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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이 생겨난 것은 언제쯤일까.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는 6대 왕인 성종 때(995년) 당나라의 10도제(道制)를 들여와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다. 이 때 지금의 전북지역은 강남도(江南道), 전남지역은 해양도(海陽道)라 이름했다. 하지만 당시 도는 오늘과 같이 도지사가 상주하는게 아니라 중앙에서 안무사 또는 안찰사를 수시로 보내 순찰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현종때인 1018년 다시 전국을 5도 양계(兩界)로 나누고 4경(京), 5도호부, 8목(牧)을 설치했다. 이 때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라도라 했다. 전라도의 명칭은 8목 가운데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조선 태종때인 1413년 지방행정구역이 8도 체계로 바뀌었어도, 이같은 명칭은 계속되었다. 다만 인조 때는 전남도 광남도(光南道), 영조 때는 전광도(全光道)로 일시 불리기도 했다. 8도에는 관찰사가 파견되었고 전주에 전라감영을 두었다.그러면 ‘전라북도’는 언제 생겼을까. 조선시대 말 고종때 갑오경장(1894년)이 일어나 지방편제를 23부(府)로 개편했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2년 뒤인 1896년 13도 체제로 다시 개편했다. 이때 전북과 전남이 분할되어 현재까지 110년을 내려오고 있다. 전북은 전주에, 전남은 광주에 치소를 설치했으며 전북에는 26군을 두었다. 당시 행정구역상 전남의 구례군과 충남의 금산군및 진산군이 전북에 속했었고 고창 무장 흥덕은 전남에 속했다. 그러다가 1897년 구례군이 전남으로 편입되고 고창 무장 흥덕이 전북에 편입되었다. 이후 5·16 혁명이 일어나 군부가 실권을 잡고있던 1963년 전북에 속해 있던 금산군과 익산군 황하면이 충남으로, 전남의 영광군 위도면이 전북 부안군으로 편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이같이 오랜 역사를 지닌 행정구역체제가 올 4월 대대적으로 개편될지 모르겠다. 여야가 지방행정체제개편 기본법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본법의 핵심은 시·도-시·군·구-읍·면·동 3단계에서 광역 시·도를 폐지하고 시·군·구를 통폐합해 전국을 60-70개 중규모 광역시로 재편(2단계)한다는 내용이다. 그럴 경우 전라도 경상도 등의 명칭도 사라지게 되는데 과연 실현될지 두고 볼 일이다.
문신(文身)은 신체의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고 물감으로 글씨·그림 등을 새기는 행위다.문신의 역사는 종교의 기원과 궤를 같이 한다.원래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오래된 문신은 지난 1991년 알프스산에서 냉동된채 발견된 사냥꾼에서 확인 됐다.사냥꾼은 기원전 3300여년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문신이 부정적으로 낙인찍힌 것은 기독교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기독교는 공식화와 동시에 당시 민간신앙에서 행해지던 문신을 ‘악마의 상징’으로 여겨 금기시 했다.구약성서 레위기는 ‘몸에 무늬를 새기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문신은 서양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측면에서 행해졌다.중국에서는 도둑의 얼굴에‘도(盜)자’를 새겨 양민과 구분했고,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도둑들이 관아에 끌려가면 얼굴이나 팔에‘경’이라는 문신형벌을 받았다.누군가를 혼낼 때 ‘경을 칠 놈’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문신의 퇴폐적 이미지는 최근 국내 조직폭력배들이 문신을 조직의 의리와 결속력의 징표로 사용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여기에 병역기피를 목적으로한 일부 젊은층의 문신도 빼놓을 수 없다.팔뚝이나 등짝 전체에 꿈틀거리는 용이나 뱀 등을 새긴 이들을 공중목욕탕에서 만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혐오감과 불쾌감에 빨리 목욕을 끝내고 나오려고 서두르기 마련이다.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문신에 거부감을 갖는 반증인 셈이다.이같은 문신의 엽기성에 비해 이번 미국 슈퍼볼 MVP로 선정된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의 팔뚝문신은 우리 국민들에게 희생적인 ‘한국인 모정(母情)’의 애틋한 사연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한국말을 할 줄도 모르면서 자기 이름 하인스 워드를 한글로 새기고 그 밑에 빙그레 웃는 미키마우스를 그려넣은 문신은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귀엽고 깜찍하다.지난 2003년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해 열린 한일전에서‘반지의 제왕’안정환선수가 결승골을 넣은뒤 골 세리머니에서 선보인 아내를 위한 어깨문신이 영문으로 새겨져 아쉬움을 주었던 것과 비교된다.한글문신을 새길 정도로 자신의 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 하인스 워드의 쾌거에 거듭 박수를 보낸다.
최근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화제다. 인사청문회는 정부고위관리의 인준을 위해 정책소신과 자질을 평가하는 청문회로서 지난 1988년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청문회가 열린이래 국무위원임용에까지 확대되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파격적인 인사와 한나라당이 국회를 떠났다가 복귀하며 진행된 첫 국회활동이어서 지켜보는 이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적절한 견제방법중의 하나로 이를 통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지위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할 수 있으며,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회에서 대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고 우리도 이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사를 비롯한 각종 법안 및 국정에 관한 청문회는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이래 이미 매우 체계적이고 엄중하게 서경(署經:동의서명)이란 제도로서 존재하였다. 즉,고려시대에는 모든 관료가, 조선시대에는 5품 이하 관리에 대해 현재의 감사원기능을 갖는 대간(臺諫)의 고신서경(告身署經:관리임용동의)을 받아야만 관리로 임명될 수 있었다. 고신서경은 왕이 관리를 임명하면 관리 임용후보자에 대하여 친가와 외가의 4대조와 본인 자신의 지난 날의 행적을 조사하여 그 인물이 관직임용에 적합한지를 평가하고 부적합한 경우 이를 거절하면 관리가 될 수 없는 제도로서 현재의 청문회와 거의 동일한 제도였다.이 제도에 의해 고려시대에는 왕의 관리임명이 종종 고신서경을 못받아 무효가 되었고 조선시대에도 왕들의 가장 큰 불만이 서경을 거부하는 신하들과의 싸움이었다.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개인적 역량과 공직부서에 대한 적합성이 명확해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왕권을 통제한 의미가 매우 컸다. 근래 5월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원 선거로 지역정가에 만만치 않은 술렁임이 일고 있다.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비록 이같은 고신서경의 절차는 아니어도 유권자에게 철저한 검증과 확인을 받을 시점이 된 것이다. 특히, 유권자들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행하였던 이 같은 인사검증제도를 본받아 진실로 이 지역과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선량을 뽑아야 겠다.
절대가치로만 따지면 논쟁할 필요가 없다. 있어서 쓸 데 없는 것이 오히려 찾기 어렵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결국 정책적인 명제 앞에 서게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사회적 합의라고 하는 것도,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 방법도 그 효율성을 중시하는 정책적인 접근일 수 밖에 없다. 만약 절대가치를 판단하는 문제였다면 이치를 따져서 결정하면 될 일이니 굳이 다수가 모여서 머리를 맞댈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논제 중 하나가 바로 영어 문제 아닌가 싶다.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결말이 나지 않았던 이 화두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이 올 하반기 정기 신입사원 공채 때부터 영어회화 능력이 부진한 사람은 면접시험에서 불합격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고 할 만큼 세계적인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에서 영어회화 능력을 점검하겠다는 결정이 우리 사회에 몰고 올 파장은 적지 않다.그렇지 않아도 조기 영어학습이나 초등학교에서의 영어학습 확대 등으로 과민해져 있는 우리 사회에 이번에는 ‘영어로 말하기’ 숙제가 하나 더 던져진 셈이다. 때마침 미국 ETS(교육평가서비스)에서 주관하는 토익시험에 말하기와 작문 시험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러한 움직임은 영어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실용적인 측면을 종전보다 강화한다는 것을 뜻한다.영어만을 놓고 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외국어가 영어뿐인가 하는 논의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삼성그룹의 결정 역시 비켜가지 못한 인상이다.외국어를 두 개 아니 세 개 이상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별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굳이 외국인을 평생 만날 일이 없다 해도 외국어 학습에 시간을 투자해서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효율성에 있다. 비유로 말하자면 한문 선생님이 무서워서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다른 공부를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 삼성그룹에서 영어에 대한 비중을 높이게 되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어 있는 타 언어권 학습에 대한 기회를 더 앗아갈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다지 번잡하지 않은 어느 포구의 포장마차에서 조개구이에 소주 몇 잔을 기울이다 허름한 벽지 위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무슨 표어 같은 문구를 보고 실소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현찰, 내일은 외상!' 이 글귀를 뒤집어 보면 '외상 사절'이라는 뜻이 분명한데 가방끈이 별로 길 것 같지 않은 털보 주인이 어떻게 이런 해학적인 말을 생각해냈는지 웃음이 나왔고, 몇 잔 술값 때문에 작은 실랑이를 벌일 주인과 손님의 모습이 떠올라 또 한번 웃음이 나왔다.웬만한 사람은 지갑 속에 신용카드 몇 장씩 넣고 다니는 요즘이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상할 일이 거의 없지만, 신용사회가 정착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외상거래는 얼굴만 익히고 살 정도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그 때는 백화점이나 할인점 같은 대형유통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개가 동네장사 형태를 띠고 있어서 외상을 주지 않으면 인심이 사납다고 소문이 나 장사가 잘 안될 정도였다.외상거래가 밥 먹듯이 이뤄지던 그 시절 외상에 얽힌 웃지못할 이야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처음 외상을 틀 때는 시계나 반지 같은 귀금속에서부터 주민등록증이나 학생증 같은 신분증을 맡기기도 하고, 외상돈이 도를 넘어설 때는 집안의 고가품을 담보로 잡혀놓고 물건을 갖다쓰기도 했다. 그 뿐인가, 외상으로 온갖 생필품을 잔뜩 가져간 후 야반도주하는 양심불량자가 있는가 하면, 외상장부 몰래 훔쳐다가 태워버리는 심장에 털난 사람도 있었다.가진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외상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알고보면 외상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만큼 외상을 쓰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철칙이요, 외상이 쌓여 자기 분수를 넘어서게 되면 파멸을 부르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이자 없다고 외상 무서운줄 모르고 설치다가는 제 운명 재촉하게 된다는 말이다.증권시장이 최근 3일동안 36조6천6백억원어치나 폭락해 깡통계좌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증시전문가들은 외상으로 주식을 산 뒤 나중에 결재하는 미수거래제도가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상이 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생사람까지 잡아버리는 것 같아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줄곧 축소를 반대해 온 영화계에서는 “참여정부에 당했다” “한국영화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영화계는 1일부터 철야농성에 돌입하는 한편 8일 하루동안 한국영화 제작을 전면 중단할 예정이다. 반면 축소를 찬성하는 정부와 경제계 등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영화계의 집단이기주의”로 몰고 있다.한국영화는 90년대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게 사실이다. 국내의 한국영화관객 점유율이 2001년이후 평균 54%를 차지하고 있고 지난해 영화수출액이 7600만달러를 넘었다.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차지하는 할리우드 영화도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맥을 못추는 형편이다. 한국영화계는 유능한 제작진과 자본의 유입 등으로 안정권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을 뜯어 보면 취약한 부분이 많고 스크린 쿼터의 장막이 걷힐 경우 살아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번 논쟁은 찬반을 떠나 한국영화 발전에 일대 전환점이 될듯 하다. 스크린 쿼터는 1966년 제2차 영화법 개정시 도입된 제도다. 영화진흥법 28조에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대통령이 정하는 일수 이상의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행령 13조에 연간 상영일수의 40%(146일) 이상으로 규정했다. 영화관이 이 의무상영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해당 날짜만큼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처음 영국에서 시작된 이 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브라질 이탈리아 등 8개국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스크린 쿼터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문화된 상태며 대신 방송에서 자국영화를 40% 이상 방영토록 하고 있다. 이번 축소논란의 출발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앞서 미국이 4가지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스크린쿼 축소(20%)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배출가스 기준적용 유예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의약품 약가 산정기준 개선 등을 요구한 것이다. FTA 체결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일 뿐 아니라 한국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도약하는 계기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한국경제와 한국영화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낚시꾼의 대명사격인 중국 주나라 강태공(姜太公)은 웨이수이(渭水)에서 낚시대를 드리운채 호연지기를 길렀다.그는 미늘없는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강태공은 문왕에 의해 중용돼 큰 족적을 남겨 오늘날 큰 인물이 될 사람을 뜻하는 위빈지기(渭賓之器)도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공자도 낚시를 조이불망(釣而不網),즉 군자는 낚시를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서양에서도 낚시에 대한 인식은 동양과 비슷하다.낚시를 생활수단이 아니라 취미나 즐거움으로 생각했다.낚시인의 바이블로 불리는 영국의 수필가 아이작 월튼의 ‘조어대전(The Compleat Angler)’에는 낚시를 ‘명상하는 사람의 레크리에이션’이라 했다.1653년 출간된 이래 3백여년에 걸쳐 수십판이나 거듭 출간된 이 책은 낚시를 훌륭한 신사적 레저로 인식시킨 것으로 평가된다.문제는 근래들어 낚시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낚시터의 수질이 오염되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가 집계한 2004년 기준 전국의 낚시인구는 570만명에 이른다.주5일근무제 등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전국 6000여개소의 민물 낚시터와 바닷가는 이들이 버린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소주병,비닐봉지,스티로폼 그릇,음식 쓰레기 등이 풀섶등에 버려진채 환경을 오염시킨다.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낚시가 성행하는 미국등에서는 낚시를 하기전에 일정금액을 내고 낚시허가증 부터 사야 한다.낚시 시기와 잡는 물고기의 제한등 관련 규칙도 엄격하다.수질오염을 일으키는 떡밥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우리 정부가 낚시를 레저활동으로서 확산시키는 동시에 환경오염과 어류자원 감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권으로 편입,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해양부는 등록을 원하고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낚시인에게 등록증을 발급하는 ‘낚시인 관리제도’를 도입할 계획을 엊그제 밝혔다.정부는 지난 1990년대 초반부터 ‘낚시면허제’도입을 몇차례 시도 했었다.그러나 그때마다 만만치않은 반대여론에 부닥쳐 실시를 미뤄왔던 것이다.정부는 이제 더 이상은 낚시인들 자율에 맡기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낚시관리제 도입을 계기로 낚시를 즐길 자격이 있는 낚시인들이 낚시터를 찾기를 기대한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의 원문과 번역본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하여 전 국민이 역사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이래 철종까지의 25대 472년간의 역사(고종,순종시대는 일제가 정리해 실록에 미포함됨)로서 서울,전주,충주,성주 4곳에 분산, 보관하였고 임진왜란시 전주사고본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이후 서울 춘추관, 묘향산, 태백산,오대산, 강화도 등 깊은 오지에 다시 제작해 보관하였다. 이중 춘추관본은 이괄의 난때 불타고 묘향산본은 무주 적상산으로 옮겨 강화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의 4사고의 실록이 조선왕조 마지막까지 전해왔다. 일제에 의해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조선총독부에 옮겨지고, 적상산본은 구황실 장서각에 옮겨졌다. 오대산의 실록은 일본에 반출되어 동경제국대학에 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불타버렸고 국내에는 정족산본(원 전주사고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태백산본은 부산정부기록보존소에 남아있다. 그리고 적상산본은 1950년 6.25 당시 소실된 것으로 전해지다 1970년대에 북한측이 가져갔음이 확인되었다. 북한은 1970년에 사회과학원 고전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실록번역을 착수하여 “리조실록”을 간행해 1982년 전 400권으로 완간하였고 2005년에 멀티미디어 편집물을 제작하였다. 국내에서는 민족문화추진위원회에서 1970년대 본격적으로 번역사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1990년대 번역본 실록CD를 제작하여 원전사료의 디지털화를 추진해 최근 방대한 원문입력까지 마친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대위업을 달성하였다. 이제 집에 앉아서 조선왕조의 역사를 시시콜콜히 탐색하는 경이로운 역사탐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강국의 실체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각종 국가기관이 연결된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서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엄청난 고전문헌자료들을 번역하여 무료로 제공하는 행복한 시대를 맞고 있다. 이제 역사는 권력을 가졌던 자들의 독점물이었던 시대가 끝나고 전국민이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린 역사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 역사를 만들어 내었던 우리 지역의 역사도 새롭게 만들어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야기 하나. 지난 해 7월 임수경씨의 아들이 필리핀에서 죽었다. 이런 사고 소식이 인터넷 뉴스로 뜨자 애도의 글과 함께 비난의 글이 댓글로 달렸다. 방북 경력이 있는 임수경씨 아들이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다는 사실이 비난의 구실이 된 듯하다.인터넷 글쓰기에서 ‘악풀’이라 불리는 댓글들이 있다. 글의 내용이 상당히 악의적인 댓글(리플)을 지칭한다. 그런데 이런 댓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이런 댓글을 일부 언론에서는 ‘말폭탄’이라는 새로운 합성어를 만들어 그 위력을 표현하고 있다.이야기 둘. 고창 선운사는 우리 고장이 자랑하는 명소 중 하나다. 그리고 암벽이 좋기로 소문난 장소여서 많은 산악인들이 이 곳을 찾는다. 아슬아슬하게 암벽에 매달려 있는 산악인을 보던 한 행인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 떨어지면 죽는다.’ 문제는 그 말을 그 산악인이 들리는 자리에서 했다는 데 있다.우리는 말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듣게 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실을 말한 것이니 틀린 말이 아니라는 이들의 주장이 옳긴 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민족은 모순적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은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를 듣고 사는 우리이기 때문이다.언어는 도구이다. 언어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보다 의미전달의 도구일 때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언어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에 적절한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봤을 때는 사실 그대로일지 몰라도 그 말을 듣는 이에게는 마음 속을 후비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다시 임수경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악성 댓글을 달았다는 사람들이 교수, 은행원,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왜 서울까지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라고 거부한 대학교수가 있어서 또 한 차례 화제가 되었다.남의 중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이 두 표현은 모순되는 듯 하지만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가슴에 묻어야만 할 일이 내 고뿔만도 못하게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주위에서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발이 넓은 사람을 흔히 ‘마당발’이라 부른다. 옛부터 ‘마당’은 넓고 놀기에 좋아 그런 말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요즘 말로 바꾸면 ‘인적 네트워크’가 잘 형성된 경우를 가리킬 것이다.이 마당발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친화력이 있어 누구를 만나도 금방 친해진다. 둘째는 인간관계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사람을 좋아해도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마당발치고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경우는 드물다. 셋째는 여러 모임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방면에 걸친 모임을 몇개씩 갖고 있다. 그리고 두가지 이상의 모임이 겹칠때면 한 곳에만 가는게 아니라 몸이 고생스러워도 ‘두 탕’을 뛴다. 물론 애경사 챙기기는 기본이다. 네째는 인맥을 이용해 사람들을 서로 잘 연결시켜 준다는 점이다. 이같은 마당발은 먼저 베풀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통점이 있다.그런데 이러한 마당발에 브로커가 붙을 경우 이미지는 완전 구겨진다. 브로커라는 말에서 음습한 범죄의 냄새가 배어나기 때문이다. 원래 브로커(broker)라는 말은 서양에서 상인을 뜻했다. 17세기에는 도매상과 소매상 구분없이 쓰였고, 이후 재화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단지 중개만 하는 중개인을 일컬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거래를 알선하고 커미션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요새 ‘마당발 브로커’로 불리는 윤상림 사건이 정관계를 뒤흔들고 있다. 법조비리를 수사하다 드러나기 시작한 윤씨의 행각은 양파껍질처럼 벗길수록 끝이 없다. 정치계 인사에서 부터 현직 판사, 검사장급 변호사, 경찰간부들과 불투명한 돈거래를 했을 뿐 아니라 국방부, 청와대까지 드나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를 ‘게이트’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요구할 기세다. 고교를 중퇴한 윤씨는 친화력이 뛰어나 사람을 한두번 만나도 바로 ‘형님 동생’ 사이로 발전시키는 뛰어난 수완을 지녔다. 압수된 수첩에는 내노라하는 각계인사 1000여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직업별로 분류돼 있었다고 한다. 최근 경찰청 차장이 이 사건과 연루돼 옷을 벗고 전북지방경찰청장도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다. 고위직일수록 몸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는듯 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에게 설은 세뱃돈이 있어 즐거운 날이다.우리의 설 역사는 매우 길다.신라때 원일(元日)에 궁중잔치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고,고려시대에는 구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지켜졌으며,조선조에는 4대명절의 하나로 여겨졌다.그러나 설 아침에 덕담과 함께 건네주는 세뱃돈 유래는 그처럼 오래 된 것 같지 않다.조선조때의 세시풍속을 자세히 기록해 놓은 동국세시기에도 덕담에 관한 풍습을 적어 놓았을 뿐 세뱃돈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당시에는 웃어른을 찾아가 세배를 하면 떡과 과일을 내놓았다.서당 훈장은 세배를 하는 학동들에게 평소에 교훈이 될 짐승이름 하나씩을 쓴 글을 봉투에 담아 주었다.성급한 아이에게는 소 우(牛)자를,행동이 느리면 말 마(馬)자를 써주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반성케 했다.세뱃돈 관행은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설이 되면 미혼 자녀들에게 ‘돈 많이 벌어라’는 덕담과 함께 붉은 색 봉투인 홍포(紅包)에 약간의 돈을 넣어 주었다.이런 관행이 점차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 베트남,싱가포르 등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돈 욕심 많은 일본인들이 이를 먼저 받아들이고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하면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1920년대 국내 신문에는 ‘아이들이 돈맛을 알게되면 좋지 않다’며 세뱃돈을 주지 말것을 당부하는 글이 실리기 까지 했다고 한다.우리의 경우 몇년전 부터 도서및 문화상품권이 발행되면서 상품권을 세뱃돈 대신 주도록 권장하기도 했다.책과 음반 구매는 물론 영화,각종 공연관람등 용도가 다양해 요긴하게 쓸 수 있다.무엇보다 노골적인 현금보다 정성이 담긴 선물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올 설을 앞두고는 새로 나온 5000원권이 세뱃돈으로 인기라고 한다.수요가 달리면서 추가 발권을 했지만 은행창구마다 신권을 교환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양이다.경기불황 여파로 세뱃돈을 만원짜리로 주기에는 부담이 가는데다 5000원 신권의 희귀성에 디자인이 세련돼 세뱃돈으로 적격인가 보다.사흘만 지나면 설이다.세뱃돈으로 일시적인 환심을 사는 것 보다는 진정한 돈의 가치를 깨달아 근검절약의 지혜를 배우게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게 세뱃돈에 담긴 진정한 의미일 성 싶다.
최근 전세계를 풍미하는 흥행영화의 상당수는 판자지영화이다.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 대다수 신화에 근거한 영상물들이 그 중심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이들 영화는 북구 및 유럽의 신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다양한 에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발전하여 막강한 문화산업의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작가가 모두 영국사람이란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작가 톨킨이 독일의 니벨룽겐의 반지 신화에 근거해 만든 것인데 이 신화는 이보다 먼저 전해지던 북유럽(스칸디나비아)의 신화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 루이스도 영국 출신이고 헤리포터의 작가 조엔 롤링도 영국출신이다. 이들 작품의 무대는 영국이지만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현재와 마법이 공존하는 중세적 세계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럽사회의 초자연적 신화를 영국인들이 자신들의 세계관을 통해 새롭게 그려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즉, 한국 문화산업의 시공간적 범위를 아시아 및 세계의 신화와 설화로 확대하여 우리가 재생산해낼 수 있다는 선례인 점이다. 그 가능성이 이미 한국 게임산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지’에서 확인되었다. 이는 온라인게임 사상 첫 동시접속자수 10만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아시아로 확대되어 온라인게임이 한국 게임시장의 중심이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 리니지의 배경이 되는 아덴 왕국은 10세기 전후 유럽의 이미지를 딴 가상의 세계였다. 전라북도는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 옹녀-변강쇠이야기, 콩쥐팥쥐전 등등 주옥같은 한국의 원형적 설화와 소설의 무대이자 이야기가 만들어진 문화창조의 공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신화와 중국 신선의 세계, 일본 신들의 이야기, 북방민족, 동남아시아, 인도의 신화, 설화 등을 우리가 재가공해 새로운 콘텐츠로 창조해 낼 시점이다. 이제 우리의 저력으로 새로운 신화와 판타지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전라북도, 전주시 등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요청된다.
예전에는 한겨울 농한기가 되면 사랑채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이 자리에 들려면 다들 한 마디식은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다양한 인사를 건네며 그 자리에 끼어들었다. ‘오늘은 날씨가 춥네’등의 날시나 동네 화젯거리를 건네며 그 무리에 합석을 하고는 했었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 농촌사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지금도 그리고 도시에서도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틈에 끼려면 좌중에게 한 마디 말은 건네야 정상인 것이다.이러한 인사치레는 자신의 존재를 좌중에게 알리는 의식이다. 이와 비슷한 인사치레로 ‘어디 가?’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 서로 지나치면서 건네는 이 말은 매우 형식적이다. 실제로 가는 곳이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유대감을 확인하는 의식일 뿐이다. 듣는 이도 이러한 의미를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이러한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역시 의례적인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존재의 확인을 넘어 그 지위를 유난히 따지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높여줘야 하고 낮춰야 하는 관계가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자리매김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가 복잡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당신’이란 단어는 2인칭으로 자주 쓰이지만 3인칭 극존칭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드물게 쓰이는 ‘당신’이 마치 2인칭 평칭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그 스임이 현격하게 줄어 들었다. 듣는 사람이 3인칭 극존칭의 용법을 모르면 오해하기 십상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자기 아버지를 존재해야 하는지도 쉽지 않은 문제다. 듣는 할아버지를 생각한다면 낮춰서 표현해야 하지만 말하는 손자 입장에서는 아버지도 손윗사람이기 때문에 무작정 낮추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그런데 물건값을 표현할 때 이런 경어체가 등장하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 ‘이 물건이 싸세요’라는 표현은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물건을 높인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물건을 사는 고객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존대의 대상이 듣는 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품에까지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언어도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바꾸는 주체는 우리들이다. 따라서 얼마나 품격있는 언어를 만들어 가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간 세상에서 어찌 이념 논쟁이 없을 수 있겠는가마는, 오늘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 논쟁은 식상하다 못해 피곤할 정도다. 사실 국민들이야 진보든 보수든 잘 살게 해주는 정치를 갈망하고 있는데 정작 정치인들은 애꿎은 국민을 담보로 실체도 모호한 진보와 보수 논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우리 말 사전에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보수는 오랜 습관과 제도 방향 등을 소중히 여겨 그대로 지키는 것으로 뜻풀이를 하고 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두 단어 사이에는 대립할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보수나 진보나 부정적 의미보다는 다같이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회에서 보수는 낡아서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으로, 진보는 장래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왔던 것이다.'보수. 진보의 논쟁을 넘어서'의 저자 현승윤은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사상의 차이가 아니라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라면서 "어찌 보면 두 개의 상충되는 듯한 가치가 동시에 혼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하고, 이를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데는 반대를 한다면 그는 진보인가 보수인가"라고 반문을 했다.싸우기 좋아하는 정치인들이 이제 보수와 진보 논쟁만으로는 싫증이 났는지 애매한 시비거리를 만들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진보도 그냥 진보가 아니라 합리적 진보, 중도적 진보, 신 진보, 혁신적 진보 등으로 분화를 하고 보수 또한 수구적 보수, 합리적 보수, 중도적 보수,신 보수,진보적 보수 등으로 분열을 한 것이다. 도대체 새로 태어난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쏭달쏭 하다. 최근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중심당'이 창당대회를 갖고 한국정당사에 등재를 했다. 심대평 대표는 대회사에서 "판을 뒤엎으려는 급진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 기득권에 집착하는 수구도 보수가 아니다. 합리적 보수와 온건한 진보를 지향한다"며 당이 추구하는 이념을 천명했다. 그러나 현란한 수사(修辭)몇마디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말로만 국민중심당이고 실체는 지역당이라면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인권(人權)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빠짐없이 가지고 있고, 또 가져야 할 자연적 권리다. 즉 성별·장애·빈부 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선천적 권리이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고유권을 말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인권은 신체의 자유, 노동권 등 기본적 권리를 의미했다. 그러다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소극적인 자유권, 평등권의 차원을 넘어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권리, 사회참여의 기회보장 등 적극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예전에는 선진국 여부가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지표로 평가하였으나 오늘날은 인권보장 정도를 따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같은 시대적 추세에 맞춰 우리나라도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인권위 설치는 당초 김대중 대통령이 97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사항이었다. 하지만 인권위가 설치되기 까지는 엄청난 진통이 따랐다. 정부와 여당, 야당, 시민단체간에 줄다리기가 3년을 끌었다. 이렇게 출범한 인권위는 지난 4년여 동안 사회적 차별을 막는 병풍역할을 했다.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신장에 기여했고 특히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국민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표명이 현실과 동떨어져 우리 사회에 논쟁의 불씨를 던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이런 가운데 인권위가 지난 주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만들어 정부에 보냈다. NAP는 국가인권정책의 로드맵으로 올 6월까지 유엔에 보고한뒤 2011년까지 시행해야 할 사항. 여기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체복무제 도입, 사형제 폐지를 비롯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범위확대 등 광범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비정규직 남용방지, 쟁의행위 규제 최소화, 노조의 형사처벌과 민사책임 완화,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축소 등 재계와 관련된 사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같은 내용이 재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전경련 등 재계 5단체장들이 긴급 회동해 반박성명을 내는가 하면 보수언론은 이를 ‘아마추어리즘이 만들어낸 악법’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재계는 “시급한 인권신장은 일자리 만들기”라고 맞서면서 인권위 해체까지 요구했다. 인권보장과 현실의 거리감을 메울 수는 없을까.
‘해저 2만리’로 유명한 프랑스의 공상과학소설가 쥘 베른은 1874년 그의 소설 ‘신비의 섬’에서 물로 부터 얻어낸 수소와 산소가 미래의 에너지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소설속에서 그려진 꿈같은 이야기가 실제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최근 국제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대 중반에 육박하면서 다시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석유는 석탄과 함께 대표적인 화석연료이다.전문가들은 이들 화석연료 소비가 현 추세로 이어질 경우 향후 40년 정도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또 화석연료는 쓰면 쓸수록 온실가스 발생 증가등 지구환경을 황폐화 시킨다. 세계 각국은 이같은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수소(水素)에서 찾고 있다.수소를 꿈의 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수소는 원자기호 ‘H’로 원자기호 1번, 원자량은 1.00794이다.수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반응성이 높아 그 자체보다 대부분 물(H₂O)이나 화석연료,식물·동물등의 구성성분으로 존재한다.연소된 이후 다시 물로 돌아가고,연소할 때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는 것이 장점이다.수소경제(經濟)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수소의 대량 생산과 저장기술 개발이 선결해야 할 핵심과제로 지적되고 있다.현재 물 분해로 수소를 얻는 방법으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각국과 유명 자동차회사·정유사 등이 저렴한 생산방법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안전한 저장방법 개발도 마찬가지다.기체인 수소가 새어나와 공기와 섞이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최근 도내 연구진이 수소를 고압상태에서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탱크를 개발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전북대 이중희교수와 김제시 용지면 소재 고압용기 전문제조업체인 (주)케이시알이 나노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이 탱크는 350기압 타입4 수소저장탱크로는 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3번째로 개발에 성공해 국제인정을 받는 개가를 올렸다.올해에만 1000억원 이상의 수입 대체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2010년 해외 약 25조원 규모 시장에서 경쟁률을 갖출 수 있다니 대단한 성과이다.도내 학계와 벤처기업이 합심 노력한 쾌거에 도민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한자를 잘 모르다 보니 역사적인 개념어들도 잘못 발음하거나 원발음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씨 발음이다. 지휘자 금난새의 성은 한자로 금(金)이다. 대부분 봉화 금씨인 거문고 금(琴)씨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는 국민가곡 「그네」의 작곡자 금수현(金守賢)으로 그는 경주김씨에서 분파된 김녕(金寧) 김씨 자손이다. 금수현씨가 ‘성씨 김(金)’자가 ‘쇠 금(金)’이기도 하고 시조인 알지(閼智)의 성이 신라 때는 ‘금’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금씨로 성을 바꿨다. 거의 모든 김씨는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계와 신라 김알지(金閼智)계의 두 갈래로 나뉜다. 하늘에서 내려온 금(金)빛 알이 어린이로 변해 되었다는 수로왕계는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대표이며, 경주김씨(慶州金氏)계의 시조인 김알지는 경주 계림(鷄林)의 나뭇가지에 걸린 금빛나는 상자인 금궤(金櫃)에서 태어났다 하여 모두 성을 금(金)이라 했다. 신라시대 이래 금(金)씨 였던 것이 김으로 바뀐 것은 조선시대이다. 즉,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이(李)씨였고 이는 도참설의 목자(木子=李)왕위설에 입각한 왕조건국이었기에 조선왕조는 목(木)의 기운을 타고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오행사상에서 목(木)의 기운을 이기는 것이 금(金)이었기 때문에 성씨인 금(金)씨를 김(金)으로 발음하게 한 이래 김씨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김씨가 맞지만 원래 금씨였다는 것을 알고 이를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 가까이에도 이같은 명칭이 있다. 즉, 새만금이란 명칭은 간척사업 과정에서 만경강과 김제의 이름을 이용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이름으로 원래 김제(金堤)가 금제(金堤)였음을 보여준다. 이는 금산사(金山寺),금구(金溝),금마(金馬)명칭으로도 남아있다. 이같은 한자명칭의 음이 변경된 예로 원래는 강한찬(姜邯贊)장군을 강감찬으로 읽고 고구리(高句麗)를 고구려로 읽는 예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한자이해의 부족(?)등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우리 한자교육이 체계적이고 .역사적이어야함을 보여준다.
한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토론의 주제가 얼마나 될까. 얼마 안가서 결국 주제의 빈곤으로 토론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된 적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 진행을 해 보니 그렇지 않더란다.요즈음 황우석 교수의 건이 조금 시들해지면서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주행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오토바이가 고속도로 등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무리를 지어 고속도로를 달린다. 특히 여름철이면 이들 오토바이가 이삼십여 대 이상 무리 지어서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가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려야 한다는 주장의 한 사례로 이런 외국의 양상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관심있게 살펴야 할 것이 있다. 교통문화 수준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자동차의 주행 흐름이 우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과속이 사고의 주범이라면 속도제한이 없는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는 늘상 사고가 나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잘 달리면서도 사고는 거의 없다. 아우토반에서 일차로를 주행하려면 보통 시속 160 킬로미터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 속도로도 일차로를 계속 주행할 수 없는 이유는 뒤에 바로 차가 따라붙어서 비켜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운전문화에 있다.이들은 우측차로가 비어 있으면 채운다. 그래서 우측차로로 진입하는 차량은 진입한다는 신호를 안 넣고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3차로 등의 넓은 도로에서도 승용차가 3차로로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운전문화 덕분에 아우토반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빨리 달리던 차량들도 공사구간에 80 킬로미터 속도제한 표지판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제한속도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자동차가 빨리 가려면 직선주행을 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빨리 가려면 아직도 지그재그 운행을 해야 한다. 오토바이의 자동차전용도로 주행 논의도 좋지만 교통문화의 정착은 더 시급하다.
2005년 11월 말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총 1천5백35만7천1백69대. 2003년도에 1천4백58만7천3백33대, 2004년도에 1천4백93만4천4백74대였으니까 매년 35만대 꼴로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안에 최소한 1천5백70만대 선을 넘어서 우리나라도 마침내'1가구 1자동차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에 '포드A형 리무진' 자동차를 국내에 처음 들여온 후 1백3년만의 일이다. 참고로 2004년 말 현재 우리나라 총 가구수는 1천5백53만9천가구다.세상에 자동차가 없다면? 이제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 돼버렸다. 급히 병원을 가야할 때 생명이 위태로워질 것이요, 볼 일이 있어 서울을 다녀와야 할 때도 족히 보름은 걸릴 것이다. 그 뿐인가. 그 무거운 짐들은 무슨 방법으로 옮겨야 하고, 자동차로 전국을 누비며 사업을 하는 이들은 또 무슨 수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생각만해도 눈 앞이 캄캄해진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라는데 딴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데 현대인의 핵심 필수품이라는 자동차에 웬 세금은 그리도 많이 갖다붙였는지 아무리 양보를 해서 생각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특소세에 교육세 부가세 등록세 취득세 주행세 등등 무려 12가지나 된다니 머리 나쁜 사람은 세금 종류조차 외우기 힘들 정도다.그 중에서도 자동차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세금이 특소세다. 특소세는 세목의 목적대로 사치성 품목이나 소비 억제 품목, 그리고 고급 오락시설 등에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한 때는 TV나 냉장고 에어컨에도 특소세를 물리다 이제는 귀금속과 고급 모피까지도 특소세를 폐지했다. 세상이 변해 이들 품목을 더 이상 사치성 품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가 사치성 품목이라니...정부가 내수진작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인하조치를 취했던 자동차 특소세가 금년부터 원상복귀 됐다. 2000cc 이하는 4%에서 5%로, 2000cc 이상은 8%에서 10%로 다시 인상이 된 것이다. 1500cc 소형 자동차세가 4억5천만원짜리 아파트 재산세보다 3배나 많은 마당에 한시적이나마 기왕 인하시켰던 특소세를 다시 찾아다 서민들을 짓누르다니 '편한대로 세금 거둬들이는 정부'라는 말 들어도 싸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체코의 하벨 전 대통령은 2004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일을 ‘세계 최악의 전제주의적 독재자’라 불렀다. 이같은 인식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비슷하다. 북한을 ‘범죄집단’이나 ‘악의 축’으로 치부하고 걸핏하면 김정일을 ‘폭군’이라 몰아 세운다.반면 2000년 6월 정상회담을 가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총명하고 솔직한 사람, 북한을 냉전시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끈질긴 개혁가’로 평가했다. 이러한 생각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유사하다.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 김정일을 만난 바 있는 박 대표는 그를 ‘솔직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대화하기 편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32세 되던 1974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내정된 후 40년 동안 북한정권을 틀어 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두가지를 일치시켜야 할 딜레마가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체제수호와 정권의 존속이요, 또 하나는 인민을 먹여 살려야 할 책무다. 김정일은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외화난, 식량난, 에너지난 이라는 3난(三亂)을 물려 받았다. 산업가동률은 30%대에 머물고 먹을 것이 없어 대량 탈북이 생겨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중국을 본 따 개혁 개방으로 갈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북한은 이러한 기조에서 2002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장을 허용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 전문가에 따르면 평양 상점에 바겐세일 문귀가 나붙고 현금카드를 쓸 수 있는 가게와 음식점도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노동당 지배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데 고민이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한다. 체제안정과 내부 결속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김정일은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이며 당이다’고 말할 정도다.이런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이 10일 중국을 방문했다. 상해와 심천특구를 둘러보고 북경에 도착, 후진타오 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다. 그의 중국방문은 2000년 이후 벌써 4번째다. 이번 방문은 미국의 북핵 압박과 경제 제재에 맞서 북-중 동맹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의 딜레마 해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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