꿰찬다면 전북은 별 볼일 없게 될 것이다. 지난 4.11총선 때 7명을 물갈이 했으나 옥석구분을 제대로 못하다 보니까 존재감 없는 용각산 국회의원도 뽑았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내년 지방선거 때 반면교사로 삼아야 전북이 살 수 있다.그간 현직 단체장에 대한 능력 평가가 일반에 널리 회자돼 있다. 임기 중에 어떤 성과를 거뒀다고 거창하게 부르짖어도 알만한 사람은 그 허구를 다 안다. 행정을 오래 하다보면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항상 전시행정의 유혹을 받는다. 처음에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초심이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고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의회가 집행부를 견제하지만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집행부로부터 유혹 받아 이 같은 시스템도 잘 작동되지 않는다. 더구나 민주당 일색으로 짜여진 현행 구도 하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플레이만 설친다.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원이 단체장 장학생 역할을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의원들이 목에다 힘만 주고 지역서 유지랍시고 호가호위한다.내년 지선에서 도내 상당수 단체장들이 바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조사 받는 단체장들이 우선적으로 물갈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 때와 공사 청탁 대가로 뇌물 받은 단체장은 더 이상 하려고 해선 안 된다.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는 게 그나마 자신의 명예를 보전하고 지역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또 한 번 하겠다고 마지막까지 버텼다가는 패가망신 당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3.11.20 23:02

첫눈 오는 날

정치인 김종필(JP)과 기자들 사이의 첫눈에 관한 일화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어느 여름날 기자들과 기분 좋게 술 한잔 하면서 정치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첫눈 오는 날 다시 만나자, 연락하겠다."며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하는 의례적인 인사거니 생각한 기자들이 이 약속을 기억할 리 없다. 그런데 그해 첫눈이 내리자 JP한테 연락이 왔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하지 않았느냐. 만나자"며 자리를 함께 했던 기자들에게 전화해 회동이 이뤄졌다. 감동, 또 감동∼. 원래 감성이 풍부하기도 했지만 자상함과 신뢰 때문에 JP 주변에는 기자들이 많았다. 특히 정치인이 새겨야 할 일화다. 진정성 없이 "언제 한번 만나자"고 지나치는 식으로 인사하는 이들이 많다. 맛보기로 살거나 신뢰성 없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제 전주와 고창 군산 정읍 남원 장수 임실 진안 등 8개 시·군에 첫눈이 내렸다. 대부분 지역은 많은 양이 아니라서 쌓이지는 않았지만 장수지역에는 오늘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첫눈 내리는 날 이 시를 읽고,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낭만과 추억이 많다면 풍부한 인생을 산 것이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던가. 첫눈은 본격적인 겨울로 진입한다는 신호다. 중년 이후에겐 또 하나의 연륜이 깊어진다는 예고다. 설레임도 없고 낭만과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리는 설레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느쪽에 있는지 해물파전에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서 반추해 볼 일이다. 그리고 다시 첫눈 내리는 날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 보시라.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1.19 23:02

술 그리운 계절

우리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때로는 실제 벗어나 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다. 벗어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온 탕아가 그러하듯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던져 보아야만 새롭게 거듭난 모습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부함에 함몰되기 십상이다. 시인과 예술가들에게는 상상력이라는 놀라운 일탈의 날개가 있다. 누워서도 푸른 바다 그 깊은 곳을 항해할 수 있다. 골방에 앉아 우주 저편의 속삭임도 들을 수 있다. 천재들은 흔들리지 않고도 넘친다. 넘쳐흐름으로써 온 강과 들녘의 온갖 푸르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들 범인들이 항아리에 갇힌 물처럼 그 좁고 퀴퀴한 공간을 온 세상으로 착각하고 있는 동안.그런 비상의 날개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사 주어진다 해도 쉽게 펼치질 못한다. 일상 규범의 부릅뜬 눈 때문이다. "습관이 서리만큼 무거운 추로 내리누르고"(워즈워스) "세월이라는 무거운 짐이 기를 꺾고 구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져 피를 흘리노라!"(셸리) 절규하는 것이다. 상상력이나 천재성을 부여받지 못한 중생은 다른 힘을 빌지 않고는 흔들릴 수도 넘쳐흐를 수도 없다. 그래서 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벗어나기 위해. 크게 한번 흔들려보기 위해. 술은 바람이다. 상상력이 영감의 바람이듯, 그것은 일상의 진부함을 털어버리게 해주는 혁신의 바람이다. 막걸리가 이른 봄 수액이 잘 오를 수 있도록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흔들어주는 바람이라면, 소주는 썩은 가지들을 부러뜨리고 부실한 열매들을 털어내 남은 것들을 실하게 해주는 태풍이다. 취직과 돈벌이의 일상에 쫓기다 "우리 민주주의가 초기화된 컴퓨터"(한승헌)처럼 되어 버린 요즘같이 술의 "혁명적 타격"(고은)이 절실한 적도 없다. 습관의 노예가 되어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화의 자료들 그 소중한 유산마저 날리고 말았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일탈의 소통을 게을리 하다가 민주공동체의 터전마저 빼앗기고 만 것이다.털어내야 한다. 저 진부한 유신의 썩은 가지들! 걷어내야 한다. 푸른 하늘 덮은 "먹구름과 쇠항아리"! 술의 상상력 힘 빌어 "껍데기"에 가려진 "4월"의 "알맹이"(신동엽) 되살려야 한다. '긴 밤 지새우는' 디오니소스적 열정 되찾아 다시 '아침 이슬'의 상쾌한 향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참 술 고픈 계절이다. 진실로 술친구 그리운 계절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3.11.18 23:02

컨테이너의 진화

컨테이너는 일반적으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말하지만, 사전적 해석으로는 화물을 능률적이고 경제적으로 수송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자형 용기를 통칭한다. 대중들에게는 알루미늄이나 강철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컨테이너가 좀 더 익숙하지만 컨테이너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는 목재·합판·강철·알루미늄·경합금·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 의외로 많다. 물론 취급되는 화물에 따라 종류가 달라지고 수송방식, 용도에 따라 크기도 달라진다.이 컨테이너가 진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영역에서 발휘되고 있는 기능의 양상이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움직이는 건축물로서의 기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농막 등 간이시설물로 컨테이너를 활용한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건축물의 소재로서 발휘하는 기능이 커지면서 우리 일상과 문화를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다. 버려진 재료를 재구성하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술가 배영환은 컨테이너를 이용한 도서관을 만들어 냈다. 당초 목재와 골판지로 만든 설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컨테이너로 탄생시킨 그의 도서관은 이동성이 용이해 '움직이는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10여 년 전부터 컨테이너 구조물을 연구해온 건축가 백지원은 '컨테이너 작가'란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컨테이너 건축을 선호한다. 국내외 화제를 모은 서울 논현동의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그의 작품이다. 28개의 군수용 카키색 컨테이너를 연결해 구조물을 만든 이 공간은 필요에 따라 내부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비주류 문화의 상징으로 컨테이너를 주목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늘어나면서 공공미술프로젝트 등 예술작업에서도 컨테이너는 중심 소재가 됐다. 컨테이너 건축물은 물론 적은 예산과 이동 가능한 구조물로서의 기능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정육면체의 규격화된 틀이 갖는 한계 때문에 디자인적 요소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 컨테이너 작업을 해온 작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건축디자인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눈여겨보면 근래 들어 농촌에도 컨테이너 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법규가 완화된 덕분이다. 농막이나 간이시설물 정도로만 활용되면서 조금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던 컨테이너가 제법 예쁜 건축물로 바뀌고 있으니 그 변신이 반갑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15 23:02

김치와 김장문화

'김치와 김장문화'가 오는 12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제8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공식 등재될 예정이다. '김치와 김장문화'가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은 일본이 내세우는 짝퉁 김치 '기무치'를 세계 시장에서 확실히 눌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기무치를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유네스코는 '김치와 김장'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고 가치 있는 문화라고 판단했다. 김치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젓갈과 고추 등 양념을 버무려 만드는 전통 반찬이다. 아삭거리는 식감에 시큼하고 매운 맛 등이 어우러져 시일이 지나면서 또 다른 깊은 맛을 내는 김치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밥도둑'이다. 김장문화는 매년 11월∼12월에 온 국민이 일제히 김장을 담그는 우리 고유문화다. 가족들이 모여서 일심동체가 되어 담그는 김치, 동네 이웃들이 품앗이로 배추를 뽑아 다듬고, 씻고, 양념을 버무려 만드는 김치는 정겨운 공동체생활문화다. 김치와 김장은 가족과 이웃, 고향을 더욱 뜨겁게 연결해 주는 끈끈한 고리다. 김장은 '어머니의 손맛'에서 나온다. 김치 기업들이 김치 전문가들의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공장에서 생산한 김치를 시장에 내놓지만, 그래도 주름진 어머니 손으로 배추 속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양념을 묻혀가며 버무린 김치가 제 맛을 낸다. 김장 김치 맛은 어머니의 사랑이 발효돼 우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어머니들의 손길은 바쁘다. 배추 폭이 단단하게 차오르고, 날씨가 싸늘해지면 고추를 챙겨 빻고, 마늘을 깐다. 멸치액젓도 챙긴다. 김장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참 많다. 배추와 천일염, 고춧가루, 찹쌀가루, 마늘, 양파, 액젓, 우뭇가사리, 무, 배, 사과, 당근, 생강, 쪽파, 대파, 설탕 등 20여 가지에 이른다. 이렇게 수많은 양념을 잘 씻은 배추에 버무린 다음 옹기에 담아 두면 발효가 되니, 김치 미생물이 추가된다. 사람들마다 생김치, 익은 김치 취향이 있다고 하지만, 김치는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각자 나름대로 풍성한 맛을 내니 세계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날씨가 차가워졌다. 김장철이다. 곳곳에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들이 고향집에 모여 부모님 모시고 1박2일, 또는 2박3일 김장 나들이를 하면서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는 시절이 왔다. 김재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3.11.14 23:02

대중교통도 맞춤시대

"이러다간 자가용 차량이 없는 사람은 시골서 살 자격이 없을 거 같아." 버스 이용에 불편을 느끼는 농산어촌 주민들 사이에서 자조섞인 푸념이 새어나오고 있다. 농산어촌 지역 운행 버스는 차량을 보유하지 않은 주민들에게 나들이할 때 절대적인'발' 역할을 담당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서민과 노약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런 버스 목격하기가 농산어촌 지역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뜸해지고 있다. 버스업계가 경영난을 이유로 감차와 더불어 정기 노선 운행횟수를 점점 줄여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승객이 줄고 적자노선 운행에 대한 자치단체의 손실보전금 등이 현실에 못미쳐 운행 횟수 감축은 어쩔수 없다"고 버스업계는 항변한다. 노인들은 버스를 기다리다 목이 빠지고 시내권 시장을 한번 오는데 하루 품을 허비하기 일쑤인 등 버스 감축 운행에 따른 불편은 고스란히 약자들의 몫이다.일부 노인들은 버스이용이 여의치 않자 객지에서 살고 있는 자가용 차량 보유 자녀들을 불러 미뤄놨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한다. 무진장여객 버스기사들이 근로조건을 개선을 요구하며 이달 4일부터 나흘간 전면 파업을 벌여 애꿎은 무주·장수·진안 지역주민들이 불편을 겪은 것도 농어촌버스 업계 실정과 무관치 않다.교육시설인 소규모 학교의 잇달은 폐교에다 대중교통수단 이용마저 여의치 않아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겹겹으로 쌓여간다. 더욱 나빠지는 정주여건은 농산어촌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을 부채질한다.이런 현실에서 전북도가 수요응답형(DRT·Demand Responsive Transporation) 대중체계를 내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해서 관심을 끈다.DRT는 버스 정규노선처럼 노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탑승자의 예약 등 수요에 대응, 여러 가지 노선으로 변형해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대형버스가 아닌 승합차가 농어촌지역이나 벽지노선 주민들이 요구하는 시간과 장소를 수시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버스의 경제성과 택시의 편리성을 결합한 일종의 콜 대중교통수단인 셈이다.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버스업계 예산지원에 골머리를 앓아온 자치단체가 고육지책끝에 내놓은 이 방안이 의도대로 뿌리를 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가용 차량이 없는 농산어촌 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 시행해주길 주문한다.홍동기 논설위원

  • 오피니언
  • 홍동기
  • 2013.11.13 23:02

견훤정권과 전주

"백제가 나라를 연 지 600년 만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소정방을 보내 수군 13만명이 바다를 건넜고, 신라 김유신이 땅을 휩쓸며 당나라 군사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하니 내 지금 감히 수도를 세워 원한을 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견훤의 얘기다. 신라 청년장교 출신인 견훤은 "내가 백제 의자왕의 분을 풀어주겠다"고 공언하면서 국호를 후백제로 정한 뒤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관직을 만들어 직책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가 견훤의 나이 서른 셋, 서기 900년의 일이다. 그러니 올해는 전주 정도(定都) 1113주년이 되는 해다. '천년 고도(古都) 전주'는 여기에서 발원한다. 후백제는 부패하고 타락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혼란기에 출현했던 정권이다. 국가체제도 미비했고 정통왕조도 아니었지만 엄연한 후삼국 시대의 한 축이다. 36년이라는 짧은 역사였지만 기상은 하늘을 찔렀고 지향하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갈수록 쪼그라들고 노령화되고 있는 전북, 정치력이 약화되고 있는 호남에 주는 메시지가 특히 그렇다. "내가 곧 왕"이라고 외치고, "왕건을 무찌른 뒤 평양성루에 활을 걸어놓고 대동강 물에 말의 목을 적시겠다"고 호언할 이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인식 또한 웅대하다. 역사적 계통은 고조선-북부여-백제-후백제로 이어져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연관 짓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백제 도읍인 전주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실로 크다. 역사는 대개 승자의 기록이다. 짓밟히고 구겨진 견훤정권의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진실을 찾는 것,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또한 역사다. 전주 정도(定都) 1100주년이었던 2000년 첫 학술대회('후백제 견훤정권과 전주') 이후 그런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열린 학술대회('후백제 왕도 전주의 재조명')도 그 일환이다. 궁궐 터나 동고산성의 원형보존 등 연구성과도 진화하고 있다. '후백제' '견훤' 등은 우리지역 사람들에겐 묘한 감상과 긍지를 심어주는 정신적 바탕이다. 후백제의 기상과 천년고도 전주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관심과 지원이 더욱 증폭됐으면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3.11.12 23:02

홀로 함께하는 길

이런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혼자 땅을 벗 삼아 땀 흘릴 줄 아는 사람 무시하지 말자고. 이념이 다르고 인생관이 어긋나 함께 술까지는 나누지 못하더라도 나름의 진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적어도 사기(詐欺)를 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혹 시와 음악을 줄길 줄 모른다 해도 좋다. 만에 하나 꽃과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용납하자! 했다. 남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좋아 땅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아니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자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미구에 닥칠 식량위기에 대비하자는 것은 아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처사(處士)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을 문명의 이기에 기대는 기생적 삶만은 조금이나마 극복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혼자서도 오지게 잘 살고 있는 벗 박남준 시인의 삶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회가 빌려준 교수, 위원장 등의 직분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할 때를 대비하고 있을 수도 있겠고. 그런 '사회적 장식'을 털어낸 '존재의 제자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홀로 설 수 있다. 그렇게 의연하게 홀로 설 수 있어야 진정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다. "진리는 홀로 있을 때 우리와 더 가까이 있다. 홀로 있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대화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예배이다. 자주 자연 속에 들어가 혼자 지낸 본 사람이라면 홀로 있음 속에서 나날이 커져가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맞닿는 즐거움이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권하신 법정스님이 인용한 인디언 현자의 말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혼자 살 수는 없다.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증법적 태도가 요구된다. 동아리로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행동거지가 필요한 것이다.이는 확실한 자기중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님이 강조하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기 관리라 함은 세속적 판단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엄정에게 자기를 평가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의연함. 중용의 계신공구(戒愼恐懼)도 이를 강조하기 위한 말일 게다, (홀로 있을 때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라! 오늘도 혼자서 낙엽을 쓸며 스스로 이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당당히 함께하기 위하여!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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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3.11.11 23:02

장서표(藏書票)

책을 사면 첫 페이지 안쪽에 사인을 먼저 하는 습관이 있다. 아마도 아주 어린 시절, 스스로 책을 갖게 된 때로부터 시작된 습관일 것이다. 돌아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누구나가 교과서에 각자의 사인을 해놓았었다. 책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누군가 가져가더라도 금세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그렇다보니 책의 표지 뿐 아니라 옆쪽에까지 잘 지워지지 않게 주인의 이름을 새겨놓은 경우가 많았다. 책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아예 표식을 따로 만들어 책에 붙이기도 했다. '장서표(藏書票)'다. 장서표는 자신이 소장한 책에 대한 소유와 애정의 표시로 책의 안겉장에 붙이는 작은 크기의 판화다. 이 판화에는 책의 주인이 좋아하거나 어울리는 이미지와 '누구누구의 장서'란 의미의 라틴어 'EX-LIBRIS'를 주인의 이름과 함께 새겨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책에 붙이는 용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그 크기 또한 아무리 커도 우편엽서의 크기를 넘지 않는다. 장서표는 15세기 독일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인쇄술이 발달한 19세기 후반에는 폭넓게 확산되어 발전했다. 장서표는 소유를 표시하는 기능이 우선이지만, 판화로 제작되는 덕분에 아름다움을 표시하는 장식적 기능도 커서 현대에 와서는 독립된 판화예술의 한 분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본래의 용도에 따라 책의 주인이 직접 제작하기도 했지만 작가에게 맡겨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서표를 판화작품으로 남긴 이름난 작가도 적지 않다. 장서표의 의미와 판화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이 주목받으면서 그것을 교환하거나 수집하는 애호가들도 세계적으로 많이 늘어났다. 1953년에는 국제적인 장서표 애호가 모임이 처음으로 열렸고, 1966년에는 국제 장서표 협회 연합(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okplate Societies: FISAE)이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결성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서표를 제작하는 판화작가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남궁산의 장서표 작업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대부터 장서표 작업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문화계 인사 들을 중심으로 400여명의 장서표를 제작했다. 동양에서도 장서표와 같은 기능을 하는 장서인(藏書印)이 있었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책을 귀하게 여겼던 시대가 물려준 귀한 산물들이다. 책이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과연 후대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1.08 23:02

단풍

한반도의 10월과 11월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고, 사람들은 만산홍엽의 장관에 이끌려 산으로 몰려간다. 설악산, 속리산, 지리산 등 한반도의 산이란 산은 사람들이 연신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놀라 떨어지는 낙엽이 시나브로 쌓여간다. 월요일이면 SNS에 어김없이 올라오는 산행 사진들도 낙엽만큼이나 수북하다. 높은 산 바위에서, 혹은 붉은 단풍을 배경삼아 동료들과 찍은 사진에서 그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산행을 하면서 느낀 감동과 행복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앞 다퉈 SNS에 올리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요즘 산이 울긋불긋한 것은 낙엽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산을 찾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착용하는 등산 아웃도어가 한 몫 한다. 이제 일상복처럼 된 아웃도어는 세련된 디자인에 빨강, 노랑, 파랑 등 색깔도 다양하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솟아나는 땀을 잘 흡수하고, 신축성도 좋다. 게다가 비바람도 어느 정도 막아주니 등산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아웃도어는 비싼 것이 흠이다. 신발부터 모자까지 잘 차려 입고 산행에 나서려면 100만 원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 많은 나라에서 공급되면서 가격이 내려갈 때도 된 것 같은데 대부분 브랜드가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허황된 소비의식도 문제일 수 있다. 히말라야를 등정할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또 겨울 혹한기에 산을 찾을 일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저가 브랜드 제품도 충분한 것 아닌가. 어쨌든 산이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산을 오를 수 있는 편리한 등산화와 등산복이 일상복처럼 된 세상이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체력을 다지고, 정신 건강까지 챙기는 산행이니 하산하는 사람들이 피곤함을 쉬이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을 산의 단풍 낙엽은 희생이다. 마치 불에 타들어가는 듯 비틀어지며 마지막 빛을 발산하다 떨어져 뒹그는 낙엽은 한그루 나무가 생존하기 위해 요동치는 몸부림이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 성장 활동을 멈추고 낙엽도 떨어뜨린다. 가을 동안에 세포 내부의 수분을 미리 제거해야 겨울 동안 얼어 죽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봄·여름 동안 영양분을 공급해 온 나뭇잎은 그렇게 또 나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뒤에는 썩어 다음 해 나무가 살아갈 양분을 공급해 준다. 단풍철도 이제 막바지다. 김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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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3.11.07 23:02

초라한 국감 성적표

도내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때 밥값을 못했다. 초선이라서 정치력이 떨어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너무 존재감이 없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감에서 송곳 질문을 잘하면 의정 활동은 거의 끝난다. 지난 4·11 총선서 물갈이 욕구에 따라 도내 정치권이 초선들로 7명이나 바꿔졌다. 선출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임기 2년차를 맞아 두각을 나타낸 국회의원이 없다. 전북 정치권은 숫자가 적어 다른 지역 의원들에 비해 두세 배 더 뛰어야 부족분을 메워 나갈 수 있다.야당의원은 원래 야성이 강해야 존재감이 드러나는 법이다. 점잔만 빼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국가예산 확보도 역량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전북이 애를 먹는 이유는 야무진 국회의원이 없어서 그렇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의원이 단 한명만 있어도 국가예산 확보가 한결 수월해 질 수 있다. 기금운용본부 이전에 따른 말들이 많지만 이 문제도 똑똑한 의원 하나만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정부로부터 이행각서를 받아 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렵게 간다. 이 문제를 자칫 어설프게 대응했다간 LH처럼 될 수 있다. LH를 경남으로 빼앗긴 것을 교훈삼아 철저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만약 서울에 본사 형태의 지점이 개설되면 국민연금공단 이전은 기대할 게 없다.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판에 그나마 전북 정치권이 살 수 있는 길은 서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길 밖에 없다. 3선과 재선 각 2명이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우선 돼야 한다. 경험 많은 선배 의원들이 초선들을 잘 이끌고 나가야 지역이 강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각개약진하면 지역은 허당이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존재감을 나타내야 능력을 인정 받는다.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물밑에서 광역과 기초의원들을 물갈이 하려는 징후들이 감지된다. 내년 지선 때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물갈이를 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그런 의원일수록 국감성적이 초라하다. 지역구 관리 한답시고 광역·기초의원 줄이나 세우는 국회의원은 유권자가 더 잘 안다. 쥐 못 잡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듯 중앙 정치 무대서 존재감 없는 국회의원은 한 번 더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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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3.11.06 23:02

지역 정책

수도권은 우리나라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47.9%가 밀집해 있다. 국내 100대 기업 본사의 91%, 공공기관의 85%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금융거래의 67%가 수도권에서 이뤄지고있다. 조세 수입의 71%도 수도권이 차지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프로젝트는 수도권 과밀 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참여정부는 수도권 집중과 지역경제 낙후라는 양극화 고리를 끊어야만 균형개발과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역균형발전을 국정의 우선 정책으로 채택한 동기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혁신도시 및 공공기관 이전,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 지방분권 등 네가지 과제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MB정부에서 지역균형정책은 존재감이 없었다. 아예 무력화 시키려다 반발이 일자 마지못해 추진하는 격이었다. 법적, 제도적 틀이 뒷받침된 세종시와 혁신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했지만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와 지방분권은 흐지부지됐다. 그리곤 수도권, 동남권, 대경권, 호남권, 강원권 등의 '5+2 광역경제권'을 들고 나왔다. '5+2 광역경제권'은 MB 스타일 답게 투자에 역점을 둔 물량개발이다. 하지만 뭘 추진했는지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게 없다. 허당 지역정책이자 지역정책의 퇴보다. 박근혜 정부의 지역정책은 '지역행복생활권'이다. 엊그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이웃한 시·군끼리 연대해서 권역을 설정하고 역할을 분담하면서 도시든, 농촌이든 같은 내용의 일자리· 교육· 문화· 복지서비스를 받아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구상은 좋지만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뜬구름 잡기식이다. 내년 시범사업 예산(350억원)도 보잘 것이 없다. 전국 244개 시·군이 각각 1개 사업만 펼친다 해도 1억∼1억5000만원 꼴에 그친다. 이 돈으로 주민이 행복을 누릴 만한 사업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돈으로 따지면 하수구 정비, 마을안길 포장 등 옛날에 했던 새마을운동에 딱 들어맞는 지역정책이다. 지역정책 중엔 참여정부의 그것이 가장 실효성이 높다.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추진됐다면 지금쯤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지역정책이 자꾸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지역정책이 바뀌는 건 문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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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11.05 23:02

쯔쯔가무시에 대한 경험적 고찰

온 몸이 쑤신다. 몸살감기처럼 뼈마디가 욱신거리고 사지가 나른하다. 오랜 술모임의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나는가 했다. 손목부위에 벌레에 물린 자욱이 있는데 그 주변이 발갛게 부어오르고 겨드랑이에 몽우리가 잡힌다. 젊은 약사는 손목상처가 곪으면서 나타나는 증상 같단다. 소독이나 하고 온전하게 곪기를 기다려 짜는 게 좋겠다며 과산화수소만 권한다. 노곤한 통증을 잊기 위해 그날도 막걸리의 힘을 빌었다. 그 이튼 날도 욱신거림이 가시지 않아 귀한 손님 모시는 자리를 핑계로 또 점심반주를 챙겼다. 몸살기운은 더 심해질 뿐이다. 하지만 내일 중간고사 출제와 오늘 저녁 일정 때문에 병원을 찾을 틈이 없다. 병을 내세워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겠지만 두 달 넘게 집짓느라 애쓴 목수들을 위한 '쫑파티'라 여의치가 않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서울 출장간 팀장목수가 참여가 불가하단다. 그래도 다른 팀원들은 기왕 잡힌 날이니 강행하자고 하더니 막 약속장소를 향해 출발하는데 연락이 왔다. 다른 목수 하나도 참여가 어렵단다. 그래서 병원을 찾을 틈을 얻게 되었다. 그 진단 결과가 쯔쯔가무시!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정말 쉬고 싶었는데 병이 찾아온 것이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사방으로 일정 취소 통보를 해댄다. 의기양양하게! 이 병의 유명세 때문에 긴 변명은 필요치 않았는데 반응이 묘하다. "쯧쯧!" "호호!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네요. 농사 두 번만 지으면!?" 쯧쯧! 혀를 차기도 하고, 꼴에 농사는 무슨 농사? 무시하기도 하고. 그래서 쯔쯔가무시! 이런 병명이 생겼나 보다. 더 묘한 것은 약을 먹고 나니 그 쑤시던 삭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회복이 되는 것. 새벽녘 약기운이 떨어지자 다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약 복용하니 이내 다시 정상. 우리 몸이라는 게 참 별게 아니구나! 보지도 못한 진드기 유충, 그 보잘 것 없는 것에 물렸다고 열이 나고 몸살을 앓고 몽우리에 시달리는 등 요란을 다 떨더니, 작은 알약 세알 먹고 나니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다. 진드기에 쯧쯧 혀 차이고, 알량한 알약 세 개에 무시당하고. 그래 나도 혀 차며 무시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알약 먼저 챙겨먹고 미리 사두었던 양파모를 무려 세 시간에 걸쳐 낸 것이다. 허기는 졌지만 몸은 괜찮다. 그래 쯧쯧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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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04 23:02

구글(Google)과 한글 세계화

세계 최고 검색 사이트인 '구글'(Google)이 한글 세계화에 동행한다. 지난달 30일 방한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 문화 발전과 세계화를 위한 협력 강화안을 밝혔다. 그 대부분이 반갑고 흥미로운데, 특히 한글과 관련해서는 지원 내용이 구체적이다. 내년 개관예정인 국립한글박물관에 설치될 '어린이 교육체험실'이나 체험공간인 '한글배움터', 온라인상에서 한글의 기본원리를 배울 수 있는 웹프로그램 개발 지원도 눈에 띄지만, 한국 문화 홍보를 맡을 구글 문화연구원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한국의 주요 문화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보존해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은 더 반갑다. 한글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우수성에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언어 연구학으로 손꼽히는 영국 옥스퍼드 언어학 대학에서는 합리성과 과학성 독창성 등을 기준으로 분석하는 세계의 문자 순위에서 한글을 1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류가 관심을 모으면서 아시아권은 물론, 중동과 남미 등 세계 각국의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신설되고 있는 것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구글의 슈밋 회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한글 창제의 취지였던 모양이다. 언론 인터뷰를 보니 "백성들이 쓰기 쉬운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한글 창제의 취지가 '전 세계 정보를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게 한다'는 구글의 취지와 통한다"며 "오늘날 한국이 디지털 기술을 선도하게 된 것도 세계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독특한 문자인 한글이라는 원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글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구글의 한글 사업(?)은 몇 년 전부터 일어온 한류의 영향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몰고 온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높아진 관심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로 본 사람만도 18억. 슈밋 회장은 "이 중 1%만 한글에 대해 관심을 가져도 1800만 명"이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은 연간 관람객보다 많은 숫자"라고 분석했다. 구글은 '600년 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 백성의 평등한 소통을 꿈꿨듯, 인터넷을 통해 세계인이 한국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터넷이 품은 한글의 진화, 그 미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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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3.11.01 23:02

건설국장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례가 있다. 바로 도 건설국장 출신의 업계 사무처장 취업이다.지난 29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안전행정부의 전북도 국정감사에서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은 "전북도의 5대 핵심정책 중 하나가 중소기업 육성인데, 정작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들은 총 235건의 공공사업을 주계약자 공동도급 방식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전북은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국감장에서는 종합건설사가 공공사업을 싹쓸이 하다시피 한 것은 도청 고위직 출신이 건설협회 사무처장으로 취업해 일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김완주 지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영주 의원은 "전북도 공무원이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으로 간 것이 도급계약 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15살 아이한테 물어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박덕흠 의원은 "이 제도는 전문건설업체가 하도급을 종합건설업체로부터 받는게 아니라 발주자로부터 직접 받기 때문에 영세 중소기업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개선하기를 권고했다. 국회의원들이 짬짜미 의혹에 대한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전북도가 중소기업 육성을 거창하게 핵심정책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를 외면한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증거 능력이 충분한 셈이다. 사실 도청 퇴직공무원들이 줄줄이 건설협회 사무처장, 상공회의소 사무처장으로 바통터치하듯하며 근무하는 행태는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김완주 지사나 당사자들이 강력 부인하고,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안의 앞뒤를 살펴보면 "15살 아이한테 물어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김영주 의원의 지적은 일리 있다.공무원이 30년 이상 쌓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사장하지 않고 사회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도청 건설국장이 퇴직 후 마치 정해진 코스처럼 건설협회와 상공회의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는 행태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 도청 건설국장이 퇴직한 뒤 당연히 가는 자리가 됐다면 이들은 과연 국장 자리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업무처리를 할까, 향후 예약된 자리를 위해 업무 처리를 할까. 김완주 지사는 부인만 할 것이 아니다. 김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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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3.10.31 23:02

단체장 물갈이

전북의 낙후 요인 가운데는 특정 정당 위주의 오랜 독식구조를 꼽을 수 있다. 개인이나 사회나 라이벌 관계가 아니면 발전할 수 없다. 정치권도 경쟁구도가 아니면 썩어문드러질 수밖에 없다. 지금 도내 절반가량의 민주당 출신 자치단체장들이 수사를 받거나 사법처리를 앞두고 있다. 단체장의 사법처리는 당사자 한사람만의 불행으로 끝나질 않는다. 재·삼선 출마를 못하는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사례긴 하지만 임실군수 자리는 군수 무덤자리가 돼 버렸다. 민선 임실군수가 모두 사법처리 돼 낙마하는 바람에 지역이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정당공천도 물 건너갈 위기에 놓여 있다.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를 통해 일찌감치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당론으로 정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공천 폐지 문제에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공천 폐지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나서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또다시 국민들을 기망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국민들은 그간 정치권의 장밋빛 새빨간 공약에 수없이 속았다. 정당공천 폐지 문제도 유야무야 끝나고 말 공산이 짙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투표를 잘해 본때를 보여 주는 길 밖에 없다. 정치권한테 잘하라 마라 굳이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부정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안 뽑으면 그만이다. 자신과 이해관계에 얽혀 연줄망 투표를 한다면 단체장 비리는 근절시킬 수 없다. 학연 혈연 지연에 얽매여 단체장을 뽑으면 그 순간부터 지역은 망가지게 돼 있다. 그간 단체장들이 사법처리 된 지역은 국가예산 확보는 물론 신뢰도마저 추락해 지역 발전이 뒤처졌다.선거 때마다 단체장 물갈이가 나오지만 이번만큼 교체여론이 높은 적도 없다. 단체장 물갈이는 부패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 다음으로 세대교체를 통한 매너리즘을 방지할 수 있다. 두 번 하고 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신성과 에너지가 고갈될 수 있다. 김완주 지사는 관선 때 고창군수 남원시장을 역임했고 민선 전주시장 2번 민선 지사 2번 등 단체장만 20년 가까이 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크고 작은 업적을 쌓았겠지만 도민들의 머릿속에는 각인될 만한 업적이 없는 것 같다. 백성일 주필 겸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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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3.10.30 23:02

'신PK'의 우리가 남이가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인사 대탕평을 공약했을 땐 이행할 것이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신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신뢰는 지금도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다. 요즘처럼 식언(食言) 실언(失言) 정치인이 많으면 신뢰의 값어치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전북 방문 때 언급한 내용은 지금 끄집어 내 읽어보아도 금언(金言)이다. "우리나라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화합과 통합이 중요하다. 이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꼭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지역균형발전과 공평한 인재등용이다. 이 과제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헛공약이 되고 말 것이다." 정곡을 찌른 언급이다. 그런데 어쩌랴. 당선 이후 10개월이 지났지만 대탕평 인사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인수위 인선과 조각, 부분 개각, 권력기관장 등 여러차례 인사가 이어졌지만 탕평인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호남출신은 가뭄에 콩나듯 한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도 떠났으니 내각엔 이제 김관진 국방, 전남 완도출신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두명 밖에 없다. 그런 반면 주요 사정라인과 권력기관장은 특정 인맥에 장악됐다. 황찬현 감사원장(마산), 김진태 검찰총장(사천) 후보 인선은 '신 PK(부산 경남)'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거제), 정홍원 국무총리(하동),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마산)도 모두 경남출신이다. 김 실장은 청와대 인사위원장까지 겸하고 있으니 그의 입김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가 누군가. 14대 대선을 앞둔 1992년 부산지역 기관장들과 유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지역감정을 부추긴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의 당사자다. 청와대는 "그 자리에 필요한 적임자를 찾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했지만 민주당은 "비정상의 극치"라고 쏘아부치고 있다.통합과 대탕평 인사는 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지역안배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인사 대탕평은 커녕 오히려 특정지역 편중인사가 심화되고 있다. 국민통합이 성사될 리 없다. 더구나 사정 라인에 견제와 균형 세력이 없는 건 불행이다. 특정지역의 '우리가 남이가?'는 2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게 놀랍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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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3.10.29 23:02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안도현 시인이 즐겨 부르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다. 정호승의 시를 토대로 백창우가 곡을 붙인 것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에도 삽입되었고 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영상의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사용되곤 하던 노래다. 작곡자 백창우의 증언에 의하면 이 곡은 김광석이 죽기 전날, 아니 그날 새벽에 녹음을 한 것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노랫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왜 편지를 부치지 않았는지, 원래의 시에서도 그 까닭은 확인할 수 없다. 부칠 필요가 없어서, 부칠 대상이 없어서, 혹은 부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겠지만, 모든 것을 독자 몫으로 남겨놓고 있다. 답답하지만 그래서 울림은 더 커진 것이 아닌가, 짐작은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시에서 '죽은 이를 향한 결연한 절망의 어조'를 강조한다. 세 번 반복되는 "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구절을 그 예로 들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이 '그대'와 우리를 갈라놓은 이 음울한 세계에서 "어떤 고원(高遠)한 가치도 애정도 차라리 부정하고자 하는 절망적 결의"가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어두운 강이 어둠을 향해 흐르는 세계의 모습"!그래서 안도현 시인이 즐겨 부른 것일까? 국정원이나 군 등이 대통령선거에 무시로 개입해도 그것을 항의하는 것이 오히려 위법으로 치부되는 황당함,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보겠다는 교사들의 모임을 엉뚱한 이유를 내세워 갑자기 불법단체로 몰아가는 참담함, 그 절망적 상황을 대변하기 위해서?그러나 이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사람살이의 참혹함에 대한 절망은 그것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들에 대한 준열한 반문을 통해 다시 커다란 희망의 결의로 부활할 수 있다." 유레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만이 진정한 희망의 노래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은 안도현 시인 재판일! 청와대에 있던 안중근의사 유묵의 행방에 대한 시인다운 호기심이 선거법위반으로 엮였다. 질문도 못하나? 그래 노래나 할 걸 그랬다. 오늘 저녁 시인과 어깨동무하며 '부치지 않은 노래'나 불러야겠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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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8 23:02

창조의 동력

'창조경제'가 화두다. 올해 초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최우선 국정운영 전략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운 덕분이다. 사실 '창조'가 시대의 언어로 부상한 시점을 거슬러 생각하면 다소 새삼스럽다. '창조경제'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가 펴낸 책 〈The Creative Economy〉(2001)에서 처음 등장했다. 호킨스는 그 창조경제의 정의를 '새로운 아이디어, 다시 말하자면 창의력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경제 역시 '국민이 가진 창의성이나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는 7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모호성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창조'의 영역은 문화 분야에서 좀 더 일찍 화두로 등장했다. 덕분에 문화 분야의 '창조' 영역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창조도시'의 부상이 그 증거인데, 각 국가마다 지역의 도시들을 주목해 창조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거대한 규모에만 매달리는 경제논리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약속받을 수 없었던 전라북도의 작은 도시들은 창조도시로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전문가들의 답은 희망적이고 명쾌하다. "문화의 시대에서 다시 창조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전라북도는 그 어느 도시들보다도 경쟁력이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확신에는 이유가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는 '창조산업'으로 9개 분야를 분류해 놓았다. 그 '창조산업'의 원형은 문화유산을 비롯해 전통문화표현물, 문화유적, 공연예술, 출판인쇄, 음악, 디자인, 미디어예술, 음식, 영상 등이 꼽힌다. 모두가 문화예술 활동의 산물이다. 전라북도는 전통의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많다. 그 대부분이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돼 방치되어온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생명을 얻고 있다. 그것도 고유한 독자성과 독창성으로 그 가치를 얻으면서 '창조'의 뿌리가 되고, 원형이 된다. 낡고 오래된 전통문화 유산으로부터 아이템을 발굴해 활용하고 그것을 첨단과학의 산물과 융합해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은 산업이 되고, 도시 발전의 동력이 된다.그런데도 지금 우리 지역은 창조의 동력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안타까운일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3.10.25 23:02

독감

올 겨울은 일찍 찾아오고 또 매우 추울 것이라는 전망이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에서 나왔다. 기상청도 올 겨울이 춥고 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 겨울이 길고 추울 것이라는 전망은 과학적 분석에 의한 것이다. 북쪽 시베리아에 올해는 일찍부터 많은 눈이 쌓였다. 바이칼호 주변과 티베트 고원에 이르기까지 일찍 내린 눈이 하얗게 덮였다. 문제는 지구온난화다. 지구 기온이 상승해 눈과 빙하가 녹으면 그 과정에서 수증기와 열이 많아지고, 북쪽 상공에 고기압이 형성된다. 이처럼 북쪽 극지에 눈이 많이 내려 에너지가 상공 성층권으로 이동하고, 성층권이 뜨거워지면 이 일대를 지나는 제트기류가 크게 약해진다. 제트기류는 북위 40∼50도 지역 20㎞ 상공에서 강하게 부는 편서풍이다. 제트기류는 워낙 강하기 부는 바람이기 때문에 평상시라면 북쪽지방 한기를 꽁꽁 묶어 놓는다. 하지만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북극 한기가 북반구 아래쪽으로 크게 확장한다.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는 물론 중국, 유럽, 북미 지역까지 내려오면서 엄청난 추위가 몰아치는 것이다. 겨울은 이 같은 한파 공포와 함께 온다. 추위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감기를 일으킨다. 일반적 감기가 아니라 독감이다. 독감은 일반적 감기 증세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중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지독한 감기를 말한다. 기침으로 인한 인후통과 콧물 증상을 넘어서 근육통과 두통 등 전신 통증이 심각한 감기다. 폐렴으로 이어져 사람 목숨을 앗기도 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들을 괴롭힌다. 다행히 백신이 개발돼 있기 때문에 매년 예방접종을 하면 노약자들도 독감을 피할 수 있다. 지난 7일부터 시작된 독감 예방접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전라북도가 올해 확보한 독감 백신 38만여 개가 접종되면 50세 이상 성인을 비롯한 노약자들은 대부분 독감 안전권에 든다. 하지만 요즘 찬바람에 휩싸인 국정원, 검찰 등은 독감 백신을 맞으려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베리아 한파를 불러 모으고 있다. 아마 그들은 이 사회의 강자, 최고의 갑이기 때문에 독감 정도야 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독감백신을 맞으려고 보건소 앞에서 긴 줄을 서는 노약자들도 체력이 강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역사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힘, 권력은 언제까지 개인 또는 특정 세력의 것이 아니다. 김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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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3.10.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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