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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주 지사님은 남은 2년 마무리 잘 하시고, 최규성 김춘진의원 두 분은 아름다운 경선을 하시기 바랍니다." 김영기 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가 '후원 주막'이 열린 지난 23일 건배를 제의하면서 언급한 내용이다. '후원 주막'은 회포를 풀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참여자치전북연대가 마련한 행사다. 23·24일 이틀 동안 전주 서신동 KT사무실 직원 식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회원과 시민, 초청인사 등 200여명이 참여했고 김완주 지사와 최규성 김춘진 의원, 민주당 전북도당 당직자들이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건배사 내용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문제될 게 없다. 당연하고도 의례적인 수사(修辭)일 수 있다. 하지만 깊고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건 "당신이 약속한 대로 차기 선거는 출마하지 말라."는 뜻이다. 최·김 두 국회의원한테 아름다운 경선을 하라고 부탁까지 했으니 김완주 지사가 듣기에는 아주 고약한 내용이겠다. 축하하러 온 김 지사를 두고 김 대표가 작심한 듯 발언한 데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일자 전북일보 칼럼('전주·완주 통합의 불편한 정치적 진실')에서 "김완주 지사는 재선 초기 참여자치연대와의 간담회에서 차기 선거 불출마를 공언했다."고 썼다. "통합논의를 전북도가 주도하고 있는 이상 정치적인 숨통을 전북도가 풀어주어야 하고, 통합이 성공할려면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며 김 지사의 불출마 발언을 소개했다. 그런데 김 지사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간담회 자리도 불출마 얘기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김 대표가 건배사에서 맞받아 친 것이다. 한가지 팩트(사실)를 두고 이렇듯 다른 주장이 나오니 귀신 곡할 노릇이다. 과거에도 불출마 논란은 있었다. 재선 당선 뒤 인사차 들른 원로한테 "차기 선거 불출마 뜻을 피력했다."는 이야기가 나돈 적도 있다. 측근 주요 자리 배치 인사를 놓고는 "다음 선거에는 뜻이 없는 모양"이라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어쨌건, 시중에는 김 지사가 3선에 도전할 것이냐, 마느냐가 화두로 던져져 있다. 선거는 2014년인데 벌써부터 불출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은 어쩔 수 없지만 누구 말이 옳은지 진실은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경재 논설위원
스포츠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헬스 등 기계와 함께 하는 운동이다. 바로 윗 단계는 자연과 더불어 하는 운동이다. 골프가 이에 해당한다. 그 위는 승마처럼 동물과 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맨 윗단계는 남녀가 밤에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누가 웃자고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꽤 그럴듯하다.실제로 국민소득의 변화에 따라 국민들의 레저 형태도 변화해 왔다. 레저업계에서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으면 테니스, 1만5000 달러는 골프, 2만 달러는 승마, 2만5000 달러 시대는 요트가 대중화 된다고 보는 게 통설이다. 한 때 테니스가 귀족 스포였던 때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해서 인지 요즘 승마가 각광받고 있다. 한국마사회(KRA) 조사에 따르면 2010년 1월부터 9월까지 한 번이라도 말을 타 본 사람은 66만2200여 명이었다. 어림잡아 1년에 90만 명 쯤 승마를 즐긴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승마장도 지난 해 9월 말까지 330개로 늘어났다. 이제 승마도 '귀족 레포츠'에서'생활 승마'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승마는 남성보다 여성이 즐겨한다. 여성은 생리적 특성상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골격이 약화되고 비만해지기 쉽다. 이러한 시기에 승마는 전신 운동을 통해 허리 운동 및 유연성을 향상시킨다. 또 바른 자세를 통해 어긋나 있는 뼈가 제자리를 찾고 골반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스포츠로 즐기기도 하지만 재활승마로의 역할이 크다. 중년 남성들의 말 못하는 고민 1위인 전립선염에 좋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말을 타면 전립선과 좌골 등에 마사지 효과가 커, 자신감 넘치는 신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정부에서도 2011년 2월 '말 산업 육성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전국 자치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말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원조격으로 전국 2만8000여 마리의 77%를 육성하는 제주도를 필두로 경북 영천과 구미 상주, 충남 홍성, 경기도 화성, 강원 정선, 전북 장수 등이 그러하다. 농촌진흥청은 여기에 더해 말고기 산업을 농촌의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키로 했다. 육용마를 키워 소비자에게 고품질의 말고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해 4월 지식경제부로 부터 '말 레저 특구'로 지정된 장수군도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미디어아트(매체예술)'가 대세다.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미디어아트는 이제 문화예술현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여수엑스포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 모든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이러한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을 주목해 지역 발전 동력으로 삼은 도시가 있다. 독일 서남부의 도시 칼스루에다.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칼스루에의 인구는 30만 명. 이 중소도시에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규모의 미디어아트센터가 있다. ZKM(Zentrum fur Kunst und Medientechnologie)이다. 현대미술관과 미디엄 뮤지엄, 미디어 도서관과 미디어 극장, 음악 스튜디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ZKM은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 아트센터다. 미술가 조각가 음악가가 실제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공간 뿐 아니라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놓아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의 전신이 탄약공장이라는 사실이다. 칼스루에는 정보과학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헤르츠'라는 단위를 만들어낸 하인리 헤르츠가 칼스루에 대학 출신이다. 정보과학에 대한 개념 역시 50년대 칼스루에를 중심으로 정리됐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정도다. 칼스루에시는 그런 도시의 전통을 기반으로 이 분야의 많은 아이디어를 과학자 뿐 아니라 예술가, 주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전략을 모색했다. 정보 통신, 방송시설, 문화예술 영역을 통합해 발전시키는 정책 역시 그러한 전략으로부터 나왔는데, 그 결실이 바로 미디어아트센터 설립이었다. 1985년 시의 기획과 칼스루에 미술대학의 공동연구로 시작된 미디어아트센터는 미래지향적인 기능과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적 건축으로 환경친화적인 건물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초 건설 후보지는 중앙역 옆의 빈터. 파리와 프라하를 잇는 철도와 함부르크와 이탈리아를 잇는 철도가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칼스루에의 지리적 장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국제 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건축가 램 콜하우스의 설계안이 당선됐지만 막대한 예산문제에 부딪혔다. 이때 제안 된 곳이 탄약공장이다. 비어있는 동안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던 탄약공장을 미디어아트센터로 바꾸는 작업은 시민들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칼스루에는 오늘날 미디어아트를 이끄는 세계적인 도시가 됐다. 이 도시의 탁월한 선택이 가져온 성과다.
농촌지역 양극화 문제가 도시보다 더 심각해지는 것으로 드러나 전통적인 농촌공동체의 붕괴가 우려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2일 발표한 '농촌사회의 양극화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농촌의 소득 하위 20% 계층에 비해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2005년 9.6배에서 2010년 12.1배로 확대됐다. 도시가구의 경우 2005년 5.4배에서 2010년 7.1배로 확대되는데 그쳤다. 도시보다 농촌의 소득 양극화가 5년 전에 비해 더욱 크게 벌어진 것이다. 특히 농촌은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과 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농촌사회의 심각성이 크다. 교육의 경우 농촌주민 중 중졸이하의 저학력자 비중이 50%에 달해 도시의 22%보다 배 이상 높았다. 농촌주민들은 병을 앓고 있는 인구비율(유병률)도 2010년 25.3%로, 도시주민 19.7%보다 높았다. 농촌 주민들 역시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소득에 대해 양극화 인식은 전체의 58.3%로 나타났으며 고용 부문 55.1%, 교육 부문 41.4%, 건강 부문 36.5%, 사회참여 부문 46.9% 등 이었다.이처럼 농촌지역의 양극화 문제는 농촌인구의 고령화와 다문화·조손가정 증가, 도시 은퇴자들의 귀농 귀촌 등이 늘어남에 따라 농촌사회의 동질성이 점차 약화되면서 양극화가 심각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그동안 추진해 온 농촌개발이 공동체 회복과 사회적 경제보다는 지나치게 시장논리만을 강조하면서 이 같은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사실 우리 전통적인 농촌사회는 두레나 품앗이, 향약과 계(契) 등 서로 돕고 도와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미풍양속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이농현상과 농촌의 피폐화로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고 소득 불균형과 함께 인심마저 각박해지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농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농촌의 기초 소득보장과 일자리 기회 확대, 정부 정책자금의 형평 지원 등이 요구된다. 또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의료서비스 확대와 학교 교육여건 개선, 주거 및 기초생활여건 충족, 취약계층 복지 강화도 필요하다. 그동안 산업위주 국가정책으로 상대적 희생을 강요당한 농촌의 복원을 위해선 절대 규모의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선 안된다.
올 대선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4.11 총선에서 당초 예상을 깨고 여대야소가 만들어졌지만 아직 어느당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단언키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남았다. 의석수를 놓고 볼때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통합당이 총선때 수도권서 이겨 놓아 그 누구도 속단하기가 빠르다. 하지만 총선을 승리로 이끈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여론 조사에서 계속 1위를 달려와 유리한 국면은 만들었다. 7명의 국회의원을 신진들로 대거 갈아 치운 전북의 속사정도 그리 간단치 않다. 정동영이 강남을서 패한 바람에 당내 입지가 좁혀지면서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졌고 종로서 홍사덕을 꺾고 5선이 된 정세균도 지지도가 뜨질 않아 속 태우고 있다. 도내 두명의 중진들이 대권주자로서 역할 보다는 오히려 킹메이커로 그칠 공산이 짙은 것 아니냐는 여론이 생겨났다. 이미 상당수 핵심들이 김두관 경남지사쪽과 문재인 상임고문쪽으로 줄 서 있다.여기에 호남에서 젊은층의 지지도가 높은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출마 여부다. 안교수의 아버지가 "아들이 민주당에 입당해서 경선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지만 박원순씨가 서울시장 되는 방식을 답습하거나 아니면 무당층을 결집해서 나가더라도 다음달 중에는 출사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안교수는 박근혜 위원장과 1대1 구도를 이뤘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도민들은 지난번 정동영후보 대선 출마 때에 비해 차분하다. 아직 여야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럴 수 있지만 도내 출신의 대권주자 지지도가 너무 낮아 큰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연말 대선이 한국 사회의 정치판 즉 지방권력까지도 확 바꿔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전북 정치인들의 약진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새누리당으로 정권이 승계되면 지지율 여하에 따라 또다시 고난이 이어질 수 있다.아무튼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전주·완주 통합과 바짝 도민들의 삶의 질을 챙기고 나선 김완주지사의 3선 출마 여부도 연말 대선과 맞물려 있다. 너무 오랫동안 단체장을 해온 그를 도민들이 그 때가서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가 중요하다. 그게 여론의 힘이기 때문이다./백성일주필
서민이란 일반적으로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재산의 정도를 기준으로 서민을 측정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재산은 2011년 기준 2억9765만 원이다. 통계청이 전국 1만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가계금융 조사를 벌인 결과다. 중위 값은 1억5926만원, 중위 부채는 3천80만원이다. 단순 계산하면 중위 값에서 부채를 뺀 1억3천만원 정도가 중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순 재산 총액이 1억3천만원 이하의 가구라면 서민이라고 불러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긴 강남에서 십 몇억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어도 자기는 서민이라고 우기는 이도 있긴 하지만. 서민들의 가장 커다란 꿈은 내집 마련이다. 과거 주택공사가 영구임대, 20년 장기임대 아파트 등을 지어 분양했다. 주택공급을 늘리고 서민들도 내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업성보다는 공공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적자 폭이 늘 수 밖에 없다. 2009년 10월 출범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빚이 지금 300조에 이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공 빚이 대부분이다. 택지와 주택 공급을 전담하는 공기업으로선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적 기능수행이 우선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지금 LH가 고분양가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전주 효자5지구 보금자리 아파트(560가구) 분양가가 3.3㎡당 719만~730만원이었다. 아파트 한 채 값이 2억4000만원에 이른다면 무주택 서민하고는 거리가 멀다. 주변 시세를 반영해 경제적 여유 있는 계층을 노렸다면 전주시민을 '봉'으로 삼은 셈이다. 하지만 고분양가 논란 속에 수십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 건 아이러니다. 지방의회와 시민단체 등이 벌떼 같이 일어나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분양가를 인하하지 않으면 LH사업 인허가를 못해주겠다고 공문까지 보낸 전북도의 처사는 성급했다. 소탐대실 행위일 수 있다. LH는 빚 때문에 임대아파트 사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정부 요구 때문에 마지못해 한다. 도내 시군은 물론 전국의 지역들이 임대아파트 건설 로비를 벌이는 판인데 그런 공문이나 보낸다면 사업을 축소할 명분을 줄 수 있다. LH의 전북맨들은 실리를 챙겨야 할 전북도가 똥 오줌을 가리지 못한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경재 논설위원
"금강(錦江)…. 높이 솟구친 갈재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 놈이 조치원을 지나면 거기서 비로서 오래두고 찾던 남쪽 줄기와 마주 만난다.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 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예서부터가 옳게 금강이다. 형은 서서남으로 빗밋이 충청 전라 양도의 접경을 골타고 흐른다. 이로 부터서 물은 조수까지 휩쓸려 더욱 흐리나 그득하니 벅차고 강넓이가 훨씬 퍼진 게 제법 양양하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난 작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첫 머리다. 중간 중간 떼어 길게 인용한 것은 남한에서 세번째 긴 금강을 잘 표현한 압권이기 때문이다.당서(唐書)에 금강은 웅진강(熊津江)이라 기록하고 있다. 금(錦)은 원어 곰(熊)의 사음(寫音)이다. 금강은 3개의 큰 담수호를 품고 있다. 1980년 대전의 신탄진 부근에 건설한 대청댐과 2001년 진안에 들어선 용담댐, 그리고 1990년 완공한 금강하구둑이 그것이다. 이 중 금강하구둑은 충남 서천군 마서면과 전북 군산시 성산면을 연결하는 1841m의 방조제와 20개의 배수갑문으로 되어 있다. 수자원 확보와 금강 상류지역의 홍수조절, 염해 방지, 관광개발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총 저수량은 1억3800만 톤이며 전북과 충남에 연간 3억4000만 톤의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덕분에 뱃길로 오가던 군산-서천간 교통이 개선됐고 관광산업 발전 효과도 크다. 그런데 최근 전북과 충남 사이에 갈등이 일고 있다. 서천군이 2009년부터 서천측 하구둑 인근에 80만톤의 토사가 쌓여 수질이 나빠지고 생태계가 훼손됐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하구둑 일부 200m쯤을 철거해 기수역(汽水域·강물과 바닷물이 접하는 지역)을 복원하자는 주장이다. 이같은 해수유통에 대해 군산 익산 김제시 등은 농공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고 저지대 침수 피해가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용역실시 결과도 부정적이다.그러자 충남도는 영산강 낙동강지역 자치단체와 3대강 해수유통협의회를 구성, 대선공약으로 추진할 움직임이다. 물 분쟁이 이웃간 선린관계를 해치지 않았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년경). 그의 이름을 들어본 독자 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무주 최 씨로 알려진 최북은 조선후기에 활동했던 직업 화가다. 타고난 재능과 남다른 개성으로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렸던 그는 조선 후기 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 종횡무진 하는 필치로 주목 받았던 그는 전통화풍으로서 뿐 아니라 당대에 유행했던 한국 진경화풍에도 빼어난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생애를 온전히 알 수 있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최북의 이야기는 그의 예술세계를 흠모한 옛사람들의 평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기인다운 일화가 적지 않다. '정열화가'라거나 '기행화가' '광화사' 등으로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일화가 바탕이다. 그의 기인적 행적은 그가 '외눈화가'가 된 사연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난하고 내놓을 것 없는 가문출신이었던 그는 직업화가로서 오로지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해야했다. 붓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먹고사는 일보다 화가로서의 자존감을 굳게 지켰다. 그는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자신의 한 눈을 찔러 멀게 했다. 이밖에도 전해지는 그의 기행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한 시대, 기행을 일삼으며 재능만을 과시하다 떠난 화가가 아니다. 대부분 작품들은 시와 글에도 깊이 있는 세계를 섭렵했던 지식인으로서의 최북을 보여준다. '못 그리는 것 없는 조선 최고의 화가' 최북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시회다. 올해는 최북 탄생 300년이 되는 해. 박물관은 연대기적 의미를 기념해 '최북'을 초대했다. 그동안에도 그의 전시회가 있긴 했지만 소품 위주로 공개되었을 뿐 이처럼 본격적인 전시는 처음이다. 전주박물관은 이 전시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전국의 10여개 기관에서 유물을 빌려왔다. 그중에는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도 있다. 이 전시회의 기획의미나 과정의 노고를 감안하면 오랜 시간 전시되는 것이 마땅한데, 아쉽게도 이 전시는 6월 17일에 끝난다. 유물 대여기간이 6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글에 '알기만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한 시대를 치열한 예술적 열정으로 살다간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 고추장의 대명사격인 순창고추장이 지역 생산농가의 소득향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이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 따르면 순창에 13개 고추장 공장이 있는데 연간 매출이 3000억원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은 375명, 한 사람이 8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제조업 평균 4억5000만원 보다 배 가까이 높다. 반면 가내수공업 형태로 만드는 순창지역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 72곳의 매출은 모두 합해서 400억원 정도. 일하는 사람은 300명 정도다. 한 농가당 평균 매출액은 5억5500만원으로, 고추장 공장의 한사람 매출에도 못 미친다. 순창고추장이 식품 대기업에 의해 잠식당하면서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들이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순창고추장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생산농가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이원재 소장은 이를 빗대어 "순창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고추장 생산농가의 생산성은 대기업 공장의 6분의 1 수준도 안된다. 고용 인원은 많지만 생산성은 뒤떨어지니 가격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기업 고추장 공장들이 순창지역에 들어서면서 지역 농산물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늬만 순창고추장일 뿐 순창에서 생산되는 고추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값싼 중국산이 순창고추장으로 포장되고 있는 사실을 다수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농진청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부지런히 일해서 농사를 지으면 돈은 식품회사가 다 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식품회사들은 대형 회사들로, 자기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투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문했다. 어렵게 전통을 지켜 온 순창고추장의 명성을 이용해서 손쉽게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대기업들이 지역과 농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관료들도 기업유치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기업의 탐욕과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표본이 순창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국제영화제를 성공리에 마친 전주시의 이름 값이 모처럼만에 높아지게 됐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가 전주시를 국내 첫번째 음식창의도시로 15일 지정했기 때문이다. 2004년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시작된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사업'은 문학·디자인·음악·음식·민속예술·영화·미디어아트 등 7개 분야로 구성돼 있다. 음식분야에는 콜롬비아의 포파얀, 중국의 청두,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 등 3개 도시가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이 디자인으로 경기도 이천이 민속공예로 지정됐다.전주시는 유네스코 음식 창의도시로 명명돼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름 값이 하룻 밤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어 음식이라는 전주의 브랜드 가치를 높혔고 세계적으로 홍보가 이뤄지게 됐다. 민선 자치시대들어 전주시가 꾸준히 한스타일 문화 사업을 벌여온 결과가 이제야 결실을 본 것이다. 일찍이 한지· 한식·한옥·한복·한글로 대표되는 한스타일 사업을 전주시가 도시컨셉으로 잡고 뛰어든 성과물이다. 전통문화가 돈 된다는 사실을 전주시가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다.이번에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주가 한국 전통음식이 가장 잘 보존돼 있고 전통을 이어온 가정 음식이 잘 발달된 점 때문이었다. 여기에 전주비빔밥축제나 국제발효식품엑스포 등을 개최해오면서 전주 음식의 저변 확대가 잘 이뤄진 점이 꼽혔다. 글로벌시대에 전주 음식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그간 맛과 멋의 고장이라는 한국적 이미지를 이제는 세계인을 상대로 뽐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전주시가 전통의 매력을 지녀 경쟁력을 확보했다. 음식 맛은 신뢰여서 음식점들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창의도시 지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전주시가 음식 창의도시로 지정돼 도시 브랜드 가치가 한층 높아졌다. 도시의 이름 값은 경쟁력이다. 요즘 전주 완주 통합이 이슈다. 전주서는 찬성자가 많고 완주군에서 예전 같지는 않아도 반대가 있지만 브랜드 가치면에서 볼 때 전주 완주를 통합하는게 더 큰 이익이 생길 수 있다. 글로벌시대에 완주군이라는 이름 갖고서는 국내외적으로 한계가 있다. 전주 완주가 통합되면 완주군도 전주시의 브랜드 가치를 함께 나눠 가질 수 있다./백성일 주필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1958년 당시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현 RCY) 단원들이 세계적십자의 날(5월8일)을 맞아 병중에 있는 전· 현직 교사들을 방문해 봉사활동했던 것이 배경이다. 선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은사의 날'을 정했고 1963년 10월 서울과, 1964년 4월 전주에서 RCY 각도 대표가 모여 사은행사를 갖기로 결정했다. 이듬해엔 명칭을 '스승의 날'로, 날짜는 5월26일로 바꿨다. 65년 4월에는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바꿨다. 정부는 73년 스승의 날을 폐지했지만 한국교총 등이 강력하게 건의해 9년만인 82년 국가지정 기념일로 정식 선포됐다. 오늘 스승의 날 31주년을 맞게 된 연유다. 우여곡절 끝에 스승의 날이 탄생했지만 이 날을 맞는 스승의 감회는 착잡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교권 침해와 추락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직장인'이 돼 가고 있는 교육자들이 많다. 유능한 교사들이 명퇴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교권은 안중에도 없이 학생인권만 외치는 일부 사회풍토도 스승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총이 전국 교원 32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인식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교직에 대한 만족도 및 사기가 최근 1∼2년간 어떻게 변화했느냐'는 질문에 81%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4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그 이유로는 '학생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29.8%로 가장 높았다.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부모의 태도'(22.6%), '교직에 대한 사회적 비난'(21.1%), '학생교과지도 및 잡무의 어려움'(14.0%) 순이었다. 명퇴 원인으로는 '교육환경 변화'(94.9%)가 가장 많았고, 교육환경 변화로는 '학생인권조례 추진 등으로 학생지도의 어려움 및 교권추락 현상'(70.7%)을 가장 높게 꼽았다.교직만족도와 사기가 이런 데도 우리 사회는 교육자들한테 페스탈로치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교권 없이는 제대로 된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가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질은 결코 교원의 능력을 능가할 수 없는 법이다. '교사는 있지만 스승은 없다'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왜 존경받는 스승이 사라지고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할 일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한번쯤 우리사회가 던지고 대답해야 할 화두다. /이경재 논설위원
지운(遲耘) 김철수(1893-1986)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사회주의자(빨갱이)라는 이유로 평생 남한 공안당국의 감시대상 1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 민족적인 성향 때문에 북한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초창기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었고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에 노력한 공산당 최고 원로였다. 2005년 광복 60년을 맞아 뒤늦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부안군 백산면 출신인 지운은 군산 금호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닌 엘리트 지식인이었다. 일본과 러시아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코민테른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으며 1926년 제3차 조선공산당(일명 ML당) 결성시 책임비서를 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차례에 걸쳐 1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해방 후에는 좌익과 우익의 가교역할을 자임했고 이승만-박헌영 회담을 추진하는 등 통일정부 수립에 노력했다. 하지만 극심한 죄우익 세력다툼과 박헌영과의 노선투쟁, 여운형의 암살 등에 환멸을 느껴 1947년 낙향했다. 선영 옆에 움막을 짓고 꽃과 나무를 벗하며 살았다. 가난이 멍에처럼 따라 붙었으나 이승만 정부 때 입각제의를 받고 친일파와 함께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거물급 사회주의자였기에 그의 활동은 주목되는 바 컸다. 그는 해방 직후 조직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7인의 전형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예비내각은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여운형, 김규식 외무, 김구 내무, 허헌 법무, 김성수 문교, 김일성 군사위원장' 등이어서 흥미롭다. 또 오늘날 중국의 대부 모택동과는 1921년 4월 상해에서 신우회(新友會) 결성시 만났다. 두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해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고 동갑이어서 친했다고 한다. 또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대한애국부인회 김마리아와의 동지적인 애틋한 사랑은 그가 로맨티스트였음을 보여준다. 그는 허백련 오지호 등 예술인과 교류했고 서예도 수준급이었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지운의 글씨를 모은 회고전이 끝났다. 모택동 사망시 지은 만사(輓詞)와 1935년 서대문형무소 중병자 감방에서 지은 시 '달도 하얗고, 국화도 하얗고, 내 마음도 하얗다(月白鞠白 我心白)' 등이 전시되었다. 최근 통합진보당 등 진보진영의 한없는 도덕적 추락을 보며 한국 사회주의의 새벽을 열었던 지운의 청교도적 삶을 돌아보게 된다. /조상진 논설위원
2012여수세계박람회(EXPO)가 내일(12일) 개막한다. 지난 1997년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니 준비해온지 15년만이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꼽힌다.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박람회는 1851년 영국에서 개최된 '수정궁(Crystal Palace) 만국산업박람회'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성공으로 최대 공업국가로 성장했다. 자연히 각 국가와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덕분에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되고 문화가 양산되었다. 엑스포는 영국의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탄생됐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엑스포 개최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행사의 질적저하와 참여국과 개최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국제박람회기구(BIE)다. 1928년 파리에서 설립된 'BIE'는 박람회의 개최지를 결정하고 개최 및 참가에 따른 각종 기준을 설정해 박람회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기념비적 건축물과 기술력을 통해 각 국가마다의 국력을 과시하는 성격으로 시작된 엑스포는 그동안 새로운 발명과 성과를 통해 세계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전화기(1876년 뉴욕박람회) 상용자동차(1885년 앤트워프박람회) 비행기구(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 텔레비전(1939년 뉴욕박람회)도 모두 엑스포를 계기로 출시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엑스포는 단순히 과학 기술 발전의 기폭제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엑스포는 평화로운 발전과 화합·공존이라는 개념을 전파하고 다양한 문명·문화를 교류하는 세계 화합의 장이다. 특히 매스미디어 시대인 오늘날에는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고 세계인의 주목을 환기시키는, 대중외교의 장으로서의 기능이 더 돋보인다. BIE가 공인하는 세계박람회는 두 가지. 광범위한 주제를 갖고 전시면적에 제한 없이 참가국이 자비로 국가관을 짓는 '등록박람회(Register ed Exhibitions)'와 특화한 주제로 전시면적이 25만㎡ 이하인 곳에서 전시기간이 3개월 이하로 제한되는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 ions)'다. 여수엑스포는 '인정박람회'다. 8월 12일까지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The Li ving Ocean and Coast)'을 주제로 열리는 여수엑스포에는 105개국이 참가한다.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는 당초 800만 명으로 예상했던 관람객을 1000만여 명으로 높여 잡았다. 생산유발 12조2000억 원에 일자리 7만8800개 창출의 부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여수엑스포의 성공을 바란다.
전북 도민들의 염원을 모아 추진했던 프로야구 10구단이 또 다시 무산됐다. 그제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선 "10개 구단으로 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맞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심층 검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기약 없이 뒤로 미뤘다. 그러면서 KBO 이사회는 10구단 창단과 관련한 사안을 실행위원회로 다시 떠넘겼다. 서로 핑퐁 치듯 10구단 창단 안건이 이사회와 실행위를 오락가락 하면서 시간만 축내고 있다.이 같은 KBO 행태에 속 터지는 것은 10구단 유치에 나선 전북과 수원이다. 가타부타 결론을 내려야 자치단체도 행정력을 허비하지 않을텐데 엉거주춤한 상태로 KBO 처분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실망감에 빠진 시민들의 추진 열기도 시들고 연고 기업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창단 의지가 있을 때 추진해야지 자꾸 늦춰지다 보면 기업의 상황과 여건이 바뀔 수 있고 그럴 경우 기업이 발을 뺄 가능성도 높다.사실 10구단 문제가 겉돌고 있는 것은 기존 구단의 탐욕 때문이다. 커지는 프로야구 시장의 파이를 9구단에 이어 10구단에 까지 나눠주기는 싫다는 심산이다. 그래서 제9구단 NC 다이노스 창단 때도 일부 구단이 반대했었고 이번 10구단 문제도 형식적인 논의만 하고 결정은 뒤로 미룬 연유이다. 하지만 당초 NC 다이노스의 내년 1군 진입을 반대했던 구단들은 "기형적인 홀수구단 체제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홀수구단 체제로 그냥 가겠다는 입장이다. 논리도 명분도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각 구단의 야구감독들도 홀수구단 체제에 껄그러운 입장이다. 홀수 팀으로 리그를 운영하면 8팀이 4경기를 하고 나머지 한 팀은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경기나 팀 운영에 파행이 예상되고 흥행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 야구인들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10구단 체제가 꼭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미국은 내셔널과 아메리칸 양대 리그에 30개팀이, 일본은 센트럴과 퍼시픽 리그에 12개팀, 쿠바와 멕시코는 16개팀, 캐나다는 10개 팀이 활약하고 있다. 우리 프로야구 관중이 지난 2007년 410만명에서 올해 800만명을 목표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국민들 여망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그간 변화를 갈망했던 도민들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져 국회의원 7명이 물갈이 됐다. 국회의원을 새로 당선시키는 것 보다 낙선시키는 게 더 어렵다. 그 만큼 기득권을 털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권한이 예전만은 못해도 그래도 선망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천권을 갖고 있어 지방권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산중에서 짐승들끼리 회의할 때 호랑이 같은 존재나 다름 없다.이번에 국회의원을 대거 신진들로 바꾼 것은 지방권력을 물갈이 하자는 신호탄이었다. 국회의원 자신이 몇선하는 동안 해 놓은 일이 별로여서 팽 당했겠지만 그 이면에는 옆에 붙어 호가호위 하는 사람 때문에 벼락 맞을 수 있었다. 원래 국회의원 자리는 지역 일을 잘해도 선거때가 닥치면 유권자들이 리트머스 시험지를 들이대면서 흔들어대는 자리다. 경쟁자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지금까지 민주당 일당 독식 구조가 20여년간 지속돼 와 각 지역구별로 선거때마다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잘 먹고 산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질과는 상관없이 지역구 국회의원과 관계여부에 따라 지역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국회의원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표 깎아 먹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면전복배하는 그들을 내팽개치질 못하고 함께 간 게 화근일 수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고사가 나온다. 호랑이를 뒤에 세우니 모든 동물들이 여우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선거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호랑이 힘을 믿고 마냥 설쳐대는 여우가 나타날 수 있다. 선거 때 도왔던 지방의원부터 시작해서 측근들이 발호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도 모두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 같다. 호랑이가 사라졌을 때 늑대 등이 과연 자그마한 여우에게 절을 하겠는가.선거 때 알게 모르게 힘써 준 사람들이 있다. 거의 가족이나 친인척들 빼고는 조건없이 그냥 도움 준 사람은 없다. 당선되고 나면 뭔가를 바란다. 당선자들이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 대형비리의 시작이 자신의 심복이었던 운전사들이 사진 찍어 내놓은 증거 때문에 속속 드러난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당선자들은 여우들 한테 책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다. /백성일 주필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어릴 적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서면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거나, 세대차이가 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20대가 되면 "기성세대는 갔다"며 반발심이 발동하고, 30대 때는 "하긴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라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다. 40대에 들어서 비로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의견을 한번 들어봅시다"며 아버지의 존재감을 인정한다. 50대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라고 말한다. 자식 키우고 느낀 동병상련 탓이리라. 그리고 60대에 이르면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하며 아쉬워한다. 세대별 아버지의 인상이 그럴듯 하다. 아버지가 하루에 하는 일을 자식들이 거울처럼 들여다 본다면 어찌 될까.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자식이 없을 것이다. 결재판을 들고 다니며 직장 상사한테 연신 굽신거리고 때로는 혼쭐이 나는 모습, 부하 직원을 어르고 달래느라 곤욕을 치르고 경우에 따라선 치받치기도 하는 광경, 승진하기 위해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근무평정을 잘 받기 위해 아첨도 떨면서 술자리에선 딸랑딸랑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헛웃음 짓는 일 등이 비일비재할 터이다. 모두 가족을 지탱하기 위한 '인내와 헌신'이다. 이런 행동거지를 자식들이 훔쳐본다면 경외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오늘날 아버지들은 끝 없는 일과 피로, 직장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러니 집에서 좋은 아버지 역할을 하기도 힘들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무심한 아버지가 돼 있다. 밖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특히 50대는 부모를 모실 줄 아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서글픈 '낀세대'다.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도 자녀 교육비에 자녀 부양까지 힘겨운 생활을 하는 세대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3중고에 시달리는 낀세대 아버지들도 흠뻑 격려받는 날이었으면 좋겠다.'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라는 걸 자식들은 알까 모를까. /이경재 논설위원
요즘 전주를 찾는 사람들은 무조건 한옥마을부터 들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는 덕진공원이었다. 덕진공원에는 넓은 호수가 있어 경관이 빼어났고 연인들끼리 보트도 탈 수 있었다. 또 인근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도 구경거리였다. 지금은 전북대와 체련공원, 건지산 편백나무숲, 조경단, 소리문화의 전당, 혼불문학공원 등에 둘러싸여 오히려 왜소해진 느낌이 없지 않다.덕진공원의 핵심은 단연 덕진연못이다. 4만5000평의 공원부지 중 2/3인 3만 평이 연못이다. 호수 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현수교와 함께 여름 내내 호수 절반을 차지하는 연잎과 그 위에 하얗게 핀 연꽃은 장관이다.옛부터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 하여, 전주 8경 중 하나였다. 풍월정에 앉아 저녁 노을과 달빛을 끼고 뜸부기 우는 호면(湖面)의 피리소리 실은 어화에 젖은 채 맞은 편 승금정을 내다보는 던진연못의 풍경을 이름이다. 단오에는 연꽃을 보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이같은 덕진연못은 언제쯤 생겼을까. 명쾌한 기록이 없긴 하나 몇가지 유래가 내려온다. 하나는 1100년 전인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면서 도성방위를 위해 늪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려 때 이미 자연호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 초기에 전주 용왕제가 덕진연못에서 행해진 기록으로 보아 꽤 오래된 것만은 틀림없다.하지만 오늘날의 덕진연못은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깊다. 전주부성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북서쪽이 공허하여 지기(地氣)가 빠져 나간다고 생각했다. 이 지기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지산과 가련산을 제방으로 연결하여 연못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이서구가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덕진공원은 일제때 호남갑부였던 박기순이 이 일대에 사설공원을 설치할 목적으로 1917년에 30년간 임대를 했다. 1927년 취향정을 짓는 등 여러 시설을 했고 1929년 전주시에 기부채납했다.그런데 이 덕진연못의 수질이 최악이라고 한다. 수질측정 결과 '등급 외'라는 것이다. 음악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보라가 피부에 닿으면 질병이 우려되고, 심한 물비린내로 공원 이미지가 훼손될 지경이라고 한다. 서울의 석촌호수나 일산호수처럼 오염처리시설을 하루 빨리 갖춰, 사랑받는 공원으로 거듭 났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1971년, 일본에서 육조시대의 옛 문헌기록이 발견됐다.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관세음이 경험한 신비한 사례들을 모은 문헌이었다. 그런데 이 문헌에 백제 관련 기록이 담겨 있었다.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라는 곳에 천도해 새로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는데 제석사에 벼락이 떨어져 석탑이 무너졌다. 초석부분은 남아 사리함를 열어보니 그 안 유리병에 있던 사리가 없어졌다. 무왕은 발정이라는 스님에게 일러 참회법회를 보게 했는데 이후 다시 보니 사리가 다시 놓여있었다. 이에 감격한 무왕은 사찰을 건립해 그곳에 사리함을 모셨다"는 내용이었다. 역사학계는 이 내용에 주목했다. 지난 65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해체 수리때 발견된 푸른 유리병을 담고 있는 사리함과 '금강반야경 ' 등과 비교해 그 내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와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는 유적은 불과 1.3Km의 거리. 왕궁터의 비밀을 밝혀내는 단서가 된 이 기록은 백제 말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 해줄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학계는 '무광왕'을 '무왕'(재위 600-641), '지모밀지'를 전북 익산시 금마의 옛 지명인 '지마마지'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익산의 금마와 왕궁면 일대 역사유적지구에는 백제 왕궁 터와 삼국시대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쌍릉, 그리고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최대의 석불이 있는 석불사 까지 많은 백제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공간의 구조만으로도 왕궁터의 역사적 배경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음을 증명해줄 '익산 천도설'은 여전히 미완이고 수수께끼다. '관세음응험기' 말고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백제역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등재를 지원하는 추진단이 출범한다. 전북도, 익산시와 충남도, 공주시, 부여군이 함께 기금을 출연해 설립하는 이 추진단은 세계유산 등재 추진지원뿐 아니라 등재 이후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업무까지 맡게 된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본 등재가 목표다. 그런데 등재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왕궁터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이다.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천도의 진실은 아직 명료하지 않다. 기록과 유물이 없는 역사는 야사로 묻히거나 설화로 남는다. 왕궁터는 기록도 있고 유물도 있다. 역사적 실체를 드러내는 일만 남아 있는 셈이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부안출신 조선중기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이 첫사랑 유희경을 그리며 쓴 유명한 한글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다. 부안현 아전의 서녀로 태어난 매창은 시와 거문고에 능통했지만 출생의 한계 때문에 기생으로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작(詩作)은 400여년을 뛰어 넘은 우리에게도 심금을 울리고 있다.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이란 말처럼 이매창은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힌다. 시인 신석정 선생은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에 견주어 이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를 '부안삼절'이라 칭했다.당시 한시와 시조 가무 등에 다재다능한 매창의 소문은 전국에 알려졌고 같은 천민 출신으로 시재(詩材)에 출중한 유희경이 매창을 찾으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동병상련이랄까. 스무 살 꽃다운 매창과 스물여덟이나 더 많은 유희경은 첫 눈에 반해 시(詩)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노래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면천을 받아 양반으로 신분상승과 함께 관직에 나가 종2품 가의대부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런 유희경에 대한 소식을 접한 매창은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짐을 느끼면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시로 승화시켰다. 15년의 긴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유희경은 열흘간의 짧은 재회를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매창과 10년동안 교류했던 문재(文才) 허균도 매창이 죽자 2편의 시를 지어 그녀를 추도했다. 매창의 작품은 500여편이 넘는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시조 1수와 부안현 아전들이 구전되는 것을 모아 1668년 개암사에서 간행한 '매창집'에 수록된 한시 58수에 불과하다. 부안군과 부안문화원은 지난 2001년 매창의 묘지 주변을 정비해서 매창공원을 조성하고 매년 매창문화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오늘부터 6일까지 부안 매창공원과 스포츠파크 일대에서 매창시비 제막식과 추모제 백일장 사생대회 등으로 꾸며진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에 보관중인 매창집 원본을 사진으로 처음 공개한다. 이번 주말엔 꽃비 속에서 400여년전 매창의 시심에 빠져보면 어떨까.
왜 김완주지사가 전주 완주 통합에 나섰을까. 3년전만해도 무관심했던 김지사가 적극 나선 배경은 명분도 좋고 잘만 추진하면 큰 일 한번 할 수 있다는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 두번이나 전주시장을 역임했던 그로서는 통합의 필요성을 잘 알고 LH 유치 실패 이후 반대 여론을 잠재울 만한 아이템이 없던 터라 이를 붙잡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김지사의 통합 중재에 반신반의했다. 최규성의원은 물론 군 관내 기득권 세력들이 일관되게 반대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의지를 피력한 것은 우선 당장 LH 무산에 따른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고 레임덕 방지 등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LH 유치 실패 이후 도가 중앙에 요구한 5가지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자 국면돌파용으로 통합쪽에다 승부수를 걸었다.때마침 총선 결과가 좋게 나온 게 행운이었다. 그에게 정치적으로 부담돼온 정동영과 정세균이 서울로 떠난 이후 힘의 공백을 신예들로 대거 채워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선인 최규성과 이번 선거에서 혼쭐났던 김춘진도 조직면에서 김지사를 당해내기가 버거워 김지사 3선 진출이 한결 쉬워졌다. 다만 무소속 유성엽의 도전이 어떤 형태로 다시 이뤄질지와 LH책임론에 따른 퇴진운동을 어떻게 비켜 가느냐만 남았다. 최규성의 입지가 김지사의 선점효과로 좁혀진 것도 관심사다. 3선이어서 도지사에 출마하거나 상임위원장 자리나 대선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해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갈 수 있지만 항상 '형 문제'가 족쇄처럼 따라 붙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도당위원장인 김춘진도 30%대의 낮은 득표율로 도지사 선거전에 나설 동력을 잃었다.김지사의 통큰 결단 요구에 부담 가졌던 송하진 시장은 완주군에 큰 선물을 안겨줘 유약한 이미지는 벗었다. 김지사가 3선 출마를 포기하지 않는 한 송시장은 자력으로 지사선거에 나서기가 껄끄러워 오히려 통합시장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할 것이다. 지사 관사에서 통합키로 해놓고 오락가락했던 임군수는 정치적으로 송시장과 대등한 관계를 형성,가장 큰 이득을 챙겼다. 통합시장이냐 아니면 국회로 나갈 것이냐가 그의 예상 진로다. 하지만 송시장에 비해 전주 국회의원 3인방과 인간적 끈이 약해 부담이 커 보인다. 아무튼 통합 3인방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결말날지 예측 불허다. /백성일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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