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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언론단체가 관훈클럽이다. 중견 언론인들의 언론연구 및 친목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 처럼 대선 정국에서는 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고 후보들을 검증하는 등 현역 못지 않게 언론 본연의 기능도 충실히 한다. 한국의 언론발전을 이끄는 중견 언론인 단체지만 태동 당시엔 박권상 조세형 등 개혁적인 젊은 기자 6명이 뜻을 같이 한 소박한 모임이었다. 1955년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으로 연수를 갔던 이들이 선진화된 미국 언론에 충격을 받고, 한국의 언론발전을 위해 연구와 친목단체를 만들기로 결의한 것이 시발점이다. 귀국한 뒤 기자 몇몇이 추가로 참여하고 여러차례 모임을 가진 뒤 1957년 1월 11일 관훈클럽이 창립됐다. 창립회원은 김보성 김용구 김인호 노희엽 민병규 박권상 박중희 이경성 이광표 이규현 이시호 이정석 임방현 정인양 조세형 진철수 최병우 홍성원(가나다 순) 등 18명이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KBS 사장을 지낸 박권상,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국회의원·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세형, 월간 '현대' 편집장과 청와대 대변인·국회의원을 지낸 임방현은 전북출신이다. 관훈클럽은 관훈동에서 맨 처음 모임을 결성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원은 현재 900여명에 이른다.1957년 창간한 '회지(會誌)' 제1호 '권두언'은 관훈클럽 창립정신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세계의 사조는 숨가쁘게 흐르고 현실의 과업은 겹겹이 절박해 오는 이때 어찌 언론만이 수구(守舊)하여 주저앉아 있겠는가. 자성과 개신(改新)으로 취약과 편협과 횡포를 박차고 새 사조를 호흡하여 능히 세대의 앞장을 서야 한다." 55년 전의 일이건만 오늘날에도 딱 들어맞는 창립정신이다. 언론의 사명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국민의 '알권리(right to know)'에 충실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 그것이다. 지역언론 환경은 열악하고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감시견(watch dog)'이 아니라 '애완견'이란 비판도 있다. 전북엔 변변한 언론 모임 하나 없는 터에 때마침 '전북언론인클럽'이 내일(27일) 창립총회를 갖는다. 현직에 있는 '전·현직 편집 보도국장'이 그 대상이고 향후 외연도 더 넓혀질 것이다. 관훈클럽이 한국 언론발전을 이끈 것처럼 전북언론 발전에 새 디딤돌이 되길 기원한다. /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가뭄이 이토록 심하고 심해/ 산천초목 모두 다 말라버렸네./ 가뭄이 그 위세를 떨치는 곳은/ 모두 다 불붙여서 태우듯 하네./ 이 마음은 더위를 두려워하여/ 근심에 마음마저 불타는도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귀절이다. 시경의 편찬 연대가 3000년쯤 전이니, 그 때도 가뭄이 꽤 심했던 모양이다.가뭄은 심한 강수량 부족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인간과 가축 식물 등이 피해를 입는 기상재해 중 하나다. 한자로는 한발(旱魃)로, 농사철인 6-8월 사이에 가뭄 피해가 가장 심하다.삼국사기나 증보문헌비고 등을 보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가뭄이 304회 발생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뭄으로 인한 흉년으로 너무 배가 고파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인상식(人相食) 수준이 23회, 대기근 82회, 기근 199회였다. 평균 6년마다 가뭄이 있었고, 20년에 한번 정도는 대기근이 나타났다.이같은 가뭄이 계속되면 조정이나 지방관청, 민간을 막론하고 기우제를 올렸다. 나라에서는 왕이 정사를 잘못해 내리는 천벌이라 하여 왕 스스로가 몸을 청결히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식음을 폐하고 거처를 초가로 옮기고 죄인을 석방하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산 정상이나 냇가에 제단을 차리고, 이곳을 신역(神域)으로 정해 마을 전체의 공동행사로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한번 가뭄이 들면 대책이 쉽지 않다. 구름 속에 드라이아이스 같은 응결핵을 뿌려 인공으로 비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발에 오줌누기다. 그렇다고 댐과 저수지, 지하수를 무한정 개발할 수도 없다. 경제적 부담 뿐 아니라 환경문제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바싹 타들어 가고 있다. 가뭄 피해도 심각하다. 양파와 마늘 고추 감자 등 밭작물과 과수농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병충해마저 기승을 부린다. 미국 러시아 등 세계 곡창지대에도 가뭄이 지속되면서 곡물가격이 치솟고 있다. 북한은 더 심하다고 한다.우리 정부는 11년만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시키고,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가뭄관련 관계장관회의'를 가졌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시원한 비가 죽죽 내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랜 가뭄 끝에 큰 비 온다'는 속담이 있다. 곧 닥칠 장마에도 대비해야 하니 이래저래 걱정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전주가 지난달 유네스코 선정 '음식창의도시'가 됐다. '창의도시'는 유네스코가 지난 2004년부터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도시를 선정해 주는 이름이다. 지금까지 문학·음악·민속공예·디자인·영화·미디어·음식 등 7개 분야에 19개국 34개 도시가 지정되어 있다. 창의도시로 선정된다는 것은 '문화적 도시환경과 문화·예술·지식정보산업 분야에 인적 자원등 충분한 기반을 갖추고 도시 안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도시'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법상 전 세계 도시는 2만2천500여개. 이중 34개 도시만 창의도시란 이름을 얻었으니 자랑스러울만하다.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몬트리올, 나고야와 고베, 가나자와, 선전과 상해, 그라츠, 에든버러, 멜버른, 볼로냐, 글래스고, 시드니, 리옹 등 세계적 도시들이 문화적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도시로 명성을 더한 것 역시 '창의도시'의 이름을 일찌감치 얻었던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0년 서울(디자인)에 이어 이천(공예)과 전주까지 3개 도시가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창의도시는 문화·창의자산을 확보,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교류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다. 도시와 도시가 경쟁하는 시대에서 '창의도시' 란 이름은 경쟁력 확보에 큰 자산인 셈이다. 그런데 창의도시가 되었다고해서 모든 동력을 거저 얻을 수는 없다. 전주의 자매결연도시인 일본의 가나자와는 우리보다 앞선 2009년에 공예로 '창의도시'가 됐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가나자와는 '창조도시'(Creative City)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창조도시'는 영국의 찰스 랜드리,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주창한 개념이다. 독자적인 예술문화의 육성과 자유로운 창조 활동을 통해 성장하는 21세기형 도시를 이른다. 가나자와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것, '독자적인 예술문화의 육성과 자유로운 창조활동' 에 있다. 가나자와 시민들은 예술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다. 시민 대부분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할 만큼 예술 활동 참여도 활발하다. 전통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책임감을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가나자와 시의 정책이다. 전주 시민들 또한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음식도시로서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그에 못지않다. 그런데 정작 '음식'으로 즐겁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야 할 시민들의 창조적 활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과제가 분명해졌다.
지난 14일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신항 기공식을 가졌다. 지난 1982년 4월 해운항만청이 고군산지역 신항만 입지조사에 나선지 30년 만에, 1995년 정부가 신항만 건설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한지 17년 만에 착공한 것이다. 새만금의 국제관문 역할을 할 신항만은 새만금 성공의 필수조건으로서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래서 1999년 정부가 새만금 신항만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새만금 환경논란과 내부개발 계획문제로 2001년 신항 개발사업이 전격 유보됐다. 2006년에는 제2차 전국 무역항 기본계획에서마저 새만금 신항만이 빠지면서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8년 광역경제권 30대 선도 프로젝트에 새만금 신항만이 선정되었고 2009년 간이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2010년 11월 새만금 신항만 기본계획이 수립·고시되면서 오늘에서야 항만공사가 착수됐다.반면 지난 1995년 정부가 함께 기본계획 용역을 실시한 부산 신항(가덕도)과 포항영일만 신항, 울산 신항, 인천 북항, 목포 신항 등은 이미 완공되어 막대한 물류처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항만 배후단지와 연계 교통망 등이 구축되면서 2단계 항만개발이나 민자 투자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는 것과 비교하면 2030년 완공 목표인 새만금 신항은 가야할 길이 너무 멀기만 하다.물론 새만금 신항은 배후단지인 내부개발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앞선다. 방조제 공사처럼 내부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신항만 역시 겉돌기 십상이다. 2조3000억 들여 방조제 하나 막는데 18년이 걸렸는데 앞으로 신항 건설에 2조5000억원, 방수제와 내부 산업단지 개발에 22조원이 넘게 투자되어야하니 '2030년 완공'이라는게 뜬구름 잡는 느낌이다.올 12월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들이 새만금을 앞다퉈 찾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장밋빛 약속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입을 믿는 도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991년 새만금 착공이후 4차례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의 판박이 공약이 그야말로 말 잔치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 립 서비스로는 도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구체적 실행계획과 차질없는 예산 투자만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새만금에 쏟아 온 200만 도민들의 땀과 눈물과 한(恨)을 생각하면 신항만 착공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20년간은 어떻게 투쟁해야할지…
새만금 사업의 성패는 수질 문제에 달려 있다. 정부는 새만금호로 유입되는 만경강과 동진강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까지 2조9502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2단계 수질 개선 사업 중 우선 2015년까지 65.5%에 해당한 1조7000여억원을 투입, 그 성과를 평가한뒤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새만금사업은 전북의 미래를 견인할 사업인 만큼 계획대로 추진되는 게 중요하다.이명박대통령은 대선 출정식을 새만금 공사 현장에서 할 정도로 처음에는 새만금 사업에 의지가 강했다. 농지 비율을 줄이고 산업용지를 70%로 바꿔 놓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 그 약속을 지켰지만 새만금개발청 설립 등은 이 정권서는 물건너간 느낌이다. MB는 대선 때 전북에서 9%를 얻었다. 마의 두자릿수 득표에 실패했다. 이 게 전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도민들은 이 정권들어 전북 출신 인재를 중용치 않고 국가예산을 제대로 배분해주지 않아 전북이 더 낙후됐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지난 4년동안 전북은 찬밥 신세였다. 호남은 있지만 전북은 없었다. 정동영후보의 고향이어도 MB측은 두자릿수를 기대했던 것 같다. 지역감정을 완화시켜 볼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러나 모든 구상이 수포로 돌아갔다.어찌보면 MB의 전북에 대한 생각이 선거날 밤에 깨끗하게 정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표가 안나와 전북에 대한 생각을 접은 것 같다. 지난 4년여를 뒤돌아 보면 그 같은 생각이 든다. 승자독식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은 모두가 다 그렇다. 표 많이 준 지역부터 우선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전북에서 두자릿수를 줬으면 MB는 임기내내 전북에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2010년 7월15일 도의회가 전국서 처음으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 MB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민주당 4대강 저지특위가 출당까지 거론하며 압박했음에도 "당 방침만 쫓아가면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영산강 찬성 입장을 고수했다. 4대강 사업으로 추진했던 영산강은 약발이 나타나고 있다. 전남서는 박지사를 대선에 나가라고 박수치고 있다. 정부에서 도와 정치권에 섬진강 사업 의향을 묻자 반대했다. 정서가 같은 전남북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 백성일 주필
김승수 정무부지사는 새만금신항만 기공식 이틀 전인 지난 12일, 김완주 지사의 편지 얘기를 꺼냈다. 새만금신항만 건설은 김 지사 편지 때문에 앞당겨졌다고 했다. 편지에서 신항만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 때문에 업무추진이 당겨져 기공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지사의 '새만금 감사 편지'는 민감한 사안이다. 민주당과 도민을 분노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2009년 7월23일 정부는 새만금종합실천계획(안)을 발표했다. 그해 2월 마련한 마스터플랜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었다. 이 계획안이 발표된 일주일 뒤 김완주 지사는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의 A4용지 3장 반 분량의 감사편지를 이명박 대통령한테 보냈다.마스터플랜이 마련됐으면 세부적인 실천계획은 자동적으로 정부가 마련한다. 감사해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걸 두고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께 큰 절 올립니다'로 시작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내용과 시기도 문제였다. 정부 발표에 대해 '기쁘고 눈물 납니다'라고 표현한 것이라든지, '감사합니다'를 일곱번씩이나 되풀이하는 굴욕적인 표현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편지를 보낸 시점은 뙤약볕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의원직을 내던지며 미디어법 투쟁을 열나게 하던 시기다. 이런 판에 MB를 향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김 정무부지사가 신항만과 연결지으려 한 편지 내용은 이 부분이다. "새만금이 날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군산공항 확장과 신항만 건설이 그것입니다. 명품 새만금에 비행기가 날 수 없고 명품 새만금 바다에 배가 출항할 수 없다면 날개 없는 새만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주셨듯이 새만금이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도록 훈풍을 불어 주십시오. 이미 저와 200만 전북도민들은 대통령님의 훈풍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편지로 입은 상처를 수확으로 해석하려는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신항만 기공식이 앞당겨졌다고 해석한다면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없다. 뜬금 없이 김 지사 편지와 신항만을 연결지으려는 저의가 뭣인지, 편지 보낼 까닭이 없는 데도 편지를 보낸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무주 구천동은 옛부터 산자수명한 오지(奧地)의 대명사였다. 그런 산천을 닮아서인지, 무주는 걸출한 문화예술인 2명을 배출했다. 하나는 300년 전에 태어난 직업화가 최북(1712-1786)이요, 또 하나는 100여년 전에 태어나 한국비평문학의 효시로 꼽히는 김환태(1909-1944)다. 각각 그림과 문학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흔히 후기인상주의 작가 고흐와 비견되는 무주 사람(경주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최북은 그의 호 호생관(毫生館)이 말해주듯 붓 한자루로 조선과 중국 일본을 오가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짓눌린 조선 유교사회 탓에 그의 기행(奇行)은 작품보다 더 크게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어느 세도가 양반이 마음에도 없는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또 금강산을 여행하다 "천하의 명인이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구룡연 폭포에 뛰어 들었다는 얘기도 전한다.하지만 국립전주박물관이 마련한 탄생 300주년 특별전은 그의 작품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중인 출신이었으나 남종문인화풍으로 일가를 이뤘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 영의정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 남공철이 자신의 문집에 최북의 전기 '최칠칠전'을 남길 정도였다. 칠칠(七七)은 최북이 자신의 이름 북(北)을 파자해 지은 별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180여 점 중 산수화, 화조영모화 등 57점을 선보였다. 표훈사, 사시8경첩, 계류도, 메추라기, 게 등이 눈에 띤다. 이번에 전시되지는 않았으나 1763년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한여름(松下觀瀑圖)'은 북한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한편 무주읍 출신으로 일본 규슈제대(九州帝大) 영문과를 나온 눌인(訥人) 김환태는 1930년대 우리 문단에 순수비평의 씨앗을 뿌렸다. 35년의 짧은 생애동안 김동인 김상용 정지용 등 다양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론을 발표했다. 또한 도산 안창호와의 친분관계로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서울대 권영민 교수는 "일본 군국주의의 사상 탄압에 대응하면서 발표된 그의 평문에는 문학비평의 대상이 사회도, 정치도, 사상도 아닌 문학 그 자체라는 명제가 제시돼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무주군은 이들의 이름을 걸고 문학관과 미술관을 개관했다. 이들의 예술혼을 널리 알리는 계기였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전주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전승성과 현재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 발견이다. 전주대사습놀이와 관련한 기존 연구에서 대사습의 특성을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로 평가했던 예가 없지는 않으나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특성을 부각시켜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본격적인 시도는 이제 시작 단계다. 지난 주말, 전주문화방송이 주관한 전주대사습놀이 학술세미나에서는 전북대 함한희교수가 발표한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전주대사습놀이 특성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무형문화유산은 지역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표현물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보유 집단의 자긍심을 높이고 사람들의 창조적 정신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은 형체로 남아 있는 유형문화유산에 비해 물질적인 토대가 없기 때문에 쉽게 눈에 뜨이지 않고 그 변화의 과정도 쉽게 인식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화과정에서 우리의 수많은 전통문화유산이 소멸되거나 단절된 이유도 이러한 무형문화유산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사습은 그 연원이 300년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것을 고증해낼만한 자료나 문헌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승성이 강조되는 무형문화유산의 기준으로 보자면 가치를 평가 받는데 위험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함교수는 그 전승성을 증명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전주대사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다는 이 놀이가 19세기부터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이 전승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원래 그 유산의 정확한 시점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그것이 완성되어 나타나는 과정과 현재에 이르는 전승력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함교수의 주장이다. 그의 말대로 무형문화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전주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적 가치를 발견하고 성격을 규명하는데 에는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전승주체를 조직화해 그들로 하여금 창조적 활동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이제 시작된 대사습놀이의 무형문화유산적 가치 조명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다. 단순히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대사습놀이의 전승과 과제를 모색하고 실현해나가는데도 중요한 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북경에 들르면 꼭 찾는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가 팔달령이다. 사통팔달에서 유래된 팔달령은 만리장성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해발 1000m에 이르는 험산준령을 따라 견고한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같은 장성이 중국 서쪽 자위관에서 동쪽 산하이관(山海關)까지 약 5000km 걸쳐 이어져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힌다. 우리의 전통적인 거리 단위인 리는 400m이지만 중국의 리, 즉 화리(華里)는 500m로 그래서 만리장성으로 불린다. 그런데 이 만리장성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일 중국 국가문물국 퉁밍캉 부국장이 "2007년부터 5년간 만리장성에 대한 정밀 조사와 측량 작업을 진행한 결과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8㎞에 이르며 총 4만3721곳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6000km를 조금 넘는다던 만리장성이 2009년 장성의 동쪽 끝을 기존의 허베이성 산하이관에서 압록강 하구의 후산(虎山)산성으로 수정하면서 총 길이가 8851.8㎞라고 했고, 이번에는 3년 만에 무려 3.5배나 부풀렸다. 문제는 중국 동북부 지방에 있는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발해의 장성들까지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둔갑시키는 역사왜곡이다. 이 같은 이면에는 중화주의의 영토적 확장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북한 청천강 유역까지 만리장성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중국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한 동북공정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니 중국의 또 다른 장성판(版) 동북공정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이 같은 역사왜곡은 '통일적 다민족국가관'이란 역사관에서 비롯되고 있다.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동북공정뿐 아니라 서북 서남 등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역사 편입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만리장성의 확대를 통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이 발표한 '역대 장성'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리장성의 개념하고는 다르다며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고 학계도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통일된 목소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정부와 학계가 나서서 적극적인 대응전략 마련과 통일된 대응논리 개발이 시급하다.
언제부턴가 전북하면 새만금이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새만금사업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노대통령과 정치적 담판을 지어 착공했다. 착공 20년이 지나는 동안 새만금은 종교처럼 돼버렸다. 33㎞나 되는 세계서 가장 긴 방조제를 막았다고 모두가 기뻐했다. 지금까지 방조제 개통 이후 1500만명이 다녀갔다. 새만금은 글로벌 시대를 견인할 아이콘임엔 틀림없다.MB정권은 2020년으로 준공을 10년 앞당기고 당초 농지와 산업용지 비중을 3대7로 바꿨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북에 큰 혜택을 줬는데도 전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섭섭해 한다는 것. 농지를 산업용지로 대폭 변경해 땅값을 상승시켰기에 그 만큼 혜택이 주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직접 피부로 느끼려면 해마다 1조원의 사업비를 쏟아 부어야 가능하다.새만금은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주객이 바뀐 모습이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추진해야할 사업인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마지 못해 하는척 시늉만 내 전북도만 애 태웠다. 이 정권서도 똑같다. MB가 처음에는 대선 출정식을 새만금에서 갖는 등 나름대로 의지를 보였지만 개발에 따른 로드맵 정도만 밝히고 새만금개발청 설립과 특별회계 설치 그리고 매립용지 분양가 인하 등은 다음 정부로 넘길 것 같다.그간 집권 세력들이 새만금을 너무 오래 갖고 놀았다. 선거때 표만 많이 주면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는 식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DJ정권 때는 광주·전남 출신들이 훼방꾼이었다. 선거때마다 도민들이 조삼모사 (朝三暮四)처럼 돼버렸다. 지금도 유력 대선주자가 전북을 방문하면 김완주 지사는 어김없이 새만금사업에 도 입장을 설명한다. 당장 그자리에선 뭔가를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하지만 돌아서면 함흥차사다. 새만금사업 때문에 도민들이 속앓이를 많이 했다. 아무리 정치판이 속고 속이는 판이라해도 국책사업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다룰 순 없다. 역대 지사들도 그 장단에 맞춰 춤추기는 매 한가지였다. 선거 때만 닥치면 새만금은 득표수단으로 바뀐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전북도가 지금껏 정치인들에게 전북 이미지를 새만금 하나로만 각인시킨 게 잘못이다. 새만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처럼 정치인들에게 애걸복걸했기 때문이다. 전북의 이미지를 다양화 하는 게 중요하다. / 백성일주필
"…공사, 납품, 승진과 전보, 프로젝트 발주 등의 교육비리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와 자료들을 입수해 놓고 있습니다. 교육감으로서 단돈 백 원의 뇌물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와 교육행정을 맡은 관료들에게 뇌물 건네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전북을 교육 청정지역으로 바꿔놓는 교육감이 되겠다."며 2010년 7월1일 취임식 때 밝힌 청렴선언이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청렴한가. 세간의 평가는 '상당히 맑아졌다'는 게 지배적이다. 다른 건 물라도 김 교육감의 청렴성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교육감 본인만 깨끗했지 밑에서는 해 먹을 것 다 해먹는다'는 비아냥이 그것이다. 얼마전 감사원이 밝힌 감사결과는 아직도 불법 비리가 여전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도교육청과 14개 지역교육청, 일선 학교에 대한 감사(2008년~올해)에서 146명이 금품·향응·횡령 등을 저질러 적발됐다. 파면·정직 또는 수사 의뢰되고 이에 연루된 2493개 업체는 입찰참가 제한 등의 조치를 취했다. 교육 수장이 청렴을 제일 가치로 내걸었지만 현장에서는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엔 촌지 사건도 있었다. 그러자 김 교육감이 또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불법 비리 공직자는 단 1%의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 비리 등의 부패는 고도의 은밀성을 띤다.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들은 은밀히 준비되고 진행되기 때문에 내부의 속사정을 아는 구성원이 아니고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사와 계약, 입찰방식 등이 그런 것들이다. 먹이사슬이 활발하게 작동되는 분야다. 일이 벌어지면 단도리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매번 으름짱 놓기를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보다는 제도적으로 보다 엄격한 보완책을 강구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 중의 하나가 내부고발제다. 공정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핵심 시스템이다. 이걸 활성화시키면 허튼 수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2001년에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고발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숙제다. 청렴선언을 반복하기 보다는 보다 파격적인 내부고발제를 도입해 청렴의지를 제도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누구를 꼽을까. 선뜻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학문이 뛰어났다는 이유만 있을까. 그것은 아니다.그 학문이 후손이나 제자들에 의해 잘 계승·발전된 덕이 더 크다. 나아가 그들의 학문이 제자들에 의해 현실정치에 적용되면서 빛을 발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호남(전북)의 유학은 인물의 빈곤이나 학문의 깊이를 탓하기 전에 계승·발전 노력이 미흡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물론 1589년 일어난 정여립 역모사건(?)이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인재 자체가 고갈된 측면도 없지 않다.어쨌든 이러한 토양에서도 학문과 선비정신의 싹을 보인 인물들이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목산 이기경(李基敬·1713-1787)이 아닐까 싶다. 전주 오목대(梧木臺) 아래 산다하여 아호를 목산(木山)이라 붙인 그는 오늘날 각광받고 있는 한옥마을 선비정신의 원조격이다. 영조때 주로 활동한 목산은 전주 출신으로 몇 안되는 고위 관료이자 학자였다. 최근 전북대 민중생활사연구소에서 펴낸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김명엽 씀)'에 따르면 목산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목산은 27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벼슬길에 올랐다. 하지만 별탈없이 관직생활을 한 기간은 20년에 지나지 않았다. 군수, 현감과 함께 사도세자를 가르친 서연관, 북경에 다녀온 서장관, 승지, 황해감사, 대사간 등을 지냈다. 사직하고 고향에 머문 것이 15년, 유배기간이 4회에 걸쳐 13년이었다. 그는 스승 이재의 가르침에 따라 난진이퇴(難進離退·벼슬길에 나아감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남을 쉽게 함)를 거듭했다. 그를 아끼던 영조가 좋은 자리에 중비(中批·오늘날의 특채)하려 할 때마다 규정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며 벼슬을 받지 않았다. 또 영조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펴낸 '유곤록'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당쟁이 심하던 당시 탕평책이 진정한 인재를 발탁하기 보다 노론과 소론인사들을 적당히 안배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죄지론(罪地論)을 이유로 호남의 인재를 등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내년이면 목산 탄생 300주년이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선비정신을 올곧게 실천한 목산의 학문과 생애가 지역에서부터 재정립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위원
중국 윈난성(雲南省) 북서부 남쪽에 있는 '리장(麗江)'은 해발 2400m의 아름다운 고원도시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나시족의 왕도였던 리장에는 지금도 한족보다는 나시족을 비롯해 이족 라후족 장족 바이족 등 소수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96년, 리장은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리장 고성과 그 일대 건축물들은 살아남았다. 강진을 견뎌낸 비밀은 목조건물에 있었다. 이듬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남은 리장의 고성(麗江古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낡은 목조 건물이 밀집되어 마치 거대한 호수 같은 풍광을 지니고 있는 고성에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리고 2005년, 이곳 리장에서 새로운 문화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상(印象)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인상여강' 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여강'은 차마고도의 신비가 서려있는 설산고원의 도시 리장의 상징인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형가무극이다. '인상여강'의 배우들은 모두 리장 오지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 농민들이다. 나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농민 500여명은 '인상여강'의 배우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이곳 옥룡설산에 왔다. 2년 가까운 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이들은 배우가 됐다. 2007년 6월 첫무대를 올린 이후 '인상여강'은 리장을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만들었다. 장이머우 감독이 2000년부터 추진해온 대형프로젝트 '인상시리즈'는 중국 도시들의 마케팅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4년에 올린 '인상유삼저'를 시작으로 '인상여강' '인상서호'가 화제를 몰고 오면서 중국에서만도 4개 도시에서 대형공연물을 더 만들었다. 인상시리즈는 지역의 설화나 전래되는 스토리를 다루고, 배우들도 지역에서 고용한다. 일자리가 창출되니 지역에 경제적 결실이 고스란히 돌아가는 성과다. 공연무대도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곳을 택해 지역적 특성을 살려낸다. '인상여강'도 그 무대가 해발 5596미터 옥룡설산의 중턱이다. 3100미터의 고원에 재현해놓은 차마고도의 길은 설산의 바람과 비 눈 안개 햇빛 등 자연요소를 모두 껴안은 원시성과 조화를 이루어 감동을 준다. 지금 전 지구에서 하나밖에 없는 설산위의 공연을 보기 위해 리장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한해 5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은 도시가 마케팅을 위한 대형 공연물을 제작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성공 사례는 만날 수 없다. 혹시 그 이유가 '따라가기'에만 급급해 정작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창조성은 외면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유로존으로 확대 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만약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고 스페인의 재정위기가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세계 경제는 대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유럽 사태가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난 4일 밝혔다. 그는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가 스페인으로 번지는 것은 유럽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정부의 재정위기에서 민간까지 파급되는 은행 위기로 확산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스페인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1조5000억 달러로 그리스의 5배에 달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예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KDB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도 지난 5일 "현재 세계경제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큰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1929년 대공황은 제조업 펀더멘탈에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금융시장이 투기 등으로 혼란해져서 발생한 일이지만 지금은 펀더멘탈이 문제인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가 10년 이상 어려울 수 있다고 예측했다.실제 회복세를 보였던 미국경제는 지난 5월 실업률이 8.2%를 기록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 글로벌 증시에 폭락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유럽에선 그리스와 스페인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의 경제지표가 적신호를 나타내고 있다. 영국과 독일의 지난 5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2009년 3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고 유로존 전체 17개국의 4월 실업률은 평균 11%로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경제지표도 상승추세가 꺾이고 있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언했던 누리엘 루비니(Roubini) 미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6월 "2013년 이전에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은 둘 이상의 폭풍이 충돌하여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한꺼번에 악재가 겹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정부나 기업 가계 모두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통상 물갈이 뒤끝의 정치력은 떨어진다. 19대들어 전북 정치력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걱정들을 쏟아낸다. 18대는 정동영· 정세균·다선의원들이 포진해 외형상으로는 전북 정치력이 강해 보였다. 실상 외형만 그럴싸하게 포장됐을 뿐 서로가 각개약진 해 속빈강정이었다. 국회의원끼리 함께 모이자해도 서로가 개 닭보듯 해 지역관련 논의는 거의 못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김완주지사만 애달았다.지금 종로서 정세균이 5선 깃발을 세웠지만 대선 주자로서 지지도가 낮아 이름 값을 못한다. 도당 위원장 선거에서 '정심'의 지지를 암묵적으로 받은 김춘진의원이 떨어진 것만 봐도 정심의 실체가 별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정세균은 친박 주자인 홍사덕을 꺾어 대선 주자의 반열에는 올랐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1~2 콤마 이하로 나와 기대를 못 갖게 하고 있다. 너무 좌클릭해서 낙선한 정동영은 벌써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양 정씨가 빠진 전북정치권을 재선의 이춘석이 이끌게 됐지만 힘이 부쳐 보인다. 열심히 상임위 활동을 한 패기는 돋보였지만 아직 정치력이 약해 당내는 물론 새누리당의 협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자연히 김지사가 이끄는 전북도정이 국가예산 확보로 애를 먹을 공산이 크다. 국가예산 확보는 우격다짐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정부 여당의 협조를 잘 이끌어 내야 실리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요즘 양 정이 빠진 전북에 대권주자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비대위원장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호 정몽준의원이 방문해 새만금과 관련된 전북도의 건의를 받고서 해결해줄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전북도는 새만금사업이 가장 절박한 만큼 대권 주자들이 오면 단골 메뉴로 꺼내 놓는다. 지지 기반을 넓혀야 하는 후보들로서 이 싯점서 뭣인들 못한다고 하겠는가. 어제도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전북을 찾았지만 아직도 굼뜨고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아 관심을 못 끌었다. 손 대표는 내심 축쳐진 지지도를 전북에서부터 띄우고 싶었겠지만 그 주변인들마저 인기 없는 사람들이어서 별다른 성과를 못올렸다. 도민들은 양 정씨가 킹 보다는 킹메이커로 그칠 공산이 짙자 대선판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정권교체를 내세우는 민주당 후보로 안철수 서울대교수를 가장 염두에 두고 있다. / 백성일 주필
"4년 동안 국회에서 생활해 보니 국회의원들이 어떻더냐"고 장세환 전 국회의원한테 좀 막연한 질문을 했다. 송곳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위선적인 의원들이 너무 많더라는 것이었다. 정의를 외치고 국민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국회의원일 수록 실제 행동이나 생활은 정 반대더라는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달라야 살아남는 게 우리 정치풍토라면 위선적인 그들이야 말로 정확히 현실을 읽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장 전 의원이 작년 12월14일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판에 대한 자괴감과 자신의 무력감이었다. 기자회견문은 '야권 통합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제목을 달았지만 '분열과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과 '사심과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것' 두가지를 내세웠다. 국민은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전투구식으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지난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점을 남겼다. '폭력국회'와 '식물국회'라는 질타를 들었다. 전기톱과 해머를 휘두르고 최루탄을 터뜨린 폭력적인 행태가 외신을 타고 세계에 전파됐다. 국민적 비아냥 속에서도 잇속 챙기기에는 여야 모두 적극적이었다. 세비와 보좌관을 늘리고 의원직을 그만 두면 65세부터 평생 매월 120만 원씩 받는 '노후연금'까지 챙겼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면 특권이 200여 개나 생긴다고 한다. 장관급 예우와 불체포특권, 면책특권에다 철도 선박 항공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의원들은 한해 1억2400여 만원의 세비를 받고 보좌관과 비서관, 비서 등 7명을 채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 300명에게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지원된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19대 국회는 절반 가까운 149명이 초선으로 물갈이됐다. 개혁성향도 앞서고 국민적 기대감도 높다. 일을 제대로 하고, 잘못된 관행을 개혁하면서 특권을 과감하게 버린다면 이런 비용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국회 개원일이다. 원구성 협상이 난항이다. 국민을 위하고 민생과 개혁을 주창하지만 당리당략에 매몰돼 있다. 18대 때와 똑같다. 국민 눈높이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변화와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데 우리 국회는 이런 기술이 없는 모양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조경묘와 경기전, 오목대·이목대 등이 그곳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은 태종 때인 1410년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졌다. 이 어진은 서울을 비롯 경주 평양 개경 영흥 등 6곳에 봉안되었으나 전주본만 유일하게 남았다. 처음 명칭은 어용전(御容殿)이었으며 경기전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세종 때인 1442년이었다. 경기전에는 어진 말고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신만고 끝에 유일하게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이 두 문화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동학혁명, 일제 등 숱한 고난을 딛고 600년의 세월을 건넜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 유림 등 지역민들이 이들을 지키기 위한 수고가 무척 컸다. 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고, 태조 어진은 보물 제931호(1872년 모사본)에서 국보로 승격돼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현재 모습의 경기전은 정유재란때 불에 타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인 1614년 중건한 것이다. 이같은 역사를 지닌 경기전이 6월 1일부터 유료화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적 명소인 이곳이 입장료를 받게 된 것이다. 유료화 문제는 그 동안 찬반 양론이 분분했다. 찬성측은 경기전이 가진 문화재적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고 보다 나은 관람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유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료 개방을 계속할 경우 무분별한 출입으로 질서 유지가 곤란하고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다는 점도 들었다. 반면 반대측은 경기전이 오랫동안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했고 별달리 볼만한 것도 없다는 주장을 폈다. 한 해 400만 명이 찾는 한옥마을 관람객들의 필수 방문코스인데 자칫 부정적 이미지를 낳는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전주시는 여론조사와 공청회, 조례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입장료 징수에 들어갔다. 이제 꽁짜로 드나들던 옛 경기전이 아니다. 그런 만큼 그에 걸맞는 안전한 보전관리와 쾌적한 환경,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 보여야 할 것이다. 전통문화중심도시의 상징적 문화자산인 경기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콘텐츠의 시대다. 시대야 어떻든 그 이유로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공연예술무대에도 콘텐츠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형식과 내용 그 모두에서다. 전통문화의 가치가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받으면서 공연무대의 양식은 확실히 풍요로워졌다. 요즈음 공연무대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창극에의 새로운 발견이다.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음악극이다. 아름다운 음악과 연극, 춤, 화려한 무대에 관현악 악기반주까지 결합해있는 종합예술이라는점에서 서양의 오페라와 비교되기도 한다. 최초의 창극은 '원세계'. 1908년 원각사에서 '원세계'가 올려진 이후 창극은 1950년대 말까지 가장 인기있었던 공연예술이었다. 우리 전통문화가 말살되었던 일제강점기, 창극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삶의 근원이 뿌리째 흔들리는 전통문화 말살의 환경에서 창극은 그나마 대중들의 삶을 위로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새로운 대중문화가 밀려들면서 창극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설자리를 잃었던 창극은 1962년 국립창극단이 만들어지면서다시 일어섰다. 과정은 지난했으나 창극은 100여년동안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적자의 자리를 그대로 지켜온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의 무대에서 창극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우리의 양식으로 발전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신명은 있으나 감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소리꾼의 절창에 가슴 뜨거워지지만 창극 무대가 여전히 낯선 탓이다. 다행히 창극에 대한 관심이 근래들어 높아지고 있다. 창극의 스토리는 여전히 고전소설이 주를 이루지만 다양해지는 콘텐츠 덕분에 새로운 스토리의 등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고전의 변용으로 스토리의 참신한 변화도 눈에 띄지만 무대양식의 다양한 실험도 창극의 틀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런점에서 보면 창극은 적어도 우리음악분야의 '오래된 미래'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주부터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소리문화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창극무대가 열리고 있다.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전주문화재단이 기획한 마당창극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 메고'다. 판소리 '춘향가'중 변학도 생일잔치와 암행어사 출도장면을 재구성한 이 무대는 창극의 정통적 요소를 열린무대의 새로운 양식과 결합시켜 신명을 한껏 돋궈낸다. 10월까지 한시적 야간상설공연무대로 기획된 아쉬움이 있지만 5개월 동안의 장정이 창극의 대중성을 높이는 시간으로는 부족해만 보이진 않는다. 이제 시작인 무대에 주최 측이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17번째 맞는 바다의 날이다. 1994년 12월 유엔해양법협약 발효에 따라 우리나라는 1996년부터 바다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오늘(5월 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한 것은 통일신라 시절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6월 8일을 세계 바다의 날(World Oceans Day)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올해 바다의 날 기념행사는 '우리의 바다, 세계와 만나다'라는 주제로 여수세계박람회장 한국관에서 열린다.바다는 자원의 보고다. 우리는 바다로부터 산소의 75%, 식량의 25%, 석유와 각종 광물자원의 30%를 얻고 있다. 그래서 독일 속담에 '바다는 인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남한 육지면적의 4.5배에 이르는 44만3000km²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보유하고 있다. 또 3200여 개의 섬과 1만2682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섬나라인 일본은 우리나라나 중국이 해양영토라는 개념이 없던 19세기 말부터 무인도를 자국령으로 편입시켜왔다. 이 같은 결과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447만㎢로, 우리나라보다 10배 넓으며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387만㎢보다도 더 넓다. 덕분에 일본은 석유 대체자원으로 기대를 모으는 메탄하이드레이트와 희토류 망간 등 엄청난 해양자원을 확보했다.바다영토 확보전은 지구상 마지막 자원의 보고인 북극해에서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세계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의 4분의 1이 북극해에 매장돼 있다고 추정한다. 러시아와 캐나다가 북극해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는가 하면 미국 노르웨이 그린란드 덴마크 등도 자국의 200해리내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천연자원의 개발권을 주장하는 등 총성없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 이들 연안국 외에도 중국이 1990년 쇄빙선 쉐룽호를 북극으로 보내고 2004년 탐사활동을 위한 기지를 건설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0년부터 북극해 해양자원 조사연구를 시작해 대상 지역을 점점 넓혀가는 중이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투입, 북극 항로를 개척하고 북극해의 영유권 확보를 통해 에너지 자원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제 바다 영토 확보는 경영학에서 말하는 블루 오션(blue ocean), 그 자체다.
변화를 요구한 도민들의 바람이 4·11 총선서 관철됐다. 7명을 물갈이 했기 때문이다. 시중서는 국회 원구성도 하기전에 초선 당선자들에 기대 보다는 걱정들을 많이 한다. 물 설고 길 설어 물당번 하기도 벅찰 것 같다는 생각들이다. 초선들이라 중앙 인맥이 부족하고 경험도 별로여서 제대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 거린다. 대부분의 당선자들은 열심히 하겠다고 자신감을 내 보이지만 유권자들은 맘에 안찬 느낌이다.이번에 도민들이 대거 물갈이를 통한 세대교체를 한 것은 지역에 참신성을 불어 넣어 새롭게 판을 짜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그간 다선 의원들 한테 지역을 맡겨봤자 지역이 특별하게 바뀐 것이 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도민들은 다선의원들의 정치력 보다는오히려 젊은 후보들의 패기를 선택했다. 너무 오랫동안 지역에 안주하다 보니까 썩은물이 됐다며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던 것.처음부터 초선들이 큰 정치는 못한다. 의욕을 갖고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다보면 길이 보이는 법이다. 전북의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한 정세균의원도 초선 때는 정치력이 별로였다. 선수가 쌓이면서 의정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오늘 같은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를 정도의 큰 정치인이 됐다. 정치적 거목으로 커 가려면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면서 금도(襟道)와 원칙을 고수할 줄 알아야 한다.지금 도민들이 할 일은 당선자들이 의정 활동을 잘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국회의원을 바꿨으면 어느 시점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간 도민들은 국회의원 책임 묻는데 엉성했다. LH문제를 따끔하게 혼내주지 않고 어물쩍하게 넘긴게 대표적 사례다. 그 같은 도민들의 엉거주춤한 태도가 문제다. 현재 전북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패배주의에 휩싸인 것은 일차적으로 정치인 책임이 크지만 도민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아무튼 지역 사회에 역동성을 불어 넣으려면 19대 원 구성을 계기로 낡은 '전북판'을 확 바꿔야 한다. '나 가수다'의 첫 방송이 나갔을 때처럼 뭔가 치열하고 근성 있는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몽땅 바꾼 것도 축 늘어쳐진 전북사회를 힘 있게 만들자는 뜻 아니었던가. 노장청이 조화를 이뤄 지역사회를 이끌도록 구태의연한 리더십을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원을 물갈이 한 효과가 나온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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