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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혹은 지혜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수도원이 아닌 세속에 적을 둔 프랑스 출신의 세속 사제다. 신부이면서도 빼어난 설교자이자 문필가로, 또 논객으로서 당대 사회현실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3년 전쯤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 <침묵의 기술> 저자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는 사실 1700년대를 살았던, 지금으로부터 두 세기도 더 지난 시대의 인물이다. <침묵의 기술>도 1771년에 발간됐으니 이 역시 두 세기를 훌쩍 넘어 오늘을 사는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셈이다. 소통이 화두가 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두 세기도 더 지난 옛 책이, 그것도 침묵의 기술을 앞세워 지구의 또 다른 한편에서 다시 독자들을 만나는 일은 흥미롭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말이 소개되어 있다. 말의 과잉을 앓는 오늘 우리에게 즉효의 처방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란다. 물론 이 책은 역자의 소개처럼 당대 보수적 사회질서의 수호를 강력하게 주창하는 하나의 정치적 선언문으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침묵을 주제로 한 이 희귀한 고전이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끊임없이 부활하여 재해석되는 이유 또한 분명할 터다. 며칠 전 책장에서 <침묵의 기술>을 다시 꺼냈다. 말과 글이 난무하는 시기,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있으니 그 폐해가 어디까지 이를지 가늠할 수 없는 이즈음 문득 생각난 책이었다. 저자가 두 세기 전, 그때도 침묵의 가치가 절실해진 시대라고 규정한 것을 보니 침묵이 필요한 시대는 따로 있지 않은 모양이다. 디누아르 신부가 제안하는 침묵의 기술은 단순히 침묵하는 기술, 이를테면 단순히 입을 닫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침묵이 아니라 제대로 침묵하기 위한 기술과 지혜다. 물론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깊은 숙고와 밝은 혜안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니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온갖 의혹으로 인터넷이 뜨겁다. 장관 임명에 이처럼 극렬한 대립과 갈등을 겪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국민을 대신해 후보자를 검증하는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있지만 우리가 만든 그 제도마저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실마리를 잡았으니 가히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시절이라 할만하다. 디누아르 신부가 가른 열 가지 침묵이 있다. 그 중의 하나, 신중한 침묵이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입을 닫는 침묵을 이른다. 물론 신중한 침묵이 가닿는 가치가 따로 있을 터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침묵이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8.29 18:42

패장의 복귀?

한 번 물레방아를 돌린 물은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지만 정치는 예외다. 중국 당나라 헌종은 전쟁에서 패한 것 때문에 신하들이 절도사 오원제와의 싸움을 말리자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며 독려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전장에서 항상 있는 일처럼 정치판에서도 당락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도내 전직 국회의원들이 권토중래를 벼르고 있다. 공천 경쟁을 대비해서 조직을 추스르고 보폭을 넓혀가며 유권자들로터 잊혀진 얼굴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많게는 8년에서 4년 가까이 정치 일선에서 떠나 있었지만 그동안 와신상담하면서 재기의 칼을 갈아왔다. 현재 내년 총선에 거론되는 도내 전직 국회의원은 9명 정도. 전주 갑에 김윤덕, 전주을 이상직, 전주 병 김성주, 익산 갑 전정희, 익산을 한병도, 김제부안 김춘진, 남원임실순창 이강래와 강동원, 완주진안무주장수 박민수 전 의원 등이다. 전정희강동원 전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재도전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20대 총선 때 민주당 텃밭인 전북에서 민심이반을 초래한 장본인이란 것. 그동안 도민의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의정활동으로 인해 민주당 심판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또한 금배지를 달아주었으면 전북발전을 위해 나름 역할을 했어야 하지만 개인의 입신양명만 누렸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반면 일각에선 현재 여권이 구심점 없이 무기력한 것은 중량감있는 인물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국회는 선수(選數)에 따라 위상과 역할이 달라지는 만큼 다선의 경륜과 경험, 그리고 정치적 파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세 차례나 대선 패배후 정계 은퇴까지 했다가 1997년 대선에서 당선돼 외환위기에 처한 나라를 살렸고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패배 뒤 2017년 선거에서 당선된 것처럼 낙선이 꼭 정치적 흠결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렇지만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정치판도 새로워져야 썩지 않는다. 정치권 스스로 혁신없이 텃밭 정서에만 기대면 민심의 풍랑은 또다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8.28 16:49

새만금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새만금 얘기만 꺼내면 5060이후 세대들은 시큰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세대가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던 지난 1991년 방조제공사가 첫삽을 떴다. 당시만 해도 세계최장 33.9Km의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이라며 떠들썩했다. 금방이라도 전북의 미래 청사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 때문에 30여년간 전북에서 만큼은 새만금관련 이슈는 늘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호사다마라 할까. 순조로왔던 사업이 환경이라는 거대담론과 찔끔예산 탓에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끝맺음까지는 19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핑계로 뭐 하나 속 시원히 진행되지 못한 탓에 그들은 애증(愛憎)의 눈길만 보냈다. 아니 할 말로 내가 죽기 전에 새만금 사업을 끝낼 수 있을까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동안 뜸하다 때마침 고군산군도 관광시대 가 열리면서 새만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배를 타고 꼭 가고 싶은 꿈의 여행지 선유도가 2017년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새만금방조제는 주말 관광객들로 붐빈다. 풍광이 빼어난 고군산군도가 새만금과의 찰떡궁합으로 시너지효과를 본 것이다. 겹경사가 이어졌다. 도민들이 염원해온 새만금특별법 이 2018년 입법화되면서, 관련 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뿐 아니라 민간투자 활성화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매립사업의 예비타당성 통과로 내부개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이런 흐름속에 새만금개발청과 새만금개발공사도 현지에서 본격 출범해 환황해권 경제시대 도약을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내부개발의 대동맥인 새만금~전주 동서도로와 군산~부안 남북도로가 드넓은 내수면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공사가 한창이다. 동서도로 1단계 김제 심포항까지 구간은 내년 뚫린다. 활주로처럼 쭉 뻗은 3.8Km 신항만 방파제도마무리돼 위용을 뽐내고 있다. 방조제 바로 옆에 오랫동안 퇴적된 150만평의 토지가 눈길을 끈다. 한국판 두바이 라고 일컬어지는 스마트 수변도시가 거주인구 2만여명 규모로 이곳에서 내년 공사에 들어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3.9Km방조제를 달리면 양쪽으로 바다만 보였다. 언뜻 보면 썰렁하고 휑한 모습이었다. 너무 더디게 공사가 진행되면서 뒷전에 밀려났던 새만금.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게 사실이다. 그런 기억으로 지난주 방문 기회가 있어 그 길을 달렸다. 마치 신기루처럼 막연하고 멀게만 여겨졌던 새만금 사업이 하나 둘씩 윤곽을 드러내며 꿈틀대고 있다. 부릅뜬 눈으로 다시 가보자. 관심밖에 있던 새만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19.08.27 16:46

‘역린’ 건드린 조국

여고 동창 모임에 나가서 절대 언급해선 안되는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녀 진학이나 취업, 결혼 얘기, 둘째는 남편 수입 얘기, 셋째는 살고있는 집 크기라고 한다. 우스갯소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민감한 사항이고 잘못하면 즐거워야 할 자리가 서로 비교하게 되면서 언짢아질 수 있다는 거다. 그중에서도 자녀 입시 문제를 잘못 물어봤다가는 감정을 상하기 십상이다. 역린이기 때문이다.역린(逆鱗 )이란 한비자에 나오는 말인데 용의 목에 거슬러 난 비늘을 의미한다. 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용이란 짐승은 잘 친해지기만 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목 아래에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이 있는데 만약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람인지라 자칫하면 역린을 건들기 십상이다. 어린 시절 토끼를 많이 키워 본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아는게 있다. 그렇게 순하기만 한 토끼도 사람들이 귀엽다며 자기 새끼를 건드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퀴거나 물리기 십상이다. 교육계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65학년도 입학시험 당시의 무즙파동이다. 중학입시 자연과목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란 문제가 있었다. 출제위의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으나 다수 학생들이 무즙을 선택했다. 이 문제 하나로 당락이 갈린 학생들의 부모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열성 부모들은 아예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엿이나 먹어라 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고 모두 38명의 학생이 명문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됐다. 그런데 유력자 자녀 21명이 덤으로 부정입학을 했다. 부정입학 관련자 중에는 청와대 정무비서관, 공보비서관 등도 포함됐다. 무우즙 파동은 문교부 수뇌부나 청와대 비서관의 목을 날렸다. 반세기도 더 지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1993년 초반, 김영삼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최형우 당 사무총장이 아들의 대학 부정입학 문제로 낙마했다. 좌동영, 우형우란 말이 있을만큼 YS에겐 김동영, 최형우가 최측근 참모였다. 이때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는 말이 그 유명한우째 이런 일이였다. 요즘 정계의 뇌관으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떠올랐다. 조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인데 야권이 그 역린을 건드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조 후보자의 딸 입시 문제가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 또 하나의 역린이었다. 당연히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권력 실세의 부침이라는 점 말고도, 이번 사안은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자녀 입시 문제가 역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이 나와선 안된다. 우째 이런 일이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8.26 16:09

지행 불일치

진보의 아이콘인 조국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까발려진 각종 의혹들이 마치 종합비리선물세트를 연상케할 정도로 많아 국민들을 실망케 했다. 시험 한번 제대로 보지 않고 그의 딸이 외고고대서울대환경대학원부산대 의전원을 입학했다는 것은 젊은 학생들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안겼다. 부모 재산이 자그만치 56억원이나 된 사람이 의전원에서 낙제하고도 12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 받았다는 것은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과거의 조국이 현재의 조국을 죽인다는 말이 일반에 널리 회자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의 결과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에다가 서울 법대 출신이라는 감히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그의 학경력에 모두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선망 그 자체였다. 울산대와 서울법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보수정권에 칼럼을 통해 추상같은 꾸지람을 계속해왔다. 힘 없이 지쳐 있는 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불거진 각종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입가경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민감정이 악화됐다. 급기야 고대서울대생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공정개혁정의에 부합되지 않는다며 촛불시위를 벌였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 어떻게 논문 제1저자가 돼 그를 매개로 해서 시험 한번 보지 않고 의전원까지 입학할 수 있었느냐는 것.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 사다리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금수저인 자신만 사다리를 통해 올라갔다며 비분강개했다. 그간 조국이 말해온 모든 것이 위선이었고 거짓이 되었다. 내로남불을 떠나 조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국민들은 믿었던 그가 말 따로 행동 따로한 것에 몹시 실망했다. 학교와 사모펀드에 투자한 돈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악화된 국민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당 대표도 공식사과했지만 약발이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에서 국민여론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심각하다. 진보와 보수만의 싸움이 아니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세력에서도 균열이 생겼다. 결코 진영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폭발력이 큰 입시문제라서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돼버렸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030대는 분노, 4050대는 박탈감, 6070세대는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후보자의 딸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은 법적 잣대 이전의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의 무역전쟁과 남북관계 등 주변국 안보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는 형국에서 조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큰 어려움을 맞았다. 조 후보자의 사태를 통해 표리부동하고 지행일치가 안된 것은 결국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일깨워줬다. 앞으로 부모가 자식들한테 뭐라고 가르쳐야할지가 더 걱정스럽다. 조후보의 문제를 나라발전의 성장통 쯤으로 여기기에는 너무 아픔이 크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8.25 16:27

‘발하우스’의 선택

오래된 도시의 오래된 건물들이 주목 받고 있다. 낡고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거나 도시를 재생시키는 작업이 도시의 중심 동력이 된 덕분이다. 사실 문화 복지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공간을 통해 도시를 재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세계 여러 나라들에 견주어보자면 우리나라는 한참 뒤처진 후발주자다. 실제 낡은 건물은 무조건 때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개발논리에 찌들어 있던 우리에게 기존 건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오랫동안 낯설었겠으나 이제라도 오래된 것의 질서와 가치를 주목해 옛것과 새로운 것을 공존시키려는 인식의 변화는 반갑다. 이쯤해서 되돌아봐야 할 일이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쓰임새를 찾아가는 방법과 과정이다. 독일 베를린 시내, 평범한 주거지역의 건물사이에 아주 작고 낡은 공연장 발하우스 콘서트홀(Ballhaus Naunystrasse)이 있다. 이 건물은 19세기, 베를린의 전형적인 사교댄스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이 공간은 베를린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그룹의 창작무대이자 국제예술 무대로 활용되고 있으니 낡고 비좁은 이 공간이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사교댄스장의 변신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란 새로운 쓰임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다양한 활용방안이 제안되면서 발하우스가 있는 지역 주민들과 전문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들이 선택한 것은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식. 낡아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비밀통로와도 같은 계단, 오래된 시멘트 바닥,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지하의 소박하고 작은 바,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야외정원까지. 무도장을 바꾼 음악당의 100여개 객석이 아니고는 대부분의 구조물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지켜온 전문적인 운영체제가 답이었다. 전문가 집단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운영하면서 전체 운영비의 3분의 1을 프로젝트 운영으로 충당할 수 있게 하는 결실을 얻어냈다. 돌아보면 우리 지역에도 재생공간이 적지 않다. 거개가 고민과 논의의 과정보다는 화려한 변신이 주목을 끈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방점을 둔 발하우스가 오랜 논의 끝에 얻은 선택이 더 빛나 보인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8.22 17:10

R의 공포

글로벌 금융시장에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의 국채 2년물과 10년물 금리가 역전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한때 패닉에 빠졌었다. 금리 역전현상이 단 하루에 불과했지만 일각에선 구조적 장기불황(Secular Stagnation)의 예고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국채시장에서 2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가 역전된 건 1978년이후 모두 5차례 있었고 어김없이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지난 2007년 6월에도 미 국체금리의 역전이후 2008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 쓰나미가 덮쳤다. 경기침체 조짐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유럽의 성장엔진인 독일도 이미 경기침체가 시작됐다는 진단이다. 독일의 올 2분기 GDP가 1분기보다 0.1% 줄었고 3분기에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학계에서는 두 분기 이상 연속 GDP가 감소할 때 경기침체로 본다. 독일의 경제 위기는 미중 무역전쟁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에 나선 일본도 경기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7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줄어들면서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일본의 제조업 경기지수가 지난 2013년 이후 6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우려되는 영국도 올 2분기 GDP가 전 분기보다 0.2% 줄어들면서 지난 2012년 4분기 이후 6년여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3분기에도 GDP 감소가 예상돼 경기침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도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경제 보복, 그리고 국내 기업들의 실적 부진 등 악재가 겹치면서 R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13거래일 연속 주식을 내다 팔면서 주가는 폭락했고 반면 원달러 환율은 한 달 새 40원 가까이 올랐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경제동향 8월호에 따르면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와 반도체 업황 부진이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갈등 심화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R의 공포 다음에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경기가 더욱 악화하는 D(Deflation)의 공포가 이어지고 이후에는 일자리마저 없어지는 L(Lay off해고)의 공포가 다가온다. 사사건건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은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기 전에 정신 차려야 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8.21 17:23

반려동물

머리에 화살촉이 박힌 길고양이가 지난 달 군산에서 발견돼 큰 충격을 줬다. 동물학대 가해자 처벌을 위해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29일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서울에서도 30대가 길거리 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 살해하는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엽기적인 동물학대가 잇따르자,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며칠 새 5만 여명 이상이 폭풍 댓글로 공감을 표했다. 전북에서도 2018년 반려동물 약 6042마리가 몰래 버려졌다. 이중 주인에게 되돌려 지거나 다른 데로 입양된 경우는 3432마리이며, 자연사하거나 안락사한 경우도 2106마리나 된다. 뭔가 개운치가 않다. 주변에서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그런가 하면 반려동물을 적극 보호하자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도의회 김정수의원(익산2)은 지난달 전라북도 반려동물 보호 및 학대방지 조례안을 발의해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자치단체에서도 앞으로 반려동물 소유자가 군대입대 등 불가피한 경우 동물을 인수하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북은 7월 2868마리가 반려동물로 신규 등록해 정부의 안전망 관리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공원을 만들려다 인근주민 반대로 1년 넘게 속앓이 해온 전주시가 동물복지과를 신설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령화와 1인 가구가 대세인 요즘,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Pet+Family). 이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연관산업 매출규모가 내년 6조원대로 상상을 초월한다. 동물병원, 애견카페, 펫샵 등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약재를 달인 보양음료, 애견 홍삼액, 종합영양제까지 불티나게 팔린다. 오죽하면 개 팔자가 사람 팔자 보다 낫다며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다. 최근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동물학대. 따가운 주위 시선에 여론도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반려동물 글자 그대로 함께 생활하는 가족과 다름없다. 몰래 버리고 학대하는 건 가족에게 저지르는 패륜범죄와 진배없다. 반려동물 이라는 이름이 지난 1983년 처음으로 사용된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함과 동시에 애완동물은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오피니언
  • 김영곤
  • 2019.08.20 17:39

하림 김홍국 회장의 역할

도의원을 거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한 초선 의원은 언젠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막상 내가 국회 가보니까 도내 선배 의원들 누구도 30대 재벌총수 하고 직접 통화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더라 유권자들을 만나면 겉으론 지역을 위해 무슨 큰일이나 하는 냥 큰소리 뻥뻥 치지만 정권 실세가 아닌 바에야 재벌하고 속 터놓고 대화할 통로조차 없더라는 얘기다. 쓸만한 기업은 모조리 싹이 잘라진 상황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치고 전북 출신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10일 도민들은 매우 낯선 광경을 하나 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간담회를 가졌는데 김홍국 하림 회장이 들어간 것이다. 30대 기업 대표들과 회합을 갖는 자리에 도내 업체 총수가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만 참석하는 자리에 김홍국 회장이 식품산업 대표로 유일하게 참석한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하림은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자산 11조9000억원으로 재계 순위 26위에 올랐다. 하림은 단순히 축산 회사가 아니다. 닭고기 전문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곡물 유통, 해운, 사료, 축산, 도축 가공, 식품제조, 유통 판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식품의 가치사슬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글로벌 푸드&애그리비즈니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약 28년전 올챙이 기자 시절 도청을 출입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백승운 축정과장은 기회가 될때마다 출입 기자들에게 아직은 크게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하림 김홍국을 잘 지켜봐라. 훗날 엄청난 재벌이 될 것이다. 복기해 보면 전문 축산인 백 과장은 예리하게 축산업의 앞날을 꿰뚫어봤으나 많은 이들이 그의 말을 크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불과 한 세대가 가기 전에 하림은 30대 재벌 반열에 올라섰다. 요즘엔 하림 김홍국 회장이 재경전북도민회장 까지 맡고 있고 재벌 본사를 터전인 익산으로 옮겼으니 지역 사회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어떨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것이다. 요즘엔 K팝,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맛의 본고장 전북이 도약하는 해법도 결국 K푸드에서 찾아야 한다. 전북 식품산업의 도약을 위해서는 앞으로 대기업 하림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여행때 기내식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비빔밥은 당연히 전주 비빔밥이고, 고추장은 당연히 순창 전통 고추장인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전북식품산업이 전세계를 호령할지 여부가 하림 김홍국 회장의 어깨에 달려있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8.19 17:05

수기가 약한 전주

인류역사는 대하(大河)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세계4대 문명권인 이집트문명은 나일강에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에서 인더스문명은 인더스강에서 그리고 황하문명은 황하유역에서 발달했다. 이명박 전대통령은 물의 자원화와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이유로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4대강 사업을 실시했지만 오히려 수질악화 등 부작용만 초래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샀다. 전북은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당시 도의회에서 이 사업을 반대해 새만금의 수질 악화를 가져오는 만경강과 동진강 개수사업을 못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다. 연간 평균강우량이 1500mm에도 못미친다. 노령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전주는 분지라서 여름철에는 대구와 함께 가장 무더운 도시다. 그 원인은 무분별한 아파트 난개발이 결정적이다. 전주천과 삼천 주변의 바람길을 차단시켜 여름철만 닥치면 도시 전체가 열섬현상이 생긴다. 전주천과 삼천은 사천이라서 비가 내릴 때만 어느정도 물길이 형성되지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바닥이 드러난다. 전주천 상류 남부시장쪽에다가 콘크리트 주차장을 만든 것도 생태게 보호측면에서는 패착이다. 전주시가 국비 지원을 받아 건산천 일부 복개구간을 뜯어 생태하천으로 만들었지만 깨끗한 수량부족으로 여름철에는 악취만 풍겨 나온다. 중앙시장서 한국은행간을 똑같이 생태하천으로 만들었지만 제기능을 못해 오히려 복원을 안한 것이 나았다는 지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치산치수는 국가나 지방행정의 근간이다. 시가 그간 무분별하게 하천을 복개했다가 다시 헐고 뜯고 고치는 바람에 자원낭비는 물론 생태계만 파괴시켰다. 이명박 전서울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해서 국민적 인기를 끌어 대통령이 된 것을 모방해서 전주시도 이 같은 재생사업을 반복했지만 실패작으로 끝났다. 김승수 전주시장이 여름철 기온을 떨어 뜨리려고 대구처럼 나무 심기운동을 의욕적으로 펼친다. 전임시장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김 시장은 1000만그루 나무심기운동을 벌인다. 그가 배고픈 아이에게 밥주는 엄마도시락 사업과 함께 가장 잘한 일이다. 장성 축령산에 순창 출신 독림가 임종술 씨가 편백나무 숲을 조성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풍수에서 물을 재물로 본다. 덕진 연못도 전주지기가 얕다는 이유로 인공호수를 만든 것이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적인 도시가 물로 에워싸져 있다. 한강 때문에 서울에 돈과 사람이 모이게 돼 있다. 전주천과 삼천에 물이 넘실거려야 전주가 흥해진다. 전주천은 완주 신리저수지 물을 유지관리수로 활용해야 하고 삼천은 옥정호 물을 구이저수지로 끌어들여 방류시켜야 한다. 건산천이나 중앙시장 생태하천은 지하수를 개발해서 유지관리수로 써야 한다. 김 시장은 다음에 지사로만 가려고 신경쓰지 말고 임기동안 치산치수(治山治水)정책을 잘 폈으면 한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사업처럼 이치에 맞질 않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 보다 이 사업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8.18 17:06

농사꾼 시인의 연장이야기

한 달 전,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 씨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소개됐지만 미처 담지 못한 연장이야기가 있다. 그는 3년 전 쯤, 사라져가는 농사 연장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여든 여덟 가지 농사 연장의 구조와 원리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의 특별한 글쓰기 덕분에 책은 도감이되 도감이 아닌 인문학적 책이 되었다. 스스로 전통세대의 마지막이나 됨직한 베이비부머라 칭하는 그는 변해가는 농촌 문화와 사라져가는 생활양식이 안타까워 연장이야기를 붙잡은 이후 온갖 자료를 찾고 고쳐 쓰기를 반복해 책으로 내기까지 꼬박 5년을 바쳤다. 그가 말하는 연장은 이렇다. 농부에게 연장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그 사람의 신체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가령 우리에게도 익숙한 괭이나 호미는 인간이 수렵 채취를 시작한 때로부터 몇 만 년이 흐른 지금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원시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는 그 이유를 이 연장들이 역설적이게도 단순한 신체의 일부였기에 도구로 기능하며 거친 논밭을 일구는 것을 넘어 마을을 일구고 한 사회와 그 사회를 떠받치는 규범 즉 문화를 일구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요즈음의 농사 연장은 더 이상 이런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계들이다.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관리기 등 효율성으로만 따지자면 연장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인데, 그의 말을 더하자면 효율을 중시하는 이들 기계의 속성은 그것을 만들어낸 거대 기업, 즉 자본의 속성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하는 농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기의 속성대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업이 기계화되는 과정에서 농촌의 유구한 전통문화가 붕괴되어버렸다해도 농촌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얻었으니 기계의 유용함을 무작정 부정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그는 적정기술과 속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앞세운 과잉기술의 시대에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삶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맞닿아 있다. 귀 기울여지는 제안이 있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 기계에 의존하는 과잉기술이 필요 없는 도시 농부들의 텃밭 농사다. 그는 호미나 괭이, 낫 같은 간단한 전통농기구면 충분한 도시 농사가 도구와 연장의 부활을 넘어 땅에 작용하는 푸른 노동을 통한 건강한 정신의 맥잇기 운동이자 도시문제의 한편을 해결할 수 잇는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상상해보니 도시와 농촌의 의미 있는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 싶다. 솔깃한 제안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8.15 17:34

유대인 카포와 친일부역자

오래전 폴란드 남부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은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의해 무려 4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 현장으로 그 당시 수용소 건물과 가스실 고문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유품과 머리카락이 보관된 전시실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침 수학여행 중인 이스라엘 학생들이 줄지어 수용소를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누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꼭 한번은 탐방해야 한다. 그들을 용서는 하되 절대 잊지 말라는 교훈 차원에서다. 전시실에서 눈길을 끈 것은 수용소의 일상을 그린 수감자의 그림 가운데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유대인 카포(Kapo)의 모습이었다. 수용소 내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일종의 유대인 경찰로 나치 부역자다. 수감자 중에서 선발된 카포는 나치 친위대원보다 더 악질적이었다고 한다. 수감자보다 좀 더 편하고 배불리 먹기 위해 동족을 구타하고 밀고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민족반역행위자이었다. 독일이 패망한 이후 이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고 1950년 이스라엘은 나치와 나치 협력자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모사드의 표적이 되었고 철저히 색출해서 죗값을 치르게 했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부역자들이 많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서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와 부일협력행위를 한 사람은 4378명에 달한다. 이 중 전북인 120여명도 포함되어 있다. 친일부역자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반민족행위가 밀정(密偵)이다. 피로 맺은 동지와 친구를 일제에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치부를 일삼은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태다. 지난 13일 밤 방송된 KBS 탐사보도 시사기획 창에 따르면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비서인 이정과 안중근 의사의 거사 동지인 우덕순이 일제의 밀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탐사보도부는 일본 외무성과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 등의 기밀자료를 분석해 밀정 혐의자 895명을 특정했다. 특히 이정의 경우 자신이 밀고했던 독립운동가 이홍래 선생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치된 것은 충격적이었다. 현재 현충원에는 이러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63명이 버젓이 안장돼 있다. 잘못된 역사와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광복의 시작이다. / 권순택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8.14 16:39

개각과 가난한 집 맏아들

사람들은 상고(商高)하면 야구와 가난한 집 맏아들을 우선 떠올린다. 1970~80년대 고교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는데 군산상고선린상고덕수상고 등 야구 잘하는 학교중 유달리 상고가 많았다. 또한 가난하되 머리가 좋은 아들이 하루빨리 가족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진학하는 학교가 바로 상고였다. 김대중(목포상고)노무현(부산상고)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며 고려대를 졸업한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동지상고 출신이다. 엊그제 야구 명문인 109년 전통의 서울 덕수상고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특성화계는 종로구에 있는 경기상고로 통합하고, 일반계는 위례신도시로 이전하면서 없어지는 것이다. 덕수상고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이종남 전 법무부장관,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 이름있는 동문을 많이 배출했다. 그런데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들이 판을 치는 요즘 우리은행 행부행장 중 상고출신 비중이 전체 11명 중 7명으로 63%나 됐다고 해서 화제였다. 며칠전 개각에서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조성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가 7년 전 논문에서 재벌을 가난한 집 맏아들에 비유하며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게 크게 관심을 끌었다. 조 후보는 최근 재벌의 높은 성과가 있기까지 이들이 성장하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몰아준 경제 구성원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재벌을 다른 형제들의 희생을 토대로 성공한 맏아들로 비유했다. 재벌 때문에 기회조차 받지 못한 기업 및 경제주체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대기업은 무조건 나쁘다는 최근 사회 일각의 분위기엔 공감하기 어렵지만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한 형제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공한 맏아들에겐 응당 막중한 책무가 따른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이번 개각때 10명의 장관급 인사중 전북출신이 이정옥 여가부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이수혁 주미대사, 정세현 평통 수석부의장 등 4명이나 된다고 해서 지역사회가 크게 고무됐다. 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이가 국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잼버리 개최나 전북금융타운 조성에 좀 도움이라도 되지않을까 하는 기대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전북 출신 인사들이 가난한 집 맏아들답게 잘 처신해주길 기대한다. 개각에선 분명 출신 지역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텐데 장관 발탁을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석하는 선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북인으로서 혜택은 다 입으면서도 지역사회에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장관은 두고두고무늬만 전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위병기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8.12 19:11

급조된 민주당원

지난달 마감한 전북의 민주당 권리당원수는 기존 5만여명을 포함 1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전북보다 인구수가 배 가까이 많은 광주 전남의 11만여명 보다 더 많다. 이처럼 전북의 권리당원수가 급증한 것은 1년전 확정한 총선룰 때문이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50%와 안심번호 선거인단 50%로 후보경선 선거인단을 구성해 총선공천후보자를 뽑는다. 권리당원이 절반을 차지하므로 후보자들이 죽기살기식으로 지난달까지 월 당비 1천원을 내는 당원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전북 유권자 152만의 7.8%가 민주당 권리당원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나지만 경쟁이 심한 전주 3개지역구 권리당원 비율이 높다. 여성정치신인으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금옥씨가 김윤덕 현위원장 한테 도전장을 내민 전주갑은 2만2000~2만4천여명에 달했다. 이는 운동권 선후배인 양측이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일찍부터 조직적으로 당원모집에 나선 탓이 크다. 민주당 총선룰이 정치신인 한테는 불리하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아무나 도전장을 내밀 수 없는 구조다.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최소 6개월 이상 당비를 내는 당원을 모집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신인들은 지역주민들한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전략공천 아니면 처음부터 넘나보기가 쉽지 않다. 전북은 10명의 위원장 중 8명이 원외위원장들이어서 이미 이들은 20대 총선과 경선 등을 치르면서 상당부문 능력검증을 마쳤기 때문에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새로울게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야권 난립에 따른 집권여당의 프리미엄이 작용할 것으로 보여 후보경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후보들은 지난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 후보들한테 빼앗긴 의석을 차지해 집권여당으로서 지역발전을 주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힌다. 문제는 도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가 낮아졌다는 것. 최근 민주당의 지지를 암묵적으로 받았던 진보측 김승환교육감이 대법원으로부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또 교육부가 상산고 자사고 지위를 5년간 유지토록 결정함에 따라 자사고 폐지를 결정했던 김 교육감이 타격을 입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교육감을 주민소환해야 한다는 정치권과 교육계 원로들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도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냉랭해졌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공천제가 없지만 진보를 자처한 김 교육감을 민주당 쪽에서 알게 모르게 지지해 그만큼 여론도 싸늘해졌다. 상당수 도민들은전북이 광주 전남보다 민주당 당원수가 많은데 지역발전은 뒷걸음질 쳤다면서이런 당을 계속 지지해야 하는가는 의문이 간다고 말했다. 또선거 때마다 황색깃발만 꽂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해준 것이 문제라면서제대로 지역발전과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민주당과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민주당 공천장만 거머쥐면 21대 총선 때 당선은 떼논당상처럼 여기는 풍토가 또 만들어질지 의문이다. 급조된 민주당 권리당원으로 지역여론이 왜곡되지 않길 바란다. /백성일 부사장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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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9.08.11 15:59

그들의 조국

인터넷 검색으로 한 단어를 찾아보았다. 엄마-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새삼스럽지만 엄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더라도 우리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가. 슬픔과 기쁨의 절정에서 나오는 이름, 되뇌는 순간부터 그리움이 앞서는 이름, 그 무엇과도 치환될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이름. 이 아름다운 엄마 이름이 수모와 치욕을 당하고 있다. 엄마를 내세운 어떤 부대의 활약상(?) 덕분이다. 엄마부대는 애국보수시민단체를 자칭한다. 이 부대를 이끄는 이는 주옥순 대표다. 그는 2013년 발족한 이래 정치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존재를 과시한다. 공식 직함은 유튜브 엄마 방송진행자란다. 홍준표 대표가 이끌던 자유한국당에서 디지털정당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던 그는 2018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북한과 내통하고 있다는 허위사실 유인물을 뿌려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그와 엄마부대는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산, 박근혜대통령의 탄핵 반대 등 크고 작은 사회적 이슈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이 내놓는 주장은 거개가 황당한 궤변이다. 이 부대가 또 일을 냈다. 이번에는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선전과 선동이다. 지난 1일에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수상님 저희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그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확정 판결이 국제법에 부합함에도 경제 보복으로 한일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아베에게 사죄라니. 8일에도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벌써 다섯 번째다. 정부가 어렵게 도출한 종군위안부 관련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미 배상이 끝난 지난 1965년 협정을 뒤집었다며 다 끝난 일을 다시 뒤집는 고의적 도발행위라고 주장한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아무래도 여론이 주목한 탓일 게다. 한일관계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이란 이름으로 이어가고 있는 볼썽사나운 퍼포먼스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즈음 전해 받은 푸시킨의 시 한 대목이 있다. 그대는 외국 민족을 그토록 아끼고 사랑해 이토록 지혜롭게 조국을 증오하였네. 지혜란 단어가 아깝지만, 정부가 자유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왔다는 이들에게 당신들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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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9.08.08 19:01

부창대교와 천사대교

전남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면을 잇는 천사대교가 지난 4월 개통한 이후 100일 만에 방문 차량 100만대에 방문객은 220만 명이 넘었다. 압해읍의 교통량은 개통 전보다 3배가량 급증했다. 신안군의 관문 격인 천사대교는 총 길이 10.8㎞, 다리 교량 구간은 7.22㎞로 현수교와 사장교 형식이 공존하는 국내 유일의 교량이다. 사장교 길이는 1004m로 신안군의 섬 1004개를 상징하며 그래서 다리 이름도 애초 새천년대교에서 천사대교로 바꿨다. 천사대교는 지난 2005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익산국토청에서 총사업비 5800억원을 들여 2010년 9월 착공, 9년만인 지난 4월 완공됐다. 개통 이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신안군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이 특수를 누릴 뿐만 아니라 인접한 목포 북항과 하당까지 호황이어서 서남권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신안군에서는 천사대교 특수를 이어가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복합리조트와 호텔 펜션 등을 갖춘 대규모 관광레저타운 조성을 추진 중이다. 반면 천사대교보다 앞서 추진했던 전라북도의 부창대교는 15년째 오리무중이다. 고창출신 정균환 의원의 16대 총선 공약으로 시작된 부창대교는 지난 2002년 예비타당성 조사에 이어 2005년 기본설계까지 마치고 2007년 착공 예정이었지만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중단됐다. 이후 2008년 전라북도에서 부창대교 건설을 재추진, 2011년 새만금종합개발계획에 포함됐고 2012년 대선 공약사업 선정과 2015년 제4차 국도국지도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반영됐지만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또다시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중단시키고 말았다. 고창 해리면 왕촌리와 부안 변산면 도청리를 해상으로 잇는 부창대교는 교량 7.48km와 국도 등 총 15.2km를 개설하는 사업이다. 부창대교가 신설되면 부안 변산국립공원과 고창 선운산 지구를 바로 연결하게 돼 70㎞를 우회해야 하는 고창부안간 이동거리를 7㎞로 단축시킨다. 이렇게 되면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군산 새만금방조제와 부안 변산 격포, 고창 동호 구시포를 잇는 서해안 관광벨트가 완성돼 관광객 증가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전남은 섬과 해안을 교량과 도로로 연결하는 15조원 규모의 2030 전남기반시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전북출신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을 때 부창대교 하나 만들지 못하면 전북발전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9.08.07 17:15

“아베야 고맙다” 극일 릴레이

요즘 불볕더위 못지않게 뜨거운 이슈가 일본상품 불매운동이다. 가히 폭발적이다. SNS를 통한 네티즌의 각개격파식 실천운동이 길거리 시위까지 이어지는 전면적인 양상이다. 이같이 걷잡을 수 없는 움직임은지난 2일 백색국가 제외 2차 경제보복 이후 더욱 뚜렷하다. 한국인이 깨어있음을 보여주고, 뭔가 본때를 보여준다는 결기로 가득찬 표정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그들은 대한민국을 겨냥해 끊임없이 도발하고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켜켜이 쌓인 분노와 적대감이 이번 경제보복을 통해 분출됐다고 입을 모은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네티즌의 분노가 불매운동의 신호탄이었다. 이들은 일본의 기습적인 경제보복 이후 온라인에서 댓글을 통해 운동참여를 독려했다. 순식간에 격려와 성원의 글이 봇물을 이뤘다. 하루에도 서너 개 이상 이와 관련된 정보들이 시시각각 스마트폰에 올라온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들불처럼 타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가운데 극일(克日)메시지 가 단연 눈길을 끈다. 일본을 알아야 일본을 이긴다 1919년은 졌지만 2019년은 반드시 이긴다 NONO 재팬 등 기발한 문구들이 그나마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식혀준다. 어찌됐든 릴레이식 댓글을 통한 반일감정이 최고조를 향하고 있다. 한일 경제전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 이번 만큼은 모두 독립운동가를 자처하고 있다. 일본제품 안 쓰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것이 진정한 독립운동 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뿐 아니다. 전국 자치단체 140군데에 이어 연예인, 사회단체까지 동참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중 6명 이상이 이 운동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정말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경제전쟁의 끝은 예측불허다. 분명한 것은 아베식 치졸함이 시작이었다는 사실이다. 대법 배상판결을 빌미삼아 경제보복으로 총구를 겨눈 것이다. 허를 찔린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 결연함으로 번뜩인다. 안 사고, 안 가고, 안 팔고 다함께 일본을 뛰어넘자고 서로를 격려하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아베야 고맙다, 뒤늦게라도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깨닫게 해줘

  • 오피니언
  • 김영곤
  • 2019.08.06 18:19

전북 몫 찾기

한일간 경제전쟁이 격화하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이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원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에서 유래한 말인데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어느 시점에서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일 경제전쟁의 핵심은 일본이 헤매는 동안 한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식민 통치를 했던 한국과의 GDP 격차가 2001년 8배에서 지난해에는 3배로 좁혀지면서 당황하고 있다는 예기다. 초격차 상태에서는 너그러울 수 있는데 근접해지면 예민해지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런데 며칠전 발표된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전국 1위는 17조5152억원을 기록한 삼성물산 이었다. 2위는 현대건설로 11조7372억원, 3위는 대림산업으로 11조42억원 등 전국을 무대로 뛰는 굴지의 대재벌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전남 업체인 호반건설이 4조4208억원으로 당당히 전국 10위에 랭크됐다. 호반뿐만이 아니다. 중흥토건, 금호산업, 제일건설, 우미건설, 중흥건설, 라인건설, 보광종합건설 등 무려 11곳이 전국 100위 안에 들었다. 광주전남 최하위권 건설업체 평가액이 3000억원에 가깝다. 반면 전국 100위 안에 드는 도내 업체는 전무하다. 전북 1위 계성건설(주)이 채 2000억원이 안된다. 그 뒤를 이어 (주)신성건설, (주)제일건설, (주)신일, (유)한백종합건설, (주)대창건설 등이 1000억원이 넘어서고, (주)성전건설, (주)군장종합건설, (유)부강건설, 세움종합건설(주) 등은 900억원~500억원 가량된다. 전북혁신도시, 만성지구, 에코시티, 효천지구 등 최근 10년이내 개발된 전주권 중심 주요 택지개발지 4곳의 주택은 무려 2만세대가 넘는데 도내 업체는 단 한곳도 없다. 지난해 화두가 됐던 전북 몫 찾기가 보다 지속적으로 펼쳐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청와대 비서관급(1급) 이상 64명에 대한 분석 결과, 광주전남이 12명인데 전북은 2명이다. 차원이 좀 다른 이야기지만, 광주전남에서 태어나거나 그곳에서 고교를 다닌 사람이 도내에서 전북대총장이나 전북교육감을 하는게 현실이다. 반대로 전북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가 전남대총장이나 광주교육감을 한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너무 배타적이어선 지역 발전이 저해되지만 전북 몫을 내어주는 것 만큼 광주전남에서 가져오는 근성이나 지혜도 필요하다. 새만금공항 등 각종 사업뿐 아니라 정치권 헤게모니 확보과정에서도 전북이 도약하려면 앞으로 전남광주의 견제를 견뎌내야 한다.

  • 오피니언
  • 위병기
  • 2019.08.05 17:32

상산고가 주는 교훈

상산고 자사고 재지정을 놓고 모처럼만에 도민들의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물론 반대도 있었지만 교육부가 불법요소를 지적해서 결론을 냈다. 그간 지역 이슈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 우리 스스로가 이번처럼 강하게 움직인 적은 없었다. 상산고 학부모나 동창회를 제외하더라도 누가 시켜서라기 보다는 스스로가 알아서 일어났던 것. 그 만큼 상산고 자사고 유지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를 상대로 싸울 때 관이 뒤에서 사회단체 등을 움직이어서 반대운동을 펼친 적은 있었다. 바로 LH를 경남 진주로 빼앗긴 이후 범도민적으로 들고 나섰으나 성과는 별로였다. LH를 빼앗긴 이후 국민연금공단이 전북혁신도시로 왔을 뿐이다. 전북은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다. 촛불정치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기대했던 만큼 전북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고 지역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면 전북은 비켜 가고 다른 지역에 비해 투자규모가 적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처음에 기용됐던 장차관들이 퇴진했거나 퇴진할 예정이어서 중앙정치무대에 전북 출신이 많이 없다. 다행인 것은 1년짜리 국회 기재위원장 자리에 3선인 이춘석의원이 앉은 것을 비롯 바른미래당 정운천의원이 내리 4년째 예결위원이 된 게 눈에 띈다. 상산고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은 정의원은 혼자서 여야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아 유은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 한테 서명부를 제출해 큰 힘이 되었다. 정의원은 제헌국회 이래로 임기내내 예결위원이 된 3번째 의원으로 기록됐다. 이번 상산고 사태를 놓고 김승환교육감이 법적대응을 예고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시사점을 안겨줬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찌보면 권리 위에 낮잠자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DJ가 항상 강조해서 민주화를 이뤄낸 것처럼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줘야 한다.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때로는 침묵시위도 있지만 울때는 한 없이 울어대야 한다. 그간 도민들의 심성이 착하고 양반근성이 강해서 행동하는 측면이 부족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렸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도민들은 문 대통령이 낙후된 전북발전을 위해 알아서 잘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정치권 스스로가 알아서 해준 게 없다. 한여름 매미 마냥 고막이 터지도록 울어대야 한다. 부당하면 청와대 등 중앙정치권을 향해 울어대야 한다. 군산 꽃새우 어민들이 국회에 가서 크게 울어대서 농심을 굴복시킨 것처럼 힘 있게 울어대야 한다. 지금은 점잔만 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 아베총리를 굴복시키려면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강력하게 펼쳐야 한다. 이제는 사즉생의 각오로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 도민들이 김승환교육감의 적폐를 청산하려면 주민소환운동을 즉각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9.08.04 19:46

훈민정음 해례본의 행방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세종은 왼손에 책을 들고 있는데 그 책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원리, 이를테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그 용법을 한자로 설명한 글이다. 세종은 자신이 직접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의례 말고도 이를 더 상세하게 설명한 글 해례를 집현전 학사들에게 집필하게 했다. <훈민정음 정본>은 당초 의례와 해례본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셈인데, 아쉽게도 <세종실록>이나 <월인석보> 등으로 전해온 의례와는 달리 해례는 따로 전해진 것이 없어 그 실체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었다. 해례가 알려진 것은 1940년 훈민정음 정본이 발견되면서다. 덕분에 해방 후에는 해례본 내용이 대중들에게도 공개되었지만 그 실체는 자취를 감추어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천신만고 끝에 소장하게 된 간송본과 2008년 경북 상주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된 상주본 등 두 권이 전부다. 상주에서 발견됐다하여 이름 또한 상주본이라 이름 붙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다시 논란이다. 상주본은 운명이 지난하다. 국가와 원 소유자였던 골동품상, 그리고 현 소유자인 배익기씨가 10년 넘게 소송권 분쟁을 이어 온데다 지난 2005년에는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던 배씨의 집에 불이나 일부가 불에 타 훼손됐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판결했다. 소유권 분쟁이 일단락 된 셈이지만 분란은 좀체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씨가 1000억 원 배상을 요구하며 상주본 반환은 물론 실체를 공개하라는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상주본이 화재로 상당부분 훼손되어 전체 33장 가운데 13장 밖에 남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상주본에 안겼던 1조원 가치도 퇴색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주 개봉한 훈민정음을 만든 과정을 담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극중 한 장면이 생각났다. 집현전 학사들이 집필해 완성한 해례본을 세종은 신하들에게 널리 알려달라며 나눠주지만 한명을 제외하고는 훈민정음 창제 자체를 반대했던 신하 모두 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나가버린다. 그 빈자리에 남아 있던 책들이 훈민정음 해례본이었을 터. 그 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달랑 두 권, 그것도 한권은 훼손된 채 남아 있는 오늘날의 해례본 실체가 아쉽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9.08.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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