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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의 미래

고수의 바둑 대결을 보면 흑이 한 수를 두면 흑집이 커 보이고, 백이 또 한 수를 두면 백이 유리해 보인다고 한다. 정치9단쯤 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한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면 그게 맞는 것 같은데 반대편 주장이 나오면 또 그게 맞는 것 같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여서 시대 상황에 따라 또 판단하는 이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역사왜곡 논란으로 인해 최근 벌어진 전라도천년사 봉정식 잠정연기 사태는 누구의 자잘못을 떠나 세상과 역사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며칠 전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동연 경기지사가 관심 인물로 떠올랐다. 홍 시장은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해 가끔 정가의 화두로 등장하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대구시 신청사 건립 사업을 두고 대구시와 대구시의회가 대결 구도를 벌이는 가운데 홍 시장이 시청 내 청사 이전 관련 조직을 없애버렸다. 대구시가 3년 전 시민평가단 회의 등을 거친 신청사 사업계획을 축소하자, 시의회는 130억원 넘는 설계용역비를 전액 삭감했다. 그러자 홍 시장은 더 좋은 방안을 찾고자 하는 충정을 거절한다면 안해버리겠다며 옥쇄작전으로 응수했다. 대구시는 홍 시장이 취임한 직후 시의 빚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예정됐던 신청사 이전부지 15만8000여㎡ 가운데 9만여㎡를 매각하는 새 계획안을 마련했다. 이전부지에 상업시설 등을 유치하는 방안도 추가하고 완공시기도 2028년으로 2년 늦췄다. 이에 대해 시의회는 규모 축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신청사 설계공모 설계비 130억4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기본계획 및 비전·발전전략 수립’ 연구용역 입찰에 나섰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추진단’ 설치를 포함한 조직개편안도 시행을 앞두고 있고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추진 및 지원조례’도 도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경기북부특별자치도는 갈 길이 지극히 멀고 어려워 보인다. 전혀 별개이나 이들 2가지 사안은 전북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역발전에 대한 목표는 똑같아도 대구의 경우 집행부와 지방의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시사점을 던진다. 그런가 하면 어렵게 특별자치도를 추진하는 전북의 입장에서 볼 때 경기도 같은 곳마저 특별자치도를 추진하는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하는지 무거운 과제가 전북에 주어졌다. 상당수 지역민들은 전북특별자치도만 되면 모든게 다 될 것처럼 기대하고 있으나 사실은 지금부터다. 당장 전북특별자치도법을 일단 통과시켜야 하지만 그 이후 실효성 있는 숱한 사안을 법안에 잘 담아내야 한다. 제주, 세종, 강원 등 전북보다 앞선 곳부터 꼼꼼히 분석해야 전북특별자치도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특별하지 않은 특별자치도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2.12.21 14:44

규제 개혁의 충분 조건

지난 2018년 무렵이다. 고향 선배가 한옥마을 인근에 상가를 새로 지었다. 공사가 끝나갈 즈음 그는 큰 낭패를 겪었다고 한다. 1층에 커피숍 등 프랜차이즈 임대 문의가 줄을 이었는데 행정 규제 때문에 계약을 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 뒤 수 차례 상가협의회를 통해 생존권 위협하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읍소했지만 허사였다. 한옥마을 보존과 정체성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취향과 선호도에 역행하는 근시안 행정을 고집한 것이다. 꽉 막힌 행정은 전북에 본사가 있는 업종 장사만 강요한 셈이 됐다. 먹고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한옥마을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팔달로 주변 상가들은 각종 규제로 묶을 때는 한옥마을에 포함하고, 개발과 인센티브 혜택 때는 제외시키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처럼 지역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대못과 전봇대’ 를 뽑기 위해 우범기 시장이 칼을 빼들었다. 그는 시민 의견을 수렴해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서민경제 활성화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옥마을 음식 품목 자율화와 함께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 등을 속도감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우 시장은 선거 때부터 '경제도시 전주' 를 표방하고 이를 위해 그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한방직과 종합경기장 개발을 약속해 왔다. 그의 강공 드라이브는 지역경제 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과거 선거 유불리에 따른 정치적 판단으로 행정이 불합리한 규제를 만들어낸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우 시장 입장에서 규제 개혁을 둘러싸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가 전주 변화를 위해 규제 완화를 발표할 때마다 시민단체와 이익집단들이 제동을 건다. 침체된 분위기를 걷어내고 역동적인 전주를 만들어달라는 시민 요구에 부응함에도 막무가내식이다. 실제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 완화를 통해 건설 경기 활성화를 추진하자 시민단체들이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도 건설 단체 어느 곳 하나 지지 성명은커녕 입장문 한줄 내지 못한다. 서울과 광주 업체가 지역 건설 시장을 싹쓸이하는 상황에서 지역업체가 맥을 못추는 이유다. 아무리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 해도 자기 밥그릇과 관련해서 제 목소리를 낼 때는 똘똘 뭉쳐 내야지 그마저도 못하면 더 쪼그라드는 건 시간문제다. 전주의 개혁 드라이브는 우 시장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유관 기관이나 관련 단체들이 함께 나서 추진동력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대한방직 석면 철거를 위한 대형 가림막 설치와 관련해 환경단체가 인근 맹꽁이 서식지 훼손이 우려된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지난 2010년 전주 서곡교 부근 교통난 해소를 위해 언더패스 설치 주장이 나왔을 때 인근 전주천 수달 보호를 주장하는 환경단체에 막혀 무산된 적이 있다. 지금 그 일대는 출퇴근 상습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아 운전자들 불만이 폭발하기 일쑤다. 개혁 과제를 선거 때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우 시장 몫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2.12.20 17:28

반계 탄생 400주년과 유적지

올해는 반계 유형원(1622-1673) 탄생 400주년이 되는 해다. 실학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반계는 그 업적에 비해 저평가된 감이 없지 않다. 올해의 끝자락에 부안과 서울에서 꽤 규모가 큰 '반계 류형원 선생 탄신 4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그나마 다행이다. 15-17일 고려대와 부안에서 가진 '동아시아 실학 국제학술회의'와 '영호남 지역교류 문화행사'가 그것이다. 특히 지역교류행사로 '퇴계학과 반계학의 만남'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끌었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과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 실학자가 만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 이에 앞서 지난달 11-12일 부안에서 '전북지역 유학과 유학자'를 주제로 제2회 전북학대회가 열렸다. 첫날은 광주전남의 한국학호남진흥원과 전북의 전라유학진흥원간 통합을 둘러싸고 전남북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뜨거웠다. 이어 다음날 반계유적 답사가 있었다. 예전에 잠깐 반계서당을 들렀으나 이번에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다. 반계는 32세 때인 1653년 겨울, 가솔들을 이끌고 이곳에 내려와 운명하던 때까지 2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안내는 예원예술대 이동희 교수가 맡았다. 처음 들른 곳은 우반동(현 보안면 우동리) 반계서당으로, 반계는 산중턱에 자립잡은 이곳에서 '반계수록'을 집대성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지금 건물은 1981년 복원된 것으로 건물 안과 밖에 반계가 팠다는 우물이 전해지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앞이 탁 트여 우반동(인근에 선계폭포와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정사암이 있음)의 너른 들녁과 멀리 줄포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초빈이 나온다. 1673년 3월 운명하자 5월에 임시안장하고 장사를 지냈으나 10월에 반계의 유명에 따라 경기도 죽산(현 용인시 백암면)의 부친 묘소 아래로 옮겨 모셨다. 이곳 임시 안장터는 근래에 봉분을 만들고 안내문을 세웠다. 이어 한참 내려가 반계의 집터를 방문했다. 길가에 반계가 팠다는 우물이 있고 안내비가 세워져 있다. 이 우물을 지나면 반계집터라고 하여 공원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본래 집터는 이곳이 아니라 그 앞 논자리라고 한다. 이 논 가운데 돌기둥이 서 있는데 병사들을 훈련시켰다는 곳이다. 반계집터는 경지정리로 후원의 대나무 밭까지 밀어버려 지금은 100여 평만 남아있다. 또 반계서당에서 8km 떨어진 상서면에는 반계를 배향했던 동림서원지가 있으나 1868년 훼철돼 지금은 유허비와 주초돌만 남았다. 이밖에 동진과 상서에 반계농장이 있었다고 하며 광주 풍양정에 반계의 유일한 글씨가 편액으로 남아 있다. 부안군이 보물같은 문화자원을 제대로 보존·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씁쓸했다.

  • 오피니언
  • 조상진
  • 2022.12.19 16:47

판갈이 할 절호의 기회

후손들이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보통사람들이 답하는 것보다 정치인을 포함 오피니언 리더들이 답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전북이 발전하지 못하고 피폐하게 된 원인이 국회의원 등 선출직들이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국회의원들이 임기내내 목에다 힘이나 잔뜩 주고 다녔지 중앙에서 전북 몫을 가져오지 못해 전북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되었다는 것. 상황이 이런데도 모두가 남 탓이라고 그 책임을 돌린다. 대의민주정치를 실시하면서 국회의원 역할과 사명이 커졌다. 금배지만 달아주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기세 등등했지만 막상 임기가 끝나면 거의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로 마감한다. 대체로 전북 출신 국회의원 가운데는 권리위에서 낮잠 잔 의원이 많았고 역량이 부족해 전북 몫을 제대로 가져오지도 못했다. 단지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시장 군수 지방의원 공천권을 갖고서 전가의 보도 마냥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 자신들만 등 따습고 배불리 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 낙후는 지금 당장 이뤄진 게 아니고 30∼40년간 서서히 이뤄졌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체육 등 전 분야에서 전국 최하위로 쳐졌다. 돈과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유입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아 대학 나온 젊은피들만 떠났다. 이 모든 게 정치인 잘못이 크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잘못 뽑아준 도민들 책임도 만만치 않다는 것. 전북인들이 DJ를 대통령 만든 것은 잘 했지만 지역을 발전시키는 일에는 악착스럽지 못했다. DJ집권 때는 혹시나 지역이 발전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속에서 광주 전남사람들 들러리 서기에 바빴다. 이제는 광주 전남과 호남으로 묶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년 4·5 전주을 재선거는 무능한 정치판을 갈아엎을 좋은 기회다. 민주당 일색의 정치판이 전북발전을 더디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재선거로 어떻게 전북을 발전시킬 수 있겠느냐고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주인의식을 갖고 역량 있는 인물을 뽑으면 가능할 수 있다. 그 이유는 1년후에 닥칠 22대 총선 때도 계속해서 인물본위 선거로 가면 경쟁의 정치 틀이 만들어져 지역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이제는 전주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민주당 무풍지대에서 경쟁의 정치가 싹트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주시민은 그간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묻지마식 투표로 찍어줬지만 이제는 그런 틀을 깨줘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도민들이 그간 민주당의 당 이념과 강령도 모른 채 순진무구하게 집단으로 밀어준 결과가 오늘의 전북현실이다. 민주당이 공천자를 내지 않은 만큼 인물 본위의 선거를 해야 한다. 동학의 후예답게 동학정신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전주시민이 되려면 무능한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2.12.18 17:39

동네목욕탕의 행방

<카라칼라 욕장>은 로마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다. 해마다 여름이면 야외 오페라가 열리는 덕분에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그 전신은 이름 그대로 공공 목욕탕이다. 216년, 로마제국의 카라칼라 황제가 문을 열었으니 어림잡아도 18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부분 시설이 그대로 남아 로마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카라칼라 욕장은 고대 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공공 욕장 중 두 번째 큰 욕장으로 꼽힌다. 다양한 목욕시설은 물론, 오락실과 도서관, 체육관까지 갖춘 이 욕장이 고대 로마인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활용되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 사랑은 특별했다. 목욕을 좋아하고 즐기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공공 욕장은 단순히 몸을 씻어내는 장소로서가 아니라 휴식공간이자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해갔다. 황제들은 이러한 로마인들의 독특한 문화를 위해 수많은 방과 다양한 시설을 갖춘 거대한 공공 욕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능력을 과시했다. 덕분에 350년쯤에는 성업 중인 로마의 공공 욕장이 900개가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공공 욕장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그 쓰임도 단순히 목욕과 휴식을 위한 장소로보다는 사교를 위한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간통과 난교, 매춘까지 이어지는 퇴폐적인 장소로 전락해갔다. 매춘과 풍기문란으로 퇴폐문화를 조장하는 공공 욕장의 번성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로마는 결국 시민들이 1주일에 한 번만 목욕할 수 있게 하는 ‘목욕제한령’을 공포해 공공 욕장의 남용(?)을 막았다. 공공 욕장의 번성이 로마제국의 존립까지 위협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증명되니 이쯤 되면 ‘로마가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그냥 나온 것은 아니겠다. 공공 욕장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목욕탕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도입되어 발전하거나 쇠퇴했다. 우리에게 공공 욕장은 ‘대중목욕탕’ 혹은 ‘사우나’란 이름으로 친숙한데, 한때 한국의 독특한 ‘사우나’는 이름을 널리 알려 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상품이 되기도 했다. 동네마다 자리를 잡아 우리 일상 문화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던 시절이 있다. 목욕탕이 발전하면서 ‘사우나’나 ‘스파’란 이름으로 동네에도 호사스럽고 고급스러운 목욕탕들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대를 이어가며 동네 사람들을 맞았던 동네목욕탕은 대부분 작고 아담한,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동네목욕탕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동네목욕탕을 대신한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면서 운영의 어려움에 처해 문을 닫는 상황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운 현실은 따로 있다. 대중목욕탕이 꼭 필요한 취약계층이 안게 될 일상의 고충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2.12.15 15:49

월드컵과 전주완산을 재선거

〈카사블랑카〉는 지금부터 꼭 80년전 미국에서 만들어진 매우 유명한 영화다.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스타인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등이다. 카사블랑카는 ‘하얀 집’이라는 뜻인데 영화의 배경은 제2차대전때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이다. 모로코 수도는 사실 라바트 라는 곳인데 카사블랑카로 아는 이들도 많다. 영화 배경이나 휴양도시로서의 높은 지명도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모로코는 한때 자신들을 식민통치했던 프랑스와 조우하게 됐으니 참으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다. 1930년 제1회대회에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92년 동안 계속된 월드컵에서 유럽이나 남미가 아닌 나라가 4강에 진입한 경우는 단 3번밖에 없었다. 1930년 첫대회에서 미국, 2002년 대한민국, 2022년 모로코 등이 그 주인공이다. 꼴찌의 반란이나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게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된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호남과 영남의 특정정당 독식구도 하에서 소위 지역내 비주류 정당의 설자리가 얼마나 좁은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전북에서 치러진 총선이었다. 1985년 12대 총선때까지는 집권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중선거구제여서 동반당선됐다. 그런데 1987년 직선제 대선 이후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부터는 민주당 독식 구도가 계속됐다. 당시 군산 고건, 남원 양창식, 진무장 전병우, 김제 조철권 등 지명도 높은 인사들이 나섰지만 황색돌풍은 매서웠다. 1992년 14대 총선때는 남원에서 양창식, 진무장에서 황인성 후보가 민자당 간판으로 당선됐으나 남원의 경우 민주당 조찬형, 무소속 이형배간 3파전 구도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진무장 황인성 당선자는 지역정서와 더불어 상대적 약체인 오상현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1996년 15대 총선때 군산시을에서 신한국당 강현욱 후보가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냈으나, 이후 민주당과 대척점에 서 있는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데는 무려 20년이 더 걸려야만 했다. 2016년 20대때 전주시을에서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가 민주당 최형재, 국민의당 장세환과 3파전을 벌여 당선된 것이다. 2000년 16대때 남원순창 이강래는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2008년 18대때 완산갑 이무영, 정읍 유성엽 후보는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나 이들은 모두 공천을 받지 못했을뿐 친 민주당계 후보였다. 2020년 21대때 남원임실순창 이용호 후보 역시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나 당시 그는 친 민주당계 후보였다. 내년 4월로 다가온 전주 완산을 재선거는 작아 보여도 정치적 함의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지역정가에서는 과연 정운천 도당위원장으로 대변되는 국민의힘 후보가 임정엽, 최형재로 예상되는 친 민주당계 무소속 후보와 어떤 승부를 보일지 초미의 관심사다. 집권여당이지만 전북에서는 지극히 세력이 약한 국민의힘 후보가 과연 모로코처럼 꼴찌의 반란을 성사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한계에 봉착할지 지역민들이 주시하고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2.12.14 15:31

한빛원전의 그늘

한빛원전은 서해안에서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고창 해리면 노을대교 예정지와 영광군 백수해안도로 앞바다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영광 굴비 주산지로 이름값을 올린 법성포와 청보리밭 축제로 알려진 학원농장이 인근에 있다. 풍천장어로 소문이 자자한 선운사 일대도 그리 멀지 않다. 이렇게 관광지로 둘러싸인 이곳 원전 4호기 재가동이 5년 7개월 만에 결정되며 안전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문제 핵심은 주민들의 안전성 검증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가동한다는 점이다. 2017년 이 시설 일부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 뒤 멈춰선 데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여파로 가동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더욱이 주민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데도 이들의 의견 수렴은 아랑곳하지 않고 현 정부 원전 드라이브 기조에만 입맛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 원전은 행정구역상 전남이지만 실제 전북 고창군과 접해 있고 부안군도 지척이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1981년 원전 첫 삽을 뜰 때도 “모든 혜택은 영광군이 독점한 반면 전북은 피해만 고스란히 떠안는 꼴” 이라며 지역이 술렁였다. 2003년 부안 위도 방폐장 유치 때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영광 군민들이 “어차피 사고가 발생하면 영광 부안 고창군 모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우리가 먼저 나서야 했는데 부안군에 열매를 다 빼앗겼다” 며 억울해 했다. 예상대로 한빛원전 유치의 달콤함은 영광군이 독차지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각종 지원금의 86%를 영광이 가져간 데 반해 고창군은 14% 안팎이 고작이다. 방사선 발생 리스크는 엇비슷한 상황에서 지원금이 영광군에만 편중된 셈이다. 원전 소재지 영광군 홍농읍은 원래 바닷가 근처지만 인근 법성포처럼 고깃배가 드나드는 어항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수익 구조가 있는 그런 마을도 아닌 평범한 농촌이었다. 진통 끝에 원전이 들어서면서 마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지역 상생사업 일환으로 그 지역 젊은 층이 원전에 다수 취업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가 일어났다. 더 나아가 마을 주민과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협력사업이 늘고 상권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심지어 젊은 남녀가 결혼을 통해 이 회사 직원 가족이 되면서 유대 관계는 한층 돈독해지기도 했다. 한빛원전 4호기 재가동에 따른 불안감은 최대 수혜자 영광군뿐 아니라 전북 지역 자치단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같은 역학 관계 속에서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를 위한 여론 수렴 등 지원을 담당하는 통합 기구의 편파적 운영이 갈등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다. 민간환경감시기구만 해도 위원장 포함 17명이 영광군 몫인데 고창군은 겨우 2명에 불과해 지역별 형평성이 심각하다. 탈원전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5년 만에 뒤바뀐 정부 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춤추는 것도 좋지만 결코 간과해선 안될 것이 안전성 검증이다. 고창군 부안군 정읍시는 물론 영광군 의회까지 나서 이번 재가동을 반대하는 결정적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2.12.13 16:25

전북에서 다시 뜨는 이성계

경기도에 있는 의정부시(議政府市)에 가면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의 기마상이 있다. 태종때 함흥에 칩거하다 다시 한양으로 환궁하던중, 오늘날 의정부를 지나게 됐는데 최고 의결기관(의정부)에서 잠시 국정을 논의한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의정부시에서 2009년말 태조상을 건립한 것은 의정부라는 지명 유래와 연관이 있고, 특히 태조 이성계의 용맹, 진취, 개혁성을 되새기자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작은 인연도 얼마든지 긴요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주와 전북이 조선왕조의 발상지라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첫 대목을 보면 “태조∼의 성은 이씨요, 휘는 단이요∼. 전주의 대성이다.”라고 돼 있다. 이성계에 대한 연고권이 차고 넘치고 있으나 그동안 도내에서는 이를 하나로 엮어 마케팅 하거나 그의 리더십을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키는데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제기돼 눈길을 끈다. ‘이성계 역사유적에 대한 활용방안 세미나’가 지난 7일 전주완판본문화관에서 이성계리더십센터(센터장 정세량) 주최로 열렸는데 눈길 끄는 제안이 많았다. 최근 전북도가 진행한 용역보고에 따르면 이성계 역사유적은 전국 67곳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중 무려 51개 역사유적이 전북에 있고 전북 외 지역의 유적은 주로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기에 실질적으로 지역과 연계해서 유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은 전북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이덕일 소장은 “전주에서 출발한 이성계 가문의 ‘노마드(nomad)’ 정신은 가문의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 큰 역사로 이어졌다”며 “이성계가 보여준 융합정신, 상무정신 등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신정일 위원은 “전주, 진안, 장수, 임실, 남원, 순창 등 전북에는 태조 이성계와 얽힌 스토리가 많이 남아 있고, 전북인들이 이성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며 “전북에 남아 있는 이성계 역사자원을 잘 보존하고 현대에 맞는 시대자산으로 활용하면, 전북의 역사 정체성을 지켜내는 동시에 관광객 유치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석 단장은 “전북은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 역사유산에 대해 특화 브랜딩하는 ‘킹스토리 특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황산대첩으로 이성계는 변방을 지키던 일개 장수에서 일약 고려 백성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정도전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 창업에 성공한다. 600년전 이성계가 보여준 혁신과 돌파의 리더십, 상황적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은 극단적인 분열과 증오로 점철된 요즘 상황에서 부쩍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태조 이성계의 시대정신을 되새기고 문화유산을 활용한 킹스토리 특화 프로젝트가 전북에서 어떻게 꽃피울지 주목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2.12.12 16:21

무능한 사람을 뽑아준 게 잘못

전북은 30년 이상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해왔다. 민주당을 지지해서 얻은 게 뭔가. 개인이나 지역이나 얻은 게 거의 없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시켜주는 구조가 지역을 어렵게 만들었다. 솔직히 경상도 보다 전북의 지역주의가 더 견고하다. 각종 선거 때마다 민주당 아니면 표를 주지 않은 게 이를 증명한다. 민주주의는 경쟁의 정치체제다. 세상사가 경쟁없이 발전할 수 없다. 세밑에서 전북의 현실정치를 볼 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 가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재화를 나누고 인재를 등용하는 힘을 갖고 있다. 전북에서 줄곧 여당 역할을 해온 민주당은 선거 때나 유권자에게 손을 내밀면서 지지를 호소했지 선거가 끝나면 그 누구 하나 지역발전을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국회의원들이라고 해야 중앙 정치무대에서 말발이 서지 않아 당 대표 방탄조끼를 입혀주거나 거수기 노릇하기에 바빴다. 국민의힘은 예전 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전북이 동토의 왕국이라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전북을 외면하고 방치한 탓에 전북 몫을 지금껏 찾지 못하고 있다. 국힘은 표가 적게 나왔다는 핑계로 대선 공약까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깔아 뭉갠다. 민주당이나 국힘이나 전북 이익을 제대로 대변해 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50대 젊은 김관영 지사가 전북발전을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정치권이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않아 헛심만 팽긴다. 대기업 5개 유치 공약을 실현하려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 시키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적극 나서지 않아 혼자만 뛰는 형국이 되버렸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말로만 원팀 운운하지 속내를 들여다 보면 각자 도생하는 방식이다. 복당파인 김관영지사도 운 좋게 지사가 되었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는 생각들이다. 지사 경선 때 한판 붙은 선거전력 때문에 앙금이 가시지 않고 모래알판이 돼 버렸다. 전북정치권은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특정상임위에 3명씩이나 배치된 게 잘못이다. 법사위 문턱을 못 넘은 전북특별자치도법만해도 지역구 출신이 법사위에 없어 방어를 못해서 그렇게 됐다. 민주당 비례대표 최강욱·김의겸 의원이 적극 나서주지 않았지만 국힘 조수진 의원이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도당 차원에서 국힘 정운천과 민주 한병도 위원장이 힘을 합쳐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강원도 유상범 의원 반대에 부딪쳐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문제는 양당 지도부가 관심을 갖고 오더를 내렸더라면 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볼 때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국힘은 국힘대로 전북에 소홀하다는 게 입증됐다. 결국 정치권의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 5일 치러질 전주을 재선거를 놓고 민주당의 공천여부가 주목된다. 민주당은 지금 의석 한석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려면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서울·부산시장선거에 당규를 고쳐 당 후보를 냈다가 참패를 당한 꼴을 잊어 선 안된다. 이재명 사법리스크 때문에 눈치만 살피는 지역구 의원들이 한심해 보인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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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2.12.11 18:08

영화 '그녀가 말했다'

2012년 미국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던 인물.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비롯해 <굿 윌 헌팅> <갱스 오브 뉴욕> <시카고> <세익스피어 인 러브> 등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인기 할리우드 영화들을 기획하고 제작한 인물. 수많은 오스카상과 엄청난 흥행 수입으로 30년 동안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던 더 와인스타인 컴퍼니 창업자이자 공동회장 하비 와인스타인이 그다. 권력과 돈, 명성까지 거머쥔 그는 사실 할리우드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영향력을 과시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추악한 성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수감 중이다. 형량도 자그마치 23년. 올해 70세가 된 그가 말년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내게 된 셈이다. 그의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7년이다. 뉴욕타임스는 그해 10월 5일 자 신문에 그가 30년 동안 자신의 회사 여직원과 여배우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해온 사실을 보도했다. 탐사보도팀의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 이들 두 기자의 치열한 취재와 설득, 피해 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메건 투히는 그에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폭력을 폭로했었던 기자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직장 내 여성 처우를 취재해온 캔터와 투히가 추적한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보도는 미국 영화계는 물론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애슐리 쥬드, 로즈 맥고완, 우마 서먼,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등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그와 함께 일한 여직원들의 폭로가 쏟아지면서 추악한 그의 민낯이 드러나고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저명인사들이 그를 규탄하고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미투운동을 촉발한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여성들의 연대를 이어낸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 기자의 취재기. 최근 개봉된 <그녀가 말했다(She said)>는 두 기자의 치열한 취재현장을 객관적으로 담아낸 영화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추적한 과정은 다큐로 제작되기도 했지만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온전히 담아낸 영화는 다시 새롭다. 영화는 섬세한 시각으로 여성 문제를 조명하면서도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용기를 내고 서로에게 감응하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성폭력을 당했던 여성들이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증언하며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중심은 저널리즘의 진정한 힘과 가치. '진실을 폭로하고 문제를 알린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될 수 있다'고 믿는 기자 캔터와 투히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우리가 처한 환경을 돌아보니 이 영화에 쏟아지는 호평의 이유가 더 확연해진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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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2.12.08 17:54

총선 대항마

말(馬)과 관련된 용어가 일상에서 비유나 은유적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재갈, 고삐, 주마가편, 낙마, 출마, 다크호스 등이 대표적 사례다. 대항마(對抗馬)도 말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경마에서 우승이 유력한 말에 대항할 만한 말을 의미한다. 대항마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삶의 전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8강으로 압축된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유력한 우승후보 프랑스의 대항마로 나선 잉글랜드의 선전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동지로 손을 맞잡은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항마 얘기를 하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선거전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전주을 재선거에 나설 민주당 측 후보군은 무려 10명 안팎에 달하는데 독보적인 인사가 없어 현 상황에서 당장 누구라고 말하기 어렵다. 관건은 민주당이 공천권을 행사하느냐 여부인데 명분상은 공천하면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 무공천이 쉽지만은 않다. 무공천 기조를 유지할 경우 자칫 상대측에 한 석을 빼앗길 수 있고, 출마를 위해 탈당한 인사를 민주당이 채 1년도 안 돼 내후년에 감점 없이 다시 복당시켜야 하는 딜레마도 있다. 공천여부에 관계없이 범민주당측 후보군에 맞설 국민의 힘 대항마로는 일단 정운천 도당위원장이 두드러진다. 최근 10년 안팎의 총선을 보면 2012년 19대 총선 때 군산에서 무명의 김관영 후보가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강봉균 후보를 꺾었고, 2020년 전주병에서 김성주 후보가 당 대표,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 후보를 제압한 게 최대 파란이었다. 강봉균 후보는 도당 위원장, 중앙당 정책위의장, 장관 등을 지낸 중량급 인사였기에 군산 선거전은 매우 의외의 결과였고, 전주병에서도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지던 김성주 후보가 대선후보, 당대표 등을 지낸 정동영 후보를 꺾었기에 역시 파란이었다. 전주병에서는 내후년 총선 때 김성주-정동영 후보간 3번째 맞대결이 예상됐으나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지낸 황현선씨가 출사표를 던지면서 3파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역정가에서는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구마다 뚜렷한 대항마가 이상하리만큼 부각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금 이 즈음 정도 되면 자천타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현역의원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대항마가 등장하지 않아 배경이 궁금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분당이나 제3세력의 출현 등 변수가 많고, 민주당 대 국민의 힘 구도가 그대로 총선 때까지 이어진다 하더라도 민주당 지도부의 향배가 큰 변수가 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새해가 다가오면서 지금부터 각 지역구마다 등장할 현역의원 대항마는 과연 어떤 인물군이 될 것인지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소위 총선 대항마 등장이 지역정가의 최대 화두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2.12.07 14:52

여야 협치 ‘선택 아닌 필수’

김관영 도지사가 7월 취임한 뒤 여야 협치의 새로운 모델을 구체화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중앙 정치무대를 경험하며 지역 현안 해결의 전제 조건으로 여야 협력을 누구보다 깊이 인식했다. 사실 전북의 정치 현실은 민주당 독주로 인해 여야 정치권의 폭발력이 한계에 직면해 있다. 김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이런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면서도 주요 당직을 맡아 여야 협력의 응집된 힘이 국회서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도 생생하게 겪어봤다. 실용 노선을 추구하는 그의 입장에서 야당으로 처지가 바뀐 민주당만으론 현실적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해 여당인 국민의힘과 손을 잡은 것이다. 존재감이 약한 전북 정치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여야 긴밀한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그런 기조에 따라 김 지사는 당선자 신분으로 국민의힘 도당을 방문해 정운천 위원장과 여야 협치의 공감대를 이뤘다. 그에 앞서 정 위원장을 인수위 특강에 초청해 사전 분위기 조성에도 공을 들였다. 여기에다 도 3급 개방형 직위인 정책협력관 후보를 국민의힘에 요청해 추천 인사를 임용하기도 했다. 그의 도정 철학은 결과와 실적을 통해 도민들에게 심판을 받겠다는 것. 이를 위한 국회 우군을 확보하고자 국민의힘 호남동행 의원 19명에 명예도민증도 수여했다. 이런 기류를 타고 전북특별자치도 법안 상임위 통과와 함께 대기업 유치에도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과 각종 법안이 산적한 가운데 강대강 대치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여야 협치야말로 현안 해결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도내 정치권과 언론 일부에서 다분히 여야 협치를 폄훼하려는 기류가 감지된다. 어느 때보다 여야 협력이 절박한 시점에서 공직자 개인의 일탈과 도덕성 결여를 여야 협치와 결부시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주을 재선거와 맞물려 국민의힘 견제용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도의회에 따르면 협치 일환으로 국민의힘에서 영입한 박성태 도 정책협력관이 업무추진비 일부 용도 내역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감사에 들어갔다. 그는 이같은 지적을 시인하고 직접 사과했다. 감사 결과에 따른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인데 마치 여야 협치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인양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례가 없을 만큼 어렵게 만들어진 여야 협치 관계를 훼손하지 말라는 의미다. 여야 협치의 실패 사례로 남원 공공의대가 대표적이다. 2018년 서남대 폐교 뒤 정부는 이곳에 2024년 공공의대 개교를 약속했다.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이를 주도한 데다 소관 국회 보건복지위에 여당 간사 김성주 의원과 지역구 이용호 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여당 의석도 과반을 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전북 정치권은 그때 뼈아픈 교훈을 통해 여야 협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우게 됐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2.12.06 18:15

학교 운동장, 우레탄과 인조잔디

유소년기의 추억을 되새길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학교 운동장이다. 매주 한 번씩 전교생이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그 길고 지루한 훈화를 들어야 했고, 휘날리는 만국기 아래서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릴레이를 펼쳤던 가을운동회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학교 운동장이 생기를 잃은 지 오래다. 디지털시대를 사는 우리 아이들이 바깥놀이를 꺼리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운동장에 불러낼 일이 적어졌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학교 운동장은 더 적막해졌다. 도심 주거 밀집지역에 들어선 학교는 부족한 교실·급식실 등을 갖추기 위해 새 건물을 속속 증축하면서 운동장 면적을 줄이고 있고, 아예 운동장을 갖추지 못한 학교도 늘고 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의 추억 속에 운동장은 아예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아직은 대다수의 학교가 꽤 넓직한 운동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그런 학교 운동장이 어느 때부터인가 환경문제의 중심에 섰다. 운동장에 설치된 우레탄 트랙과 인조잔디에서 납 성분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우레탄 트랙과 인조잔디를 즉각 걷어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고, 전북교육청에서도 지난 2016년 90여개 학교에서 우레탄 트랙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우레탄 트랙을 걷어내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인조잔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흙먼지 날리지 않는 운동장’을 목표로 한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사업은 지난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계획에 따라 추진됐다. 하지만 유해성 물질 논란이 일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3년 학교 인조잔디 유해성 조사를 실시했고, 상당수 학교에서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이에 따라 전북교육청은 인조잔디 운동장 전부를 천연잔디나 마사토 운동장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극적인 후속 조치는 없었다. 논란은 결국 다시 터져 나왔다. 전북교육청이 최근 인조잔디 운동장을 다시 확대하겠다며 사업비를 내년 예산에 반영하면서다. 운동부 운영 학교와 지역 주민들의 강한 요구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인조잔디 품질 기준이 강화돼 유해물질 발생량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인조잔디 운동장 확대 설치계획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당연히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다. 철저한 유해성 검사를 통해 단 1%라도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맞다. 게다가 대다수의 시·도교육청이 제정해 놓은 ‘친환경 운동장 조성·관리 조례’가 전북에는 없다. 학교 운동장 유해물질 방지 대책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학교 운동장은 신체와 인지·사회성·창의성 등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지원하는 교육공간이다.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이 소중한 공간이 환경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2.12.05 17:48

힘에 따라 움직이는 전북정치권

21대 전북 정치권을 가장 약체로 꼽는다. 초·재선들로 구성돼 전북정치를 아우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없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재선인 안호영 김성주의원이 도당위원장을 맡아 운영했고 지금은 친문인 한병도 의원이 맡았지만 정치력이 돋보이지 않아 전북정치권이 원팀으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김원기 정동영·정세균·장영달 등이 있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전북정치의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지금은 선수와 연령대가 같으면서 각개약진 해 전북 몫 찾기가 잘 안된다. 지금 전북정치를 이끌 마땅한 리더가 없어 지리멸렬해졌다. 대선 후보 경선전만해도 이재명·정세균·이낙연계로 나눠졌지만 전북경선에서 정세균이 사퇴하고 이재명 후보가 지역순회경선에서 계속 1위를 하면서 후보로 확정되자 모두가 이재명 당선을 위해 원팀으로 협력해 전북에서 82.98%를 얻었다. 국힘 윤석열 후보는 전북에서 14.4%를 얻어 호남권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윤 후보는 전북발전을 앞당겨 놓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각 가정에 발송하는 등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선거운동을 했지만 20% 득표에 미치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함께하는 계파정치는 존재하는 법이다. 여권은 대통령이 공천권을 매개로 자파세력들을 옴싹달싹 못하게 하지만 야권은 각 계파가 나름대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당내에서 목소리를 낸다.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후 인천 송영길 지역구인 계양에서 셀프공천해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당 대표가 되었다. 그 당시부터 국힘쪽에서는 이 대표가 대장동 수사를 피하려고 몇겹의 방탄조끼를 입었다면서 검찰수사를 받으라고 공세를 강화했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김용이 구속되면서 검찰의 칼끝이 이 대표를 향한다. 민주당 친명파들은 윤석열 정권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피하려고 민주당을 탄압하고 있어 이를 막아내야 한다면서 결사적으로 방어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영길 전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면 부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설훈 의원은 이 대표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당대표직을 그만두고 혼자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도내 국회의원들은 이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당지도부에 있는 핵심운동권 출신들이 하나씩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지역에서는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누구나 국회의원이 되기 때문에 재선 이상 한 사람은 전북을 떠나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 정세균의원이 무진장 완주 지역구를 포기하고 서울 종로에서 출마한 것처럼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험지 출마를 당연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재명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앞으로 자신의 공천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들이다. 일각에서는 전북정치권이 소신 없이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차라리 아픔을 감내하고서라도 다시 물갈이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2.12.04 17:26

알바레스와 모지스의 도전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함께 미국의 3대 대중음악 시상식이다. 그중에서도 미국 음반 업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그래미는 본상 외에도 특별히 또 다른 버전의 상을 만들었는데 2000년부터 시작된 ‘라틴 그래미’가 그것이다. 지난달 열린 23회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가수가 있다. 올해 신인상을 받은 쿠바계 미국인 가수 앙헬라 알바레스다. 놀랍게도 그의 나이는 95세. 역대 최고령 신인상 수상자다. 어린 시절부터 작곡을 했던 그는 가수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둔 그는 쿠바 혁명으로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끝내 놓지 않았다. 90세에 첫 콘서트를 열고 데뷔한 그는 1년 전, 작곡가이자 제작자인 손자의 도움을 받아 첫 앨범도 냈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삶은 고되지만 꿈을 이룰 방법은 항상 있다.” 그가 전한 수상소감이다. 유튜브가 전하는 그의 노래와 일상을 보니 평생 꿈을 잃지 않고 살아온 노년의 아름다운 시간이 빛난다. 100세 넘어서까지 그림을 그렸던 세계적인 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1860년~1961년). 그도 일흔다섯,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해 꿈을 이루었다. ‘그랜마 모지스’란 닉네임으로 더 널리 알려진 그는 88세에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었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 주인공이 되었으며, 100세 되던 생일에는 뉴욕시가 ‘모지스 할머니의 날’을 선포할 정도로 미국인들이 사랑했던 화가다. 그림을 배워본 적 없는 그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딸이 사다 준 그림 도구로 소일거리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듯 그려낸 그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우연히 발견한 한 수집가 덕분이다. <농부 부인이 그린 그림>을 주제로 첫 전시회를 가진 이후 그는 화단과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을 즐겼을 뿐,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기에 마음 두지 않았다. 그가 남긴 그림은 1,600여 점. 100세 이후에 그린 그림만 250점이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다”는 모지스와 “늦은 때란 결코 없다”고 일러주는 알바레스. 인생의 끝을 더욱 빛나게 만든 이들이 주는 선물이 있다.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도전과 용기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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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2.12.01 17:59

섬티아고와 새만금수변도시

천사섬 신안에는 물이 빠져 열린 노두길을 잇는 순례의 길이 있다. 세계적 순례길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빗대 섬티아고 라고 부른다. 12사도 순례길인데 요즘 실버 세대는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매우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다. 병풍도에 딸린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 그리고 딴 섬을 잇는 길이다. 신안군 증도면에 있는 이 작은 섬들에 국내외 작가 10명이 예수의 제자 12사도의 이름을 딴 12개의 작은 교회를 만들었다. 베드로의 집, 안드레아의 집, 야고보의 집, 가롯 유다의 집…하는 식이다. 신안의 풍광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교회 건물이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섬을 보는 것 같다. 이 길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것은 물이 차면 사라졌다가 약 3~4시간 뒤에 하루 두 번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노두길이다. 신비스런 풍경을 가졌다 하여 기적의 순례길로도 불린다. 12사도 성지들은 글로벌 예술가들이 만든 건축-조각-회화-아르누보 작품들이다. 번쩍하고 스치는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섬티아고에서 새삼 발견하게 된다. 남의 떡이 커 보여서 그렇지 전북에도 기가 막힌 풍경과 사연을 담은 섬들이 많다. 부안 위도가 그렇고 선유도. 신시도를 비롯한 고군산열도가 그렇다. 핵심은 얼마나 빼어난 자원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것 못지않게 어떻게 상품화하고 마케팅하는가에 달려있다. 며칠 전 군산 출신 강태창 도의원이 다소 생소해 보이는 ‘전라북도 섬발전기본조례안’을 발의했다. 지속가능한 섬 발전과 섬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섬 관련 종합계획 수립과 섬의 날 기념행사 추진, 섬 발전 자문위 설치 등을 담고 있다. 그는 “시의원 때부터 섬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막상 살펴보니 다른 시도와 달리 전북은 섬 관련 조례가 없었다”며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섬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지속 가능하고 개별 섬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발전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안 위도와 더불어 고군산열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풍광과 역사를 자랑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는 가우디라고 하는 천재 건축가의 손에 의해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났다. 새만금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 세대의 몫이다. 새만금수변도시는 방향과 함께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새만금수변도시개발을 총괄하는 한 책임자는 2020년 말 통합계획이 수립되면서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서 사르라다 파밀리아 사진을 치웠다고 한다. 깊은 고민 끝에 디자인이 끝난 만큼 이젠 속도전이 관건이라고 본거다. 숙고를 거듭하며 도출된 결론이라면 그때부터는 논쟁은 중단하고 서둘러야만 한다. 그게 바로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말한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경구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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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2.11.30 14:59

쌍방울 명과 암

쌍방울그룹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지자 도민들은 의아해한다. 한동안 잊혀졌으나 애환을 함께 한 그 향토기업이 떠오르면서 착잡한 모양이다. 그러잖아도 몇 년 전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연루됐을 때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쌍방울 법인카드 뇌물 의혹 당사자가 구속된 데 이어 외화 밀반출, 북한 광물 투자까지 꼬리를 무는 모양새다. 급기야 휘발성이 큰 대장동 사건 김만배와 연루설까지 제기되자 도민들 입장에서도 헷갈리기 마련이다. ‘쌍방울’ 하면 전통의 내복 전문 기업으로 고정관념이 있어서인지 속속 드러나는 메가톤급 사건에 휘말리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런 도민 생각과 달리 일련의 과정에서 밝혀진 쌍방울그룹은 기업을 사고 파는 M&A 전문 기업이나 다름없다. 과거 내복 전문 기업을 인수한 새 오너가 문어발 확장을 거듭한 셈이다. 지난 1997년 모 그룹이 부도가 난 뒤 수 차례 인수인계 과정을 겪으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원래 쌍방울의 뿌리는 1954년 익산에서 이봉녕-창녕 형제가 세운 형제상회가 출발점이다. 사업이 번창해 속옷 브랜드로 전국 명성을 쌓으며 기업 성장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 기억 속에 쌍방울에 대한 고정 이미지로 무주리조트와 함께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가 꼽힌다. 더불어 19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남성 속옷 TV광고 ‘트라이’ 는 대표적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요즘 언론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김성태 회장은 2010년 쌍방울 지분 40%를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옛 주인 이봉녕 일가는 지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각종 사건에 휘말리며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그는 쌍방울그룹의 몸집을 키우며 작년 이스타 항공과 함께 올해 쌍용차 인수에도 뛰어들었으나 실패한 바 있다. 그룹 회사 실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 연일 터지는 사건 배후로 지목돼 그를 둘러싼 의혹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 김 회장이 해외 도피중 이어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쌍방울 관련 뉴스가 계속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도민들은 ‘쌍방울’ 이란 기업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퇴색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한때 전북의 향토 기업으로 도민 사랑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지금도 익산에 가면 쌍방울 흔적이 여전한 상황에서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되면서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프로야구 레이더스 창단 비화를 통해 쌍방울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당시 전북에 선수가 부족해 출범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타 구단 방출 선수를 영입해 어렵게 출발은 했다. 그렇게 창단한 레이더스가 기대와 달리 불꽃같은 투지로 그라운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팀 컬러를 선보임으로써 관중을 매료시켰다. 오죽하면 ‘공포의 외인구단’ 이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해체된 지 2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팬 클럽이 존재하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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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2.11.29 18:14

천년도시의 광장

겨울의 문턱, 지구촌에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도시광장이 다시 뜨거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 9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올여름 시민 품으로 돌아온 서울 광화문광장이 월드컵 열기의 중심 공간이 됐다. 광장(廣場)은 글자 그대로 넓은 마당이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빈 공간이다. 이 빈 공간에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채워진다. 광장문화는 유럽에서 일찍부터 발달했다. 오늘날까지 그 용어가 쓰이고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 고대 로마의 ‘포럼(Forum)’이 그 태동이다. 광장은 시민 공론의 장이었고, 민주주의를 꽃 피운 공간이다. 유럽과 주거·생활문화가 달랐던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후반에서야 대규모 광장이 만들어졌고, 21세기 들어 대중이 주도하는 광장문화가 형성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등장한 길거리(광장) 응원문화, 그리고 2000년대 새로운 시위 방식이자 시민운동으로 떠오른 촛불집회가 전환점이 됐다. 전라도의 중심, 천년도시 전주에 아쉬운 공간 중 하나가 바로 광장이다. 물론 전주에도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적지 않다. 시청앞 노송광장·오거리문화광장·덕진광장·서곡광장·효자광장 등이다. 하지만 딱히 내세울만한 곳은 없다. 대부분은 광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심지어 어떤 곳은 광장이라 불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신시가지 조성이나 원도심 재개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시공간 재창조를 위해 공공영역에서 광장을 설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전주시가 도시의 거점, 금싸라기 땅을 빈 공간으로 남겨 시민들에게 돌려줄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전주시가 추진한 광장 사업은 지난 2009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행된 ‘덕진광장 시민광장 조성사업’을 꼽을 수 있다. 전주시는 당시 주차장으로 전락한 기존 덕진광장을 ‘바람의 언덕’이라는 테마로 시민들이 모이는 도심의 휴식·소통공간으로 만들겠다며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덕진광장은 지금도 시민 휴식·소통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의 대부분을 기존 시외버스 간이정류장으로 설계했으니 애초부터 시민광장으로 활용할 여유공간은 없었다. 결국 광장 없는 광장사업으로 끝나고 말았다. 디지털 시대 ‘시민 공론의 장’이 광장에서 SNS로 옮겨지면서 향후 도시광장의 기능과 위상이 약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광장은 여전히 도시의 대표적인 공적 공간이다. 시민 휴식공간이면서 대규모 행사와 집회를 열 수 있는 소통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민선8기 전주시가 ‘도시의 대변혁’을 예고하면서 야심찬 도시개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도시의 각 거점공간에 과감하게 시민을 위한 광장을 만들면 어떨까. 천년고도, 문화예술도시로서의 자부심을 살리면서 전통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활력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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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2.11.28 18:29

불기소 처분된 우범기 전주시장

기재부 출신 우범기 전주시장이 국가예산 확보를 위해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못한 것은 전임 김승수 시장이 신규 예산안을 올려놓지 않고 손 놓아버려 로비할 대상이 없어서 였다. 혹시 계속사업 정도가 깎이지 않도록 몸 푸는 선에서 역할이 제한되었다. 우 시장은 기재부 인맥을 총동원해서 전주시 국가예산을 확보하려고 맘 먹었지만 원천적으로 시에서 예산안을 올리지 않아 뛸 수 없었다. 특히 기재부 예산 라인이 도와주려고 직접 전주시를 방문했지만 부처예산으로 올라 온 게 없어 도움 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때 우 시장은 자신이 기재부 출신 예산 전문가라서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 예산폭탄을 터뜨려 지역개발을 앞당겨 놓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취임 후 우 시장이 내년도 전주시 국가예산 전반을 살펴본 결과 신규사업이 전무해 본인이 나서서 기재부나 해당부처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었다고 실토했다. 우 시장은 올해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없고 내년 부터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은 1조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국가예산을 확보할 요량이다. 국가예산 확보는 담당 부처 사무관부터 장 차관에 이르기 까지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면서 논리적으로 잘 설득해야 첫 단추를 꿸 수 있다. 이 때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면 해당 부처에서 알아서 챙겨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다. 정읍 출신인 김원기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있을 때 유성엽 정읍시장이 편하게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했다. 그 이유는 유 시장이 김 의장 한테 협조 요청하면 김 의장이 직접 장차관을 의장실로 불러 예산을 확보해줘 유시장이 시장을 잘할 수 있었다. 우 시장이 지난 6개월 동안 동분서주했지만 지방선거 방송토론회에서 브로커 연루의혹을 제기한 상대 후보에게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고발돼 검·경 수사를 받아왔다. 공소시효를 앞두고 지난 24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림으로써 그간 우 시장 한테 따라 붙었던 각종 의혹이 말끔하게 걷혔다. 우 시장도 그간 시장업무를 수행했지만 선거법으로 고발 되면서 조사 받을 때마다 언론이 수사상황을 중계방송 하다시피 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면 당사자는 관련 없다고 말하지만 조직 내부에서부터 영이 안서 인사도 소신껏 못한다. 자연히 시중에 근거 없는 말들이 떠돌아 다녀 당사자를 힘들게 한다. 지금 전주는 개발과 보존을 잘 연결시켜 전라감영의 옛 영화와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 우 시장이 불기소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됐다. 의회와의 소통을 잘 하면서 호랑이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이제는 특정시민단체가 황방산 터널을 못 뚫도록 발목잡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그 어느때보다 김관영지사와 우범기 시장이 호흡이 잘 맞기 때문에 전주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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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2.11.27 17:18

베니스 비엔날레와 한지

세계 최대의 미술축제는 단연 베니스 비엔날레다. 세계 미술의 흐름과 현주소를 점검할 수 있는 이 미술축제는 역사로도 그렇거니와 특정한 주제를 통해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언어와 형식으로 예술세계를 과시하고, 국가마다 선정한 대표작가와 작품을 통해 역량을 겨루는 특별한 형식으로 위상을 지킨다. 지난 4월 개막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역시 새로운 미술사를 더했다는 평가다. 올해 가장 큰 특징은 여성 작가들의 부상이었다. 본 전시에 초청된 58개국 213명 작가 중 90%인 192명이 여성작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가상의 시몬 리와 영국 국가관을 대표한 소니아 보리스가 모두 흑인 여성이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6개월 동안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히 관심을 모은 한국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 원로작가 전광영의 개인전이다. 그의 개인전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 전시’ 로 선정됐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기간에 230명이 넘는 작가들이 개인전을 열었지만, 이 중 주최 측의 병행 전시 타이틀이 주어진 전시는 20여 명. 그중에서도 생존 작가는 4명뿐이라니 특별한 관심이 모아졌을 만하다. 전광영 개인전이 열린 기간은 7개월, 이동안 관객이 10만 명이나 다녀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의 개인전을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지 작가로 불리는 그가 작업의 중심에 세워온 한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다. 그의 오랜 대표작 <집합> 시리즈는 고서와 한지를 활용한 입체 회화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한지를 활용한 부조와 설치작품 40여 점으로 베니스를 찾아온 관람객들을 불러들였다. 한지에 대한 관심이 확장된 결실은 또 있었다. 이탈리아 건축의 거장 스테파노 보에리가 전광영의 작품을 재해석해 설계하고 현장에서 건축했다는 ‘한지 하우스’다. 새로운 재료로써 한지의 쓰임이 다양하게 시도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지산업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실 한지가 현대미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는 자신의 작업에 맞는 한지를 구하기 위해 주문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을 직접 찾아오는 작가들도 늘고 있다. 그 덕분에 한지가 미술에서 좋은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온 전문가 중에는 미술재료로서의 한지, 특히 외국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재료로서의 한지를 연구하며 생산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한지의 우수성이 증명되면서 다양한 쓰임을 위한 재료로서의 실험이 그만큼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지 산업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지의 쓰임을 주목받은 베니스 비엔날레의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2.11.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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