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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해야 할 '치유의 숲'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에 들어찬 편백나무 숲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치유의 숲'이다. 이 숲을 가꾼 주인공은 순창 출신 고(故) 춘원 임종국(林種國) 선생이다. 1957년부터 편백나무 253만 그루를 심었다.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기여할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다. 평생토록 혼신의 땀과 열정으로 일궜지만 말년엔 조림사업에 들인 빚이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숲은 외지인 9명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40억원을 들여 숲의 일부를 매입해 국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숲은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연평균 30여만명이 찾아와 숲 체험과 산림욕을 한다. '치유의 숲'은 완주군 상관면에도 있다. 전주쪽에서 죽림온천 가는 길 조금 전에 위치한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이 그곳이다. 꽤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75년 미원그룹이 손가락 굵기의 편백나무를 조림한 것이 무성하게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완주군이 '치유의 숲'으로 명명했다. 지금은 50여만평이 넘는 산림중 26만평이 사유림이다. 산주(山主)가 3명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주 2년만에 이곳을 찾았다. 책 몇권 끼고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마시며 쉴 요량으로 갔지만 실망스러웠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쉴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의자나 쉼터 등은 아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2년전이나 똑같았다. 지난 장마때 비바람에 쓰러진 채 방치돼 있는 편백나무들도 많았다. 내친 김에 옥녀봉 한오봉 쑥재 등산로를 헤집고 다녔다. 2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으로 제격이다. 호남정맥인 이 등산로는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능선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안내판에는 거리나 시간 등이 명기되지 않아 정보기능이 제로였다. 최고봉인 옥녀봉에는 표지석이나 방향안내판도 없다. 완주 '치유의 숲'은 말만 치유의 숲이지 치유받아야 할 숲이었다. 산림욕이나 숲 체험, 편의시설, 간벌 등 손대야 할 곳이 많다. 사유림이다 보니 완주군이 예산을 투자할 수 없는 게 한계다. 축령산의 예처럼 공적 기능이 높다면 완주군이 매입, 가꾸는 게 정답이다. 임종국 선생 같은 철학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산주들이 이 숲을 자치단체한테 넘겨 도민 곁으로 돌려주는 것도 혜안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8.21 23:02

고구마 꽃

중국 인구가 많은 이유는 뭘까. 고구마 때문이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구마가 중국 인구 폭발에 중대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세계 인구는 지난해 말 70억 명을 넘어섰다. 이중 20%인 13억5000만 명이 중국 인구다. 하버드대 드와이트 퍼킨슨 교수에 따르면 중국 인구는 1600년대 1억2000만 명이었고 1913년 4억3000만 명이었다. 인구가 300년만에 4배 급증했다. 이 시기, 특히 청나라 전성기인 강건성세(康乾盛世)에 인구가 크게 늘어난 요인 중 하나는 고구마의 전래 덕분이라는 것이다. 옥수수 감자 등과 함께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인 고구마는 유럽인들이 항해식량으로 싣고 다녔다. 이것이 필리핀으로 전해졌고 1594년경 중국에 도입되었다. 고구마는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다량의 전분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또 가뭄 등 척박한 땅에서도 적응력이 강해 구황작물로 아주 유용하다. 덕분에 청나라 중·후반에 전란과 기근이 이어졌지만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1700년대 가고시마(사쓰마번)에 인구가 급증한 것도 고구마와 무관치 않다.유럽에서 고구마는 한때 부유층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초창기 감자가 독성이 있어 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으로 폄하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는 영조때인 1763년 통신사로 대마도를 다녀온 조엄이 가져와 부산일대에 심었다. 감자보다 60년이 빨랐다. 도입 초기 고구마는 일본에서 들어 와 남저(南藷), 감자는 중국에서 들어 와 북저(北藷)라 구분했다. 대마도에선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부른다. 고코는 효행(孝行)이라는 의미로 흉년에 부모를 먹여 살린 효도 구근이라는 의미다. 우리말 고구마는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구마는 비타민C, 베타카로틴 알토시아닌 등 항암성분을 많이 함유한 웰빙 식품이다.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가 2007년 '더 낳은 건강을 위한 10가지 슈퍼푸드'중 첫번째로 고구마를 꼽았다.올해는 혹심한 가뭄 등으로 여기저기 고구마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나팔꽃 모양의 이 꽃은 행운의 상징이다. 춘원 이광수가 자서전에서 '100년만에 한번 볼 수 있는 꽃'이라 해서 유명하다. 좀 과장된듯 하나 어쨌든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했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8.20 23:02

일본인 아내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전, 전주 오거리광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회원 130여명이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집회였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은 일본인 결혼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날 집회는 전주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회원들은 "이 같은 사죄가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를 씻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심의 목소리를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고 집회 이유를 밝혔다. 이들의 사죄집회를 보면서 문득 한사람이 생각났다. 여러해 전 취재로 만났던 스가노 토모코 할머니다. 1922년생, 올해 91세지만 당시 중풍으로 투병생활중이셨으니 생존해계신다면 참으로 반가울 일이다. 스가노 할머니는 일제식민지시대, 한국남자와 결혼해 현해탄을 건넜다. 당시 와세다 대학에 유학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는 이미 결혼한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으면서 한국인의 아내로 살았다. 호적도 없으니 법적으로는 아이들과도 남이었으며, 주민등록증도 얻지 못한 서러운 삶이었다. 2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이 작고하고 나서는 생계까지 도맡아야 했다. 일본인으로 멸시받으면서도 참고 견뎌야만 남의 집일과 품팔이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 할머니가 즐겨 부른 노래는 이미자의 '가슴 아프게'였다. 스가노 할머니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일제시대,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은 적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내선 결혼' 장려정책 때문이었다. 1920년에 있었던 왕세자 이은과 일본 왕족인 이방자여사의 결혼은 내선결혼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총독부는 내선결혼을 이룬 가정에 표창장까지 내릴 정도로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고 한다. 내선결혼의 대상은 대부분 힘없고 가난한 조선남자들이었다. 일제의 잔혹한 농지수탈과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26년에 내선결혼으로 459쌍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7년 499가정, 1928년 527가정 등으로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나 1940년대에는 해마다 1천여 가정이 내선결혼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 한국인과 결혼했던 일본인 여성들의 말년은 대부분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렸다.국적이 일본이어서 생활보호대상자도 될 수 없었던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자신의 조국 일본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8.17 23:02

올림픽 포상금

밤잠을 설치게 했던 런던올림픽이 지난 12일 막을 내리면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포상금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4년간 흘린 땀과 노력, 눈물의 보상이라 할 수 있는 포상금은 선수들에게 명예뿐만 아니라 부(富)도 함께 거머쥘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금메달이라도 소속 협회와 후원기업, 선수의 외모나 스토리 등에 따라 메달의 경제적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우선 이번 런던올림픽의 정부 포상금은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6배나 인상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금·은·동 메달리스트에게 각각 6000만원 3000만원 18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각 종목별 연맹의 포상금과 기업으로부터 받는 후원금을 합치면 '억'소리'가 난다. 더욱이 외모나 스토리 등 상품성이 있는 메달리스트에게는 광고 섭외가 들어오면 메달의 영광 이외도 '돈방석'에 앉는 성공이 보장된다.한국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양학선 선수는 비닐하우스에서의 성공 스토리로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과 심금을 울리면서 기업과 각계의 후원이 쇄도하고 있다.먼저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매달 받는 연금 100만원 외에 체조연맹 1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5억원, 신한금융지주 9000만원, SM그룹이 약속한 시가 2억원 아파트 등 9억5000만원에다 전주의 한 건설업체가 지어주기로 한 주택까지 합하면 10억원 대가 훌쩍 넘는다.공기권총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낸 진종오 선수는 문체부에서 지급하는 금메달 포상금 1억2000만원과 대한사격연맹 포상금 1억원, KT 포상금 2억원을 받는다. 여기에 연금지급 초과점수에 대한 연금 일시금 1억2000만원을 합하면 포상금은 모두 5억4000만원에 달한다.은메달 2개를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도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SK텔레콤과 CJ제일제당 휠라코리아에서 3억7000만원을 받는다. 올림픽 첫 동메달을 따낸 축구 대표팀은 포상금 18억3000만원 외에도 병역면제 혜택과 선수 몸값 상승 등 더 큰 선물이 주어진다. 기성용 선수의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가 제시한 이적료가 100억원이었으나 올림픽 뒤 영국 일간지가 아스널에서 기성용의 몸값으로 158억원을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불과 2주사이 기성용 몸값이 50억원이 더 뛰었다. 또 독일의 구자철 영국의 박주영과 지동원 카타르 남태희 등 해외파들도 다가올 이적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를 전망이다.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내세운 올림픽 그 이면에는 영광과 명예 뿐만 아니라 '돈의 전쟁'도 치열하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8.16 23:02

실망스런 박근혜

도민들은 새누리당 경선판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에 섭섭해 하고 있다. 유력주자인 박근혜후보가 경선 기간 동안 전북을 단 한차례도 다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고 공약실천발대식 참석차 도당에 들른 것 외에는 없었다. 4.11 총선 때도 박후보가 전주 완산을을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역방송국 합동토론회까지 합쳐 모두 18번의 합동연설회 등이 광역자치단체별로 열리지만 전북에서는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7월26일 광주에서 전남·북 광주 합동연설회만 열렸다.지난 20년 이상 전북은 동토의 왕국처럼 돼 버렸다. 민주당만 있고 새누리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 6·2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18.2%라는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 4.11선거 때는 35.79%를 얻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선거 5일전에 발표된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정후보가 42.8%를 얻어 민주당 이상직후보 31.1%를 11.7%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주시내 공기는 정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여론이 확산됐다. 장관까지 지낸 정후보 한명이라도 당선시켜 지역발전을 가져오자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이처럼 지역 정서가 변해가고 있지만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찾지 않아 실망감만 키웠다. 예전 같으면 표가 안나와 그렇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박후보가 잘못했다. 박후보는 보통 후보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 때문에 도민들은 그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김문수 임태희 안상수 마이너 후보들이 전북을 방문할 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정운천 도당위원장이 "이번 대선서 도민들이 30%를 지지해줘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고 외치지만 자칫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짙다.이유는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후보도 대선 주자로 확정되면 어떤 형태로든 전북을 찾아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그러나 경선 때 전북을 방문치 않고 외면한 일은 비난 받아도 싸다. 도민들은 MB정권서 찬밥신세였지만 지난 총선때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많은 표를 안겨주었다. 전북을 고립시키는 전략 보다도 끌어 안고 가는 전략을 택하는 게 대선 때 도움될 것이다. 백성일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8.15 23:02

한반도는 바둑돌

"조선은 바둑판이요, 조선 인민은 바둑돌이다. 현하(現下)의 대세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인데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다. 네 신선이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들쳐서 따먹으려 하지만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공궤(供饋·손님대접)만 할 따름이라…" 구한말 한반도를 무대로 한 세계 열강의 각축전을 바둑에 비유했다. 정읍 고부 출신으로 동학혁명을 겪고 자란 증산 강일순(1871~1909)은 한반도라는 가로 세로 19줄짜리 바둑판에서 조선 사람들은 흑과 백의 바둑돌이자 '4 신선들(4대 강국)'을 접대하는 주인이건만, 일본과 청, 러시아· 미국이라는 네 신선들의 바둑판(조선) 따먹기 놀이에 휩쓸려 있다고 꼬집었다(강준만의 '한국근대사산책' 3권) 전봉준을 극찬하고 자신의 사상을 '참 동학'이라 했던 강증산이 외세의 눈초리를 꿰뚫어 보고, 당시의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바둑판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 1899년에 갈파했으니 113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는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 말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남북이 서로 다투는 바둑돌이고 미·일·중· 러가 굽어 보고 있다.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이해 당사국 눈치 보며 살 운명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독도를 방문했다. 1500년 전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신라에 복속시킨 우리땅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운운하며 왕왕거린다. 대통령이 자기 땅을 밟는 데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게 국제관계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력은 크게 신장했다. 수출규모로는 세계 7위이고 상선 보유량, 항만컨테이너 처리량 등 물류 인프라는 세계 5위이다. 작년엔 무역 1조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 9번째다. 어제 폐막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13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가별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한국축구는 일본을 꺾고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이런 게 곧 국력이다. 국력이 약하면 짓밟히기 마련이다. 독도도 그렇거니와 한반도의 운명도 결국엔 국력에 달려 있다. 내일이 광복절이다. 극일(克日)에 그치지 말고 국력을 키워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진정한 광복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변국이 우리의 눈치를 볼 때도 오지 않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8.14 23:02

예인(藝人)들 이야기

전북도립국악원에서 펴낸 전통예인 구술사에는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다. 우선 판소리에서의 책거리. 판소리 전수자들은 스승에게 판소리 한 바탕을 다 배우고 나면 그 대가를 치렀다. 금으로 반지나 팔찌를 해 주기도 하고 옷을 맞춰 주기도 했는데 그것을 '책거리'라 했다. 마치 서당에서 책을 다 뗐을 때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선생님, 받으십시오"하고 드리면 "뭘 이렇게 많이 했나!" 그러면서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 많지 않아요" 그러면 스승은 "자네는 명창됐네!"라고 화답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스승의 격려를 받는 것이다.또 하나는 판소리 전수자에게 빠질 수 없는 똥물 얘기. 소리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목이 뒤집어(꽉 쉬어)졌다. 그래서 삭신이 쑤시고 온 몸에 어혈이 생겨 부었을 때 똥물이 최고다. 똥물은 남자 똥만 받아 가지고 3-4개월 삭히는데(발효), 그렇게 되면 똥 건더기는 없어지고 말갛게 된다. 그 국물을 채에 걸러, 대접에 받아 마신다. 마늘과 생강으로 입가심을 하면 끝이다. 똥물은 생똥이나 삭힌 것이나 냄새나기는 매 한가지며 오히려 삭힌 게 냄새가 더 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이일주 선생의 증언이다.고법 보유자인 이성근 선생은 북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북을 칠라믄 소리를 알아야 한다"면서 "가사가 힘이 부쳐서 까라질 적에는 강하게 해 주고, 소리 가사가 맥힐라고 허믄 북으로 메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리 보필을 잘 해주는 게 명고수(名鼓手)란다. 부안 농악(상쇠) 보유자인 나금추 선생은 농악단 이전 국극단으로 전국 공연을 다닐 때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이 처녀였던 자유당 시절, 묵고 있는 여관에 깡패들이 간혹 찾아 오곤 했다. 마루에다 큰 칼을 딱 꽂아 놓고 꽹과리 치는 아가씨를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그러면 새벽에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쳤다. 결국 단장만 곤욕을 치러야 했다.호남 살풀이춤(동초수건춤) 보유자인 최선은 총각때 "여자냐? 남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중매로 늦게 결혼을 했는데 신석정 시인이 주례를 섰다. 지금은 없어진 봉래원예식장에서다. 신혼살림은 전주 중앙동 이시계점(이창호 국수의 집) 3층에 차렸다. 무더위 속에 자칫 사라질 뻔한 얘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8.13 23:02

전주비빔밥의 위기

며칠 전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안부 인사 나누고 막 끊으려는데 그 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주비빔밥이 맛이 없어졌다면서요. 값만 비싸고. 어쩌죠. 전주하면 그래도 비빔밥이었는데……." 근래 들어 '전주비빔밥'의 값이며 맛에 대한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던 터여서 내용이야 새로울 것 없다 치더라도 대한민국도 아닌 미국에 살고 있는 분이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좀 뜨악했다."인터넷에서 보셨군요. 요즘 전주를 다녀간 관광객들이 많은가봐요. 부쩍 그런 불만이 많아졌네요. 식당마다 맛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르니……."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아니에요. 한국 신문 미주판에 그런 기사가 나왔어요.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여기까지 그런 기사가 실리나 싶어 안타깝더라고요." 전주가 고향인 그 분은 유난히 전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깊다. 그 분은 신문에서 '전주비빔밥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잘 써야지 않겠느냐'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제대로 될 수 있도록'이란 말은 '맛도 있고 값도 적정한', 그래서 전주비빔밥 이름에 걸맞은 가치를 지킬 수 있게 하란 이야기일 터다. 얼마전 '전주비빔밥 유감'을 경험했다. 외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였는데 동행한 젊은이들이 유난히 '전주비빔밥'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고민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식당을 찾아 갔다. 점심을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단체손님들이 많아 '유명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문제는 맛이었다. 새벽같이 서울에서 출발했으니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을 시간이었지만 별로 많지 않은 양의 비빔밥을 약속이나 한 듯이 남겼다. 전주에서 전주비빔밥을 먹기는 처음이라는 20대 젊은이들조차 그릇을 비우지 못했다. 인사말로라도 내놓았을법한 '전주비빔밥 예찬'은 물론 없었다.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전주비빔밥'이 위기다. 맛 없어지고 값이 비싸서만은 아니다. '전주비빔밥'의 '전통적 가치'가 사라지고 있어서다. 사실 '밥에 여러 가지 나물을 넣어 비벼 먹는' 비빔밥은 전국 어디서나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런데도 '전주비빔밥'이 유독 이름 내세워진 것은 지역 특산물이 재료로 사용되면서 고유한 맛과 특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른 가지가 넘는 재료에 밥 짓기 방식부터 다른 '전주비빔밥'은 '전주'란 이름을 얹어 한국음식과 맛의 상징이 되었다. 인터넷 지식백과에 나온 '전주비빔밥' 만드는 과정을 보니 그야말로 '황홀한 맛'의 풍경이 따로 없다. '전주비빔밥'의 본 모습이 그러할진대 음식창의도시가 된 전주의 지금 비빔밥은 왜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아지는지. 부끄러운 일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8.10 23:02

돈공천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 공천개혁을 표명했지만 비례대표 돈공천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박 전 위원장은 "공천이야말로 정치쇄신의 첫 단추"라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클린 정치, 클린 공천을 약속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과 친박계 핵심으로 공천위원이었던 현기환 전 의원과 홍준표 전 대표 등이 공천을 대가로 각각 3억원과 2000만원을 주고 받았다는 혐의로 중앙선관위원회가 검찰에 수사의뢰했고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중이다. 옛 자유선진당(현 선진통일당)에선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김영주 의원과 당 관계자 사이에 50억원에 달하는 공천헌금이 오갔다는 혐의로 중앙선관위가 역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이것이 사실이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돈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사고파는 매관매직의 부패사슬이 여전하다는 얘기다.새누리당 안팎에선 공천과 관련해 돈을 준 사람이 더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부산지역 정가에선 현영희 의원 외에도 현역의원 1~2명의 실명이 떠돌고 있다는 전언이다.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에선 공천이 곧 당선이기에 총선때마다 돈공천 소문이 끊이질 않았고 실제 재력있는 무명의 정치신인들이 공천장을 거머쥐고 국회에 입성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사실 돈공천 문제는 그동안 정치판에 고질적인 악습이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조달하기 위해 특별당비 명목으로 공천헌금을 거두는게 오랜 관행이었다. 그래서 전국구(全國區) 국회의원을 전국구(錢國區)라 부르고, 비례대표를 비밀대표라 비꼬기도 한다. 18대 총선때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노식 의원에게서 15억원, 양정례 의원과 그의 모친에게서 26억여원을 받았다가 실형 1년6개월을 선고받았고 김 의원과 양 의원은 당선이 취소됐었다.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이한정 의원에게 당 채권 6억원 어치를 사게 했다가 이 의원과 함께 의원직을 잃었다.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엊그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선진당과 새누리당에서 공천 헌금 문제가 심각했고 18대 국회보다 구린내가 더 많이 났다"면서 "저 같은 경우 단돈 1원도 내지 않고 들어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제게 화살을 퍼부었다. 돈 한푼 안내고 비례대표가 됐다고"라고 실토했다. 부패정치의 고리인 돈공천을 뿌리뽑지 않고는 정치개혁도 깨끗한 정치도 헛구호에 불과하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8.09 23:02

김두관 지지

"LH 본사를 껴안고 죽을지언정 포기할 수 없다"는 플래카드가 전주시내를 도배질 했었다. 김완주 지사를 비롯 도내 국회의원 시장 군수 도의장 도의원 시민 사회단체장 할 것없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LH 유치에 총력을 걸었다. 결과는 당초 경남 진주로 가기로 했던 국민연금공단만 전주·완주혁신도시로 왔다. 자녀 결혼식을 앞둔 김지사는 삭발이란 초강수를 뒀고 뒤이어 최규성·장세환의원도 삭발했다. 도내 의원들도 모였다하면 LH 유치를 위해 결기를 다졌다. 그 누구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현역들은 워낙 지역 여론이 강한데다 4.11 총선을 의식해서 발뺌할 수 없었다.LH가 경남 진주로 간 지금 전북 정치권은 어떠한가.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지사 쪽으로 전북 출신 상당수 전·현직 정치인들이 줄서 있다. 김두관 후보는 LH 유치에 성공한 지사였다. 김완주지사는 패자다. 무소속 출신인 김 지사는 LH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발휘했다.정부쪽을 가급적 자극하지 않고 각계에 포진해 있는 경남 인맥을 총동원해서 유치에 성공했다. 김지사도 밀양 신공항 백지화에 따른 여론 부담이 컸지만 LH 유치로 일거에 지지세를 되돌려 놓았다.지난달 민주당으로 복당한 재선의 유성엽의원은 잉크도 마르기 전 김두관 캠프에서 지방분권추진본부장을 맡았다. 군산 출신 김관영의원은 대변인을 맡았다. 장영달·조배숙 전의원과 이무영 전 경찰청장, 임수진 전 진안군수, 김세웅 전 무주군수, 김희수 전 도의장, 최진호 도의장 등 전 현직 도의원이 대거 지지하고 나섰다. 유의원은 캠프 참여에 대해 "평소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을 역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후보가 누구인가로 고민해왔다"며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 도지사를 역임한 김후보가 최적임자라고 생각해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MB정권이 LH후보지를 결정했지만 전북을 애먹인 상대는 경남 도정을 이끈 김두관 지사였다. 지금까지 전북 정치인들이나 추진위원들은 모두가 MB정권 한테만 비난의 화살을 던졌다. 그러고 나서 지금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전북과 맞짱 뜬 김두관 지사 쪽으로 우르르 달려가 그를 돕고 있다. 지난 5일 김후보는 "전북 도민에게 큰 빚 졌다.갚을 기회를 달라"고 이해와 지지를 부탁했다. 쓸개 빠진 얼간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8.08 23:02

MB정부의 지역신문 홀대

일반인에겐 좀 생소할 테지만 '지역신문발전특별법'이란 게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한 법률이다. 이 법 1조에는 '지역신문의 건전한 발전기반을 조성하여 여론의 다양화, 민주주의의 실현 및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쉽게 말하면 여론의 다양성 확대와 지역사회의 균형발전을 돕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이 특별법에 근거해 2005년부터 6년 동안 매년 평균 150억 원씩 지역신문발전기금이 지원돼 왔다. 기금은 주로 인력양성 및 교육 조사연구, 정보화사업, 유통 및 경영구조 개선, 경쟁력 강화와 공익성 제고를 위한 사업 등에 쓰인다. 소외계층 구독료와 NIE시범학교 지원도 이 기금에서 이뤄진다. 탐사보도나 해외취재 등 기획취재도 이 기금을 지원 받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기금지원은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역신문들에게는 단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러한 성과가 인정되자 국회는 2010년 5월19일 한시법인 특별법을 6년 더 연장했다. 당시 정병국 문광부 장관은 '지역신문발전 3개년 지원계획'(2011∼2013)을 발표하고 2011년 40억, 올해 200억, 내년 200억 원 등 3년 동안 모두 440억 원을 확보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었다.이 약속은 식언(食言)이 돼 버렸다. 올해분 200억 원을 확보하지 않았고 내년 예산도 아예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기금지원에 부정적이라는 게 이유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에는 종편채널을 4개씩이나 안겨주면서 여건이 열악한 지역언론은 말살돼도 상관 없다는 태도다. 국민과 지역언론을 기만한 것이자 MB정부의 지역신문 홀대다. 이 문제는 국회 배재정 의원(여· 44)이 지난달 말 관련 상임위에서 최광식 문광부장관을 상대로 지적하면서 불거졌다. 배 의원은 지난 2011년부터 올해 3월까지 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으로 일하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몫으로 19대 국회에 들어간 초선이다. 당에서는 언론정상화특별위 간사를 맡고 있다. 배 의원은 "내년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수시로 보고하고, 올해 확보하지 못한 200억원 확보 계획에 대해서도 보고하라"고 최 장관한테 쐐기를 박았다. 국회의원 300명이 있으면 뭐하나. 맥을 제대로 꼬집는 똑똑한 한명이 더 낫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8.07 23:02

얼짱궁사와 천양관슬(穿楊貫蝨)

신궁(神弓)과 관련된 고사 두 가지. 하나는 천양(穿楊).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양유기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활을 잘 쏘아 100보 떨어진 곳에서 버드나무 잎을 맞혔는데, 100번을 쏘면 100번 모두 명중했다. 여기서 백발백중(百發百中) 또는 백보천양(百步穿楊)이라는 고사가 유래했다.또 하나는 관슬(貫蝨). 옛날 중국에 비위(飛衛)라는 명궁이 있었다. 기창(紀昌)이라는 사람이 비위에게 활쏘기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비위는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방법을 먼저 익히라고 했다. 기창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일하는 베틀 밑에 누워서 왔다갔다 하는 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 훈련을 했다. 2년이 지나 송곳이 눈앞에 와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게 되자 다시 비위를 찾았다. 비위는 아직 부족하다며,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훈련을 쌓은 뒤에 오라고 했다. 기창은 가는 털에 이를 묶어 창문에 매달아 놓고 매일같이 바라봤다. 열흘이 지나자 이가 조금씩 크게 보이더니 3년이 지난 뒤에는 수레바퀴만하게 보였다. 기창은 조그만 활과 화살을 만들어 이를 쏘아 꿰뚫었는데, 이를 묶은 털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기창관슬(紀昌貫蝨)의 고사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 불렀다. 여기서 '이(夷)'는 대궁(大弓)이니 큰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역시 명궁으로 날렸다. 조선시대에 활쏘기는 무인은 물론 문인들도 인격수양을 위한 필수과목이었다.이런 내력을 지녀서인지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이번 2012년 런던올림픽도 예외가 아니다. 여자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금메달, 남자단체전 동메달·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여자단체전은 1988년 양궁단체전이 도입된 이래 7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이같은 위업 한 가운데 전북 관련 얼짱궁사 3인방이 있어 더욱 자랑스럽다. 충남 홍성출신의 이성진(27·전북도청)과 전주출신의 최현주(28·창원시청), 고창출신의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그들이다. 기보배는 개인전도 우승했다. 이에 앞서 박성현(29·전북도청 감독)은 2004년과 2008년 올림픽 우승의 주역이다. 로이타통신은 비결로 김치 버무리기와 젓가락 사용을 들었다. 여기에 미모까지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조상진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8.06 23:02

미스터 빈

잘 알고 있는 외국인 코미디언을 꼽으라면 단연 '미스터 빈'(로완 앳킨슨)이 아닐까. 영국의 국민코미디언이자 배우인 그는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하다.'미스터 빈'으로 더 널리 알려진 로완 앳킨슨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1978년 BBC의'Not The Nine O`clock News'의 멤버로 참여해 그해 최고의 BBS 인물로 선정된 그는 훗날 최고의 파트너가 된 리차드 커티스와 BBC의 시추에이션 드라마 'Blackadder'로 만나 1983년 국제 에미상, 에이스상, 연예인상을 비롯, 3개의 영국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영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올려놓은 것은 '미스터 빈'이다. 1989년 리차드 커티스와 재결합해 만들어낸 '미스터 빈'은 BBC 최고의 시청률, 영국 최고 비디오 판매율 등 각종 기록을 세워 영국 역대 최고의 코미디물로 평가받는다.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 250개국에서 방송되면서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올려놓기도 했다. 로완 앳킨슨은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쟈니 잉글리쉬2 : 네버다이'에서 역시 자신의 몸개그 특기를 살린 허당 스파이로 열연했다. 이때 공개된 특별영상을 보면 함께 출연했던 동료들이 그의 연기에 임하는 자세나 완벽함에 감탄해 존경심을 보내며 로완 앳킨슨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그는 명문 옥스퍼드대학 전자공학과 출신이다.그냥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이 전 세계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달 28일(한국시각)에 열린 런던개막식에서다.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출연한 그는 영화 〈불의 전차〉 OST의 키보드 연주자였다. 연주 시작부터 끝까지 그가 맡은 것은 오로지 건반 '레' 하나만 두드리는 일. 그 과정에서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키보드를 연주하다가 휴대폰을 만지는가하면 콧물을 닦을 휴지를 가져오느라 손가락 대신 우산으로 연주하더니 급기야는 졸기 시작한다. 잠든 사이 영화 '불의 전차'를 패러디한 영상에서 함께 해변을 달리는 꿈까지 꾸는 그는 연주가 끝나자 놀라 깨지만 능청스러움으로 공연을 마무리 한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여운이 아직 길다.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고 공언했던 연출자 대니 보일이 차려낸 '품격 있는 성찬'이 준 감동 덕분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백미는 '미스터 빈'으로 상징되는 '유머' 코드가 아닌가 싶다. 역시 '영국다운' 선택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8.03 23:02

짓밟힌 인권과 국격(國格)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에서 전기 고문(拷問) 등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충격을 넘어 강한 분노감을 느끼게 한다. 주사파 대부에서 북한 인권운동가로 전향한 김영환씨는 지난 3월29일 전북출신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씨 등과 함께 중국 다롄(大連)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무려 114일간 불법 구금을 당했다가 지난 7월 20일에야 풀려났다. 김씨 일행은 중국에서 불법 체포와 무단 구금을 당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과 인권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거부당했던 영사 접견도 무단 구금된 지 29일만에야 이뤄졌다. 그것도 모자라 강제 노역에 잠 안 재우기와 물 안주기 구타와 전기고문 등 무자비한 고문까지 자행했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 같은 행패가 벌어질 수 있는가. 김씨 외에 전북출신 3명은 중국에서의 억울한 처사에 대해 밝히지 않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김씨가 구체적으로 밝힌 중국 공안의 행태를 보면 치가 떨리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 없다. 더욱이 중국이 유독 한국인에 대해 악랄한 고문을 자행하고 있다는 증언들을 접하면서 우리를 더 격분케 만든다.그러나 중국 정부는 고문한 사실도 없고 조사과정에서 합법적인 권익을 보장했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유엔의 고문방지협약에도 가입했다지만 중국의 인권 인식과 국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선진국가로 인정받기에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이다.더 한심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다. 외교부는 자국민 보호책임이 있음에도 불법 체포 한달 만에야 영사접견이 이뤄진데다 영사 접견시 고문사실을 확인하고도 이에 대해 중국 측에 정식 문제제기를 안했다 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김영환씨에 따르면 고문 사실 공개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는 정부의 간접적인 입장 전달이 있었다니 이 같은 저자세 외교 때문에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계속 무시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정부는 뒤늦게서야 중국 내에 수감 중인 625명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가혹행위 여부를 파악하는 한편 김영환씨가 유엔 인권위원회 등에 제소할 경우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이 더 이상 우리를 우습게보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국격을 높이고 국민을 보호하는 첩경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8.02 23:02

바보셈법

중동에서 한 사람이 낙타 17마리를 남기고 죽었다. 그는 세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큰 아들에게는 절반을 두째에게는 3분의 1을 막내한테는 9분의 1을 갖도록 했다. 단 한마리도 죽이지 말라는 단서를 달았다. 세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대로 낙타를 나눠 갖고 싶어도 계산이 안 되었다. 세 아들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풀 수 없었다. 한마리가 부족해 나눌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마침 낙타를 갖고 지나가던 행복한 바보란 별명을 가진 나스레딘(Nasredin)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낙타 한마리를 이들 형제에 줬다. 모두 18마리가 되었다. 큰 아들은 절반인 9마리를 가졌고 둘째는 6마리 막내는 2마리를 가졌다. 9마리 6마리 두마리를 합하면 17마리가 된다. 3형제는 싸우지 않고 낙타를 나눴다. 나머지 한마리는 원래 나스레딘이 준 낙타였기 때문에 나스레딘이 가져갔다.사실 심리적으로 한마리를 그냥 주었다는 마음을 품지 못하면 그 누구도 이 난해한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나스레딘의 바보셈법은 더 귀하고 위대하다. 지금 정치권이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입만 쳐다 보고 있다.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이 날개 돋친듯이 팔려나가고 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그의 지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안풍이 전국을 강타한 바람에 새누리당 대권 경선과 민주당 경선이 동네잔치로 전락,쪽을 못 펴고 있다.보수 쪽 언론과 박근혜 등 여야 주자들이 흠집내기에 혈안이 돼 있지만 그의 지지도는 폭염마냥 꺾일줄 모른다. 국민들이 나스레딘과 같은 그의 바보셈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지지율 50%인 그가 5% 밖에 안돼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찾아가 1시간만에 양보했다. 그 짧은 시간 역사에 남을 만한 결단을 내렸다. 50%를 가진 이가 겨우 5%인 사람에게 양보한 것은 상상을 초월한 이상한 셈법이다.안철수바이러스가 경영난에 처할 때 세계 최대 바이러스 백신 회사인 맥아피(현 내셔널어소시에이츠)가 1천만 달러에 매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상업적 이익만을 따지는 외국 기업에 회사를 팔면 가족 직원 우리나라 고객 모두가 피해를 본다"고 했다. 안철수의 셈법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의 셈법이 어떤 식으로 대선판을 이끌지 주목된다. 백성일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2.08.01 23:02

대선 주자들의 이미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현대사회를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로 규정한다. TV·광고·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복사한 '가상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현실이자 실재라는 것이다. 그의 대표 학설인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이다. '시뮬라시옹'은 사물이나 사건의 모사를 뜻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 즉 '시뮬라크라(Simulacra)'들이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곳이다. 나아가 모사물이면서도 현실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하이퍼 리얼리티(극실재)를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은 정보와 매체의 증식이다. 그는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대세계와 미디어의 전횡을 비판하고 있다.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치열한 영역 중의 하나가 정치분야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지향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유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정치'를 구사하지 않고는 유권자들한테 어필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박근혜,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서울대 대학원장이 예능프로에 출연해 지지율이 급상승한 건 이미 경험한 사실이다. 한자릿수에 머무르는 일부 대선 주자들도 탄탄한 이력과 정치적 경력, 훌륭한 삶의 궤적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영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 억울할 것이다.한 언론사가 '젊음 표심'을 알아보기 위해 인턴기자 45명한테 'OOO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뭐냐'고 물었더니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공주'를 떠올렸고, 안철수 교수는 '속내를 알 수 없다' '소통'을 꼽았다. 김문수 경기지사에 대해선 '소방서 사건'을,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이장'과 '농부'를, 손학규 상임고문은 '철새정치인''저녁이 있는 삶''애매모호함'을 꼽았다. 이미지에 가려진 능력이나 진정성, 도덕성을 검증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보드리야르의 지적처럼 미디어가 만들어 낸 이미지가 아무리 실재라지만 그에 매몰돼선 안된다. 미래의 국가 통치자를 이미지만 갖고 선택한다는 건 너무 위험하다. 미디어의 전횡, 이미지 정치의 폐해도 냉철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2.07.31 23:02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

서울 송파구청은 보건소나 구민회관 체육문화회관 등의 남자화장실에 아기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했다. 종전에는 여자화장실에만 설치했던 시설이다. 이는 유아를 동반한 부부가 자녀를 함께 돌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또 2009년부터 운행되는 서울지하철 9호선은 객실 손잡이가 다른 지하철과 조금 다르다. 179㎝의 남성용과 163㎝의 여성용이 번갈아 설치돼 있다. 또 7인용 의자 중간에 기둥 2개를 세워 손잡이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 전에는 성인 남성을 기준 삼아 167㎝ 한 가지로 설계했었다. 이로 인해 어린이나 노약자, 남성보다 키가 작은 여성들은 손잡이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것을 성별영향분석평가를 거쳐 개선한 것이다.이같은 사례는 많다. 동일한 외모의 흉터에 대해 남녀 보험금액을 똑같게 적용한다든지 남녀 화장실 이용 평균시간(여성 2분 30초, 남성 1분 24초)을 고려해 여성화장실 변기수를 늘리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여기서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정책을 입안·집행·평가할 때 성별 요구와 차이를 고려해 여성과 남성에게 고르게 혜택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올 3월 16일부터 '성별영향분석평가법'이 발효돼 정부의 법령이나 계획, 사업 등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조례 규칙의 제·개정시 △법률에 따라 3년 이상의 주기로 수립하는 중장기계획 △세출예산의 단위사업은 반드시 이 평가를 거쳐야 한다.이에 앞서 성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되었다.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편성에 반영하는 제도다. 중앙정부는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고, 지방정부는 2013년부터 시행토록 되어 있다. 이러한 성별영향분석평가와 성인지예산제도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의 두 가지 중심축이다. 1995년에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가 양성평등 촉진을 위해 주요 전략으로 도출한 것이다. 이제 양성평등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령이 아니라도 똑같이 대우받아 마땅하다.그러나 보편화·대중화를 위해 아쉬운 점이 있다. 너무 용어가 어렵다는 점이다. '성별영향분석평가 컨설턴트''성인지 예산''성 주류화''젠더 거버넌스' 등 대강 짐작은 가지만 용어가 애매하고 일반인에겐 너무 낯설다. 좀 더 쉽고 친근한 용어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조상진
  • 2012.07.30 23:02

소리꾼의 여름 산 공부

'노스승과 어린 제자들이 마주 앉았다. 삼복더위, 염천의 한낮 기세는 맹렬했다. 자리 펴고 앉은 지 금세,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도 잠시, '따딱 꿍!' 스승의 매서운 북장단에 제자들은 허리 곧추 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칫 다른 생각에 마음 두다가는 장단을 놓치기 십상이다. 눈과 마음을 온통 스승의 눈과 입과 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여러해 전 고 오정숙 명창과 제자들의 여름 산 공부 현장을 찾았을 때 만난 풍경이다. 판소리 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목소리를 얻는,'득음'에 이르는 것과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판소리에 좋은 목소리를 얻는다는 것은 좋은 음색과 판소리에 필요한 모든 표현 기능을 완전하게 익힌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 진정한 명창이라면 좋은 목소리에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런데 득음과 창조적 변이형을 만드는 일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들여다보면 한 시대 이름을 날렸던 수많은 명창들의 명성 뒤에는 한결같이 고행의 수련과정이 있다. 판소리에 적합한 목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얻기 위한 수행은 고통을 스스로 얻고 또한 고통을 스스로 극복하는 시간의 연속 위에서 이루어진다. 득음을 향해 온전히 소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옛 사람들은 '백일공부'라 이름 붙였다.'백'이라는 숫자는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온'의 의미다. 다시 말하자면 '전부''모두''완전함 '을 뜻한다. 백일공부는 '100'이라는 숫자보다'완전함을 향한 공부'에 그 온전한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옛 소리꾼들의 '백일공부'를 오늘로 치자면 '산 공부'와 같다. 기간이나 형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지만 소리를 얻기 위해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수련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명창들은 예나 지금이나 '산 공부'를 하기에는 한여름을 제격으로 친다. 올해도 더위를 몰고 온 7월의 초입부터 소리꾼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으로 절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어떤 소리꾼은 제자들을 동행해 들어갔을 것이고, 어떤 소리꾼은 자기 수련을 위해 홀로 들어갔을 것이다. 소리꾼들의 여름은 시작도 끝도 분명하다. 그러나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행의 과정을 비로소 마주하는 득음의 경지는 그래서 더 숭고한 예술의 세계다. 변하지 않는 판소리의 가치에 우리가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2.07.27 23:02

대통령의 사과

이명박 대통령이 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등과 관련한 촛불 시위 때 두 차례, 2009년 세종시 수정안과 2011년 4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때 한 차례에 이어 이번에 여섯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친인척과 측근 비리와 관련해선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사과다. 취임 후 벌써 여섯 번째 사과를 하다 보니 이 대통령 스스로도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재임중 친형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고 핵심 최측근들이 잇단 비리로 쇠고랑을 차면서 현 정권의 도덕성은 그야말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불과 10개월 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평했던 이 대통령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깎아내렸다.물론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비리로 적잖은 사회적 파문과 물의를 빚어왔다. 전두환 정권 때 친형 전기환이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을 강탈한 혐의로,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본부 회장을 맡아 공금 7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 때는 6공 황태자로 불리던 처조카 박철언이 슬롯머신 업자에게 6억 원을 받았다가 징역형을 살았다. 김영삼 정권 때는 소통령이라고 불리던 차남 김현철이 한보그룹 비리에 연루돼 66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됐다. 김대중 정권 땐 장남 홍일과 차남 홍업 삼남 홍걸 등 세 아들이 이권청탁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가 사법처리됐다. 노무현 정권 때는 형 노건평이 세종증권 인수 청탁 대가로 9억여 원을 받았다가 옥살이를 했다.하지만 이 정권만큼 친인척과 측근비리가 전방위적으로 드러난 전례는 없다. 현 정권 최고 실세로 상왕(上王), 만사형통(萬事兄通)으로 불리던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 방통대군으로 통하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왕(王)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문고리권력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등. 이 대통령 임기중 구속되거나 사법처리된 사람만 모두 19명에 달한다.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할 날이 채 5개월도 안 남았다. 더 이상 친인척과 측근비리로 국민 앞에 머리 숙이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잘 보고 잘 뽑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긍심과 국격(國格)을 높이는 길이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2.07.26 23:02

3인의 불편한 진실

전북서 지사를 3번 지낸 사람은 아직 없다. 강현욱지사가 민·관선으로 2번했고 유종근 지사는 민선으로 2번했다. 행시로 지난 74년 공직에 입문한 현 김완주 지사는 지난 89년 고창군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남원시장, 민선전주시장 2번, 도지사를 연임해 자치단체장만 17년째 하고 있다. 36년 공직 생활 중 고향 전북서 절반 가까이를 자치단체장만 하고 있다. 무척이나 관운이 좋은 사람이다.시중에서 그의 3선 도전에 관심이 많다. "김지사처럼 일을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 없어 다시한번 지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기 후반들어 김지사의 행보가 빨라졌다.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빈도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각계에 그의 지지자 (장학생)들이 많아 은연중에 김지사의 공로를 치켜세우면서 3선에 나가야 한다고 당위성을 편다.김지사는 4.11 선거에서 자신감을 얻은 것처럼 보인다. 우군이었던 정세균도 종로로 떠났고 자신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정동영·신건은 낙선하거나 낙천했고 강봉균·이강래는 정계를 은퇴했거나 낙선한 바람에 홀가분해졌다. 3선인 최규성의원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맡았지만 그의 형 관계로 아직 대적할만한 사이는 아닌 것 같고 3선인 김춘진 의원도 가까스로 당선됐지만 도당위원장 선거서 이춘석한테 패해 쉽사리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초선이 7명이나 포진해 김지사가 모처럼만에 전북 정치권의 중심에 섰다. 눈엣가시처럼 여겨진 무소속 유성엽의원의 복당이 절차만 남겨 놓아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 시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송하진 전주시장과 임정엽 완주군수의 움직임이다. 현재 전주·완주 통합을 앞두고 전주시의 상생방안이 가시화 돼 통합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럴 경우 그림판이 달라질 수 있다. 시중서는 송시장이 지사로 임군수가 통합시장으로 가는 게 순서라고 주장한 사람이 많다.취임초 경전철을 백지화시켜 김지사와 불편했던 송시장이 권력의지를 가다듬어 지사직에 도전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박원순서울시장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폭을 넓혀온 임군수는 통합시장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이 대선서 승리하면 전북권력도 재편된다. 그 때 김지사가 MB에게 보낸 새만금 감사의 편지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백성일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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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2.07.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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