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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애연가들이 멋있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 TV는 물론 술집, 다방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일상적이었다. 버스 안에서 피우고, 사무실 등 작업장에서도 '멋있게' 피워댔다. 그들은 "처칠은 애연가였지만 90세까지 장수했다", "담배를 입에 댄 적도 없는 아무개가 폐암에 걸렸는데 40년 넘게 담배를 피운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는다. 또 "국가가 허락했고, 엄연히 세금까지 내는데 무슨 상관이냐","술 마시고 사고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알아서 한다" 등 항변을 한다. 어느 애연가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항공료가 얼마인데 10시간 넘게 담배 한 개비 못 피우게 하느냐"며 참담해 한다. 오죽하면 담배소비세에 눈이 먼 일부 지자체장들 사이에서 재경향우회 인사 등을 대상으로 담배사주기 캠페인까지 벌였을까.지난 달 스위스 루가노에서 암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세계종양학포럼'에 따르면 전체 흡연인구의 절반 이상이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한다. 흡연은 조기사망의 최대 원인이라고 한다. 또 흡연이 전체 암 사망 요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22%로 연간 170만여명이 흡연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이 중 100만 명 가량이 폐암으로 숨진다. 그럼에도 현재 전 세계 흡연인구는 청년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매년 3000만 명씩 늘고 있다고 추산했다. 담배가격을 올리고, 금연구역을 대폭 확대하고 있지만 담배피우기는 요지부동인 것 같다. 오죽하면 담배가격을 올려도 담배기업 이익은 17% 가량 높아진다는 분석이 나올까 싶다. 이런 가운데 14일 서울시가 '금연도시 서울' 선포식을 개최했다. 모든 실내 다중이용시설에서 전면 금연을 추진하고, 내년부터 금연 버스정류장을 추가 지정한다고 한다. 세계 176개국 보건당국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2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면세점에서의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담배에는 타르, 니코틴, 일산화탄소 등 3대 유해물질 외에 약400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리고, 이 중 30%는 흡연으로 사망한다. 폐암의 90%는 흡연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흡연자의 가족, 동료 등 지인까지 간접흡연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김재호 논설위원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게 돌아간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간에 단일화를 후보 등록전에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쪽은 준결승에서 누가 이겨 결승에서 자신과 맞붙을까가 관심사다. 2012년 대선판이 2002년 처럼 닮아가고 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대선판은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대선판인 것 같다.후보단일화를 앞두고 요즘 도내 선거판도 출렁거린다. 평상시 꼴도 안 보이던 사람들이 속속 도내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간 어디서 무얼 했는지는 몰라도 신수들은 훤하다. 거의다 민주당 사람들이다. 단일화를 앞두고 문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 올리려고 발버둥친다. 앞으로 10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론이 호락호락 하지 않고 있다. 문 후보 쪽이 상승세를 타는 것 같지만 안 후보의 결집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두 후보가 단일화 하기로 합의하기 전만해도 상당수 도민들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기려면 무조건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은 누구로 단일화 하느냐가 관건이다.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두가지로 나눠서 한다. 박근혜 대 문재인,박근혜 대 안철수 그리고 문 과 안후보를 놓고 후보 적합도를 물어 본다. 물론 3자 대결도 묻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 사실상 후보적합도도 물어볼 필요가 없다. 누가 야권후보로 나가야 박후보를 이길 것인가 경쟁력만 물으면 된다.여기서 헷갈린다. 그간 계속해서 양자 대결시 안 후보가 박 후보를 이겨왔다. 문 후보는 엎치락 뒤치락 거렸다.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한다면 적합도는 빼는 게 옳다. 결승전에서 누가 나가야 박 후보를 이길가만 물으면 된다. 너무 여론조사가 시시콜콜하게 들어 가면 안된다. 단순화 시키는게 좋다. 여론조사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승보다 준결승전에 더 관심이 쏠려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도내서도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그간 민주당을 싫어했던 사람들도 당 조직을 풀가동시켜 미워도 다시한번을 읊어대는 바람에 문 후보쪽으로 움직인 것 같다. 하지만 젊은층은 요지부동이다. "자신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사람은 안 후보 밖에 없다"며 변함없는 지지를 보낸다. 도민들은 야권단일화가 이뤄져도 결승전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백성일 주필
프로야구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은 12월11일이다. 이 날은 1981년 해태와 롯데, 삼성, MBC, 삼미, 두산 등 6개 구단주들이 서울 롯데호텔에 모여 프로야구 발족을 결의한 날이다. 오늘의 프로야구를 있게 한 기점이다. 매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12월11일에 여는 것도 프로야구 발족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올해도 이 날은 의미 있는 날이 될 것 같다. 10구단 창단 안건이 내달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다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구단주들은 이제 10구단 창단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됐다. 사상 첫 720만 관중 돌파와 드세진 10구단 창단 여론, 9개 홀수 구단 운영에 따른 문제점 때문이다. 관심은 창단팀의 연고지를 어느 지역으로 할 것이냐에 있다. '야구의 명가' 전북이 수원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원은 작년 3월 전북보다 5개월 먼저 유치의향서를 KBO에 제출했다. 지난해 9월에는 33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프로야구 10구단 수원유치를 위한 시민연대'를 출범시켰다. 그리곤 마침내 공룡기업인 KT를 연고기업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KT는 실은 전북이 작년 연고기업으로 의향을 타진한 기업이다. 수원의 제의에도 KT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었다. 그럼에도 경기도와 수원은 악착스럽게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전북은 뒤퉁수를 맞은 셈이다. 전북의 유치 노력은 수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수원 따라하기' 수준이다. 전주시가 맨 처음 10구단 유치 뜻을 밝히자 전북도가 이를 가로채 군산 익산 완주 등 4개 자치단체 공동 추진으로 틀을 잡더니 성공기미가 희박하자 최근엔 "전주시 니네들이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기 발언이 책임자급 입에서 나온 적도 있다. 뒤늦게 전북도가 지방의회와 시민사회단체를 내세워 유치추진위를 구성하고 나섰지만 이 역시 면피성 발빼기라는 인상이 짙다. 연고기업으로 점지된 하림과 전북은행 등 향토기업도 마지 못해 따라가는 식이다. 수원이 KT와 손 잡자 '전의(戰意)'를 상실한 상태다. '야구 명가'의 부활은 치밀하고 집요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지 대충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시늉만 하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지난해 6월 23일, 미국 뉴욕 팰리스호텔에서는 국민연금공단 뉴욕사무소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CEO등 세계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 200여 명이 모였다. 일본 노르웨이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 4번째 기금을 보유한 연금공단의 위상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평소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하지만 돈의 힘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이처럼 세계적인 '큰 손'으로 등장한 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전북 이전 문제가 이번 18대 대선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동반이전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부터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표를 의식한 단편적인 공약에 불과한데다 현실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독립공사 설립도 염두에 둔 듯하다.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제출을 주도적으로 이끈 뒤끝이어서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 문제의 발단은 지난 해 5월 경남 진주로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일괄이전에서 비롯되었다. 전북사람으로서는 기억하기 조차 싫은 '일대 사건'이었다. 얼마나 큰 아픔과 상실감을 주었든가.어쨌든 정부는 LH 대신 국민연금공단을 전북혁신도시에 이전시키되 기금운용본부는 서울에 잔류키로 결정했다. 전북이 금융인프라가 부족하고 수도권에 90% 이상의 금융기관 본사와 전문인력이 집중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펀드매니저들의 정주여건도 좋지 않다는 점도 꼽았다. 전북도에서는 LH 후속대책으로 이를 요구하다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전북 표심을 획기적으로 반전시켜야 할 문 후보가 이를 대선카드로 활용한 것이다. 기금운용본부는 연금공단의 핵이다. 기금이 2013년 말이면 430조요, 2020년에 1000조에 이를 전망이다. 물론 기금운용본부가 온다 해서 이 돈이 전북에 투자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본부가 전북혁신도시에 오게 되면 세계 금융의 눈이 전주로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은행과 투자회사 등의 사무소가 전주에 들어서고 이와 관련된 비지니스가 활성화될 것이다. 전북의 산업지도가 바뀌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기금운용을 서울의 대자본과 모피아(MOFIA)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있고, 지역균형발전에도 합치한다. 다만 문 후보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 있다. 가령 광주에 종합상품거래소 설치를 공약한 것과 같은 차원이라면 곤란하다.조상진 논설위원
내년부터 한글날(10월 9일)이 다시 공휴일이 된다. 지난 1991년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된 지 22년 만이다. 한글날이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면 대통령 선거 등 선거일 공휴일을 제외한 공휴일 수는 연간 15일로 늘어난다. 사실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후 한글학계를 비롯한 관련단체와 시민들은 줄곧 한글날의 공휴일 재지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번 재지정도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을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한 바탕이 크게 작용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로 '휴식ㆍ여가ㆍ관광 등의 활동에 따른 노동생산성 향상'(33.7%), '내수경기 활성화'(21.3%), '일자리 창출'(13.9%) 등을 꼽았고, 사회문화적 효과로는 '한글에 대한 자긍심 증대'(45.9%), '국가브랜드 제고와 한류확산 기여'(34.2%), '삶의 질 향상'(14.0%)을 기대했다. 알려지기로는 '문자의 날'을 국경일로 만든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예외 없이 온라인에서도 네티즌들의 '환영' 댓글이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으로 당장 곤경에 처한 업종도 있다. 달력제작사들이다. 달력제작사들은 이미 2013년 달력의 대부분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물론 한글날인 10월 9일은 빨간색이 아닌 검정색 글씨로 되어 있다.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이 발표되면서 인쇄업체에는 주문한 달력 제작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해마다 이맘때쯤부터 시중에는 신년 달력이 돌기 시작했다. 근래 들어 온갖 생활용품의 활용으로 달력의 쓰임이 예전만 못해지고 덕분에 수요도 크게 줄었지만, 오늘날의 달력은 정보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더해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달력은 형식이나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달력이 장식품의 기능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기 시작한 유행이다. 이제 달력은 생활용품이자, 예술품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이 달력 안에 들어온 지도 이미 오래다. 달력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미술품과 제 기능을 조화시킨 달력 제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달력제작은 시장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인쇄업계에서는 달력 제작 주문량에 따라 그 해의 경기를 가늠한다고 한다. 올해는 신년달력이 얼마나 많이 제작되는지 모르겠으나, 그 대부분을 이미 만들어낸 달력제작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정부든 기업이든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생산적이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조직 체계가 수평적이든 수직적이든 모든 조직에는 구성원들이 각각 특정한 일을 맡아 수행하고 있다. 조직의 수장은 물론 저마다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 제대로 배치됐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좋은 조직은 잘 짜여진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 사람은 그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짜여진 시스템이 작동하는 조직이라도 각각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해당 업무에 적합한 인물인지 여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수장을 맡는 자는 더욱 그렇다.목민심서에 보면 위관택인 무위인택관(爲官擇人 無爲人擇官)이라는 말이 있다. 일을 위해 사람을 써야지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면 안된다는 뜻이다. 선거는 일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선출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지방 의원, 지방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 교육감 등을 선출한다.하지만 일을 해야 할 선출직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위인택관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의원을 뽑는 이유는 단체장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단체장도 의원을 견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견제는 사라지고 '담합' 관계가 형성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즘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전도 그렇다. 후보들의 정책,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이제는 제1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간 '후보 단일화'가 대선전의 핵으로 떠올랐다. 제1야당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꺾겠다는 전투의지만 불타는 듯 하다. 후보와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그들만의 '자리 다툼' 선거로 전락한 양상이다. 국민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최근 전라북도의 전북개발공사 제7대 사장 임용을 위한 세 번째 공모에 A씨가 단독으로 지원한 모양이다. 전북개발공사 사장 자리는 유용하 사장의 임기가 만료된 지난 5월27일 이후 6개월째 직무대행 체제다. 특정인이 사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 즉 위인택관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면서 능력을 펼쳐 보이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자리 조정에 의한 위인택관형 낙점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다. 정약용이 위관택인을 강조한 것은 당시 조선사회에 위인택관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산의 충고는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고언(苦言)같다. 김재호 논설위원
대선이 42일 앞으로 다가섰지만 아직도 안갯속이다. 뚜렷한 이슈 없이 진행된 이번 대선은 후보에 대한 알권리 충족에서 부족한 면이 많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TV 토론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고 있다. 문· 안후보는 박 후보가 KBS 토론회에 불참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반면 박 후보는 "방송국 사정으로 연기된 것"이라면서도, 단일화 이전에는 TV토론에 참여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1960년대 리처드 닉슨은 존 F 케네디와 대선전에서 맞붙었을 때 텔레비젼 때문에 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경력의 웅변가였던 닉슨은 무명에 가까운 신인 후보 케네디와의 TV 토론에서 시종 수세적인 입장을 취했다. 케네디는 멋지고 미남으로 보였지만 닉슨은 카메라를 향해 찡그렸으며 수염이 약간 자라난 뺨위로는 땀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닉슨은 현직 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지만 TV토론 이후 선거에서 승기를 잡지 못해 패했다. 미 대선에서 TV토론은 유권자가 후보를 평가하는 중요한 선거 이벤트가 됐다.우리 대선에서는 1992년 TV를 활용한 방송 연설이 처음 도입됐다. 이때는 단순히 대선후보가 나와서 TV로 자신의 정책을 발표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1997년 대선때 본격적으로 TV토론이 시작됐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TV토론만 54회가 열렸고 언론사 단체 초청까지 합하면 100여회가 넘었다. 2002년에 TV토론이 27회나 열렸는데 공식적인 TV토론 이외에 각종 토론회가 얼마나 열렸는지 토론 좋아하기로 유명했던 노무현 후보 조차도 불평할 정도였다.2007년 17대 대선에서 TV토론이 갑자기 11회로 줄었다. 이것도 토론회와 대담을 합친 횟수니 실제로 15·16대 대선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토론이 줄어든 이유는 이명박후보가 TV토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TV토론에는 후보간 토론과 대선후보가 참석해서 패널,기자 등이 질문하고 답하는 초청토론 그리고 후보들이 순차적으로 나와서 벌이는 순차토론이 있다.현재 공식적으로 잡혀 있는 TV토론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3차례 토론 밖에 없다. 지금 유권자들은 후보가 얼굴을 맞대며 투표시간 연장 문제 등 불거진 이슈에 대해 진지한 설전을 보기 원한다. 그래야 안개가 말끔하게 걷혀 후보간 우열이 드러날 수 있다. 백성일주필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오랜 세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혁명 발생 110년만인 2004년 2월9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국가 차원의 신원(伸寃)이 이뤄졌다. 특별법을 계기로 혁명 참여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국가기념일 제정에 관한 것이다. 혁명일을 기리고 고혼들의 넋을 달래면서 혁명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의 핵심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일을 기준점으로 둘 것이냐, 전승일로 둘 것이냐 아니면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을 공포한 날로 할 것이냐의 문제다. 시작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 혁명 창의문 발표와 전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선 고창 무장기포일(음력 3월20일), 전승일을 기준으로 할 경우 농민군이 처음 승리한 정읍 황토현 전승일(4월7일)과 전주 화약을 이끌어 낸 전주성 점령일(4월27일)이 유력한 대상이다. 작년 한해동안 여러 후보 안(案)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거쳤지만 허사였다. 고창·정읍 등 지역간 대립이 첨예하고 이해관련 단체나 유족회, 학계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조정의 무능과 부패, 누적된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 했던 민족운동이자 농민운동의 효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옥신각신 할 일도 아니다. 기념일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영령들에게 무슨 낯을 들 수 있을까. 참으로 딱하다. 그런데 얼마전 전국유족회가 특별법 공포일(3월5일)을 기념일로 정부에 제안했다. 대의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참여자의 64.4%가 이 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기념일을 어떻게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있지만 차선책으로 그렇게 한 것이겠다. 정부는 기념일 결정에는 간여하지 않지만 합의해 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학계나 관련 단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대승적 차원의 화합과 열린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언제까지 내 주장만 고집할 텐가. 118년 전 척박한 풍토에서 자주와 민권의 뜻을 곧추세웠던 선조들의 심정으로 돌아간다면 고민꺼리 축에도 끼이지 못한다. 내년엔 전국적인 축제의 마당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념일 결정이 해를 넘기기 전에 매듭됐으면 하는 마음이다.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대흥마을에 들어서면 여느 농촌마을과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1920년대 보천교(普天敎) 본산이 자리잡아 융성했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당시 보천교는 교농일치를 주장해 산업을 일으키고 교육에 힘썼다. 덕분에 이곳에는 기계농업과 잠업, 제직(製織) 등 각종 산업이 발달했다. 보천교가 번창할 때는 1000여 가구가 교당을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로 일대가 성시를 이뤘다. 특히 행사가 있는 날은 경상도 강원도 할 것없이 전국에서 신도들이 몰려와 하얗게 길을 메웠다.보천교는 강증산의 수제자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신흥종교다. 고창출신인 차경석은 1909년 강증산 사후 교단을 세우고 세력을 넓혀갔다. 1920년부터는 전국의 신도를 60방주(方主)로 조직하고 단순한 종교지도자를 넘어 새로운 국가 건립을 천명했다. 자신을 조선과 중국 일본의 천자(天子)로 내세웠다. 당시 나라가 망하고 의지할데 없는 민중들은 강한 민족적 색깔과 메시아적 구원에 희망을 걸었다. 날로 교세가 확산돼 한때 간부급만 50만 명, 신도가 60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처럼 보천교가 민중 속에 자리잡자 일제가 가만 둘리 없었다. 탄압과 내부분열을 꾀하는 한편 회유책을 썼다. 이후 친일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이런 와중에 차경석은 1925년부터 4년에 걸쳐 대흥마을 2만평 부지에 대규모 성전(聖殿)을 지었다. 건축물이 45채, 부속건물이 10여 채였다. 그 중 중심교당이 십일전(十一殿)이었다. 십일전은 건평 350평에 높이 30m, 가로 30m, 세로 16.8m에 이르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목재는 백두산 근처의 침엽수를 베었고 조선팔도의 석재를 모아왔다.하지만 일제는 1936년 차경석이 세상을 떠나자 교단을 강제 해산시키고 재산을 공매처분했다. 당시 건축비 50만 원이 들었던 십일전은 500원에 팔려 조선불교 중앙종무원에 넘어갔다.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문이었던 2층 누각 보화문은 내장사 대웅전으로 재건축되었다. 내장사는 6·25 전쟁 때 건축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석재로 된 대웅전 배흘림 기둥 3개만 살아 남았다. 지난 31일 화재로 내장사 대웅전이 다시 소실되었다. 이번에도 보화문에서 옮겨온 기둥만 남았다. 불타버린 내장사 대웅전을 보며 보천교의 운명이 떠올랐다. 조상진 논설위원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는 '우반동'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우반동은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반계서당'을 짓고 말년을 보내며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한 곳이다. '반계'는 우반동을 가로 지르며 흐르는 냇물의 이름. 서른두 살에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유형원은 그 이름을 따 호로 사용했다. 반계는 명문가 출신의 서울태생이다. 그의 부친 또한 한림학사로 이름을 날리는 학자였지만, 인조대에 광해군의 복위를 꾀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자결했다. 반계 두 살 때였다. 반계는 이후 집안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문을 익혔지만 벼슬보다는 산야에 묻혀 지내는 삶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 그는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살았다. 병자호란 때 피난 갔던 원주를 비롯해, 경기도 지평과 여주, 함경도, 금강산, 호남 등 여러 지역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경험은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계는 비록 초야에 묻혀 살았지만 글이나 읽고 책만 쓰는 만년서생이 아니었다. 세상을 걱정하고 나랏일을 근심했으며 현실적 문제를 분석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펴낸 것이 '반계수록'이다. 반계는 '그때그때 보고 들은 것을 모아 쓴 기록(수록)'이라고 겸손한 이름을 붙였지만 이 책은 양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조선사회를 개혁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혁안을 제시한 대작이었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로 통일할 것', '사간원을 폐지하고 사헌부로 통일할 것', '경연과 예문관을 폐지하고 홍문관으로 통일할 것', '의금부를 폐지하고 형조를 강화할 것', '왕실 소유의 막대한 장토(庄土)와 노비를 관리하는 내수사를 폐지할 것' 등등 국가의 세금과 교육, 군사, 신분제도 등에 걸친 방대한 개혁안은 아쉽게도 당대에는 실천되지 못했다. 그가 재야에 묻혀있었던데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이었다.'반계수록'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후다. 기록에 따르면 1760년 영조는 '반계수록'을 '경제에 관련한 탁월한 저술'이라 평가해 간행하게 했다고 한다.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대선 후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시하는 정책들을 보니 이미 수백 년 전에 시대를 통찰했던 '반계수록'에 담겼던 개혁안과 닮은꼴이 적지 않다. '반계수록'의 개혁안이 당대에 실천되었다면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지난 2004년 9월 15일 전주시 진북동 전주천변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역의 미술, 음악, 판소리 등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신예 작가들을 주로 지원하는 우진문화재단이 지상 3층 규모로 세운 '우진문화공간' 신축 개관식 자리였다. 현재 연건평 1,055평 규모인 이곳 1층에는 전시실과 공연장이 갖춰졌고, 2층에는 창극·무용·연극 전용 연습실과 세미나실도 마련됐다. 민간 시설이면서 대관 및 시설 이용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청년 작가들에겐 매력적인 공간일 것이다.우진문화공간은 기업인 김경곤씨가 1991년 3월 문을 열었다. 10년 후인 2001년 재단법인 우진문화재단을 설립, 한층 짜임새 있는 운영 틀을 갖췄다. 개관 이래 '판소리 다섯바탕의 멋'을 비롯해 신예작가 초대전, 청년작가 초대전, 우리소리 우리가락, 우리 춤 작가전 등 공연 및 전시기획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문화공간 운영으로 돈벌이는 힘들 것이지만 벌써 21살 청년으로 성장시켰다. 그만큼 많은 관심도 받는 모양이다.예술인들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미술을 창작하는 등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이 마음 편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하다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지는 꺾일 수 있다. 또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지역 대중들의 소외감도 클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의 크고 작은 갤러리 운영이나 일부 기업의 문화공간 지원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전북은 판소리의 고장이다. 또 과거 연극계의 거장 박동화 선생이 활동하고, 또 6.25전쟁 당시에 '아리랑' 등 많은 영화가 제작된 문화 예술의 고장이다. 하지만 전북은 '3% 경제'란 꼬리표처럼 기업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이 미미하다. 크든 작든 기업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예향 전북'의 문화적 자존감은 훨씬 커질 것이다. 최근 정읍 출신 인기배우 박근형씨가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몇 년 후 고향에 돌아와 연기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근형씨가 연기 수업의 뜻을 고향에서 펼친다면, (그가 기업인은 아니지만)이것도 일종의 메세나가 되지 않을까. 자본가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인간의 삶을 살찌운다.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김재호 논설위원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한달 가량 뜨지 않고 3위로 굳어지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호남에서 지지율 상승을 기대했으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8일 전북 선대위 출범식에 40분간 참석한 후 광주로 자리를 뜬 문 후보가 내놓은 공약들을 보면 얼마나 황급했는지를 알 수 있다.3번째 전북을 방문한 문후보는 작심한듯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전북혁신도시로 함께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추석이후 전북을 포함한 호남에서 기대했던 만큼 문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고 정체 상태에 머물자 급한 나머지 전북에서 이 카드를 꺼낸 것 같다. 도민들은 문 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전북에서 새만금사업과 관련한 공약들을 쏟아냈지만 너무 많이 들어온 이야기라 반신반의하고 있다.그간 도민들은 LH를 경남 진주로 빼앗긴 이후 상실감에 빠졌다. 'LH를 힘이 없어 빼앗겼기 때문에 대선 때 표로 응징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박 후보한테는 현 정권이 그런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절대로 표 줄 수가 없고 민주당 문 후보에게도 막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표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지역정서 때문에 민주당 문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아니다.절대적인 우위를 보여야 할 문 후보가 전북서 고전한 근본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남 홀대론이 짙게 깔려 있어서다. 집권 초기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분열의 상처가 남아 있고 문후보가 민정수석 시절 대북송금 특검을 허용하고 2006년 지방선거 때 부산 가서 '우리가 부산정권이지 호남정권이냐'고 지역감정을 부추킨 것이 호남홀대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특히 지난 2003년 9월17일 노무현 전대통령이 광주 전남지역 편집 보도국장들과 오찬하는 자리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과 대선 당시 자신에 대한 호남의 지지에 "호남사람들이 내가 예뻐서라기 보다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찍은 것 아니냐"고 말한 대목이 큰 상처를 남겼다. 이 같은 연유로 문 후보의 지지율이 뜨지 않은데다 노무현 정권때 지역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그 사람들 때문에 더 피해를 보고 있다. 문 후보의 진정성이 확인될 때 도민들이 움직일 것이다.백성일 주필
혁명적 사상가였던 정여립(15461589)은 뛰어난 인재였다. 선조 3년인 1570년 24세의 나이에 5등으로 문과에 급제했다. 급제 나이가 평균 서른살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이른 성공이다.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총애를 받았고, 이이는 서인의 총수였으니 서인의 차세대 주자로 불릴만 했다. 그런데 이이가 죽고 서인이 몰락할 조짐을 보이자 정여립은 동인에 가담했다. 전주 출신인 정여립은 이를테면 동교동계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뒤 상도동계로 가서 동교동계를 원색적으로 공격한 경우인데 역사학자 이덕일은 이를 두고 "현대판 '철새 정치인의 원조'라 할만 하다."고 비유했다('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명분이 지배하던 성리학 사회에서 스승을 배신하는 행위는 비판 받을 일이었다. 당시엔 이 당(黨)에서 저 당으로 변신하는 행태도 흔치 않았다. 선조는 죽은 스승을 비판하는 정여립을 두고 사서(邪恕) 같은 인물로 비유했다. 사서는 송나라 때 자신을 도와 준 사마광을 배신한 인물로, 배은망덕의 표상이다. 대선 정국이다. 유력 인사들의 합종연횡이 꼬리를 물고 있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출신인 김성식 전 의원과 송호창 민주통합당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한테 갔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새누리당에 합류했다. 정치 변신의 백미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럴 망정 DJ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의원이나 이윤수 전 의원 같은 골수 동교동계 인사들이 새누리당에 둥지를 튼 걸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무상. '정치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명언이란 걸 새삼 실감한다. 학계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치합류를 탓할 수는 없다. 소신이나 철학도 없이 자기부정을 하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 문제다. 정치이념이 다른 사람끼리, 또는 정파가 합종연횡하는 건 정치를 희화화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정치발전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동교동계의 변신'을 두고 DJ가 지하에서 뭐라 할지 흥미롭다. 잘한 일이라 할지, 선조처럼 사서 같은 인물로 멸시할지 궁금하다. 선거 때마다 철새 정치인을 보는 건 고역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한반도의 허리를 철조망으로 가로 지르는 DMZ(비무장지대). 이곳은 평화와 위험이라는 두 얼굴을 지녔다. 수많은 지뢰와 초소, 망루가 설치돼 있어 위험이 상존한다. 또 남북한의 엄청난 병력이 항상 전쟁상태로 대치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폭발 가능성이 큰 곳이다. 이름뿐인'비무장지대'인 셈이다.반면 이곳은 오랫동안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아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로 꼽힌다. 산림청 등이 DMZ내 일부 지역에 대해 조사한 결과 2700여 종의 동식물과 67종의 희귀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달가슴곰 여우 사향노루 산양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다. 하천과 습지도 잘 발달돼 생물다양성이 뛰어나다.그래서 환경부는 지난해 9월 유네스코에 생물권보전지역(BR) 지정을 신청했다. 뛰어난 자연·생태를 보호하고 지역사회를 친환경적 개발에 동참시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설악산 제주도 신안다도해 광릉숲 등 4곳이, 세계적으로는 114개국 580곳이 지정돼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북한이 공동신청에 무반응이어서 남한쪽 DMZ만 신청했다. 또 올 7월에는 생태계가 우수한 강원도 철원의 DMZ를 생태·평화공원으로 만드는 시범사업을 착수했다. 철책선 너머의 오성산과 휘귀어종이 서식하는 김화 남대천 등이 대상이다. 지난 주 민통선 지역인 양구 두타연을 찾았다. DMZ 걷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양구는 입구에 '국토 정중앙, 양구에 오시면 10년은 젊어집니다'라는 안내판이 인상적이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자연 덕분에 정말로 10년은 젊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곳은 금강산과 이어진 곳으로 6·25 전쟁 때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 하나다. 비경인 두타연이 일반에 공개된 것은 2004년. 휴전 50여 년만의 일이다. 아직도 지뢰매설지역이라 통행로와 주변의 생태탐방로를 제외하면 출입이 금지돼 있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은 인연으로 '소지섭 길 51킬로미터'가 나 있다. 우거진 수풀 앞에 쳐진 가시철망에 지뢰(MINE) 경고판이 붙어있고, 녹슨 포탄과 나무 십자가에 걸린 깨어진 철모가 전쟁의 상처를 증언하는 듯하다. 내년이면 휴전 60년. DMZ가 분단의 상징에서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두타연의 너른 연못과 동굴을 허가없이 볼 수 있도록.조상진 논설위원
태조어진 원본이 공개됐다. 태조어진은 진귀한 존재다. 태조의 초상이 역대 왕의 전신초상으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어진(御眞)'이어서만이 아니다. 어진은 미술사의 영역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의 초상화 역사는 깊고 풍요롭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조선은 초상화의 왕국'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가장 왕성하게 제작되어 미술사를 주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초상화는 왕의 초상 '어진'이다. 초상화, 특히 왕의 초상화는 극도의 사실성이 요구됐다. 초상화의 대부분은 왕이 생존해있을때 그려졌지만 더러는 작고한 뒤 그려지기도 했다. 작고한 뒤에 그려지는 초상화는 아무리 사실에 가깝게 그린다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완성되는 초상화는 실제 왕의 초상과 매우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 제작된 수많은 초상화들은 원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거나 실제 사용하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 낡게 되면 새로 제작한 뒤 불태워 없애버리는 의례를 거쳤기 때문이다. 왕의 초상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가 얼마나 활발하게 제작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지만 전란을 견디고 화재를 피하여 살아남은 어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영조 어진 두개뿐이었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린 전신상으로는 유일하다. 전주 경기전의 어진은 1408년 태조가 작고한 이듬해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의 집경전본을 모사하여 1410년 봉안 한 것을 1872년 다시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7년 전쯤에도 태조어진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있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전시회에서였다. '왕의 초상'은 놀라움의 절정이었다. 섬세한 세필과 강렬한 채색, 배채(背彩)의 기법을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한껏 살려낸 용안의 품격에 관객들은 감탄했다. 어진은 당대를 통치한 조정과 국가의 상징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태조어진은 여기에 조선 창업자의 초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일반인들이 어진 원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번 공개는 지난 6월 태조어진의 국보승격을 기념해 기획된 자리다. 공개 기간도 정해져 있어 계획대로라면 11월 18일까지만 경기전 안의 어진박물관에서 원본을 만날 수 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권좌의 통치자를 초상화로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 관객들은 초상화 앞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최근 완주군 모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북도립미술관에 멋진 손님들이 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지난 19일 개막한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전시회다.색의 마술사 샤갈을 비롯, 피카소와 몬드리안, 모네, 엔디 워홀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 13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개된 피카소의 100호짜리 유화 '앉아 있는 남자와 누드' 의 경우 400억 원 대로 추정될 만큼 명품이라고 한다. 팝아트의 거장 엔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10점 풀세트와, 세잔의 대수욕도 등도 관심 작품들이다. 미술관측은 전시중인 작품가격이 총 1000억 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한다. 이해할 만 하다. 실제 베네수엘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리는데 들어간 비용은 1만 2000달러 수준에 불과했다.반면 이번 4개월간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립미술관측이 지불한 작품 보험료는 1억5000만원에 달했다. 이번 전시를 놓고 미술계 안팎에서는 인상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팝아트 등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단한 기회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역 문화 예술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이번 전시를 이끌어 낸 미술관 측의 노고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8년 전 전북도립미술관을 세우는데 공이 컸던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 김태식 전 국회의원 등에 대한 고마움도 빠뜨리면 안된다. 박 화백이 한 미술전시회 자리에서 예향 전북에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는 현실을 개탄하자 김 전 의원이 예산을 확보해 세운 것이 모악산 자락의 전북도립미술관이다. 제대로 된 전문 미술관이 없다면 그 누가 샤갈이며 피카소 그림들을 전시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가운데 프로야구 10구단 경쟁 도시로 떠오른 수원시가 얼마전 현대산업개발(주)과 미술관 건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오는 2014년까지 화성행궁 광장 북측 4800㎡(신풍지구)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 규모의 수원시립미술관을 건립키로 한 일은 전주시가 생각해 볼 일이다. 예향 전북이라고 하지만, 그 중심은 전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주에 특정인을 위한 서예관이 있을 뿐 제대로 된 미술관이 없으니 '예향의 도시 전주'를 말하기 멋적다. 10년 전, 전주시가 전북도립미술관 부지를 내놓지 못해 완주군 모악산 아래에 간 것도 전주시의 실착이다. 김재호 논설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전북에서 과연 몇 %를 얻을지가 관심사다. 그간 87년 대선 이후 새누리당 후보가 전북서 표를 얻는다는 것은 하늘서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군산서 강현욱 전 지사가 신한국당 후보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부안에서 이덕용씨가 높은 지역주의의 파고를 넘어 신한국당 후보로 도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 만큼 전북이 높은 지역주의에 갇혀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역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지역감정의 덫에 걸려 전북에서 한자리수 득표에 그쳤다. 16대 때 이회창 후보가 6.2% 17대 때 이명박후보가 9.07%를 기록했다. 18대에 출마한 박근혜후보가 자신들이 목표로 삼는 20%대를 넘길 것인가도 이번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지금 새누리당 도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두자릿수 운운하는 것은 정운천 도당위원장이 2010년 6.2 도지사 선거에서 18%를, 지난 4·11 총선서는 36%를 얻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는 것 같다.하지만 대선은 총선과 상황이 다를 수 있다. 박후보의 득표력은 문재인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여부에 달려 있다. 쉽게 말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어야 그나마 박 후보가 전북에서 두자릿수 얻기가 쉬워진다. 도민들이 친노색채를 띠는 문후보에 반드시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반해 안후보로 단일화 되면 그만큼 고전이 예상된다. 그 이유는 무소속 안후보에 대한 더 많은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그간 도민들과 새누리당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인재를 등용치 않고 지역 현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이 달라 평행선을 달렸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식으로 그 해석법이 달랐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표도 안주고 무작정 국가예산 타령만 늘어 놓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예쁜 짓을 해야 신경 쓸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새누리당은 전북이 대접 받으려면 먼저 두자릿 수 이상 표를 달라는 것이다. 아무튼 대선 막바지로 치닫으면 결국 전북 표심이 민주당이나 야권단일후보로 갈 공산이 짙다. 대선 결과가 도민들의 뜻대로 돼버리면 상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전북은 또다시 5년의 암흑기를 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백성일 주필
추어(鰍魚). 미꾸라지 추(鰍)자를 파자하면 물고기 어(魚)에 가을 추(秋)다. 가을 물고기라는 뜻이다. 추어는 논두렁 미꾸라지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진흙 속으로 파고 드는 가을이라야 제 맛을 낸다. 월동 직전이라 살이 통통히 올라 맛과 영양이 최고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배를 덥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양기보충에 효과가 좋다고 나와 있다. 단백질과 칼슘, 무기질이 풍부해서 원기회복에 좋은 음식이다. 최근엔 칼로리가 적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추어탕 하면 으례 남원을 떠올릴 만큼 유명한 곳이 남원이다. 추어탕 집 간판 중에 가장 많은 것도 '남원 추어탕'이다. 남원 상호를 쓰는 추어탕 집이 전국적으로 400여 곳에 이른다. 남원에만 추어탕 전문점이 30여 곳이나 된다. 왜 추어탕 하면 남원인가. 전주의 한 추어탕 집 주인은 이런 유래를 전했다. 옛날 남원에 부자집이 있었는데 집 주인이 머슴들을 어찌나 잘 대해 주었던지 머슴들이 감복했다. 그래서 감사의 뜻으로 추어탕을 끓여 보답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주인은 계속 추어탕을 찾았고 그 소문이 퍼져 확산됐다는 일화다. 현실적으로는, 남원 요천강변 광한루원 인근의 허름한 집('새집')에서 추어탕을 맛있게 끓였던 서삼례 할머니의 손 맛을 기점으로 본다. 이병채 남원시문화원장은 "88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이 남원과 지리산에 몰렸고 이 때 '새집' 할머니 추어탕 맛이 최고라는 명성이 퍼져 전국적인 대표 음식이 됐다"고 말했다. 섬진강 상류라는 청정성과 무시래기 등 부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지리적 여건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서 할머니는 3년 전 작고했고 딸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젠 '남원=추어탕' 명성을 산업화하는 것이 과제다. 미꾸라지와 시래기 등 부재료의 생산-가공-판매를 과학화하고 관광과 연계시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지난달엔 '남원 미꾸라지'가 내수면 분야 전국 최초로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됐다. 브랜드 가치도 한층 높아졌다.추어탕 먹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사이다. 오늘(23일)이 상강이다. 명문 추어탕 집들이 도처에 많다. 가을이 깊기 전에 추어탕으로 원기를 회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새만금방조제를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기분이 묘하다고 한다. 바다 한 가운데를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꽤 신기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최장이라는 33.9km를 달릴 수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새만금 일대는 2010년 4월 방조제가 완공되긴 했으나 아직 안팎에 바닷물이 일렁거린다. 계획대로 방조제 안쪽에 만경강과 동진강 물이 담수되면 약 3500만 평의 거대한 호수가 생겨난다. 방조제를 달리며 양쪽으로 바닷물과 민물 호수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 된다. 2015년까지 수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달성될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이곳 새만금방조제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게 신시도(新侍島)다. 방조제와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중심축으로 새만금 33타워가 있고 배수갑문이 있다. 이곳은 새만금 관광의 별격이다. 현재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산을 타고 오르면 월영산(月影山, 또는 월영봉)이 나오고, 대각산(大覺山)으로 이어진다. 이 신시도에서 선유도까지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무녀도-선유도-장자도가 다리로 연결돼 있으니, 이곳만 연결되면 새만금방조제에서 고군산군도가 죽 이어지는 셈이다.신시도는 당초 군산항에서 서남쪽으로 37km 떨어져 있어 배로 1시간이 족히 걸리던 곳이었다. 지대가 깊어 지풍금, 짚은금이라 불리웠다. 신라때는 문창현 심리(深里) 또는 신치(新峙)라 했다. 신치가 신시(新侍)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신시도의 주봉인 월영산은 높이 198m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평지돌출처럼 섬 속에 우뚝 솟은 산이다. 주변경관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게 장관이다. 월영산에서 보면 30여 개의 고군산군도 섬들이 점점이 군무를 이루는 게 환상적이다. 또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면 김 양식장들이 바둑판처럼 널려 있는 것도 볼만하다. 이곳은 두 명의 인물과 관련이 깊다. 통일신라 때 최치원과 한말의 거유 전우다. '토황소격문'을 쓴 최치원은 월영봉에 단을 쌓고 글을 읽었으며 악기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 소리가 서해를 건너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학문이 높아 중국대륙까지 영향이 미쳤음을 은유하는 것이리라. 간재 전우는 한일합방 직전, 제자들을 이끌고 이곳에 와 흥학계를 만들어 교육에 앞장섰다. 신시도는 등산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섬들을 감상할 수 있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가히 새만금 관광의 꽃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조상진 논설위원
며칠 전, 귀한 선물을 받았다. 〈우리누나 임일순〉이라 이름 붙여진 그림 모음책이다. 비뚤게 쓴 글씨에 어린아이가 그린 듯 한 별과 달, 나무 사이에 조그마한 할머니가 앉아 있다. 표지부터 가슴이 뭉클했다. 책을 펼쳐보니 그림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임일순은 칠십 육세 할머니,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고인이다. 할머니는 선천적 정신지체장애자였다. 그림 모음책은 동생 임철완 전북대 의대 명예 교수가 세상을 떠난 누나를 추모하며 엮어낸 것이다. 임교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누나를 모셔와 살았다. 임교수의 어머니 생전에 그의 이모들은 정박아인 누나가'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었단다. 그러나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시고도 누나는 8년을 더 살았다. 그림 모음책에 글을 쓴 임교수는 자신의 집에 모신 후에서야 보호자가 없이는 어느 것 한 가지도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누나의 행복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권한 것이 그림그리기다. 할머니는 동생이 사다준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색연필로 때로는 스티커로 날마다 그림을 그리고 붙이기 시작했다. 임교수의 집 벽면은 이 그림들로 가득 찼다. 관객은 임교수 부부와 도우미 아주머니 단 세 명. 새로 그린 그림을 보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관객은 할머니 자신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할머니는 즐거워했다. 가족들은 작은 보살핌과 칭찬이 할머니의 일상에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를 알게 됐다. 낙서 같았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날로 새로워졌다. 사람과 동물, 과일, 나무, 어린 시절에 본 허수아비와 막대총까지 그의 기억은 모두 도화지위에 옮겨졌다. 한 평생 외롭게 집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정박아 할머니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 지난 1월 4일, 할머니는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임교수의 말처럼 반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렸다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새와 나무, 풀밭과 강물이 흐르는 풍경화다. 검은 하늘에 점토를 붙여 두 개의 달까지 그려 넣은 그림을 임교수는 누나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식탁 옆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림 모음책에서 '우리누나가 그린 경치'란 제목으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그림이다. 할머니는 이 그림을 그린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영혼의 풍요로움이 가득찬 그림들은 세상에 남았다. 정신지체장애로 온 생애를 외롭게 살았던 할머니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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