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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방 자치단체의 호화 또는 과대청사를 막기위해 신축청사의 최대면적을 제한한다고 한다.아울러 지자체 단체장의 집무실 면적기준도 제시됐다.이런 내용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속에 담겨 있다.지자체가 열악한 재정 자립도 개선은 생각지 않고 호화 청사 짓기에 열을 내고 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대표적인 예가 성남시 청사이다. 성남시는 인구가 95만명인데 새로 신축된 청사의 연면적은 무려 7만 4452 평방미터에 지하 2층에 지상 9층 건물이다. 건축비와 토지 매입비 총액이 무려 3200억원이다.이런 아방궁 같은 청사는 지난해 국정 감사때도 '한국판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지적을 받은바 있다. 사실상, 시 청사나 군 청사는 일반 시민들의 이용 빈도수가 극히 적다. 오히려 동사무소 ,즉 주민센터가 일반 시민들과 행정적으로 더 밀착되어 있는 편이다.호화 청사란 대부분,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을 좋게 할뿐 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별로 없다, 호화 청사를 짓는데 아무런 제동 역활을 못하는것이 또한 시의회, 군의회이다.그리고 의원들의 제동과 입을 막기위해 의회 청사나 의장 집무실을 호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전략적이다.지난 2008년에도 전북도의 일부 시군 청사가 행안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하여 호화청사라는 지적에 따라 교부세가 삭감되기도 했다. 행안부는 자치단체의 호화청사 운영을 방지하기 위해 교부세 산정방식을 개선하여 호화청사를 예산 낭비로 간주하고 교부세를 삭감키로 한것이다. 호화청사에 근무한다고 공무원들의 근무자세가 좋아지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官)은 높고 백성은 낮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장신만을 조장할뿐이다. 호화청사는 국민들에게 친밀감보다는 오히려 이질감만을 줄뿐이다.호화청사를 빗대어 하는 말이 아방궁(阿房宮) 청사라고 하는데 아방궁을 진시황제가 지을때 죄수 70만명을 동원했다. 아방궁은 죄수들의 땀으로 지어 진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호화청사는 주민들의 혈세(血稅)로 지어진 것이다. 정부가 아방궁 청사건축에 제동을 건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으나 환영할만한 조치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새만금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처럼 소개되고 있다.유토피아 인 것처럼 말이다.정말 그럴까.역대 지사들이 새만금을 희망의 땅으로 열나게 홍보한 탓이다.지도를 바꾸는 대역사인 만큼 고비 때마다 도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비전 없는 전북에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새만금은 전북의 희망이므로 장차 성공하면 우리나라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김완주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새만금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이순신장군의 명랑대첩까지 떠올리면서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말은 옳은 말이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준공기간을 10년 앞당겨 내년부터 해마다 국가예산 1조원씩을 쏟아 붓어야 내부개발을 마칠 수 있다.19년간 2조9천억원을 들여 33㎞를 막은 액수에 비한다면 21조는 천문학적이다.노태우·김대중 간 정치적 합의로 태동된 사업이어서 논란이 많았다.개발론자와 환경보존론자는 걸핏하면 쌍심지를 켰다.개발론자들은 솔직히 새만금을 너무 많이 팔아 먹었다.선거 때마다 지사나 국회의원 할 것 없이 새만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것처럼 새만금을 갖고 놀았다.새만금사업은 만병통치약이요 요술방망이와 같았다.걸림돌에 부딪치면 막고 품는 식으로 뚫고 나갔다.안되면 그 때마다 관제데모대를 불러 들이면 그만이었다.새만금이란 단어가 전북에서는 희망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민을 우민화시키는 면도 있었다.때로는 정략적 발상에 따라 도민들을 동원 체계화 한면도 없지 않다.새만금을 도민들의 뇌리에 하나의 신앙심으로 똬리 뜰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알맹이가 없다.외화내빈격이나 다름 없다.지금까지는 바지락 양식장 사가지고 보상 받아 떼부자 된 사람이나 정치적으로 새만금을 가지고 놀아 정치적 이득을 챙긴 세력들만 득의만면하다.앞으로 내부 개발 사업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지만 김지사의 취임사에는 이같은 구체적 방안이 없다.수질개선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그간 특별법이 만들어져 내부개발이 탄력을 받는 것 같이 보이지만 정부 의지가 없어 내부개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최근 방조제 일부를 헐어 배가 드는 통선문을 설치하려는 의도는 또다시 해수유통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김지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세계적 웃음거리가 된 1995년의 삼풍백화점 사고는 1년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백화점을 지키는 경비보안 조장은 백화점 건물 옥상의 컨크리트 바닥 대부분이 균열로 인해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깨져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사고 나기 1년 전이었다. 이 사실을 상부에 알렸지만 언제나처럼 묵살됐다. 사고가 난 뒤 그는 인터뷰에서 "윗 대가리가···"라며 원통해 했다. 따지고 보면 조직내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부른 사고였다. 1994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비슷한 케이스다.소통(疎通)을 뜻하는 커뮤이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 communis(공통· 공유)가 어원이다. 동사 communicare는 '같이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의미다.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조직내 상하· 동료 간에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문제다.소통할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핵심이다. 노나라 임금 이야기는 좋은 예다. 우연히 날아온 바닷새를 노나라 임금이 데려와 자신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주면서 극진히 대우했다. 그러나 새는 슬퍼할뿐 음식도, 술도 한모금 먹지 못한 채 사흘만에 죽고 말았다. 진정으로 새를 기르고 싶다면 사람의 방식이 아닌 새가 원하는 것을 주어 길러야 한다는 우화다.주변에 '껍데기 소통'들이 많다. 말로는 소통을 강조하면서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혀사는 사람, 내 생각만이 선(善)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얘기를 듣기는 하지만 듣는 것으로 그만인 사람, 자신한테 불리할 것 같으면 서둘러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 등등.선거 때 소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민선 5기 단체장들의 공통된 화두가 소통이다. 김완주 지사가 "민선4기 행정은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이었다"며 쌍방향 소통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소통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늦게나마 다행스럽다.하지만 대화의 자리만 갖는다고, 얘기만 듣는다고 소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지사가 아닌 주민, 시군, 직원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지사 자신이 변화해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껍데기 소통일 뿐이다./이경재 논설위원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란 일본 경제성장의 침체 시기이다.지금도 일본 경제 동력은 예전이 아니다. 여기에다 일본의 대표적 국가 브랜드였던 도요타가 리콜사태에 부딪쳐 곤혹을 치루었다. 나라가 어려우면 과거속에서 영웅을 찾는법이다.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사카모토 료마'가 뜨고 있다. '료마'는 지방의 하급무사로 태어나 에도에서 검술을 익히며 왕정복고(王政復古)주장과 왕정을 따르되 서양세력을 물리쳐야 한다는'존왕양이'운동도 접하였다. 그는 짧은 33세의 인생에서 유연한 발상과 탁월한 협상력, 추진력을 발휘했다. 일본인은 료마의 리더쉽을 그리워 하고 있다.한국은 일본인에게는 제 3국이다.외국도 일본 자국도 아닌 그중간인 제3 국인것이다.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는 고령사회이다. 4명중에 1명은 65세 이상이다. 일본의 정치구조는 파벌로 엮어졌다. 파벌내에는 자기들의 일정한 질서가 있다. 파벌의 수장이 되어야 총리의 물망에도 오른다. 파벌의 평범한 멤버가 수장까지 오르려면 많은 세월이 결린다.그래서 대부분 총리의 나이가 70세가 넘었던 것이다. 일본 사립 대학들의 교수정년이 대부분 70세가 넘는것도 사회 지도층 년로화(年老化)의 한 단면이다. 일본사람은 윗사람의 지시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엣날, 코오베 지진때 화재가 났는데도 윗사람으로부터 수도전을 풀라는 지시가 없어 수도전을 그냥 잠그둔채 놓아두었다고 한다.일본은 지진 나면 자동적으로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게 되었는데 화재가 나면 누군가라도 수도전을 풀고 화재를 진화(鎭火)했었어야 했었다. 일본인은 주어진 일은 열심히 잘하지만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회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자기 전공이 아닌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한다고 한다.이런 말조심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약 1백년을 거치다 보니 개인이 살기위한 보신책(保身策)의 유산이다.이런 소심증 때문에 일본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른다.일본인은 강자(强者)에 매우 약하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가 '스모오'다. 스모오 우승자에게는 갖가지 상들이 주어지지만 2등에게는 아무 상도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선비는 '어질고 학식있는 사람'을 말한다. 특히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코자 하는 사람을 일컬었다. 그 중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는 경우를 처사(處士)라 했다. 또 학문에 조예가 깊어 후생을 가르치면서 바른 도리를 제시하는 사람을 선생(先生)이라 했다. 선생은 벼슬에 나간 '공(公)'보다 더 높은 존경을 받았다.선비는 두가지 방향을 지향했다. 하나는 스스로 도(道)를 연마하는 것이다. 도의 수행을 통해 행동과 예절을 바르게 하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또 하나는 후세에 말씀을 내려주고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자신의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저술을 통해 도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약점괴 한계가 없지 않다. 봉건질서의 기반이 되었기에 불평등한 신분구조에 이바지했다. 또 명분만을 중시해 실용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유학이나 선비정신이 벽에 부딪친 서양학문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꽤 되었다.이와 방향이 같진 않으나 전주에서도 한옥마을의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선비의 길 조성을 위한 학술대회' 등이 그것이다.지금까지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광산업 차원에서 인기를 끌었다. 도시와 인접한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자체가 볼거리였다.하지만 '콘텐츠'내지 '정신'이 빠져 있었다. 겉만 그럴싸 했다. 이제 그 '정신' 즉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다.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말부터 선비들의 집합소였다. 일제의 유학자들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기호학파의 정통을 잇는 간재(艮齋) 전우의 제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흔히 '3재'라 불리는 터줏대감 금재(欽齎) 최병심과 고재(顧齋) 이병은, 유제(裕齋) 송기면이 대표적이다. 또 대대로 오목대 아래 살아온 목산(木山) 이기경의 후손을 비롯 김교준 박인규 이종림 이주필 등 유학자들이 모여 선비촌을 이루었다.이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지조를 지키며 일제에 항거하는 등 선비 본연의 길을 걸었다.그러나 지금 이들의 자취는 묻혀지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이들의 정신이 새롭게 조명돼, 한옥마을이 명실상부한 명소로 발돋움했으면 한다.
전주 한옥 보존지구에 국내 관광객과 외국 관광객도 제법 많아졌다. 단독 주택 시대가 가고 아파트 문화가 정착되면서 한옥에 대한 이해 부족이 많다. 민속촌에나 가보아야 한옥의 개념을 접할 정도이다.우리 전통가옥의 특징은 온돌방, 낮은 담장, 높은 대문, 마루, 많은 창문을 들을수 있다. 옛날의 우리는 중국과 달리 방에서 앉아서 밥 먹고 생활하는 좌식(坐食)문화이었다. 우리 전통 가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장혜영씨는 그가 쓴 '한국 전통문화의 허울을 벗기다'에서 보여준다.한옥 대문은 대부분 꼬불꼬불한 길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우리 마을이 주로 산비탈이나 골짜기에 위치해 있어 길이 꼬불꼬불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낮은 담장은 중국 가옥의 높은 담장과 대조적이다. 중국은 널따란 평야 지대에 집이 있어 외부로터 강한 비바람, 또는 이방인으로부터 방어를 위해서 높은 담장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마을위치가 산악이나 계곡에 있어 외부인으로부터 자연 방비가 가능했기에 담장이 낮게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한옥 담장이 낮은 이유를 우리의 좌식생활, 그리고 온돌생활과도 관련시킨다. 온돌은 여름에도 뜨겁기 때문에 외부와의 통풍이 잘되기 위해서는 담장이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옥이 온돌로 인한 통풍 환기가 중요했다면 중국가옥은 반대로 황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방풍(防風),보온을 위해 중국 가옥의 담장이 높다는 것이다.거기에 중국의 널따란 평야는 이동의 편리를 가져와 이방인들이 많게되어 방비 차원에서도 담장은 높아져야 했다고 한다. 한옥의 특징중의 하나인 '마루'는 좌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마루'인데 다른방으로 이동할때 마루를 통과하면 신을 신고 벗는 번거로움을 피할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장혜영씨는 한옥의 낮은 담과 외부에 공개돤 마루는 자기 아닌 타자(他者), 즉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게 만들었다고 해석한다.자기 개인만의 밀폐된 공간이 없기에 중국처럼 사고의 심오성과 독립성이 저해 받았다고 해석한다.이런 해석도 우리것에 대한 새로운 평가 작업의 하나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자치단체장은 사법권만 없지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다.국회의원도 고향에서 단체장 하기를 바랄 정도다.이호종 전 국회의원이 고향에서 군수를 지냈다.도지사는 국회의원이 욕심낼 정도로 매력 있는 자리다.전주시장도 국회의원 지낸 사람이 될 것이다.국회의원이 단체장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단체장이 갖는 권한이 커서다.국회의원은 철저히 짬밥 즉 선수에 따라 국회직을 나눠 먹어 초선은 물당번 하기도 가쁘다.국회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한다.제 아무리 잘났어도 짬밥이 부족하면 목소리를 못낸다.대정부 질의 한번 하기도 어렵다.국회의원 배지 차면 모든 일을 할 것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니다.거수기 노릇을 할 때가 많다.초선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결국은 원내대표 손바닥 안에서 논다.초선일수록 중앙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이 없어 지역구에 자주 온다.거물들은 아무래도 지역구 관리가 소홀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예산 확보나 민원처리는 짬밥이 많은 의원이 잘 한다.행정부에 그만큼 인맥이 많기 때문이다.예전과 달리 눈먼 돈 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국회의원에 대한 매력을 잃어간다.이 때문에 눈길을 자치단체장 쪽으로 돌린다.국회의원이 공천권을 꽉 쥔 것 같지만 6.2 지방선거 때 오히려 공천권 때문에 역풍 맞아 혼쭐난 국회의원이 있다.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의원들은 다음 선거 때 어려울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민주당 정서가 강한 탓에 지사 선거가 싱겁게 끝났다.표정 관리만 잘 하면 그만이었다.특별히 애쓴 사람도 없었다.그런데 도청이 요즘 선거 때 얻은 전리품을 나눠 갖기 위한 논공행상식 인사를 하느라 부산하다.승자독식이라고 하지만 전문성도 없는 캠프 출신들을 도나 출연기관에 앉히면 예스 맨만 늘어 결국 공조직만 죽인다.능력 검증도 않고 선거 때 잠시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주면 당사자는 좋겠지만 그 조직은 죽게 돼 있다.그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온 개방형 자리 사람들이 방 빼라는 통보를 받고 억울함을 삭히지 못하고 있다.아무리 파리 목숨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직원 5600명, 예산 57조7963억, 자산 50조원, 빚 109조원. 작년 10월1일자로 통합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외형 견적이다. 국민 주거생활의 향상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다. 공룡화된 LH는 지금 엄청난 부채 때문에 건물을 매각하고 구조조정과 윤리강령을 실천하는 등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LH가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은 본사 이전이다. 전주와 경남 진주의 혁신도시를 놓고 눈치만 보며 차일피일 미룬지가 벌써 9개월이다. 직원들은 어떨까. 두 지역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터라 본사 이전 관련 질문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만다.충남 보령 출신의 이지송 사장(70)은 건설부와 수자원공사에서 잔뼈가 굵었고,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노련한 지휘관이다. 몇달 전 아무도 모를 만큼 극비리에 전북을 방문한 뒤 전남에 내려가기도 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지방선거가 끝나자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LH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한다. LH 기능을 분산 배치할 것인지, 일괄 이전할 것인지의 문제다. 헌데 선거가 끝나고 보니 정치적 갈래타기가 방정식 보다 더 복잡하다.전북은 당초 '분산 배치'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 정운천 전 장관이 '일괄 이전'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LH를 전북에 일괄 배치하기로 이명박 대통령과 교감을 나눴다"고 해 복잡해졌다.반면 '일괄 이전' 입장인 경남은 이달곤 전 장관이 한나라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일괄이전하겠다고 해 힘을 얻었지만 무소속인 김두관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이 힘 쓸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선택이 어차피 정치적이라면 철저하게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고, 지난 30년간 소외받았던 전북의 지역주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LH가 전북에 유치돼야 한다"는 논리다. 혁신도시 조성 취지와 낙후의 정도를 고려한 판단, 영남 정권에서 호남을 배려한 결정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그리고 그 같은 논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전달한 정 전 장관은 지금부터 이 대통령의 '공감'을 실천해 보여야 한다.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 없는 정치인 소릴 들어도 싸다./이경재 논설위원
지난 25일은 6.25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는 때였다. 그만큼 세월은 많이 흘러 전쟁의 상흔(傷痕)도 잊게도 해주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6.25를 먼 이야기처럼 의식한다.통계에 의하면 6.25 전쟁으로 남북한 민간인 3백만명이 죽었고 남북한 군인, 약 100만명이 살상을 당한 골육상쟁(骨肉相爭)이었다. 전쟁은 물론, 북한의 도발이었다. 6.25 전쟁 원인을 놓고 여려 학설이 있다. 마치, 미국 남북전쟁을 놓고 여려 원인설이 있듯이 말이다. 음모설,충돌설,수정론이 바로 그것이다.6. 25 전쟁 원인에 대해 미국의 커밍스(B ,C Cummings)라는 사람은 미국 고문단의 문서를 중심으로 내전론(內戰論)을 내세운다. '내전론'은, 6.25는 한반도 자체내의 문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토지개혁이다. 북한은 해방후 바로 토지개혁을 단행했는데 남한은 그렇지를 못해 남한의 토지개혁 완성을 위해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이다.둘째는 웅진반도에서 남한과 북한의 잦은 충돌이 있었는데 1950년 6월 24일, 새벽에 남한측의 도발과 여기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 비화되어 철원,금화,양양등 38선 전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러 구(舊) 소련의 극비문서가 공개되자 6.25의 원인도 밝혀질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신 공개된 소련문서에 의하면 6.25 전쟁 직전에 소련은 북한에게 차관 형식으로 약 5천만 달러에 상당하는 최신 소련제 무기와 장비를 제공했다는 것이다.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南侵)의사를 정식으로 표명한것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 회의에서 였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스탈린은 여려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950년 1월 17일에 김일성은 다시 남침여부를 스탈린에게 타진(打診)했고 얼마후 1월 30일에 남침 허락을 받았다.그후 4월에 다시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은 극비회담을 가졌는데 스탈린은 국제환경이 전쟁에 유리해졌다며 남침에 대한 중국으로부터 승인 받기를 요구했다. 한달쯤 지나 김일성은 중국의 승인과 협조를 얻기위해 모택동을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미군이 참전하면 중국도 참전하겠다고 했다. 남한의 북침설은 설 땅이 없다./장세균 논설위원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의 남북간 대결에만 머문 전쟁이 아니었다. 동북아 및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오늘날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이나 천안함 사건 등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소련군이, 남쪽에 미군이 진주해 군정을 실시했다. 남쪽에는 이승만, 북쪽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정부를 수립했으나 실질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영향하에 있었다.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불안한 평화 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이 무렵 북한의 김일성은 수차례 소련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 무력침공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소련의 지배자인 스탈린은 미국을 의식해 소극적이었으나 중국의 통치자 모택동은 적극적이었다. 결국 소련은 중국이 북한에 전쟁 원조를 하는 조건으로 김일성의 남침을 승락했다.반면 미국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였고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독자적인 전쟁 수행능력이 없다고 오판하였다. 또 전쟁 직전까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저평가해 특별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그러데도 이승만은 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실지(失地)를 회복하겠다"고 장담했다. 한술 더 떠 채병덕 육참총장은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기를 부렸다.이같은 상황속에 6·25 전쟁은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3년 1개월에 걸쳐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되었다. 남북 양측을 합해 250만 명이 숨졌고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을 남겼다. 전체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고 산업시설과 공공시설, 교통시설의 80%가 절단났다.전쟁을 통해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의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유일체제의 기반을 닦았다. 또 남한에서는 이승만 정권이 공고화되고 우경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이러한 상흔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남북간의 첨예한 대결은 물론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일찌기 '전쟁론(戰爭論)'을 쓴 K.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정치지도자의 서투른 판단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말해준다.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조상진 논설위원
산소없이도 살수있는 동물을 지중해 심해(深海)_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영국 B B C 방송이 발표했다고 한다.이 발견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마르케 공과대학의 로베르토 다노바 교수의 연구팀이다.그동안 심해나 지하 깊숙한 곳에서 산소 없이도 생존이 가능한 단세포 생물은 여러번 확인됐지만 다세포(多細胞) 동물이 발견된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발견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는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생명체의 패러다임(Paradigm)에 변화를 주는 회기적인 사건이다."패러다임"이란 특정의 시대에 어떤 영역에 대한 지배적인 사고(思考)의 틀을 말한다 .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고대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보았다.이것을 '지구 중심설'또는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이 움직인다고 해서 천동설(天動說)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적인 사람이다.이것을 더욱 정밀한 이론으로 만든 사람이 '프톨레이마이오스'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지가 발달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16세기가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가 지구 천동설을 뒤엎고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중심이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다는것은 과학사의 상식이다. 사람들의 우주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꿔진것이다.지금까지 화성이나 금성, 목성에 생물이 존재할수 없다고 생각한것이 과학자들의 우주 생명체에 대한 패러다임이었다.지구의 대기는 질소가 78%,산소가 20%, 이산화 탄소가 0.035%, 아르곤이 0.93%, 나머지는 기타이다. 지구에 산소가 풍부하다보니 산소가 지구 생명체의 필수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성의 대기, 주요성분은 이산화탄소이고 그밖에 소량의 질소와 산소가 있을뿐이다.금성은 이산화타소가 대기의 주성분이고 목성과 토성의 대기 주성분은 수소와 헬륨이다. 산소가 모든 생물체의 절대 필요 원소라고 하는것은 지구에서나 통용되는 생명체 패러다임일뿐 다른 행성에서는 수소나 이산화탄소를 절대로 필요로 하는 생명체가 존재할수도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이번 발견이 열어 준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지방의회 임기 2년의 전반부 의장단 선출을 둘러싸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간에 내홍이 심각하다.의장단은 통상 다선의원이 맡는게 관례다.그러나 이같은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의장단 선출 과정을 보면 한마디로 요지경 속이다.몇명 안된 시군의회에서 각종 컨넥션들이 날개친다.선출방식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교황선출방식을 준용해서 의장을 뽑기 때문이다.교황은 콘클라베(conclave)라는 비밀회의에서 뽑는다.콘클라베는 자물쇠를 잠근다는 뜻이다.교황선출 방식은 도덕적으로 검증된 성직자들의 선출 방식이다.성 베드로 대성당 내 시스틴 소성당에서 각국의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모여서 선출한다.추기경들은 한장의 투표용지에 한명의 이름을 기입하는 비밀투표 방식을 택한다.자신의 이름을 써도 무방하며 추기경이나 주교가 아니어도 된다.특정 사제가 선거인단의 유효표 3분의 2 이상을 얻으면 교황으로 선출된다.투표 결과는 시스틴 성당에서 투표 용지를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색깔로 알 수 있다.검은 연기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다는 표시고 교황이 선출되면 재에 화학약품을 섞에 흰 연기로 피워 올린다.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수용한다"(Accepto) 는 말로 공식 확인하고 추기경단 의장은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창문에 나타나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새 교황이 생겼다)이라고 선언하고 신임 교황의 이름을 발표한다.그러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에서 이 같은 제도를 준용해서 쓰는 것 자체가 문제가 많다.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한 의사 전달과 금품이 오가는 개별적인 선거운동이 이뤄져 갖가지 폐단이 야기된다.의원간에 담합과 이합집산으로 상임위원장 나눠먹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파벌이 형성돼 잡음이 끊이지 않게 된다.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도의회와 전주시의회만 공개적으로 후보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다.익산시의회는 2명의 국회의원이 있어 복잡한 양상이며 나머지 의회도 마찬가지다.앞으로는 교황선출방식을 적용치 말고 후보 등록을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과정을 거쳐야 탈이 안난다./백성일수석논설위원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는 말은 뇌물을 써서 통해 놓으면 일 하기가 수월하다는 뜻이다. '코 아래 진상(進上)이 제일이라' 는 속담도 있다. 환심을 사려면 먹이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쇠먹은 똥은 삭지 않는다'는 격언은 뇌물을 쓰면 효과가 있다는 뜻이고 '진상 퇴물림 없다'는 말은 갖다 바쳐서 싫어하는 사람 없다는 말이다. 뇌물을 빗댄 비유가 촌철살인이다.뇌물은 기원전 고대 이집트 시대 때부터 이미 사회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로 규정하고, 처벌을 면할 목적으로 선물을 살포하는 행위를 단속했다고 한다. 뇌물의 시초다.뇌물은 어떤 직위 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사적인 일에 이용하기 위해 건네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뇌물을 주고 받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법과 규모는 날로 진화하고 있다.교육계가 일부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김승환 교육감 당선자는 이와관련 "제 인생 자체가 파멸로 간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을 비웃듯 며칠만에 또 비리가 터졌다. 초등학교 행정실장이 도 교육청에 전보되는 댓가로 수천만원을 뜯긴 사건이다. 단지 하나의 사례일까? 전보-승진-근평-장학사 임용 등 인사에서 "돈 아니면 안된다"는 소문이 쫘악 퍼져 있다. '쩐인사(錢人事) 대천명'인 셈이다.인사비리는 서울시교육청의 '여 장학사 하이힐 폭행사건'이 없었더라면 묻힐 뻔 했다. 사실상 '내부고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사비리를 없애기 위해 청탁배격, 불이익, 언론공개 등의 대책이 나왔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방책은 없을까? 부패방지법이 보장하고 있는 내부고발을 확대하고 장려하는 게 그나마 해답일 것 같다. 경기도가 올해 전국 처음으로 도입한 '익명 내부 고발제'를 시행하면 어떨까. 내부 인터넷망에 접속하면 곧바로 외부업체에서 관리하는 프로그램에 연결되고 입력된 내용은 신고자 노출요소를 제거한 뒤 감사관에 메일로 전해지게 된다.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내부고발사항을 객관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시스템이다.악의성, 음해성 비방을 이유로 반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이경재 논설위원
우리 축구가 아르헨티나에게 석패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국민적 애정만은 패배하지 않았다. 축구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는 결집체이기도 하다. 각종 현안으로 분열된 우리가 월드컵 대회 기간 동안만은 하나가 되는것이다. 그래서 축구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다.이번의 남아연방 공화국 월드컵 본선에의 출전은 월드컵 본선 진출 8회째이다. 월드컵 대회는 항상 새로운 축구 영웅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하기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이다. 스위스 월드컵에 대한 일화가 많다고 한다.옛날에는 우리가 가난했기에 스위스 월드컵 대회 참가를 위해 항공권을 구입할만한 재력이 모자라 주한 미군에게 신세를 졌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은 겨우 미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스위스로 날라갔는데 그것도 예정된 제 날짜보다 늦게 도착함으로써 개막식에도 참석을 못했다고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첫 경기가 항가리전(戰) 이었는데 이 날짜도 못지켜 주최측의 경기 조정으로 도착 다음날에야 항가리전을 치루었다고 한다.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4강을 했으니 장족(長足)의 발전을 한셈이다. 축구의 역사는 오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볼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것이 로마 시대에는 "군사경기"로까지 발전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때 이것을 보급시켜 영국에서 근대 축구의 기원이 이루어 진것이다.그동안 많은 세월이 흐른뒤 1800년대 와서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써의 모양을 갖추게 된것이다. 그리고 영국에 유학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 나라에 전파되기도 하고 영국인 목사, 선교사, 군인, 상인들에 의해서도 각국에 소개되었다. 드디어 1904년에 국제 관리 기구로써 "피파(FIFA)가 탄생된 것이다."피파"의 공식명칭은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이다. "국제 축구 연맹"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도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가 있었는데 소의 방광에다 바람을 낳어 차기도 했고 통일신라때 축국(蹴鞠)이라는 것도 오늘날의 축구와 비슷한 것이다./장세균 논설위원
전주 건지산은 해발 100m도 안되는 야트막한 산이다. 소나무 숲길 사이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산자락에는 문화·체육시설 등이 들어서 전주 서북부의 문화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며 체련공원, 전주 동물원, 전북대 병원 등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덕진공원으로 이어진다.이러한 건지산은 역사적·풍수적으로 중요한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전주의 정체성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두 가지 점에서 접근해 보겠다. 하나는 건지산이 전주의 주산(主山)인가 하는 점이다. 건지산은 오랫동안 전주의 주산 또는 진산(鎭山) 노릇을 해 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호남읍지, 완산지, 전주부사 등에 일관되게 기록된 사실이다.여기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다. 최 교수는 여러 근거를 들어 전주의 주산은 건지산이 아니고 기린봉이어야 맞다고 주장한다. 건지산은 주필산(갈라진 줄기가 많아 氣가 분산된 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풍수지리 이론이나 지역의 상징성, 공간구조 등을 들어 그렇게 설명한다. 김두규 교수(우석대)도 여기에 동의한다.또 하나는 조경단에 관한 문제다. 건지산이 조선왕조에서 성역화된 것은 조경단(肇慶壇)과 관계가 깊다. 조경단은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의 묘를 모신 곳이다. 태조 이성계는 그의 21세손이다.조경단 건립은 당초 이한의 묘가 건지산 기슭에 있다는 구전을 바탕으로 영조 대에 논의되었으나 묘역을 찾지 못해 중단되었다. 다만 감독관을 두어 건지산 일대에 푯말을 박고 사냥과 땔감 채취를 금하였다. 그러다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고종 대인 1898년에 결실을 맺게 된다.이같은 건지산과 관련된 논의가 제11회 전주학 학술대회에서 제기되었다. '조선왕조와 전주'라는 주제로 열린 대회에서 토론에 나선 이욱씨(서울대 규장각)가 흥미있는 지적을 내놓았다.전주가 풍패지향으로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영조 대이며 조선 초기만 해도 건지산에 대한 이해, 시조 무덤, 태조와 목조의 유허지에 대한 신화 등이 없었다는 것이다. 관찰사와 지역민들이 나서 이러한 것을 생성하고 전승시키고 역사적 사실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시민들의 친근한 휴식처인 건지산의 숨결이 예사롭지 않은듯 하다./조상진논설위원
20세기 영국의 석학인 칼, 파퍼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한용운 스님은 '불교 유신론'에서 불교를 말살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당연히 이에 맞서야 한다는 논조를 폈다.불교가 평화를 존중하는 종교라고 해서 정당방위까지 포기하면 불교 자체는 없어진다는 뜻이다. 민주체제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공개서한을 보내 우리정부 조사에 의문이 많아 신중하게 논의해달라는 식의 주문은 상식밖의 일이다.정부는 국가를 대표하기도 한다. 천암함 사건을 놓고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 주장이 이원화(二元化)된 꼴이다. 우리끼리 싸워 창피한 꼴은 이미 옛날에도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을 갔을 때 샌프란 시스코 어느 거리에서 상투를 틀고 갓을 쓴 조선인 두 사람이 노상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도산 선생은 두 사람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서 서로 동인 서인 싸움질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역만리 여기까지 와서 이 무슨 창피한 짓인가 하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미국에 약 2백만 한국 교포가 살고 있다. LA에 가장 많이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거기에도 한국 깡패가 있어 한국 교포 상점만을 상대로 행패를 부려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중국이나 일본 깡패는 자국민의 상점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지는 않는다. 모든 나라들이 다 그렇다. 한국학을 전공한 러시아 출신 박노자라는 사람은 한국 사람의 기본적 심리를 너무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는 말한다. 한국 사람 정신의 '키워드'는 오로지 '자기 개인 생존 본능'이라고.한국의 어느 사회학자도 이렇게 예리하게 우리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친 사람이 없다 .한국 사람은 국가보다도 자기 개인 조직을 더 우선시하고, 자기 조직보다는 자기 개인의 생존을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참여연대의 유엔 안보리로의 공개서한을 볼때 박노자의 지적이 맞다는 생각이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조정에서는 동인(東人),서인(西人)끼리 싸움을 했잖은가 ./장세균 논설위원
요즘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심신이 지쳐있다.지방선거 낙선자나 선거 때 줄 잘못 선 사람이나 사업이 안돼 이자 돈 챙기기에 급급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3 수험생들도 기진맥진할 때다.오장육부에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폭탄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확 날리 것 같지만 결국 작취미성이 돼 건강만 해친다.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적 구조를 지녔다.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법이다.그러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이같은 일을 잘 못한다.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요즘 같은 때는 숲속을 걷는 것이 최상이다.숲길도 침엽수가 많은 쪽이 좋다.편백나무나 소나무 숲속에서 즐기는 산림욕은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호흡기 질환 갱년기 장애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피톤치트는 나무가 해충과 각종 균으로부터 자신을 방어 하기 위해 공기중에 발산하는 천연 항균 물질로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와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피톤치트와 함께 숲의 향기로 불리는 테르펜(Terpene)은 숲길을 걸으며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몸 깊숙히 받아들일 수 있다.140여종의 테르펜은 박테리아나 곰팡이,기생충 등을 없애거나 성장을 억제하고 머리를 맑게 하며 피로회복을 돕는다.테르펜은 이 때문에 살균제,방부제,피부자극제,피로회복제,소염제 등에 쓰인다.테르펜은 걷는 사람의 자율신경을 자극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며 체내분비를 촉진시켜 뇌 건강에 좋다.숲길 걷기는 유산소 운동의 효과 이외에도 피톤치트에 의한 장과 심폐기능 강화에 효능이 있다.'9988234'란 말이 있듯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다.골프 치고 맛 있는 음식 먹는 것도 건강에 도움 될 수 있지만 돈 안들이고 자연을 벗 삼아 요산요수(樂山樂水)하는게 더 나을 수 있다.전주에서는 편백나무가 많은 왕릉 주변과 완산칠봉이 제격이다.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무주 구천동에서 백련사간 숲길,임실 성수산과 순창 회문산 자연휴양림 그리고 강천산 군립공원 등은 심신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지치고 힘든 사람은 숲길로 달려가라./백성일 수석논설위원
거리응원은 한국이 원조다. 한국의 길거리 응원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선보였다. 거리마다 광장마다 붉은 물결로 넘쳤다.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축제의 마당이자 폭발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이었다.당시 거리 응원을 펼친 '붉은 악마'들은 2200여만 명에 이르렀다. 강호 포르투갈을 꺾은 뒤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 응원 열기는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400만, 8강 스페인 전에선 500만 명으로 늘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나타내자 분위기도 최고조로 달아오르면서 4강 독일 전 때는 무려 700만명에 이르렀다.독일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 때엔 독일 시민들이 라인강변의 대형 전광판 앞에서 우리 처럼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2002년 우리나라 거리응원에서 자극받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거리응원은 이제 세계 여러나라에 '수출'되고 있다.응원문화는 집단심리에서 파생된 강력한 힘이다. 수많은 개인이 뭉쳐 집단을 이루고 그 집단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고 이루어 낸 것이 바로 거리응원이다. 이런 의식이 개개인에게 체득화되면 누가 누구한테 참여하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조직화가 이뤄진다.그렇다면 왜 이런 거리응원이 가능한가. 거리응원에 참여함으로써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고 사회· 정서적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풀이한다. 거리에 나가 집단 속에서 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은 애국심의 발로이자 자신을 과시할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거창한 심리학적 풀이가 아니더라도 집단에 묻혀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효과도 있다. 골문을 가른 슛 한방으로 모든 근심 걱정을 날려 보낸 그 맛을 잊지 못해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4년 만에 또 다시 거리응원에 불이 붙었다. 우리나라와 그리스 전이 열린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100만 명, 전북지역에선 5만여 명이 거리응원을 펼쳤다. 모레(17일) 오후 8시30분에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전이 열린다. 16강 진출의 중요한 관문이다. 또 한번 거리응원의 폭발적 에너지가 필요한 때다.거리응원은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이같은 폭발적인 국민적 에너지가 사장되는 게 안타깝다./이경재논설위원
우리나라 언론 매체에는 비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너무 많다. 언론매체는 침묵하고 있는 전문가를 가능한 많이 발굴해 그들의 목소리를 받어내야 한다.우리 사회에는 비전문가들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21세기 지식 정보사회에는 전혀 맞지않는 현상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을 놓고도 침몰 원인에 대한 규명작업에 비전문가들의 견해가 언론매체에 너무 많이 올라왔다.이런 비전문가들의 주장은, 소리는 크되 거기에 따른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이다.심지어 소설가까지 나서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한말씀 하는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사회적 잇슈에 관심을 갖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겠으나 관심의 정도를 넘어, 자기 주장을 절규해서는 안된다. 광우병 사태때도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여려 주장이 분출되었으나 도축(屠畜) 공정 전문가의 견해는 들을수가 없었다.부안 방폐창 설치문제로 설왕설래(說往說來)할때도 얼마나 많은 비전문가들이 설쳐댔는가. 토론회에 나와서도 원자력 전문가의 전문적 주장을 비전문가들이 그들의 얄팍한 과학지식을 들먹이며 전문가를 욱박지르는 광경은 한마디로 가관(可觀)이기에 앞서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치부(恥部)였다교육문제에 있어서도 영어 몰입 교육이니 수월성 교육이니 공교육 강화,외고 폐지등, 갖가지 교육 현안들이 들먹여져도 교육학 전문가는 어디가고 교육 비전문가들 주장이 유수 일간지 칼럼들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전문가의 전문지식은 우리 국가의 지적 자산이다. 이것을 활용해야 국가가 발전한다.택시 운전사가 비행기 조종간을 잡을수는 없잖은가.우리 야담(野談)에 어떤 시골 촌노(村老)가 서울을 구경하는중 남대문에 문턱이 없는것을 보고 고향에 내려가 남대문에는 문턱이 없다고 하니까 고향 사람들이 남대문도 분명히 문(門)일진데 문턱이 없다고 하는것은 거짓말이라고 하여 오히려 서울 구경한 촌노를 거짓말 쟁이로 만들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비전문가의 주장이란 바로 남대문도 문(門)이니까 문턱이 있어야 한다고 억지 주장하는 것과 똑 같은것이다./장세균논설위원
춘향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고전이다.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않게 사랑받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다뤘기 때문이다.고전의 특징은 샘솟듯 변화하는 에너지와 생명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춘향전 역시 그러하다. 조선 영조·정조 전후에 처음 판소리로 생성된 춘향전은 나중에 소설로 정착되었다. 다시 창극이 되고 만화 희곡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몸을 불렸다. 소설만 해도 판본 이본 4종, 사본 20여 종, 활자본 50여 종, 번역본 6-7종이 전한다.영화도 20편 가까이 된다. 맨 처음 나온 '춘향전'은 1922년 일본인 하야카와 마스타로가 만든 무성영화다. 1935년에는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이명우 감독)이 만들어졌다. 1955년에 이규환의 '춘향전', 1957년 김향의 '대춘향전'이 개봉되었다. 1961년에는 홍성기 감독·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이 경합을 벌였다. 1968년에 홍세미 주연의 '춘향'(김수용 감독), 1971년 문희·신성일 주연의 '춘향전', 1976년 장미희 주연의 '성춘향전'(감독 박태원)으로 이어졌다. 2000년에는 임권택 감독이 만든 '춘향뎐'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올랐다.또 변주한 영화로는 '그 이후의 이도령'(1936년), '탈선춘향전'(1960년) '한양에 온 성춘향'(1963년) '방자와 향단이'(1972년)가 제작되었다.그리고 2010년 6월 김대우 감독이 만든 '방자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봉 일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넘겼다. 방자전은 원작을 비틀어 방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몸종인 방자는 몽룡과 사랑의 맞장을 떠 춘향을 품에 안는다. 춘향 역시 신분상승을 꿈꾸며 양다리를 걸치고 이몽룡도 출세를 위해 춘향을 이용한다. 이 영화는 배꼽잡는 웃음과 노출마케팅으로 흥행에 성공한듯 하다.하지만 너무 야해 남원춘향문화선양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방자전이 "춘향의 절개와 지조를 모독했다"며 상영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는 "원작을 훼손할 의도가 없었다"며 공식 사과했다.방자전은 춘향전이라는 탄탄한 소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치한 듯한 상상력이 오히려 춘향전을 더 풍성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조상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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