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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가 발명되어 생활화 된 것은 15세기 중엽이다. 활자시대가 개막되면서 책을 가까이 하는 활자인간(活字人間)도 대두되었다. 그 후 20세기 중엽에 텔레비전이 발명되었고 텔레비전 인간도 생겨난 것이다. '20세기의 의미'라는 책을 쓴 볼딩은 그의 책속에서 인류가 떠돌며 먹이를 채취하던 수렵 채취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든 이래, 활자인간과 텔레비전 인간의 단절을 대변혁으로 보았다.텔레비전 인간과 활자인간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자. 예를 든다면 소설 한 권을 읽을 때 소설속의 이야기는 한 줄거리로 받아들여지면서 정리되어 나간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그 줄거리와는 관계없는 다른 것 ,즉 상업광고나 긴급뉴스 등이 쉴 새 없이 끼어든다.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도 먹고, 어린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꾸지람도 듣고 심부름도 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공부해야 숙제가 잘 된다는 어린이들도 있다. 이렇게 내용과는 다른 상업광고나 긴급뉴스 등을 이물(異物)로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든 흡수해버리는 식의 텔레비전 인간은 사물이나 사리(事理)를 매듭짓는 한계능력이 무척 약화된다고 한다.그래서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을 스승으로 바라보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불연속(不連續)의 연속(連續)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체질화되어 지속력이 엄청나게 약화되기도 한다고 한다. 사물에 대한 주의(注意)가 자주 옮겨짐으로써 집중력과 끈기가 증발되기도 한다.텔레비전을 가까이 하는 텔레비전 인간은 잡다한 정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무조건 수용해버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경우, 60세 된 노인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그것이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지 않은 채 불균형 상태에서 엉뚱한 짓을 저지르는 '어른 아이'가 되기도 한다.그리고 텔레비전은 사람을 촉각인간(觸覺人間)으로 만든다. 텔레비전에서의 감각적인 말이나 행위, 또는 헤어스타일이나 옷 차림새 등이 그대로 수용되어 개성을 상실케 하여 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을 문제아(問題兒)로 만드는 텔레비전의 폐해(弊害)에서 벗어나는 길은 책을 읽는길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가을을 맞이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추석 화젯거리는 단연 안철수 교수였다. 기존 정치권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모처럼만에 한편의 짜릿하고 신선한 드라마를 봤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 같았다. 국민들은 현실 정치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진흙탕 싸움이나 일삼는 여의도 정치에 신물을 느꼈다. 날마다 당파 싸움을 한 탓에 국민들이 정치에 혐오를 갖고 있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할 지경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북도 예외가 아니다.도민들은 국회의원들에 불만이 많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사람들 갖고서는 지역발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이 임기중에 별로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야당으로서 선명성도 약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의지도 약했다는 것이다. 간판급인 정동영·정세균 의원과 다선 의원들이 주로 밥값을 못했다. 무작정 이 사람들만 믿고 따를 수가 없다는 논리다. 뭔가 전북에서도 안철수 교수 같은 새로운 인물을 찾아서 바꿔야 한다.원래 선거때가 다가오면 유권자들은 현역들을 바꾸고 싶어한다. 다선이랍시고 큰 정치한다고 목에다 힘만 잔뜩 주고 거드름이나 피우고 다니는 의원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팽시키는게 낫다. 다선 의원 만들기가 힘들지만 쥐 못잡는 고양이라면 도태시키는 게 현명하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그게 옳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감한 물갈이 결단을 내릴지는 의문이다.민주당은 지금도 지역정서를 강하게 믿고 있다. 자신들이 공천하면 된다는 식이다. 한나라당도 지역주의를 활용한 정치를 일삼고 있어 민주당도 같은 방식으로 가고 있다. 설령 유권자들이 바꾸고 싶어도 공천권을 당에서 틀어쥐고 있어 자칫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론은 민주당에서 여론에 반하는 공천을 하면 가차없이 민주당 공천자라도 떨어뜨려야 한다.도민들도 안철수 교수의 신선함만 맛보고 끝나선 안된다. 잘못 뽑아 임기 내내 후회하지 말고 선거 때 잘 뽑아야 한다. 누구를 뽑아야 지역이 발전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정치가 썩었다고 불평 불만만 늘어 놓을 일이 아니라 선거 때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하다. 음습한 곳에서 뒤통수나 치지 말고 목에다 방울 달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북을 바꿀 수가 없다. 잘못하는 국회의원을 바꿔야 전북이 산다./ 백성일 주필
예전 같으면 쿵덕 쿵덕 올기쌀 찧는 소리가 들릴 때다. 한가위 무렵, 농촌에선 본격 추수에 앞서 올기쌀을 만들어 먹었다. 햇벼를 맛보고픈 마음에서도 그렇고, 식량이 떨어져 배를 채우기 위해서도 그러했다.올기쌀 만드는 일은 덜 익은 올벼를 베는 일부터 시작했다. 낫을 숫돌에 싹싹 갈아 논 귀퉁이의 벼를 베어냈다. 이것을 홀테에다 대고 훑었다. 요즘은 농업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60·70년대만 해도 시골엔 홀테없는 집이 없었다. 이후 탈곡기가 나와 발로 밟으면 씽씽 돌아가며 일손을 덜었다.이렇게 훑은 나락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쪄냈다. 쪄낸 알곡은 마당에 펴 놓은 멍석에다 말렸다. 너무 바싹 말리면 좋지 않았다.이것을 절구통에 넣어 찧거나, 디딜방아로 가져가 찧었다. 한번 찧은 나락을 키로 까불러 벗겨진 껍질을 날려보내고 다시 찧었다. 키질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쌀 한톨 나가지 않고 껍질만 솔솔 내보내는 게 고수급이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올기쌀은 요긴하게 쓰였다. 한가위가 빨라, 아직 나락이 여물지 못해 추수하지 못할 때는 제사용으로 사용되었다. 또 별다른 군것질 거리가 없던 시절 좋은 간식이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입이 궁금할 때마다 한 웅큼씩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뒷마당의 감이 아직 익지 않은 철에 귀한 손님이 오면 접대용으로 내놓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들에게 고향의 햇곡식으로 한 두되씩 보내주면 그렇게 좋아했다.이러한 올기쌀도 옛 얘기가 되었다. 쌀 자체가 천덕꾸러기가 된 탓이다. 1500년 이상 우리 민족의 주곡 자리에 있던 쌀의 위상이 추락한 것이다. 쌀 소비량도 급감하고 그 자리를 피자와 빵이 위협하고 있다. 육류와 과일 소비량도 급증했다.그나마 올해는 지난 여름 오랜 폭우와 태풍, 병충해 등으로 수확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쌀값이 조금 오를 기미가 보이자 정부는 쌀값 하락정책을 펴 농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단체에선 공공비축미 출하 거부 등에 나설 태세다.얼마 전 재래시장 옆을 지나다 한 할머니가 올기쌀을 파는 것을 보았다. 옛 생각에 덥썩 사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참았다. 치아도 성치 않은데다 사간들 환영할 사람이 없어서다. 애써 외면하는 스스로를 보며 농촌의 운명을 떠올렸다./ 조상진 논설위원
한국은 33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제일 높은 '자살 공화국'이다. 국내에서 하루 평균 40여명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한 시간에 약 2명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심각성 때문인지 정부는 10일을 자살 예방의 날로 정했으며 '자살 예방법'도 얼마전에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OECD 국가 중, 자살률 2위는 헝가리이다. 헝가리의 높은 자살률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름이 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인의 자살에는 일화도 많다.레조 세레스(Rezso Seres)라는 헝가리 작곡가가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이라는 곡을 작곡했는데 이곡이 1936년 4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되었다. 이곡을 연주한 오케스트라의 드러머가 연주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자기 머리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뒤를 이어 금관악기 연주자들도 자신의 곡을 연주한 뒤 드러머의 뒤를 따라 자살을 했다고 한다. 또 이곡을 작곡한 작곡가 역시, 사랑에 실패한 나머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 또 이곡이 발매되자 2개월만에 187명이 자살했다고 한다.그래서 헝가리 정부는 이 곡을 발매 금지시켰다고 한다. 헝가리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1930년대 이후 급변하는 유럽의 역사 속에서 가족제도 및 사회규범의 혼란에 따른 헝가리인의 고통에 두기도 한다. 춥고 축축한 날씨도 자살에 한몫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과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자살을 살인과 맞먹는 중죄(重罪)로 보았다. 자살 미수자를 교수형에 처했고, 자살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체를 말이 끌도록 하여 만인에게 공개했다. 심지어 자살자의 재산은 국왕이나 봉건영주가 몰수했으며 교회 묘지에 매장되는 것도 하락치 않았다. 단테의 '신곡(神曲)'에서도 자살자는 지옥에서도 살인자와 똑같은 중벌을 받게 되었다.우리의 경우,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성(城)안에 있는 선비들은 자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했다. 결국은 자살은 신체를 준 부모의 은혜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적(敵)의 칼에 쓰러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요즈음, 자살자의 44%인 청소년의 자살은 생에 대한 나약한 의지에서 연유된다고 본다./ 장세균 논설위원
19대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섰다. 이미 지역서는 정치 신인들이 얼굴을 알리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말했듯이 '국회의원 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고 했다. 선출직은 유권자의 맘을 얻어야 하는 동냥 벼슬이라서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마냥 출사표만 던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심드렁한데 당사자들은 천방지축 설쳐댄다.중국 당나라 시대 이래로 인물 됨됨이를 신(身)언(言)서(書)판(判) 4가지로 판별했다.국가가 인재를 골라 쓸 때도 이 기준을 적용했다. 되새겨 보면 지금도 이 기준이 들어 맞는 것 같다. 첫째로 생김새 즉 외모가 잘 생겨야 한다. 요즘같은 비주얼 시대에는 잘 생긴 외모가 경쟁력이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얼굴이 잘 생겼다. 정동영 의원도 앵커와 잘 생긴 외모 덕을 톡톡히 봤다. 다음으로 언과 서는 소통능력을 말하고 판단력을 높이 쳤다.요즘 전주와 무주 진안 장수 임실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입지자들로 넘쳐난다. 선거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간 민주당이 20여년간 일당 독주를 해온 탓에 유권자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을 염두에 둔 정세균 최고위원이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옮긴다는 발언이 퍼지면서 입지자들이 많아졌다.무 진 장 임실 지역구는 변호사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면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마치 군 대항 레이스를 펼치는 것 같다. 정최고는 공천기준을 '지역은 물론 중앙서도 통할 사람이면 된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채수찬 전 의원의 전략공천설이 한때 나돌았다. 입지자 가운데는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전략공천이냐'며 '그건 말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한편으로 야권 통합을 앞두고 국민참여당에 내줄 자리라고 관망하는 사람도 있다.전주는 더 가관이다. 정 최고위원의 덕진만 조용하고 완산 갑·을은 뜨겁다. 깜도 안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하겠다고 난리다. 학·경력은 물론 신언서판도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 깝죽거린다. 그렇다고 중앙과 소통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지역 여론도 별로인 사람들이 살랑거린다. 아직껏 나 가수다 보다는 '숭어가 뛰니 망둥어가 뛴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백성일 주필
태권도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 무예이자 대표적인 무술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단지 심신을 단련하는 무도의 범주에 그쳤다. 태권도가 스포츠로 발전한 건 1961년 9월16일 대한태권도협회가 결성돼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 등록되면서 부터다. 1973년엔 세계태권도연맹이 결성되고 이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림으로써 명실상부한 국제스포츠로 발돋움했다.태권도는 우리나라를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시킨 효자다. 북한과 일본의 견제를 뚫고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메달 밭이 됐다. 1994년 IOC는 태권도를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태권도협회가 창설된 뒤 33년간 태권도 인들이 쏟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고난과 역경의 개가였다. 이때부터 태권도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솟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태권도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글로벌 스포츠가 됐다.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된 태권도 회원국은 189개 국에 이르고 회원 수만 해도 7000만 명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태권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그제(4일)가 '태권도의 날'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태권도연맹(WTF)이 2006년 총회에서 9월 4일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이 날을 전후해 기념식과 문화 축제 등 여러 행사들이 펼쳐졌지만 정작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속될 것인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뒤따라야 하는지 등에 대해선 고민이 없다. 올림픽 종목에서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또 태권도 메카로 조성되는 무주 태권도공원 성지화 작업 역시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지도 관심 밖이다.2009년 태권도의 날에 기공식을 가진 태권도공원(231만 4000㎡) 사업은 공정률이 15% 안팎이다. 2017년 완공 예정인 6000억 짜리 공사에 지금까지 투자된 예산은 817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도 기대난망이다. 이런 걸 보면 출범 첫해에 이미 '태권도 명품화'를 선언한 정부 답지 못하다.태권도 순례와 수련의 장으로 조성함으로써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높이고 대한민국 대표 문화브랜드이자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 이경재 논설위원
정몽구 현대 자동차 그룹 회장이 개인 보유의 5000억원 상당의 현대 글로비스 주식을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이렇게 많은 금액을 기부 할 때는 본인의 상당한 결심도 필요했을 것이다.우리는 흔히 존경받는 부자로 경주 최부잣집을 예로 든다. 경주 최부잣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家訓)이 있는데 '벼슬을 하되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마라. 재산을 모으되 만석 이상을 지니지마라. 지나는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마라' 등이다.경주 최부잣집이 존경의 대상으로 부상되었던 것은 역으로 조선사회의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백성들에게 무척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 사회의 관리들은 수탈이나 세금포탈을 통해서 대부분 재산을 모았던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부자들의 기부행위는 드물었을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심심찮게 독지가들의 기부행위가 미담이 되고 있다.한국과 마국의 기부문화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아직도 청산형 단순 기부가 많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서 가끔 볼 수 있는 것은 한평생 삯바느질을 하며 혼자 산 할머니가 못배운 것이 한이 되어 죽기전에 자기 재산 전체를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식이다. 미국은 기부행위가 생활화 되어 일상적으로 조금씩이나마 기부를 한다.1980년도 미국 NGO 협의체인 인디펜던트 섹터가 미국인의 기부에 대해서 조사를 한 바 있는데 미국인의 약 13%가 자기 수입의 5%를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것이며 14%는 일주일에 5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중하층 사람들의 기부총액이 상류 부유층의 기부총액보다 많다고 한다. 미국 가정의 70%가 매년 1000달러, 한화로 약 130만원 정도를 사회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2000년 아름다운 재단이 한국인의 기부와 자원봉사에 대해서 여론조사를 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 성인들은 연 평균 10만원을 사회에 기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인과 미국인들을 비교하면 기부활동에 있어서는 미국인의 6분의 1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그만큼 미국인보다 이기적이고 타인의 삶에 관심이 적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20여 년전 두차례에 걸쳐 일본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미야마(美山)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쓰마 도자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14대 심수관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의 선조는 정유재란 당시인 1598년 남원성에서 다른 도공(陶工)들과 함께 이곳으로 끌려 와 정착했던 것이다.'사쓰마야끼가(薩摩燒家) 14대(代) 심수관(沈壽官)'이란 문패가 붙어있는 대문을 지나 들어간 그의 집은 고풍(古風)이 감돌았다. 집 안팎이 왕대나무로 덮여 있고 도자기를 굽는 가마들이 가지런히 엎드려 있었다.작업복 차림으로 우리 일행을 맞은 그는 차를 마시며 여러 얘기를 나눈 후 이 집의 보물인 수장고(收藏庫)로 안내했다. 2층으로 된 수장고에는 초대부터 14대에 이르는 갖가지 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초대에서 9대까지의 작품은 소박해 보였다. 특히 초대 심당길의 작품인 찻잔은 흙과 유약을 조선에서 가져왔고 불과 물만 일본에서 조달한 것이어서 의미가 각별했다. 이후의 작품은 그림과 색채가 화려했다.사쓰마 도자기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대 심수관이 1873년 오스트리아 만국박람회에 출품하면서 부터. 이 박람회에서 유럽인들은 사쓰마 도자기의 정교하고 뛰어난 예술성에 감탄했다. 당시 출품했던 높이 1m 55㎝의 대화병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어 1902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도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또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끌려왔던 우리 조상들이 배웠다는 한글교본이었다. 그는 한어훈몽(韓語訓蒙) 교린수지(交隣須知) 숙향전 표민대화(漂民對話) 등을 들고 와 직접 설명해 주었다.이후 그는 한국명예총영사에 임명되었다. 1998년에는 납치 400년을 기념해 400년제(祭)를 가졌다. 역대 작품을 모아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고 남원에서 불씨를 채화해 일본으로 가져가는 이벤트로 큰 관심을 모았다.심수관 가문의 고난과 영광은 한일 양국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한국인 핏줄이 만들고 일본인이 키워 온 예술혼은 앞으로 양국이 나아갈 방향까지도 제시해 주고 있다.마침 부안 대명리조트에서 제13회 한·중·일 지방정부 교류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가고시마현 이토 유치히로(伊藤祐一郞) 지사가 참석해 400여 년 전의 일을 언급하며 교류 활성화를 강조했다. 새삼 한·일은 가깝고도 먼 나라임이 느껴졌다./ 조상진 논설위원
사회에서 남자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어 가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의 남자의 역할은 여성에 비해 절대적이었다. 농경사회가 가장 필요로 한 것은 노동력이었다. 신체적으로 남자의 우월한 힘은 노동력의 원천이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 인간이 철(鐵)을 다루었던 철기시대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전쟁의 주체는 바로 남자였다.어느 사회에서나 전쟁의 주체에게는 사회적 발언권이 주어졌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민주주의 발달 원인 중 하나도 군대 조직이 말을 주로 사용하는 기갑부대에서 일반 평민도 참가할 수 있는 보병제도로 전환됨으로써 평민의 발언권이 강화되었던 것이다.세계 미래회의 2008년 행사에서 에어미 블란드라는 미래학자는 '남자의 미래, 남자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에서 남자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남자의 염색체 중에 Y염색체가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진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사회변화를 보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일자리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미국의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도 남자 선수 못지않는 레슬링 기술을 여자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자가 하던 요리나 육아를 남자들도 즐겨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가 활발히 진행중이다.젊은층 남자들의 귀고리 현상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남성의 성징(性徵)인 턱수염이나 구레나룻을 젊은층 남자들의 열굴에서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서양에서는 지난 13년간, 금요일 5시에 나가서 월요일까지 스포츠를 즐기는 남자들이 많았는데 지금도 이런 식으로 여가를 즐겼다가는 이혼당하기 십상이다.과거의 전통적인 이상적 남자상은 여자를 보호하고 건장하고 튼튼한 체격을 가졌으며 용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남자는 돈을 벌어와서 집안 경제를 꾸려야 했으며 강력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공격자·지배자 같은 면모를 가져야 하며 지식도 풍부해야 하고 아울러 주위를 지배하며 화합을 도모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 디자이너 등 많은 분야는 남성의 힘을 필요치 않는다. 전통적인 남성상은 이제 빛바랜 사진이 되어가고 있다./ 장세균 논설위원
광주 전남 사람들은 단합이 잘 된다.지역에 큰 일이 생기면 유지들이 앞장서서 힘 모아 해결한다.지역발전을 위해 중앙 정치권에 로비가 필요하면 업체들이 로비자금을 마련해서 적극 나선다.중앙서도 광주나 전남에서 왔다면 일단 관심을 갖는다.그들은 비판적이면서 적극적이기 때문이다.서울서도 호남향우회하면 단합 잘되는 조직으로 손꼽는다.여기서 호남향우회는 광주 전남 특히 고흥군 향우회를 지칭한다.우리 전북은 어떤가.힘들게 살아서인지 잘 뭉쳐지질 않는다.어른도 없고 기업하는 사람들이 나서는 것도 별로 없다.뒤통수 치는 사람만 많다.앞에 나서면 잘난체한다고 총질하고 나서야할 때 또 안 나서면 안나선다고 돌 팔매질 한다.이런 분위기라 처세하며 살기가 어렵다.대신 진정 투서가 많다.불신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산업화가 미진해 지역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이다.그간 도내 정치권을 보면 꼴불견이다.민주당이 20여년간 일당 독주를 하며 잘 해먹은 탓이 크다.지역에서 완장차고 세도깨나 부렸다.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종술이 마냥 기세등등 했다.지방의원만 되면 무슨 큰 벼슬이라도 한양 목에다 힘주고 다닌다.눈꼴 사나워 못볼 지경이다.주민들이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고 폼만 잡는다.집행부 직원들을 마치 종 다루듯이 한다.심지어 도의원들이 국장 한테 재털이 심부름까지 시켰지 않았던가.이 같은 원인은 지역에 어른들이 없고 국회의원들이 잘 못하기 때문이다.사실 LH때 전북의 치부가 까발려졌다.전술과 전략부재가 통째로 드러났다.여당 대통령후보까지 지낸 국회의원이 청와대 담벼락 밑에 가서 데모를 했으니까 말이다.어른스럽지 못했다.남들이 보면 깔깔댈 이야기다.한편의 코미디였다.정치권도 내년 총선 때문에 얼쩔 수 없이 면피하러 따라 다녔다.지금 전남은 박지원의원을 민주당 대표로 만들기 위해 똘돌 뭉쳤다.박주선의원도 나섰지만 박지원의원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전북 같으면 어떻게 할까.정동영·정세균최고위원부터 마이웨이다.외연 확대를 통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각개약진할 수 있지만 꼭 좋게만은 안 보인다.지난 전주 국회의원 보궐선거때 공천을 놓고 두 최고간에 루비콘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두 최고가 앙금을 풀고 빨리 손잡아야 전북 정치권이 살 수 있다./ 백성일주필
"의원들 몫의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아예 한푼도 편성하지 않았더니 의원들이 난리가 났다. 안달이 난 의원들이 '예산심의 때 두고 보자'는 등 별의별 궁리를 다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예결위원장이 찾아와 의원들의 예산을 세워 달라고 하소연하더라."어느 자치단체의 군수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의원 몫의 예산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도도 아닐 뿐더러 군민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군수의 생각이었다.한 해 살림의 칼자루를 쥔 예결위원장의 요구를 집행부가 무시한 것도 놀랍지만, 예산심의 책임자가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군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몫을 배려해 달라고 하소연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의원들이 예결위원장을 군수한테 보내 자신들 몫의 주민숙원사업비를 편성해 달라고 '간청'하는 촌극이 벌어졌다면 의원들한테는 그만큼 요긴했을 것이다. 도대체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뭐길래?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은 마을 안길 포장이나 하수구 정비, 도로개설 및 확포장, 선착장 조성, 저장시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신축 등 규모가 작은 사업을 이른다. 주민 민원성 사업도 있고 선심성 사업도 있다.이런 사업들은 대개 단체장이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재량사업비에서 집행된다. 그래서 단체장 호주머니 돈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돈 일부를 의원들이 자기 몫으로 돌려 쓰겠다는 것이다. 예산심의권을 무기로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전북도는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연간 4억 원씩 책정해 놓고 있다. 의회 부활 초기엔 5000만원이었던 것이 이처럼 불어났다. 전북교육청도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1억 원씩 배정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의회의 예산심의권에 대한 댓가성이다.이 예산이 문제가 되는 건 생색내기용, 선거운동용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수의 계약인 데다 시공업체는 해당 의원한테 리베이트를 건네는 경우도 있어 비리 개연성도 있다.최근 도의회가 의원 몫의 주민숙원사업을 풀예산 대신 개별사업에 넣겠다고 했다. 그래도 '의원 몫'이라는 건 살아있다.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핵심은 '의원 몫'을 없애는 건데 이걸 실행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그러고도 집행부한테는 예산편성의 잘못을 따지며 떳떳하게 행동한다./ 이경재 논설위원
노동자들이 데모를 할 때는 으레 머리띠를 묶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노동자 역시도 데모때 머리띠를 두르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또 머리띠에는 여러가지 구호나 요구 조건이 쓰여져 있다. 머리띠를 두르는 데에는 몇가지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첫째는 긴장의 표시로 머리띠를 두른다는 것이다. 머리를 묶으면 뇌신경을 자극하여 주의력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흔히 수도하는 사람들이 머리띠를 두르는 것도 똑같은 이치일 것이다. 둘째는 결의나 의지의 표시로 머리띠를 두르는 것이다. 셋째는 서로가 뜻을 같이하여 죽음과 삶을 같이하는다는 동심(同心)과 결심(決心)의 뜻이 머리띠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옛날에 의적(義賊)이나 화적(火賊)의 일당이 흑두건(黑頭巾)이나 백두건(白頭巾)으로 머리띠를 똑같이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학혁명때 동학군(東學軍)도 고깔형 머리수건을 씀으로써 합심(合心)을 나타내기도 했다. 넷째는 나쁜 사귀(邪鬼)를 막는 예방수단으로 머리띠를 둘렀다고 한다.옛날에 신성한 제사음식을 만들때 부엌에서 일하는 주부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일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생선 횟집에 가보면 주방장이 왼쪽으로 꼰 머리띠를 두르고 작업을 하는데 이것도 병마(病魔)가 침입을 못하게 하기 위한 전통이라고 한다. 이런 머리띠를 노동쟁의나 데모에 도입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도 한다.중국 역사책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진(秦)나라의 무신(武臣)들이 머리띠를 두른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뒤에 와서 문신(文臣)들도 머리띠를 둘렀다는데 무신과 구별하기 위해 머리띠 길이에 차이를 두었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 벽화에도 남자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새의 깃털 두 개를 꽂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일본의 병서(兵書)인 '고충군진개서(高忠軍陣開書)'에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머리띠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온다는데 색깔별로 하얀색, 검은색, 파란색, 붉은색, 그리고 머리띠의 길이와 폭, 매듭, 좌우 어느 쪽에 매는가에 대해서도 100가지가 있다고 하며 이로써 사무라이의 신분과 계급, 심지어 출신지방, 병과(兵科)까지도 구분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데모때 두르는 머리띠는 일본식과 비슷하다고 한다./ 장세균 논설위원
고추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식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담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요즘 널리 애용되는 떡볶이나 각종 찌개의 맛을 내는데도 필수품이다.또한 민간에서는 간장을 담근 뒤 장독속에 붉은 고추를 집어 넣었고, 아들을 낳으면 새끼줄에 붉은 고추와 숯을 걸어 악귀를 쫓았다.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열대에서 온대에 걸쳐 널리 재배되며, 한해살이인 우리나라와 달리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다.고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으나 임진왜란 후쯤으로 추정된다. 고추에 관한 최초 기록인 '지봉유설'(1614년 편찬)에는 "만초(蠻椒)는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 '왜겨자'라고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다른 문헌에는 중국에서 전래됐다고도 하고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 갔다는 문헌도 있다. 또 조선시대 어의 이시필(1657년∼1724년)의 '소문사설'에는 순창고추장의 제조법이 최초로 기록돼 있다.고추는 만초(蠻椒) 이외에도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 왜초(倭椒), 랄가(辣茄), 당초(唐椒), 고초(苦椒) 등으로 불렸다.고추의 특징은 매운 맛인데 이는 캡사이신이라는 염기 성분 때문이다. 최근 매운 맛에 익숙치 않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이어트 효과가 알려지면서 인기 폭발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황산화(세포 노화방지), 항균, 진통, 스트레스 억제, 면역 증강, 가려움증 치료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매운 맛인 캡사이신이 암 발생을 촉진한다는 상반된 연구도 있다.요즘 고추값이 심상치 않다. 여름 폭우와 태풍 무이파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고추가 썩고, 병들고, 절로 떨어져 수확량이 신통치 않아서다.'금초'라 불릴 정도다.지난 해 600g 1근에 6000원이면 살 수 있었으나 올해는 1만5000원을 넘어 2만 원에 육박한다. 그래서 고추장을 만드는 순창지역 장류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순창전통고추장의 판매가는 1만8000원으로 이 중 고추성분이 1/3을 차지한다. 이를 원가로 환산하면 6000원 정도여서 고추장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하소연이다.그러나 정부는 고추값이 들먹이자 9월초께 값싼 중국산 고추를 대량방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래저래 농민들만 힘들어지게 생겼다./ 조상진 논설위원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의 두번째 방문국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4억 6000만달러, 한화로 약 4조 5000억원 규모의 자원 개발에 합의했다고 한다. 수르길 가스전 개발과 가스 화학 플랜트 건설에 합의한것이다.우리나라의 지명을 보면 온(溫)자가 붙은곳에는 대부분 온천수가 났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온양(溫陽)과 금강산 온정리(溫井里)라든가 강화 길상면, 온수리(溫水里)에서도 따뜻한 온천수가 나왔던 것이다. 울진의 온정(溫井), 당진의 온동지(溫洞池)등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옛문헌에 의하면 탈나무도 또 풀섶도 없는 맨땅에서 몇달씩 연기를 품어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든다면 신라 진평왕(眞平王) 31년, 정월에 경주 동해안쪽에 있는 모지악(毛只岳)에서 폭 4보, 길이 8보, 깊이 5척의 별반 크지 않는 구덩이에서 불이 타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에 관계없이 연중 계속 타오르다가 10월에야 불길이 멎었다고 한다. 신라 태종때도 경주 토함산 기슭에서 3년간이나 땅이 탔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경주의 동해안 일대인 포항, 울산, 울진 바다가까이 있는 땅이 불탄 기록이 빈번하게 나온다고 한다. 세종때 영해부(寧海府)에서 땅이 탔다는 기록과 더불어 성종(成宗) 14년에도 영해땅의 한 구덩이에서 밤과 낮으로 불이 뿜어졌다는 사실이 상세히 실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 불구덩이의 길이가 8척이고 폭이 20척인데 낮에는 연기만 나고 밤에는 불빛이 보였다고도 한다.조정에서는 내관(內官), 이효지(李孝智)를 보내 답사케했는데 그 불구덩이 둘레 수백보가 마치 온돌방처럼 달구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주의를 끄는것은 바다 가운데서도 불이 타올랐다는것이다. 경주 토함산 맞바레기, 문무왕이 호국룡(胡國龍)이 되어 묻혔다는 수중릉(水中陵)인 대왕암(大王癌)이 인조 15년에 불타올라 바위가 부서졌다고 한다.여기서 주목을 끄는것은 땅이나 바위가 탔다는 지점이 거의 포항, 울산, 경주 앞바다인 대륙붕 제6광구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발견돤것은 천연가스로 보는것이 타당할것이다. 앞으로도 지명(地名)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바람 끝이 달라졌다.제법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다.불을 넣고 홑이불이라도 덮어야 잠 잘 수 있다.어제가 가을로 깃드는 처서였다.'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있다.결실로 접어 드는 때라 비가 오면 흉작이 들기 때문이다.지난 여름은 여름이 실종되다시피 많은 비가 내렸다.정읍에 기록적인 420㎜의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를 겪었다.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따갑다.그래야 곡식이 영글고 고추도 말리고 옷도 말리고 책도 말릴 수 있다.농가월령가에서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灑)하소"라고 권하고 있다.포쇄는 바람에 쐐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한자 '처(處)'는 머물러 정지한다는 뜻이어서 곧 더위가 머무는 때가 처서다.농가월령가 7월령에도 '늦더위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쏘냐'하며 풀죽은 염(炎)장군을 조롱했다.지구온난화로 기후 변동이 심해 처서가 지나도 국지성 호우와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란 예보가 있다.워낙 비가 많이 내려 기청제(祈晴祭)까지 지내야 할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었다.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끊이지 않고 자주 내려 따가운 햇볕이 그렇게도 그리웠다.햇볕은 생명이다.햇볕이 이렇게 귀한줄 미처 몰랐다.지금부터의 햇볕은 다른 때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주여,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성시켜,마지막 단맛이/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이하 생략.실로 지난 여름은 고통스러웠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로 서민들의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장사하는 사람들도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이었다.김현승(金顯承)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생각난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이하 생략.지난 여름 비 맞아 지쳐버린 맘들을 이 가을 에 포쇄해서 비워 놓으면 어떨까.백성일주필/ 백성일 주필
문화 유적의 보고로 유명한 이집트나 이탈리아, 그리이스 같은 나라들을 방문하면 조상 덕에 먹고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소비하는 돈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또 관청에 등록된 자국의 관광안내인을 동반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도록 제도화시킴으로써 일자리와 소득창출 효과를 거두고 있다.중국도 죽은 사람이 산 사람 먹여 살리는 나라에 속한다. 5000년 역사 문화유적의 도시 시안(西安)엔 진시황 능과 진시황의 가상 지하궁전인 '진능지궁(秦陵地宮)', 진시황 능에서 1.5㎞ 떨어진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있다. 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한 병마용 박물관에는 하루 3만명, 피크 때에는 5만명이 찾는다. 입장료도 3만원이나 된다. 훗날 진시황 능을 발굴하면 이 곳을 찾을 관광객도 부지기 수에 이를 것이다. 시안은 경주와 자매결연을, 시안의 한 중학교는 전주 완산중학교와 홈스테이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는 비싼 편이다. 관광 가용경비가 100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입장료가 10∼20원 꼴인데 비해 중국은 80∼90원이다.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드니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미약하다. 이러니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다.경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廟), 조경단(肇慶壇)이 있는 전주는 조선 왕조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이 있는 곳이다.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태조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1410년(태종 10년)에 창건했다가 불에 탄 뒤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됐다. 면적이 49,590㎡에 이른다.경기전에 있는 조경묘(지방유형문화재 16호)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고, 전주 덕진 건지산에 있는 조경단(지방기념물 3호)은 전주 이씨의 시조 묘소다.전주시가 한옥마을의 대표적 문화재인 경기전 관람을 내년부터 유료화할 모양이다.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전주시민은 50% 할인)을 검토하고 있다. 관람료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영향이 문제다. 지역 상권에 미칠 파장도 있다.돈 주고 관람할 만한 게 있느냐는 논쟁은 접고서라도 관광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얄팍한 정책일 수 있다. 볼거리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한옥마을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것 같아 얄밉다./ 이경재 논설위원
교육에는 인성교육과 전문 지식교육으로 크게 나눌수 있다.그러나 이제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사실 학무모들이 이를원치도 않는다. 과거, 못살던 시절에는 점심 도시락을 못가지고 온 동료 학생이 있으면 같은반 학생들이 자기 도시락의 일부를 덜어서 나누어 주었던 인정도 있었다.이것이 약자를 위한 정의감이다.그러나 지금은 가난한 학생을 반 교실에서부터 왕따를 시키는것이다. 학원강사는 시험문제풀이 기술자들이고 EBS방송은 시험문제 정답찾기 공중파이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에 의하면 아이들은 아버지한테서는 이성(理性)과 절제를 배우고 어머니한테서는 감성(感性)을 배움으로써 하나의 균형잡힌 인격체가 될수있다고 했다.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란 존재는 희미하고 엄마들의 위세가 당당하다.지나친 모성애(母性愛)가 자식에 대한 잘못된 과잉보호로 갈수가 있다.이땅의 엄마들의 과잉보호는 초등학교 조기유학을 낳았고, 심지어 대학 입시에 고교 내신 성적중, 봉사활동 성적이 좋아야한다고 하니까 자기 자녀는 학원에 보내놓고 어머니가 자녀대신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다는것이다엄마들의 지나친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거친 언어사용을 낳게 하고도 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펴면서 어느 학생이 말하길 "어떤 년이 이렇게 도시락을 쌓지?"라고 했다는데 이때 "어떤 년"은 자기 어머니를 빗대어 말한것이다. 요즈음 엄마들의 과잉보호의 저의를 본능적으로 자녀들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있다.암사자는 자식을 훈련시킬때 자기 체구보다 작은 짐승을 추격하면 어미 사자가 뒤따라가 뒷발질로 낚아채 공중회전을 시켜버린다고 한다. 치사스럽게 굴지 말라는것이다. 그후 먹이를 못잡아 굶더라도 어미사자는 먹이를 나누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절제된 모정(母情)을 보여주는것이다.바로 사자의 교육법이다. 83년도에 대구 동물원에서 5년된 암사자가 자기를 잘 길러준 사육사를 물어죽인일은 과잉보호속에서 자란 아이가 가정폭력으로 부모에게 대드는 이치와도 비슷한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14~16세기 일본은 센고쿠(戰國)시대로, 막부(幕府)가 실권을 잃고 각 지방으로 분열된 시기였다. 일본 연안일대의 생활이 궁핍한 중소 무사나 농어민들은 해적이 되었다. 이들이 왜구(倭寇)로,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에서 주로 식량을 약탈했다.한반도에서의 활동시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가 심했다. 이들은 선단을 이루어 연안마을을 습격했고 때론 내륙 깊숙이 쳐들어 오기도 했다. 그 중 고려 말 우왕 때가 가장 극심했다. 우왕 재위 14년간 침략 횟수는 무려 378회에 이르렀다.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던 것이다.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침략이 진포(鎭浦)해전이다. 이들은 우왕 6년(1380년), 지금의 군산과 서천 사이 금강일대에 500척의 배를 몰고 나타났다. 이들은 배를 밧줄로 엮어 병사들이 나누어 지키는 한편 육지로 올라가 약탈을 자행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이때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덮고 노략질한 곡식을 배에 실어 나르다가 땅에 버려진 쌀이 한 척(尺)이 넘었다"고 한다.다행이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火砲) 덕분에 적선은 한꺼번에 불타버렸다. 왜구들 역시 태반이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일부가 옥천으로 달아나 먼저 상륙한 왜구들과 합류했다. 다시 전열을 정비, 상주를 거쳐 함양에 집결, 남원까지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이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양광·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 왜구 토벌작전에 나섰다. 양측은 운봉 넘어 황산 서북쪽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격전 끝에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두목으로 한 왜구를 물리쳤다.처음에는 왜구의 수가 고려군보다 10배가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 살아 남아 지리산으로 도망갔고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에 달했다. 이것이 황산대첩이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 오목대에 들러 종친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조선 창업의 뜻을 밝혔다.이곳 운봉읍 화수리에는 1577년 황산대첩비가 세워졌다. 청일전쟁 때 일본이 이를 파괴했으나 정부가 1977년 새로 복원(사적 104호)했다.이를 기려 운봉애향회가 1986년부터 황산대첩축제를 벌이고 있다. 광복절에 열리는 이 축제는 당시 전쟁을 현장감있게 재현,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조상진 논설위원
독도는 구호나 행사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친한파(親韓派,) 일본 교수는 독도문제에 대해 한국이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사용하는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쓰지말도록 충고한 바도 있다.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빼고 당당하게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라는 것이다.갑작스런 정치인의 독도 방문도 독도 해법에 별 도움이 되지않는다. 이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재미교포 박사 한 분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군국주의 부활로 규정하고 전세계가 합심하여 일본의 야욕을 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그 서한속에는 '독도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이며 아시아의 정복이 러시아의 정복의 길이고 러시아의 정복이 미국을 정복하는 것이라는 게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정한론(征韓論)이다'라는 주장이 실렸다는 것이다.일본은 전통적으로 국내 문제의 해법을 외국 침략으로부터 찾았다. 백년간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에게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수많은 무사들에 대한 토지분급 문제였다. 분급해 줄 토지가 절대 부족하자 이것을 해결키 위해 조선 침략을 서둘렀던 것이다.아시아의 종주국, 중국이 19세기 초에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다. 중국의 참패는 그 당시 일본 막부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후 일본은 미국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미일 화친조약'을 맺은후 산업화된 서방의 개방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한국침략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이 일본 국학자 길전송음(吉田松陰), 일본말로는 요시다 쇼닌이다.요시다 쇼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숨을 거둔 '이토오 히로부미'다. 요시다 쇼닌은 그의 외정론(外征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북(東北)블럭은 지맥(支脈)이 접속해서 통합할 수 있다. 삼한(三韓), 임나(任那) 등은 지맥이 접속되어 있지 않다하더라도 형세가 대치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들이 올 것이다.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와서 예측할 수 없는 걱정을 야기할 것이다." 정한론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전북에서 여당인 공화당 표가 많이 나왔다. 박정권 시절에는 여촌야도(與村野都)현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노태우와 3김이 대통령선거에서 세대결을 벌이면서부터 지역감정이 악화돼 경상도에서는 민주당이 전라도에서는 한나라당 표가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현상은 20여년이 지나면서 고착됐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도 이명박 후보가 전북에서 한 자릿수 밖에 표를 얻지 못했다.그간 역대 대통령선거는 물론 총선서도 지역감정 선거가 실시돼 특정당이 독식하는 싹쓸이 구도가 만들어졌다.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호남에서는 누구나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에 당선 되는 것은 떼논 당상이었다. 영남에서도 비슷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 때도 똑같았다. 다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한나라당으로 지사 선거에 출마해 18.2%라는 기록을 세웠다.그 때 그가 두 자릿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 일당 독주 체제에 대한 반감과 남성고 동문들의 헌신적인 선거운동, 그리고 장관 했다는 경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표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껏 큰 틀에서 보면 구조적으로 전북에서 한나라당 표가 나올 수 없다. 지역주의를 깔고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으로 출마할 사람 조차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그간 소신을 갖고 전북에서 한나라당을 해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 보고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유·불리를 떠나 도내에서 한나라당은 중요하다. 집권 여당인 만큼 전북 발전을 위해 중앙과의 통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로 구실을 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 보인다. 중앙당에서 워낙 버린 자식으로 취급해와 괜찮은 인물들이 한나라당에 없기 때문이다.정치발전을 위해 지금 같은 정치구도는 깨야 한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나라 중앙당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나라당 표가 전북에서 안 나왔다고 무작정 포기하지 말고 새롭게 인재를 구해서 판을 짜야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적을 받고 홍준표 대표가 마지못해 최고위원을 호남으로 배정하는 식처럼 가면 안된다. 중앙당은 경선 규칙을 만들기에 앞서 도당위원장에 뜻을 둔 3~4명이 과연 지역에서 신망을 얻는 사람인지부터 가려야 할 것이다./ 백성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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