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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게이트의 진원지가 된 진도 앞바다 보물탐사작업이 끝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막이 공사까지 해가며 해저(海底)바위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탄피속에 담긴 보물은 커녕 그 흔적조차 찾지 못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깊은 바다속에서 금은보화를 건져 올리는 보물 탐사작업이 말처럼 쉽지 않은것은 비단 진도 앞바다의 경우 뿐 아니다. 지금 도내에서도 네건의 보물탐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렇다할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지난 99년부터 해양수산부의 승인을 받아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옥도면 말도와 선유도 주변 해역. 해방직전 금괴 1백여t을 싣고 장항제련소를 출항한 일본 화물선이 이 해역에서 미군기의 폭격을 받고 침몰했다는 목격담이 구전(口傳)돼 온데서 비롯됐다.99년부터니까 횟수로는 벌써 4년째인데도 여전히 뻘속에 묻혀 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선체(船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작년 여름 한 때 선체를 발견했다 해서 노다지에 한발 다가선듯 호들갑을 떨었고 모 TV방송에서 해저작업과정을 생방송한다는 보도까지 나와 도민들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았지만 그 가능성은 여전히 뜬구름 잡기가 아닌지 모르겠다.그러나 보물선 찾기가 전혀 허무맹랑한 꿈은 아니다. 카리브해등 세계 각국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해저 보물선 탐사작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성공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재작년 동해 울릉도 앞바다의 러시아 함선 돈스코이호 발견은 뒷 돈을 댄것으로 알려진 동아건설의 주가를 상종가까지 치게 한 낭보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역시 뒷소식은 실패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니 성공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옛말에 집안 망하려면 광산업에 손 대는 사람 나온다고 했다. 노다지의 환상에 젖었다가 패가망신한 금광업자의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1%의 요행을 바라고 99%의 노력을 무한정 쏟아붓는 그 열의라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일까만 그것이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났을때의 허무함은 무엇으로도 보상이 어렵다. ‘장나무에 낫 걸기’같은 몽상(夢想)은 하루빨리 깨어나는게 약이다.
당나라 태종(太宗)의 명신 위징(魏徵)은‘직언을 잘 하는 신하’였다. 태종이 정변을 일으켜 즉위하기 전 옛날 부하 한명이 독직으로 해임됐는데 태종은 어려웠던 시절의 충성을 생각해 그를 복직시켜주려 했다. 그러자 위징이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를 모셨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면 백성들이 불안해 할것’이라는게 반대 이유였다.‘감히 임금의 뜻을…’할지 몰라도 관직의 기강을 세워야 한다는 그의 간언(諫言)을 태종은 받아 들였다.그런 위징이지만 자신은 충신이 아닌 명신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다. 태종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양신은 자신도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임금도 명군(名君)이 되게하며 자손들도 번성하게 합니다. 하지만 충신은 어느땐가 자신이 주살(朱殺)당할수도 있고 군주를 극악무도한 임금으로 전락시킴은 물론 나라와 가정을 파탄시킨후 오직‘옛날에 한 충신이 있었다’는 평판만 남길 뿐입니다.”라고.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이 엊그제 한 초청 강연에서‘대통령 앞에서 자기 목을 내놓고 직언할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 정부가 잘 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날만 새면 잇따르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연루의혹과 관련해서 한 말이 그 고언(苦言)에 담긴 함의(含意)에 쉽게 수긍이 간다.지금 끝간데 모르게 번지고 있는 무슨무슨 게이트 파동도 그 실 대통령에게‘직언’을 할만한 참모들이 없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핵심 측근에서 보좌해온 가신(家臣) 그룹이나 비서진들은 도대체 입을 봉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기야 그 비서진들마저 줄줄이 연루의혹에 시달리고 있으니 안타깝긴 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나치게 의혹이 부풀려진 정치공세적 측면도 없지 않은것이 사실이다.하긴 법치(法治)를 주장한 한비자(韓非子)도‘군주의 얼굴빛도 살피지 않고 거리낌 없이 척척 직언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갈파한바 있다.‘군주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이쪽 의견을 맞추는것’이 신하의 도리라면 당연히 충신보다는 명신이기를 더 원할수도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건 몇천년전 왕조시대 얘기다. 지금은‘무지(無知)할지는 몰라도 진실을 꿰뚫는 능력을 가진 민중들의 시대’이다.
신용카드는 대출기능(현금서비스+카드론)과 결재기능(일시불+할부)을 함께 행사(行使)할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신용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제3의 화폐처럼 쓰인지 오래다. 또한 현금 사용을 줄여 투명한 상거래문화를 정착시키고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내수(內需)를 부양하는 효과를 볼수 있어 정부가 나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통에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건수는 무려 8천만장을 넘어 경제활동 인구 1인당 2∼3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고 사용액도 4백30조원을 훨씬 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결과 신용카드 업계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려 LG와 삼성·국민카드등 7개 전업사들이 지난 한해동안 올린 당기 순이익만 실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할수 있는 2조5천7백54억원(전년대비 1백74.5% 증가)에 달했다.그러나 이같은 신용카드사들의 영업이익 뒤에서 2백45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활동 능력이 취약한 10대와 20대의 신용불량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은행연합회가 밝힌 개인 신용불량자의 연령별 분포도를 보면 10대가 1만2천명으로 전년보다 3백% 20대가 40만8천명으로 52.8%나 늘었다. 이처럼 10대와 20대의 신용불량자들이 급증한 이유는 두 말 할것없이 카드사들이 자사(自社)이익에 눈이 어두워 소득이 없는 사람이나 미성년자들에게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카드를 발급해줬기 때문이다.카드사들에게 묻고 싶다.“만약 그들이 내 아들·딸이라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주고 싶으냐”고, 근검절약을 가르쳐야할 10대들에게 낭비와 무절제를 부추기고, 신용불량자라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모르는 학생과 청소년들에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도 전에‘신용불량 낙인’을 찍어서 우리 모두에게 보탬이 될것은 아무것도 없다. 끝내 1천5백만원의 카드빚을 지고 갚지 못해 고민하던 익산(益山)의 여대생 강모씨가 자신의 자취방에서 음독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물건값을 치른 그 자리에서, 샀던 물건을 물려 달라고 사정을 해도 안 되던 때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 동네 가게 아저씨마저 그랬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반품을 하면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옛날처럼 내 발로 찾아가서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 안방에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택배로 물건을 받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을 사는 기업들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는 모양이다. 소비자 기호가 바뀌거나 신기술이 등장할 때에 맞춰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브랜드 리뉴얼(Brand Renewal)”이 그 중 하나다. 브랜드 리뉴얼은 상품 패키지나 로고 디자인 변화부터 브랜드 명칭과 로고자체의 변경까지 다양하다. 그 중 브랜드 명칭, 즉 이름을 바꾼 회사들의 경제적 득실을 보면 재미있다. 2000년도 주식시장에서 회사 이름을 국·영 혼합한 형태보다 국문으로 바꾼 경우에 브랜드 리뉴얼의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외래어, 심지어는 외국어로 회사이름을 짓거나 바꾸려는 흐름과 상반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국문으로 된 회사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한 해의 경향을 두고서 속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외래어나 외국어로 된 이름을 선호해 온 것은 회사들만이 아니다. 그리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런 시류는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적 등급이 반영된 한 단편일 뿐이다. 개화기 이전에는 중국문화가, 일제시대에는 일본문화가,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문화가 우리의 의식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문화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높은 곳에 자리한 미국문화 등을 보느라 우리 것을 소홀히 한 점은 인정하자.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야”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들지 않더라도 이제는 정말 우리 것을 사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날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석별의 정을 담아 건네주는 돈이‘전별금’이다. 겉봉에‘촌지’나‘미의(黴意)’,‘전별(餞別)’이라고 써서 주는 작은 성의지만 주고 받는 사람들의 정의는 남다르다. 다른 표현으로‘노자(路資)’라고 쓰는데서 보듯이 왕조시대 이래의 우리의 오랜 관행이자 미떡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전별금이 때로는 뇌물로 둔갑하여 공직의 명줄을 끊기도 하고 패가망신의 횡액을 안겨주기도 한다. 상식선을 넘는 두툼한 봉투는 이미 전멸금이 아니라 뇌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받는 쪽이 힘있는 자리일 경우 동티 날 확률도 그만큼 크다. 지난 99년 법조계를 들썩이게 했던 대전(大田)법조비리 사건도 단초는 바로 전별금이었다. 손이 크기로 소문난 한 변호사가 판·검사들을 초청해 자주 술 좌석을 만들고 이임할 때 액수가 상당한 전별금을 쥐어 줬는데 그게 정도를 벗어나‘뇌물성’으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뇌물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당시‘뇌물’과‘전별금’의 한계는 블랙유모어의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었다. 검찰도 시인했듯이 판·검사들이 이임할때 변호사나 지역 유지들이 전별금을 전달하는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다른 기관이나 일반 기업체도 다르지 않다. 훗날을 기약하고 일종의 보험금이라는 사시(斜視)가 문제지 그‘미덕의 관행’자체를 폄훼할 일은 아니다. 요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특검에 구속된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가 몇몇 안면있는 검사에게 전별금을 줬다하여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액수도 그리 많지 않은것 같은데 곁가지로 불거진 가시가 검찰을 당혹케 하고 있다. 마침내 검찰총장이 검사의 품위와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일체의 전별금을 받지 말라고 엄맹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구설(口舌)에 올라있는‘전별금 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관행이라 해서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전별금이 그대로 통용되는것을 두고만 볼수는 없다. 그게 시대가 바라는 변화욕구에 합치하는 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緣)을 잇는‘작은 정성’마저도 금기시 하는 그런 사회풍토에서 어떻게 공동체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여성교수 채용목표제’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여성고용할당제’가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여성고용할당제’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적·정치적 수단으로 여성참여의 몫이 일정 비율에 이를 때까지 일정 요건을 갖춘 여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처를 말한다. 실질적으로는 채용이나 승진 시 일정량의 인원을 법률 및 정부규제에 의해 여성에게 배분하는 제도를 의미한다.차별 혹은 역차별의 논의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지만 이미 헌법재판소에 의해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성차별처리위원회 등에서도 그동안의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보상한다는 차원의 조치이기 때문에 역차별이나 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랜 세월 구조화된 여성차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조처로 당분간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는 것이다.실제로 공무원 시험에서도 ‘여성채용목표제’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매년 그 목표비율이 증가하여 올해에는 7급이 25%, 9급 30%로 되어 있다.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할 만하다. 특히 여교수 채용실적이 우수한 대학에 대해 재정 지원 평가 등 각종 대학평가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그 실천 의지를 엿볼 수 있어 반갑다.2001년 현재 국내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여학생의 비율은 36.3%, 여성박사의 비율도 국내 23.8%, 해외 22.9%로 전체 여교수 비율인 14.1%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특히 국·공립대학의 경우에는 여교수가 8.8%만을 차지하고 있어 사립대학 16.1%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교수의 수를 늘리는 것이 당위의 사항일 뿐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도 긴요한 문제라는 점이다. 여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교수가 더욱 절실하다. 전향적 태도 변화는 대학에서도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동물이다.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할 일이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먹는 즐거움도 지나치면 당사자는 과체중에서 오는 온갖 부작용으로, 도시는 음식물 쓰레기로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지난 18일 환경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우리가 1년간 버리는 음식물이 자동차 수출액보다 많은 15조원이라고 한다. 참 아까운 돈이다. 이 연구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어림잡아 수조원정도로 추정하였는데 실제로는 훨씬 많은 돈을 낭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그 동안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주문식단제 등으로 노력한 결과 쓰레기 양은 10년 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그런데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해 보니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두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비용이 상승한 이유는 물가상승, 외식 비율증가, 외식 산업의 부가가치 상승 때문이란다. 10년 사이에 가구당 외식비가 5백40% 증가한 14만6천원인 것으로 보아도 음식물 쓰레기의 비용 상승은 쉽게 수긍이 된다. 이를 보면 음식물 쓰레기의 문제가 양의 문제에서 질, 즉 비용의 문제로 양상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우리의 정서상 달랑 한두 반찬만 내 놓는 식단은 반기지 않았다. 식당에서도 그런 문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젓가락이 가지 않을 반찬들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잇듯이 소비자들도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 먹더라도 맛있게 먹고 싶은 것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외식업체들도 동참하고 협조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음식물 쓰레기의 양도 줄어들게 되고 음식물 재료비도 줄일 수 있는 경제적 효과도 얻게 될 것이다. 관공서에서는 외식업체들이 알뜰한 식단을 마음놓고 개발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하고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이들 소비자와 외식업체 사이에서 중립적인 관공서의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통신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전세계의 전화·팩스·e메일등 유무선 통신을 감청하는 이셜론(Echlon)이 24시간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 용어로‘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는 의미를 가진 이셜론은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공조하는 세계적인 통신 감청망으로 알려져 있다.지난 1948년 공산권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안보 차원의 정보전 무기를 출범한 이셜론은 냉전 증식 이후에도 마약 테러등 국제범죄 저지를 명분으로 계속 운영되고 있는데 기업활동등 민간부문 감청에 간여한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음성을 인식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를 사용하여 시간당 최고 2백만건의 통신내용을 감청하는 이 통신망은 세계 각지의 미국 감청기지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하여 단어검색 시스템을 통해 정보가 될만한 통신내용을 읽어 낸다. 실제로 미 국가 안보국이 프랑스의 한 기업과 브라질 정부간의 전화 협상내용을 감청, 이를 미국 기업에 건네줘 레이더 판매를 지원했다는 일화도 남기고 있다.그러나 미국이나 그밖의 어느나라도 자국의 통신감청 시설에 대해 존재자체를 시인하는 경우는 없다. 그만큼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은폐되어있는것이 정보관련시설의 속성이다. 미국 정보위원회에서도 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이나 목표, 활동기법·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것이 관행이다. 인적 자원을 투입해 첩보활동을 벌이는 CIA보다 통신감청을 통해 보다 정교한 정보를 생산해내는 NSA의 위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그 방대한 기구·시설및 예산규모로도 입증된다.중국의 장쩌민(仗 民)국가 주석의 전용기 속에서 27개의 도청장치가 발견됐다 해서 미·중관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는 보도다. 미 보잉사가 제작한 이 비행기의 침대·화장실등에 첨단장비가 숨겨져 있었던 사실을 시험비행중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런 사실을 알아내고도 중국이나 미국 어느쪽도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은 없다. 국익을 위한 정보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될수없고 그런 감청이나 도청을 이미 국제적으로 일상화돼 있다는 증명이다.
때이른 대통령선거 바람이 일면서 또 돼먹지 않은 정치인들이 슬슬 지역감정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의원이“TK가 자기 몫을 찾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TK표를 줄수 없다”며 지역주의를 선동하거니 곧바로 강재섭(姜在涉)의원이“막연하게 이회창(李會昌)총재를 밀기보다는 TK철학과 구심점을 갖고 행동하자. 그래야 우리 몫도 챙기고 선거운동하는데도 효율적이다”라며‘TK응집론’을 부르짖고 나섰다.또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내각제를 실시해야한다면서 대선출마선언을 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총재도“지난 총선에서 영남과 호남은 다른 지역에 한석도 안주었으나 충청도만 마음이 좋아 여기저기 조금씩 나눠주다보니 분열됐다. 또 그럴 것이냐?”며 아주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당내 대선주자들 마저도 공공연히“호남출신 후보는 듣표력이 떨어진다. 비호남 지역에서 후보가 나와야 한다”며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하고 있다.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나라와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위인(爲人)들이 국민을 사분오열(四分五裂)시켜서 도대체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정치는 권력을 잡는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나라를 이토록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무슨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악순환만 되풀이 될뿐이다.‘패권적 지역주의’‘저항적 지역주의’‘기회주의적 지역주의’가 판을 치는한 누가 정권을 잡든 이나라를 온전히 끌고갈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귀에는‘차라리 삼국(三國)시대로 되돌아가 사는 것이 편할것 같다’는 민초들의 절망적인 푸념소리가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모르겠다.흔히 지역감정의 원일을 3김정치에서 찾으려 하지만 적어도 근대정치사에서 지역감정의 씨앗을 뿌린 정치인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으로 지목하지 않을수 없다. 그가 이룬 경제적 위업은 역사가 높이 평가할일이지만 정치만은 강압통치와 중우(衆愚)정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은 그것을 일으켜 손해보는 쪽은 경계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구가 많은 지역이‘이 좁은 나라, 함께 살자’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월드컵이 1백3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대회의 성공개최를 위한 각종 시설의 마무리와 선진 시민의식의 고양과 함께 안전문제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사안이 국제축구대회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훌리건(Hooligan)이라는 과격 난동꾼들의 움직임이다.훌리건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훌리건이라는 성을 가진 아일랜드 가족에서 유래됐다거나, 훌리스 갱의 오음(誤音)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 1890년대 악명높았던 런던 불량배 훌리건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설이야 어떻든 훌리건은 현대 축구의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되었다.현대적 의미의 훌리건이 등장했던 1970년대 영국에서만 해도 흥분한 축구팬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정도였으나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십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1985년 브취셀에서 열린 유벤투스 튜린-리버풀간의 유럽클럽선수권 결승전서 양목 응원단간의 충돌로 39명이 숨진 최악의 참사가 대표적 사건이다.지구촌 축구팬들이 열광하는 월드컵은 훌리건들의 좋은 활약무대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도 주최국 프랑스는 독일·영국등 주변 5개국과 공동 대처및 인터폴과의 진밀한 협조아래 원천봉쇄하는 시책을 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열리자 대책을 비웃기나 하듯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영국과 튀니지가 맞붙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과격 팬들의 유혈충돌로 5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랑스에서 열린 독일-유고전에서는 경찰관 1명이 훌리건에게 쇠파이프로 얻어맞아 사망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각종 폭력사태로 대회기간중 1백65명이 구속됐고, 이중 86명은 1∼2년씩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회가 끝난후 조직위가 발간한 보고서도 대회의 가장 큰 오점으로 안전문제를 지적했다.2002년 월드컵대회를 1백30여일 앞두고 엊그제부터 전주 월드컵경기장에 경찰기동대 1개 중대가 고정배치될때 1개 중대가 고정배치돼 24시간 안전경비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유럽 참가국의 경기가 열리는 전주 역시 훌리건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대회운영뿐 아니라 안전에서도 성공한 대회가 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의 분발을 거듭 촉구한다.
바다와 하늘이 빚어내는 재앙인‘엘니뇨 현상’은 태평양 적도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면서 주변지역에 가뭄, 홍수, 폭풍, 이상기온을 몰고오는 기상현상을 말한다. 이때 해수면 온도는 평균 섭씨 2∼3도, 최고 8∼10도까지 상승한다. 발생원인은 적도의 해수면과 불안정한 대기가 상호 작용해 방생한다는게 정설로 돼있다.‘엘니뇨’는 스페인어로‘아기 예수’또는‘사내아이’라는 뜻이다. 남미 서쪽 적도의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급상승하는 시기가 주로 크리스마스 전후에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통상 9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계속되는‘엘니뇨’는 적도부근의 해류방향은 물론 지구 전체의 기후를 크게 변화시킨다.‘엘니뇨’가 나타나는 주기는 대략 3∼4년으로 지난 30년동안‘엘니뇨’는 82∼83년사이, 그리고 90년대 들어서는 91년과 94년에 이어 97∼98년등 세차례 발생했다. 가장 최근인 98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사상 최고인 8백90억달러(1백10조5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엘니뇨’는 농작물 작황 뿐아니라 해양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장기간 장마나 건조한 날씨로 산불 발생이 급증하기도 한다.이같은‘엘니뇨 공포’가 다시 시작된다는 불길한 소식이다. 미국 국립대양대기청(NOAA)의 전문가 버논 코스키가 올 여름‘엘니뇨’가 다시 지구상에 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최근 CNN방송이 보도했다. 코스키는“적도 태평양에서의 해수면 온도 상승과 구름 증가가 올 여름‘엘니뇨’가 세계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마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코스키의 예측을 이전의‘엘니뇨“와 관련 이미 정확성이 입증된 바 있어 신뢰를 높여주고 있다.9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재앙은 이제 범세계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도 이 시급한 현안에서 자유로울수 없게 됐다.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양곡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이 타격을 받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우리에게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올 여름의 혹서 가뭄 홍수등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엘니뇨 공포’는‘강 건너 불’이 아니라‘발둥의 불’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인의 우리말 사용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난 해 문화관광부가 국어사용 지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예비조사에 따르면 학생이나 성인들의 국어사용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다.중·고·대학생 및 성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이번‘어문규범능력검사’결과에 의하면 피검사자들의 평균점수(만점 100점)가 29∼34점으로 비슷한 문제로 1995년에 실시했을 때의 50∼55점보다 20점 정도가 떨어졌다. 특히 점수가 낮은 분야는 맞춤법으로‘가르치다’와‘가리키다’등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조차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영어 공용어화론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영어에 대한 병적인 열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불거진 일이라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것은 크게 부끄러워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언어관이 수그러들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염려가 되는 것이다.요즘 가뜩이나 힘을 얻고 있는 영어조기교육론 또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을 더욱 조장할 것이다. 언어습득에 중요한 시기에 다른 언어 배우느라 우리말 배우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 결과야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또 사이버 공간에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뒤틀기 쓰기’도 국어사용능력 저하의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언어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인데 이를 무시하는 일을 자행하다 보면 그 공공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언어는 지식·정보 전달의 중요한 수단이자 우리들 의식과 사고의 필수부가결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언어가 바로 우리들 의식과 사고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오염은 의식과 사고의 오염으로 이어지며 언어능력의 저하는 바로 문화의 쇠퇴로 연결되는 것이다.더 늦기 전에 우리말을 가다듬고 그 사용능력을 높이기 위한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정쩡한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구호에 현혹되어 우리의 얼을 잃어버리는 일만은 피했으면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직은 24시간 일 하는 직업이다. 쉴틈 없이 나라와 국민을 생각해야 하고 중요한 국가대사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따로 없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급변하는 국내의 정세판단과 정책집행, 요즘 들끊는 무슨무슨 게이트까지 그야말로 만기친감(萬機親監)의 고역을 감수해야 할 자리이다. 그런 대통령이 한가로이 휴식이나 취하고 있다면 국민정서가 어떨까. 결코 곱지 않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대통령들의 여유로움은 그 나라의 국력만큼이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때 당시 부시대통령은 전쟁수행 임무를 참모들에게 맡긴채 틈만 나면 여가생활을 즐겼다. 골프장에서, 바다낚시터에서 방중한을 즐기는 대통령의 동정은 전쟁상황 못지 않게 국민들의 관심사였다.섹스 스켄들로 임기후반내내 여론에 시달렸던 클린턴도 그랬다. 골프광이기도 한 그는 메스컴이 섹스관련 스캔들로 도배질을 할 때에도 시가를 입에 물고 골프채를 휘두르고 여유를 보였다. 국민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오히려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낄수 있었다. 노사(勞使)문제로 나라안이 시끄러운데도 어린 아들을 안고 휴가여행을 떠나는 토니 블래어 수상을 영국 국민들이 흉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대통령도 쉬어야 한다. 자신의 건강때문만이 아니라 건전하고 균형잡힌 정책을 차분히 구상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은 건강해야 한다. 왜 난데없이 대통령 건강론인가. 엊그제 연두회견장에 나온 김대통령의 피로에 지친듯한 모습때문이다.취임이후‘국민과의 대화’나 기자회견때마다 보여줬던 자신감과 건강한 모습이 이날 회견장에선 영 느껴지지 않았다. 알려진 바로는 전날밤 늦게 신승남(愼承男)검찰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들은 권력운용의 난맥산이 나타날때마다 인치(人治)보다 법치(法治)를 강조하지만 법치가 곧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법치의 근간은 확립하되 도덕성 강화는 우리사회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대통령 혼자 슈퍼맨이 될수는 없다는 말이다. 부시 대통령의 졸도 해프닝이 미국 매스컴의 화재다.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대통령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런 민주사회의 금도가 왜 우리나라에선 힘든 것일까.
도박을 흔히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그 놀이의 흡인력마저 무시할수는 없다. 도박처럼 많은 사람들이 집중력을 쏟아 부으며 죽자살자 달려드는 놀이도 따로없기 때문이다. 포꺼꾼들은 펼쳐진 패와 상대방의 배턴방법,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도 면밀하게 분석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을 계산한다.화투도 마찬가지다. 국민 놀이문화의 전형이 되다시피 한 고스톱판은 일년 3백65일 우리 생활주변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도리지꼬땡이니 삼봉이니 하는 화투도박은 말할것도 없고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도박도 헤아릴수 없이 많다. 경마는 또 어떤가. 경마에 승부를 거는 사람들은 적어도 어느 말이 좋은 성적을 낼지 가능한한 많은 자료를 입수해 나름대로 치밀하게 연구를 한다. 그만한 정성이면 어떤일을 해도 성공확률이 낮진않을터지만 한번의 대박꿈 때문에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게 경마나 도박이다.한번 잡으면 ‘밤새워 한다’거나 ‘안하면 초조하고 불안하다’는것이 노름 중독증을 알아보는 잣대 가운데 하나다. 증세가 마치 마약과 똑같다. ‘이번 한번만’이라고 다짐하곤 하지만 그 다짐을 이행하는 노름꾼은 이미 노름꾼이 아니다. 그래서 노름을 하다가 당국에 붙잡혀 가 경을 치고도 풀려나면 다시 노름판에 끼어드는 확률이 70%라는 통계도 나오는 것이다.도박이 때와 장소를 가리는것은 아니지만 요즘들어 더한층 기승을 부리는 것같다. 도시는 말할것도 없고 농한기를 맞은 농촌도박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는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한탕주의, 황금만능주의 병폐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것이 바로 도박이다. ‘놀이’가 도를 넘어 ‘노름’이 되면 분수를 넘어 요행을 바라거나 이런 사행심을 등쳐먹는 꼴지들의 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할수 있다는 것이 도박의 위험인것 같다.그런 ‘도박열기’가 불행히도 우리 전북이 전국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있는 모양이다. 지난 한해동안 도내에서 검거된 도박사범이 7백66건으로 전년에 비해 무려 94%나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약세를 면치 못하는 전북이 하필이면 도박열기 1위라니 가슴을 쳐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서민들의 ‘놀이’는 놔두더라도 당국이 도민·망신주는 ‘노름’만은 확실히 잡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준비협상이 촉발시킨‘쌀값 파동’으로 한동안 농민들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벼가마를 끌고나와 길바닥에 뿌리고 불을 지르며 처절한 투쟁을 하더니 이제는 지쳤는지 조금은 잠잠해졌다. 대대손손 생명줄처럼 붙잡고 살아왔던 쌀농사가 조종(弔鐘)을 울릴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고 그렇다고 농촌에 눌러앉아 살아갈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으니 겨울 속에 묻힌 농민들 가슴은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만큼이나 시립고 춥다. 해동(解凍)만 되면 몇되지기 안되는 전답모두 팔아 도시로 뜨고 싶어도 쌀값 파동의 여파로 논밭값이 뚝 떨어지고 그나마 사겠다는 사람도 선뜻 나서지 않아 여태까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자신이 원망스럽기 조차 하다.그런데다 더더욱 분통터지는 일은 요즘 정부가 농촌을 위한답시고 내놓은 단편적인 정책들이 농촌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점이다. 한국 농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농민 수를 더 줄여야 한다는 막연한 정책에서 부터 쥐꼬리만한 직불제로 농민소득을 보장해준다는 땜질처방식 정책까지 하나같이 농민들 가슴에는 와닿지 않는 정책들 뿐이다. 게다가 농민들에게는 천형(天刑)과도 같은 농지법을 개정한답시고 농지를 전용할때 부담금은 없앴으나 대체농지조성비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땅값이 비싼 도시근교만 큰 혜택을 받아 난개발만 부추겼을뿐 순수 농촌지역은 되레 땅값보다 비싼 비용을 물게되는 해괴한 현상이 벌어졌다.그뿐인가. 정부는 최근 도시민들에게 인기있는‘주말농장’을 3백평 범위 내에서 비농민도 취득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남아도는 농지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 모양인데 도데체 그런 정책들이 농민들에게 무슨 도움을 줄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오른 농민들 감정을 더 건드려 놓기만 했다. 물론 농촌정책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더욱이 급변하는 국제무역체제 속에서 농촌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해결한 방법도 없다는 것을 농민들은 잘 안다.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감(感)으로 농정을 재단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겠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똑 같은 세월이지만 언제나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려고 다짐도 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지난날을 힘들고 어렵게 보낸 사람들은 누구나 어둠의 문을 닫고 그 어둠의 문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밝고 환한 시작의 문을 다시 새롭게 열어가고 싶은 마음이 앞설 것이다.서양사람들은 새로운 한해를 맞고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다시 한번 과거를 되돌아보는 여유를 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의 상징성에서 찾는다고 한다. 야누스가 서양에서 옛것과 새로운 것의 중요성을 상징한다면 동양에서는 옛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내라는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볼라치면 온고지신의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신세대 감각이 최고의 가치인 양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오래된 옛것은 낡고 쓸모 없는 구닥다리처럼 취급하면서 그저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인 냥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어쩌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나 각종 병리현상 그리고 역기능들은 과거를 잊고 옛것을 버리는 데에서 비롯된 것들은 아닌지 한 번쯤 반성해 볼일이다. 옛것이 없으면 어찌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있기에 자식이 있듯이 옛것이 있기에 새로운 것이 있는 것이다.부모의 유전자가 핏줄을 통해 자식에게 이어지듯이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관과 물질문명도 똑같이 역사의 맥(脈)을 통해서 다음 세대에 전승되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것은 무작정 옛것을 버리고 얻는 새로움은 아닐 것이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바라보는 눈을 가질 때만이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한때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는 노래가 유행했던 것 같다. 그저 노래를 따라 부르듯 남들이 하는 대로 생각 없이 바꾸는 것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지금 50∼60대들이 초등학생이던 1950∼60년대만 해도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사정은 도시나 시골학교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시락을 지참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미국 원조물자인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이나 탈지분유를 쪄서 나눠주었다. 그러나 군것질 거리가 별로 없었던 당시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인기가 좋아 결식아동만 먹게 놓아두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아예 자기 도시락과 바꿔먹기까지 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불과 40여년전의 일이다. 작년 수출액 1천4백억 달러를 달성한 우리가 수출 1억달러 안팎이던 시절의 얘기다.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지금에도 결식아동이 그대로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물론 경제발전과 복지정책 확대로 쌀이 없어 굶는 절대빈곤은 사라졌다. 그러나 가계경제의 파산이나 이혼등으로 인한 가정해체가 가속화하면서 양육기능을 잃거나 포기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누군가는 돌봐야만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식아동의 증가가 빈곤과 가족기능의 상실이 맞물려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실제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한 국내 초·중·고 결식아동 수는 지난 89년 8천5백46명에서 97년 1만1천17명, 그리고 IMF사태 이후인 2000년 16만4천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지난해말 현재 도내에도 6천6백88명이 집계됐다. 이들에게는 중식비가 지원된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학교급식등에 포함시켜 점심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방학중 점심 해결을 위해 지난 99년부터 이들에게 농협상품권을 지급해주고 있으나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9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른 물건을 사는데 써버려 정작 점심해결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행정편의주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식사를 거르는 것은 배고픔의 고통은 물론 정서함양에도 좋지 않다. 자라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그들에게 정서결핍이 생기면 언젠가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결식아동 문제는 모두가 고민해야할 사회문제이다.
맞아 죽을 각오로를 하고 썼다는 한 일본인의‘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한국 어머님들의 과잉보호와 그와 연계되어 있는‘입시전쟁’을 빗댄 것이다.“한국에 가니까 어느날 전 국민의 아침 출근 시각을 두어시간 늦추었다. 심지어 증권시장마저 30분 늦게 시작하고. 그러나 버스와 전철, 택시 등이 총동원되고 경찰도 비상사태인 듯했다. 거리 곳곳에서 부분적으로 통행을 금지했으며 병원의 구급 차량도 총동원하고…”이 얘기를 들은 미국인이 한국에 전쟁이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지만, 매년 직접 목격해야 하는 우리들이 보아도 괴기스러운‘비상상황’이다.그런데 최근 이에 못지 않은 웃지 못할 상황이 부동산계에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서울 강남지역이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돼 정부 합동대책반의 상시 감시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이 작년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겨울방학을 이용, 학원, 학군이 좋은 강남지역으로 이사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수능시험일이 전국적인 비상사태인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차례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었다고 아파트값이 들썩이는 것은 아무리 한국인 특유의‘냄비 근성’과 연계시킨다 해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국가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입시전형방법을 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입시에 대한‘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평소의 적성에 따라 대학진학을 선택할 일이지 군사작전 펴듯이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 결코 교육적인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근거한 조치인 것이다.그러나 우리 어머님들은 이 복잡한 전형에 더 치밀한‘작전’으로 대응함으로써 교육부의 정책자체를‘해체’시키고 있다. 대학 졸업해봐야 자기 적성이나 개성을 찾아 취업할 수 있는 길이 막연하기만 한데도‘대입지상주의’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입시험일이 추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이 겨울을 더욱 차갑게 느끼게 하는‘강남소식’이 씁쓸하기만 하다.
공해(公害)하면 당장 떠오르는것이 소음이나 진동, 분진·악취같은 것들이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진때문에 빨래를 제대로 널지 못한다거나 쓰레기 적치장 주변의 악취, 거리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나 건설현장의 소음·진동등은 생활환경을 침해하는 대표적 공해들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이 공해추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고 시민의식도 어느 정도 향상돼 이제 웬만해선 이런 공해 요인들은 방붙일 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추세다. 그러나 문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관련 사이트 번창으로 새롭게 등장한 스팸메일 공해나 휴대전화를 통한 스팸전화 공해이다. 이것들은 사전에 예방할수도, 효과적으로 방어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 인구는 2천4백12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국민의 56%가 지식정보화 사회의 총아라 할 인터넷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1천9백60만명은 매일 e메일로 정보와 소식을 주고받을 정도라니 컴맹이나 인터넷맹들은 아예 현대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하지만 편리한만큼 공해도 심한것이 e메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e메일가운데 절반 이상을 음란성 짙은 내용이거나 제품관련 사이트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급하고 이런 쓰레기 메일들은 필요한 정보나 즐거운 소식대신 수신자들에게 짜증이나 불쾌감을 안겨주기 때문에 공해도 보통 심각한 공해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건전한 정보유통마저 왜곡시킬 뿐아니라 채팅중독에 빠진 주부들을 음란사이트로 유혹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는게 업계의 분석이기도 하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스팸전화도 마참가지. 신용카드사나 콘도회사 등의 가입권유, 반복되는 학원수강 안내등은 자증을 넘어 소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는게 가입자들의 하소연이다.그래도 이제 인터넷이나 휴대폰은 우리 생활에 뗄래야 뗄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 서 있다. 그만큼 커질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공해를 막으면서 건전한 정보화사회로 이끌어 나갈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일도 아니다. 흡연이 폐암의 주범이고 동맥경화나 심장질환 같은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의학상식쯤은 그야말로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연가들이 한번 맛들인 담배를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독성 때문이다.담배속에 함유된 니코틴성분의 중독성은 헤로인이나 모르핀 아편보다 높다고 한다. 최근 연예인들이 자주 물의를 일으킨 필로폰이나 대마초보다도 중독성이 강한것이 담배라니 금연의 어려움을 이해할만도 하다. 그러니 해마다 정초가 되면 ‘올해엔 담배를 꼭 끊어야겠다’는 골초들의 각오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일이 많을수밖에 없는가보다.우리나라의 흡연인구는 대략 1천3백만명에 이른다. 이중 성인남자의 흡연률은 73%로 선진국 협의기구(OECD)가입국중 1위다. 유럽에서도 흡연에 비교적 관대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조차 금연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담배 피우는 사람을 아예 야만인 취급하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담배에 관한한 아직 후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것 같다.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데 있다. 성인들은 그렇다쳐도 청소년들의 흡연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남고성 가운데 27%, 남중생 7.4%, 여고생 10.7%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 심지어 남녀초등학생 10명가운데 한명이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것도 화장실같은데 숨어서 몰래 피우는것은 옛 말, 교복차림에 어른들 앞에서도 버젓이 피우는것이 예사고 선생님한테 들켜도 크게 당황해 하지도 않는다니 큰 일이다. 오죽하면 교내 화장실에 아예 재털이를 비치해놓고 ‘담배꽁초를 잘 버리라’고 가르칠 정도에 이르렀을까. 서울시교육청이 생각다 못해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초중고 건물을 절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여 교사들부터 솔선하여 담배를 끊도록 했다는 것이다.이 조치가 서울시교육청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사정이 똑같기 때문에 전국 각급학교도 확산돼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담배 연기에 찌들어 건강을 해치는 일을 그냥 바라 볼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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