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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 심사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연구기관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면 폐지하겠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그 이유를 ‘블라인드 채용이 최근 몇 년 동안 우수 연구자 확보를 막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우수연구자 확보를 블라인드 채용이 어떻게 얼마나 막았는지 궁금하지만, 아직 타당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역량만을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으니 편견이나 특혜를 제어할 수 있고 차별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도 덜 수 있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것이 시작이다. 사실 공고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은 5년이 지났지만 정부 고시로 규정되어 있을 뿐 법률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민의 평가는 어떨까.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진행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에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찬성'이 70.9%(매우 찬성 39.5%, 찬성하는 편 31.4%)나 됐다. '반대'는 19.4%(매우 반대 8.1%, 반대하는 편 11.3%)에 그쳤다. 국민의 호응은 제도의 법제화에 대한 의견으로도 이어져 응답자의 67.6%가 법제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대다수는 블라인드 채용에 꽤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실제 그 성과를 두고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만큼 실효성이 있다는 증거다. 국회에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중심이 되어 발의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공정채용에 관한 법률안'이 법안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 발의에 참여한 여야 의원은 27명이나 되지만 윤 대통령의 전면 폐지 발언이 더해져 있는 상황이어서 이 법안의 시행과 정착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비슷한 연상에 블라인드 심사가 있다. 블라인드 심사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응모자의 개인 정보를 배제하고 심사하는 방법’이다. 블라인드 심사가 도입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대학 입시, 민간기업 채용, 예술단 단원 채용 등에서 먼저 시행된 이후 다양한 분야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올해 전주대사습놀이에 블라인드 심사를 도입했다. 실력으로만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오랫동안 가장 권위 있는 국악 등용문으로 꼽혀왔던 전주대사습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돌아보면 불공정한 심사가 늘 화근이었다. 공정성을 앞세운 대회 방식 변화에 기대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블라인드 심사가 대사습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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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16 17:22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위기

저출산‧고령화시대, 전북지역의 급격한 인구감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폭이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던 전주시의 인구가 최근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기준 64만7306명으로 전달보다 681명 줄었다. 올 2월에는 2013년 이후 10년 동안 유지되던 65만 명 선마저 붕괴됐다. 지난해 말 기준 65만1495명이었으니 올들어 4개월만에 약 4200명이 감소한 것이다. 전주시 인구는 2021년 9월 65만 8235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에코시티‧혁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에 따른 인근 시‧군 인구 유입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인구가 2년 가까이 하향곡선을 이어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중앙동과 풍남동·노송동·완산동·서학동 등 원도심 지역의 인구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전북 인구는 지난 1966년 252만3000여명으로 최고치를 찍은 후 하향곡선을 이어가 2021년 3월 180만명선이 허무하게 무너졌고, 지난달에는 176만4181명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최근 전주 인근 완주와 김제지역의 인구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전북의 중심 전주는 주변 시‧군에 위치한 직장으로 통근하는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베드타운(Bed Town)이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지표 조사에서 전주는 항상 근무지 기준 취업자 비중이 거주지 기준보다 낮게 나타난다. 전주에 거주하면서 주변 시·군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즉, 교육과 서비스업이 발달해 정주여건은 타 지역에 비해 우수하지만 인구 대비 일자리는 적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베드타운은 대도시 주변에 주거기능 위주로 계획적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오산·광명시 등 서울의 위성도시들이 대표적인 베드타운이다. 전주는 대도시의 위성도시가 아닌 지역의 중심도시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베드타운과 구별된다. 서울 주변 도시들은 ‘베드타운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어내겠다’며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베드타운을 곧 ‘일자리가 부족한 도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도 이 같은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전주는 일자리를 늘려 수도권 등 타 시‧도로의 인구유출을 막아야 하고, 인근 도시는 정주여건을 개선해 주거인구를 늘려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전북의 최근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전반적인 저출산의 늪 속에서 중심도시 전주와 인근 도시 모두 인구위기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변 시‧군의 인구를 빨아들인 전주는 일자리를 늘리지 못해 젊은층의 역외 유출을 막지 못했고, 완주‧김제를 제외한 도내 다른 시‧군들도 정주여건 개선 등 인구늘리기 시책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감소 추세는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5.15 11:01

2% 전북경제

전북경제 규모가 2%대로 밀려나 빨간불이 켜졌다. 인구가 176만으로 전국대비 3.4%인 반면 지역내총생산규모(GRDP)는 2%대로 밀려나면서 현상유지하기도 어렵다. 1980년대만해도 전국 대비 4%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엔 3%로 떨어진데 이어 지금은 2%대로 밀려났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제지표를 보면 전북의 현실이 암울하고 답답하다. 농업이 주를 이뤘던 1960년대는 전북의 경제력과 인구 규모가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으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1970년대 이후부터 획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해 인구소멸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2022년 전북재정자립도는 23.8%로 전국 평균 45.3%를 크게 밑돌며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방세의 주요 세목인 취득세 지방소득세 재산세 등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타 시도에 비해 낮다. 2021년 4월 한은 전북본부 조사연구자료에서 자체 산출한 경제력 지수는 전북이 2019년 기준 5.30으로 전국 평균 6.0%보다 낮아 최하위를 기록했다. 2021년 8월 기준으로 전북지역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44.7%로 강원도 47.4%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2022년 2.4분기 중 전북지역청년 고용율은 38.8%로 세종시 35.1%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전북의 이직자 중에는 20대, 남성,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직에 의한 역외유출이 나타났고 특히 코로나 19 유행 이후 이직율이 상승했다. 전북의 도세가 약화되면서 20·30대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 전북의 미래가 암울하다. 민선자치가 시작될 당시만해도 지역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걸었으나 중앙정부로부터 전북 몫을 찾아오지 못해 SOC 미진으로 기업유치도 별로였다. 특히 국회의원과 단체장 같은 선출직 등의 무능으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지역특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갔어야 했는데도 적당히 표만 얻어서 재선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도·시·군정을 운영한 게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기업마인드가 부족한 단체장들이 기업유치성과도 올리지 못하면서 오히려 집토끼에 해당한 향토기업들만 나락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전북이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에 너무 목숨 걸었던 게 패착이었다. 새만금사업은 국책사업인 만큼 국가로 하여금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내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국가예산을 확보 했어야 했다. 무진장 중심의 동부산악권 개발 등 권역별 개발에 박차를 가했어야 옳았다. 지금 자치단체에서 기업유치에 신경을 쓰지만 전 공정의 자동화로 일자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 막대한 인센티브를 주어가면서 기업유치 성과를 못 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토끼를 잘 기르는 정책으로 과감하게 정책전환을 꾀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을 유치해 전북의 산업생태계를 바꿔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토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우선 구매해주는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다. 공직자들이 우리 기업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 절대로 2% 전북경제를 탈피 못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5.14 17:38

‘도의회’ 가 잘 안보인다

지금 도의회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협치의 강한 기류가 형성된 가운데 그들의 역할론이 새삼 회자된다. 과거 갈등과 대립이 잦았던 때와 달리 최근 들어 ‘이슈 메이커’ 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조용하다. 관건은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실제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작동해야 할 기능이 고장 나서 그런 것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런 가운데 도정 파트너의 중심축인 김관영 지사와 서거석 교육감, 여당 정운천 의원 등은 여전히 팀웍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협치를 키워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도의회 역할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민선 8기 출범 직후 산하기관장 인사청문 논란과 함께 도청 조직개편 때 상임위 간 밥그릇 싸움을 빼곤 이렇다 할 주목을 끌지 못했다. 도정 협력 기관끼리 ‘허니 문’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판 칼날이 무뎌진 건 아닌지 해석이 분분하다. 도의회 사상 첫 여성 의장 탄생도 관심의 대상이다. 국주영은 의장이 3선 최다 의원으로서 관록은 인정하지만 그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도의원 40명 중 재선 16명, 초선 22명인 상황에서 의장 선출은 불가피하지만 개인 역량에 좌우되는 존재감은 뚜렷하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특유의 섬세함을 앞세운 조직 안정에선 후한 평가다. 그럼에도 지역 정치의 대표 수장으로서 강력한 리더십은 아쉬운 대목이다. 전북은 사실 민주당 텃밭으로 집권 여당과의 소통 창구가 극히 제한돼 어려움을 겪는다. 지역 현안 추진에 도의회 응집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서 도의장 역할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전국적 선거 스케줄이 올해 없다는 점도 큰 변수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숨겨 놓은 발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지난달 전주을 재선거도 민주당 불참에 따라 의원들이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취했다. 막판엔 내년 총선 유리한 대진표를 포석에 두고 ‘역선택‘ 설이 파다했다. 2020년 총선 악몽을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다. 전주을에 출마한 이상직-최형재 후보의 불꽃 경선서 지방의원들이 앞장서 편 가르기 경쟁을 벌였다. 본인 공천과 직결되기에 지지 선언을 통해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런 움직임은 점차 노골화될 것이다. 역대급으로 전개되는 협치 모드에 도의회 동참 기류도 강하다. 도정의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는 대의 기관으로서 주어진 책무에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협치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해도 본연의 역할인 견제 감시까지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인사청문회와 도정 질의서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에 대해 당사자 답변이나 자료 제출을 통해 이를 규명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 이중 공모 지원 등과 관련해 언론에서 연일 도덕성 논란이 됐는데도 당사자의 속 시원한 해명은커녕 직계 은행 자료 제출까지 거부했다. 그런데도 어물쩍 넘어갔다. 변죽만 울린 도의회 존재 이유를 곱씹어 보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5.11 18:40

두터움 갖춘 전북의 원로

며칠 전 전주발 부음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전주가 낳은 세계적인 프로기사 이창호 9단의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이재룡씨(75)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대바둑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오청원과 더불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천재 프로기사 2인 중 한 명이 바로 이창호인데 맨 먼저 그의 기재를 알아본 이가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마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헌신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으로서 대통령이 된 케네디와 흡사하다. 훗날 전문기사에게 아들을 맡긴 이후에도 이재룡씨는 매니저 역할을 묵묵히 하게 된다. 마치 최동원, 선동열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전주시 중앙동 웨딩거리에 가면 전주시 미래문화유산 12호인 이시계점이 있다. 이창호가 태어난 곳인데 43건의 전주미래유산 중 하나다. 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이화춘)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이창호를 오늘날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키워낸 이는 매니저였던 아버지였다. 이정옥, 전영선을 사사하며 무섭게 성장한 이창호는 10살때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간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 최다연승(41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근현대 물리학계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듯이 현대바둑에서 오청원과 이창호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천재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오청원이 신포석을 개발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한다면, 이창호는 두터움 이란 세글자로 대표된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프로기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무대를 석권한 이가 바로 이창호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 이화춘씨나 이재룡씨야 말로 특정 분야에서 전세계 1위로 만든 장본인이다. 단순히 아들을 어여삐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보는 냉철한 눈이 있었다는 얘기다. 진시황제 사후 혼란에 빠진 중원의 패권을 놓고 한나라 고조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일 때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유방의 대원수 한신이었다. 통일 이후 멸문지화를 당하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한신의 활약이야말로 단연 압권이었다. 고사성어 다다익선의 주인공 한신은 그런데 무명 시절 초나라 항우 진영에서 요즘으로 치면 위관급 장교정도 되는 집극랑 이란 직책에 머물러야 했다. 하늘이 낸 재주를 지닌 한신을 제대로 알아본 이는 천하를 손에 쥐었고, 그를 위관급 장교 정도로 여겼던 항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딱 하나의 차이였다. 오늘날 침체일로에 빠진 전북에 진정한 원로가 없고 원로의 역할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선수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감독으로 빛을 발해야 하는데 관객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않고 무대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적지않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영역에서 이제 더 이상 근천떨지말고 역량있는 후배들을 키워내는 진정한 원로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게바로 이창호가 지향하는 두터운 바둑이다. 지역도 살고 자신도 사는 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5.10 15:30

동네책방이 늘어나는 이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리소문없이(?) 관심을 끈 영화가 있다. 나카무라 코타 감독의 <동네책방 폴란>이다. <폴란>은 출퇴근 시간에만 유동 인구가 있는 도쿄 서북쪽의 전형적인 베드타운 네리마구, 그 중심에서도 조금 더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있는 책방이다. 책방 주인은 이시다 교스케씨 부부. 이들은 중고책을 다루는 작은 동네 책방을 개업 초기부터 함께 해온 점원 유키 씨와 함께 음악회나 낭독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어 단순한 책방이 아닌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돕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덕분에 <폴란>은 주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의 위기로 존립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결국 쌓여가는 월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주인 부부의 선택은 폐업. 어린 시절, 이 책방을 드나들었던 나카무라 감독은 책방의 폐업 소식을 듣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제작된 <동네책방 폴란>은 35년 동안 운영해온 중고 책방을 폐업하기로 한 뒤 문을 닫기까지 한 달 동안 이 책방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담은 다큐다. <폴란>이 문을 닫은 것은 코로나가 절정에 이른 2021년 2월. 폐업을 준비하며 치루는 할인행사, 더러는 포장되지만 더러는 종이 더미가 되어 폐지 처리장으로 실려 나가는 재고 서적들, 오랜 시간 새로운(?) 헌책을 품었던 책장이 해체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기 보다 일상적이고 애틋하다. 폐점을 앞두고 책방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시다 사장은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다’며 눈물로 인사를 한다. 일본 작은 도시 변두리의 동네책방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사이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의 동네책방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목할만한 흐름이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마다 늘고 있는 우리나라의 동네책방들이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따르면 2022년 12월 현재, 동네책방은 815곳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1년 사이 70곳이 늘었다. 전북은 일곱 개가 새로 문을 열어 31곳이 됐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중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책방이 합류한 지역이다. 경제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동네책방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들여다보면 이제 동네책방은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서점이 아니다. 책을 읽고 교류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문화적 삶을 꽃피우는 공간이다. 커피와 차가 있는 책방,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책방, ‘큐레이션’ 책방, ‘북스테이’ 책방 등 기능도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문화의 중심에 선 동네책방의 행렬이 반갑다. 관심과 참여가 더해지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5.09 17:40

‘완산벙커’의 변신, 기대와 우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격전지였던 전주 완산칠봉은 현재 삼나무와 전나무 숲이 우거진 도시공원(완산공원)으로 조성돼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봄철 겹벚꽃과 황매화·철쭉이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 꽃동산에는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 산자락 초입 공영주차장 인근에는 입구에 출입금지 안내문이 내걸린 범상치 않은 지하시설물이 있다. 전쟁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해 방공호와 군·경찰‧전북도의 지휘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완산벙커’다. 1973년 조성돼 올해로 꼭 반세기가 된 이 지하벙커가 전통문화도시의 독특한 예술공간으로 변신한다. 지난 2006년 용도폐기된 이 냉전시대의 산물을 미디어아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시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게 전주시의 청사진이다. 개미굴 형태로 만들어진 벙커 안의 각 방을 시간의 강, 우주의 지도, 에일리언, 멀티버스 등으로 이름 붙인 뒤 빛과 영상을 통해 우주 공간, 4차원 세계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완산벙커를 리모델링해 새로운 문화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전주시의 계획은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 기본계획 수립 연구대상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해 시공업체를 선정한 전주시는 관광거점도시 예산 20억원과 시비 49억원 등 총 6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내년 상반기에 새로운 시설을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시설 명칭을 공모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다. 공모에는 모두 600여 건의 응모작이 접수됐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이 지하벙커의 문이 열린다. 전시(戰時)를 대비해서 도시 외곽 산자락에 만들어 놓은 옛 충무시설이 앞으로 1년 후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시민과 관광객들을 맞을지 사뭇 기대가 크다. 용도폐기된 지하벙커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키거나 재생사업을 추진한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북도를 비롯한 전국 각 시·도가 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규정에 의해 신청사 지하에 충무시설을 설치했고, 그에 따라 용도를 잃은 옛 시설물 활용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지하도나 벙커의 공간혁신을 추진하면서 대부분 이미 유명세를 탄 제주 ‘빛의 벙커’와 ‘아르떼뮤지엄’, 담양 ‘딜라이트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모델로 하고 있다. 사업방향을 미디어아트로 정한 전주시도 이들 시설을 벤치마킹했다. 전국의 지하벙커가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모두 똑같거나 닮은꼴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적어도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도시 전주의 문화재생 공간은 달라야 한다. 제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 형태의 미디어아트 공간이 아닌,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문화공간이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5.08 11:00

총선결과가 전북발전 좌우

올해로 전북은 도제(道制)를 마감하고 내년부터 특별자치도 시대가 열린다. 지난 3일 각계 240여 명이 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모여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를 발족, 더 특별한 전북시대를 맞자고 결의했다. 상당수 도민들이 매스컴을 통해 연일 특별자치도 뉴스를 접하지만 관심부족으로 그 내용을 잘 모른다. 전국에서 특자도와 시로 제주 강원 세종이 지정됐다. 내년 1월18일부터는 전북의 명칭이 전북특별자치도로 바꿔지면서 모든 행정이 특자법에 따라 운용된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전북특자도법은 우선 큰 얼개만 갖춰서 통과한 법이라서 내용이 빈약하다. 그래서 전북도가 제주와 강원도법을 벤치마킹, 실질적으로 도움 되도록 하려고 특례조항을 담아 연내에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전북은 전국 꼴찌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간 전북은 진보가 정권 잡았을 때가 전북발전의 기회였지만 그걸 못 살리고 허송세월 한 바람에 오늘 같은 낙후가 만들어졌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하고 원망할 때도 지난 것 같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바깥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지만 전북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갇힌 세상을 살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친 사람도 없고 모두가 자기 앞에 큰 감만 놓으려고 아귀다툼했다. 말로만 형 동생하는 그릇된 문화만 횡행했지 서로가 상생하려는 모습은 안보였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서로 뒤통수나 치고 사는 사회로 막가다 보니까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 농업이 주를 이뤘던 전북이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생태계를 제대로 전환시키지 못해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특히 3번 진보정권을 탄생시켜 놓고도 정치권의 무능으로 전북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지사·국회의원·시장·군수 등 선출직을 잘못 뽑은 게 결정타였다. 이들은 입신양명하기에 바빴고 이웃 광주 전남 들러리 서주는 것으로 끝났다. 임기내 내세울만한 뚜렷한 업적이 없다. 1995년 민선자치가 본격 시행되었지만 제왕적 위치에서 조자룡 헌칼 쓰듯 인사권만 남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도민들이 권리위에서 실컷 낮잠을 잔 꼴이 돼버렸다. 전북이 명칭만 특자도로 바꿔져선 안된다. 도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기업유치와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 지역발전이 이뤄지도록 지혜를 모아 함께 혁신해야 한다. 그간 무능한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해선 곤란하다. 지금은 운동권 출신 대신 전문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민주당 일당독식구조를 끝내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전북발전을 모색하도록 경쟁의 정치시대를 열어줘야 한다. 도민들이 정치의 근본틀을 바꿔주지 않으면 전북발전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특자도 시대를 맞아 미래로 발전해 갈 것인지 아니면 과거로 회귀할 것인지가 내년 총선결과에 달려 있다. 그간 지역정서에 함몰돼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막가파식 싹쓸이 선거가 지역을 망쳤다.그래도 계속할 것인가.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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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5.07 18:05

새만금 트로이카(Troika)

지금부터 약 30여년 전인 1990년대 초 한양대학교 고시반.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틀어박혀 열정을 불태우던 전북 출신 3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나이나 학년은 달랐으나 완주, 진안, 김제에서 상경해 향학열에 불타던 3인은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한 명은 행정안전부에서, 한 명은 농식품부에서, 또 한 명은 전북도청에서 각자 공직생활을 했는데 며칠 전 운명처럼 같은 직장에서 조우하게 됐다고 한다. 임상규 행정부지사, 김종훈 경제부지사, 최재용 새만금해양수산국장의 이야기다. 열흘전 임상규 행정부지사가 부임하면서 학창시절 이후 무려 30여년만에 이들은 한 공간에서 근무하게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시반 학생들은 종종 회식을 하기도 했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임상규, 김종훈 딱 둘이었다고 한다. 한양대 고시반때부터 이들은 트로이카(Troika)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공직 막판 투혼을 불살라 지역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로이카란 러시아어 형용사로 ‘3의’ 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 널리 쓰였던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뜻이 바뀌어 트로이카 하면 어느 집단에서 가장 돋보이는 세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다.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정치를 이끄는 것을 삼두정치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로마시대 제1차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2차 삼두정치(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를 들 수 있다. 권력을 한사람에게 맡기자니 독재로 흐를것 같고, 두사람에게 나눠 맡기면 으르렁대며 싸우기 쉽기에, 고안해 낸 것이 삼두체제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전혀 다른 법, 잠시 1차 삼두정치를 하다가 카이사르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고, 그가 암살당한뒤 힘의 공백기에 시행된 2차 삼두정치 역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10∙26 이후 최규하 과도정부 하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씨는 삼두정치 비슷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권에 다가선 듯 했으나 결과는 전두환 장군의 쿠데타였다. 1995년 민선단체장 체제 도입이래 김관영 지사, 서거석 교육감, 국주영은 도의장의 트로이카 체제는 가장 돋보이는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지사와 국민의힘 정운천, 민주당 한병도 도당위원장 간 트로이카도 잘 작동되는 것 같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의 실무사령탑격인 지사, 새만금개발청장,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간 트로이카 체제는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위상 측면에서 민선도지사는 부총리급에 버금가고, 새만금개발청장은 수많은 차관급 자리중 가장 선호도가 낮은 것 중 하나이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작은 공사 사장일뿐이기에 여기에 트로이카 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좀 어색해보인다. 하지만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위상을 떠나 지사, 청장, 사장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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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03 14:33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향방

전주의 봄은 다시 축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주의 구도심은 전주를 찾아온 ‘시네필’들로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2000년, 새로움을 약속하며 시작됐던 전주국제영화제가 스물네 번째 봄을 맞았다. 돌아보면 그 첫해 봄,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래된 도시 전주에 새로움을 선사하는 낯선 선물 같은 것이었다. 시네마스케이프, 디지털 영화들의 한마당 잔치 N-비전, 아시아인디영화포럼을 비롯한 메인 프로그램과 오마주와 회고전, 미드나잇 스페셜, 디지털 삼인삼색, 그리고 특별기획 프로그램 까지. 전주의 영화들은 영화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을 넘어선 풍경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그해 전주영화제가 특별히 주목한 것이 있다. 탄생 한 세기를 넘긴 ‘필름’과 21세기는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디지털’의 만남이다. 영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필름’ 영화들이 세계 영화의 다양하고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다면 여전히 낯설었던 ‘디지털’ 영화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영토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와 대중적 접근을 통해 발견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독립과 대안의 가치와 함께 전주영화제가 주목했던 디지털영화의 가능성은 주효했다. 디지털 기술로 영화미학의 지평을 넓히는 세계 감독들과 연대하며 14년 동안 이끌었던 ‘디지털 삼인삼색’의 성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더 이상 ‘디지털’은 새롭지도 않고, 변화의 상징도 아닌 일상적 도구(?)가 됐다. 전주영화제가 새로운 통로를 찾은 이유다. 영화제는 2014년 ’디지털 삼인삼색‘을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전환했다. ’기능과 미학, 산업의 역학 안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으로 선택한 통로였다. 독립·실험·예술영화에 직접 투자해 저예산 영화 제작을 돕는 이 프로그램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선정한 영화는 33편, 올해 제작된 로이스 파티뇨 감독의 <삼사라>, 윤재호 감독의 <숨>, 이창재 감독의 <문재인입니다>까지 모두 30편이 영화제를 통해 상영됐다. 이들 중에는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영화들도 있으니 그 성과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제작뿐 아니라 유통과 배급까지 참여하는 전주영화제의 유일한 산업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그 성과를 전주영화제의 산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통로로만 가늠하는 것은 아쉽다. 어느 사이엔가 전주영화제의 방향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면면으로는 더욱 그렇다. 영화인들의 실험과 도전에 대한 지지는 이 프로젝트가 지켜온 가치다. 지난해 선정된 한 감독은 “전주 덕분에 실험적 영화를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프로젝트의 향방이 더 분명해진 것 같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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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02 16:53

전주동물원과 어린이날

가정의 달 5월,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자녀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봄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는 가정이 많을 것이다. 어린이날 전북지역에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단연 전주동물원이다. 동물원 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시설이 운영되고 있고, 주변에 덕진공원과 체련공원도 있으니 화창한 봄날 가족 나들이 장소로는 부족함이 없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구름인파가 몰렸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지난 1978년 개원한 전주동물원은 지방 소재 동물원 중 가장 오래된 시설이다. 그 규모도 전국적으로 손꼽힌다. 김승수 전 시장은 생태동물원 조성사업을 역점 추진했다. 쇠창살 안 콘크리트 바닥에 동물을 몰아넣는 형태의 사육환경을 대폭 개선해 동물 친화적인 생태 서식지로 조성했다.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생태동물원으로 거듭난 전주동물원은 각종 영화와 방송 촬영 장소로 각광받기도 했다. 전주동물원 내 놀이시설인 드림랜드는 1980년 개장했다. 이후 1992년 민간투자 방식으로 기존 시설을 철거한 후 10종의 놀이시설을 재설치했다. 그리고 2002년 전주시가 시설을 기부채납 받아 민간업체에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설은 지난해 11월 운영이 중단됐다. 노후시설 고장에 따른 잇단 사고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드림랜드 현대화 사업’을 공약사업으로 역점 추진하고 있다. 기존 놀이시설을 동물원 인근 외곽부지로 확장 이전하는 사업으로, 올해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시행한다. 동물원 후문(남측) 주차장과 외곽 6만8600㎡ 부지에 놀이시설과 휴식공간을 새롭게 조성한다는 청사진이다. 기존 부지 면적에 비해 20배가 넘는 규모다. 시설 노후화로 젊은층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제한돼 있는데다 안전성 문제까지 부각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동물원 놀이시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확장 이전을 통한 현대화 사업은 일단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전주시가 620억 원 정도로 추산되는 막대한 사업비를 일시에 투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민간 투자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민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사업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변화를 예고한 전주동물원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당장 이번 어린이날이 걱정이다.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동물원을 찾은 우리 아이들이 크게 실망할 수 있어서다. 안전점검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무기한 휴장에 들어간 놀이시설은 이번 어린이날에도 운영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동물 폐사에 따른 입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기린 등 몇몇 인기 동물이 아예 사라지거나 개체수가 줄었다. 볼거리·즐길거리가 예년만 못하다. 또 동물원 곳곳에서 시설 신축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방문객들의 불편도 예상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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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5.01 11:34

존재감 없는 국회의원

여소야대 정국 하에서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총선이 1년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지만 지난 3년간 중앙정치무대에서 너무 존재감이 약했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을 정도로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 출마 당시만해도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것처럼 기세등등했지만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기대치에 밑돌고 있다. 유권자들은 표 찍어줘서 국회의원 당선시키는 것으로 할일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의정활동을 어떻게 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출석은 안빠지고 잘 했는지서부터 시작해서 법안 발의 횟수나 내용 그리고 대정부 질의, 국정감사를 잘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유권자 입장에서 이 같은 사항을 알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관심이 필요하다. 언론 보도내용을 통해 어느정도 파악은 되지만 거의가 보도자료를 통해 자화자찬 한 기사 내용이어서 잘 한다고 말하기는 그렇다. 태권도원을 무주로 유치할 당시만해도 무주가 명실상부한 태권도 성지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무주 태권도원이 민간자본과 국기원 등이 유치되지 않아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다. 태권도원이 성지로 발전하려면 먼저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인천공항서부터 태권도원까지 오는 길이 그리 순탄치 않다. 서울서 KTX나 SRT를 타고 대전에서 내려서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 경부고속도로 영동IC나 대진고속도로 덕유산 IC나 무주IC를 빠져 나와 2차선 도로를 진입해야하기 때문에 불편이 많다. 쉽게 말해 태권도원 진입도로가 2차선 구불길로 돼 있어 사고위험이 높다는 것. 태권도원 진입도로 4차선 확장 문제는 이곳에서 국회의원해서 국회의장과 총리를 한 정세균 전 의원이 해결 했어야 옳았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잘 나가고 영향력이 셀때 지역숙원사업을 마쳤어야 했다. 무주군은 무주 태권도원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태권도연맹 유치 신청도 안했다. 연맹유치는 직원숫자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대표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어 이번에 김포시를 제치고 유치에 성공한 춘천시는 깨춤을 추고 있을 정도로 축제판이다. 무주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로 태권도사관학교를 신설하겠다고 벼른다. 이 문제도 무주군 혼자 힘으로 어렵고 전북도가 함께 으쌰으쌰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북은 정치가 출신인 50대를 지사로 선출했다. 그간 강현욱 김완주 송하진 전지사가 행시 출신 행정가였는데 고시3관왕인 김지사는 국회의원을 두 번한 정치가다. 그는 전북에 도움 될 것 같으면 불원천리도 마다 않고 달려가는 열정을 보여왔다. 문제는 혼자 뛰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 내다보고 함께 지역발전을 이끌어야 갈 역량있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전문가 시대인 만큼 전문성 있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 운동권 출신이 국회의원 하던 때는 지났다. 경제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들이 내년에 국회로 진출해야 전북 몫을 찾아오면서 발전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4.30 17:46

갑질의 엇갈린 해법

지난 연말 떠들썩했던 도청 공무원 갑질과 관련해 문제의 핵심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피해자라도 공무원이 당한 경우와 가해자가 공무원인 행정 갑질의 사례는 천양지차다. 담당 부서의 문제 의식은 물론 업무 처리 속도와 해결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행정 갑질의 민간 피해자는 가해자가 소속된 행정 기관의 ‘깜깜이’ 조사에서 배제된 체 처분만 기다리며 무력감을 느낀다. 공무원이 당한 갑질에 대해선 노조가 조직적 위력을 통해 발빠르게 대처한 반면 그들 동료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행정 갑질은 노조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미온적으로 대응,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직장 내 갑질에 대한 후속 조치 일환으로 가해자 중징계 방침을 천명하고 예방 대책도 발표했다. 공무원 10명 중 7명은 직장 상사에게 갑질을 경험하고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까지 겪었다고 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갑질의 심각성에 비해 전북도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징계 수위 또한 들쭉날쭉하면서 ‘고무줄 잣대’ 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다. 2021년 도의회 갑질 파문으로 도청이 벌집 쑤신 듯 한바탕 난리를 겪은 뒤 직장 내 상사 갑질 사건까지 터져 심각성을 일깨워 줬다. 공무원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행정 갑질을 당하고도 하소연을 못하는 민간인의 속사정이다. 그들은 갑질 괴롭힘에 이어 수습 과정에서도 공직 사회의 두터운 벽을 실감하고 있다. 민원 제기를 해도 한 지붕 아래 선후배 관계 때문인지 사실 관계 규명에 소극적이고 시간 끌기 일쑤다. 지난해 12월 행정 갑질 논란으로 전보 조치된 도청 6급 공무원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도청 감사관실로 자료가 넘어왔음에도 늑장 업무 처리로 속만 태우고 있다. 억대 보조금을 주무르는 부서 지휘 체계로 볼 때 갑질 당사자와 ‘윗선’ 연계성 여부 조사를 포함해 경찰 수사까지 주목받는 상황이다. 직장 내 괴롭힘과 행정 갑질의 피해자는 ‘을’ 의 위치에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해자에게 한 번 찍히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인의 피해 사실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맞서기조차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이처럼 막다른 입장에 몰려 있지만 문제 해결 방식은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직장 내 피해자인 공무원은 노조 중심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에 반해 공무원이 가해자인 행정 갑질의 경우 노조가 쉽게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 그만큼 진상 규명이 터덕거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민간 피해자의 간절한 외침은 고립무원 상태에서 묻히기 마련이다. 노조가 앞장서 제 살을 도려낸다는 각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공직 사회 갑질은 다시 불거진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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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4.27 18:05

지역발전과 초대형행사 유치

군산 대야에서 김제 쪽으로 달리다 보면 다리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 엄청 낡고 눈길 끄는 게 옛 만경대교인 새창이다리다. 일제강점기 기존 가교의 안전 문제와 군산∼김제 간 수송상 편의를 위해 1933년 준공된 콘크리트교인데 넓은 평야지대에서 수확한 양곡을 일본으로 수탈하는 용도로 쓰였다. 교통량이 급증하고 다리가 너무 낡아 1998년 바로 옆에 새로운 만경대교가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됐다. 1933년 8월 4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성대한 만경교 낙성식이 거행됐고, 총공사비는 오만원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육상 도로뿐 아니라 비행기, 선박 등의 접근성 여부가 발전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곤한다. 극히 범위를 좁혀 최근 수십년간 전북에서 만들어진 도로나 주요 건물 등을 보면 거의 대부분 대형 행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철거를 시작한 전주종합경기장은 1963년 전국체전을 개최하기 위해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것이다. 무주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전초전 성격으로 1997년 무주-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하면서 만들어진게 바로 전주∼무주간 직선 도로이며, 전주시 서신동 일대 선수촌 아파트 역시 낙수효과라고 할 수 있다. 전북에서는 5월 아태마스터스대회, 8월 세계잼버리대회 등 제법 굵직한 대회가 잇따라 열리는데 세계잼버리대회는 사실 공항을 비롯한 인프라 확충을 위한 명분 쌓기용 성격이 짙었다. 코로나 여파라고는 하지만 아태마스터스대회의 경우 투자한 재원에 비해 지역사회에 얼마나 많은 경제적 파급효과나 인프라 확충을 가져왔는지는 좀 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듯 하다. 과거는 그렇다치고 문제는 지금부터다. 새만금 지역을 중심으로 전북이 앞으로 도약하려면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를 유치해야만 한다. 서울올림픽(’88)·인천아시안게임(‘14), 부산아시안게임(‘02)·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11), 광주유니버시아드(’15), 평창동계올림픽(’18) 등 각 권역에서는 앞다투어 국제종합경기대회를 개최했다. 국제종합경기대회 불모지로 남아있던 충청권마저 2027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공동유치를 해냈다. 심지어 광주시와 대구시는 ‘2038 하계아시안게임’ 공동 유치에 나섰다. 낮은 경제성으로 표류 중인 달빛내륙철도(광주 송정~서대구역) 추진을 위한 카드로 활용함은 물론이다. 구태여 2030년 세계엑스포 유치에 나선 부산시, 2036년 올림픽 유치에 나선 서울시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그간 대형 국제행사 유치, 개최 등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으로 공항·철도 등 SOC 건설에 나선 사례는 수없이 많다. 새만금 일대는 기업유치나 도시기반을 갖추는게 급선무이나 이를 위해서라도 대형 국제행사가 필요하다. 포장만 잘하면 새만금은 동북아에서도 상징성을 지닐 수 있기에 스포츠 분야에서 초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해 장기간 끌고 나가면 인프라 확충에도 탄력을 받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졸면 죽는다. 뭔가 저질러야 하나라도 건진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4.26 15:26

전통시장, 활용과 회생사이

”그날 밤 우리는 전주라는 큰 마을에 도착했었는데 이곳은 지난날 왕이 살던 곳으로서 지금은 전라도 관찰사가 주재하고 있었다 –중략- 전주는 바다로부터 하룻길이었지만 마을이 컸고 큰 장이 서고 있었다.“ 1668년에 간행된 <하멜표류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멜이 기록한 ‘큰 장’은 오늘의 남부시장이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도 남부시장의 풍경이 있다. ”미처 헤아려 챙길 사이도 없는 갖가지 물화들이 길 양편으로 쩍 벌여 내놓였는데 그 길이가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오릿길 행보를 꽉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잣거리 아래로 흘러가는 개천은 쪽빛으로 맑아서 길 위에선 저자가 물빛에 드리워 또한 오릿길 저자를 이루니 그 분주함이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당시 국가가 주도해 만든 시전은 서울의 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전주 같은 대형거점장에서도 열렸다. 호남권 최대 물류 집산지이자 교역의 중심으로서 전주의 기능은 8개의 도(道)가 13개로 개편되기 전까지 지속됐다. 남문(풍남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남문 밖 남문시장과 동문 밖 동문시장, 북문 밖 북문시장과 서문 밖 서문시장을 통해서다. 사람들은 이를 ‘남밖장’ ‘동밖장’식으로 불렀다. 남문시장인 남밖장이 지금의 남부시장이다. 전주시장의 중심이었던 남문시장은 1905년 정기 공설시장으로 개설됐다. 이후 일본 상인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몰려들면서 다른 장들은 쇠퇴하고 남문시장으로 통합됐다. 남문시장이 ‘남부시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36년 시장을 개축하면서다. 당시 개축된 규모는 5천 8백여 평. 지금보다도 컸다. 이용객들도 많아 일제강점기에 쓰인 <전주부사>에는 1년 동안 시장을 이용한 사람이 186만 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부시장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전북의 상업과 금융의 중심이었다. 전성기였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쌀을 사러 오는 상인들이 몰려 남부시장에서 전국 시세가 결정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상권은 오래전에 잠식당했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은 소멸했거나 살아남았다 해도 쇠퇴의 길에서 허덕이고 있다. 전주의 전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공간을 바꾸고, 서비스 환경을 새롭게 갖추는 등 회생을 위해 분투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게다가 새로운 기술과 편리성,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마트의 공세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전통시장 살리기 전략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돌아보니 전통시장을 관광자산으로 활용하는 자치단체가 많아졌다. 이들 사이에서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엇갈린다. 성공 사례는 지역과 그 시장만의 특성을 차별화한 경우가 많다. 전통시장을 살리는데는 좋은 선례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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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4.25 18:23

‘새만금 잼버리’와 한반도 평화

지구촌 청소년들의 축제인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3일로 ‘D-100일’을 맞았다. 새만금 세계잼버리(8월 1일~12일)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D-100일 기념행사’ 는 27일 전북도청에서 열린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행사를 1년 연기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새만금 잼버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지구촌 170여 개국에서 4만3000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할 예정이다. 지구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고, 새만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조직위원회는 ‘새만금이 세계 청소년들의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의 중심지, 더불어 사는 지구촌 평화운동의 거점, 행복한 가족 운동의 성장지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국제 청소년 행사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2017년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새만금 유치가 확정된 직후 조직위원회는 세계인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김윤덕 조직위원장은 “북한 청소년과 청소년 지도자들을 초청해 새만금이 민족 화합과 인류평화의 새로운 장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과연 북한이 참가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컸지만 기대도 있었다. 남과 북의 청소년들이 순수하게 만나 우애를 나누게 된다면 경색된 남북관계와 국제정세를 평화와 화해, 협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했고, 우리 정부의 제의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까지 성사됐다는 점에서 기대치는 조금씩 커졌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경색된 남북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아서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 때도 초청장을 보내면서 북한 청소년 참가에 공을 들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그나마 이번에는 계획단계에 그쳤으니 아쉬움이 더 크다. 조직위원회는 북한 청소년 초청 계획이 어긋나면서 한국스카우트연맹이 매년 개최해온 ‘평화통일 체험활동, 휴전선 155마일 횡단’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무산됐다. 이에 따라 조직위는 대안으로 우크라이나‧튀르키예 등 전쟁‧재난지역의 청소년, 그리고 국내 탈북 청소년 초청 프로젝트를 역점 추진하고 있다. 또 참가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유스포럼에서 지구촌 환경‧평화 실천 선언문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한반도와 지구촌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벤트로는 많이 부족하다. 새만금이 한반도와 지구촌의 미래를 위한 평화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기억될 수 있는 획기적인 평화통일 프로젝트가 아쉽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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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4.24 16:31

환골탈태해야 할 민주당

그간 3차례나 진보 대통령을 만든 호남인들은 민주당의 대선 경선과 당대표 경선 때 불거진 돈봉투 살포 의혹을 보면서 실망스럽다는 눈치다. "진보는 평등을 우선가치로 내세우면서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와 각종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간 대선 경선후보 선출 때나 당 대표 선출 때 돈을 살포했다는 사실이 특정인의 녹취록이나 공소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당의 존립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대선 경선 때 민주당 대의원과 진성당원 30%를 차지하는 호남지역의 표심장악을 위해 돈을 뿌려야 한다는 식으로 선거전략을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 지역 당원들은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민주투사들의 고귀한 넋과 희생정신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면서 "민주당 후보가 돈을 뿌려서 민심을 사려고 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법행위"라고 힐난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대선 경선을 앞둔 2021년 2월 호남지역 공략을 위해 20억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한테 요구하자 유 전직무대리는 지난해 4∼8월 천하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로부터 현금 8억4700만원을 건내 받고 김 부원장에게 최종적으로 6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이 대표가 여론조사 결과 선두를 달렸지만 호남 출신의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총리에 비해 호남지지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 호남내 지지세 확대를 위해 지지모임이나 연이어 발대식을 가졌다는 것. 검찰은 김 부원장이 이 대표 캠프에서 조직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점에 주목,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받은 돈 6억 원이 쓰인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이정근 사무부총장 녹취록에서 밝혀진 돈 봉투 살포의혹은 민주당이 수권정당 이라기 보다는 쩐의 정당 같다면서 실망한 사람이 많다. 송영길을 당 대표로 만들려고 윤관석 의원 이정근 사무부총장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 등이 9400만원의 현금을 10여명의 의원과 핵심조직원에게 나눠줬다는 것. 정성호 의원은 300만원은 식대수준의 돈으로 별것 아니다고 의미를 축소했다가 여론으로부터 거센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최근 조합장 선거에서 10만원만 받아도 구속된 마당에 엄청난 액수의 현금을 살포하고도 아무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짓밟는 처사라고 맹비난했다. 그간 각종 선거때마다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호남인들은 후보들이 선거 때마다 돈을 뿌린 것에 실망하면서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는 반응이다. 돈으로 표를 사서 대표가 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틀을 흔든 불법행위인 만큼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어물쩍하게 꼬리자르기식으로 넘기려 했다가는 유권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음참마속의 심정으로 돈선거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내 놓아야 한다. 민주당은 호남인의 자존심을 손상했기 때문에 먼저 각성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 그에 상응하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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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4.23 17:48

‘바가지’ 골프장의 그늘

지난 주말 중앙지 인터넷신문에 1면 톱으로 실린 ‘골프장 그늘집’ 의 역대급 바가지요금과 관련한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골프를 치다가 출출하면 중간에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는 쉼터다. 수도권 그늘집에서 먹는 음식값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임에도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어 이용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사례는 수도권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골프 동호인들 사이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그린피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얼마 전 도내서도 평소 15만 원 하던 골프장이 기습적으로 2만 원을 올려 눈총을 받고 있다. 이같은 ‘배짱 영업’ 은 한두 번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 국감서도 이 문제가 도마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10만 원 넘는 돈가스 탕수육은 물론 1000원대 막걸리를 1만 2000원에 팔거나 시중의 10배가 넘는 떡볶이를 통해 폭리를 취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재앙 수준의 코로나가 덮쳐 자영업 소상공인들은 지금도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골프장들은 유례없는 호황으로 사상 최고치 이익을 냈다. 코로나 비상 조치로 다중집합시설 방문은커녕 해외여행도 막히자 사람들은 청정 지역으로 인식된 골프장으로 몰렸다. 젊은 MZ세대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며 지난해 전국 501개 골프장 방문객이 4천673만 명으로 전년 대비 12% 늘었다. 골프 인구도 515만 명으로 1년 새 46만 명이 급증했다. 코로나 특수에 따른 영업 이익도 평균 54% 늘어난 건 물론이다. 여기에다 개별소비세와 부가세까지 면제받아 ‘황금알을 낳는 거위’ 로 불릴 정도다. 코로나가 서서히 풀리는 데도 여전히 북새통을 이루자 고질적인 부킹 전쟁과 가격 상승의 문제점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해외 골프도 점차 늘고 젊은 층 일부는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발길을 끊었는데도 호황 모드는 꺾일 줄 모른다. 골프장들은 그런 점을 틈 타 코로나 때도 대중 골프장 그린피를 평균 20% 인상하고. 카트 사용료와 캐디피도 1만∼2만 원씩 올렸다. 뿐만 아니라 부수입 또한 알뜰하게 챙겨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샤워 시설 이용이 불가능해지자 이에 따른 수도세, 전기세, 인건비까지 아꼈다. 이렇게 코로나 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도 이용객에 대한 서비스 질은 떨어졌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부킹 갑질, 비싼 음식값과 함께 직원 불친절, 잔디 부실 관리는 단골 지적 사항이다. 단체 예약 콜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임박해서 OK 사인을 보내 낭패보기 일쑤다 1인당 20만 원이 넘는 골프 비용이 부담스러워 점심은 골프장 외곽 식당에서 대충 때우기도 한다. 그만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상황에서 또다시 그린피를 올리는 건 고객을 ‘봉’ 으로만 여기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코로나의 혹독한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최대 호황기를 노려 장삿속 주판알만 튕긴 셈이다. 불만이 가득찬 이용객들의 부메랑이 우려된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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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4.20 18:24

정주영의 5백원 지폐와 새만금

며칠 전 햇감자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던 김제시 광활면(廣活面)은 김제에서도 가장 서쪽에 있는 곳이다. 이름만 봐서는 막힌 데가 없이 매우 넓을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작은 면이다. 1920년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에 의해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면 전역이 간척사업으로 생겨났다. 쌀이 넘쳐나는데 구태여 무슨 간척사업을 했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 반만년 동안 굶주렸던 일반 서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간척사업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나라 전체 농지 중 간척농지는 무려 11만 2000ha(1120㎢)로 서울시의 두배에 달한다. 이는 전체 농경지의 7%가 넘는 수치다. 피땀을 흘려 조금씩 농경지를 늘려간 것이 최근 100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과정에서 정치공학적으로 시작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새만금간척사업도 어쨋든 처음엔 전체를 농경지로 쓸 예정이었다. 이후 계획을 변경해 30%만 농경지로 사용하고 70%는 산업단지나 관광단지 등으로 활용키로 했다. 간척사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서산에 있는 천수만 간척지다. 당시 7.7㎞에 달하는 방조제를 쌓던 중 9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 초당 8m의 거센 조류 때문에 승용차 크기만 한 커다란 돌을 퍼부어도 물살을 버텨내지 못했다. 고심하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을 생각해냈는데 고철로 쓰기 위해 들여온 대형 유조선(23만t)을 방조제 구간에 가라앉히는 공법이었다. 소위 정주영 공법인데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에도 소개됐다. 정경유착 등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으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도전정신은 조선소 건설 때 최고조에 달한다. 조선소를 짓기위해 영국 최고 은행이던 바클레이은행과 큰 금액의 차관도입을 협의했는데 은행측은 손사래를 저었다. 이에 정 회장은 1971년 9월 바클레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인 애플도어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 또한 고개를 가로젓자 정 회장은 지갑에서 지폐 한장을 꺼내 들었다. 거북선 그림이 그려져있던 500원짜리 지폐였다. 400년전 이미 정교한 큰 배를 만든 경험이 있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추천서를 받아낸 정 회장은 차관도입을 통해 2년여만에 조선소를 완공해낸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새만금사업이 요즘 산업생태계의 메카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지난 8년간 100만평에 불과했던 산업단지 분양면적이 최근 1년동안에 무려 120만평이 매각됐다고 한다. 산업단지의 경우 전체 9개공구 약 540만평중 1, 2, 5, 6단지가 사실상 분양완료되고 3, 4, 7, 8지구 약 300만평은 빨라야 향후 2년후부터나 공급 가능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지금까지 33년 계속된 새만금사업이 개발완료되려면 앞으로도 20년 남짓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차전지 특화단지는 도약의 첫 걸음인데 향후 정주영의 500원 지폐로 상징되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된 글로벌 회사들이 새만금지역으로 몰려올 날도 이젠 머지않아 보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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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4.19 15:35

세계유산 되는 혁명의 역사

동학농민혁명 역사 복원은 2004년 제정된 ‘동학농민혁명군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시작이다. 특별법 제정의 의미와 성과는 적지 않았다. 진실이 왜곡된 갑오년 역사 위에 ‘역도’의 오명을 쓰고 숨죽여 묻혀 있던 농민군들에게는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고, 기념관과 기념탑 건립 등 역사조명 사업이 힘을 얻게 되었으며 혁명의 진원지인 전북을 중심으로 치중되었던 동학농민혁명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특별법 제정으로 기대되었던 농민군의 명예회복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특별법으로 출범한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5년여 동안의 활동으로 찾아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3,644명. 이들은 유족 10,563명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발굴되지 않은 참여자는 더 있었다. 2009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나섰다. 2010년부터 찾아낸 참여자만도 3백 명이 넘었다. 다행히 2018년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다시 출범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위탁된 이 위원회 활동으로 참여자 발굴이 이어져 지금은 3,745명 참여자와 12,962명 유족이 이름을 올렸다. 2019년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국가기념일(5월 11일)로 제정됐다. 왜곡됐던 역사의 면모를 바로 세울 수 있는 통로가 더욱 확장되는 계기였다. 유적지 발굴과 보존, 세계혁명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연구작업 등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이 더 절실한 과제로 안겼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그 하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4·19혁명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두 기록물의 최종 등재 승인은 5월 10일부터 열리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결정되지만 등재권고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없어 사실상 등재가 확실시 된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등재는 2015년부터 추진해온 일이다. 탈락과 재신청 과정을 거쳐 ‘등재권고’ 판정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1894년과 1895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 185건이다. 농민군과 정부나 관이 생산한 것들이다. <사발통문>은 물론 참여자들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갑오년 상황을 기록한 유생들의 글도 망라됐다. 참여자 편지는 유족이 숨겨 지켜온 덕분에 살아나 빛을 본 결실이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세계유산 등재는 그 의미가 크다. 세계적인 기록물이 된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이 역사를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세계사의 노정에 들어선 동학농민혁명 역사가 자랑스럽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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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4.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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