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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 존재와 불편한 진실

지난달 전주시청 간부 1~2명이 ‘시장 측근’ 임을 내세워 호가호위한다는 소문에 때아닌 홍역을 치렀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조만간 요직으로 옮길 것이란 뉘앙스까지 풍겨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런 사례들은 과거 관가에서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번 해프닝이 과거와 달리 주목을 받은 건 민선 8기 핵심 측근에 대한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도청과 전주시청 주변에선 진짜 누구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임 김완주-송하진 시절 이른바 캠프 측근 중심의 권력 질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 이들은 각자 전주시장과 도지사 재임 16년 동안 나름 탄탄한 조직 관리를 해왔다. 그 측근 참모 중에는 국회의원과 단체장도 배출됐다. 이에 반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닻을 올린 김관영 우범기 후보 캠프는 출발이 단출했다. 지금은 지역 정치권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두 사람의 핵심 측근을 둘러싼 얘기는 피상적이다. 당선자 인수위 때와 달리 독보적 위치의 캠프 측근이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선거전 양상과 맞물려 있다. 이들의 당선 과정은 문자 그대로 반전을 거듭한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압도적 1위였던 송하진 후보와 여론조사 선두 임정엽 후보가 돌연 컷오프 되면서 승기를 잡았다. 결국 독자 세력이 아닌 이들과 연대를 통해 권력을 거머쥔 셈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의 시대적 요구가 그들 상승 기류에 불을 지핀 것이다. 둘 다 선거 캠프 조직력 보다는 자신의 인물 경쟁력 우위가 선거에서 어필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독자적으로 집권한 김완주-송하진 캠프의 측근 위상과 결정적 차이를 보이는 배경이다. 시중 여론은 김관영 지사와 우범기 시장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취임 1년이 흘렀지만 그간 이들이 보여준 변화와 개혁 의지를 확인한 까닭이다. 그러나 두 사람 원맨쇼 활약에 비해 참모들 역할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김완주-송하진 시절 최측근 비서실장과 캠프 핵심 대외협력 라인이 민심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건 김 지사의 경우 정치권의 지원사격 없이 홀로 전북 마케팅에 올인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쌍두마차인 김종훈 경제부지사가 그나마 이름값을 하는 정도다. 새로 합류한 임상규 행정부지사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 흐름에 민감한 공직 사회의 이런 분위기는 현안 추진에서도 크게 작용한다. 전임자의 오랜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캠프 참모들은 주군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들과 코드 맞추기를 통해 익숙한 조직 문화 속에서 단체장 혼자 역동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취임 초 김 지사가 200여 명 넘는 팀장급에게 타시도 벤치마킹 사례를 공모, 포상 승진 등을 통해 강한 의욕을 불러일으킨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소통의 리더십을 이어 받아 철벽 마무리투수 역할의 측근 참모가 보이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6.15 17:37

정치인의 용기와 비선실세

암울했던 1980년대 5공시절. 정치권에는 심심치 않게 실세라는 말이 유행했다. 정치규제에 묶여 현실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김대중, 김영삼 등 소위 양김씨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민우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한민주당 지도부는 가슴에 배지를 달고 있고 명패도 있지만 이들은 허세에 불과했고, 당의 실질적 오너는 민추협때부터 함께 꾸려온 동교동과 상도동 등 양김씨였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은 실세를 인정하지 않고 허세와 대화를 해왔는데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양김씨가 현실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왜 실세회담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렇다. 어떤 때는 실세와의 담판이 필요하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외교문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실세회담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어느사회에든 소위 비선실세(秘線實勢)가 암약하기 마련이다. 어떤 인물이나 단체와 비밀리에 관계를 맺어 실체가 드러나지 않게 권력이나 세력을 행사하는 배후 인물을 의미하는데 비선실세의 준동 여부는 그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하는 하나의 지표임엔 분명하다. 2000년 12월 청와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정동영 의원은 DJ의 가신그룹 좌장이자 최고 실세인 권노갑 상임고문을 향해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권력역학상 구상유취한 철없는 행동처럼 보였으나 이후 권노갑은 퇴진했고, 정동영은 단박에 집권당 대표와 대선후보로 등장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 행동의 옳고 그름은 훗날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만 일개 재선의원이 정풍운동의 한 중심에 서면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만해도 정동영은 패기만만한 용기있는 정치인이었다. 지난 13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은 "주요결정은 최고위원회가 아닌 당내 5인회가 다 한다"고 발언하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과 관련해 "정말 힘들었다. 지옥을 경험한 느낌으로 오(5)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는 오징어, 오뎅 등 오(五)자가 들어간 음식도 안 먹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당 지도부가 이용호 의원 발언을 크게 불편해하자 자신의 언급 내용을 실언 정도로 스스로 격하시킨 것이다. 앞서 지난 2일 이 의원은 전국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5인회'발언은 '잘못 선택한 어휘였다'며 공개사과했다. '5인회'논란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으나 지금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선실세가 과연 누구냐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집권여당에 비선실세가 없다고 자신의 말을 취소한 이용호 의원은 과연 단순히 실언을 한 것일까, 아니면 거대한 권력에 맞서기엔 정치적 용기가 부족했던 것일까. 중국 후한(後漢) 말기, 어린 황제를 조종해 부패한 정치를 행한 환관 집단 10상시가 있었다. 간신이자 탐관오리의 대명사인데 머지않아 멸문지화를 당한것은 물론, 나라가 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어느 시대건, 어느 곳이건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비선실세가 있게 마련이다. 이를 바로잡는게 지도자의 숙명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6.14 15:25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선물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거리지 않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2016년 칸국제영화제가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다니엘의 뜨거운 외침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 사회적 주제를 주목해온 로치 감독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다. 목수로 살아온 주인공 다니엘이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부딪치는 좌절과 저항의 시간을 담았다. 영국의 비효율적인 복지정책과 경직된 관료주의를 겨냥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로치 감독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역대 가장 긴 시간(15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이 영화는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세계적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영화관들의 외면을 받았다. 영화 특성상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란 예측이 작동했을 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술(독립)영화관 상영만으로도 적지 않은 관객을 이끌어 냈다.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킨 영국의 관료주의 폐해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공감한 관객들이 주는 답이었다. 그해 은퇴를 선언했던 로치 감독은 3년 뒤 택배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그린 <미안해 리키>로 돌아왔다. 역시 그답게 치열한 현실 인식으로 사회적 이슈를 제기한 영화였다. 지난달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는 켄 로치 감독을 또다시 주목했다. 87세 거장의 신작 <디 올드 오크>가 그 통로다. 영화는 황폐해진 폐광촌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다. 역시 자본주의와 국가폭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온 거장의 현실 인식이 바탕이다. 알려지기로는 영국 북동부를 배경으로 삼은 3편 영화 중 마지막 작품이다. 로치 감독은 철강과 석탄 등으로 번성했으나 2차산업의 쇠퇴와 함께 쇠락한 영국 북동부 도시들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단다. 쇠락해가는 도시와 소외당한 사람들의 삶이 중첩된 세 편의 영화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왜 주목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거장이 주는 답이 있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그게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연대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디 올드 오크>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켄 로치 감독의 선물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6.13 15:30

길 잃은 전주 자전거도로

독일 프라이부르크와 브라질 쿠리치바, 덴마크 코펜하겐 등 세계 유수의 환경도시들은 공통점이 있다. 잘 정비된 대중교통시스템과 자전거 전용도로다. 국내에서도 ‘자전거 도시’를 지향하는 곳이 적지 않다. 경북 상주를 비롯해 서울과 대전‧수원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주시도 민선 6‧7기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기치로 내걸고 자전거 도시 경쟁에 합류했다. 2017년에는 자전거정책과를 신설해 정책적 의지를 보였다. 또 공영자전거 ‘꽃싱이’는 2013년 운영을 시작해 올해로 10년 차를 맞았다. 지난해에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우수 도시로 선정돼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처럼 거침없이 페달을 밟던 전주시가 최근 갈 길을 잃고 멈춰섰다. 백제도로 자전거도로 개설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구간의 차로를 줄여 ‘자전거 전용차로’를 개설한다는 사업 방향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전주시는 백제대로 11km 구간에 올 연말까지 자전거도로를 개설하기로 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거쳐 지난해 7월 공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최근 차선 축소에 따른 교통혼잡과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전주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달 공사를 전격 중단해 논란을 키웠다. 시는 다양한 시민 의견을 수렴해 사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16일과 26일 주민들과 만난다. 환경단체에서는 ‘자전거도로 전면 백지화 수순이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경단체의 우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민선 8기 들어 전주시 도시정책 기조가 재생에서 개발로 바뀌었다. 지난해 조직개편에서는 자전거정책과가 자전거팀으로 축소됐다. 또 전주시는 시민 민원을 내세워 자전거 전용차로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창 진행 중인 사업의 방향성을 재검토해야 할 정도로 시민 반발이 거셌던 것도 아니다. 차도 및 보도와 완벽하게 분리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전주도 그렇다. 기린대로 등 간선도로에 다양한 형태의 자전거도로가 혼재해 있다. 보도에 조성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와 차도를 이용한 ‘자전거 전용차로’가 어지럽게 연결돼 이용자들은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어야 한다. 무늬만 자전거도로인 구간도 적지 않다. 전주시는 당초 백제대로 자전거도로 개설 방향을 논의하면서 ‘자전거 전용차로’를 기본 원칙으로 정했다. 보도는 보행자에게 돌려주고 자전거는 차도를 이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불편함이 환경을 살린다’고 했다. 약간의 불편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당장의 편리만을 추구한다면 지구촌이 당면한 기후위기, 환경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자전거도로 백지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기존 차로를 줄여 자전거 전용차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전면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에서 차(車)로 분류된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에 차로 하나를 양보하는 게 그렇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일까?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6.12 07:38

내년 총선이 기대되는 이유

도민들은 고시3관왕인 젊은 김관영 지사가 취임해 전북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군산에서 국회의원을 두번하면서 정치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에서 인적네트워크가 탄탄해 여야를 넘나들며 멀티플레이를 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전북정치권이 중앙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이 미미한 탓에 김 지사가 혼자서 개인역량으로 윤석열정권을 상대로 전북몫을 가져오려고 전력투구 한다. 지난 대선 때 국힘 윤석열 후보가 전북에서 14.4%를 얻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전북에 그 만큼만 국가예산을 배분한다. 김 지사가 기재부 등 각 부처를 찾아 다니면서 낙후도와 균형발전논리를 들먹이며 설득작업을 벌여도 잘 안되는 이유가 바로 대선 때 전북인들이 표를 적게 줬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은 득표율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가예산을 배분하기 때문에 전북이 힘들다. 진보 정권때가 전북 한테 춘삼월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능한 국회의원이 없어 전북몫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익산식품클러스터 인입철도 구축과 전주∼김천간 동서횡단철도 구축사업이었다. 이 사업들은 SOC구축사업이라서 조금만 논리를 잘 개발했더라면 충분히 국가재정사업으로 추진할 수가 있었는데 그걸 못했다. 특히 광주와 대구가 정치적으로 달빛동맹을 맺어 광주∼대구간 철도구축사업을 지역숙원사업으로 추진 한 게 전북 한테는 악재였다. 지금 김지사가 새만금에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유치하려고 백방으로 뛰는 것은 지지부진했던 새만금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세계적인 전기차 메이커인 테슬러를 유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목표를 갖고 지난 1일 국회에서 범도민유치결의대회를 가졌는데 유독 안호영 김윤덕 두 의원이 불참했다. 이날 결의대회에 정읍이 시댁인 정의당 심상정의원까지도 합세해 모처럼만에 전북의 목소리를 중앙에 울려 퍼지게 했는데 일부 참가자 중에는 두 의원 불참에 불만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당선될 때는 원팀으로 똘똘 뭉쳐 국가예산을 확보하겠다고 수없이 다짐 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지금에는 모든 게 공염불로 끝나간 것 같다. 그래서 김 지사가 정치권과 쌍끌이로 전북몫을 챙기지 못한채 개인 역량으로 홀로 뛰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빼낸 것 같은 묘한 구도가 만들어져 더 협력이 안된다. 그렇지만 김 지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성과로 도민들에게 보답한다는 뜻에서 동분서주한다. 상당수 도민들은 김 지사가 처한 정치적 구도가 불리해도 이를 충분하게 극복할 역량이 있다고 판단,그에 대한 지지를 보낸다. 처음에는 인사상 잡음이 들렸지만 최근 이남호 전 전북대총장을 전북연구원장으로 내정하면서 지역발전에 기대감이 커졌다. 문제는 김 지사가 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전북발전에 도움될 특례를 많이 발굴,법안을 통과시키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특히 김관영 도정도 내년 총선 결과에 성패가 달려 있다. 도민들의 현명한 선택만이 남아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6.11 19:17

교육감의 열정과 냉정

며칠 전 신문에서 장학사(교육전문직)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며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올해 경쟁률이 2017년 이후 최저치 수준이라며 여기에는 지금 교단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이 함축돼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젊은 교사들 퇴직과 고참의 거센 명퇴 바람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 학생 학부모와의 지속적 갈등이 주로 꼽혀 왔다. 그런데 이번 배경 중 서거석 교육감 취임 이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가 포함돼 주목 받았다. 지난 3월 도의회 질의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지긴 했으나 그 때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헌데 취임 1년을 앞두고 같은 사안이 반복적으로 이슈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 저출산 문제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곳이 교육계다. 취학 아동이 부족해 학교가 줄줄이 문을 닫고 그 여파가 교사들 업무에도 적잖은 부담을 준 건 사실이다. 갈수록 교단이 좁아지면서 선생님 위상과 교육 환경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장·교감의 승진 코스로 여겨진 장학사에 대한 선호도는 꽤 높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권 추락 문제가 사회 여론으로 비화되자 전문직에 대한 기류 변화도 서서히 감지됐다. 그렇다고 해도 교육감의 업무 스타일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건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권력 교체기 인사와 조직 개편을 둘러싼 파열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서 교육감 당선은 교육 정상화를 염원한 유권자 뜻이 담겼다. 전임자가 12년을 장기 집권한 데다 극단적 성향의 교육 행정을 주도함에 따라 일선 현장의 혼란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진영 논리와 편향 교육을 뛰어넘는 미래형 인재 교육 복원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취임하자 이런 기조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과거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데 그에 따른 충격파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직원들도 적응이 쉽지 않아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쌓여왔다. 그러나 교육감을 둘러싼 반대 세력의 집요한 공격이 계속되면서 개혁 작업 또한 제때 속도를 못내는 형국이다. 단적인 예로 전교조가 지난 7일부터 교육감 면담을 요구하며 교육청사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시위도 벌여왔다. 그런 가운데 간간이 교육청에서 흘러나온 얘기 중 교육감의 ‘만기 친람형’ 스타일이 회자됐다.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참모들 결재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 급기야는 도의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직원 ‘워라밸’을 거론하며 불합리한 사례를 통해 교육감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물론 꼼꼼한 업무 처리가 트집 잡힐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업무 효율성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교육 철학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개혁 과제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일이 먼저다. 이를 통해 참모를 포함한 직원들과의 호흡을 맞춤에 따라 새로운 추진 동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6.08 17:32

전북 국제학교와 자사고

아주리(Azzurri)는 이탈리아 말로 푸른색을 지칭하는데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나선 이탈리아 팀을 아주리 군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네덜란드 축구 대표팀을 오렌지군단이라고 부르듯 대한민국 대표팀은 국제사회에서 붉은악마로 통한다. 붉은악마라는 이름은 지금부터 꼭 40년 전인 1983년 멕시코 청소년축구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잘해봐야 아시아권에서나 통하던 한국축구가 FIFA 주관 국제대회에서 4강에 오르면서 얻은 별칭이 바로 붉은악마다. 한참 후의 일이지만 2002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썼던 한국축구의 도약은 이미 1983년에 싹이 트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열악한 한국의 축구현실에서 승부사 박종환 감독의 지도아래 선수들의 피나는 훈련으로 일궈낸 한편의 드라마, 그 자체였다. 박종환 감독이 지휘하는 선수단은 김판근, 김종부, 신연호, 특히 군산제일고 출신 장정 같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는데 누구도 생각지 못한 4강신화는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당시에는 국내 축구계의 경우 파벌과 학연, 지연이 아니면 선수나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듣보잡 출신 박종환 감독은 신화를 쓰고난 뒤 온갖 찬사와 질시를 한몸에 받아야만 했다. 세간에는 강원도 춘천고 출신 고교 동창 박종환과 개그맨 고 이주일의 두터운 친분이 너무나 잘 알려져있다. 요즘 제23회 2023 FIFA U-20 월드컵 대회가 아르헨티나에서 열리고 있는데 스타 선수가 없는 한국이 4강에 올랐다. 한국시각 9일 새벽 아주리군단 이탈리아와 대망의 준결승전을 치르게 되는데 운명의 한판승부가 주목된다. 약육강식과 1위를 해야만 살아남는 스포츠계에서는 수월성 교육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일반 교육분야에서도 수월성 교육의 대명사 격이 국제학교와 자사고다. 귀족학교 논란이 없지않고 평준화에 역행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수월성 교육을 외면하지 않는다. 최근 부산에 본사를 둔 금융공기업들이 공동으로 자사고 설립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공동출자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곳은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며, 부산 이전이 확정된 산업은행 역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자녀교육 문제를 해소해 임직원들의 정주 여건을 개선해야만 성공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인천하늘고가 롤모델이다. 현재 전국자사고는 민사고(강원) 포항제철고(경북) 광양제철고(전남) 하나고(서울) 외대부고(경기)김천고(경북) 현대청운고(울산) 북일고(충남) 인천하늘고(인천) 상산고(전북) 10개 체제로 이뤄지고 있고 충남삼성고, 인천포스코고 등 23개 자사고는 소재지 내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광역자사고 형태로 운영중이다. 교육계 일각의 반대가 있는게 현실이지만 전북특별자치도의 출범을 목전에 둔 전북으로서는 이름있는 국제학교와 전국단위 자사고의 신설이나 활성화 없이 새만금 기업유치나 금융중심지 육성은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6.07 15:08

동초제 소리와 명창 이일주

2004년 전주대사습은 스물 아홉 살 젊은 소리꾼을 명창의 반열에 올렸다. 소리판의 주목을 받던 소리꾼 장문희였다. 대사습 도전은 처음. 기쁨도 그만큼 컸을 법하지만, 단박에 명창이 된 제자에게 그의 스승은 "못해도 두세 번은 떨어져 봐야 허는디 암만 생각해도 너무 빨리 되어 버렸다"며 이른 등용을 걱정했다. 첫 도전으로 명창이 된 제자가 기쁨에만 들뜰까 우려하며 더 큰 가르침을 안겨준 스승. 이일주 명창이다. 그는 줄타기 고수로, 소리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날치의 후손이다. 이날치는 서편제의 대가다. 그의 아버지 이기중 또한 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렸으니 집안 내력으로 치자면 서편제 소리를 대물림했어야지만 그는 동초제 소리로 판소리 대중화를 이끌었다. 첫 스승은 이기중이다.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소리 공부하기 싫어하는 그를 엄하게 가르쳤다. 소리꾼으로 이름을 얻은 후에도 당대의 명창 박초월 김소희를 찾아다니며 토막소리를 소리를 배웠고, 후에는 동초제 소리를 온전히 계승한 오정숙 명창의 제자가 되어 동초제 소리를 받았다. 그가 이어낸 동초제 판소리는 전북지역 판소리 맥을 이어오는 기둥이다. 창극에 열정을 쏟았던 동초 김연수가 말년에 동편제의 우람함과 서편제의 애절하고 아련한 특성에 연극적 요소를 담아 새로 짠 판제다. 동편제나 서편제의 대목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 색채나 맛이 새롭다는 평을 받는다. 동초제는 여러 바디 중에서도 다섯 바탕이 모두 전해지는 유일한 바디다. 그만큼 의미가 크다. 판소리에서 최고로 치는 소리는 ‘높고 단단하고 제대로 쉰 치열한 소리’다. 판소리 연구가 최동현 교수는 여기에 거친 맛과 부드러운 맛, 슬픔과 너그러움, 그리고 깊은 그늘을 표현해내는 좋은 목까지 갖춘 소리꾼으로 이일주를 꼽았다. 뱃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통성과 구성 있는 목으로 소리판을 아우르던 그는 단단하고 힘차고 높고 거친 소리가 만들어내는 치열한 소리로 절정을 구사했다. 극적 요소가 특징인 동초제 소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빼어난 음악성 덕분이었다. 맺고 끊음이 분명해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던 그는 치열해야만 소리 길을 갈 수 있다는 신념을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가르쳤다. 그러니 제자가 되기도 어렵고 소리 한 대목 배우는데도 고단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의 문하에는 소리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제자들이 뒤를 이었다. 오늘날 동초제 소리가 더 넓고 힘있게 맥을 이을 수 있게 된 바탕이다. 이일주 명창이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치열하고 힘 있는 동초제 판소리로 대중들을 이끌었던 생애. 고인에게 감사하며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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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6.06 12:33

오랜만에 전북인의 포효

조용하기만 했던 전북에 기업유치를 위한 새바람이 불었다. 농경사회의 티를 벗지 못한 전북이 산업생태계를 바꾸기 위한 몸부림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정치권이 무능해 전북 몫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아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SOC확충이 미흡, 사실상 기업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지난 문재인 정권때가 전북발전의 좋은 기회였음에도 이를 못 살리고 허송세월 해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전북을 떠나간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 시·도의 기업유치 경쟁이 더 뜨거워졌다.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국책사업유치를 통한 기업유치에 올인한다. 충북 울산 경북에 비해 이차전지 후발주자인 전북은 새만금에 특화단지를 유치하려고 김관영 지사가 직접 PT를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전북이 기필코 새만금에 이차전지를 유치하려는 것은 그간 터덕거렸던 새만금개발을 앞당기면서 기업집적화로 청년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세계적인 전기차 생산업체인 테슬러의 인도 진출이 무산되자 이를 새만금으로 유치하기 위한 선행작업으로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만들려고 한 것. 돌이켜 보면 전북이 2011년 LH를 경남 진주로 빼앗긴 것은 전략을 잘못 수립, 무작정 떼만 쓴 꼴이 됐다. 공기업선진화법에 따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치는 판에 전북은 지휘부 20%를 전북으로 나머지 실무부서 80%를 경남 진주로 옮겨 가야 한다면서 유치전략을 폈던 것. 그 당시 경남 진주쪽은 전북이 이같은 전략으로 나와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면서 표정관리에 들어 갔다는 말이 나왔다. MB정권하에서 야권인 전북이 정치적으로 불리했지만 정치권 무능으로 없는 돈 써 가며 관제데모판을 서울 국회의사당까지 가서 벌였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정부가 총리실 주도로 삼성을 끌어들여 새만금에 7조6천억을 투자키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던 것이다. 총리실이 LH일괄이전 문제에 대한 도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위무책으로 이 같은 사기극을 벌였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MB정권이 전북 도민들을 얕잡아 봤으면 이 같은 일을 저질렀겠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MB 정권에 대한 비판발언으로 서먹거렸던 상황이라서 화해제스쳐로 억지 춘향이 노릇에 끼어들었다. 이 같은 사실을 꺼낸 이유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위해 대규모 범 도민 결의대회를 가졌기 때문이다.12년 전 같은 장소에서 LH유치를 위해 향우들까지 3천여명이 참가해 사즉생의 각오로 궐기대회를 가졌다. LH유치 실패로 전북 도민들이 그간 열패감에 휩싸였지만 김 지사 취임 이후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생겨나 한가닥 희망을 갖게 한다. 아직 유치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그래도 전북인들이 모처럼 만에 대한민국 정치중심인 국회에서 전북인의 목소리를 냈다는 게 의미가 컸다. 그간 전북도민의 목소리가 워낙 작아 중앙정치권에 들리지도 전달되지도 않았다. 유능한 정치권이 만들어질 때까지 직접 도민들이 자신감을 갖고 이날 처럼 전북 몫을 찾아오도록 포효해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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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6.04 17:22

전주역 지하 차도 배경

한옥마을 관광객 연 15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KTX 전주역의 역할 또한 관심이 많아졌다. 지난달 공사가 시작된 역사(驛舍) 신증축 사업은 2025년까지 450억 원을 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아울러 교통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고속 시외버스가 이곳을 경유하는 복합환승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처럼 외양과 규모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서비스 질 개선 효과는 분명 눈에 띄지만, 핵심 대책인 교통 흐름 측면을 간과한 대목이 아쉬웠다. 역전 삼거리 형태의 도로 상황에서 불 보듯 뻔한 교통 체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 다시 말해 꽉 막힌 전주역에 지하 차도를 만들어 흐름을 원활히 하자는 의견이다. 우범기 시장도 이 점에 공감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전주역 위상은 물론 동북부 지역 발전에도 변수로 꼽히고 있다. 전주 시내 주요 간선 도로는 대부분 시외로 빠져나가는 외곽 도로와 연결돼 있다. 이 중 전주역 때문에 흐름이 끊겨 교통 체증을 부채질한 곳이 유일하게 백제대로다. 전주의 대동맥 역할과 함께 가장 많은 통행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역세권 개발 논의와 함께 역사 증축이 맞물리면서 교통량 증가에 따른 지하 차도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곳을 뚫어 백제대로와 지금 공사 중인 완주 용진-우아동을 잇는 전주외곽순환도로까지 연결해 교통량을 분산하자는 계획이다. 여기에다 이 도로가 역세권 개발 중심 지역을 관통하면서 8000여 세대 입주가 예상되는 이곳 교통난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겨 전체 밑그림에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우범기 시장이 취임과 함께 밀어붙인 역세권 개발 논의 과정에서 사업 주체인 LH가 지하 차도 개설에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 공사비용 1000억 원이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역세권 개발사업은 LH가 지난 2018년부터 전주역 뒤편 장재마을에 2만여 명 규모의 택지 개발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던 중 돌연 김승수 시정의 전주시가 지구지정 해제 이어 사업 중단을 요구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그러면서 지난 2021년 전국을 강타한 ‘LH 사태’의 모럴 해저드까지 덮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그 사이 LH도 5년 넘게 사업이 지연되면서 추진 동력을 잃은 데다 추가 재원 마련, 주민 보상 문제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전주 역사 증축 공사를 계기로 역세권 개발사업이 다시 화제가 됐다. 우 시장이 그간 침체됐던 동북부 지역 발전에 강한 의욕을 갖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하 차도 개설 논의가 이뤄진 셈이다. 그래서 그는 LH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해 당초 면적보다 넓은 지역의 개발 조건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한 걸로 알려졌다. 한때 개발 이익에만 급급해 "땅 장사 하냐" 며 공분을 샀던 공기업 LH가 서민 주거복지 실현이라는 명분 앞에서 선택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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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6.01 18:22

공직자의 명분과 실리

백범 김구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 거의 첫손에 꼽히는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상해에서 임시 정부를 이끌면서 사선을 넘나들때 어린 두 아들에게 삶의 궤적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한다. 나라가 독립되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대목에서는 가슴뭉클하다. 말은 쉽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호 백범(白凡)은 당시 가장 천대받던 '백정'과 '범부'(보통 사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뒤 독립을 이끌던 사람이 새정부 최고지도자가 돼 적성국가에 빌붙던 이들을 처단하고 민족정기와 역사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유고슬라비아 티토, 베트남 호찌민, 프랑스 드골, 튀르키예 케말파샤 등이 바로 이러한 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국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새 정부에서 찬밥신세였다. 신생 민주정부 대한민국 백범 김구가 대표적인 경우다. 전세계를 휩쓴 냉전의 와중에 강대국의 구미에 맞지않는 민족주의자의 앞길은 정부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천수를 누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이후 제3세계에서도 수없이 되풀이 되는 비극이었다. 독립만 된다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이가 전세계를 통틀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한 국가의 지도자쯤 되면 타고난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쳐도 사실 보통사람으로선 감내하기 어렵다. 특히 고관현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소위 하향지원을 하는게 쉽지 않다. 요즘엔 기수가 많이 파괴됐다고 하나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이나 경찰의 경우 퇴직 후에도 하방경직성은 강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전북지역 관가 안팎에서는 남의 시선이나 기수, 서열 등을 의식하지 않는 현상이 매우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얼마전 전북연구원장에 선임된 이남호 전 전북대총장의 경우 장관급 국립대총장을 역임한 이가 전북도의 연구기관 책임자로 임명된데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앞서 국토부차관과 도 정무부지사를 지냈던 최정호씨가 전북개발공사 사장에 지원해 최종 확정되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행안부 차관을 지냈던 심보균씨가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차관급 인사가 전북도 개발공사 사장을 맡는 것도 이례적인데 인구 30만 안팎의 시 단위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았기에 더 그런것 같다. 작년엔 김관영 지사 취임 직후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광수 씨가 정무특보로 선임되고, 농림부차관 출신의 김종훈씨가 경제부지사를 맡기도 했다. 이젠 상향지원, 하향지원이라는 표현이 촌스럽고 의미없는 듯 하다. 명분이나 주위 시선 보다는 어느 자리에 있든 실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가 여부다. 할일 없는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어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역할을 하는게 가장 보람있고 보기좋은 모습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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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31 15:26

작은 도시 기쿠치의 선택

미국의 이름난 잡지 <INTERIOR DESIGN>에 ‘잠시 머물고 싶은 세계 12개의 도서관’으로 선정된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일본 규슈의 작은 도시 기쿠치시(菊池市)의 시립중앙도서관이다. 기쿠치시는 구마모토현의 북부를 흐르는 기쿠치 강 상류에 있는 인구 5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예부터 규슈지방의 정치, 교육, 문화 중심지로 번성했던 까닭에 지금도 적지 않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로 농업이 발달하고 지리적 여건으로 쌀 집산지가 되어 상업도시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오래된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이 기쿠치시도 쇠퇴의 대열에 들어섰다. 원인은 역시 청년층의 이탈이었다.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고 성장은 멈추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주(?) 행렬이 도시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시가 나섰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시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의 선택은 도서관. 프로젝트 목표는 지역 주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의 의뢰를 받은 건축가 나카무라 가즈노부 씨는 기쿠치 시의 자연환경을 주목했다. 기쿠치강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책장.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름다운 도서관 기쿠치시립중앙도서관 ‘BOOK RIVER’는 그렇게 탄생 됐다. 기쿠치도서관은 거대한 규모나 화려한 외형을 가진 이름난 건축물과는 다르다. 소박한 건물의 외관만 보자면 특별하지 않으니 디자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외지 관광객들이 실망하거나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1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강처럼 곡선으로 흐르는 책장이 가로질러 놓인 공간의 아름다움에 금세 압도당한다. 크지 않지만, 100m가 넘는 책장이 강물처럼 휘감기며 공간을 나누거나 통하게 하며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낸 도서관 내부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이다. 이 작은 도시의 선택은 옳았을까. 2017년 개관한 이후 두 달 만에 지역 주민의 80%가 도서관을 찾았고 타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들도 큰 폭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도시는 활력을 찾고 시민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는 기쿠치 도서관의 슬로건은 ‘사람과 정보, 문화가 만나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교류의 공간’이다. 쇠락한 도시를 살려내는(?) 도서관이 늘고 있다. 새로 짓거나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거나, 지역의 가치를 살려낸 도서관들은 주민을 모으고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관광객을 부른다. 인구 감소로 쇠락의 위기에 놓인 도시라면 주목할만한 좋은 선례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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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30 18:37

다시 사라지는 학교 담장

‘없앨 것인가, 존치할 것인가.’ 학교 담장을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학교 담장이 주변 미관을 훼손하고, 폐쇄적인 교육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지자체 지원으로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이 속속 추진됐다. 콘크리트 담장이 녹지공간‧주민 소통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학습권 보호와 학생 안전을 위해 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의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애써 허물어 낸 학교 담장을 다시 쌓는 일도 생겼다. 학교 운동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일관성을 잃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지자체가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을 역점 추진했다. 마침 그린캠퍼스 조성사업에 나섰던 대학도 참여했다. 전북에서는 전주교대를 시작으로 군산대와 전북대가 속속 담장을 없애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초‧중‧고교에서는 우려했던 문제가 생겼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는 담장이 없는 전국 초‧중‧고교에 대해 최고 1.8m 높이의 투명펜스를 설치하도록 했다. 대낮에 학교 운동장에서 발생한 아동 납치 성범죄 사건(2010년)이 일으킨 파장이다. 이후에도 어느 한쪽의 가치를 앞세울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온마을이 배움터가 되는 시대, 마을과 학교가 하나 되는 새로운 교육생태계에 관심이 쏠렸지만 학교 담장 허물기를 선뜻 의제로 올리지는 못했다. 학생 안전 문제가 부담이었다. 그런데 최근 지역사회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낸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속속 등장해 오랜 담장 논란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활SOC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을 통해서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해 학교 유휴공간에 수영장과 주차장‧도서관 등 교육·돌봄, 문화, 체육‧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학생과 주민이 공동 활용하자는 것이다. 공간혁신을 통해 주민복지 시설이 학교 안에 들어서면서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 담장은 의미가 없어졌다. 교육부는 지난 3월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전국 각 지자체와 교육청이 업무협약을 맺고 학교복합시설 조성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이 신설 학교를 중심으로 학교복합시설을 잇따라 조성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시대, 학교를 신설할 때 유·초·중학교와 주민시설이 복합화된 미래형 통합학교로 설계해 학교 신설을 억제하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전북교육청도 최근 학교복합시설 공모사업 설명회를 열고 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미 구축해 놓은 지자체와의 교육협력 체계가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안전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최우선으로 지켜내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울타리로 방어막을 치고 배움터를 지역사회와 철저하게 단절시켜 놓을 수만은 없는 게 시대의 흐름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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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5.29 08:15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감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産災) 관련 뉴스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들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으며 우리 이웃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안타까운 점은 산업 현장 안전사고 중 이들 희생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 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률은 OECD국가 평균의 2~3배 수준으로 세계 1위다. 불법 체류로 인해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는 정상적 경제활동은커녕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버티고 있다. 반면 고령화 농촌에선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치단체들은 동남아 등지에서 단기간 계절노동자를 데려와 겨우 농번기 일손 부족을 메우는 실정이다. 농촌과 도시의 노동 현장은 이들의 손길 없이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할 만큼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과 저임금 단순 노무직에서 차지하는 이들 비중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 상황은 훨씬 더한다. 올해 1분기 농업 부문 외국인 근로자만 8천666명이 입국했다. 문제는 악덕 기업 현장에서 이들의 체불 임금액이 작년 2만9376건, 1천183억원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힘들고 위험하다며 꺼리고 외면한 곳에서 열심히 일한 댓가치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인력 수급 상황에 비추어 이들 노무 관리가 핵심 과제로 꼽혀 왔다. 역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위상은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취학 아동인구 절대 부족으로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초등교가 전국 145곳이다. 그중 신입생이 10명 미만에 그친 학교도 전국 6천163개 중 1천587개로 25%가량 차지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초등교 입학생들이 2016년생인데 그해 출생아가 40만6천여 명이다. 그 후 6년이 지난 2022년 출생아가 24만9천여 명인데 이들이 입학하는 2029년에는 전국 초등교 절반이 신입생 10명 미만이라는 사실이다. 대학교까지 연쇄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지방 소멸의 끔찍한 현실은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최첨단 자동화 추세라 할지라도 경제활동 인구가 뒷걸음질 치는 건 우리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3D 업종과 농촌의 인력난 속에서 그 공백을 메워주는 외국인 노동자야말로 반가운 이웃이다. 고통 분담을 함께 나누는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짓밟힌 인권과 노동력 착취, 임금 체불 등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도 아울러 병행돼야 한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피부 색깔과 생김새가 같지 않아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는 못할 망정 차별과 냉대를 받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5.25 16:55

순환골재와 잼버리

며칠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녹색정비’ 신도시 정비 원칙을 담은 ‘녹색순환정비법안’을 발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대선 이후 잘 보이지 않던 심 의원은 민감한 정치 현안도 아닌 기후위기를 언급했는데 내용을 보면 작은 것 같아도 매우 중요한 게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건설폐기물 발생 최소화를 위해 재활용 건축자재인 순환골재 사용을 공공건설에만 적용되던 현행 법체계에서 더 확대했다. 건축물 기초 재료로 쓰이는 모래와 자갈을 뜻하는 골재(骨材)는 품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건축물의 안전 역시 담보할 수 없다. 매년 산과 강에서 채취하는 골재는 2억㎥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확보하는 과정에서 산림·하천 훼손과 환경 파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천연골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대체 자원으로 떠오른 것이 순환골재다. 순환골재는 폐(廢)토석 등 폐기물을 처리한 후 품질 기준에 적합하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제품 가격은 천연골재의 60% 수준이다 보니 많이 사용할수록 공사 예산을 절감할 수 있기에 도로 공사, 주차장 겉흙, 매립시설의 복토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폐기물로 만들어 믿을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아직 널리 이용되지 않고 있다. ‘건설폐기물의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순환골재 및 순환골재 재활용 제품을 전체 공사 자재의 40% 이상 사용을 의무화 하고 있다. 한국산업규격(KS)의 순환골재 품질기준 비교표에 따르면, 콘크리트용 굵은 골재 기준으로 순환골재의 절대 건조밀도는 2.5g/㎤ 이상으로 천연골재와 같고 흡수율(3.0% 이하)과 안정성(12% 이하) 분야도 순환골재와 천연골재의 기준이 같다. 요즘 새만금잼버리 대회의 성공 개최 여부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침수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야영장 일대에 순환골재를 조속히 깔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오른 물을 빼내는 펌핑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기에 대회가 끝난뒤에도 지반을 다져야 하는 만큼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서 순환골재로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의 막연한 판단에 맡기지 말고 반드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만 새만금잼버리가 끝난 뒤 두고두고 후회 할 일이 없다. 그런데 때마침 자원순환 분야 전문가들이 오늘(25일)과 내일 무주 나봄리조트에서 ‘2023년 전북 자원순환 워크숍’을 개최한다. 이번 워크숍에는 전북도 및 각 시군 공무원, 한국폐기물협회, 한국환경공단 등 다양한 기관에서 참여한다. 워크숍에서 한국건설자원협회의 ‘건설폐기물 재활용 정책·제도 현황 및 순환골재 활용 사례 등의 정보가 공유될 예정이라고 하니 잼버리 관계자들은 직접 가서 한번 들어보고 순환골재 활용 여부를 판단할 일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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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24 15:44

​재래시장의 선택과 지혜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여 일정한 기간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이 있었다. 상설 시장과는 달리 일정한 날에 장이 서는 그날을 우리는 ‘장날’이라 불렀다. 5일장이라면 매월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이렇게 짝을 맞추어 열리는 형식이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3일 간격으로 혹은 5일 간격으로 열렸던 이들 정기적인 시장은 일종의 사설시장이었지만 상업이 발달했던 조선 후기, 장시문화를 주도했을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근현대화로 시장의 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재래시장(상설시장)은 쇠락하거나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 상설시장보다도 생명력을 보장받기 어려웠던 정기시장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돌아보면 3일장과 5일장은 상업 활동의 중심이자 지역주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지역문화 공동체의 결속을 이어내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이들 시장이 번성했던 시절은 1970년대. 전국적으로 1천개의 시장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급격한 현대화와 함께 몰려온 유통 환경의 변화는 재래시장의 쇠락을 부추겼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살아남은 사설 시장은 반절 수준. 숫자는 500개로 줄었고 이후 더 급감하기 시작해 지금 살아남은 3일장 5일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즈음, 위기에 처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 현대화’를 내세운 사업이 각 자치단체마다 유행처럼 번졌다. 한결같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했던 재래시장은 번듯한 현대식 상가로 변신했으나 아쉽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우리지역에도 순창장이나 무주 설천장, 진안 장계장처럼 이름을 알렸던 5일장이 많았다. 그러나 1923년에 시작되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건재했던 순창장이나, 현대화 사업으로 화려한 변신을 내세워 옛 영화를 꿈꾸었던 설천장도 쇠락의 위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 재래시장의 현대화는 현실적 과제였지만 외형에만 치우친 개량 사업이 가져온 폐해는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들의 전통시장이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에서도 10년 사이 6개 시장이 사라졌다.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다시 낡아지고 불편해진 재래시장이 불러온 한계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이름을 알리는 재래시장과 거기 기대어 맥을 잇고 있는 5일장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시설의 현대화에만 기대지 않고 재래시장이 지켜왔던 독창적인 정서를 살리기 위해 분투해온 곳들이다. 시장의 기능에 문화적 요소를 더해 관광지로 변화시킨 선택과 지혜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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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23 18:37

‘소싸움 대회’ 논란

‘싸움’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는 말도 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또는 동물 간에 싸움을 붙이고, 이를 구경하면서 즐겼다. 인간들끼리의 실제 싸움을 대신하는 이벤트로 권투와 레슬링·킥복싱 등의 스포츠가 발전했고, 동물을 훈련시켜 싸움을 붙여놓고 이를 즐기는 투견(鬪犬·개싸움), 투계(鬪鷄·닭싸움)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성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청도군과 경남 의령군, 전북 정읍시·완주군 등 전국 11개 지자체가 매년 소싸움 대회를 열어왔다. 소로 논밭을 갈던 농경사회에서 마을축제의 하나로 열렸던 전통 민속경기를 계승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시행되면서 투견·투계와 같은 동물싸움은 불법이 됐다. 법률에서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소싸움은 예외다. 현행 동물보호법(제10조)이 동물학대 행위를 나열하면서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도 별도로 있다. 지난해부터는 각 지자체가 ‘소싸움 대회’라는 명칭을 ‘소 힘겨루기대회’로 일제히 바꿨다. 수년 전부터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법을 개정해 소싸움을 폐지해야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싸우지 않는 초식동물인 소를 억지로 싸우게 하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올들어 각 지자체가 코로나19로 3~4년 간 중단했던 소싸움대회를 속속 재개하기로 하면서 ‘전통문화냐, 동물학대냐’를 놓고 불거진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정읍시가 섰다. 대회 예산을 세워놓은 정읍시가 ‘제23회 정읍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대회’를 6월 8일~12일에 열기로 하면서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전국 각 지자체가 추진한 올 소싸움대회는 동물학대 논란이 아닌 구제역에 발목이 잡혔다. 최근 방역당국이 구제역 긴급 방역조치에 나서면서다. 정읍시도 대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당장 극한의 갈등과 대립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불씨는 남았다. 이와 달리 완주군은 일찌감치 올해 대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해마다 대회를 열어온 완주군은 올초 소싸움경기를 완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 동물학대 논란까지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예산을 투입해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동물학대 논란과 상관 없이 싸움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라 말려야 하는 것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는 속담도 있다. 아울러 ‘지역 한우의 우수성을 알려 축산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대회의 본래 목적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제 정읍시에서도 소싸움대회 지속 또는 폐지 여부를 고민해서 확실하게 결론을 내야 할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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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5.22 11:14

갈아 엎어야할 전북정치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경쟁이 뜨겁게 달궈진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져 집권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 때 0.73% 차이로 패배한 이후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 김남국 의원 코인사태로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내홍이 심각,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에서도 여론악화로 지지율이 떨어진다. 총선을 앞두고 국힘이나 민주당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어느 쪽이 수도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국힘은 여소야대 구도를 깨려고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고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위해 의석 수를 현재처럼 늘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공히 민생문제는 외면한채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만 벌여 민심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다. 사실 국힘도 여소야대 구도를 내년 총선 때 깨지 못하면 거의 윤석열 정권도 식물정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전 정권의 실정을 들춰내는 등 지지세 상승을 위해 총력전을 편다. 민주당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연거푸 대형악재가 터져 당 지지도가 국힘한테 밀린다. 전북을 포함 호남에서 조차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실망한 사람들이 늘어나 당 지지도가 60%대에서 50%대로 10% 이상 떨어졌다. 지난 전주을 재선거때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26.8%라는 최저투표율속에서 당선된 걸 보면 정치혐오가 상당 수준에 다달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이 후보를 안 냈지만 지역연고가 없는 강성희 후보가 당선된 것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임정엽 무소속 후보 보다는 강 후보를 역선택, 정치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큰 틀에서 국힘과 민주당의 건곤일척 싸움이 전개 되지만 전북에서는 여전히 민주당 강세가 점쳐진다. 민주당이 미웁지만 그래도 국힘을 지지할 수 없는 입장 아니겠느냐는 것. 그래서 역대 의원중 가장 약체인 21대 현역의원의 물갈이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앙정치무대에서 전북 의원들의 존재감이 없다면서 이들 한테 전북 몫을 가져오라고 기대하는 게 마치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차리리 그럴 바에는 17대부터 계속 이어져온 물갈이폭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필마로 지사직을 단박에 꿰찬 김관영 지사가 전북 의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고군분투한다. 이차전지 특성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하려고 PT까지 직접 한 김 지사가 성공하려면 정치력 있는 의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정치권의 힘이 강하고 세져야 김 지사가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같이 무기력 한 의원들을 또다시 여의도로 보내면 전북은 가망이 없다. 그래서 내년 총선 때 무능한 전북정치판을 갈아 엎어야 한다. 도민들이 오죽했으면 OB들까지 소환했겠는가. 전북정치의 존재감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전 국회의원들을 불러내고 있다. 쥐 못 잡는 고양이는 과감하게 도태시켜 정치생태계를 확 바꿔야 한다. 전북도 다른 지역처럼 경쟁의 정치가 싹터야 희망이 생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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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5.21 17:48

전주을 지역위 “보이지 않는 손”

26.8%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과 진보당의 강성희 후보 당선은 전주을 선거구의 정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4월 재선거를 통해 드러난 이 같은 결과는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이상직 의원 불명예 퇴진으로 민주당 공천 책임론이 불거진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과거 이 지역은 실질적인 재선 의원이 배출되지 않을 정도로 지역 민심과 조직력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실 민주당 지역위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도 그리 녹록지가 않다. 국회의원 공백 사태로 직면한 지역위 위원장 대행 체제도 벌써 1년이다. 비상 상황에서 출범했지만 비교적 안정적 운영 평가를 받는 가운데 최근 이 체제를 흔들어 입지를 다지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얼마 전 마감한 민주당 조직강화특위의 사고 지역위원장 공모를 앞두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력 입지자 가운데 한두 명이 중앙당 비선을 통해 본인의 혜게모니 장악을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것. 전략 공천설까지 떠도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런 기류가 포착된 것은 당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이 과정서 당원들 입장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국힘 정운천,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함께 재선거 32.13% 득표율의 임정엽 전 군수 등의 출마가 점쳐지는 내년 총선 대진표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중앙당이 지역구 민심을 살펴 그에 걸맞는 맞춤형 공약과 함께 위원장 선출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런 가운데 전주을 위원장 대행 체제는 당분간 유지하는 데 무게가 실려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위원장 사퇴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위원장 선출에 따른 공천 특혜시비 논란이 우려된다는 판단에서다. 짐작컨대 새판짜기를 노리며 현 체제 물갈이를 통해 그토록 위원장에 목매는 이유가 총선 대비 권리당원 모집과 당원 명부 확보에 절대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예비 후보 다수가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중앙당이 섣불리 나서면 총선 개입설만 부채질한 형국이다. 지난해 6월 중앙당의 전주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10여 명이 몰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 지역 이병철 도의원을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바 있다. 전주을 지역위는 2020년 총선 때 경선 파동과 불복 사태로 심각한 내홍을 겪은 뒤 현역 의원 중도 하차까지 이어지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여파로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민주당은 책임을 통감하고 재선거 불출마를 결단했다. 더군다나 절대 강세 지역임에도 2차례나 다른 정당 후보에 국회의원 자리를 내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사고 지역위란 꼬리표 때문에 운신의 폭은 좁은 데 총선 예비 후보는 난립 상태다. 이런 상황서 난마처럼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지역 민심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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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5.18 17:40

전북연구원장의 역할과 기대

전북연구원의 뿌리는 멀리 1991년 제4대 도의회 개원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병석 당시 도의원이 “전북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낙후전북의 오명을 탈피하려면 싱크탱크 역할을 할 ‘전북발전연구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선 “퇴직을 앞둔 도청 국장급 간부를 위한 위인설관의 성격이 짙다”며 반대하기도 했으나 우여곡절끝에 1992년 전북경제사회연구원으로 출범, 오늘에 이른다. 오랫동안 ‘전북연구원’은 마치 일해재단처럼 정치적 해석을 낳는 경우가 많았다. 지사의 측근이 원장을 맡는 경우 잡음은 더 심했다. 창의성과 독립성을 토대로 전북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도내 자치단체에서 용역을 받은 것으로 겨우 살림을 꾸려가는가 하면, 전북도의 주문에 맞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급급해 관변 연구기관의 부정적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직내 투서가 난무하고 갈등과 분열로 점철돼 지방의회나 언론의 질타를 받는 일도 많았다. 한영주 초대 원장을 비롯, 남충우, 신기덕, 원도연, 김경섭, 강현직, 김선기, 권혁남 등 역대 원장은 8명인데, 일부는 지사 선거에 깊이 관여하면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원장은 자신을 연임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말을 바꿔타고 도지사의 경쟁자를 돕는가 하면, 낙점받지 못한 지원자 중에는 지사 경선 캠프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공모를 앞두고는 캠프 인사 낙점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훗날 사실무근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사 캠프에 몸담지도 않았고 평소 지사와 두터운 친분이 있는것도 아닌 이남호 전 총장의 발탁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실용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모에는 6명이 응모했는데 전북연구원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원장 후보자로 이남호 전 전북대 총장을 의결했다. 3년 임기의 신임 원장은 도의회 인사 청문회를 남겨두고 있는데 이는 기속행위가 아니기에 사실상 원장으로 확정된 셈이다. 남원 아영 출신인 이남호 원장 후보자는 전주고, 서울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제17대 전북대총장을 지냈는데 정년을 2년 앞둔 상태에서 지난 2월말 명예퇴직한 바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그의 갑작스런 명퇴를 두고 정치입문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이번에 전북연구원장을 맡게됨으로써 현실정치와는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지역발전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9번째 전북연구원의 조타수 역할을 맡게될 이남호 후보는 총장 재직시절 빼어난 경영 마인드와 인생의 좌우명인 궁신접수(躬身接水 옥으로 만든 술잔도 주전자 아래 있어야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에서 알 수 있듯 겸허한 자세로 살아왔기에 바야흐로 도약하려는 전북의 발전 청사진을 제대로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가 큰 만큼 그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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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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